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란하고 신선한 액션신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의 시각에서 맞닦뜨려지는 살육에 가까운 대결 장면은 분명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씬임에 분명하지만, 그 시선을 달리하며 '감탄'과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동시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홀로 저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것일까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 의문은 쉬이 풀려지지 않는다. 거의 '자살 테러'에 가까운 살육을 벌였던 주인공은, 알고보니 여자였고, 그녀는 그 살육의 마지막 거구의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그를 이용해 그 건물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오지만, 그녀를 기다린 건 포위망을 좁힌 경찰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십자가'로 자신을 위장한 국가기관은 그녀에게 생명과 봉사를 딜한다. 그리고 그녀는 애초에 살육의 현장에 자신을 내던진 채 들어갔던 그 마음 그대로 자신을 내던지지만, 뜻밖의 생명이 그녀를 구한다. 악녀의 주인공 숙희(김옥빈 분)은 그렇게 삶을 유지한다. 



대단한 볼거리, 그러나 알고보면 비극적 순애보? 
영화 속 액션씬은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살육의 현장에 뛰어든 주인공의 시선을 시점으로 벌어지는 액션씬에서, 그리고 이후 국가기관의 훈련 과정과 테스트 과정에서 숙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것을 숙희의 '무림 고수' 수준의 액션 스킬의 개연성으로 설득해 낸다. 독방에 갇힌 그녀의 마취는 중상과의 훈련과정에서 보인 잠수 능력으로, 역시나 훈련 과정에서부터 적과의 대결 과정에서 단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준비된 킬러로서의 자세는 역시나 중상(신하균 분)으로부터의 배움이다. 영화는 그렇게 숙희의 존재를 그녀의 과거로 설명하고, 그 과거는 동시에 그녀의 아픔이자, 사랑이요, 파국에 대한 복선으로 작동한다. 결혼식에서 단 한 방의 주저함이 있기 전까지 한번도 혼돈스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던 킬러 숙희의 모습은 <악녀>라는 영화의 볼거리와 캐릭터의 개연성을 설명한다. 영화의 외연은 액션이지만, 실제 영화를 끌어가는건 숙희라는 여성의 비극적 순애보이다. 그게 단지 아버지, 중상, 딸, 현수로 대상이 바뀔 뿐. 

하지만 그 현란한 도입부와 국가기관을 통해 다시 삶을 건진 그녀의 활약(?), 그리고 끝내 그녀를 이용한 순애보적 사랑과 결혼, 그리고 마지막 그 현란한 도입부의 개연성이 된 중상과의 관계와 파국은 결국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고 만다. 

결국 순진한 연변 처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복수극'에 자신을 내던졌고, 그녀의 복수극은 다시 사랑하는 이의 복수로 이어졌으며, 그 복수에 내던져진 그 생명은 '모성'을 통해 거두어 졌고, 그 '모성'은 다시 '순애보적 사랑'으로 막연한 '행복'에의 기대로 연명하고,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이용하기만 한 국가기관과 중상에 대한 자기 파멸로 끝을 맺는다. 혹자는 이것을 순진했던 한 소녀의 비극사라 칭할 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과연 '숙희'는 '존재'할까?



숙희라는 인간은 없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살육의 기계가 된 여성, 그리고 그 '살육'의 훈련자였던, 심지어 알고보니 그 대상이었던 이를 사랑해서 '복수'에 자신을 내던진 여성, 그리고 '어머니'란 이름으로 생존하고, 또 다시 사랑의 이름으로 파멸에 이른 그녀를, '비극적 사랑'에 희생되었다 말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숙희'는 그저 '복수'나 '모성'의 이름으로만 불리워졌을 뿐,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혹은 그 누군가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대상적 존재 외에, 인간 '숙희로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마치 이전 세대 우리가 여성들을 누군가의 딸, 아내, 어머니의 이름으로만 불러왔던 것처럼. '킬러'로서 살아간 '사람' 숙희는 없다. 

그런 면에서 첫 장면의 도입은 이 영화 속 '대상적 존재'로서의 그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첫 장면은 낯선데 익숙하다. 싸움을 주제로 한 게임에서 흔하게 접했던 장면이다. 게임 속 살육의 현장에서, 게임이기에 그 상대방을 죽이고 피를 내는 것에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숙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그 숱한 사람들을 죽여버렸다는데 일말의 후회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사랑하는 이 앞에서 자신이 그가 사랑할 만한 그런 순결한 인물이 아니라는 자기 연민 외에는. 하지만 그 연민의 유효치 역시 현수의 순애보를 넘어서지 못한다. 마치 미션 수행을 마친 캐릭터가 생명을 다하듯 자신을 접었던 그녀는 아이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하지만, 거기엔 자신이 해왔던 '킬러'로서의 삶에 대한 반추는 미흡하다. 자신의 사랑마저 이용했던 국가 기관에 대해서도, 그리고 중광에 대한 '자각' 이후에 보인 그녀의 대응 역시 '즉자'적일 뿐이다. 그녀의 삶이 '복수'로 점철되었던 것처럼. 

숙희만이 아니다. 언뜻 매력적이지만 역시나 국가 기관의 수동적 수행자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 권숙(김서형 분)이나, 단선적 캐릭터로 소모적으로 쓰여진 김선(조은지 분)과 민주(손은지 분) 역시 안타깝다. 영화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여성의 캐릭터는 '편편'한 반면, 남성들은 '사고'하는 복잡한 속내를 지닌 중층적 캐릭터로 그려낸다. 



그런 면에서 의심스럽다. '연변'이라는 이 사회에서 '이방인'이자, 종종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 지역성이 숙희라는 전근대적 여성상을 설명하는 도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그렇게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를,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상적 존재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끌어낼 수 없으니,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하지만 그 '순진한 연변 처녀'에 대한 편견조차 지극히 편협하다. 순진한 연변 처녀가 끝까지 중상을 의심하지 못한 채 이용당한 것과 달리, 연변 주먹이었던 중상은 그런 순진한 숙희를 자신의 죽음으로 위장해 버리는 '고도'의 작전을 펼치더니, 세련된 대한민국의 어둠의 세력으로 승승장구하느라 딸조차 거뜬히 제거하는 '자존적 범죄자'로 그려내는 걸 보면, '연변'이라는 지역적 출신에 대한 편견조차 '여성'과 '남성'의 경우 그 결론이 다르다는데 다시 한번 이 영화가 '여성'에 대해 얼마나 안이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반증한다. 

그런 면에서 <악녀>는 오히려 또 한편의 전근대적인 여성 잔혹사에 가깝다. '자신'을 돌아보기도 전에 마치 '삼종지도'의 현대판처럼,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를, 그리고 자식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여성의 비극사이다. 차라리 진정한 '악녀'이고, 자기 파멸이라면 좀 더 자신을 악으로 만든 이들에 대한, 중상은 물론, 역시나 중상과 다를 바 없이 이용만 한 국가 기관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복수'를 매개로 했지만 살인 기계가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그녀만의 '입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끝까지 숙희는 배신당한 사랑으로 몸부림치다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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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14 18:08

90년대 무렵이던가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시절에, 이른바 '후일담 문학'이란 것이 유행이었다. 너도 나도 '내가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었는데~'로 시작했던 문학 서사들. 한참 꽃봉오리처럼 피어나야 할 스무 살 젊은 시절에 청년들은 그 젊음을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느라 저마다 '고행'의 시간을 겪었었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문학'이 되어 한 시대를 상징한다. 이제 어쩌면 훗날 2014년 이래 한국의 상당수 '콘텐츠'물들을 두고 '세월호 기억 콘텐츠'라 명명할 지도 모른다. '자각'이 있는 자라면 모두 그해 4월 벌어진 그 일을 그저 눈감고 지나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sf 로 시작되었던 <서클; 이어진 두 세계(이하 서클)>마저 '기억 조작'이란 미래 사회의 인간 통제 문제를 들고 돌아돌아 '기억'과 '인간'의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쁜 기억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망각이 나쁜 기억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질문에서 굳이 토를 달지 않아도 '잊지 않겠습니다'로 대변되었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시대적 상흔의 또 다른 기록이다. 





'나쁜 기억도 기억할 만한 기억인가?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된 서사도 서사지만, 도대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호했던 <서클> 4편에 들어서 비로소 이 드라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 졌다. 그리고 주제 의식이 명확해지니, 그동안 나열되었던 사건들조차 한 줄에 꿰어진다. 

사건1>
쌍둥이 형제 우진(여진구 분)과 범균(안우연 분), 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외계인 별이, 그녀와의 추억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아버지와 그녀는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남겨진 형제, 우진이 그 기억을 지우려 애쓴 채 고학생으로 그리고 한 집안의 가난한 가장으로 현실의 삶에 버둥거릴 때 형인 범균은 그 기억의 노예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고 외계인을 찾아 떠돌다 정신병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사건2>
형사 김준혁(김강우 분)을 불러들인 스마트 시티의 살인 사건, 딸이 아버지를 살해 시도한 존속 상해 사건은 아버지의 기억을 되찾으며 과거 유괴범이었던 아버지와 유괴당한 피해자였던 딸의 뜻밖의 고통스런 과거 기억으로 환치된다. 블루 버드에 의해 기억을 찾은 딸은 그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기고자 스스로 자해를 한다. 

사건3>
스마트 지구 시청 보안과 공무원이었던 이호수(이기광 분)는 김준혁을 케어하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임무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 가며 고통스러워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도망치고자 기억 통제를 요청하며 기꺼이 휴먼비의 스파이 노릇까지 자처했던 그는 이제 되살려진 기억을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이 입양된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받고, 그 트라우마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음을 깨닫고 '기억'의 존재를 절감한다. 

사건 4>
형을 찾아 20여년을 헤맸던 김준혁 형사, 알고보니 자신이 바로 그 형, 그리고 이제 그는 동생이 어쩌면 스마트 시티 기억 조작의 주체인 휴먼비의 회장일 수도 있다는 의혹에 맞부닥친다. 심지어 그 휴먼비의 기억 조작이 과거 아버지를 잃고 외계인을 찾아다녔던 자신의 고통 스러운 기억이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집념어린 추적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기억, 인간의 존재 이유
보여지듯이 지금까지 <써클>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맞물리면서 등장했던 4가지 사건들, 이들은 모두 '당사자에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주는 나쁜 기억'에 대한 사건들이다. 그리고 이제 진실을 찾아 헤매던 주인공 김준혁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동생이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나쁜 기억을 치유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망각'이라는 기억 조작의 주체가 돠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추격의 동인을 잃고 만다. 과연 나쁜 기억도 기억해야할 가치가 있는가? 과거의 자신도 그렇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잊고 있던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회의에 빠진 그에게 나타난 이호수,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휴먼비의 스파이로 자진납세했던 사람, 그런 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그를 찾아온다. 처음 얼핏 돌아온 기억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괴로워만 하던 그, 하지만 그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지만 정작 그 아버지는 이제 통제된 기억으로 과거의 그 사실을 잊은 채 지금의 딸과 희희낙락한 모습을 보고, 절규한다. 그리고 김준혁에게 기억은 취사 선택이나, 기호가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무이고, 도리'임을 선언한다. 역시나 어린 시절 유괴당했던 기억을 되찾아 자해를 한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이 없어 죄채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아버지 앞에, 자신을 버려 기억을 만들어 그의 악행을 단죄하고자 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인간의 존재'를 묻는다. 2030년 '행복추구권'만이 넘실되는'스마트'한 미래 도시, 그곳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 '원죄'를 묻은 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 드라마는 묻는다. 나쁜 기억을 가지고 고통스러워했던 사람들, 진실을 찾으려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 그들의 고통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리고 이제 드라마는 답한다. 기억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도 무의미한 것이라고. '기억'을 통해 인간은 기억되고, 인간의 존재는 의미가 있어 지는 것이라고. 나쁜 기억은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기억해주고, 해결해주어야 할 '과제'이자, '의무'라고. 형 찾기와 아버지 찾기를 통해 에돌아 왔던 <써클>은 이제 8회를 넘어서며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 '기억'의 문제를 떠올린다. 인간이 인간다움, 바로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의무'로 부터 시작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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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13 14:30

조승우와 정재영이란 두 배우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새로이 개편을 하며 자리를 옮긴 tvn의 주말 드라마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다. 화제성을 업고 시작하였으나 초라한 성과를 내고만 <시카고 타자기>의 부진을 애매한 시간대 때문이라고 판단했을까? tvn은 금토 8시 30분(때로는 종종 20분부터 시작하기도 했던) 주말 드라마를 토,일 9시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런 자리 배치에 대해 대다수 호청자들은 아쉬움을 전했다. 무엇보다 토,일 9시대는 이미 확고한 절대 강자 kbs의 주말극이 '아성'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으며, 9시 대의 mbc, sbs 드라마 역시 만만찮은 고정층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그간 빈틈을 공략해 오던 tvn의 정면 도전이라는 점에서 였다. 물론 tvn측은 tvn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공중파 주말 드라마의 시청층과 겹치지 않는다거나, 혹은 이제는 tvn에 채널을 고정하는 시청층이 생겼다 자부하며 '진검 승부'를 펼칠 시점이라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jtbc의 <아는 형님>이라는 떠오르는 트렌디한 예능까지 겹친 주말 9시대로 시간을 옮긴 것은 '사생결단'이었다는 점에선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점이 크다.



tvn주말 9시 드라마의 사생결단
그렇게 자리를 옮긴 tvn의 첫 작품은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조승우, 배두나 주연의 <비밀의 숲>이었다. 그런데 <비밀의 숲>이 끝나갈 무렵, 방송 아래 자막에는 ocn의 <듀얼>이 10시 20분부터 이어진다는 소개가 나온다. 동일한 cj 계열, tvn의 <비밀의 숲>을 보고, 이어서 ocn의 <듀얼>을 봐달라는 낯간지러운 안내 방송이야 그렇다 치지만, 막상 그 소개대로 심지어 의도한 듯 <비밀의 숲>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20분에 시작한 <듀얼>, 두 작품을 이어서 보고 있자니, 앞서 말한 야무지게 두 작품을 이어 보라고 시간대까지 옮긴 듯한 편성이, 오히려 득이 아니라, 실이 된 듯한 느낌이 더 짙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대를 옮긴 첫 작품 <비밀의 숲>이 온 신경과 이성을 집중시키는 법정을 배경으로 사법 비리 장르물인데, 그 다음에 이어진 <듀얼> 역시 복제 인간을 다룬다지만, 그 보다는 장기 밀매와 유괴가 등장하는 '범죄 장르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물을 불편해 하는 이유를 들 때, 보기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쉬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tv를 시청하고 싶은데 사람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잔인한' 장면이 나와서 부담스럽다는  거에, '머리를 써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이 더해진다. 그런 '부담스런 장르물'을 연달아 두 편을 이어 보라는 것이 야심차게 주말 9시대로 자리를 옮긴 cj미디어의 전략이라면 그건 어쩐지 '자충수'같아 보인다. 이건 공중파 주말극과 다른 시청의 피로감을 주는 전략이다. 

어쨋든 그렇게 9시, 10시 연달아 두 편의 장르물에서 우리나라에서 연기 좀 한다하는 조승우와 정재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분 모두, 연기에 있어서는 '한 가닥' 하는 분들인데 어째 그 반응이 다르다. <비밀의 숲>을 앞서가며 검색어를 오르내리는 조승우와 달리, 역시나 <어셈브리(2015)>이후 모처럼 tv로 돌아온 정재영은 첫 회 2% 이래 급격하지는 않지만 시청률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정재영 연기의 피로감에 대한 반응이다. 



조승우와 정재영, 그 다른 쓰임새 
조승우는 이미 연극, 영화, tv라는 장르를 오가며 그의 '미친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이다. 일찌기 <말아톤(2005)>에서 부터, 연극은 곧 그 자신이 '메이커'가 될 만큼, '연기의 신'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터이다. 그런 그가 최근 출연한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는 연줄없고 빽없이 어떻게든 금의환양을 해보겠다고 악에 받힌 열혈 검사 역을 맡아 영화를 흥행 가도에 올렸다. 그런 조승우가 <비밀의 숲>에서 다시 '검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맡은 검사는 사고로 인해 '감정'을 잃어버린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성문법이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캐릭터로 돌아왔다. 첫 회 그는 자식을 잃고 울며 자지지러지는 어머니를 문 밖에 세워 놓고 초연히 범죄 현장으로 들어간다. 역시나 다시 만나 그 어머니는 주저앉는데 그의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법을 마음을 잃은 그의 무기로 삼아 '강직'해진 검사, 하지만 그래서 태연하게 후배 검사에게 '너를 믿지 못해'라고 말할 수 있는 '싸가지'는 지금껏 조승우를 통해 본 캐릭터 중 본 바 없는 새로운 모습이다. 조승우의 연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연기에 그래서 보는 이들은 더욱 열광한다. 

반면, 비록 자주 출연하지 않았지만, 정재영의 연기는 그의 연기를 봐왔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듀얼> 속 그는 불치병에 걸려 이제 줄기 세포 치료만 받으면 살아날 수 있는 딸을 병원 호송 중에 납치 당하고 만다. 당연히 아비이자, 형사인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정재영의 혼을 쏟아부은 열연, 침을 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대사, 그리고 자신을 던진 고군분투는 <어셈블리>에서도 그가 열연했던 진상필의 또 다른 버전같다. 아니 <방황하는 칼날(2014)>의 이상현같기도 하다. 분명 <듀얼>을 보면 정재영이 연기를 참 잘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쩐지 익숙하다. 심지어 그가 쏟아내는 감정과 연기에 '피로감'조차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단지, 앞에서 <비밀의 숲>을 보아서, 혹은 <터널>에 이은 장르물이라서 오는 피로감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보다는 제작진이 너무 안이하게 기존의 정재영이란 '메이커'에 의존하는 데서 안이함이다. 





장르물의 고민
<비밀의 숲>과 <듀얼>의 차이점은 그 만이 아니다. <비밀의 숲>도, <듀얼>도 모두 암울한 '범죄'의 세상을 다룬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이미 숱하게 되풀이 되는 검사가 주인공인 사법 버리 물임에도 어쩐지 신선하다.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마음을 잃은 검사가 주인공이라서일까, 드라마의 장면, 장면은 배경이 된 겨울처럼, 가라앉아 마음을 흔든다. 무엇을 보여주고 움직이는 대신, 마지막 장면 검은 법원 건물과 그 건물을 걸어나오는 조승우처럼, 그 분위기로 드라마를 설명해 간다. 늘 역동적인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을 여사로 하는 tv에서 <비밀의 숲>이 보인 분위기들은 그래서 독특하게 다가온다. 장르물답게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모호하고 속을 모르겠지만, 그들이 가진 패가 답답하기 보다는 그로 인해 앞으로가 궁금해 진다. 

그에 반해, <듀얼>은 복제 인간이란 신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끌어가는 방식은 그간 ocn이 해오던 장르물의 방식을 답습한다. ocn 장르물을 시청해왔던 이들이라면 장기 밀매와 납치가 연관된 이 소재 자체가 그리 신선하지 않을 것이며 거기에 동원된 노숙자들 역시 낯설지 않다. 분명 자식을 잃은 오빠이자 형사인 주인공, 그 오빠의 동생이지만 오빠가 자신으로 인해 아내를 잃을 정도로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을 알수 없는 여동생의 대립 구도는 신선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듀얼>은 극 초반 이 구도를 정재영의 뻔한, 반면에 너무도 생소해진 김정은의 연기로 이런 극적 구도를 살려내지 못했다. 물론 아직 희망을 접기엔 이르다. 오히려 <듀얼>을 기대하게 만드는 건 아직은 그 정체가 모호한 양세종이 분한 '선과 악'으로 구분된 두 사람의 서사이다. 자신이 죽이고, 또 다른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이 존재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가 벌이는 범죄이자 처단의 속내가 드러내 보여진 4회 말미, 가장 <듀얼>은 신선했다. 

비록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그리고 빈번하게 장르물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가고 있는 상황, 어쩌면 뻔하지 않은 장르물이라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만큼 어려운 숙제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과 이성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려운' 난제를 해결해야만 그 입지를 그나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숙명'이자, '고행'이다. 부디, 피로감을 이겨내고, 장르물만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비밀의 숲>과 <듀얼>의 건투를 다시 한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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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11 15:43

<써클; 이어진 두 세계(이하 써클)>의 1,2회라고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난 주 시작한 <듀얼>이 그러하듯, 장르물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이한' 방식으로 가족적 사연있는 주인공의 절규로 시작되었다. 자살한 선배 대신 조교 자리를 달라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가난한 고학생 우진(여진구 분)은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외계인'에 정신팔린 형이 혹시나 살인자일까 하는 불안에 떨며 형의 뒤를 쫓는다. 


외계인이라니! 하지만 이 쌍둥이 형제는 일찌기 어린 시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ufo와 외계인 여성을 목도한 바 있으니. '외계와의 조우'라는 생소한 설정은 하지만 현실의 우진 형제의 뜻모를 위기로 이어지며 sf물 <써클>은 '장르물'의 형태를 띠며 시작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sf라는 장르보다 더 생소하게 만든 건 <베타 프로젝트>와 <멋진 신세계>란 제목으로 등장한 두 개의 세계이다. 과거의 30분과 미래의 30분 분량으로 배분된 드라마. 2030년의 스마트 도시와 일반 지구로 나뉘어진 미래의 지구 <멋진 신세계>는 우진의 과거에 등장한 외계인보다 더 이질적이었다. 거기에 과거에서 형을 찾아다니는 우진과, 미래의 스마트 도시에서 역시나 형을 찾아 잠입한 형사 김준혁(김강우 분)의 질주는 서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피로감을 주었다. 심지어 2030년이라기엔 어색한 80년대 드라마에서도 나오기 힘들 뽕끼 다분한 ost의 과도한 배치라니!






어느덧 외계인도 '미스터리'하지만 익숙해진 
그렇게 이질적이고, 단선적으로 시작되었던 <듀얼>, 하지만 이제 12부작의 절반을 돌아선 이 시점에서 보면, 처음의 그 낯섬과 맹목적인 서사는 sf물이라는 낯섬조차도 잊을 정도로, 매회 흥미진진한 서사를 이어가며 많지는 않지만 열광적인 호청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극 초반 다짜고짜 등장한 외계인의 생소한 존재를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미모를 자랑하며 활약하는 한정연(공승연 분)이라는 '의문의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순치'시키는데 성공했다. sf물답게 ufo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질적 존재는 과거 우진 형제 앞에 등장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별이란 여인과, 현재의 블루버드라는 아이디를 가진 과거가 불투명한 교수의 딸 한정연, 그리고 이제 미래 도시에서 기억이 통제된 인간들 기억의 빗장을 풀어내는 블루 버드로 외계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의문의 인물처럼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던지는 매회의 새로운 '미스터리'는 <써클>을 이끌어가는 주된 질문이 된다.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한정연만이 아니다. 그 이질적이었던 현재와 2030년의 미래의 지구로 나뉘어진 '서사'가, 이제 현재에서 사라진 형을 쫓다, 자살한 이들에게서 꿈틀거리며 기어나온 푸른 벌레의 미스터리를 만나게 된 우진, 그리고 2030년 미래에서 '형'을 쫓아가던 김준혁이 우진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그 '형'이었음이 드러나며, 나뉘어져 졌던 두 개의 세계는 '우진 형제'의 과거와 미래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잡혀간 형 범균이, 이제 미래에서 머리에서 이식된 칩을 제거한 형사 김준혁으로 등장하며, '형'을 찾아서는 이제 오히려 그러면 미래에서 '우진'은? 이라는 뜻밖의 궁금증을 유도하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매회의 미스터리를 생소하지 않게 이끌어 가는데는 제작진은 물론, 여진구와 김강우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설득력있는 연기다. 

이러한 늙지 않는 미스터리한 외계의 생명체,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서 그 행적이 궁금해지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는 1,2회 등장했던 자살자들의 미스터리에서 이제 미래의 기억 통제와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로 한 회, 한 회, 치밀하게 접근해 들어가며 짜임새있는 전개를 펼쳐가고 있다. 즉, 첫 회 그 형제의 서로 다른 행보와, 느닷없이 등장한 외계인이며, 젊은 대학생들의 죽음이란 별개의 사건들이 '푸른 벌레'를 통한 기억 통제의 실험에서 이제, 기억을 통제하는 사회로의 진화, 그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라는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며 <써클>의 정체성을 밝힌다. 






현재와 미래가 직조해가는 '디스토피아'
그러기에 회를 거듭하며 디스토피아 전체의 서사로 직조되어 가는 걸 목도하는 건, 장르물의 시청자로서 최고의 즐거움이다. 또한 그저 수동적 목도가 아니라, 과거의 인물과 미래의 인물을 맞추어 가며 퍼즐을 풀어가는 듯한 '추리'의 즐거움 역시 <써클>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과거의 우진이 미래의 준혁이 아니었다는 뜻밖의 반전에 기꺼이 뒤통수를 내어주며. 

sf물이자, 미스터리 장르물로써 <써클>은 극 초반 산만한 전개와 이질적 구성 요소로 인해 그 '미래'에 대한 암울한 진단을 받았지만, 이제 중반에 들어선 현재, 이 정도라면 sf물로서는 안정적인 안착이 아닐까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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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06 17:10

마지막회를 시청한 호청자들은 허무했을 지도 모른다. 첫 회부터 내내 집요하게 추격하던 하완승의 첫 사랑 현수 살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가 싶더니 결국 밝혀진 살인범과 사주범 뒤에, 거대한 또 다른 사건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100미터로 질주를 해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겨우 한 정류장에 도달했다는 '사인'을 받고 망연자실했을 지도 모른다.


모호한 엔딩? 아니 시즌 2를 향한 원대한 떡밥

하지만 '미드(미국 드라마)'나 '영드(영국 드라마)'을 다수 시청했던 시청자라면 이런 '엔딩'의 방식에 익숙할 듯하다. 극 초반 시작되었던 사건, 하지만 정작 눈 앞의 사건을 해결하고 보니, 그 사건은 진짜 거대한 음모의 시작에 불과했으니..... 뭐 이런 식 말이다. <셜록> 등의 시리즈에서 낯 익게 등장했던 이 서사'의 구조는 나선형으로 시리즈를 거듭하며 진범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다. <멘탈리스트>와 같은 드라마는 '레드 존'이라는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무려 시즌6을 달려가는 식이다. 결국 <추리의 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단 한 차례 16부작 드라마라면 이런 식의 엔딩이 '허무'하다못해, 호청자에게 모욕을 준 셈이지만, 그게 아니라 시즌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면 '큰 그림'을 향한 영리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에 선글라스까지 장착한 현수와 '그림자'의 조우라니! 이보다 더한 시즌 2의 떡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리의 여왕>이 던진 모호한 엔딩, 그리고 다음 시즌을 향한 여운만으로 이 드라마의 시즌제를 기대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추리의 여왕>이 지난 16부작 동안 보여준 연출, 연기, 그를 통해 구현된 캐릭터들과 서사들이 16부작 한 회차로 마무리 짓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2009년 종영된 <몽크> 시리즈가 있다. 자동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후유증으로 강박증을 겪는 탐정 몽크(토니 샬호브 분)와 그의 전직 동료 형사들, 그리고 몽크의 비서로 채용되지만 거의 동반자적 역할을 하는 나탈리(트레일러 하워드 분) 등에 의해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강력 사건 해결로 마무리되는 <몽크>는 탐정물이지만 한편의 소동극처럼 진행이 된다.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캐릭터들, 그리고 그 분위기

그리고 <추리의 여왕>을 보면 그 시절 <몽크>가 떠오른다. 요리에는 젬병이지만, 사건만 일어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해 프라이팬이 타는 줄도 모르고 뛰쳐가는 아줌마 탐정 유설옥(최강희 분)과 그녀를 아줌마라 무시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공간에 오면 촉이 좋아진다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그녀를 믿어주고, 그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달려가는 하완승(권상우 분)가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화음은 유쾌하고 따스한 콤비 플레이어다. 돌땡이라 부르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그를 의지하고, 아줌마라 부르지만 그 누구보다 그녀의 의견을 따라주는 이 언밸런스한 조합은 강박증 탐정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살피는 비서 겸 '왓슨 뺨치는' 조력자 나탈리 못지 않은 명조합인 것이다. 아줌마와 형사, '사랑'이 개입되기 힘든 이 조합은 16부 동안 그 어떤 사랑의 주인공들보다 설레이며 시청자들을 이끌었다.


특히나 그간 우리의 드라마들에서 '복수'의 역동성을 끌고가는 캐릭터나, 성공담의 주인공으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존재 외에 남성에의해 그 존재감이 증명되지 않는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쉬웠던 상황에서 아줌마 탐정 유설옥의 존재는 그저 16부로 퉁치기엔 너무도 아까운 캐릭터다.


 

 


그렇게 캐릭터 자체로도 시즌제를 바라게 되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기대가 되는 건 모처럼 자신들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최강희와 권상우이다. 어느덧 중견 연기자가 된 두 사람, 하지만 그간 성실하게 활동해 온 것과 달리, 한때 스타였던 두 사람의 존재감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오래 되었다. 전작 <화려한 유혹(2015)>의 신은수 역은 연기 변신이었지만 끝까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고, <메디컬 탑팀(2013)>의 권상우는 그의 단점을 더 부각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던 두 사람에게 찾아온 유설옥과 하완승, 그 두 캐릭터는 모두 그간 최강희가 해오던 그 통통튀는 귀여움과 권상우의 허허실실한 자연스러움을 연장시킨 캐릭터다. 그런데 그 잘 하는 캐릭터를 다시 하는 두 사람에게는 이전에 보지 못한 '안정감'과 배가된 자연스러움이 보강된다. 그간 아마도 각자가 아니라, 권상우와 최강희가 '합체'된 시너지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건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빈번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늘 아쉬웠던 이원근의 매력이 모처럼 빛을 발한 것도 '홍소장'의 캐릭터였고, 신현빈 역시 같은 케이스다. 하완승 + 우경감의 조합의 활약이 아쉬울 정도로 박병은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특히 배방서에서 밀려난 완승 등이 배방 2동의 마트와 도시락 가게를 거점으로 수사를 펼쳐나가며 동네 주민들과 '협업'하여 범인을 잡는 수사 방식은 발군이었다. 그렇듯 파출소 직원 한명, 동네 주민 한 명, 한 명 등장했던 인물군 모두가 '기억되는 캐릭터'로 남긴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마지막회 배방 2동을 부감하는 장면에서 오랫동안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이 느껴지듯 그런 '인간미'를 살려낸다. 그저 주인공만이 독주하고, 그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 작동하던 미니 시리즈와 달리, 마치 주말 가족드라마처럼 등장한 그 누구라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배방 2동 '어벤져스' 수사 팀의 활약이 계속 보고 싶은 것이다.


 

 


캐릭터만이 아니다, <추리의 여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때론 이게 드라마야 영화야 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상깊었던 연출들이다. 한참 꽃이 피는 배방 2동을 배경으로 그 꽃 속에서 설왕설래하는 두 주인공을 비롯하여, 그들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출몰하는 곳은 그곳이 갯펄이든, 시체가 던져진 개울이든 그 어느 곳이든 '예술'적 성취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를 하는 '어두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배방 2동과 도시락집, 설옥이네 집 등의 '동네의 아기자기함과 따스한 정서'가 조합되어, <추리의 여왕>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셜록> 등의 명드를 떠올리면 주인공 못지 않게 그 드라마의 그 분위기가 기억되듯, <추리의 여왕>에는 바로 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라 할 만한 정서가 정립되었다.


물론 많은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빠른 사건 전개가 아니면 채널이 바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배경과 분위기까지 챙겨가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추리의 여왕>의 가장 큰 단점은 수사물이라기에 늘어지는 진행 속도였다. 물론 호청자들은 그 조차도 <추리의 여왕>만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그 '느린' 속도는 8% 내외의 시청률이라는 결과로 시즌제의 발목을 잡고 만다. 물론 <추리의 여왕>의 낮은 시청률을 꼭 전개 방식의 문제라 볼 수는 없다. '연애' 이야기 아닌 아줌마 탐정이라는 생소한 캐릭터의 활약상은 중장년층이 채널 주도층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약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웰메이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추리의 여왕>, 시청률은 비록 낮았지만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새 시대의 공영 방송 덕택에 다음 시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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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26 16:40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그려 어쩔 수 없이 <시그널>과 시작도 전부터 비교를 당했던 <터널>, 이제 16부작이 마무리 된 후 그 누구도 <터널>을 두고 <시그널>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이 과연 입봉 작가와 입봉 피디의 작품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정적'인 정서와 구도로 단 한 회도 허투루 보낸 회가 없을 정도로 한 회, 한 회 완성도높은 이야기로 16부작을 완주한 <터널>, 박광호가 터널로 떠날 때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던 것은 남겨진 강력 1팀과 딸 신재이(이유영 분)만이 아니었다. 




<시그널>과 비슷했다고, 아니 오히려 비슷한 건 <수사반장>
비슷한 소재, 거기에 유사한 설정을 들고 그럼에도 <시그널>을 전혀 떠올리지 않도록 만든 <터널>은 그 자체로 스릴러물의 새로운 구획 확장이다. <시그널>은 비슷한 시기 방영된 <응답하라 88>의 수사 버전처럼 그 당시의 시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80년대에서 2017년이 되어도 전혀 '발전'하지 않은 '적폐' 사회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변화되지 않은, 심지어 고착화되어 기득권으로 공고해진 '적폐'는 '김은희 작가'의 전매 특허이자, 박근혜 정권 아래서 그것을 실감했던 사람들의 '이성'을 깨우고 분노케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과거의 이재한(조진웅 분) 형사와 현재의 그의 집요함을 계승한 현재의 박해영(이재훈 분)과 차수현(김혜수 분)의 동지애로 그가 못다한 사건의 완결로 마무리된다.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쫓던 연쇄 살인범을 쫓아 터널을 통해 이제 '교신' 대신 직접 2017년으로 넘어온 박광호. 여전히 그가 살던 80년대는 '연쇄 살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주먹구구식' 수사 방식을 고집했던 '전근대적' 사회였지만, 살인범을 쫓는 그의 집념을 '시간'을 초월할 만큼 열정적이다. <시그널>이 이재한이란 캐릭터를 통해 연쇄 살인과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시대에 주목했다면, <터널>은 똑같이 집요한 형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를 통해 80년대의 <수사반장>을 불러들인다. 





1989년 무려 880부작으로 종영했던 <수사반장>의 상징적 인물은 콜롬보 반장처럼 낡은 바바리 코트를 걸쳐입은 박반장의 최불암이었다. 우리가 배우 최불암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 이미지 그대로 우리의 아버지처럼 그는 '사건'의 아버지 역할을 기꺼이 자임한다. 법을 어기며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때론 호통치지만, 죄를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란 그 뻔한 경구처럼 가난 등의 이유로 범죄의 길에 빠진 범죄자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씁쓰레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등돌리는 박반장의 모습에서는 오늘날 스릴러의 냉혹한 수사의 흔적을 쉬이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같은 박반장의 그늘 아래 수사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남형사(남성훈 분)가 그나마 샤프했을까 한 덩치하지만 노총각의 순정을 숨기지 못하는 조형사(조경환 분)도 홀아비의 애환을 고스란히 드러내던 김형사(김상순 분)도 '인간미'하며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건을 추적하는데 있어서는 둘째가라며 서러운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기억되는 지점은 그 결국 숨길 수 없는 '휴머니즘'이었다.

그리고 이제 <터널>은 시간을 거슬러 자신보다도 나이 많은 딸과 해후한 아재 형사 박광호를 현대로 불러들이며 그 시절 <수사반장>의 향수를 고스란히 불러낸다. 연쇄 살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당연히 사건이 나면 주변의 수상한 범죄자들을 불러 '족치는' 것이 유일한 수사 방식이던 시절, 연달아 죽어가는 부녀자들, 그리고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선재 아버지'와 같은 남겨진 사람들을 보며 자책하던 광호는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온다. 핸드폰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이 '과거'의 인물은 달라진 시대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가 자신이 살던 시절에 했던 그 열렬한 수사에의 열정으로 어느 덧 강력 1팀의 막내이자, 에이스 형사로 떠억하니 자리잡는다. 

강력 1팀의 막내가 된 80년대의 아재 형사 
바로 그가 '막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그 시절 막내였던 하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훨씬 늙어버린 강력 1팀장을 비롯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김선재(윤현민 분)와 곽수사관(김병철 분), 송수사관(강기영 분)을 자신만의 열정으로 감복시킨다. 그의 열정이란 바로 '형사란~'이란 서두로 시작하여, 끝까지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포기하지 말라는 '열정'이 담뿍 담긴 '직업 의식'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그를 시간을 거슬러 그가 잡지 못한 사건의 희생자 아들이자, 이제는 스스로 어머니의 살인범을 잡겠다고 나선 김선재와 해후하게 만든다. 어머니를 잃은 줄도 모르던 겨우 걸음마를 떼던 아이는 그 어머니를 잃은 상처를 '범죄 수사' 밖에는 안중에 없는 '인간미' 제로의 수사관이 되었고, 그런 그의 파트너로 박광호가 등장하며, '피해자'와 '수사관'의 사연넘치는 관계가 성립된다. 



그렇게 <터널>은 자신이 미처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시절에 어머니를 잃은 선재와 범인을 쫓아 시간을 거스른 박광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범죄의 상흔과 그 '치유'를 주제로 삼는다. 거기에 시간을 거스른 광호로 인해 삶이 왜곡된 딸 신재이까지 엮이며 광호의 극한 수사는 좀 더 기구해진다.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딸과 자신이 잡지 못한 피해자의 아들과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박광호, 하지만 그는 '2017'년이란 시간적 딜레마를 한번 잡고자 하는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여 피해자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아재 형사의 열정으로 극복한다. 

물론 <터널>은 요즘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느 스릴러물처럼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들이 범인으로 등장한다. 정호영(허성태 분)도, 목진우(김민상 분), 두 사이코패스들의 시대를 넘나드는 범행이 16부작의 줄기이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연쇄 살인마의 만행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스릴러의 특성 상 그들의 범죄 방식에 천착하다, 때로는 그들에게 매달리고 마는 '스릴러'의 패착을 <터널>은 넘어선다. 그들이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그리고 어머니 때문이건, 타고났건, 혹은 자신의 범죄를 '신'의 용서로 거창하게 포장하건 결국 그들은 '살인범죄자'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들의 죄로 드라마를 치장하는 대신, 그들을 잡기 위해 애쓰고 상처받는 '피해자'자들과 열정의 수사관을 전면에 내세우며 최근의 스릴러와 차별성을 가진다. 

마지막 회 목진우를 잡아넣고 나서 그 연쇄 살인범의 후일담 대신 드라마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찾아 소식을 전하고, 좀 더 빨리 범인을 잡지 못했음을 사죄한다. 그 옛날 <수사반장>처럼 '인간미' 넘치는 마무리로 끝을 맺는 방식은 어쩌면 2017년에 가장 '진부한' 휴머니즘이지만, 그래서 새롭다. 물론, 왜 박광호가 시간을 거슬르게 되었는가에서 부터 따지고 들자면 군데군데 빈구멍들은 있다. 하지만 마지막 회 모든 사건을 해결한 박광호가 터널에 간절하게 귀로의 소망을 전하고 그에 터널이 반응하듯,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그의 범인을 향한 열렬한 수사 의지 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드문드문 보이는 구멍조차도 메우고도 남을 만큼,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준 설득력과 그 설득력을 더 설득시키는 전개와 연출이 <터널>을 오래도록 따스하게 기억에 남도록 할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하는 85년 조용필의 <킬리만자로 표범>아련한 노랫 가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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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22 05:00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 원시 인류 사피엔스는 무리의 가운데에서 살며 평생 '고독'과 싸울 일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리와 함께 이루어지며, 개인의 삶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하지만 인류는 그런 '환상적'인 공동체를 시절을 두고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비대해진 사회 속 원자화된 개인으로 홀로 '고독'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처지에 이르렀다.바로 그 '원자화된 개인'이 처한 '관계'의 문제를 kbs2의 2부작 드라마 <개인주의자 지영씨>가 전면에 내세운다. 




고독에 대처하는 두 가지 자세
드라마는 대비되는 두 남녀의 캐릭터를 시끌벅적하게 내세우며 시작한다. 한 오피스텔에 잇닿아 있는 704호와 705호 그곳엔 번호만 다를 뿐 똑같은 구조의 집과 달리,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산다. 간호사로 일하는 나지영(민효린 분), 그녀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주의를 넘어 '인간, 관계 혐오주의자'같다. 심지어 살아있는 모든 것과 혹시라도 연이 닿을ㄲ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가 매달리는 건 정신과 의사, 매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잠을 들 수가 없다며 좀 더 강한 수면제를 요구한다. 

그런 그녀의 옆집에는 그녀와 정반대로 찰거머리처럼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박벽수(공명 분)가 있다.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가 싶더니 그의 여친은 그가 자신을 외로움을 피하는 도구로 여긴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서를 갈 정도로 그에게 진절머리를 치며 떠난다. 그가 친절하게 대하는 회사 동료들, 친구들은 하지만 그런 그를 웃긴 진상 취급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는 대상으로 취급해 버린다. 

잠시 사귄 애인들과의 격한 이별 의식으로 경찰서에서 조우한 두 사람, 이후 그들은 각자의 성격답게 치근덕거릴 정도로 관심을 가진 벽수씨와 그런 벽수씨를 치한보듯 멀리하는 옆집 여자로 자꾸 부딪친다. 그리고 그 부딪침은 일련의 연애 드라마 방식의 싸우다 정들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드라마는 '혼밥족'이 대세가 된 젊은이들의 연애 생태계를 그린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그 '혼밥족'이 된 젊은이들이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극단적으로 캐릭터화 했지만 '관계'로 부터 받을 상처가 두려워 '관계'를 거부하는 지영과 그 '관계'로 부터의 단절이 두려워 '좋아요'를 구걸하며 기꺼이 '봉'이 되는 벽수의 모습 중간 그 어디쯤에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이 들어서 있을 듯하다. 



고독 증후군, 그 발원지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관계'로 고민하는 청춘들의 '발원점'이다. 이들의 양상을 달리하지만 결국은 '관계 공포증', 혹은 '고독 증후군'을 빚어낸 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받들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지영은 8살 무렵 아버지와 싸우는 엄마의 입을 통해 자신을 가지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녀가 8살 이래 집을 떠나올 때까지 매번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그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부부'로 살았지만, '가족'이란 이름 아래 그녀를 방기했고,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그녀가 스스로 집을 나올 때까지. 벽수라고 다를까. 입양아인 그는 한번의 파양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로 입양된 집안에서 자신에게 가하는 노골적인 차별을 감내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학대에서 도망친 지영과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벽수. 그런 두 사람이 '가족'이란 제도 속에서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이제 '혼밥족'이 된 그들의 삶을 규정한다.

드라마는 말한다. 이 시대의 고독한 청춘들, 그러나 그 '고독'의 발원지는 해체되어 가고 있는 가족이라고. 청춘은 그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지만, 거기서 받은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트라우마'로 인해 현존재의 삶조차 규정받고 있다 말한다. 우리 시대가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가족주의가 가진 발톱을 드라마는 유리처럼 여린 청춘들의 자기 방어적 기제를 통해 드러낸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가족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전면적인 '보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그 '보호자'인 가족은 동시에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을만큼 자의적인 구조이다. 개개인의 불투명한 가족애와 의지에 맡겨진 가족이 그 속에 힘없는 존재에게 얼마나 가학적일 수 있는가를 드라마는 증언한다. 젊은이들치고 '가족'에 대한 고민 한 자락없지 않은 이 시대의 풍경의 상징적 묘사다. 

물론 드라마는 그런 두 사람의 상처를 '로맨틱하게. 사랑과 이해의 '관계'를 통해 치유해간다. 그 흔한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사랑으로 인한 상처는 사랑으로.라는 상투적 슬로건처럼. 애초에 704, 705호의 옆집에 가장 양 극단의 캐릭터를 가진, 그러나 동일한 가족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살게된다는 상투적 설정은 그렇게 당연히 로맨스 드라마의 정석에 맞추어 결론이 난다. 

그러나, 그런데도 어쩐지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벽수와 지영의 캐릭터 덕분일까. 그들이 때론 막무가내로, 때론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로맨스 드라마의 훈훈함 이상 마음을 덥힌다. 마치 빗속에 거리의 고양이들이 서로 몸을 마주대고 그 온기로 내리는 비를 견디듯. 그들이 어린 시절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그 유리처럼 깨뜨려버리는 대신, 로맨틱한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아마도 그건, 사랑만큼 그 치유에 마음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가족'으로 부터 상처받은 청춘들이 서로를 보다듬으며 치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 땜방처럼 들어간 2부작 드라마, 극단적이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관계'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때론 달달하게 때론 뭉클하게 이 시대의 청춘 서사를 짧지만 공감가게 완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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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10 14:23

삼포 세대, 2011년 '복지 국가'에 대한 한 신문의 특별 취재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다.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 상환, 기약없는 취업 준비, 치솟는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염없이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층'을 일컫는 단어였다. 하지만 나아지기는 커녕, 해가 갈 수록 삶의 비용은 상승하지만, 그 삶의 비용을 감당할 '젊은이들의 소득'에는 더욱 가차없다못해, 약탈에 가까운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포기할 '꺼리'를 추가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 인간 관계와 집을 포기하더니, 이제 거기에 '꿈'과 '희망'까지 더해, 칠포 세대가 등장했다. 여기에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한 구포 세대, '보통의 삶'이 로망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희망'이 사치가 되는 시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하지만 여전히 tv 속에서는 '로맨스', '가족극' 등의 소재로써만 소용되기가 십상이다. 그런 가운데 14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다큐'가 아닐까 싶게 실감나게 그려가는 <자체 발광 로맨스>는 발군이다. 하지만, <자체 발광 로맨스>가 '다큐'가 아닌 이유는, 그 현실 속에서 애써 '판타스틱'한 '로망'을 품어보려 하기 때문이다. 



제 남자예요 
하우 라인의 '은장도'. 은호원(고아성 분), 도기택(이동휘 분), 장강호(이호원 분). 한강 자살 특공대 동지로 이 시대 루저들의 표상으로 등장했던 이들, 서현(김동욱 분)의 배려아닌 배려(?)로 하우라인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꿈에 부풀었던 것도 갖은 비정규직으로서의 수모와 고생, 거기에 '낙하산'이라는 오명으로 마음 고생까지 하며 가까스로 정규직 심사까지 도달했던 세 사람의 희비가 엇갈렸다. 은호원과 장강호가 정규직으로 채용된 반면, 도기택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다. 

인생에는 다음이 있으니 괜찮다던 도기택, 하지만 그도 결국은 홀로 화장실에 들어가 오열하고 만다. 그의 오열에는 동료들보다 좀 더 곡진한 사연이 있으니, 바로 이제야 다시 본 궤도로 회복할 가능성을 보인 오랜 연인 하지나(한선화 분)와의 관계 때문이다. 

공시생으로 매번 미역국을 먹는 앞날이 불투명한 도기택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하지나. 그녀가 바랬던 건 자신을 빛나게 해줄 멋진 스펙의 남자였다. 그녀 역시 회사 일보다는 쇼핑과 소개팅을 주업으로 살아가던 처지. 그런 그녀의 눈 앞에 그녀가 이별했던 도기택이 비정규직 사원으로 등장한다. 보잘 것없는 도기택대신 있는 집안과 가진 남자를 찾아 방황하던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도기택은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런 그의 태도에 하지나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러나 정작 마음이 열려가는 하지나와 달리, 기택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그녀를 포기하려 한다. 대신 정규직이 된다면 당당하게 그녀의 앞에 나서겠다 했는데.......

하지만 하지나는 정규직에서 탈락한 도기택을 다른 사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제 남자예요'라고 밝힌다. 또한 도기택에겐 '과분한 여자'가 되겠다며 상심한 그를 품어준다. 이 상황 자체로만 보면 흔한 '로코'의 극적 반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체 발광 로맨스>라 이를 설득해 가는 과정이다. 그저 흔한 '로코식 반전'이 아니라. 거기에는 극 초반 이른바 '김치녀'라 세간에서 야유하는 캐릭터의 전형으로 등장했던 하지나란 여성의 성장이 포함된다. 어떻게든 일하는 대신 괜찮은 남자를 잡아 결혼을 하는게 성공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도기택의 등장과 함께 하우라인의 대리로써 점점 자기 몫을 찾아간다. 그렇게 일과 함께 달라지던 그녀는 선배인 싱글맘 조석경(장신영 분) 과장의 충고를 통해 '취집' 대신, 일을 통해 자기 성취를 하고, 그 성취의 동반자이자, 지원자로서 도기택의 '과분한 여자'가 되기로 한다. 이처럼 하지나-도기택의 사랑은 결혼은 당연히 포기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그런 젊은이들의 새로운 로망으로서의 '사랑'을 '과분한 여자'의 캐릭터로 제시한다. 



제 힘으로 살아볼게요 
도기택과 달리 이전의 취업 면접에서 놀라운 스펙과 달리 자신없는 태도로 인해 내리 '미역국'을 먹었던 장강호는 하우라인에 들어와 꾸준한 성실성과 능력으로 인해 상급자 조과장의 눈에 들어 무난하게 정규직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정규직의 길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으니 바로 '가족'과의 관계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 있었던 풍족한 집안 환경,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의 기대에 못미친 아들 장강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할 만큼 마땅찮아 한다. 하우라인 정규직이 된 장강호, 부모님은 기택과 함께 보잘 것없는 자취방에서 지내는 생활을 버리고 이제 다시 부모님 그늘 아래 풍족한 삶으로 돌아오라 한다. 

여기에 다시 장강호에게 말 한 마디로도 위로와 힘이 되어주던 조과장이 등장한다. 그녀 역시 강호처럼 사회 생활의 출발과 함께 집안으로부터 독립했던 경험이 있던 바, 그 생활을 회고하며 힘들어지만,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는 소회를 밝히며 강호의 '어른됨'을 축하한다. 어느새 '멘토'가 된 조과장의 말에 강호는 그 예전 '마마보이'로서의 복귀 대신, 아직도 낯설고 힘들지만 기택과의 자취방 생활을 선택한다. '제 힘으로 살아볼게요'라는 선언은 또 다른 이 시대 청춘의 선언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고민하는 청춘과 달리, '캥거루 족'이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 청춘의 또 다른 표상이듯, 부모의 그늘이 곧 스펙이 되는 세상 속에서 '청춘'의 또 다른 도전, 어른됨에 대해 드라마는 말한다. 



이건 취업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사고뭉치, 기존의 정규직 평가표로 보면 당연히 떨어져야 마땅한, 그래서 도기택 대신 정규직이 된 은호원의 처지는 사실 애매모호한 지점이 있다. 그녀가 죽을 위기에서 겨우 살아나 응급실에서 만난 서현에 의해 하우라인이라는 낙하산이 되었듯이, 마찬가지로 늘 고개를 수그리다 결국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도발'적 비정규직 은호원에게 또 다른 키다리 아저씨 서우진(하석진 분)이 없었다면 과연 그녀의 정규직이 가능했을까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하산 비정규직이란 처지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발품을 팔아 열심히 했고, 노오력은 하되, 꺽이지는 않고 할 말은 하고 보는 그녀의 정규직 전환은 '을'을 내연화시키며 자신을 꾹꾹 눌러담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우진의 그늘을 지울 수 없는 정규직 은호원, 그녀는 역시나 그녀답게 14회 마지막 정규직을 볼모로 젊은이들을 낚는 회사의 공모원 응모 사항에 반기를 든다. '이건 취업 사기입니다.'라며. 취업 사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스펙'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 공모전을 전전해야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이라도 하급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할 말을 꿀꺽 삼켜야 하며 어느덧 자신이 부속품이 아닐까란 자기 모멸감에 시달리는 또 다른 청춘들의 한계를 은호원은 도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버리며, 다시 한번 어쩌면 '또 다른 낙하산'일 지도 모를 그녀의 행운을 스스로 찢어내며 도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체 발광 오피스>의 은장도는 다큐에서 흔히 보던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들은 삼포, 오포, 칠포 이제 구포를 하며 '포기'는 당연하다며 보통의 삶을 꿈꾸는 것도 사치라 여기는 세대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세대에게 '꿈'와 '희망'을 열어보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 '희망'과 '꿈'은 그들에게 '거저' 오지 않는다. 낙하산이란 행운은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딜레마이자, 관문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며 쭈그리고 한없이 고개를 수그리던 자신감없는 청춘에서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힘들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의 한 걸음을 떼어가며 '자체발광'하는 '청춘'들의 도전기를 곡진하게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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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8 16:58

드라마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물론 이 주에 결정적 장면 정도를 쓰려면 이 주에 방영되는 드라마 정도는 다 보고 써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나도 호불호가 갈리는, 그리고 지극히 편향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래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또 하지만 비록 내가 모든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손쳐도, 그래도  꾸준히 일주일 동안 본 드라마들 중에, 그래도 이 '결정적 장면'은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웠다. 더구나 세 편의 드라마는 서로 다르지만, 이들 드라마의 결정적 장면은 그동안 드라마가 '복선'으로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 숨겨진 진실의 등장으로 드라마의 갈등은 전면화되고,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그 첫 번 째; <터널> 진짜 범인이 나타났다!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온 아재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가, 그가 못잡은 범인에 의해 죽은 피해자 여성의 아들 김선재(윤현민 분)과 함께 30년의 시차를 두고 '연쇄 살인'의 진범을 추격하는 미스터리 범죄 수사. 드디어 이들이 쫓던 연쇄 살인의 진범인 정호영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수사팀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듯 공중전화를 이용하며 그들에게 알 수 없는 힌트를 흘리는 정호영. 정호영의 힌트에 미심쩍어하면서도 화양 경찰서 수사팀은 정호영을 잡기에 혈안이 되는데. 그렇게 정호영을 향해 치다리는 수사 상황 속에서 9회 마지막,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김선재가 가장 의지해마지않는 법의관 목진우(김민상 분)이 놀이터에서 '나는 이유없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며 여성 법의관의 목을 조르며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다. 

이미 눈밝은 시청자들이라면 연쇄 살인이라는 범죄 자체가 등장하기도 전인 30년전 여성들을 잇따라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죽인 범죄가 당시 학생이었던 정호영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등장할 때마다 심상치않은 분위기와 대사로 이미 목진우를 의심스레지켜본 시청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게 시청자는 알지만, 정작 수사 당사자들은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을 드라마적 복선이 양 꽁꽁 숨겨놓는 것과 달리, <터널>은 자신만만하게 9회 엔딩에서 대놓고 자신의 숨겨진 패를 '깐다'. 결국 <터널>의 연쇄 살인 역시 <갑동이> 등에서 등장했던 진범과 카피캣의 이야기, 하지만 30년의 시간을 둔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형사의 슬픈 인연, 는그리고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현재의 카피캣의 엇갈린 범죄는 목진우의 가면이 벗겨지며 이제 그 얽힌 악연이 전면에 드러나며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두 번 째; <시카고 타자기> 귀신이 나타났다!
5회 마지막 한세주(유아인 분)가 그의 유령 작가 유진오(고경표 분)와 함께 간 곳, 거기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진오를 옆에 앉힌 유아인, 고백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작품과 관련된 유령 작가설은 낭설이었음을, 하지만 이번 작품의 유령 작가설은 진짜였음을. 당연히 그의 놀라운 발표에 기자들의 손은 빨라지고, 출판사 사장은 뒤로 넘어갈 지경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한세주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유령 작가를 소개한 순간, 기자 회견은 해프닝으로 바뀐다. 한세주가 소개하는 유령 작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대필 작가로 등장했던 유진오가 진짜 유령이었음이 드러나는 이 장면, 하지만 뜻밖에도  그 장면은 제작진이 '놀랬지'라는 반전 카드에, 이미 시청자들은 수를 훤히 꿴듯, 그래 '놀랬다 치자' 정도의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첫 회부터 계속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삽살개와 시카고 타자기에 이은 유진오의 등장으로 이 드라마가 초현실적 존재를 끌어들일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어쩌면 <시카고 타자기>의 전작인 <도깨비>로, 그리고 <내일 그대와>에 다시 유령이라니, '또 너냐?'라는 느낌이 앞섰달까? 하지만 정작 그보다 심각한 것은 현실의 한세주에게 '유령이 나타난 들'이라는 심드렁함이다. 심지어 유진오 유령설 확정보다 삽살개에 빙의한 유진오가 더 흥미로웠다. 1회에서부터 유령보다 더 유령같은 한세주라는 기묘한 캐릭터를 등장시켰지만, 오히려 그런 현실의 한세주보다 잠시 잠깐 그의 잠재 의식 속에서 끌어올려지는 '1930년대의 경성 트로이카'가 더 궁금해지니, 이것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의 딜레마이다.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이 '경성 트로이카'가 전면에 나선다면 <시카고 타자기>의 부활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불씨의 조짐이기도 하다.



세 번 째; <자체 발광 오피스> 은장도가 낙하산이라니!
100번의 입사 시험에 실패한 은호원(고아성 분), 만년 공시생이라 애인에게 마저 차인 도기택(이동휘 분), 강남 8학군 출신에 완벽한 스펙을 갖추고도 매번 미끄러지는 장강호(이호원 분)은 면접 실패 동지이자, 한강 투신 동지들이다. 그런 이들이 하우라인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만났다. 그러나 이 '기막힌 우연'이 알고보니 사주 아들 서현(김동욱 분)의 기획된 '낙하산'이었다니! 

88만원 세대의 전형으로 등장하여, 어렵사리 하울라인 비정규직 사원으로 고분분투하고 있는 <자체 발광 오피스>의 세 주인공들. 하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기대고 있는 마지막 '자존감'의 보루마저 채가 버린다. 그래도 세상이 자신들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능력으로 쟁취했단 믿었던 그 '비정규직'의 자리조차. 사실은 그들의 원래 몫이 아니라고, 심지어 여태까지 은인이자 호인이라 믿었던 사람이 알고보니 자신들을 '이용'한 사람이라며 드라마는 그 알량한 '환타지'마저 거둬들인다. 역시나 시청자들은 알고 주인공들을 몰랐던 그 최소한의 '특혜'마저 거둬 들어며 주인공들을 다시 한번 맨 땅에 헤딩하게 만드는 <자체 발광 오피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거둬들인 곳에, 이제 진짜로 자신을 마주 봐야 할 세 명의 젊은이들이 있다. 늘 세상이 자신을 몰라줘서 서운하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자신들 역시 그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어들고 이 자리에 있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세 사람. 늘 자신들의 삶이 '은장도'를 빼어든 '배수진'의 삶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수진'의 처지가 역전된 상황. 그들은 '쪽 팔려서' 도망가는 대신, 마지막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 아니 은호원이 서현에게 '고소'를 들먹이며 따낸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놓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비록 회사가 내준 조건에 따르면 그간 사고만 친 이들에게 정규직의 희망은 아득하지만, 그래서 다시 손을 내민 하지나(한선화 분)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만, 이제 이들은 우르르 한강으로 몰려가던 그들이 아니다. 아직은 위축되고, 자신은 없지만, 대신 당당할 수 있고, 자신들의 역전된 처지에, 쪽팔려하는 대신,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 세 명의 은장도는 아프지만 주저앉지 않는 당당한 청춘을 그려내기에 고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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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3 18:50

흔히 남성 작가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에 '선굵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에 대해 막상 따지고 들어 정의를 내리자면 모호하지만, 서사의 스케일이 장대하며, 스토리 라인을 추동하는 힘을 '남성적 역동성'에 기댄다는 의미라 본다면 아마도 크게 엇나가지 않을 듯하다.  물론 '남성 작가'에 굳이 '선굵은'이란 수식어를 얹어주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는 또 다른 성적 편견의 소치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작가의 영역에서 분명 '선굵은 남성 작가'의 장르는 내내 존속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일찌기 <주몽(2006)>에서 <아이리스(2009) 등으로 사극과 시대극을 오가며 그의 이름이 곧 장르가 되었던 '최완규'작가가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 선굵은 남성 작가로 칭해진다. 하지만 최완규 작가 자신조차도 그의 최근작 <옥중화>가 작품성에 있어서나, 시청률 면에서 아쉬운 결과를 보이며 그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김은숙 작가와 함께 <태양의 후예>를 통해 김은숙이란 장르에선 신선했던 이야기를 끌어냈던 김원석 작가가 4월 21일 jtbc의 <맨투맨>을 통해 또 한 명의 '선굵은 장르'작가로서 자신의 진검승부를 펼쳐보고자 한다. 


<태양의 후예>처럼 날아서 
심지어 지하철 광고문에도 '했지 말입니다'란 사라진 군대 용어가 씌일 정도였던 <태양의 후예> 신드롬의 시작은 바로 '신체 건강한 심지어 정신마저 건강한 진짜 군인들의 이야기'였다. 항간에 대한민국 군복이 그렇게 멋있을 줄 몰랐다는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군복으로 감싼 잘 단련된 젊은이들이 이국의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우리가 첩보 영화에서나 보던 활약을 펼치는데 다수의 시청자들이 매료되었다. 우리의 군사 작전권이 미국에 있다는 실질적 사실은 저리 밀쳐두고 미군 앞에서도 당당하고 '여자와 어린이'로 대변되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순수한 군인 정신은 '군인 드라마'는 안된다는 전례를 가볍게 물리쳤다. 그리고 <맨투맨>은 바로 오마주처럼 <태양의 후예>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바로 그 '첩보' 영화 속 한 장면을 다시 불러들인다. 



스쿨버스의 아이를 생포한 인질범과 대치하는 다국적군, 지휘관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발사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질인 어린이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김설우(박해진 분)은 그런 지휘관의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뛰어들어 그를 죽이고 아이를 구한다. 그의 하극상 행동은 체포와 함께 더 이상 군인으로 활약할 수 없는 그와, 대신 그에게 주어진 수면 아래의 첩보원 '고스트'로서의 새로운 인생, 그리고 그에 걸맞는 <007>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여자'를 볼모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적을 능멸하는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태양의 후예>에서 익숙했던 까메오와 함께. 

이 익숙한 화법은 이미 대중들에게 환호받은 바 있는 전작의 코드를 영리하게 활용함과 동시에 바로 이게 김원석이라는 장르라는 확인 도장과도 같다. 과연 김은숙 작가와 김원석 작가의 공동 작품인 <태양의 후예>에서 명불허전의 김은숙을 차치하고, 김원석이란 색깔을 어디서 찾아야 했는지 궁금함에 대한 김원석 식의 답이다.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신드롬을 일으킨바 있고, 첫 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 김원석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가'의 그늘 속에 '사명감'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살아가는 '정의로운' 젊은이다. 흔히 다른 드라마에서 '국정원'이 비리의 배후, 혹은 비리의 그림자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맨투맨> 속 국정원은 첫 회에 등장한 장팀장(장현성 분), 이동현(정만식 분), 그리고 김설우의 면면만 봐도 <태양의 후예> 속 군인들 못지 않게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감의 현신으로 그려진다. 마치 007처럼. 과연 김원석의 이런 해석이 이번에도 또 한번 통할지 <맨투맨>의 귀추가 주목된다. 

어라, 장르가 뭐지?
그렇게 화려하게 <태양의 후예> 도입부처럼 날았던 <맨투맨>, 선굵은 액션 어드벤처를 기대했던 시청자의 기대는 온 몸을 감싼 히어로복을 입은 여운광(박성웅 분)의 입에서 사투리가 터져나오며 급 장르 변경을 한다. 헐리웃과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는 한류 스타 여운광, 하지만 그의 행보는 '코믹'하다. 허우대 멀쩡한 덩치와 다르게, 팬클럽 출신 차도하(김민정 분)에게 쩔쩔매다, 매니저에게 막무가내, 송미은(채정안 분) 앞에서는 자존심만 남은 그 모습은 마치 남자 천송이를 보는 듯 로맨틱 코미디의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여운광의 주변 에피소드에서 장르를 급변환했던 드라마는 다시 또 송산그룹 모승재 회장(연정훈 분)에게로 가면 장르가 달라진다. 할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서울 시장에 나서는 전직 관료에게 돈과 따귀 세례를 안기며 딜을 하는 그, 그리고 다시 그렇게 무자비하게 포기시킨 서울 시장 자리를 갖다 바친 백인수(천호진 분)와의 사이에서 등장한 '세 개의 목각상'은 이 장르가 여전히 미스터리 첩보 장르이면서, 동시에 최근 빈번해진 기업 비리물임을 확인시켜준다. 

이렇게 장르와 장르 사이를 오가며 첫 회를 선보인 <맨투맨>, 덕분에 김설우과 여운광, 모승재의 등장 장면들이 연결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마지막 김설우와 여운광이 차도하와 함께 얽힌 해프닝을 통한 만남으로 이 다음 이야기의 궁금증이 증폭된다. 무엇보다 세 개의 목각상을 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한 '고스트'가 선택한 일자리가 뜻밖에도 한류 스타 여운광의 '가드'라는 신선한 설정은 흔히 첩보원이라면 그에 걸맞은 '가오잡힌'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과 다른 반전이다. 과연 이 반전을 통해 폭을 넓인 드라마가 신선한 장르로 결과물을 나을지 그 또한 <맨투맨>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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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22 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