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작이었던 <블랙>, 18회 드디어 4%의 고지를 넘기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4.181 %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또한 거의 내내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송승헌이라는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부여하며, 그간 오로지 잘 생긴 배우로만 '소비'되던 이 중견 배우의 지평을 열어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차치하고 애초에 16부작에서 18부작으로 늘어났던 <블랙>의 완결성에 놓고서는 물음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 444, 이름도 형체도 없이 오로지 번호로만 불리워지는 본투비 저승사자 블랙(송승헌 분)의 이승 세계 블로버스터급 모험담을 그린 이 드라마는, 그와 엮인 '죽음'을 보는 강하람(고아라 분)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대성'을 담보하려 했지만 작가도 모르고, 그래서 시청자의 고개는 더욱 갸웃해질 수 밖에 없는 '과유불급'의 서사로 완성도에 오점을 남겼다. 




꼬리에 꼬리를 분 진범, 과유불급
장황했던 서사를 통해 결국 18회에야 드러나는 최종 보스 사고 당시 무진 시장 최근호가 드러냈다. 우병식- 오만호, 오만수 부자 - 김형석 의원 - 최근호로 이어진, 이 배후는 무진 타임 마트의 부실 공사 수주와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 성접대, 더구나 붕괴 당일 최 시장의 성접대로 이어진 지배 엘리트의 부도덕 시스템을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월호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시킨 이 최종 보스 최근호의 는 현직 대통령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 어마어마한 최종 보스의 존재감을 드러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설사 그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이미 우병식으로부터 이어진 꼬리에 꼬리를 문 보스 밝히기의 행렬은 새 보스가 드러난다 해도 시청자를 깜짝쇼에 빠뜨릴 동력을 잃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계기는 송승헌이 분한 블랙, 저승사자 444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혼을 수거하는, 그래서 늘 '인간 따위'라며 인간을 낮잡아 보던 이 오만한 본투비 저승 사자 블랙이 자신의 띨띨한 파트너 재수똥(제수동, 박두식 분)을 놓치면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서 벌이는 해프닝이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신선한 캐릭터 블랙, 하지만 그가 인간 세상에 오면서 잠시 머물기 위해 빌린 한무강이, 알고 보니 그의 동생이자, 알고보니 자신의 심장이 이식된 존재였다는 딜레마가 오만한 저승사자를 '운명적 사건'에 빠뜨린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준이 오빠를 스토커처럼 좋아했던 소녀 하람과 김선영이었던 자신을 숨긴채 살아가는 윤수완(이엘 분)이 엮여지게 되고. 

그런데 이 엮여지는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블랙은 자신의 심장과 자신의 몸이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블랙의 숨은 사연, 그리고 어릴 적 성폭행을 숨긴 채 한무강의 약혼녀가 된 윤수완, 그리고 불의에 죽은 아버지의 사연을 품은 강하람까지. 그리고 이들의 사연은 20년전 무진에서 벌어진 타임 마트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데. 

이렇게 인물 소개에서도 벌써 사연이 구구절절한 <블랙>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무진 폐공장에서 벌어진 클라라와 김선영의 대치, 그리고 백골 시체로 발견된 클라라의 발견에서 부터이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하며, 과거의 사건이 벌어지며, 이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 늘어난다. 클라라와 김선영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자리에 김준(한무찬)과 동생 한무강이 있었고, 거기에 다시 왕영춘(우현 분)이 등장하고, 그를 쫓는 강하람의 아버지 강수혁과 다시 스토리가 전개되며 김형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쫓기다 사고를 당한 김준의 의붓 어머니이자 한무강의 엄마까지 등장하게 되고. 거기에 알고보니 그 자리에 강하람까지 있었다는데. 

결국 이 세 사람이 엮이게 된 이 결정적 사건이 회를 거듭하며 등장 인물들이 늘어난다. 시청자들이 예상한 프레임을 벗어나, 회를 거듭하면서 우병식의 배후로 뜬금없이 김형석이 등장하고, 최근호가 등장하듯, 사건 현장의 인물들이 늘어난다. 과연 이게 반전일까? 우병식인줄 알았더니 오만호 부자가 있었다까지는 시청자들의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이다. 스릴러의 묘미라면, 시청자들이 한껏 두뇌를 부풀려 상상할 수 있는 그 범주 내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해진 플레이어 외의 인물이 링 안으로 들어오면서 게임의 주도권을 잡아버린다면, 과연 시청자들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최란 작가는 쓰면서 '이건 몰랐지?'라면 통쾌할 순간, 시청자들은 '이게 뭐지?'라며 '멘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란 작가의 자충수, 시대의 비극을 소재주의로 만들다. 
<블랙>이 그랬다. 블랙의 몸에 들어간 한무강의 사연, 그리고 그와 엮어진 김선영이자 윤수완의 비극적 사건, 그리고 강하람의 고통스런 과거를 무진 타임 마트라는 시대적 사건과 엮어갈 때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는 흥미진진했다. 최란 작가의 큰 그림에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흥미진진함이, 알고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대라는 식이 되가면서 회를 거듭해가며 주인공을 시련에 빠뜨리며 드라마의 동인은 주저앉아 버린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비극은 회를 거듭하며 무한 루프처럼 되풀이 되는 진범은 따로 있지의 게임 플레이에 '소재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인간 따위'라고 본투비 저승사자의 마인드를 놓지 못하는 블랙이 어서 빨리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보는 강하람과 엮이며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어느 순간엔가 두 사람의 사연 덕분에 짖눌려진다. 저승사자는 매번 킬러에게 밀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며 인간의 운명에 개입한 강하람은 사고를 일으키기만 하는 '민폐'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거대한 배후 세력의 압도적인 존재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재물이 되거나, 희생되고 만다. 그나마 저승사자라서, 죽음을 봐서 주인공 두 사람만이 목숨을 건진 수준이다. 




그 과정에서 저승 사자의 룰과, 죽음을 보는 하람의 능력의 설정들은 회를 거듭할 수록 무색해 진다. 죽은 자를 보는 하람의 설정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되어갔고, 무로 돌아갔다는 블랙이 죽은 강하람의 영혼을 마중 나오는 엔딩에 이르면 그저 아름다운 러브 라인을 위한 애교라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런데 익숙하다. 안타깝게도 최란 작가의 이 방식이 낯설지가 않다. 2014년 sbs 월화 드라마였던 <신의 선물- 14일(이하 신의 선물)> 의 궤적이 비슷했었다. 조승우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었던 <신의 선물>은 14일의 타임 슬립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주목받았다. 거기에 흥신소를 운영하며 '법과 정의와는 담쌓은 초절정 양아치' 기동찬 캐릭터는 블랙 444 못지 않은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강하람처럼 잃은 딸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모정 김수현(이보영 분)이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민폐 여주가 되었고, <블랙>처럼 뒤얽히고 얽혀 여주인공에게 총을 들게 만들듯이, 돌고 돌아 사회악도 밝히지만, 주인공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서사로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드라마로 회자되고 말았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과, 뜻밖의 가해자인 설정은 주인공을 극적으로 몰고간다는 점에서 맞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반전에 반전을 꾀하다 자충수가 되고만 <신의 선물>의 비극을 안타깝게도 <블랙>이 다시 되풀이 하고 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의 선물>과 <블랙>의 설정은 빛난다. '소재주의'가 돼버렸지만, 개인의 비극과 시대적 아픔을 엮어내려는 시도는 묻히기에 안타깝다. 그리고 조승우에 이어, 송승헌의 캐릭터 역시 배우들에겐 '인생 캐릭터'이다. 어쩌면, 이런 장황한 반전의 자충수는 16부작, 혹은 18부작이라는 드라마 경영학의 폐해일 수도. 차라리 8부작의 드라마도 시도되고 있는 이즈음, 최란 작가의 다음 작품은 깔끔하고 선명한 플롯이 돋보일 수 있게 욕심을 좀 버린 회차로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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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2.11 16:45

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전체 관람가 8번째 감독인 오멸이 그 주인공이다.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를 내세운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 <전체 관람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던 이명세, 정윤철, 박광현 등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흥행한 작품이 떠오르는 상업 영화계의 내노라하는 9명의 감독들, 단지 지금 현재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이들 상업 영화 감독이 단돈 3000만원으로 단편 영화를 만든다는 그 '예능'적 도전이 매주 화제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9회, 애초에 이들 9명의 감독들 외에 의문의 인물로 비워두었던 한 자리에, 그간 진짜 저예산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던 '오멸' 감독이 등장했다. 




진짜 독립 영화 감독 오멸의 등장 
오멸 감독하면, 불현듯 등장한 그의 작품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을 통해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 대상 및 각종 영화제의 수상을 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드러낸 분이다. 아니, 그런 숱한 영화제의 수상이라는 수식어보다, 사실 더 센세이셔널한 건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에서 활동한 로컬 영화인인 그가, 자신의 땅 제주의 아픈 역사 4.3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알쓸신잡>의 유시민 조차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4.3을 정의내렸다. 그러나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속 사람들은 '제주도 해안 5km밖 사람들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산속으로 몸을 숨긴다.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일상의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우리가 아는 그 4.3의 희생자가 되었다. 박광현 감독이 표현한 바, '폭력'을 다루는 그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통해 역사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우리 역사의 뒷 페이지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빨갱이들의 일'을 비극적 민중사의 한 장면으로 복원했다. 

하지만 오멸 감독의 '행군'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슬 - 끝나지 않는 세월2>에 앞서 그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어이그, 저 귓것>(Nstalgia)통해 '귀신이 데려가야 할 바보같은 녀석들(귓것) 네 사람을 통해 과거 제도도의 민속 노동요와 포크 음악의 협연을 시도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었다. 또한 개봉되지 못한 2015년작 <눈꺼풀>은 '세월호'에 대해 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며 그 누구보다 앞서 시대를 영화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다루고자 하는 주제만이 아니라, 비전문 영화인과 배우와 스텝이 구분되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작업 과정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과정으로서 담보해낸 영화인으로 <전체관람가>의 취지에 가장 부합한 인물로써 이제 8번째 감독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창하게 독립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란 수식어만으로 그가 <전체 관람가>의 한 자리를 맡은 건 아니었다. '신라리' 프로덕션의 문소리가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그보다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모두가 지겹다 했던 그 순간에서도 꿋꿋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며 촛불을 켜냈던 JTBC에 대한 동지 의식이 오멸 감독을 그 자리에 불러 왔다. 

또한 그런 사명감만도 아니다. 정작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4.3을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든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그에게도 '블랙리스트'의 족쇄를 채웠다. 제 아무리 독립 영화라 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그의 지난 시간은 버거웠고, 그 고난의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전체 관람가>의 출연 요청을 받고 대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또한 말이 좋아 공동체지, 오멸 감독 자신이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그 과정이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독립 영화'의 척박한 현실, 과연 현재와 같은 한국적 상황에서 계속 독립 영화를 만드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 거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던 <눈꺼풀>이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뤄두어야 했던 상황이 기꺼이 <전체 관람가>의 기회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몇 년전부터 찍고팠던 <눈꺼풀>에 이어 하고자 했던 세월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립 영화 <파미르>가 말하는 세월호 
3000만원의 예산, 그 퍽퍽한 한계 속에서 3회차의 촬영조차 허덕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멸 감독은 <전체 관람가> 최초로 해외 로케에, 36일간의 대장정의 작품을 빚어낸다. 아니, 그 짧은 시간보다 더한 지난 3년 묵은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했던 이야기가 더 '진짜'다. 

세월호를 물 속에서 꺼내기 전부터 '지겹다'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느새 '세월호'를 잊어간다. 가족들도 더는 '죄송스러워서' 잊으시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잊는다해도 남겨진 부채, 바로 그 '시간'이 흐른 뒤의 '세월호 '이야기를 오멸 감독은 다룬다. 

아웅다웅하며 함께 수학 여행을 떠난 두 친구,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한 친구의 삶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 친구가 타던 자전거의 안장이 시간 속에 너덜거려진 즈음, 비로소 남겨진 친구는 친구의 자전거를 찾아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가려고 했던 '파미르 고원'을 그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해발 2000 M가 넘는 고원, 9명의 스탭들, 누가 배우고, 스탭인 지 구분이 안가는 상황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고원을 헤매는 한 청년를 따른다. 굴러 떨어져 주저앉은 그에게 느닷없이 던져진 고원의 어린 아이가 던진 돌팔매, 자신보다 먼저 왔던 청년과의 이별에 상처로 몽니로 던져진 돌멩이들, 비로소 청년이 된 친구는 그 아이의 돌팔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비로소 찾은 친구가 가고자 했던 고원이 다가오고. 비로소 청년은 그곳에 친구를 두고, 다시 오마하고 웃으며 길을 떠난다. 

무엇을 해도 우리 시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채 의식, 어떻게 해도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 앞에서 현명해 질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오멸 감독은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찾아 떠난 청년을 통해 보다듬어 준다.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씻김굿'이 된 영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목청높은 선언이 닳아버린 시간 속에, 세월호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선다. 

그렇게 오멸 감독의 영화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독립 영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감독 말대로, 저예산으로, 상업 영화를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 다른, 자본의 투자를 못받은이 아닌,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독립 영화의 가치를 설득해 냈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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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2.11 14:18

드라마 왕국 MBC를 만든 저력이 <MBC베스트 셀러 극장>이었으며, KBS 드라마의 안정적이고도 예술적인 연출력이 <드라마 스페셜>이 원천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으면서도, 상업적인 이득이 보장되지 않는 단막극의 입지는 사라져갔다. 그나마 생존해있던 KBS조차 시즌제로 돌려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도 tvn이 앞섰다. CJE&M 오펜 드라마 스토리텔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단막극 공모전을 개최했고 그 중 뽑힌 20 작품 중 10 작품을 <드라마 스테이지>의 이름으로 2일부터 토요일 밤 12시에 방영하기 시작했다. 


tvn이 해냈다. 신인 작가의 등용문
올해 초 공모전에는 3000 여편의 작품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중 20편, 그리고 다시 10편은 말 그대로 '바늘 구멍을 통과한 낙타'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신인'들이었듯이, 신인 작가들은 이제 노쇄해가는 드라마 시장의 동앗줄과도 같은 해법이다. 하지만, tvn스테이지의 첫 작품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의 최지훈 작가 말처럼, '미니'에 바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신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신인 작가들에게 '디딤돌'이 바로 단막극, 그러기에 단막극은 그저 한 프로그램의 편성을 넘어 '유일하고도 경이로운'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것이다. 



2017 KBS의 드라마 스페셜이 생존의 고심 끝에 '멜로'라는 가장 접근성이 쉬운 주제를 가지고 찾아왔다면, 새로인 선보이는 tvn이 내세운 주제는 '당대성'이다. '우리들'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2017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그 첫 작품은 앞서 언급된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이다. 신예 최지훈 작가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웹드라마를 연출해온 윤성호 감독의 만남이다. 

'우리들'이라는 주제답게,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은 imf 직후인 2004년 어렵사리 들어간 대기업에서 이제 막 대리를 단 박종혁(이주승 분)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청년으로 대기업을 다녀야 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밀한 사생활'을 가진 그가 밤에 하는 일은 인터넷 로맨스 소설의 작가이다. 젊은 남자 로맨스 소설 작가라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일의 성격 상 안정적인 낮의 직장을 놓을 수 없는 그는, 알고보니 자신의 팬인 여성 이유린(조수향 분)을 만나며 꿈과 현실 사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17년의 사랑과 결혼
대기업 대리와 로맨스 작가라는 가장 극단적 설정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에 대해 짚어본 드라마가 다음에 선택한 건 고전 <b사감과 러브레터>의 2017년판, <b 주임과 러브레터>이다. 신수림 작가와 <기억>과 <비밀남녀>의 윤현기 피디가 뭉쳤다. 

딸만 셋인 집안의 둘째 딸로, 이제는 어엿한 구두 회사 주임에 비록 융자을 꼈지만 자신의 집을 가진 b주임 방가영(송지효 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모태 솔로 노처녀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데렐라의 왕자님처럼 자신에게 구두를 로맨틱하게 신겨주며 사랑 고백을 받는 로망을 접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느날 뜻밖의 '노란 러브레터'가 도착했다. 

드라마는 무뚝뚝한 노처녀에게 도착한 러브레터를 통해, 아니 담뿍 그녀를 사랑하는 말을 담은 그 '러브레터'의 내용으로 인해 자신을 잘 아는 누군가가 보냈을 것이란 그래서, 그 누군가를 찾는 해프닝을 주 내용으로 삼는다. 러브레터의 이니셜, s에 기반하여 주변의 s를 가진 사람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그녀의 레이더에 처음 걸린 사람은 훤칠하고 잘생긴 연하의 직원 손재현(강윤제 분), 힘든 일을 솔선수범하고 살갑게 방주임에게 다가오는 그가 당연히 그 '러브레터의 s'라 방주임은 넘겨 짚는다. 당연히 이어지는 건, 그만 술 자리에서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실수하고만 방주임의 해프닝. 

낯부끄러지밤 연하 직원이 아니라면? 그녀의 앞에 또 한 사람의 s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상사 심규선 과정은 무려 이름에 이니셜 s가 두개 씩!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평소에도, 그리고 연하 직원과의 해프닝으로 힘들어 하는 그녀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더구나, 그 '러브레터'의 로맨틱한 글처럼 그의 책상 위에는 시집이 즐비하다. 

대부분 노처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라면, 연하남 대신, 더벅머리에 눈치없는 노총각 상사가 그녀에게 일편단심 러브레터를 보낼만도 하건만, <b사감과 러브레터>의 번짓수는 달랐다. 이번에도 연하남이 아니라면 심과장이라며 설레발을 치며 두 사람만의 술자리에서 섣부르게 거절 멘트까지 날린 방가영. 하지만, 막상 거절을 하고 보니 보면 볼수록 심과장의 면면이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과장과 함께 본 멋진 원피스가 그녀에게 배달되고, 심과장의 프로포즈가 사내에 소문이 쫘악 난 그날, 방가영은 이번에도 마음이 앞서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나서고 만다. 



결국 또 한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방가영의 러브레터 사건은 알고보니 그 러브레터가 다이어트 회사의 스팸이었다는데서 정점을 찍는다. 심지어 배달된 원피스는 동창 선배의 보험 촉탁용. 학생들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목놓아 애절하게 러브레터를 읊어대던 b 사감 못지않은 두 번의 해프닝을 통해 드라마는 <b사감과 러브레터>처럼 시집 못간 노처녀의 비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심규선 과장의 말처럼 알고보면 참 괜찮은 사람인 방가영이 왜 여전히 신데렐라의 구두에 연연하며 로맨틱한 사랑에 자신의 목을 매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자신의 찾아올 신데렐라의 구두에 연연하던 방가영은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번엔, 당당하게 심규선을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자신의 감정을 당당하게 밝히기 위해서.  그 과정을 통해 방가영은 결혼못한 노처녀가 아니라, 결혼을 아직 안했을 뿐인, 당당하고 주체적인 감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물론 로맨틱 드라마로 자존을 찾으니 사랑도 찾아온다는 결말의 서비스까지 포함하여.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로맨스 드라마'의 외연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 '로맨스의 해프닝'을 통해 사랑 이전에 자존을 말하고 있는 드라마이다. 때가 되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걸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나이가 차서도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면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고, 그걸 당하는 본인 역시 한없이 어깨가 오그라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외사랑에 당당한 심규선,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방가영을 통해, 사랑 이전에 자신의 자존 찾기가 우선 순서여야 하는 2017년의 인간상을 드라마는 조명한다. 사랑과 결혼이 인간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이 아니라도, 한 인간 스스로 온전히 서고 당당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에 대한 바람을 드라마는 담뿍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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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2.10 17:38

공중파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공중파 수목 드라마들이 10%도 못되는 시청률로 고만고만하게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비록 수치상으로는 이들 드라마보다 못하다지만 케이블이라는 한정된 플랫폼을 통해 6%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달성하고 있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기세는 놀랍다. (<이판사판> 8.2%, <흑기사> 9.3%, <로봇이 아니야> 3.1%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슬기로운 감빵 생활> 5.84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무엇보다 4%대로 시작한 시청률이 회마다 상승세에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이로써 '추억'을 팔아 가능했다는 <응답하라>의 신드롬을 그와 가장 반대의 상황, 감빵을 통해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다시 한번 '신원호'란 이름 석자의 가치를 증명하게 되었다. 또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이우정'이라는 보증 수표 대신 신인 작가 정보훈과 함께였기에 그 가치는 더욱 증폭된다.



닫혀진 공감 감빵이 열린 서사의 공간으로

한 골목, 혹은 한 하숙집, 혹은 한 동네의 친구들이란 지역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지리적 특성' 답게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 전체가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서사를 완성하여 갔다. 과연 그런 신원호의 특기가 감빵이라는 공간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어쩐지 어수선했던 첫 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닫혀진 공간이라는 감빵은 신원호를 통해 오히려 <응답하라>보다 훨씬 열려진 서사의 가능성으로 풀려나간다.


형을 확정받지 않은 김제혁(박해수 분)가 구치소에서 형을 확정 받아 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 자체가, 그 공간의 이동과 함께, 등장인물의 변화로 연결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낸다. 또한 교도소라는 공간이 한 동네처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도, 법률적 제재로 인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른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는 구치소의 법자, 건달, 똘마니에서부터, 서부 교도소의 장발짱, 목공 반장 등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뽐내며 명멸해 갔다.


하지만, 이런 여러 인물들의 등장만으로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반전'들이 바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매력이다. 구치소, 교도소라는 공간이 무엇인가. '나쁜 놈'이라는 말로 단정지어도 무리가 없는, '죄'를 지어, 그 죄의 대가로 공간적 제재를 당하는 곳이다. 바로 그런 사회적 단정이 이미 이루어진 곳에서, 드라마는 그 '단정'의 반전을 빚어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반전의 인간 군상들

1,2회 구치소에서 가장 '반전'이었던 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의 산 증인과도 같은 딸들의 아버지 성동일의 반전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아버지'연하던 교도관 조주임(성동일 분)은 알고보니 죄수들에게 협박과 돈을 갈취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로 와서 다수의 드라마에서 '악인'으로 등장했던 정웅인이 분한 팽부장은 그의 눈빛만으로 이미 나쁜 사람같았지만 알고보니 누구보다 재소자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다. 이런 식이다. 제 아무리 구치소고, 교도소고 인생의 막장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그곳에는 교도관과 재소자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저마다의 '인간의 향기'를 한껏 뿜어내도록 드라마는 그려진다. 매 회 자신의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을 트로피로 가격하여 교도소에 온 국민 투수 김제혁을 중심으로 그와 엇물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뜻밖의 이야기들이 '만인보'처럼 감빵 생활을 채워간다.


5회에서 중심에 선 인물은 장발장(강승윤 분)이었다. 평소 장기수(최무성 분)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던 갓 스물을 넘긴 청년, 하지만 그는 경상도 사투리의 서글서글한 태도와 달리, 외부 작업을 나간 곳에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기사의 지갑을 슬쩍하는가 하면, 불시에 벌어진 방 점호 과정에서 들킨 개조한 시계를 아버지라 따르던 장기수의 것이라 밀어붙이며 무사히 만기 출소를 해 원성을 샀다. 겨우 스물 넘은 청년이 보인 철면피한 모습은 출소 임박의 절박감을 둘러대도 '인간적 회의'를 빚는다.


그런 인간적 회의 공간을 메꾸어 가는 건 김제혁이다. 구치소에서 부터 오랜 절친 준호(정경호 분)가 뜰어 말려도 늘 '인간적 호의'로 법자 등을 울려버리곤 하는 김제혁, 하지만 그런 영웅적 면모는 족구 시합에서 공을 손으로 잡는다던가, 미국의 수도를 뉴욕 양키스라고 답하는 어이없는 모습의 반전으로 인해, '인간적 훈기'로 내려앉는다. 김제혁만이 아니다. 사람을 죽인 죄로 무기 징역을 받은 장기수가 장발장에게 보인 선의 등 역시 사람사는 곳 교도소의 온기를 덥힌다.



그런가 하면 구치소에서 부터 줄곧 김제혁과 함께 하면서 '해롱'이란 별명을 얻었던 마약사범 한양의 반전은 이미 <비밀의 숲>에서 한 차례 반전을 선보인 그의 연기에 이어 또 한번 시청자들을 놀래키며 그의 이름 석자를 검색어에 올린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시청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로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만든 건, 선과 악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인간사의 군상들이지만, 그 진지한 틈을 채워가는 건 해롱이나, 문래동 카이스트의 맛깔스러운 해프닝들이다. 카이스트와 늘상 아웅다웅하며  극중 '웃음'을 담당했던 한 축이었던 '해롱'이 알고보니 '뽕'을 하면 멀쩡해진다는 내용은 극적이다.


하지만, 이런 재소자의 인간적인 면은 사회적으로 이미 고정된 교도소에 대한 인식과 상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알고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장기수 등의 캐릭터에 비해, 보신과 안위에 눈을 밝히는 교도소장을 비롯한 일부 교도관의 캐릭터는 교도소 혹은 범죄자 '미화'의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비록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지만, 교도소 내에서는 권력의 향배가 달라지며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의 냉정한 잣대나, 때론 편협한 잣대는 '미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관료로서의 교도관보다는, 6회에서 아쉬운 점은 김제혁의 재기 해프닝이다. 5회와 6회에 걸쳐 다루어 지고 있는 건 왼쪽 팔과 손에 마비가 온 김제혁의 에피소드이다. 팔에 무리가 온 김제혁, 이미 한 차례 왼쪽 어깨 수술을 받은 바 있어, 담당 의사조차도 회의적인 상황,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불굴의 의지로 왼쪽 어깨 부상을 극복한 바있는 김제혁이었기에 모두들 그를 응원한다. 하지만 이런 응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 김제혁은 은퇴를 선언한다.



간과된 도덕적 딜레마

이젠 야구가 지겹다고 하는 그에게 그럴 수록 전국민적 서명 운동을 벌이고 서로 동참하며 그의 재기를 응원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은 그의 전용 연습장까지 만들어 주는데, 그 전용 연습장 개장 날 그에게 자신이 트로피로 가격한 범인의 죽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김제혁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지지리도 없는 놈인가를 사람들 앞에서 한껏 토로하고, 다시는 야구를 안한다며 그 자리를 떠난다. 이후 6회는 야구를 그만둔 김제혁에게 담배를 드여오기 위해 문래동 카이스트가 이것 저것 다른 운동 등을 시키는 해프닝을 그려낸다. 도대체 야구 말고는 쓸데가 없어보이는 김제혁, 결국 수면제까지 먹이며 꿈을 빙자해 다시 야구를 할 것을 종용하고, 김제혁은 어리숙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프닝은 끝이나는데.


정작 '인간적'인 반전을 그려내기에 골몰한 드라마는 김제혁의 상황을 두고, 야구를 하느냐 마느냐에 더 집중한다. 동생을 범하려던 나쁜 놈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야 만, 그 '도덕적 딜레마'는 가볍게 그의 재기 해프닝 속에 잠겨 버린다. 즉,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인간의 이면'을 다루고자 하지만, 그 '이면'의 지점이 '반전'과 '숨겨진 사연'을 넘어서지 못한다. 알고보니 좋은 놈은 있지만, 나쁜 놈이면 그냥 나쁜 놈이다. 묘하게 인간의 스펙트럼이 넓은 듯하면서도 상투적이며 이분법적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던 스포츠 선수가 사람을 '과실'로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어떻게 '언플'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도 그와 같다. 김제혁이 겪어야 할 도덕적 딜레마 대신, 그의 재기 여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시청자들은 그에 골몰하며 짚어봐야 할 지점을 건너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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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2.08 14:32

jtbc의 <전체관람가> 일곱 번째 감독인 창감독의 필모는 소재나 주제 면에서 다양하다. 2008년 <고사; 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표적(2014)>, <계춘할망(2015)>까지. 하지만 정작 <전체관람가>를 통해 창 감독은 말한다. '불감청이었으나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었던 장르로 '판타지'를 내세운다. 특히 설화나 상상 혹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밝혔다. 하지만 '판타지'만으로도 발붙이기 힘든데, 설화라니, 당연히 창 감독의 '소원'은 유보될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타임 슬립을 기반으로 한 한 엄마의 자식 구하기인 중국 합작 영화 <역시 영구(2017)>를 통해 풀어내려 한 바 있지만, 본격적인 그의 '로망' 그 시작은 jtbc <전체 관람가>의 단편 영화를 통해서가 된다. 그렇게, <전체 관람가>의 창 감독 편은 '자본'과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되어지는 산업이 된 영화계에서 감독의 도전과 로망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풀어낸다. 




창감독의 로망, 판타지 구미호, 그러나 쉽지 않은 화두 
판타지에 대한 자신의 로망을 풀어내기 위해 창 감독이 선택한 이야기는 '구미호'이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혼밥'이었는데, 그것을 창감독은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평범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로망'을 지닌 구미호 소년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구미호만큼이나 우리 대중 문화에서 익숙하면서도 대접받기 힘든 존재도 드물다. 한때 우리 문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국의 '강시' 등과 같은 설화적 존재이면서도, 영미 문화권의 '좀비'가 샤머니즘적 성격을 승화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재해석되거나, 일본의 <나루토>처럼 트렌디한 소재가 되지 못한 채, 구미호는 늘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 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미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당시 조명받던 여배우 고소영을 청춘 스타 정우성과 함께 내세운 <구미호>가 등장했지만 역대 가장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6년작 <구미호 가족>은 이제는 스타가 된 하정우까지 등장시키고, 당시로는 도전인 뮤지컬의 형태로 구미호를 재해석해냈지만, 감독의 차기작을 기약할 수 없는 불운한 실험작으로 남게 되었다. tv라고 다를까, 김태희가 광고의 여신으로 거듭나던 2004년 구미호를 판타지 멜로로 탄생시킨 <구미호 외전>은 김태희를 비롯한 한예슬 등의 당대 청춘 스타들을 포진시켰지만, 역시나 구미호하면 흰머리에 소복, 여우눈에 피칠갑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이 도전적 시도는 안타깝게도 역시 당대의 조롱을 받으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트렌드가 된 좀비와 구미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였을까? 서인도 제도 부두교에서 등장한 특이한 설화적 소재였던 좀비는 현대 대중 문화에서 거대 자본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는' 파편화되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본주의 위기 속 개인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며 현대적 문화 코드로 재탄생되었다. 반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등장했던 대부분의 '구미호'들은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웠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의 해석을 뛰어넘지 못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전설의 고향같은 구미호를 연상하고 요구하고 그에 이질적이면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혼밥'이 승화된 사회적 고독으로서의 구미호 
창 감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앞서 구미호를 다룬 작품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신이 자신이 선택한 주제 '혼밥'을 사회적 고립으로 확장하며, 거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며, 자신만의 판타지 월드를 구축해 낸다. 또한 구미호라면 당연히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 어머니 구미호를 등장시키지만, 거기서 탄생한 존재, 아니 어머니 구미호가 천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탈취 변형한 자식 구미호로 송재림이란 남성 배우를 내세우면 전설을 뒤튼다. 

장황했던 메이킹에 비해, 정작 본편의 단편은 간결하다. 작품이 끝난 뒤, 대번에 2편이 궁금하다, 2편을 내놓으란 말이 나오듯, 창 감독의 <숲속의 아이>는 그 자신이 말하듯 자신이 구상한 장편의 프리퀼같은 모양새를 띤다.
곧 다가올 아이의 출생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평범한 부부, 그러나 그 행복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산통으로 병원에 가던 중 실종된 아내, 아니 실종된 아내의 뱃속의 아이로 인해 비극이 된다. 그 충격적인 씬이후에 비로소 등장하는 제목 <숲 속의 아이>. 이어지는 다음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혼밥'을 하는 청년, 분식집에서 주변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며 그들처럼 '간'을 집어먹지만, 익힌 간의 맛이 낯선지 곧 뱉어내고 만다. 그리고 들이닥친 경찰들, 청년을 밤거리에서 살인을 한 혐의로 체포하고, 그런 청년을 도와주려는 인권 변호사가 나타나지만, 그 '도움'은 그 인권 변호사는 물론, 경찰서의 피비린내 나는 살상으로 마무리된다. 

출생과 이어지는 청년의 난동이라는 이 불친절한 연결은, 하지만 다음 장면 엄마 구미호와 아들 구미호의 대화, 그리고 두 모자가 떠나는 도시, 새로이 자리잡은 숲속을 통해 모든 걸 설명한다. 나는 왜 이러냐며 평범하고 싶다는 아들, 평범한 게 무어냐고 반문하는 엄마,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며, 살다보면 너도 평범해질 거라고 말하며 자신만큼 다 큰 아들을 보다듬는 엄마.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워 전설을 복기하지 않아도, 선우 선이라는 배우의 선굵은 분위기로 엄마 구미호와 배우의 재발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들 구미호를 열연한 송재림을 통해 고립된 존재 구미호를 설득해 낸다. 영화 관람 후 정윤철 감독이 빗댄 <렛미인>이나, 혹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처럼 이종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을 돌아보게 되는 쓸쓸하고도 짙은 고독의 여운을 남기는데 프리퀼 <숲속의 아이>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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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2.04 16:52

<전체 관람가>에서 이명세 감독의 별칭은 '명스나이퍼'다. 앞서 작품을 선보였던 감독들에게 동료 감독들이나 mc들이 '주례사비평' 급은 아니더라도 서로 계속 얼굴을 맞대고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야 하기에 웬만하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 비해 이명세 감독은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남기거나, 평가를 유보하는 등 냉정한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방영할 시간이 다가오면 주변에선 그래서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고 우스개를 했지만, <전체 관람가>에 참여한 대부분의 젊은(?) 감독들에 비해 연배나 활동 시기도 한참 '선배'인 이명세 감독의 고민은 시간이 흐를 수록 깊어보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10년만에 어렵게 만든 영화, 그리고 단편 영화로 치면 학생 때 작품 이후로 어언 40년만에 만든 단편 영화, 하지만 젊은 갇목들은 입을 모은다. 연세가 무색하게 가장 열정적으로, 가장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그저 나이가 많아서 노장이 아니라, 앞서 살아간 사람의 용기를 그렇게 이명세 감독은 설득하고, 그 노장 감독의 활약에 젊은 감독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명스나이퍼였던 이명세 감독이 앞서 작품을 한 감독들에게 한 질문들은 일관됐다. 한 달 여의 촉박한 시간, 제작비가 넉넉치 않아 짧은 촬영 회차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젊은 감독들에게 그럼에도, 작품이 완성도가 있는가?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 어울리는 작품인가? 그렇게 이명세 감독의 날카로운 질문은 앞선 감독들의 선감상 후리플로 남겨진 과제처럼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 그 해답을 줄 차례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셨다
                                              - 홍승혁 촬영감독

왜 노장은 돌아왔을까? 
우리 영화계에서 이명세 감독을 스타일리스트라 부른다. '서사'보다, 화면의 색감, 구도 등등에 방점이 찍힌 그의 전작들이 남긴 수식어다. 하지만, 영화 <스파이>에서 중도 하차한 후 더 이상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의 작품을 더는 볼 수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상업 영화가 주류가 된 영화계는 대중들을 쉽게 유인할 수 있는 '드라마' 위주의 영화를 선호했고, 그 가운데에서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이명세 감독의 자리를 없었다. 

그런 이명세 감독이 10여년의 기다림 끝에, <전체 관람가>라는 콜라보 예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연배에, 그 경력에 위신을 운운할만도 하건만 기꺼이 한참 후배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여 '동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명세 감독은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이 자리에 왔을까? 이명세 감독은 말한다. 비록 10년만의 기회이지만, 자신은 영화에 대한 여전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드라마'로 대체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미지, 움직임이 결합된 이미지로서의 영화를 설파하기 위해 기꺼이 후배들과 한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자본에 의해 침식된 영화계에서 단편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영화의 자리, 혹은 영화의 본령이 될 수 있기에, 기꺼이 참여한다고. 이런 이명세 감독의 출사표는 그의 작품을 감상한 후,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만들었다는, 한편의 시와 같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바로 그런 이명세 감독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이명세 감독이 작품과 메이킹 과정을 통해 설파한 여전한 그의 주장은, 여느 서바이벌 예능처럼 낙오자들을 모아놓은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구차한 형색을 지녔던 <전체 관람가>의 프레임을 변화시킨다. 이미 앞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이나,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예능'이나, 투자받지 못한 감독들의 생존기를 넘어서, '자본'을 넘어선 모험과 도발을 시도했던바 있는 <전체 관람가>는 이제 이명세 감독에 이르러, 그 본래의 '단편 영화 활성화'의 의도를 제대로 관철해 낸다. 투자 받지 못해 장편으로 할 수 없었던, 혹은 흥행이 안될 거 같아 할 수 없었던 긴 이야기를 줄인 짧은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 편의 시'로서 단편 영화의 본질을 <그대없인 못살아>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미지로 설득한 '데이트 폭력' 아니 '사랑의 본질'
스완의 심장은 질투로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의 눈을 파내고 싶었다.  -마르셸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셸 프로스트의 저 짧은 문구로 시작된 영화는 바로 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주제 '데이트 폭력'을 대번에 설명해 낸다. 그리고 영화는 보는 이들을 마치 6,70년대의 흑백 영화와 같은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커다란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가는 여자, 한 눈에 봐도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그녀의 멍든 얼굴. 쫓기듯 구멍난 스타킹, 그리고 여자의 힘으로 끌고가기엔 버거운 캐리어, 그 상황에서 굳이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힘겹게 끌고가던 캐리어를 방치하려다 친절한 행인들에 의해 돌려받은 여자는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다 놓치고, 그 순간 어떤 친절한 남자가 몸을 날려 그 캐리어를 구하며 득의양양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도 잠깐, 열려진 틈으로 캐리어의 내용물을 보게 된 남자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고, 그 남자를 여자는 사생결단으로 쫓아간다.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바로 이 쫓고 쫓기고, 결국은 친절이 파멸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영화배우 대신 현대 무용가 김설진을 '남자'로 캐스팅한 <그대없인 못살아>는 이미 강렬한 이미지의 배우 유인영과 함께 그와 그녀의 추격전을 이명세 감독의 전편 영화에서 트레이드마크처럼 차용된 그림자 액션을 스스로 오마주하는가 하면, 폐 회전 목마를 이명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의 감독들이 수동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조명만으로 현실과 꿈을 오가는 몽환적 상황을 연출해 낸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한낱 꿈 속의 꿈인가/ 꿈 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 
                                                       - 영화 '개그맨' 중에서 이명세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그림자 액션이나, 일찌기 영화의 시원이 된 에드워즈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의 창조적 오마주인 회전 목마에서 빛으로 조명된 사랑과 폭력의 설정이 그저, '미장센'이라는 말을 넘어, 이 영화가 내세운 주제 '데이트 폭력'을 넘어, 영화 마지막 자막 R.M 릴케의 시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처럼 남자와 여자의 사랑, 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즉 이명세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곧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메이킹의 과정에서부터 눈물을 훔치던 감독들은 결국 영화 감상 후 기립 박수를 기꺼이 보낸다. 혹자에게는 1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는 그림'으로서의,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으로서의 영화의 본령에 대한 질문과, 주어진 주제에 대한 철학적 화답을 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서 '영화'의 길에 대한 '멘토'로 자리매김한다. 

평소 장편을 찍을 때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촬영하기로 소무난 이명세 감독, 하지만 적은 예산 짧은 시간에 군말을 덧붙이는 대신, 짧은 시간에 찍기 위해서 연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으로서의 영화론을 피력한다. 나이가 들어 노장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시대와 젊은이들을 앞선 열정과 혜안의 연륜으로 설득한 '선배'의 자리를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내며, 이명세 감독은 레전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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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1.27 14:24

그간 신원호 피디 앞에 붙었던 수식어였던 '응답하라'라는 수식어는 이제 그 주체가 분명한 새로운 수식어로 개명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건 '응답하라'에 이은, '감빵' 생활이 아니라, '응답하라'라는 시간과 공간이란 영역을 통해서만 빛날 줄 알았던, 신원호표 휴머니즘이다.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공중파의 여러 드라마로 그 영향력을 확장해 나간 '추억'을 밑거름으로 삼은 '응답하라'브렌드, 하지만 이번에는 또 어떤 시대로 갈까하고 궁금해 했던 호청자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신원호 피디가 들고 나온 공간은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감빵', 교도소다. 



추억 대신 극한의 감옥? 
여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범죄자를 트로피로 가격하여,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 방어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은 야구 선수 김제혁. 그는한국시리즈 2년 연속 MVP, 골든글러브 3연패, 세이브왕, 방어율왕을 차지한 넥센히어로즈 특급 마무리투수. 대한민국 세이브 기록을 죄다 보유한 괴물 클로저이며 미국행을 앞둔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존재, 하지만 법정 구속이 된 그는 하루 아침에 '감빵'행을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구치소,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을 보낸, 1,2회를 통해 그 공간에서 김제혁은 그의 감빵 동료 법자의 말처럼 볼 거 못볼거를 다 보게 된다. 

입소 과정, 항문 검사라는 뜻밖의 수치스러운 과정에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야구 선수의 비밀스러운 부위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교도관들을 여유롭게 내쳐주며 그의 호감을 얻은 조주임(성동일 분), 하지만 같은 방 갈매기와의 육박전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제혁에게 돈 3000만원을 요구한다. 

이번에도 역시 성동일과 함께! 라면서 그간 '응답하라'의 아버지로 그 역할을 이어왔던 성동일을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극 초반 그 캐릭터와 흡사한 너그럽고 넉넉한 조주임의 캐릭터로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 긴장은 곧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혁에게 징벌방을 가는 대신 돈 3000을 요구하는 그의 돌변한 태도로 인해 배신감으로 급전환된다. 바로 이 지점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하 감빵 생활)>이 그간 시리즈로 이어왔던 응답하라의 그 '추억'처럼 호락호락한 시리즈가 아니라는 확실한 각인을 주는 장면이다. 더 이상 '추억'을 반찬 삼아 옹기종기 '남편 찾기'의 로망을 이루지는 않겠다는 선언문이다. 



그렇게 '응답하라'의 상징적 인물 성동일의 캐릭터로 반전과 환기를 주며 여기는 더 이상 추억의 그곳이 아니라며 마침표를 찍은 드라마, 하지만 '추억'은 없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그 '인간의 냄새'가 났다. 

극한의 장소에서 펼친 진검승부
이쯤에서 되돌아 보자. 과연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유가 과연 '추억'과 추억에 기반한 음악 등의 문화적 장치들 때문만이었을까? 오히려, 신원호 피디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통해 그간 자신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대중과 '손쉽게' 교감했던 그 장치들을 제거한 채 그간 정말 자신이 해왔던, 그리고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감빵'이라는 극한의 무대를 통해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진검승부'는 1회 도대체 왜 낯선 박해수를 주인공 김제혁으로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국민 투수라지만 감빵 동료들조차 '어리버리'하고 늦다며 평가를 내린 그 인물로부터 비롯된다. 1회의 초반 눈길를 사로잡은 건 상습 마약 복용으로 정신을 못차리는 재벌 2세로 등장한 <비밀의 숲>에서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윤과장 역할의 이규형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건, 허허실실 조주임이었고, 그리고 막판에 김제혁을 안타깝게 찾아다닌 팬인줄 알았는데 오랜 친구 준호(정경호 분)였다. 

이 늦된 캐릭터, 하지만 그 인물 설명에서도 드러나듯 교통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좌절 대신 할 게 이것밖에 없다며 묵묵히 치료받고 재기를 해낸 역전의 인물처럼, 1회를 넘어 2회에 이르러 김제혁은 그 '인간미'을 증명해 나간다. 감빵 안에서 부당하게 힘을 행사하는 갈매기를 제압하고, 조주임의 3천만원 대신 밥자 어머니의 수술을 전화 한 통화로 부탁하는 등 그의 친구 교도관 준호의 말처럼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원호 피디의 말대로 '사소한 인간미'일 수도 있고, 교도관 준호의 말대로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는 김제혁의 그 '인간미', 그런데 익숙하다. 수학 여행비가 없어 쩔쩔매는 아랫집 덕선네 처지를 모른 척 하다 슬쩍 남겨놓은 윗집 아줌마 미란의 여비처럼,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다수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그 '인간적인 정서'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21세기의 혹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던 지난 20세기의 '인간미'가, 극한의 감빵 속 김제혁을 통해 슬그머니 등장하며 <감빵 생활>은 마치 눈을 맞은 상록수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그 이웃, 혹은 친구들의 훈훈한 덕담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빛났듯이, 가장 '인간적'일 수 없는 극한의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피디의 말대로, 검사나 형사 등 어떤 '직위'를 가지지 못한 죄수, 그럼에도 여전히 '성선설'의 주체인 김제혁을 통해 의지적 '휴머니즘'을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풀어가고자 하는 <감빵 생활>은 신원호 피디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빛낸다. 

물론 준호와 제혁의 청소년 시절의 전사로 부터 시작된 준호와 제혁과 그리고 지호(정수정 분)의 '인연'은 '응답하라'의 외전과 같은 기시감을 준다. 하지만, 그 '기시감'이 <감빵 생활>의 정서를 지배하기에 구치소, 그리고 그에 이은 진짜 교도소 생활의 현실은 극한적이다. 이번엔 어느 시대일까? 하는 당연한 기대를 뒤엎고, 가장 자신이 해오던 시리즈와 반대의 상황에 '출사표'를 던진 것만으로 이미 이 작품의, 그리고 신원포 피디의 의의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오히려 그래서 그 속에서 빛나는 신원호가 그리고자 하는 '인간적 세계'의 지향점을 고수하는 점은 그래서 또 기대가 된다. 새로워서 빛나고, 여전해서 더욱 가치있는 <감빵 생활>의 선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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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1.24 14:20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명구가 무색해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잊혀진 독서의 계절을 뜻밖에도 부추키는 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며 정현종의 시 '방문객'으로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다. 그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문학적'으로 만드는 건 작품 속 곳곳에서 인용되는 독서의 욕구를 부추기는 문학 작품들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문학이 무색하게도, 문학이 해야할 작품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직시하며 반성할 수 있는 '문학적 역할'을 드라마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문학'보다 더 '문학적'이다. 




사람이 온다, 그의 19호실과 함께 
계약 결혼을 통해 낯선 두 이방인이었던 남세희(이민기 분)와 윤지호(정소민 분)가 '사랑'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을 드라마는 정현종의 '방문객'으로 알렸다. 그저 월세 세입자가 필요했고, 몸 뉘일 방이 필요했던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한 공간에서 살며, '사랑'하지 않는다는 편의적 이유로 성큼성큼 서로의 삶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되도, 정현종의 '방문객'은 그저 사랑의 문학적 수사로 그칠 수 있었다. 가랑비에 옷적듯이, 그러나 때론 옷과 가방을 집어 던진 채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돈 대신 비싼 오토바이를 부수는 걸 감수하고, '갈음'이란 표현에 섭섭하고 상처주고 싶어하며 가까워지던 두 사람은 결국 진짜 '키쓰'를 통해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어간다. 그리고 사랑하며 그 사람의 세계에 성큼성큼 발을 들이니 거기엔 남세희의 집에 마주한 두 사람의 방처럼, 이십 여년, 혹은 삼십 팔년을 웅크리고 살아왔던 각자의 19호 실에 맞닦뜨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들 해왔다. 이 이상한 수학 공식에는 홀로 맞서기 힘든 세상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되어 함께 헤쳐나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 부부의 하나됨이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이 이 사회의 '가족주의', 때로는 '전체주의'의 바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2017년의 젊은이들은 사회 경제적 이유로 그런 '가족'을 이룰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런 사회 경제적 이유를 넘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라 정의 내려진 그 명제에 대해 새로운 이견을 제시한다. 



그 이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바로 연애 7년차, 아니 전 연인인 양호랑(김가은 분)과 심원석(김민석 분)커플에게서이다. 한 통장에 미래의 꿈을 부으며 원석의 자수성가와, 그를 통한 성공적 결혼과 안락한 가정을 꿈꾸던 호랑-원석 커플은 7년차에 이르러서도 앱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원석의 사회 경제적 처지로 인해 흔들린다. 호랑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선배 회사에까지 들어갔지만, 호랑이 원하는 결혼까지 하려면 5년을 더 기다려 달라는 원석의 요구에 호랑은 절망한다. 그리고 결국, 원석은 자신이 호랑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고 호랑은 원석의 집에서 짐을 뺀다.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고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뜨그려져온 두 사람, 하지만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이해는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물음표라는 원석과 결혼이라는 골문을 향해 모든 과정을 감수했던 호랑의 이해 관계는 결국 매번 어긋나고 만다. 원석이 자신의 꿈을 포기해도 쉽사리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이 커플은 결국 7년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각자 자신을 직시하기에 이르른다. 

19호실에서 나와 사랑의 광장에서 
호랑, 원석 커플의 파경은 결국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연애와 결혼이 그 옛날 단칸방에 함께라는 이유로 행복하던 그 시절의 결혼이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그건 시대가 달라져서도, 사회가 달라져서도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달라져서인 것이다. 즉, 이 시대의 결혼은 분명 남과 여의 결합이지만, 그 남과 여는 각자의 삶과 주관이 분명한 개인들의 결합이라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우수지(이솜 분)가 너무 좋아 그녀가 쏘아대는 화살마저도 내가 맞고 그녀가 조금 편해졌으면 하는 마상구(박병은 분)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우리가 함께하면 다 해결될 거야'라는 고백 대신, 세상에 상처받고 자신의 19호실에 갇혀있는 수지가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 싸우기를 독려하고, 자신이 그 응원군이 기꺼이 될 꺼라 말한다. 분명 '함께'이지만, 두루뭉수리한 집단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의 주체로써 서있는 개인으로서의 '결합'을 전제한 고백이다.

 

드라마 속 전직(?) 드라마 작가인 지호는 바로 이런 자신들의 처지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통해 빗대어 설명한다. 가사 노동에 지친 한 여성이 자신만의 '공간'을 얻기 위해 기꺼이 '불륜'의 오해조차 감내한다는 이 파격적인 이야기는 이 시대 자신의 삶을 올곧이 살아내는 개인들의 현실을 절묘하게 상징해 낸다. 

자신의 집에 집착하는 세희, 자신이 머물 방이 필요했던 지호가 그 자신들의 '공간'이 필요해 전 시대의 유산이라 할 '결혼 제도'를 이용하는 장치는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그런데 이제 그 공간을 공유한 그들은 서로로 인해 마음 속의 공간이 생겨,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로코'의 형식을 띠지만 21세기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담보해 내고 있기에 그 '로코'의 과정조차 녹록치 않다. 

'사랑하다보면,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들어왔다는 뜻이다.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그 흔한 삼각 관계의 등장, 12년전 세희와 동거를 하고, 아이까지 가졌던 고정민(이청하 분)의 대두는 남세희와 윤지호의 사랑 전선에 위기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긴장을 통해 오히려 그간 두 사람 각자의 19호실의 방문을 열어젖힌다. 방문객이란 시집 속에 갈피처럼 끼워넣은 고정민의 영원히 사랑같은 건 하지 말라던 그 명제에서 세희는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했으며, 지호는 그간 묻어두었던 작가의 꿈을, 아니 작가를 하기 위해 겪었던 고통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이제 2회차를 남은 드라마는 그래서 뜻밖에도 '함께'하기 위해 각자 해결해야할 과제에 주인공들이 무거워진다. 그 각자 자신의 방 속에 묵혀둔 그 짐 보따리를 풀어내고 나서야, 이들은 자신의 19호실을 나와, 함께 할 '공간'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각자의 '자존'과 '실존'이 우선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사랑'과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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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1.22 14:25

극중 지호의 나레이션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의 해피엔딩은 키쓰로 마무리된다고. 하지만 진짜 사랑 이야기는 키쓰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나레이션답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키쓰로 해피엔딩이 아니라 키쓰로 시작된 '진짜 사랑'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가고자 한다. 


모쏠 지호, 육체적 욕망에 눈뜨다. 
일반적인 로맨틱 멜로의 드라마에서 '환타지'로 이어가는 사랑이라면 훈훈한 남녀의 라고 쓰고, 15금에 어울리는 연애로 연결되리라. 하지만 늘 예상 밖의 서사를 이어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두 사람의 첫 키쓰를 모쏠에 달팽이가 부러운 작가 지망생 지호(정소민 분)가 앞으로도 키쓰 따위는 해볼 수 없을 것같아 다짜고짜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에게 솔직한 덕담을 해주었던 세희(이민기 분)의 입술에 박치기를 한 것으로 도발하는 것으로 관계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키쓰, 그리고 사실상 진짜 키쓰를 그런 지호의 키쓰가 사실은 키쓰가 아니라 일방적 입맞춤이었으며 진짜 키쓰는 이런 것이라며 세희의 도발로, 그리고 이어진 두 사람의 네버엔딩일 거 같은 키쓰신으로, 그리고 일방에서 쌍방으로의 관계 전환으로 극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는 거기서 한 발 더 '어른'의 연애로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키쓰를 통해 모쏠 처음으로 연애에 입문하게 된 지호는, 키쓰 이후 진전된 스킨쉽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혼돈스러워 한다. 자신도 모르게 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며 혼잣말을 하고는 '쓰레기'라 머리를 흔들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키쓰의 후유증에 정신을 못차린다. 심지어 귀걸이 착용 과정에서 낯선 여자의 손길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여중, 여고를 나와 작가가 되기 위해 정진하느라 연애에 한 눈 팔 사이가 없던 모쏠의 이 흥미로운 설정은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성적 자유가 판치는 세상이라 하지만 상당수의 여성들이 tv의 동화적인 설정으로 연애를 배우고, 엄마의 지휘 아래 관계를 설정해 가는 세상에서, 키쓰 이후 자신에게서 용솟음치는 본능을 쓰레기나 변태로 취급하는 장면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제 막 사랑을 하게 된 상대방을 향해 끊임없이 바래지는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이번 생>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지호는 고양이를 찾아 세희의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시집에서 지난 사랑의 아픈 흔적을 발견한다. 흔한 사랑 이야기라면 그걸 오해와 질투의 복선으로 사용하겠지만, 비록 모쏠이지만 '어른'인 지호는 생각해 보니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자신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세희의 아픔을 기꺼이 이해하는 것으로 그 '발견'을 풀어낸다. 그러기에 그녀에게 찾아온 욕망도, 다짜고짜 19금의 도발 대신, 주저함과 갈망의 밸런스로 드라마는 풀어간다. 키쓰를 더 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세희의 배려와 함께. '변태'가 아닌 자연스런 어른 연애의 한 과정으로. 


2017 여성들, 그 욕망의 향배는?
드라마는 그렇게 이제 모쏠 탈출을 눈 앞에 둔 지호와 함께 수지, 호랑, 세 여성의 욕망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그간 세 친구 중 가장 자유분방했던 수지는, 그 자유분방함의 이면의 숨겨진 그녀의 사회적 욕구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맞춤 브래지어 사업에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를 보이면서도 어렵게 들어간 연봉 높은 직장에 대한 연연함과 비혼주의는  우리 시대 젊은 여성의 또 다른 현실태이다. 

호랑은 다를까? 인간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온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바로 호랑의 모성적 갈망이다. 안락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는 그 욕망이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유지시켜온 본원적 기능이다. 단지 사회적 자아가 보다 부각되는 사회에서 안타깝게도 하랑의 욕망은 '전근대적 대접'을 받게 되지만 엄연히 '취집' 역시 여전히 우리 사회 여성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욕구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지 안타까운 건, 그 욕망의 방점과 발화점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의 조건'에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런 각자의 욕망을 가진 그녀들이 2017년이란 구체적인 현실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드라마 속 각자의 상황을 다르게 빚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며, 일도 잃고, 갈 곳도 없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 속을 헤매게 되었던 지호는, 뜻밖에도 집세도 깍아주는 집주인을 만나, 방도 얻고, 이제 마음의 공간도 함께 공유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정말 다행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직장도 확실한 안정된 경제적 지위의 남성과 사랑을 시작하게 된 행운을 얻어서이다. 여전히 그녀의 직업은 알바이지만, 2년 계약 결혼의 위상은 어쩌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반면 어려움에 봉착한 지호를 위로하던 친구들의 현실은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계약 연애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수지는 모처럼 두 눈이 반짝이는 일을 찾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꿈을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모텔을 전전하는 연애는 그녀를 비혼주의자로 만들고. 

더 어려운 건 호랑이다. 서른 줄 7년의 연애, 자수성가한 사업가를 꿈꾸며 만난 연하 남친은 아직도 이십줄에, 자수성가의 꿈은 여전히 옥탑방에 머문다. 사랑을 한다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호랑이 원하는 모성 욕구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앱 개발이라는 일확천금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포기한 꿈과 새로운 직장은 여전히 원하는 가정을 꾸리기엔 미흡하다. 새마을 운동 하던 시대를 지나 산업 역군의 시대에 가진 것 없이도 결혼하고 아이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이전 세대는 상상할 수 없는, 2017년 가진 것없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꿈은 이렇게 옥탑방에서 좌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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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1.15 17:38

5회를 맞이하여 네 번째 단편영화 제작기에 돌입한 <전체 관람가>는 '단편 영화' 활성화를 위한 영화 감독들의 외도라는 취지를 넘어 매회 새로운 기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장윤철 감독이 실사 영화와 게임의 콜라보를 하는가 하면, 에로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이 가족영화를 찍고, 이원석 감독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영화의 주인공 박광현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2000억이 든다는 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15분짜리 단편 영화에 담는다. 


3000만원이라 불가능해서, 가능해진 블록버스터 품앗이
3000만원 초저예산의 단편 영화와 블록버스터라는 이 모순의 조합,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 대체적인 담론이 된 현실에서, 애초에 액션물을 하고자 했지만 제작비로 인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로 급선회한 이원석 감독처럼 주어진 제작비는 영화 자체를 규정한다. 그런데 박광현감독은 애초에 '3000만원이 판타지다'라며, 과감하게 그 '돈'으로 제한된 제작 환경을 뛰어넘어 버린다. 3000만원의 한도 내에서라는 현실적 조건을 '구걸'과 '협조'로 대응하며 17년간 하고자 했지만 '투자'라는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던 박광현 감독의 로망을 단편 영화라는 틀에 과감히 담아내 버린 것이다. 



감독은 말한다. 아마도 장편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와, 단 3일의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들이, <웰컴 투 동막골(2005)>, <조작된 도시(2017)>를 함께 했던 스탭들과 유명 디자이너, 심지어 밥차까지 십시일반 '노력과 자본'의 동원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능한 제작비가 꿈을 실현시킬 품앗이의 기반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박광현 감독은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트라 100명과, 제작비 3000만원으로 세팅한 현장 외에, 단편 영화에서 무려 카메라 3대의 지원과, 의상, 미술, 제작 과정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과, 밥차 등등의 '구걸'을 통해 15분짜리 단편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영웅이 못생겼다면?
그러나 12일 방영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을 그저 제작비를 넘어선 품앗이라는 지점의 신기록으로만 기억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거기서 진짜 로망은 일찌기 90년대 장준환 감독의 <방구맨>, 김곡, 김선 감독의 <드릴 소녀>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의 계보에 놓여있지만, 결코 투자받을 수 없는 비운의 b급 히어로물의 구현과, 그보다 더 투자받기 힘든 '불편할 정도의 직관적 현실 묘사가 투영된' 뚝심있는 현실 반영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다. 

외모 지상주의를 자신의 주제로 선택한 박광현 감독은 대작 <스파이더맨>의 패러디에 기반한 오늘의 '적나라한 투영'이다. 실제 항문에서 거미줄이 분사되는 거미가 히어로물 주인공이 되어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그래서 박광현 감독의 히어로 <거미맨>은 항문에서 거미줄이 나온다. 또한 늘씬한 몸매의 히어로대신, 늘씬하고 잘 생긴 건 악당에게 양보하고, 배나오고 팔다리 가는, 심지어 가면을 벗었는데 대머리가 땀에 가닥가닥 절어있는 얼굴은 '시나노'급의 현실 아저씨 영웅이 등장한다. 심지어 그가 초능력자가 되는 과정도 어린 시절 동네 또래들에게 집단 이지매를 당하는 과정에서이다. 

젊음의 성소 '클럽', 그곳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잘생김만을 믿고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발차기로 날려버리며 '클럽의 수질 관리'를 탓하는 악당의 등장. 그 소란에 불만을 표출하던 과객과 클럽의 주인은 가면을 벗은 그의 멀끔한 외모에 '비난'을 '감탄'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던 여성의 못생김에 오히려 '악당'을 응원하기에 이르는데. 그때 암전과 함께 하늘에서 등장한 황금빛 거미, 

하지만 현실은 항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에 의존해 궁색하게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주관적 액션'에서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의 멋짐을 한껏 발산하지만, 현실은 그를 악당으로 오인한 경찰들과의 아저씨들 동네 떼싸움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궁색한 영웅, 거기에 그만 가면까지 벗겨지는데. 

영화의 정점은 가면이 벗겨졌어도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거미맨과 악당과의 1;1 대결장면,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악당이 보인 나쁜 행동들의 목격자였음에도, 그의 잘생김에 매료되어 악당을 응원한다. 그가 거미맨을 쳐박을 때마다 클럽에 울려퍼지는 환호성.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 초라하고, 거기에 영웅연했지만 악당에게 무참하게 짓밟혀 더 불쌍해진 거미맨 앞에, 그의 이름 '수호'를 부르며 나타난 첫사랑. 영화가 끝난 후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엄청난 뚝심'답게 박광현 감독은 3000만원의 환타지로서의 단편이 가진 기회에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주제로 마지막을 장식하여, '내 얘기같아 슬프다'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묵직한 환타지 영웅물을 탄생시킨다. 





<거미맨>은, 박광현 감독은 묻는다. 늘 이겨야만 혹은 '우생학적 적자'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의도는 가졌지만 성공해내지 못하는 영웅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제작비의 신화를 넘어선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 화두를 남긴다. <거미맨>은 겨우 15분인데, 마치 한 시간을 넘는 장편 영화을 본듯한 감상의 무게를 남긴다. 굳이 이명세 감독이 지적한 '단편 영화의 폼에 장편 영화를 끼워넣은 듯한 한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5분을 통해 보여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도전과 주제 의식이 <전체 관람가>의 도전을 무한하게 확장했기 때문이리라. 적은 제작비, 제한된 제작 환경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편이 단편이기에 풀어내어질 수 있었던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은 단편의 위상을 새롭게 부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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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11.13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