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이지안과 박동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반갑게. 그리고 잘 지냈노라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드라마를 함께 완주해왔던 시청자들은 안다. 저 마주 잡은 손이, 그리고 눈으로 묻는 안부가, 그리고 기꺼이 답하는 서로의 안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가 다리가 되어 이 자리에 '건재'할 수 있었던 그 '곡진'한 감정이 그 짧은 안부를 통해 전해지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갈 길을 향한다. 후계동으로 한번 놀러오라는 당부를 더하고,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이지안과 박동훈처럼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가 6월 3일 찾아왔다. 400회라 하여 주말의 피로를 견디며 닥본사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여전히 후계동처럼 그곳에 있었다. 




400회의 여정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뒤를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방영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400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만 9년차이다. 

100회를 맞이했던 <스케치북>은 떠들썩했다. 공중파 유일의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을 한껏 내보이는 4주간의 특집. 국내 정상의 프로듀서들을 한 자리에 모은 1탄 '더 프로듀서', 2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뮤지션들의 '더 레이블', 그리고 드라마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음악으로 길어낸 ost의 3탄 '더 드라마', 그리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 씨와 함께 했던 '더 뮤지션' 등을 통해 '가수'를 통해 표현되던 음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무대를 빛냈고,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자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한껏 드러냈다. 

200회, 정통 블루스&컨트리의 김태춘, 진보 하드록의 로맨틱 펀치, 실험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이언, 블루스계의 싸이 김대중, 작곡자이자 재지한 뮤지션 선우 정아까지, 당대 최고의, 혹은 인기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이효리, 윤도현, 장기하, 박정현, 유희열'이 자리를 바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무대를 함께 하며, 실력파 뮤지션을 세상에 재조명했다. 



300회,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등 각종 편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스케치북>은 이런 유행의 트렌드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본연의 정통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를 드러낸다. '선택 2015 발라드 대통령' 특집, 대통령 선거의 모양새를 내며, 유희열이 공을 뽑아 출연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은 남들 노래의 재편집이 아닌, 윤종신, 박정현, 거미, 김범수, 백지영, 자이언티까지 '발라드' 계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본연의 매력을 한껏 조명하는 자리를 통해 '음악'의 자리를 묻는다. 

'후계동'같던 400회, 음악의 '아버씨'가 된 유희열
그리고 400회, 이렇게 떠들썩했던 지난 특집에 비하면 400회 <스케치북>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조촐해보일 지도 모른다. 한 방청객의 말처럼 뒤늦어 버린 인생처럼 너무 늦게 시작하는 <스케치북>을 졸린 눈을 비비며 굳이 지켜낼 성의 대신, 손쉬운 '편집 영상'들이 '닥본사'를 대체한다. 스케치북하면 떠오르던 대명사였던 유희열을 사람들은 이제 <알쓸신잡>이나, <슈가맨>의 mc로 떠올려진다. <스케치북>이 아니라면 볼 수 없었던 기획이나 뮤지션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프로그램마저 떠들썩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선점하면서 굳이 그 늦은 시간을 기다릴 이유를 잃었다. 

400회는 그렇게 '희석화'되어가는 <스케치북>의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윤종신, 이적, 아이유, 다이나믹 듀오, 오혁, 십cm, 멜로망스, 오연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 막 풍미하는 뮤지션들의 색다른 조합이야말로 9년 여정의 <스케치북>이 되었다. 

'땡스 투 뮤직'이라는 부제로 시작된 조촐한 무대, 뮤지션 혼자, 혹은 콜라보로 엮어지는 무대,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희열의 썰렁한 농담과도 같은 '역주행 좋니 좋아 상', '내가 니 애비다' 등의 기발한 하지만 적확했던  '땡스 투' 시상을 관통하는 건 이들 뮤지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했던 <스케치북>의 '자화자찬'이다. 2017년을 울려 퍼졌던 '좋니'를 다시 불렀던 무대, 멜로랑스라는, 십cm, 오혁, 심지어 아이유라는 신인을 자신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여전히 '링거'를 맞은 '다이나믹 듀오'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감이다. 

즉, <스케치북>은 토요일 밤 자정을 넘겨 '쭈그러져'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길어올렸고, 길어올린 음악들이 이 세상 속에 화려하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이다. 아버지같은 아저씨 유희열이 있기에 가능한. 



그래서 400회를 맞이한 <스케치북>은 마치 아저씨 세대와 젊은 세대와 정희네에서 한데 어울려 술 한 잔 하며 흔쾌히 '인생'을 나눌 수 있는 후계동과도 같았다. 그곳엔 '아버씨' 유희열이 있었고, 여전히 윤종신과 이적이 있지만, 오혁과 멜로망스, 십cm를 세상으로 인도할 여유가 있고, 이제 오연준이라는 '신인'이 그가 팬이라던 아이유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첫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 생성 중이다. 우리가 세상사에 지쳤을 때 찾아가고픈 후계동처럼, 그래서 <스케치북>도 오래오래 그곳에서 '음악'의 후계동으로, 아저씨가 되어 버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06.03 21:08

<수요 미식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음식'이 질펀하게 한 상 차려지지 않은 '먹방'이라니. 먹방, 인터넷의 bj 들이 시청자들을 상대로 음식을 먹는 걸 보여주며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이토록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bj들의 먹방은 곧 케이블을 비롯한, 공중파 프로그램 먹방의 홍수로 이어졌다.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했던 먹방 프로그램의 홍수 가운데에서 <수요 미식회>의 등장은 신선했다. 물론 '먹방'은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음식점에 자신들의 돈을 내고 사먹고, 그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수요 미식회>의 본질은 시각적 자극이 배제되거나, 극도로 제한된 먹망의 승화에 있다. 극중 출연한 홍신애의 기꺼이 자신의 몸을 사례로 든 고기 부위에 대한 상상에서 부터, 마치 한 편의 하이쿠와도 같은 이현우의 은유 가득한 맛의 평가, 황교익의 풍성한 평론의 잔치까지, 말로 풍성해진 식탁을 한 상 차려받는 느낌이 보여주는 먹방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었다. 



지난 3월 7일 새로이 선보인 히스토리 채널의 <말술클럽>과 3월 31일부터 ebs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 <상상식탁>은 바로 이런 <수요 미식회>의 맥락을 계승하여 특화, 발전시킨 프로그램들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3년 말로 풍성하게 차려진 <수요 미식회>가 3년 여를 거치며 그 말의 깊이가 옅어졌다. 여전히 게스트들의 맛집 순례는 맛깔스럽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출연진들의 멘트에서는 그들의 내공보다는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더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뜻밖에도 <알쓸신잡>에 등장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내공 깊은 '탐식'의 경륜과 지식들은 <수요 미식회>에서 한 발에서 더 나아간 '인문학'과 '먹방'의 콜라보,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전통주만큼이나 풍성한 인문학 술 이야기
<말술 클럽>은 말 그대로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술'하면 빠질 수 없는 애주가들에서 부터 '술칼럼니스트'들까지 한데 모여 술에 관한 질펀한 한 상 차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스토리'채널의 특색이 가미된다. 그저 술이 아니라, '전통주'이다. 2000 여개에 달한다는 우리나라의 전통주, 한번 맛을 보면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하지만, 정작 '광고'도, '홍보'도 없으면, 대통령 만찬주로 등장이나 해야 저런 술이 있어? 라며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전통의 명가'들을 탐미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술'을 매개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전통'이라는 색채가 더해지며 '한국'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로 전개된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일본식의 주조 방법이 아니라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청주'라는 본래의 갈래를 상실한 채 '약주', 혹은 '맑은 술'이란 애매모호한 장르로 둔갑한 우리의 청주, 그 연원에서 부터, 막걸리로 시작하여 주막과 돈이 무거웠던 시절, 서울 근교의 주막에서 돈을 맡기고 받은 영수증 하나로 매 주막에서의 지불은 물론, 마지막 지방 주막에서 돈을 거슬러 받을 수 있는 '주막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전통주라는 주제 하나로 뻗어져나가는, 심지어 수능 국어 영역의 '국선생전'의 묘미까지 이어지는 '한국사 탐험'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거기에 뜯고 맛보는 전통주의 미식 연찬회는 기본이다. 

주당 장진 감독, 박건형에, 주류계의 알파고라는 호칭에 딱 맞는 '전통주' 전문가 명욱의 해박함과, 이미 그의 <메이드 인 공장> 등을 통해 사물에 대한 재기발랄한 혹은 애정어린 천착을 선보인바 있던 김중혁 작가의 박학함 등이 어우러져 애정어린 '전통주 탐험기'가 완성된다. 



음식으로 부터 비롯된 비교사 탐험 
<말술 클럽>이 '전통주'를 매개로 한 계통적 한국사의 탐험이라면, ebs에서 선보인 <상상식탁>은 횡적인 비교사의 프로그램이다. 이제 2회를 방영한 이 프로그램이 선택한 주제는 사랑, 정치, 전쟁 등 개념정 명제들이다. 

정치의 편에서 정상 만찬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독도 새우'로 부터 2차 대전을 앞두고 방문한 영국의 조지 6세에게 대접했다는 미국의 길거리 음식 '핫도그', 비빔밥, 초콜릿 칩 쿠키가 정치, 그 중심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음식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지식'의 장을 연다. 전쟁의 편을 연 건 육포이다. '전쟁'하면 싸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관건이 되는 건  '병사들이 먹고 싸울 수 있는 식량', 바로 그 '식량 배급' 문제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한 몽골의 육포는 곧 그들의 세계 정복을 가능케 한 신의 한수라고 <상상 식탁>은 정의 내린다. 또한 전쟁이라는 과정 속에 또 하나의 변수가 된 전쟁의 식량으로서 영국의 '피시엔 칩스'를 조명한다. 1,2차 대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영국 국민들이 '배급 물품'에서 제외된 '생선'과 '감자'로 '기아'를 버텨냈다는 것으로 '음식'은 곧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미 <외부자들>을 통해 전문적 영역 mc로서 김구라의 대안으로 등장한 남희석이 '인문학'의 mc로서 도전장을 내밀며, 자칫 황교익으로 '과점'화될 우려가 제기된 음식의 평론계에서 새로인 등장한 유지상 음식 전문 기자, 건축이 직업이지만 음식 비평이 그의 특기가 된 이용재 비평가가 합류하여 음식 평론의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에 팟 게스트<지대넓얇>의 이독실이 공대생 특유의 장기를 살려 데워먹는 전투 식량을 실험해본다 하는 식으로 인문학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한 편에 박상희 심리 카운슬러, 정치 편에 전여욱 전 의원, 전쟁 편에 군사전문가 양욱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하여, 인문학적 전문성을 더한다. 

물론 과연 이 프로그램들이 전통주의 홍보를 넘어, 혹은 이미 한편에서는 상식이 되어가는 인문학적 지식의 '편집'을 넘어서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가장 익숙한 주제를 '인문학'이라는 트렌트, 혹은 갈증, 발전의 영역으로 가지를 뻗어나가 시도하고자 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전통주래 봤자라거나, 음식의 역사라 봐야 하면서 발견하게되는 '인간들의 삶'은 먹고사니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디 이러한 시도들이 활발하게, 다각도로 진행되어, tv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04.15 17:04

<비밀은 없다>는 호불호가 갈렸다. 평단의 일부에서는 역시 이경미라 극찬을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말하면, <전체관람가- 아랫집>을 보고 난 정윤철 감독의 느낌에 가까웠다. 이른바 '괴랄하다(괴이하다)'로 표현되는 이경미 감독의 세계를 존중한다 해도, 한 사람이 만든 거라기엔 영화의 톤은 울퉁불퉁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정체는 모호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홍당무>의 양미숙 못지않게 연홍으로 고군분투한 손예진은 빛났다. 그 해의 여우주연상을 손예진에게 준다면, <덕혜옹주>보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7년 춘사영화제는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에게 수상을 했다. 그렇게 이른바 이경미월드가 칭해지는 감독의 독보적인 세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배우의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단편 영화 <아랫집>에서도 마찬가지다. 12년만에 돌아온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괴랄하다. 





히로인을 통해 빛나는 이경미월드 
사전에는 없는 이 신조어, '괴랄하다', 괴상하다와 지랄맞다가 합성되었다 추측되는 이 단어로 응축되는 이경미 감독 영화를 대변하는 이들은 주인공인 여배우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면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다 못해 흡족한 '아하하하하' 고성의 웃음이 삐져나오고 마는 감독의 취향때문일까? 물론 그 취향에 기반을 두었겠지만, 하지만, 그저 어떤 색채의 프리즘같은 취향이라는 정의 이전에, 이경미 감독이 포착한 지점은, '정상'의 세상에 '정상'처럼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다. 

양미숙의 짝사랑 수난사를 그린 <미스 홍당무> 속 여주인공은 비인기종목 러시아어 교사에, 안면 홍조에 거기다 비호감의 언어를 툭툭 내뱉는 '사랑스럽지않은' 여주인공이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의 '사랑'을 내세워, '사랑지상주의'의 시대에 역설을 도모한 이 작품은 그래서, 다수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또 어떤가, 전라도 출신의 여성으로 경상도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시집와서, 현모양처연하며 정치인의 아내를 자처한 '딜레마'의 응집체이다. 딸을 잃고 무당 앞에서 접신을 하는 듯 자신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고향말을 묻고 타지역에서 이방인으로 묻어가야 했던 그 수난의 시절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이 희생을 하여 꾸린 가정이란 신기루마저 사라지고, 그 '아노미'의 상태를 '미친년'같은 연홍을 통해 이경미 감독은 적나라하게 연출해 낸다. 

그렇게, 사회가 제시하는 '그러해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거기에 끝내 맞출 수 없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몸짓을 포착하는데 이경미 감독은 탁월하다. 그래서 이경미 감독의 작품 속 여성들은 거개가 '제 정신이 아닌'듯하지만 그래서 공감이 가고, 그래서 마음을 울린다. 겨우 15분 여의 단편이지만, <아랫집>에서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다르지 않다. 11년만에 돌아온 tv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신사임당 역 이영애는 이뻤지만 어쩐지 박물관의 박제된 인물을 본듯했다면, <아랫집> 속 희지가 된 이영애는 표정 하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훨씬 생동감있다. 그리고 그 생동감의 원천은 바로, 아파트 담배 연기에 하소연하지만, 그 이면에 상실의 노이로제로 어찌할 줄 모르는 위기의 여성 희지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층간 갈등에서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화두까지
'미세 먼지'의 주제를 선택한 이경미 감독은 그 '미세먼지'를 아파트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말이 서로 다른 독립 세대지, 화장실과 하수구 등을 통해 서로가 연결된 공동체 아파트. 그 406호에 사는 희지는 아랫집 306호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화답으로 그녀는 매일 아침 청소기를 들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그걸로도 풀리지 않은 마음을 결국 편지에 담는다. 

영화는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 갈등의 주체가 되는 인물의 내면과, 그 인물이 부닥치는 또 다른 인물들을 통해 아파트란 공동체가 가지는 다양한 층간 갈등의 유형을 드러내고자 한다. 영화는 마치 '너구리잡기' 게임처럼 그 짧은 시간에, 희지라는 인물의 사실은 애닮은 상처와, 그 상처입은 인물이 마주한 세상의 잔인함, 그리고 그것의 역설까지 두루두루 섭렵하고자 애쓴다. 윗집에서 보내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그 평범한 장면에서도 ng가 날 편지지가 순조롭게 들어가지 않아 쩔쩔매는 그 씬에 ok컷을 외치듯, 그리고 정작 윗집에 담배 연기 고통을 호소하는 희지가 흡연자였다는 반전처럼 이경미 감독은 평범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일탈의 기운을 곳곳에서 포착해 내고자 한다. 덕분에 영화는 '괴랄한' 아파트 공동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동시에 더 '괴랄할 수 밖에 없는' 희지의 개인사에 대해 깊은 스펙트럼까지 더한다. 

앞서 이명세 감독이 데이트 폭력을 다룬 <그대 없이는 못살아>가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마주친 두 남녀를 통해, 그들의 현재와 과거, 이상과 현실을 조명하며, 그것을 이미지화시켜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이미지'로 전달된 느낌은 분명하지만, '이성'으로 독해하기엔 난해한 실험적인 영화가 되었다. 그에 이어 이경미 감독 역시 아파트 공동체 사는 다층의 층간 갈등의 요인들을 설명하며, 그것들은 '이영애'가 분한 '희지'란 대표적 인물과 '개구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역시나 실험적인 묘사의 계보를 잇는다. 메이킹 영상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이경미 월드! 하지만 그 '영상'의 실험은 이미 '이명세' 감독 편에서 제시된 바 '머리'로 이해하는,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영화적 방식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다. 아마도, 이명세 감독의 실험, 그리고 이경미 감독의 괴랄함은 이경미 감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작업했다는 소감에서도 느껴지듯이 '상업 영화'라는 궤도에서는 궤도 순항이 어려운 시도들이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빛이난 이명세 감독에 이어, 이경미 감독의 작업이, <전체 관람가>의 의의를 빛낸다. 



by meditator 2017.12.18 14:53

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전체 관람가 8번째 감독인 오멸이 그 주인공이다.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를 내세운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 <전체 관람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던 이명세, 정윤철, 박광현 등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흥행한 작품이 떠오르는 상업 영화계의 내노라하는 9명의 감독들, 단지 지금 현재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이들 상업 영화 감독이 단돈 3000만원으로 단편 영화를 만든다는 그 '예능'적 도전이 매주 화제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9회, 애초에 이들 9명의 감독들 외에 의문의 인물로 비워두었던 한 자리에, 그간 진짜 저예산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던 '오멸' 감독이 등장했다. 




진짜 독립 영화 감독 오멸의 등장 
오멸 감독하면, 불현듯 등장한 그의 작품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을 통해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 대상 및 각종 영화제의 수상을 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드러낸 분이다. 아니, 그런 숱한 영화제의 수상이라는 수식어보다, 사실 더 센세이셔널한 건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에서 활동한 로컬 영화인인 그가, 자신의 땅 제주의 아픈 역사 4.3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알쓸신잡>의 유시민 조차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4.3을 정의내렸다. 그러나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속 사람들은 '제주도 해안 5km밖 사람들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산속으로 몸을 숨긴다.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일상의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우리가 아는 그 4.3의 희생자가 되었다. 박광현 감독이 표현한 바, '폭력'을 다루는 그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통해 역사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우리 역사의 뒷 페이지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빨갱이들의 일'을 비극적 민중사의 한 장면으로 복원했다. 

하지만 오멸 감독의 '행군'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슬 - 끝나지 않는 세월2>에 앞서 그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어이그, 저 귓것>(Nstalgia)통해 '귀신이 데려가야 할 바보같은 녀석들(귓것) 네 사람을 통해 과거 제도도의 민속 노동요와 포크 음악의 협연을 시도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었다. 또한 개봉되지 못한 2015년작 <눈꺼풀>은 '세월호'에 대해 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며 그 누구보다 앞서 시대를 영화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다루고자 하는 주제만이 아니라, 비전문 영화인과 배우와 스텝이 구분되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작업 과정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과정으로서 담보해낸 영화인으로 <전체관람가>의 취지에 가장 부합한 인물로써 이제 8번째 감독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창하게 독립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란 수식어만으로 그가 <전체 관람가>의 한 자리를 맡은 건 아니었다. '신라리' 프로덕션의 문소리가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그보다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모두가 지겹다 했던 그 순간에서도 꿋꿋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며 촛불을 켜냈던 JTBC에 대한 동지 의식이 오멸 감독을 그 자리에 불러 왔다. 

또한 그런 사명감만도 아니다. 정작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4.3을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든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그에게도 '블랙리스트'의 족쇄를 채웠다. 제 아무리 독립 영화라 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그의 지난 시간은 버거웠고, 그 고난의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전체 관람가>의 출연 요청을 받고 대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또한 말이 좋아 공동체지, 오멸 감독 자신이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그 과정이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독립 영화'의 척박한 현실, 과연 현재와 같은 한국적 상황에서 계속 독립 영화를 만드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 거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던 <눈꺼풀>이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뤄두어야 했던 상황이 기꺼이 <전체 관람가>의 기회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몇 년전부터 찍고팠던 <눈꺼풀>에 이어 하고자 했던 세월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립 영화 <파미르>가 말하는 세월호 
3000만원의 예산, 그 퍽퍽한 한계 속에서 3회차의 촬영조차 허덕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멸 감독은 <전체 관람가> 최초로 해외 로케에, 36일간의 대장정의 작품을 빚어낸다. 아니, 그 짧은 시간보다 더한 지난 3년 묵은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했던 이야기가 더 '진짜'다. 

세월호를 물 속에서 꺼내기 전부터 '지겹다'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느새 '세월호'를 잊어간다. 가족들도 더는 '죄송스러워서' 잊으시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잊는다해도 남겨진 부채, 바로 그 '시간'이 흐른 뒤의 '세월호 '이야기를 오멸 감독은 다룬다. 

아웅다웅하며 함께 수학 여행을 떠난 두 친구,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한 친구의 삶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 친구가 타던 자전거의 안장이 시간 속에 너덜거려진 즈음, 비로소 남겨진 친구는 친구의 자전거를 찾아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가려고 했던 '파미르 고원'을 그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해발 2000 M가 넘는 고원, 9명의 스탭들, 누가 배우고, 스탭인 지 구분이 안가는 상황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고원을 헤매는 한 청년를 따른다. 굴러 떨어져 주저앉은 그에게 느닷없이 던져진 고원의 어린 아이가 던진 돌팔매, 자신보다 먼저 왔던 청년과의 이별에 상처로 몽니로 던져진 돌멩이들, 비로소 청년이 된 친구는 그 아이의 돌팔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비로소 찾은 친구가 가고자 했던 고원이 다가오고. 비로소 청년은 그곳에 친구를 두고, 다시 오마하고 웃으며 길을 떠난다. 

무엇을 해도 우리 시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채 의식, 어떻게 해도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 앞에서 현명해 질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오멸 감독은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찾아 떠난 청년을 통해 보다듬어 준다.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씻김굿'이 된 영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목청높은 선언이 닳아버린 시간 속에, 세월호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선다. 

그렇게 오멸 감독의 영화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독립 영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감독 말대로, 저예산으로, 상업 영화를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 다른, 자본의 투자를 못받은이 아닌,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독립 영화의 가치를 설득해 냈다. '진짜'다. 

by meditator 2017.12.11 14:18

jtbc의 <전체관람가> 일곱 번째 감독인 창감독의 필모는 소재나 주제 면에서 다양하다. 2008년 <고사; 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표적(2014)>, <계춘할망(2015)>까지. 하지만 정작 <전체관람가>를 통해 창 감독은 말한다. '불감청이었으나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었던 장르로 '판타지'를 내세운다. 특히 설화나 상상 혹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밝혔다. 하지만 '판타지'만으로도 발붙이기 힘든데, 설화라니, 당연히 창 감독의 '소원'은 유보될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타임 슬립을 기반으로 한 한 엄마의 자식 구하기인 중국 합작 영화 <역시 영구(2017)>를 통해 풀어내려 한 바 있지만, 본격적인 그의 '로망' 그 시작은 jtbc <전체 관람가>의 단편 영화를 통해서가 된다. 그렇게, <전체 관람가>의 창 감독 편은 '자본'과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되어지는 산업이 된 영화계에서 감독의 도전과 로망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풀어낸다. 




창감독의 로망, 판타지 구미호, 그러나 쉽지 않은 화두 
판타지에 대한 자신의 로망을 풀어내기 위해 창 감독이 선택한 이야기는 '구미호'이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혼밥'이었는데, 그것을 창감독은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평범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로망'을 지닌 구미호 소년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구미호만큼이나 우리 대중 문화에서 익숙하면서도 대접받기 힘든 존재도 드물다. 한때 우리 문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국의 '강시' 등과 같은 설화적 존재이면서도, 영미 문화권의 '좀비'가 샤머니즘적 성격을 승화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재해석되거나, 일본의 <나루토>처럼 트렌디한 소재가 되지 못한 채, 구미호는 늘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 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미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당시 조명받던 여배우 고소영을 청춘 스타 정우성과 함께 내세운 <구미호>가 등장했지만 역대 가장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6년작 <구미호 가족>은 이제는 스타가 된 하정우까지 등장시키고, 당시로는 도전인 뮤지컬의 형태로 구미호를 재해석해냈지만, 감독의 차기작을 기약할 수 없는 불운한 실험작으로 남게 되었다. tv라고 다를까, 김태희가 광고의 여신으로 거듭나던 2004년 구미호를 판타지 멜로로 탄생시킨 <구미호 외전>은 김태희를 비롯한 한예슬 등의 당대 청춘 스타들을 포진시켰지만, 역시나 구미호하면 흰머리에 소복, 여우눈에 피칠갑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이 도전적 시도는 안타깝게도 역시 당대의 조롱을 받으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트렌드가 된 좀비와 구미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였을까? 서인도 제도 부두교에서 등장한 특이한 설화적 소재였던 좀비는 현대 대중 문화에서 거대 자본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는' 파편화되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본주의 위기 속 개인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며 현대적 문화 코드로 재탄생되었다. 반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등장했던 대부분의 '구미호'들은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웠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의 해석을 뛰어넘지 못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전설의 고향같은 구미호를 연상하고 요구하고 그에 이질적이면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혼밥'이 승화된 사회적 고독으로서의 구미호 
창 감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앞서 구미호를 다룬 작품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신이 자신이 선택한 주제 '혼밥'을 사회적 고립으로 확장하며, 거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며, 자신만의 판타지 월드를 구축해 낸다. 또한 구미호라면 당연히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 어머니 구미호를 등장시키지만, 거기서 탄생한 존재, 아니 어머니 구미호가 천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탈취 변형한 자식 구미호로 송재림이란 남성 배우를 내세우면 전설을 뒤튼다. 

장황했던 메이킹에 비해, 정작 본편의 단편은 간결하다. 작품이 끝난 뒤, 대번에 2편이 궁금하다, 2편을 내놓으란 말이 나오듯, 창 감독의 <숲속의 아이>는 그 자신이 말하듯 자신이 구상한 장편의 프리퀼같은 모양새를 띤다.
곧 다가올 아이의 출생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평범한 부부, 그러나 그 행복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산통으로 병원에 가던 중 실종된 아내, 아니 실종된 아내의 뱃속의 아이로 인해 비극이 된다. 그 충격적인 씬이후에 비로소 등장하는 제목 <숲 속의 아이>. 이어지는 다음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혼밥'을 하는 청년, 분식집에서 주변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며 그들처럼 '간'을 집어먹지만, 익힌 간의 맛이 낯선지 곧 뱉어내고 만다. 그리고 들이닥친 경찰들, 청년을 밤거리에서 살인을 한 혐의로 체포하고, 그런 청년을 도와주려는 인권 변호사가 나타나지만, 그 '도움'은 그 인권 변호사는 물론, 경찰서의 피비린내 나는 살상으로 마무리된다. 

출생과 이어지는 청년의 난동이라는 이 불친절한 연결은, 하지만 다음 장면 엄마 구미호와 아들 구미호의 대화, 그리고 두 모자가 떠나는 도시, 새로이 자리잡은 숲속을 통해 모든 걸 설명한다. 나는 왜 이러냐며 평범하고 싶다는 아들, 평범한 게 무어냐고 반문하는 엄마,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며, 살다보면 너도 평범해질 거라고 말하며 자신만큼 다 큰 아들을 보다듬는 엄마.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워 전설을 복기하지 않아도, 선우 선이라는 배우의 선굵은 분위기로 엄마 구미호와 배우의 재발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들 구미호를 열연한 송재림을 통해 고립된 존재 구미호를 설득해 낸다. 영화 관람 후 정윤철 감독이 빗댄 <렛미인>이나, 혹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처럼 이종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을 돌아보게 되는 쓸쓸하고도 짙은 고독의 여운을 남기는데 프리퀼 <숲속의 아이>는 충분하다. 
by meditator 2017.12.04 16:52

<전체 관람가>에서 이명세 감독의 별칭은 '명스나이퍼'다. 앞서 작품을 선보였던 감독들에게 동료 감독들이나 mc들이 '주례사비평' 급은 아니더라도 서로 계속 얼굴을 맞대고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야 하기에 웬만하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 비해 이명세 감독은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남기거나, 평가를 유보하는 등 냉정한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방영할 시간이 다가오면 주변에선 그래서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고 우스개를 했지만, <전체 관람가>에 참여한 대부분의 젊은(?) 감독들에 비해 연배나 활동 시기도 한참 '선배'인 이명세 감독의 고민은 시간이 흐를 수록 깊어보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10년만에 어렵게 만든 영화, 그리고 단편 영화로 치면 학생 때 작품 이후로 어언 40년만에 만든 단편 영화, 하지만 젊은 갇목들은 입을 모은다. 연세가 무색하게 가장 열정적으로, 가장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그저 나이가 많아서 노장이 아니라, 앞서 살아간 사람의 용기를 그렇게 이명세 감독은 설득하고, 그 노장 감독의 활약에 젊은 감독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명스나이퍼였던 이명세 감독이 앞서 작품을 한 감독들에게 한 질문들은 일관됐다. 한 달 여의 촉박한 시간, 제작비가 넉넉치 않아 짧은 촬영 회차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젊은 감독들에게 그럼에도, 작품이 완성도가 있는가?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 어울리는 작품인가? 그렇게 이명세 감독의 날카로운 질문은 앞선 감독들의 선감상 후리플로 남겨진 과제처럼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 그 해답을 줄 차례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셨다
                                              - 홍승혁 촬영감독

왜 노장은 돌아왔을까? 
우리 영화계에서 이명세 감독을 스타일리스트라 부른다. '서사'보다, 화면의 색감, 구도 등등에 방점이 찍힌 그의 전작들이 남긴 수식어다. 하지만, 영화 <스파이>에서 중도 하차한 후 더 이상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의 작품을 더는 볼 수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상업 영화가 주류가 된 영화계는 대중들을 쉽게 유인할 수 있는 '드라마' 위주의 영화를 선호했고, 그 가운데에서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이명세 감독의 자리를 없었다. 

그런 이명세 감독이 10여년의 기다림 끝에, <전체 관람가>라는 콜라보 예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연배에, 그 경력에 위신을 운운할만도 하건만 기꺼이 한참 후배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여 '동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명세 감독은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이 자리에 왔을까? 이명세 감독은 말한다. 비록 10년만의 기회이지만, 자신은 영화에 대한 여전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드라마'로 대체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미지, 움직임이 결합된 이미지로서의 영화를 설파하기 위해 기꺼이 후배들과 한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자본에 의해 침식된 영화계에서 단편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영화의 자리, 혹은 영화의 본령이 될 수 있기에, 기꺼이 참여한다고. 이런 이명세 감독의 출사표는 그의 작품을 감상한 후,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만들었다는, 한편의 시와 같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바로 그런 이명세 감독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이명세 감독이 작품과 메이킹 과정을 통해 설파한 여전한 그의 주장은, 여느 서바이벌 예능처럼 낙오자들을 모아놓은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구차한 형색을 지녔던 <전체 관람가>의 프레임을 변화시킨다. 이미 앞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이나,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예능'이나, 투자받지 못한 감독들의 생존기를 넘어서, '자본'을 넘어선 모험과 도발을 시도했던바 있는 <전체 관람가>는 이제 이명세 감독에 이르러, 그 본래의 '단편 영화 활성화'의 의도를 제대로 관철해 낸다. 투자 받지 못해 장편으로 할 수 없었던, 혹은 흥행이 안될 거 같아 할 수 없었던 긴 이야기를 줄인 짧은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 편의 시'로서 단편 영화의 본질을 <그대없인 못살아>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미지로 설득한 '데이트 폭력' 아니 '사랑의 본질'
스완의 심장은 질투로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의 눈을 파내고 싶었다.  -마르셸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셸 프로스트의 저 짧은 문구로 시작된 영화는 바로 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주제 '데이트 폭력'을 대번에 설명해 낸다. 그리고 영화는 보는 이들을 마치 6,70년대의 흑백 영화와 같은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커다란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가는 여자, 한 눈에 봐도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그녀의 멍든 얼굴. 쫓기듯 구멍난 스타킹, 그리고 여자의 힘으로 끌고가기엔 버거운 캐리어, 그 상황에서 굳이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힘겹게 끌고가던 캐리어를 방치하려다 친절한 행인들에 의해 돌려받은 여자는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다 놓치고, 그 순간 어떤 친절한 남자가 몸을 날려 그 캐리어를 구하며 득의양양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도 잠깐, 열려진 틈으로 캐리어의 내용물을 보게 된 남자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고, 그 남자를 여자는 사생결단으로 쫓아간다.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바로 이 쫓고 쫓기고, 결국은 친절이 파멸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영화배우 대신 현대 무용가 김설진을 '남자'로 캐스팅한 <그대없인 못살아>는 이미 강렬한 이미지의 배우 유인영과 함께 그와 그녀의 추격전을 이명세 감독의 전편 영화에서 트레이드마크처럼 차용된 그림자 액션을 스스로 오마주하는가 하면, 폐 회전 목마를 이명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의 감독들이 수동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조명만으로 현실과 꿈을 오가는 몽환적 상황을 연출해 낸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한낱 꿈 속의 꿈인가/ 꿈 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 
                                                       - 영화 '개그맨' 중에서 이명세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그림자 액션이나, 일찌기 영화의 시원이 된 에드워즈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의 창조적 오마주인 회전 목마에서 빛으로 조명된 사랑과 폭력의 설정이 그저, '미장센'이라는 말을 넘어, 이 영화가 내세운 주제 '데이트 폭력'을 넘어, 영화 마지막 자막 R.M 릴케의 시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처럼 남자와 여자의 사랑, 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즉 이명세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곧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메이킹의 과정에서부터 눈물을 훔치던 감독들은 결국 영화 감상 후 기립 박수를 기꺼이 보낸다. 혹자에게는 1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는 그림'으로서의,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으로서의 영화의 본령에 대한 질문과, 주어진 주제에 대한 철학적 화답을 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서 '영화'의 길에 대한 '멘토'로 자리매김한다. 

평소 장편을 찍을 때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촬영하기로 소무난 이명세 감독, 하지만 적은 예산 짧은 시간에 군말을 덧붙이는 대신, 짧은 시간에 찍기 위해서 연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으로서의 영화론을 피력한다. 나이가 들어 노장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시대와 젊은이들을 앞선 열정과 혜안의 연륜으로 설득한 '선배'의 자리를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내며, 이명세 감독은 레전드가 된다. 

by meditator 2017.11.27 14:24

5회를 맞이하여 네 번째 단편영화 제작기에 돌입한 <전체 관람가>는 '단편 영화' 활성화를 위한 영화 감독들의 외도라는 취지를 넘어 매회 새로운 기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장윤철 감독이 실사 영화와 게임의 콜라보를 하는가 하면, 에로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이 가족영화를 찍고, 이원석 감독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영화의 주인공 박광현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2000억이 든다는 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15분짜리 단편 영화에 담는다. 


3000만원이라 불가능해서, 가능해진 블록버스터 품앗이
3000만원 초저예산의 단편 영화와 블록버스터라는 이 모순의 조합,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 대체적인 담론이 된 현실에서, 애초에 액션물을 하고자 했지만 제작비로 인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로 급선회한 이원석 감독처럼 주어진 제작비는 영화 자체를 규정한다. 그런데 박광현감독은 애초에 '3000만원이 판타지다'라며, 과감하게 그 '돈'으로 제한된 제작 환경을 뛰어넘어 버린다. 3000만원의 한도 내에서라는 현실적 조건을 '구걸'과 '협조'로 대응하며 17년간 하고자 했지만 '투자'라는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던 박광현 감독의 로망을 단편 영화라는 틀에 과감히 담아내 버린 것이다. 



감독은 말한다. 아마도 장편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와, 단 3일의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들이, <웰컴 투 동막골(2005)>, <조작된 도시(2017)>를 함께 했던 스탭들과 유명 디자이너, 심지어 밥차까지 십시일반 '노력과 자본'의 동원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능한 제작비가 꿈을 실현시킬 품앗이의 기반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박광현 감독은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트라 100명과, 제작비 3000만원으로 세팅한 현장 외에, 단편 영화에서 무려 카메라 3대의 지원과, 의상, 미술, 제작 과정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과, 밥차 등등의 '구걸'을 통해 15분짜리 단편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영웅이 못생겼다면?
그러나 12일 방영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을 그저 제작비를 넘어선 품앗이라는 지점의 신기록으로만 기억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거기서 진짜 로망은 일찌기 90년대 장준환 감독의 <방구맨>, 김곡, 김선 감독의 <드릴 소녀>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의 계보에 놓여있지만, 결코 투자받을 수 없는 비운의 b급 히어로물의 구현과, 그보다 더 투자받기 힘든 '불편할 정도의 직관적 현실 묘사가 투영된' 뚝심있는 현실 반영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다. 

외모 지상주의를 자신의 주제로 선택한 박광현 감독은 대작 <스파이더맨>의 패러디에 기반한 오늘의 '적나라한 투영'이다. 실제 항문에서 거미줄이 분사되는 거미가 히어로물 주인공이 되어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그래서 박광현 감독의 히어로 <거미맨>은 항문에서 거미줄이 나온다. 또한 늘씬한 몸매의 히어로대신, 늘씬하고 잘 생긴 건 악당에게 양보하고, 배나오고 팔다리 가는, 심지어 가면을 벗었는데 대머리가 땀에 가닥가닥 절어있는 얼굴은 '시나노'급의 현실 아저씨 영웅이 등장한다. 심지어 그가 초능력자가 되는 과정도 어린 시절 동네 또래들에게 집단 이지매를 당하는 과정에서이다. 

젊음의 성소 '클럽', 그곳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잘생김만을 믿고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발차기로 날려버리며 '클럽의 수질 관리'를 탓하는 악당의 등장. 그 소란에 불만을 표출하던 과객과 클럽의 주인은 가면을 벗은 그의 멀끔한 외모에 '비난'을 '감탄'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던 여성의 못생김에 오히려 '악당'을 응원하기에 이르는데. 그때 암전과 함께 하늘에서 등장한 황금빛 거미, 

하지만 현실은 항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에 의존해 궁색하게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주관적 액션'에서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의 멋짐을 한껏 발산하지만, 현실은 그를 악당으로 오인한 경찰들과의 아저씨들 동네 떼싸움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궁색한 영웅, 거기에 그만 가면까지 벗겨지는데. 

영화의 정점은 가면이 벗겨졌어도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거미맨과 악당과의 1;1 대결장면,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악당이 보인 나쁜 행동들의 목격자였음에도, 그의 잘생김에 매료되어 악당을 응원한다. 그가 거미맨을 쳐박을 때마다 클럽에 울려퍼지는 환호성.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 초라하고, 거기에 영웅연했지만 악당에게 무참하게 짓밟혀 더 불쌍해진 거미맨 앞에, 그의 이름 '수호'를 부르며 나타난 첫사랑. 영화가 끝난 후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엄청난 뚝심'답게 박광현 감독은 3000만원의 환타지로서의 단편이 가진 기회에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주제로 마지막을 장식하여, '내 얘기같아 슬프다'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묵직한 환타지 영웅물을 탄생시킨다. 





<거미맨>은, 박광현 감독은 묻는다. 늘 이겨야만 혹은 '우생학적 적자'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의도는 가졌지만 성공해내지 못하는 영웅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제작비의 신화를 넘어선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 화두를 남긴다. <거미맨>은 겨우 15분인데, 마치 한 시간을 넘는 장편 영화을 본듯한 감상의 무게를 남긴다. 굳이 이명세 감독이 지적한 '단편 영화의 폼에 장편 영화를 끼워넣은 듯한 한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5분을 통해 보여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도전과 주제 의식이 <전체 관람가>의 도전을 무한하게 확장했기 때문이리라. 적은 제작비, 제한된 제작 환경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편이 단편이기에 풀어내어질 수 있었던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은 단편의 위상을 새롭게 부상시킨다. 



by meditator 2017.11.13 16:05

영화 감독들의 단편 영화 제작기를 예능으로 담은 <전체 관람가>는 정윤철, 봉만대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메이킹과 영화의 콜라보의 의미를 십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의 <아버지의 검>이나, 봉만대 감독의 <양양>이 게임과 실사 영화의 콜라보라던가, 19금 감독의 전체 관람가 가족 영화라는 신선한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주목을 받았지만, 메이킹과 영화라는 균형추에서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 아쉬움은 3000만원의 부족한 제작비와 짧은 촬영 시간의 핑계로 대신되었었다.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 드디어 단편 영화의 빛을 발하다
하지만 이제 4회를 맞이한 <전체 관람가>는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그런 핑곗거리를 역설적 기회로 활용하며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제사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액션 영화에서 급 변경된 뮤지컬이라는 장르, 그것도 '노래방' 음향이라는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 오히려 이원석 감독이 주제로 삼은 '아재들의 이야기'의 화룡점정이 되어 작품의 빛을 더한다.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 전작 <남자 사용 설명서>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했던 이원석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요 이래 <영웅;샐러맨더의 비밀(2010)>을 유일하게 개봉한 극장에서 찾아 볼 만큼 배우 김보성의 팬이었던 자신의 팬심을 영화에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김보성만큼이나 <클레멘타인> 등을 통해 액션 배우로 일가견이 있는 이동준 배우와 함께 하고자 한다. 

대중들에게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광고를 통해 등장해 철 지난(?) '의~리'를 외치는 그 '아재'들의 감성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한 그 무엇에 대한 고찰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원석 감독이 여전한 아재들의 액션 감성을 고수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에 엄격한 조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 의해 대번에 가로막히고 만다. 그리하여 정윤철 감독처럼 '즉흥 환상곡'처럼 아재들의 감성을 역설적으로 '랩권하는 세상' 속에서 구원하고자 발리우드의 한국판 버전 '코리우드 뮤지컬'로 급변경된다. 


열악한 제작 환경이 만들어 낸 코리우드 노래방 뮤지컬 
빠듯한 제작비에 하나 둘씩 톡방을 빠져나가는 스텝들, 그리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배우의 섭외 등의 과정은 이제 <전체 관람가>의 통과 의례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여전히 팬이라 알아봐주는 이원석 감독을 위해 혹은 여전히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감독을 위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촬영에 성실하게 임해 생전 처음해보는 랩에서 부터 60의 나이에 등에 땀이 나도록 안무를 연습하는 이동준 배우의 '노익장(?)은 그 자체로 한편의 '인간 극장'처럼 다가온다. 

드디어 영화의 개봉, 영화는 신나는 싱어롱 노래방 뮤지컬을 표방하며,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뜬금없는 설정에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잠시 옆 사람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한 후 본다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시작된 영화는 여전한 의리의 김보성이 영화 오디션 현장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지는 거승로 시작된다. 어떻게 요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김보성의 일정한 연기는 '갓잇'의 수식어를 요구하는 '랩부심'이 충만한 현장에서 당연히 '거절'을 당하고, 그에게 겨우 마련한 오디션 자리를 소개해준 후배의 타박이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에도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보성의 '시간이 째깍째각~ 흐르는 세월~'하는 노래가 이어진다. 김보성의 노래에 맞춰 방금 타박을 주던 후배의 백댄서 변용까지, 우리가 이른바 '발리우드'라 칭하는 인도 영화에서 흔히 보던 급전직 뮤지컬의 등장 방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혼자 술을 마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버지 김보성 앞에 등장하여 아버지는 '아재'라며 구박을 하는 아들의 대사 역시 '랩'으로 대신한다. 이후 열 번의 오디션에서 계속 물을 먹은 아버지 김보성은 마지막이라며 후배가 권한 영화의 배역 '랩에 빠진 아버지'의 역을 맡기 위해 '랩하는 방법'에서 부터 첫 걸음을 뗀다. 그리고 이원석 감독의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 등장했던 방식을 차용하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도입 부분처럼 cg를 활용한 김보성의 랩 입문기는 그 자체로 실험적인 영역으로서 단편 영화의 맛을 한껏 만끼하도록 만든다. 

드디어 랩에 빠진 아버지 역할의 오디션을 보는 날, 말이 래퍼지 80년대 촌스러운 운동복에 머리띠까지 두른 어색한 아재미 풀풀 풍기는 김보성 래퍼가 뜻밖에도 오디션 장에서 그처럼 오디션을 보러 온 그와 같은 왕년의 액션 배우 이동준을 만난다. 아내의 롱 털코트까지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과거를 상징하는 트로피까지 들고 온 또 다른 아재 배우 이동준. 

두 사람이 트로트 반주에 어머님을 그리는 노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시작된 오디션, 의상까지 맞추며 등장했지만 빠른 비트 박스에 이동준 배우는 차마 입도 떼지 못한 채 오디션 장을 나서고 만다. 김보성 배우라고 다를까. 하지만 한번의 기회를 더 청한 그는, 그만의 리듬으로 '현실을 피한 돈키호테'로서의 자신의 현실을 토해내고 오디션 장을 빠져나간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다른 촬영의 보조 출연자로 조우하고, 그곳에서도 타박을 받다 잠시 벤치에서 쉬던 두 사람은 아직도 두 사람을 알아보는 왕년의 팬들로 인해 한숨을 돌리고 <라라랜드>의 그 절정의 음악 못지 않은 아재들의 <랄라랜드> 협연으로 영화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웠던 아재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많은 감독들이 기립 박수를 쳤고, 눈물로 환대하듯,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는 웃음과 그 특유의 b급 감성과 그럼에도 그 속에 담겨있는 아재들의 순정으로 인해 한 조각의 '맛있는 케이크'처럼 15분을 60분처럼 느끼게 다가온다. 문소리의 평처럼 김보성, 이동준이라는 두 배우의 현실이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영화 속에 녹아든 아재들의 <랄라랜드>는 '랩'으로 대변되는 흐르는 세월 속에 템포를 맞출 수 없는 '돈키호테'같아졌지만 그래도 '사나이'로 대변되는 '순정'의 가치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단상으로 결론내려진다.

이원석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뒤처진 단어가 되어가는 '아재', 그들의 존재 가치를 '코리우드'라는 신조어가 어울리는 노래방 뮤지컬의 형식을 통해, 이제는 아니 예전에도 a급은 아니었지만, b급 그 자체로서도 얼마든지 존재 가치가 있는 '아재'의 존재 가치를 빛낸다.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 오히려 변하지 않아 가치가 있어져 버린 영역에 대해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김보성, 이동준 배우의 재발견은 물론, 나이들어 가며 세월에 뒤쳐져 조바심을 내는 이들을 위로한다. 우스개처럼 장편이라면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란 이 <랄라랜드>야 말로 단편만이 해낼 수 있는 독보적인 감성의 승리다. 
by meditator 2017.11.06 17:24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의 물꼬를 튼다. 친구의 연식으로 보아 공중파에서 한참 인기가 있는 그 어머니들의 출연하는 예능? 아니면 케이블의 인문학 수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유툽의 항해에 빠졌단다. 지난 촛불 광장으로부터 불붙은 그 친구의 관심은 유툽에 있는 다종다양한 정치 팟 캐스트에 대한 열혈 시청 욕구를 불붙였고. 직장 일로 바쁜 틈틈이 접근성이 좋은 팟 캐스트를 한 편씩 시청하는 것이 요즘 일상의 낙이라고 적극 추천한다. 




팟 캐스트, 그 선두 주자로서의 김어준 
이런 식이다. 어쩌면 공중파의 면구스러운 시청률을 케이블이나 종편 핑계를 댈 것도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툽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의 프로그램에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친구처럼 지난 촛불 정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사안을 펼쳐내는 팟 캐스트가 인기를 끌었고, 그 선두에 '김어준'이 있다는 건 자타공인이다. 

김어준이라 하면, 기억을 거슬러 딴지 일보 총수라는 독특한 그의 이력을 시작으로 아직 팟 캐스트라는 채널이 볼모지인 시절, 2011년 4월부터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을 향한 저격수의 역할을 자처한 <나는 꼼수다>를 당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 평론가,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과 함께 시작했다. 18대 대선 하루 전인 33회차를 끝으로 종영한 <나는 꼼수다>는 이후 한겨레 tv와 함께 한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용민의 국민tv <맘마이스>, 정봉주의 <전국구> 등으로 확산되어가며 촛불 정국을 달군 팟캐스트 열풍에 힘을 실었다. 

왜 팟 캐스트 였을까? <나는 꼼수다>의 등장에서 부터 보여지듯 이 정치 팟캐스트의 존재는 파격적이었다. 때로는 욕설까지 등장하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그보다 더 직설적으로 '가카'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 정치 풍자, 비판 방송에 당시 17대 총선이후 좌절되었던 의식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후, 이런 <나꼼수>의 활동이 촉매가 되어 18대 대선 이후 정의당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등의 정치 까페 등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보여지듯이 정권의 공영 방송 장악과 종편의 파상적인 정치 공세에 좌절한 의식적 대중의 마음에 등대지기 역할을 하며 지난 촛불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치 팟 캐스트의 역할은 그 어떤 공영방송의 뉴스보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데 일조한 김어준과 그의 팟 캐스트는 당당하게 공중파 sbs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이기에 이르른다. 바로 지난 4일과 5일에 선보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란?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이하 블랙하우스)>를 그저 개선장군으로서의 행진으로만 보아서는 아쉽다. 오히려 <블랙 하우스>의 존재는 오히려 2011년 이래 줄기차게 이어져 온 김어준의 '가카 헌정 방송'의 절정이며, 또한 동 시간대 방송해온 <그것이 알고싶다>가 타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들이 정권과 야합하는 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시도해온 정치 비판 다큐의 연장선상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4일의 첫 방송에서 다큐는 화제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 첫 주자는 다름아닌 유병언 세모 회장의 아들 유대균씨, 외국의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 '음모론'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아버지 유병언의 자살에서 부터 국정원 연계설까지 모든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쳐낸다. 

그렇게 세간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가던 세월호를 다시 부양시킨 인터뷰는 이어서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와 함께 정창래 국회의원 등과 함께 한 두바이의 비밀 인터뷰를 공개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에 대한 대담으로 이어진다. 이 내용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그리고 김어준의 팟 캐스트 등을 통해 그 일부가 소개되었음에도 그 실체의 진실에 대해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권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비도덕적 행각을 폭로하는데 거침이 없는 한편, 2회 강유미를 등장시켜 '다스는 누구꺼죠?'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야 만 '흑터뷰'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아니 이제서야 드러나기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다스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리의 서막을 명쾌하게 설명해 낸다. 

즉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새 정권의 최대의 임무가 '적폐 청산'이듯, 아직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적폐 정권의 그림자를 김어준과 제작진은 드러내 보이기에 거침없었고, 이를 통해 <블랙하우스>의 존재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2회 강경화 장관과의 인터뷰, 그리고 1회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와 정세현 전 외교부 장관을 등장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며 '코리안 패싱'은 없다는 해명의 여지도 주는가 하면, 새 정부의 행보에 대한 훈수를 두는데도 서슴치 않았다. 

1,2회 파일럿을 마친 <블랙 하우스>에 비견될만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jtbc의 <썰전>이라 할 것이다. 지난 정국에서 <썰전>의 파격적 존재감을 보며 앞다투어 종편에서 그와 비슷한 포맷의 정치 대담 혹은 방담 프로그램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블랙 하우스>는 그런 종전의 방식과는 다른 '김어준'이라는 '총수'로 불리는,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정치적 사안도 가장 명쾌하고 단순하게 설득해 내는 그의 존재감에 기대어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와 초대 손님의 직설 인터뷰에 이어, 그를 중심으로 한 패널들의 정치 분석, 그리고 강유미와 같은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명쾌한 이명박 전대통령과 다스에 대한 설파에 이르기까지 마치 종합 예능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코너로 정치에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포맷의 이 정치 시사 프로그램은 첫 방 6.5%에 이어 2회 7.8%로 정규 편성의 청신호를 밝혔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by meditator 2017.11.06 12:56

마치 돌림 노래처럼 너도 나도 연예인 혹은 연예인 측근들의 관찰 예능이 붐을 이루는 최근, 지난 10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의 <내 이름을 불러줘 -한 名회>의 존재는 남다르다. 신개념 소설 클럽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동명이인'이라는 우리 사회 흔한 현상을 '휴먼 스토리'의 일반인 토크쇼의 소재로 끌어와 거기에 장성규 아나운서의 '이름의 사회학'을 곁들여 차별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첫 회 그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실한' 김정은으로 부터 시작하여,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건너, '하늘', 그리고 이제 2017년 가장 유명해진 '김지영'으로 따로 또 같은 이들의 사연과 입담,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열어간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매개가 된 김지영 씨들의 소셜 클럽 
4회 김지영이란 이름을 가진 출연자들에 앞서 우선 2017년을 달군 <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지난 2016년 10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13번째 책으로 선을 보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서른 네살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 김지영을 상담한 리포트를 재구성한 형식의 소설이다. '젠더'적 감성에 기반한 이 소설은 태어나면서 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서 차별을 당하고, '여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결혼'과 '육아'라는 제도를 통해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 82년생 여성의 리포트는 발간과 동시에,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여성 가족부가 출범,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음에도 '내재화되고 관습화된 성차별'의 감성을 건드리며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라는 시대적 화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결과 이 시대 차별받는 여성의 상징처럼 된 <82년생 김지영>은 그 공감대를 발판으로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다큐 등 여러 프로그램 들이 앞다쿠어 이 화제의 책을 언급하고 다룬 가운데, 이제 10월의 마지막 날 jtbc<한명회>에서 그 '김지영'씨들을 소셜 클럽의 주인공들로 모셨다. 
소설은 82년생이라는 특정 연도의 출생 김지영을 다루었다. 실제 김지영의 출생 연도를 조사해 보니, 1980년에 제일 많은 김지영의 출생 신고를 한 것에서 보여지듯, 김지영이란 이름은 80년대 여성의 가장 '흔한' 이름이었다. 그 '흔해서 무시받던' 이름이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의 대명사'가 되며 재조명받아 감사하다는 90년생에서 61년생까지의 9명의 김지영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나이가 다르듯 세대적 현실이 다르고, s대 출신 의사, 변호사에서 웃음 치료사, 아르바이트 전문가, 주부, 공백기를 가진 회사원까지 다양한 직종과 경험을 가진 9명의 여성들, 그저 그녀들의 아침 주부 대상 휴먼 스토리 토크쇼가 될 뻔한 프로그램에 차별적 연결 고리가 된 건, 바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소설을 읽은 9명의 김지영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66년생의 김지영도, 83년의 김지영도 어떻게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삶은 변화하지 않는가라고. 심지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mc 한혜진은 소설 속 어머니의 삶조차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너무도 똑같다며 공감대를 넓힌다. 

그리고 이 놀라움의 배경을 장성규 아나운서가 등장하여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이라는 사회적 통계를 통해 설득한다. 2016년 전체 인구 중 여성 비율 49.9%, 여성의 대학 진학율 73.5%, 고용율 50.2%의 세상, 그러나 20세 이상 928만 9천 명의 여성 중 696만의 여성이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겪게되는 것을 통계는 보여준다. 10명 중 7명이 퇴사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15%는 경력 단절의 갭을 넘어 사회에 복귀하지만, 상당수가 그 이전에 비해 직종이나 임금에서 다운그레이드한 상태를 겪게 된다고 수치는 증명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15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페미니즘'은 어때? 
이런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9명의 김지영들의 삶이 보충한다. 의사나 변호사라는 전문직이라도 결혼을 하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전제'만으로 선택 과정에서 당연한 차별을 겪게 되며 결혼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그나마 첫 아이까지는 출산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둘째 아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로 만드는 조직.
조직만이 아니다. 낳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성장 과정,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가족내에서부터 사회 조직에서까지 여성이 잘 나가면 오히려 불쾌해지는 아이러니, 마치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세상에 여성은 너무도 작아 계속 잘리는 느낌이라고 출연자가 말하는 그 '내재화되고 제도화된 차별'에 8명의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런 8명의 김지영들의 토로와 공감은 출연한 한 명의 남자 김지영과 mc 노홍철, 그리고 출연자의 가족인 남자들에서부터 의식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그리고 자신이 겪은 차별적 삶에 대한 해법에 대한 답을 '사회적 의식 변화'라고 명쾌하게 정의한 그 '변화'의 물꼬를 프로그램은 유도한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소설을 읽은 남자 김지영은 '도와준다'고 했던 가사 노동에 대한 다른 변화된 시각을 보인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그저옛날 이야기라 여겼던 노홍철은 현실에 대한 놀라움과 자각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차별적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혼'을 선택했던 72년생의 변호사와, 자신의 성취를 위해 '비혼'을 희망한다는 90년의 구직자, 그리고 딸이라면 '비혼'을 권장하겠다는 현실의 막막함을 함께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어떤 캠페인이나 구호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치열했던 8명의 김지영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차별적인 삶을 이해시킨다. 왜 이 시대 여성이 존중받아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좀 더 여성을 위한 제도와 배려들이 필요한 것인지, 지난 시절의 내재화된 차별 속에서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통해 설득한다. 남성들의 무지와 외면 역시 노홍철과 남성 김지영 등을 통해 교감하고 소통한다. 어쩌면 그저 흔한 '휴먼 스토리'일 수도 있던 토크쇼는 한 편의 소설이라는 문화적 콘텐츠의 의미와 공유,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의 사회화, 그리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멋들어진 '페미니즘'의 결과물에 도달한다. 





by meditator 2017.11.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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