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 그러나 여전히 취업이 어려운 현실, 그에 반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들, 이 취업 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sbs스페셜이 나섰다. 6월 10일 방영한 <취준진담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배우 조우진을 내세운 '노오력 인력 사무소'를 통해 지금까지 취업을 하기 위해 취업자가 기업의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발상을 전환하여, 취업자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을 '면접'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의 '노오력'에 대해 살펴 '취업자' 중심의 구직을 시도해 본다.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이를 위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대표 혹은 담당자들이 젊은이들에게 면접을 '당'하기 위해 나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 티** 항공 경영본부 김형이 상무, 한방차 카페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전국에 100여 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고 최승윤 대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트업 회사 여기 **의 인사 총괄 맥스 이사. 이들은 각자 회사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가,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에 주 4.5일 근무, 6시 정시 퇴근 독려 등 일하고 싶은 환경, 그리고 주 35시간 하루 세 끼 식사 제공에 각종 복지 정책을 자신감있게 내세우며 면접장에서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던 자신감은 취준생 면접관들과의 몇 마디 대화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400여 개의 지원 서류를 작성해 본 김연재 , 취업을 위해 대학에 적을 둔지 8년차인 11학번 김은하, 장래를 위한 자신의 전공인 성악 외에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는 김희원, 인턴 2번, 정규직 1년차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32살의 중고 신입 김필립, 각종 단기 알바를 섭렵하고 이제 계약직 만료를 앞둔 서자영, 그리고 취업 준비 2년차 자소서만 155개째 작성하고 있는 김희원이다. 

면접을 하는 위치이지만 이미 그 자리에 나설 기업에 대해 조사를 다 하고 나온 이들은 예리하게 각 기업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급성장하고 있는 자부심을 피력한 티** 항공의 상무는 회사 내 잦은 퇴직에 대해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답을 했다가, 취준생들에게 '꼰대'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가 하면 주 4.5일의 근무 환경에 대표 면담이라는 화려한 근무 조건을 내세운 최대표는 대표 면담이라는 게 대표만의 자의적 소통 방식이 아닌가 라는 반문에서 부터, 연봉 2000 만원이라는 낮은 급료가 혹시나 '열정 페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만 말이 막히고 만다. '여기 **'역시 마찬가지다. '맥스'라는 생소한 외국 이름에서 부터, 1년 안에 획기적인 근무 환경 개선이라는 그의 장담은 취준생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취준생들과 기업 담당자들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을 보인 건 '야근'에 대한 문제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야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업 측의 생각에 취준생들은 그게 바로 '열정'을 거저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맞선다. 그리고 잦은 이직을 그 증거로 내세우며, '열정' 대신 '페이'를 요구한다. 

1박 2일에 걸친 합숙과 술자리까지 거친 심층 면접, 취준생들의 평가처럼 기업 담당자들은 면접의 요소요소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의 노오력에 대해 '안이하게' 바라봤으며, 그들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가치관을 숨길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구직 시장에서 자신을 내던지며 전투에 임하는 태도와 달리, 술자리에만 가도 긴장이 풀려 예의 '꼰대'다운 훈계를 내놓고 만다. 심지어 '노오력'에 대한 마지막 정의의 과정에서 기업 담당자들은 어설픈 비누 조각이나, gps 인증, 혹은 영화 속 설정을 통해 어설픈 이벤트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으려 해 실소를 자아내고 만다. 결국 1박 2일의 노오력 면접이 보여준 건 여전한 '꼰대'들의 '열정'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사고 방식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열정과 페이의 간극 
하지만, 정작 이 '역지사지'다큐가 보여준 건, 이 쉽게 잇닿을 수 없는 구직자와 구직 담장자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1박2일의 합숙이 끝나고 최종 선택이 있던 순간, 가장 꼰대스러워 젊은 구직자들에게 지탄을 받던 티** 항공사가 성과급을 준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룻밤을 보내던 구직자들은 그들이 면접 과정에서 지적했던 이러저러한 사안과 달리, 결국 의견을 '돈'과 '비전'으로 모은다. 그러기에 3개의 직장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티** 항공사와 여기 **가 취준생들의 선택을 받는다. 거기에 반해 현실적으로 가장 직원 복지가 좋고, 대표의 노력과 열의가 돋보였던 카페 프랜차이즈 회사는 단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만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최대표, 그는 울며 말한다.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이 현실이, 결국 자신과 함께 일하면서도 남들에게 자랑스레 자신의 직장에 대해 자부심을 내보일 수 없는 자기 회사 직원들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회한의 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의 역지사지 면접으로 시작하여, 연봉 2000만원 밖에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극사로 끝을 맺게 된 다큐. 

6명의 취준생들 중 그 자리에 나온 기업을 택한 3명은 '꼰대'라도 확실한 경제적 보장과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한 명은 노력가능해 보이는 미래에 투자했다. 반면 6명 중 2명은 여전히 그 어느 회사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근 등에 대한 정당한 노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으며, 수평적 인간 관계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8년이 넘는 구직 기간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대한 로망을 접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 자리에 나와 여전한 '꼰대'스런 사고 방식과 어설픈 노오력(?)을 보인 기업 담당자가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라도 수평적 기업 문화와 삶의 질이 선택하지 않는 핑계가 될까? 애초에 청년들의 '노오력'과 열정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서 였다면 역지사지 면접에 나서야 할 사람들은 대기업 담당자들이 아니었을까? 

구직자의 3%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대기업, 그에 비해 기업 문화를 변화시키며 노력해도 구직자가 원하는 페이를 줄 수 없는 반면, '열정'이 필요한 심지어 미래조차 불투명한 중소 기업, 이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삶의 질과 안정을 추구하려는 구직자들의 구직 행렬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서로 잇닿을 수 있는 길은 희박하지 않을까라는 '현실'을 다큐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만다. 
by meditator 2018.06.11 16:32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두고. 하지만 그 누가 주인공이라고 선뜻 결론내릴 수 없는 영화. 장준환 감독은 바로 그렇게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주 시민 모두가 만들어 낸 6.10 항쟁의 역사를 영화 <1987>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단순 사고로 묻힐 뻔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으로 전한 '비둘기', 배우 유해진이 분한 한재동씨의 이야기 <1987, 그날의 비둘기>를 tbs가 6. 10 항쟁 31주년 기념으로 방영한다.

ⓒ tbs

기적과도 같았던 진실의 폭로, 이어진 6.10항쟁 
이 다큐는 지난 1월 14일로 박종철 고문 치사 31주기에 맞춰 <뉴스 타파>가 1월 19일 방영했던 프로그램이다.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7>의 상영 덕분이었을까. 올 초 31주기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란공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야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감회를 피력하는 박종철 열사의 형님, 그리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선 이부영 씨.

1987년 1월 14일 22살의 박종철 씨는 가파른 나선 계단으로 끌려 올라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걸어서 되돌아 나올 수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과도한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그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사고로 묻힐 뻔했던 사건. 그러나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관 2명이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옥 안에서는 그들 외에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더 있었으며, 이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 동아일보 기자 이부영 씨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한 이부영 씨는 그와 12,3년 동안 지기이자, 동지였던 교도관 한재동씨에게 볼펜과 종이를 청해 그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에게 바깥 세상으로 전할 것을 부탁한다. '걸리면 우리도 죽을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전한 이 쪽지는 비둘기가 된 한재동 씨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었고. 전국은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로 화답했다. 이어진 독재 정권의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 그 시절을 이부영 씨는 '그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시계 속 톱니 바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던', '신의 오묘한 손길'이 닿은 '기적같은 사건'이라 회고한다.

ⓒ tbs

민주 교도관 한재동이기에 가능했던 비둘기 
그리고 그 '기적'이 가능케 했던 비둘기 한재동 씨, 당시 젊은 교도관이었던 그도 30여년의 세월을 건너 칠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건너 그 시절의 일을 그에 대해 한재동씨는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며 '민주화에 보탬이 될 수 있어'외려 '행운'이었다 겸손하게 물러선다.

하지만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고문으로 죽어나가던 시절, 그 소식을 몰래 전하는 것이 직업적 규정의 위반은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전한 당사자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던 시절 용기를 낸다는 건 그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민주적 교도관'으로 투쟁해 왔던 그의 순탄치 않은 이력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단체 관람'으로 <1987>을 봤다며 자랑스레 전하는 한재동 씨의 동료들, 이제는 다들 한재동 씨처럼 70줄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한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한재동씨가 바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낸 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30년 동안 함구했던 이들, 한재동 씨의 헌신은 그래서 뒤늦게서야 알려져 2007년에서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들은 '함구'해야 했을까? 동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한재동 씨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비둘기 역할을 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 보다 한재동 씨 일생의 큰 투쟁은 그가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때까지 버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 '보통' 일이 아니었던 한재동 씨의 교도관 일이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교도관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얼마전 인기 리에 방영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등장한 그런 인간적인 교도관? 실제 감옥을 다녀온 다수의 민주 인사들 중에는 교도관을 벗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감옥에 갇힌 이와, 그들을 지키는 이의 '우정'이라니. 바로 그곳에 민주 교도관 한재동 씨의 자리가 있다.

'비둘기'로서의 운명을 '하늘이 준 뜻이다', '이게 내 팔자자' 그리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라고 받아들였던 한재동 씨의 선택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재동 씨는 퇴직할 때까지 평생 교도관으로 살았지만 교도관으로서의 그의 여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도소내 인권 개선에 앞장 서는 바람에 지방으로 전출되기도 했고, 시국 사범, 정치범, 양심수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이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애쓰고, 나아가 교도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 조합을 만드는데 앞장 서다 인사 조치를 당해 파면에 이은 구속까지 당한 '전력'이 '비둘기'의 숙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적극적인 동료들의 도움으로 1979년 징계에 이은 파면 조치가 1981년 10월 대법원까지 가서야 취소되고 복직 후 첫 부임지였던 곳이 바로 당시 시국사범들이 많았던 영등포 교도소. 동료들은 한재동씨의 복직이 영등포 교도소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미제 사건이 되었을 지도 모르다며 그 '우연의 기적'을 회고한다. 하지만 그 '한재동 씨의 결단'을 교도관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한재동 씨를 위해 동료들은 지난 30년 동안 함구했었다.

몰래 편지를 밖으로 나르는 일, 분명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 그러나 동료들은 '더 고매한 이상이었던 민주화'를 위한 일이었다며, 한재동 씨와의 민주적 유대 의식을 피력한다. 한재동 씨 역시 독재 정권 시대의 '정부'가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에 따라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이라며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 정의내린다.

영화 <1987> 속 한 씬의 인물에 불과한 한재동 씨,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 그들이 그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1987년 6.10 항쟁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그들의 삶이 있기에 가능했다. 직선제 개헌, 미완의 혁명, 그 이후로도 이어진 전진과 후퇴의 여정, 그 가운데에서도 한재동 씨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민주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by meditator 2018.06.09 14:19

생화를 활용한 설치 디자인 전시회에 다녀왔다. 커튼까지 쳐진 전시관,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 있길래? 하고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 흠씬 다가온 숲의 내음, 꽃의 향기. 마치 '그루누이'가 채집한 향기처럼 자연의 냄새를 채집하여 가둬 둔 그 전시회 공간에서 자연에서 '냄새'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의식하지 못하지만 '냄새'로 인해 희노애락을 겪는다. 미세 먼지로 가득한 도시가 뿜어내는 매캐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그 혼탁한 공기를 타고 오는 향긋한 커피 볶는 냄새에 어느새 마음이 풀리곤 한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집에 들어섰을 때 반기는 푸근한 김치 찌개 냄새만큼 안온한 행복의 내음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맛은 언제나 '향'과 함께 우리의 머릿 속에 기억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21세기의 문명이 만들어 내는 향과 맛에 기만당하고 있다면? 지난 5월 21, 22일 2회에 걸쳐 방영한 <ebs 다큐 프라임>은 바로 우리를 배신한 '문명의 맛과 향'에 대한 고발이다. 






음식도 중독이 된다. 
키만 190cm가 넘는 박영재씨는 아마도 개그맨 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덩치만큼이나 '대식'인 그의 식성이다. 단번에 3개는 끓여야 직성이 풀리는 라면, 하지만 라면이 끝이 아니다. 라면 먹고 앉기가 무섭게 초코바 두 개를 먹어치우더니 그것만으로 부족했던지 초코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먹는다. 그가 하루 동안 먹는 칼로리는 대략 6000, 성인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먹을 양을 한 끼마다 먹고 있다. 


박씨만이 아니다. 보기에는 날씬한 민보라 씨는 끼니마다 햄버거로 때운다. 그런데 한 개가 아니다. 무려 서너 개씩.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들지 않아 콜라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늦은 밤 귀가한 윤현섭 씨는 피자를 시켜 우선 콜라 부터 한 잔 벌컥벌컥 마신다. 민씨나 윤씨의 경우 햄버거나 콜라를 끊어보려 했지만 식은 땀이 나거나 울렁증이 생기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부작용을 겪는다.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셔야 비로소 스트레스가 풀리는 상태, 중독이다. 



그런데 이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음식을 대했을 때 중독과 쾌락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 중추의 혈류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중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독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음식 중독'에 전세계인의 19.9%이 걸려있다. 더 심각한 건, 예일대가 만든 음식 중독 문진표를 작성한 대학생 103명 중 무려 1/4에 해당하는 26명이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아, 맛있어'하다, '다 먹어치워야 해'를 지나,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려'를 넘어 폭식의 경지에 이르는 '음식 중독', 그런데 대부분 '음식 중독'을 일으키는 건 '가공 식품'들이다. 

영양 전문가 헐먼 박사는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 패스트 푸드가 담배나 약물과 다를 바 없다 경고한다. 식품의 영양소에 등급을 매긴 ANDI 지수 (Aggregate Nutrient Density Index) 그 중 칼로리 당 미량의 영양소인 '파이토 케미컬'의 분포가 늦은 콜라, 흰 빵 등은 '과식'을 부르고, 식욕을 통제하기 힘들도록 한다. 바로 오늘날 '음식 중독'의 주범이다. 



야생 자원학 전문가인 프래드 프로벤자 교수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먹이의 향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향을 찾아내, 자신이 먹을만한 것을 골라 먹는 능력을 발달시켜 온 '영양 지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의 '과식'과 '비만'은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향의 기만'이다. 발달한 현대의 음식 산업은 향을 통해 음식을 택하는 인간의 기호를 속인다. 과일이 아닌데 과일 향이 나는 하지만 설탕물과 불과한 음료수들처럼 합성향들이 인간의 '영양 지혜'를 뭉개버린다. 가짜 향과 가짜 맛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가공 식품이 매료시키는 향들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콜라, 아이스크림, 햄버거 등 '인공적으로 합성하거나, 도정 및 정제를 거친 곡류로 만들어진 설탕, 흰 밀가루, 백미 등의 '정제 탄수화물'과 영양없는 향을 결합 시켜 인간의 코와 입을 교란시킨다. 

맛과 향이 왜 중헌디? 
그렇다면 고유의 향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다큐가 찾아간 곳은 '토종 씨앗'을 연구하는 사람들.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600여 종의 토종 씨앗을 모은 변현단 씨, 그가 키운 토종 씨앗으로 토종의 퇴비를 써서 키운 작물들은 비롯 모양이나 수확량은 작지만 맛은 비교 불가이다. 

토종과 다품종 개량종 그건  50% 오렌지 쥬스와도 같다. 오렌지 쥬스 원액에 물을 섞어 희석시킨 50% 쥬스. 우리는 이것도 오렌지 쥬스라 부른다. 하지만 오렌지 100%의 맛과 향에 비교할 것인가. 그렇듯 더 많이, 더 크게를 지향한 농업의 발전이 낳은 건, 맛과 향이 떨어진 '본연의 향미'를 잃은 음식들이다. 



그런데 맛과 향이 뭐길래? 플로리다 주립대학은 토마토 278종을 실험했다. 토마토에는 수 백가지의 맛과 향을 지닌 화학 물질이 있고. 그 중에서 향을 내는 건 30 여종의 화학 물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이 '향'이 '필수 영양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암을 예방하고 식욕을 억제하며,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생리 활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성 화학 물질, 파이토 케미컬 성분이 '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향이 좋다는 건, '저는 당신 몸에 좋아요'라는 신호로, 많은 영양분을 품고 있는 건강한 열매라는 것을 연구 결과는 밝힌다. 

그런데 대량 생산을 위한 품종 개량은 바로 이 '파이토 케이컬'의 영양소를 지닌 향을 '희석'시킨다. 희석된 오렌지 쥬스처럼 부피는 늘고, 생산량은 증가하지만 파이토 케미컬과 미네랄이 부족해지고, 그 자리를 수분과 탄수화물이 채워 '영양'의 손실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큐는 실험을 해본다. 똑같은 포항초, 하지만 농약을 쳐서 하우스에서 한 달 속성 재배를 한 것과 노지에서 겨울을 이겨낸 두 같은 종자의 포항초, 우리도 알다시피 겨울 바람을 이겨낸 포항초가 당도도 높고 향과 맛이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파이토 케미컬 성분의 페놀리그난과 플라노보이드 성분에서 노지의 포항초가 압도적이다. 결국 햄버거와 콜라, 피자, 라면 등을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채울 수 없는 건 바로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부족 때문이다. 


내 몸이 진짜로 원하는 맛과 향이 바로 다이어트 
그렇게 본연의 향기와 맛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알리는 '신호등'과도 같다. 다큐는 1부 <건강을 부르는 향>에 이어, 2부 <중독을 부르는 향>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영양 지혜'를 다룬다. 우리는 굶주리지 않지만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다큐의 주장이다. 먹방을 넘어 대식 전성 시대에 대한 도전이다. 

제주시 한경면 조수 1리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20여 명이나 되는 장수 마을, 이곳의 노인들은 집 한 켠 우영밭(텃밭)에서 자라나는 채소와 감자, 고구마 등으로 밥상을 꾸린다. 쌀이 귀한 그 옛날부터 어르신들의 밥에는 보리 등의 잡곡과 검은 콩이 빠지지 않는다. 결국 자연에서 길러진 신선한 먹거리가 '인간의 건강'을 담보하는 것이다. 감은사 우관 스님은 '자연은 인간의 '공생' 파트너'라 정의한다. 사찰 마당에서 마구 자라나는 제철 풀, 그곳은 자연식 전문가인 스님의 보물 창고이다. 유명 셰프라고 다를까. 일식 요리사 유희영 셰프는 말한다. 좋은 재료에서 훌륭한 요리가 나온다고. 

텃밭을 만들고, 야생 풀이 자라는 자연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중독'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른 무렵 결혼 당시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커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암울한 선고를 들었던 160KG의 안소니 마시엘로는 식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50이 넘은 지금 아이들과 함께 농구 게임을 즐기는 삶을 누린다. 채식이냐, 대사 증후군에 당뇨, 고혈압 진단을 받은 개그맨 박영재씨는 한 달 정도 '재습관화'의 과정을 통해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우선 샐러드 등으로 배를 채우고, 외식을 하더라도 콩비지 등 패스트푸드가 아닌, 가급적 맛이 진하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꾸려간다. 

한 달이 지난 후 박영재 씨는 놀랍게도 50대의 생체 나이를 본연의 서른 중반으로 돌려놓았다. 몸무게도 줄었고. 무엇보다 채소라면 질색하던 그가 '토마토'의 다양한 맛에 눈을 떴다. 2006년 <슈퍼 차지 미 SuperCharge Me>의 주인공인 제나 노우드는 자연 생식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채식이냐 육식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공 식품을 먹어 무뎌진 내 몸의 감각을 되살려, 온 몸의 세포에 영양이 퍼져나가는 그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제나는 주장한다. '가짜'로는 만들 수 없는 느낌. 가짜 맛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 내 몸이 원하는 진짜 맛과 향을 찾아내는 '영양 지혜'의 회복. 그것이 진짜 '다이어트'의 비결이다. 

by meditator 2018.06.08 00:40

얼마전 결혼기념일을 지냈다. 어느덧 내가 싱글로 살아온 시간보다 누군가와 '부부'로 살아낸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해 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 '동거'하며 함께 삶을 누려간다는 것이. 그런데 문제는(?) 수명이 길어진 시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또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얹혀진다. 그래서 199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게 황혼 이혼이다. 자녀가 성장한 이후 부부가 각자의 삶을 찾기 위한 '이혼', 하지만 몇 십년 지속해온 결혼이라는 관계의 형태를 '파괴'하는 이 결정에는 많은 부담이 따랐다. 더구나, '가족'이라는 제도가 사회의 근간이 되어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졸혼'.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의 책 <졸혼을 권함>에서 등장한 이 단어는 유행처럼 번져 2016,7년에는 한국 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 '트렌드'에 따라 여러 다큐가 '졸혼'에 대해 다뤘고, 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당당하게 자신의 졸업을 고백하고, 예능으로 도입되어 '별거나 별거냐(2017)'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5월 27일 <sbs스페셜>에서 다시 '졸혼'을 다룬다. 바로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졸혼 연습>이다. 유행처럼 휩쓸고간 2017년이 지나서 뒷북일까? 하지만, <sbs스페셜>이 다루고 있는 '졸혼'은 작년 붐처럼 유행했던 '졸혼'과는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차광수 강수미 부부의 졸혼 연습 
<sbs스페셜>은 OECD 이혼율 1위의 현실을 수용하여 준비없이 맞이하는 '이혼' 현실에 대해 <이혼 연습- 이혼을 꿈꾸는 당신에게>를 통해 '가상 이혼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배우 이재은 부부 등은 다큐에서 마련한 방식으로 이혼 생활을 미리 접해보고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2018년에 찾아온 <졸혼 연습>은 바로 이 <이혼 연습>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하지만 위자료, 재산 분할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묵직해졌던 <이혼 연습>과 달리, 결혼이라는 제도의 외피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않은 '졸혼'답게, 결혼의 종료 연습은 한 편의 달콤쌉싸르한 로멘틱 코미디와도 같다. 

여기 남들에겐 한 쌍의 원앙으로 대접받는 부부가 있다. 바로 연기자 차광수 씨 부부다. 결혼 생활 23년차, 남편에게 10첩 반상을 차려 대접하는 아내, 1년에 한번씩 해외 여행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남편, 이들은 남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잘 나가던 거문고 연주자의 꿈도 접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스스로 90점 짜리 아내라 평가해오던 강수미씨는 자신의 삶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제서라도 자신을 찾고 싶은 강수미 씨 남편에게 당당하게 '졸혼'을 청한다. 

자기의 삶을 되찾고 싶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가진 배우자의 졸혼 요구에 배신감과 허탈함에 빠진 것도 잠시, '자유'라는 또 다른 카드가 차광수씨에게 손을 내민다. 결국 차광수 씨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은 인정하는 '졸혼' 계약서를 쓰고 '가출'한다.

다큐는 각자 홀로 살아보는 '졸혼' 연습의 혼란스러움과 시행 착오와 함께, 실제 '졸혼'의 커플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에게 '졸혼'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힌다. 자신의 삶을 모색하던 아내가 찾은 사람은 임지수씨.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녀는 하던 사업을 정리한 후, 평범한 아내의 삶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황무지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구어 냈다. 하지만 자유로운 그녀의 삶을 부러워하는 강수미씨에게 임지수 씨는 여전히 고운 외모와 달리,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을 보여준다. '졸혼'이라던가, '자신의 삶에 대한 로망'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천착과 책임이 뒤따른다는 증거이다. 임지수 씨의 손을 본 강수미 씨의 생각도 복잡해 진다. 막연히 남편의 시중을 들지 않아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졸혼', 그러나 생각보다 무료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없는 삶, 거기엔 홀로 살아갈 삶에 대한 책임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졸혼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휴혼은 어떨까?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의 청소와 빨래에 대해 잔소리로 일관했던 남편, 그러나 막상 집을 나와 살아보니 그 별 거 아니라던 일상의 삶이 버겁다. 그 역시 '졸혼' 선배를 찾아나선다. 파주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중인 이안수 씨, 그의 아내는 그와 떨어져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자전거 여행에 이어 필리핀 어학 연수 중이란다. 평범한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안수 씨가 먼저 훌쩍 떠나면서 시작된 부부의 이별, 서로 각자의 삶을 인정하며 존중해 주는 삶은 더더욱 부부간의 정과 사랑을 돈독하게 해주었다고 자부한다. 

'졸혼'의 선배를 찾아본 차광수-강수미 부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강수미 씨는 평소 좋아하던 베이킹을 시도해 본다. 막상 만들어 본 첫 번째 작품, 그 빵을 먹으며 강수미 씨가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남편이다. 결국 부부는 '졸혼'대신 잠시의 휴혼을 마치고 다기 한 집에 살기로 한다. 따로 또 같이 삶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아내 없는 일상을 차광수 씨는 상상할 수 없었다 토로한다. 하지만 잠시 떨어져 살았던 시간은 부부를 변화시킨다. 손도 까딱않던 남편은 이제 아내를 위해 차를 준비하고, 떨어진 시간 동안 소중한 서로의 존재가 일상의 시간마저 변화시킨다. 이에 부부는 준비되지 않은 졸혼 대신 부부가 서로를 마주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휴혼을 제안한다. 



다큐가 보여준 건, '졸혼' 조차도 사실상 여의치 않은 우리 사회 부부의 또 다른 대안이다. 이혼이 '위자료', '재산 분할'이라는 경제적 부담과 가정의 파탄이라는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면, 졸혼 역시 차광수 씨 부부에게서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독립적 생활에 대한 쉽지 않은 여건의 함정이 따른다. 차광수 씨나, 예능 <별거가 별거냐>에서 여유롭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집을 나섰지만, 과연 배우자에게 여유롭게 어렵게 마련한 집을 양보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또한 너무 오래 살아서 번거롭고 지겹지만 막상 결혼을 '졸업'할 용기 역시 쉽지 않다. 그러기에 2018년 <SBS스페셜>은 졸혼에서 다시 한 발 물러서 '휴혼'을 제의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정'을 벗어던지는 건 쉽지 않다. 


by meditator 2018.05.28 15:00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와 관련된 논란은 2008년 식용 GMO(콩, 옥수수)의 본격 수입이 시작된 이래 그 역사가 길며 쉬이 종결되지 않고 있다. 식량난으로부터 인류의 구원자라는 의견과 결국 인간과 자연 모두를 멸종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밥상이라는 양 자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해 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7년 기준 연간 228만 2천톤, 그 중 옥수수 123만 9천 톤, 대두 104만 3천 톤, 어느덧 우리는 세계 1위의 식용 GMO 수입국이 되었다. 




높아지고 있는 GMO 경고의 목소리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관련된 경고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해 서울 환경 영화제에서 제레미 세이퍼트 가족의 GMO 가족 여행기 <GMO OMG>가 상영된 바 있다. 인류가 유전자 조작을 시작한 지 어언 20년, 우리의 식탁에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GMO, 그 실상을 알기 위해 제레미 세이퍼트 감독은 아이들과 함께 긴 여정에 올랐다. 마트에 들러 원료의 성분을 묻고, 쓰레기통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미국의 실생활에 GMO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가족은 찾아나선다. 



GMO와 관련하여 몬산토를 대표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 주장하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세계적인 기아의 가장 유효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GMO 농산물의 생산성이 그렇게 좋을까? 놀랍게도 유기농 재배와 30 여년간 비교한 결과 그리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해충과 잡초에 강한 GMO 농작물이 해충과 잡초에 강한 내성을 키워 슈처 잡초가 등장했다. 결국 또 다른 농약을 살포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2007년 < KBS 환경 스페셜 위험한 연금술 유전자 조작 식품>을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다. 영화 속 가족이 발견한 쓰레기통 속 엄청난 음식들척럼 우리 사회 '기아 문제'는 절대적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생산되는 음식의 1/3이 버려지고 있는 불균등한 배분의 문제라고 반대론자들은 주장한다.

세계 3대 GMO콩 생산지인 아르헨티나 마을 차코에서는 그 재배 과정에서 대량 살포된 글리포세이트로 인해 주민들이 각종 암과 이상 질명에 시달렸고, 신생아의 30%가 기형아로 죽어갔다. 결국 WHO(세계 보건 기구)는 이를 2등A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이 글리포세이트는 GMO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사의 GMO 전용 농약 '라운드 업'의 주성분이다. 

하지만 농약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세계의 환경 단체들이 우려하는 건 바로 '유전자 조작' 그 자체이다. 일부에서 병해에 강한 농산물을 키워냈던 품종 개량에 비유하지만, 유전자 조작은 '냉해에 강한 딸기를 만들기 위해 심해에 살아 추위에 강한 넙치의 유전자를 이식하듯', 종의 경계를 넘어선 실험이며, 이 20여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의 식품의 장기간의 섭취에 따른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연어의 경우 더 많은 알을 낳도록 하기 위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제거하여 36배나 큰 슈퍼 연어를 탄생시켰지만, 이 슈퍼 연어는 기형어가 많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들 연어를 물에 풀어놓았을 경우 불과 5세대 만에 일반 물고기의 수를 초월했다. 그러나 이들 슈퍼 연어는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겨우가 적어, 40세대만에 멸종되고 만다. 그러기에 환경 운동가인 류외향씨는 '식량이 아니라 생물 무기'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GMO식품이 상업화된지 20년, 콩, 옥수수 등의 유전자 변형 농산물과 함유 식품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환경과 건강, 식량 주권 및 무역 등 다방면에서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지난 19일 세계 몬산토 시민 반대의 날에 한살림 등 시민 단체들은 'GMO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매년 5월 세째 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이 집회는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한 세계 시민들의 뜻을 모은 행동이다. 또한 지난 3월 12일 한국 YWCA, 경실련 소비자 정의 센터 등 57개 소비자, 농민, 학부모 단체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GMO 완전 표시제 국민 청원'을 시작했다. 불과 한달 사이 21만명의 사람들이 청원에 참여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뉴스 타파 목격자들>이 'GMO를 먹지 않을 권리'로 담아내고 있다. 

왜 GMO를 표시해야 하나? 
왜 GMO 표시에 학부모와 소비자 단체들은 나섰을까? 그 시작을 다큐는 NON GMO 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찾는다. 경기 광명의 광명 북고등학교. 이 학교는 학교 급식에서 GMO 음식을 퇴출 시켰다. 우리밀 튀김 가루, NON GMO 기름인 유채유를 쓰고 있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학부모들, 급식이 제일 맛있다는 학생들, 하지만 그렇다고 이 NON GMO 급식이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공 식품에서의 GMO를 완벽하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묵들의 제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GMO 농산물로 만들어 지는 기름에 대해 학교 급식은 무방비하다. 왜냐하면 이들 식품이 원재료의 GMO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수입된 GMO 콩과 옥수수는 각기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의 형태로 분해되어 간장, 식용유, 전분 등의 원료로 씌여진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은 우리가 무심코 먹고 있는 각종 식품들, 심지어 아이들이 즐겨먹는 과자나, 믹스 커피 등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7뇬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고도의 정제 과정 등으로 유전자 변형 DNA 또는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검사 불능인 당류, 유지류 등은 유전자 변형 식품임을 표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고시하고 있다. .

이에 학부모, 농민을 비롯한 소비자 단체들은 이에 '내가 먹은 식품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즉 알권리와 먹을 권리로서 'GMO 완전 표시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불과 한 달 만에 청와대 청원에서 21만 명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대중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 윤소하, 김현권 의원은 ' 유전자 변형 식품 표시 대상을 '제조 가공 후에 유전자 변형 DNA, 또는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남아있는 유전자 변형 식품 등에 한정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유전자 변형 물질을 원재료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예외없이 식품에 이를 표시하도록 할 것'에 대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안은 2016년 이래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정부의 방패막이 역할 GMO 협의체 
이런 학부모, 농민, 소비자들의 주장에 대해 정부, 그 중에서도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GMO 표시 제도 검토 협의회를 전문가 4명, 소비자 단체 8명, 식품 산업계 8명으로 구성하여 논의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협의과정의 내용의 비공개 등 운영 과정의 문제는 물론, 소비자를 대표해야 할 소비자 단체 대표의 대표성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CJ, 대상 등 식품 산업계 전원 반대와 소비자 대표 3인 마저 반대한 이 협의체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GMO 정책과 관련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방패막이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식품 산업 협회는 GMO 성분 표시와 관련하여 과학적인 검증 방법이 없다거나, 시스템이 갖춰 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와 관련한 홍보 영상까지 만들어 배포하는 등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경우는 GMO 완전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가까운 대만의 경우 GMO 완전 표시제는 물론, 학교 급식에서 GMO를 완전 퇴출 시켰다고 GMO 반대 행동은 밝히고 있다. 



GMO 완전 표시와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 중 가장 큰 불안감은 바로 '가격'의 문제다. 과연 GMO 관련 수입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얼마나 가격이 오르게 될까. NON GMO 원료를 사용할 경우, 식품 산업 비용은 1.28~2.35%의 인상 분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월 식품비 지출 50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월 8250원에서 18000원 추가로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식용유 1,8리터를 기준으로 했을 때 4000원의 가격이 5000원으로 인상될 것이다. 학교 급식의 경우 한 끼 3000으로 놓고, 끼니 당 111월 한 달 2220원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이상의 사례로 미루어 봤을 때 GMO 완전 표시제 이후 시장에서 GMO 원재료가 퇴출된다 해도 '가격'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뉴스 타파>는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 청원에 대해 GMO 표시 제도 검토 협의체 재구성을 할 것과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다큐는 덧붙인다. '새로 구성할 위원들의 선정 방법과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GMO 전면 배제와 관련한 서민의 가격 부담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또한 '선택'의 문제가 되었을 때 빚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황교익, 김봉구 씨등은 '신토불이'의 위험론을 제기하며 소비자의 알권리는 맞지만, 그 인식이 너무 이분화되어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단백질이 녹는 고온을 이용한 가공 식품에 사용되는 GMO 원료의 유해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또한 무엇보다 푸드 패디즘(FOOD FADDISM; 먹거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 하는 것)의 과열을 우려하며, 당장이 아니라 GMO에 대한 인식의 제고와 '유전자 가위 기술'(기존 GMO 방식을 개선한 나쁜 유전자를 빼내는 기술) 등의 과학 발전의 긍정성은 GMO로 인한 악영향을 충분히 제고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한편에서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알 권리, 내가 먹고자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는 '삶의 질'과 관련하여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다. 



by meditator 2018.05.27 01:39

지난 2017년 6월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기후 협약에서 탈퇴를 해버렸다.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교황과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를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치적 실천'을 도모했지만, 미국인들은 대통령으로 트럼프를 선택했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보란듯이 '지구 온난화' 문제를 묵살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의로운 실천'을 요구했던 이 영화는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 그러기에 외려 이 영화의 가치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절실해 진다. 우리가 어느 '화창한 날에 맞이할 대홍수'가 여전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의 대중성과 영향력에 기대어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다.(이하 레오)  영화는 일개 배우인 레오가 환경운동의 전문가라는 걸 비웃는 한 tv 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비아냥에 대해 비록 레오가 학자들만큼 많이 알지는 못하고, 정치인들처럼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스무 살 때 고어 대통령을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래 꾸준히 이 문제에 대해 천착해 왔음을 보여준다. 아니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도 가장 친숙한 배우 레오이기에, 전문가가 아닌 한 개인이 가진 지국 온난화에 대한 여정이기에 <비포 더 플러드>는 더 설득력을 지닌다.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상 남우 주연상을 선사했던 영화<레버넌트>로 부터 시작된다. 혹한의 날씨에 야생을 견디며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인물을 그려내는 이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이다. 그에 걸맞는 영화 배경을 찾아 캐나다로 간 촬영진은 영화에 걸맞지 않게 눈이 다 녹아버린 상황에 고심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2014년 유엔 환경대사가 된 레오, 그는 이후 2년 여의 여정으로 지구 온난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든다.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라 생각할 만큼 무지했던 젊은 레오, 지구의 에어컨인 북극, 하지만 급속도로 녹아가는 그곳에서 2040년만 되도 항해가 가능할 지도 모르는 증언들과 마주하며 소박했던 그의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지구의 날을 기점으로 지구 온난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기 시작한다. 

타락한 행성, 수익의 유혹 
그런 그와 함께 찾아본 지구 온난화의 현장, 그 첫 지역은 그가 사는 미국의 플로지다 지역이다. '화창한 날의 홍수', 그 이상한 단어의 조합이 현실이 되고 있는 곳, 상승된 해수면은 플로지다의 취약 지역를 상시적으로 '홍수'로 몰아넣는다. 이를 위해 플로리다 시는 도로를 들어 올리고, 물을 빼는 전기 펌프를 작동시키는 중이라는데, 하지만 2011년 공화당의 주지사는 취임 이후 이 다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로비'와 '산업'이 얽혀있는 지구 온난화의 현실, 97%의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동의해도, 지구는 오히려 냉각되고 있다는 등, 전례없는 온난화는 거짓이라는 등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현실, 과학 논쟁이 아니라 화석 연료 사업자와 기업체의 스폰을 받는 언론의 이간질에 대중이 '미혹'되는 현실은 결국 '지구 온난화'가 '환경'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걸 레오는, 다큐는 분명하게 짚는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 의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1958년 미국의 한 tv 과학 프로그램은 이미 당시에 과학계가 기후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큐는 묻는다. 그 당시에 그런 지구에 닥친 문제점을 인지하고 실천을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라고. 하지만 현실은 단기적인 화석 연료 수익의 유혹이 세상을 장악한다. 과학자들의 과학적 인식 대신 사회적 신용도가 높은 몇몇 유명 인사들이 스폰을 받고 방송을 통해 인간이 기후를 바꿀 수 없다는 등의 말을 흘린다. 의회도 장악되었다. 기후 온난화에 대한 법안은 번번히 저지된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중국은 다를까?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 제 1의 오염국가였다. 하지만 이제 그 지위를 중국이 이어받았다. 중국에서 대기 오염은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시민들을 대거 거리의 시위로 불러들이는 건 바로 '대기'의 문제이다. 학자들은 전국 오염도를 데이터 베이스화 했고, 이런 '정보'는 곧 '시민'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덕분에 정부의 녹색 성장 정책으로 추동했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풍력, 태양력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세계 제 3위의 탄소 배출 국가 인도의 문제는 복잡하다. 하지만 인도인 중 7억 명이 전기와 불빛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단 30%의 가정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여전히 소똥 케이크를 활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다. 인도의 국가적 과제는 개발과 빈민 구제이다. 온국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요, 감당할 수 있는 전기 요금때문이라도 석탄 사용은 불가피하다. 

이런 인도의 에너지 담당 장관에서 레오는 태양 에너지를 권유한다. 장관은 반문한다. 그런 미국이 태양 에너지를 쓰지 그러냐고. 미국의 에너지 소비는 중국의 10배, 인도의 3.5배이다. 문제는 미국인의 생활 스타일이 전세계 국민의 로망이라는 것이다. 즉 세계인의 롤모델이 되어버린 미국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즉 미국식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지구의 약한 고리들
하지만 이렇게 미국 등의 부유한 나라가 펑펑 써댄 화석 에너지로 인해 정작 고통을 받는 건 세계의 약한 고리인 약소국들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계절에 안맞는 폭우가 내려 갓 농사를 지은 농작물들이 썩어들어간다. 1년의 작황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태평양의 낙원 키리바시에서는 홍수로 사람들이 쓰는 식수로 쓰는 연못에 바닷물이 유입되고 있다. 조만간 팔라우 섬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해안의 생태계도 위협받고 있다.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의 사람들이 산호초 어장에서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바닷물 내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호초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의 바다는 어쩌면 지금의 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산호초의 파괴는 그곳에 깃들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열대 우림도 마찬가지다. 이산화탄소의 저장 창고인 열대 우림, 하지만 값싼 팜유의 생산을 위해 고의적으로 불을 놓아 열대 우림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팜유 산업의 팽창은 열대 우림의 80%를 파괴했고, 코뿔소,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동물은 '난민'이 되었다. 아니 이들 동물은 불로 죽어간 다수의 동물에 비하면 '운좋은 생존자'이다. <레버런트>의 눈쌓은 풍경을 위해 영하 제작진은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아르헨티나까지 5000km의 여정을 달렸다. 눈을 본다는 게 기이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12억년동안 지구는 안정적이었다. 지구인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지구 온난화로 약 4도 정도의 상승이 예상되는 미래의 지구는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지구이다. 언론에서는 외려 지구가 냉각되어가고 있다고 떠들지만, 지구 온난화가 당장 폭염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외려 일시적으로 유럽의 경우처럼 '한파'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산호초는 절멸될 것이다.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이다. 파리 기후 협약은 그래서 지구 온도 변화를 2도, 1.5도 내로 제한하기 노력할 것을 협상했다. 지구 밖에서 본 지구의 대기는 양파 껍질처럼 얇아 보인다고 한다. 이 얄팍한 껍질, 그만큼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늦었다지만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노력들 
이 양파껍질처럼 얄팍한 대기의 지구, 그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이미 늦은 걸까? 전기차로 이름을 날린 일론 머스크는 '기가 팩토리'를 통해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배터리'는 개도국의 발전소를 대신할 수 있는 용량의 전기를 내장한 어마어마한 환경 발명품이다. 즉, 우리가 유선 전화에서 무선 전화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듯, 기가 팩토리의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더 이상 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석탄을 태울 필요가 없게 된다. 현대 과학의 발전이 새로운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낸 것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자기 개인의 노력으로 전세계에 기가 팩토리를 세울 수는 없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각국의, 세계 정치권의 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탄소세'의 도임이다. 대기 중 배출되는 탄소, 즉 그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행위와 사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경제적 방식'이 요구된다. 이산화탄소에 세금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불과 몇 십년전 '담배에 세금을?'하며 고개를 갸웃대던 상황을 연상해 보면 된다. 

계몽적 방식의 사회적 책임감 호소보다. '탄소세'와 같은 직접적인 경제적 방식이 급격해지는 위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정부나, 정치권의 몫만은 아니다. 하다못해 우리가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식사 습관만 바꿔도 온난화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다. 지구 상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소의 먹이이다. 또한 소가 배출하는 메탄은 강력한 온실 가스의 주범이다. 반면 닭은 그런 소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1/10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뿐이다. 그래서일까 레오는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이는 결국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실천은 우리의 생활 방식으로 이어짐을 뜻한다. 탄소세와 같은 세금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탄소에 대한 세금은 세금의 증가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다른 피해를 줄여 '세금의 이동으로 홍보되어야 한다.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취향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의 변화가 우리의 알수 없는 미래로 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정치권도 대중의 생각이, 삶이 변화하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바꿀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 계몽의 설득력있고 유효한 수단으로 <비포 더 플러드>의 의의는 크다. 



by meditator 2018.05.22 02:36

결혼을 하자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젊은 나는 그런 시어머니의 말씀을 콧등으로 넘기며 '아이를 낳자마다 맡기고 제 일을 찾을 거예요',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자, 난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분이, 곳이 없을 뿐더러,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그 '지상 명제'를 이겨낼 만큼 '내 일'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아이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고민을 했던 시절에서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다. 그런데, 그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여전히 '엄마'들의 고민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가중'되었다. 그러니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5월 13일 방영된, <sbs 스페셜 - 앵그리 맘>의 이야기다.


맘고리즘에 갇힌 엄마들 
알고리즘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 단계, 혹은 그를 위한 프로그램을 뜻한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의 변형어인 '맘고리즘'은 문제 해결을 커녕, 거기에 빠져 들어가면 헤어나올 길이 없다. 바로 이 땅의 '엄마'들 이야기다. 



다큐의 시작은 sbs 시사 교양국의 한 여성 피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피디는 sbs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여성? 아니다, 시사 교양국의 여성? 역시 아니다. 이 여성 피디가 독보적인 이유는, 피디인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독보적이 되었다. 세상에, '아이 낳기를 권하는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게 신기원이 되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정시 퇴근은 남의 나라 이야기,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이 하는 이른바 '언론계의 명예직'이라 일컬어 지는 여성 피디가 아이까지 낳은 건, 용감무쌍함을 넘어선 행동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여성 피디만이 아니다. 이 시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른바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것이다. 흔히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힘들다 하면, 이미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의 따끔한 조언이 있다.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라고. 뒤로 자빠질 듯한 태산같은 배와, 퉁퉁 부은 다리로 변비에, 메스꺼움 등등으로 밤잠을 설쳐도, 그 시절이 편했다는 건 아이를 낳는 순간 모든 엄마들이 절감하기 시작한다. 직장을 가졌던 엄마들이 온전히 떠맡아 하는 독박 육아, 제 아무리 부부가 나누어 지고 싶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 그 와중에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 돌보미 등등을 전전하는 수난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잠시 직장을 쉬고 아이를 키우면? 돌아갈 직장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저 새 생명이 오시는 경이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아기와의 전쟁, 하지만 자신의 일을 하던 엄마들은, 그 버거운 전쟁에 '업친 데 덥친 격'의 미래를 떠안게 된다. 



2018년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힘겨운 일생은 위의 그림 한 장으로 설명된다.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일 수 밖에 도망갈 수도, 도망쳐서도 안되는 '엄마'의 일생은 출산→육아→직장→부모에게 돌봄 위탁→퇴사→경력단절→자녀 결혼→손자 출산→황혼 육아… 끝나지 않는 육아와의 전쟁이 된다. 50여 명의 부모들과의 인터뷰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하여 고비고비마다 '엄마'란 이유만으로 '소모'되고, '탈진'되는,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에서 '방출'되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 엄마들이 '화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누적시킨다. 

126조원의 저출산 대책 비용은 어디로? 
엄마들은 반문한다. 정부는 지난 12년 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126조원을 쏟아 부었는데, 도대체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고. 도대체 저출산 대책으로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기에 '엄마'들은 여전히 '맘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어야 하냐고. 차라리 허경영이 말했듯이 출산 장려금으로 3000 만원씩이라도 나눠 받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래서 다큐는 찾아봤다. 지난 12년간의 저출산 중앙 예산과 지자체 예산을 샅샅이 살펴봤다. 저출산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저출산' 법안의 실질적 내용이 무엇이야 하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저출산 홍보라는 것이 지자체 기관장들의 자기 홍보 영상이기 십상이다. 또 저출산 취지의 홍보 가요제라는데, 차마 그 영상을 마저 보기 힘들 정도로 낯뜨거운 '아이를 낳자'는 단순한 슬로건 개사 수준이었다. 그래도 시늉이라도 하면 다행이랄까. 현장에서 '저출산 대책 비용'은 생일 맞이 직원 청장과의 간담회, 오카리나 교실, 흡연 음주 예방 사업, 템플 스테이 여가 문화 지원 사업,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갖다 붙이면 저출산 대책으로 '비용'을 잡아 먹었다. 지자체 직원은 솔직히 토로한다. 중앙에서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집행하라 하고, 지자체에서는 당장 시행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적당하게 취지를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결국 그 126억이 지난 12년간 이런 식으로 '공중 분해'되었던 것이다.

엄마들이 나섰다, 정치하는 엄마들
그래서 엄마들이 나섰다. 더는 '엄마'를 위하는 척을 하는 정치를 믿을 수 없다며 '엄마들의 목소리'를 직접 실천에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시작은 전직 국회의원 장하나 씨이다. 국회의원 시절 아이를 출산했던 장하나 씨는 아이를 낳고도 그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더, 그래서 결국 국회의원 직을 사퇴했던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일간지에 칼럼으로 실었다. 그리고 이 칼럼에 공감했던 엄마들이 모였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니 하나같이 모두 자신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을 깨달은 엄마들은 이제 더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회에서 밀쳐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리고 그 '각오'의 실천으로 비영리 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었다. 



엄마들이 정치를 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 가능성을 다큐는 뉴질랜드 국회에서 찾아보았다. 아이를 낳고 국회에서 당당하게 수유를 하고, 아이를 안고 국회 연단에 서는 엄마 국회의원 프라임, 그게 현 뉴질랜드 국회의 모습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연소 여성 수상으로 당선된 재신더 아더는 기쁘게 임신 소식을 알렸고, 자신이 아이의 출산과 함께 6개월간의 출산 휴가를 가지게 될 것이라 공표했다. 뉴질랜드라고 첨부터 그랬겠는가. 하지만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해지자 사회가 바뀐 것이다. 국회의장이 솔선수범하여 동료 의원의 아이를 안고 의장석에 앉았고, 아이를 가진 엄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당당하게 아이와 함께 등원했다. 

결국 다큐가 말한다. 우리 사회 질기디 질긴 '맘고리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지난 촛불 정국에 다같이 입을 모아 말했듯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여성, 그리고 '엄마'들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당사자'인 엄마들이 나섰다. 우리가 스스로 '정치'를 바꾸겠다고. 


by meditator 2018.05.14 15:39

4년전 차가운 바다에 꽃같은 젊은 죽음들을 목도했을 때, 그래서 차가운 겨울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섰을 때, 세상 사람들은 다짐했을 것이다. 다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겠다고, 그런데,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는데 여전히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해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4 명의 아이들, 잠시 세상은 떠들썩했고, 의료진 7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로부터 131일,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여전히 4년전 차가운 바다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같은 말을 한다. 아이들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세상은 이 아이들의 죽음에 무책임하다고. 


“제가 태어나서 죽은 사람을 처음 봤는데 그게 저희 아들이었어요.

살기 위해 들어간 병원에서 죽어서 나온 게 말이 되냐고요.”

-고 조하빈 父母


당시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4명의 신생아들을 수사한 경찰은 이들의 죽음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결론내렸다. 질병 관리본부 역학 조사팀은 지질 영양제 1개를 7개로 나누어 담는 과정에서 균에 오염이 되었고, 그 책임을 물어 지난 3월 30일 주치의와 수간호사가 구속되었다. 구속의 이유는 변질이 쉬운 지질 영양제를 나누어 주사하는 '관행'을 묵인하고, 제대로 된 감염 교육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었다. 



'분주'의 관행을 낳은 열악한 의료 현실?, 과연 그럴까? 
이대 목동 병원은 지난 2010년 국제 의료 기관 평가 인증(JCI) 병원이다. 이 국제적 인증 기준에 따라 '환아 1명당 1병씩'이라는 지침 기준까지 변화시켰다. 그런데 현실은 한 병의 주사제를 여러 환아들에게 나누어 주사하는 이른바 '분주'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었다. 

“선한 의도가 가중된 의료인에 대해서 나쁜 결과만 가지고 

의사들을 중범죄자, 살인자 취급을 하게 된다면 

우리 의사들은 중환자 치료에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집 /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



이 관행에 의거한 의료 행위를 두고 '구속'이라는 강수를 둔 검, 경에 대해 대한 의사 협회 등의 의사들은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목동 병원 사태의 원인을 다르게 해석한다. 현행 건강 의료 보험 제도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 즉 낮은 의료 수가와 시스템이 목동 병원 사태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즉 낮은 의료 수가와 열악한 의료 시스템이 낳은 구조적인 문제에 의료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 협회의 주장이다. 또한 '분주' 과정에서 주사기나, 줄, 그 어떤 곳에서도 세균 감염의 가능성이 있기에, 주사제만을 놓고 세균 감염에 책임을 물 수 없다는 것이 의료진 측의 주장이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부담스런 미숙아를 치료하지 않겠다는 '몽니'조차 등장한다. 

과연 그럴까? 목동 신생아 사망이 과연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한 열악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낸 관행만의 문제일까? 그러나 유족들은 항변한다. 아이들의 죽음은 그저 '관행'의 결과가 아니라고. 그 진실에 4월 25일 <추적 60분>이 다가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다큐가 조사한 건 방대한 의무 기록과 공개된 적이 없는 질병 관리 본부의 역학 조사서이다.  



여전히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관행과, 그 관행에 협잡하는 사회 
그런데, 다큐가 진실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은 '험난'했다. 이른바 '우리'로 똘똘 뭉쳐진 '의료계'는 다큐가 조사하는 그날의 진실에 대해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내부고발자'라도 되는 양, 제작진을 피하는 동료 의사들, 유족과 죽은 신생아들 대신, 의료진의 입장에서만 구구절절 항변하는 병원이나 피해 의사 변호인을 비롯한 관계자들. 의사들의 증언을 참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어렵사리 얻은 도움은 '의사'가 아니라, '의사' 출신의 의료계 소송을 전담하는 변호사였다. 

비록 전직 '의사'였지만 변호사는 의료 기록과 역학 조사서를 보고 한 눈에 당시의 상황이 '관행'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짚는다. 그리고 그런 변호사의 의심에 유족들의 증언이 더해진다. 당시 신생아에게서 심박수 증가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사망에 이르기 5시간 전, 유족은 아이의 이상에 대해 의료진에 문의했지만, 신생아실에서 돌아온 답은 '면회 시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 출신의 변호사는 이미 당시의 신생아 상태가 '코드 블루'의 위급 상황이었으며, 그 상황에 의료진이 조금 더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어쩌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는다. 

“로타 바이러스가 어떻게 보면 경고였을 수도 있죠. 

 감염관리가 엄청나게 지금 문제가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징표잖아요.

그런데 그 기회를 또 무시를 한 거예요”

-사망한 신생아 부모


그렇다면 심박수 증가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난 그 시간으로 부터 5시간 여 '신생아 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과연 아이들은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 다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신생아실 전담 의료진은 10여 명이 넘었지만,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한 의료진이 있는 가운데, 불과 다섯 명 정도의 의사, 그것도 전공의 1년차와 3년차의 의사들이 몇 십 명의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첫 면회시 자신들이 의료진의 말에 따라 병실을 나오지 않고, 윽박질러서라도 의료진을 닥달했더라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당시의 상황 이전에 있었다.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건 지질 영양제의 분주라는 관행이었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건, 미숙아들에게 지질 영양제를 주입해야 하는 그 '상황'이라고 다큐는 지적한다. 그리고 거기서 등장하는 건, 영유아 장염의 원인인 '로타 바이러스'이다. 대부분 경미한 증상에 그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는 신생아나, 미숙아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로타 바이러스, 그런데 당시 신생아들 아기들 16명 중 13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쌍둥이 중 한 명을 잃은 부모는 뒤늦게 자신의 아이가 '로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다른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로타 바이러스로 인해 장염에 걸린 아이들이 설사로 인해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공급되는 것이 지질 영양제이다. 목동 이대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퍼펙트 사건'이라 한다고 한다. 즉, 더러운 가운, 치킨 등을 신생아실에서 시켜먹는 감염에 무지한 환경, 의료 수가를 핑계로 하나의 주사제를 나누어 공급하는 '분주'의 관행, 그리고 지질 영양제와 같은 변질되기 쉬운 주사제를 상온에 오랜 시간 방치해 두는 불철저한 의료 행위, 그리고 현장에서 이탈한 의료진과 부족한 일손으로 인한 코드 블루 상황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대처', 이 모든 것들이 아귀처럼 맞물려 4명의 신생아들에게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귀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원인을 초래한 당사자들은, 의사도, 간호사도, 병원도, 의료계도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법적인 건 물론, 도덕적인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는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엑스레이 사진이 바뀌는 등 문제가 빈번했던 여전히 이대 목동 병원은 4년의 기한이 정해진 국제 의료 기관 평가 인증 병원이다. 의사는 책임 대신, 변호사를 통해 법적 책임을 피해갈 궁리만 한다. 의료계는 어떻게 우리 의사를! 이란 '특권'적 사고 방식에 사로 잡혀, 관행만을 핑계댄다. 아이들이 4 명이나 죽었지만,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단다. 심지어, 미숙아들은 잘 죽는다고, 세월호 부모들처럼 아이들 시체 장사를 한다고 '협잡'한다. 부모들은 말한다. 

“의사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의사들한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죠. ‘최선을 다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유가족들은

그 원인에 대해서 찾아갈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사망한 신생아 부모


최선을 다했다면, 아이들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했을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특권은 기세 등등하고, 책임은 멀다. 지각있는 의료계 인사들은 안타까워한다. '관행'이라는 편의를 제쳐두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대 목동 병원 사태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또 다시 이와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by meditator 2018.04.26 16:09

매주 월요일, 제 자리로 돌아온 mbc스페셜은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여 두 편의 특집을 마련하였다. 그 중 하나가 지난 월요일 방영한 끝나지 않은 세월호 학부모들의 이야기 <너를 보내고- 세월호 합창단의 노래>였다. 그리고 4월 23일,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현장의 이야기를 또 한 편 다룬다. 바로 그 바다의 목숨을 건 목격자였던 세월호 잠수사들의 이야기, <로그북 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이다.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 밥을 먹어야 하는 건지 아니 먹어도 되는 건지 잠을 자도 되는 건지 모를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무조건 시신을, 아니 생사를 확인해야 했다. -잠수사일기중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람들이 건물을 빠져나오기 위해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는 가운데 거슬러 건물을 올라가는 소방관의 모습이 담긴.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 무역 센터(wtc) 건물에 비행기로 추정되는 두 대의 검은 물체가 곧장 날아와 부딪쳤다. 건물은 연달아 폭발했고, 무너져내렸다. 이 사건으로 납치된 여행기 승객과 건물에 있던 사람들 등 3500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에는 구조 활동 중에 순직한 343 명의 소방관과 23명의 경찰이 있었다. 1차 폭격이 있은 이후 발빠르게 불을 끄기 위해 1번 빌딩에 들어간, 그리고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2번 빌딩에 들어간 건물이 붕괴된다는 무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소방관들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 재난 사고에서 발빠르게 움직인 '공권력'으로 인해 미국 국민들은 '국가는 위기에서 절대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확인했다. 

70일간의 로그북, 헌신의 시간 
재난의 현장에 제일 먼저 간 '공권력', 우리는 어땠을까? 4년 전 그날 바다에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발빠르게 뛰어든 건 민간 잠수사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불성설'이다. 국가 재난의 현장에, 무기력했거나, 사건을 은폐하려는 공권력과,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썼던 민간인들, '세월호'를 통해 국민들이 던진 질문, '이게 국가냐'라는 걸 현장에서 증명해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증명'의 기록은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희미해졌다. 그들은 '논란'의 주인공이 되어 조용히 사라졌다. 

mbc스페셜은 그 '사라진 기억'을, 하지만 끝나지 않은 '기억'의 봉인을 푼다. 잠수사들이 잠수를 하고 나서 남긴 기록, 잠수일지. 일명 로그북, 잠수했던 날짜, 장소, 시간, 입수지점, 수심, 기온, 특기 사항을 적은 이 기록들, 하지만 잠수사들은 차마 그 기록들을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큐는 70여 일간 잠수사들의 로그북을 기초로 하여, 세월호 현장, 가장 처절한 목격자였던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복원한다. 

다섯 구의 시신을 인도하고 올라오니 감독관 “사람이 더 있드나” “더 확인해봐야 알겠습니다.” 수고했고 실종자 가족이 물속에 상황을 듣고 싶어 하니 가서 얘기해 줘라.” 저 편에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실종자 가족이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충혈 된 애타는 눈빛을 보니 내 눈시울도 젖어온다.
어찌 얘기를 해야 될는지 - 잠수사의 일기 중

2014년 4월 세월호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전광근씨는 장비를 챙겨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천안함 인양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던 그는 현장에서의 잠수가 용이치 않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아이들의 아버지 황병주 씨, 해병대 출신의 한재명씨, 대학때부터 취미로 다이빙을 배운 백인탁 씨등 그저 자신의 '잠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으로 다수의 잠수사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현장은 '구조'라고 말하기도 무색하게 체계도, 장비도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잠수사들이 '의욕'만 가진 채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다. 사고 초기 잠수를 할 수 있었던 잠수사는 10명 정도 밖에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민간 잠수사들이 중심이 되어 유족들과 함께 수색 작업이 체계를 만들며 수색에 돌입하고. 잠수라는 작업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과정이다. 그래서 산업 현장 등에서 잠수사들은 하루 한번 잠수를 한다. 잠수를 하는 과정도 서서히 수압을 조절하며 내려갔다 조심스레 올라와 감압 탱크에 재빠르게 들어가야 하는 섬세한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잠수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오늘 수습한 희생자의 얼굴과 눈동자, 차디찬 하얀 손과 발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환영으로 비추어진다. " - 2014. 04. 26 잠수사 로그북 중

하지만 세월호 현장에서는 이 '원칙'을 지킬 수가 없었다. 참혹하게 뒤엉켜 있는 희생자들,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유족들, 그 현장의 목격자가 된 잠수부들은 하루 한번이라는 원칙이 무색하게 4번까지의 잠수를 감행했고, 수색이 어려운 세월호에서 하나의 시신이라도 더 올려오기 위해 보조 장치도 포기한 채 무리한 잠수를 감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잠수부들의 열의와 헌신에 대해 세상의 평가는 냉정했다. 초기와 달리 점차 성과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현장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고, 잠수부들의 헌신을 '돈'으로 비아냥거리는 시선마저 등장했다. 장기화된 수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료 잠수부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7월 10일 미수습자 11명을 남겨놓은 가운데, 해경은 잠수부와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이들의 철수를 결정했다. 

여전히 그 '바다'에 잠겨있는 잠수부들 
그렇게 세월호 수색에 참가했던 민간 잠수부들은 '불명예'스럽게 세월호 현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유족들만이 아니라, 그들 역시 여전히 그 '바다'에 있다. 차마 부모들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세월호 현장, 그 현장에서 오로지 한 명의 시신이라도 더 가족 품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위험을 무릎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던 잠수부들, 하지만 그 '무리했던' 여정이 그 이후 그들에게 고스란히 고통으로 돌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잠수사 일기 중

눈만 감으면 다시 그 바다에 있다고 했다. 차라리 눈 앞에 아이들이 보이면 괜찮다고 했다. 처음엔 아이들의 형체로, 그 다음에 '시신'의 냄새로 더듬어 수색을 했어야 했던 그 경험은, 이제 그들에게 암흑 속 막연한 공포의 기억으로 남았다. 불안 장애, 우울증, 수면 장애, 심지어 자살 충도에 시달리며, '세월호 이전의 나'를 잃어갔다. 누군가는 잠수사 일을 그만두었고, 늘상 화를 내는 등 성격이 변해 가족들을 걱정시킨다. 무리한 잠수로 신장병이 악화되어 투석을 하게 되었고,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한국이 싫어' 외국을 전전하기도 한다. 결국 잠수사들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을 만난 정혜신 박사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죽음 각인'이라는 병명으로 답한다. 죽음이 일상화된 현장 속에 놓여졌던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그 경계 너머로 자신을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그 말에 비로소 눈물을 터트리는 이들, 그들의 '트라우마'는 깊었다. 그리고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국가 재난 사태에 '의인'으로 참가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부채이다. 

9.11 테러로 순직한 소방관들은 'FNDY 343 NEVER FORGET'이란 문구로 새겨져 기억된다. 2005년부터는 소방관을 비롯한 일반인들이 이들이 올라갔던 쌍둥이 빌딩과 같은 110층 높이의 계단을 오르는 행사를 하며 '추모'의 정신을 이어간다. 우리는 어떨까? 그날, 그 바다에서 '국가'를 대신했던 민간 잠수사들. 민주당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민간 잠수사들을 '세월호 희생자 특별법'의 대상자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아직도 국회 계류 중이다. 세월호 4주기, 국가의 재난 현장에 발빠르게 달려왔던 잠수사는 말한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그곳에 가지 않을 거라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놓은 이들 민간 잠수사들에게 '국가'가 답해야 할 차례라고 다큐는 말한다. 
by meditator 2018.04.24 15:35

어쩌면 오늘 당신이 들른 가게에서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비닐 봉투에 넣어주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을 지도 모른다. 공짜로 챙긴 비닐 봉투라고. 지난 2013년에 편의점에서 비닐 봉투를 놓고 실랑이하다 아르바이트 생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비닐' 인심이 후하다. 마트에서 비닐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비닐 포장 유료가 시행됐지만, 그게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인지는 아일랜드의 20배, 핀란드의 100배에 달하는 1년에 211억장의 비닐 봉투를 쓰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 그대로 드러난다. 2015년 기준 연간 일인당 420개의 비닐을 사용하는 나라,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비닐의 여정에 대해 우리는 무지했다. 


지난 해 7월 중국이 갑작스레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중단을 발표하고, 그 여파로 비닐 수거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파장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저 분리수거라도 제대로 해서 버리면 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무한정 버렸던 비닐, 그 비닐의 여정을 다룬 한 편의 다큐가 있다. 그 다큐가 다룬 비닐의 여정은 나비의 날개짓처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버려왔던 비닐의 국가간 커넥션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살은 결국 중국 정부로 하여금 세계의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금지라는 거대한 토네이도를 몰고왔다. 



플라스틱 비닐의 여정, 그 종착지 중국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차이나>로 번역된 왕구량 감독의 다큐 원제는 <소료 왕국(塑料王國)>이다. 여기서 소료는 중국어로 플라스틱을 뜻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쉽게 포장재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은 그 원료가 플라스틱이다. 석유로 부터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가공 여부에 따라 여러가지로 만들어 진다. 그 중 비닐로 만들어 지는 건 열에 강한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에틸렌이다. 폴리 에틸렌은 땅에 매립해도 잘 썩지 않고, 소각할 경우 인체에 해로운 성분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재활용율도 26%에 불과하며, 처리 비용도 많이 든다. 

영화는 컨테이너가 적재된 배의 항해로 부터 시작된다. 여러 나라 들간의 수입과 수출, 그 물류의 상징인 컨테이너, 그 중 하나가 항구에서 내려져 중국 산둥성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건, 거대한 산, 페플라스틱, 비닐로 이루어진 첩첩의 산이다. 그리고 그곳에 컨네이너 안에 들어있던 폐비닐이 산 하나를 더한다. 

중국은 세계 폐플라스틱 비닐의 56%를 수입하는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 2016년에만 중국은 730만톤(31억 달러)의 쓰레기를 수입했다. 영국의 폐지 55%, 플라스틱 25%, 미국의 전체 쓰레기 중 78%는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이런 중국의 폐기물 수입이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중국은 이런 고체 폐기물을 수입하여 부족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미국에서 수입된 캔은 의류와 기계 제작용 금속이 되었고, 폐지는 포장재로 재활용되었다. 



영화는 바로 이런 쓰레기 수입 국가 중국의 현실을 그대로 지켜본다. 수입된 쓰레기가 도착한 산둥성의 쓰레기 산, 그곳은 쓰촨성에서 농사를 짓던 열 한 살 소녀 '이제'네의 집이다. 이제네 아버지는 그 쓰레기 수입 업자의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일당 7500원을 받으며 이제네 가족을 책임진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고용된 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이제 갓 열 살 남짓한 이제도, 이제의 동생도 모두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맨 손으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관절염으로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힘든 아버지가 선택한 쓰레기 재활용 업장의 일은, 아버지에겐 그저 농사일보다 조금 덜 몸이 고된 일로 여겨질 뿐이다. 병원 폐기물에서 부터, 온갖 오물이 범벅이 된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 더미는 이제네 가족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이제네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겨우 일당 7500원에, 때마다 술을 먹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느라 아이들 학교조차 보낼 혀편이 안되는 이제네 아이들은 보물창고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놀 거리를 찾고, 때론 배울 거리마저 찾으며 살아간다. 마치 농부가 자연에서 그 삶을 일궈내듯, 이제네 가족은 쓰레기 더미에서 가족의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그건 갑과 을의 처지라지만, 이제네 아빠를 고용한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비닐의 터전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
보통의 사람들처럼 쓰레기 더미를 삶의 터전으로 알고,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미래를 기약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 이들은 그들의 터전인 그 플라스틱 비닐 산이 가진 '함정'에 무지하다. '갑'인 사장은 해가 갈수록 시름시름 앓지만, 혹시라도 가장인 자신이 아파서 가족을 돌보지 못할까봐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제네 아버지의 고민은 하잘 것없는 월급으로 아이들 학교는 커녕, 고향조차 갈 수 없는 가난한 처지이지, 그들이 먹고 자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태울 때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버리고, 물고기가 배를 드러내고 죽어가는 폐비닐더미가 아니다. 

영화는 담담하게 비닐 더미가 밭이 되고, 논이 되기라도 하듯, 그곳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이제네와 수입업자인 사장네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가족의 안녕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그 폐비닐 자체가 자신들의 삶을 보장하는 '환금성 작물'일 뿐, 그곳이 자신들의, 자기 자식들의 삶을, 미래를 갉아먹을 늪과 같은 대상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런 모습이 지난 30년간 환경에 무지했던 중국, 그리고 그 무지한 국민들을 이용하여 쓰레기 산업으로 성장을 이룩해 온 중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왕구량 감독의 주제 의식은 영화의 개봉과 함께 중국 사회를 강타했고, 그 결과 중국은 2017년 세계 무역 기구에 '고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전히 관성적인 우리의 플라스틱 비닐 과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시간과 장소를 바꿀 뿐, 쉬이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그 쓰레기를 용광로처럼 집어 삼키던 중국이 더는 그 역할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자, 그건 곧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쓰레기를 외주했던 서구 및 우리나라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이런 중국의 조처에 영국은 25개년 계획을 통해 쓰레기 감소 계획을 세우고, 유럽 연합은 2018년까지 비닐 봉투의 80%를 감소하고자 한다. 즉, 자원 구조에 대한 근본적 제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는 충격적 오명도 잠시, 그 쓰레기 대란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중국이 '소화'해 주지 않는 쓰레기는 각 지자체에서 소화 불량이 되어, 비닐 수거 거부로 나타났다. 난항 끝에 다시 재개된 비닐 분리 수거, 그저 가져가지 않던 비닐을 다시 가져갔으니 이젠 한숨을 쉴 뿐이다. 마트에서 비닐봉투를 주지 않는다지만, 코너마다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는 비닐 포장재 롤은 여전하다. 

<플라스틱 차이나>에 대한 감상은 쓰레기로 고도 성장을 이룬 중국의 이면에 대한 혀를 차는 것이서는 안된다. 여전히 우리가 '과소비'하고 있는 플라스틱 비닐 사용에 대한 경각심의 계기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원 재활용에 대한 구조적 고민을 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이 되어야 한다.
by meditator 2018.04.20 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