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개띠해, 그 중에서도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육십간지 중 서른 다섯 번째 해인 무술 년이다. 육십간지 중 십이지, 열 두 띠로 대표되는 동물의 띠는 12년마다 돌아오고, 그 중 열 한 번째 띠인 '술년', 개띠 생은 올해 육십간지를 한번 돌아낸 61에, 49, 37이 되었다. 환갑에 40대 후반, 서른 중반,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두툼한 '허리' 세대라 해도 무방하다. ebs 다큐 프라임은 설을 기점으로 새로이 시작되는 무술년을 맞이하여 특집으로 각 세대 개띠 들이 살아온 시대와 삶을 들여다 보는 '개띠 열전'을 마련하였다. 




아니 벌써?  58년 개띠
시리즈의 시작을 연건 우리 사회 '베이비 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다. 전쟁의 상흔이 마무리되는 시점 58년, 일본의 전후에 '베이비 부머' 단카이 세대( 團塊世代)가 등장했듯이, 대한민국에는 '58년 개띠' 세대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큐는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를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를 통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한국 종전 후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맞물려 '90만'의 신생아, 그 주인공 베이비 부머 세대, 그들은 전쟁 후 어려운 형편을 넘기기 위해 해먹던 부모님의 '김치죽'을 향수로 기억하는 세대이며, 최초로 이른바 '뺑뺑이 세대'라 칭해지는 '무시험 진학 추첨' 세대이며, 이른바 '얄개'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를 상징하는 세대이자, 비틀즈, 퀸, 아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함께 대학 입학과 함께 '대학 가요제'등 새로운 대학 문화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했다. 88 올림픽, 86아시안 게임으로 상징되는 풍요한 경제 성장 시대, 아파트 문화를 선도했던 세대의 주역이 된 58년 개띠, 하지만 '폭발적인 출산'의 결과물로 '경쟁'이라는 사회적 논리를 표면화시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대, 콩나물 교실에서 복닦이며 경쟁을 했던, 하지만 여전히 교실의 '급훈'이 '서로 돕자였던 '공동체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은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생업'의 현장을 지킨다. 십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나 이름조차 '오순이'가 된 광장 시장의 전 가게를 운영하는 최오순 씨는 공사 현장에서 다친 남편 대신 가장으로 혹한의 추운 날씨에도 광장 시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구 구두 골목의 김태수 씨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의 서리를 눈감아 주던 농촌에서 태어난 김씨에겐 '제화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전하는 산업에 밀려난 제화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정도가 된 대구 제화업의 증인이 되었다. 여전히 재즈무용가로 현장을 지키는 전미례 씨라고 다르지 않다. 



그것만이 내 세상 70년 개띠 
1988년 대학 가요제에서 싱그럽게 등장했던 '담다디'의 이상은 씨가 벌써 데뷔 30주년이 되었다. 그녀처럼 70년에 태어났던 개띠 들도 이제 어언 마흔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58년 개띠가 '무시험 진학 추천제'의 시대였다면 70년대 고도 성장기의 초입에 태어난 개띠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로 교복 대신 '브랜드'를 입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자율화'의 문화적 경험은 그들의 삶에도 관통한다. 

배달 라이더를 구하지 못해 점주 자신이 한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배달을 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의 한동욱 씨는 어느새 '꼰대'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동네를 누비던 소년의 마음이 된다. 임상일 씨라고 다를까.  언더 그라운드 가수와 콜 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단칸방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서슴치 않고 달려가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예술혼을 불태부는 그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달리자 82년 개띠
82년 개띠를 여는 음악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크라잉 넛이 데뷔하던 해 고등학생이던 그들은 '인디 밴드'와 함께 '얼터너테이티브 롹'을 향유하며 '문화의 해방구'를 형성한 세대이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세대, 하지만 이들은 앞선 세대처럼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 답지 않다며 '제대로 잘 사는' 모색의 세대라 불리길 원한다. 

그런 82년 개띠를 대변하는 첫 번 째 키워드는 바로 '워라벨work and balance', 서핑이 좋아 서핑을 파다 서프 보드 제작 수리직인 쉐이퍼가 된 이상문 씨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세상이 얼마나 멋질까?'라며 반문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꿈'을 쫓는 대신 '현재'를 잘 살아내는 '욜로'족이 되기로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8년을 보냈던 방준재 씨는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과감하게 그 일을 그만두고, 대신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던 바리스타 일을 하며 '지금 가진 것만으로 오늘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매진한다. 이들 세대에겐 가성비보단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을 사로잡는)가 우선하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사회를 달궜던 '82년 김지영'의 주인공인 세대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제빵 자영업 황연씨나,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디자인해낸 김효미 광고사 대표는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고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한 인생이라 입을 모은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본,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그려낸 설 특집 '개띠 열전'은 베이비 붐 세대, 자율화 시대, 그리고 n포 세대라 규정되는 세대 그 이상,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열정을 놓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8.02.16 01:55

올림픽이라는 개막식 등으로 인해 일요일 단 한 차례 방영한 스테디 셀러 <황금빛 내인생>은 41.9%로 선방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며 그가 <황금빛 내 인생>을 구치소 내에서 즐겨 시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돈은 해외에 두었지만 외화 유출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어법을 활용하며 대중적 정서와 괴리된 입장을 보이던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을 함께 공감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황금빛 내 인생>이 묘사하는 재벌가의 '갑질'과 오너 일가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재용 부회장의 '자각'에 가장 근접하는 <황금빛 내 인생>속 인물은 아마도 해성 그룹의 아들로써 그의 신념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최도경일 것이다. 


최도경, 해성 그룹의 장녀 노명희(나영희 분)의 외아들이자, 노명호(김병기 분) 회장의 장손이며,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해성 그룹 전략 기획팀 팀장이다. 접촉 사고로 악연을 시작한 그가 그 자리에서 차량 수리비 2000 만원에 당혹스러워 하는 서지안에게 자기 딴에는 통 크게 수리비를 500만원으로 감해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자부심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때문이었다. 



목숨조차 던질 수 있어야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 그대로 하면 귀족이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다. 즉 출생이나 운에 의해서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많은 부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래'가 된 역사적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부터 비롯된다.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포위했다. 결국 기근에 시달리던 칼레는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11개월이나 저항했던 칼레 시민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에드워드 왕은 지도자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외슈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시장, 고위관료, 상류층이 뒤를 이어 7 명의 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다. 단 한 명은 목숨을 건지게 된 상황, 하지만 다음 날 광장에 초라한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걸고 나선 사람은 총 6명, 가장 먼저 제안했던 '피에르'는 이미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피에르의 살신성인은 결국 나머지 6명의 지도자의 목숨을 보존케했으며, 칼레 시민의 안전을 지켰다.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으로 길이 기억되는 이 사건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던져 책임감을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다.

그리고 바로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극중 최도경은 극 초반부터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지안과 연인 사이가 된 그가 당시의 일을 회한에 젖어 말하듯이, 그의 '얄팍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딴에 인심을 쓴다고 깍아줬던 2000만원, 그러나 500만원은 계약직 서지안에게는 여전히 큰 돈이었다. 심지어 서지안이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그가 서지안과 윤하정과의 난투극을 신고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라가고, 서지안을 양평 별장 해프닝에, 결국 해성가로 급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만다. 

소현경 작가는 최도경을 통해, 매번 그가 자부심으로 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서지안에게 가닿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이른바 '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인지 폭로한다. 그렇게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자부심쩔었던' 최도경은 '가지지 못한' 서지안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동시에 자신의 허세를 깨달아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에서도 보여지듯이 '목숨을 던질 정도의 책임감'이 아닌 가진 것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양보라는 게 얼마나 '기만'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최도경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설득해 낸다. 



사랑보다 우선한 자존  
그저 자신이 해성가를 버리고 나오면 당연히 서지안이 자신을 두 팔 벌려 사랑해 줄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지안에 대해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분노하다, 그 끝에서 서지안의 죽음을 만난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재벌가도 버리고 나온 나를 왜 싫어하냐며, 그리고 재벌가가 왜 싫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던 최도경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서지안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색안경을 벗게 된다. 재벌가의 자신과 함께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이젠 비록 정규직도 아닌 목공소 알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서지안의 삶의 선택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벗어던진 건 그저 사랑하는 서지안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받아 다시 재벌가로 돌아가려 했던 자신의 야무진 꿈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을 불쌍하다며 바라봐주었던 서지안을 마음에 품은 그 시점부터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던 재벌가 자제 최도경이 삶은 균열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가졌다'는 그 허황된 궁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있던 최도경을 이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극복'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그저 재벌가 자제의 각성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권유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기 위해 쓰레기통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던 서지안이 그 눈높이을 낮춘게 아니라 버리고 비로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는 과정과, 재벌가의 자제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코에 걸고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 살던 최도경이 계급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온전히 자신으로 서는 과정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의 젊은이들의 삶엔 그들의 꿈이 우선한다.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비로소 찾은 목공소를 매개로한 아티스트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지안이나, 서지안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해성에 들어가는 대신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사업'을 시도하는 최도경, 프랑스 유학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빵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 지수, 그리고 지안, 지수 자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던 청년 사업가 혁 등은 모두 사랑에 앞서 그들의 꿈이라는 존재로 땅에 든든하게 선다. 과연 구치소 안의 이재용 회장에게 이런 작가의 생각이 가닿았을까? 
by meditator 2018.02.12 15:36

다시 또 한 집에 모여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바로 2월 5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이다. 이제 시즌 2까지 완주한 <청춘시대>처럼 이들도 한 집에 모여산다. 그런데, <청춘시대>의 청춘들이 셰어 하우스를 찾아 각자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와이키키>의 청춘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게스트 하우스를 차렸다. 한쪽은 세입자고, 또 다른 한쪽은 사장님인데, 어째 상황은 후자가 더 나쁘다. 물이 끊기고, 조만간 전기도 끊길 예정이란다. 


꿈을 잠시 유보한 청춘들의 고전기 -모던 파머,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모던 파머>라는 작품이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참여한 김기호 작가의 2014년작이다.  sbs를 통해 방영되었지만, 평균 4%를 오르내리던 이 주말 드라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드라마에 유한철 역으로 출연했던 이시언이 극중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다 물렸던 웃픈 에피소드가 예능을 통해 방영되며 괴작(?)으로 드라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모던 파머>는 '귀농'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화두인 시점에서 발 빠르게 젊은이들의 '귀농'을 담으려 했던 드라마다. 물론 '코믹'하게. 인디 밴드 '엑설런트 소울즈'을 꾸렸던 네 청년,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꿈을 도시는 품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귀농', 농사도 짓고, 다시 음악도 해보겠다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의 '귀농'은 그 시작부터 해프닝이다. 

이렇게 2014년 '꿈'을 위해, '꿈'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2018년으로 오면 그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의 꿈은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뛰어넘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회갑 잔치 영상이나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 강동구(김정현 분),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나 현실은 주연 배우의 손가락질 하나에 그의 배우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인 이준기(이이경 분), 말이 좋아 작가지 돈이 되는 글이라면 자소서 대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다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봉두식(손승원 분), 이들 세 친구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벌인 사업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이렇게 드라마는 '꿈'을 위해 '현실'을 택한 청춘들의 딜레마를 밑천으로 삼는다. 그리고 '귀농'을 했던 청춘들이 배추를 키우기도 전에, 시골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듯, <와이키키> 역시 하와이의 로망 와이키키 해변을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으로 작명했지만, 현실은 '중국 특수'가 끊겨 손님 구경한 지가 한참 되어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길, 거기에 남자 셋이 그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절절매는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구 그대로,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오랜 연인과의 커플링을 궁색하게 찾아 헤매고 팔까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강동구를 비롯한 세 청년의 상황은 매 장면 웃긴데, 어쩐지 그 뒷맛은 99%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려내는 청춘의 방식 
<청춘 시대> 시즌1,2는 셰어 하우스를 배경으로 그곳에 모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감성적으로 그려내어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연, 그 '감성'과 '사연' 대신, 해프닝과 웃픔을 택한 <와이키키>에 대한 공감은 어떨까? 

<모던 파머>를 회자시켰던 장면이 이시언의 가슴에 흐르는 우유를 핥아먹는 강아지였듯이, 첫 회 <와이키키>는 또 다른 수유 해프닝을 다룬다. 세 청년의 집에 몰래 아이를 놓고 도망쳤던 한윤아(경인선 분)가 우여곡절 끝에 같이 지내며 모유 수유의 고통을 토로하고, 유축기, 마사지 등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은 마치 <모던 파머>의 오마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웃픈 웃음'이다. 시트콤과 같은 웃픈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소동극이다. 

거기에 일찌기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서 부터, 2008년 kbs2를 통해 방영된 <아빠 셋 엄마 하나>도 비슷한 설정인 '아기'와 아기 엄마를 둘러싼 육아 상황극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호감의 소재이다. 과연 이 '대중적'인 소재와 함께, <와이키키>가 2000년대 화제의 시트콤 <세 친구>만큼의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지. 김기호 작가 버전 청춘 시대가 2018년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를. 

by meditator 2018.02.06 16:02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최종회 11회의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은 5.9%였다. 물론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마동석이 주연한 <38사기동대>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지만, 그 당시까지 ocn최고의 시청률이었다. 2월 4일 종영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의 16회 최종 시청률은 평균 4.8%, 최고 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는가 하면, 시즌1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에 도달하기 위해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뤘다. 애초에 우제문(박중훈 분) 검사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나쁜 녀석들' 팀, 허일후(주진모 분), 장성철(양익준 분), 노진평(김무열 분), 한강주(지수 분), 그리고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중 마지막 회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3명, 우제문, 허일후, 한강주, 길고도 지리했던 16부의 서원 시 악의 세력 구축 작전에서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싸움을 해왔다. 

시즌 1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는 강력계 형사와 그의 휘하에 모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내걸고 결국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구탁 형사, 오재원 특검의 사적 복수와 이정문, 박웅철, 정태수 사이에 얽히고 얽힌 구원을 엔진으로 시리즈를 밀어 붙였다. 그에 반해, 시즌 1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저 '서사'의 부실함으로 지적받았던 것에 심기일전했던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이하 악의 도시)>는 서원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나쁜 녀석들과 더 나쁜 녀석들의 충돌을 그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16부의 <악의 도시>는 서원시에 깊게 뿌리박은 악의 세력 척결을 위한 길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검찰 내 아웃사이더 검사 우제문(박중훈 분), 그는 검찰 총장의 명을 받아, 다시 한번 오구탁 형사의 방식으로 악의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시를 장악한 채 재개발 사업을 독점하며 서원시민들에 기생하는 악의 세력 조영국(김홍파 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그가 끌어모은 건 동료 수사관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신입 검사 노진평과 몇 년전 조영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료를 배신했던 전력이 있는 비리 형사 장성철, 피습을 당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홀로 나선 '형받이' 한강주, 전직 동방파 주먹이었던 이제는 그저 식당 주인이 된 허일후 등이었다. 

조영국을 잡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 이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영국과 동방파를 척결하기 위헤 이들의 그물에 걸린 이는 시즌 1에서 처럼 이들을 모이게 했던 검찰총장 이명득(주진모 분)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오고 '적폐' 세력으로 물러나게 된 이명득은 우제문을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보존하는 한편, 새 시대의 세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쁜 녀석들'을 이용했던 것,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를 희생시키며 적폐 세력 이명득을 몰아낸다. 

그게 겨우 7회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명득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반준혁(김유석 분)검찰 수뇌부가 새롭게 꾸려지고, 서원시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3부. 그러나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새 시대에 길을 비켜준 우제문과 달리, 기꺼이 특수 3부에 합류한 노진평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정작 새 시대의 도구였던 특수 3부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다시 모인 남은 자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를 등에 업고 여전한 이권의 수호자가 된 경찰 세력과, 그를 비호하는 새로운 검찰 권력과 대립하게 된다. 

일진일퇴, 그때마다 피칠갑을 하며 온몸을 던진 우제문을 필두로 한 '나쁜 녀석들'은 황민갑(김민재 분)형사를 중심으로 경찰 내 자리잡은 이권 세력들을 제거하고, 여전히 구악을 끊어내지 못했던 반준혁 검사장 조차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이제 정말 조영국만 제거하면 된다며 마지막 일전을 결심했던 '나쁜 녀석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건 조영국조차 하루 아침에 재개발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배후'이다. 죽어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usb칩을 삼켰던 장성철 형사의 살신성인 덕에 결국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재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배상도(송영창 분) 시장과 그의 스폰이었던 누나 배여사(김지숙 분)까지 구속시키며 서원시 악의 척결 작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이 장황했던 서원시 나쁜 녀석들의 작전은 동방파와 악덕 기업인 조영국을 주적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그 악의 세력의 구축 과정에서 그들이 만난 건 전현직 검찰 총장과, 각종 경찰 내 이권 세력, 그리고 시민의 손으로 뽑힌 민선 시장까지, '정치와 경제의 협잡 카르텔이었다. 시즌 1에서 단순했던 '악'의 실체는 시즌2에 오며 16작으로 늘어난 회차만큼, 길고 지난했던 그리고 뿌리깊은 악의 연대기를 밝혀낸다. 




투혼과 떼싸움, 시리즈의 본질 
그 연대기의 실체를 밝히는 방식은 '나쁜 녀석들'과 그들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다. 15회, 장성철 형사가 그의 수하들에게 모처럼 '과학 수사'라며 cctv를 따라 추적하는 장면이 '실소'처럼 <악의 도시>의 전 회는 사람과 사람이, 떼거리와 떼거리가 부딪치며 온몸으로 피터지게 맞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길거리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무실에서 펜대나 잡고 싶다던 노진평 검사의 소원이 무색하게.

그리고 그 싸움의 색채다게 16부의 싸움을 밀어붙인 건, 동료들의 희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사연으로 인해 모래알같던 '나쁜 녀석들' 팀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의 죽음, 그리고 노진평 검사의 희생으로 동력을 얻는다. 드라마는 21세기 한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싸움의 방식과 논리는 일찌기 서부극이래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 원초적인 싸움,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방식에 따라 드라마는 매회 화끈하다 못해 피칠갑의 액션씬이 서비스처럼 등장한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완주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나쁜 녀석들>의 본질은 기존 수사 드라마에서 할 수 없었던 법의 경계를 넘어선 '나쁜 녀석들'을 앞세운 이 무법의 폭력적 혈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그런 감상을 더한 건, 시즌 1에 비해 공들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시즌 1에서 밀도높았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성에 비해, 여러 등장 인물들의 희생과 다양한 검찰, 형사, 범죄자 등 복잡한 군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헐거운 등장인물간의 관계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시즌 1에 김상중이 분한 오구탁 형사가 보여준 그 자신이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 이율배반이 시즌의 중심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시즌 2의 우제문 형사는 끊임없이 그의 입으로 이렇게 살지 맙시다 했지만, 어쩐지 그의 구심력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즌 1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서 더 이상 시즌 2가 힘들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시즌 1의 마동석, 박해진 등의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빛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내세우며 자신의 형기를 딜하기 위해 때론 의심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며 결국은 싸움의 과정에서 한 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애의 과정이 어설픈 서사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면, 이미 모두가 '악'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에서 확실했던 시즌2의 주인공들은 시즌 1에 비해 인간적 매력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시즌 2의 동인이 된건, 그들 각자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동네 식당집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구하기 위해 라는 '미담'이 시즌을 이끌어 가는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쁜 녀석들에 의한 보다 더 '나쁜 녀석들'의 소탕 작전이라는 고유의 설정과, 이제는 클리셰가 된 듯한 몸과 몸이 전면으로 부딪치는 떼 싸움의 액션은 여전히 <나쁜 녀석들> 시즌 3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의가 완성되지 않은 한에서. 
by meditator 2018.02.05 16:30

햇수로 무려 6년만이다. '능력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차윤희로 분했던 김남주가 다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김남주가 분한 차윤희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를 위해 '외조'가 가능한 남편을 원했다. 그러나, '행운'이라 생각했던 그 이상형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잃어버린 가족이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 차윤희에게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6년만에 돌아온 김남주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일'로 승부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녹록치않다. 모두가 호시탐탐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도발한다. 서른 중반 삶이 무르익을 나이에 그녀는 위태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문득 깨달은 듯이 전한다. 학교 수업 시간, 사회 각 내노라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 사람들 중 여성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었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저 한 두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취존'이라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겪는 일과 사랑, 결혼의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단에 선 '선배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용어는 드러낸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이른바 성공을 일궈나가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던져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 
그렇다면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극단의 예를 다시 한번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가 분한 <미스티>의 고혜란이 보여준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을 향해 '배부른 자들의 한담'이라 퍼붓는 고혜란의 모습에서, 그녀의 지난 삶이 여유롭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난리를 치며 그녀를 요양원으로 불러들인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서른 중반의 그녀를 여전히 이십대 중반으로 착각한 채 다그친다. 잠시라도 자신에게 틈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하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냉담했지만, 그녀는 그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온 듯하다. jbc 사회부이 말단 기자로 입사했던 그녀는 이제 명살상부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어찬 지 어언 7년 최장수의 여성 앵커로서 매년 올해의 언론인 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녀의 삶은 위태롭다. 

말단 기자로 출발했던 그녀는 선배 앵커 이연정(이아현 분)을 밀어내고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남편을 희생시켰다. 아이를 그녀 스스로 지운 그 날부터 남편은 한 집에서 살뿐 남이 되었다. 그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남편의 자리에 머무르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하는 남편. 남들이 보기엔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앵커의 황금 조합이지만, 그녀의 집엔 냉기가 흐르고, 배란일마다 시어머니는 한약을 지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아이까지 희생하고 얻은 자리, 이제 그 자리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물에서 노닐고 싶었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방송가의 젊은 물 운운하며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는 이제 방출 위기에 놓인 여성 앵커 고혜란을 중심에 세운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밀려나 그녀의 뒷담화를 즐기며 그녀를 괴롭히는 선배 아나운서 이연정과 사회부의 신망을 얻으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을 내세워 여성vs. 여성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고혜란에 밀려나서 그녀가 쓰러질 것을 '고소원'하는 패자 이연정과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 한지원의 '여여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들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자 국장 장규석(이경영 분)과 역시나 그녀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긴 채 한지원을 무기로 그녀에게 복수를 절치부심하는 오대웅의 연합 세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사회만이 아니다. 묵묵히 한약을 지어오는 시어머니, 남들이 보기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첫 방송을 보인 <미스티> 속 고혜란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5년째 수상할 언론인상의 수상이 여의치 않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진다. 7년째 그녀가 선배를 밀어내고 차지한 그 앵커의 자리가 위태롭자 그녀는 밀려나는 대신 당당하게 승부한다. 그리고 나가도 스스로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고. 분명, 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배를 짓밟는 고혜란의 태도와 방식은 틀렸지만, 유리 천장 아래 허덕이는 이 시대에서 묘하게 고혜란에게 마음이 열어진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가 살인 혐의까지, 이 이율배반적인 동질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드라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by meditator 2018.02.03 15:26

역시나 신원호란 감탄사를 불러온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신드롬 덕분에 주춤했던  sbs의 <리턴>, 그러나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종영과 함께 시청률은 매회 상승세, 조만간 20%를 찍을 기세다. (12회 16.0%,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리턴>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매해 벽두를 열었던 ,이른바 sbs식 장르물의 성과를 우선 살펴보면 흥기롭다. 2015년에서 2016년을 이은 히트작 <리벰버>, 그리고 2017년을 연 <피고인>은 모두 장르 드라마를 표방함과 동시에 20%를 넘는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그 '성공'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드라마 속에 저마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강력한 악의 축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오랫동안 단골 서브남 전문이었던 남궁민 배우에게 그 자신의 새로운 면을 각인시켜 이후 <김과장>의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건 바로 <리멤버>의 남규만이었다. 그리고 <피고인>하면 감옥에 간 주연 지성 못지 않게, 일인이역으로 때론 순정파로, 때론 끝없이 야비했던 차민호, 차선호 역을 소화해낸 엄기준의 열연이 떠오른다. 

<리턴>의 질주 
그리고 이제 2018년을 연 <리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고현정이나, 물의를 빚은 후 잠시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진욱이 아니라, 그들의 맞은 편에서 범죄를 모의하고 촉발시키는 펜트 하우스 황태자 친구들 강인호(박기웅 분), 김학범(봉태규 분), 오태석(신성록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봉태규의 밑도 끝도 없는 또라이식 폭력성이나,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다의 정의를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신성록의 연기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인 양 발군이다. 의중이 모호한 변호사 최자혜로 분한 고현정의 미묘한 연기와 다혈질 형사 이진욱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리턴>을 보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건 이들의 '난장'이다. 그리고 그 '난장'에 도를 더하며 이제 대놓고 공중파에서 사람 사냥까지 하는 것으로 드라마 <리턴>는 '크레센도 몰토'(극히 큰 크레센도)로 시청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방송 심의를 넘나드며 일단 시청자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드라마 <리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걱정스러운 건 공중파 드라마로서 치달리는 자극적 전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극적 전개'라는 과한 조미료의 근원으로 유추될 수 있는 '표절'이 진짜 <리턴>의 문제다. 



'가족, 명예, 돈 모든 것을 충족한 친구들에게는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들은 비밀스런 펜트하우스를 만들고 서로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즐기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과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던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 위의 줄거리는 <리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다. 매회 드라마시작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바로 저 친구들의 펜트 하우스와 그곳을 공유했던 염미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바로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그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끌어 진다. 

같고도 다른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 
그런데 저 '줄거리'는 <리턴>의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의 스릴러물인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줄거리이다. 심지어 영화 속 빈센트(칼 어번 분)의 내연녀는 그의 부인에게 질투를 하며 접근하려고 하고, 심지어 빈센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 불청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빈센트는 그녀와 이별하기 위해 펜트 하우스에 그녀를 데려가 혼자 나온 이후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빈센트 그리고 친구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반전, 이 진실과 반전을 추격하는 여형사. 

런닝 타임 100 여분의 영화와 32부작(16부작)의 드라마의 호흡은 다르다. 영화 속 여형사는 드라마로 오면 여자 변호사로 변화되었고, 영화와 동일했던 설정은 이제 의사 김정수(오대환 분), 형사 김동배(김동영 분), 안학수(손종학 분)의 등장으로 사건의 각이 넓혀진다. 그렇다면 <리턴>은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표절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음악 작업 가운데에서 두 마디 이사이면 표절이고, 두 마디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법률적 경계'와도 엇비슷하다. 분명 두 작품을 본 사람들은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유사점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애초의 설정을 변주시키며 아니 우리 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요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이는 얼마전 좋은 드라마란 평가를 받으며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관행? 
88만원 세대의 여주인공은 머물 곳을 얻기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세를 살게 된다. 집에서 결혼 독촉을 받는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마저 실패한 채 실의에 빠진 채 낙향할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에게 계약 결혼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계약 부부로 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며 계약 부부라는 이 설정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명 니게하지)>와 유사함으로 논란이 됐다. 

건물에 글자를 새겨넣은 포스터에서 부터, IT 직원이며 사회성이 떨어지며 타산적인 남자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살면서 '계약 결혼'을 하는 이야기는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표절'을 인정하는 대신, 결혼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 공감과 수평적 남녀 관계에 대한 시도로 그 논란을 돌파했다. 

그러나 15.6회에 들어서 내내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존감 넘치는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이 돌변한 듯 자기 중심적 해프닝을 보인 것이 일본 원작과는 다른 주제 의식에대한 과도한 천착이 부른 '과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표절'이라는 부담을 가진 드라마는 그 부담을 탈피하기 위해 표절작과는 다른 무리한 시도를 보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보여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 변화는, <리턴>으로 오면 매회 점층되는 '자극적 설정'과 '폭력성'으로 대응된다. 애초에 청소년 관란 불가였던 영화의 설정을 드라마에 옮겨 온 것부터 무리수였지만, 그 설정의 표절을 피해가는 드라마의 전략이 화제성의 주인공인 봉태규와 신성록의 악행 에스컬레이션인 듯해 아쉽다.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결국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갔듯, <리턴> 역시 아마도 '표절' 논란을 변주된 서사를 통해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한 표절 푯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와 관련된 소감이 돋보인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설원 위 열차라는 설정말고는 많이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하지만 봉감독은 설원 위 열차라는 그 모티브가 위대한 거라 단언한다. 이렇게 표절인 듯 표절이 아닌 듯한 작품이 매번 되풀이 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중국 콘텐츠들의 우리 작품 베끼기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처지가 될 수 있을지. 콘텐츠의 가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존중에 대한 절차적 예의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02.02 17:56

사실 수치만으로 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이(이하 그 사이)>는 보잘 것없다. 1회 2.409%(닐슨 코리아 케이블 유료 플랫폼 기준)가 최고 시청률로 내내 1%대의 시청률을 답보했다. 하지만, <그사이>를 그저 수치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쉽다. '재난 후일담'이라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한 유보라 작가와 <그사이> 제작진의 도전은 오히려 '시청률'과 상업적 성과를 넘어선 드라마적 가치의 확인이다. 천만이 넘었다고 그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지 않듯, 1%대의 작은 목소리라도 <그사이>의 존재감은 빛난다. 




슬픔은 노상 우리 곁에 있어  -마마(나문희 분)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바닷 속에 잠긴 채 기운 배, 그렇다, <그사이>는 대놓고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과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좀 더 사실적으로는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가깝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라고 온 국민이 경악해 마지 않던 사건, 하지만 바로 그 전 해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었다. 이른바 '건설 입국'으로 성장해온 발전 경제의 부실한 기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실한 기둥에 대해 드라마 속에서 참사 현장에 다시 쇼핑몰이 들어서고, 또 다시 철근이 빼돌려지고, 부실한 지반에 얼렁뚱땅 건물을 올리려 하듯,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대한민국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고, 결국 2014년 세월호에 이르렀다. 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삼풍 백화점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추모비는 멀찍이 양재 시민의 숲 한 켠으로 밀려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11일 첫 회를 연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바로 그 '아스라한 기억'이 된 붕괴 사고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가 불러온 건 그저, 에스몰 참사가 아니다. 에스몰로 상징되는 '재난민국', 그리고 그곳의 피해자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재난 사고의 피해자들이 주인공이다. 재난 사고에 대해 다룬 다큐는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블랙> 드라마 속 사건으로 '재난 사고'가 등장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재난'을 마주하고, '재난' 속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밀도깊게 다룬 이야기는 <그사이>가 처음일 것이다. 

이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는 그곳, 에스몰에 있었다. 아동 모델로 그 쇼핑몰에서 촬영이 있었던 동생과 함께, 아니 동생의 보호자로 에스몰에 갔던 문수는 동생때문에 만나지 못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자리를 옮긴 사이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하셔서 아버지를 만나서 그 곳에 간 강두 역시 붕괴된 건물 사이에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된 강두와, 강두의 도움으로 그곳을 한 발 먼저 빠져나간 문수, 하지만 그곳을 빠져나온 건 두 사람의 몸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과 소년였던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방식은 다르다.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상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강두는 붕괴 현장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심지어 철근을 빼돌렸다며 '가해자'가 된 아버지와, 자신을 돌보다 스러진 엄마 대신 일찍 철든 동생의 보호자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리로 내몬다. 그러나 강두가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이유는 그저 그곳에서 다친 상처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오지 못한, 홀로 갇힌 그의 곁에서 먼저 숨을 거둔 소년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그에게 악몽으로 수시로 찾아와 간에 독성이 있는 '파란 약'을 움켜쥐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동생의 보호자로 그곳에 갔던 문수는, 사고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그녀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기억은 없지만 죄책감은 남았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 짐은 딸 잡아먹은 년이라 욕을 들어 먹으며 꿋꿋하게 목욕탕을 지키며 날마다 술과 함께 사는 엄마의 보호자로 자신을 가둔다. 나지도 않는 기억을 들추는 대신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 문수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붕괴된 에스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이른바 '책임자'로 지목되어 그 대가로 스스로의 목숨을 거둔 설계자였던 건축가의 아들 서주원(이기우 분)도, 서주원과 연인이었지만 시공사 사주의 딸로 하루아침에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달라진 정유진(강한나 분)도 여전히 그 날 그 곳에 머물러 있다. 



내가 이 손 안놓는다. - 강두 
드라마는 이렇게 에스몰 붕괴 사고와 관련된 이해 관계로 얽힌 네 젊은이들을 내세웠다. 기억해서, 혹은 기억하지 못해서, 그리고 남겨져서 아픈 그들은 우리 시대가 겪었던 그 '참사' 후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초반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를 곡진하게 살피던 드라마는 그러나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사이>의 가치는 재난 후일담을 넘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온전히 자신으로 다시 서는 젊은이들의 '승리담'에서 빛난다. 스스로 각자 자신의 무게로 짊어졌던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용기있게 세상의 몫으로 던지며, 그들 각자가 웅크렸던 동굴 속에서  한 발씩 내딛는다. 

에스몰 현장에 다시 세워지는 쇼핑몰 현장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를 부순 강두, 그리고 주원의 호의로 그의 설계 사무소에서 에스몰 자리에 다시 세워지는 건물 설계에 간여하게 된 문수, 그리고 아버지의 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선 주원, 그리고 여전히 그를 놓지 않는 유진, 네 사람은 반성없이 되풀이 되는 부실 공사의 재연 현장에서 각자 자기 어깨 위에 얹힌 짐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짐을 풀어놓는데, 바로 '사랑'이 매개가 된다. 

우연히 깡패들에게 맞은 채 골목 구석에 쭈그려 피를 흐리던 강두를 발견한 문수, 그리고 그들의 우연같은 에스몰 현장에서의 만남, 우연같은 필연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나침반으로 강두를 주원이 현장에 보내듯, 강두와 문수는 외면하는 대신 추모비 재건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그를 위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남겨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걸음씩 들어서는 자기 자신, 그 버거운 길을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통해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대승적 사랑의 길을 느리지만 꿋꿋하게 <그사이>는 지난 16부의 시간을 걸어왔다. 

마지막 회, 간 혼수에 빠지며 위독했던 강두에게 기적과 같은 새 삶이 찾아왔다. 아니, 그에게 찾아온 건 그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 삶은 죽을 뻔한 강두에게만 찾아온 것도 아니다. '과거'에서 각자 힘 닿는대로 도망치려 했던 '피해자'들이 스스로 다시 과거를 직시하고, 거기에 얽혀진 매듭을 풀어나가며 그들에게 덮여있던 두터운 딱지는 아물었고 비로소 세상의 공기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모두에게 찾아왔다. 강두에게 남겨진 유산의 땅, 에스몰 붕괴 사고 그 중심에 붕괴 사고 현장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추모비, 그 상처입은 기억의 불편함에, 강두와 문수는 입을 모아, 시간이 흐른다고, 잊는다고 상처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 강변한다. 오히려, 기꺼이 그 불편함을 내 안에 껴안을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삼풍에서 시작된 '재난 후일담'은 결국 2018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잊지말자'고 다짐한다. 


by meditator 2018.01.31 04:36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이란 말이 어느덧 '인간'의 족쇄가 되는 시대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문명인 '인터넷'과 'sns'는 어느 덧 '인간'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퇴근을 해서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전송되는 메일, 잠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둘라치면 몇 개, 몇 십 개, 심지어 몇 백개가 쏟아져 오는 카톡, 범람하는 페북의 언어들,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 아니 그 사람 자체가 증명 사진이 되어 나열되는 '인스타', 이 많은 매체들 사이에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맺은 관계들 속에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sbs스페셜>이 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고독'이다. 





3박4일 절대 고독의 시간
'고독'의 문을 연 건 4명의 젊은이다. 임현욱(19), 박형순(22), 윤어진(21), 박소현(27) 네 사람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자신을 1.7평 방에 가둔다. 하지만 '가두는 게' 쉽지가 않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끝까지 사수하다, 그 마저 못하게 되자,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상대로 셀카 연습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은 영락없는 21세기형 인간이다. 

하지만 결국 핸드폰을 빼앗기고,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혹은 '생각'을 하면 우울해 질까봐 싫어하던 이들이 '포기' 버튼의 유혹을 이겨내며 하루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마치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들에게 던져진 화두처럼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각자 지금 자신이 빠져있는 그 '무엇'을 털어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이제 막 수능 시험을 마친 현욱에게 '자아 성찰'이란 쓸데없는 것이다. 공부 못하면 노답인 세상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건 쓸데없는 것이며,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4 명은 공통적이다. 현욱이 수능을 핑계로 생각을 미뤄두었다면, 소현씨는 주중에 자신이 하는 쇼핑몰 일이 끝나는 주말까지 커피 전문점 알바를 하며 홀로 생각에 빠질 시간을 피한다. 집에 와서도 늘 인터넷 동영상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말소리'에 빠져있는 그녀, 그런가 하면 윤어진씨가 빠져있는 건 '셀카', 하루 종일 수백에서 천 장이 넘는 셀카를 찍고, 그것을 보정하여 인스타에 올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느라 바쁜 그녀에게 생각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박형순씨는 잠이 부족할 정도로 '관계'와 '관계'의 사슬에 자신을 얽어매어 놓는다. 

이렇게 그 '무언가'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네 사람은 본의 아니게 1.7 평의 '독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빠져있는 것, 그것들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그곳에 자신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네 사람, 그들이 마주한 자신의 역사에는 고등학교 시절 80kg이 넘는 몸무게로 상처받았던 소녀가 있고, 홀로 사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부모님이 정해주신 세상의 길을 따라,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을 꿀꺽 삼켜버린 소년이, 게임만 하며 세상과 담을 쌓았던 청년이 있다. '셀카'에, 대학에, 관계에, 그리고 쉴틈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놓치고 있었던 자신을 그 누구의 권유도 아닌, '고독'을 통해 마주한 네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누구인지 마주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20박21일
네 사람의 강제 독방 3박4일이 다큐 제작진에 의한 모의 고독 실험이었다면, 20박21일의 강제 고독을 선물로 주는 회사도 있다. 건설 설계 소프트 웨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국내의 한 IT업체,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간 응시생은 뜻밖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는 건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직원 한 명당 1년치 식비가 무려 1000만원인 직원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20일간의 '자기에로의 여행'을 선물한다. 

온전히 업무를 손에서 놓고 제주로 온 여행, 한라산을 등반하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매일 매일 쪽지로 전해지는 이 회사의 사관인 '나, 세상, 삶, 일'에 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리본 더 라이프'라 칭해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주가 원하는 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거, 매일매일의 화두에서 답을 얻은 사람도, 혹은 답을 얻어내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안에 숨겨져왔던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고, '용기를 내서 내 삶의 질문을 대면'하는 시간이 된다. 

네 사람의 3박4일 실험적 고독,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리본 더 라이프' 자기 성찰 프로그램을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독'은 박소현씨의 말처럼 혼자 생각에 빠지다 보면 우울해지는 건, 스스로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들이 범람하는 시대, 그 넘치는 '관계맺음'이 '나'를 소외시켰다 주장한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 그저 3박4일 혼자 있었을 뿐인데,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짚어보고 진단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대면하는 사람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는 회사,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자기 수련의 터널을 지나 다큐가 도달한 건,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오롯한 나'에는 그 누구의 가르침이나 지침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기 회복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있다. 
by meditator 2018.01.29 05:17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를 규정한 건 '전쟁'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생존 방식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는 어떨까? 전국민이 금을 모아 2001년 예정보다 3년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는 IMF, 그 '경제적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을 삶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EBS가 특집으로 마련한 <인터뷰 대한민국>, 그 포문을 연 건 바로 1998년 IMF 생이다. (1월 20일 방영)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최준영 작사,곡, 한스밴드, 오락실 중

굳이 사전적 의미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단어,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 그 두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IMF 이후이다. 97년 1월부터 대기업 부도 사태로 시작된 외환 위기, 97년 11월 IMF에 지원을 요청한 우리 정부는 IMF의 정책에 따라 부실 기업 퇴출 및 은행 구조 조정 전면화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국제 통화기금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고 예정보다 빨리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1997년에서 98년까지 문 닫은 기업만 4만개, 1999년 8월 기준 실업자 136만 4000 명,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겪어낸 선인들 못지않은 생존의 고통을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겪었다. 아니 겪고 있다. 

외환 위기 당시 IMF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일방적인 룰을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국민들이 필요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 2010, 7, 스트로스 칸 당시 IMF 총재 

I'm Fired 나는 해고되었다
대전에 사는 63세의 정진철 씨 그가 페인트 일을 한 지도 어언 11년이 되었다. IMF 당시만 해도 충청도에서 가장 잘 나갔던 은행 충청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1998년 6월 1차 은행 퇴출 결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IMF 기간 중 유독 퇴출과 합병 등으로 '정리 해고'가 심했던 은행 구조 조정의 희생 당사자였다. 무너진 평생 직장의 꿈, 누군가는 이혼하고, 누군가는 자살하고, 20년이 지난 그 시절을 사람들은 애써 덮으려 한다. 살아남은 정진철 씨에게 닥친 IMF는 그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장남 하나만 잘 되면 한 집안이 일어난다던 시절, 쫓겨난 장남에 충격받으신 어머님은 결국 쓰러지셨다. 사업도 해보고, 놀기도 하다, 겨우 지인의 소개로 페인트점에서 일한 지 십 여년 여전히 그의 품안엔 예전 신분증이 남아있다. 



98년 IMF 생들의 현재는?
그렇게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를 겪으며 거리로 몰린 아버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자란 98년 생들, 2002년 올림픽 때는 5살, 2009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신종 플루로 학교를 못가기도 했고, 2014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세월호를 겪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이 청년들의 현실은, 바로 역사 저편의 단어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IMF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늘엔 별이 참 많이 있구요, 난 그 별에서 제일 가깝게 살고요, 
햇살이 좋아 빨래도 잘 말라요, 그곳에서 난 꿈꾸네 
                                               - 장미 여관, 옥탑방 중


포항에서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채현진은 옥탑방에 산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방음 제로의 자취방, 야경이 이쁘고, 다리가 튼튼해 진다는 500에 35, 그곳에 살기 위해 방학에도 귀향을 하지 않고, 무서운 밤길을 견디며 알바를 한다. 

'어디나 불편함은 있는 거잖아요. 서울에 방 한 칸 있다는 사실로도 만족해요,'

기숙사 신청은 어렵고, 기숙사 신축을 놓고 주민과 갈등하는 현실, 500, 1000, 3000, 보증금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질,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누군가는 학교 주변을 몇 십 바퀴 돌아 500만원짜리를 겨우 얻는가 하면, 누군가는 부모님 돈으로 쉽게 학교 앞의 안락한 공간을 얻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 

'대학 하나 다니려면 돈을 탈탈 털어서 바쳐야죠, 주거, 학비, 진로 다 얽혀서 어렵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정현진 씨는 이제 대학 1학년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피디가 되고 싶어 신방과에 진학했고,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구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재주많은 청년, 하지만, 꿈꾸고 도전하는 삶대신 안정을 택했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검찰청 실무관으로 있는 그녀의 어머니, 함께 직장을 다녔지만, IMF로 은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명퇴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른 선택을 권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56.6%가 선택한 이유, '안정된 일자리', 실제 어머니 이은희 씨가 다니는 직장에 신입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연, 고대 출신도 빈번하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 대신 선택한 안정이 행복하지 않으면?이란 질문에 정현진 씨는 '끊임없이 생계를 걱정하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며 반문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 또 다른 98년 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때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 내복값이라며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내밀던 청춘이 있다. 2017년 1월 전주 아중 저수지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홍수연 양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LG 유플러스 콜센터 실습 중 이었던 홍 양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 100%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불업 위장 취업을 강요하는 마이스터고, 하지만 같이 들어갔던 홍수연 양의 열 몇 명 중 결국 남은 건 두 세 명, 현장 실습에 나갔던 학생 들 중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혹독한 징계.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컨베어벨트에 끼어 팔이 부러지고 허리와 목을 다쳤던 아버지, IMF로 대량 해고가 게속 되던 시절, 결국 아버지는 이렇다할 직장을 얻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걱정해서 취직해서 돈 벌다가 공부하고 싶으면 하겠다며 버티던 홍양은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콜센터, 이른바 고객 대응 노동자의 93%가 겪는 언어 폭력,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더 중요한 능력은 미소와 친절보다 말도 안되는 요구나 기분 나쁜 말에 '무뎌지기', 무뎌지지 못한 홍양은 자신을 던졌다. 비록 어려웠지만 소중했던 딸의 죽음은 부모의 삶마저 파괴했다. 눈물로 지새우던 어머니는 2011년 뇌출혈로 사망했고, 세상이 싫어진 아버지는 연고 하나 없는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홍양만이 아니다. 2017년 11월 현장 실습생이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이민호 군은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하반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 실습이 전면 폐지될 때까지 꽃다운 청춘들은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다큐는 보여준다. IMF 체제를 졸업한 우리나라가 지난 20년간 얼마나 빛나는 경제적 신장을 이뤄냈는가를, 하지만, 또 다른 화면에서 보여진 건, 그 성장의 잔혹한 그림자들이다. <인터뷰 대한민국> 1부, <1998년 IMF생>을 통해 다큐는 말한다. 2018년의 대한민국, 이제 막 청춘에 첫 발을 내딛은 98년 청춘을 통해 바라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IMF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짐지운 또 다른 전쟁터이다. 


by meditator 2018.01.27 17:28

2000년 출간된 <가시고기>는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후로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 지며 여전한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시켰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돈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고자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어언 십여년, 2018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그 무엇하나 누린 적이 없었던 아버지,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내지 못했던 아버지도 '암'에 걸리고 말았다. 아니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병원에서는 '암'이 아니란다. 2000년에 자식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다 암에 걸린 아버지와 2018년에 상상암에 걸린 아버지, 2018년의 아버지는 진짜 '암'이 아니니 괜찮은 걸까? 진짜 '암'과 상상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 커버린 자식들이 떠나버리면 홀로 남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 가시고기처럼, 소설 속 아버지는 말기암의 판정을 받고서도 자신의 각막마저 아들의 치료를 위해 팔고자 했고, 끝까지 아들에게 아버지의 병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남아 죽음을 맞이한다. 2000년, 21세기의 서막이 열렸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순애보'적인 아버지의 사랑에 감흥했다. 이제는 아니다 했지만, imf를 경과하며 이 나라의 아버지들은 스러져 갔고, 가정은 해체되어 갔으며, 가장의 존재는 유명무실해 졌다 했지만, 여전히 아직도 '아버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시대였다. 하지만 <가시고기> 단 한 편으로 베스트 작가가 된 조창인 작가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가족'을 화두로 한 작품을 출간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듯,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서서히 아니 급격하게 지는 태양이었다. 아니, 아버지란 이름은 이제 지더라도 세상을 밝히려 애쓰는 태양이기는 커녕 우리 사회에서는 '기성 세대'가 되어가면서, '꼰대'가 되었고, '적폐'의 상징으로 젊은 세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2018년, 초라한 아버지의 자리
바로 그런 시대에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와 최재성(이 있다. 그들은 아버지이지만 무기력하다. 이제 40회에 들어선 드라마에서 그들은 '가장'이라지만, 도대체 가장다운 무언가를 한 일이 없다. 무역맨 출신의 그는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딸 서지안의 친구 혁은 동아리 모임을 하는 서지안의 친구들을 위해 호탕하게 간식거리를 사주던 서지안의 능력있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능력있고 가정적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사업 실패와 함께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즐기며 맘껏 미대의 꿈에 부풀었던 딸 지안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전학을 가야했듯 6식구는 단칸방 신세가 되었고, 거기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어머니는 암에 걸리셔서 가족을 경제적으로 더욱 쪼달리게 했다. 평생 그의 그림자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왔던 아내와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닥친 경제적 위기에 힘들어 하며 가장인 그를 원망했다. 

큰 아들은 무능력한 아버지의 삶을 보며 결혼을 안한다 하고, 아내는 고생하는 자식을 보다못해 딸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대학 준비를 하는 줄 알았던 막내 아들은 알고보니 돈을 벌겠다고 하고, 이제 자신들이 뒤바뀐 걸 알게 된 딸들은 그 충격으로 아버지를, 가정을 외면하다. 비로 경제적 능력은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가장으로 어떻게든 가족들의 구심력이 되고자 했던 그는 이제야 비로소 처절하게 깨닫는다. '돈'이 아니고서는 이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 없음을, 돈이 없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님을, 그런데 그 '아버지'의 자격인 돈을 위해 한 평생을 달려왔고 노력했지만 그건 '신기루'처럼 날라갔다. 자신의 인생과 목표와 함께. 그리고 가족도 함께. 그는 살아있지만 이미 그 누구도 그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어머니처럼 자신에게도 '암'의 증상이 나타난 날 그래서 서태수는 기꺼이 그걸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돈이 있다면 다를까? 최재성은 남들이 보기엔 그 대단하다던 재벌가 해성의 부회장이다. 강원도 태백 탄광 지대 출신으로 그 비상한 머리 하나로 대기업 해성에 들어갔고, 회장 딸 노명희와의 사랑으로 해성가의 사위로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59세 그 남부러울 것 없는 그이지만, 그는 해성가의 꼭두각시이다.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와는 사업상 혹은 가족 이야기라도 절차상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됐다. 한 방을 쓴다지만, 냉기가 흐른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모두 해성가의 수장인 회장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두 딸을 놓고 저울질 하는 장인 어른 덕택에 '간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도 그의 의견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간 큰 아들 도경처럼, 아이들에게 역시 아버지의 존재는 유명 무실하다. 그래서일까 대기업 부회장이나 된 그가 정신과 의사 앞에서 허탈하게 눈물을 흘린다. 



암이 아니면, 죽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38회 엔딩, 서태수의 상상암은 무리수였을까? 아니 오히려 그간 가족간의 서사를 <가시고기>에서 보여지듯이 병력을 활용하여 '신파'적 설정으로 넘어갔던 기존의 가족 서사에 대한 작가 소현경의 야심참 도발이 아닐까? 여기서 원론적인 반문이 필요하다. 서태수는 암이 아니다. 심지어 상상에 의해 암이 걸렸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엄마가 상상으로 아이를 가지듯이, 서태수는 그렇게 '암'을 '고소원'하다 못해 '상상'으로 암에 걸리고 만다. 

그럼 암아니면 그래서 조만간 죽게 생기지 않으면 괜찮은 것일까? 바로 여기 작가의 질문이 있다. 아니 반문이 있다. 오죽 서태수에게 삶이 의미가 없었다면 그는 죽기를 소원했을까? 여기서 스스로 암에 걸렸다고 확신한 서태수에게 온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조만간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변화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굴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늙수그레했던 외모도 염색을 하며 변모시켰고, 하고 싶었던 기타도 다시 들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의 변화에 자식들은 당황해 한다. 아버지 왜 그러시냐고, 아버지 아프시면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서태수는 그런 가족들에게 냉랭하다 못한 반발한다. 왜 너희들은 '가족'에서 벗어나 지 멋대로 하고 살면서, 여전히 아버지에겐 자신의 자리를 구차하게 지키라고 하냐고?

소현경 작가가 서태수, 최재성 이 시대의 아버지, 그러난 허울만 아버지일뿐, 이제는 그 예전의 '가부장'도, 심지어 '가장'도 아닌, 구차하고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남자들의 존재론을 묻는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어느새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그 예전 아버지들처럼 혹은 여전히 가족극이 즐겨 쓰는 '화합'의 소재가 되는 육체적인 병이 아니라, 정신적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만을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아야 했던, 하지만 그 조차도 여의치 않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 그들은 이 시대 아버지는 증상만 다를 뿐 어쩌면 모두 서태수, 최재성처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38회 '상상암'은 웃픈 해프닝이 아니라, 가장 이 시대의 아버지를 잘 표현한 설정이다. 그 상황에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들은 어쩌면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서태수의 자식들 중 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8.01.15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