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3%로 출발했던 <미스티>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8회 6.324%에 도달했다. 6회 7.081%의 최고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화제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을 바라보는 고혜란(김남주 분)의 전 애인 케빈 리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치정 미스터리의 외피를 입은 <미스티>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 고혜란을 비롯한 각자의 욕망과 이해가 첨예하며 부딪치며 '치정' 그 이상의 '심리 스릴러'로써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건 당연히 고혜란이다. 이미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시선을 대번에 빼앗아 버린 김남주에의한 고혜란은 그 존재로부터 탁월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메인 뉴스의 앵커라는 존재감을 목소리 톤부터 달리하며, 거기에 덧입힌 패션으로 완성한 '아우라'로 대번에 설득시킨 고혜란으로 <미스티>는 필요 조건을 완성한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가 내연남과의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뜨림으로써 반전의 관전 포인트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치정의 주인공'으로써의 여주인공이라는 코드 역시 김남주에 의해 설명된다.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여전히 섹슈얼한 여성으로서 욕심나는 이 이중적 코드를 배우 김남주의 준비된 캐릭터로 설득해 내며, <미스티>는 그 비밀의 화원에 성큼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지우면서까지 뉴스 앵커가 되고 싶은 여성,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앵커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 완벽한 여성, 하지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이 '치정의 트랩'에 걸린 여성이 안개 속에 갇힌 비밀을 파헤치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 늘 버거웠던 한 여성의 삶이다. 



소녀 고혜란, 자신의 과거로 부터 도망치다. 
은주(전혜진 분)를 만나고 온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이 혜란이 좋아했던 음악이라며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려주자 혜란은 사색이 된다. 그리고 그 음악이 울려퍼지는 혜란의 꿈속, 어린 시절 명우(임태경 분)는 혜란에게 '너 이일과 상관 없다'며 혜란의 등을 돌려 세운다. 피를 묻힌 채 달려나가는 혜란, 그런 혜란을 바라보는 명우, 그 뒤에는 전당포 주인으로 추정되는 쓰러진 시체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혜란 대신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된 명우, 하지만 혜란은 그 시절 그 사건으로 도망쳐 나왔듯, 명우의 바램처럼, 그 때 그 사건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고, 태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이제 그녀가 바라던 정치의 입문만이 남았다. 그런데 케빈 리의 아내로 그녀와 얽힌 은주는 남편 태욱을 통해 그 과거의 음악을 전해온다. 마치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에 묶여 나오는 시체처럼, 현재의 살인 사건은 과거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도망을 제대로 쳤던 것일까?



과거를 덮기 위해 그녀가 도망친 곳은?
검찰로 송치된 케빈 리의 사건, 그 수사의 키가 될 블랙박스 메모리 칩을 가지고 있는 서은주는 그걸 들고 고혜란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그 날의 영상을 남편 태욱에게 보여주고 사랑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그 칩을 검찰에 제시하고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대신 치정의 치욕을 택할 것인가.

그런 은주의 '딜'에 혜란은 답한다. 자신이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케빈을 만난 그날,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라고. 그런 그녀의 후회는 7년 동안 진행했던 뉴스 앵커 자리가 위태로웠던 그 시간을 오버랩 시킨다. 마치 '공로상'처럼 다시 그녀에게 쥐어진 올해의 언론인상, 하지만 상의 부상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메인 앵커 자리에서의 '퇴출'이었다. 물러나도 자신이 원하는 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한 고혜란, 이렇게 나이든 여성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보도국의 '현실주의'에 그녀는 '케빈 리'라는 카드로 대응한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달려간 그곳에서 만난 건, 한때 그녀와 열정을 나누었던 이제는 케빈 리가 된 이재영(고준 분), 그리고 그의 곁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은주가 있었다. 

지나간 연정과 지금의 과업 사이에서 냉정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녀에게 케빈 리는 도발했고, 심지어 위협했고, 협박했다.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지탱해줄 카드이자, 동시에 그 쌓아올린 것을 한번에 허물어 버릴 폭탄같은 남자 케빈과의 딜을 위해 고혜란은 블랙 박스 메모리칩에 남겨진 비겁한 선택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이제 그녀를 케빈 리의 살인범으로 옭죄어 온다. 



고혜란의 마지막 승부처, 고혜란의 뉴스 나인
은주의 협박 아닌 협박, 다시 그녀를 옭죄어 오는 위기에 복도에서 주저 앉아버린 고혜란이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건 바로 '초심'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보도국이라며 청와대 영전을 만류하는 장규석(이경영 분)에게 고혜란은 반문한다. 그래서 나를 메인 뉴스 앵커자리에서 내쳤냐고. 그리고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막으려는 방해 공작에 고혜란은 바로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유가 외압이 없는 보도를 하고 싶었던 그 언론인의 자세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피력한다. 

나이들어 아침 뉴스 등으로 밀려나는 처지 대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고혜란은 바로 그런 그녀의 방식으로 청와대 대변인 내정에도 불구하고 옭죄어 오는 체포의 압박을 고혜란의 뉴스 나인의 앵커로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돌파한다. 정치권의 영전을 위해 정재계 커텍션에 대해 눈을 감으라는 국장의 회유도 아랑곳없이 그녀가 했던 대로, '뉴스는 팩트다'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앞에 나타는 환일 철강의 커넥션을 폭로한다. 

고혜란이 살아오며 맞이한 위기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환기되고 있는 '미투' 운동처럼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며 끊임없이 맞이하는 위기의 결집체이다. 소녀였던 고혜란은, 그리고 앵커 7년차임에도 고혜란은, 그리고 청와대의 영전을 앞두고서도 고혜란은, 늘 약자였던 고혜란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린 시절의 운명에서 도망쳐 온 그날 부터 고혜란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자신의 은인을 외면했고, 아이를 포기하고, 남편을 이용했다. 고혜란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보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쳐온 그 '운명의 미션'에서 도망치거나, 우회했다. 어쩌면 고혜란에게 닥친 미션은 고혜란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여성들이 매번 부딪쳤던 '미션'들의 집합체이다. 드라마는 고혜란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여전히 고난한 삶을 논한다. 


하지만, 이제 서은주를 만난 고혜란은 그날 케빈 리를 죽이지 못했던 자신의 선택을 분노하며, 자신의 어긋난 회피와 선택이 오늘날 자신의 위기를 자초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한 세 번 째 선택은 말 그대로 '정면승부'이다. 청와대를 가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던 그 원칙적 방식으로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도망치던 그녀가 선택한 이 방식으로 인해 살인용의자 고혜란의 국면은 전환된다. 살인 용의자 한 여성 고혜란은 이런 선택을 통해 그녀가 살아가고자 했던 인간 고혜란으로 거듭날듯하다. 
by meditator 2018.02.25 15:18

마블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매 시리즈가 등장할 때마다 우스개 소리로 마블 히어로 사이의 '재력'과 '능력'에 대한 비교하는 '관례'같은 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쨌든 결국은 마블 히어로의 본질은 지구를 파괴하는 나쁜 놈을 제압하는 그 '힘'에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런 '비교'에서 지금까지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건 자신의 사업체와 강력한 아이언 맨을 가진 '토니 스타크'였었다. 하지만, 이제 그 토니 스타크의 재력마저 우습게 되고 마는 '다크 호스'가 등장했다. 아니 '다크 팬서', 바로 지난 2월 14일 개봉한 <블랙 팬서>의 주인공, 와탄다 왕국의 왕위 계승자이자,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최강 희귀 금속 '비브라늄'의 소유주이며, 그 '비브라늄'에 기반한 와칸다의 선진 과학 기술력과 신화적 힘을 '합체'한 초인적 힘을 자랑하는 '블랙 팬서'는 토니 스타크보다 '부자'이며, 캡틴 아메리카보다 '힘이 센' 극강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윈터 솔져를 막는데 합류했고, 그에 대한 '복수' 대신 '냉동'으로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와칸다 왕국의 수장, 그게 <블랙 팬서>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지난 14일 개봉한 <블랙 팬서>는 바로 그 '시빌 워'의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아버지를 잃고 조국 와칸다의 왕으로 재위에 오르게 될 티찰라(재드윅 보스만 분)으로 부터 시작한다. 



자원 강국 와칸다의 국왕 블랙 팬서 
아프리카의 최빈국으로 알려진 와칸다 왕국, 하지만 블랙 팬서의 비행선이 타고 들어간 비밀의 도시 와칸다는 지구 최강의 금속 비브라늄 광산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의 도시라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 '자원'에 기반한 최강의 부를 가진 비밀스런 아프리카 왕국이란 설정은 이미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늘날 다수의 아프리카를 비롯한 이른바 제 3세계의 국가들이, 그 '천연'의 자원을 가지고도 그것들을 '수탈'을 당함으로써 산업혁명 이후의 부국 대열에서 방치된 상태라는 것을, 영화는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 누구에게도 '수탈'당하지 않아, 아니 '수탈'당하지 않기 위해 '부유한 국가'가 된 와칸다 왕국은 이른바 제 3세계 운동의 한 방향이었던 '자원 민족주의'의 가장 이상적 '환타지'를 스크린에 구현해 낸다. 

그렇게 비밀의 국가 와칸다, 비브라늄이란 자원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의 과학 왕국, 하지만 비행접시와도 같은 비행선에서 내린 차기 와칸다의 국왕이 될 티찰라를 맞이한 건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마티스, 그리고 다수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부족적 문화가 현란한 색채의 복식 등을 통해 살아난 전통적 아프리카다. 그리고 그 전통적 문화는 이어진 티찰라의 왕위 계승 과정을 통해, '첨단'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국'이라는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는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콜라보되어 있는 국가 와칸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와칸다의 막강한 존재감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후진성을 그 부족적 정치 체제의 한계로 설득하고자 하는 입장에 대한 환타지적 반격이 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아프리카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화속 짐승 표범은 와칸다의 상징으로 심장 모양의 허브를 통해 와칸다 국왕의 놀라운 능력으로 현현되는 것으로 영화는 표현해 낸다. 앞서 토르 시리즈가 북유럽 신화를 길어 올려 현대로 온 토르의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아프리카의 영웅 블랙 팬서는 와칸다라는 나라로 상징되는 아프리카 민족의 신화적 배경에서 탄생된다. 하지만 언제나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그러하듯 블랙 팬서 역시 모든 신화적 영웅이 그러하듯 혹독한 탄생 서사를 거치며 히어로로써의 설득력을 얻어낸다. 

그 첫 번째 관문이 되는 건 바로 와칸다 고유의 즉위식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족 연합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낸 영화는 그 이질적 부족의 연맹을 타 부족 절멸이라는 끝없는 내전 대신, 가파른 폭포수를 배경으로 한 족장 후보와 그에 이의를 제기한 타 부족장의 죽음을 건 혈투로 대신한다. 전사를 이끄는 무리의 장으로서의 부족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살려낸 이 '싸움씬'은 와칸다 왕국의 수장의 정당성과 동시에 블랙 팬서의 힘의 배경에 대한 설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얻어내고자 한다. 

와칸다 왕국의 형성 과정에서 합류하지 않고 산위로 올라간 늑대 부족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무난하게 왕좌에 오르게 된 티찰라, 하지만 그는 아직 비브라늄이라는 최강 금속을 가진 와칸다 왕국의 수장으로서 자신에 대한 비젼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이고, 이는 그의 앞에 나타난 사촌 형제의 존재와 함께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 블랙 팬서 
<블랙 팬서>에서의 이 티찰라에게 던져진 도전이 절묘한 건 그저 영화 속 히어로의 극적 갈등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흑백 갈등의 역사를 히어로의 성장 서사로 품어냈다는 점이다. 영화 속 히어로의 이름 블랙 팬서, 이는 흑인 민권 운동 역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티찰라의 원죄로서 그의 아버지가 LA에서 암약하던 동생의 배신을 품는다. 동생을 찾아간 티찰라의 아버지는 조국 와칸다를 지키기 위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이 LA 아파트 비극은 블랙 팬서 당의 궤멸을 가져온 사건과도 맞물린다. 

흑인 민권 운동 지도자 말콤 엑스가 살해된 다음 해 창립된 단체 블랙 팬서는 당시로는 급진적인 맑시즘을 자신의 이념으로 삼는다. 당연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온건주의에 대립한 이 단체는 전쟁 종식 등의 내용을 담은 강령을 내세우며 경찰들의 부당한 체포에 대항한 폭력 투쟁을 벌였다. 1969년 한 해에만 300명의 블랙 팬서 단체 회원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LA의 아파트를 급습한 14명의 경찰관은 수 백발의 총을 난사하여 두 명의 청년을 살해됐다. 

이렇게 영화는 바로 그 역사적 사건, 역사적 현장의 사실을 영화 속 갈등의 주요소로 복기하며, 그것을 다시 티찰라를 찾아온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분)을 통해 오늘의 갈등으로 재연한다. 아프리카의 국가 와칸다가 가진 비브라늄이라는 재원이자 자원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로 대립하며 블랙 팬서 VS. 블랙 팬서의 대결을 벌이는 티찰라와 킬몽거의 대립은 오늘날 테러리즘이란 이름으로 귀결되는 약소국 민족주의 운동의 현실을 품어낸다. 



마치 그런 식이다. 우리의 역사 행간에서 사라진 약산 김원봉이 영화 <밀정>과 <암살>을 통해 귀환했듯이, 김원봉의 '의열단'처럼,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 속 한 주역이었던 블랙 팬서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로 귀환했다. 가장 전투적이었으며, 비타협적인 운동 단체였던 블랙 팬서가 세계 평화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영화 <블랙 팬서>는 그래서 아이러니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귀환이 된다. 

마블의 야심찬 기획 <블랙 팬서>는 기껏 한 편의 히어로 물을 통해 문화 콘텐츠가 풀어낼 수 있는 신화와 예술과 그리고 역사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물론 누군가는 멋진 슈트의 영웅 블랙 팬서에 열광하겠지만, 누군가는 마치 박물관을 방문하듯 영화 속 아프리카의 색감에 홀렸을 것이요, 또 다른 누군가는 티찰라의 원죄가 된 그 LA의 아파트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환타지로 복원한 와칸다로도 위로되지 않는 방대한 자원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도 슬픈 부족으로 남은 아프리카를 기억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문화'와 '역사'를 배운다. 
by meditator 2018.02.23 23:58

광장에 촛불이 사그라들고 sns에서 벌어진 설전 중 하나는, 과연 촛불의 주역이 누구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 논란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홍역을 앓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른바 386 세대, 이제 희끗희끗해져가는 머리가 무색하게 그 겨울 차가운 바닥을 버티느라 좌골 신경통이 도졌던 이 세대는 당당하게 '촛불'의 주인임을 외치지만, 그들은 바라보는 '후배' 세대의 시선은 냉랭하다. 경제 호황기에 태어나 복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후일담 정도로 치부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억울한 건, 그 겨울 광장을 녹였던 여전한 열정에 대한 '공치사'만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 제도에서 자라나,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핵가족의 중심으로 살아낸 장년기, 그들에겐 이제 100세를 살아내야 할 '독립'의 과제가 맞부닥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가는 '논 팔고 소팔아 어떻게든 자식 대학만 보내면 되던' 그 산업 부흥기의 부모 세대들이 왜 그토록 자식에게 연연했을까? 조선으로부터 내려온 유구한 유교적 문화 전통에 입각한 고고한 정신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모 일간지에 게재한 이런 조선 시대로부터의 '공부에 대한 집착'을 '백년 동안의 지랄'이라 일갈한다. 일찌기 흥선 대원군이 철폐한 서원이 700여개, 하지만 그 철폐한 서원까지 포함하여 그 시절 조선에는 이른바 사립 교육 기관이 줄잡아 1700 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게 100년 전이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100년이 지나 oecd 기준 25세~30세 사이 대졸자 기준 최고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그 일관된 공부에 대한 편집증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입신양명', 한 집안에서 잘 난 놈 하나가 나오면 그 부모는 물론, 그 집안 전체가 다리 뻗고 산다는 것이 지난 100년간 우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노년, 자녀로 부터 독립하라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젊은 사람들이라면 웬만하면 '대학'을 나오는 시절, 우리 젊은이들을 비롯한 한국 사회는 '고용 불안, 일자릭 부족, 취업 대란'을 겪고 있다. 남들 하는 거 다했는데, 그 결과는 대학문을 나서도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은 고스란히 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mbc 다큐 스페셜 <부모 독립 프로젝트, 쓰고 죽을까? (이하 부모 독립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세대

데뷔 40년차인 가수 박일준씨(65)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노년을 바라보는 그에겐 깊은 고민이 있다. 다름아닌 마흔을 바라보며 일가를 이룬 나이에도 여전히 '아빠'에게 의탁하여 사는 그의 아들 박형우(38)씨 때문이다. 언제 독립하냐는 아빠의 우문에, 지금의 자기 벌이로는 자기 가족 살기 힘들다며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의탁할 것을 주장하는 아들의 현답에 박일준씨는 답답하다. 

바로 이 박일준씨의 딜레를 다큐는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5,60대 세대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큰 건 주택 마련 자금과 자녀의 학자금이다. 그 중에서도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은 박일준 씨나, 그 뒤에 이어진 음악 동호회 회원들의 근심깊은 토로에서도 보여지듯이 학자금, 결혼 자금, 자식 주택 마련 자금으로 이어진 굵직굵직한 부담의 행렬이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집까지 마련해주고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부모들의 경제력이 넉넉치 않다는데 있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세대는 더 이상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이다. 스스로 자신의 '늙음'을 책임져야하는 건 물론, 아직 채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 이중의 딜레마,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첫 번째 답을 다큐는 옥봉수 박임순 부부에게서 찾는다. 여느 가족들처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에 올인했던 박임순 씨, 그러나 그런 엄마의 교육열은 가족간의 균열만을 낳았다고 한다. 더 이상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는 가족을 보며, '공부'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엄마 아빠보다 더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보며 두 부부는 아이들을 놓아 주었다. 대학 대신 검정 고시를 치고 사업을 시작한 아이들, 겨우 사무실 집기만을 사주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대기업 사원 정도의 벌이는 스스로 할 정도가 되었고, 부부는 뒤늦은 신혼 생활에 빠져 있다. 

이렇게 다큐는 딜레마에 빠진 장년의 고민을 '독립'에서 찾는다.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로 부터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삶을 챙기고,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경환- 이경미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가 그 모범 답안이다. 수능을 마친 딸에게 일년의 기한을 주고 '독립'을 준비시키는 부부, 대학 졸업 이후엔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선언, 하지만 잠시 혼란스러웠던 딸은 이내 기꺼이 부모의 선언에 동참한다. 다큐는 주장한다. 자녀로 부터 부양받을 수 없는 지금의 장년들이 노년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녀를 독립'시키는 게 전제 되어야 한다고. 




부모의 독립 로망의 전제가 되어야 할 사회 안전망
'부모 독립 프로젝트'를 위한 '자녀 독립 프로젝트'의 전제는 이상적이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과정은 사실, 한정적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초반, 자식 결혼 비용이며, 집 사줄 걱정을 하는 부모들, 과연 대한민국에 자식 집 사주고, 결혼 비용 대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다큐는 철저히 중산층 이상의 장년들을 대상으로 한정시킨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말미, 다큐는 부모 독립 프로젝트의 이상향을 '다시 신혼처럼 사는 부부'로 잡는다. 뒤늦었지만 철이 들어 아내 대신 집안 일을 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과 함께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아내. 여전히 이혼율이 높고, 심지어 중장년의 이혼율이 젊은 층의 이혼율을 앞선 국가에서, 다큐가 보여주는 장년 부부의 현실은 '환타지적'이기 까지 하다. 자식을 독립 시키면 부부는 '신혼'이 된다는 이 맹목적 가족 중심주의는 다큐가 가진 본래의 의도조차 무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가족'을 중심으로 이상적으로 부모를 독립시키며 부부의 새로운 삶의 단계를 칭송하게 됨으로써, 애초 이 다큐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역할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캥거루 족', '탕기족', '키퍼스족', '부메랑 키즈' 등은 경제적으로 여유치 않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들어오는 자녀들을 일컫는 세계 각국의 용어들이다. 세계적인 불황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녀들은 전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과연 이게 부모의 독립으로 해결될 일일까? 다큐도 짚는다. 부모가 책임을 져주지 않아도 사회가 자녀의 사회적 독립을 책임져 줘야 한다고. 물론 우리 사회 부모들이 '오래도록 '헬리콥터 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현실이지만, 그 현실은 개인의 입신양명만이 유일한 동앗줄인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다큐는 좀 더 명확하게 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by meditator 2018.02.23 17:09

'아이'를 낳는 고통이 싫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모성'이 회피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런 '반발'은 우리 사회가 얼마 만큼이나 '모성의 포용성'에 기대고 있는 가를 반증하고 있는 현상이라 보여진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 순간, 그 '여성'에게는 '무한한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모성을 존재한다. 진화 심리학이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를 감당하기 버거워 방황하는 '산후 우울증'이 엄연히 현존해도 말이다. 바로 그런 지상 명제로서의 '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10회, 이 드라마는 우리가 그리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많은 질문과 과제를 제시한다.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되었던 신경숙 작가의 화제작 <엄마를 부탁해>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실종으로 부터, '엄마'란 존재로 살아온 한 여성에게,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이 있었음을 갸륵해서 추모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엄마'로 자신을 밀어넣는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버렸다! 
바로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엄마'에 대해 tvn의 드라마 <마더>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 시작은 지금 자신의 곁에 머무는 남자에 연연하여 자신의 아이를 쓰레기 봉지에 '방기'하는 엄마로 부터이다. 엄연히 우리 사회에 현실로 존재하는 아동 학대, 그 현실을 '자영'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와 함께 남겨진 자영(고성희 분), 그녀에게 혜나(허율 분)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상심한 엄마를 위해 카페라테를 타다 그걸 좋아해 버린 아이를 자영은 버거워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은 학대로 나타났다. 그렇게 '모성'의 상실된 자영, 그런 자영의 아이 혜나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진(이보영 분)'이 자신의 아이로 거둔다. 상실된 모성과, 그 상실된 모성을 대신하는 '공감의 의제 모성', 유괴라는 사건 이면의 이 모성의 대립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신봉하는 '모성 신화'에 발을 건다. 

그렇게 엄마가 곧 모성이라는 전제를 스스로 짓밟아 버렸던 자영은 수진이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혜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혜나를 마주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읍소한다. 그러나, 이제 응복이 된 혜나는 자영에게 그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영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복기시킨다. 죽지 않기 위해 엄마로 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해서 응복이 되었던 혜나,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자영은 발을 돌린다. 다시 한번 혜나를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모성 신화도 있다. 버려진 아이 혜나를 거둔 수진처럼, 보육원에 버려졌던 내 새끼처럼 길렀던 수진의 양모 영신(이혜영 분), 스물 다섯 살 시절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수진을 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사는 영신은 애타게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데리고 나타난 수진과, 그녀의 딸 혜나, 아니 응복에게 열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수진이 데리고 온 응복이 자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영신은, 그 둘에게 집착하여 놓았던 자신의 삶마저 다시 애착을 가지게 되었던 영신은 '테메테르'로 분해 가장으로서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수진과 응복을 버리겠다 선언한다. 



버려서 찾은 모성 
자영과 영신이 자신의 딸들을 버리는 이 상황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의 방기가 아니라 성장이다. 혜나를 늘 자신의 부속물로 생각하여 방기하고 심지어 쓰레기 봉투에 버렸던 자영은 처음으로, 혜나를 마주한다. 밀어내도 다가와 자신을 안아서 부담스러웠던 혜나였지만 수진에게 빼앗길 수 없어 홍희의 이발관까지 찾아온 자영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자신이 혜나가 아니라 응복이라 말하는 딸 앞에서 발을 돌린다. 딸에게 외면받은 엄마의 상처받은 뒷모습이지만, 그리고 아직 채 깨닫지 못한 채 분노한 상태이지만 자영으로서는 처음으로 혜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 순간 자영은 처음으로 엄마다웠다. 

영신도 마찬가지다. 영신은 의사에게 고백했었다. 자신에게 수진은 아직도 열 살의 아이 그대로인 채라고. 여전히 어린 아이 수진의 보호자연 했던 영신은 이제 기꺼이 응복의 보호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수진을 놓아보내 주려한다.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책임을 내세웠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어린 자식을 끌어안아아야만 엄마라 생각했던 그 1차원적 모성으로 부터의 탈피가 있다. 유산 대신 새처럼 훨훨 날아가라 했던 그 마음의 연장 선상에서, 응복의 엄마됨을 선택한 어른 수진의 삶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런 자영과 영신의 모성에 대한 방기는, 그에 앞서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자의 딸로 살아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딸을 버렸던 홍희의 모정에 잇닿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다시 묻는다. 모성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은 '자식을 끼고 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을 품은 모성'들이 치맛 바람이란 이름의 역효과를 낳으며, 아이의 삶을 재단하고, 수강 신청에서 부터 미래의 직업, 결혼 이후의 생활까지도 '지도'하고 '군림'하며 아이를 '지체'시키는 '모계 사회'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더> 속 자영과 영신, 그리고 홍희를 통해 보여진 모성의 방기는, 과연 '엄마됨'의 내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린 자식을 품고 보호하고 보살펴 주는 그 1차적 보호를 지나, 성숙된 모성으로의 성장을 위해, 진정 아이를 위해 '엄마'들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극단적 설정'을 통해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10회 이들의 갈 길은 멀다. 응복이 된 혜나 앞에서 발을 돌린 자영은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 먼저 서야 한다'는 수진의 충고가 무색하게 '분노'의 반격을 준비한다. 영신의 희생어린 선택은 영신보다 더 큰 희생을 선택한 응복, 아니 혜나로 인해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과연, 이 엄마들의 앞으로의 여정은 또 어떤 '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 누구도 쉽게 던지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질문을 드라마 <마더>는 끈질기게 천착한다. 

by meditator 2018.02.22 15:26

middle age, 중년은 어떤 나이일까? 일찌기 공자께서는 마흔을 불혹(不惑-마음이 흐려져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 하셨고,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알게 된 나이)라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께서 정의를 내린 나이의 한계는 70세였다. 인간이 대략 70년 쯤 산다는 전제 아래서 불혹의 마흔이 등장하고, 지천명의 오십이 규정된다. 그렇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마흔하면 인생을 제법 살아낸 나이였다. 하물며 오십은 노년의 문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세 시대가 도래했다. 마흔에 혹하지 않고, 오십에 노년이라 하기엔 자기 앞가림하고 살아가야 할 날이 오십 년이나 남아 버렸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등장했고, 젊은 세대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나이는 자꾸만 미뤄졌고, 그에 따라 결혼도 늦어졌다. 서른만 해도 '노'자라 붙던 시대가 무색하게, 이제 마흔 정도 되어야 안정을 찾고 결혼을 할 만한 시대가 되어간다. 그런 시대에, '중년'은 예전 시절에 안정적 불혹의 세대가 아니라, 한참 세상에 '미혹'될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한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중년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들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찾아왔다. jtbc의 <미스티>와 2월 20일 4회 연속으로 첫 선을 보인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이다. 이들 두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 시대 중년의 코드를 살펴보자. 



안개 속에 숨겨진 욕망 
케빈 리(고준 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테리 스릴러 <미스티>에는 욕망이 분출되고 충돌한다. 이미 케빈 리의 등장 이전부터 고혜란(김남주 분)은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지난 욕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정'은 남편 강태욱(지진희 분)과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반증이다. 외려 막상 그녀 앞에 나타난 케빈 리에 흔들리지만 그녀를 더 애닳게 만든 건 지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될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중년의 남녀들이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관계를 매개로 사건이 벌어지는 듯 보여지지만, 그 드러난 육체적 욕망 이면에 숨겨진 건 사회적 욕망이다. 아내와 남편이란 사회적 관계로서 제대로 정립되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욕망,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선, 후배 앵커 사이의 치열한 욕망, 그리고 사회적 상승 욕구, 그 각자의 이해 관계에서 배태된 사회적 욕망들이, 케빈 리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육체적 욕망으로 재조직되고 결핍되며, 분출되면서 진범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살인 사건으로 펼쳐진다. 

<미스티>속 중년의 남녀는 육체적 욕망 만큼이나,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며,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이들이다. 7년간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유지하고, 이제 조만간 청와대 대변인으로 승전하기만을 바라며 '가정'과 결혼마저 희생시킬 수 있는 고혜란이나,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그녀의 전애인조차도 나꿔채고자 하는 한지원(진기주 분)나, 케빈 리를 남편으로 소유했지만, 그의 사랑에 결핍된 서은주(전혜진 분)나 모두 자신이 욕구하는 바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바로 이 양보없는 욕망의 충돌,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래서 <미스티>는 치정극 이상의 긴장감을 낳는다. 그곳에 미혹되지 않는 중년의 안정감이란 없다. 



상실의 세대, 중년
여전히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나이로 <미스티>가 중년을 그려냈다면,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반대의 지점에 자리잡은 듯 보인다. 이미 <애인있어요(2015)>를 통해 중년의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화제가 된 배유미 작가의 또 한번의 중년의 이야기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애인있어요>처럼 이미 상흔을 지닌 중년의 남녀로 부터 시작된다. 

마흔 다섯 갱년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 파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 '비아그라'라 오해 받기 딱 좋은 나이, 그 나이의 남녀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배유미 작가가 그려낸 마흔 다섯은 각자 마흔 해가 넘는 삶을 살아내면서 등이 휘어지도록 짊어진 버거운 개인사가 짊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혹'하고 싶지 않은 나이, 하지만 아직도 살아갈 날 이 많아서 무서운 나이, 고독사가 걱정되고, 가진 것 없이 나이드는 게 무서워지는 나이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그 '상흔'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의 강권 아닌 강권으로 시작된 소개팅, 하지만 '안순진(김선아 분)'이라는 이름 만으로 그녀를 만나러 나간 손무한(감우성 분)에게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떠올려지는 상실의 공감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앞에 나타난 안순진은 누수와 관련된 분란의 이웃이요, 가슴골이 보이는 옷으로 대놓고 그를 호텔방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뻔한 노림수의 소개팅녀이다. 이 현실과 기억의 골 사이에서 어긋나고 다시 만나지는 관계를 통해 드라마는 차근차근 그 상실의 역사를 치유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상실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열정에 대한 모색이다. 

*****
욕망의 <미스티>와 상실의 <키스 먼저 할까요?>는 중년의 양 극단과도 같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주제 속에 풀려나가는 실타래가 그려내고 있는 건, 살 만큼 산 세대로써의 중년이 아니라, 아직 한참 살만한, 그리고 살고 싶은 나이 중년이다. 세상사 버리고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갈 만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0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여전히 젊어야만 하는 우리 시대의 중년에 대한 강권과도 같은 명제를 대변한다. 단지 그 열심히 살아야 할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by meditator 2018.02.21 05:04

올림픽으로 인해 결방에 이어 시간대를 변경하며 방영된 <황금빛 내 인생>, 비록 그간 45%를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밤 10시로 바뀐 변경된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를 넘는 안정된 시청률로 '인기 드라마'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2월 17일 방영분 34.7%,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달리, 2워 17,8일 방영된 46, 47회에 대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폭력적 가부장 노양호의 실각 
1주일만 '연애'하기로 했던 주인공 최도경(박시후 분), 서지안(신혜선 분) 커플, 하지만 이들은 '한시적 계약 연애'조차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없었다. 스키장으로 보내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한 최도경은 지안에 대한 감정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할아버지 병실로 달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해성가의 후계자 최도경에 대한 찌라시에 이어, 최도경이 보낸 창업 성공 문자를 받은 노양호 회장은 쓰러지고야 만다. 응급 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정작 그에게 닥친 위기는 '건강'만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연이어 터지는 서지수 실종과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들이 칼을 겨눈 것은 바로 노명희와 최도경, 그리고 그들을 내세운 노양호였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노양호 대표 이사에 대한 해임안 상정,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노양호'는 예의 그 만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손녀 딸을 바꿔치기한 서태수를 불러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 아니 협박한다. 여전히 20년 전 자신의 딸 노명희의 실수로 벌어진 손녀 딸 유괴 사건을 덮기에 자신의 권력을 십분 이용하는 노회장, 서태수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그가 제시한 건 '돈', 그게 아니면 그가 서태수의 집을 찾아가 뺨을 때리듯 무지막지한 '폭력적 처사'가 기다릴 뿐이라 강변한다. 


소현경 작가가 '노양호 회장'을 통해 그려내고자 한건, '끝물'인 '가부장제'의 허황한 잔해이다. 대표 이사 해임안에 대해 건재한 자신이 회의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믿음'처럼,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서 나오는 '권위'에 대한 굳건한 '자존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부장적 자존감'은 자신을 거역하는 대상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단'이다. 자신의 초상권만을 보호해 달라는 서태수에게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권위'는 허망하게도 바로 자신의 둘째 딸과 사위의 '모의'에 의해 대번에 '거세'된다. 그는 '아버지'였다. 두 딸은 물론, 두 딸의 식솔들, 그리고 나아가 '해성'이라는 그룹의. 노양호의 '아버지됨'의 방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일궈온 '가부장'의 방식이다. 자신의 '가솔'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들에게 '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또한 그 '보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하지만 그 '자신'이 곧 '해성 일가와 해성 그룹의 '보호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양호의 '가부장'은 유일한 후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최도경의 '일탈'을 시작으로, 정작 그의 둘째 딸이 끊임없는 아버지의 편애를 이유로한 '반란', 그에 발맞춘 이사들의 '반기'로 마무리된다. 그는 힘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으나 그 '아버지'는 자식들과 자신을 따르는 '가솔'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결국 '노양호'는 현대사 속에 '한국'을 산업 근대화 시킨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며, 이제 이 시대 '지는 해'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순리로써의 '거세'이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이 된 아버지
그런 노양호에게 빰을 맞고, 이제 무릎까지 끓며 자식들의 삶을 읍소하는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노양호'와 같은 '가부장'은 아니지만, '상상암'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에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노양호가 산업화 시대를 일군 '성공'의 표상이라면, 서태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불도저같은 산업화의 열기가 사라져간 imf 이후의 가장을 대변한다. 

한때는 상사맨으로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들을 호위호식하도록 만들었던 서태수이지만, 불황을 넘지 못한 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 그는 맏아들이 결혼조차 포기할 만큼 무능한 가장의 처지에 놓여있다. 그 '무능'과 실패'의 색인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 '상상암'이란 기상천외한 병을 앓게 된 서태수,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많이 섭섭했던 그는 평생의 로망이었던 기타를 치며 '자신'으로 충실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가족에게 아픈 그가 필요하다. 

자신의 암 보험금을 타서 지안의 유학 학비에 보태려고 했던 서태수는 이제 자신의 가족에게 다시 닥친 딸 바꿔치기와 관련된 '찌라시'에 자신을 던진다. 노양호 회장의 강요어린 요구에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읍소했던 서태수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셜록' 못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딸 지안과, 지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현경 작가는 <황금빛 내 인생>의 악의 축을 노양호 회장으로, 그에 맞선 '선의'의 아버지의 대표적 인물로 서태수를 설정하며, 두 '아버지'들의 서로 다른 '아버지' 되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논한다. 전권을 행사하던 노양호 회장에 대한 둘째 딸 내외의 쿠테타를 통해 그를 실각시킴으로써 '폭력적 가부장'의 자중지난을 그려내는 동안, 그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수호자'로 또 다른 아버지 서태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력적 '가부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족'의 중심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이다. 


'
무리수'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복권
덕분에 모든 서사의 중심에 아버지 서태수가 있다. 딸바보였던 그를 딸들은 수시로 그리워하고, 그의 무능으로 인해 외면했던 아들들도 결국 '상상암' 이후 아버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되어간다. 비록 지금은 날개를 꺾였지만, 그들이 지금 이자리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서태수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확신하는 방식으로. '상상암'을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할 정도로 그 개연성 여부에 갑론을박이 시끄러웠던 아버지 서태수 복권은 그럼에도 '오죽 죽고 싶었으면 암이 걸렸다고 생각했을까'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거기서 더 한 발 더 나아가, 47회 서지안, 서지수와 관련된 찌라시 성 기사에 대한 서태수의 활약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긴급성을 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비록 재계 서열 10에 못든다지만, 그럼에도 재벌가라는 해성의 정보 능력과 대응력이 '전직 상사맨' 서태수에 미치지 못한다는 웃픈 설정은 애교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셜록' 급으로 서태수가 활약을 하는 동안, 주인공 최도경과 서지안 등의 그간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젊은 세대는 뒷전으로 물러서 관망하는 상황은 결국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논란마저 불러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애'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작 성인이 된 자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아버지' 처분만 바라는 여전한 피보호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지 못한 딸에게 이제 암보험금으로 유학비를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설정을 과연 '가족애'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건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을 가겠다는 딸에 대한 여전한 가족이란 이름의 '지체'가 아닐까? 마치 한때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였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시대와 함께 '이기적인 우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덧대여 지듯이, 아낌없는 부성애의 서태수는 어느 틈에 드라마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는 화제작이었던 전작 <내딸 서영이>에 이어 다시 한번 갸륵하고 극진한 '부성애'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애를 복원시키고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빛 내 인생> 방영 내내 서태수의 존재감은 '작가'가 비중을 주고 '방점'을 찍으려 하면 할수록 개연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내딸 서영이>의 극진한 부성애는 비록 몇 년이지만 달라진 시절에 자충수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소현경 작가의 필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미 2018년 소현경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시대는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는 반증처럼 여겨진다.  서태수를 설득하고 그의 부성애를 포장하려 하면 할수록 서태수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묘한 상황은, 이미 이 시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가부장제'의 유효 기간이 종료되었음을 <황금빛 내인생>이 보여주고 있다. 

소현경 작가는 그간의 '가족지상주의'를 내세운 타 주말 드라마와 다른 서사로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짚어왔지만, 이제 종반을 향해 달리는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복원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작가 자신도 그런 시대 역행적인 상황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47회 엔딩 부분에서 '상상암'이 '진짜 암'이었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드린다. 그래서 오히려 묻게 된다. 과연 이 시대의 '가족'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 세대의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서만 복원되어야 할 것인가 라고. 서태수가 극진해 지면 질수록 '가족'을 회의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8.02.19 06:48

2018년은 개띠해, 그 중에서도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육십간지 중 서른 다섯 번째 해인 무술 년이다. 육십간지 중 십이지, 열 두 띠로 대표되는 동물의 띠는 12년마다 돌아오고, 그 중 열 한 번째 띠인 '술년', 개띠 생은 올해 육십간지를 한번 돌아낸 61에, 49, 37이 되었다. 환갑에 40대 후반, 서른 중반,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두툼한 '허리' 세대라 해도 무방하다. ebs 다큐 프라임은 설을 기점으로 새로이 시작되는 무술년을 맞이하여 특집으로 각 세대 개띠 들이 살아온 시대와 삶을 들여다 보는 '개띠 열전'을 마련하였다. 




아니 벌써?  58년 개띠
시리즈의 시작을 연건 우리 사회 '베이비 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다. 전쟁의 상흔이 마무리되는 시점 58년, 일본의 전후에 '베이비 부머' 단카이 세대( 團塊世代)가 등장했듯이, 대한민국에는 '58년 개띠' 세대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큐는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를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를 통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한국 종전 후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맞물려 '90만'의 신생아, 그 주인공 베이비 부머 세대, 그들은 전쟁 후 어려운 형편을 넘기기 위해 해먹던 부모님의 '김치죽'을 향수로 기억하는 세대이며, 최초로 이른바 '뺑뺑이 세대'라 칭해지는 '무시험 진학 추첨' 세대이며, 이른바 '얄개'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를 상징하는 세대이자, 비틀즈, 퀸, 아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함께 대학 입학과 함께 '대학 가요제'등 새로운 대학 문화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했다. 88 올림픽, 86아시안 게임으로 상징되는 풍요한 경제 성장 시대, 아파트 문화를 선도했던 세대의 주역이 된 58년 개띠, 하지만 '폭발적인 출산'의 결과물로 '경쟁'이라는 사회적 논리를 표면화시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대, 콩나물 교실에서 복닦이며 경쟁을 했던, 하지만 여전히 교실의 '급훈'이 '서로 돕자였던 '공동체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은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생업'의 현장을 지킨다. 십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나 이름조차 '오순이'가 된 광장 시장의 전 가게를 운영하는 최오순 씨는 공사 현장에서 다친 남편 대신 가장으로 혹한의 추운 날씨에도 광장 시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구 구두 골목의 김태수 씨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의 서리를 눈감아 주던 농촌에서 태어난 김씨에겐 '제화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전하는 산업에 밀려난 제화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정도가 된 대구 제화업의 증인이 되었다. 여전히 재즈무용가로 현장을 지키는 전미례 씨라고 다르지 않다. 



그것만이 내 세상 70년 개띠 
1988년 대학 가요제에서 싱그럽게 등장했던 '담다디'의 이상은 씨가 벌써 데뷔 30주년이 되었다. 그녀처럼 70년에 태어났던 개띠 들도 이제 어언 마흔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58년 개띠가 '무시험 진학 추천제'의 시대였다면 70년대 고도 성장기의 초입에 태어난 개띠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로 교복 대신 '브랜드'를 입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자율화'의 문화적 경험은 그들의 삶에도 관통한다. 

배달 라이더를 구하지 못해 점주 자신이 한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배달을 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의 한동욱 씨는 어느새 '꼰대'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동네를 누비던 소년의 마음이 된다. 임상일 씨라고 다를까.  언더 그라운드 가수와 콜 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단칸방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서슴치 않고 달려가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예술혼을 불태부는 그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달리자 82년 개띠
82년 개띠를 여는 음악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크라잉 넛이 데뷔하던 해 고등학생이던 그들은 '인디 밴드'와 함께 '얼터너테이티브 롹'을 향유하며 '문화의 해방구'를 형성한 세대이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세대, 하지만 이들은 앞선 세대처럼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 답지 않다며 '제대로 잘 사는' 모색의 세대라 불리길 원한다. 

그런 82년 개띠를 대변하는 첫 번 째 키워드는 바로 '워라벨work and balance', 서핑이 좋아 서핑을 파다 서프 보드 제작 수리직인 쉐이퍼가 된 이상문 씨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세상이 얼마나 멋질까?'라며 반문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꿈'을 쫓는 대신 '현재'를 잘 살아내는 '욜로'족이 되기로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8년을 보냈던 방준재 씨는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과감하게 그 일을 그만두고, 대신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던 바리스타 일을 하며 '지금 가진 것만으로 오늘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매진한다. 이들 세대에겐 가성비보단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을 사로잡는)가 우선하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사회를 달궜던 '82년 김지영'의 주인공인 세대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제빵 자영업 황연씨나,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디자인해낸 김효미 광고사 대표는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고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한 인생이라 입을 모은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본,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그려낸 설 특집 '개띠 열전'은 베이비 붐 세대, 자율화 시대, 그리고 n포 세대라 규정되는 세대 그 이상,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열정을 놓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8.02.16 01:55

<올 더 머니>는 2월 13일 현재 6만이 겨우 넘은 상태다. 다양성 영화의 흥행 성적으로만 보아도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월 12일 영진위 기준, 62,294명) 다양성 영화라도 몇 십만을 넘는 상황에서 심지어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라면 더더욱 아쉬운 실적이다. 하지만, <올 더 머니>는 오히려 그래서 더 주목해야만 할 영화이다. 리들리 스콧은 최근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제작자로, 그리고 그 이전에 일찌기 <블레이드 러너(1982)>, <에어리언(1979)>을 비롯하여, <글래디에이터(2000)>, <아메리칸 갱스터(2001)>, <마션(2015)>에 이르기까지 sf, 갱스터, 역사물까지 장르 불문 명장이다. 그 덕분에 2017년 미국 감독 조합에서 수여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올 더 머니>는 바로 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평생' 영화 감독으로 '공로'를 쌓은 명장 리들리 스콧이 '정의'를 내린 '미국', 잊지말아야 할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이다. 공로상에 갈음하는 가장 멋진 노감독의 수상 소감과도 같은 작품이다. 




공로상 수상 소감과도 같은 <올더 머니> 
<올 더 머니>의 개봉 당시 화제가 된 건 애초에 주인공으로 분했던 '캐빈 스페이시'가 '성추행 스캔들이었다. 불과 개봉을 한 달 앞둔 상황, 그 '험로'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한 사람의 행동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 결과물에 영향을 주게 해선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에 따라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 결정을 내린다. 이후 한 달 여의 강행군, <올 더 머니>는 그런 잡음이 떠올리지 않을 만큼 명장의 명작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억해 낸다. 

<올 더 머니>의 리들리 스콧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그의 전작들 <마션>이라던가, <에러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의 흥행작들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방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1968년 미국이 암흑가를 실감나게 그려냈던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배경에, 최근 그가 제작하거나 기획하고 있는 <마크 펠트; 더 맨 후 브로트 다운 더 화이트 하우스(2017)(이하 마크 펠트)>나, <클라이브 데이비스; 더 사운드 트랙 오브 아워 라이브스(2017)>와 같은 '다큐'적 성격이 짙은 작품의 서사를 얹는다. <마크 펠트>는 2005년에서야 밝혀진 역사의 행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스로트(비밀 정보원) 마크 펠트를 통해 1972년에서 4년간의 미국 현대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에 반해, <올 더 머니>는 같은 시기였던 1973년에 벌어진 미국 최대 갑부 j폴 게티의 손자 유괴 사건을 그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은 같은 시기이지만, 전혀 다른 '미국'을 다룬다. 한편에서 미 연방 수사 요원이었던 마크 펠트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미국이 있다면, 또 따른 한쪽에서는 '오로지 돈' 이외에는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물신의 세계를 j 폴 게티를 통해 그려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제작하고, 직접 감독한 두 작품을 통해 이 양면성을 가진 미국을 실사화시켜낸다. 

이미 석유 재벌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임차권 매매'를 시작한 j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분), 그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중동의 석유 임차권 매매를 성공시키며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j 폴 게티가 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 그래서 그 재산을 헤아릴 길 없는 최고의 갑부에 등극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한편, 아버지의 그늘에서 튕겨져 나와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네 자녀와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그의 아들네 가정을 대비시킨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이 화기애애한 가정, 그곳에 단 한 가지가 없다면, 세계 최고의 부호를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돈'.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아들의 아내 게일 해리스(미셀 윌리암스 분)는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의탁할 것을 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착한 답신, 그 답신과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내가 도달한 일반적 결론, 그리고 일단 도달한 이상 나 자신의 연구에 계속해서 지도적 실마리로 쓰인 일반적 결론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관계들 속에 들어간다.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기초인 바, 이 기초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사회의식들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칼 맑스, 자본론 



물신화된 돈에 헌신한 j 폴 게티 
할아버지의 서류를 대신 읽어주고 답신을 써주기를 즐겨했던 소년 존 폴 게티 3세가 이탈리아의 사창가를 헤매일 정도로 커가는 시간, 그 시간은 j  폴 게티의 돈에 의탁한 덕분(?)에 게일의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미 그 전부터 알콜에 의존적이었던 아들은 자신에게 버거웠던 게티 집안의 사업에서 소외된 채 약에 젖어 살고, 그런 아버지에게 젖어들어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내 게일은 '이혼'의 조건으로 오로지 아이들의 양육권만을 겨우 얻어냈다. 하지만 그녀가 폴 게티의 돈으로부터 구제하고 싶었던 아이들마저, 그녀의 아들 존의 유괴 사건으로 흔들려 버린다. 

아이들을 품 안에 키우기 위해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던 게일은 게티 집안의 손자로 유괴된 아들의 몸값 1700만 달러를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 j 폴 게티를 찾는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모성, 그 맞은 편에 손주의 몸값보다, 보장된 한 작품의 명화에 기꺼이 투자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자신의 손자임에도, '이미 자신에게는 14명의 손주들이 있으며, 존의 몸값을 지불하면, 나머지 손녀들도 유괴될' 것이라는 논리로 몸값 지불을 거절하는 할아버지. 대신 전직 cia 요원을 고용하여 '협상'을 시도한다. 



영화는 '피보다 진한 돈'에 헌신하는 자본가 j 폴 게티를 통해 석유 호황기의 미국의 자본주의를 그린다. 사막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그 '협상'력은 자신의 혈육의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손주의 귀가 배달되어 올 때까지 이어진 협상, 아니, 영화는 '협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노골적인 j 폴 게티의 방기를 묵묵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손주마저 포기한 그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모든 시간을 차지한 석유 유가, 그리고 생명이 넘치는 손주 대신 돈으로 산 차가운 명화를 품에 안은 그의 마지막은 자본주의의 '비애'이다. 차라리 유괴범의 연민이 더 갸륵할 정도로. 자식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폴 게티 가문의 돈을 포기했던 엄마지만, 폴 게티 가문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지막지한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들 앞에 모성은 무기력했다. 

손주의 목숨조차 시간을 끌며, 협상을 통해 '에누리'했던 부호, 손주가 유괴됐다는 소식보다 오늘의 석유 시세가 더 중요했던 부호의 돈, 하지만 손주에게 사기를 친 건지, 그 자신이 사기를 당한 건지 모를 손주에게 전해준 이탈리아 조각상의 허상을 통해 영화는 '돈'의 헐값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평생에 매달렸던 돈, 그 돈으로 손주보다 먼저 달려가 영접했던 미술품들, 그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선 그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j 폴 게티는 가고 돈은 남았다. 석유를 판 중동의 부족장은 석유를 팔았지만 그 석유를 판 돈이 자손들을 타락시켰다고 했듯이, 폴의 아들도, 그리고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후일담으로 전해진 손자 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가난했던 가족은 화목했지만, 돈만 있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던 그들의 꿈은 할아버지의 부 앞에 산산조각났다. 흔히 우리나라 속담에서 죽을 때 짚어지고 가지도 못할 그 '부'의 주체는 과연 j 폴 게티였을까? 물신화된 돈에 눈이 먼 j 폴 게티는 현대의 또 다른 '미다스'이다. 과연 j 폴 게티가 벌어들인 돈은 누구를 이롭게 했는가? 영화 속 그 누구도 j  폴 게티의 돈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돈만이 확장하고 증식할 뿐. 인간의 문명은 진보했지만, 그 문명의 혜택이 개인을 영화롭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피언스> 유발 하라리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거장 리들리 스콧이 1970년대의 j 폴 게티를 통해 조감한 '미국의 자본주의', 그곳에 '인간'은 없다. 

by meditator 2018.02.13 19:59

올림픽이라는 개막식 등으로 인해 일요일 단 한 차례 방영한 스테디 셀러 <황금빛 내인생>은 41.9%로 선방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며 그가 <황금빛 내 인생>을 구치소 내에서 즐겨 시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돈은 해외에 두었지만 외화 유출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어법을 활용하며 대중적 정서와 괴리된 입장을 보이던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을 함께 공감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황금빛 내 인생>이 묘사하는 재벌가의 '갑질'과 오너 일가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재용 부회장의 '자각'에 가장 근접하는 <황금빛 내 인생>속 인물은 아마도 해성 그룹의 아들로써 그의 신념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최도경일 것이다. 


최도경, 해성 그룹의 장녀 노명희(나영희 분)의 외아들이자, 노명호(김병기 분) 회장의 장손이며,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해성 그룹 전략 기획팀 팀장이다. 접촉 사고로 악연을 시작한 그가 그 자리에서 차량 수리비 2000 만원에 당혹스러워 하는 서지안에게 자기 딴에는 통 크게 수리비를 500만원으로 감해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자부심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때문이었다. 



목숨조차 던질 수 있어야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 그대로 하면 귀족이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다. 즉 출생이나 운에 의해서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많은 부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래'가 된 역사적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부터 비롯된다.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포위했다. 결국 기근에 시달리던 칼레는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11개월이나 저항했던 칼레 시민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에드워드 왕은 지도자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외슈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시장, 고위관료, 상류층이 뒤를 이어 7 명의 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다. 단 한 명은 목숨을 건지게 된 상황, 하지만 다음 날 광장에 초라한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걸고 나선 사람은 총 6명, 가장 먼저 제안했던 '피에르'는 이미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피에르의 살신성인은 결국 나머지 6명의 지도자의 목숨을 보존케했으며, 칼레 시민의 안전을 지켰다.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으로 길이 기억되는 이 사건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던져 책임감을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다.

그리고 바로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극중 최도경은 극 초반부터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지안과 연인 사이가 된 그가 당시의 일을 회한에 젖어 말하듯이, 그의 '얄팍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딴에 인심을 쓴다고 깍아줬던 2000만원, 그러나 500만원은 계약직 서지안에게는 여전히 큰 돈이었다. 심지어 서지안이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그가 서지안과 윤하정과의 난투극을 신고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라가고, 서지안을 양평 별장 해프닝에, 결국 해성가로 급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만다. 

소현경 작가는 최도경을 통해, 매번 그가 자부심으로 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서지안에게 가닿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이른바 '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인지 폭로한다. 그렇게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자부심쩔었던' 최도경은 '가지지 못한' 서지안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동시에 자신의 허세를 깨달아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에서도 보여지듯이 '목숨을 던질 정도의 책임감'이 아닌 가진 것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양보라는 게 얼마나 '기만'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최도경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설득해 낸다. 



사랑보다 우선한 자존  
그저 자신이 해성가를 버리고 나오면 당연히 서지안이 자신을 두 팔 벌려 사랑해 줄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지안에 대해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분노하다, 그 끝에서 서지안의 죽음을 만난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재벌가도 버리고 나온 나를 왜 싫어하냐며, 그리고 재벌가가 왜 싫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던 최도경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서지안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색안경을 벗게 된다. 재벌가의 자신과 함께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이젠 비록 정규직도 아닌 목공소 알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서지안의 삶의 선택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벗어던진 건 그저 사랑하는 서지안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받아 다시 재벌가로 돌아가려 했던 자신의 야무진 꿈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을 불쌍하다며 바라봐주었던 서지안을 마음에 품은 그 시점부터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던 재벌가 자제 최도경이 삶은 균열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가졌다'는 그 허황된 궁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있던 최도경을 이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극복'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그저 재벌가 자제의 각성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권유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기 위해 쓰레기통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던 서지안이 그 눈높이을 낮춘게 아니라 버리고 비로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는 과정과, 재벌가의 자제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코에 걸고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 살던 최도경이 계급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온전히 자신으로 서는 과정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의 젊은이들의 삶엔 그들의 꿈이 우선한다.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비로소 찾은 목공소를 매개로한 아티스트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지안이나, 서지안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해성에 들어가는 대신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사업'을 시도하는 최도경, 프랑스 유학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빵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 지수, 그리고 지안, 지수 자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던 청년 사업가 혁 등은 모두 사랑에 앞서 그들의 꿈이라는 존재로 땅에 든든하게 선다. 과연 구치소 안의 이재용 회장에게 이런 작가의 생각이 가닿았을까? 
by meditator 2018.02.12 15:36

결정론을 피하고 싶지만,  한  나라에 있어 지정학적 위치는 운명적이다. 특히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세계의 제국이라자처하는 미국과,  또 다른 바다 황해, 심지어 날이 좋으면 육안으로도 마주할 수 있는 신흥강국 중국 사이에 위치한 그리고 북으로 한 민족이라 하지만 동상이몽 북한과 남보다 못한 이웃 일본 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의 운명은 언제나 그 자신보다도 외적 동인에 의해 바람잘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워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용비어천가'는 아니었지만 '현실'보다는 '민족적 대의'에 맞춰 편제된 역사 였다. 몽고에 대항한 고려의 대응은 '삼별초의 결사 항전'이었고, 조선 말기 고종 대에 겪은 외세의 침탈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등등,. 이에 1월 29일 부터 5부작으로 바영된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은 그런 기존의 역사에서 한 발 비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 하고자 한다.





투키디데스에 빠진 한국 

무엇보다 이런 '현실주의적 역사학'의 필요를 바로 지금 시점 '외교적 위기에 봉착한 한반도 정세'에서 길어 올린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기존 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이 부딛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최근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미국과 그런 미국을 상대하며 자국의 패권을 확장 시켜 나가는 중국,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러시아,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용어다.

하지만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 생소한 상황이 아니다. 일찌기 삼국 시대 이래 한반도는 늘 위기와 선택의 함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당과 패권 타툼을 벌이고 있던 고구려,  그리고 일본 까지 그 영향력을 뻗친 백제 사이에 끼인 신라의 풍전등화 운명이 그러했고, 남하 정책을 벌이며 성장해 가는 거란과 국경선을 맞닿은 고려가 그랬고, 폭풍 성장하는 강국 몽골을 상대한 후기의 고려가 또한 그러했다. 명청 교체기에 갈피를 잡지 못한 병자호란 시기의 조선이 다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한반도를 판으로 이권 쟁투를 벌였던 개항기의 조선이 그러했다.

그리고 다큐는 바로 이런 위기의 한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그 첫 장을 연 건 김춘추의 신라이다. 624년 백제의 대야성 공격으로, 그리고 내부 정치의 혼란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 그 위기를 당시의 리더 김춘추는 고려와의 외교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당시의 적국이었던 고려로 솔선수범하여 찾아갔지만, 결과는 실패, 그 자신이 억류되었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채 도망친다.

하지만 다큐는 국가적 위기에 빠진 리더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 타 국가와의 적극적 해결을 나선 점에 높은 평가를 한다. 고려에서 실패한 김춘추는 당시 고려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당을 차선의 해결책으로 택한다. 늘 육전으로 고전했던 당은 이에 적극적으로 신라와 제휴하여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치고, 그 여세를 몰아 고려 정벌까지 하며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견인차가 된다.

물론 신라의 삼국 통일 그 자체는 최근 재야 역사 학계의 문제 제기와 함께 이론의 여지가 있다. 과연, 백제 왕국과 거대한 고려의 제국, 그 영토의 상당수를 잃은, 그리고 통일 신라 내내 백제 영토 내에서 있었던 부흥 운동 등으로 인해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 재론의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다큐는  가만히 있었다면 백제와 고려의 협공으로 국가적 존망이 위태로웠을 신라가 그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여 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오히려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거듭난 실리주의적 방식을 높이 산다. 뿐만 아니라, 백제를 패하고, 이어 고려까지 정벌하러 나선 당과의 관계에서 김유신이 이른바 오늘날로 치면 '군사 작전권'이라 할 수 있는  장수 김문영에 대한 보호는 제휴는 하되, 자국의 패권을 놓치지 않는 성공적 사례로 기록한다.

첫 회 신라의 사례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열강의 사이에서 고립되기 쉬운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리적 외교 정책이며, 그 실리적 외교정책을 뒷받침 하는 건 바로 '자강'의 국력이라는 것이다.




실리적 외교와 자강의 국력, 그 두 마리의 토끼 

그 첫 외교적 실리의 사례는 이미 우리도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서희의 외교적  승리이다. 하지만 고려가 처음부터 현실주의적이었던 아니다. 당시 남하 정책을 펼치고 있던 거란이 고려와의 유대를 위해 사신을 보냈을 때, 발해를 패망시키고 들어선 거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려는 사신을 죽였다. 그 결과는 거란의 침공.

하지만 남하 정책에 발목이 잡힌 거란의 속내를 읽은 서희가 나서  오히려 강동 6주을 얻는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른다. 명분보다 실리을 앞세운 전형적인 외교전의 승리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이후이다. 서희는 그런 외교전에서 얻은 강동 6주 등 압록강 국경선을 구축하기 위해 과로사를 할 정도로 고려는 이후의 대비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20년 뒤 고란은 다시 침입을 강행했는데,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감찬의 살수 대첩으로 거란을 고려는 성공적으로 물리친다. 하지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당시 현종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방어선'은 그 다음 회차인 몽골 침략 시 강화도 천도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고립과 대비된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강화도로 옮기려 했으나 그 조차 시간이 여의치 않아 피난처로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는 것과 강화도로의 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몽골이 침략해 왔지만 혹시나 군대가 다시 자신들처럼 쿠데타를 일으킬까 두려운 무신 정권은 군대를 내보내는 대신 수도만 강화도로 옮겼다. 수운을 이용하여 세금을 걷을 수 있고, 그 덕택에 왕과 귀족들은 유지할 수 있엇지만, 국토는 몽골에게 유린당했다. 바로 이 리더의 자세 차이이다.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에도 앞서 방어선을 치면 설사 패배하더라도 온 나라가 짓밟히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몽골의 무신 정권도, 병자호란 당시 인조도 그런 건 염두에 없었다.

다큐는 바로 그 지저에서 리더의 자세를 논한다. 오늘날 우리가 기리고 있는 '헤이그 밀사',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나라를 지키기 보다는 언제나 외세의 힘을 빌어 자신의 '왕권'을 보존하려 했던 고종의 지극 히 타산적인 외교 정책이 있다고 다큐는 논박한다. 외교적 '균형자'도 자국의 기반이 우선되어야 가능하다는 당연한 결론 앞에 일본의 힘을 빌어 , 그게 안되면 러시아의 힘을 빌어, 또 그게 안되면 미국에 읍소하고, 유럽 열강에 기대려 했던 고종에게 ''망국'은 예정된 결과라 다큐는 짚는다.

각국의 석학과 국내의 유수한 역사 학자들의 입을 빌어 다큐는 말한다. '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 한국, 만약 한국이 아프리카나 유럽, 심지어 다른 아시아 지역에 있었더라면 한국은 지역적 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지저악적 위치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다큐는 오천년 한국사의 사례를 냉철하게 들며, 그 어느때보다도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적 관점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 외교적 선택에 '자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뽕'을 배제한 한국사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진짜 한국사인데, 우리는 여태 색안경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롭지 않은 현실인데, 그래서 새로웠던 역사 이야기이다. 특히, 현실주의적 외교와 그를 뒷받침한 자강 정책 강조도 그렇지만,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바라보는 청과 관련하여, 우리 안의 '중심과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 제기는 오늘날 제국 미국과 여전히 우리에겐 '떼놈'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원론적인 '반면교사'라는 점에서 더더욱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8.02.08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