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불평등과 편견을 허무는 차별에 화난 프로 불편러'들의 이야기 <까칠 남녀>가 4월 24일로 5회를 맞이했다. 프로그램은 '털', '졸혼', '피임', '김치녀', '시선 폭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내에 '젠더'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덕분에 매회 화제가 되었다. 또한 화제가 된 만큼 '엄연히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정영진 씨 등의 발언이 매회 인터넷 상에서 숱한 질타의 대상이 되며, 5회에도 발언을 할 때마다 '캡춰'돨 것이란 우스개가 등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이 '우스개'를 웃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지. '한남'과 '페미'라는 양 극단의 용어가 넘쳐나는 세상에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까칠 남녀>의 젠더 토크쇼에 대해 몇 가지 고민을 풀어보고자 한다. 




시선 폭력? 시선 강간?
5회의 주제가 된 것은 여성의 몸을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 거리의 실험 영상을 예로 들며, 그런 남성의 '시선'에 대해 여성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프로그램. 하지만 곧 대다수의 여성들이 '시선 폭력'을 느꼈다는 것과 달리, 그 자리에 참석한 남성 패널들은 이런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힘들어 한다. 

남성이 여성을 보는 것은 '본능'이라거나, 여성들도 '시선을 즐기지 않냐'는 '이의 제기(?)'에 대해 페미니스트 은하선이나, 여성 철학자는 '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남성의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우위에 있기에, 여성들은 그런 '젠더'의 '을'로, 남성들이 끈질기게 자신의 몸을 '관음'하는 시선에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폭력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5회 '시선' 문제의 딜레마가, 동시에 젠더 문제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시선 폭력'의 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이 '성적 권력 관계'에서 오는 관음적 폭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그 '결론'에 대한 공감 대신, 오히려 애초에 개념인 '시선'에 대한 정의와 혼돈으로 '토크'는 뒤돌아 간다. 즉, 과연 어떤 시선이 '폭력'인가에 대해, 상황 설정까지 해가며 다시 설명을 하며, '여자는 안다'라는 단호한, 하지만 모호한 결론에 이르른다. 

'시선 폭력'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 내에서 젠더 권력 관계의 약자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분명한 '폭력'적 요소임에도, 어디까지가 '폭력'인가에 대해 '당하는 사람은 안다'라는 이 모호한 결론은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부딪치고있는 '젠더'문제의 모호함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기울어진 젠더의 전문성 
결론에 이르러 봉만대 감독이 '지켜본다'와 '바라본다'라는 언어적 유희를 통해 설명하려 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본다'는 성적 호기심, 호감, 그리고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담은 행위이다. 이는 즉, 프로그램의 초반, '시선'의 문제를 들어 '권력'이라고 소리를 높였듯, 우리 사회 내 '젠더'에 관한 문제는 수 천년의 시간 동안 '가부장제'적 구조 아래 '절대 우위'를 누려온 '남성'의 권력과 그 '권력'의 피해자 여성이라는 문제 임과 동시에, '섹슈얼'한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문제라는 복합적 구도를 지닌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가진다. 

정영진이나 봉만대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대표적인 '한남' 심지어 '한남충'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몰매를 맞는 것과 달리,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남성들이 심지어 '여성편'이라며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서민조차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들이밀 정도로 '시선'의 문제를 내세우면 그것이 '본능'이라 생각한다는 지점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선의 폭력'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선'에 대한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감'에는 '권력'의 문제와 함께, '생물학적 본능'의 지점이 내포되어 있는 복합적 문제라는 것을 여성과 남성이 역시나 공감하는데서,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은 '도그마'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양성 공감'으로서의 지평을 넓혀가지 않을까 싶다. 이는 곧 <까칠 남녀>가 페미니스트적 담론을 되풀이하는 장이 아니라, 진정한 '양성의 대중적 공감'을 확산시키기 마당이 되는가의 시금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패널의 구성 자체에서도 어쩌면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패널의 구성 자체가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아쉽다.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 은하선에 여성 철학자 이현재라는 '페미니즘'의 전문가 두 사람이 포진한 여성의 입장과 달리, 과연 봉만대나 정영진이 '남성'의 대표성을 띤 전문가인가라는 점에서 아쉽다. 즉 여성들의 입장이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적이고, 보다 체계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진 전문가들에 의해 '권력' 문제까지 짚어져 가면서 문제 제기가 되고 결론을 '목적의식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과 달리, '서구에서는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여성이 자신을 스스로 가리는' 경우는 없다'며 여성들이 좀 더 당당하기를 요구하는 '합리적'인 주장과, 아내가 나를 사랑해서 가사를 돌보고 양말을 신겨준다는 비이성적 잣대를 갈짓자로 오가는 정영진의 주장이나, 에로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뜬금없이 드러내고야 마는 봉만대의 입장은 어쩐지 늘 역부족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을 '한남'이라 욕하거나 제압하고 보면, 우리 사회 남자들이 반성할까? 의식이 달라질까? 과연 이 '한남'이라고 욕먹는 이들이 우리 사회 평균 남성들의 이하인가? 



문제는 이런 이들의 개별적이고 경험주의적이며, '논리적이지' 않은 입장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여성 측 전문가들의 입장이 '격파'한 것이 과연 '양성 평등'의 확산에 도움이 될까? 즉 이는 우리 사회 속 '페미니스트'적인 입장들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대중적 파급력이 얼마나 원심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런 점에서 기생충 학자 서민의 존재가 아쉽다. 콘돔의 사용과 관련하여 질외 사정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봉만대에게 그건 질외 사정의 합리성이 아니라, 봉만대의 나이에서 오는 정자 운동성의 감소라 과학적으로 짚었던 서민은 5회에 이르러 '여성편'이라며 앙탈을 부리거나, 우스꽝스런 상황극에 자신을 소모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심화되어가는 젠더 문제와, 경험주의적 무지가 지배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자'로서 서민은 '권력' 관계를 넘어, 보다 과학적인 전문가로서 '방향'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물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진화 심리학'조차 '젠더적 편견'에 대해 문제 제기를 받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과학자로서의 그의 사리밝은 식견이 도그만에 빠진 담론과, 그를 맞서는 막무가내 경험주의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젠더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계몽주의적 캠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캠페인의 성공의 전제가 되는 것은 '여성은 물론, 남성 대중의 공감이다. 권력의 관계이지만, 동시에 남성과 여성은 '성적'으로 동반자적 관계에 있는 미묘한 역학 관계의 존재들에 대한 때론 논리적이고, 때론 감성적인 설득이다. 과연 5회를 맞이한 <까칠 남녀>가 이런 딜레마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지향'과 함께, 그 '지향'을 위한 공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고민이 제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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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5 16:53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엔딩'이 '벚꽃 깡패'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화사한 봄 벚꽃을 맞이하러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봄꽃을 맞이하러 찾아가는 대표적 명소, 남산. 남산을 찾은 연인이라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바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과 김선아가 사랑의 실랑이를 벌였던 이제는 이름조차 '삼순이 계단'이 된 곳이다. 그런데 그 영어 번역조차 어설픈 이 삼순이 계단이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의 장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국사 시간에 삼순이 계단에 숨겨진 역사까지 가르쳐 줄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공간,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연, 하지만 교육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그 숨겨진 역사를 '방송'이 대신 나섰다. 바로 지난 11월 부터 매주 화요일 7시 40분 찾아오는 <동네의 사생활>과 지난 12월 종영한 <역사 저널 그날>에 뒤를 이어 찾아온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골목과 거리에서 만난 역사 인문학, <동네의 사생활>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을 모토로 내세운 <동네의 사생활>은 해방촌, 제주, 원효로, 대학로 등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토크쇼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걸어가니던 골목, 이제는 폐업을 한 구멍 가게 들이 '역사'를 만나,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배우 정진영의 사회로, 김풍, 주호민, 다니엘, 딘딘 등에 역사가 서경덕이 합류하여, '인문학'으로 우리 동네의 품격을 달리 한다. 

4월 5일 방영된 17회, 이제 막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한 남산을 찾았다. 관광객과 상춘의 연인들이 즐겨찾는 남산. 연인들이 사랑의 실랑이를 벌이는 삼순이 계단은 조선의 국신당을 허물고 일본이 13만평의 조선 신궁으로 올라가기 위해 성역화한 참배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어설프게 삼순이 계단이라 표시된 이 계단 주변 어느 곳에서 일본이 조선에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신당의 입구였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의 치욕스런 신당보다 더 아픈 남산의 역사가 있다. 바로 이제는 서울 유스호스텔로 변신한 1994년부터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었던 중앙 정보부 남산 본관이 그곳이다. 유신 시절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을 받다 숨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조를 당했던 곳. 본관을 비롯하여 지하 벙커라 불리던 지하 고문실 등 40여개의 건물이 오롯이 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프로그램은 밝힌다. 

프로그램의 행보는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지나, 취조를 받던 사람이 서로를 볼 수 없게 지그재그로 흡음판이 달린 방을 만들고, 심지어 자살을 할 수 없게 창문조차 작게 만들었던, 그래서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 이어 군부 독재를 지켜내기 위해 숱한 젊은이들을 고문하고 박종철 열사의 목숨을 거두었던 남영동 대공 분실이 이날 여행의 종착지다. 



이렇게 프로그램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 교과서에서도 얇게 다루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숨죽인 역사 현장을 '동네 답사'의 이름을 빌어 재현한다.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 선언을 한 33인의 사실적 모습과, 그와 대비되는 이회영 일가의 헌신적인 생애가 드러난다. 아름다운 벚꽃에 숨겨진 군산의 모습과 이제는 역사가 된 학림 다방의 추억도 되살려 본다. 때로는 기억해야 할 역사, 때로는 잊지말아야 할 진실이 동네의 골목과 거리를 통해 살아온다. 

휘황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서 사라져 가는 임시 정부을 찾아서, <역사 기행 그곳>
지난 해 신돈 편을 예고까지 한 후 출연자의 신상 문제와 관련하여 본의 아니게 휴업을 하게 된 <역사 저널 그날>을 대신하여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찾았던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 이 프로그램이 <역사 저널 그날>의 시즌2 대신 정규 편성되어 3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8시 10분에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정규 편성 첫 번째 기획은 '고난의 길 임시 정부 루트', 임시정부의 여정을 따라간 기행이다. 이 기행의 의의는 3회차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마지막 편 최태성 강사와 이윤석씨가 오마주한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김구와 김원봉, 해방을 맞이하여 죽은 동지들을 기리며 술 잔을 나눈다. 영화 속 김원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윤봉길 등의 알려진 열사와 의사의 이름을 나열하는 데서 그친다. 하지만 <역사 저널 그곳>에서 김원봉으로 분한 이윤석은 거기에 더한다. 충칭의 임시 정부를 홀로 지키셨던,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에 함께 돌아가지 못한 채 별표로 남으신, 그리고 다시 무연고 무덤으로 이젠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의 여정을 함께 하셨던 분들, 그 분들을 기린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역사 기행 그곳>은 우리 역사 교과서가 미처 담지 못한 임시 정부의 여정을 때론 사(私)사로운 여행처럼, 하지만 사(史)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은 채 홍커우 공원이 있는 상해를 시작으로 임시정부 고난의 시기였던 항저우, 치장을 경유하여 해방을 맞이한 충징까지를 함께 한다. 



두 사람의 여정은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여정이 되고, 그 여정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처럼 김원봉을 만나고, 윤봉길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역사 책은 기록하지 않은 임시 정부 서기이자 흥사단 단원이셨던 김복형 선생님과 같은 독립 운동가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되고, 어쩌면 이 방송 프로그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충칭 임시 정부와 같은 사라질, 그리고 사라진 독립 운동사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려한 중국의 발전 속에서 근근히 버텨가는, 혹은 무연고 처리가 되는 독립 운동의 흔적들이, 곧 우리가 '임시정부'를 '역사' 속에서 취급하고 있는 역증처럼 여운이 남는 시간이 된다. 

'답사'는 동호회가 만들어지는 등, 세간의 취미 생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여행'은 tv 프로그램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답사'와 '여행'이 만난다면? 이 두 주제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엮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동네의 사생활>과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4지 선다와 암기 과목이라는 역사 교육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와 교훈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애썼고, 학교에서 이미 역사를 배웠던 사람에게도 새로운 깨달음과 반성의 시간이 된다. 덕분에 흩날리는 벚꽃 속에, 혹은 화려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 숨겨진 우리 역사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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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09 15:32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남과 여'의 프로그램들은 '사랑'을 다룬다.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이야기를 다룬 <우리 결혼했어요>나, <님과 함께>처럼, 2015년 종영한 <마녀 사냥>의 경우도 남녀간의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지만, 그 솔직한 담론의 대부분은 만남과 교제를 전제로 깐다. 진짜 '민낯'의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는 없을까? 그 시도를 3월 27일 새로이 시작한 ebs의 <까칠 남녀>가 시작했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불편한 이야기. 그 속에 숨은 불평등과 편견에 화난 프로불편러들의 까칠한 토크. 이것이 새로 시작한 <까칠 남녀>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화나게 한 일상의 불평등과 편견은 어떤 것일까? 

<까칠 남녀>는 3월 27일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공주도 털이 있다'에 이어, 4월 3일 금기어가 된 '피임'을 전면적으로 다룬 '오빠 한번 믿어봐, 피임 전쟁'을 다루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편견과 불평등의 담론, 그 시작은?
남녀 차별에 대한 솔직한 고백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는 했지만, '가부장주의에 입각한 남성 중심 사회'인 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문제 제기의 중심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우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첫 회, '공주도 털이 있다'는 과연 남성성이란? 여성성이란? 하고 말문을 열지만, 곧 여성이 털을 기르는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하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겨드랑이 털, 겨털이란 칭해지는 이 단어에 대해 '빅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웃기다'로 규정내려지는 대한민국,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제모 안한 여자와 사귀느니, 뱃살 나온 여자랑 사귀겠다란 대답은 젊은 남성 56%가 답했다는 현실의 데이터에서 보여지듯이, 그 '웃긴' 겨털이 여성의 문제가 되면, 혐오와 공격의 대명사로 치환되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첫 번 째 회차의 주제다. 

가슴 털을 보이는 남자 배우는 '섹시'하다고 칭송받지만, 시상식 장에 제모를 안하고 등장한 미 여배우 롤라커크의 모습이 화두가 되고, 내 몸을 사랑하자는 취지에서 털을 기른 여성이 혐오스런 대상으로 공격을 받는 현실, 그것을 통해 '법'은 어기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길들여진 '아름다움'에 대한 '내면화'로써의 '미감(美感)을 짚어보며 그 이미 내면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진다. 

프로그램은 미지의 x의 방을 등장시키고, 그 방 주인을 '추리'하며 그 날의 주제를 파고 들어가는 식으로 시작된다.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던 박미선이, 이번에는 그 '관습화된'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아닌, '민낯'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런 박미선과 함께 에로 영화 감독으로 성에 대해 솔직함의 대명사인 봉만대 감독과 당당한 여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서유리, 빅데이터 전문가 서영진, 기생충 학자 서민, 성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까칠하게 그 날의 주제를 풀어나간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 <까칠 남녀>는 2회 보다 더 솔직한 주제인 '피임' <오빠한번 믿어와, 피임 전쟁>을 가지고 찾아온다. oecd 낙태율 1위, 콘돔을 안쓰는 문화인 대한민국의 심각한 현실이 주제가 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나누는 '성', 하지만 현실은 '임신'에 대한 공포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혼 여성에게만? 아니 미혼 여성 낙태율 17%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기혼 여성의 낙태율 33.3%에서 보여지듯이, 기혼, 미혼의 문제가 아닌 남녀 일반의 문제다. 

하지만 그 남녀 일반의 문제는 패널로 등장한 중년의 봉만대 감독이 적절한 피임 방법이 아니라고 확정된 체외 사정을 자랑스레 말하는 해프닝에서 보여지듯이,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임'법에 무지하거나,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거나, '기분, 감정' 등의 문제로 치부하는 안이한 현실에 대해 프로그램은 패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짚어간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리처드 기어의 '노 콘돔, 노 섹스'의 슬로건을 앞세워 '가장 유효하고 경제적이며 합리적 피임 방법'인 콘돔에 의한 피임으로 귀결된다. 즉 여성만의 임심 공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성, 그런 선택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서 '남성 피임 방식인 콘돔'으로의 유도다. 

사회적 의식을 내면화한 편견에 대한 문제 제기 
무엇보다, 첫 회 여성의 겨털에 이어, 피임를 다룬 <까칠 남녀>는 그린 라이트 식의 '솔직'함과는 궤를 달리한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고자 하는 솔직함이다. 우리의 편견이 남자가, 혹은 여자가가 아닌, 피임에 대한 사회적 강제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국가 경제적 접근에서 시작되었듯이, 1915년 질레트 면도기의 광고와 함께 시작된 여성의 제모 관습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무심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다수의 의식들이 '사회'적으로 훈련되고 교육받은 '생각'이라는 것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임신 공포가 여성의 책임이 된 세상의 이면에는, 정관 수술로 강제로 수술대로 끌려 들어갔던 남성의 피해가 존재하듯, 여성과 남성 이분법 그 이상의 '사회적 의식'에 대한 '제고'를 요청한다. 단지, 그 사회적 의식이 만든 세상이 남성이 지배적인, 그래서 여성이 사회적 을인 결과를 가져왔기에, 그 경직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가 결국 보다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의 문제 제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피임에 대한 회차는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서의 '콘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인식 제고에 많은 시간을 제공했지만, 여성이 개발 도상국이냐란 발끈한 반발을 불러왔던 정영진의 '미군이 있다고 자주 국방을 안할쏘냐'라는 문제 제기도 그냥 허투루 넘어설 부분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즉 남성의 콘돔 사용율도 심각하게 저조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남성에게 '철 좀 들어라' 식의 유도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감정적 성적 대립을 조장하는 자세이다. 또한 네덜란드 등의 30%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구 피임약 사용율 5%에서 보여지듯이, 성적 자기 결정권의 방식으로서 여성의 피임 방식에 대해서도 보다 긍정적인 입장이 아쉬웠다. 

즉 방송 초반 보여지듯이 우리 나라 청소년의 대다수가 '성'에 대해 조숙한 반면, '피임' 등의 방법에서 무지한 현실, 아니면 청년들의 경우, 친구나 인터넷을 통한 '외전'으로서의 성 지식의 습득이 현실인 상황에서, <까칠 남녀>가 '편견'과 불평등'이란 담론에 입각하여, 남성 중심의 피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적절했지만, 어쩌면 콘돔 대신 랩을 쓰는 지금의 열악한 현실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피임', 그리고 '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계몽'이 절실한 상황이 아닐지라는 우려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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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05 15:35

<말하든 대로> 시즌1 24부작이 마무리되었다. '먹방'과 여행 예능의 홍수 속에서 말로 하는 '버스킹(busking)'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시도했던 새로운 예능, 마지막 24회 2.688%(닐슨 코리아)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를 최고 시청률이 4%를 육박하는 때도 있었니(20회 3.999%) 라며 보여지는 시청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지도 모른다. 오히려 드러나는 시청률이라는 지표보다, 페이스북 등으로 퍼날러진 출연자의 10분 여의 짤막한 동영상이 종종 10만을 넘는 조회수에서 드러나는 '젊은층'들의 열광적인 드러나지 않는 호응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이 시대의 젊은 층들은 왜 그토록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동시대인들의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일까?



이국종의 직업 정신, 그리고 동변상련
24회 마지막 출연자는 중증 외상 진료 센터를 이끄는 이국종 교수, '심쿵' 역사 선생님 심용환씨, 최근 <복면가왕>을 통해 화제가 된 배우 박진주씨이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이국종 교수는 예의 '포커 페이스'인 무표정으로 하지만 이제는 거의 '실패했다'고 평가되어지는 우리의 중증 외상 의료 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펴간다. 아덴만의 영웅이라 했던 석선장님을 치료하는 것을 통해 우리 사회에 중증 외상 센터의 존재 이유를 제기했던 의사, 그리고 드라마 <골든 타임>과 <낭만 닥터 김사부>의 모델이 된 인물, 하지만 이국종 교수는 '영웅'의 칭호를 기꺼이 내려놓는다. 오히려 당시 석선장님 말고도 작전에 참여한 다수의 군인들이 외상을 입었고, 아직도 몸 속에 총알을 지닌 채 여전히 작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저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일로 한 발 물러선다. 특히 자신의 꿈이 외과의로서 마지막까지 의료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는 그의 희망은 그 어떤 멋진 문구보다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사영 영리 병원들, 그 속에서는 산업 현장 등에서 다친 중증 외상 환자들을 위한 재원과 공간은 마련되지 않는다고 말을 잇는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암센터'를 먼저 지어야 하는 병원,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을 줄이는 대신, 번드르르한 외관에 돈을 퍼붓는 병원,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외상 센터의 자리는 점점 없어져 간다며 담담하게 현실을 읊는다. 그런데 정작 이국종 교수의 발언에서 주목할 지점은 그의 마무리 발언이다. 당연히도 자신의 중증 외상 분야에 대한 강조로 마무리 될 줄 알았던 발언은 국회의원의 질타에 이은 이욱종 교수 자신의 '자각'으로 마무리된다. 세상에 자신의 분야만 가장 어렵고 힘든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세상엔 자기 분야만큼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더라는. 


어쩌면 요식 행위같은 이 마무리의 말들이 바로 <말하는 대로>가 몇 %의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공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매력, 요인이 아니었을까? 일찌기 '청춘 콘서트'를 시작으로 젊은이들과 우리 사회에서 나름 '성공'했다는 '멘토'들의 소통이 시도되었다. 오늘날 안철수 후보를 대통령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청춘 콘서트'의 열광적인 호응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멘토'와 '멘토링'이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고, '아프니까 청춘'들에게 '멘토'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박진주의 솔직한 토로, 그리고 공감 
하지만 세상은,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층의 삶은 '덕담'으로는 위로도, 해결도 안되는 지경으로 자꾸 몰려만 가고. 그런 가운데 등장한 <말하는 대로>,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는 지금까지 '멘토링'이란 힘조차도 뺀 채, 있는 그대로 '괜찮다'며 다가왔다. 한 술 더 떠서, '아프냐? 나도 아팠다. 아픈 게 당연하다'며 '소통'하고 등을 두들겨 줬다. 3월 8일 방송의 마지막 버스커 박진주가 그 대표적인 예다. 늘 밝고 활발한 그녀의 캐릭터답게 청중들 앞에 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자신이 그동안 상처받기 싫어서 밝은 척했었다는,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는 상처가 곪아 터지고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렇게 그 환한 얼굴 속에 숨겨져 있던 그림자를 '토로'하자 뜻밖에도 청중 석에서 반응이 온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잘 안풀려 죽고 싶을 정돈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렇게 지난 24회 63명의 출연자들은 안희정, 이재명 등 이제는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들부터, 서장훈, 김제동, 허성태 등의 연예인, 이종범 등 웹툰 작가, 오찬호, 심용환 씨 등의 학자, 박주영 변호사 등 사회 각층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는 '난 이렇게 성공했네'가 아니라, 나도 지금의 너희들처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흔 줄이 되어서야 꿈을 찾은 허성태씨도, 은퇴의 그 날까지도 더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는 서장훈도 그건 곧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자아'로 투영되며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심용환의 진짜 교육 
물론 늘 '자신들의 이야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방송의 심용환 선생님처럼, 이제는 모든 알고 있는 것같은 하지만 막상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위안부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혹은 안다고 했던, 때로는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들고 나와 머리와 가슴을 울린다. 위안부 이야기는 잘 안다 했지만, 그 분들의 이야기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방 40년이 지난 91년에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의 촉구라던가, 여전히 시인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조목조목 분명한 근거와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타당성까지 다시금, 아니 어쩌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부분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짚어준 '역사 교육'은 어느 학교 교실에서도 배울 수 없는 진짜배기 교육이었다. 그리고 이런 '진짜' 하지만 꼭 필요한 교육들을 사회 심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여  <말하는 대로>는 꾸준히 이어왔다. 

이 시대가 필요한 공감, 이 시대가 필요료 하는 지식, 그리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통, 비록 24부의 길지 않은 시간은 충분히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이 가장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능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다. 마지막 시간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스스로 '고갈'되기 전 깔끔하게 마무리 된 시즌1, 시간이 좀 지나, 새로운 '공감'과 '교육'의 아이템을 가지고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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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3.09 13:44

1991년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한 김국진 등은 심형래, 임하룡, 김형곤 등이 주축으로 형성되었던 당시의 대세 개그 선배들을 제치고 개그 프로그램은 물론 오락프로 그램들을 휩쓸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 강원도가 고향인 김국진의 주도로 김용만, 박수홍, 김수홍 등은 '감자골'을 결성하는 등 개그계의 새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연예계 제명 사태를 만들며 미국행을 택했던 젊은 개그맨 그룹 <감자골>은 이후 kbs를 떠나 mbc로 이적한 후 90년대 개그계를 이끌었다. 


이름을 딴 '국진이 빵'이 등장하고, '오 예'라는 감탄사 하나만 해도 열광을 하고, '밤새지 말란 말이야~' 등 말만 하면 유행어가 되고, <칭찬합시다>, <브레인 서바이벌> 등 출연했던 프로그램들은 '전국민적 인기 프로그램'이 되던 시절을 지나, 개인사의 아픔을 겪은 김국진, 사회적 물의를 빚어 오랜 자숙의 시간을 거치게 된 김용만, 진행 방식의 트렌드를 놓쳐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 박수홍, 그리고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들과 상관없이 늘 '방송'과는 인연이 멀었던 김수용 등은 방송과 연예계에서 점점 그 이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감자골 4인방>이 주축이 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설왕설래'될 만큼 예능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저 예전 그들의 '복귀'가 아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설' 나이이지만, 전성기 때 젊은 시절의 그들보다 한층 더 자유롭고 멋진 아저씨들로 돌아왔다.





돌아온 감자골 오빠, 아니 아저씨들
3월 3일 방영된 <미운 우리 새끼>에서 박수홍은 그의 단짝 싱글 손민수와 함께 <k팝스타> 프로그램에 시청자 평가단으로 참석했다.  물론 자사 프로그램 홍보라는 낯간지러둔 목적이 내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이 아닌 일개 팬으로서의 박수홍이 공개 프로그램 방청 과정에서 보인 '천진난만할 정도로 행복해하는' 모습은 '클러버'로서의 그의 놀라운 발견 못지 않게 '박수홍의 자유로움'을 한껏 드러내 보였다. 

개그계의 신사라고 칭해졌던 박수홍, 그래서 <해피 투게더>에서 방송에서 자리를 못잡은 김수용보다도 당연히 더 '재미없는' 사람으로 선배들이 평가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박수홍,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정보성 프로그램 중심으로 진행을 했고, 그 진행조차도 공중파에서 ebs로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었던 그가 어머니와 함께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며 '반듯한 신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미혼남'이 아닌 '비혼남'으로서의 '자유로움'을 한껏 발휘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는 것은 박수홍만이 아니다. 2007년 <라디오 스타>를 통해 방송을 복귀했던 김국진, 하지만 그에게는 늘 '개인사'의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전성기의 활력을 되찾진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그가 <불타는 청춘>에 출연하며 동년배 연예인들을 잘 이끌며 <불타는 청춘>을 인기 프로그램으로 만들며 타 방송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액티브'한 김국진의 매력을 살려내는가 하면, '사랑'의 결실까지 맺으며 개인사의 슬럼프를 넘어 사랑꾼 김국진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김용만 역시 마찬가지다. <칭찬합시다>, <브레인 서바이벌> 등 개그맨이기보다는 '진행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해 '스튜디오 예능'의 강자로 '천장'이 없으면 방송을 '안'한다고까지 했던 김용만, '사건'만이 아니라,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트렌드에서 그는 자신의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던 중이었다. 그랬던 그가 달라졌다. <쓸모있는 남자들>로부터 시작된 그의 방송 복귀는 이제 jtbc의 <패키지로 세계 일주-뭉쳐야 산다>에서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로 참여했던 <해피 투게더>, <비정상회담>, <런닝맨>에서 김용만은 방송 진행도 잘 할 뿐 아니라 입담도 뛰어난 재간꾼으로 자신을 증명해 냈다. <뭉쳐야 산다>의 그는 예전 진행을 잘 하던 김용만을 연상할 수 없다. 안정환에게 자신이 먼저 발로 하는 농구 시합을 제안하는가 하면, 알프스의 스키 강습의 몸개그는 물론, 미키 모자 하나로 김용만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몸사리지 않는' 개그맨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간간히 게스트로 빛을 발했던 김수용 역시 최근 <안녕하세요>, <해피 투게더>, <비타민> 등의 패널, 게스트로 등장하여 반전의 '토크'로 '수드래곤'이란 새로운 별명을 얻으며 '연예인이란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실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트렌드를 발빠르게 실현해낸 그들이 반가운 이유 
<감자골 4인방>의 뒤늦은 전성 시대는, 그저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아니다. 진행 잘하던 인기있던 90년대의 스타의 복귀가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시련을 겪고, 거울 앞에 선 나이가 되었지만, '꼰대'가 되는 대신, '자신을 내려놓고' '자유로움'을 택했다. 복귀한 김국진은 기꺼이 자신의 실패한 결혼과 골프를 개그의 제물로 바쳤다. 그런 '제물' 위에 새롭게 등장한 그의 사랑은 '스캔들'이 아닌 전국민적 환호를 받았다. 김용만은 가장 자신이 잘하는 것 대신, 도전을 택했고, 박수홍은 방송을 통해 보여지던 '신사'로서의 반듯함을 벗어던졌다. 

이렇게 마흔 줄 중후반, 그리고 오십 줄 아저씨들 <감자골 4인방>의 활약은 그저 돌아온 남자 연예인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아저씨들의 트렌드를 그들이 몸소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 받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의 타성에 젖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아저씨 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와 사고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보다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중년 남성',  '노모족'( no-more-uncle) 들이다. 

즉 <감자골 4인방>은 시대가 요구하는 중년 남성들의 이미지를 그들이 발빠르게 실현해 냄으로써 그들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트렌드에 조응한 그들은 경직되어 가던 mc 계에 청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잡스>의 시청자가 보인 '또 전현무냐?'라는 반응처럼 전현무, 김구라, 김성주 등으로 이루어진 과도한 독주, 강호동, 이경규 등의 장기 집권, 그럼에도 매번 물의를 빚음에도 매번 되풀이 되는 이휘재처럼 대체재가 부족한 현실, 거기에 김준현, 양세형 등 신진들의 진입이 쉽지않는 형국에서 '구관이 명관'이듯, 여전히 '진행'에 대해서는 '명불허전'이면서도, 이제는 이미지마저 '신선해진' 이들의 귀환은 그들 개인만이 아니라, 연예계 전반의 활력소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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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3.04 16:11

tvn의 나영석 피디를 제외하고 예능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게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고자 하는 곳이 어딜까? 그건 아마도 빈번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jtbc가 아닐까? 물론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공중파에서도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등장하지만 <나 혼자 산다>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미운 우리 새끼>처럼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속보이게 재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 가운데 jtbc는 거의 독보적으로 <아는 형님>을 비롯하여, <한끼 줍쇼>,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톡투유>, <썰전>까지 예능의 새로운 영역을 부지런히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jtbc가 목요일 밤 또 하나의 새로운 예능을 선보였다. 바로 '직업'과 '토크쇼'를 엮은 <잡스>가 그것이다. 


3월 2일 첫 선을 보인 <잡스>는 바로 <잡스>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전문 직업 경영인이었던 '잡스'를 롤모델로, '전문 직업'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점'은 '성공한 사람'이다, 즉, '연예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정치, 사회, 경제등 성공한 셀럽들을 초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직업 탐구 토크쇼'가 바로 새로이 선보인 <잡스>의 모토이다. 그리고 그 모토 아래, 3월 2일 첫 방송에서 JTBC의 WBC야구 해설을 맡은 야구 해설 위원인 전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송재우를 초대한다. 



잡스? 아니 번잡스
세 명의 MC 전현무, 노홍철, 박명수를 앞세운 <잡스>는 세 사람에게 '잡스'처럼 검은 티에 수염까지 그려넣는 설정을 하며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띠운다. 그러면서 전혀 새롭지 않은 세 사람의 조합에 대해 '노홍철의 문제점은 3년전'이라는 식으로 익살스럽게 포문을 연다. 그렇다면 이 진부하지만 익숙한 조합의 첫 회는 어땠을까? 첫 회를 마친 <잡스>는 '전문 직업 셀럽 토크쇼'의 가능성을 보이면, 동시에 '전문 토크쇼'의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앞으로 <잡스>가 전문인을 초대해 토크쇼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한다면, 프로그램을 그저 '예능'과는 다른 '전문가와 함께 하는' 예능에 걸맞는 '풀'을 갖춰야 한다는 걸 스스로 첫 회 증명해 냈다. 

잡스처럼 옷을 입고, 잡스처럼 수염을 그리는 것이 '전문인'들과 함께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특정 분야의 전문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과연 현재 세 명 MC의 조합이 적절한가에 대해 프로그램은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다. 

한때는 한국인 유일의 메이저리거였고, 이제는 야구 해설 위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박찬호, 그는 WBC를 앞두고 우리 대표팀이 전지 훈련을 하고 있는 오키나와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온천을 했냐?' 라던가, '바나나 빵은 사왔냐?'라는 식의 질문을 박명수는 던진다. 물론, 예능이고 토크쇼니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박명수의 질문들이 이제 새롭게 야구 해설위원으로 각오를 다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박찬호의 이야기의 맥을 끊게 만든다는 것이다. 송재우 해설 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직업인이니 당연히 따라가는 질문이겠지만, '돈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해왔다'라는 식으로 '돈'으로 직업을 규정하는 듯한 태도에, 그의 성공을 '금시계'로 끄집어 내는 방식은 '성공'에 대한 '천박한' 척도를 두드러 지게 만들고야 만다. 

물론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전현무, 거기에 시청자들이 보내온 질문들을 능숙하게 전달하는 노홍철과 함께 '예능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로서 '박명수'의 조합을 제작진은 염두에 둔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 '박명수'의 '환기'가 문제가 된다. 전현무나 노홍철이 그래도 야구 해설가나, 박찬호에 대한 백지는 아닌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반면, 박명수는 그가 타 예능에서 하던대로, 다짜고짜 돈문제 등에 대한 지극히 세속적인 질문으로 '전문 직업인'에 대한 접근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그 '평범'이 특별한 컨셉의 <잡스>를 그저 그런 또 하나의 토크쇼로 만들어 버릴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 
'전문적' 분야에 대한 예능이라 하면 이미 Tvn이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프로그램들의 특징을 보면, 멘사급 연예인들의 조합 <뇌섹남>이나, 아나운서들의 <프리한 19>처럼 프로그램의 내용을 담보해낼 패널 혹은 mc들의 조합이 이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 됐다. 그런 면에서 <잡스>는 첫 회를 보면, 과연 그렇게 전문적인 내용을 담보해 낼 수 있을지 물음표가 던져지는 것이다. 물론 예능인들이 늘 연예인들과 신변잡기만을 논할 필요는 없다. 양세형은 그의 프로그램 <양세형의 숏터뷰>를 통해 정치인들을 성공적으로 인터뷰해냄으로써 심지어 <sbs 대선후보 국민 면접>보다 나았다라는 호평을 이끌어 낸바 있다. 그렇게 이미 성공 사례를 통해 충분히 열려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지만, 첫 회에 보여진 박명수의 질문 내용은 그가 <해피 투게더>에서 해온 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 직업인'의 세계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여졌다. 

그런 면에서 <잡스>는 야구 해설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박찬호와 그리고 야구 해설의 알파고급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송재우 해설을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했다는 점에선 '신선'했지만, 그 진행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 예능'과는 다른 신선한 포맷을 다루려는 준비가 부족한 듯 보여진다. 

또한 아쉬운 점은 박찬호라는 지명도 높은 스타에 집중된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사실 전직 야구선수로서의 야구 해설보다는, 이미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사이에서 '갓재우'라 불리는 송재우 해설을, 그리고 그를 통해 '야구 해설'이라는 직업의 영역을 좀 더 알려줬다면 '잡스'라는 프로그램의 성격도 좀 더 분명히 전달되었을 듯 하다. 마치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양, <잡스>라는 예능 토크쇼의 첫 회와, jtbc가 wbc 중계를 한다는 홍보를 위한 이중의 포석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첫 회, 그래서 아직은 <잡스>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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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3.03 11:22

<하숙집딸들> 첫 방송, 시청률 공약을 거는 시간, 장기 하숙생 컨셉으로 합류한 박수홍이 10%를 들자, '러시아에서 온 새엄마' 이미숙이 말린다. 첫 술에 너무 과한 시청률 공약을 내걸었다 안되면 의기소침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이미숙이 내건 수치는 5%. 첫 회 <하숙집 딸들> 시청률은 5.4%, 이미숙이 걱정한 의기소침의 벽을 넘어, 첫 번째 시청률 공약을 기쁘게 지킬 일만 남았다. 2월 10일 첫 선을 보인 <언니들의 슬램 덩크 시즌2> 역시 5%를 넘기며 무사히 안착했다. 


예능으로 온 주연급 여배우들 
물론 <언니들의 슬램 덩크 시즌2> 멤버 전원이 여배우들은 아니지만, 시즌1의 화제성을 이끈 인물이 라미란이었듯, 시즌2역시 기존 멤버 김숙, 홍진경 외에 한채영과 강예원을 합류시키며 관심을 주목시켰다. 강예원은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 등을 통해 예능에 첫 발을 딛었으며, 오히려 예능보다도 <백희가 돌아왔다> 등 출연한 작품 속 개성강한 캐릭터로 인해 각인이 된 배우다. 그에 반해 '예능'에서의 한채영은 예외라 할만큼 신선한 인물이다. 이렇게 전혀 뜻밖의 여배우들을 등장시킨 건 <하숙집 딸들>이 한 수 위다. <내게 남은 48시간>을 통해 예능 신고식을 치룬 이미숙을 필두로,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 등 스타급 여배우들이 리얼버라이어티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 등장만으로도 신선했던 면면에 더해, 밤새 잠을 못이뤘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예능에 첫 발을 디딘 그녀들의 활약은 존재만큼 신선했다. 예능에 나온 만큼 아낌없이 자신을 드러내겠다며 매니저보고 나가있으라고 하는 한채영부터, 자신의 컨셉을 여러 남자를 거드려, 아버지가 다른 딸들을 거느린 여장부 스타일로 자신의 컨셉을 잡은 이미숙에, 자신의 소개에 부끄러운 듯, 하지만 솔직담백하게 이혼 중이라는 사실을 꺼리낌없이 드러낸 박시연, 꽃게춤을 마다하지 않는 장신영, 거침없이 내복 패션쇼를 선보인 윤소이까지, 웬만한 예능 새내기의 포부를 뛰어넘는다. 늘 화면에서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맡던 그녀들이 꺼리낌없는 언변에서 부터, 몸개그, 결벽증 등의 성격까지 보여주는 그 솔직함이 우선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2007년 종영한 <여걸 식스>를 통해 이소연, 정선경, 전혜빈 등이 당당하게 한 몫을 해낸바 있다. 그리고 이젠 mc로 더 익숙한 김원희 역시 배우 출신이다. 하지만 한동안 뜸하거나 출연을 해도 화제성을 충분히 이끌어 내지 못했던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새로운 물꼬를 튼 건 역시나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한 나영석 피디였다. <삼시 세끼>에 이은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성공시킨 나영석은 <꽃보다 누나> 등을 통해 고인이 되신 김자옥 배우를 비롯하여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최지우 등의 여배우들을 예능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물론 '화장실'과 관련한 웃픈 에피소드 등도 있었지만, 예능에 나오는 것이 곧 '망가짐'으로 통했던 트렌드를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확산내지는 상승시킬 수도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만든 것이다.

거기엔 '걸크러쉬(girl crush; 카리스마있고 자신감있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호감 트렌드)'라는 여성주도적 시류는 여배우들의 예능적 캐릭터의 한계를 또 한번 넓힌다. 덕분에 라미란은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센언니'의 캐릭터를 한껏 부풀려 여걸 식스 걸그룹 편에서 걸출한 활약을 선보였다. 마찬가지로 라미란못지않은 '기'를 드러내보이고 있는 이미숙 역시 당당하게 <하숙집딸들>의 가장으로 등장하여 '러시아에서 온 결혼 여러 번 한 엄마' 가장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그녀들의 속사정 
물론 이러한 여배우들의 예능 진출이 꼭 신선한 예능 트렌드에 대한 부응이라는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채영, 이다해, 박시연, 장신영, 윤소이 등 모두 한때는 공중파 드라마의 주연을 맡던 '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등의 일신상의 변화와 더불어 서른 중반을 오가는 그녀들의 연령대는 어느덧 배우로서의 그녀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 '비비인형'이라 불리웠던 한채영이지만, 그녀의 최근작은 2013년 <예쁜 남자>였다. 이다해 역시 2014년 <호텔킹>이 최신작이듯, 나이와 함께 그녀들의 '드라마' 속 입지는 자꾸만 축소되거나 밀려나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미숙 역시 <질투의 화신> 속 말 그대로 '걸크러쉬'한 계성숙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런 역할이 쉬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예능에 출연한 이서진, 하석진, 심형탁 등이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쇄신하며 그런 예능적 성과를 작품으로 이어가며 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라미란 등이 예능과 연기의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으며 '소모전'이 아닌 예능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트렌드의 수혜자가 모두가 될 수는 없다. 이서진, 에릭 등은 '나영석'이란 걸출한 연출자란 배후가 확실했다. 하석진이나 심형탁은 그 자신들이 가진 뜻밖의 예능적 재미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변화시킨 케이스다. 라미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전후'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결국 '능력있는 배후'가 있거나, '개인의 특출한 혹은 예외적 능력'이란 전제 조건이 있어야 예능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첫 선을 보인 <하숙집 딸들>은 우려되는 지점을 남긴다. 드라마를 통해 '공주'같던 모습을 보였던 그녀들의 뜻밖의 소탈하고 털털한, 심지어는 결벽증있는 예외적인 모습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과연 그런 '신선함'이 <하숙집딸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지속성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첫 방송에서부터 방송을 이끌어가는 건 이수근과 박수홍이었고, 여배우들은 그런 그들의 진행에 따라 출연한 게스트와 같은 느낌이 강했다. 과연 그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뚫고 매회 게스트를 맞이하며 게임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예능적 캐릭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에서도 걸그룹을 하기 전까지는 전천후 라미란조차 그 존재감이 쉬이 드러나지 않았듯이, 여배우들의 예능 적응기는 그리 쉽지 않다. <하숙집딸들>은 2014년 sbs에서 시도했던 그룹홈 방식의 리얼 예능 <룸메이트>의 다른 버전같다. <룸메이트> 역시 예능에 첫 선을 보인 배종옥, 이동욱 등 신선한 얼굴들로 화제를 끌었지만, 결국 게스트에 의존하는 자체 동력의 고갈로 프로그램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하숙집딸들>이 극복할 수 있을지, 웃음 제공, 박수 부대를 넘어선 진정한 '걸크러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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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2.15 17:38

역시 김은숙이다. <태양의 후예>로 최근 미니시리즈로는 언감생심 38.8%의 기적같은 시청률과 신드롬을 만들어 내더니, 처음으로 간 tvn에서 <응답하라 1998>에 필적할 만한 성과와 신드롬을 기록했다. (16회 18.78%, 응답하라 1998 20회 18.8% 닐슨 코리아 기준) 더구나 김원석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빌렸음에도 예의 김은숙 작가 작품에 언제나 따라다니던 '부실한 서사'의 약점조차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던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를 선보이며, 김은숙에 대적할 자는 김은숙 밖에 없다는 명불허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김은숙이 경지를 이뤘고, 이응복이 그 경지를 휘황찬란하게 했으며 공유가 개연성이 되었다 해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도깨비>를 통해 김은숙이 이뤄낸 성과와 아쉬운 점을 함께 짚어보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김은숙의 현세주의 
무엇보다 <도깨비>를 통해 도달한 것은 2004년 <파리의 연인> 이래 대한민국의 '사랑' 이야기를쥐락펴락해왔던 작가 김은숙의 세계관이다. 김은숙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던 <도깨비>는우리의 전래 설화였던 '도깨비'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냄과 함께,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피력해 왔던 작가의 세계관을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명약관화하게 정립해 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첫 회부터 몸을 관통하는 '검'을 꼿고 등장했던 비운의 도깨비(공유 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홀로 900여 년을 견뎌온 그의 오랜 숙원은 자신의 몸에 꼿힌 칼을 뽑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깨비'에게 역시나 첫 회부터 꼿혀버린 시청자들 역시 그의 '안식'을 기원함과 동시에 그것이 곧 그와의 이별이 될 것이란 슬픈 예감으로 인한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16회의 종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집착과 별리의 감정이 여느 남성 캐릭터와 달리 '도깨비'를 곡진하게 생각토록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검'에 집착하던, 아니 영원한 안식에 14회까지 천착하던 드라마는 13회 마지막 드디어 도깨비 신부의 손을 빌러 도깨비가 자신의 몸에 뽑힌 검을 뽑고, 산화되며 끝이 나는가 싶더니 아니었다. 회차로는 3회가 남았던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지난 주 산화되는 도깨비를 보고 통곡하다시피 토해낸 울음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회 , 물론 9년만이지만 케익의 촛불이 꺼지자 등장했다. 

아니 무색한 건 도깨비만이 아니다. 도깨비 덕분에 저승 명부에서 '기타누락'되었던 지은탁(김고은 분)도,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과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던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김선(유인나 분) 역시 '환생'하였다. 저승사자가 내민 찾잔을 거부했던 지은탁의 기억이 명료한 것과 김선의 기억이 없는 것의 디테일한 설정 따위는 차치하고. 이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도깨비는 기꺼이 사랑하는 이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그 '별리'를 감수하고 이곳의 '신'으로 남기를 결정했다. 

이렇게 김은숙이 그려낸 등장인물들의 삶은 속칭, 우리 속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란 식이다. 저곳에서의 안식 대신, 쓸쓸하고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이와 현실적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현실의 삶이다. 서양의 내세관과는 정반대이다.  드라마 속 김신은 아마도 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볼 쓸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설화 속 우리네 도깨비가 길 가는 사람과 씨름을 겨루었다는 친근한 캐릭터를 '사랑의 전설'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지극히 현세주의적 행복관은 거기에 '주체성'이 더해지며 매력이 더해진다. 영원의 안식 대신 현실의 쓸쓸한 사랑을 택한 도깨비의 선택은, 드라마 속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승가는 길의 찾잔일 망정 자신이 선택하고야 마는 인간의 주도성을 확인한다. 그래서 기타누락자의 삶은 스스로 결정지어 마무리되고, 저승사자도, 김선도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의 주도성을 회복한다. 마치 작가 김은숙은 말하는 것과 같다.  판을 벌여놓은 것은 신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당신들이라고. 

그리고 그 주체성의 회복은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여기서 행복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성에 기초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밤을 진압한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의 소망이 지극이 '현세 기복'적이란 우리네 현실적 신앙관, 즉 우리네 현실적 삶의 자세와 이어진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도 다 현실의 후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지극히, 어찌보면 속물적인 세계관이다. 즉 김은숙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거침없이 ppl을 과용하지만 그래도 의식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현실에서의 삶에 충실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하여 그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신이 벌여놓은 혹은 기존의 제도라는 그물망 안에서도 각자 나름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소박한' 주체성이다. <도깨비> 속 지은탁은 김신의 부에 매혹되지만 마지만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듯, 건강한 부르조아적 시민 의식의 현신이다. 그리고 그런 김은숙 작가의 세계관은 현재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중산층'이라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현대사를 이끌어 온 자신감이자, 주체성이다. 아마도 중산층이라 믿는 그 신화가 붕괴되기까지는 지속될. 



역사의, 전설의 사유화
무엇보다 <도깨비>란 드라마를 김은숙 작가의 작품 중 수미일관의 완성도를 가진, 주제 의식이 돋보인 작품으로 만든 것은 '도깨비' 설화의 현대적 해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간 일본 오니 설화의 오염으로 인해 머리에 뿔 두 개가 달린 괴물같은 형상의 도깨비 그 이전에 서민들의 삶에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기복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풍요의 신으로써의 원형말이다. 

드라마는 그것을 위해 빗자루나 밥그릇 등의 변신이었던 도깨비를 무속 신앙에서 등장했던 장수신의 형태로 불러온다. 마치 백성들의 편에 서서 왜구와 오랑캐를 무찔런던 최영 장군이 무속의 신이 되듯, 고려 시대 오랑캐를 물리치던 김신을 21세기의 도깨비로 변신시킨다. 그는 여전히 메밀밭을 사랑하고, 부를 지니고 있으며 비등의 천재지변을 주재하지만, 조울증처럼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가지며, 인간적인 면모를 지난 현대적 신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장수로써 다수의 사람들을 죽이며 피를 묻혔던 전과가 그의 검으로 '징죄'되는 과정과 영생으로 그는 신으로써의 권능과 불운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마치 신이 되지 못해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헤라클레스처럼. 

그런데 현대로 온 도깨비 설화가 만난 건, 예의 김은숙 특유의 로코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그랬듯이 좀 더 전통적인 운명적 사랑은 서브 캐릭터의 서사로 양보하고, 그보다 트렌디한 서사를 주인공에서 부여하며 양수겹장으로 두둑하게 마련된 때론 운명적이지만, 때론 가장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는 고등학생과 아저씨의 만남조차 마비시켜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미성년과의 원조 교제 식 설정보다 애초에 마련된 역사로서의 서사이다. 그 옛날 이야기 속 빗자루나 요강 대신 김신은 백성들의 염원을 해결해주는 장수요, 왕의 신하였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적을 싸우던 전장이 아니라, 자신을 역적으로 몬 왕의 앞이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동생을 왕비로 가진 왕의 앞에서 무기를 버린 채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물론 드라마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왕의 아내로 만들어 왕과 신하인 그를 한 여자의 지아비이자, 오라비로써의 애증과 사랑의 관계로 치환한다. 또한 왕과 신하의 군신 관계를 인간대 인간의 시기와 용기로 치환한다. 즉 엄밀하게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사회적 제도적' 관계이지만, 그것은 왕비라는 존재가 개입하면서 개인적 감정적 관계로 해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작 <도깨비>를 관통하는 것은 무기력한, 하지만 비겁한 왕이었던 왕여와, 그의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김신의 '역사적' 권력의 악연이지만, 정작 도깨비 신부가 등장하며 그 서사가 비껴가며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그들이 한 집에 살면서 인간적 관계를 통해 이미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기도 전에 누그러지며, 뭉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김신와 왕여라는 역사적 제도적 문제는 김신과 왕여 각자에게 신이 부여한 '업보'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과거의 업을 이승에서 해소하기에 이른다. 이런 방식은 저마다의 업보를 업고, 풀고가는 불교식의 윤회론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관계를 '사적, 개인적인 관계'로 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마도 <도깨비>를 다 보고 나서 허탈한 것은 오랫동안 쓸쓸한 삶을 이어나갈 김신에 대한 아련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벌여놓은 역사적 사회적 구도가, 결국 김신과 저승사자, 김선이라는 관계적 차원으로 축소화되는 데서 오는 허무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도깨비>를 감탄만 할 일인지. 뭔가 그럴듯하고, 아련하지만 어딘가 한편에서 껄쩍지근한, 그것이 <도깨비>를 보고 난 후의 글쓴이의 어정쩡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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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1.22 14:12

12월 31일은 참 이름다웠던 '병신'년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그 이름같았던 '병신'년은 역설적으로 '민주'의 목소리를 올곧이 세웠던 해이기도 하다. 토요일, 변함없이 광장에는 10번째 촛불 집회가 열렸고, 110만 명이 참석하여 누적 참가인수가 1천만 명을 넘겼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광장의 촛불이 불타오르는데, 그런데 '따뜻한 위로'의 가장 손쉬운 매체인 tv가 한 해를 보내는 방식은 어땠을까? 촛불과 함께 좀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연일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이와 그 조력자들이 드러나고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 즈음, tv를 시청하며 한 해를 보내는 시청자들은 그저  '암흑이 없다면 별이 빛날 수 없고,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한석규)' 추상적 메타포의 속뜻을 헤아릴 수 밖에 없거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나, '참이 거짓을 이기는' 개념 한 마디에 통쾌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개념 소감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운 
몇몇 수상자, 혹은 시상자의 개념 발언을 제외하고는 작년이나, 혹은 그 이전이나 그저 등장하는 스타의 면면만 달라졌을 뿐, 하등 달라지지 않았던 시상식과 가요 제전, 아니 달라진 것은 있었다. 흔히 12월 31일 밤 12시가 다가오면 거리로 카메라를 옮겨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그 흥겨운 카운트 다운의 현장을 중계하던 공중파 방송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그 현장음을 소거해 버린 것이다. mbc와 kbs는 자체 스튜디오에서 팡파레를 울렸고, sbs는 보신각을 비춰졌지만 원경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듯 했을 뿐이다. 왜? 혹시나 보신각으로 행렬을 진행하겠다는 촛불 집회측의 발표에 제 발이 저리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혹시나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 끼어든 촛불 집회 행렬이 행여나 방송국의 집안 잔치에 '누'가 될까 저어했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세월호 부모님에서부터 위안부 할머니분이 함께 하는 보신각 타종 행사가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 어느때보다도 격동적이었던 2016년이었건만 여전히 연말 시상식 무대는 마치 그런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의 유흥 파티장같았다. 과연 이런 변화되지 않는 방송 환경에서 sbs 시상식 말미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의 박정훈 사장의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출사표는 생소하다. 내년을 기약해야 할까?

특히 kbs의 경우 시상식에 앞서 고두심과 최수종을 등장시켜 31일의 시상식이 kbs 연기 대상 30주년이었음을 자축하는 자리를 가진다. 하지만, 30년의 축하는 최수종이 전성기를 열었던 대하 드라마에 대한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류 붐을 일으켰던 <겨울 연가>의 주제 음악과 방송 영상으로 이어지며 30년의 관록이 무색해져 버린다. 30년의 기념답게, 아니 언제나 kbs는 공영 방송의 권위를 세워 다수의 조연 연기자들을 시상식에 배석시키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록의 중견 연기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만다. 오죽했으면 중견 연기자 김영철씨가 그분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을까. 입으로는 30주년을 칭송했지만, 정작 시상식은 올 한 해 시청률로 kbs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이었다. 결국 대상을 받은 송혜교, 송중기 커플은 등장부터 방송 중간, 중간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대상 수상에 대해 무안하리만큼의 소감을 집요하게 질문받았고, tv 카메라는 이들의 동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청와대의 그분이 즐겨 시청했다는 그 드라마에 대한 일고의 반성은 없다. 오로지 화려한 성과급의 잔치뿐. 그나마 kbs 다운 면피라면 '단막극'에 대한 시상 정도랄까. 

여전한 제 논에 물주기 식 수상 
그나마 kbs는 그래도 집안 잔치라도 제 논에 물주기라도 시상 과정에 구색은 갖추었지만, sbs로 가면 그 장르별 나뉜 수상 면모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남발하는 시상 과정이 스타 체면 치레용 생색내기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매번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mc를 스스로 자부하듯 연 4년에 걸쳐 사회를 보게 하며, 시상식인지 지인들 모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언급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연례 행사를 올해도 변함없이 재연했다. 허긴 대상은 투표에 따른 인기상으로 스스로 폄하한 mbc가 있음에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엇보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국의 사정답게 결국 시상식은 학교에서 성적좋은 아이에게 주는 우등상처럼 시청률 그래프에 따라 그 결과가 점쳐지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상'쯤 되면 관록과 내공있는 중견 연기자의 몫으로 기립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던 시상식의 권위를 찾는 것이 무색했졌다. 덕분에 '대상'의 대상이 점점 젊은 연기자들의 몫이 되고, 그 대상을 받아든 당사자도 무안해지는 상황이 매년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올해 sbs의 대상이 <낭만 닥터 김사부>의 한석규에게 갔지만, 23.7%(15회 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이리라. 한석규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 지지 않기를,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환기를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소통과 공감조차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거리의 촛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청률 지상주의와 제 논에 물주기 식의, 그리고 아이돌 음악 위주의, 무엇이 무서운지 제야의 종소리 현장조차도 중계하지 못하는 연말 시상식과 방송 제전을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과연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강고한 방송 현장의 낱낱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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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1.01 03:56
어수선한 시국, 권력을 바라보는 자괴함이 깊을 수록, 그럼에도 그 불능의 권력을 결국 참아넘기지 않은 '민주적 저력'에 대한 감탄도 함께 높아만한다. 그리고 모두들 공감하는 한 가지, 사람들이 광장에 나선 것은 단지 저 푸른 집의 '일당'들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데, 과연 그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대안은? 그리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이 해야하는 것들은? 뉴스와 시사 프로가 고군분투하며 방송사 별로 그 성과에 따라 희비가 오가는 가운데, 조용히 등장했단 사라진 인문학적 파일럿이 있다. 이렇듯 저렇든 결국 이들 인문학적 프로그램들의 궁극적 목적은 '생각 좀 하고 삽시다!'다.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말랑말랑한 당위정의 드라마을 보며 하루의 고달픔을 잊는 대신, 좀 골치 아프더라도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자는 이 프로그램들, 2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4부작 <서가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시사와 인문학의 콜라보레이션 <표본실의 청개구리>, 음식과 독서의 콜라보레이션 <서가 식당>은 트렌디한 '인문학'과 '음식'이라는 토핑을 얹어, 시사와 독서의 깊이를 주려고 애쓴 고심의 결과물들이다. 



시사를 보는 다른 눈, 표본실의 청개구리
그간 드라마를 통해 악랄한 형사에서 대통령 저격범에서 국회의원, 검사 등 천의 얼굴을 연기했던 장현성을 mc로 팟캐스트와 종편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의 전투적 키보드 워리어로 더욱 친근해진 진중권 교수를 필두로 정치, 사회, 학계, 문화 등 각 분야의 패널 들이 모여, '시사적' 주제를 표본으로 삼아, 각자의 '청개구리'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 '시사 인문학' 토크쇼가 바로 <표본실의 청개구리>이다. 
 
2부작이었던 프로그램은 11일 첫 회 '영화는 시사다'라는 꼭지를 통해 영화 <레미제라블>을 소개했고,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모습과 촛불 집회의 현장을 비교하며 당시 프랑스의 부패한 왕정 세력과 우리의 집권 계층이 다르지 않음을 진중권 교수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김성곤 교수의 그 못지 않은 동양학적 비유를 통해 '레미제라블한' 한국 사회를 그려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정의를, 그리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 

18일 두번 째 회차에서는 인물로 보는 시사 필리핀의 대통령 두테르테를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필리핀 국민들 95%의 지지를 받는 두테르테, 하지만 다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의 '정의로움'에 대해 변호사 박준형과 정치 전문가 김지윤 박사의 박학한 해석을 곁들인다. 또한 역사는 시사다를 통해 김성곤 교수의 해학넘치는 한나라 십상시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환관에 둘러싸인 영제와 현실을 빗대며 신랄한 현실 비판으로 이어진다. 

두 편의 프로그램은 '메스 토크'라는 코너를 통해 첫 회 '당신의 한 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를 얻는다면, 얼마를 지불하겠는가?'란 질문을 통해 투표의 결정성과 오류에 대한 논점을 짚고, 566만원을 훔친 지강헌과 73억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엇갈린 행보를 통해, 그리고 최대 15년을 받을, 아니 그조차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최순실과 울분으로 검찰청에 포크레인을 몰고 간 사람의 최고형 10년의 아이러니를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역사를 짚는다. 

프로그램은 영화나 인물 등 시사적 주제를 통해 철학, 역사, 정치, 법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다양하고 박학한 해석을 곁들여, 시사를 인문학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풍성한 시야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내어, 현실에 닿은 예리한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첫 회 모델 이현이의 출연이 두번 째 재심 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박준형 변호사로 출연진이 변화되며, 김성곤 교수의 경극식의 재미있는 표현과 박준형 변호사의 풍성한 실례, 진중권, 김지윤 박사의 해박한 지식, 그리고 윤대현 교수의 사회학적 접근이 더해져 시사의 인문학적 해석은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른바 kbs 공영 노조는 12월 16일 대통령 탄핵 이후 kbs가 급격히 무너져 가고 있으며 그 대표적 실례로 <표본실의 청개구리> 출연진이 진보 진영 일색이며, 진중권 교수 등의 편향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2회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희망 고문'과 '실천'이라는 양 극단의 정의로 정의내려진 정의, '실천해야 정의는 구현된다'는 실천의 정의가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kbs의 지난한 실천이 요구된다. 



책....먹고 갈래요? 서가 식당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좀 더 현 시국에 직접적으로 가닿은 인문학적 해석을 풀어낸 프로그램이라면, 독서를 요리로 매개한 <서가식당>은 그간 kbs1이 꾸준하게 시도한 독서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강승화 아나운서가 젊은 세대의 '편식'을 배우 권해효가 멋스러운 '별식', 그리고 평론가 김태훈이 잡식 등 출연한 각 패널들이 저마다의 식습관을 이름표로 불인 채 그 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등장하는 요리와 책에 대한 거침없는 입담을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책이다. 첫 회 삼국지, 두번 째,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세번 째 돈키호테, 네번 째 성석제의 투명인간까지 네 권의 책이 메인 메뉴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삼국지의 만두, 밥 딜런의 브런치, 돈키호테의 가스파쵸, 그리고 투명인간 만수의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등 책 속에 등장했던, 혹은 인물과 관련된 음식이 등장하여 오감을 자극한다. 

또한 프로그램은 기본 패널 외에 회차에 따라 삼국지 편에서는 만화로 삼국지를 풀어낸 김태권, 밥 딜런 편에서는 시인 원재훈과 포크 가수 양병집, 돈키호테에서는 멘사 회원으로 유명한 젊은 방송인 최정문, 그리고 투명인간 편에서는 철학자 탁석산 등 책의 성격에 맞는 패널들을 융통성있게 함께 하며 독서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더한다. 또한 <서가 식당>의 묘미는 패널들이 솔직하게 책에 대한 소감을 풀어내는 동안 4회에서 보여지듯 책의 저자가 한 편에서 이 장면을 보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지는 '몰래 카메라'와 같은 설정이다. 결국 한 편의 작은 문으로 저자가 등장하고, 솔직했던 서평과 저자의 해석의 행간의 미묘한 긴장과 이해의 과정이 '예능'으로서의 독서 프로그램의 맛을 더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음식와 책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이란 신선한 코드와 달리, 음식과 서평의 경계가 가진 형식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다. 4회 <투명인간>에 등장한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중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지점은 예능적 요소라 그렇다 치고, 정작 말로 두루치기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달리, 음식과 함께 한 시간을 풀어내는 지점은 너무 관례적인 것이다. 추억이 없다던 소감처럼 음식 자체에 대한 접근이 아쉽다. 



음식이든, 영화든, 인물이든, <표본실의 청개구리>나, < 서가 식당>이 결국 도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역사를 훑은 <투명 인간>을 함께 읽으니 성장 속에 인간 소외였던 한국의 현대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고, 밥 딜런의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필리핀의 두테르테도, 한나라의 십상시도,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도 결국 그 모든 것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이곳'을 향한다. 그 잠깐의 시간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고, 조금은 되짚어 볼 수 있는 신선한 시도, 부디 이들 프로그램이 2회나, 4회 종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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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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