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3%로 출발했던 <미스티>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8회 6.324%에 도달했다. 6회 7.081%의 최고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화제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을 바라보는 고혜란(김남주 분)의 전 애인 케빈 리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치정 미스터리의 외피를 입은 <미스티>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 고혜란을 비롯한 각자의 욕망과 이해가 첨예하며 부딪치며 '치정' 그 이상의 '심리 스릴러'로써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건 당연히 고혜란이다. 이미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시선을 대번에 빼앗아 버린 김남주에의한 고혜란은 그 존재로부터 탁월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메인 뉴스의 앵커라는 존재감을 목소리 톤부터 달리하며, 거기에 덧입힌 패션으로 완성한 '아우라'로 대번에 설득시킨 고혜란으로 <미스티>는 필요 조건을 완성한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가 내연남과의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뜨림으로써 반전의 관전 포인트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치정의 주인공'으로써의 여주인공이라는 코드 역시 김남주에 의해 설명된다.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여전히 섹슈얼한 여성으로서 욕심나는 이 이중적 코드를 배우 김남주의 준비된 캐릭터로 설득해 내며, <미스티>는 그 비밀의 화원에 성큼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지우면서까지 뉴스 앵커가 되고 싶은 여성,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앵커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 완벽한 여성, 하지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이 '치정의 트랩'에 걸린 여성이 안개 속에 갇힌 비밀을 파헤치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늘 버거웠던 한 여성의 삶이다. 



소녀 고혜란, 자신의 과거로 부터 도망치다. 
은주(전혜진 분)를 만나고 온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이 혜란이 좋아했던 음악이라며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려주자 혜란은 사색이 된다. 그리고 그 음악이 울려퍼지는 혜란의 꿈속, 어린 시절 명우(임태경 분)는 혜란에게 '너 이일과 상관 없다'며 혜란의 등을 돌려 세운다. 피를 묻힌 채 달려나가는 혜란, 그런 혜란을 바라보는 명우, 그 뒤에는 전당포 주인으로 추정되는 쓰러진 시체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혜란 대신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된 명우, 하지만 혜란은 그 시절 그 사건으로 도망쳐 나왔듯, 명우의 바램처럼, 그 때 그 사건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고, 태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이제 그녀가 바라던 정치의 입문만이 남았다. 그런데 케빈 리의 아내로 그녀와 얽힌 은주는 남편 태욱을 통해 그 과거의 음악을 전해온다. 마치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에 묶여 나오는 시체처럼, 현재의 살인 사건은 과거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도망을 제대로 쳤던 것일까?



과거를 덮기 위해 그녀가 도망친 곳은?
검찰로 송치된 케빈 리의 사건, 그 수사의 키가 될 블랙박스 메모리 칩을 가지고 있는 서은주는 그걸 들고 고혜란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그 날의 영상을 남편 태욱에게 보여주고 사랑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그 칩을 검찰에 제시하고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대신 치정의 치욕을 택할 것인가.

그런 은주의 '딜'에 혜란은 답한다. 자신이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케빈을 만난 그날,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라고. 그런 그녀의 후회는 7년 동안 진행했던 뉴스 앵커 자리가 위태로웠던 그 시간을 오버랩 시킨다. 마치 '공로상'처럼 다시 그녀에게 쥐어진 올해의 언론인상, 하지만 상의 부상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메인 앵커 자리에서의 '퇴출'이었다. 물러나도 자신이 원하는 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한 고혜란, 이렇게 나이든 여성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보도국의 '현실주의'에 그녀는 '케빈 리'라는 카드로 대응한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달려간 그곳에서 만난 건, 한때 그녀와 열정을 나누었던 이제는 케빈 리가 된 이재영(고준 분), 그리고 그의 곁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은주가 있었다. 

지나간 연정과 지금의 과업 사이에서 냉정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녀에게 케빈 리는 도발했고, 심지어 위협했고, 협박했다.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지탱해줄 카드이자, 동시에 그 쌓아올린 것을 한번에 허물어 버릴 폭탄같은 남자 케빈과의 딜을 위해 고혜란은 블랙 박스 메모리칩에 남겨진 비겁한 선택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이제 그녀를 케빈 리의 살인범으로 옭죄어 온다. 



고혜란의 마지막 승부처, 고혜란의 뉴스 나인
은주의 협박 아닌 협박, 다시 그녀를 옭죄어 오는 위기에 복도에서 주저 앉아버린 고혜란이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건 바로 '초심'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보도국이라며 청와대 영전을 만류하는 장규석(이경영 분)에게 고혜란은 반문한다. 그래서 나를 메인 뉴스 앵커자리에서 내쳤냐고. 그리고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막으려는 방해 공작에 고혜란은 바로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유가 외압이 없는 보도를 하고 싶었던 그 언론인의 자세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피력한다. 

나이들어 아침 뉴스 등으로 밀려나는 처지 대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고혜란은 바로 그런 그녀의 방식으로 청와대 대변인 내정에도 불구하고 옭죄어 오는 체포의 압박을 고혜란의 뉴스 나인의 앵커로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돌파한다. 정치권의 영전을 위해 정재계 커텍션에 대해 눈을 감으라는 국장의 회유도 아랑곳없이 그녀가 했던 대로, '뉴스는 팩트다'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앞에 나타는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폭로한다. 

고혜란이 살아오며 맞이한 위기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환기되고 있는 '미투' 운동처럼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며 끊임없이 맞이하는 위기의 결집체이다. 소녀였던 고혜란은, 그리고 앵커 7년차임에도 고혜란은, 그리고 청와대의 영전을 앞두고서도 고혜란은, 늘 약자였던 고혜란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린 시절의 운명에서 도망쳐 온 그날 부터 고혜란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자신의 은인을 외면했고, 아이를 포기하고, 남편을 이용했다. 고혜란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보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쳐온 그 '운명의 미션'에서 도망치거나, 우회했다. 어쩌면 고혜란에게 닥친 미션은 고혜란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여성들이 매번 부딪쳤던 '미션'들의 집합체이다. 드라마는 고혜란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여전히 고난한 삶을 논한다. 


하지만, 이제 서은주를 만난 고혜란은 그날 케빈 리를 죽이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을 분노하며, 자신의 어긋난 회피와 선택이 오늘날 자신의 위기를 자초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한 세 번 째 선택은 말 그대로 '정면승부'이다. 청와대를 가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던 그 원칙적 방식으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도망치던 그녀가 선택한 이 방식으로 인해 살인용의자 고혜란의 국면은 전환된다. 살인 용의자 한 여성 고혜란은 이런 선택을 통해 그녀가 살아가고자 했던 인간 고혜란으로 거듭날듯하다. 
by meditator 2018.02.25 15:18

'아이'를 낳는 고통이 싫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모성'이 회피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런 '반발'은 우리 사회가 얼마 만큼이나 '모성의 포용성'에 기대고 있는 가를 반증하고 있는 현상이라 보여진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 순간, 그 '여성'에게는 '무한한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모성을 존재한다. 진화 심리학이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를 감당하기 버거워 방황하는 '산후 우울증'이 엄연히 현존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지상 명제로서의 '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10회, 이 드라마는 우리가 그리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많은 질문과 과제를 제시한다.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되었던 신경숙 작가의 화제작 <엄마를 부탁해>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실종으로 부터, '엄마'란 존재로 살아온 한 여성에게,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이 있었음을 갸륵해서 추모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엄마'로 자신을 밀어넣는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버렸다! 
바로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tvn의 드라마 <마더>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 시작은 지금 자신의 곁에 머무는 남자에 연연하여 자신의 아이를 쓰레기 봉지에 '방기'하는 엄마로 부터이다. 엄연히 우리 사회에 현실로 존재하는 아동 학대, 그 현실을 '자영'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와 함께 남겨진 자영(고성희 분), 그녀에게 혜나(허율 분)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상심한 엄마를 위해 카페라테를 타다 그걸 좋아해 버린 아이를 자영은 버거워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은 학대로 나타났다. 그렇게 '모성'의 상실된 자영, 그런 자영의 아이 혜나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진(이보영 분)'이 자신의 아이로 거둔다. 상실된 모성과, 그 상실된 모성을 대신하는 '공감의 의제 모성', 유괴라는 사건 이면의 이 모성의 대립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신봉하는 '모성 신화'에 발을 건다. 

그렇게 엄마가 곧 모성이라는 전제를 스스로 짓밟아 버렸던 자영은 수진이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혜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혜나를 마주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읍소한다. 그러나, 이제 응복이 된 혜나는 자영에게 그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영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복기시킨다. 죽지 않기 위해 엄마로 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해서 응복이 되었던 혜나,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자영은 발을 돌린다. 다시 한번 혜나를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모성 신화도 있다. 버려진 아이 혜나를 거둔 수진처럼, 보육원에 버려졌던 내 새끼처럼 길렀던 수진의 양모 영신(이혜영 분), 스물 다섯 살 시절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수진을 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사는 영신은 애타게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데리고 나타난 수진과, 그녀의 딸 혜나, 아니 응복에게 열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수진이 데리고 온 응복이 자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영신은, 그 둘에게 집착하여 놓았던 자신의 삶마저 다시 애착을 가지게 되었던 영신은 '테메테르'로 분해 가장으로서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수진과 응복을 버리겠다 선언한다. 



버려서 찾은 모성 
자영과 영신이 자신의 딸들을 버리는 이 상황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의 방기가 아니라 성장이다. 혜나를 늘 자신의 부속물로 생각하여 방기하고 심지어 쓰레기 봉투에 버렸던 자영은 처음으로, 혜나를 마주한다. 밀어내도 다가와 자신을 안아서 부담스러웠던 혜나였지만 수진에게 빼앗길 수 없어 홍희의 이발관까지 찾아온 자영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자신이 혜나가 아니라 응복이라 말하는 딸 앞에서 발을 돌린다. 딸에게 외면받은 엄마의 상처받은 뒷모습이지만, 그리고 아직 채 깨닫지 못한 채 분노한 상태이지만 자영으로서는 처음으로 혜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 순간 자영은 처음으로 엄마다웠다. 

영신도 마찬가지다. 영신은 의사에게 고백했었다. 자신에게 수진은 아직도 열 살의 아이 그대로인 채라고. 여전히 어린 아이 수진의 보호자연 했던 영신은 이제 기꺼이 응복의 보호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수진을 놓아보내 주려한다.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책임을 내세웠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어린 자식을 끌어안아아야만 엄마라 생각했던 그 1차원적 모성으로 부터의 탈피가 있다. 유산 대신 새처럼 훨훨 날아가라 했던 그 마음의 연장 선상에서, 응복의 엄마됨을 선택한 어른 수진의 삶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런 자영과 영신의 모성에 대한 방기는, 그에 앞서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자의 딸로 살아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딸을 버렸던 홍희의 모정에 잇닿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다시 묻는다. 모성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은 '자식을 끼고 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을 품은 모성'들이 치맛 바람이란 이름의 역효과를 낳으며, 아이의 삶을 재단하고, 수강 신청에서 부터 미래의 직업, 결혼 이후의 생활까지도 '지도'하고 '군림'하며 아이를 '지체'시키는 '모계 사회'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더> 속 자영과 영신, 그리고 홍희를 통해 보여진 모성의 방기는, 과연 '엄마됨'의 내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린 자식을 품고 보호하고 보살펴 주는 그 1차적 보호를 지나, 성숙된 모성으로의 성장을 위해, 진정 아이를 위해 '엄마'들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극단적 설정'을 통해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10회 이들의 갈 길은 멀다. 응복이 된 혜나 앞에서 발을 돌린 자영은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 먼저 서야 한다'는 수진의 충고가 무색하게 '분노'의 반격을 준비한다. 영신의 희생어린 선택은 영신보다 더 큰 희생을 선택한 응복, 아니 혜나로 인해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과연, 이 엄마들의 앞으로의 여정은 또 어떤 '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 누구도 쉽게 던지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질문을 드라마 <마더>는 끈질기게 천착한다. 

by meditator 2018.02.22 15:26

middle age, 중년은 어떤 나이일까? 일찌기 공자께서는 마흔을 불혹(不惑-마음이 흐려져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 하셨고,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알게 된 나이)라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께서 정의를 내린 나이의 한계는 70세였다. 인간이 대략 70년 쯤 산다는 전제 아래서 불혹의 마흔이 등장하고, 지천명의 오십이 규정된다. 그렇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마흔하면 인생을 제법 살아낸 나이였다. 하물며 오십은 노년의 문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세 시대가 도래했다. 마흔에 혹하지 않고, 오십에 노년이라 하기엔 자기 앞가림하고 살아가야 할 날이 오십 년이나 남아 버렸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등장했고, 젊은 세대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나이는 자꾸만 미뤄졌고, 그에 따라 결혼도 늦어졌다. 서른만 해도 '노'자라 붙던 시대가 무색하게, 이제 마흔 정도 되어야 안정을 찾고 결혼을 할 만한 시대가 되어간다. 그런 시대에, '중년'은 예전 시절에 안정적 불혹의 세대가 아니라, 한참 세상에 '미혹'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한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중년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들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찾아왔다. jtbc의 <미스티>와 2월 20일 4회 연속으로 첫 선을 보인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이다. 이들 두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 시대 중년의 코드를 살펴보자. 



안개 속에 숨겨진 욕망 
케빈 리(고준 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스릴러 <미스티>에는 욕망이 분출되고 충돌한다. 이미 케빈 리의 등장 이전부터 고혜란(김남주 분)은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지난 욕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정'은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과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반증이다. 외려 막상 그녀 앞에 나타난 케빈 리에 흔들리지만 그녀를 더 애닳게 만든 건 지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될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중년의 남녀들이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관계를 매개로 사건이 벌어지는 듯 보여지지만, 그 드러난 육체적 욕망 이면에 숨겨진 건 사회적 욕망이다. 아내와 남편이란 사회적 관계로서 제대로 정립되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욕망,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선, 후배 앵커 사이의 치열한 욕망, 그리고 사회적 상승 욕구, 그 각자의 이해 관계에서 배태된 사회적 욕망들이, 케빈 리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육체적 욕망으로 재조직되고 결핍되며, 분출되면서 진범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살인 사건으로 펼쳐진다. 

<미스티>속 중년의 남녀는 육체적 욕망 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며,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이들이다. 7년간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유지하고, 이제 조만간 청와대 대변인으로 승전하기만을 바라며 '가정'과 결혼마저 희생시킬 수 있는 고혜란이나,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그녀의 전애인조차도 나꿔채고자 하는 한지원(진기주 분)나, 케빈 리를 남편으로 소유했지만, 그의 사랑에 결핍된 서은주(전혜진 분)나 모두 자신이 욕구하는 바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바로 이 양보없는 욕망의 충돌,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래서 <미스티>는 치정극 이상의 긴장감을 낳는다. 그곳에 미혹되지 않는 중년의 안정감이란 없다. 



상실의 세대, 중년
여전히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나이로 <미스티>가 중년을 그려냈다면,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반대의 지점에 자리잡은 듯 보인다. 이미 <애인있어요(2015)>를 통해 중년의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화제가 된 배유미 작가의 또 한번의 중년의 이야기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애인있어요>처럼 이미 상흔을 지닌 중년의 남녀로 부터 시작된다. 

마흔 다섯 갱년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 파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 '비아그라'라 오해 받기 딱 좋은 나이, 그 나이의 남녀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배유미 작가가 그려낸 마흔 다섯은 각자 마흔 해가 넘는 삶을 살아내면서 등이 휘어지도록 짊어진 버거운 개인사가 짊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혹'하고 싶지 않은 나이,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 이 많아서 무서운 나이, 고독사가 걱정되고, 가진 것 없이 나이드는 게 무서워지는 나이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그 '상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의 강권 아닌 강권으로 시작된 소개팅, 하지만 '안순진(김선아 분)'이라는 이름 만으로 그녀를 만나러 나간 손무한(감우성 분)에게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떠올려지는 상실의 공감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나타난 안순진은 누수와 관련된 분란의 이웃이요, 가슴골이 보이는 옷으로 대놓고 그를 호텔방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뻔한 노림수의 소개팅녀이다. 이 현실과 기억의 골 사이에서 어긋나고 다시 만나지는 관계를 통해 드라마는 차근차근 그 상실의 역사를 치유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상실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열정에 대한 모색이다. 

*****
욕망의 <미스티>와 상실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중년의 양 극단과도 같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주제 속에 풀려나가는 실타래가 그려내고 있는 건, 살 만큼 산 세대로써의 중년이 아니라, 아직 한참 살만한, 그리고 살고 싶은 나이 중년이다. 세상사 버리고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갈 만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0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여전히 젊어야만 하는 우리 시대의 중년에 대한 강권과도 같은 명제를 대변한다. 단지 그 열심히 살아야 할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by meditator 2018.02.21 05:04

올림픽으로 인해 결방에 이어 시간대를 변경하며 방영된 <황금빛 내 인생>, 비록 그간 45%를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밤 10시로 바뀐 변경된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를 넘는 안정된 시청률로 '인기 드라마'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2월 17일 방영분 34.7%,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달리, 2워 17,8일 방영된 46, 47회에 대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폭력적 가부장 노양호의 실각 
1주일만 '연애'하기로 했던 주인공 최도경(박시후 분), 서지안(신혜선 분) 커플, 하지만 이들은 '한시적 계약 연애'조차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없었다. 스키장으로 보내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한 최도경은 지안에 대한 감정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할아버지 병실로 달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해성가의 후계자 최도경에 대한 찌라시에 이어, 최도경이 보낸 창업 성공 문자를 받은 노양호 회장은 쓰러지고야 만다. 응급 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정작 그에게 닥친 위기는 '건강'만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연이어 터지는 서지수 실종과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들이 칼을 겨눈 것은 바로 노명희와 최도경, 그리고 그들을 내세운 노양호였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노양호 대표 이사에 대한 해임안 상정,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노양호'는 예의 그 만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손녀 딸을 바꿔치기한 서태수를 불러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 아니 협박한다. 여전히 20년 전 자신의 딸 노명희의 실수로 벌어진 손녀 딸 유괴 사건을 덮기에 자신의 권력을 십분 이용하는 노회장, 서태수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그가 제시한 건 '돈', 그게 아니면 그가 서태수의 집을 찾아가 뺨을 때리듯 무지막지한 '폭력적 처사'가 기다릴 뿐이라 강변한다. 


소현경 작가가 '노양호 회장'을 통해 그려내고자 한건, '끝물'인 '가부장제'의 허황한 잔해이다. 대표 이사 해임안에 대해 건재한 자신이 회의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믿음'처럼,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서 나오는 '권위'에 대한 굳건한 '자존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부장적 자존감'은 자신을 거역하는 대상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단'이다. 자신의 초상권만을 보호해 달라는 서태수에게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권위'는 허망하게도 바로 자신의 둘째 딸과 사위의 '모의'에 의해 대번에 '거세'된다. 그는 '아버지'였다. 두 딸은 물론, 두 딸의 식솔들, 그리고 나아가 '해성'이라는 그룹의. 노양호의 '아버지됨'의 방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일궈온 '가부장'의 방식이다. 자신의 '가솔'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들에게 '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또한 그 '보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하지만 그 '자신'이 곧 '해성 일가와 해성 그룹의 '보호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양호의 '가부장'은 유일한 후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최도경의 '일탈'을 시작으로, 정작 그의 둘째 딸이 끊임없는 아버지의 편애를 이유로한 '반란', 그에 발맞춘 이사들의 '반기'로 마무리된다. 그는 힘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으나 그 '아버지'는 자식들과 자신을 따르는 '가솔'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결국 '노양호'는 현대사 속에 '한국'을 산업 근대화 시킨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며, 이제 이 시대 '지는 해'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순리로써의 '거세'이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이 된 아버지
그런 노양호에게 빰을 맞고, 이제 무릎까지 끓며 자식들의 삶을 읍소하는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노양호'와 같은 '가부장'은 아니지만, '상상암'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에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노양호가 산업화 시대를 일군 '성공'의 표상이라면, 서태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불도저같은 산업화의 열기가 사라져간 imf 이후의 가장을 대변한다. 

한때는 상사맨으로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들을 호위호식하도록 만들었던 서태수이지만, 불황을 넘지 못한 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 그는 맏아들이 결혼조차 포기할 만큼 무능한 가장의 처지에 놓여있다. 그 '무능'과 실패'의 색인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 '상상암'이란 기상천외한 병을 앓게 된 서태수,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많이 섭섭했던 그는 평생의 로망이었던 기타를 치며 '자신'으로 충실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아픈 그가 필요하다. 

자신의 암 보험금을 타서 지안의 유학 학비에 보태려고 했던 서태수는 이제 자신의 가족에게 다시 닥친 딸 바꿔치기와 관련된 '찌라시'에 자신을 던진다. 노양호 회장의 강요어린 요구에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읍소했던 서태수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셜록' 못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딸 지안과, 지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현경 작가는 <황금빛 내 인생>의 악의 축을 노양호 회장으로, 그에 맞선 '선의'의 아버지의 대표적 인물로 서태수를 설정하며, 두 '아버지'들의 서로 다른 '아버지' 되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논한다. 전권을 행사하던 노양호 회장에 대한 둘째 딸 내외의 쿠테타를 통해 그를 실각시킴으로써 '폭력적 가부장'의 자중지난을 그려내는 동안, 그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수호자'로 또 다른 아버지 서태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력적 '가부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족'의 중심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이다. 


'
무리수'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복권
덕분에 모든 서사의 중심에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딸바보였던 그를 딸들은 수시로 그리워하고, 그의 무능으로 인해 외면했던 아들들도 결국 '상상암' 이후 아버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되어간다. 비록 지금은 날개를 꺾였지만, 그들이 지금 이자리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서태수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확신하는 방식으로. '상상암'을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할 정도로 그 개연성 여부에 갑론을박이 시끄러웠던 아버지 서태수 복권은 그럼에도 '오죽 죽고 싶었으면 암이 걸렸다고 생각했을까'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거기서 더 한 발 더 나아가, 47회 서지안, 서지수와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에 대한 서태수의 활약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긴급성을 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비록 재계 서열 10에 못든다지만, 그럼에도 재벌가라는 해성의 정보 능력과 대응력이 '전직 상사맨' 서태수에 미치지 못한다는 웃픈 설정은 애교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셜록' 급으로 서태수가 활약을 하는 동안, 주인공 최도경과 서지안 등의 그간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젊은 세대는 뒷전으로 물러서 관망하는 상황은 결국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논란마저 불러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애'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작 성인이 된 자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아버지' 처분만 바라는 여전한 피보호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지 못한 딸에게 이제 암보험금으로 유학비를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설정을 과연 '가족애'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건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을 가겠다는 딸에 대한 여전한 가족이란 이름의 '지체'가 아닐까? 마치 한때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였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시대와 함께 '이기적인 우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덧대여 지듯이, 아낌없는 부성애의 서태수는 어느 틈에 드라마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는 화제작이었던 전작 <내딸 서영이>에 이어 다시 한번 갸륵하고 극진한 '부성애'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애를 복원시키고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빛 내 인생> 방영 내내 서태수의 존재감은 '작가'가 비중을 주고 '방점'을 찍으려 하면 할수록 개연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내딸 서영이>의 극진한 부성애는 비록 몇 년이지만 달라진 시절에 자충수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소현경 작가의 필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미 2018년 소현경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시대는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는 반증처럼 여겨진다.  서태수를 설득하고 그의 부성애를 포장하려 하면 할수록 서태수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묘한 상황은, 이미 이 시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가부장제'의 유효 기간이 종료되었음을 <황금빛 내인생>이 보여주고 있다. 

소현경 작가는 그간의 '가족지상주의'를 내세운 타 주말 드라마와 다른 서사로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짚어왔지만, 이제 종반을 향해 달리는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복원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작가 자신도 그런 시대 역행적인 상황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47회 엔딩 부분에서 '상상암'이 '진짜 암'이었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드린다. 그래서 오히려 묻게 된다. 과연 이 시대의 '가족'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 세대의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서만 복원되어야 할 것인가 라고. 서태수가 극진해 지면 질수록 '가족'을 회의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8.02.19 06:48

올림픽이라는 개막식 등으로 인해 일요일 단 한 차례 방영한 스테디 셀러 <황금빛 내인생>은 41.9%로 선방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며 그가 <황금빛 내 인생>을 구치소 내에서 즐겨 시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돈은 해외에 두었지만 외화 유출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어법을 활용하며 대중적 정서와 괴리된 입장을 보이던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을 함께 공감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황금빛 내 인생>이 묘사하는 재벌가의 '갑질'과 오너 일가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재용 부회장의 '자각'에 가장 근접하는 <황금빛 내 인생>속 인물은 아마도 해성 그룹의 아들로써 그의 신념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최도경일 것이다. 


최도경, 해성 그룹의 장녀 노명희(나영희 분)의 외아들이자, 노명호(김병기 분) 회장의 장손이며,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해성 그룹 전략 기획팀 팀장이다. 접촉 사고로 악연을 시작한 그가 그 자리에서 차량 수리비 2000 만원에 당혹스러워 하는 서지안에게 자기 딴에는 통 크게 수리비를 500만원으로 감해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자부심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때문이었다. 



목숨조차 던질 수 있어야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 그대로 하면 귀족이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다. 즉 출생이나 운에 의해서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많은 부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래'가 된 역사적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부터 비롯된다.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포위했다. 결국 기근에 시달리던 칼레는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11개월이나 저항했던 칼레 시민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에드워드 왕은 지도자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외슈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시장, 고위관료, 상류층이 뒤를 이어 7 명의 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다. 단 한 명은 목숨을 건지게 된 상황, 하지만 다음 날 광장에 초라한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걸고 나선 사람은 총 6명, 가장 먼저 제안했던 '피에르'는 이미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피에르의 살신성인은 결국 나머지 6명의 지도자의 목숨을 보존케했으며, 칼레 시민의 안전을 지켰다.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으로 길이 기억되는 이 사건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던져 책임감을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다.

그리고 바로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극중 최도경은 극 초반부터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지안과 연인 사이가 된 그가 당시의 일을 회한에 젖어 말하듯이, 그의 '얄팍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딴에 인심을 쓴다고 깍아줬던 2000만원, 그러나 500만원은 계약직 서지안에게는 여전히 큰 돈이었다. 심지어 서지안이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그가 서지안과 윤하정과의 난투극을 신고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라가고, 서지안을 양평 별장 해프닝에, 결국 해성가로 급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만다. 

소현경 작가는 최도경을 통해, 매번 그가 자부심으로 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서지안에게 가닿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이른바 '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인지 폭로한다. 그렇게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자부심쩔었던' 최도경은 '가지지 못한' 서지안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동시에 자신의 허세를 깨달아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에서도 보여지듯이 '목숨을 던질 정도의 책임감'이 아닌 가진 것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양보라는 게 얼마나 '기만'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최도경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설득해 낸다. 



사랑보다 우선한 자존  
그저 자신이 해성가를 버리고 나오면 당연히 서지안이 자신을 두 팔 벌려 사랑해 줄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지안에 대해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분노하다, 그 끝에서 서지안의 죽음을 만난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재벌가도 버리고 나온 나를 왜 싫어하냐며, 그리고 재벌가가 왜 싫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던 최도경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서지안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색안경을 벗게 된다. 재벌가의 자신과 함께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이젠 비록 정규직도 아닌 목공소 알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서지안의 삶의 선택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벗어던진 건 그저 사랑하는 서지안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받아 다시 재벌가로 돌아가려 했던 자신의 야무진 꿈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을 불쌍하다며 바라봐주었던 서지안을 마음에 품은 그 시점부터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던 재벌가 자제 최도경이 삶은 균열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가졌다'는 그 허황된 궁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있던 최도경을 이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극복'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그저 재벌가 자제의 각성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권유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기 위해 쓰레기통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던 서지안이 그 눈높이을 낮춘게 아니라 버리고 비로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는 과정과, 재벌가의 자제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코에 걸고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 살던 최도경이 계급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온전히 자신으로 서는 과정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의 젊은이들의 삶엔 그들의 꿈이 우선한다.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비로소 찾은 목공소를 매개로한 아티스트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지안이나, 서지안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해성에 들어가는 대신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사업'을 시도하는 최도경, 프랑스 유학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빵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 지수, 그리고 지안, 지수 자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던 청년 사업가 혁 등은 모두 사랑에 앞서 그들의 꿈이라는 존재로 땅에 든든하게 선다. 과연 구치소 안의 이재용 회장에게 이런 작가의 생각이 가닿았을까? 
by meditator 2018.02.12 15:36

다시 또 한 집에 모여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바로 2월 5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이다. 이제 시즌 2까지 완주한 <청춘시대>처럼 이들도 한 집에 모여산다. 그런데, <청춘시대>의 청춘들이 셰어 하우스를 찾아 각자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와이키키>의 청춘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게스트 하우스를 차렸다. 한쪽은 세입자고, 또 다른 한쪽은 사장님인데, 어째 상황은 후자가 더 나쁘다. 물이 끊기고, 조만간 전기도 끊길 예정이란다. 


꿈을 잠시 유보한 청춘들의 고전기 -모던 파머,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모던 파머>라는 작품이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참여한 김기호 작가의 2014년작이다.  sbs를 통해 방영되었지만, 평균 4%를 오르내리던 이 주말 드라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드라마에 유한철 역으로 출연했던 이시언이 극중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다 물렸던 웃픈 에피소드가 예능을 통해 방영되며 괴작(?)으로 드라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모던 파머>는 '귀농'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화두인 시점에서 발 빠르게 젊은이들의 '귀농'을 담으려 했던 드라마다. 물론 '코믹'하게. 인디 밴드 '엑설런트 소울즈'을 꾸렸던 네 청년,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꿈을 도시는 품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귀농', 농사도 짓고, 다시 음악도 해보겠다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의 '귀농'은 그 시작부터 해프닝이다. 

이렇게 2014년 '꿈'을 위해, '꿈'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2018년으로 오면 그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의 꿈은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뛰어넘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회갑 잔치 영상이나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 강동구(김정현 분),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나 현실은 주연 배우의 손가락질 하나에 그의 배우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인 이준기(이이경 분), 말이 좋아 작가지 돈이 되는 글이라면 자소서 대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다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봉두식(손승원 분), 이들 세 친구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벌인 사업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이렇게 드라마는 '꿈'을 위해 '현실'을 택한 청춘들의 딜레마를 밑천으로 삼는다. 그리고 '귀농'을 했던 청춘들이 배추를 키우기도 전에, 시골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듯, <와이키키> 역시 하와이의 로망 와이키키 해변을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으로 작명했지만, 현실은 '중국 특수'가 끊겨 손님 구경한 지가 한참 되어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길, 거기에 남자 셋이 그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절절매는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구 그대로,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오랜 연인과의 커플링을 궁색하게 찾아 헤매고 팔까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강동구를 비롯한 세 청년의 상황은 매 장면 웃긴데, 어쩐지 그 뒷맛은 99%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려내는 청춘의 방식 
<청춘 시대> 시즌1,2는 셰어 하우스를 배경으로 그곳에 모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감성적으로 그려내어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연, 그 '감성'과 '사연' 대신, 해프닝과 웃픔을 택한 <와이키키>에 대한 공감은 어떨까? 

<모던 파머>를 회자시켰던 장면이 이시언의 가슴에 흐르는 우유를 핥아먹는 강아지였듯이, 첫 회 <와이키키>는 또 다른 수유 해프닝을 다룬다. 세 청년의 집에 몰래 아이를 놓고 도망쳤던 한윤아(경인선 분)가 우여곡절 끝에 같이 지내며 모유 수유의 고통을 토로하고, 유축기, 마사지 등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은 마치 <모던 파머>의 오마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웃픈 웃음'이다. 시트콤과 같은 웃픈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소동극이다. 

거기에 일찌기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서 부터, 2008년 kbs2를 통해 방영된 <아빠 셋 엄마 하나>도 비슷한 설정인 '아기'와 아기 엄마를 둘러싼 육아 상황극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호감의 소재이다. 과연 이 '대중적'인 소재와 함께, <와이키키>가 2000년대 화제의 시트콤 <세 친구>만큼의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지. 김기호 작가 버전 청춘 시대가 2018년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를. 

by meditator 2018.02.06 16:02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최종회 11회의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은 5.9%였다. 물론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마동석이 주연한 <38사기동대>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지만, 그 당시까지 ocn최고의 시청률이었다. 2월 4일 종영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의 16회 최종 시청률은 평균 4.8%, 최고 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는가 하면, 시즌1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에 도달하기 위해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뤘다. 애초에 우제문(박중훈 분) 검사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나쁜 녀석들' 팀, 허일후(주진모 분), 장성철(양익준 분), 노진평(김무열 분), 한강주(지수 분), 그리고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중 마지막 회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3명, 우제문, 허일후, 한강주, 길고도 지리했던 16부의 서원 시 악의 세력 구축 작전에서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싸움을 해왔다. 

시즌 1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는 강력계 형사와 그의 휘하에 모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내걸고 결국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구탁 형사, 오재원 특검의 사적 복수와 이정문, 박웅철, 정태수 사이에 얽히고 얽힌 구원을 엔진으로 시리즈를 밀어 붙였다. 그에 반해, 시즌 1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저 '서사'의 부실함으로 지적받았던 것에 심기일전했던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이하 악의 도시)>는 서원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나쁜 녀석들과 더 나쁜 녀석들의 충돌을 그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16부의 <악의 도시>는 서원시에 깊게 뿌리박은 악의 세력 척결을 위한 길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검찰 내 아웃사이더 검사 우제문(박중훈 분), 그는 검찰 총장의 명을 받아, 다시 한번 오구탁 형사의 방식으로 악의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시를 장악한 채 재개발 사업을 독점하며 서원시민들에 기생하는 악의 세력 조영국(김홍파 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그가 끌어모은 건 동료 수사관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신입 검사 노진평과 몇 년전 조영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료를 배신했던 전력이 있는 비리 형사 장성철, 피습을 당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홀로 나선 '형받이' 한강주, 전직 동방파 주먹이었던 이제는 그저 식당 주인이 된 허일후 등이었다. 

조영국을 잡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 이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영국과 동방파를 척결하기 위헤 이들의 그물에 걸린 이는 시즌 1에서 처럼 이들을 모이게 했던 검찰총장 이명득(주진모 분)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오고 '적폐' 세력으로 물러나게 된 이명득은 우제문을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보존하는 한편, 새 시대의 세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쁜 녀석들'을 이용했던 것,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를 희생시키며 적폐 세력 이명득을 몰아낸다. 

그게 겨우 7회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명득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반준혁(김유석 분)검찰 수뇌부가 새롭게 꾸려지고, 서원시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3부. 그러나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새 시대에 길을 비켜준 우제문과 달리, 기꺼이 특수 3부에 합류한 노진평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정작 새 시대의 도구였던 특수 3부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다시 모인 남은 자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를 등에 업고 여전한 이권의 수호자가 된 경찰 세력과, 그를 비호하는 새로운 검찰 권력과 대립하게 된다. 

일진일퇴, 그때마다 피칠갑을 하며 온몸을 던진 우제문을 필두로 한 '나쁜 녀석들'은 황민갑(김민재 분)형사를 중심으로 경찰 내 자리잡은 이권 세력들을 제거하고, 여전히 구악을 끊어내지 못했던 반준혁 검사장 조차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이제 정말 조영국만 제거하면 된다며 마지막 일전을 결심했던 '나쁜 녀석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건 조영국조차 하루 아침에 재개발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배후'이다. 죽어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usb칩을 삼켰던 장성철 형사의 살신성인 덕에 결국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재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배상도(송영창 분) 시장과 그의 스폰이었던 누나 배여사(김지숙 분)까지 구속시키며 서원시 악의 척결 작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이 장황했던 서원시 나쁜 녀석들의 작전은 동방파와 악덕 기업인 조영국을 주적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그 악의 세력의 구축 과정에서 그들이 만난 건 전현직 검찰 총장과, 각종 경찰 내 이권 세력, 그리고 시민의 손으로 뽑힌 민선 시장까지, '정치와 경제의 협잡 카르텔이었다. 시즌 1에서 단순했던 '악'의 실체는 시즌2에 오며 16작으로 늘어난 회차만큼, 길고 지난했던 그리고 뿌리깊은 악의 연대기를 밝혀낸다. 




투혼과 떼싸움, 시리즈의 본질 
그 연대기의 실체를 밝히는 방식은 '나쁜 녀석들'과 그들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다. 15회, 장성철 형사가 그의 수하들에게 모처럼 '과학 수사'라며 cctv를 따라 추적하는 장면이 '실소'처럼 <악의 도시>의 전 회는 사람과 사람이, 떼거리와 떼거리가 부딪치며 온몸으로 피터지게 맞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길거리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무실에서 펜대나 잡고 싶다던 노진평 검사의 소원이 무색하게.

그리고 그 싸움의 색채다게 16부의 싸움을 밀어붙인 건, 동료들의 희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사연으로 인해 모래알같던 '나쁜 녀석들' 팀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의 죽음, 그리고 노진평 검사의 희생으로 동력을 얻는다. 드라마는 21세기 한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싸움의 방식과 논리는 일찌기 서부극이래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 원초적인 싸움,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방식에 따라 드라마는 매회 화끈하다 못해 피칠갑의 액션씬이 서비스처럼 등장한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완주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나쁜 녀석들>의 본질은 기존 수사 드라마에서 할 수 없었던 법의 경계를 넘어선 '나쁜 녀석들'을 앞세운 이 무법의 폭력적 혈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그런 감상을 더한 건, 시즌 1에 비해 공들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시즌 1에서 밀도높았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성에 비해, 여러 등장 인물들의 희생과 다양한 검찰, 형사, 범죄자 등 복잡한 군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헐거운 등장인물간의 관계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시즌 1에 김상중이 분한 오구탁 형사가 보여준 그 자신이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 이율배반이 시즌의 중심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시즌 2의 우제문 형사는 끊임없이 그의 입으로 이렇게 살지 맙시다 했지만, 어쩐지 그의 구심력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즌 1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서 더 이상 시즌 2가 힘들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시즌 1의 마동석, 박해진 등의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빛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내세우며 자신의 형기를 딜하기 위해 때론 의심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며 결국은 싸움의 과정에서 한 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애의 과정이 어설픈 서사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면, 이미 모두가 '악'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에서 확실했던 시즌2의 주인공들은 시즌 1에 비해 인간적 매력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시즌 2의 동인이 된건, 그들 각자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동네 식당집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구하기 위해 라는 '미담'이 시즌을 이끌어 가는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쁜 녀석들에 의한 보다 더 '나쁜 녀석들'의 소탕 작전이라는 고유의 설정과, 이제는 클리셰가 된 듯한 몸과 몸이 전면으로 부딪치는 떼 싸움의 액션은 여전히 <나쁜 녀석들> 시즌 3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의가 완성되지 않은 한에서. 
by meditator 2018.02.05 16:30

햇수로 무려 6년만이다. '능력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차윤희로 분했던 김남주가 다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김남주가 분한 차윤희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를 위해 '외조'가 가능한 남편을 원했다. 그러나, '행운'이라 생각했던 그 이상형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잃어버린 가족이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 차윤희에게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6년만에 돌아온 김남주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일'로 승부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녹록치않다. 모두가 호시탐탐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도발한다. 서른 중반 삶이 무르익을 나이에 그녀는 위태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문득 깨달은 듯이 전한다. 학교 수업 시간, 사회 각 내노라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 사람들 중 여성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었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저 한 두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취존'이라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겪는 일과 사랑, 결혼의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단에 선 '선배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용어는 드러낸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이른바 성공을 일궈나가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던져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 
그렇다면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극단의 예를 다시 한번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가 분한 <미스티>의 고혜란이 보여준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을 향해 '배부른 자들의 한담'이라 퍼붓는 고혜란의 모습에서, 그녀의 지난 삶이 여유롭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난리를 치며 그녀를 요양원으로 불러들인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서른 중반의 그녀를 여전히 이십대 중반으로 착각한 채 다그친다. 잠시라도 자신에게 틈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하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냉담했지만, 그녀는 그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온 듯하다. jbc 사회부이 말단 기자로 입사했던 그녀는 이제 명살상부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어찬 지 어언 7년 최장수의 여성 앵커로서 매년 올해의 언론인 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녀의 삶은 위태롭다. 

말단 기자로 출발했던 그녀는 선배 앵커 이연정(이아현 분)을 밀어내고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남편을 희생시켰다. 아이를 그녀 스스로 지운 그 날부터 남편은 한 집에서 살뿐 남이 되었다. 그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남편의 자리에 머무르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하는 남편. 남들이 보기엔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앵커의 황금 조합이지만, 그녀의 집엔 냉기가 흐르고, 배란일마다 시어머니는 한약을 지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아이까지 희생하고 얻은 자리, 이제 그 자리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물에서 노닐고 싶었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방송가의 젊은 물 운운하며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는 이제 방출 위기에 놓인 여성 앵커 고혜란을 중심에 세운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밀려나 그녀의 뒷담화를 즐기며 그녀를 괴롭히는 선배 아나운서 이연정과 사회부의 신망을 얻으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을 내세워 여성vs. 여성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고혜란에 밀려나서 그녀가 쓰러질 것을 '고소원'하는 패자 이연정과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 한지원의 '여여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들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자 국장 장규석(이경영 분)과 역시나 그녀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긴 채 한지원을 무기로 그녀에게 복수를 절치부심하는 오대웅의 연합 세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사회만이 아니다. 묵묵히 한약을 지어오는 시어머니, 남들이 보기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첫 방송을 보인 <미스티> 속 고혜란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5년째 수상할 언론인상의 수상이 여의치 않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진다. 7년째 그녀가 선배를 밀어내고 차지한 그 앵커의 자리가 위태롭자 그녀는 밀려나는 대신 당당하게 승부한다. 그리고 나가도 스스로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고. 분명, 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배를 짓밟는 고혜란의 태도와 방식은 틀렸지만, 유리 천장 아래 허덕이는 이 시대에서 묘하게 고혜란에게 마음이 열어진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가 살인 혐의까지, 이 이율배반적인 동질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드라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by meditator 2018.02.03 15:26

역시나 신원호란 감탄사를 불러온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신드롬 덕분에 주춤했던  sbs의 <리턴>, 그러나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종영과 함께 시청률은 매회 상승세, 조만간 20%를 찍을 기세다. (12회 16.0%,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리턴>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매해 벽두를 열었던 ,이른바 sbs식 장르물의 성과를 우선 살펴보면 흥기롭다. 2015년에서 2016년을 이은 히트작 <리벰버>, 그리고 2017년을 연 <피고인>은 모두 장르 드라마를 표방함과 동시에 20%를 넘는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그 '성공'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드라마 속에 저마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강력한 악의 축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오랫동안 단골 서브남 전문이었던 남궁민 배우에게 그 자신의 새로운 면을 각인시켜 이후 <김과장>의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건 바로 <리멤버>의 남규만이었다. 그리고 <피고인>하면 감옥에 간 주연 지성 못지 않게, 일인이역으로 때론 순정파로, 때론 끝없이 야비했던 차민호, 차선호 역을 소화해낸 엄기준의 열연이 떠오른다. 

<리턴>의 질주 
그리고 이제 2018년을 연 <리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고현정이나, 물의를 빚은 후 잠시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진욱이 아니라, 그들의 맞은 편에서 범죄를 모의하고 촉발시키는 펜트 하우스 황태자 친구들 강인호(박기웅 분), 김학범(봉태규 분), 오태석(신성록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봉태규의 밑도 끝도 없는 또라이식 폭력성이나,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다의 정의를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신성록의 연기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인 양 발군이다. 의중이 모호한 변호사 최자혜로 분한 고현정의 미묘한 연기와 다혈질 형사 이진욱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리턴>을 보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건 이들의 '난장'이다. 그리고 그 '난장'에 도를 더하며 이제 대놓고 공중파에서 사람 사냥까지 하는 것으로 드라마 <리턴>는 '크레센도 몰토'(극히 큰 크레센도)로 시청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방송 심의를 넘나드며 일단 시청자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드라마 <리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걱정스러운 건 공중파 드라마로서 치달리는 자극적 전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극적 전개'라는 과한 조미료의 근원으로 유추될 수 있는 '표절'이 진짜 <리턴>의 문제다. 



'가족, 명예, 돈 모든 것을 충족한 친구들에게는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들은 비밀스런 펜트하우스를 만들고 서로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즐기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과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던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 위의 줄거리는 <리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다. 매회 드라마시작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바로 저 친구들의 펜트 하우스와 그곳을 공유했던 염미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바로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그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끌어 진다. 

같고도 다른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 
그런데 저 '줄거리'는 <리턴>의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의 스릴러물인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줄거리이다. 심지어 영화 속 빈센트(칼 어번 분)의 내연녀는 그의 부인에게 질투를 하며 접근하려고 하고, 심지어 빈센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 불청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빈센트는 그녀와 이별하기 위해 펜트 하우스에 그녀를 데려가 혼자 나온 이후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빈센트 그리고 친구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반전, 이 진실과 반전을 추격하는 여형사. 

런닝 타임 100 여분의 영화와 32부작(16부작)의 드라마의 호흡은 다르다. 영화 속 여형사는 드라마로 오면 여자 변호사로 변화되었고, 영화와 동일했던 설정은 이제 의사 김정수(오대환 분), 형사 김동배(김동영 분), 안학수(손종학 분)의 등장으로 사건의 각이 넓혀진다. 그렇다면 <리턴>은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표절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음악 작업 가운데에서 두 마디 이사이면 표절이고, 두 마디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법률적 경계'와도 엇비슷하다. 분명 두 작품을 본 사람들은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유사점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애초의 설정을 변주시키며 아니 우리 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요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이는 얼마전 좋은 드라마란 평가를 받으며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관행? 
88만원 세대의 여주인공은 머물 곳을 얻기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세를 살게 된다. 집에서 결혼 독촉을 받는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마저 실패한 채 실의에 빠진 채 낙향할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에게 계약 결혼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계약 부부로 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며 계약 부부라는 이 설정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명 니게하지)>와 유사함으로 논란이 됐다. 

건물에 글자를 새겨넣은 포스터에서 부터, IT 직원이며 사회성이 떨어지며 타산적인 남자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살면서 '계약 결혼'을 하는 이야기는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표절'을 인정하는 대신, 결혼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 공감과 수평적 남녀 관계에 대한 시도로 그 논란을 돌파했다. 

그러나 15.6회에 들어서 내내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존감 넘치는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이 돌변한 듯 자기 중심적 해프닝을 보인 것이 일본 원작과는 다른 주제 의식에대한 과도한 천착이 부른 '과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표절'이라는 부담을 가진 드라마는 그 부담을 탈피하기 위해 표절작과는 다른 무리한 시도를 보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보여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 변화는, <리턴>으로 오면 매회 점층되는 '자극적 설정'과 '폭력성'으로 대응된다. 애초에 청소년 관란 불가였던 영화의 설정을 드라마에 옮겨 온 것부터 무리수였지만, 그 설정의 표절을 피해가는 드라마의 전략이 화제성의 주인공인 봉태규와 신성록의 악행 에스컬레이션인 듯해 아쉽다.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결국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갔듯, <리턴> 역시 아마도 '표절' 논란을 변주된 서사를 통해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한 표절 푯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와 관련된 소감이 돋보인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설원 위 열차라는 설정말고는 많이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하지만 봉감독은 설원 위 열차라는 그 모티브가 위대한 거라 단언한다. 이렇게 표절인 듯 표절이 아닌 듯한 작품이 매번 되풀이 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중국 콘텐츠들의 우리 작품 베끼기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처지가 될 수 있을지. 콘텐츠의 가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존중에 대한 절차적 예의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02.02 17:56

사실 수치만으로 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이(이하 그 사이)>는 보잘 것없다. 1회 2.409%(닐슨 코리아 케이블 유료 플랫폼 기준)가 최고 시청률로 내내 1%대의 시청률을 답보했다. 하지만, <그사이>를 그저 수치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쉽다. '재난 후일담'이라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한 유보라 작가와 <그사이> 제작진의 도전은 오히려 '시청률'과 상업적 성과를 넘어선 드라마적 가치의 확인이다. 천만이 넘었다고 그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지 않듯, 1%대의 작은 목소리라도 <그사이>의 존재감은 빛난다. 




슬픔은 노상 우리 곁에 있어  -마마(나문희 분)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바닷 속에 잠긴 채 기운 배, 그렇다, <그사이>는 대놓고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과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좀 더 사실적으로는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가깝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라고 온 국민이 경악해 마지 않던 사건, 하지만 바로 그 전 해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었다. 이른바 '건설 입국'으로 성장해온 발전 경제의 부실한 기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실한 기둥에 대해 드라마 속에서 참사 현장에 다시 쇼핑몰이 들어서고, 또 다시 철근이 빼돌려지고, 부실한 지반에 얼렁뚱땅 건물을 올리려 하듯,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대한민국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고, 결국 2014년 세월호에 이르렀다. 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삼풍 백화점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추모비는 멀찍이 양재 시민의 숲 한 켠으로 밀려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11일 첫 회를 연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바로 그 '아스라한 기억'이 된 붕괴 사고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가 불러온 건 그저, 에스몰 참사가 아니다. 에스몰로 상징되는 '재난민국', 그리고 그곳의 피해자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재난 사고의 피해자들이 주인공이다. 재난 사고에 대해 다룬 다큐는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블랙> 드라마 속 사건으로 '재난 사고'가 등장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재난'을 마주하고, '재난' 속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밀도깊게 다룬 이야기는 <그사이>가 처음일 것이다. 

이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는 그곳, 에스몰에 있었다. 아동 모델로 그 쇼핑몰에서 촬영이 있었던 동생과 함께, 아니 동생의 보호자로 에스몰에 갔던 문수는 동생때문에 만나지 못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자리를 옮긴 사이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하셔서 아버지를 만나서 그 곳에 간 강두 역시 붕괴된 건물 사이에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된 강두와, 강두의 도움으로 그곳을 한 발 먼저 빠져나간 문수, 하지만 그곳을 빠져나온 건 두 사람의 몸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과 소년였던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방식은 다르다.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상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강두는 붕괴 현장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심지어 철근을 빼돌렸다며 '가해자'가 된 아버지와, 자신을 돌보다 스러진 엄마 대신 일찍 철든 동생의 보호자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리로 내몬다. 그러나 강두가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이유는 그저 그곳에서 다친 상처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오지 못한, 홀로 갇힌 그의 곁에서 먼저 숨을 거둔 소년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그에게 악몽으로 수시로 찾아와 간에 독성이 있는 '파란 약'을 움켜쥐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동생의 보호자로 그곳에 갔던 문수는, 사고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그녀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기억은 없지만 죄책감은 남았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 짐은 딸 잡아먹은 년이라 욕을 들어 먹으며 꿋꿋하게 목욕탕을 지키며 날마다 술과 함께 사는 엄마의 보호자로 자신을 가둔다. 나지도 않는 기억을 들추는 대신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 문수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붕괴된 에스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이른바 '책임자'로 지목되어 그 대가로 스스로의 목숨을 거둔 설계자였던 건축가의 아들 서주원(이기우 분)도, 서주원과 연인이었지만 시공사 사주의 딸로 하루아침에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달라진 정유진(강한나 분)도 여전히 그 날 그 곳에 머물러 있다. 



내가 이 손 안놓는다. - 강두 
드라마는 이렇게 에스몰 붕괴 사고와 관련된 이해 관계로 얽힌 네 젊은이들을 내세웠다. 기억해서, 혹은 기억하지 못해서, 그리고 남겨져서 아픈 그들은 우리 시대가 겪었던 그 '참사' 후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초반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를 곡진하게 살피던 드라마는 그러나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사이>의 가치는 재난 후일담을 넘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온전히 자신으로 다시 서는 젊은이들의 '승리담'에서 빛난다. 스스로 각자 자신의 무게로 짊어졌던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용기있게 세상의 몫으로 던지며, 그들 각자가 웅크렸던 동굴 속에서  한 발씩 내딛는다. 

에스몰 현장에 다시 세워지는 쇼핑몰 현장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를 부순 강두, 그리고 주원의 호의로 그의 설계 사무소에서 에스몰 자리에 다시 세워지는 건물 설계에 간여하게 된 문수, 그리고 아버지의 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선 주원, 그리고 여전히 그를 놓지 않는 유진, 네 사람은 반성없이 되풀이 되는 부실 공사의 재연 현장에서 각자 자기 어깨 위에 얹힌 짐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짐을 풀어놓는데, 바로 '사랑'이 매개가 된다. 

우연히 깡패들에게 맞은 채 골목 구석에 쭈그려 피를 흐리던 강두를 발견한 문수, 그리고 그들의 우연같은 에스몰 현장에서의 만남, 우연같은 필연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나침반으로 강두를 주원이 현장에 보내듯, 강두와 문수는 외면하는 대신 추모비 재건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그를 위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남겨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걸음씩 들어서는 자기 자신, 그 버거운 길을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통해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대승적 사랑의 길을 느리지만 꿋꿋하게 <그사이>는 지난 16부의 시간을 걸어왔다. 

마지막 회, 간 혼수에 빠지며 위독했던 강두에게 기적과 같은 새 삶이 찾아왔다. 아니, 그에게 찾아온 건 그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 삶은 죽을 뻔한 강두에게만 찾아온 것도 아니다. '과거'에서 각자 힘 닿는대로 도망치려 했던 '피해자'들이 스스로 다시 과거를 직시하고, 거기에 얽혀진 매듭을 풀어나가며 그들에게 덮여있던 두터운 딱지는 아물었고 비로소 세상의 공기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모두에게 찾아왔다. 강두에게 남겨진 유산의 땅, 에스몰 붕괴 사고 그 중심에 붕괴 사고 현장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추모비, 그 상처입은 기억의 불편함에, 강두와 문수는 입을 모아, 시간이 흐른다고, 잊는다고 상처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 강변한다. 오히려, 기꺼이 그 불편함을 내 안에 껴안을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삼풍에서 시작된 '재난 후일담'은 결국 2018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잊지말자'고 다짐한다. 


by meditator 2018.01.31 0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