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웠다. 얼마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지 척하는 인증 사진으로 '물의'를 빚었던 손혜원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 8월 1일 <냄비 받침>에 등장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 '공교로운 시기'를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운영의 묘를 살렸다. 출연 당사자에게는 공개 사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력하고픈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명색이 '스타의 사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던 그 어정쩡한 콘셉트를 이제 예능판 <썰전>으로 자리잡아가는 정치 예능 토크쇼로서의 새 장을 안착시켰다.


 

손혜원 vs. 나경원 
일단 8월 1일의 <냄비 받침>은 손혜원과 나경원이라는 두 국회의원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앉힌 제작진에 가장 큰 점수를 주어야 하겠다. 

한 자리에서 밥도 먹기 힘들다는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의 독대, 하지만 연륜으로 보면 이미 60줄을 넘은 건 물론, 사회적으로도 '참이슬', 처음처럼' 등 '브랜드 디자이너'로 한 획을 그은 손혜원 의원과, 소장 판사로써의 재직 경험 외에, 일찌기 국회로 들어와 여당의 각종 직책을 맡아가며 모범생 국회의원으로 잔뼈가 굵은 나경원 의원의 조합은 한 그릇에 담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인선 사실조차 신문을 보고 알았다지만 김정숙 여사의 고등학교 동창에, 더불어 민주당 당명 선정 과정에서, 이번 대선까지 '브랜드 디자이너'로서의 그 역할을 톡톡히 드러낸 나경원 의원이 평가한 여권 실세와, 정치 입문 시절부터  '근황'조차도 뉴스꺼리가 되어 온 '실세'였던 나경원 의원의 조합은, 현재의 정치권에서 가장 어울리는 만남이다. 

그랬기에 연륜과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지만 내일이 없는 초선 손혜원 의원과, 연륜으로 치면 몇 년이 밀리지만, 정치적 연륜에 있어서는 손혜원 의원의 그 어떤 행보에도 '훈수꺼리'가 있는 다선 의원 나경원 의원의 노회함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적폐 청산을 내세운 여당의 전투적 초선과 투쟁적으로 여당의 발목을 잡는 것이 사명이지만, 정작 내일을 고민하는 야당의 다선의 중후함은 그 자체로 현재 여당과 야당을 상징하는 듯이 보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여성 국회의원이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져 '여혐' 발언을 했다간 같은 당 남자 의원이라도 뼈를 못추릴 것이라며 달라진 시대를 선언하는 손혜원 의원과 여당 대표 추미애 의원조차도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간의 정치 생활 동안 체험한 유리 천장을 토로하는 나경원 의원에게서는 슬로건으로서의 여성주의와 현실에서의 한계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해를 넘어선 이해 
흥미로운 예능적 조합을 넘어 <냄비 받침>이 의미가 있었던 건, 그간 손혜원, 나경원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오해'를 넘어선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시간이었다. 

우선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의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문제가 되었던 손혜원 의원, 그 일에 대해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매사에 자신이 넘쳤던 손혜원 의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무조건 '사과'를 했다. 자신이 순간 경계가 풀렸었다며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반성과 어려움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빈소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급하게 요청을 했는데, 그 요청에 100 명이 넘는 분들이 와주셨다고. 그 분들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처럼 분주했던 손의원. 이제는 지역구에 가면 아이돌급 인기인답게 내내 사진 한 장 찍다는 부탁을 받고, 내내 거절하던 손의원이. 늦은 밤 장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너무 미안한 맘에 한 장 찍은 사진이 그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고. 

사과는 사과대로, 하지만, 그 사과와는 별개로 그 날의 설명을 담담하게 한 손의원의 해명은, 분명 적적치 못한 행동이지만 아직 정치인 초년생의 그 해프닝을 이해할 터전을 만든다. 그런 손의원이기에, 그의 '닥치세요'라는 그 유명한 발언에, '오죽하면 그랬겠어요'라는 해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어쩌면 8월 1일의 <냄비 받침>에서 오해를 넘어선 이해의 이득을 더 많이 본건 나경원 의원일지도 모르겠다. 늘상 '해'가 드는 곳에만 있는 '공주'같은 미모의 정치인, 심지어 표정 변화가 없어 '얼음 공주'란 별명까지 얻은 연륜의, 하지만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보였던 이 정치인의 또 다른 면을 <냄비 받침>은 들춰낸다. 

사람들은 늘 '실세'라고 하지만, 자신은 그 누구의 세력이었던 적이 없던, '공주'라 하지만 '무수리'처럼 늘상 여당의 어려운 뒷설거지를 마다하지 않으며, 때론 패전장으로 잠시 정치의 무대를 멀리한 적도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그의 근황이 뉴스꺼리가 되는 성실하고 진득한 직업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당에, 한 자리 하기도 힘든 초선과 다선이지만,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경원 의원을 지켜보게 되었다는 손의원의 말처럼, 불통의 아이콘, 독불장군 노땅의 상징이 된 야당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보수적 신념에 따라, 하지만 '당명'에서부터 진솔하게 터놓고 고민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신선'했다. 

물론 이런 나경원 의원의 모습을 오랜 정치적 경험을 통과한 세련된 자기 포장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식의 평가는 반대당인 손의원의 진솔한 자기 표현 역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예능이라는 '프레임'은 편집을 통해 제작진이 의도한 '사실'들을 선별적으로 전해주는 방식이다. 그건 '미디어'가 가지는 본질이다. 마치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면서도 그 이름이 '참이슬'이라 하니, 이슬을 마신 듯 청량감을 맛본다고 느낌을 받듯이. 



예능판 <썰전>의 가능성을 잘 살려내길
하지만, 소주를 참이슬로 위로하듯, <냄비 받침>이 제시한 정치 예능은 '포장'을 넘어선 '정치적 마타도어'를 비껴간 그래도 진솔한 정치적 비젼들이다. 막말 선봉대가 아니라, 오죽하면 닥쳐가 아닌 그래도 존댓말인 닥치세요를 한 정치인의 모색과, 자기 당 의원들이 반말에 삿대질을 하는 상황에서도 표정 변화 없이 질끈 외면하고픈 정치인의 고뇌를 통해, 그래도 서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의도성'말이다. 

설사 그것이 각자 자신의 한껏 치장된 정치적 수식어라 하더라도, 다음 국회의원을 위해 달리지 않고 이 정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계 적페 청산을 위해 한껏 타오르겠다는 초선 의원의 포부도,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내일이 없는 야당에서, 그래도 열심히 보수의 가능성을 지펴보겠다는 그 초라하지만 성실한 의도는, 이데올로기와 수식어를 제한 현실 정치의 이성적인 '전선'이다. 세상이 하나의 명쾌한 색깔로 정리되면 좋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대치된 전선'의 현실에서 마주친 '이성적인 모색'과 이해가능한 호감의 자리로서 <냄비받침> 손혜원-나경원 편은 유효하다. 

그리고 이런 예능판 <썰전>으로서 스스로를 자리 매김해 가는 <냄비 받침>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경규라는 '중용'의 미학을 통달한 mc의 균형추 아래, 여,야라는 현실의 가장 두 극단을 모아놓고, 각 정치인들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공은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연다. 다행히도 어설픈 아이돌 탐구 생활의 끼얹음이 없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더욱 빛난다. 어설픈 책 출간이나, 냄비받침이라는 어긋난 네이밍이야 민망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자리잡아가는 예능판 썰전의 기획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그런데, 손혜원 의원의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지?라는 의아함처럼 이렇게 나와서 이성적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낸 정치인이 얼마나 있으려나 싶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아니 뭐 꼭 정치인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푸드 칼렄니스트 황교식 씨 등의 '사회적 자폐' 논란처럼, 우리 사회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눌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겠다.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아니라도. 부디 이런 모처럼의 모색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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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8.02 14:23

<안녕하세요>의 sbs 버전으로, 유재석과 김구라의 신선한 조합으로 관심을 끌었던 <동상이몽>은 하지만, 매회 출연자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패널들의 조언이 논란이 되며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7월 10일 새롭게 돌아온 <동상이몽>은 어색한 조합이었던 유재석 & 김구라의 조합의 유혹을 물리치고, 김구라와 서장훈이라는 익숙한 조합에, 김숙을 얹어 돌아왔다.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던 일반인 참가자 대신,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유명인들의 개인사 엿보기의 또 다른 버전인 '너는 내운명' 유명인사 커플의 일상사 관찰 예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그 시즌2의 첫 번 째 출연자 중 한 명은 놀랍게도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재명 성남 시장'이다. 



이재명 성남 시장의 반전 부부 생활
지난 2월 대선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 자신에게 출연 섭외가 왔다며, 이미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것을 알았던 것 아니냐고 이재명 시장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오랜 출연 모색이 무색하게, 이재명 성남 시장의 동상이몽은 이제는 돌싱이 된 김구라와 서장훈이 이런 것까지 보여주냐며 볼멘 비명이 절로 터져나온 침실씬부터였다. 

나름 아내를 위해 많은 것을 노력한다는 시장님 남편과, 그런 남편을 위해 늘 준비된 삶을 사느라 어느새 식사 준비에서 부터, 옷차림, 모니터까지 일인다역을 하느라 걸음걸이도 총총, 밥도 후다닥 먹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희생적 아내 김혜경씨의 일상은 26년이라는 함께 살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정겹다. 

물론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상을 주고, 홀로 옆에서 바가지에 밥을 떠넣으시던 어머니의 시대를 살아온 이재명 시장은 여전히 그릇 하나 부엌에 들어다 주는 것도 어색할 만큼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간이 배밖으로 나온' 남편이다. 하지만 '시장', 그리고 한때는 대통령 후보였던 그를 잠자리에서 깨우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식사, 옷차림, 정치 일정까지 보살피며, 짬짬이 스킨쉽을 마다하지 않는 이 부부의 모습은 아내라는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 덕일까? 프로그램 방영 시간부터 검색어에 등장한 이재명이란 이름 석자는 하루가 지나서도 쉬이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이재명 성남 시장은 후발 주자임에도 열렬한 지지자들을 모으며 선방했다. 그의 주장은 명징했고, 그 주장은 젊은 층들을 기반으로 하여 굳건한 지지층들을 결집했다. 하지만, 그 주장의 명징함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동자 출신에 가장 친노동적인, 그래서 반기업적인 이 정치인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을까. 이재명 성남 시장의 지지층은 좀처럼 확산 속도를 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지지층 확산에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선거 기간 중 그의 가족과 관련하여 시중에 유포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진 이재명 시장의 '감정적인 태도'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이재명 시장은 토론 등에서 가장 명쾌하고 해박한 주장을 펼쳤음에도 '정서 조절 장애' 등의 불미스러운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심리학자의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안정적인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는 이미 유포된 '편견'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래서 였을까.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재명 시장이 첫 발을 내딛은 정치 행보는 뜻밖에도 예능 <동상이몽2>의 출연이었다. 그리고 그 출연은 최소한 첫 회를 봐서는 매우 성공적인 듯 보여진다. 프로그램 속 이재명 성남 시장은 '분노 조절 장애자'는 커녕, 매우 스윗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전통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종종 귀엽기까지한 26차 남편으로 등장했다.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주장에 한 치의 양보도 없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아내가 뿌려주는 향수에 팔을 너펄거리며 한 바퀴 돌며 뽀뽀까지 빼먹지 않는 '애완견' 같은 모습이었다. 관찰 카메라 앞에서는 물론 그 동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 이재명 시장의 모습은 넉넉했다. 선거 기간 동안 내리 그를 괴롭히던 그 '강고한 편견'이 프로그램 한 시간만에 스르르 허물어졌다. 

정치인들의 미디어 프렌들리가 우려되는 건
선거가 마무리 되고, 선거에 참여했던 유수한 후보들은 저마다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 중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sbs스페셜의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을 통해 '러블리한 심상정'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바른 정당 유승민 전대표 역시 <냄비 받침>에 출연하여 선거 후일담을 비롯하여 소탈한 모습을 공개하며 좋은 이미지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재명 시장은 부부가 관찰 예능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런 정치인들의 발빠른 행보는, 아마도 지난 대선 기간을 통해 선거에 있어, 정치인에 있어 '이미지 메이킹'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전 선거에서 후보로 등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선점했던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란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에 대한 한계에 부딪쳤고, 대중 연설 열 차례보다, 유포된 '가짜 뉴스' 하나의 전파 속도와 그로 인한 이미지 붕괴가 선거에 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실제 주장도 중요하지만, 그 주장의 전달 방식이 후보자 각자의 표 이합집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증명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차기 대선 주자로 예정되어 있는 세 사람은 발빠르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변화 혹은 쇄신시키고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그런 그들의 전략은 일정 정도 유효한 듯 보인다. 



그러기에, 더 우려가 된다. 새롭게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이, '미디어' 전략이라는 사실이. 즉, 우리 사회에서 대형 기획사 등이 자사의 연예인들을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포장하듯, 이제 우리는 '대통령 선거' 조차 '미디어전'으로 치뤄야 하는 것이 명실상부해지는 것같아서. 아니 이미 명실상부한 것을 체감시키는 것같아서.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시장이 자신은 보다 자상한 남편인데 제작진이 자신의 자상한 면을 '악마의 편집'을 통해 없애버렸다며 우스개로 말한 장면은 그러기에 중요하다. 

사람들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 믿는 '미디어'는 편집된 진실이다. 관찰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수많은 사실 중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사실만이 가려 방송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러기에 '방송'이라는 '권력' 혹은 '유착된 권력'을 통해 가공될 소지가 더욱 다분해 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상이몽2>의 이재명 편은 분명 그간 이재명 시장의 억울한 이미지를 풀어주는 시간이었지만, 그러기에 정치인들의 빈번한 방송 출연에 대한 우려를 쌓는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 그럼에도 너는 내 운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보여준 시간들은, 제작진이 말하듯, 혼밥과 싱글족들의 시대에 '염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를 비롯하여,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의 심상정네 가족은 물론, 유승민 전대표도, 그리고 이제 이재명 시장까지도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화목하고, 행복한 부부이다. 아내는 정치인 남편을 위해, 혹은 남편과 자식들 역시 정치인 아내를 위해 당연히 헌신적이고, 그 아낌없는 헌신 위에 가정은 공고한 위상을 뽐낸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시장의 발목을 붙잡았던 건 그의 불우한 가족사였다. 그리고 이제 <동상이몽2>을 통해 증명한 건, 그 불우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안온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이 '행복한 가정'주의, 과연 이런 '주의' 아래에서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가 전직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싱글 대통령'이나 심지어 돌싱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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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7.11 14:18



남자들은 일찌기 길을 떠났다. 아재들은 뭉쳐서, 혹은 따로 또같이, '욜로'니, '싱글 라이프'니, '오지 여행'이니 주어진 돈을 가지고든, 아니면 벌어서든, 때론 묻고 따지지도 않고 패키지로든 갖가지 명목을 갖춰 떠났었다. 리모컨의 향배를 쥐고 있는 것이 여성들이기에 그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tv 예능은 '남자들' 판이었다. 혼자도 떠나고, 홀로도 떠나고 이젠 더 떠날 사람이 없을까 싶은데, <싱글 와이프>가 등장했다. 아내들이 나선다. 이젠 우리들 차례라고. 그렇게 6월 21일 아내들이 길을 떠난다. 




아내들 휴가를 떠나다
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 매진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아내들, 그녀들에게 남편들이 '방송을 빙자해서', 휴가를 주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된다. 아니 그 전에 아내들의 이야기가, 왜 아내들에게 '휴가'가 주어져야 하는지 '당위성'의 인터뷰가 먼저다.

남희석의 잘 나가는 치과 의사 아내로 유명한 이경민, 하지만 서울대 출신의 그 돈 잘 번다는 직업 여성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인 이경민의 삶은 어쩐지 측은하다. 일찌기 우수한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던 그 학창 시절처럼, 이경민씨는 대학을 졸업하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단다. 더구나 기복있는 연예계 생활을 하던 남편 덕에 '가장'의 무게까지 짊어진 그녀는 둘째를 낳는 그 날 저녁까지 일을 하고 낳은 후에도 몸조리라는 걸 해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마흔이 될 무렵 지하철에서 쓰러진 후, '고갈'된 에너지에 눈물을 달고 살았지만 출근 때마다 '파이팅'을 외치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번 없이 그 세월을 그런 거려니 하고 살아왔다. 

남희석이라는 남편의 이름을 지우고, 치과 의사라는 전문 직업인을 지워버린 이경민 씨의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다수 일을 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힘들고 지치지만 자신이 아니면 안될 것같은 가정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칠 수 없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오늘도 삶에 자신을 밀어넣는. 오늘의 젊은 여성들 중 상당수가 결혼을 미루거나 기꺼이 비혼을 선택하는 세태에는 결국 여전히 우리 어머니 세대와 다르다지만 다르지 않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잔혹사'가 전제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여행 프로그램인가 했던 <싱글 와이프>는 그렇게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느라 자신을 돌볼 사이가 없던 이경민 씨를 비롯한 장채희, 전혜진, 정재은 씨의 인터뷰를 통해, 여행의 당위, 아니 엄마와 아내로 어쩌면 이제 '번아웃'이 된 그녀들의 '휴식'에 대한 공감으로 프로그램을 펼쳐나간다. 



그렇게 당위를 설득한 그녀들의 여행은 그래도 명색이 남편들이 보내주는 것으로 구색을 맞춘다. 아내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짐을 싸주는 남편들, 그 '구색'의 장면은 하지만 뜻밖에도 아내를 홀로 보내는 남편들의 '강짜섞인' 노심초사도 빠질 수 없지만, 결정적인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늘 '아내의 수발'에 익숙한 남편들, 그러나 정작 아내의 여행 가방을 싸주려 하자, 아내의 물건, 그리고 아내의 라이프 스타일, 결국 아내의 삶에 대한 '무지'로 귀결된다. 동반자라며 살아오지만, 정작 아내의 휴가 짐조차 꾸리는데 쩔쩔 매는 남편들, 그들은 토를 달 것도 없이 '한국 남자들'이다. 

아내들의  '일탈기' 아니, 그녀들의 '인간성 회복기'
그렇게 무엇을 싸놨는지조차 모르는 무게만 잔뜩 나가는 가방을 들고, 길을 떠나는 그녀들, 그런데 떠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부재를 걱정하고, 울먹이는 아이를 챙기던 아내들이, 집을 나선 순간부터 표정이 달라진다. 집에서는 볼 수 없던 표정의 아내, 5분 단위로 일정을 체크하던 아내는 이경민씨는 아이의 1교시가 끝날 무렵 맥주 한 캔을 비웠고, 아침 8시 아이를 깨우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집안 일로 하루가 지던 전혜진 씨는 '비글'같은 쾌활함을 발산한다. 

<싱글 라이프>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선언한다. 그저 남편들이 보내주는 아내들의 여행에서 머무르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 아내도, 엄마도 아닌 자기 자신 본연의 삶을 주는 '아내day'를 지향한다고.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내와 엄마의 삶에 여유가 없던 그녀들이 가족을 벗어난 그 짧은 여행에서 보여준 밝은 미소와 웃음만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싱글 와이프>는 <미운 우리 새끼>의 또 다른 버전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장가를 못간, 아니 이제 어쩌면 갈 수 없을 지도 모를 아니 지긋한 노총각 아들들의 싱글 라이프를 그들의 어머니가 지켜보며, 깨달음과 발견, 심지어 경이와 경악을 오가며 '예능적 재미'를 뽑아내던 그 방식을 고스란히 끌어온다. 아내와 엄마로서 주어진 삶에 틀에 맞춰 가던 그녀들이 그 '규격화된 삶'의 틀에서 벗어낫을 때 느끼는 해방감, 일탈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보며 노총각들의 어머니들이 느끼는 놀라움과 깨달음의 몫은 스튜디오에 남겨진 남편들의 몫이다. 그들은 아내들의 짐을 싸서 여행을 보냈지만 그녀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저 프로그램 당일 아내의 '내가 너무 미친x같을 거란' 걱정을 등에 짊어지고 그 어머니들처럼 '내 꺼'인 줄 알았던 그녀들이 사실은 '내 꺼'라기엔 너무도 자유로울 수 있는 한 사람의 영혼이라는 깨닫고 놀랄 시간만이 남을 뿐.



첫 방송의 <싱글 라이프>는 이미 너무도 알려져 더 무엇을 보여줄 것이 있을까 싶은 모범생 이경민 씨의 반전 여행으로 부터 시작하여, 다소곳하고 순정의 여성상으로 기억되는 전혜진 씨의 익스트림 휴가를 넘어 이미 <라디오 스타>를 통해 방송 출연 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정재은 씨의 '블록버스터'급 일본 여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래도 어쩌면 그저 아내들의 일탈 여행으로 마무리 될 뻔한 여행은 그저 비행기 타고 지하철 갈아타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흥건하게 만든 정재은 씨의 일본 도착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출발 전부터 핸드폰 밧데리의 사용법조차 몰라 남편을 한숨쉬게 했던 정재은 씨, 그 남편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 도착에서 부터 숙소에 이르기까지 '사고'의 연발이다. 남편이 가르쳐 준 핸드폰의 번역기는 일찌기 '안드로메다'행이고, 익숙한 우리 말로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길을 묻는다. 지하철을 한번에 제대로 타는 일도 없다. 거기에 남편이 싸준 가방은 어찌나 무겁고, 가는 길 곳곳에 계단은 그리 많은지. 하지만 그저 눈물겨운 일본 도착기를 감동 스토리로 만든 건 정재은 씨 본인이다. 

결국 도착과 함께 눈물이 터져버리고야 만 정재은 씨, 보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너무 고생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순간, 순간 기적처럼 자신을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동이었다. 남편의 타박에도, 길을 잘못 가르쳐준 일행에게도 늘 웃음과 긍정을 발사하던 그녀가 보여준 반전 매력, 그것이 <싱글 라이프>를 그저 아내들의 일탈기 이상 매력적인 인간 탐사기로 기대를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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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22 15:44

1인 미디어의 시대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독립 출판', 기존의 '상업적 목적'을 벗어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는 나만의 콘텐츠 창작 역시 2,30대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문화적 트렌드이다. 그리고 그 '트렌드'을 발빠르게 '예능'이 담아낸다. 바로 지난 6월 6일부터 새로인 선보인 kbs2의 예능 <냄비 받침>이다. 


제목부터 역설적 의욕이 넘친다. 흔히 보지 않는 책의 효용이 '냄비 받침'으로의 전락을 빗대어, 야심차게 '냄비 받침'이 되지 않을 '출판 콘텐츠'를 '예능'의 그릇에 담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그 '냄비 받침'이 되지 않을 '출판'의 당사자로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 트와이스, 이용대가 등장했다. 



독립 출판 예능이 되다 
이미 유승민이 등장하기 전부터 '낙선 정치인'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포부만으로 홍준표 후보의 등장 여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던 <냄비 받침>은 이미 방영 초반 뜨거운 '신고식'을 치뤘다. 그리고 이제 유승민 의원을 시작으로 이경규가 원하던 바 '낙선 정치인'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이경규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이, 애기 아빠가 된 이용대는 '육아 일기'를, 애주가 안재욱은 전국의 '건배사' 모음집을, 그리고 이젠 '삼촌'이 된 김희철은 그의 사심 가득한 '걸그룹 입문기'를, 트와이스는 20대 초반답게 '신상 탐험기'를 '저술(?)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채운 책이 0번에서 시작해서 900번대 까지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아우르듯 '책을 매개로 한 예능 <냄비 받침> 역시 펼쳐논 포석이 야무지다. 출연자 각자의 개성과 기획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선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연상된다. 특히 이경규에서 안재욱, 이용대, 김희철, 트와이스 등 출연자의 면면을 보면, <냄비 받침>을 통해 전 연령대를 아우르겠다는 의도 역시 다분히 노골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들고 나온 콘텐츠 역시 50대 이상의 '정치', 40대의 '술 자리', 30대의 '가정'과 '취미', 그리고 20대의 '신상'처럼, 연령 별 선호 품목을 정확히 주목하고 있다. 이런 것은 최근 프로그램 전체가 아니라, 짤막한 동영상으로 '소모'되고 있는 예능의 트렌드에 맞춘 절묘한 기획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절묘한 기획'이 정작 '본방'의 <냄비 받침>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은 한 공간에 모여든 여러 스튜디오 각각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 다양한 콘텐츠들의 반응에 따른 '경연'이란 점이 이 이질적 콘텐츠들의 '어색한 조합'을 무마시켰다. 하지만, 막상 이제 3회를 맞이한 <냄비 받침>은 그런 세대별 전혀 다른 관심사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물음표가 뒤따른다. 

시끌벅적한 화제를 이끌고 이경규의 낙선 정치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대선 과정에서 비록 낮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그 사람이 여당이라 안타까웠다는 유승민 바른 정당 후보다. 

'정치 과정'으로서 '목적 의식적' 방송이 아닌 예능에, 이제 자연인으로 등장한 유승민 전 의원은 자신의 방송 출연만큼이나 이경규를 실제로 맞이한다는 사실을 신기해 하며 방송은 시작되었다. 역시나 노련한 이경규는 틀에 박힌 질문의 행간 너머로 곧 유승민이란 인물이 그간 선거 과정을 통해 '홍보성'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예리하게 살펴간다. 뿐만 아니라, 유시민의 지적처럼 이제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의 유승민 의원은 선거 과정 이면의 뒷담화 역시 허심탄회하게 전해주어 '정치적 목적'없는 정치인의 소탈한 모습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에 대한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 방송은 느닷없이 트와이스의 합숙소로 시선을 돌린다. 유승민과 이경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니, 갑자기 젊은 걸그룹이 단체로 나와 '신상' 체험기를 벌인다. 그게 또 저런 건가 보다 하고 보려니, 김희철이 등장해서 '아이돌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난리다. 그런데 그 책을 쓰는 방식이 방송국 앞 까페에 앉아서 매니저들에게 읍소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과연 이수만 사장님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그가, '잔혹사'에 가까운 아이돌의 역사를 제대로 서술할 수 있을까?싶은데, 이젠 또 아니라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그룹 숙소를 찾아 '걸그룹 입문기'를 쓰겠단다. 그러더니 마무리는 안재욱이 등장하여 이경구가 함께 했던 대선 기간 '마크맨' 기자들과의 '건배사'로 마무리한다. 



한 지붕 어색한 여러 가족 
패널들 각자가 하고자 하는 '출판'의 기획은 참신했다. 논란이 되었지만 유승민 의원이 보인 소탈한 모습을 통해 '정치'적 목적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그들의 후일담이 충분한 들을 거리가 되었다. 젊은 트와이스의 신상 탐험기도 괜찮았고, 시행 착오를 했지만 요즘 걸그룹 입문기를 빙자한 걸그룹 함께 하기도 '걸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환호'할만한 소재다. '건배사' 혹은 술자리를 통해 엿보는 우리 시대 사람 사는 이야기도 그 자체로 충분히 다가갈 만 하다. 

문제는 이들을 한 시간 여의 예능에 쑤셔 넣었다는 지점이다. 진득하게 이경규의 인터뷰에 집중을 하던가, 걸그룹의 시끌벅적한 리얼 예능을 하던가, 술자리를 빌어 살펴 본 일반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던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공중파 예능의 모아놓고 하나만 반응 있어라는 식의 '백화점식' 혹은 '편집식' 구성은 이제 새로울 것이 없다. 공중파에서 예능이라면 대부분 이런 방식을 택한다. 여러 '노총각'들을 모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운 우리 새끼>부터, 싱글들의 <나혼자 산다> 등 다 이런 식이다. 이는 '시즌제'가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공중파 예능의 숙명이라 할 수도 있다. 또한 담론과 화두, 혹은 주제 의식이 없는 이른바 '영혼없는 예능'의 한계이기도 하다. 왜 우리에게는 나영석이 없는가라는 고민을 하기 전에, 왜 우리는 '예능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는가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니 맨날 새로운 예능이라면서 결국은 트렌디한 아이템을 내걸고 결국 하는 건 뻔한 예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톤'과 베이스'의 적정선이 있다. 그런 면에서 <냄비 받침>은 스스로 본방 사수 하는 이들에게 '리모컨'을 쥐어 주는 셈이다. 유승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은 트와이스의 시끌벅적한 신상 탐험기가 어이없고, 걸그룹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정치니 건배사니는 생뚱맞다. 과연 이런 콘텐츠의 상충되는 면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차라리 이럴 바에는 <냄비 받침> 내의 시즌제를 하던가, 모처럼 신선한 콘텐츠로 등장한 '독립 출판'이라는 아이디어가 잘 안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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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21 15:04

정권이 바뀌고 기대되는 여러 분야가 있지만 그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이미 경기도를 비롯하여 그간 수능 체제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고만 '외고, 자사고' 체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바 있다. '외고, 자사고'를 없애고 기존의 '일반고' 체제로 돌아가면 우리 교육의 악순환이 해결될까? 과연 '일반고'를 보내던 학부모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아이를 조련하며 기를 쓰고 '특별한 과정'에 끼워넣으려 애썼을까? 이런 부모들의 '욕구'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면 새로운 교육적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란 '교육학자'의 섣부른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거기에 4차 산업 혁명이 우리를 휘감아 도는 세상에서 과연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을 '예능'이 먼저 구한다. 바로 지난 5월 18일 시작된 tvn의 <수업을 바꿔라>가 그것이다. 


첫 회 핀란드를 시작으로, 4회 스웨덴까지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자타공인' 선망의 대상인 북유럽 교육을 살펴보았다. '가만히', '조용히'가 일상화된 우리 학교와 달리, '학생들의 동선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표인 '움직이는 학교'는 그 자체로 '교육적 충격'이었다. '숲'이 곧 학교가 되는 스웨덴의 신개념 통합 프로젝트나, 보기엔 공장같은 네모난 상자 건물 속에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창의력 개발 수업 역시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이미 '북유럽'으로 교육 이민을 떠날 만큼, 그리고 이미 북유럽 식의 '숲'학교 모델이 우리 대안 교육에 도입될 만큼,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은 '선진 교육'의 롤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수업을 바꿔라>는 그런 북유럽 교육의 '신선함'을 학부모인 패널들의 공감 십분 활용하며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했다. 특히 학부모인 이적의 현장 실습은 그 공감을 극대화하는데 적절했다. 



이제 5회, 프로그램은 북유럽에서 '미국'으로 방향을 튼다. 일찌기 '교육'을 위한 이산가족의 단초가 되었던 곳, 유학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교육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그런데 5회에 소개된 학교는 하고많은 미국의 학교 중에 '실리콘 밸리'의 <모건힐 차터 스쿨>이었다. 패널로 등장한 타일러의 소개에 따르면 '학부모, 교사, 지역 단체'들이 함께 위원회를 결성하여 만든 일종의 '대안 교육' 학교이다. '주 정부'의 경제적 지원은 받지만 교육 과정은 온전히 '학교 재량'에 맡기는 학교, 그 중에서도 '실리콘 밸리' 학부모들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 해야 하는 <모건힐 차터 스쿨>은 아마도 4차 산업 혁명을 맞이할 '미래 교육'의 현장 답사 성격을 띠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국의 앞서가는 대안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까? 놀랍게도 <모건힐 차터 스쿨>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미국 편 게스트로 등장한 성동일, 그리고 이미 <아빠 어디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그의 아들 성준이 하루 동안 참여한 <모건힐 차터 스쿨>은 21세기 교육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도 같았다. 

21세기 교육의 시금석
아빠의 걱정과 새로운 환경,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부담에 가방조차 내려놓을 생각조차 잠시 잊었던 성준이 맞이한 첫 수업은 여러나라의 지폐를 가지고 '연구'하는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우선 이 학교 수업의 놀라운 점을 발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우리나라 5학년 수업에 이런 교육 과정을 맛본 적이 없는 외국의 학생이 참여한다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이미 초등 4학년만 되도, 학교 교육 과정에 조금의 '지체'가 생기면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다짜고짜 5학년 수업 참관이라니, 하루 종일 눈만 껌벅거리다 하교를 하고 말 일이다. 그건 그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5학년 교과 과정은 어른이 그 과정에 해당하는 문제집을 봐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낯선 학교, 낯선 환경, 낯선 친구들을 만난 성준의 첫 수업은?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 선생님은 여러 나라의 지폐를 나누어주고 지폐를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어느 나라 지폐인지 조차 모르고 마치 예술 작품을 보듯 가까이도, 멀리도 살펴보기 시작한 학생들. 

과연 이 '지폐 수업'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이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뜻밖에도 '생각하기'였다. 우리 시대의 대부분 지식들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을 굳이 학교에서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학교의 지론. 그래서 선생님은 이방의 지폐를 통해 '사고'하는 힘을 키워주려 한다. 각자 모둠에서 지폐를 통해 알아낸 것을 적어보고, 그 다음에야 노트북을 열고, '검색'을 하여 어느 나라 지폐인지, 얼마짜린지, 그리고 지폐 속 인물과 그림들은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알아간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시한 환율을 계산하여, 미국 달러와 비교한 이 지폐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보고서로 작성한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니 '경제적'인 가치를 '돈'을 통해 배우게 하려나보다는 mc 김성주의 예측은 보기 좋게 무산되고, 이제 실리콘 밸리의 학교는 더 이상 '검색'을 통해 배우는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힘'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하는 힘은 '배경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방의 친구 성준 역시 거뜬히, 심지어 우수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토록 애닳아 하는 '창의력'과 '사고력'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수준을 맞춰 들어간 2학년 코딩 수업, 코딩(하나 이상의 관련된 추상 알고리즘을 특정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구체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기술)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의 걱정과 달리, 친구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성준은 곧 '코딩'로봇을 자신이 만든 선위를 달리게 할 수 있었다. 우리 학제에서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는 논의 조차 전체적인 공론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건힐 차터 스쿨>의 아이들은 스스로 코딩한 로봇을 자신이 입력한 값에 의거한 선 위로 작동하는 수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수업에서 놀라운 것은 초등 2학년 아이들이 '코딩'을 할 줄 안다는 '첨단 기술'의 습득 여부가 아니었다. 각자 만들던 코딩 로봇과 그 로봇이 달리던 선, 그 선들이 수업의 마지막 반 전체 아이들의 공동 작품이 되어, 카운트 다운과 함께 완결된 하나의 동심원으로 작동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공동 작품의 마무리에 선생님이 한 말이다. '코딩'을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즈니 랜드'도, 학교도, 그 모든 것들이 서로 함께 힘을 모아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수업을 닫았다. 기술이 아니라, '모두 함께, 그리고 오랜 시간 노력'에 방점이 찍힌 수업은 그 어떤 '지식'과 '기술'의 전수보다 감동적이다. 

아마도 <모건힐 차터 스쿨>의 의도대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면 '생각하며 자신의 앞에 닥친 문제'를 풀어가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며,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제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바로 이런 '새로운 교육, 하지만 기본에 방점이 찍힌 교육'으로 비롯되고 있는 것이란 실감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성준을 통해 드러난 우리, 우리 교육
하지만 이런 교육 과정에의 감동과 달리, 이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진행 방식, 아니 근본적으로 선진 교육 과정을 답사하는 '기특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여전한 한국적 교육관으로 인해 낯부끄러워 졌다. 

핀란드와 스웨덴에 학부모인 이적이 간 것과 달리,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하루 동안의 학교 생활을 거뜬히 수행해낸 성준은 기특하고 대견했다. 하지만 그 기특하고 대견한 성준을 바라보는 프로그램의 시선은 어쩐지 불편했다. 아니 불편했다기 보다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 

우리의 학교 교실이 벌써 초등학교만 되도 안경 쓴 친구들이 상당수인 것과 달리, <모건힐 차터 스쿨>에서 성준을 만나 친구들은 안경쓴 친구들이 없었다. 심지어 그중에 성준이 가장 똑똑했다. 아이들은 '간디'가 누군지도 몰랐고, 우리 지폐의 이황에 대해 잘못 검색하여 이상한 외국 래퍼를 이황이라 검색했다. 심지어 5학년인데도 성준이 소수점 곱하기에서 자리수를 쉽게 옮기는 것에 대해 경이롭게 여기기까지 했다. 

정작 <모건힐 차터 스쿨>을 통해 검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무용함, 그리고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프로그램이 성준에게 가서는 성준이 그 아이들보다 많은 지식이 있는 것, 책벌레라는 것, 더 수학을 잘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과연 <모건힐 차터 스쿨>까지 가서 이게 자부심을 가질 일일까? 오히려 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무지할 동안, 유창한 영어에, 많은 지식과 능숙한 수학적 능력을 가지기 까지 성준이란 아이가 '공부'에 매진했어야 하는 시간에 대해 '반성'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저 여전히 우리 식으로 아이고 우리 애가 더 똑똑하네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한국적'방식은 <모건힐 차터 스쿨> 아이들을 데리고 '한류' 자랑을 하는 지점에 이르면 낯이 부끄러워진다. 마치 우리나라에 내한한 외국 배우에게 꼭 빠지지 않고 김치를 아느냐, 한류를 아느냐고 묻듯이, 새로운 교육관을 배우러 간 그곳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학생과 방탄 소년단의 영상 통화까지 성공시키고야 만다. 배우러 간 곳에서 내 자식 잘 났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명함 내보이듯 한 자랑 하고야 마는 그 '관행'을 보며 과연 이 새로운 교육 역시 '인간다운' 방향보다는 또 하나의 선진 문물의 습득에의 '갈구'가 아닐까란 회의가 드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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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17 05:47

<까칠 남녀>는 지난 15일 '여자도 군대 가라'에 이어, 23일 '군인도 사랑받고 싶다'를 통해 '군대'를 '까칠한 젠더 토크쇼'의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일부 사이트를 중심으로 '성평등'이 아니라, 패미니즘적 편견을 양산한다며 <까칠 남녀>'폐지' 서명 운동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2회에 걸쳐 진행된  우리 사회 남녀 사이에 가장 민감하게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군대'에 대한 토론은 <까칠 남녀>의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가장 적확한 답이었을 듯하다.


 

 


평등을 논하려면 여자도 군대가라?

군대 장비가 즐비하게 늘어놓아져 있는 x의 방에 들어선 남자들, 그들은 자연스레 군모를 쓰고, 군복을 입고, 장비를 갖추며 '군인'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면 이 '과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제 아무리 특권층이라도 '군대'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 대통령 후보조차 '낙마'를 하는 사회, 질병을 사유로 석연치 않게 매번 군입대가 연기되는 연예인의 군대 가는 문제가 가장 예민한 사안이 된 사회, 그리고 한 연예인의 흡연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부당한 군입대 등급의 문제가 조만간 그의 군복무가 끝날 상황인데도 여전히 '왈가왈부'의 대상이 되는 사회, 그렇게 제반 사안에서 '군대'는 우리 사회에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그래서 역설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는 문제라는 걸 매번 증명해 내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성'과 관련하여 '평등'의 담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게 되면서 가장 큰 딜레마로 등장한 것이 바로 '남자들만의 군입대'이다. 방송 중 방송인 서유리가 평등해지면 군대 갈 수 있다는 말이 화제가 되었고, 결국 2부작의 주제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을 우스개식으로 시작한 토크쇼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군대'에 대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민감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성들도 가야하는 군대, 과연 현실은 어떨까? 송영선 의원이 '국방 전문가'임에도 군복무를 안해봐서 라는 이유만으로 발언 자체가 무시되는 현실, 그리고 막상 여성들이 그래, 여성들도 군대갈 수 있다고 하지만, 거리에 나가 입장을 물어보면 과반수의 여성, 심지어 남성들은 그 보다 작은 비율이 여성의 군입대를 찬성하는 남성들만의 '의무'이자, '특권, '전유물', 그리고 명예이자 상흔으로 자리잡은 군대, 과연 정말 여성들도 군대를 가는 현실이 가능할까?


방송 중 사례로 등장한 여성들이 군대를 가는 외국의 사례는 놀랍다. 노르웨이의 마리 에릭센 쇠레이어 국방 장관은 여성이다. 심지어 그녀는 여성들의 군입대를 의무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녀만이 아니다. 그녀에 앞선 노르웨이의 역대 국방장관들은 상당수가 여자다. 우리로는 격세지감이다. 노르웨이만인가. 네덜란드도 군인들을 사열하는 여성 장관의 모습이 등장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외국의 사례.


 

 


이런 장면에 대해 부러움을 나타내는 여성 패널과 달리, 정영진 등의 패널은 남북한의 대치로 '전쟁'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렇듯 '군대'와 관련한 사안은 매 사안마다, 입장을 위해 등장하는 젊은이들부터, 패널들까지 끝날 줄 모르는 선로처럼 입장이 갈린다.


그나마 서민 교수가 다를까? 하지만 여성 신문에 칼럼을 기재하는 서민 교수, 자신의 칼럼을 예로 들어 남자들은 군대 한번 다녀온 걸 평생 울궈먹는다며 비판하자, 이에 이날의 게스트 방송인 최욱은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애 낳은 걸 평생 울궈먹는다며 바로 대응하듯, 그리고 그가 남성들이 방산 비리에 취약해서 여성들이 국방 장관 등 중책을 맡아야 한다는 발언에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일듯, 그의 입장은 객관적 평등의 시각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편향의 흔적을 감추지 못한다.


여자를 보내기엔 너무 험란한 군 생활?

'평등하다면 군대에 갈 수 있다', 라거나, 남자들이 군대를 간다면 여자들은 '임신'을 하지 않나라는 여성들의 입장에 남성들은 답답해 한다. 그의 두드러진 남성적 입장으로 발언마다 '악플 주의보'를 받는 정영진은 '남성들에게 군대는 끝나지 않는 상흔'이라며 여성들이 군대를 너무 모른다며 고개를 젓는다.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은가란 여성 패널의 입장에 단호하게 '군대는 아카데미가 아니다'란 반론이 따른다.


군대 사이트에 등장한 여성 걸그룹의 사진 등에 여성 패널들이 성차별을 들며 반발하자, 과연 성적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20대 초반의 남성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한 '군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맞선다. 그런 당당한 성적 이해에 대한 요구에 여성 패널은 꼭 그 왕성한 에너지를 '성적'으로만 집중하는 군사 문화 역시 문제가 아니냐며 반문한다.


도저히 만날 길 없는 담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 일반,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들을 비롯한 상당수가 '군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군대가 좋아져도, 물론 여전히 군 내부 폭력 사태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그 닫혀진 공간 속에서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상황이 비일비재 하는 현실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군대란 그어떤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훈련에 시달린 그들에게 일과 후의 공부는 어불성설이고, 예능에서 극한이라 내보이는 훈련 정도는 거뜬히 참아넘길 수 있는 내무반의 관계와 군기가 도망갈 길 없는 미로이다. 더구나 그런 고통을 드러내는 것조차 '군인 정신'에 위배된다며 '색출 대상자'가 되는 곳에서 2년을 마친 젊은이들에게 사회는 '군바리'란 우스운 별칭 외에 인심쓰듯 공무원 가산점제 따위로 보상을 낚는다.


 

 


그렇게 2회의 토크 쇼를 통해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가 군대에 대해 여전히 아직도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시간'을 볼모로 삼으며, 그 '볼모'의 시간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에 있어 역시나 박하다 못해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사실이다. 공무원 가산점이라는 알고보면 소수를 위한 낚시밥조차 갸륵할 만큼, 그래서 휴가 나온 군인들에게 잘 대해주기라도 하라는 자조적 첨언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군대와 군인의 정확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다시 여성들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문제로 돌아와, 그렇다면 여성들은 성평등을 위해 군대에 가야할까? 하지만 여성들의 군 입대 문제를 들고 나서기 전에 남성들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 군대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2회의 토크쇼는 드러낸다. 군대 2년만 있다 나오면 남성주의적 문화가 내재화될 수 밖에 없는 강제적 문화, 하지만 그 조차도 이젠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섹시한 여성 걸그룹만이 위로가 되는 폐쇄적 공간, 군대 내 여성은 물론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비일비재한 실정, 이런 여전히 '인간적이지 않은' 군대 내의 문화와 습속에 대한 제고와 개선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 <까칠 남녀> 2회의 가장 큰 성과이다.


남성과 평등해지기 위해서는 여성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가장 당돌한 질문으로 시작된 <까칠 남녀> 군대 문제, 하지만 그 날선 질문 혹은 요구의 여정에서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한참 젊음의 꿈을 펼쳐야 할 그 시기에 군대로 인해 얼마나 큰 상실을 겪게 되는가를 반증한 시간이었다. 군대라는 남성주의적 특권을 나누기 싫어서라는 이의 제기보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여성들에게는 겪고 싶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이 군대 가는 걸 반대한다는 '토로'가 실감났던 시간, '선택'과 때로는 영원한 짐이지만 그래도 행복일 수 있는 임신과는 비교조차 되기 힘든 그 죄없는 '영어( 囹圄 )의 시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갖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 질문의 전제라는 것을 <까칠남녀>는 밝힌다.


여성과 남성의 성평등에 대한 도발적 질문으로 시작하여, '남성 인권', 그리고 보편적 인간 인권의 문제로 귀결된 군문제, 그건 군 가산점으로 퉁칠 수 없는 '시간의 굴레'라는 걸 <까칠 남녀>는 증명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이 프로그램이 평등이란 주제를 내걸고, 페미니즘적 담론을 유포하는 불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전문적인 입장을 가지고 공격하는 여성 패널들과 달리, 노골적으로 여성편이라며 또 다른 편견을 드러내는 남성 패널과, 경험주의적 사고를 넘어서지 못하는 또 다른 남성 패널의 한계는 여전히 노정 중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이토록 진솔하게 '군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노력하고자 하는 그 시선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열려있다는 것을 <까칠 남녀> 군대 편이 증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지속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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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23 13:37

일상 속에 숨어있는 불평등과 편견을 허물기 위해 나선 프로 불편러들의 이야기 <까칠남녀>, 1회부터 늘 그 '불평등과 편견'을 둘러싸고 여성과 남성의 입장은 대립에 대립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제 7회, 모처럼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구별 없이 '프로 불편러'들의 입장이 일치했다. 바로 '자위'라는 주제로. 1회 여성의 털로 시작하여, 피임, 졸혼, 피임, 데이트 비용, 맘충 등 우리 사회 '성'과 관련된 예민한 주제를 다뤘던 <까칠 남녀>, 하지만 7회 '자위'에 대한 토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그나마 남자들의 영역에서는 하위 문화의 한 부분으로 불가피하게 수용되고 있지만, 여성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심지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영역, 그 영역을 용감하게 <까칠 남녀>가 들고 나섰다. 그리고 모처럼 남녀 이구동성으로 '내 몸의 자유'를 주장한다. 




엄연한 존재로서의 '자위'
오나니, 수음, 마스터베이션 등 자위와 관련된 용어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거기엔 자위(自慰)의 자기 마음을 스스로 위로함이라는 뜻에서 부터, 라틴어 어원 마스터 베어의 손으로 오염시키다의 마스터베이션까지 다양한 의미의 역사를 내포한다. 그렇듯 '위로'와 '오염'의 극과 극의 존재론을 가진 '자위'는 그 자체로 '성'에 있어 비장할 수 밖에 없는 주제다. 

그런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까칠 남녀>는 대부분의 인간이 하며, 실제 남성의 92%, 여성의 62%가 하고 있다는 실제로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초대된 게스트 비뇨기과 의사이자, 성교육 전문가인 황진철 박사는 건강한 성생활인 '자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집착, 혹은 각자의 처한 상황이 빚어내는 강박적 자위로 인한 조루나 지루가 문제라고 '문제'의 영역을 구획한다. 

그렇다면 교육 방송 성교육 토크쇼 <까칠 남녀>가 이 문제를 공공연하게 내세운 의도는? 교육부가 제정한 성교육 표준안에서 교육에 임한 교사는 먼저 '야동'이나 '자위'라는 단어를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보여지듯 우리의 성교육은 엄연한 인간의 성행위의 일종인 자위를 터부시 함으로써 대다수 이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한 청소년 등이 잘못된 정보를 접하지 못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 현실은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음란 동영상'이 성교육 교과서를 대신하고, 그로 인해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와 관련된 황당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구, 오이, 참외, 컵라면 등 기상천외한 각종 도구들로 인해 응급실 등을 찾는 '위험한 해프닝'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거기에 이런 성과 관련된 무지로 인해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어쩌면 아이들은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위에 대해 가르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른 5살부터 자위에 대해 알려라는 커녕 제대로된 성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막상 패널들조차 아들의 자위에 맞닦뜨리는 상황에 대해 당황하듯, 여전히 우리 사회 '성'을 둘러싼 세대간 인식의 간극을 메우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갈 길이 먼 여성의 성
처음 여성 해방에 관련된 서적에 접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해방을 논하기에 앞서 '여성이란 존재'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였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서 여성들이 자신의 성기를 보고 만져보고,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여성학의 입장이 벌써 몇 십년전. 하지만 2017년의 중년 여성들은 '마스터베이션'과 관련된 도구에 질색을 하며, '자위'에 대해서는 '뭘 그렇게 까지'라며 손사래를 친다. 

물론 그런 중년의 세대와 젊은 세대는 다르다.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미처 그것을 몰랐던 것에 안타까워하는 등 자신의 욕구에 한층 솔직해졌다. 그러나 그런 젊은이들조차 말한다. 2017년에도 여성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정숙하고 조신하기를 요구받는다고. 



여전히 '수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의 성, 그러기에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자위'는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실제 아이를 낳고 나서도 자신의 성기를 만져보거나, 들여다 본 적이 없고, 자위에 대해 모르는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내 몸을 모르고, '자위'를 하지 않는 것이 왜 문제냐고. 그건 바로 내 몸을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까칠 남녀>는 입을 모은다. 그 누군가의 성욕을 수용하는 대상, 혹은 아이를 낳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아껴야 할 나 자신의 일부이자, 방식으로서 '자위'는 규정된다. 즉, 성관계와는 별도로 나의 몸을 탐구하는 기초로서의 '자위'는 그 존재론을 드러낸다.

이런 여성의 자기 인식, 자기애, 자기 욕구에 대한 인정으로서의 과정은, 나아가 부부간의 성 문제로 구체화된다. 실제 기혼 남녀의 72%, 67%가 결혼 과정에서의 '자위 경험'이 있는 현실, 하지만 남성의 8%, 반면 여성의 92%가 상대방의 '자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이 위태위태한 성적 불균형의 현실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자위에 대해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라는 자책은 바로 '자위'에 대한 무지로 인해 빚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물론 방송은 조심스럽게 '자위'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라 못박는다. 개인차는 물론, 세대와 성별에 따라 차이의 간극이 큰 문제라는 것도 공감한다. 하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단언처럼, 그것이 곧 '죄책감'으로 덮어 씌워진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방송을 젖혀 버리고자 애쓴다. '자유', 해방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위'를 복권하고자 애쓴다. 

그 언급만으로도 여전히 얼굴이 벌게지는 단어, 그것이 토크쇼의 주제로 공공연하게 등장했다느 사실만으로도 <까칠 남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터부'를 '자유'로, '해방'을 '자기애'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의 한 표현으로 저 뒷골목에 숨었던 '자위'를 끌어오고자 애쓴다. 이런 '노력'의 목적은 무엇보다 현실이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언급만으로도 부끄럽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않게 되는 이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궤도 수정하고자 한 노력이다. 그러기에 <까칠 남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ebs답게 교육 방송으로서의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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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09 04:20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불평등과 편견을 허무는 차별에 화난 프로 불편러'들의 이야기 <까칠 남녀>가 4월 24일로 5회를 맞이했다. 프로그램은 '털', '졸혼', '피임', '김치녀', '시선 폭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내에 '젠더'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덕분에 매회 화제가 되었다. 또한 화제가 된 만큼 '엄연히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정영진 씨 등의 발언이 매회 인터넷 상에서 숱한 질타의 대상이 되며, 5회에도 발언을 할 때마다 '캡춰'돨 것이란 우스개가 등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이 '우스개'를 웃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지. '한남'과 '페미'라는 양 극단의 용어가 넘쳐나는 세상에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까칠 남녀>의 젠더 토크쇼에 대해 몇 가지 고민을 풀어보고자 한다. 




시선 폭력? 시선 강간?
5회의 주제가 된 것은 여성의 몸을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 거리의 실험 영상을 예로 들며, 그런 남성의 '시선'에 대해 여성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프로그램. 하지만 곧 대다수의 여성들이 '시선 폭력'을 느꼈다는 것과 달리, 그 자리에 참석한 남성 패널들은 이런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힘들어 한다. 

남성이 여성을 보는 것은 '본능'이라거나, 여성들도 '시선을 즐기지 않냐'는 '이의 제기(?)'에 대해 페미니스트 은하선이나, 여성 철학자는 '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남성의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우위에 있기에, 여성들은 그런 '젠더'의 '을'로, 남성들이 끈질기게 자신의 몸을 '관음'하는 시선에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폭력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5회 '시선' 문제의 딜레마가, 동시에 젠더 문제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시선 폭력'의 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이 '성적 권력 관계'에서 오는 관음적 폭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그 '결론'에 대한 공감 대신, 오히려 애초에 개념인 '시선'에 대한 정의와 혼돈으로 '토크'는 뒤돌아 간다. 즉, 과연 어떤 시선이 '폭력'인가에 대해, 상황 설정까지 해가며 다시 설명을 하며, '여자는 안다'라는 단호한, 하지만 모호한 결론에 이르른다. 

'시선 폭력'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 내에서 젠더 권력 관계의 약자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분명한 '폭력'적 요소임에도, 어디까지가 '폭력'인가에 대해 '당하는 사람은 안다'라는 이 모호한 결론은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부딪치고있는 '젠더'문제의 모호함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기울어진 젠더의 전문성 
결론에 이르러 봉만대 감독이 '지켜본다'와 '바라본다'라는 언어적 유희를 통해 설명하려 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본다'는 성적 호기심, 호감, 그리고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담은 행위이다. 이는 즉, 프로그램의 초반, '시선'의 문제를 들어 '권력'이라고 소리를 높였듯, 우리 사회 내 '젠더'에 관한 문제는 수 천년의 시간 동안 '가부장제'적 구조 아래 '절대 우위'를 누려온 '남성'의 권력과 그 '권력'의 피해자 여성이라는 문제 임과 동시에, '섹슈얼'한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문제라는 복합적 구도를 지닌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가진다. 

정영진이나 봉만대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대표적인 '한남' 심지어 '한남충'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몰매를 맞는 것과 달리,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남성들이 심지어 '여성편'이라며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서민조차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들이밀 정도로 '시선'의 문제를 내세우면 그것이 '본능'이라 생각한다는 지점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선의 폭력'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선'에 대한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감'에는 '권력'의 문제와 함께, '생물학적 본능'의 지점이 내포되어 있는 복합적 문제라는 것을 여성과 남성이 역시나 공감하는데서,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은 '도그마'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양성 공감'으로서의 지평을 넓혀가지 않을까 싶다. 이는 곧 <까칠 남녀>가 페미니스트적 담론을 되풀이하는 장이 아니라, 진정한 '양성의 대중적 공감'을 확산시키기 마당이 되는가의 시금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패널의 구성 자체에서도 어쩌면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패널의 구성 자체가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아쉽다.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 은하선에 여성 철학자 이현재라는 '페미니즘'의 전문가 두 사람이 포진한 여성의 입장과 달리, 과연 봉만대나 정영진이 '남성'의 대표성을 띤 전문가인가라는 점에서 아쉽다. 즉 여성들의 입장이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적이고, 보다 체계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진 전문가들에 의해 '권력' 문제까지 짚어져 가면서 문제 제기가 되고 결론을 '목적의식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과 달리, '서구에서는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여성이 자신을 스스로 가리는' 경우는 없다'며 여성들이 좀 더 당당하기를 요구하는 '합리적'인 주장과, 아내가 나를 사랑해서 가사를 돌보고 양말을 신겨준다는 비이성적 잣대를 갈짓자로 오가는 정영진의 주장이나, 에로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뜬금없이 드러내고야 마는 봉만대의 입장은 어쩐지 늘 역부족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을 '한남'이라 욕하거나 제압하고 보면, 우리 사회 남자들이 반성할까? 의식이 달라질까? 과연 이 '한남'이라고 욕먹는 이들이 우리 사회 평균 남성들의 이하인가? 



문제는 이런 이들의 개별적이고 경험주의적이며, '논리적이지' 않은 입장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여성 측 전문가들의 입장이 '격파'한 것이 과연 '양성 평등'의 확산에 도움이 될까? 즉 이는 우리 사회 속 '페미니스트'적인 입장들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대중적 파급력이 얼마나 원심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런 점에서 기생충 학자 서민의 존재가 아쉽다. 콘돔의 사용과 관련하여 질외 사정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봉만대에게 그건 질외 사정의 합리성이 아니라, 봉만대의 나이에서 오는 정자 운동성의 감소라 과학적으로 짚었던 서민은 5회에 이르러 '여성편'이라며 앙탈을 부리거나, 우스꽝스런 상황극에 자신을 소모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심화되어가는 젠더 문제와, 경험주의적 무지가 지배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자'로서 서민은 '권력' 관계를 넘어, 보다 과학적인 전문가로서 '방향'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물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진화 심리학'조차 '젠더적 편견'에 대해 문제 제기를 받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과학자로서의 그의 사리밝은 식견이 도그만에 빠진 담론과, 그를 맞서는 막무가내 경험주의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젠더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계몽주의적 캠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캠페인의 성공의 전제가 되는 것은 '여성은 물론, 남성 대중의 공감이다. 권력의 관계이지만, 동시에 남성과 여성은 '성적'으로 동반자적 관계에 있는 미묘한 역학 관계의 존재들에 대한 때론 논리적이고, 때론 감성적인 설득이다. 과연 5회를 맞이한 <까칠 남녀>가 이런 딜레마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지향'과 함께, 그 '지향'을 위한 공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고민이 제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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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5 16:53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엔딩'이 '벚꽃 깡패'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화사한 봄 벚꽃을 맞이하러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봄꽃을 맞이하러 찾아가는 대표적 명소, 남산. 남산을 찾은 연인이라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바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과 김선아가 사랑의 실랑이를 벌였던 이제는 이름조차 '삼순이 계단'이 된 곳이다. 그런데 그 영어 번역조차 어설픈 이 삼순이 계단이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의 장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국사 시간에 삼순이 계단에 숨겨진 역사까지 가르쳐 줄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공간,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연, 하지만 교육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그 숨겨진 역사를 '방송'이 대신 나섰다. 바로 지난 11월 부터 매주 화요일 7시 40분 찾아오는 <동네의 사생활>과 지난 12월 종영한 <역사 저널 그날>에 뒤를 이어 찾아온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골목과 거리에서 만난 역사 인문학, <동네의 사생활>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을 모토로 내세운 <동네의 사생활>은 해방촌, 제주, 원효로, 대학로 등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토크쇼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걸어가니던 골목, 이제는 폐업을 한 구멍 가게 들이 '역사'를 만나,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배우 정진영의 사회로, 김풍, 주호민, 다니엘, 딘딘 등에 역사가 서경덕이 합류하여, '인문학'으로 우리 동네의 품격을 달리 한다. 

4월 5일 방영된 17회, 이제 막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한 남산을 찾았다. 관광객과 상춘의 연인들이 즐겨찾는 남산. 연인들이 사랑의 실랑이를 벌이는 삼순이 계단은 조선의 국신당을 허물고 일본이 13만평의 조선 신궁으로 올라가기 위해 성역화한 참배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어설프게 삼순이 계단이라 표시된 이 계단 주변 어느 곳에서 일본이 조선에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신당의 입구였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의 치욕스런 신당보다 더 아픈 남산의 역사가 있다. 바로 이제는 서울 유스호스텔로 변신한 1994년부터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었던 중앙 정보부 남산 본관이 그곳이다. 유신 시절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을 받다 숨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조를 당했던 곳. 본관을 비롯하여 지하 벙커라 불리던 지하 고문실 등 40여개의 건물이 오롯이 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프로그램은 밝힌다. 

프로그램의 행보는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지나, 취조를 받던 사람이 서로를 볼 수 없게 지그재그로 흡음판이 달린 방을 만들고, 심지어 자살을 할 수 없게 창문조차 작게 만들었던, 그래서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 이어 군부 독재를 지켜내기 위해 숱한 젊은이들을 고문하고 박종철 열사의 목숨을 거두었던 남영동 대공 분실이 이날 여행의 종착지다. 



이렇게 프로그램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 교과서에서도 얇게 다루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숨죽인 역사 현장을 '동네 답사'의 이름을 빌어 재현한다.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 선언을 한 33인의 사실적 모습과, 그와 대비되는 이회영 일가의 헌신적인 생애가 드러난다. 아름다운 벚꽃에 숨겨진 군산의 모습과 이제는 역사가 된 학림 다방의 추억도 되살려 본다. 때로는 기억해야 할 역사, 때로는 잊지말아야 할 진실이 동네의 골목과 거리를 통해 살아온다. 

휘황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서 사라져 가는 임시 정부을 찾아서, <역사 기행 그곳>
지난 해 신돈 편을 예고까지 한 후 출연자의 신상 문제와 관련하여 본의 아니게 휴업을 하게 된 <역사 저널 그날>을 대신하여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찾았던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 이 프로그램이 <역사 저널 그날>의 시즌2 대신 정규 편성되어 3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8시 10분에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정규 편성 첫 번째 기획은 '고난의 길 임시 정부 루트', 임시정부의 여정을 따라간 기행이다. 이 기행의 의의는 3회차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마지막 편 최태성 강사와 이윤석씨가 오마주한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김구와 김원봉, 해방을 맞이하여 죽은 동지들을 기리며 술 잔을 나눈다. 영화 속 김원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윤봉길 등의 알려진 열사와 의사의 이름을 나열하는 데서 그친다. 하지만 <역사 저널 그곳>에서 김원봉으로 분한 이윤석은 거기에 더한다. 충칭의 임시 정부를 홀로 지키셨던,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에 함께 돌아가지 못한 채 별표로 남으신, 그리고 다시 무연고 무덤으로 이젠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의 여정을 함께 하셨던 분들, 그 분들을 기린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역사 기행 그곳>은 우리 역사 교과서가 미처 담지 못한 임시 정부의 여정을 때론 사(私)사로운 여행처럼, 하지만 사(史)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은 채 홍커우 공원이 있는 상해를 시작으로 임시정부 고난의 시기였던 항저우, 치장을 경유하여 해방을 맞이한 충징까지를 함께 한다. 



두 사람의 여정은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여정이 되고, 그 여정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처럼 김원봉을 만나고, 윤봉길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역사 책은 기록하지 않은 임시 정부 서기이자 흥사단 단원이셨던 김복형 선생님과 같은 독립 운동가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되고, 어쩌면 이 방송 프로그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충칭 임시 정부와 같은 사라질, 그리고 사라진 독립 운동사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려한 중국의 발전 속에서 근근히 버텨가는, 혹은 무연고 처리가 되는 독립 운동의 흔적들이, 곧 우리가 '임시정부'를 '역사' 속에서 취급하고 있는 역증처럼 여운이 남는 시간이 된다. 

'답사'는 동호회가 만들어지는 등, 세간의 취미 생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여행'은 tv 프로그램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답사'와 '여행'이 만난다면? 이 두 주제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엮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동네의 사생활>과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 기행 그곳>이다. 4지 선다와 암기 과목이라는 역사 교육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와 교훈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애썼고, 학교에서 이미 역사를 배웠던 사람에게도 새로운 깨달음과 반성의 시간이 된다. 덕분에 흩날리는 벚꽃 속에, 혹은 화려한 중국 문명의 불빛 속에 숨겨진 우리 역사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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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09 15:32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남과 여'의 프로그램들은 '사랑'을 다룬다.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이야기를 다룬 <우리 결혼했어요>나, <님과 함께>처럼, 2015년 종영한 <마녀 사냥>의 경우도 남녀간의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지만, 그 솔직한 담론의 대부분은 만남과 교제를 전제로 깐다. 진짜 '민낯'의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는 없을까? 그 시도를 3월 27일 새로이 시작한 ebs의 <까칠 남녀>가 시작했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불편한 이야기. 그 속에 숨은 불평등과 편견에 화난 프로불편러들의 까칠한 토크. 이것이 새로 시작한 <까칠 남녀>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화나게 한 일상의 불평등과 편견은 어떤 것일까? 

<까칠 남녀>는 3월 27일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공주도 털이 있다'에 이어, 4월 3일 금기어가 된 '피임'을 전면적으로 다룬 '오빠 한번 믿어봐, 피임 전쟁'을 다루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편견과 불평등의 담론, 그 시작은?
남녀 차별에 대한 솔직한 고백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는 했지만, '가부장주의에 입각한 남성 중심 사회'인 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문제 제기의 중심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우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첫 회, '공주도 털이 있다'는 과연 남성성이란? 여성성이란? 하고 말문을 열지만, 곧 여성이 털을 기르는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하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겨드랑이 털, 겨털이란 칭해지는 이 단어에 대해 '빅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웃기다'로 규정내려지는 대한민국,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제모 안한 여자와 사귀느니, 뱃살 나온 여자랑 사귀겠다란 대답은 젊은 남성 56%가 답했다는 현실의 데이터에서 보여지듯이, 그 '웃긴' 겨털이 여성의 문제가 되면, 혐오와 공격의 대명사로 치환되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첫 번 째 회차의 주제다. 

가슴 털을 보이는 남자 배우는 '섹시'하다고 칭송받지만, 시상식 장에 제모를 안하고 등장한 미 여배우 롤라커크의 모습이 화두가 되고, 내 몸을 사랑하자는 취지에서 털을 기른 여성이 혐오스런 대상으로 공격을 받는 현실, 그것을 통해 '법'은 어기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길들여진 '아름다움'에 대한 '내면화'로써의 '미감(美感)을 짚어보며 그 이미 내면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진다. 

프로그램은 미지의 x의 방을 등장시키고, 그 방 주인을 '추리'하며 그 날의 주제를 파고 들어가는 식으로 시작된다.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던 박미선이, 이번에는 그 '관습화된'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아닌, '민낯'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런 박미선과 함께 에로 영화 감독으로 성에 대해 솔직함의 대명사인 봉만대 감독과 당당한 여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서유리, 빅데이터 전문가 서영진, 기생충 학자 서민, 성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까칠하게 그 날의 주제를 풀어나간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 <까칠 남녀>는 2회 보다 더 솔직한 주제인 '피임' <오빠한번 믿어와, 피임 전쟁>을 가지고 찾아온다. oecd 낙태율 1위, 콘돔을 안쓰는 문화인 대한민국의 심각한 현실이 주제가 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나누는 '성', 하지만 현실은 '임신'에 대한 공포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혼 여성에게만? 아니 미혼 여성 낙태율 17%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기혼 여성의 낙태율 33.3%에서 보여지듯이, 기혼, 미혼의 문제가 아닌 남녀 일반의 문제다. 

하지만 그 남녀 일반의 문제는 패널로 등장한 중년의 봉만대 감독이 적절한 피임 방법이 아니라고 확정된 체외 사정을 자랑스레 말하는 해프닝에서 보여지듯이,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임'법에 무지하거나,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거나, '기분, 감정' 등의 문제로 치부하는 안이한 현실에 대해 프로그램은 패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짚어간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리처드 기어의 '노 콘돔, 노 섹스'의 슬로건을 앞세워 '가장 유효하고 경제적이며 합리적 피임 방법'인 콘돔에 의한 피임으로 귀결된다. 즉 여성만의 임심 공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성, 그런 선택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서 '남성 피임 방식인 콘돔'으로의 유도다. 

사회적 의식을 내면화한 편견에 대한 문제 제기 
무엇보다, 첫 회 여성의 겨털에 이어, 피임를 다룬 <까칠 남녀>는 그린 라이트 식의 '솔직'함과는 궤를 달리한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고자 하는 솔직함이다. 우리의 편견이 남자가, 혹은 여자가가 아닌, 피임에 대한 사회적 강제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국가 경제적 접근에서 시작되었듯이, 1915년 질레트 면도기의 광고와 함께 시작된 여성의 제모 관습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무심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다수의 의식들이 '사회'적으로 훈련되고 교육받은 '생각'이라는 것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임신 공포가 여성의 책임이 된 세상의 이면에는, 정관 수술로 강제로 수술대로 끌려 들어갔던 남성의 피해가 존재하듯, 여성과 남성 이분법 그 이상의 '사회적 의식'에 대한 '제고'를 요청한다. 단지, 그 사회적 의식이 만든 세상이 남성이 지배적인, 그래서 여성이 사회적 을인 결과를 가져왔기에, 그 경직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가 결국 보다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의 문제 제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피임에 대한 회차는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서의 '콘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인식 제고에 많은 시간을 제공했지만, 여성이 개발 도상국이냐란 발끈한 반발을 불러왔던 정영진의 '미군이 있다고 자주 국방을 안할쏘냐'라는 문제 제기도 그냥 허투루 넘어설 부분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즉 남성의 콘돔 사용율도 심각하게 저조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남성에게 '철 좀 들어라' 식의 유도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감정적 성적 대립을 조장하는 자세이다. 또한 네덜란드 등의 30%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구 피임약 사용율 5%에서 보여지듯이, 성적 자기 결정권의 방식으로서 여성의 피임 방식에 대해서도 보다 긍정적인 입장이 아쉬웠다. 

즉 방송 초반 보여지듯이 우리 나라 청소년의 대다수가 '성'에 대해 조숙한 반면, '피임' 등의 방법에서 무지한 현실, 아니면 청년들의 경우, 친구나 인터넷을 통한 '외전'으로서의 성 지식의 습득이 현실인 상황에서, <까칠 남녀>가 '편견'과 불평등'이란 담론에 입각하여, 남성 중심의 피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적절했지만, 어쩌면 콘돔 대신 랩을 쓰는 지금의 열악한 현실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피임', 그리고 '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계몽'이 절실한 상황이 아닐지라는 우려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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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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