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그리스>의 제목 속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낚여서, 혹시나 풍광이 좋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한 옵니버스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위플래쉬>의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같던(?) j.k 시몬스의 '로맨틱한 사랑'이 기대되었다면 그 기대는 충족하고도 남을 듯하다. 로맨틱하지는 않은데 로맨틱하다? 바로 그런 영화가 <나의 사랑, 그리스>다. 


사랑 영화답게 <나의 사랑, 그리스>는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극중 은퇴한 독일 교수이자, 그리스가 좋아서 현재 그리스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세바스찬 역의 j.k 시몬스의 긴 서언으로 시작된다. 



에로스, 다 알다시피 사랑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때론 짖궃게 사랑의 화살로 서로 사랑해서는 안될 사이를 연결하여 운명에 휘말리도록 만드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연히 찔린 자신의 화살로 인해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에로스의 운명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사랑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짚는 것으로 '프롤로그'를 대신한다. 그렇게 인간사를 뜻하지 않는 '운명'에 빠뜨릴 에로스의 화살이 그리스의 한 가족에게 세 발이나 쏘아진다. 

평범한 그리스의 한 가족이 있다. 
이제는 말년의 평화로움을 즐겨야 할 나이의 가장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란 나라는 그에게서 그 '말년의 휴식'을 빼앗아 갔다. 그는 오늘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재산인 차를 팔러가는 길이다. 한때 가게를 세 개나 운영하던 잘 나가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한 대 남은 차마저 넘기러 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행상, 바다 건너 온 이방인이다. 불같이 화를 쏟아붓는 그, 불현듯 자신에게, 그리고 그리스의 모든 가장들에게 벌어진 불행이 바로 이들 '이방인' 때문이란 생각에 멈춘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우유부단한 국가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야곰야곰 좀 먹어 오는 저들 이방인을 '응징'하고자 나선다. 

에게해와 지중해, 이오니아 해,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 덕분에 일찌기 그 바다를 통해 고대 세계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였으며, 그 바다를 통해 유입된 동양의 문물을 통해 서양 고전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21세기의 그리스는 그 열려진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그 예전 '화려한 그리스 문명의 통로였던 곳에 기근과 전쟁을 피해 찾아든 '이방인'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21세기의 그리스는 유럽 연합의 도움없이는 스스로를 연명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라는 것. 그 국가적 채무의 부담은 고스란히 그리스 국민들에게 전과되어, 이미 그리스인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여러 다큐와 뉴스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그런데 쏟아져 들어오는 이방인이라니!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그리스의 아버지가 보인 결단은 그들을 향해 곤봉과 총을 드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문제, 자신의 세대가 실패한 삶, 그리고 자신의 세대가 일군 국가가 빚어낸 실패를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세우는 방식이 낯설지 않다. 촛불이 불타오르던 그 광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 '종교집단'처럼 자신들의 지나간 역사를 붙들고 강력하게 저항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의 모습과 공교롭게도 오버랩된다. 지난 4월 oecd가 발표한 소비자 심리 지수에서 나란히 꼴찌에서 둘째, 세째를 차지한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버지 세대가 결국 거리에서 그 '아들, 딸'의 세대와 맞부딪치듯, 그리스의 아버지 역시 딸과 맞닦뜨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세대 충돌 사이에 '경찰'이라는 방패가 있었던 것과 달리, 공권력이 무기력해지고, 그 공권력의 빈틈을 '파시스트'가 된 아버지가 판을 치고 다니는 사이, 아버지의 적을 사랑했던 딸 다프네는 아버지가 우려하듯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동지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시대의 또 한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죽음'을 먹고 마무리된다. 

이렇게 그리스 한 가정에 쏘아진 첫 번째 화살은 그 제목처럼 '부메랑'이 되어 아버지가 토해낸 적개심의 추진력으로 딸의 가슴을 향하고 만다. 그렇게 영화의 첫 번째는 아버지와 딸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그리스 인과 그리스가 배척하고 있는 시리아로 대표되는 이방인의 관계를 '비극적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스인과 이방인, 엇갈린 갑을의 사랑
이방인과의 금지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에서 '시리아'와 '그리스'의 관계에서 그리스가 갑이었다면, 이번엔 그 관계가 역전이 되어 그리스가 '을'인 처지의 사랑이다. 

우연히 바에서 만나 원나잇을 하게 된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와 그리스의 지오르고, 그리고 그리스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그리스 주부 마리아와 독일에서 온 은퇴한 학자 세바스찬. 엘리제와 지오르고의 접점이 된 건 지오르고의 우울증 약 로세프트 50mg이고, 마리아와 세바스찬의 교각이 된 건 토마토 한 팩이다. 한 알의 약과 한 팩의 토마토보다, 더 절묘하게 현재 그리스 중년과 노년들이 겪는 고통을 설명할 대상은 없다. 

감봉과 감원의 위협 속에 파산지경에 몰린 그리스 경제에서 빚에 허덕이며 가정 불화까지 겪는 지오르고가 버텨가는 방법은 우울증 약,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는 그런 지오르고를 '우유부단' 혹은 '자기 도피'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유럽의 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지오르고의 회사 상사로 등장하여 살인적인 감원을 실행해가야 하는 엘리제, 그런 엘리제와 동료,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부유하는 지오르고의 운명은, 결국 마지막 엘리제가 털어넣는 로세프트 한 말 말고는 달리 도망칠 곳이 없다. 



마리아는 어떤가? 허리가 안좋아서 도움을 청한 이방인에게 마리아는 마음껏 토마토 한 봉지조차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리스가 좋아 은퇴후 그리스를 찾은 세바스찬에게 그런 솔직한 마리아가 매력적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슈퍼마켓을 환타스틱한 공간으로 바꾸어가며 이어지는 그들의 두 번째 사랑. 그건 그저 늦바람이 아니라, 이제 가족을 위해 더는 할 일이 없어 좌절해 가는 주부 마리아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두 번째 인생의 기회는 뜻하지 않은 마리아네 가족의 비극사로 인해 물 건너 가고 만다. 

이방인이라는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면, 성폭행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성과의 플라토닉한 사랑, 원나잇이 무색하게 한없이 빠져든 40대의 늦지만 솔직한 사랑, 그리고 인생의 말미에 다시 한번 꿈꾸고 싶은 두 번 째 사랑. 하지만 그 사랑들이 그리스라는 사회 속에 깃들여지면, 그리고 그 대상들이 그리스의 이방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그 세 개의 파편적인 사랑이 '가족'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한 가족의 식탁에서 맞닦뜨려진다면. 정작 세 가지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을 모르지만, 관객들은 아는 그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렬하게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설명한다. 

가장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해낸 드라마, 에로스라는 신이 그의 화살을 통해 그리스 신화 속 수많은 분쟁과 비극의 도화선을 만들듯, 이 세 편의 사랑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가 그 지정학적 위치답게 바다를 통해, 그리고 육지와의 관계에서 처하고 있는 입지를 정확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아내 마리아는 저들에 대해 적개심을 쏟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고. 그렇다. 사랑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원제는 world apart, Enas Allos Kosmos.  Enas Allos Kosmos는 그리스어로 Ένας Άλλος Κόσμος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이다.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혀진 관계 그 이상의 그리스라는 국가가 담은 관계들.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도, 오히려 번역된 '나의 사랑, 그리스'가 더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영화다. 그리스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세대별 구성원들이 처한 오늘날의 이야기, 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대한 애증이 듬뿍 묻어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잃은 딸의 이름은 다프네, 다프네는 나무의 요정,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그녀는 월계수가 되었다. 나무의 요정이 사라진 숲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월계수는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나무, 그 월계수가 사라진 그리스는? 그렇게 영화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사랑이라는 가장  사적인 감정조차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보편적 정의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나의 사랑, 그리스>, 이 이방의 영화를 통해 역시나 oecd 꼴찌 국가인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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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4 16:42

요즘 꽃중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배우 조성하씨는, ‘어렸을 때 내가 중년이 되면 그냥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꽃중년이라니, 뭔가 샤방한 느낌에, 참 멋있는 말인 거 같다’라며 꽃중년으로 불려지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의 타성에 젖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였던 ‘아저씨’가 어느 틈에 잘생긴 배우 ‘원빈’의 대명사가 되더니, 외모는 물론, 새로운 문화와 사고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멋진 중년 남성, 꽃중년이 이 봄의 대세다.

꽃중년의 속사정

예전과 달리 30~40대 여성들은 ‘애’를 낳아도, ‘애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때 이른 골다공증 예방에, 보톡스 등 시술을 넘어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단다. 남자라고 다르랴. 30~40대를 겨냥한 화장품 시장이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피부관리실 정도는 애교라는데....... 의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예전 보다 10년 정도 더 살게 되었지만, 노인만이 아니라, 노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이들까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해 역주행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역 전력질주, 그저 겉멋이라기엔 속사정이 만만치 않다.

의학의 발달(100세까지는 너끈하다는 과학적 주장이 있다)과 베이비 붐(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국 전쟁 이후 20여 년 간 출산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의 세대) 세대의 노화로 전 세계 연령층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경제 성장만큼 빠르게 고령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1960년 평균 수명 52.4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은 2006년 기준 77세로 불과 40여년 사이에 평균 25년 이상을 더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닦은 40대에서 은퇴를 하기까지의 어언 30여년 정도가(서드 에이지, Third Age) 하늘에서 뚝! 예전처럼 적당히 아저씨였다가 할아버지였다가 하며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교육이 완성되는 퍼스트 에이지First Age가 20대 중반까지, 사회생활 적응기 세컨드 세이지Second Age가 30대 중반, 70대 정도 진정한 은퇴 후 죽기까지 포스 에이지Forth Age가 10여 년간 이라면 서드 에이지 30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길다는 것, 즉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다.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60% 이상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다’라는 의욕적 응답을 내놓았다. 나이가 든다고 예전처럼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하다 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뒷방 늙은이라기엔 정정하게 보내는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년이 정년(停年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은 필수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현직에서 뛸 수 있는 ‘청춘’이라고 느끼며, ‘청춘’이어야 하며, 70세가 될 때까지 ‘청춘’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하물며 세 번째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그보다 젊은 4,50대들이야 어떻겠는가? 꽃중년이라는 말 그대로, 한참 만개한 꽃 그 자체다.

꽃중년의 도전

살아야 할 시간은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20세 전후로 노화가 시작되는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종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늙어가는 신체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 했던 근육 특집처럼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후드티나, 캔버스화 정도는 거리낌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센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모아 놓은 편집 매장이나 남성 잡지도 기웃거려 봐야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에스프레소 정도는 기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처럼 원산지 별 미각도 개발 중이다. 다행히도 꽃중년에게는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젊음은 없지만, 그 젊음을 커버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이 있다. 그 기반에 편승하여 불황도 불문, 자신에게 투자를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꽃중년이 되겠다고 뽀샤시한 외모와 탄탄한 허우대만 떠올려서는 속빈 강정이다. 진정한 꽃중년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의 주류의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할 수 있는 주체적 삶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눈을 부벼 가면서도 스마트 폰 활용에 골똘하고, 조작이 까다로운 최신 유행인 하이브리드 카메라를 사는데 주저치 않고 인문서 등의 책을 구입하는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돈을 쓰고 있는 게 요즘 4,50대다. 아저씨라기엔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지만, 오빠라기엔 연륜 있어 보이는 꽃중년들에게 기존의 ‘꼰대’는 저리가라, 전통적인 수직적 대인 관계에서 탈피 남녀노소 누구와도 ‘프렌드쉽’을 나눌 수 있는 있는 세련된 의식은 필수다.

하지만 이런 ‘깨인 마인드’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학창시절 이래로 줄곧 IQ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인생이 EQ(감성 지수) SQ(사회성 지수)를 갖춘 전천후 인간형으로 거듭나려면 다방면의 학습이나 문화 활동, 심지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늙을 틈이 없다. 게다가 그간 공부하랴, 한때는 민주화 운동하랴, 또 한 때는 돈 모으랴 억제했던 문화적 향수는 삶의 여유로움을 타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세시봉’이니, ‘7080콘서트’니, 심지어 ‘나가수’까지 꽃중년들이 즐기는 컨텐츠는 아이돌 음악조차 밀어낼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영화는 어떻고 ‘써니’에서 시작돼서 ‘댄싱퀸’까지 이들 세대의 공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다.

특히 386이니 486이라 통칭되는 우리나라의 꽃중년 세대들에게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이른바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그래서 여전히 이 시대의 정치나 여론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소명 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주인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저 의식의 짱짱함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문화적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샤방샤방한 꽃중년’으로 도전 중이다. 자고로 나뭇가지는 유연할수록 쉽게 꺾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시대 가장 낭창낭창한 젊음 꽃중년의 활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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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8.02 16:45

일찍이 셰익스피어이래 새로운 서사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이 거실을 차지한 자그마한 네모난 화면이건, 암흑의 공간 아래 다중을 모아놓은 넓직한 화면이든,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의 맘을 재미난 이야기로 ‘좌지우지’해야 할 대중문화 사업에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면 비틀고 뒤집고, 하다못해 저 먼 우주에서부터 심해까지 뒤져가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절대 숙명이자 숙원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한 시대를 올곧이 다룬 시대극도, 정형화된 특정 분야를 다룬 장르물도 자신의 분야만을 고집하기는 더는 힘들어 진 형편이다. 그런 와중에, 2012년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계에서는 마치 서로 ‘통’하였다는 듯이 앞다퉈, ‘시대를 거슬러’ 사랑을 논하고, 역사를 논한 작품들이 우후죽순 등장하였다. sbs의 <옥탑방 왕세자>을 시작으로,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 mbc의 <닥터 진>, sbsㅇ의 <신의>까지 네 작품이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여 기존 드라마의 형식적 틀을 깨고, 신선한 시도로 시청자들을 찾아들었다.

1. ‘시간’이라는 딜레마, 혹은 아이템

원론적으로 시간의 변이에 대한 상상력의 출발은 언제나 ‘아인슈타인’을 걸고넘어질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통해, 빛 등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상대적이며, 가상의 조건에서 빛의 속도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이상적인 이론을 펼쳐졌고, 지금 여기에서, 그때 거기를 넘볼 수 있는, ‘노력’하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인간적 ‘로망’이 잉태되었고, ‘타임머신’, ‘평행우주론’ 등의 수많은 상상력의 산물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와 ‘그때 그곳’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에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흘러가는 그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간은 엄밀히 따지자면, 현대 물리학의 정의처럼, 시간과 공간의 조합, 즉, 시공간의 연합체로서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 즉, 지금 이 장소에서 우리가 존재하듯이, 그때 그 장소에서 존재하였다라는 ‘역사적’ 공간감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타임슬립, ‘시간을 건너뛴다’라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서, 그때 그곳까지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의사가 환자를 고치는 뻔한 서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곳과, 그때 그곳이 함께 배경으로 제공되어, 결국 공간의 확장을 통해 이야기가 풍부해 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역사극이나, 현대물이라는 제한된 장르를 뛰어넘어 이를 결합한 새로운 ‘퓨전’이라는 형식의 ‘싱싱함’을 전제로 하고 들어간다. 마치 게임의 ‘아이템’을 새로 하나 장착하듯이.

<옥탑방 왕세자>의 초반,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조선의 왕세자(박유천 분) 일행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져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 한글 등 이 시대의 문물을 제대로 모르고, 이젠 고궁이 되어버린 곳 앞에서 ‘문을 열라’고 외치며, 다짜고짜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내오너라’는 해프닝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새삼 ‘낯설게’ 함으로써 시간을 건너뛰었다는 설정 자체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닥터 진>과 <신의>에서는 반대로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자가 역사적 상황을 조우했을 때의 재미 역시 또 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자신(진혁; 송승헌 분)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알고 봤더니, 흥선 대원군(이하응 분)이었다던가,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 죽어간다고 안고 찾아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후에 고종 임금이 된다던가, 시청자들은 자신들 역시 상식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등장인물을 통해 조우함으로써 당혹감과 더불어, ‘패’을 하나 쥔 듯한 의기양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시간을 건너뛴다’는 것은 하나의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의 존재의 이동이 되는 것으로 이미 한 장소에서 형성된 기억(역사)향한 도전이 되는 것일 수도, 이미 완료된 존재의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일 수도 있다. 즉 이 경우, 시간은 시간을 건너 뛴 존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딜레마로 작용한다.

<닥터 진>과 <신의>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 간 주인공들은 모두 의사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자신이 이미 체득하고 있는 의학적 지식과 과거의 의학 사이에 ‘갭’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항생제’가 그것이다. <닥터 진>에서 진혁(송승헌 분)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 ‘항생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지만, 그가 살려놓은 사람이 결국은 다시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던가, 그의 의술에 따라 역사가 뒤바뀔 운명에 처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신의>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의술을 알고 역시 ‘항생제’를 만들어 내려했던 유은수(김희선 분)가 졸지에 ‘신의’가 되어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로 왔을 때는 이러한 딜레마는 등장인물의 인식의 딜레마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옥탑방 왕세자>에서 왕세자(박유천 분)는 자신이 현대로 날아 온 이유가 빈궁 살인 사건 때문이라 믿고, 현대에서 빈궁을 다시 만나 그녀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왕세자의 문제 해결 방식은, 그가 과거에서 겪은 문제가 왜곡되었던 것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인해, 오히려 현재의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여자 주인공(박하; 한지민 분)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했을 때, 가장 결정적인 딜레마는, ‘건너뛰기’는 했으되, 시간을 건너 뛴 공간에서 과거에 간 현대인이든, 현대로 넘어 온 과거인이든, 또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일행은 현대로 떨어진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박하(한지민 분)’네 옥탑방을 고수하지만, 정작 박하와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왕세자 일행도, 왕세자도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닥터 진>의 진혁 의원도 홍영래의 수술 과정에서 현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신의>의 유은수에게도 다시 돌아가야 할 날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 <인현왕후의 남자>처럼, 이 딜레마를 극복할 ‘부적’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거나, <신의>의 유은수처럼 중복 ‘타임슬립’을 행하기도 하지만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적 장애를 없앨 완벽한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이렇게 ‘타임슬립’이라는 드라마적 장치는 때로는 딜레마가 되어 주인공의 행로의 장애가 되고, 때로는 마치 게임에서 주어진 아이템처럼 주인공에게 유리한 무기가 되어, 구태의연한 서사를 확장하고 풍부하게 한다. 그렇다면 2012년의 네 드라마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타임슬립’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충분히 충족해 냈을까?

2. 시간을 달리는 사랑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 사이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보다 더 치명적인 사랑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두 남녀의 사랑이 아닐까? 그러기에, <옥탑방 왕세자>를 비롯해 <인현왕후의 남자>, <닥터 진>, <신의>까지 모두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을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닥터 진>의 경우, 일본 드라마 <jin-仁특>이 에도 막부 시대로 넘어간 의사의 인술을 그려내는데 치중한 반면, 한국의 <닥터 진>은 원작에 없는 여주인공의 약혼자 ‘김경탁’이란 인물을 만들어 결국 구한말 격동기에 휩쓸린 현대의 의사보다는 세 주인공의 삼각관계를 풀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신의>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던 모래시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달리,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킹메이커도, 진정한 개혁을 이룬 왕이란 담론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채 최영-유은수 커플의 사랑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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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7.22 21:33

자우림 밴드의 EV1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기묘한 얘기 하나가 있었어. EV1이라 불리던 차의 얘기........아직은 달릴 수가 있었는데, 사막 한가운데로 버려진 빨간색 초록색 EV1’ 여기서 EV는 전기 자동차, Electric Vehicle의 약자다. 이 노래가 담긴 자우림의 음반 제목이 음로론인 것처럼, 2006년 만들어진 ‘전기 자동차를 누가 죽였나’라는 다큐는 톰 행크스, 멜 깁슨 등도 즐겨 탔고, 출퇴근용으로도 많이 이용되던 GM의 전기 자동차 EV1이 석유를 많이 팔고 싶은 석유 회사들의 음로에 의해 결국 사막에서 폐기되게 되었다는 음모설을 다루고 있다.

전기 자동차의 부활

언뜻 그럴 듯한 이 무시무시한(?) 음모론이 사실이었을까? 1873년 영국에서 최초 개발된 전기 자동차는 19세기말 충전 가능한 배터리가 개발되면서 1900년대 초만 해도 미국 및 유럽에서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로 팔렸었다. 하지만 언제나 음모론이라면 솔깃해지는 우리들 맘과 달리 가솔린 내연 기관이 발전하게 되면서 동일한 조건을 놓고 봤을 때 가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에너지 효율에 최대 속력은 50km에 불과, 설상가상으로 높은 유지비용과 긴 충전 시간을 가진 전기 자동차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가 오래오래 거침없이 달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그 주요 부분인 배터리가 가솔린 자동차의 내연 기관의 일부인 시동기로 흡수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고갈 위기에 있는 세계 석유의 1/3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그 연소 과정에서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그 양이 전 산업 분야 중 25%나 차지하는 등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전기 자동차가 나라 별 온실 가스 감축이 의무화 되는 이 시대의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2012년 현재 친환경 자동차 하면 누구나 다 전기 자동차를 연상할 정도가 되었고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자동차 회사들은 너도 나도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거나 생산 할 예정이다. 그래서 2020년 정도가 되면 전 세계적으로 300만대 정도가 되고, 이는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5.5%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조사)

우리나라 역시 수년 전에 현대의 ‘블루온’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기아의 ‘레이’가 2500 대 정도 관공서나 지자체에 납품되기 시작했으며 르노 삼성도 ‘SM3'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란다. 특히 경남 창원시, 울릉군, 경상북도, 제주도 등 지자체는 ‘탄소 없는 도시’의 상징으로 앞 다퉈 전기차를 구입하고 있다.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전기 자동차는 이제 최고 시속 130Km/h에 1회 충전에 135Km(기아 레이)에서 501km(테슬러)를 갈 수 있는 완전체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다. 주유량을 표시하던 계기판에는 전력 소비량과 배터리 잔여량이 표시되고 이산화탄소 줄임량과 다음 주유소 대신 다음 충전소 위치가 표시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정 생산에 관공서용에 불과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전기 자동차의 포르쉐를 꿈꾸는 테슬러 등은 대중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딜레마, 그리고 완충적 대안

환경이 최고의 화두가 되는 시대, 사람들은 100% 전기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를 꿈꾼다. 하지만 전기 자동차가 만들어진 이래 배터리의 성능과 충전 그리고 가격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전기 자동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추워도 온 나라가 전력 부족 비상이 걸리는 현재, 과연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먹여 살릴 전기는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에서 부터 또 그 값은 가정용 수준으로 할 건지, 산업용 수준으로 해야 할 지도 문제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어떻고. 게다가 진화된 핸드폰의 가장 큰 문제가 짧은 배터리인데 과연 전기 자동차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으며 그 충전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무엇보다 아직도 개발 ing인 전기자동차 그 자체가 정부의 도움 없이 개인이 사기엔 너무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래서 과도기적으로 등장한 자동차들이 있다. ‘기름 40L로 서울 부산 왕복, 요즘은 어쩌다 한번 넣는 느낌, 언젠가 모두 하이브리드를 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라며 이적, 원빈이 나와 ‘개념있게’ 타자라며 광고를 하는 ‘하이브리드(HEV, Hybrid Electric Vehicle)’ 자동차가 바로 그것이다.

하이브리드는 ‘두 개 이상의 요소가 융합되어 더 높은 성능을 가진’다는 의미로도 알 수 있듯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저속 구간에는 전기 배터리의 힘으로 움직이고 고속 구간에는 가솔린 엔지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이다. 당연히 전기와 석유를 동시에 쓰니까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정도만 되도 헐리우드 환경주의 스타들이 레드 카펫 앞에 상징적으로 하이브리드의 대표적 자동차인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친환경적’인 차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전기로 움직이는 구간을 늘이기 위해 고민한다. 그 결과,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쓰는 동안에는 전기로 움직이고, 전기가 떨어지면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차(PHEV, 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가 등장했다. 심지어 이 차의 배터리는 다시 충전이 가능하다. 당분간 세계의 자동차 시장은 마치 궁극적으로 100% 배터리에만 의지하는 전기자동차 BEV((Battery Electric Vehicle)를 지향하며 하이브리드 자동차 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PHEV와의 춘추 전국 시대를 과도기적으로 겪을 듯하다.

전기 자동차로 버전 업!

제레미 리프킨(저서 노동의 종말, 미 펜실베니아대 교수)교수는 ‘3차 산업 혁명’이란 책을 통해 에너지 소비 중심인 현 사회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절실하며 친환경적 기술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는 비싼 전기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내연 기관의 부피를 줄인 전기 자동차를 주차하기 쉬운 도시형 작은 모델로 개발, 심야 전기를 활용하거나 리스하는 방식의 배터리 보급에 가전 기기와 상호 교통할 수 있는 보다 IT, 통신, 전력 등의 핵심 기술이 응집된 보다 스마트한 영역까지 전기 자동차의 도입을 통해 변화된 세상 그것이 바로 새로운 환경 중심의 발전된 사회이다. 기름 탱크 대신 배터리를 단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고, 주유소 대신 스마트 폰과 나란히 자동차에 충전기를 꼽아 놓는 것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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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7.22 21:32

아저씨는 싫다! 꽃중년, 미중년이라 불러다오

요즘 꽃중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배우 조성하씨는, ‘어렸을 때 내가 중년이 되면 그냥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꽃중년이라니, 뭔가 샤방한 느낌에, 참 멋있는 말인 거 같다’라며 꽃중년으로 불려지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의 타성에 젖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였던 ‘아저씨’가 어느 틈에 잘생긴 배우 ‘원빈’의 대명사가 되더니, 외모는 물론, 새로운 문화와 사고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멋진 중년 남성, 꽃중년이 이 봄의 대세다.

꽃중년의 속사정

예전과 달리 30~40대 여성들은 ‘애’를 낳아도, ‘애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때 이른 골다공증 예방에, 보톡스 등 시술을 넘어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단다. 남자라고 다르랴. 30~40대를 겨냥한 화장품 시장이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피부관리실 정도는 애교라는데....... 의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예전 보다 10년 정도 더 살게 되었지만, 노인만이 아니라, 노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이들까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해 역주행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역 전력질주, 그저 겉멋이라기엔 속사정이 만만치 않다.

의학의 발달(100세까지는 너끈하다는 과학적 주장이 있다)과 베이비 붐(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국 전쟁 이후 20여 년 간 출산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의 세대) 세대의 노화로 전 세계 연령층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경제 성장만큼 빠르게 고령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1960년 평균 수명 52.4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은 2006년 기준 77세로 불과 40여년 사이에 평균 25년 이상을 더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닦은 40대에서 은퇴를 하기까지의 어언 30여년 정도가(서드 에이지, Third Age) 하늘에서 뚝! 예전처럼 적당히 아저씨였다가 할아버지였다가 하며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교육이 완성되는 퍼스트 에이지First Age가 20대 중반까지, 사회생활 적응기 세컨드 세이지Second Age가 30대 중반, 70대 정도 진정한 은퇴 후 죽기까지 포스 에이지Forth Age가 10여 년간 이라면 서드 에이지 30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길다는 것, 즉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다.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60% 이상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다’라는 의욕적 응답을 내놓았다. 나이가 든다고 예전처럼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하다 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뒷방 늙은이라기엔 정정하게 보내는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년이 정년(停年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은 필수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현직에서 뛸 수 있는 ‘청춘’이라고 느끼며, ‘청춘’이어야 하며, 70세가 될 때까지 ‘청춘’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하물며 세 번째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그보다 젊은 4,50대들이야 어떻겠는가? 꽃중년이라는 말 그대로, 한참 만개한 꽃 그 자체다.

꽃중년의 도전

살아야 할 시간은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20세 전후로 노화가 시작되는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종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늙어가는 신체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 했던 근육 특집처럼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후드티나, 캔버스화 정도는 거리낌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센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모아 놓은 편집 매장이나 남성 잡지도 기웃거려 봐야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에스프레소 정도는 기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처럼 원산지 별 미각도 개발 중이다. 다행히도 꽃중년에게는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젊음은 없지만, 그 젊음을 커버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이 있다. 그 기반에 편승하여 불황도 불문, 자신에게 투자를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꽃중년이 되겠다고 뽀샤시한 외모와 탄탄한 허우대만 떠올려서는 속빈 강정이다. 진정한 꽃중년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의 주류의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할 수 있는 주체적 삶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눈을 부벼 가면서도 스마트 폰 활용에 골똘하고, 조작이 까다로운 최신 유행인 하이브리드 카메라를 사는데 주저치 않고 인문서 등의 책을 구입하는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돈을 쓰고 있는 게 요즘 4,50대다. 아저씨라기엔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지만, 오빠라기엔 연륜 있어 보이는 꽃중년들에게 기존의 ‘꼰대’는 저리가라, 전통적인 수직적 대인 관계에서 탈피 남녀노소 누구와도 ‘프렌드쉽’을 나눌 수 있는 있는 세련된 의식은 필수다.

하지만 이런 ‘깨인 마인드’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학창시절 이래로 줄곧 IQ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인생이 EQ(감성 지수) SQ(사회성 지수)를 갖춘 전천후 인간형으로 거듭나려면 다방면의 학습이나 문화 활동, 심지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늙을 틈이 없다. 게다가 그간 공부하랴, 한때는 민주화 운동하랴, 또 한 때는 돈 모으랴 억제했던 문화적 향수는 삶의 여유로움을 타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세시봉’이니, ‘7080콘서트’니, 심지어 ‘나가수’까지 꽃중년들이 즐기는 컨텐츠는 아이돌 음악조차 밀어낼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영화는 어떻고 ‘써니’에서 시작돼서 ‘댄싱퀸’까지 이들 세대의 공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다.

특히 386이니 486이라 통칭되는 우리나라의 꽃중년 세대들에게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이른바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그래서 여전히 이 시대의 정치나 여론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소명 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주인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저 의식의 짱짱함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문화적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샤방샤방한 꽃중년’으로 도전 중이다. 자고로 나뭇가지는 유연할수록 쉽게 꺾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시대 가장 낭창낭창한 젊음 꽃중년의 활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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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7.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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