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된 <뜻밖의 여정>은 2022년 아카데미상 시상자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 윤여정 배우의 '여정'을 담은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다. '미국 구경'인가 싶었는데 뜻밖의 여정에 당도하게 된다. 바로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시간'이다. 

 

 

여우조연상은 어떻게 왔는가 
2021년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의 수상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시 윤여정이다, 고진감래다, 혹은 참 운이 좋았다? <뜻밖의 여정>을 보면 윤여정 배우에게 <미나리>라는 영화가 온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윤여정에게 <미나리> 대본을 가져다 준 이는 '이인아씨'이다. 그녀는 20년 전 산드라 오가 유명세를 얻기 전 윤여정과 산드라 오가 동반 출연하는 작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진행되던 작품은 '무산'되었고 당시 윤여정 배우를 만나러 한국에 와있던 인아씨는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었다.

배우 자신도 작품이 엎어져 황망했을텐데, 외려 윤여정 배우는 낙담한 인아 씨에게 밥을 사주며 독려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인아씨는 '윤여정이란 배우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런 배우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더해져 시간이 흘러 <미나리>의 대본을 여정 배우에게 가져다주도록 했다. 

<미나리>를 번역한 홍장여울은 어떤가. 5회차 <뜻밖의 여정> 내내 홍장여울은 윤여정 배우가 머무는 집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번역가라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두 사람의 인연 역시 길다. 10여 년전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했던 윤여정은 연출부 막내로 동분서주하던 홍장여울을 눈여겨 보고 불러 밥을 사주었단다. 이런 식이다. 윤여정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만든 인연은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가 아낌없이 베푼 밥값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뜻밖의 여정>이 아니더라도 윤여정 배우의 넉넉한 인심은 오래전부터 회자됐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아낌없이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던 윤배우, 그 중 한 사람이던 이재용 감독과 함께 찍은 <죽여주는 여자>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판타지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나영석 피디는 말한다. '말 그대로 뜻밖의 여정'이라고. 윤여정 배우와 함께 한 아카데미 시상식 구경인 줄 알았던 프로그램이 오랜 지기 꽃분홍 여사에서 부터 동생 친구 정자씨, 밥 사주던 인아씨, 홍장여울 등 여정 쌤의 스태프, 그리고 아들 친구 에락남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는 프로그램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밥은 잘 사잖아', <미나리>라는 영화를 함께 한 이들, 그리고 미국까지 와서 의상을 조율해주는 의상 담당가 등 모두가 그녀의 밥 친구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에서 '밥을 잘 산다'는 윤여정 배우의 자화자찬이 새롭다. 내 주변에는 '또라이'밖에 없다는 윤여정 배우의 친지론, 그런데 그런 배우의 말을 홍장여울은 '또라이를 수집'하시는 거 같다고 번역한다.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대신, 기꺼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인맥'과 '의리'에 공들여 온 여정의 결과물이 '아카데미'인 것이다. 

마흔의 피디가 전하는 나이듦의 고민에 '내가 나이들어 봐서 아는데'라는 '라떼는 말이야' 대신, '나 역시도 나이듦은 처음이라'며 '정답은 없다'라는 낯선 삶의 행로, 그 동반자로서의 여정 배우의 진솔한, 그리고 겸허한 토로가 외려 나이를 막론하고 윤여정 배우와의 '교류'의 벽을 허문다. 그녀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LA의 윤'스 스테이, 어떻게 나이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이 보여진다. 

 

 

74세의 현역, 윤여정 
폐지 수집 생계 노동을 하는 노인들의 다큐를 보다 놀란 장면이 있다. 작년, 재작년 교통사고를 당했다던 80세의 할머니가 폐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막 뛰셨다. 폐지를 줍는 사회적 존재를 차치하고, 그 순간 그 분은 나이가 무색하게 '현역'이셨다. 외람되지만 <뜻밖의 여정> 5부작을 보며 그 80노인의 생생한 삶의 열정을 윤여정 배우를 통해 새삼 확인하였다. 

물론 윤여정 배우를 아끼는 한참 후배 홍장여울은 이제 그만 너무 애쓰지 마시고 건강을 챙기시라는 말끝을 눈물 때문에 마치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후배의 우려가 무색하게 윤여정 배우는 10시간에 가까운 아카데미 시상 여정의 강행군을 무리없이 소화한다. 그녀의 나이 74세이다. 우리 사회 74세의 노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라고 생각해 보면 그녀의 '현재'는 경이롭다. 

하지만 그 '경이'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건 LA까지 챙겨온 '아령' 등으로 시작하는 운동이다. '근육'은 나이가 없다더니 거의 뼈밖에 없는 듯한 체격임에도 카메라 셔터 앞에서 꼿꼿하게 당당한 에티듀드를 보여주는 그 '저력'의 시작이다. 

어디 체력만인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서사를 다룬 <파친코>와 관련된 인터뷰를 위해 이면지 몇 장에 빼곡하게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나이들어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캐서린 햅번의 자서전을 인용하여 배우라는 직업의 고달픔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일찌기 '꽃보다 누나'부터 간간히 엿보이던 '성실한 독서가' 배우의 면모가 드러났다. 웃자고 시작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치열했던 인물 상식 퀴즈에서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우수한 상식을 자랑하던 그 '내공'은 윤여정이란 배우의 현재가 그저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Too Often, as we get older, we stop having goals in our life. And Yuh-jung unnie shows us that we are never too old to accomplish big things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무언가를 이루기에 우리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뜻밖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건 74세의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앞날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역 배우 윤여정이다. '모범생'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 말처럼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터 화보 촬영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나이든 노인' 대신, 여전히 74세의 현역으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상 하나도 그저 트로피를 전해주는 게 아니라, 수화까지 준비해간 '계획성'은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여전히 '현역' 배우이기에 아칸소 구석에서 집단 합숙을 하다시피 한 <미나리>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 처음으로 용감하게 '박카스 아줌마'의 서사를 그린 <죽여주는 여자>의 시도는 또 어떤가. 그런 그녀를 에미상을 탄 에니메이션 디렉터 70세의 또 다른 현역 김정자 씨는 '노년'의 길잡이가 되어 준 선배로 존경을 표한다.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는 윤여정 배우, <뜻밖의 여정>은 나이든 배우의 후일담이 아니라, 여전히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의 한 사람을 만난다. 나이듦은 숫자가 아니라, 더는 노력하지 않을 때 오는 것이라는 걸 여정의 여정은 말한다. 

by meditator 2022. 6. 6. 16:53

'사흘', 이 단어의 뜻을 아시는가? 그렇다면 '양성', 이나 '음성'은? 
누굴 놀리냐고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상황 포탈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양성'과 '음성'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흘'은 2020년 광복절 연휴 이후 사흘간 연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실검에 오르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하루, 이틀, 사흘'의 그 사흘인데 많은 사람들이 4일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 조차 '4흘'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단다.  

그 정도야 한다면 이건 어떨까? 
 

 
ktx 홈페이지에 있는 열차표 금액 계산 실례이다.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일 수 계산'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성 자주 쓰는 문장으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평균 54점이 나왔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위의 시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글을 이용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해력'에 있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ebs는 지난 1년간의 준비를 거쳐 6부작 문해력 프로젝트 <당신의 문해력>을 3월 8일 부터 방영 중이다. 

 

 

문해가 안되서 공부를 포기하는 현실 
딱딱한 다큐만을 보여주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등과 한양대 조볌영 교수, 한겨레 김진철 기자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집중 파고든다. 

'사흘' 정도는 비웃었지만 막상 열차표 계산으로 가면 막막해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해력'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심각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여다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몰라서 수업이 진행이 안된다. 모르는 뜻에 손을 들고 '몰라요'라고 하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아이들은 한 페이지 당  무려 14번 손을 들었다.

'보모',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 광고', 등


아이들이 모른다고 했던 한국말이다. 아이들은 캐셔는 알아도 캐셔의 뜻인 출납원은 모른다. 사회 수업은 한 술 더 뜬다. 기생충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선생님, 봉준호 감독이 애초에 기생충이라는 제목 대신 가제로 '데칼코마니'라고 했던 설명에서 부터 얹힌다. '가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랍스터'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양분'이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을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은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반'이 제법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중학생 2400 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를 했다. 27%가 또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초등 수준 정도에 머무르는 학생들도  11%나 됐다. 초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서는 당연히 '무리', 그러니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공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수업, '연말 특별 강화 대책'처럼 글로 전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읽었다고 하는데 등교하는 날조차 '인지'하지 못해 일일이 전화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른바 '스압주의'라는 유행어처럼 줄글,  검은 글씨, 긴글 자체를 읽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해력'에 있어 지대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지난 10년 사이 읽기 능력 부진한 학생들의 비율이 3배나 증가했다. 

 

 

영상시대 문해력은 필요할까? 
물론 문해력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의 시대 과연 굳이 글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카드 뉴스'나 '포스터', 나아가 '영상'처럼 보다 쉬운 방식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향성에 대해 프로그램은 공기업에 근무하는 염기철 씨의 사례를 예로 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입사한 기철 씨, 직장 내 진급 등을 위해 정보 관련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쉽지 않다.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간 도전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신 상황이다. 제작진이 준비한 문해력 테스트, 11문제 중 겨우 5문제를 맞혔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기철 씨가 작성한 문서가 자주 반려된다고 한다. 32살,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갔으니 다 끝이라고 하겠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기철 씨에게 '문해력'은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 

실제 기업 10곳 중 6곳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하고,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가장 간단하게 '수신, 발신, 참조'라는 단어도 모르는 젊은 세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다시 대학 국어학과 교수를 초빙하여 공부를 시키는 기업도 등장한다.

oecd조사에 따르면 언어 4.5등급과 1등급 사이에 연봉 2.7배, 취업률 2.2배, 그리고 건강 마저도 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뇌의 상태를 조사해보았다. 평균 1년에 20권 정도를 읽는 사람들과 한 권이나 읽을까 하는 사람들과 전전두엽 활성화 정도를 검사한 결과 활성화 기능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글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활성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글'만 읽고 있을 때, 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파악하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읽기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등이 문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문해력 시험을 보는 등 국가적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문해력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기자는 <당신의 문해력>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 파악을 못한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입말' 중심의 초등 교육 과정에서 '문어체'가 교과서의 주를 이루는 중등 교육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다수의 학생들이 '문해력'에 있어서 '장애'를 느낀다.

특히 우리나라는 '한글' 체계라고는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기에 '한글'만으로 뜻을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의 한글 교육은 이런 문제점을 그저 '사교육'에 맡긴 채 방기한다. 거기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어 문화는 또 하나의 '언어' 체계의 등장처럼 우리 사회 언어 체계에 혼란을 가져온다. 

결국 교육 과정 근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다큐는 4부 <내 아이를 바꾸는 소리의 비밀>처럼 문제 해결을 다시 '가정', '사교육'으로 환원하는 듯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하는게 '해결책'이어서는 우리 사회 '문해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공교육이 해야 할 과제를 개인이 떠안아서는 문해력의 격차는 나날이 심해져만 갈 것이다. 저런 식의 해법이라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 것이다. 현재 심각한 '문해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쉬운 점을 남긴다. 



by meditator 2021. 3. 17. 16:19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200회, 300회, 그리고 400회를 함께 했다. 그리고 7월 17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00회를 맞이했다. 당연히 500회도 이 프로그램과 함께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공개 방송이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함께 울고 웃던 관객들과 더 이상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간 100회 세션맨 특집을 비롯하여 늘 신선한 아이디어로 자축연을 벌였던 특집들은 그 자리를 빛낸 주인공들에게 한없는 박수 세례를 쳐주었던 관객들의 열기로 그 자리가 더욱 빛났지만 2020년 500 회 특집에 박수를 쳐줄 관객들의 자리는 비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관객들의 자리에 '추억'을 앉혔다. 바로 그저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가 아니라,  KBS2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했던 '고품격' 프로그램의 역사, 그 뒤안길을 '추억'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 특집 - THE MC>이다. 

 

 

1992년 시작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그 시작이다. 그 뒤를 1995년부터 <이문세쇼>가, 1996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바통을 이어받고, 2009년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시작되어 2020년 500회에 이르렀다. 햇수로만 28년이다.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과 함께 한 시간 여행
그 시간을 함께 추억하기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앞선 프로그램들에서 MC를 맡았던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을 초청했다.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이 프로그램의 첫 MC를 맡았던 그 날을 추억하며 시작된 '시간 여행'은 시작된다.

그 시절을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이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시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윤도현, 유희열은 <이문세쇼>가 첫 데뷔 무대였고, 이소라 역시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지나 신인으로 <이문세쇼>에서 솔로 가수로서 첫 선을 보였다.

 

 

정말 정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기세로 '타잔~'을 우렁차게 불러대던 그 시절 기세등등하던 신인 윤도현과, 그 때나 이 때나 썰렁한 농담 한 자락을 얹어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는 윤도현의 말대로 살아있는게 기적인 듯한 신인 유희열의 모습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정말 헤어진 연인 생각에 흐르는 눈물로 '제발'을 부르다 뛰쳐나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눈물이 글썽하지만 담담하게 그 시절을 회고한 이소라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때보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 세월만큼 편안해 보인다. 

MC들 뿐인가. 다른 MC들만큼이나 달랐던 프로그램의 성격, 공개방송으로 진행되어 사전에 분명 노래를 안부르기로 했지만 흘러나오는 반주 때문에 얼떨결에 노래를 부르고 마는 안성기, 강수연의 모습은 <이문세쇼>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소라의 감성넘치는 연애 편지는 다시 들어도 '귀가 녹고', 가슴이 울린다. 절대 움직이지 않기로 유명한 이소라가 장국영의 리드에 따라 영화 속 한 장면을 재현한 무대는, 고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먹먹해지는 추억이다. 이제는 명 MC가 된 김제동과 신이 목소리에 모든 것을 주었다는 김범수의 데뷔 무대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였다. 

 

 

28년, 발라드의 황금기였던 시대를 풍미했던 <이문세쇼>와 <이소라의 프로포즈>, 힙합과 인디 밴드의 전성기를 누볐던 <윤도현의 러브레터>, 그리고 K-POP에 부응하여 뮤지션 유희열이 댄스를 마다하지 않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그 자체로 한국 음악사의 산 증인이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하루 종일 육아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던 시간은 어느덧 다 큰 아이들과 함께 음악으로 교감하는 '공감'의 시간이 되었고, 다 자란 아이들은 집을 떠나고 이제 다시 28년을 추억하는 시간에 홀로 앉았다. 

 

 

잊지못할 실수로 등장한 <이문세쇼>의 깜짝 전화 방문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얼굴없는 가수 조성모의 등장도, 고 장국영의 센스 넘치는 무대도, 김제동의 촌철살인도, 그리고 세션으로 무대 뒤에서 주인공이 되어 무대 앞으로 나오기까지 음악 인생 전체가 걸렸다던 아코디언 연주자 심상락 옹의 뭉클했던 명언의 순간도 다  함께 했다. <이문세쇼>에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그 28년의 세월 동안 삶의 굽이굽이마다 위로와 안식과 즐거움을 주었다. 감사하다. 

by meditator 2020. 7. 18. 03:46

중국으로 부터 시작하여 이제 전세계가 그 손아귀에 사로잡히고 만 코로나 팬데믹, 우리나라는 어언 2달째 그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말이 두 달이지 거의 2년이 된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다른 차원에 빠져버린 듯한 상황, 과연 우리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저 의료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격리'라는 전무후무한 '사태'로 인하여 일상은 물론, 사회, 경제, 기술 전반에 급격한 변화의 파고를 몰고온 코로나 팬데믹. 과연 우리는 이런 '공황 상태'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현대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관점의 전환'을 모색해온 <tvn shift>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코로나 팬데믹을 진단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 
우선 코로나 팬데믹 사회가 주는 시그널을 읽기 위해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씨가 나섰다.  지난 2달간 사람들이 한 검색어를 통해 우리 삶의 변화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코로나로 인한 충격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인 식욕마저 앞섰다는 것이다. 그간 검색어 순위에서 항상 제일 앞장섰던 건 '먹는 것'에 대한 검색이었다., 그런데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이를 앞질렀다. 사람들은 무서워한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수 없다'는 불가지론(agnosticism, 不可知論)으로 부터 비롯된 불안이다. 거기에 더해 치료약이 아직 없다는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공포를 '에스컬레이션' 시킨다. 

흔히 사스나 신종 플루 등 앞선 바이러스 전염병과 비교가 되곤 하지만, 그 무서웠다던 메르스가 8주에서 10주 사이였던 것과 달리,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바이러스 전염병들에 압도적이다. 

송길영 씨는 확진자, 마스크, 혼초밥 등 사람들이 많이 검색한 50가지 단어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 사회를 정의내린다. 그 첫 번 째는 '하루 종일',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어 '번아웃'에 빠진 엄마들, 60대 엄마, 아빠랑은 어떻게 놀아드려야 하냐는 질문을 올리는 자녀들처럼, '사회적 격리'로 인하여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가족들의 고민이 등장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활동하는 공간이 축소되었다. 답답함을 넘어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생겨났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친구'보다 '남편'이 중요한 관계의 대상이 되는 등 관계의 변화도 감지된다.  층간 소음 등의 갈등이 심해지는가 하면, 온라인 쇼핑몰 주문량 폭주와, 홈오피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등이 늘었다. 

손세정제, 마스크 등 이전과는 다른 물품들이 인기 품목이 되었고, 재택 근무가 권장되며 화상회의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산업', 일의 형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코로나 이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는 새로운 산업 구조 혁명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빅데이터는 예측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열고 있는 이 코로나 팬데믹은 과연 언제가지 갈 것인가? 이에 대해 감염 내과 최원석 교수가 전망을 펼친다. 

무엇보다 날씨가 풀리고 있는 즈음에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건 바이러스가 좀 수그러드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 30도를 넘는 탄자니아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기온과 바이러스의 상관 관계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 최교수의 판단이다.

그리고 21세기 최초의 팬데믹이었던 신종 플루가 4월에 시작하여 8월에 기승을 부렸던 전례에 비추어 봤을 때 더더욱 섣부른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더욱이 북반구가 날이 풀리면서 좀 수그러든다해도 남반구가 겨울을 맞이하여 코로나가 지구의 남과 북을 순환하는 도돌이표 전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덧붙인다. 

마음의 경계를 푸는 순간 언제라도 다시 대유행할 수도 있는 코로나 팬데믹, 이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영국이 시행하려 했고, '대유행 받아들이기'이다. 자연 상태에서 몇 명까지 감염될 수 있는가라는 기초 감염 재생산자 수에 따르면 코로나가 2명에서 5명 수준, 그에 따르면 65% 정도가 감염되면 집단 면역이 생길 것이라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집단 면역이 생기면 감염 자체가 저지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총리까지 감염되며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 방식을 바꾸게 된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러시안 룰렛'과도 같은 집단 면역 방식은 의료체계와 국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이에 반해, 최대한의 방역을 하며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 여기서 문제는 바이러스는 그 성질상 완벽하게 차단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의 방역을 통한 집단 면역 방식의 경우 바이러스 종식 기간이 짧아지는 반면, 완벽하게 방역을 하려하면 할 수록 팬데믹은 점점 느리고 길게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대한의 방역을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하지만 종식은 쉬이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자영업자 대표 홍석천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결국 코로나와의 장기전을 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곧 기술의 기회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술이 인간을 앞지는 원년이라는 2020년, 그렇다면 기술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최재붕 교수가 이에 답한다. 

비관론자들은 미, 중, 러 강대국들이 서로에게 코로나 팬데믹의 책임을 떠넘기는 음모론을 들이대는 가운데, 결국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의 무분멸한 자연 침식이 박쥐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을 낳게 되었다며 기술 책임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데믹 쇼크의 답은 기술에서 구해야 한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일찌기 캐나다의 인공 지능 스타트업은 이미 올초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팬데믹을 예고했었다고 한다. 알파고를 만들었던 딥마인드는 코로나 분석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결국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술로 부터 비롯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매월 5월 10일을 회사 최대 기념일로 삼고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연다. 그런데 이 날은 바로 알리바바 직원이 사스 판정을 받은 날이다. 사스로 직겨탄을 맞았던 알리바바,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사업을 착안한 마윈 회장은 사업의 구조를 변화시켜 온라인 시장에 전격 투자를 감행하여 아시아 1위의 그룹이 되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 재래 시장, 백화점 등 오프라인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과 달리, 마스크 판매 등으로 시작하여 코로나 사태에 발빠르게 대처한 우리나라 쿠*이 그간의 적자를 일소하고 흑자로 전환한 케이스처럼, 사재기가 성행하는 유럽 등과 달리 '온라인 산업'이 이미 기반이 닦인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든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포노사피엔스, 이들에게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과학 기술은 단언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방청객을 들일 수 없는 <tvn shift>방청객 대신 '사회적 격리' 중인 일반인들과 온라인 화상 공개 방송을 통해 화두를 공유한다. '랜선 파티' 등 이미 포노 사피엔스들에게는 익숙한 '온라인 문화'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보편적 문명'의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약관 39세에 장관이 된 대만의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은 마스크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자 그룹에게 sns를 통해 문의한다. 그리고 단 며칠 만에 'e마스크 구매' 앱을 만들어 마스크 사태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 나갔다. 이처럼, 4차 산업 혁명을 통해 이미 다가올 미래는 정해졌다는 것이다. 진화한 역사는 결코 거꾸로 돌아간 적이 없는 세상, 결국 그 세상의 흐름에 누가 먼저 다가가느냐가 코로나 사태, 그리고 그 이후의 세상을 끌려가지 않고 주도할 것이라고 '과학 기술'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15~20%나 늘어난 실업, 사회의 약한 고리가 되어버린 프리랜서들은 '무급'의 시절을 견뎌내고 있다. 남들이 밥벌이 걱정할 때 잘 나간다는 '택배' 기사는 쌀, 생수 등 늘어난 생필품의 무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과학은 앞서 보라, 앞서 가라 강변하지만, 저마다 불안을 안고 버티고 있는 상황, 정작 가장 필요한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이 요원한 한에서 마스크로 가린 채 서로가 멀찍이 떨어져야 하는 일상은 호구지책의 늪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방도가 아득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빅데이터에서 부터 감염학, 과학 기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 진단한 코로나 팬데믹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일상을 공감케한다.  '음모론'으로 탁해졌던 눈을 밝게했으며,  당장의 어려움을 넘어 너른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사자성어가 무색하게 당장의 이 고통을 끝낼 '묘수'는 보이지 않으니, 아예 문을 닫아야 겠다는 자영업자 홍석천의 답답한 하소연에 위로 말고는 해답은 없었다. 

by meditator 2020. 4. 4. 04:36

100일의 휴식 끝에 <유키즈 온더 블록(이하 유키즈)>이 돌아왔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격의없이 사람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도 풀던 프로그램, 그런데 다시 돌아온 <유키즈>의 두 사람 유재석가 조세호는 거리로 나서는 대신 마스크를 쓴 채 방송국으로 들어온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유재석이 mc인 <놀면 뭐하니?>가 코로나 19라는 특별한 상황에 방구석 콘서트라는 응급의 처방으로 대응했듯이, 유재석을 앞세운 <유키즈> 역시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격리의 상황에 맞춰 좁은 공간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대신 제작진이 맞이하러 간 거리의 사람들, 과거의 출연자들, 그리고 대구에서 밤낮없이 봉사 활동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로 인해 사람들과의 소통이 더욱 빛난,  100일 만에 돌아온 <유키즈>의 진가가 외려 돋보였다. 

 

   

 


텅 빈 거리, 그곳에 사람이 있다 
지난 방송분을 보여주며 시작된 <유키즈>, 사람들로 가득찼던 거리, 그 시절이 무색하게 이제는 거리에 인적이 드물다. 그저 대비되는 두 장면만으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만드는 상황,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거리에서 만난 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은 열심히 소독을 하지만 손님이 없다며 안타까워하신다. 오죽 벌이가 시원찮으면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의정부 집까지 일부러라도 가서 끼니를 때우고 올까. 백발이 성성한 버스 운전사는 당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마스크'를 열심히 쓴다며 안심을 시키셨다고 한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도,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도, 모두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시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절도 견뎠으니 지금도 다함께 이겨내자 하시며 사람들의 발이 되는 지금 이곳에서의 자신들의 일에 최선을 다하실 것을 다짐하신다. 

백발이 성성한 그분들이 살아온 시절, 그 시절에 대해 그 이후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쉽게 잊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온 시절 대신 우리가 살던 강팍한 시대를 앞세웠다. 그런데 막상 시절이 '하수상'하고 보니, 더 어려운 시절이란 그 단어 한 마디가 위로의 지렛대가 된다. 여전히 백발이 성성한데도 사람들의 발이 되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어르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유키즈>가 보여준 위로는 바로 코로나 19가,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우리가 잃어가던 '사람사는 방식'에 대한 환기이다. 작년에 시끌벅적하게 함께 퀴즈를 맞추던 식당을 다시 찾아간 <유키즈>, 그곳에는 여전히 함께 퀴즈를 맞추던 주인들은 건재하지만, 그들이 맞이할 손님들이 없다. 손님이 없어도 행여나 올 손님들을 기다리며 소독약으로 닦고 또 닦고 있는 가게 주인들, 흥겨웠던 그 시절이 무색하게 매출이 급감한 시절에 그래도 그이들은 '낙담' 대신 함께 견뎌보자는 덕담을 놓치지 않는다. 

사회적 격리가 가져온 가장 큰 심리적 공황은 바로 전염병과 나 자신의 대면이라는 공동체적, 사회적 방어막의 상실이다. 전염병에 걸린 가족의 임종이나 장례조차도 제대로 치룰 수 없는 상황, 우리네 최대의 경조사인 함께 어울려 보내는 장례식의 미덕조차도 결례가 되는 세상, 오죽하면 가장 안된 일이 이 시절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커플이라 할까. 축복도, 조의도 그 모든 것을 무색하게 삼켜버리는 전염병 앞에서 우리는 그저 거침없는 전염병 앞에 나약한 한 개인으로 무력하게 던져진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다. 

 

 

공동체 정신의 부활 
바로 그런 심리적 공황 상태에 대해 <유키즈>는 적절한 처방을 내린다. 출연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매출이 떨어지는 것도, 손님이 없는 것도, 혹시나 전염병의 우려가 있는 것도 '나 하나'만 겪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건물주들은 집값을 내리는 '착한 일'을 하여 손님이 없어 지쳐가는 임차인들에게 힘을 보탠다. 베이커리를 하는 배용호 사장은 당장 자신의 매출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 베푸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코로나 앱을 만든 대학생은 보상이 아니라 어서 빨리 자신의 코로나 앱을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시절을 기원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일, 그러니 우리 모두가 함께 잘 견뎌내자는 그 말에 찍힌 방점은 마치 나 혼자 전염병에 맞서 싸우고 있는 느낌에 시달렸던 개인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 위로의 정점은 뜻밖에도 전염병이 가장 창궐했다는 대구로 부터 온다. 보훈 병원에서 일하던 정대례 간호사는 코로나 19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대구로 달려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질문에 그저 괜찮다고만 하여 그 괜찮다는 말의 행간에 담긴 의미에 유재석은 그만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 

도시 봉쇄까지 언급되며 시절을 험악하게 만들었던 상황, 하지만 그곳에 한 사람이라도 손길을 더 보태려고 달려간 사람들이 있다. 앞서 보훈 병원의 정대례 간호사는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장담을 하며 보는 이들을 위로한다. 이제 막 임관을 마친 아직도 앳된 학생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김슬기 소위를 비롯한 간호 장교들이라고 다를까. 이성구 대구 의사회의 호소문에 한 걸음에 대구로 내려간 서명옥 전 강남 보건 소장을 비롯한 다수의 자원봉사 의료진들 역시 여전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일원임을 뜨겁게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현장의 의료진이 전한 상황은 열악하다. 의료진이 사용하는 마스크, 의료용품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거기에 인력까지 부족하여 숨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열 몇 시간을 근무하는 열악한 조건, 그럼에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전하는 말은 '괜찮다'였다. '저희가 잘 이겨내도록 하겠다.' '감사하다'였다.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전해진 평범한 감사의 언어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다른 말 덧붙일 필요 없이 유재석이 흘린 눈물처럼. 

이곳저곳 약국을 기웃거리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겨우 마스크 두 장을 구하고 나서 찾아오는 허탈함에 어쩔 줄 몰라한 저녁, 오랜만에 찾아온 <유키즈>는 그래도 이 시절을 함께 견뎌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따스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아직 엄동설한이던 우리의 마음을 녹인다. 우리 모두 언젠가 빛좋은 공원에 둘러앉아 함께 커피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 평범한 날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해준다. 

by meditator 2020. 3. 12. 13:02

'사회적 격리'가 권장되는 시대, 그래서 외려 답답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마스크를 끼고 '북한산'을 찾아 바람을 쐰다지만, '방콕'할 시간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건이야 홈쇼핑으로 시킨다 하지만 남아도는 시간은 어쩔까, 그럴 때 가장 위안이 되는 건 올드 미디어니 뭐니 해도  'tv'다.

게다가 각 가정에 연결된 '스마트'한 기능을 가진 tv 덕분에 tv로도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넷플릭스' 등을 tv로 즐긴다. '왓챠'나, '웨이브' 등이 고군분투하지만, 아직은 국내 드라마를 비롯 해외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구비한 넷플릭스의 물량 공세를 넘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찌기 <프리즌 브레이크>를 시작으로 <블랙 미러>, <기묘한 이야기> <위쳐> 등 다양한 장르와 서사의 작품들이 넷플릭스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꼭 입소문난 작품들만이 재미있을까? 알고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즌2까지 이어진 <블레츨리 써클>이다. 

 

 

1950년대에 여성들은 
<블레츨리 써클>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듯하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참정권'을 획득한 건 20세기 초의 일이다. 19세기부터 '한 표'를 통해 정치적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은 활발했지만 그 실효를 거둔 건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서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1952년에서야 국제 연합(UN) 총회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아무 차별없이 모든 선거에서 선거권을 갖는다'라고 의결했다.

'법'은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했지만, 정작 현실은 '법'을 쉬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 누군가의 아내 정도의 역할로 규정되었으며, 사회적 진출에 있어서도 '비서'등 보조적 역할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로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드'가 블레츨리 써클이다. 


2015년작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해독기를 발명한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블레츨리 써클>은  바로 이 앨런 튜링이 만든 암호 해독기로 '블레츨리 파크'에서 비밀리에 암호를 해독했던 비밀 조직에 속했던 여성 4명, 수잔(안나 맬스웰 마틴 분), 밀리(레이첼 스털링 분), 진(줄리 그레이엄 분), 루시(소피 런들 분)의 활동을 다룬다. 

 

  ​​​​​​​


암호 해독 전문가 여성들 범죄를 해결하다 
2차 대전 당시 암호 해독 비밀 조직에서 일했던 '엘리트' 여성들이었지만, 그 조직이 '비밀 조직'이었고, 더구나 '여성'들이었기에 종전 후 그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로 부터 10년 후, 두 아이의 아내가 된 수잔은 런던 지역에서 발생한 여성 강간 사건이 그냥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블레츨리 써클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패턴'을 그리며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임을 깨닫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남편의 지인인 경찰청장을 만나는 등 애를 쓰지만 그녀를 누군가의 아내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시선의 한계는 그녀가 발견한 범인의 정보를 하찮게 무시해 버린다. 

결국 수잔은 과거 자신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장 가까웠던, 전쟁 후 홀로 외국 여행을 다닐 정도로 모험심과 독립심이 강했던 밀리, 블레츨리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통솔했던 책임자였기에 두루 발이 넓은 진, 그리고 눈으로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루시가 그들이다. 저마다의 뛰어난 능력으로 독일군 암호 해독에 있어 혁혁한 전과를 세우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가정주부, 비정규직 판매원, 도서관 사서에 매맞는 아내로 사는 처지가 된 그들은 수잔의 요청으로 밀리의 집과 진의 도서관을 아지트로 하여 수잔의 패턴 이론을 근거로 하여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이렇게 <블레츨리 써클>은 한때는 암호 해독이라는 군사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했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사회적 차별의 조건을 뚫고 범죄 수사를 해나가는 시리즈이다. 정부 모처에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구해다 주는 진, 그게 아니라면 첩보원을 불사할 모험에서 거침없는 밀리, 그렇게 구해진 정보를 통째로 암기해 전해주는 루시, 그리고 취합된 정보를 통해 범죄의 패턴을 읽어내는 수잔은 따로 또 같이 '원팀'으로 끈끈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2012년에 방영된  시즌 1 3회, 2014년에 방영된  시즌 2 4회로 이루어진 <블레츨리 써클>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이들 주인공 4명이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는 사건의 성격이다. 시즌 1에서 여성들을 유인하여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 그것을 추적해 들어가보니 거기엔 전쟁이 만들어 놓은 괴물이 있었다. 필요에 의해 전쟁 중에 상대방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인 선전전의 종사자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살인을 통해 해결하는 연쇄 살인마가 되어 버린다. 

또한 시즌 2에서 살인의 누명을 쓰고 등장한 또 한 명의 블레츨리 써클의 동료 앨리스, 그녀를 살인죄로 몰아간 범죄 역시 결국은 '전쟁'이 싹틔운 인간을 대상으로 한 '화학전'의 잔재이다. 이들 범죄의 공통 요소는 '전쟁', 그리고 '전쟁' 중에 필요악으로 배태된 범죄, 그리고 전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거기에 집착하다 못해 범죄자가 되어버린 남자 범인이다. 하지만 이런 전쟁이 낳은 괴물에 대해 감히 고려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기존의 경찰 조직은 사건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다. 그럴 때 과감하게 사건의 진실을 찾아 네 명의 여성이 뛰어든다. 희생자가 된 여성을 위해, 한때 동료였던 여성을 위해. 여성이란 '연대성'의 공감 위에 그녀들의 활동이 펼쳐진다. 

하지만 전쟁 후 10년 다시 자신들의 전문적 영역을 되살려낸 그녀들의 활동은 당시 여성들의 위치만큼 어려움을 겪는다. 두 아이를 둔 가정 주부로 그녀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남편을 속이고 사건 수사를 하다, 자신의 가정을 위협받고, 스스로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수잔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한 릴리 역시 당차고 독립적인 의지와 달리 늘 직업적인 위기에 시달리고, 끝내 그로 인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루시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고. 드라마는 당시 시대적인 배경으로 한 사건 수사와 함께, 1950년대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네 주인공의 처지로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들  네 명의 여성이 각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존적인 성장 드라마이자, 그들이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살려 범죄를 해결해 나가는 범죄 수사 드라마의 두 방향에서 감동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by meditator 2020. 3. 11. 17:43

12.8 % 3월 8일 자 kbs2 <1박2일 시즌4(이하 1박2일)> 시청률이다.  sbs <집사부일체>가 7.4%, mbc의 <복면가왕>이 9.4%로 동시간대 1위다. 심지어 지난 회차  13회 10.0%에 비하여 제법 올랐으니 이 정도면 상승세일까? 하지만 지금까지는 시즌4의 첫 회 15.4%가 최고 시청률이다. 첫 회 방송이 나가고 시즌4에 대해 '새 부대에 담긴 새 술'에 대한 희망에 찬 바램을 적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바램이 무색하게, 시즌4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시즌4의 최고 시청률이 첫 방송이 될 거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리운다. 

우리집엔 <1박2일> 애청자가 있다. 일요일 저녁 온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이라도 먹을라치면 마치 밥상에 빠지면 안되는 김치처럼, 리모컨을 찾는 그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그 빠질 수 없는 일요일 저녁 밥상 메뉴였던 <1박2일>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그 시간대 주 시청자가 중장년층인데 도대체 지금의 <1박2일>에는 그들이 '정붙일 만한' 출연자가 없다는 것이다. 시즌 4가 시작한 지 어언 13회차, 계절이 바뀌어간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1박2일 시즌4> 
첫 출연의 설레임을 안고 차가운 입김을 씩씩거리며 새벽 거리를 달려 kbs본관 앞에 달려왔던 출연자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원래 있었던 김종민, 이미 <맛있는 녀석들>을 통해 낯이 익은 문세윤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캐릭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존재감 어필을 위해 떼를 쓰고 발버둥을 치는 딘딘 정도가 낫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돌 출신의 라비나, 래퍼 딘딘에 대해 <1박2일> 주시청자들이 정이 들만한 계기가 얼마나 있었을까? 연기자 출신의 김선우나 연정훈은? 

그 실례는 3월 8일 방영된 한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방송은 <1박2일>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상 조업을 위해 게임을 진행한다. 가장 첫 번째 스트레스 지수 측정과 이불 덮기 게임이 이어졌다. 지금 하는 시즌4보다 재방송으로 보는 시즌1이 훨씬 더 재밌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시즌1하고 시즌4의 내용이 달랐을까? 바다 조업은 차치하고, 그 전에 조업을 나가는 대상자를 뽑는 게임이라고 해야 그때나 이때나 별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별 거 아닌 걸 별걸로 만드는 게 바로 <1박2일>의 묘미였다. 

그런데 스트레스 지수 측정 과정에서 딘딘 한 명 정도만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기 위해 '생쇼'를 벌였을 뿐, 다른 출연자들은 마치 '건강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 같았다. 그건 이어진 이불 덮기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불을 높이 올려 잠자는 모습처럼 덮는 '슬랩 스틱'적 장치가 애초에 마련된 게임, 하지만 개별적으로 우스꽝스런 포즈를 제외하고 출연자들은 마치 말 잘듣는 아이들처럼 차례를 지켜 게임에 임한다.

예전의 김준호처럼 '잔꾀'를 부리는 사람도 없고, 강호동처럼 시끄럽게 분위기를 몰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서로 편을 갈라 이합집산하며 마치 생과 사의 혈투처럼 게임을 긴박하게 만들었던 긴장감은 더더욱 없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마치 시청자처럼 얌전하게 앉아서 지켜본다. 이런 식이니,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웃음 요소를 만들어 보려는 '딘딘'의 행동은 그저 해프닝처럼 지나가 버린다. 오죽하면 보다 못한 문세윤이 라비한테 어떻게 말 한 마디 하지 않느냐고 할까.

<맛있는 녀서들>에서 펄떡이던 문세윤조차 시즌 초반에 어떻게든지 웃음을 자아내게 하려던 그 안간힘이 둔해졌다. 하다못해 동전 던지기 하나로도 시청자들이 웃다가 배가 아플 정도로 만들었던 <1박2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보는 것만으로도 맥이 빠져버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예전의 이승기가 그 스스로 웃겨서 인기가 있었던가? 형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이승기만큼 생생하게 리액션을 해주는 출연자가 있었던가를 웃기지도 않으면서 관람객 모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출연자들은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국가대표 예능 <1박2일>의 이름값 
하지만, 출연자들이 재미도 없고, 의욕도 떨어져가는 <1박2일>이 더욱 고민해야 봐야 할 문제가 있다. 그건 바로 '시의성'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떨어진다 해도 <1박2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 면에서 토요일 방영된 <놀면 뭐하니?>가 택한 발빠른 대처와 비교된다. 코로나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모든 공연들이 취소된 상황을 <놀면 뭐하니?>는 발빠르게 포착한다. 예정된 공연이 취소된 뮤지션들과 뮤지컬 배우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국가적 비상 사태'로 인해 포기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까운 팬들을 위해, 그리고 날은 화창하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시청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구석'에서나마 조촐하게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이게 바로 '비상 시국'에 대처하는 예능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1박2일>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복불복 선상 조업으로 상승한 시청률로 '자족'할 때가 아니다.  여전히 일요일 저녁이면 재미가 있건 없건 인내를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어려움을 짚어보려는 '공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1박2일>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건 코로나 시대에 대한 공감 만이 아니다. 자기들은 하던대로 하지만 보는 사람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그 '불감증'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과연 전국민 대표 예능이라는 <1박2일>이 어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만간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20. 3. 9. 16:58

정준영을 시작으로 해서 김준호, 차태현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 들은 <1박 2일> 시즌 3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1박2일> 시즌 3는 종영했고, 다음 시즌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과연 저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일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라 해도 <1박 2일> 이 재기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시즌4의 새로운 멤버 라인업이 등장했다. 연정훈, 김선호, 딘딘, 문세윤, 라비, 그리고 김종민까지. 방위 소집 기간을 제외하고 1박 시즌 내내 생존했던 김종민은 그렇다 치고,  최근 먹방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세윤 정도?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보인 딘딘이라지만 차라리 한가인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연정훈이 익숙할까, 김선호나 라비는 거의 신인과도 같다. 중장년층이 주된 시청자인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낯선 인물들인 셈이다. 과연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일요일 밤 메임 예능이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앞선 라인업이었다. 

 

 

명불허전 까나리부터 
그런 우려때문이었을까? 아침 6시 반 kbs 본관 앞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에 앞서 새벽에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출발했던 멤버들을 맞이한 건 다짜고짜 들이밀어진 미션지였다.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메이크업은 커녕 슬리퍼 바람으로 단 돈 만원을 쥐어주며 오프닝 장소까지 시간에 맞춰 오도록 하는 첫 번째 미션. 

시즌 4를 시작하는 제작진의 묘수는 바로 <1박2일>다움이다. 출연진이 그 누구건, 심지어 일반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던 그 <1박2일> 특유의 가차없는 미션, 겨울 새벽 거리를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오프닝에 맞추기 위해 '신입' 멤버들을 들입다 뛰게 만드는 <1박2일> 다움으로 멤버들 면면의 낯섬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리고 겨우 숨을 헐떡이며 추레한 모습으로 모인 kbs 본관 앞 조금은 쑥쓰러운 듯, 하지만 새로운 시즌에 합류했다는 뿌듯함과 잘 해보겠다는 의지로 입을 모아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을 외친 것도 잠시 그들의 앞에 멋진 suv가 무색하게 덜덜거리며 예의 1박2일다운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하고, 두 트럭의 승차를 가를 200 개의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카노가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명쾌하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통과, 심지어 연달아 먹으면 두 배, 당연히 까나리가 걸리면 탈락이다. 예외는 있다. 까나리카노를 다 마시면 아메리카노와 같은 경우로 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 시즌을 다 합해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드디어 시작된 까나리 미션, 첫 번째 마신 라비는 당연하게 '본능적'으로 뱉고 만다. 그런데 반전은 두번 째 미션 멤버인 '딘딘'부터였다. 올해 하반기에 운이 좋다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딘딘은 첫 번째 아메리카노를 순탄하게 넘기고부터 연속으로 까나리가 걸렸다. 그런데 그걸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신다? 나중에 차에 탄 그의 말처럼 아들이 1박2일에 들어가서 걱정되고 좋아서 하루 세번 기도하신다는 어머님 때문이었을까? 딘딘은 무려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에 걸쳐 까나리를 원샷하며 까나리 미션의 새 장을 연다. 제작진의 얼굴이 그가 까나리를 원샷할 때마다 굳어져 간다. 당연히  <1박2일> 역사에선 고려해 보지 않았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름부터 낯선 '딘딘'이란 청년이 <1박2일>의 신입 멤버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난처한 처지를 뚫고 시작한 <1박2일> 시즌4의 가능성이 열린다.

<1박2일>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한도전>의 정신이 논바닥을 헤집던 <무모한 도전>이었듯이, <1박2일> 역시 혹한이든 혹서든 그 어떤 조건에서도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멤버들의 '헝그리 정신'이 아니었을까. 그게 강호동이었든 이수근이었든, 김준호였든 시즌을 상관없이 그들이 힘들고 고달퍼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모습, 그게 바로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무람없이 채널을 kbs2로 고정시킨 '본류'가 아니었을까.

바로 그 '1박'의 정신을 이제 시즌 4의 신입 멤버 딘딘이 까나리를 거뜬하게(?) 세 잔이나 원샷하며 새로이 부활시켜낸다. 과연 시즌3의 그 최악의 구설수를 저 낯선 멤버로 극복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까나리 원샷'으로 대번에 불식시킨다. 두번 째 미션자 딘딘이 그러다 보니, 그 뒤의 멤버들도 본의 아니게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연정훈은 최연장자라 체면을 차려야 해서 마시고, 유세윤은 먹방의 대가답게 마시고, 예능 뽀시래기라는 김선호는 안절부절하다 마시고, 유일하게 시즌을 경험했던 김종민만 빼고. 모든 멤버들이 한 두, 심지어 세 잔 까지 마시며 시즌4의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 낸다. 물론 까나리를 원샷한 덕분에 이어진 휴게소 화장실 레이스는 문세윤의 천연덕스런 중계와 함께 '애교'가 되었다. 

 

  ​​​​​​​

낯설지만 어느덧 친근해진 멤버들
그리고 뜻밖에서 오프닝에서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단 한 번의 까나리 먹방으로 동지애를 대번에 얻는다. 나이가 많다지만 어쩐지 어수룩하며 힘든 상황에서 나이 핑계대며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연정훈에, 추임새하며 중계방송에 심지어 진행까지 능숙한 문세윤은 <맛있는 녀석들>의 먹방러 이상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와 함께 거의 '만담'에 가까운 콤비 플레이에 뭐든지 일단 '해보고' 보는 '딘딘'은 첫 회만에 정겹다. 아직 카메라가 낯선 김선호의 뽀시래기한 어색함과 초조함, 그럼에도 잘 해보려는 모습은 새 시즌의 정서를 한껏 살리고, 막내 라비의 똘끼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멤버들 각자가 예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꾀부리지 않고, 애써 웃기려 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편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김종민, 왜 김종민이 거의 전 시즌에 '출석'할 수 있었는가를 첫 회에 다시 보여준다. 선배라 나서지 않고, 그러면서도 예의 까나리 먹방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틈에 저 새로운 멤버 중 한 명으로 낯설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놓아둔다. 그 어떤 시즌의 멤버들과도 이물감없는 어울림, 그것이야 말로 김종민의 장기가 아닐까, 그것이 시즌4의 첫 회에 다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렇게 어느 틈에 어우러진 김종민과 함께 불과 몇 십 분 만에 이 낯설었던 멤버들을 향해 익숙하고 친밀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1박2일>의 동질감이 놀랍다. 까나리를 비롯한 전통적 미션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면면으로 보면 하나하나 낯설지만 모두 모아놓으니 김종민을 비롯하여 모두가 그들이 '저를 아십니까' 라며 외치던 그 휴게소 인파들 가운데에 어우러져 버리는, 어쩐지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 같은  친근한 면면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독불장군 강호동도, 이방인 김c도, 돌아이 정준영도, 머쓱대던 김주혁도, 심지어 생전 처음 본 일반인 참가자 까지 그 모두를 <1박2일>이라는 용광로 속에 잘 추스려 냈던 <1박2일> '전통'의 '제조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통은 소중하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그 경계가 늘 어렵기 때문이다. 시즌 4의 첫 회를 연 <1박2일>은 버려야 할 과거는 과감히 버리고, 낯설지만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전통의 줄 위에 섰다. 첫 회만에 멤버들 면면이 벌써 친근해 졌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출발이다 싶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한 걸음을 잘 걸어냈으니 앞으로의 길도 기대해 볼만 하겠다. 

by meditator 2019. 12. 9. 00:31

시각장애인 이동우, 절단 장애인 신명진,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청각 장애 김예진, 시각 장애 김민우, 이들이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부르는 명칭은 '별일없이 사는 이웃', 별 일없이 산다는 이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가 있다. 매주 월요일 밤 11시 35분 찾아오는  ebs1의 <별일없이 산다> 이다. 

 

 

mc 조우종과 함께 장애우, 비장애우가 '이웃'이란 호칭으로 모여 지난 9월부터 11월 11일까지 8회차에 걸쳐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리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수화' 통역사의 도움이 더해지고, 보이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옆 이웃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인다. 어색할 거 같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장애'의 벽이란 것이 막상 함께 하면 조금 에돌아 갈 뿐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시간 바로 <별일 없이 산다>이다. 

빅 데이터에서 '부질없다, 감동하다. 정확하다. 사랑, 설레다, 고맙다.' 등의 단어로 등장한 11월 11일 8회차의 주제는 바로 '결혼'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는 시대. 취업도 하기 힘들고 취업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다고 하는 시대에 젊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과정의 버거움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스튜디오에 모인 '별일 없이 사는 이웃'들은 어땠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감독은 결혼은 미쳐야 하는 것같다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그런 이 시대 상식적인 단정에 8백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8백명 구독자를 가진 유투브 크리에이터 시각 장애인 김민우 씨는 미쳐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물들어 가다보니 결혼을 꿈꾸게 되는 것이라 '낭만적'인 반기를 든다. 

스다르가르트 병이라는 희귀 유전병 때문에 암점이 점점 커져 시력을 잃게 된 김민우 씨는 컴퓨터 화면의 글씨를 최대로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이 남아있다. 안마사를 했었고 지금은 시각 장애인 골볼 선수인 그는 그의 전담 카메라맨이자 그가 하는 골볼 심판이 되어 그를 전담 마크하는 아내 한지혜 씨와 8개월 째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정상인인 이상미 씨도 막상 하려보니 희말라야 등반을 하는 마음이라는 하소연을 하는 극한 미션 결혼, 하지만 한지혜 씨는 김민우 씨와의 신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들이 10 할 수 있는 걸 4나 5해줘서 서로 갈증하게 되는 결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에 비해 겨우 6가지 밖에 해줄 수 없지만 그 6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김민우 씨와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첫 눈에 반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시각 장애인, 더구나 유전병이었기에 친구, 가족 모두가 반대했던 결혼, 중증 절단 장애인인 신명진 씨 역시 자신과 같은 동료 사서였던 8년 연하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까지는 달콤했지만 막상 상견레 자리에 가니 아내 부모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는 경험담을 나눈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라지만 나라마다 수어가 달라 국제 수어로 사랑을 나누어 모로코인 칼리드와 결혼에 이르렀다는 김예진 씨는 이제 두 살배기 아들의 재롱에 한참 빠져있다고 고백한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순간, 결혼은 필수가 된다는 이웃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족이 바로 배우자라고 말하는 그들의 결혼은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다 결혼 이후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 등 수려한 명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엘가의 사례와도 같다. 

결혼에 대한 비관주의가 지배한 세상에서 <별일 없이 산다> 속 결혼 이야기는 마치 편견이 가득찬 세상에서 '낙관주의'가 가득한 별일 없는 이웃들을 지향하는 <별일 없이 산다>의 정서를 이어간다. 마치 장기하가 부른 동명의 노래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은 웃으며 말하지만 유전병을 이기고 결혼에 이른 김민우 씨 부부와, 장모님 앞에서 자신의 장애로 인해 한없이 부끄러웠던 위기를 극복한 신명진 씨의 웃음은 마치 가을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 가을꽃처럼 강인한 사랑의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친구의 생생한 고민을 취재하는 코너에서 뇌병변 편마비 감독 김종민의 결혼하고 싶은 고민을 다루었지만 어쩐지 그 고민의 결이 다가오지 못한다. 조금 더 현실로 한 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이 시대 청춘들이 결혼에 대해 가장 큰 짐으로 여기는 건 바로 경제적인 문제이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아내 보면 어땠을까? 보고 있으면 궁금해 지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김예진 씨 부부는,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김민우 씨 부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지, 막상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사랑의 성취를 이룬 부부들이 나와 아침 방송 식으로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니 결혼에 성공했어가 아니라, 장애만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이렇게 극복했어라든가, 아니면 결혼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쳐 있는 싱글 이웃이라든가,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입장의 이웃들의 의견도 같이 함께 하는 자리였으면 별일 없이 사는 이야기의 내용이 좀 더 풍성해 졌을 것같다. 그저 낭만적인 결혼 성공의 후일담 식으로 전개된 <별일 없이 산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장애우 결혼 캠페인 프로그램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장기하가 그의 노래에세 별일 없이 산다고 하는 건, 정말 별일이 없어서가 아니지 않았을까? 별일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하루하루 즐겁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이었을진대, 그런 진짜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현실적 공감'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9. 11. 12. 16:29

1993년에서 2012년까지 무려 10여년 방영된 kbs2의 <체험 삶의 현장>은 연예인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땀을 흘려 벌어돈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노동'을 고전적으로 다룬다. '노동'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그 '현장'에서 서툴러 당황해하고 고생하는 '체험담',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애쓴' 댓가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미담'을 더해 <체험 삶의 현장>은 오래도록 '휴머니티'한 예능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노동의 '현장'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었고 대안을 찾아내는 노력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상사' 들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 '노동'이 예능으로 돌아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tvn에서 새로 시작한 예능 <일로 만난 사이>와 유투브에서 조회수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 전직 아나운서 장성규의 일일 체험 현장을 다룬 <워크맨>이다. 

 

   
 

 
 

 

 

 

 

두 프로그램의 형식은 사실 단순하다. 단 하루 동안 <일로 만난 사이>가 유재석과 초대된 게스트, 혹은 게스트들이, 그리고 <워크맨>에서는 장성규가 '노동의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하는 것이다. 
​​​​​​​

시대 공감; <워크맨>
그냥 하루종일 일만 할 뿐인데 왜 새로운 예능의 화두와 대세가 되었을까? <아는 형님>과 <방구석 1열>을 통해 차근차근 예능감을 키우며 순발력있는 입담을 선보이던 장성규 아나운서는 프리 선언 후 유투브로 향했다. 10여분 짧은 시간에 그가 투입된 각종 '노동'의 현장에서의 예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갈고 닦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보다 날것의 생생한 반응을 보여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전의 <체험 삶의 현장>이 다룬 '고전적'인 현장과는 다른 요즘 젊은 것들이 땀 흘리며 살아가는 그럼에도 꼴랑 법적인 '시급'이라는 테두리에 갇힌 채 보상받지 못한 노동의 현장을 장성규가 대변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탄으로 방영된 에버랜드 알바에서, 장성규는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현장을 섭렵한다. 그의 말대로 매일 웃고만 있어서 편하게 일하는구나 했던 그곳에서 관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춤추고 노래하고, 아이들의 물세례를 맞으며, 심지어 고난이도의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과정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자체로 웬만한 서바이벌 예능 저리가라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웃으며 그걸 해낸다. 어디 에버랜드 뿐일까. 미용실, 편의점, 피자집 등등 이 시대 '알바'의 행렬은 무궁무진하고 장성규는 그걸 온몸으로 체험해 내며 ''페이소스' 넘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그 지점, 오늘날 '알바'라는 통칭으로, 그리고 '시급'이라는 대가로 퉁친 현장의 고생담을 장성규는 '리얼'하게 전해주며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마지막, 그가 받은 '시급'을 정산하며 그날의 흘린 땀과 '비례'하지 않는 혹은 때로는 '게임 회사' 등 직장의 레벨에 따라 '후하게 '치뤄진 대가에 대한 역시나 '날것의' 반응을 보며 동시대인들은 '동시대의 애환'을 나눈다. 젊은 세대가 여유를 낼 수 있는 시간, 10여분 그 시간 동안 장성규가 울고 웃으며 때로는 삭제되지만 충분히 알 수 있는 질펀한 '욕'들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은 그렇게 서로가 버텨가는 삶을 나누는 것이다.  

 

 

유재석 버전 체험 삶의 현장 
반면에 유재석을 앞세워 런칭한 <일로 만난 사이>는 보다 고전적인 <체험 삶의 현장> 버전에 가깝다. 단지 예전< 체험 삶의 현장>이 양지운이라는 걸출한 성우의 구성진 입담을 배경으로 아나운서들과 다른 삶의 현장을 다녀온 출연자들의 '훈수'를 더해 맛갈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일로 만난 사이>는 mc 유재석이 현장에 투입되어 함께 '노동'을 하며 그 의미를 '에스컬레이션'시킨다. 

이효리, 이상순과 함께 한 첫 회, 그리고 차승원과 함께 한 2회를 통해, <일로 만난 사이>는 그간 타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과 함께 위축되어 있는 mc 유재석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한다. 여전히 우리 나라 대표적 mc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덧 마흔 줄, 자신을 동력으로 밀어붙이기 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나이가 된 그가 녹차밭과 고구마 밭에서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실전 '노동'의 현장에서 한껏 작아지는 모습이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질주했던 경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이지만, 도시에서만 나고 자랐던 그가 마주한 '농촌'의 현장에서는 그저 '일머리'없는 일꾼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3회에 이르러 그렇게 '일머리' 없는 유재석조차 잔소리를 하게 만드는 '대책없는' '하찮은 형들'의 등장으로 국면은 전환된다. 뮤지션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화문석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그저 오십 줄에 엄살 심한 형들이기만 했던 유희열, 정재형은 함께 나이들어 가는 이들이 땀 흘리며 나누는 삶의 고갯마루를 보여준다.

그렇게 농촌으로 전전하던 <일로 만난 사이>는 4회에 이르러 힙벤져스 그레이, 쌈디, 코드 쿤스트 와 함께 ktx 기지로 향한다. 휴식 시간 유재석의 말처럼 '힙합' 하면 '자유분방'한 영혼들이라는 등식으로 연상되는 인물들, 그들의 갖가지 휘황찬란한 머리 색처럼 자유롭게 편하게 생활할 것이라는 '선인관'을 가지게 되는 당대의 '힙한 전사'들과 함께 한 현장. 

청소용구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 열차가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짧게는 10분에서 15분, 30분 사이에 이뤄지는 '신속 정확'한 열차 내 청소팀에 합류한 유재석과 '힙벤져스' 들, 하지만 분방할 것이라는 유재석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여사님'들의 칭찬을 들으며 꼼꼼하고 착실하게 일에 매달리며 '힙합'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깬다. 

 

 

 그들이 만든 곡이 발표될 때마다 음원 순위이 수위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이 되는 그레이, 쌈디, 코드 쿤스트. 그들이 유재석조차 그 템포를 따르기가 힘들어 헉헉거리는 ktx현장에서 보여준 건, '자유분방'한 영혼이라기 보다는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성실한 노력가들이었다.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집중력을 보이고 깔끔하기 까지 했던 그가 유재석과 함께 나눈 이야기 보여 허심탄회하게 토로해준 '번아웃'의 시간들은 최고의 뮤지션이 되기 위해 그들이 감수해왔던 '물밑 숨가쁜 자맥질'과 같은  숨겨진 노력의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여느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들이 자신들이 성실하며,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번아웃'을 경험했다면, 이만큼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한번의 허튼 몸짓을 보이지 않고 묵묵하게 노동의 템포를 따르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진솔한 모습이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렇게 2019년 유재석 버전의 <체험 삶의 현장>은 여전히 2019년에도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쉼없이 땀으로 범벅된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게스트의 인간적인 모습, 그들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전하는 통로가 된다. 

by meditator 2019. 9. 22.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