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딸들> 첫 방송, 시청률 공약을 거는 시간, 장기 하숙생 컨셉으로 합류한 박수홍이 10%를 들자, '러시아에서 온 새엄마' 이미숙이 말린다. 첫 술에 너무 과한 시청률 공약을 내걸었다 안되면 의기소침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이미숙이 내건 수치는 5%. 첫 회 <하숙집 딸들> 시청률은 5.4%, 이미숙이 걱정한 의기소침의 벽을 넘어, 첫 번째 시청률 공약을 기쁘게 지킬 일만 남았다. 2월 10일 첫 선을 보인 <언니들의 슬램 덩크 시즌2> 역시 5%를 넘기며 무사히 안착했다. 


예능으로 온 주연급 여배우들 
물론 <언니들의 슬램 덩크 시즌2> 멤버 전원이 여배우들은 아니지만, 시즌1의 화제성을 이끈 인물이 라미란이었듯, 시즌2역시 기존 멤버 김숙, 홍진경 외에 한채영과 강예원을 합류시키며 관심을 주목시켰다. 강예원은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 등을 통해 예능에 첫 발을 딛었으며, 오히려 예능보다도 <백희가 돌아왔다> 등 출연한 작품 속 개성강한 캐릭터로 인해 각인이 된 배우다. 그에 반해 '예능'에서의 한채영은 예외라 할만큼 신선한 인물이다. 이렇게 전혀 뜻밖의 여배우들을 등장시킨 건 <하숙집 딸들>이 한 수 위다. <내게 남은 48시간>을 통해 예능 신고식을 치룬 이미숙을 필두로,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 등 스타급 여배우들이 리얼버라이어티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 등장만으로도 신선했던 면면에 더해, 밤새 잠을 못이뤘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예능에 첫 발을 디딘 그녀들의 활약은 존재만큼 신선했다. 예능에 나온 만큼 아낌없이 자신을 드러내겠다며 매니저보고 나가있으라고 하는 한채영부터, 자신의 컨셉을 여러 남자를 거드려, 아버지가 다른 딸들을 거느린 여장부 스타일로 자신의 컨셉을 잡은 이미숙에, 자신의 소개에 부끄러운 듯, 하지만 솔직담백하게 이혼 중이라는 사실을 꺼리낌없이 드러낸 박시연, 꽃게춤을 마다하지 않는 장신영, 거침없이 내복 패션쇼를 선보인 윤소이까지, 웬만한 예능 새내기의 포부를 뛰어넘는다. 늘 화면에서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맡던 그녀들이 꺼리낌없는 언변에서 부터, 몸개그, 결벽증 등의 성격까지 보여주는 그 솔직함이 우선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2007년 종영한 <여걸 식스>를 통해 이소연, 정선경, 전혜빈 등이 당당하게 한 몫을 해낸바 있다. 그리고 이젠 mc로 더 익숙한 김원희 역시 배우 출신이다. 하지만 한동안 뜸하거나 출연을 해도 화제성을 충분히 이끌어 내지 못했던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새로운 물꼬를 튼 건 역시나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한 나영석 피디였다. <삼시 세끼>에 이은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성공시킨 나영석은 <꽃보다 누나> 등을 통해 고인이 되신 김자옥 배우를 비롯하여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최지우 등의 여배우들을 예능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물론 '화장실'과 관련한 웃픈 에피소드 등도 있었지만, 예능에 나오는 것이 곧 '망가짐'으로 통했던 트렌드를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확산내지는 상승시킬 수도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만든 것이다.

거기엔 '걸크러쉬(girl crush; 카리스마있고 자신감있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호감 트렌드)'라는 여성주도적 시류는 여배우들의 예능적 캐릭터의 한계를 또 한번 넓힌다. 덕분에 라미란은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센언니'의 캐릭터를 한껏 부풀려 여걸 식스 걸그룹 편에서 걸출한 활약을 선보였다. 마찬가지로 라미란못지않은 '기'를 드러내보이고 있는 이미숙 역시 당당하게 <하숙집딸들>의 가장으로 등장하여 '러시아에서 온 결혼 여러 번 한 엄마' 가장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그녀들의 속사정 
물론 이러한 여배우들의 예능 진출이 꼭 신선한 예능 트렌드에 대한 부응이라는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채영, 이다해, 박시연, 장신영, 윤소이 등 모두 한때는 공중파 드라마의 주연을 맡던 '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등의 일신상의 변화와 더불어 서른 중반을 오가는 그녀들의 연령대는 어느덧 배우로서의 그녀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 '비비인형'이라 불리웠던 한채영이지만, 그녀의 최근작은 2013년 <예쁜 남자>였다. 이다해 역시 2014년 <호텔킹>이 최신작이듯, 나이와 함께 그녀들의 '드라마' 속 입지는 자꾸만 축소되거나 밀려나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미숙 역시 <질투의 화신> 속 말 그대로 '걸크러쉬'한 계성숙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런 역할이 쉬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예능에 출연한 이서진, 하석진, 심형탁 등이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쇄신하며 그런 예능적 성과를 작품으로 이어가며 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라미란 등이 예능과 연기의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으며 '소모전'이 아닌 예능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트렌드의 수혜자가 모두가 될 수는 없다. 이서진, 에릭 등은 '나영석'이란 걸출한 연출자란 배후가 확실했다. 하석진이나 심형탁은 그 자신들이 가진 뜻밖의 예능적 재미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변화시킨 케이스다. 라미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전후'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결국 '능력있는 배후'가 있거나, '개인의 특출한 혹은 예외적 능력'이란 전제 조건이 있어야 예능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첫 선을 보인 <하숙집 딸들>은 우려되는 지점을 남긴다. 드라마를 통해 '공주'같던 모습을 보였던 그녀들의 뜻밖의 소탈하고 털털한, 심지어는 결벽증있는 예외적인 모습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과연 그런 '신선함'이 <하숙집딸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지속성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첫 방송에서부터 방송을 이끌어가는 건 이수근과 박수홍이었고, 여배우들은 그런 그들의 진행에 따라 출연한 게스트와 같은 느낌이 강했다. 과연 그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뚫고 매회 게스트를 맞이하며 게임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예능적 캐릭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에서도 걸그룹을 하기 전까지는 전천후 라미란조차 그 존재감이 쉬이 드러나지 않았듯이, 여배우들의 예능 적응기는 그리 쉽지 않다. <하숙집딸들>은 2014년 sbs에서 시도했던 그룹홈 방식의 리얼 예능 <룸메이트>의 다른 버전같다. <룸메이트> 역시 예능에 첫 선을 보인 배종옥, 이동욱 등 신선한 얼굴들로 화제를 끌었지만, 결국 게스트에 의존하는 자체 동력의 고갈로 프로그램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하숙집딸들>이 극복할 수 있을지, 웃음 제공, 박수 부대를 넘어선 진정한 '걸크러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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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2.15 17:38

역시 김은숙이다. <태양의 후예>로 최근 미니시리즈로는 언감생심 38.8%의 기적같은 시청률과 신드롬을 만들어 내더니, 처음으로 간 tvn에서 <응답하라 1998>에 필적할 만한 성과와 신드롬을 기록했다. (16회 18.78%, 응답하라 1998 20회 18.8% 닐슨 코리아 기준) 더구나 김원석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빌렸음에도 예의 김은숙 작가 작품에 언제나 따라다니던 '부실한 서사'의 약점조차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던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를 선보이며, 김은숙에 대적할 자는 김은숙 밖에 없다는 명불허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김은숙이 경지를 이뤘고, 이응복이 그 경지를 휘황찬란하게 했으며 공유가 개연성이 되었다 해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도깨비>를 통해 김은숙이 이뤄낸 성과와 아쉬운 점을 함께 짚어보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김은숙의 현세주의 
무엇보다 <도깨비>를 통해 도달한 것은 2004년 <파리의 연인> 이래 대한민국의 '사랑' 이야기를쥐락펴락해왔던 작가 김은숙의 세계관이다. 김은숙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던 <도깨비>는우리의 전래 설화였던 '도깨비'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냄과 함께,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피력해 왔던 작가의 세계관을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명약관화하게 정립해 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첫 회부터 몸을 관통하는 '검'을 꼿고 등장했던 비운의 도깨비(공유 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홀로 900여 년을 견뎌온 그의 오랜 숙원은 자신의 몸에 꼿힌 칼을 뽑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깨비'에게 역시나 첫 회부터 꼿혀버린 시청자들 역시 그의 '안식'을 기원함과 동시에 그것이 곧 그와의 이별이 될 것이란 슬픈 예감으로 인한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16회의 종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집착과 별리의 감정이 여느 남성 캐릭터와 달리 '도깨비'를 곡진하게 생각토록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검'에 집착하던, 아니 영원한 안식에 14회까지 천착하던 드라마는 13회 마지막 드디어 도깨비 신부의 손을 빌러 도깨비가 자신의 몸에 뽑힌 검을 뽑고, 산화되며 끝이 나는가 싶더니 아니었다. 회차로는 3회가 남았던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지난 주 산화되는 도깨비를 보고 통곡하다시피 토해낸 울음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회 , 물론 9년만이지만 케익의 촛불이 꺼지자 등장했다. 

아니 무색한 건 도깨비만이 아니다. 도깨비 덕분에 저승 명부에서 '기타누락'되었던 지은탁(김고은 분)도,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과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던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김선(유인나 분) 역시 '환생'하였다. 저승사자가 내민 찾잔을 거부했던 지은탁의 기억이 명료한 것과 김선의 기억이 없는 것의 디테일한 설정 따위는 차치하고. 이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도깨비는 기꺼이 사랑하는 이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그 '별리'를 감수하고 이곳의 '신'으로 남기를 결정했다. 

이렇게 김은숙이 그려낸 등장인물들의 삶은 속칭, 우리 속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란 식이다. 저곳에서의 안식 대신, 쓸쓸하고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이와 현실적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현실의 삶이다. 서양의 내세관과는 정반대이다.  드라마 속 김신은 아마도 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볼 쓸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설화 속 우리네 도깨비가 길 가는 사람과 씨름을 겨루었다는 친근한 캐릭터를 '사랑의 전설'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지극히 현세주의적 행복관은 거기에 '주체성'이 더해지며 매력이 더해진다. 영원의 안식 대신 현실의 쓸쓸한 사랑을 택한 도깨비의 선택은, 드라마 속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승가는 길의 찾잔일 망정 자신이 선택하고야 마는 인간의 주도성을 확인한다. 그래서 기타누락자의 삶은 스스로 결정지어 마무리되고, 저승사자도, 김선도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의 주도성을 회복한다. 마치 작가 김은숙은 말하는 것과 같다.  판을 벌여놓은 것은 신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당신들이라고. 

그리고 그 주체성의 회복은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여기서 행복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성에 기초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밤을 진압한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의 소망이 지극이 '현세 기복'적이란 우리네 현실적 신앙관, 즉 우리네 현실적 삶의 자세와 이어진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도 다 현실의 후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지극히, 어찌보면 속물적인 세계관이다. 즉 김은숙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거침없이 ppl을 과용하지만 그래도 의식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현실에서의 삶에 충실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하여 그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신이 벌여놓은 혹은 기존의 제도라는 그물망 안에서도 각자 나름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소박한' 주체성이다. <도깨비> 속 지은탁은 김신의 부에 매혹되지만 마지만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듯, 건강한 부르조아적 시민 의식의 현신이다. 그리고 그런 김은숙 작가의 세계관은 현재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중산층'이라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현대사를 이끌어 온 자신감이자, 주체성이다. 아마도 중산층이라 믿는 그 신화가 붕괴되기까지는 지속될. 



역사의, 전설의 사유화
무엇보다 <도깨비>란 드라마를 김은숙 작가의 작품 중 수미일관의 완성도를 가진, 주제 의식이 돋보인 작품으로 만든 것은 '도깨비' 설화의 현대적 해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간 일본 오니 설화의 오염으로 인해 머리에 뿔 두 개가 달린 괴물같은 형상의 도깨비 그 이전에 서민들의 삶에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기복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풍요의 신으로써의 원형말이다. 

드라마는 그것을 위해 빗자루나 밥그릇 등의 변신이었던 도깨비를 무속 신앙에서 등장했던 장수신의 형태로 불러온다. 마치 백성들의 편에 서서 왜구와 오랑캐를 무찔런던 최영 장군이 무속의 신이 되듯, 고려 시대 오랑캐를 물리치던 김신을 21세기의 도깨비로 변신시킨다. 그는 여전히 메밀밭을 사랑하고, 부를 지니고 있으며 비등의 천재지변을 주재하지만, 조울증처럼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가지며, 인간적인 면모를 지난 현대적 신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장수로써 다수의 사람들을 죽이며 피를 묻혔던 전과가 그의 검으로 '징죄'되는 과정과 영생으로 그는 신으로써의 권능과 불운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마치 신이 되지 못해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헤라클레스처럼. 

그런데 현대로 온 도깨비 설화가 만난 건, 예의 김은숙 특유의 로코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그랬듯이 좀 더 전통적인 운명적 사랑은 서브 캐릭터의 서사로 양보하고, 그보다 트렌디한 서사를 주인공에서 부여하며 양수겹장으로 두둑하게 마련된 때론 운명적이지만, 때론 가장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는 고등학생과 아저씨의 만남조차 마비시켜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미성년과의 원조 교제 식 설정보다 애초에 마련된 역사로서의 서사이다. 그 옛날 이야기 속 빗자루나 요강 대신 김신은 백성들의 염원을 해결해주는 장수요, 왕의 신하였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적을 싸우던 전장이 아니라, 자신을 역적으로 몬 왕의 앞이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동생을 왕비로 가진 왕의 앞에서 무기를 버린 채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물론 드라마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왕의 아내로 만들어 왕과 신하인 그를 한 여자의 지아비이자, 오라비로써의 애증과 사랑의 관계로 치환한다. 또한 왕과 신하의 군신 관계를 인간대 인간의 시기와 용기로 치환한다. 즉 엄밀하게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사회적 제도적' 관계이지만, 그것은 왕비라는 존재가 개입하면서 개인적 감정적 관계로 해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작 <도깨비>를 관통하는 것은 무기력한, 하지만 비겁한 왕이었던 왕여와, 그의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김신의 '역사적' 권력의 악연이지만, 정작 도깨비 신부가 등장하며 그 서사가 비껴가며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그들이 한 집에 살면서 인간적 관계를 통해 이미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기도 전에 누그러지며, 뭉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김신와 왕여라는 역사적 제도적 문제는 김신과 왕여 각자에게 신이 부여한 '업보'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과거의 업을 이승에서 해소하기에 이른다. 이런 방식은 저마다의 업보를 업고, 풀고가는 불교식의 윤회론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관계를 '사적, 개인적인 관계'로 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마도 <도깨비>를 다 보고 나서 허탈한 것은 오랫동안 쓸쓸한 삶을 이어나갈 김신에 대한 아련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벌여놓은 역사적 사회적 구도가, 결국 김신과 저승사자, 김선이라는 관계적 차원으로 축소화되는 데서 오는 허무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도깨비>를 감탄만 할 일인지. 뭔가 그럴듯하고, 아련하지만 어딘가 한편에서 껄쩍지근한, 그것이 <도깨비>를 보고 난 후의 글쓴이의 어정쩡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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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1.22 14:12

12월 31일은 참 이름다웠던 '병신'년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그 이름같았던 '병신'년은 역설적으로 '민주'의 목소리를 올곧이 세웠던 해이기도 하다. 토요일, 변함없이 광장에는 10번째 촛불 집회가 열렸고, 110만 명이 참석하여 누적 참가인수가 1천만 명을 넘겼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광장의 촛불이 불타오르는데, 그런데 '따뜻한 위로'의 가장 손쉬운 매체인 tv가 한 해를 보내는 방식은 어땠을까? 촛불과 함께 좀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연일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이와 그 조력자들이 드러나고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 즈음, tv를 시청하며 한 해를 보내는 시청자들은 그저  '암흑이 없다면 별이 빛날 수 없고,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한석규)' 추상적 메타포의 속뜻을 헤아릴 수 밖에 없거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나, '참이 거짓을 이기는' 개념 한 마디에 통쾌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개념 소감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운 
몇몇 수상자, 혹은 시상자의 개념 발언을 제외하고는 작년이나, 혹은 그 이전이나 그저 등장하는 스타의 면면만 달라졌을 뿐, 하등 달라지지 않았던 시상식과 가요 제전, 아니 달라진 것은 있었다. 흔히 12월 31일 밤 12시가 다가오면 거리로 카메라를 옮겨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그 흥겨운 카운트 다운의 현장을 중계하던 공중파 방송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그 현장음을 소거해 버린 것이다. mbc와 kbs는 자체 스튜디오에서 팡파레를 울렸고, sbs는 보신각을 비춰졌지만 원경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듯 했을 뿐이다. 왜? 혹시나 보신각으로 행렬을 진행하겠다는 촛불 집회측의 발표에 제 발이 저리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혹시나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 끼어든 촛불 집회 행렬이 행여나 방송국의 집안 잔치에 '누'가 될까 저어했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세월호 부모님에서부터 위안부 할머니분이 함께 하는 보신각 타종 행사가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 어느때보다도 격동적이었던 2016년이었건만 여전히 연말 시상식 무대는 마치 그런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의 유흥 파티장같았다. 과연 이런 변화되지 않는 방송 환경에서 sbs 시상식 말미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의 박정훈 사장의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출사표는 생소하다. 내년을 기약해야 할까?

특히 kbs의 경우 시상식에 앞서 고두심과 최수종을 등장시켜 31일의 시상식이 kbs 연기 대상 30주년이었음을 자축하는 자리를 가진다. 하지만, 30년의 축하는 최수종이 전성기를 열었던 대하 드라마에 대한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류 붐을 일으켰던 <겨울 연가>의 주제 음악과 방송 영상으로 이어지며 30년의 관록이 무색해져 버린다. 30년의 기념답게, 아니 언제나 kbs는 공영 방송의 권위를 세워 다수의 조연 연기자들을 시상식에 배석시키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록의 중견 연기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만다. 오죽했으면 중견 연기자 김영철씨가 그분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을까. 입으로는 30주년을 칭송했지만, 정작 시상식은 올 한 해 시청률로 kbs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이었다. 결국 대상을 받은 송혜교, 송중기 커플은 등장부터 방송 중간, 중간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대상 수상에 대해 무안하리만큼의 소감을 집요하게 질문받았고, tv 카메라는 이들의 동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청와대의 그분이 즐겨 시청했다는 그 드라마에 대한 일고의 반성은 없다. 오로지 화려한 성과급의 잔치뿐. 그나마 kbs 다운 면피라면 '단막극'에 대한 시상 정도랄까. 

여전한 제 논에 물주기 식 수상 
그나마 kbs는 그래도 집안 잔치라도 제 논에 물주기라도 시상 과정에 구색은 갖추었지만, sbs로 가면 그 장르별 나뉜 수상 면모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남발하는 시상 과정이 스타 체면 치레용 생색내기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매번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mc를 스스로 자부하듯 연 4년에 걸쳐 사회를 보게 하며, 시상식인지 지인들 모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언급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연례 행사를 올해도 변함없이 재연했다. 허긴 대상은 투표에 따른 인기상으로 스스로 폄하한 mbc가 있음에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엇보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국의 사정답게 결국 시상식은 학교에서 성적좋은 아이에게 주는 우등상처럼 시청률 그래프에 따라 그 결과가 점쳐지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상'쯤 되면 관록과 내공있는 중견 연기자의 몫으로 기립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던 시상식의 권위를 찾는 것이 무색했졌다. 덕분에 '대상'의 대상이 점점 젊은 연기자들의 몫이 되고, 그 대상을 받아든 당사자도 무안해지는 상황이 매년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올해 sbs의 대상이 <낭만 닥터 김사부>의 한석규에게 갔지만, 23.7%(15회 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이리라. 한석규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 지지 않기를,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환기를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소통과 공감조차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거리의 촛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청률 지상주의와 제 논에 물주기 식의, 그리고 아이돌 음악 위주의, 무엇이 무서운지 제야의 종소리 현장조차도 중계하지 못하는 연말 시상식과 방송 제전을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과연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강고한 방송 현장의 낱낱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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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1.01 03:56
어수선한 시국, 권력을 바라보는 자괴함이 깊을 수록, 그럼에도 그 불능의 권력을 결국 참아넘기지 않은 '민주적 저력'에 대한 감탄도 함께 높아만한다. 그리고 모두들 공감하는 한 가지, 사람들이 광장에 나선 것은 단지 저 푸른 집의 '일당'들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데, 과연 그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대안은? 그리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이 해야하는 것들은? 뉴스와 시사 프로가 고군분투하며 방송사 별로 그 성과에 따라 희비가 오가는 가운데, 조용히 등장했단 사라진 인문학적 파일럿이 있다. 이렇듯 저렇든 결국 이들 인문학적 프로그램들의 궁극적 목적은 '생각 좀 하고 삽시다!'다.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말랑말랑한 당위정의 드라마을 보며 하루의 고달픔을 잊는 대신, 좀 골치 아프더라도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자는 이 프로그램들, 2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4부작 <서가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시사와 인문학의 콜라보레이션 <표본실의 청개구리>, 음식과 독서의 콜라보레이션 <서가 식당>은 트렌디한 '인문학'과 '음식'이라는 토핑을 얹어, 시사와 독서의 깊이를 주려고 애쓴 고심의 결과물들이다. 



시사를 보는 다른 눈, 표본실의 청개구리
그간 드라마를 통해 악랄한 형사에서 대통령 저격범에서 국회의원, 검사 등 천의 얼굴을 연기했던 장현성을 mc로 팟캐스트와 종편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의 전투적 키보드 워리어로 더욱 친근해진 진중권 교수를 필두로 정치, 사회, 학계, 문화 등 각 분야의 패널 들이 모여, '시사적' 주제를 표본으로 삼아, 각자의 '청개구리'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 '시사 인문학' 토크쇼가 바로 <표본실의 청개구리>이다. 
 
2부작이었던 프로그램은 11일 첫 회 '영화는 시사다'라는 꼭지를 통해 영화 <레미제라블>을 소개했고,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모습과 촛불 집회의 현장을 비교하며 당시 프랑스의 부패한 왕정 세력과 우리의 집권 계층이 다르지 않음을 진중권 교수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김성곤 교수의 그 못지 않은 동양학적 비유를 통해 '레미제라블한' 한국 사회를 그려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정의를, 그리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 

18일 두번 째 회차에서는 인물로 보는 시사 필리핀의 대통령 두테르테를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필리핀 국민들 95%의 지지를 받는 두테르테, 하지만 다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의 '정의로움'에 대해 변호사 박준형과 정치 전문가 김지윤 박사의 박학한 해석을 곁들인다. 또한 역사는 시사다를 통해 김성곤 교수의 해학넘치는 한나라 십상시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환관에 둘러싸인 영제와 현실을 빗대며 신랄한 현실 비판으로 이어진다. 

두 편의 프로그램은 '메스 토크'라는 코너를 통해 첫 회 '당신의 한 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를 얻는다면, 얼마를 지불하겠는가?'란 질문을 통해 투표의 결정성과 오류에 대한 논점을 짚고, 566만원을 훔친 지강헌과 73억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엇갈린 행보를 통해, 그리고 최대 15년을 받을, 아니 그조차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최순실과 울분으로 검찰청에 포크레인을 몰고 간 사람의 최고형 10년의 아이러니를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역사를 짚는다. 

프로그램은 영화나 인물 등 시사적 주제를 통해 철학, 역사, 정치, 법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다양하고 박학한 해석을 곁들여, 시사를 인문학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풍성한 시야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내어, 현실에 닿은 예리한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첫 회 모델 이현이의 출연이 두번 째 재심 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박준형 변호사로 출연진이 변화되며, 김성곤 교수의 경극식의 재미있는 표현과 박준형 변호사의 풍성한 실례, 진중권, 김지윤 박사의 해박한 지식, 그리고 윤대현 교수의 사회학적 접근이 더해져 시사의 인문학적 해석은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른바 kbs 공영 노조는 12월 16일 대통령 탄핵 이후 kbs가 급격히 무너져 가고 있으며 그 대표적 실례로 <표본실의 청개구리> 출연진이 진보 진영 일색이며, 진중권 교수 등의 편향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2회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희망 고문'과 '실천'이라는 양 극단의 정의로 정의내려진 정의, '실천해야 정의는 구현된다'는 실천의 정의가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kbs의 지난한 실천이 요구된다. 



책....먹고 갈래요? 서가 식당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좀 더 현 시국에 직접적으로 가닿은 인문학적 해석을 풀어낸 프로그램이라면, 독서를 요리로 매개한 <서가식당>은 그간 kbs1이 꾸준하게 시도한 독서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강승화 아나운서가 젊은 세대의 '편식'을 배우 권해효가 멋스러운 '별식', 그리고 평론가 김태훈이 잡식 등 출연한 각 패널들이 저마다의 식습관을 이름표로 불인 채 그 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등장하는 요리와 책에 대한 거침없는 입담을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책이다. 첫 회 삼국지, 두번 째,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세번 째 돈키호테, 네번 째 성석제의 투명인간까지 네 권의 책이 메인 메뉴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삼국지의 만두, 밥 딜런의 브런치, 돈키호테의 가스파쵸, 그리고 투명인간 만수의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등 책 속에 등장했던, 혹은 인물과 관련된 음식이 등장하여 오감을 자극한다. 

또한 프로그램은 기본 패널 외에 회차에 따라 삼국지 편에서는 만화로 삼국지를 풀어낸 김태권, 밥 딜런 편에서는 시인 원재훈과 포크 가수 양병집, 돈키호테에서는 멘사 회원으로 유명한 젊은 방송인 최정문, 그리고 투명인간 편에서는 철학자 탁석산 등 책의 성격에 맞는 패널들을 융통성있게 함께 하며 독서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더한다. 또한 <서가 식당>의 묘미는 패널들이 솔직하게 책에 대한 소감을 풀어내는 동안 4회에서 보여지듯 책의 저자가 한 편에서 이 장면을 보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지는 '몰래 카메라'와 같은 설정이다. 결국 한 편의 작은 문으로 저자가 등장하고, 솔직했던 서평과 저자의 해석의 행간의 미묘한 긴장과 이해의 과정이 '예능'으로서의 독서 프로그램의 맛을 더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음식와 책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이란 신선한 코드와 달리, 음식과 서평의 경계가 가진 형식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다. 4회 <투명인간>에 등장한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중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지점은 예능적 요소라 그렇다 치고, 정작 말로 두루치기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달리, 음식과 함께 한 시간을 풀어내는 지점은 너무 관례적인 것이다. 추억이 없다던 소감처럼 음식 자체에 대한 접근이 아쉽다. 



음식이든, 영화든, 인물이든, <표본실의 청개구리>나, < 서가 식당>이 결국 도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역사를 훑은 <투명 인간>을 함께 읽으니 성장 속에 인간 소외였던 한국의 현대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고, 밥 딜런의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필리핀의 두테르테도, 한나라의 십상시도,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도 결국 그 모든 것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이곳'을 향한다. 그 잠깐의 시간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고, 조금은 되짚어 볼 수 있는 신선한 시도, 부디 이들 프로그램이 2회나, 4회 종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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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19 18:02

시대 착오적인 컨셉으로 이어가던 <진짜 사나이>가 종영한 후 그 뒤를 이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첫 방송은 그래도 앞에 방영된 <복면 가왕> 덕분일까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런닝맨>(6.2%)를 앞지른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성과이다. 하지만 과연 꼴찌가 아닌 시청률로 프로그램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또, 또, 또 돌아온 몰매 카메라
제목은 거창하게 '은밀하고 위대하'다 했지만, 실상 프로그램은 '돌아온 몰래 카메라'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몰래 카메라'라고 하면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바로 이경규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전국민적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구가하게 했던 90년대의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실상 내용은 출연한 연예인을 속여 먹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준비와 과정에서 보이는 '이경규'의 연출력이 뻔한 프로그램의 재미를 담보해 냈었다. 그러기에 이경규가 출연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나 <남자의 자격> 등 방송마다 양념처럼 '몰래 카메라'가 등장했었고, 2016년 설에는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시 또 '돌아온'이란 수식어를 달고 방영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속여 넘기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 과정이 중계된다면? 그러기에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는 마치 '성악설'에 기초하듯 뻔한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된다. 그래서일까? 설 특집으로 마련된 <몰카 배틀-왕좌의 게임>은 11%의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젠 그뿐, 특집용을 넘어선 <마이 리틀 텔레비젼> 속 코너 속의 코너로 등장했던 데프콘이나 김완선의 몰래 카메라는 혹독한 반응으로 오죽하면 이경규가 자신이 준비한 몰래 카메라 대신 축구 중계를 하는 해프닝을 벌였을까.

하지만 그렇게 코너 속의 코너에서도 쉽지 않았던 몰래 카메라가 무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고정 코너로 등장했다. 그것도 그 주인공이라 할 이경규도 없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란 이름으로. 



새로 시작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다가가 위대한 작전을 수행한다는 '타깃' & '의뢰인' 맞춤형 프로그램이라 내세웠지만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프로그램이 '몰래 카메라'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린다. 하지만 거기에 이경규는 없었다. 굳이 이경규가 없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이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은 새 mc로 윤종신-존박-김희철-이수근-이국주 등의 집단 mc 체제와 설 특집에서 등장했던 '배틀' 방식을 꾀한다. 거기에 나름 몰래 카메라와의 차별성을 주기 위해 '의뢰인'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가 유행할 당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당당하게 이경규가 없는 몰래 카메라를 프로그램화 하듯 sbs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꾸러기 카메라' 등을 진행했지만 지금도 기억되는 건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아류의 우려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다시금 반복한다. 그리고 역시 '아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은밀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는 더더욱 않고 
실제 방송은 비틀즈를 좋아하는 이적 앞에 분장한 링고 스타가 등장하는 것과 타로 카드를 좋아하는 설현에게 그 패를 이용하여 갖가지 해프닝을 벌이는 두 가지 내용이 방영된다. 이 내용에 대한 평가에 앞서 과연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몰래 카메라가 인기를 구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도 회자되듯이 90년대 당대의 스타 최진실, 고현정에서 소설가 김흥신, 과학자 조경철에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방송인 한선교, 이계진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를 망라한 핫한 인물들이 몰래 카메라의 희생양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바로 이런 트랜디한 인물들의 뜻밖의 모습에 열광했고, 당한 당사자는 억울했지만 당대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몰래 카메라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유명도를 가늠해볼 척도가 되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프로그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정규 프로그램화 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매주 그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프로그램의 트렌디함을 답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런 화제성을 몰고 왔는지에 대해서 아마도 그 답에 대한 고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더 깊으리라 본다. 



또한 남을 속여먹는 것이 무조건 재밌다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각 솔선수범해서 보여주고 말았다. 분장한 유명인이란 컨셉도, 타로 카드와 같은 운명론의 컨셉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경규가 몰래 카메라로 속여 넘기기 위해 연출했던 긴장감을 새로운 mc와 제작진은 전혀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재미 중 반은 누군가를 속인다는 그 야릇한 긴장감의 조성이고, 그 부분에서 이경규의 걸출한 능력이 있는 건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mc진은 누구랄 것도 그 면에서 아쉬움을 보인다. 

무엇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첫 방을 두고 재밌다 재미없다를 떠나, 일요일 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볼 주말 예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시대 착오적인 군대 문화 속에 연예인을 끼워넣고 어거지를 부리던 <진짜 사나이> 대신 등장한 '속이기' 프로그램이라니. 제작진은 안이하게 '몰래 카메라'의 흥미에만 주목하고 90년대 이 프로그램이 웃기기에 혈안이 되어 교육 현장과 애국가 등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로 결국 종영을 하게 된 문제점은 짚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안그래도 전국민이 통치자와 그 이너 서클들이 감쪽같이 국민을 속여 넘긴 것에 분노하여 매 주말 마다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 공중파 주말 황금 시간대를 저런 식의 성의도 없고, 아이디어는 더더욱 없는, 무엇보다 시대 착오적인 프로그램을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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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05 11:28

드디어 신이 강림하셨다. tvn으로 간 김은숙 작가의 신작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렇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간 tvn금토 드라마의 고지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 시청률(6.7% 평균,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너끈히 넘겼고(6.9%), 2회만에 수도권 10%를 넘기며(10.0234%)를 넘기며 신기록을 갱신했다. 역시 명불허전 김은숙이라는 성공 신화를 이어나갔다. 




김은숙과 이응복의 절묘한 콜라보 
물론 <도깨비>가 첫 방영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데 있어 역시 김은숙이라고만 한다면 아쉬울 사람이 있다. 바로 첫 회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들의 눈마저 사로잡을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선보인 이응복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최고 시청률 25%를 넘겼지만 작품 초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이응복 피디 연출의 <비밀>에 작품면에서나 시청률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적과의 동침'. 다음 작품에서 방영 채널을 kbs2로 옮긴 김은숙 작가는 이응복 피디를 연출자로 합류시키며 <태양의 후예>라는 2016년 최대의 히트작을 빚어낸다. <태양의 후예>는 <상속자들>에서 김은숙 작가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 텔링의 부실함을 김원석 작가의 든든한 원작으로 채우고, 거기에 그리스를 배경으로 이른바 '응복내'라 속칭 칭해지는 이응복 피디의 예술적 미쟝센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덕분에 결국은 의사와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리스의 풍광과 외국의 전장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라는 정서를 더한 <태양의 후예>는 그 평범한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애의 고급함으로 전달한다. 

그렇듯 12월 2일 첫 선을 보인 <도깨비> 역시 김은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이응복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릴 오프닝을 선보인다. 어린 왕의 시샘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에 이른 장수의 서사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로 버무려져 환타지 사극으로 등장하는 순간, 신선하고도 웅장한 세계로 시청자를 흡인시켜 버린다. 

이 웅장한 환타지 사극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예전 만화에서 등장했던 오래된 빗자루나, 그릇들이 변신한 깨비깨비 도깨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장수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신격화시켜 무속의 신으로 등극했던 최영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같은 '신'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억울함과 백성들의 숭배라는 역설적 조건을 '도깨비'의 필요 조건으로 등장시키고, 거기에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던 장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몸에 칼을 꽂은 채 죽음을 향해 영생의 세계를 떠도는 원혼이라는 절묘한 운명론적인 장치로 더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라는 한국적 신을 완성시킨다. 오랫동안 도깨비라는 작품을 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 운명적 서사와 캐릭터에서 극 초반 단박에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그 영생의 저주를 풀 인물로서 그의 신부로 등장하는 '무명'이란 이름의 죽어야 했을 운명의 소녀 지은탁(김고은 분), 그녀의 슬픈 운명 역시 도깨비의 신부답게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을 쫓을 저승 사자 (이동욱 분)와, 아직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두드러진 써니(유인나 분), 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도깨비>는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선한 서사, 그 서사를 압도하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2회에서 분명해졌듯이<도깨비>의 본질은 바로 슬픈 운명의 신인 도깨비 김신과 그 운명적 상대자 지은탁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군인에서 신까지, 구원자들
여기서 한번쯤 주목해야 할 것은 2016 올 한 해 시청률 고공행진을 갱신한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앞서 언급한 최고 시청률 38.8%의 <태양의 후예> 속 남자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졸지에 '말입니다'란 어색한 심지어 이제는 군대에서조차 쓰지 않는 군대 용어를 습관으로 만든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이다. 그는 특전사 대위라는 사실상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직책이 무색하게 드라마 속에서 도대체 안되는 것이 없는, 심지어 총에 맞고도 다음 날 바로 실전에서 활약하는  능력자로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는 물론 대다수이 여성들을 매료시킨다.

유시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최고 시청률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 분)이다. 그 역시 여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세자의 신분으로 사신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와 졸지에 자웅을 겨루게 된 공중파 수목 드라마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셜록의 능력치에 최면술까지 구사하는 능력자 사기꾼이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 그의 진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2회 마지막 엔딩씬에서이다. 이모의 빛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당한 은탁은 간절히 김신을 원하고, 그에 응대하듯 납치 차량이 달리던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등장하는 검은 실루엣, 그 씬만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아마도 김신은 죽을 운명의 무명이었던 은탁이란 존재로 부여하듯 그녀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이렇게 고공 시청률 행진을 보이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능력자다. 2016년만이 아니다. 일찌기 전설을 썼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외계인, 그리고 그에 앞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태가 된 <해를 품은 달>은 조선의 가상 왕이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로맨스'드라마들은 그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향상되는 것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능력치도 업그레이드 되며,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사랑을 수행한다. 시청자들은 외계에서, 해외의 전장으로, 과거로, 그리고 이제 신계까지 넘나들며 그 능력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 현실이 암울할 수록,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욱 능력치를 갱신하며 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을 위무한다. 과연 이 '블록버스터급 위로의 사랑'이 어디까지 펼쳐질 지, 신 그 이상의 사랑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물량과 스타로 대형화된 한국형 로코물의 진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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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04 18:37

2007년에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치면 10년 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진부한 말답게, 500회를 맞이한 <라디오 스타>를 보면, 스스로 '어쩌다'와 '기적'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황금어장-무르팍 도사> 끝자락에 낑겨,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하지만 500회 특집에서 말하듯이 때론 5분여의 방송 시간이란 갖은 수모를 겪었던 짜투리 방송 <라디오 스타> 하지만 이제 10년의 세월을 겪고 거의 유일한 '토크' 예능으로 수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기적같은 500회
mc들 각자에게 거한 수상(결혼식에 쓸 500인분의 국수라던가, 혹은 곧 회수할 것이지만 500회의 식권이라든가, 퍼프라던가, 건빵이라던가)을 하며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한 500회의 <라디오 스타>, 그 자리를 축하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강호동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의 격세지감의 산 증인은 강호동이 아닐까? 수요일 밤을 호령하던 <무르팍 도사>로 <라디오 스타>를 짜투리 방송으로 만들었던 그가, 세금과 관련된 구설수로 물러나고, 이제 타 방송사의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맡아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해주는 광경이야말로, <라디오 스타>가 걸어온 지난 10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500회 특집의 출연자 면면도 그렇다. <무르팍 도사>에서 강호동과 함께 했던 건방진 도사 자격으로서 유세윤과 올라이즈 밴드 우승민의 참석은 강호동의 부재만큼이나 <라디오 스타>의 또 다른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유세윤은 사라진 <무르팍 도사> 이후 바로 <라디오 스타>의 5 mc 체제로 갈아타고, 역시나 규현의 전임 mc였던 김희철이 합류하여,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회고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윤종신이 개근상을 탈 만큼 mc들의 구설수가 많았던 <라디오 스타>, 500회 특집에서도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신모씨로 불리워야 하는 신정환에서 부터, 지금은 큰 소리를 치지만 역시 한때 자리를 비웠던 김구라, 그리고 이제는 초대 게스트 석에 앉아있는 유세윤까지 바람잘 날 없는 지난 시간이었다. 과연 거센 입담의 <라디오 스타>에서 온순한 김국진이 살아남을까라는 기우가 무색하게 500회를 함께 한 김국진의 내공도 만만치 않고. 그리고 이제 대놓고 군대를 갈 규현의 차기 mc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여러 명의 mc들이 오고가는 와중에서도 자투리 예능에서 수요일 밤의 스테디셀러로 거듭난 <라디오 스타>가 가능했던 것은 집단 mc 체제가 가진 장점을 십분 살려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다는 김구라의 자화자찬과, 그런 김구라를 키웠다는 윤종신의 또 다른 자화자찬, 그리고 출연 게스트들의 증언으로 이제야 확인된 김구라의 마지노선 김국진, 그리고 그런 거센 형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규현까지, 신정환의 부재라는 엄청난 리스크조차 순조롭게 관리하며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스스로 거듭 깨어가며 집단 mc의 균형을 절묘하게 시스템화 시킨 것이 오늘의 <라디오 스타>가 아니었을까? 

<라디오 스타>만이 할 수 있던 것
무엇보다 처음 <라디오 스타>가 출범할 때만 해도 tv로 온 dj라는 생소한 컨셉에, 나뉘는 대화란 b급 코드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없는 수습되지 않는 대화들이었던, 그래서 마니아들을 불러모았던 <라디오 스타>, 하지만 500회를 지내는 동안, b급 코드의 토크 프로그램은 이제 뜨고싶은 연예인들이라면 꼭 한번 출연하고픈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예능의 침체와 함께 <무르팍 도사>는 물론, <승승장구>, <야심만만>, <화신>  등 타 방송사 토크 예능 프로그램들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해피 투게더>만이 명맥을 잇지만 부진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디오 스타>의 건재는 스스로 평가하듯, '기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런 '기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라디오 스타>만의 게스트 섭외 방식이다. 물론 11월 9일 방송에서도 김희철과 이수근의 출연에서 보여지듯, 여전히 특정 소속사에 편중된 출연 관례가 없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이제는 <해피 투게더> 등에서도 벤치 마킹을 하듯, <라디오 스타> 이전만 해도 '인지도'가 있어야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던 관례를 과감히 깨고, <라디오 스타>에 출연시켜 화제를 만드는 신선한 구성이 무엇보다 오늘의 <라디오 스타>를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든 핵심적 요소이다. 



덕분에 9일의 특집에서 '라스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로  소개된 조세호, 박나래 등 다수의 개그맨과, 드라마 등에서 조연으로 겨우 얼굴을 알렸던 연기자와, 무명을 갓 벗은 한동근 등의 가수등이 <라디오 스타>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들은 얼굴을 알려서 좋고, <라디오 스타>는 신선한 출연자로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더해서 좋았으니, 이보다 더한 꿩먹고 알먹고 구성이 있으랴. 

또한 일찌기 신정환을 위시해서 김구라로 이어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크의 방식도 <라디오 스타>가 만들어 낸 전통이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오면 마치 '주례사'처럼 서로 덕담이나 나누고, 미담이나 만들어 내던 기존의 예능 방식을 뒤집은 채, 출연자들을 탈탈 털다 못해, 거의 싸우다시피하던 <라디오 스타>의 토크 방식은 나날이 드세어가는 세상의 코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물론, 그 예전의 신정환으로 상징되던 b급 코드는 스테디 셀러가 된 이즈음에는 대상까지 받은 김구라의 삿대질식의 평론 토크로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라디오 스타>만이 가능한 날카롭고 기발한 토크의 방식이 지난 500회를 떠받쳐 왔다. 

물론 그래서 이제는 아쉽기도 하다. 기발하고 톡톡 튀었던 대화 대신, '갑질'같은 김구라 등의 '지적질'이 된 변화가. 9일 방송에서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지자 예전과 달리 눈치를 보게 되었다는 스스로의 평가처럼 이제는 종종 출연자에 대한 혹독한 털어내기나 무리한 요구가 구설수를 만드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러기에 9일 방송에서 500회니까 훈훈하게 가자며 서로 '덕담'과 '미담'을 만들어대는 방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반성과 비젼이 아쉬웠다. 어쩌면 늘 그렇듯 스테디셀러가 된 500회의 <라디오 스타>는 자화자찬만 하기엔 이제 너무 몸집이 커져버렸다. 조만간 빈 자리가 될 규현의 자리를 놓고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였지만 궁금하다. 과연 이 격동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는 철밥통처럼  sm 전용석이 될른지. 그리고 종종 '갑질' 논란까지 벌어지는 '권력'이 된 프로그램은 그 권력을 어떻게 전횡하지 않을 것인지. 그 궁금증을 답하기엔 500회 특집은 너무 자화자찬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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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1.10 05:19

매주 월요일 녹화를 하는 <썰전>은 늘 '시의성'에 있어서는 한 발 밀릴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제발 사건들이 화요일 이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전원책 변호사의 볼멘 소리처럼, 녹화가 있는 월요일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종종 썰전은 '전스트라무스'가 되어 예지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또한 종종 뒷북이 되고만다. 물론 대선 특집처럼, 시의성을 살리기 위해 다시 녹화를 하기도 하지만, 불가피하게 '뉴스'가 지나간 후 '추수'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경우가 언제나 <썰전>의 딜레마였다. 


지난 주 유시민 작가의 외유로 인해 두 패널의 활약이 적었던 <썰전>, 대신 mc 김구라의 단독 진행으로 각계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한 가운데, 속시원한 이재명 성남 시장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특집'으로 마련된 3일자 <썰전>의 두 패널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특집' 썰전은 특집다웠을까?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저마다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혼돈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썰전>은 정론으로서의 제 몫은 해낸 것으로 보여진다. 



언론의 10가지 과제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회의실에서는 전국 언론 노동조합, 한국 기자협회, 한국 pd연합회 등 12개 단체가 참여한 언론 단체 비상 시국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열렸다.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비상'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로 그 때문이다. 연일 계속되는 보도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가운데 지나치게 한 인물에 촛점이 맞춰진 채 '가쉽성' 보도로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는 판단이 언론 단체들을 '비상 시국 대책회의'로 결집시켰다. 

이에 대책 회의는 비상 시국에 언론이 보도해야 할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외교 사안에서 대통령은 어디까지 최순실에 의존했는가 △예측할 수 없고 돌발적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최순실의 영향인가 △재벌과 대기업들은 최순실과의 거래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최순실·차은택이 사유화하고 검열한 문화·행정 사업의 끝은 어디인가 △이화여대 정유라(최순실 씨 딸) 특혜의 배경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최순실의 청와대·공직 인사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했는가 △공영방송은 최순실 인사 전횡에서 자유로웠는가 △최순실과의 관계에 침묵하는 자는 누구인가 △산적한 의혹 규명에 나선 검찰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등 모두 10가지다.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즉 최근 벌어진 사안에서 한 개인에 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건의 본질인 대통령의 책임과 시민들의 삶에 대한 관점에서 현재의 사건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특집 <썰전>의 평가도 이루어 져야 한다. 

jtbc 뉴스룸의 보도로 시작된 만천하에 알려진 최순실이란 이름 석자,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국정 농단 사태, 하지만 이 사태를 둘러싼 각 정치 집단, 언론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태를 재해석하고 있다. 심하게는 주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분이 불쌍하다는 식에서 부터, 하야와 탄핵까지 각 집단의 입장은 편차를 가진다. 하지만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나며, 그 '사실'은 지극히 흥미 위주의 '가쉽성' 기사로 도배되며 대중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jtbc 뉴스룸은 날마다 충격적인 사실들을 보도하지만, 그에 뒤질세랴 종편을 위시한 각 언론들이 연예인 신변잡기 다루듯 최순실을 훑어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집으로서 본질을 짚다. 
이런 상황에서 2주만에 비로소 자리를 함께 한 패널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범람하는 사실들 속에서 가쉽 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 이 사건의 본질이 박근혜 게이트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다. 키맨으로서의 고영태, 그리고 새로운 실세 차은택의 부각과 함께, 태블릿 피씨가 입수된 뒷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건 가쉽으로서가 아니라, 최순실이란 인물의 비공식적인 인간 관계, 그리고 그런 인물을 의지하는 대통령의 무능한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란 또 다른 배후 인물의 존재를 드러내며 이 사건이 최순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결국 최순실이 가공할 만한 국정 농단이 가능토록 한 대통령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음을 조목조목 따져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특집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즉, 최순실이든, 최순득이든, 혹은 정유라, 정시호든, 그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를 가능케 하도록 하는데 있어 대통령 박근혜의 책임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날의 결론이다. 또한 그런 박근혜의 무능, 무지, 그리고 몰지각한 책임 전가에 대해 최근의 사태를 두고 가급적 거리를 두려는 새누리당의 책임성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더불어 31시간을 자유로이 놔두는 등 조율된 행보를 보이는 검찰에 대한 예리한 분석도 빠지지 않았다. 

즉 대책회의가 내세운 10가지 항목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어떻게든 대통령과 거리감을 두려는 여당의 작태도 낱낱이 고발한다. 물론 아쉬움도 남긴다. 대책회의의 문항에서 보여지듯이 ''썰'로 존재하는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 문화, 경제, 그리고 국방에 이르기 까지의 '농단'을 조목조목 밝혀 주는데 있어, 130분은 부족했던지, 그에 대한 설명은 아쉬웠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에 따라 <특집 2>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 보도의 공은 jtbc뉴스룸의 몫이라 여겼는지.

또한 그토록 단두대를 소리높여 외쳤던 전원책 변호사, 특집의 마무리에서 여전히 호기롭게 '올단두대'라 외치는 전원책 변호사가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된 언급에서 '문민 정부'를 들먹이며 그간 모든 대통령들이 대통령을 할 만한 깜냥이 안될 만큼 무식했었다는 '양비론'식의 평가는 유시민 작가의 지적처럼 물타기였다. 목소리를 높인데 반해, 전원책 변호사의 분석은 두루뭉수리했고, 시스템의 지적은 박근혜의 책임 소재를 자칫 흐트릴 우려가 높았다. 그런 전원책 변호사의 물타기를 간파하며 유시민 작가의 발군의 분석력과 위트로 현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다.

물론 이번에도 노스트라다무스의 도움이 없었던지, 두 사람은 과연 누가 박근혜 정부의 녹을 먹고자 하겠는가란 현답을 내렸지만, 여전히 세상의 '권력'을 향한 욕망이 지극하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을 서둘러 결정된 총리와 비서진의 일방적 발표가 증명한다. 또한 유시민 작가의 하야라는 최악의 사태 대신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남은 임기를 잘 해내시라는 충고는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기력지고 만다. 또한 최근 영화의 독점을 반대하는 법안을 입법한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에 대한 '인물론적' 평가는 조만간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 경솔하다 싶기도 하다. 만능이나, 전지전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각자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논점이 흐려지는 시점에서 <썰전>은 그 본질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만으로도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하지만 대책회의의 10가지 의제를 향한 갈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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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1.04 05:26

누군가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직도 해? 라고. 2009년에 시작해 벌써 햇수로 8년 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요일 밤, 아니 금요일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밤 12시하고도 한참 넘은 3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스케는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그 예전에는 <수요 예술 무대>를 비롯하여 '음악'이 목적이었던 무대들이 늦은 밤이라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었다. 


하지만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 앞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가 사라지듯, '시청률'이라는 방송의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은 '음악'만이 목적이었던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씩 잠식하고 이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음악' 프로그램들이 없는 건 아니다. <뮤직 뱅크> 등도 건재하고, <복면 가왕>처럼 새롭게 인기를 끈느 프로그램들도 눈에 띤다. 하지만 아이돌도,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이 온전히 자신의 노래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생존해 있다. 이제 '노래'도 예능이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승한 임대로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홍대 앞 공연장과도 같다. 



10년 생존을 위한 야심찬 포석 
애국가 시청률보다도 낮은 1,2%의 시청률로 안간힘을 쓰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처음엔 프로그램의 '품격'을 위해 버티던 '아이돌' 등에게 무대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건 프로그램의 성격을 하향평준화시키며, '유스케'만의 고집에 애착을 가지던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아이돌 위주의 프로그램인 <뮤직 뱅크>등이 낮은 시청률을 고집하듯, 생각 외로 그들의 합류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시청률엔 도움이 안됐다. 이제 노래도 '복면'을 쓰거나, 남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하거나 해야 볼거리가 되는 세상에, 일찌기 그런 시도를 앞서서 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늦은 밤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기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이제 10주년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한 새로운 포석을 둔다. 그 방식은 '음악'이 예능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원론적'인 방식의 접근이다. 바로 '월간 유스케'의 형식을 띤 한 가수의 온전한 콘서트로 꾸며진 한 시간이다. 



월간 유스케, 익숙한 용어의 조합이다. 그렇다. 일찌기 월간 윤종신이 있었다. 2010년 4월부터 시작하여 2016년 10월 50호가 된 윤종신의 디지털 싱글 앨범이다. 이는 기존의 앨범 단위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 뉴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그 의미가 퇴화해 가자,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자 아티스트 윤종신이 마련한 플랫폼이다. 과연 예능인으로서 분주한 윤종신이 가능할까?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이제 햇수로 6년째, 50에 이르렀다. 

이렇듯 월간 윤종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유연한 적응이듯이, 10월 29일 첫 선을 보인 <월간 유스케> 역시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의 새로운 모색이다. 우선 그간 애매했던 불금의 밤 대신, 조금 더 여유로운 토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한 아티스트가 온전히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특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에도 신곡을 낸 뮤지션이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음악을 서너곡씩 불러주는 코너가 있었다. <월간 유스케>는 그런 코너의 확장판이다. 최근 내노라하는 가창력있는 가수들이 설 무대라는게 듀엣으로 부르거나, 타인의 곡을 재해석해서 부르거나, 일반인과 함께 해야만 가능한 상황에서, 월간 유스케는 오히려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가장 본원적인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선택을 한다. 



창간호, 그 이름값에 걸맞았던 박효신 
그리고 그 첫 무대는, 야심찬 포석답게 최근 7집 앨범 <I am a dreamer>로 앨범 차트를 석권한 박효신이다. 무엇보다 박효신의 무대는 방송 출연이 흔하지 않은 그의 7년만의 방송 출연이라는 점, 거기에 199년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 방송을 데뷔했던 그의 기념비적인 복귀라는 점에서 '월간 유스케"의 창간호에 걸맞는 무대가 되었다.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밤을 뜨겁게 달군 그의 콘서트는 지난 야생화 앨범에 이어 다시 그와 작업을 한 정재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그의 새 앨범의 '꿈',  '홈(home)' 등의 신곡과 이전 앨범의 야생화 그리고 군대 가기전 앨범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불리워졌다. 이날 박효신의 방송은 이미 그의 콘서트가 거의 10분만에 매진되듯, 5만 여명의 신청자로 화제가 되었고, 바뀐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연만으로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는 등 그간 아쉬웠던 유스케의 화제성을 단번에 회복시켰다. 음원이 아니고서는 그의 음악을 듣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달라진 음색에 갑론을박하며 그의 복귀를 반겼고, 덕분에 창간호, 거기에 월간 유스케라는 야심찬 포석이 헛된 시도가 아니었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증명했다. 그저 숙제는 이런 박효신의 화제성을 이을 다음 호, 그리고 특집이 아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입지를 예능으로서의 음악이 융성한 시대에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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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0.30 03:36

만약 저녁 무렵 당신의 집에 낯 모르는 그 누군가가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해달라고 한다면?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가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라면? 그에 대한 반가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준비되지 않는 우리집 저녁 밥상을 '개그맨'을 빙자한 방송에 공개한다는 건 어쩐지 무리수다. 차라리 아쉽고 말지. 10월 19일 첫 선을 보인 <한끼 줍쇼>의 1회을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결국 큰 소리를 치며 숟가락 하나만을 달랑 들고 야심만만하게 떠난 강호동과 이경규의 여정은 7시간의 행보 끝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궁여지책 편의점에서 식사하는 여고생들 틈에 껴서 컵라면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음 회를 기약하며, 그런데 다음 회엔 가능할까?




이경규, 강호동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저녁을 잃어버린 삶
지금도 재래 시장에 가면 간혹가다 만나기도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경문을 외며 집집마다 '보시(施)'를 받으러 다니는 탁발승이 있었다. 스님은 음식을 얻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그를 통해 자신의 업을 덜 수 있다하여 '구원'해주는 길이라 당당했다. 이렇게 '보시'가 가능했던 것은 담이 낮았던, 그리고 담만큼이나 인심이 넉넉했던 우리 집과 외부가 열린 '마을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오늘날이라면 아파트라면 경비실을 넘지 못할 것이요, 혹시라도 넘는다 하더라도 당장 업무가 불성실하다 경비 아저씨가 경고를 먹을 일이 될 것이다. 단독 주택이나 빌라라면 문이 열리기는 커녕, 인터폰으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시골이라면 다를까?

그래서일까? 도시의 이경규와 시골의 이경규는 달랐다. 지난 6월 22일 종영한 <예림이네 만물 트럭>을 몰고 오지를 돌던 이경규는 그의 딸 예림이와 유재환과 함께 시골 마을을 누볐다.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드리는 목적에서 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집에서 이경규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마을 노인정에서도 무사통과였다. 하지만 그렇게 어르신들에게 프리패스였던 이경규가 '도시'로 오니, 그의 '자신만만'이 무색하게 옹색해 진다. 당장 거리로 나서니, 그의 수제자이자, 파트너라는 강호동의 너스레는 백발백중인 반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싶게 인지도부터 떨어진다. 

하지만 강호동의 너스레라고 다 통하지는 않는다. 제 아무리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천하장사'를 내세워도 닫힌 문은 요지부동이다. 예능 대부 이경규라는 이름표도, 철 지난 강호동의 '천하장사'란 타이틀도 무색해지게 결국에 쫄쫄 굶고 만 <한끼 줍쇼>, 첫 회니 '규동'이라 이름붙인 '망원동 브라더스'의 어정쩡한 조합을 각인시키기 위해, 거기에 오히려 굶어서 '한 끼'가 부각될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위해 굶을 만도 하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때늦어 버린 건 아닌가라는 노파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능은 아닐까?
프로그램 말미 강호동은 실패했다 하지 말고 성공하지 못했다로 하자며 자위한다. 그리고 비록 밥은 얻어 먹지 못했지만, '망원동'이라는 동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이란 수식어답게 몇 십년만에 처음 지하철을 타고 망원동에 내려 해가 저물도록 다리 품을 팔았지만, 애써 강호동이 '문학적'이란 수식어를 내세우며 강조한 것도 무색하게, '망원동'이란 동네가 그리 정겹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를 가나, 인기척 대신 꽏 닫힌 문들로 점첩된 도시의 동네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심지어 해가 지니 으슥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매번 거절 당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저 집들 중 얼마나 되는 집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까 하는 회의가 먼저 든다. 



'저녁이 있는 삶', 모 정치인의 슬로건으로 시작된 이 단어, 하지만 도시민의 '저녁'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이제는 '가족'을 이루어 사는 집보다 홀로 사는 이의 가구가 더 많아져 버린 나라에서 아이들이 뛰놀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음식 냄새 풍기는 집을 향해 각자가 달려가 퇴근하신 아버지와 함께 밥상머리에 빙 둘러 앉아 한 끼를 나누던 그 저녁은 이제 '추억'의 한 장일 뿐이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붐'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잃어버린 도시 공동체를 기억 속에서 '소환'했기 때문이었으니. 6시부터 8시까지라고 저녁 시간으로 정해놓고 망원동을 두 mc가 헤매는 시간, 그들이 헤맨 골목에는 불이 켜진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우 불 밝혀진 집으로 찾아가면 거절 당하기 일쑤니. 지하철에서 만난 신혼의 아내 고백처럼 하루에 한끼도 밥을 나누지 못하는 부부들이 사는 세상에서, 애초에 밥 숟가락 하나 얹을 저녁상을 받을 집이 '희박'한 것이다. 

취지는 좋다. 도시의 저녁을 함께 나누며 잃어버린 도시의 온기를 느껴보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 밥 한 끼의 낭만은 어쩌면 이제 시대 착오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한끼 줍쇼>가 고민해야 할 것은 25년만에 처음으로 만나 어색한 '규동' 커플의 어울리지 않음이 아니라, '저녁'을 잃어버린 '도시'가 아닐지. 그건 그 옛날 '양심 냉장고'같은 캠페인으로 해결될 길 없는 시대의 삭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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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0.20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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