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가 있다. 곧 서른이 되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양 손의 일과 사랑 모두 어떻게든 잘 건사해 보려고 노력하는 여자 유현, 돌아온 싱글로 무려 서른아홉의 나이에 주책이다 생각하면서도 대학생 애인을 두고 캐나다에서 만난 연하의 남자와의 미래를 꿈꿔보는 여자 세진, 그리고 무려 열아홉이라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어른들의 세상과 자신 사이에 금을 그어놓고 이해되지 않는다 하면서도 점점 빠져드는 여자 지아. 이 세 명의 여자가 한 남자와의 사랑으로 인해 얽히고 고뇌하고 성장(?)하는 19 29 39는 젊은 여성 고정 팬을 가진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압구정 다이어리 등의 작가들이 모여 기획한 소설로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칙릿 소설(①)의 전형적 구조를 착실히 답습하고 있다.

‘Sex and City’의 그 자유분방한 성이 충격을 준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미혼 여성 중 80% 이상이 결혼 전 성관계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통계(②)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우리 여성들의 성의식은 뉴요커 저리 가라다. 그에 따라 영화나 소설 등 대중매체는 섹스를 남녀 사이의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이 작품 역시 그런 최근의 경향에 부응 세 여성은 굳이 사랑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고 남자와의 성관계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리뷰들을 보면 상당수가 자기 나이 또래 주인공들이 하는 고민에 절절한 공감을 표하듯 패션 트렌드처럼 동시대 여성들의 생태와 습성을 세대별로 충실히 반영하려 애쓴다. 그리고 이런 묘사들은 이어진 그녀들의 상황에 대한 감정 몰입과 당당한 선택에 대한 선망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세 여성은 쉽게 한 남자와 섹스를 나눈다는 공통점을 차치하고는 여성이란 동일한 젠더를 지녔음에도 세대를 달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다른 양태의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차이한이란 남자의 따듯한 미소를 좋아했지만, 19살이 그가 베풀어 주는 경제적 혜택의 은혜와 배려에 녹아내린 반면, 39살은 그를 품어주고픈 모성적 보호 본능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각 라운드 첫머리에 세대별로 구분된 세세한 취향처럼 그녀들의 사랑도 나이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른 사랑은 소설의 마무리에서 보호자 같은, 혹은 동반자연 하는 파트너와의 조우, 혹은 이제 더는 폐경에의 두려움 없이 나의 아이를 갖는 것으로 환타스틱하게 충족된다. 이러한 도발적일 정도로 개방적인 성의식에 대한 재고 없는 묘사나 여성의 모습을 젊어선 철없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현실에 눈을 뜨고, 더 나이가 들면 모성적이 된다는 식으로 세대별 스테레오 타입으로 규정한 설정 등은 또 다른 주입식 교육처럼 그 자체로 여성에 대한 왜곡, 혹은 폄하의 위험성을 낳을 수 있다. 게다가 비겁한 사랑을 의리(?)로 봉사하는 남주인공의 부도덕함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무수한 남성 중심적 이야기의 여성상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칙릿에서 남성은 그저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무언가를 해주는 대상이면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들 아니 굳이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바로 우리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한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사랑의 쟁취가 아니라 확고한 지위의 쟁취, 나아가 자신의 혈육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공고화를 결정하기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목표였었다. 하지만 19 29 39살의 세 여성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노나메기였음을 깨닫는 순간 머리끄덩이 붙잡고 그 자리는 내 꺼라고 싸우는 대신 쿨하게 이별을 선언한다. 심지어 세 여인들은 마치 자기가 더 상처받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쿨하다는 것에 좌절하며 자신이 더 쿨하지 못함을 자책하기까지 한다(③). 심지어 서로 돕겠단다. 이 매력적인 ‘쿨함’은 더 이상 남성에 의해 부여되는 삶이 아니라 거기에 연연하지 않아도 자신이 쟁취할 수 있는 삶을 이 시대의 여성들이 살 수 있는 조건(특히 경제적으로)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④). 또 칙릿 속 빈번하게 등장하게 ‘쿨함’의 화두는 그만큼 독자인 여성들 역시 그것을 추구한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19 29 39를 비롯한 대부분의 칙릿은 무척 부르조아적이다(⑤). 따라서 서른 넘어 다니던 직장 때려치고 사진 찍는다고 누구나 다 사진작가가 되고 책을 낼 수는 없듯 조건이 되지 못한 누군가가 섣부르게 그녀들의 쿨함을 따라 하려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인 부작용이 항존한다. 차이한이 내놓은 통장이 없다면 미혼모의 길을 가며 여유롭게 그를 놓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로맨스 코미디처럼 상큼한 출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에 눈을 감아선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①여성을 가리키는 속어 chick와 소설 literature의 합성어.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일과 사랑, 소비 성향들을 가볍게 그려내고 있다.

②주간 동아 2010년 11월 8일자, ‘그래 밝힌다 어쩔래’ 중 듀오 홈페이지를 통해 미혼 여성 316명을 대상으로 조사, 82.6%가 결혼 전 성관계를 할 수 있다. 53.5%가 결혼과 섹스는 무관하다고 대답했다.

③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김혜남, 갤리온,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③). 사람들이 혹하는 ‘쿨’의 핵심은 쿨하게 보이는데 있다고, 겉으로는 남의 시선에 무관심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러는 척할 뿐 타인의 눈에 투영된 자신의 이미지에 연연하는 데서 나온, 상처받기 싫은 현대인의 처세술에 불과하다고 정의 내린다.

④또한 같은 책에서 김혜남은 사람들은 삶이 그들에게 쿨함을 허락할 수 있는 정도에서 쿨할 수 있다고 말하며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예를 든다. 즉 파리의 연인에서 쿨할 수 있는 존재는 박신양이지 김정은이 아니듯 쿨함에는 재력이 필요하며 이는 그 무엇보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개념이라고 정의 내린다.

⑤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전제로 하며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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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8.02 16:48

'인권은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자유는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며, 민주주의는 스스로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최근 극우주의가 기승하고 있는 독일 현실에 대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경고성 발언이다. 이와 함께 메르켈 총리는 '독재자가 독일 사회의 다양성을 쓸어버리는데 고작 6개월이 걸렸다. 나치의 부상과 함께 한 엘리트 들과 이를 묵인한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다시 한번 독일인들의 각오를 촉구했다.

 

벌집을 발로 찬 소녀. 2

 

유럽 쪽 작품을 읽다보면 아동성애자 등 같은 이상 성범죄에 대한 것을 다룬 소설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아동성애자이건 혹은 그렇지 않은 여타 성범죄이건, 그 범죄 심리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이른바, '남성 우월주의' 혹은 '가부장주의'적 사고방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가부장중의'적 사고방식에 의존해 자신의 파시즘적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산시킨 것이 바로 위에서 메르켈이 경종을 울리고 있는 '나치즘'이다.

 

스티그 라르손

 

스티그 라르손은 바로 그런 유럽 사회의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해치는 극우 세력에 대항한 언론사의 기자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쓴 '밀레니엄 3부작'은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임과 동시에, 스티그 라르손이 싸워왔던 그 극우주의 세력의 그물과도 같은 실체를 낱낱이 폭로한 작품이기도 하다.

 

밀레니엄 1부가, 스웨덴의 전통적인 기업 가문인 방예르 가문의 추악한 과거를 역추적해 감으로써 아동성애자 혹은 이상성애자의 근원이 나찌즘 혹은 극단적 극우파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다면,

밀레니엄 2부를 통해, 2차 대전이 종전된지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 세력들의 잔재가 민주주의 국가로 스며들어 국가적 비호를 받으며 그 사회적 악의 근원으로 성장되는 과정을 폭로했다.

1부와 2부가 잡지 [밀레니엄]의 열혈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2부의 '주구' 샬라와 묵은 해원을 가진 가족의 일원이자, 천재 해커인 리스베트의 눈부신 활약을 통해 거대한 음모를 밝혀가는 과정이었다면, 그에 반해 3부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은, 지금까지 스웨덴 사회에 암약해 왔던 전근대적 악의 세력을 민주주의적 세력이 힘을 모아 소탕하며 정리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기에 3부를 읽다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미카엘의 러브 모드나 마지막 오빠와의 조우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의 활약이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리스베트는 2부 마지막 아버지와의 일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3부 중반까지 침상 신세를 지는 신세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 두 사람의 활약과 달리, 국가 기관 속의 또 다른 권력으로 행세하며 지나간 자신들의 과오를 덮거나 확대하기 위해 활동하는 극우적 세력들과, 그들에 맞서 스웨덴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뭉치는 검, 경, 안보기구의 연합 작전이야말로 바로 밀레니엄 3부의 대미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흔히 국가 기관의 일원이 되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보수적 혹은 자기 안위적 사고 방식이, 스웨덴이라는 국가에서는 그들이 이뤄낸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움으로 발현되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웨덴 역시 그들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때로는 보수적 정당이 정권을 잡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이루는 정체성을 만드는 그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민주의' 정신이 정부의 관료들을 통해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묘한 쾌감과 부러움을 낳는다.

 

결국 이는 한 사회의 건강함 혹은 민주주의 라는 것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길고 지난한 투쟁과 더불어, 그 사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일개 잡지사 기자이건, 고위 공무원이건, 거기에 대한 확고한 자기 신념이 체화되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과정이었다.

 

겨우, '소설 나부랭이' 였지만, 매력적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통해, 스웨덴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 사수를 향한 길고 지난한 투쟁서를 일독한 듯한 보람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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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2.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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