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촛불이 사그라들고 sns에서 벌어진 설전 중 하나는, 과연 촛불의 주역이 누구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 논란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홍역을 앓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른바 386 세대, 이제 희끗희끗해져가는 머리가 무색하게 그 겨울 차가운 바닥을 버티느라 좌골 신경통이 도졌던 이 세대는 당당하게 '촛불'의 주인임을 외치지만, 그들은 바라보는 '후배' 세대의 시선은 냉랭하다. 경제 호황기에 태어나 복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후일담 정도로 치부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억울한 건, 그 겨울 광장을 녹였던 여전한 열정에 대한 '공치사'만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 제도에서 자라나,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핵가족의 중심으로 살아낸 장년기, 그들에겐 이제 100세를 살아내야 할 '독립'의 과제가 맞부닥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가는 '논 팔고 소팔아 어떻게든 자식 대학만 보내면 되던' 그 산업 부흥기의 부모 세대들이 왜 그토록 자식에게 연연했을까? 조선으로부터 내려온 유구한 유교적 문화 전통에 입각한 고고한 정신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모 일간지에 게재한 이런 조선 시대로부터의 '공부에 대한 집착'을 '백년 동안의 지랄'이라 일갈한다. 일찌기 흥선 대원군이 철폐한 서원이 700여개, 하지만 그 철폐한 서원까지 포함하여 그 시절 조선에는 이른바 사립 교육 기관이 줄잡아 1700 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게 100년 전이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100년이 지나 oecd 기준 25세~30세 사이 대졸자 기준 최고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그 일관된 공부에 대한 편집증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입신양명', 한 집안에서 잘 난 놈 하나가 나오면 그 부모는 물론, 그 집안 전체가 다리 뻗고 산다는 것이 지난 100년간 우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노년, 자녀로 부터 독립하라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젊은 사람들이라면 웬만하면 '대학'을 나오는 시절, 우리 젊은이들을 비롯한 한국 사회는 '고용 불안, 일자릭 부족, 취업 대란'을 겪고 있다. 남들 하는 거 다했는데, 그 결과는 대학문을 나서도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은 고스란히 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mbc 다큐 스페셜 <부모 독립 프로젝트, 쓰고 죽을까? (이하 부모 독립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세대

데뷔 40년차인 가수 박일준씨(65)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노년을 바라보는 그에겐 깊은 고민이 있다. 다름아닌 마흔을 바라보며 일가를 이룬 나이에도 여전히 '아빠'에게 의탁하여 사는 그의 아들 박형우(38)씨 때문이다. 언제 독립하냐는 아빠의 우문에, 지금의 자기 벌이로는 자기 가족 살기 힘들다며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의탁할 것을 주장하는 아들의 현답에 박일준씨는 답답하다. 

바로 이 박일준씨의 딜레를 다큐는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5,60대 세대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큰 건 주택 마련 자금과 자녀의 학자금이다. 그 중에서도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은 박일준 씨나, 그 뒤에 이어진 음악 동호회 회원들의 근심깊은 토로에서도 보여지듯이 학자금, 결혼 자금, 자식 주택 마련 자금으로 이어진 굵직굵직한 부담의 행렬이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집까지 마련해주고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부모들의 경제력이 넉넉치 않다는데 있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세대는 더 이상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이다. 스스로 자신의 '늙음'을 책임져야하는 건 물론, 아직 채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 이중의 딜레마,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첫 번째 답을 다큐는 옥봉수 박임순 부부에게서 찾는다. 여느 가족들처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에 올인했던 박임순 씨, 그러나 그런 엄마의 교육열은 가족간의 균열만을 낳았다고 한다. 더 이상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는 가족을 보며, '공부'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엄마 아빠보다 더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보며 두 부부는 아이들을 놓아 주었다. 대학 대신 검정 고시를 치고 사업을 시작한 아이들, 겨우 사무실 집기만을 사주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대기업 사원 정도의 벌이는 스스로 할 정도가 되었고, 부부는 뒤늦은 신혼 생활에 빠져 있다. 

이렇게 다큐는 딜레마에 빠진 장년의 고민을 '독립'에서 찾는다.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로 부터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삶을 챙기고,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경환- 이경미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가 그 모범 답안이다. 수능을 마친 딸에게 일년의 기한을 주고 '독립'을 준비시키는 부부, 대학 졸업 이후엔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선언, 하지만 잠시 혼란스러웠던 딸은 이내 기꺼이 부모의 선언에 동참한다. 다큐는 주장한다. 자녀로 부터 부양받을 수 없는 지금의 장년들이 노년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녀를 독립'시키는 게 전제 되어야 한다고. 




부모의 독립 로망의 전제가 되어야 할 사회 안전망
'부모 독립 프로젝트'를 위한 '자녀 독립 프로젝트'의 전제는 이상적이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과정은 사실, 한정적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초반, 자식 결혼 비용이며, 집 사줄 걱정을 하는 부모들, 과연 대한민국에 자식 집 사주고, 결혼 비용 대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다큐는 철저히 중산층 이상의 장년들을 대상으로 한정시킨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말미, 다큐는 부모 독립 프로젝트의 이상향을 '다시 신혼처럼 사는 부부'로 잡는다. 뒤늦었지만 철이 들어 아내 대신 집안 일을 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과 함께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아내. 여전히 이혼율이 높고, 심지어 중장년의 이혼율이 젊은 층의 이혼율을 앞선 국가에서, 다큐가 보여주는 장년 부부의 현실은 '환타지적'이기 까지 하다. 자식을 독립 시키면 부부는 '신혼'이 된다는 이 맹목적 가족 중심주의는 다큐가 가진 본래의 의도조차 무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가족'을 중심으로 이상적으로 부모를 독립시키며 부부의 새로운 삶의 단계를 칭송하게 됨으로써, 애초 이 다큐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역할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캥거루 족', '탕기족', '키퍼스족', '부메랑 키즈' 등은 경제적으로 여유치 않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들어오는 자녀들을 일컫는 세계 각국의 용어들이다. 세계적인 불황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녀들은 전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과연 이게 부모의 독립으로 해결될 일일까? 다큐도 짚는다. 부모가 책임을 져주지 않아도 사회가 자녀의 사회적 독립을 책임져 줘야 한다고. 물론 우리 사회 부모들이 '오래도록 '헬리콥터 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현실이지만, 그 현실은 개인의 입신양명만이 유일한 동앗줄인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다큐는 좀 더 명확하게 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by meditator 2018.02.23 17:09

2018년은 개띠해, 그 중에서도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육십간지 중 서른 다섯 번째 해인 무술 년이다. 육십간지 중 십이지, 열 두 띠로 대표되는 동물의 띠는 12년마다 돌아오고, 그 중 열 한 번째 띠인 '술년', 개띠 생은 올해 육십간지를 한번 돌아낸 61에, 49, 37이 되었다. 환갑에 40대 후반, 서른 중반,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두툼한 '허리' 세대라 해도 무방하다. ebs 다큐 프라임은 설을 기점으로 새로이 시작되는 무술년을 맞이하여 특집으로 각 세대 개띠 들이 살아온 시대와 삶을 들여다 보는 '개띠 열전'을 마련하였다. 




아니 벌써?  58년 개띠
시리즈의 시작을 연건 우리 사회 '베이비 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다. 전쟁의 상흔이 마무리되는 시점 58년, 일본의 전후에 '베이비 부머' 단카이 세대( 團塊世代)가 등장했듯이, 대한민국에는 '58년 개띠' 세대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큐는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를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를 통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한국 종전 후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맞물려 '90만'의 신생아, 그 주인공 베이비 부머 세대, 그들은 전쟁 후 어려운 형편을 넘기기 위해 해먹던 부모님의 '김치죽'을 향수로 기억하는 세대이며, 최초로 이른바 '뺑뺑이 세대'라 칭해지는 '무시험 진학 추첨' 세대이며, 이른바 '얄개'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를 상징하는 세대이자, 비틀즈, 퀸, 아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함께 대학 입학과 함께 '대학 가요제'등 새로운 대학 문화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했다. 88 올림픽, 86아시안 게임으로 상징되는 풍요한 경제 성장 시대, 아파트 문화를 선도했던 세대의 주역이 된 58년 개띠, 하지만 '폭발적인 출산'의 결과물로 '경쟁'이라는 사회적 논리를 표면화시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대, 콩나물 교실에서 복닦이며 경쟁을 했던, 하지만 여전히 교실의 '급훈'이 '서로 돕자였던 '공동체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은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생업'의 현장을 지킨다. 십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나 이름조차 '오순이'가 된 광장 시장의 전 가게를 운영하는 최오순 씨는 공사 현장에서 다친 남편 대신 가장으로 혹한의 추운 날씨에도 광장 시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구 구두 골목의 김태수 씨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의 서리를 눈감아 주던 농촌에서 태어난 김씨에겐 '제화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전하는 산업에 밀려난 제화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정도가 된 대구 제화업의 증인이 되었다. 여전히 재즈무용가로 현장을 지키는 전미례 씨라고 다르지 않다. 



그것만이 내 세상 70년 개띠 
1988년 대학 가요제에서 싱그럽게 등장했던 '담다디'의 이상은 씨가 벌써 데뷔 30주년이 되었다. 그녀처럼 70년에 태어났던 개띠 들도 이제 어언 마흔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58년 개띠가 '무시험 진학 추천제'의 시대였다면 70년대 고도 성장기의 초입에 태어난 개띠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로 교복 대신 '브랜드'를 입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자율화'의 문화적 경험은 그들의 삶에도 관통한다. 

배달 라이더를 구하지 못해 점주 자신이 한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배달을 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의 한동욱 씨는 어느새 '꼰대'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동네를 누비던 소년의 마음이 된다. 임상일 씨라고 다를까.  언더 그라운드 가수와 콜 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단칸방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서슴치 않고 달려가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예술혼을 불태부는 그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달리자 82년 개띠
82년 개띠를 여는 음악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크라잉 넛이 데뷔하던 해 고등학생이던 그들은 '인디 밴드'와 함께 '얼터너테이티브 롹'을 향유하며 '문화의 해방구'를 형성한 세대이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세대, 하지만 이들은 앞선 세대처럼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 답지 않다며 '제대로 잘 사는' 모색의 세대라 불리길 원한다. 

그런 82년 개띠를 대변하는 첫 번 째 키워드는 바로 '워라벨work and balance', 서핑이 좋아 서핑을 파다 서프 보드 제작 수리직인 쉐이퍼가 된 이상문 씨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세상이 얼마나 멋질까?'라며 반문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꿈'을 쫓는 대신 '현재'를 잘 살아내는 '욜로'족이 되기로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8년을 보냈던 방준재 씨는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과감하게 그 일을 그만두고, 대신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던 바리스타 일을 하며 '지금 가진 것만으로 오늘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매진한다. 이들 세대에겐 가성비보단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을 사로잡는)가 우선하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사회를 달궜던 '82년 김지영'의 주인공인 세대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제빵 자영업 황연씨나,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디자인해낸 김효미 광고사 대표는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고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한 인생이라 입을 모은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본,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그려낸 설 특집 '개띠 열전'은 베이비 붐 세대, 자율화 시대, 그리고 n포 세대라 규정되는 세대 그 이상,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열정을 놓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8.02.16 01:55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이란 말이 어느덧 '인간'의 족쇄가 되는 시대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문명인 '인터넷'과 'sns'는 어느 덧 '인간'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퇴근을 해서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전송되는 메일, 잠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둘라치면 몇 개, 몇 십 개, 심지어 몇 백개가 쏟아져 오는 카톡, 범람하는 페북의 언어들,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 아니 그 사람 자체가 증명 사진이 되어 나열되는 '인스타', 이 많은 매체들 사이에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맺은 관계들 속에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sbs스페셜>이 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고독'이다. 





3박4일 절대 고독의 시간
'고독'의 문을 연 건 4명의 젊은이다. 임현욱(19), 박형순(22), 윤어진(21), 박소현(27) 네 사람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자신을 1.7평 방에 가둔다. 하지만 '가두는 게' 쉽지가 않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끝까지 사수하다, 그 마저 못하게 되자,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상대로 셀카 연습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은 영락없는 21세기형 인간이다. 

하지만 결국 핸드폰을 빼앗기고,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혹은 '생각'을 하면 우울해 질까봐 싫어하던 이들이 '포기' 버튼의 유혹을 이겨내며 하루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마치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들에게 던져진 화두처럼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각자 지금 자신이 빠져있는 그 '무엇'을 털어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이제 막 수능 시험을 마친 현욱에게 '자아 성찰'이란 쓸데없는 것이다. 공부 못하면 노답인 세상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건 쓸데없는 것이며,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4 명은 공통적이다. 현욱이 수능을 핑계로 생각을 미뤄두었다면, 소현씨는 주중에 자신이 하는 쇼핑몰 일이 끝나는 주말까지 커피 전문점 알바를 하며 홀로 생각에 빠질 시간을 피한다. 집에 와서도 늘 인터넷 동영상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말소리'에 빠져있는 그녀, 그런가 하면 윤어진씨가 빠져있는 건 '셀카', 하루 종일 수백에서 천 장이 넘는 셀카를 찍고, 그것을 보정하여 인스타에 올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느라 바쁜 그녀에게 생각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박형순씨는 잠이 부족할 정도로 '관계'와 '관계'의 사슬에 자신을 얽어매어 놓는다. 

이렇게 그 '무언가'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네 사람은 본의 아니게 1.7 평의 '독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빠져있는 것, 그것들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그곳에 자신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네 사람, 그들이 마주한 자신의 역사에는 고등학교 시절 80kg이 넘는 몸무게로 상처받았던 소녀가 있고, 홀로 사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부모님이 정해주신 세상의 길을 따라,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을 꿀꺽 삼켜버린 소년이, 게임만 하며 세상과 담을 쌓았던 청년이 있다. '셀카'에, 대학에, 관계에, 그리고 쉴틈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놓치고 있었던 자신을 그 누구의 권유도 아닌, '고독'을 통해 마주한 네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누구인지 마주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20박21일
네 사람의 강제 독방 3박4일이 다큐 제작진에 의한 모의 고독 실험이었다면, 20박21일의 강제 고독을 선물로 주는 회사도 있다. 건설 설계 소프트 웨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국내의 한 IT업체,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간 응시생은 뜻밖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는 건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직원 한 명당 1년치 식비가 무려 1000만원인 직원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20일간의 '자기에로의 여행'을 선물한다. 

온전히 업무를 손에서 놓고 제주로 온 여행, 한라산을 등반하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매일 매일 쪽지로 전해지는 이 회사의 사관인 '나, 세상, 삶, 일'에 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리본 더 라이프'라 칭해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주가 원하는 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거, 매일매일의 화두에서 답을 얻은 사람도, 혹은 답을 얻어내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안에 숨겨져왔던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고, '용기를 내서 내 삶의 질문을 대면'하는 시간이 된다. 

네 사람의 3박4일 실험적 고독,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리본 더 라이프' 자기 성찰 프로그램을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독'은 박소현씨의 말처럼 혼자 생각에 빠지다 보면 우울해지는 건, 스스로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들이 범람하는 시대, 그 넘치는 '관계맺음'이 '나'를 소외시켰다 주장한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 그저 3박4일 혼자 있었을 뿐인데,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짚어보고 진단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대면하는 사람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는 회사,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자기 수련의 터널을 지나 다큐가 도달한 건,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오롯한 나'에는 그 누구의 가르침이나 지침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기 회복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있다. 
by meditator 2018.01.29 05:17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를 규정한 건 '전쟁'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생존 방식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는 어떨까? 전국민이 금을 모아 2001년 예정보다 3년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는 IMF, 그 '경제적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을 삶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EBS가 특집으로 마련한 <인터뷰 대한민국>, 그 포문을 연 건 바로 1998년 IMF 생이다. (1월 20일 방영)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최준영 작사,곡, 한스밴드, 오락실 중

굳이 사전적 의미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단어,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 그 두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IMF 이후이다. 97년 1월부터 대기업 부도 사태로 시작된 외환 위기, 97년 11월 IMF에 지원을 요청한 우리 정부는 IMF의 정책에 따라 부실 기업 퇴출 및 은행 구조 조정 전면화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국제 통화기금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고 예정보다 빨리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1997년에서 98년까지 문 닫은 기업만 4만개, 1999년 8월 기준 실업자 136만 4000 명,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겪어낸 선인들 못지않은 생존의 고통을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겪었다. 아니 겪고 있다. 

외환 위기 당시 IMF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일방적인 룰을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국민들이 필요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 2010, 7, 스트로스 칸 당시 IMF 총재 

I'm Fired 나는 해고되었다
대전에 사는 63세의 정진철 씨 그가 페인트 일을 한 지도 어언 11년이 되었다. IMF 당시만 해도 충청도에서 가장 잘 나갔던 은행 충청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1998년 6월 1차 은행 퇴출 결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IMF 기간 중 유독 퇴출과 합병 등으로 '정리 해고'가 심했던 은행 구조 조정의 희생 당사자였다. 무너진 평생 직장의 꿈, 누군가는 이혼하고, 누군가는 자살하고, 20년이 지난 그 시절을 사람들은 애써 덮으려 한다. 살아남은 정진철 씨에게 닥친 IMF는 그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장남 하나만 잘 되면 한 집안이 일어난다던 시절, 쫓겨난 장남에 충격받으신 어머님은 결국 쓰러지셨다. 사업도 해보고, 놀기도 하다, 겨우 지인의 소개로 페인트점에서 일한 지 십 여년 여전히 그의 품안엔 예전 신분증이 남아있다. 



98년 IMF 생들의 현재는?
그렇게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를 겪으며 거리로 몰린 아버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자란 98년 생들, 2002년 올림픽 때는 5살, 2009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신종 플루로 학교를 못가기도 했고, 2014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세월호를 겪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이 청년들의 현실은, 바로 역사 저편의 단어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IMF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늘엔 별이 참 많이 있구요, 난 그 별에서 제일 가깝게 살고요, 
햇살이 좋아 빨래도 잘 말라요, 그곳에서 난 꿈꾸네 
                                               - 장미 여관, 옥탑방 중


포항에서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채현진은 옥탑방에 산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방음 제로의 자취방, 야경이 이쁘고, 다리가 튼튼해 진다는 500에 35, 그곳에 살기 위해 방학에도 귀향을 하지 않고, 무서운 밤길을 견디며 알바를 한다. 

'어디나 불편함은 있는 거잖아요. 서울에 방 한 칸 있다는 사실로도 만족해요,'

기숙사 신청은 어렵고, 기숙사 신축을 놓고 주민과 갈등하는 현실, 500, 1000, 3000, 보증금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질,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누군가는 학교 주변을 몇 십 바퀴 돌아 500만원짜리를 겨우 얻는가 하면, 누군가는 부모님 돈으로 쉽게 학교 앞의 안락한 공간을 얻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 

'대학 하나 다니려면 돈을 탈탈 털어서 바쳐야죠, 주거, 학비, 진로 다 얽혀서 어렵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정현진 씨는 이제 대학 1학년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피디가 되고 싶어 신방과에 진학했고,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구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재주많은 청년, 하지만, 꿈꾸고 도전하는 삶대신 안정을 택했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검찰청 실무관으로 있는 그녀의 어머니, 함께 직장을 다녔지만, IMF로 은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명퇴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른 선택을 권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56.6%가 선택한 이유, '안정된 일자리', 실제 어머니 이은희 씨가 다니는 직장에 신입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연, 고대 출신도 빈번하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 대신 선택한 안정이 행복하지 않으면?이란 질문에 정현진 씨는 '끊임없이 생계를 걱정하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며 반문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 또 다른 98년 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때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 내복값이라며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내밀던 청춘이 있다. 2017년 1월 전주 아중 저수지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홍수연 양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LG 유플러스 콜센터 실습 중 이었던 홍 양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 100%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불업 위장 취업을 강요하는 마이스터고, 하지만 같이 들어갔던 홍수연 양의 열 몇 명 중 결국 남은 건 두 세 명, 현장 실습에 나갔던 학생 들 중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혹독한 징계.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컨베어벨트에 끼어 팔이 부러지고 허리와 목을 다쳤던 아버지, IMF로 대량 해고가 게속 되던 시절, 결국 아버지는 이렇다할 직장을 얻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걱정해서 취직해서 돈 벌다가 공부하고 싶으면 하겠다며 버티던 홍양은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콜센터, 이른바 고객 대응 노동자의 93%가 겪는 언어 폭력,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더 중요한 능력은 미소와 친절보다 말도 안되는 요구나 기분 나쁜 말에 '무뎌지기', 무뎌지지 못한 홍양은 자신을 던졌다. 비록 어려웠지만 소중했던 딸의 죽음은 부모의 삶마저 파괴했다. 눈물로 지새우던 어머니는 2011년 뇌출혈로 사망했고, 세상이 싫어진 아버지는 연고 하나 없는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홍양만이 아니다. 2017년 11월 현장 실습생이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이민호 군은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하반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 실습이 전면 폐지될 때까지 꽃다운 청춘들은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다큐는 보여준다. IMF 체제를 졸업한 우리나라가 지난 20년간 얼마나 빛나는 경제적 신장을 이뤄냈는가를, 하지만, 또 다른 화면에서 보여진 건, 그 성장의 잔혹한 그림자들이다. <인터뷰 대한민국> 1부, <1998년 IMF생>을 통해 다큐는 말한다. 2018년의 대한민국, 이제 막 청춘에 첫 발을 내딛은 98년 청춘을 통해 바라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IMF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짐지운 또 다른 전쟁터이다. 


by meditator 2018.01.27 17:28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낡은 시대가 물러갔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을 마중하기 위해 분주하다. 교육이라고 다를까. 입시 체제부터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런데, 과연 교육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입시 체제일까?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그간 꾸준히 교육과 관련된 다큐를 제작해 왔던 ebs다큐 프라임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새해 첫 다큐로 ebs가 준비한 것이 바로 <번아웃 키즈>이기 때문이다. 지난 3,4일 그리고 8,9일에 걸쳐 4부작으로 방영된 이 다큐는 어쩌면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건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괜찮다 등을 두드리고, 그리고 그들이 맘껏 푸르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큐의 제목 <번아웃 키즈>, 그 수식어인 번아웃(burn-out)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낯설지 않은 심리학 용어다. 그레이엄 그린의 1960년 작 소설인 <번아웃 케이스>에서 유래된 이 말을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레이덴버거가 사용하며 등장했다. 타버리다, 소진되다라는 단어적 의미 그대로 '눈 앞의 목표를 향해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해 가는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무기력증이나, 자기 혐오,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증상이다. 서비스 직의 감정 노동자나, 위험하거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 교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적 요구가 기대되는 직종,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에서 걸리기 쉬운 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회사의 도산이나 구조 조정, 가족의 죽음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개인적 사회적 환경 역시 이 증후군의 배경이 된다. (다음 백과 중)

그런데, 이런 직업적이고 사회적인 원인으로 한 사람을 소진시켜 버리는 증상이 2018년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특정 학령이 아니라, 다큐에서 보여지듯이 초등학생에서 부터, 고등학생. 심지어 이제 사회에 나가 그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될 대학생들조차 이 증후군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대체 우리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가 '교육'이란 미명 하에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달리는 돼지와 함께 잠시 아이로 돌아간 아이들-<교실에 온 돼지>
한 선생님이 교실에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선생님은 말한다. '잘 길러서 크면 잡아먹자.' 18년전 오사카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1년간 아이들과 선생님이 돼지를 키운 이 과정은 tv 다큐로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p짱은 내 친구>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 했다. 바로 그 다큐와 영화의 상황이 안양 평촌의 한 초등학교에 벌어졌다. 

교실에 온 애완용이 아닌 흑돼지 한 마리, 선생님은 앞으로 100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돼지를 키우겠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선생님은 당장 돼지 똥이며 냄새에 대한 민원이 빗발치는 이 돼지를 교실에서 키우자고 한 걸까? 그 답은 아이들에게서 찾아진다. 초등학교 5학년 공부를 못하는 게 불효라는 아이들,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쓴 글은 우리 사회 취준생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언어들로 도배되어 있다. '난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난 괜찮아, 내가 한 말 중에 최고의 거짓말'이 있다. 벌써 대학 입시를 걱정하고, 미래에 볼모로 잡힌 아이들 그러나 정작 수업 시간 아이들의 눈은 비어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선생님이 도발한 결정은 그저 교실에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 그런데 첫 날 부터 아이들이 달라졌다. 5학년이 되었다고 말수가 적어지던 아이들이 '아이 본연의 호기심, 수다스러움, 발랄함'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저 돼지 한 마리일 뿐인데? 그래서 이 2부작 다큐는 슬프다. 그저 초등학교 5학년, 이제 겨우 12살인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느라, 벌써 입시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실에 찾아온 돼지 한 마리로 12살 본연의 아이스러움을 되찾았다는 것이. 우리에서 꿀꿀거리기나 하고 더러운 줄 알았던 돼지가 운동장을 신나게 달리고, 알고보니 배변을 가리는 깔끔한, 그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더러워졌던 동물인 것처럼, 12살에 공부 기계가 된 아이들은 돼지와 함께 12살의 여름을 보내며 아이다운 밝음과 자신감, 책임감, 눈물을 찾았다. 이 세 달의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자아존중감 검사에서 6.26%의 상승세를 보였다. 고학년에 올라갈 수록 과도한 학습으로 자존감이 하락세를 보인다는 우리 교육, 겨우 돼지 한 마리가 혁혁한 성과를 보이는 이 교육 현장, 우리는 교육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인가?라고 다큐는 묻는다. 

고 3도 사람이다 - <우리 여기 있어요> 
그래도 12살이면 그래도 낫다 싶다. 1, 2부 <교실에 온 돼지>에 이어 방영된 3부 <우리 여기 있어요>를 보면. 7.8, 6.5, 12.6, 7.7, 15.5? 이 숫자들은 이제 중간 고사를 3일 앞둔 고3학생들의 가방 무게다. 평균 6.5kg. 1.5 리터 생수병 4개 반이 우리나라 고3학생들의 가방 무게이다. 그런데 가방 무게에 놀랄 것도 없다. 구리 여고 이한울 외 3명의 학생들이 만든 영상 속 고 3학생들이 보여주는, 교우, 진로, 미래, 대학, 공부, 성적 등등에 대한 또래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저 부모님 이야기만으로 눈물샘이 터지는 대학 진학이란 목표를 향해 버티는 가방보다 훨씬 무거운 삶이다. 

고3인 아이들은 무기력함에 지배당한다. 자신들에게 10대란 미래를 저당잡힌 그저 견뎌야 할 인고의 시간이라 입을 모은다. 자소서라 쓰고, 대학에 맞춰 자기를 각색하는 자소설을 쓰며, 19년의 세월의 축적이 아닌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자존감의 상실을 경험한다. 심지어, 경쟁만이 남은 교실에서 자신보다 못한 타인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자신들이 변태같다고 항변한다.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펼쳐야 하는 아이들은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살다보니 딱히 자신이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조적으로 말한다. 아니 지난 19년의 세월, 잘 하는 걸 찾을 기회가 없었다 토로한다. 이게 입시 교육의 정점에 선 고 3의 현주소라 다큐는 말한다. 

고 3이 아니라면 다를까, 여수 여중 2학년, 매일 매일의 공부를 기록한 블로그를 통해 드러난 아이들의 상황, 공부를 하다 몸이 망가지면, 이렇게 까지라도 해서 열심히 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 안심하는, '열심 증후군'에 빠진 위태로운 현실이다. 더 심각한 건, 이제 중 2밖에 안된 학생이 그런 어려움을 주변인들이 '넌 이것 밖에 안되는 얘야?'라 할까봐,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차마 들키고 싶지 않은 절대 고독, 다큐는 우리 청소년들의 '번아웃'을 그렇게 증명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 교육 현장으로 간 선생님들 - <비긴 어게인> 
초등 교육에서 고등 교육으로 우리 교육이 자행하는 '번아웃의 현장'을 절절하게 그려나간 다큐는 4부에 이르러 뜬금없이 교대 학생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미래의 선생님들과 번아웃이 무슨 상관? 

갓 초등학교에 부임한 교사 조영우 선생님, 그러나 첫 날 부터 선생님은 교대를 다니면 전혀 배우지 않았던 현장의 상황에 부딪쳐 정신줄을 놓게 생겼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선생님은 음식을 넘기지 못할 정도다. 그저 신입이라서라는 핑계로는 막막해 보이는 선생님의 상황, 도대체 그의 지난 4년이 어땠길래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선을 옮겨 지켜본 교대 학생들의 생활은 빡빡하다. 선생님 혼자서 전과목을 책임져야 하는 초등 선생님의 특성때문에, 팔이 여럿 달린 힌두 여신이 그들을 상징하듯, 미래의 선생님들이 대학 동안 받는 수업은 빠듯하다. 이렇게 수업을 받는데 왜 현장에 가면 그렇게 당황하게 되는 걸까?

현재의 교대 수업은 초등 선생님의 기능적 교육 내용에 치우쳐 있다. 신군부에 의해 4년제가 된 교대, 그러나 4년제 사범대의 교육 과정을 벤치 마킹한 현재의 교대 교육 과정은 학생들에게는 현실과 너무 멀리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장에서 선생님이 맞닦뜨리게 되는 건, 20여명이 넘는 학생들만큼이나 다양한 상황, 그러나, 정작 아동 심리라던가 현실 교육 과정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은 교과 수업 전달에 밀려 겨우 명목상의 수업이 되고 만다. 미국의 경우 학기의 시작에서 부터 학년이 마칠 때까지 이루어지는 현장 실습은 겨우 한 달 정도의 형식적 과정으로 지나가버린다. 거기에 4학년만 되면 다시 '인강'을 들으며 교원 임용 교시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에서, 정작 '교사'로서의 제대로 된 준비는 논외가 되고 만다. 

그렇게 준비할 틈도 없이 교과 과정만을 기계적으로 익히고, 거기에 다시 달달 외우는 학습으로 임용 고시를 통과한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 선다. 당연히 학생들과 만날 상황이 아니다. 교사는 묻는다. 입시 교육에만 시달리다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현실과 아랑곳없이 교과 과목만 배우고 현장에 선 선생님들. 과연 준비 없이 교육 현장에 투입된 선생님으로 인한 시행착오는 누구의 몫이 되는 것이냐고. 

동심을 잃은 채 입시 교육으로 내몰린 초등학생들, 그리고 그런 교육을 십 여년 받다 보니 자신을 잃다못해 무기력해져버린 고등학생들, 그리고 그저 교과 내용만 달달 외우는 임용 고시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 교육 현장에 서게 되는 선생님들, 학생들은 '번아웃' 될 정도로 공부를 하지만, 정작 그 교육을 통해 그들은 '자신'을 잃는다. 과연, 현재 우리 교육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다큐는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고. 


by meditator 2018.01.10 19:09

지난 2016년 12월 31일 ebs 장학 퀴즈는 인공 지능 엑소 브레인과 상하반기 왕중왕 김현호, 이정민 학생과 수능 만점자 윤주일,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 오현민 씨와의 대결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결과는 인공 지능 엑소 브레인이 2위와 160점이나 차이나는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이 대결의 참가자였으며 서울대에 진학한 김현호 학생에게 이날의 경험은 허망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김군은 말한다. 방송 전 예비로 시험을 볼때만 해도 엑소 브레인은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 준비 과정과 몇 시간의 녹화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 진화하여,학생들을 압도했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현호씨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다. 경영학과 학생들이 다수 선택했던 회계사란 직업은 20년 안에 없어질 직업의 1순위이다. 동기들과 경영 하나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프로그래밍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까라며 고민을 하는 김씨와 동기들. 



도래할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는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4차 산업 혁명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불투명하다는 고민과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의 교육 과정이 요구하는 학과 중심의 공부를 제쳐둘 수 없기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스스로 소프르웨어를 개발해 내는 중2의 과학 영재 이준서군에게 부모들이 역사 성적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이다. 

4차 산업 혁명과 혼란에 빠진 학생과 학부모들
1월 7일 방영된 <sbs 스페셜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바로 이런 변화하는 세상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교육과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은 도대체 4차 산업 혁명이 뭐길래? 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정보 통신 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4차 산업 혁명은 인공 지능과 로봇기술, 생명 과학이 주도하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듯 일자리, 즉 먹고사니즘의 변화이다. 1,2차 산업 혁명으로 인간의 육체적 노동 부문을 기계가 대신해갔다. 그리고 3차 산업 혁명을 시작으로 이제 4차 산업 혁명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해 가기 시작한다. 

반도체 부품 업체의 인공 지능 로봇 소이어, 기존의 사람들 200명이 하던 일을 소이어의 도움으로 이제 3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다. 알 지 못하는 분야의 일 조차도 하루 이틀 학습을 하면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학습 능력에, 점심 시간, 브레이크 타임은 물론 오버 타임까지도 가능한 24시간 풀 가동하는 소이어의 능력은 바로 미래 사회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로봇의 현주소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호텔에서는 안내, 청소, 요리 등 기존의 사람들 30여명이 할 일을 단 7명만이 필요한 로봇 호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공 지능 로봇의 대두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집약된다. 인간의 지적 활동,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바둑', 그러나 프로 바둑 기사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40여년전 유망 직종이었던 전화 교환원이나 버스 안내양 등이 이제 사라지고, 문선공이란 직종은 그 이름조차 낯설어진 세상처럼, 이제 수십년 내에 우리 사회 직업들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관련 학자 들의 공통된 진단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민은 바로 이런 미래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새로운 가능성이 세상. 
대부분의 4차 산업 혁명 다큐들이 미래의 불가지론에 근거한 불안함과 혼돈을 강조한 반면, 1월 7일 SBS 다큐의 시선은 이와 좀 다른 지점을 포착한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변화에 내던져진 인간의 현실을 기계와 인간의 달리기에 비유한다. 1,2, 3차 산업 혁명 역시 기존의 직업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들은 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봇 공학자 오준호씨는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을 2차 산업 혁명으로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간과 자동차의 달리기를 예로 들며 좌절했던 그 시대의 얼토당토않은 경쟁을 예로 든다. 즉,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그 자동차로 인해 인간의 생활이 보다 편리해진 것이 압도적인 만큼, 소프트 웨어의 발전에 인간은 또한 적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막연한 불안의 대상인 인공 지능, 다큐는, 그 불안의 실체에 과감하게 접근한다. 화제의 인공 지능 로봇 소피아, 로봇으로 최초 시민권을 획득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했던 이 오드리 햅번을 닮은 로봇을 인문학자 최진기씨가 만나, 정해진 메뉴얼없이 대화를 나눠본다. 그 결과는? 최진기씨는 소피아를 '동문서답의 마법사'라 여유롭게 정의내린다. 즉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네킹을 씌워놓은 인공지능 스피커같은 소피아는 프로그래밍된 용어가 들어있지 않은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다큐의 실험에 대해 MIT에서 세계 최초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 낸 로봇 학자 김상진 교수는 확신을 더해준다. 그 최초의 4족 보행 로봇, 하지만, 정작 이 로봇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계단, 문턱, 좁은 골목 등 인간에게는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장애물들이다.

즉, 소피아와 4족 보행 로봇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무시하고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적응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간이 세상의 주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프로그램된 내용의 학습을 통해 인공 지능은 바둑을 이길 수는 있지만, 수세미를 쓰다, 밥풀을 긁어내는 등 다양한 적응이 필요한 접시 닦이를 인공 지능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교육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했다 해서,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되었던 코딩 교육이 2018년부터 중학 과정에서 의무 과정이 되었다. 



코딩의 조기 교육? 무엇이 중한디? 
컴퓨터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사고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코딩, 중학 과정에서 의무가 된 코딩은 34시간을 이수해야만 한다. 34시간은 중학교 전체 과정에서 1%에 불과한 시간, 현장에서 가르치는 김현석 선생은 1주일에 한 시간 가르치는 방식의 코딩 교육은 결국 또 한 과목의 국영수가 될 뿐이라 비관한다. 그러나 현장의 비관과 다르게 유치원에서 부터 코딩 교육은 붐을 이루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 

이런 결국 또 하나의 선행 학습이 되어가고 있는 코딩 교육 붐에 대해, 다큐는 방향을 정정한다. 그 선례로 등장한 건 바로 유투브에서 화제가 된 아빠의 샌드위치 코딩 교육. 동영상의 아빠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아이와 학습한다. 아이가 써준 메뉴얼에 따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는 아빠, 그러나 아이의 어설픈 요리 메뉴얼은 식빵 모서리에 잼을 바르는 해프닝으로 번번히 실패한다. 



코딩의 코자도 꺼내지 않는 코딩 교육, 이것이야 말로, 바로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진짜배기 4차 산업 시대의 교육이라 데이스 홍 교수는 강조한다. 코딩의 관건은, 아니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의 관건은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체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력, 그것이야말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이라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우리 시대의 4차 산업 혁명은 화두이자, 동시에 딜레마다. 교육입국을 앞세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던 그 세대의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시대의 교육에 먼저 한 발을 끼워 넣으려 애쓰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초조함에는 인류로 봤을 때는 진화이지만, 개인으로 봤을 때는 각자도생이라는 진화와 발전의 냉엄한 현실 인식이 기조로 깔려있다.  비감했던 기존의 4차 산업 혁명 다큐와 달리 <sbs스페셜-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는 인간을 낙관한다. 그러나 그 낙관은 잘 준비된 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초조함이 또 다른 국영수 과외 식의 닥달이어서는 안된다고 다큐는 단언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하지만 현실의 교육 제도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만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을 키워낸다며 고삐를 죄는 부모들의 시선을 돌린다. 

by meditator 2018.01.08 16:23

1980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첫 유세 장소로 선택한 곳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알려진 미시시피주 네쇼파 카운티였다. 1964년 흑인 인권 운동가 세 명이 kkk단에 의해 살해된 이래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이곳에서 레이건은 복지연금을 받으며 캐딜락을 모는 시카고의 여성을 언급하며 복지 문제를 인종 갈등으로 국면 전환을 시켜 남부 지역에서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당시 대통령 후보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당연히 복지 무임승차한 여성을 흑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하며 신뢰할 만한 언변에 진실에대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레이건 쇼 ⓒ ebs
뛰어난 배우 레이건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70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재선에 성공한 역대 가장 나이가 많았던 대통령, 8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 대통령만큼이나 익숙했던 그는, 무능과 존경이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지만,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호감도가 높은 대통령이다. eidf 개막식의 자리를 빛내준 파쵸 벨레즈 감독은 바로 이 대통령 레이건의 시대를 <레이건 쇼>라는 제목의 영화로 작품상 경쟁 작품의 대열에 올랐다.

다큐는 레이건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88년 이제 곧 대통령 직을 마무리할 레이건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인터뷰어는 질문한다. 당신이 배우였던 것이 대통령 직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해 '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라고 답한다. 바로 이 레이건이 한 답이 파쵸 벨레즈 감독의 <레이건 쇼>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레이건 취임 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미국은 핵전쟁 위기가 높어져 갔고 그런 위기에 대통령 레이건은 불을 지폈다. 다큐가 주목하는 건 레이건의 정치 행위 방식이다. '한번도 정치가가 되본 적이 없다'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대통령 레이건의 행보는 그 이전의 역대 다섯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상 자료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이 된 첫 해에만 무려 7번의 국정 연설을 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은 tv 쇼의 세트장으로 삼았고, 다큐는 컷 소리와 함께 국민을 향애 유려한 언변을 펼치는 대통령 레이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는다.

그토록 수많은 영상을 통해 국민들을 매료시킨 대통령, 그 저변의 자질은 그가 '배우' 출신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스스로 배우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배역의 소화만이 아니라, 각본까지 해야 하는 대통령 직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로, 좋은 대통령으로 보이는 연출의 과정에 전혀 스스럼이 없었던 대통령.
비록 '조연'으로 배우로서 헐리웃 역사 에서 그 존재감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 호남형의 인상을 지닌 이 배우는 헐리웃 영화에서 매번 성격좋고, 이상적인 영웅상을 맡아왔었다. 그리고 그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대통령의 이미지에 치환시켰다.

레이건 쇼 ⓒ ebs
미디어프렌들리한 정치, 
차기 대통령에 나올 후보들이 일찍이 방송을 타면서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 시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이 그의 정치적 입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절에 레이건의 미디어 프렌들리는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1/3은 정책 구상을 하는 둥하다가, 2/3는 홍보와 행사에 치중했던 대통령 레이건은 2017년에는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정치'에 있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선례를 남긴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라는 점에 다큐는 주목한다.

미디어프렌들리한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시절, 하지만 레이건은 그 질문의 시작이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그에게는 그가 정말 행정부의 수반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미디어를 통해 유머러스한 모습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결단력 넘치는 영웅의 모습을 견지했던 그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참모 의존적이며, 심지어 실제 대통령이 영부인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정도의 반문이 따라 다닌 인물이고, 그 의문에 그는 이란 인질 석방  종종 자신의 정책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실언'이나 '허언'으로 증명을 해냈다.

행정부의 수반답지 못한 무지보다 더 심각한 건, 그의 맹목적인 카우보이식의 안보관이었다. 1983년 역시나 tv를 통해 중계된 대통령의 연설에서 자유 진영 시민들이 맘놓고 살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앞세워 '스타워즈'란 그럴 듯한 허울좋은 명목 하에, 전략 방위 계획을 발주했던 것이다. 소련의 미사일이 닻기 전 격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고 하지만, 언제나 방아쇠를 담길 수 있는 무력 행사에 레이건은 거침없었고, 그런 영웅적 행보에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레이건 쇼 ⓒ ebs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디어 프렌들리 대통령의 발목을 건 건, 그보다 더 미디어 프렌들리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쵸프란 사실이다. 미소의 국제적인 긴장이 세계적 화두였던 시절, 54세의 레이건보다 더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고르바쵸프의 등장은 정책보다 이미지로 정치를 해온 레이건에겐 가장 큰 위기를 불러왔다. '도베랴이 노 프로베라이(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소련어 한 마디 외에 이렇다할 이미지적 각인을 불러오지 못한 미국은 전세계인이 그토록 원하는 핵무기 동결 나아가 폐기까지를 내세운 도발적인 고르바쵸프의 제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던 레이건의 냉전적 이미지는 자중지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노령의 나이에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처음 4년간 히트작만 내다 줄곧 실패작만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는 여전히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유머의 너스레를 떨지만 그 약발은 잦아져갔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대중적 호감도와 별개로 능력있는 대통령의 순위에서 레이건을 찾아보긴 힘들다.  제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을 해도 결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 일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큐는 냉정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을 행위 예술가로 평가하듯, tv에서 먼저 성공해야 대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미디어 정치의 나쁜 선례로서 다큐는 그의 행보를 반면교사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7.08.23 23:25

도시 농업'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는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귀농' 만큼이나,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건 이 시대 삶의 대안적 담론으로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러기에 8월 21일 eidf의 첫 째날 ebs를 통해 방영된 <도시 농부 프로젝트>은 그저 또 하나의 실용적 해외 도시 농업 다큐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본 <도시 농부 프로젝트>에서는  이 영화의 원제 wild plants가 그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한다 싶게, 식물의 철학, 아니 식물을 빌어 인간의 대안적 삶을 모색해보는 삶의 화두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부제는 transform변화이다. 우리 시대의 변화란 기존의 것을 부수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쌓아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큐가 말하는 변화는 전혀 다르다. 



실용적인 농업 다큐에 대한 기대는 오프닝에서 부터 머쓱해진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부터 시작된 서정적인 영상, 그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간다. 마치 '없음'을 상징하는 듯한 겨울을 이제 더는 사람이 머물지 않는 앙상한 폐건물이 대신하고, 그렇게 다큐는 디트로이트란 공간을 설명해 들어간다. 

폐건물더미에서 건져낸 삶과 죽음의 철학 
그리고 다음, 앤드류 캠퓨가 폐허가 된 집기들 사이에서 땅을 판다. 그러면서 '자기 마당의 쓰레기들에서 멋진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 같이 일을 하는 청소년 말릭에게 말을 건넨다. 그 쓰레기들에서 생애 주기를 느끼고 삶과 죽음을 끝이 아니라, 변화로 느껴보라고. 그 흙을 대하는 과정은 종교와도 같다고. 앤드류의 잠언과도 같은 말에 청년 말릭은 래퍼처럼 답한다. 쓰레기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를 하려하면 할 수 있지만, 거기서 삶과 죽음에 대한 경지까지는 어쩐지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이 동문서답같은 앤드류와 말릭의 대화가 바로 이 다큐가 던진 질문의 시작이다. 삶의 문화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거기서 생략된 질문, 죽음 이후, 심지어 죽음 조차도 거창하고 장식적인 형식 속에서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이후에 대한 질문을 잃었다고 다큐는 원주민 노인 마일로 예롱우헤어의 입을 빌어 말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농업'의 의미, 도시 농업, 텃밭 가꾸기는 '자연 친화적'인 삶의 방식으로 존중받는다. 또한 기업화된 식량 생산의 사이클에 대한 대안적 방식의 모색으로도 유의미하다. 그런데 다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제네바의 혁신적 노동조합 자르댕 드 코카뉴에는 젊은 청년들이 여럿 모여 텃밭을 일군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잡초를 뽑는 이들, 심지어 밤에 꿈에 나올 정도라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고된 노동을 선택한 이들에게 텃밭 가꾸기는 식량을 얻는 것 이상이다. '상업적 활동'이 아니라,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계하여, 필요한 만큼의 생산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 그들에게 이 일은 도시에서 원자화되었던 삶을 벗어나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요, 하늘과 생명과 나를 연결하는 과정이 된다. 그 풍성한 활동으로서의 농업은 끝나지 않는 삶의 사이클로서의 자각을 이들에게 일깨운다. 그들에게 식물은 그저 농사의 대상이 아니라, 느리게 사는 삶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다. 여리게만 보이지만 식물 역시 존재하는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쉬지 않는 존재로 이들은 이런 식물에게서 종교와도 같은 영감을 얻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제네바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식물적인 삶(?)은 정치적인 자기 표현이기도 하다. 익명성의 세상에서 협동심을 키우고, 생산과 사람간의 거리를 좁히는, 이 세상의 흐름을 혁명적으로 거스르는 정치적인 '저항'이다. 

이런 과정을 마일로 노인은 '노래'라 칭한다.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 내 피부는 흙과 같고, 내 숨결은 바람이 되며, 내 피는 흐르는 물과 같으니, 우리 인간도 하나의 식물로써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그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안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라코타 어로 노래를 부르는 노인, 그 노랫말은 우리의 할 일은 '창조'를 거듭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식물과 동지가 되어 
그 '창조'의 의미를 오랜 시간을 걸려 실천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제네바의 모리스 마기이다. 늦은 밤 제네바의 거리, 이제 노년에 이른 한 사람이 거리를 헤맨다. 가로등만 덩그러니 서있는 황량한 공간, 그곳에 모리스는 땅을 파고 무언가를 심는다. 모리스의 가방 안에 들어있는 식물의 씨앗, 키 별로 네 종류로 나뉘어진 씨앗들은 거리의 척박한 땅에서도, 심지어 콘크리트 틈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선구 식물들이다. 

선구식물을 자신의 정치적 동지라 부르는 모리스. 사향 엉컹퀴와 같은 이들 식물에게서 삭막한 취리히를 10년안에 숲이 우거진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모리스는 동지애를 느낀다. 척박한 땅과의 싸움을 통해 선구 식물들은 그 보다 순한 다른 식물들도 자랄 수 있는 토양의 개선을 이뤄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없이 홀로 취리히의 거리에 거미줄같은 식물의 지도를 만들어낸 모리스의 행보와 일치한다. 



동지애는 또 다른 도시 디트로이트의 앤드류 부부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처럼 농사를 지었던 할머니 세대의 삶을 이해하게 된 앤드류의 아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이후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졌던 그녀는 식물의 사이클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거름으로서 새로운 순환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의 이해를 열게 된다. 우리가 버린 것에서 다시 무언가를 돌려받는 과정, 생명이 끝난 것 같던 계절 뒤의 새로운 생명의 잉태, 결국 그 과정은 우리 인간의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연다. 끝이 아닌 휴지기, 다시 새로운 생명을 위한 헌신. 그리하여, 삶의 단계는 서로 차별성없이 하나의 순환으로 이해되고, 살아가고 나이들어 가고 변하는 것에 기꺼이 순응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란 등을 둘러싼 해프닝은 결국 우리 사회가 살아가고 있는 담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늘 과잉된 생산물을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자신을 증명하는 세상, 그러나 우리에게 물건으로 행복감을 주는 이 사회를,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그 인간의 수 배, 수십 배, 혹은 수 백배의 동물 등의 잔혹사와 불행을 깔고 앉은 사회라 단언한다. 그리고 그 단언의 재앙을 '계란'이라는 가장 익숙한 소비물품을 통해 확인한다. 그런 현실에대해, <도시 농업 프로젝트>는 '농사'의 기술이 아니라, 식물을 통해 벌어지는 대순환의 사이클에 대한 진득한 천착을 통해 삶의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저 숲에 들어가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도 배움을 얻는 아이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더는 두렵지 않은 부부, 그리고 땀 흘려 일하고 그것을 나누는 기쁨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 젊은이들. 그들을 통해 얻는 건 농사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철학이다. 

by meditator 2017.08.22 16:51

72주년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광복'이란 의미가 다가오는 올해의 광복절, 하지만 그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도 그 흔한 광복절 특집 드라마 하나 없이 영화 <암살>의 재방이 면피를 하고, 한류 뮤직뱅크로 축하를 하는 시절이 되었다. 72년이 지난 광복은 이제 그런 것일까? 세계 역사상 식민지의 기간 내내 독립 운동이 멈추지 않았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는데, 과연 그 자부심을 현재의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걸까? 그 미완의 과제에 성실하게 답한 건 그래도 다큐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음악을 통해,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이 쓰던 암호를 통해 독립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 ebs의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와 kbs의 <독립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는 주목할 만하다.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

우리는 한국 혁명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를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 <압록강 행진곡> 박영만 작사, 한유한 작곡

방송을 통해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이 노래가 나오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 광복군가였다는 이 노래는 7,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회자되던 노래이기도 하였다. 정말 우렁차게 이 노래를 부르면 당장이라도 압록강을 넘어 백두산을 넘을 만큼 열정이 차오르게 했던 노래, '노래'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건너 후손이던 대학생들의 가슴마처 차오르게 했던 이 노래를 만든 주인공에 대해서는 정작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그 작업을 ebs 광복절 특집 다큐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가 <1부 망국의 노래, 깊이 생각>, <2부 중원에서 별이되다>로 다루었다. 

다큐는 이제는 기록에서조차 희미해진 그 노래를 오늘날의 노래로 되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다. 우리 항일 가요의 시작은 1914년 민족 정신을 담은 최신 창가집을 그 시작으로 본다. 광성 중학교에서 발행된 이 창가집은 발행 1년만에 그 일제에 의해 압수, 그 내용이 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독립 운동의 역사 그 갈피갈피에 음악은 함께 했다. 1908년 만주로 독립 운동의 근거지를 옮긴 민족 운동 세력이 명동 학교를 설립하고 영국 국가의 곡을 차용하여 '아무런 일 겁낼 것없구나 정신은 자유요 의기가 용감한' 교가를 만들었다. 이런 민족의 의분이 담긴 교가는 1899년 약관 21세의 안창호 선생은 평안남도에 최초의 사립학교인 점진학교를 세우며 '쾌하다, 장검을 비껴들었네, 오늘날 우리 손에 잡은 칼은 요동 만주에 크게 활동하던 동명왕의 칼이 방불하구나'란 '격검가'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저기 정순이 쉬던데/ 피던 꽃 떨어지고 
뻐국 색도 울고가니/ 지났구나 봄철이   - <저기 정순이 쉬는데>, 동해 수부 작사, 외국곡

의기가 넘치는 곡만 있는건 아니다.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다 처참하게 처결당한 정순이란 여학생의 소식을 전한 미국의 민족 신문 <신한일보>는 정순의 슬픈 사연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저기 정순이 쉬는데>를 발표했다. 당시 음악들을 보면 '항일 의식' 고취를 중요시해 가사는 우리의 손으로 짓는 반면, 곡은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외곡곡을 차용한 사례가 많았다. 이렇게 다큐는 당시 곡들의 특징과 함께, 동해수부나, 한유한 등 그 곡을 만든 이들의 흔적을 찾아간다. 또한 그런 독립 운동 시기의 음악을 꾸준히 연구해온 작년에 돌아가신 후 올해에 이르러서야 <항일음악 330곡집>을 펴낸 노동은 교수를 비롯,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평생을 역시나 일제 하 음악 발굴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한 황선열 교사 등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다큐를 통해 소개된 항일 음악들의 의의는 무엇일까? 일찌기 격검가를 비롯, 최근 우리의 애국가 역시 안창호 선생님을 비롯한 임시 정부 요인들의 합작품이 아닐까 라고 추정되는 20여곡의 음악을 남기신 안창호 선생은 일찌기 음악이 정서와 감흥을 울려 독립 운동의 투쟁심을 끌어내는 건 물론, 치료 효과조차 갖는다'고 주장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이제 역사가 된 항일 음악, 그에 대해 황선열 선생은 손으로 씌여 입으로 향유된 한국 문학의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 장르라 정의내린다. 그 잊혀졌던 장르로서의 항일 문학, 그 복원으로서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독립 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
어떤 분이 얼마나 독립 운동의 주요한 역할을 하셨는가는 독립운동사의 행간마다 만나게 되는 그분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여곡의 작사가로 항일 음악사에서 이름을 남기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존함은 kbs1에서 방영된 광복절 특집 다큐<독립 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1932년 서대문 형무소 안창호 선생이 수감되셨다. 만주와 미국으로 오랜 외국 생활을 하셨던 안창호 선생, 그러기에 조국 독립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나누던 대화에 익숙치 않으셨다. 그런 안창호 선생에게 옆 방의 김정련 선생이 감옥에서의 대화를 전수하고자 나서셨는데, 그게 바로 이 다큐가 첫 번째로 소개한 타벽 통보법이다. 자음과 모음, 숫자 등을 주먹, 손가락, 손바닥을 이용하여 벽과 벽을 통해 전달하는 이 방식은 '내일 오후 두시 만세 시위'라는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 23번의 타벽이 필요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에서 이 타벽 통보법은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 안창호 선생에게 타벽 통보법을 전달하려가 걸릴 뻔한 김정련 선생은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 쓰고 미친 척을 하며 암호를 지켜냈지만, 독방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이렇게 일제 하 감옥에서의 눈물겨운 에피소드를 통해 다큐는 비밀 병기 암호에 대한 기록을 연다. 

그런데 독립운동의 암호 연구에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음을 다큐는 지적한다. 성공한 작전의 암호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즉 작전의 성공은 곧 암호의 비밀 보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암호 연구는 결구 실패한 작전,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흔적을 통해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30년대 호서 은행 불법 금융 사기 사건. 일제는 암호 문서를 단서로 이 사기 사건을 발각하고 1만 7천원을 회수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호서 은행은 지금의 충남 예산에 있던 당시 예당 평야를 배경으로 한 충남의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미곡상 최석영이 서류를 위조하여 여러 은행에서 불법으로 대출을 받은 사건이지만, 그 뒤에는 고향 예산에서 독립 운동자금을 모으려고 했던 독립운동가 신현상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으로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신현상 외 5인을 체포하였던 것.

결국 비밀 병기로서의 암호는, 다른 한편에서 일제와의 피말리는 정보전의 양상으로 진행된을 다큐는 보여준다. 중국 텐진 화평구 일본 조계지의 정실은호 일본 은행이 대낮에 금고가 털린 사건, 이 사건에서 활약을 한건 암호 닭다리라 칭해졌던 권총이었다. 또한 1920년대 만주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우당 이회영 선생이 고국에 보낸 서신에 등장한 새우젓, 골뱅이젓은 당시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접촉할 사람들의 별명, 그렇게 당시 사람들은 친일파는 모이를 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덤빈다 하여 꿩이라 하거나, 밀정을 여우라는 식으로 빗대어 말하는 은어를 흔히 사용하곤 했음을 당시를 연구했던 연구자들의 입을 빌어 밝힌다. 



하지만 이런 은어는 1921년 일제에 의해 발간된 후 보다 체계화되어갔다. 일본 외무성에 남겨진 자료중 가장 오래된 1919년 2월 28일 자료를 통해 본 독립운동의 암호는 자음과 모음을 숫자로 표시하는 식으로 변화해 갔고, 3.1만세 운동 이후 보다 고도화되어갔다. 일본의 감시와 검거가 치열해지는 만큼 암호 체계는 서신용, 전보용으로 분화되고,  자리수가 두 자리, 세 자리로 보다 해독할 수 없는 복잡한 체계로 변화되어갔음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그 변화의 주기도 점점 짧아져 가는 것도 한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독립 운동이 다양한 계열로 분화되어가는 그 양상은 암호에도 반영되어 통일되어 있지 않은 일제에 혼돈을 준 지점이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유격대원들, 일제의 공격을 대비하기 나선 어린 학생들이 방어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잇닿은 산봉오리에서 새오리, 나무통 두드리기, 깃발, 봉화 등 다양한 수단과 방식도 멀리 연길 구룡마을 현장에서 전한다. 

실패한 작전을 통해 유추해본 비밀 병기 암호는, 그 암호 자체로 한편의 첩보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흥미진진했다. 또한 해방의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했던 우리 선열들의 치열한 결과물로써 암호만큼 명확한 증거인 것도 없을 것이라는 걸 다큐는 여실하게 보여준다. 

노래와 암호, 이 전혀 다른 상징 체계, 하지만 그 극과 극의 메시지가 두 개의 다큐를 통해 항일과 광복에의 염원으로 통일된다. 그리고 역사 행간 속에서는 읽어낼 수 없었던 생생하고 치열한 독립의 현장으로 다큐는 우리를 인도한다.  
by meditator 2017.08.16 15:59

아름다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일본 후쿠이현 시카이시 도진보 절벽, 하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두 가지로 갈린다. 그 아름다운 명소를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로 택한 사람들, 도진보 절벽은 '자살 절벽'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그 자살 절벽 주변에서 부지런히 순찰을 도는 사람들이 있다. 13년 째 이곳에서 순찰을 빼먹지 않는 시게 유키오 씨 등의 사람들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 오늘도 20대 여성의 목숨을 구한다. 


이 도진보 절벽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방송을 탄 바 있다. 2013년 9월 <ebs 다큐 프라임-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즉 2013년을 기준으로 8년째 자살율이 1위인 우리의 현실을 다루었던 다큐이다. 



억눌린 감정, 가짜 감정으로 
당시 다큐에서 한 해 평균 17명의 자살 장소로 선택되었던 도진보 절벽, 이 절벽의 이야기로 <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 감정 중독(이하 가짜 감정 중독)>은 시작된다. 그렇게 자살의 대표적 예로 등장했던 도진보, 하지만 <가짜 감정 중독>은 자살을 해야하는 그 이유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일본인들은 자살을 선택했는가? 서양과 달리, 불교와 유교 문화권의 동양에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기 보다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각인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망(がまん) 문화는 일본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참으라고 강요한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을 숨기다 못한 일본인들은 도진보를 찾는다. 

그렇다면 일본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감정 문제를 들여다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정신과 의사가 등장한다. 5년차 정신과 의사 임재영씨가 거리로 나섰다. 자신의 병원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상담만으론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음을 절감하게 된 그는 약물을 쓰기 이전의 상태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리 상담을 자처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평생 3번 울어야 한다'라던가,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넣어선 안된다'는 전통적 감정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쉬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된 감정의 '쿨함' 역시 또 다른 감정의 통제 기제가 된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하는 문화, 그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문제는 이미 새로운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하지만 8월 3일 다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까 감정 중독'을 주목한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제된 사람들은 그 자기 강제된 감정이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화로 표현하는 사람, 화를 내어야 하는데 우는 사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 자체에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가짜 감정에 중독된 상태'라고 다큐는 진단한다.

 

슬픔을 화로, 두려움을 무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진단의 증명을 위해 두 사례자가 등장한다. 
4살과 6살을 둔 엄마 정인수 씨(34), 그녀의 가정은 조용할 날이 없다. 엄마는 그 어느 곳이든 울컥울컥 화를 내고, 그 화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쏟아진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정신을 차린 엄마는 후회하지만, 결국 쳇바퀴돌듯 그 '화풀이'를 되풀이한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공감할 이 장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고 정인수씨는 화라도 내지만 오현정(28)에게로 가면 더 심각하다. <비밀의 숲> 황시목처럼 외과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감정이 없다. 매사에 무표정하다. 

정인수 씨는 상담을 시작하자마다 자책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적어본 감정 노트를 채운 단어는 지친다. 외롭다. 힘들다 이다. 자신의 감정을 채워본 물병만을 봐도 눈물을 터트리는 그녀. 이른바 '독박 육아' 속에서 그녀는 마모되어 가고, 그 마모된 자아는 '화'라는 가짜 감정을 통해서만 폭발해 왔던 것이다. 기꺼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남들에게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그 저변엔 엄마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의 상실감으로까지 뿌리가 드리워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던 오현정 씨의 경우에는 주변으로 부터의 상흔의 결과다. 그래서 늘 관계에 두려움을 가지고 주춤거리던 그녀는 어느 새 마음을 닫고, 그 부작용은 몸으로 왔다. 하지만 울컥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던 그녀가, 병을 가득 채운 자신의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화'라는 감정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현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 외롭고 슬펐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닫아건 마음은 사실 그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운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한 사람들, 놀랍게도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례자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담을 하고,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읽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90일간의 중독 치유 프로젝트, 놀랍게도 사례자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똑같은 사람인데, 화가 잔뜩 나있던 얼굴에 밝아졌고, 무표정했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화장법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관상'이 변한다. 



아이와 함께 친구집에 놀러간 정인수 씨, 아이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잔뜩 찡이 났다. 아이와 함께 조용한 곳을 찾은 엄마, 아이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엄마를 때리며 투정을 부린다. 그때 엄마 정인수씨가 말한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을 테니 말해봐 라고. 그런데 그 엄마의 말이 마법처럼 울며 떼쓰던 아이의 울음을 잦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아이, 결국 엄마의 품에서 감정을 토해내며 풀어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 놀라운 건 매사에 화를 내던 정인수 씨다. 그저 화를 참았는가 싶던 정인수 씨가 아이의 서러움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준다. 정인수씨는 화를 잘 내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작은 슬픔에도 마음이 아픈 너무도 마음이 여린 엄마였던 것이다. 이게 정인수 씨가 찾은 진짜 감정이다. 

오현정 씨 마찬가지다. 늘 상처받을까 무표정에 자신을 숨겼던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흔히 '화'를 잘 내는, 혹은 항상 화가 나있다는 오늘날 한국 사회, 어쩌면 한국 사회의 '화' 역시 삶의 고난과 고통을 방어하는 가짜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말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7.08.04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