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lo(욜로)'족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you only live once(한번 뿐인 인생), carpe diem(까르페디엠, 인생을 즐겨라)!! 2010년 래퍼 드레이크의 <the motto>속 노래 가사로 등장한 '욜로'는 어느덧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2,30대 젊은이들 삶의 모토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번뿐인 인생 즐기고 싶은데, 밥벌이가 발목을 잡네! 그래서 'tvn이 새로이 선보인 <주말엔 숲으로>라는 예능에 등장한 욜로족들은 기꺼이 그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밥벌이'의 고달픈 일상에서 뛰쳐나와 자신이 원하는 자연의 삶을 기꺼이 보여준다. 




<퇴사하겠습니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는 사회 
일본이라고 다를까, <퇴사하겠습니다>가 연신 베스트 셀러로 등극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리고 <sbs스페셜-퇴사하겠습니다>는 바로 그 책의 주인공 이나가키 에미코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였던 에미코 51살이 되던 해 스스로 직장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퇴직 이후의 삶을 걱정하기도 전에 쓴 <퇴사하겠습니다>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직장 대신 몰려드는 인터뷰니 강연 요청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녀를 베스트 셀러 작가로 만든 퇴사, 그게 하루 아침에 때려 치운 일이었을까? 아니 그것만이었다면 아마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에미코는 '퇴사'를 하기 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처음 '퇴사'의 고민이 시작된 건 잘 나가던 승진에서 밀려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이다. 밀려났다는 자괴감과 승진 등에서 배제된 공포감에 휩싸였던 그녀는 '퇴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대번에 사표를 내던진 대신, 그 이후로 10년의 시간을 두고, '회사적 인간'이었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신이 중심에 선 삶으로 재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에 준비가 되었을 때 그녀는 '퇴사'를 하였고, 그 경험을 책으로 써, 전 일본인이 공감하는 베스트 셀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쓴 책의 내용을 씨줄로, 우리 현실의 이야기로 다큐는 접근해 들어간다. 잘 나가는 it 기업의 매니저 김상기 씨, 그는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it기업 평균 퇴직 연령 48.2세, 그 멀지않은 은퇴의 시기를 자기 주도적으로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에 아내는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 양육비가 한 달에 150만원이나 든다며 펄쩍 뛴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는 '견디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상기씨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퇴사' 이후의 삶을 고려해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퇴사'를 결정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무엇일까? 아내가 아이들 교육비를 들고 나오듯이 경제적인 생활의 유지가 우선일 듯하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아니라도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그 무엇, 그리고 단지 먹고 사는 이상,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 그 무엇. 

제 2의 인생, 그 이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인생의 화두는
그것을 위해 다큐는 퇴직 이후 제 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난다. 한 명의 퇴직자, 그는 출판 관련 일을 하다 퇴직하여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퇴직 이후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질문에 그는 오히려 '먹고사니즘'의 필요충분 조건을 반문한다. 물론 또 다른 케이스도 있다. 회사를 다닐 때부터 차근차근 퇴사를 준비했던 다른 퇴직자의 경우, 현재 식당 두 개를 운영하며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 월급을 훨씬 넘는 수익을 내고 있다. 퇴직 이후 치킨집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자영업자 패망론의 세상에 그는 각자 준비하기 나름이라는 대안을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퇴직' = 자영업자의 삶, 혹은 성공적인 아이템이 화두가 되는 트렌드와 달리, 책방 주인아저씨가 된 출판사 퇴직자의 질문처럼, <퇴직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씨가 주장하는 건 '과연 당신이 먹고사는데 얼마가 필요한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책방을 경영하니 당연히 회사의 월급보다 버는 돈이 적어진 책방 주인, 하지만 그는 오히려 버는 돈에 따라 소비의 규모가 커져가는 우리의 삶을 되살펴 보게 되었다고 한다. 보다 큰 집,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교육비, 여행 등등. 이나가키 씨도 마찬가지다.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명함이 무색하게 그녀의 삶은 '청빈'하다 못해 궁상스럽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 버리는 음식을 최소화하기 위한 식재료, 최소한의 화장품, 목욕 정도는 동네 목욕탕 쿠폰으로 대신한 삶으로 인해 그녀는 오히려 줄지않는 통장의 돈을 고민할 정도다. 

이나가키는 장식장을 다 채우고도 넘쳤던 화장품을 버리는 대신, 그 자리를 그녀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채웠다. 애써 돈을 버는 대신, 그 시간에 그녀가 하고 싶은 동네 주민들을 위한 무료 요가 교실로 채우는 식이다. 그러면서 '소비'를 즐겼던 자신의 삶을 '소비하지 않아' 즐거운 삶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그처럼 김상기 씨도 퇴직을 준비해 본다. 자신의 집을 채웠던 '소비'의 부산물들을 치우는 것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과중한 빚을 안고 얻었던 전셋집 탈출을 도모하며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정병수 씨네. 극심한 야근과 출장으로 몸에 이상이 왔던 엔지니어 정병수 씨는 무조건 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퇴직금이 떨어질 때까지 여해을 하고 양평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 과정에서 생겨난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직장으로 돌아갔단다.

다시 직장으로? 하지만 정병수 씨의 재직장행은 이전의 직장 생활과는 다르다. 직장에 목을 매고 승진과 성공에 자신을 달리게 했다면, 이제 정병수 씨의 직장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녕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회사를 위해 일하고 남는 시간에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보이는 것은 똑같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라 해도 정병수 씨는 달라져 있다. 




결국 다큐가 돌고 돌아 찾아낸 결론은 '퇴사'를 해라가 아니다. '욜로'족의 시대, 어차피 피라미드 식의 조직에서 살아남아 생존하는 자의 숫자는 정해진 레이스에 놓인 회사원들이, 그 성공과 승진의 레이스에서 '행복해지는' 방식에 대한 방법 모색이다. 자신을 회사에 일치하는 대신, 회사적 동물이 되는 대신, 자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 굳이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삶을 달리 살 수 있다는 제안이다. 결국 퇴사를 준비했던 김상기 씨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게임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초심을 살려낸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애를 상기한다. 그래서 그는 퇴직을 하는 대신, 기꺼이 회사에 남기를 택한다. 이나가키 씨의 <퇴사하겠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힘들어, 때려쳐가 아니라, 행복한 직장 생활과, 인생 1막의 졸업으로서의 퇴사다. 그리고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소비'하면서 살아왔던 삶의 반추이다. 결국 조직과 사회에 넘겼던 자기 주도권의 수복이다. 

<퇴직하겠습니다>를 통해 다큐가 제안하고 싶은 건, 성공 중심 사회, 조직 중심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고 상실되어 가는 '개인'의 복구이다. 그리고 이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몸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회사와 더불어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사회, 조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일체화할 수 없는 사회, 그 속에서 등장하는 해법은 결국 '한번 뿐인 내 인생'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안긴 '화려한 성취와 소비'의 삶에 대한 질문이다. 그건 회사에 있느냐, 퇴직을 하느냐의 방식이 아니라, 결국 삶의 스타일과 방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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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12 14:56

tvn의 월화 드라마 <써클> 속에 등장한 대한민국 2030년은 이른바 스마트 도시와 일반 지구로 지역이 나뉘어져 있다. 말 그대로 '스마트'한 외관을 자랑하는 첨단 도시와, 마치 철거 예정지처럼 허름한 일반 지구를 가르는 건 이 '번드르르한' 건물들 외에 결정적으로 '공기'다. 청량한 하늘을 자랑하는 스마트 지구와 달리, 상시적으로 뿌연 미세 먼지에 휘감싸인 일반 지구. 입을 막고 연방 콜록거리는 일반 지구를 보며, 어휴, 저기서 어떻게 살아? 하게 되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바로 어느덧 '미세 먼지 주의보'에도 무감각해져가는 그러나 애국가에도 나와있는 맑고 청량한 하늘이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청량한 하늘'을 잃은 현실을 4일 <sbs스페셜-공기의 종말>이 다룬다.




에어 노마드 족이 된 사람들
아토피가 심했던 혜성이네는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의 아토피가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양평으로 이사를 오기만 했는데도 호전된 걸 보면서 새삼 공기 오염에 대해 실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공기 난민, 에어 노마드 족이다. 한 술 더 떠, 제주도로 간 가족도 있다. 자라나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졸지에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이사를 가지 못한다면 '극성'이라도 부려야 한다. 공기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민감한 유치원, 바깥 활동이 잡힌 날, 하필이면 미세 먼지가 심해졌다.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아이들이 향한 곳은 실내 박물관, 바깥 놀이를 기대했던 아이는 풀이 죽었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집이라고 다를까. 도시에 사는 엄마들은 바쁘다. 아이들 기관지에 좋은 온갖 음식을 해먹이라, 자동차용 필터를 환풍기에 달아 집안 공기를 정화시키랴, 창문 곳곳에 강력한 필터를 메우랴, 혹시라도 집안에 침입한 미세 먼지를 없애느라 쓸고 닦고. '전쟁'이 따로없다.

정부나 기상청의 발표를 믿지 못해 스스로 미세 먼지를 측정하고 이웃이나 동호회 회원들과 공유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공기 좋아 이사한다는 제주도도 형편이 예전만 못하다. 한라산이 맑게 보이는 날이 줄었다. 지난 5월 24일 뜻을 모은 91명의 시민들은 환경 단체와 함께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에 환경 오염 소송을 제기했다. 



미세 먼지, 당신 집 마당의 독가스 
극성이라고? 오바라고? 미세 먼지를 그냥 먼지가 조금 더 '미세'한 수준이라고 얕봐서는 안된다. 

중국 한 tv의 여성 아나운서, 이 아나운서는 취재를 위해 중국 곳곳의 미세 먼지가 심한 곳을 다녔었다. 취재를 마치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 그러나 여성의 아이는 이미 태아의 상태에서 종양을 가지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게 된 여성 아나운서의 아이. 이 아나운서는 자신의 아이에게 생겨난 종양이 '미세 먼지' 때문이라 말한다. 

또 하나의 사례, 중국 베이징 병원의 전도유망했던 소아 심장 전문의. 공기 오염이 심한 곳의 아이들을 수술하며 아이들 폐에 생긴 회색 점들을 보며 의아했던 그가, 정작 가족력도 없는데 '폐암'에 걸리고 말았다. 자신의 폐 중 겨우 1/6을 유지한 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폐암이 베이징의 공기 오염 때문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설사 회복이 되더라도,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다시는 베이징에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한다.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는 아황산 가스, 질소, 납, 오존, 일산화 탄소 등 유독성 성분을 포함한 대기 오염 물질이다. 대부분의 오염된 물질들이 코 등을 통과하며 걸러지는 것과 달리, 10 이하의 오염 물질들은 걸러지지 않은 채 폐 등 우리 몸에 고스란히 축적되며 각종 신체적 병변의 원인이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식, 아토피, 각종 피부병, 호흡기 질환의 수준을 넘어 미세 먼지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덴마크 암학회 연구센터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상승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은 18%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기사망위험도 커졌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롭 비렌 박사팀이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증가할 때마다 조기사망 확률이 7%씩 증가하였다.

무엇보다 이런 미세 먼지에 취약한 계층은 폐기능이 약한 노인과 아이들이다. 특히 어른에 비해 호흡 수가 잦은 아이들의 경우 더 치명적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할 때 호흡기 질환 입원환자 수는 1.06% 늘었다. 노인층은 더욱 취약하다. 지름이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협심증,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암학회의 자료에서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 증가하면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자의 사망률이 1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이화영 , <미세 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 중)  



다큐가 짚고 있는 건 정부의 안이한 대처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6년 미세 먼지 평균 일수는 15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낀 미세 먼지의 현실적 일수는 2016년 한 지자체가 발표한 미세먼지 일수 119일에 가깝다. 무엇보다 정부의 미세 먼지 기준이 who의 기준에 비해 너무 높은 '안이한' 현실이다. 거기에 2016년 1~3월의 초미세먼지 나쁨 2일에 비해, 7배가 늘어난 올해 14일에서 보여지는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고 다큐는 짚는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 미세 먼지의 주범은 '중국'이다. 음모론이 작동될 만큼, 중국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공단들, 그들이  뿜어내는 대기 오염 물질은 '편성풍'을 타고 우리의 미세먼지가 된다. 그러기에 환경 단체와 시민들의 소송 대상에 중국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의 자세에 아쉬움을 전하는 것에서 그친다. 

하지만, 중국만이 문제일까? 새 정부 들어 미세 먼지 대책을 발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노후한 석탄 화력 발전소의 운행을 중지했다. 하지만, 전체 발전 비율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는 몇몇 화력 발전소의 중단은 미세 먼지 대책의 첫 발로써는 상징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심각하다. 중국의 핑계만을 대기엔 현재 우리나라 화력 발전소의 증가율은 심각하다. 

3월 29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기오염 정보사이트 에어비쥬얼의 정보를 인용해, 3월 말 서울은, 중국 베이징과 인도의 델리와 함께 세계 3대 대기오염 도시였으며,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최악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OECD보고서 내용도 인용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15년,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를 제기하며 초미세 먼지를 뿜어내는 석탄 화력 발전소로 인해 매년 1100명이 조기사망하고 있으며 앞으로, 조기사망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5년까지 모든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영국, 심지어 중국도 최근, 백사 기(104기)의 화력 발전소 신규 계획을 취소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016년 2월 기준 총 오십삼기의 화력발전소는 2030년엔 칠십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그 결과가 우려되고 있다, (4,14, ebs  뉴스 중) 

또한 정부가 밝히고 있는 2030년 경차 운행 중지 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리를 메우는 경차들의 행렬 또한 미세먼지의 또 다른 주범이다. 그런 면에서 <공기의 종말>은 미세먼지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을 조명한 것에는  의의가 있지만, 막연히 '중국'이 주범이단 식의 원인이나 대처 방식에 있어서는 '주먹구구식'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 정부가 노후 화력 발전소 중지나 경차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촘촘한 대책이었다면 심각성의 경고와 함께 프로그램의 의의가 더 살았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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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05 15:09

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그 기대에 걸맞게 ebs 다큐 프라임은 새 시대에 시급하게 해야 할 교육적 과제로 '대학 입시'를 들고 나선다. 바로 지난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6부작에 걸쳐 방영되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그것이다. 


왜 대학 입시였을까? 
<1부; 학생부의 두께>, <2부; 복잡성의 함정>,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4부; 진짜 인재, 가짜 인재>, <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6부;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를 통해 <ebs 다큐 프라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대학 입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니라, 이미 고착화된 대한민국의 계층 고착화와 그나마 있는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희망없는 닫힌 통과 의례라는 것이다. 즉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격차 세습'을 통해 '꿈'과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기에 새 정부가 가장 앞서서 이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큐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몇 가지 사례,
그 첫 번 째, 장관 후보자들 몇몇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위장 전입',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바는 무엇일까? 자식 교육을 위한 '생계형' 위장 전입이었다는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두 번 째, 글을 쓰는 기자의 자녀들은 경기도 한 도시의 일반고 출신들이다. 그 도시의 대표적 명문고라 자부하던 고등학교, 하지만 학교의 위상은 해를 거듭할 수록 초라해져만 간다. 한때는 가난한 도시에서 '개천에서 용'을 만들어 내던 전설은 이제는 아이들이 벌써 중학교만 들어가도 신도시로 '전입'하고, 그나마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 좀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은 '과학고, 외고, 자사고'로 이동하고, 남은(?) 아이들이 진학하다 보니, 제 아무리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힘을 실어주어도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 역시 갈수록 저하되는 중이고 선생님들의 의욕 역시 마찬가지라 전해진다. 



교육 불평등의 현실
이런 극과 극의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대 입학생에 대한 통계 조사를 통해 다큐는 그 진실에 접근해 들어간다.(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서울대 입학생 중 자사고, 특목고는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비율로만 보면, 일반고와 자사고, 특목고는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통계의 장난이 있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전국 수능 응시생 비율 중 자사고, 특목고의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즉 90 대 10의 싸움에서 결과가 반반으로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부 잘 하는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이 서울대 가는 걸 가지고 무슨 이의를 제기하냐고? 그렇다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자사고와 특목고에는 어떤 학생들이 갈까? 학생들 부모님의 직업의 차이를 살펴보면 그 '이의'의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감지된다. 



아래 표에서 보여지듯이 상위층 비율이 외고와 일반고의 경우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자사고, 특목고의 편중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의 대비에서 서울, 경기, 그 중에서도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한 교육 특구의 학생 층에 '편중'된 결과를 보인다. 지방의 경우 설사 특목고라 하더라도 주소지는 그 지방이 아닌 학생들인 경우가 빈번하다. 이 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건, 서울대를 대표적 사례로 했을 때, 서울에 사는 돈 많은 부모들의 자녀들이 주로 서울대에 진학한다. 전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소득 1,2분위의 학생들 중 이른바 상위권이라 할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0%' 남짓하다. 더 이상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아니다. 

꿈의 사다리를 걷어찬 대학 입시 
왜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될 수 없을까? 공부만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뭘 잘 모르는 사람'이다. 

2019년 대학 입시 요강, 수시 모집을 통해 정원의 76%를 선발, 정시 모집 인원이 그만큼 줄었다. 수시 모집 중 학생주 전형 비중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학생부 교과 비중이 늘었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도 전체 모집 인원의 24.3%로 늘었다. 논술 고사 대학별 모집 인원은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서울 소재 주요 대학에서 논술은 주요 전형이다. 

자, 만약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 전형 중 당신의 자녀에게 맞는 전형을 고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몇 줄의 글로 현재의 대학 입시를 설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 단어의 행간, 행간에 숨어있는 수많은 전형, 현재 대학을 가는 전형 방법은 실제 7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2부; 복잡성의 함정, 1부; 학생부의 두께)



그래서 실제 설문을 해보면 대다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대학 입시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이 바로 '다양성'을 핑계로 세분화된 대입 전형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복잡성의 미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이른바 학생부 전형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학적부, 생활 기록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31번의 변화를 거쳐온 학생부. 2017년 현재 진로 탐색 과정을 담은 학생부는 총 24장이 기록 가능한 방대한 '자료'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문제다. 학생부를 보여주자, 선배들은 '그 엄청난 양에 놀라는 반면, 너무 주관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외국의 교육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고, 모호하며, 학생에 대해 결정적으로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 보여주기 식'이라 평가한다. 외국의 '수치화'한 학생부와 너무 큰 차이다. 


하지만 이 학생부로 인해 학생들의 희미가 엇갈린다. 실제 지방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부 조작으로 물의를 빚었다. 등급에 따라 페이지 수가 달라지는 학생부, 등급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각종 '몰아주기 혜택'. 하지만, 오히려 조작의 당사자인 선생님은 반발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방 일반고 학생들은 그나마 '대학' 갈 기회조차 없다고.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반문은 사실이다.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재력있는 학부모'들은 학생부 관리를 위해 각종 컨설팅 업체로 달려간다. 아니, 이미 '정보전'이 된 대학 입시 강남 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6학년 무렵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완료한다는 상황에서 정보와 재력을 가진 부모들의 아이들이 일찌기 교육의 기회를 선점하고 길러져 자사고, 특목고 등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관리된' 아이들과 고등학교 자녀들의 전형 방법조차 먹고 사느라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모, 기백만원의 학비는 물론 학생부를 채울 각종 스펙을 채울 재력이 든든한 부모와 학비도 빠듯한 학부모의 경쟁은 이미 달리기도 전에 결과가 나온 게임이다.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강남에서 떠도는 웃픈 교육의 지표, 이른바 텐텐 학습법(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학습 방식), 아이가 잠시 힘들어도 '하이웨이'에서 내려서서는 안된다는 강박적 '모정', 아이대신 학생부 봉사 활동을 채워주는 열혈 모정은 우리 사회 '관리 가족'의 그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정말 '인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카이스트의 이 그래프는 왜곡된 교육의 실체를 드러낸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선행 학습이 부족한 2학년까지는 고전하지만 그 이후에는 숨겨져 있는 잠재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관리'되어진 우리의 학생들에게선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기쁨이란 어불성설이다. '목표 주사'를 맞고 버텨온 학생들은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되어있다. 

걷어차진 사다리를 돌려주어야 나라가 살고, 아이들이 산다
예일대 윌리엄 데러저위츠 교수는 이런 학생들의 미래를 그의 저서 <똑똑한 양떼들>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모들의 정보와 돈으로 명문대에 들어간 엘리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고민이 없는 것은 물론, 부모들이 제시한 방향으로만 자신의 미래를 반응하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그들은 이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서 '늘 안전한' 선택만을 하는 '안이하고 무능력한 지배 그룹'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안이하고 무능한 지배 그룹'이 미래를 책임 질 수 있을까? 미래 학자 토마스 프레이가가 주장하는 바 20년대 대학의 상당수가 문을 닫을 '탄력적이며 유연하며 투지가 넘치는' 미래 인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디자인 베이비'들은 미래를 책임질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다리'에서 걷어차여진 대다수의 학생들이다. 일본의 교육 학자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일본 사회'를 이미 그의 책 '격차 세습'을 통해 경고한 바 있다. '하류의 자녀는 하류'가 되는 사회, 1억 명이 빈곤 계층인 사회, 이른바 버는 돈 없이 빠찡꼬 게임으로 딴 돈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즐기는 것으로 연명하는 식의 '현재를 즐겁게 지내자는 '니트족'들은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자구책으로 드러나는 한 예이다. 특히 '개천에서 난 용'들의 '인적 자본'에 의해 급격한 성장 주도의 경제를 근간으로 해온 대한민국에서 '격차 세습'으로 인한 계층 고착화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EBS의 <대학 입시의 진실>은 최근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학생부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시 그 자체를 낱낱이 해부하여 들어간다. 그리고 통계의 장난 속에 숨겨져 있는 결국 가진 자, 아는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계층 세습'의 도구가 되는 대학 입시의 민낯을 세세하게 밝힌다. 



문제 제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방향도 제시한다. 단순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들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그 '복잡'한 대학 입시 정책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돈과 정보에 의해 '선점'하는 그 방식을 뜯어 고쳐서, '열심히 공부하면' 갈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 

6부작에 걸쳐 방영된 <다큐 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은 현행 대학 입시 제도의 모순과 그 원인을 심층깊게 진단했다. 그리고 그 대안까지 제시했다, 새 정부를 맞이한 '교육 방송'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교육 정책처럼, 꼭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변화되는 교육 정책 속에서도 여전히 상위를 독점하고 있는 강남 8학군처럼 상위 계층의 카멜레온보다 더 빠른 적응력을 따라잡을 지도 문제다. 무엇보다 부모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지 않으면 교육 정책은 실패한다는 학자의 말처럼 '내 아이는'하면 사회 지도층이라도 위장 전입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 자녀애의 욕망을 과연 어떻게 순치시켜 나갈지도 미지수다. 그러기에 총체적인 진단이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더 의미가 있다. 공은 던져졌다. 과연 이 '로드맵'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지는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그건 일자수 몇 개 이상의 진정한 '꿈의 사다리'를 마련해 주는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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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6.01 16:30

1977년 출간된 고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수필집 중 한 꼭지에 해당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마라톤 대회로 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손을 모아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선두 그룹이 지나고, 마라톤 대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조차 관심이 흩어질 무렵 여전한 교통 통제에 짜증이 나던 참에 푸른 색 옷의 마라토너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이 좀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작가,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서 '정직한 고통'을 본 순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차도로 뛰어들어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작가의 독려에 힘입어 거리의 시민들도. 


지금이라면 다를까? 처음 이 책을 접했던 70년대 후반, 이 글은 충격적이었다. 꼴찌는 말 그대로 꼴찌였던 세상 속에서 '낙오하지 않는 이'를 향한 격려의 박수라니! 그건 그저 한 편의 수필이 아니라, 성장 지상주의 대한민국을 울리는 경종이었다. 그리고 이제 5월 28일 sbs스페셜은 어쩌면 그 시절 박완서 작가처럼 이번 대선에서 꼴찌를 한 심상정을 복기한다. 



찌 심상정, 하지만 여전한 심블리
'어대문'의 선거판이었다. '촛불'의 후원을 얻은 '어대문'에 도전한 후보들은 이제 '정계 은퇴'가 운운될만큼 역부족의 선거판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 중반 토론 과정에서 그래도 우리 편 '어대문'에 흠집을 내는데 동조했다는 이유로 당원들을 잃는 해프닝을 겪으면서도 완주를 했다. 아쉽게도 원하던 10%를 넘기는 커녕 6.2%라는 여전히 넘기 힘든 진보 세력의 현실을 경험했다. 그런데 왜 다큐는 심상정을 주목할까?

시작은 이제는 돌아와 주방 앞에 선 서툰 주부 심상정으로 시작한다. 가사 일을 14년 째 남편에게 맡기고 바깥 사람이 된 심상정, 모처럼 돌아와 아들이 원하는 '닭볶음탕'을 하려하는데, 도무지 부엌이 낯설다. 장보러 간 마트에서는 여전히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 낙선한 대통령 후보 맞는지? 인기가 좋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돌 스타급이다. 거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6.2%의 득표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놈의 인기'말이다. 

바로 그 점이다.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선거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있었다. 바로 왜 유승민 후보가 바른 정당인 것과, 또 한 사람 심상정 후보가 정의당이라는 것이다. 선거 과정 후보자들의 토론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 야의 편견없이 보자면 두 사람이 제일 잘 했다. 말이 앞뒤가 맞았고, 자신의 논리가 있었고,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졌었다. 사전 선거 지지율에서 심상정 후보는 11.4%의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 선거도 '토론'과 '결과'는 별 개의 것이었다. 물론 '토론'을 못해서 망한 후보도 있다. 하지만 '토론'을 잘 해서 잘 된 후보도 없다. 

하지만 또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정의당이 바른 정당에도 못미친 6.2%의 득표를 얻었지만 역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진보 세력 후보 중 가장 다수의 득표를 했다. 14대 대선 당시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은 0.9%를,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0%를 득표했다. 그에 비하면 심상정 후보의 득표수는 무려 두 배나 는 것이다. 

득표수만이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3억의 빛이 무색하게 선거가 끝나고 정의당에는 성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못미 심상정' 등 비록 선거에서 심상정을 지지하지는 못했지만 심상정의 완주를 지지하는 성금들이었다. 2억 8천만원이 모였다. 선거에 지면 '정계 은퇴'하라는 정치판에서 낙선 후보에게 성금이라니!



심상정에 대해 지지의 의미
그렇게 선거에서 지고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심상정 후보에게는 별명도 많다. 심블리에서부터 2초 김고은, 심크러쉬까지. 그 별명의 면면에서도 느껴지듯이 '트렌디함'이 심상정과 함께 한다. 이런 '트렌디한 별명'에 대해 정치학자는 물론 별명의 시작은 정의당 홍보팀이었을지 모르나, 그 별명이 '대중'적이 되는 과정에는 '대중의 적극적인 호응'이 뒤따랐을 것이라 분석한다. 일찌기 국회에서부터 '적폐'의 수구 세력에게는 '걸크러쉬'하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홍보 영상을 비롯한 평소의 그 모습에서는 2초 김고은을 수긍하게 할 만큼 '심블리'한 심상정. 아마도 본인이 우기지 않아도 2초 김고은이란 별명이 '욕'이나 '어불성설'이 아닌 웃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든 건, 심상정이 선거 기간 보인 '노력'의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똑같이 대선 토론 과정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인 두 사람이지만, 유승민과 심상정이 보인 토론의 결은 달랐다. 일찌기 유시민 작가와 100분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경제학자이자 관료 출신의 유승민 후보가 논리적인 토론가였다면, 심상정 후보는 정의당 후보로서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살아온 삶이 일치된 실천가로서의 그 모습에 더 힘이 실린다. 선거 과정 여성과 관련한 실언을 한 홍준표 후보에게 따끔하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이나, 굳이 나설 필요없는 민주당 후보의 대북 송금 문제를 나서서 언젯적 대북 송금이냐며 그 자리에 있는 모두 후보들을 뜨끔하게 하는 장면은 홍준표 후보와는 또 다른 의미로 토론을 보는 이들을 속시원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약자로서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그녀의 일관된 입장은 그저 군소 정당으로서의 '선거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 '프로파간다'를 넘어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속시원한 이야기를 해준 사람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경기 고양 갑의 심상정 후보와 경남 창원 성산 노회찬 후보를 제외하고는 한 자리 수의 지지율을 넘지 못했다. 심상정이라는 개인이 보인 성과가 정의당, 혹은 진보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명망성의 한계를 넘어, 그 지지 속에 숨겨진 의미를 짚고자 한다. 심상정의 입을 통해,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통해 그녀가 주장하고자 하는 '노동'이 제 목소리를 내고, 제대로 대접을 받는 사회에 대한 여전한 열망이 6.2%의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심상정 개인에 대한 열렬한, 그리고 여젼한 인기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상회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는 지금, 그럼에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심상정의 지지율에 담겨있는 간절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제 목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sbs스페셜>이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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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29 14:41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대한민국, 당연히 우리의 문맹률이 0%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OECD 가입국 문서 해독 능력 비교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전 국민의 75% 이상이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일상 문서 해독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2014, 3, 7 국민 일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글을 읽을 수는 있을 정도인데, 65세 이상 노인 연령 층으로 가면 상태는 더 심각해 진다. 65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문맹률은 절반에 가깝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이 30%에나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 어르신들의 '봉건적 사고'의 잔재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기회조차 놓친 '어르신들 문맹'의 소산일 지도 모를 일이다. 




시집 세 편의 어엿한 시인, 칠곡군 할머니들
그래서 다수의 지방 자치 단체는 고령화 시대 이런 심각한 어르신들의 문맹률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인 복지 회관, 마을 회관, 경로당을 중심으로 한글 인문학 수업을 늘려가고 있다. 그런 인문학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글'을 배우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작품'으로 빛을 발한 기적의 사례가 있다. 바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다. 

대구와 구미 사이의, 유명 농산물도, 유명 관광지도 없는 이곳,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그 지명조차 낯선 이곳 22개 마을의 할머니들은 2013년부터 '문해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를 통해 할머니들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볼 수 있게 되었고, 꾸깃꾸깃한 그 옛날 자신에게 보내온 연애 편지에서부터, 자식들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할머니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한글'이 어렵다는 할머니들, 그러나 할머니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작품'을 창작해 냈다. 사투리로, 맞춤법이 틀린 한글, 하지만 그 속에 인생이 담긴 '詩'가 바로 그것이다. 

시가 뭐고?      소화자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 시간이라 일도 놓고 헛둥지둥 나왔는데 시를 쓰라하네/ 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2015년 그런 할머니들의 작품이 <시가 뭐고?>로 출간되었다. 출판 기념회도 했고, 북콘서트도 했다. 그 여세를 몰아 1년 뒤 119명 할머니들의 <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가 연이어 발표되었고, 81명 할머니들의 87편의 시가 <작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가 지난 3월 23일 세 번 째로 출간되었다. 바로 이런 이제는 어엿한 세번 째 시집을 가진 시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SBS스페셜이 다룬다. 

다큐의 시작은 '詩에 대한 질문이다. 광화문 거리에 만들어진 간이 천막, 들른 사람들은 자기 앞에 펼쳐진 백지에 시를 쓰라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시, 그건 너무 어렵단다. 화면이 바뀌고, 한낮의 볕이 바른 양지, 칠곡군 할머니들이 앉아계시고, 시를 묻자, 할머니들 입에서 흥타령처럼 시가 흘러나온다. 쉽게 쓰여진, 아니 불려진 시?



여전히 한글 맞춤법이 너무 어렵다시는 할머니들, 그런데 시는 참 술술 잘도 나온다. 타고난 시인이셨나? 하지만 할머니들이 쓴 시를 보면 느껴진다. 그들의 지난 80년 삶이 그대로 시가 되어 흘러나왔음을. 자신을 표현할 길 없던 그 몇 십년의 세월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 물꼬가 터지고, 그 인생인 '시'라는 매개를 얻어 응축되어 표현된다. 

영감 / 칠곡시인 조덕자 할머니
젊은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주막에 있는 시간이 드 만낫다
호호백발 할배 대니 갈 곳이 없어 집박계 모르네 이재사 할마이가 제일 좋다 하네


철이 들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어려운 살림살이 허리 한번 못 펴보고 산 세월, 이제 남편이 있어도 바람처럼 돌아다닐 여력도 없이 병든 동반자, 자식들 다 여의고 이제사 여유가 생긴 할머니들은 '신이 나서', 늦게 분 '시'바람에 밥수저만 놓으면 마을 회관으로 달려가신다


인생, 시가 되다,
할머니들이 쓰는 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詩>이다. 경기도 인근의 작은 도시에 사는 미자 할머니, 그 나이에도 여전히 중학생인 손자를 부양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못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지만, 화사한 색감의 옷과 머리의 꽃장식처럼 소녀 감성을 잃지 않았다. 그런 미자 할머니가 '시' 강좌를 듣고,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며, 영화는 미자 할머니가 만난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목도한 아름답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의 시이야기란 이창동 감독의 술회처럼, 영화 속 미자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몸으로 시대를 울리는 시가 되는 슬픈 마무리를 한다. 

작약꽃 / 칠곡시인 이쇠건 할머니
자야자야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올해도 여전히 연분홍 작약이 아름답게 피였네
나는 나는 시집온 지 육십 오년 되었구나 
그래서 내 나이는 팔십육세란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옃다네

하지만 그렇게 시대를, 자신이 결국 눈감아버릴 수 없는 삶을 '시'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던 영화와 달리, 할매 詩트콤 속 할머니들의 삶은 마치 온갖 세월의 풍파를 겪고 의연해진 거목과도 같다. 잦은 바람 따윈 거뜬히 품어 버리는. 젊어 주막을 들락거리는 남편도, 농삿일보다 바깥일에 더 정신 팔렸던 남정네도,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자식도, 삶은 고난했지만, 그 고난한 삶을 결코 한 시도 허투루 살지 않은, 온 몸으로 생을 짊어온 낙천성과 여유로움, 그리고 인생에 대해 그 어떤 철학자도 따라갈 수 없는 해탈이 이 칠곡 할머니들의 시엔 담겨있다. 그런 할머니들의 시처럼, 다큐 역시 詩트콤이라며 그런 늙었지만 여유로운 노년의 삶을 밝게 그려내려 애쓴다. 

동네 청년이랑 몰래 동구밖 나무 아래서 연애를 하던 갈래머리 소녀는 이제 자식들 거둬먹이려 농삿일을 하며 한 평생을 보내느라 나무 막대기처럼 굵직해진 손으로, 그럼에도 여전히 놓치지 않은 사랑을 노래한다. 먼저 보낸 자식의 무덤 앞에서 허물어지는 엄마는 하지만 여전히 건사해야 할 식구들은 물론 외지인에게 조차 밥 한끼를 걱정하며 미소를 보낸다. 어쩌면 할머니들이 이룬 기적은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되돌아 보면 한 줄의 시로 마치기엔 '고생'보따리였던 인생,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그 '신산스러운' 삶의 무게 대신, 또박또박 시랑 씨름하는 열정으로 오늘을 채워간다. 할머니들의 삶은 과거형이 아니라, 네 번 째 시집을 기대하기에 충분할 현재, 혹은 미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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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22 16:10

mbc 스페셜은 해마다 5월이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휴먼 다큐 사랑>이라는 특집 시리즈를 방영해 왔다. 2006년 시한부 삶을 사는 영란씨와 그녀의 1분 대기조였던 남편 창원씨의 순애보로 시작된 시리즈, 2007년 <엄지 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2009년 <풀빵 엄마>, 2011년 <진실이 엄마> 등을 통해 2016년까지 45편의 다큐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2006년에서 이제 2016년, 그리고 올해 2017년 해마다 같은 이름으로 돌아온 <휴먼 다큐 사랑>이지만 해를 거듭하며 이 다큐를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며 다른 감동과, 다른 질문을 던진다. 두 편에 걸쳐 방영되었던 <진실이 엄마>를 통해 고 최진실 씨의 환희와 준희는 아이에서 사춘기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너는 내 운명>의 1분 대기조였던 창원씨는 이제 홀로 아내를 그리며 살아간다. 2009년에는 로봇 다리 세진이를 통해 '장애우'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2014년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삼혜원에서 생활하는 듬직이를 통해 '사랑'과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짚었다. 2015년에는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2015년의 사랑의 의미를 묻고, 역시나 같은 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일상을 통해 더 큰 가족으로서의 국가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201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 가족의 그늘을 <러브 미 텐더>를 통해, 탈북자의 문제를 <내딸 미향이> 등으로 '가족'에 대한 질문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간다. 그 해의 <휴먼 다큐 사랑>을 보면 그 시대 우리 사회 '가족'의 정의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인지할 수 있게 되듯, 지난 10여년간 <휴먼 다큐 사랑>은 우리 사회 가족의 바로 미터로 자리 매김해 왔다.



고아 수출국의 민낯, 신성혁이 된 아담 크랩서 
그렇다면 이제 2017년에 찾아온 <휴먼 다큐 사랑>에서 보여진 이 시대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나의 이름은 신성혁>이다. 5월 8일, 15일 2부에 걸쳐 방영된 이 다큐는 '고아 수출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밝힌다. 

고아 수출국, 몇 십년전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단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무려 1998년까지 38년간 해외 입양 1위의 국가였다. 심지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고아 수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로 '미국'으로의 고아 수출이 대부분이었다. 80년에서부터 98년까지의 미국 이민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전체 고아 입양 대상자 중 한국은 36.8%, 즉 미국 고아 입양자 세 명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간 아이들은 다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되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가족의 달 첫 번째 휴먼 다큐 사랑이 밝힌다. 

그의 이름은 신성혁,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말로 하는 것이 어눌하다. 오히려 40년동안 써온 아담 크랩서란 이름이 입에 익다. 당연히 그의 첫 번째 언어는 영어다. 그러나 1부에서 만난 그는 이민국의 재판 과정에 있다. 심지어 결국 그 재판에서 져서 수용소에서 건강을 잃어가며 하루 하루 한국으로의 송환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십년 전 그의 어머니는 침을 잘못맞아 못쓰는 다리를 끌고 집을 나간 남편 대신 두 아이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기만 하면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꿈의 나라 미국으로 두 아이를 생이별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의 미국 생활은 지하실에서 숟가락이나 벨트로 맞는 학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그 학대조차도 파양으로 인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아이들을 못박는 기계로 쏘며 13명의 아이들을 더 심하게 학대한 새 부모로의 이전이었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집을 찾아올 때까지.

하지만 학대의 끝은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모라고 호의적으로 증언을 했던 그를 양부모는 거리로 내쫓았다. 16살 어린 나이에 쓰레기통에서 남이 버린 버거를 줏어 먹으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입양 당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성경책등을 가지러 몰래 양부모의 집에 들어갔다 신고되는 바람에 25개월의 교도소 생활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 '범죄'는 그를 '추방'할 유효한 조건이 되었다. 

왜 미국에서 십여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는 미국인이 될 수 없었을까? 그건 바로 '고아 수출'에만 연연한 채, 그들의 권리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우리 정부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고아'만 수출했지, 그들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권한에는 눈을 감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온 한국의 고아들은 18살이전에 양부모가 시민권을 취득시켜 줘야만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담처럼 18살이 되기 전에 쫓겨난 아이들, 혹은 설사 18살이 되더라도 양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교도소라도 다녀오기라도 했다면 영원히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 



아들의 귀향, 뒤늦은 어머니의 모성 
냉정한 재판, 그리고 한국으로의 송환을 인정하기 전에는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수용소 생활, 결국 아담은 신성혁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미국인, 당연히 한국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그는 졸지에 한국인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에겐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2부는 그 어머니와 이젠 신성혁이 된 아담의 40년만의 모자 상봉을 그려낸다. 40년만에 돌아올 아들을 위해 며칠 동안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그만 아들을 보자 눈물을 터트리다 못해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아들이 왔다는 것 외엔 잠시 기억을 잃을 정도로. 대화는 안통하지만 지난 40년간 늘 학대를 당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눈물만으로 오랜 외로움이 풀려간다. 그러나 다리를 못쓰는 어머니, 마찬가지로 몸이 성치 않은 새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할 수는 없는 아들은 서울로 올라와 귀환 입양아들을 위한 시설로 들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역시 그에게는 좀처럼 쉽게 '정착'을 허용치 않는다. 주민등록증은 주어졌지만 오물이 나오는 지하 방과 쉽게 늘지 않는 한국어, 그리고 그 보다 더 어려운 밥벌이가 그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긴 그를 한없이 외롭게만 했던 미국이 아니다. 이제 그의 생일날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그를 찾아오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먼 다큐 사랑>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자신의 40년 생애에 고스란히 새긴 신성혁 씨와 그 어머니의 뒤늦은 모성을 2017년의 가족, 그 자화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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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16 02:44

이제는 과거의 인물이 된 오바마 대통령,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바마 케어'라고 칭해지는 미국 의료 보험 체제를 개편으로 부터 상징되는 '진보적'인 업적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결국 '오바마 때문이다'라는 평가처럼,  오늘날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를 선택하도록 만든 경제적 불안감에 대해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평가도 등장한다. 임기 중 전용기를 타고 열심히 놀러다니고 농구 경기를 보러 다녔다는 '한 일이 없는 이미지'만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지 달려갔던 기동력 뛰어난 현장가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할 당시에 이르기까지 무려 55%의 높은 지지도를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의 대통령들이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던 것과 달리, 퇴임식을 맞이하기도 전에 탄핵을 받아 감옥에 가있거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고개를 수그리고 청와대를 나서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아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따지더라도 놀라운 지지율이다. 과연 그의 공과를 차치하고 퇴임에 이르러서까지도 여전히 높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오바마, 그 이유가 뭘까를 <sbs스페셜>이 찾아본다. 




남의 나라 대통령 인기 높은 이유를 찾아보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같은 대통령 제를 운영하는 우리 나라의 새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무사히 퇴임하는 건 물론, 퇴임에 이르러서까지 환호를 받는 대통령, 어쩌면 우리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가장 소박한 희망은 그것이 아닐까? 박수받으면 떠날 수 있는 대통령,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낸 오바마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2920일 동안 오바마를 지켜 본 오마바 전속 비디오 작가의 지난 5년간의 기록을 들춰본다. 

오바마를 통해 새 대통령에 바란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즐기는 대통령이었다. 그에겐 2009년 취임에서 부터 퇴임까지의 시간을 따라다니며 기록한 공식 미디어 작가 차운드 하리를 비롯한 미디어 참모들이 있었다. 현대의 정치가 마치 '아이돌 탄생기'처럼 '이미지네이션'이 중요해지고, 언론에 의해 취합된 정보에 따라 대통령의 선택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절에, 가장 발빠르게 그런 '트렌드'에 앞서 간 대통령으로 오바마는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공식 작가 차운드 하리는 그런 '미디어 프렌들리'라는 지점만으로 오바마를 기억하는 것에 고개를 젓는다. 역대 대통령 그 누구보다 오바마는 카메라의 온 오프의 경계가 없었던 인물이라 강조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카메라에 많이 노출되었지만, 그 노출된 그의 모습은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라,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이어진 오바마 그 자신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진솔한 오바마란 인물은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오바마는 다인종 국가 미국의 전형처럼 복잡한 가계를 가진 인물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인물로써 입지전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오바마는 그런 자신을 규정지었던 그 모든 것을 넘어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합'시켜 나가는데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한 인물로 비디오는 기록한다.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상대방이었던 힐러리를 국무 장관으로 임명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국방 전문가 조셉 바이든을 런닝 메이트로 임기 내내 함께 했다. 무엇보다 그가 걸출했던 것은 미국이 위기를 맞이한 그 순간 순간이라 비디오는 기록한다. 우리에게도 기억으로 남는 백인의 흑인 교회 난입사건, 그 추도식에 선 오바마는 자신의 피부색 또한 흑인 임을 드러내지 않고, 'amazing grace'를 부르며 온 국가를 열광적인 통합의 분위기로 흘러갔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선거 기간은 물론, 취임 과정에서 위기에 몰릴 때 아와 타를 구분함으로써 자신의 편을 결집시키는 것으로 전열을 가다듬어 위기를 돌파했던 것과 달리, 미국 내 인종 갈등을 정점으로 이끌었던 그 사건의 현장에서 노예선 선장으로 자신이 과거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며 만들었던 그 노래를 부르며, 흑백 인종 갈등을 봉합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연설회장에서 자신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반대론자의 목소리에 그는 무시하는 대신, 준비해온 자신의 연설을 접고, 비록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 

현대 정치학이 결국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건 '통합'이다. 다양한 인종, 층위가 나는 계층, 그리고 그들 각각의 요구라는 복잡하게 서로의 이해 관계가 얽힌 사회에서, 그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로서 '통합'하는 것이 오늘날 정치 체제와 리더의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그리고 다큐가 주목한 성공적인 지도자로서 오바마는 바로 그것을 퇴임의 그 순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오바마가 통합을 이루어 간 포인트는 바로 '아버지'이다.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바로 그 '아버지'로서의 자세로 국가의 모든 일에 접근해 들어간다. '각하'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다. 자신도 남들처럼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써 국민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은 함께 나눈다. 그의 초대로 백악관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이 마치 우리 친근한 이웃의 초대처럼 반가운 일인 듯.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허물어 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드러낸다. 딸이 평가한 웃긴 것과 창피한 것의 중간에 있다는 '코믹'한 모습을 정치적 긴장의 요소로 적절하게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실수에 관대하다. 그런 소박하지만 거리낌없는 그의 모습들이 그의 퇴임 과정에서 지난 시간의 동반자의 눈물과 수많은 이들의 굿바이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업적보다 중요한 건? 
그런 오바마를 두고 미국의 대통령 연구자는 슬픔의 사령관(commander of grief)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전시 최고 사령관(commander in chief),  하지만 오바마는 '공감'을 통해 '국민'을 통합해 나가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새로운 지도자상을 이루어 냈다. 이는 지난 대통령 시절, '불통'으로 인해 내내 고통받았던 우리에게는 몹시 부러운 덕목이기도 하다. 



오바마 비디오는 오바마가 퇴임 한 후 5년이 지난 2021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작가의 허락을 받아 취합한 한 시간 여의 영상에는 카메라가 켜지던 꺼지던 진지하게, 혹은 때론 가볍게 자신을 내보이기에 서슴없었던 한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있다. 물론 '미디어 프렌들리'한 그의 입장처럼, 그런 비디오 속 모습은 오바마라는 정체 세력이 지향했던 바 '이미지네이션'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네이션'을 넘어, 지금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우리가 '고소원'인 것은 바로 '이미지'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세대, 그보다 더 극과 극의 입장으로 치달아 가는 이 대선 정국 속의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기꺼이 솔선수범하는, 그래서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대통령이다. 다큐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업무 실적으로 보면 오바마는 잘 한 것만큼, 잘하지 못한 것도 많은 대통령이다. 그 누군가의 평가처럼 그로 인해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통령이었던 한에서 많은 국민들이 그를 통해 위로받고, 그를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일원으로 자신을 정의내릴 수 있도록 만든 그 '리더쉽'이라고 다큐는 말하고 있다. 부디 새 대통령도 그 누구들의 대통령이 아닌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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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08 15:04

대선을 맞이하여 ebs다큐 프라임이 준비한 카드는 <대통령은 누구인가> - '미스터 프레지던트, 대통령의 탄생', '위 더 피플, 국민의 탄생' 2부작이다. 대통령 제도가 탄생한 나라, 미국에서 초대 대통령의 탄생 과정과 이제 45번 째 대통령을 뽑는 대선 과정을 통해 과연 대통령이란 제도의 의미를 돌아본다. 말 그대로 옛것을 읽혀 그것을 미루어 새 것을 아는 '대통령 제도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하지만 그저 '고전 강독'이 아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된 국가로, 그리고 나쁜 대통령은 있었지만 나쁜 제도는 아닌 대통령 중심제를 45번을 수행해 온 과정은, 이제 '대통령 중심제',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썩이는 대선 과정에서 한번쯤은 복기해 볼 만한 문제이다. 무엇보다, 누구를 뽑느냐 이전에 과연 대통령을 뽑는다는 그 '행위' 자체로서의 정치적 의미, 그 본질을 짚어보는 과정으로서 <대통령은 누구인가>는 유의미하다. 




1부 대통령은 미 독립 투쟁의 산물이다
5월 1일 방영된 <대통령은 누구인가> 1부 미스터 프레지던트, 대통령의 탄생은 지난한 미국 독립투쟁사의 과정을 나열한다. 

당시는 오늘날과 다르게 미 대륙과 유럽 사이의 대서양을 건너는 것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듯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 생사를 오고간 여정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낙원'이 아니라 극심한 추위, 심지어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는 풍습이 생길 정도의 굶주림, 그리고 터줏대감인 인디언의 무자비한 공격 등이었다. 그런 역경을 뚫고 차츰 미 대륙에 자리를 잡아가던 이주민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을 영국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악화시킨건 본국이었다. 18세기 무모한 식민지 전쟁으로 인한 국부의 피폐함을 식민지, 그 중에서 급격하게 경제적 안정을 일구어 가는 미 대륙으로 부터 '징수'하고자 한 본국 정부는 가장 일상적인 '사탕', '종이' 등에 '관세'를 부여했고, 이런 본국과 식민지 미 대륙의 갈등은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학살과 무장 투쟁으로 국면을 전환하며 '독립'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사실'들이 아니다. 그 행간을 채운 '사람'들이다. 즉 본국의 무자비한 관세에 대하여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투쟁했던 버지니아의 패트릭 헨리를 비롯하여, '대표없이 관세없다'며 영국 상품 불매 운동을 시작으로 독립 전쟁을 이끈 새뮤얼 애덤스, 샘 콕 등의 보스턴 자유의 아들들 등의 중단없는 저항이었다. 이들 저항의 과정이 '독립 전쟁'이요, 그 '결실'이 바로 독립이자, 그 결과물이 대통령이란 미국의 새로운 제도인 것이다. 



1776년 낭독된 독립 선언서, 하지만 그로부터 미국의 헌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11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미국은 새로운 정치 체제와 관련된 치열한 논쟁을 치뤘다. 무엇보다 영국의 국왕제와는 다른 새로운 제도를 원했다. 거기에 시민들 투쟁의 결과물인 만큼, 평등한 시민의 권리가 담겨있는  제도라야 했다. 그래서 그 결과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프레지던트' 대통령이다. 

당시 프레지던트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역단체, 위원회, 대학 총장 등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무엇보다 국왕처럼 'too much power'를 저지하고자 처음 3명의 대통령까지 염두에 두었다니, 우리의 대통령제와 격세지감이다. 대신 한 명의 대통령을 두는 대신 의회와 법원의 삼권 분립 제도를 철저하게 하여, 권력의 집중을 막았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덜 불안해하는 이유는 바로, 제 아무리 트럼프가 막무가내식으로 나간다하여도 상원과 하원으로 분리된 의회와 법원, 그리고 각 주로 분리된 연방 정부라는 '분립'된 국가 권력이 그의 독주를 막아낼 것이란 제도적 안정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의료 보험 제도를 통과시키기 위해 지난한 의회 설득 과정처럼 말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다. 우리의 '각하'가 아니다.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전권을 행사하는 '독점 권력'이 아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이전의 왕정제와는 다른 권력 체제를 탄생시킨 미국, 그 첫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을 뽑았고,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재선 이후 스스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내며, 새로운 군주가 아닌 '국민의 동의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대통령 제도를 완성시켰다. 



2부 we the pepple 국민이 국가를 만든다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2016년 1차 tv 토론부터 시작한 미국의 대선 레이스다. 45대 대통령 선거 절대적 표수로 보면 힐러리가 트럼프를 이겼다. 하지만 복잡오묘한 미국 대선의 승자는 트럼프였다. 도대체 왜 다수의 득표를 하고도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승복할까? 이기고도 지는 선거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2부에서 바라본 미국의 대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tv 토론을 시작으로 벌어진 국민들의 자발적 선거 참여의 과정이다. 우리나라 대선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당원'들이라고 한다. 그나마 나이든 사람들은 좀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정의당'이 아니고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물며 한 자리를 약속받지 않은 자발적 자원봉사자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선 과정은 자신을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한바탕 축제와도 같다. 그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슬로건을 스스로 만들어 걸고, 자원 유세에 나선다. 집집마다 찾아다니기도 한다. 유세 과정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참여한다. 미국의 공공 정치 참여 비율은 28%이다. 겨우 28%라고? 아니다. 이 비율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이다. 

거리에서 만난 노년의 자원 봉사자가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논쟁을 벌인다. 우리 식의 훈계와 대꾸가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어른'은 경청한다.  고깝기는 커녕 '어른'은 그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져주는 아이들이 '고맙단'다. 선거 과정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쉽다.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풋볼 시합에 가듯 선거 과정을 함께 한다. 아이들도 당당하게 말한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도대체 이런 어린 시절부터의 당당한 참여는 어디로 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미국의 선거는 '즐기는' 과정이다. 선거 후 '정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생결단의 과정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비난도 한다. 하지만 그 조차도 과정의 일부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선거는 과정의 일부이다. 우리는 투표가 유일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정치적 행위라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미국에서 선거는 투표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식으로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 과정의 한 매듭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당당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교육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배운다. 국민의 권리와 투표에 대해 토론한다. 우리 식으로 외워 시험보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말한다. 너희는 학생이지만 국민이기도 하다고 선생님은 강조한다. 스스로 학생 헌법을 '제정'해 보기도 한다. 교실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이런 교육이 특정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각 학교마다 이루어진다. 왜? 국민의 권리는 참여로부터 시작되고,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빼앗길 것이기에 더 나은 시민으로 깨어있기 위해 당연한 권리라는 의식이 미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변화의 과정이자, 결과물이 대통령 선거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나라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실천'한다. 시민들의 평등한 권리로서의 국가, 하지만 그것에 전제가 되는 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잘 교육받고 그에 대해 제대로 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이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스 토크빌의 국민의 자조적 수준에 대한 비감어린 한국에서의 이 경구가 미국으로 가면 풀뿌리 민주주의 교육의 경구로 변화된다. 평등한 시민들의 권리로서의 대통령, 과연 5월 9일 우리가 뽑으려고 하는 대통령도 '그런'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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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03 15:15

헌법 재판소의 판결이 엊그제인가 싶더니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1주일여 앞두고 있다. 장미꽃이 만발하기도 전에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이할 듯하다. 이제 대선 종반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를 선택할 지 이미 결정했을 듯하다. 인기투표처럼 일주일에도 몇 번씩 후보자간의 지지율이 등락하고,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지만, 정치학자들은 생각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언하기도 한다. 혹시나 아직 당신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 혹은 마음을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sbs스페셜- 권력의 탄생>을 보며, 과연 이제 당신이 선택하는 그 대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어보는 건 어떨까?




지난 2월 sbs 스페셜은 '권력'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대통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며, 보여지는 '이미지'에 휩쓸려 당신의 선택을 '실수'하지 말아달라 당부한 편이었다. 그에 이어 이제 대선을 앞두고 다시 프로그램은 '권력'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이제는 제 아무리 독방에서 떵떵거려도 법이 심판을 앞둔 지난 권력, 그 권력을 다시 들춰보는 건 철 지난 유행가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철지난 유행가를 다시 곰곰히 들여다 보는 것이야 말로, 새 권력의 선택에 가장 유효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그 지난 권력의 '인사', 그것이 이번 '권력' 편의 주제다. 

왜 사람일까?
최진 대통령 리더쉽 위원장은 지금 유력한 대선 주자의 인사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사 그가 '악마'라 하더라도 인사만 잘하면 '천사'로 보일 수도 있다며. 

우리가 대통령중심제를 취한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불행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매번 되풀이되는 권력의 불운, 권한이자 함정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유시민 작가는 그 권력의 핵심이 바로 '인사권'이라 단언한다. 

왜 인사권일까? 대통령이 되면 행사할 수 있는 인사의 권한이 줄잡아 6000 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즉 권력의 시작이 바로 '인사', 인재의 등용으로 막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이런 수많은 인사의 권한을 준비하지 않고 권력을 맞이한다. 또한 선거 기간 중에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준 사람들에게 '사농공상'을 해주고 싶고, 해주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더구나 동양권에서는 '사농공상'으로서의 관직은 곧 '조상의 은덕'처럼 여겨지니, 더더욱 그 '인재의 등용'에 힘이 실린다. 

그러기에 손쉽게, 그리고 허겁지겁 믿을만한 인맥의 인사, 즉 이른바 '코드 인사'로 권력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믿을 만한, 운명을 함께 한 '이너 서클'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믿을 만한 이너 서클의 사농공상으로 권력을 시작한 것이 바로 박근혜 정권의 첫 번째 코드 인사 '윤창중'이었다. 1호 대변인으로 박근혜의 상대방 세력을 향해 막말을 퍼붓던 언론의 인사가 첫 번째 인사라 됨으로써, 박근혜 정권은 '화합' 대신, '코드'의 색깔을 드러내며 정권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어서 윤창중에 의해 발표된 '밀봉 인사'는 '수첩 인사', 깜깜 인사'로 이어지고, 이는 정권이 형성되기도 전에 내정된 인물의 7명이 낙방하는 '인사 참사'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참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격 사유가 있는 17명 중 끝내 6명의 인사를 강행하고, 결국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박근혜 정권은 경제 민주화를 외치던 김종인을 내친 대신 유신 정권의 출신의 성장론자 현오석을 부총리로 앉힌데 이어, 진박 감별사 최경환, 호위 무사 윤상현, 박근혜의 신데렐라라 칭해지던 조윤선 장관을 거듭 들이며 '충성'을 인사의 제 1 명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드러난 인사보다 심각한 것은 이른바 '소도(蘇塗)'라 칭해지던 정윤회를 비롯한 문고리 삼인방, 그리고 결국 최순실로 이어진 뽑히지 않은 '권력의 핵심'들이다. 결국 '이너 서클'에 의존한 코드 인사와 불통 인사는 '나쁜 권력'의 전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권력은 언제나 나빠질 수 있다
프로그램은 일찌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이른바 '팽' 당한 경험이 있는 조응천, 김병준 등의 전직 '이너 서클' 인사와 문희상, 유시민 등 오랜 정치적 경험을 가진 정치인들의 경험과 의견에 기초하여, '권력'의 인사를 서술해 간다. 

결국, '인사'로 시작하여, '인사'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권력', 권력이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적 '폭력'이다. 하지만 그 '권력의 정의에서 찍혀져야 하는 방점이 '국민'에서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 '법과 원칙' 대신 자신의 '권력'이 우선되는 순간 국민의 의사는 무시되고 , 탄핵 재판소의 판결이 기다린다. 출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권력은 칼이라고. 하지만 권력이라는 칼에는 손잡이가 없다고. 잘못잡으면 손을 베기도 하고, 상대방을 찌른다고 했는데 어느새 내 몸 속에 칼이 박혀 있기도 하다고 . 그래서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 그러니 권력자는 늘 국민을 두려워하고 살펴야 한다는 순자의 경구로 '인사'에 대한 다큐는 마무리된다. 



대선 투표를 일주일 여를 앞둔 시점에, 새삼 지난 권력의 '인사'를 '역지사지'해보겠다는 취지의 다큐, 어쩌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지난 정권의 '권력' 행사에 대한 이야기는 과열된 대선 레이스의 정점에서, '원칙'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최근 정치학자 박상훈씨는 시민을 위한 정치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정치가 우리를 구제할 수 있을까>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우리의 사회적 삶을 '진화'하는 방편으로서의 '정치'를 역설한다. '누가 더 '진정성'이 있는가를 가지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선용할 수 있는 능력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준비와 '이상'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가 새로운 권력 선택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가 하면 다 해낼 겁니다' 란 말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탄핵으로 이어진 엄청난 역사적 후퇴를 경험했던 시간, 과연 지금 이 대선 가도의 정점에 선 우리는 ''인지 상정'이 아닌, 미래를 향한 권력을 담당할 '눈밝은 이'를 향한 바램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부디 장미꽃 향기 속에 탄생한 정권의 미래는 불운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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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5.01 16:49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미, 중과 우리 나라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졌었다. 새 정권이 탄생하기 이전에 배치를 서두르던 미국, 그런 미국에 대항하여 한류 관련 산업과 상품에 있어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는 중국, 그 가운데에서 청와대가 빈 우리나라는 외교적 대응 대신, 사드 배치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놓고 정쟁에 빠졌다. 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치킨 게임'은 뜻밖에 허무하게도 미중 정상 회담으로 한 김이 빠지고 만다. 냉랭하게 공동 회견조차 하지 않고 끝났다던 두 정상의 회담은 이후 뜻밖에도 많은 공가대를 형성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에 넘긴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중국은 '한류'등 을 통해 중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던 'Made in korea'에 대해 그 흐름에 족쇄를 채웠고, 미국은 여전한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검증했다. 이렇게 결국 우리 땅에 배치하는 '사드'에 대해 그 '결정권'에 있어 다시 한번 무기력했음을 증명했던 시간, 하지만 사드가 끝일까? 이에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마치 무기력한 한반도에 저 마다의 이권을 가지고 쟁투했던 제 2의 구한말과 같은 이 시기,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변화를 2부작 <격동의 세계>로 다룬다. 




1부; 스트롱 맨의 부활
무엇보다 한반도 상황을 격동에 빠뜨린 가장 결정적 인물은 예상을 뒤엎고 미 대선의 승리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리하여 당연히 한반도를 격동으로 몰아넣는데 김정은보다도 더 불확실한 존재가 되어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쉽 분석으로 부터 들어간다. 

키신저에 의해 본능형 인간이라 규정되는 트럼프는 '트럼프 케어'가 폐기된 날 골프를 치는 여유를 부리고, 선거 전 일본을 압박하다, 입장을 싹 바꾸는 등 '관습이나, 풍습, 심지어 법규조차' 존중하지 않는 예측 불가의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예측 불가 행보는 '그와 가족과 조직에 이로운 것'이라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그 점이 미국 국민들이 그를 선택했던 이유고, 또 그런 지극히 '미국 우선주의'의 방향이 한반도에는 위협적이다. 

하지만 막무가내 스트롱맨만 위협적인 건 아니다. 올해 전인대에서 공식적으로 '핵심' 칭호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시황제'가 된 시진핑은 '정치적으로는 인민주의의 마오쩌둥을 경제적으로는 개방의 덩샤오핑'을 이어받은 합리적이며 친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남중국해 장악을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가고 있는 지점에 이르면 역시나 중국 패권주의의 또 다른 스타일일 뿐이다. 

미, 중만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요지부동이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미국으로 달려가 '조공 외교'라고 조롱을 받았던 아베 일본 수상, 하지만 아베는 웃었다. 경제적으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주는 듯하면서, 미일 군사 동맹을 확고히 하여 군사 강국으로의 야심을 펴나갈 기반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만만치 않다. 2016년까지 포브스 선정 세계 영향력 1위, 미 대선 조차도 그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는 3번의 대통령, 1번의 총리, 이제 다시 재선을 앞둔 푸틴 대통령은 국제 정치의 '캐스팅 보트'를 쥔 채 '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부; 태평양 무역 전쟁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강은 저마다 자신의 국익을 제일로 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그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갈등한다. 바로 다큐가 주목한 바 '태평양 무역 전쟁'이다.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은 명확하다. only America first! 미국의 물건을 사라! 미국인을 고용하라!이다. 미국과 타국, 대표적으로 중국과의 무역 수지에서, 중국의 압도적 흑자에 더 이상 미국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반대를 겪으며 어렵사리 도달했던 한미FTA 10년. 이제 한국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이 협정에 대해 미국은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 다큐의 제작진은 미국을 향한다. 한때는 융성했던 미국의 한 도시, 그러나 그 도시를 먹여살리던 기업체가 보다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떠나자, 도시는 망했다. 사람들은 떠나고 이제 나이든 사람들만 남아 폐허가 되다시피한 도시를 지킨다. 바로 여기에 트럼프 정책의 본질이 있다고 다큐는 지적한다. 우리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있던 기아와 LG의 공장은 보다 싼 임금을 찾아 멕시코로 공장을 옮겼다. 그런데 이제 트럼프가 물건만 팔아먹으면서 미국에 이익을 넘겨주지 않는 해외 기업들에, 국가들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런 트럼프의 선전 포고에 각국의 대응은 발빠르다. 시진핑은 트럼프와 정상 회담을 했고,  아베는 취임식도 전에 미국을 예방했다. 아베는 토요타 자동차의 미국 투자 등을 내세워 트럼프를 달랬고, 중국은 '국경세'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이런 트럼프의 도전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대부분의 생필품은 중국 아니면 멕시코, 하지만 국경세가 더해지면 불가피하게 이들의 값을 오를 수 밖에 없다. 즉 트럼프의 도발로 미국의 몇몇 산업은 되살아날지 모르지만, '보호무역주의'의 여파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미국 하층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로운 '경제 전쟁' 상태에 들어간 주변 열강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그 전쟁의 핵인 미국의 현실을 현장에서 지켜본다. 전문가들은 그간 역사적으로 실행되었던, 하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난 보호무역주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들을 짚어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비관적이라 본다 하더라도, 짧게는 4년, 최장 8년간 미국은 그 예측불가능하게 자국의 이익을 향해 돌진하는 트럼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을 것이다. 트럼프만이 아니다. 사드를 핑례로 한류를 겁박하는 중국, 위안부는 나몰라라 하면서 미일 동맹에는 매달리는 일본, 그리고 그 뒤에서 영향력을 확산시켜가는 러시아는, 구한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난도질했던 서구 열강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큐가 찾아온 태평양 무역 전쟁의 현장에 한국 정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업체는 트럼프의 등장을 예견하지 못한 채 멕시코 공장 이전 등 위기를 자초하고 만다. 구한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우리 내부의 의견조차도 마무리짓지 못한 채 열강의 이해 관계에 따라 다시 한번 허수아비의 춤을 추게 되는 건 아닐지. 전쟁의 중심에 서있으면서도, 주도권은 언감생심인 한반도의 운명을 다큐는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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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4.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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