영화 <원더 우먼>을 봤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건 새로나온 볼만한 영화라던가, dc코믹스의 새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라던가 하는 요건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추억 여행'때문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그 시절 '린다 카터'의 원더 우먼이 아닌데도 극장으로 향한 내 발길을 보면, 어린 시절 슈퍼맨과 배트맨을 보던 아이들이 자라 극장판 히어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향하는 그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70년대 그 시절의 <원더 우먼> 
<원더 우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tv에서 <원더 우먼>을 방영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아야 겠다. 1979년부터 tbc를 통해 방영되었던 <원더 우먼> 시리즈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육백만불 사나이>에서 부터, <소머즈>, <전격 z작전> 등 인기있는 외화 시리즈의 흐름 속에 등장했던 '미드'이다. 그저 '미드'여서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70년대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로 상징할 수 있는 시대다. 이 여배우들은 그녀들의 대표작이자, 70년대 드라마의 상징적 작품이라 할 <청실홍실(1977)>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전도유망한 능력남을 놓고 순애보의 경쟁을 벌이는 두 여인, 그들이 부잣집 딸이건, 가난한 직업인이건, 화려하건, 순수하건, 그들의 삶의 결정적 요소는 '사랑'이고, '결혼'이었다. 그런 순종적이고, 여전히 현모양처를 지향하는 여성들이 드라마를 점령하고, 그로부터 배제된 여인들은 슬픈 운명의 서사를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되풀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황금 팔찌를 두르고 총알을 막아내고,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올가미로 대번에 굴복하게 만드는 여성 히어로라던가, '뚜뚜뚜뚜' 거리며 저 먼곳의 소리를 듣고, 대번에 달려가 적들을 제압하는 그녀들은 '획기적인 여성상'이었다. 맨날 tv에서 '지고지순'하게 울며 불며 사랑을 위해 매달리던 여성들만 보던 그 시절 아이들에게, 대놓고 온몸의 라인이 드러내는 '섹슈얼'한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미녀라던가, 정돈되지 않은 듯 날리는 머릿결에, 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어떤 미션도 척척 수행해 내는 '이지적'인 분위기의 이방인은 당시 소녀들에겐 신선하고 매력적인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진취적'인 그녀들의 캐릭터만이 매력적인 건 아니었다. 당시 소녀들에게 <원더우먼>이나, <소머즈>는 또 다른 버전의 '로맨스' 담이기도 했다. 아마존의 공주였던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역만리' 미국으로 와, 안경만 쓰면 못알아보는 비서로 불철주야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원작이 참조했다는 '마가렛 생어의 페미니즘'과는 별개로, 현대판 '인어공주'와도 같은 '로맨틱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서사로 다가왔다. '소머즈'와 육백만불 사나이의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도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캐릭터는 진취적이었지만, 동시에 지고지순한 순애보의 주인공들이었다. 



2017년의 원더우먼
이제 2017년에 돌아온 <원더 우먼>은 그 시절, '사랑'의 기억을 모티브로 삼는다. 하지만 원더우먼이 하는 2017년의 사랑은 1970년대의 그녀와 또 다르다.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다이애너 공주, 그녀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공주의 신분으로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사'로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제 왕국의 그 누구도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을 무렵, 데키스키라 왕국을 지키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뚫리고 '트레버 소령'이 등장한다. 

그의 등장과 그를 통해 전해들은 전쟁은 다이애너에겐 '하네스'의 귀환으로 전해졌고, 의기가 충천한 그녀는 그를 따라 '하네스'를 제압하기 위해 '인간들의 세상'으로 떠난다. 하네스에 대한 전의가 충만한 다이애너와 역시나 휴전 회담을 앞두고 스파이로서 적의 위기를 감지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의 음모를 막으려는 트레버 소령은 다른 듯 같은 모습이다. 인간 세상의 실상을 모른 채 하네스만을 향해 맹목적인 다이애너나, 자신이 손에 넣은 적의 음모를 막기 위해 군율과는 상관없는 작전을 계획하는 트레버 소령의 고지식한 애국심은 궤를 같이한다. 마치 아직 세상의 쓴 맛을 보기 전의 순수한 열정을 가진 미성년들처럼. 그런 그들이 자연스레 서로에게 공감하고 의지하며, 나아가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의 감정까지 전개해 나가는 것에 이물감이 없다. 

하지만 시리즈 물로서 미드 속 다이애너가 트레버 소령의 비서로 자신을 감추며 그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들의 무리를 제거하는데 매진하는 것과 달리, <원더 우먼> 속 다이애너는 이제 세상을 구할 '히어로'로서 '업그레이드'될 사명을 부여받는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은 '자각'의 매개체이지만,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기에 트레버 소령은, 가장 불가능한 평화의 조건을 가지고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 패트릭 장관의 모습을 한 하네스로 인해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에 좌절하는 원더 우먼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존재로 '산화'한다. 인간은 부조리하나, 그럼에도 그 '부조리함'을 넘어서는 '희망' 역시 인간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인간 세상에 온 히어로'의 명제'를 풀이해주는 존재로 그 역할을 다한 채, '영원한 하지만 이승에선 그 운명을 다한 사랑'으로 그녀를 인간 세상에 머물게 한다. 2017년의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원더우먼과 트레버 소령의 이별 그 순간이었다. 그 어떤 사랑 영화보다도 극적이었고, 슬펐던. 그리고 그 슬픔은 곧 히어로 원더우먼의 동력이 된다. 

1970년의 다이애너가 영웅이지만, 매번 트레버를 구해줌에도 그의 그늘 속 여성으로 남겨진 것과 달리, 2017년의 다이애너는 트래버를 통해 '남녀간의 사랑'을 이루지만, 동시에 동지인 그를 통해 '히어로'로서 자신의 임무를 '자각'한다. 그리고 이제 '사랑'의 온기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얻고 '히어로'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해나간다. 2017년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by meditator 2017. 6. 9. 16:49

<써클; 이어진 두 세계(이하 써클)>의 1,2회라고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난 주 시작한 <듀얼>이 그러하듯, 장르물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이한' 방식으로 가족적 사연있는 주인공의 절규로 시작되었다. 자살한 선배 대신 조교 자리를 달라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가난한 고학생 우진(여진구 분)은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외계인'에 정신팔린 형이 혹시나 살인자일까 하는 불안에 떨며 형의 뒤를 쫓는다. 


외계인이라니! 하지만 이 쌍둥이 형제는 일찌기 어린 시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ufo와 외계인 여성을 목도한 바 있으니. '외계와의 조우'라는 생소한 설정은 하지만 현실의 우진 형제의 뜻모를 위기로 이어지며 sf물 <써클>은 '장르물'의 형태를 띠며 시작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sf라는 장르보다 더 생소하게 만든 건 <베타 프로젝트>와 <멋진 신세계>란 제목으로 등장한 두 개의 세계이다. 과거의 30분과 미래의 30분 분량으로 배분된 드라마. 2030년의 스마트 도시와 일반 지구로 나뉘어진 미래의 지구 <멋진 신세계>는 우진의 과거에 등장한 외계인보다 더 이질적이었다. 거기에 과거에서 형을 찾아다니는 우진과, 미래의 스마트 도시에서 역시나 형을 찾아 잠입한 형사 김준혁(김강우 분)의 질주는 서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피로감을 주었다. 심지어 2030년이라기엔 어색한 80년대 드라마에서도 나오기 힘들 뽕끼 다분한 ost의 과도한 배치라니!






어느덧 외계인도 '미스터리'하지만 익숙해진 
그렇게 이질적이고, 단선적으로 시작되었던 <듀얼>, 하지만 이제 12부작의 절반을 돌아선 이 시점에서 보면, 처음의 그 낯섬과 맹목적인 서사는 sf물이라는 낯섬조차도 잊을 정도로, 매회 흥미진진한 서사를 이어가며 많지는 않지만 열광적인 호청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극 초반 다짜고짜 등장한 외계인의 생소한 존재를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미모를 자랑하며 활약하는 한정연(공승연 분)이라는 '의문의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순치'시키는데 성공했다. sf물답게 ufo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질적 존재는 과거 우진 형제 앞에 등장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별이란 여인과, 현재의 블루버드라는 아이디를 가진 과거가 불투명한 교수의 딸 한정연, 그리고 이제 미래 도시에서 기억이 통제된 인간들 기억의 빗장을 풀어내는 블루 버드로 외계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의문의 인물처럼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던지는 매회의 새로운 '미스터리'는 <써클>을 이끌어가는 주된 질문이 된다.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한정연만이 아니다. 그 이질적이었던 현재와 2030년의 미래의 지구로 나뉘어진 '서사'가, 이제 현재에서 사라진 형을 쫓다, 자살한 이들에게서 꿈틀거리며 기어나온 푸른 벌레의 미스터리를 만나게 된 우진, 그리고 2030년 미래에서 '형'을 쫓아가던 김준혁이 우진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그 '형'이었음이 드러나며, 나뉘어져 졌던 두 개의 세계는 '우진 형제'의 과거와 미래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잡혀간 형 범균이, 이제 미래에서 머리에서 이식된 칩을 제거한 형사 김준혁으로 등장하며, '형'을 찾아서는 이제 오히려 그러면 미래에서 '우진'은? 이라는 뜻밖의 궁금증을 유도하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매회의 미스터리를 생소하지 않게 이끌어 가는데는 제작진은 물론, 여진구와 김강우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설득력있는 연기다. 

이러한 늙지 않는 미스터리한 외계의 생명체,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서 그 행적이 궁금해지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는 1,2회 등장했던 자살자들의 미스터리에서 이제 미래의 기억 통제와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로 한 회, 한 회, 치밀하게 접근해 들어가며 짜임새있는 전개를 펼쳐가고 있다. 즉, 첫 회 그 형제의 서로 다른 행보와, 느닷없이 등장한 외계인이며, 젊은 대학생들의 죽음이란 별개의 사건들이 '푸른 벌레'를 통한 기억 통제의 실험에서 이제, 기억을 통제하는 사회로의 진화, 그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라는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며 <써클>의 정체성을 밝힌다. 






현재와 미래가 직조해가는 '디스토피아'
그러기에 회를 거듭하며 디스토피아 전체의 서사로 직조되어 가는 걸 목도하는 건, 장르물의 시청자로서 최고의 즐거움이다. 또한 그저 수동적 목도가 아니라, 과거의 인물과 미래의 인물을 맞추어 가며 퍼즐을 풀어가는 듯한 '추리'의 즐거움 역시 <써클>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과거의 우진이 미래의 준혁이 아니었다는 뜻밖의 반전에 기꺼이 뒤통수를 내어주며. 

sf물이자, 미스터리 장르물로써 <써클>은 극 초반 산만한 전개와 이질적 구성 요소로 인해 그 '미래'에 대한 암울한 진단을 받았지만, 이제 중반에 들어선 현재, 이 정도라면 sf물로서는 안정적인 안착이 아닐까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만하다. 
by meditator 2017. 6. 6. 17:10

tvn의 월화 드라마 <써클> 속에 등장한 대한민국 2030년은 이른바 스마트 도시와 일반 지구로 지역이 나뉘어져 있다. 말 그대로 '스마트'한 외관을 자랑하는 첨단 도시와, 마치 철거 예정지처럼 허름한 일반 지구를 가르는 건 이 '번드르르한' 건물들 외에 결정적으로 '공기'다. 청량한 하늘을 자랑하는 스마트 지구와 달리, 상시적으로 뿌연 미세 먼지에 휘감싸인 일반 지구. 입을 막고 연방 콜록거리는 일반 지구를 보며, 어휴, 저기서 어떻게 살아? 하게 되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바로 어느덧 '미세 먼지 주의보'에도 무감각해져가는 그러나 애국가에도 나와있는 맑고 청량한 하늘이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청량한 하늘'을 잃은 현실을 4일 <sbs스페셜-공기의 종말>이 다룬다.




에어 노마드 족이 된 사람들
아토피가 심했던 혜성이네는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의 아토피가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양평으로 이사를 오기만 했는데도 호전된 걸 보면서 새삼 공기 오염에 대해 실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공기 난민, 에어 노마드 족이다. 한 술 더 떠, 제주도로 간 가족도 있다. 자라나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졸지에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이사를 가지 못한다면 '극성'이라도 부려야 한다. 공기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민감한 유치원, 바깥 활동이 잡힌 날, 하필이면 미세 먼지가 심해졌다.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아이들이 향한 곳은 실내 박물관, 바깥 놀이를 기대했던 아이는 풀이 죽었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집이라고 다를까. 도시에 사는 엄마들은 바쁘다. 아이들 기관지에 좋은 온갖 음식을 해먹이라, 자동차용 필터를 환풍기에 달아 집안 공기를 정화시키랴, 창문 곳곳에 강력한 필터를 메우랴, 혹시라도 집안에 침입한 미세 먼지를 없애느라 쓸고 닦고. '전쟁'이 따로없다.

정부나 기상청의 발표를 믿지 못해 스스로 미세 먼지를 측정하고 이웃이나 동호회 회원들과 공유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공기 좋아 이사한다는 제주도도 형편이 예전만 못하다. 한라산이 맑게 보이는 날이 줄었다. 지난 5월 24일 뜻을 모은 91명의 시민들은 환경 단체와 함께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에 환경 오염 소송을 제기했다. 



미세 먼지, 당신 집 마당의 독가스 
극성이라고? 오바라고? 미세 먼지를 그냥 먼지가 조금 더 '미세'한 수준이라고 얕봐서는 안된다. 

중국 한 tv의 여성 아나운서, 이 아나운서는 취재를 위해 중국 곳곳의 미세 먼지가 심한 곳을 다녔었다. 취재를 마치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 그러나 여성의 아이는 이미 태아의 상태에서 종양을 가지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게 된 여성 아나운서의 아이. 이 아나운서는 자신의 아이에게 생겨난 종양이 '미세 먼지' 때문이라 말한다. 

또 하나의 사례, 중국 베이징 병원의 전도유망했던 소아 심장 전문의. 공기 오염이 심한 곳의 아이들을 수술하며 아이들 폐에 생긴 회색 점들을 보며 의아했던 그가, 정작 가족력도 없는데 '폐암'에 걸리고 말았다. 자신의 폐 중 겨우 1/6을 유지한 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폐암이 베이징의 공기 오염 때문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설사 회복이 되더라도,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다시는 베이징에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한다.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는 아황산 가스, 질소, 납, 오존, 일산화 탄소 등 유독성 성분을 포함한 대기 오염 물질이다. 대부분의 오염된 물질들이 코 등을 통과하며 걸러지는 것과 달리, 10 이하의 오염 물질들은 걸러지지 않은 채 폐 등 우리 몸에 고스란히 축적되며 각종 신체적 병변의 원인이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식, 아토피, 각종 피부병, 호흡기 질환의 수준을 넘어 미세 먼지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덴마크 암학회 연구센터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상승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은 18%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기사망위험도 커졌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롭 비렌 박사팀이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증가할 때마다 조기사망 확률이 7%씩 증가하였다.

무엇보다 이런 미세 먼지에 취약한 계층은 폐기능이 약한 노인과 아이들이다. 특히 어른에 비해 호흡 수가 잦은 아이들의 경우 더 치명적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할 때 호흡기 질환 입원환자 수는 1.06% 늘었다. 노인층은 더욱 취약하다. 지름이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협심증,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암학회의 자료에서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 증가하면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자의 사망률이 1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이화영 , <미세 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 중)  



다큐가 짚고 있는 건 정부의 안이한 대처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6년 미세 먼지 평균 일수는 15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낀 미세 먼지의 현실적 일수는 2016년 한 지자체가 발표한 미세먼지 일수 119일에 가깝다. 무엇보다 정부의 미세 먼지 기준이 who의 기준에 비해 너무 높은 '안이한' 현실이다. 거기에 2016년 1~3월의 초미세먼지 나쁨 2일에 비해, 7배가 늘어난 올해 14일에서 보여지는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고 다큐는 짚는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 미세 먼지의 주범은 '중국'이다. 음모론이 작동될 만큼, 중국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공단들, 그들이  뿜어내는 대기 오염 물질은 '편성풍'을 타고 우리의 미세먼지가 된다. 그러기에 환경 단체와 시민들의 소송 대상에 중국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의 자세에 아쉬움을 전하는 것에서 그친다. 

하지만, 중국만이 문제일까? 새 정부 들어 미세 먼지 대책을 발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노후한 석탄 화력 발전소의 운행을 중지했다. 하지만, 전체 발전 비율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는 몇몇 화력 발전소의 중단은 미세 먼지 대책의 첫 발로써는 상징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심각하다. 중국의 핑계만을 대기엔 현재 우리나라 화력 발전소의 증가율은 심각하다. 

3월 29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기오염 정보사이트 에어비쥬얼의 정보를 인용해, 3월 말 서울은, 중국 베이징과 인도의 델리와 함께 세계 3대 대기오염 도시였으며,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최악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OECD보고서 내용도 인용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15년,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를 제기하며 초미세 먼지를 뿜어내는 석탄 화력 발전소로 인해 매년 1100명이 조기사망하고 있으며 앞으로, 조기사망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5년까지 모든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영국, 심지어 중국도 최근, 백사 기(104기)의 화력 발전소 신규 계획을 취소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016년 2월 기준 총 오십삼기의 화력발전소는 2030년엔 칠십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그 결과가 우려되고 있다, (4,14, ebs  뉴스 중) 

또한 정부가 밝히고 있는 2030년 경차 운행 중지 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리를 메우는 경차들의 행렬 또한 미세먼지의 또 다른 주범이다. 그런 면에서 <공기의 종말>은 미세먼지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을 조명한 것에는  의의가 있지만, 막연히 '중국'이 주범이단 식의 원인이나 대처 방식에 있어서는 '주먹구구식'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 정부가 노후 화력 발전소 중지나 경차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촘촘한 대책이었다면 심각성의 경고와 함께 프로그램의 의의가 더 살았을 듯싶다. 




by meditator 2017. 6. 5. 15:09

<캐리비안의 해적> 네 번 째 시즌이 돌아왔다. 개봉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세계 박스 오피스 1위라는 왕년의 기록에는 못미치는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네버엔딩 스토리'를 기대하는 오랜 팬들에게는 시리즈의 종말이 아닌 '연속'을 기대해 볼 여운을 남기며 순항하고 있다. 무엇보다 분장을 통해 빛을 발하는 배우 조니 뎁, 예전만 못하다 해도 그의 잭 스패로우가 돌아와 반갑다. 




시즌 4, 시리즈의 연속성을 상기해 내는 방식
dead men tell no tales, 죽은 자는 말이 없다란 부재를 가지도 돌아온 시즌 4, 이 부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시즌1을 상기해야만 한다. 

2003년 개봉한 시리즈의 1편 <블랙 펄의 저주>에서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는 헥터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분)와 함께 '블랙 펄'을 타고 카리브 해에서 보물을 약탈한다. 하지만 바르보사는 잭을 배신 그를 외딴 섬에 가둔다. 그러나 바르보사는 밤이 되면 '해골'이 되는 저주에 갇힌다.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저주에 걸렸던 그, 물론 그의 '저주'는 1편 마지막 절묘한 승기의 트릭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4편의 부재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dead men tell no tales는 대사는 바로 이 시리즈의 주요 등장 인물이 되어버린 앵무새의 입을 통해 '발언'된다. 

이렇게 죽을 수 없는 자들의 저주로 시작되었던 1편, 오랜만에 어렵사리 돌아온 4편은 그 1편의 '죽은 자에게 내려진 저주'를 다시 불러온다. 잭 스패로우를 배신하고 저주에 걸린 보물을 약탈한 이유로 '죽을 수 없는 해골'이 되었던 바르보사 대신, 해적을 무자비하게 소탕하다 젊은 잭 스패로우의 덫에 걸려 마의 삼각지대에서 몰살한 캡틴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 분)가 '죽음'의 저주를 받은 자로 등장한다. 



서로가 적이 되어 싸우는 '해적'과 '해군', 그들의 승리는 언뜻 눈에 보이는 '보물'인 듯하지만 결국은 '죽지 않'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 하지만 '저주'는 바로 그런 그들을 영원히 '죽음'의 덫에 가두어 버린다. 영원한 안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연옥'의 덫에서 이를 갈며 '복수'를 꿈꾸는 캡틴 살라자르와 그의 부하들은 1편의 '저주'에 걸린 바르보사보다 '죽음'의 덫이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늘 시리즈가 그래왔듯이 '죽음'과 연관된 적의 캐릭터를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배우를 통해 버전 업하며 등장한 시리즈 4편은 그저 시리즈의 연속만이 아니라, 바르보사의 뜻밖의 운명을 통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란 부재를 새롭게 해석해 낸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언제나 그렇듯 <캐리비안의 해적>하면 떠오르는 건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의 활약이란 언제나 '삽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적의 캡틴 살라자르를 마의 삼각 지대에 가둔 젊은 잭의 기지처럼, 잭의 활약상이란건 '정공법'이라기 보단, 나비처럼 날다, 벌처럼 한 방 콕하고 쏘아서 적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식이니 언제나 그가 '나비'처럼 나는 동안 앞서 고군분투하는 고지식한 동료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리즈 4편 역시 마찬가지다. 마의 삼각지대에서 바르보사가 자기 앞을 거스르는 그 모든 것들을 '아귀'처럼 삼켜버리며 잭을 향해 돌진하는 동안, 잭의 꼬락서니라고는 온 도시를 휩쓸다시피한 금고 탈취 작전조차 땡전 한 푼만(?)  건지고, 그의 수호자인 나침반마저 술 한 병에 거간하다, 결국 처형장에 서는 처지가 되고 만다. 또 그래야 잭 스패로우답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 그를 닮아 그에 대한 배신을 밥먹듯하듯 하는 부하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하는 것이 역시나 또 잭 스패로우 다운 '시즌 4의 입장'이다. 






그렇게 잭 스패로우가 우여곡절 죽음의 사투를 벌일 때 '우연'처럼 그 행로에 동행한 두 젊은이가 있었으니, 뜻밖에도 우연 치고는 깊은 인연을 가진 카리나(카야 스코델라리오 분)와 헨리(브렌든 스웨이츠 분)다. 아버지를 찾아서, 혹은 아버지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모험'에 나선 두 젊은이들은 잭과 뜻을 같이 하여 항로에 존재하지 않는 섬을 향해 떠난다. 

그 예전 시리즈에서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의 캐릭터를 이어받은 키이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마녀'로 오해받은 하지만 실은 진보적인 여성 과학자로, 당연히 터너가 연상되는 헨리는 역시나 그처럼 재기넘치는 거기에 저주에 걸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신화'에 통달한 이야기꾼의 재능를 탑재해 과학과 신화의 '콜라보'로서 4편의 동력이 된다. 진취적인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와 뱃사람의 아들 터너와 비슷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학'과 '신화'를 통합해 새로운 시리즈의 구색을 맞추려 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여성의 캐릭터는 최근 '디즈니 영화'의 조류를 성실하게 이어받고 있다. 

이렇게 새로이 등장한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인지, 조력잔지, 아니면 따로국밥인지 결국 한 배를 타고만 잭 스패로우의 조합은 엘리자베스와 터너와의 그 파트너 쉽의 연장이자 다른 버전으로 시즌 4를 익숙하게, 그리고 신선하게 끌어간다. 




이런 조합이 끌고가는 시즌4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헐리웃의 아버지 서사'이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혹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 젊은이들, 그들은 마치 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버지였다는 <스타워즈> 식의 아버지 찾기를 극적으로 반복한다. 대신 그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노회한 해적과 과학으로 무장한 젊은 여성 과학자로 대신할 뿐이다. 부녀는 무시하고 적대하고 갈등하고 결국 서로를 알아보지만, 그건 결국 아버지의 희생을 통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란 '이별' 공식을 순탄하게 반복한다. 아버지는 불가능하다 했지만 자신만의 신념으로 결국 아버지를 구해낸 아들의 성공 역시 또 다른 아버지의 '극복'이다. 그런 부녀의 극적인 상봉기와 이별기의 사이에서 잭 스패로우는 마치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처럼 거들 뿐. 

그러기에 어쩌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1편에서 가장 비열하게 등장했던 바르보사라는 저무는 해적의 장렬한 연대기에 대한 '경의'라 해도 어폐가 없을 듯하다. 그토록 궁금케 했던 '블랙 펄'의 저주조차 그가 단번에 허무하게 풀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캡틴 살리자르가 부하들과 무시무시하게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가운데 '죽음'의 저주를 풀기위해 고심했으며 황금의 부귀까지 누리던 바르보사는 기꺼이 죽음을 통해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영예로운 유언을 남기고 퇴장한다. 죽어가는 자의 가장 명예로운 한 마디이다. 그 명예로운 해적의 연대기에 환타스틱한 캐리비안의 해적선 모험은 가장 멋드러진 토핑이다. 

 
by meditator 2017. 6. 2. 16:12

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그 기대에 걸맞게 ebs 다큐 프라임은 새 시대에 시급하게 해야 할 교육적 과제로 '대학 입시'를 들고 나선다. 바로 지난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6부작에 걸쳐 방영되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그것이다. 


왜 대학 입시였을까? 
<1부; 학생부의 두께>, <2부; 복잡성의 함정>,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4부; 진짜 인재, 가짜 인재>, <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6부;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를 통해 <ebs 다큐 프라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대학 입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니라, 이미 고착화된 대한민국의 계층 고착화와 그나마 있는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희망없는 닫힌 통과 의례라는 것이다. 즉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격차 세습'을 통해 '꿈'과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기에 새 정부가 가장 앞서서 이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큐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몇 가지 사례,
그 첫 번 째, 장관 후보자들 몇몇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위장 전입',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바는 무엇일까? 자식 교육을 위한 '생계형' 위장 전입이었다는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두 번 째, 글을 쓰는 기자의 자녀들은 경기도 한 도시의 일반고 출신들이다. 그 도시의 대표적 명문고라 자부하던 고등학교, 하지만 학교의 위상은 해를 거듭할 수록 초라해져만 간다. 한때는 가난한 도시에서 '개천에서 용'을 만들어 내던 전설은 이제는 아이들이 벌써 중학교만 들어가도 신도시로 '전입'하고, 그나마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 좀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은 '과학고, 외고, 자사고'로 이동하고, 남은(?) 아이들이 진학하다 보니, 제 아무리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힘을 실어주어도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 역시 갈수록 저하되는 중이고 선생님들의 의욕 역시 마찬가지라 전해진다. 



교육 불평등의 현실
이런 극과 극의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대 입학생에 대한 통계 조사를 통해 다큐는 그 진실에 접근해 들어간다.(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서울대 입학생 중 자사고, 특목고는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비율로만 보면, 일반고와 자사고, 특목고는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통계의 장난이 있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전국 수능 응시생 비율 중 자사고, 특목고의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즉 90 대 10의 싸움에서 결과가 반반으로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부 잘 하는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이 서울대 가는 걸 가지고 무슨 이의를 제기하냐고? 그렇다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자사고와 특목고에는 어떤 학생들이 갈까? 학생들 부모님의 직업의 차이를 살펴보면 그 '이의'의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감지된다. 



아래 표에서 보여지듯이 상위층 비율이 외고와 일반고의 경우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자사고, 특목고의 편중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의 대비에서 서울, 경기, 그 중에서도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한 교육 특구의 학생 층에 '편중'된 결과를 보인다. 지방의 경우 설사 특목고라 하더라도 주소지는 그 지방이 아닌 학생들인 경우가 빈번하다. 이 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건, 서울대를 대표적 사례로 했을 때, 서울에 사는 돈 많은 부모들의 자녀들이 주로 서울대에 진학한다. 전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소득 1,2분위의 학생들 중 이른바 상위권이라 할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0%' 남짓하다. 더 이상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아니다. 

꿈의 사다리를 걷어찬 대학 입시 
왜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될 수 없을까? 공부만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뭘 잘 모르는 사람'이다. 

2019년 대학 입시 요강, 수시 모집을 통해 정원의 76%를 선발, 정시 모집 인원이 그만큼 줄었다. 수시 모집 중 학생주 전형 비중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학생부 교과 비중이 늘었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도 전체 모집 인원의 24.3%로 늘었다. 논술 고사 대학별 모집 인원은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서울 소재 주요 대학에서 논술은 주요 전형이다. 

자, 만약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 전형 중 당신의 자녀에게 맞는 전형을 고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몇 줄의 글로 현재의 대학 입시를 설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 단어의 행간, 행간에 숨어있는 수많은 전형, 현재 대학을 가는 전형 방법은 실제 7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2부; 복잡성의 함정, 1부; 학생부의 두께)



그래서 실제 설문을 해보면 대다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대학 입시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이 바로 '다양성'을 핑계로 세분화된 대입 전형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복잡성의 미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이른바 학생부 전형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학적부, 생활 기록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31번의 변화를 거쳐온 학생부. 2017년 현재 진로 탐색 과정을 담은 학생부는 총 24장이 기록 가능한 방대한 '자료'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문제다. 학생부를 보여주자, 선배들은 '그 엄청난 양에 놀라는 반면, 너무 주관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외국의 교육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고, 모호하며, 학생에 대해 결정적으로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 보여주기 식'이라 평가한다. 외국의 '수치화'한 학생부와 너무 큰 차이다. 


하지만 이 학생부로 인해 학생들의 희미가 엇갈린다. 실제 지방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부 조작으로 물의를 빚었다. 등급에 따라 페이지 수가 달라지는 학생부, 등급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각종 '몰아주기 혜택'. 하지만, 오히려 조작의 당사자인 선생님은 반발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방 일반고 학생들은 그나마 '대학' 갈 기회조차 없다고.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반문은 사실이다.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재력있는 학부모'들은 학생부 관리를 위해 각종 컨설팅 업체로 달려간다. 아니, 이미 '정보전'이 된 대학 입시 강남 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6학년 무렵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완료한다는 상황에서 정보와 재력을 가진 부모들의 아이들이 일찌기 교육의 기회를 선점하고 길러져 자사고, 특목고 등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관리된' 아이들과 고등학교 자녀들의 전형 방법조차 먹고 사느라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모, 기백만원의 학비는 물론 학생부를 채울 각종 스펙을 채울 재력이 든든한 부모와 학비도 빠듯한 학부모의 경쟁은 이미 달리기도 전에 결과가 나온 게임이다.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강남에서 떠도는 웃픈 교육의 지표, 이른바 텐텐 학습법(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학습 방식), 아이가 잠시 힘들어도 '하이웨이'에서 내려서서는 안된다는 강박적 '모정', 아이대신 학생부 봉사 활동을 채워주는 열혈 모정은 우리 사회 '관리 가족'의 그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정말 '인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카이스트의 이 그래프는 왜곡된 교육의 실체를 드러낸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선행 학습이 부족한 2학년까지는 고전하지만 그 이후에는 숨겨져 있는 잠재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관리'되어진 우리의 학생들에게선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기쁨이란 어불성설이다. '목표 주사'를 맞고 버텨온 학생들은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되어있다. 

걷어차진 사다리를 돌려주어야 나라가 살고, 아이들이 산다
예일대 윌리엄 데러저위츠 교수는 이런 학생들의 미래를 그의 저서 <똑똑한 양떼들>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모들의 정보와 돈으로 명문대에 들어간 엘리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고민이 없는 것은 물론, 부모들이 제시한 방향으로만 자신의 미래를 반응하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그들은 이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서 '늘 안전한' 선택만을 하는 '안이하고 무능력한 지배 그룹'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안이하고 무능한 지배 그룹'이 미래를 책임 질 수 있을까? 미래 학자 토마스 프레이가가 주장하는 바 20년대 대학의 상당수가 문을 닫을 '탄력적이며 유연하며 투지가 넘치는' 미래 인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디자인 베이비'들은 미래를 책임질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다리'에서 걷어차여진 대다수의 학생들이다. 일본의 교육 학자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일본 사회'를 이미 그의 책 '격차 세습'을 통해 경고한 바 있다. '하류의 자녀는 하류'가 되는 사회, 1억 명이 빈곤 계층인 사회, 이른바 버는 돈 없이 빠찡꼬 게임으로 딴 돈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즐기는 것으로 연명하는 식의 '현재를 즐겁게 지내자는 '니트족'들은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자구책으로 드러나는 한 예이다. 특히 '개천에서 난 용'들의 '인적 자본'에 의해 급격한 성장 주도의 경제를 근간으로 해온 대한민국에서 '격차 세습'으로 인한 계층 고착화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EBS의 <대학 입시의 진실>은 최근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학생부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시 그 자체를 낱낱이 해부하여 들어간다. 그리고 통계의 장난 속에 숨겨져 있는 결국 가진 자, 아는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계층 세습'의 도구가 되는 대학 입시의 민낯을 세세하게 밝힌다. 



문제 제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방향도 제시한다. 단순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들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그 '복잡'한 대학 입시 정책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돈과 정보에 의해 '선점'하는 그 방식을 뜯어 고쳐서, '열심히 공부하면' 갈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 

6부작에 걸쳐 방영된 <다큐 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은 현행 대학 입시 제도의 모순과 그 원인을 심층깊게 진단했다. 그리고 그 대안까지 제시했다, 새 정부를 맞이한 '교육 방송'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교육 정책처럼, 꼭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변화되는 교육 정책 속에서도 여전히 상위를 독점하고 있는 강남 8학군처럼 상위 계층의 카멜레온보다 더 빠른 적응력을 따라잡을 지도 문제다. 무엇보다 부모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지 않으면 교육 정책은 실패한다는 학자의 말처럼 '내 아이는'하면 사회 지도층이라도 위장 전입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 자녀애의 욕망을 과연 어떻게 순치시켜 나갈지도 미지수다. 그러기에 총체적인 진단이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더 의미가 있다. 공은 던져졌다. 과연 이 '로드맵'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지는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그건 일자수 몇 개 이상의 진정한 '꿈의 사다리'를 마련해 주는 해결책이다. 

by meditator 2017. 6. 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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