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분명16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연쇄 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기까지 허술하기가 이를데 없는 스릴러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최무각(박유천 분)이 흘린 회한의 눈물이 마르기 무섭게 결혼식을 했느니 마느니 하던 무림 커플(최무각-오초림)이 신혼 여행도 떠나지 못한 채 아웅다웅하며 예의 '냄새를 보는' 수사를 하는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기를 빼놓고 혼자 수사를 갔다고 삐지는 스물 아홉 남편, 그런 남편을 꽉 껴안으며 귀여우니 삐지지 말라는 스물 세살 어린 신부, 하지만 그들이 신혼 여행도 미룬 채 자전거를 달려 수사를 하러 가는 모습에선 더할 나위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치매도 아니고. 하지만 뭐 어떤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걸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걸. 그렇게 '바코드 살인 사건'이란 부제를 걸고, 스릴러의 구비구비마다 걸려 넘어지던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이 드라마만이 가능했던 '로코'의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트라우마에 짖눌려졌던 두 연인, 하지만 트라우마 따위 한 방울의 눈물로 날려버리고,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함께 해서 행복한 그 순간을 만끽하는 이 평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그간 어설픈 스릴러에 시달린 마음조차 풀어져 버린다. 


이희명 표 로코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원작이 가졌던 어두운 분위기를 일소하고 한껏 밝은 분위기의 '로코'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처로 고통받던 여주인공은 '냄새를 보는 능력'을 유지하는 대신, 과거의 기억을 잃은 '개그우먼' 지망생의 밝은 캐릭터가 되었다.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사건을 알게 되며 때론 눈물짓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최무각을 만났던 그 미용실 강도 사건 해프닝에서 다짜고짜 사건에 뛰어들던 그 '씩씩함'에, 형사 최무각에게 만담 파트너를 해달라는 대담한 딜을 할 수 있는 '당참'까지, 굴곡진 16부작의 롤러코스터 동안 매력적인 오초림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에 원작에서는 보일듯 말듯했던 캐릭터의 남자 주인공은 동생을 잃은 사연으로 인해 감각을 상실한 최무각이란 독보적인 캐릭터로 돌아왔다. 특히나 두 주인공의 알콜달콩 러브 스토리와 연쇄 살인 사건의 스릴러라는 양 극단의 분위기를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와 형사라는 캐릭터를 오가며 복합 장르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를 가능케 했다. 

무엇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장점은 그간 로맨틱 드라마의 대부분이 실장님, 혹은 그 이상의 남자 주인공과, 그로 인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지만 대신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성의 '신데렐라'식의 스토리였다면, <냄새를 보는 소녀>는 말단 순경과, 개그우먼 지망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연인들의 러브 스토리를 근간으로 삼음으로써, 그 어떤 드라마보다 '보통' 연애의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한다. 더구나, 일방적인 남성의 보호와, 여성의 사랑받음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최무각 순경의 팔을 당차게 밀치고 자신이 그의 어깨를 겯는 장면에서 상징되듯이, 만담도 하고, 수사도 공조하는 '평등한 현실 연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실제 이 커플이 극중 나이 차가 여섯 살 정도가 남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주인공이 '최순경님'이라고 부름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일방적인 방향의 환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연애를 하며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들이 극을 이끈다. 그래서 이 무림 커플들은 세상의 연인들처럼 늘 만나 무언가를 먹고, 길을 걸으며, 함께 버스를 타며 그들이 운명처럼 만난 극적인 사건을 겪어 나간다. 

평범한 연애, 하지만 비범한 연기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한 연애의 일상은 정작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이 되면 매우 고난도의 능력을 요한다. 조금 어색하면 바로 '코스프레'의 티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번 이희명 작가가 욕심내는 스릴러까지 덧붙여진다면, 연기를 하는 배우의 편에서 보자면 '하이 퀄리티한 연기력'을 요하는 장르가 된다. 이희명 표 로코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히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처럼 만담을 하다가, 사건을 수사하고, 알콩달콩 연애를 하다, 자신의 측근을 죽인 살인범을 만나 분노에 떠는 폭넓은 연기력이 아니고서는 <냄새를 보는 소녀>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300년의 시공을 가른 사랑을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풀어냈던 박유천의 선택은 이미 한번의 검증을 끝낸 셈이다. 더구나, 박유천이 <냄새를 보는 소녀>를 하기 전까지 했던, <보고싶다>, <쓰리데이즈> 등의 멜로에서부터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적 경험과, 영화<해무>까지 더해지고 보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스릴러와 로코를 봉합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또한 역시나 <뿌리깊은 나무>, <아이언 맨>, 그리고 <타짜2>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를 보여주었던 신세경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만개하였다. 이 두 배우의 내공과 시너지로, 중반 이후 흔들렸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무림 커플은 굳건하게 <냄새를 보는 소녀>를 지켜낸다. 

그렇게 현실적인 두 연인을 연기한 박유천 신세경 외에, 늘 실장님의 인자한 모습으로 각인된 남궁민의 제 얼굴같았던 사이코패스 연기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한 축인 스릴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침묵 속에 '염미 반장'으로 돌아온 윤진서의 스타일리쉬한 캐릭터 역시 원작의 염미 반장의 카리스마를 잊게 만든다. 그들과 함께, <옥탑방 왕세자>에서 신하 3인방이 개그 코드를 담당했듯, 강력반 형제님 3인방은, 믿고 보는 든든한 조연으로 극을 받쳐준다. 비록 드라마는 들뛰어도, 연기는 그런 들뜀조차 지그시 눌러가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볼 맛을 제대로 지켜낸다.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와 만난 스릴러 
아마도 <냄새를 보는 소녀>가 종영한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아 보라면 분명 그것을 어설픈 스릴러일 것이다. '황금 물고기'는 운운하며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지만, 연쇄 살인마에게 목격자가 살아있다는 힌트를 주고만 천백경 원장의 죽음에서 부터, 드러나지 않은 바코드 0번의 죽음은 물론, 사이코패스가 희생시킨 아홉 사람의 죽음까지, 의문을 가지고 스릴러물로서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보았던 시청자들의 입맛에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도무지 충족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권재희의 처음 알리바이에서부터, 강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설명해 내지 않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 부분을 보면서, 애초에 이 드라마가 공약했던 로코 80%에 스릴러 20%의 그 20%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릴러적 스토리의 20%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이희명 작가가 생각한 스릴러는, 초반 무림 커플이 수사에 발을 들이면서, 냄새를 보는 설정을 이용해, '코난'처럼 좋게 말하면 '쾌도난마'식으로, 따지고 보자면 분위기만 잡다 입수사를 하게 되는 '만화적'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즉, 스릴러라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추리를 하고, 실마리를 따라 사건을 풀어가고, 추적해 가는 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런 사건이 있다, 라는 상징적 스릴러적 분위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패착이라면, 작가의 그런 설정에 대해, 연출진이 지나치게 방점을 부여하면서, 그의 분위기가 슬릴러에 집중되면서, 로코 80%의 전체적인 균형을 흐트러트린 데 <냄새를 보는 소녀>의 패착이 있는 듯하다. 물론 따지자면, 스릴러를 욕심내면서도 전혀 섬세하게 스릴러 장르의 묘미에 천착하지 않은 작가의 탓이 크겠지만, 16부의 완결 과정을 보노라면 애초에 작가는 무림 커플이 작은 사건 수사하듯, 바코드 살인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데, 판이 너무 크게 벌어져 버린 탓이랄까. 물론, 케이블과 미드의 스릴러 물을 통해 높은 심미안을 가진 스릴러 팬들의 증가를 무시한 채 안이하게 극의 갈등이라는 양념 정도로만 스릴러를 써보겠다는 안이한 의도가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어설픈 스릴러에도 불구하고, 이희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15회 비밀의 방 앞에서 죽은 사람들의 생을 기록한 책을 챙긴 채 도망가려던 권재희를 잡고도 최무각은 떨떠름하다. 엄마가 남긴 글을 읽으며 눈물짓는 초림을 보는 그의 심정은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죄를 지은 자가 사법적 심판을 받아도, 피해자들의 상처가 씻겨지지 않는다는데 최무각의 무거운 마음이 놓여져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 초반 최무각은 다짐한다. 내가 살인범을 잡아 죽일거라고. 그리고 결국 16회 권재희는 최무각의 손에 의해 생을 마친다. 물론, 권재희를 죽이고 싶었지만 최무각은 최후의 순간 그래도 법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런 최무각의 결정이 무색하게, 권재희는 그가 경찰들을 죽이고 호송차에서 탈출하는 순간, 즉, 스스로 법의 경계를 벗어나고, 다시 최무각과의 대결에서 그를 죽이려 도발하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해 버린다. 법을 지키려던 피해자, 하지만 결국 가해자는 스스로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피해자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권재희로 인해 동생을 잃은 최무각, 그리고 권재희에게 부모님을 잃은 오초림, 이 사건 피해자 두 사람은 사건 관계자는 수사에 참여할 수 없는 원칙을 벗어나 사건에 참여하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이용하여 범인을 밝혀내고 잡는다. 그리고 결국은, 피치못할 상황 속에서 스스로 범죄를 단죄한다. 

<옥탑방 왕세자>가 300년이라는 시공의 경계가 무색하게 '기억'이 있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라는 사랑의 영원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면, 알콩달콩한 로코와 어설픈 스릴러의 경계를 넘어서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이희명 작가가 어쩌면 말하고 싶은 것은, 고통받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이 무색하게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사연 따위나, 세세한 알리바이 조차 궁금하지 않은 파렴치한 가해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희명 작가가 무림 커플을 통해 한번쯤 질러보고 싶은 것은, 얄팍한 법의 보호가 아니라, 피치못하던 어쨌던, '심판'이 아니었을까? 어설펐던 스릴러, 그리고 그런 약점을 덮고도 남을 현실적 연애, 그런 모든 장치를 걷어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속내다. 하지만, 그런 속내가 제대로 전해졌을지, 그건 스릴러에 분노하고, 로코에 매료된 시청자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5.22 10:12

이제 마지막 회만을 남겨둔 <냄새를 보는 소녀>, 5월 20일 방영된 15회는 드라마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맥시멈을 스스로 증명해 낸 한 회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맥시멈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해 드라마적 흥미를 자아내게 했던 기대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스릴러적 상황과 트라우마의 어설픈 해결
조그만 공터에서 형사들이 스스로 연쇄 살인범 권재희의 도주로를 찾는 대신, 여주인공인 오초림(신세경 분)의 냄새를 보는 능력에만 의지하다, 비가 오니 그 마저도 관두고 목숨이 경각에 놓인 동료가 있는 상황에서 비를 피해 차를 마시러 가는 등, 개를 풀어도 그 보단 낫겠단 말이 나오는 상황을 어찌어찌 봉합하여 드디어 권재희의 비밀의 방을 찾아냈다. 그리고 최무각 형사(박유천 분)의 활약으로 총상을 입은 채 권재희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복수가 법률적 수순에 맞춰 성공했지만 반성할 기미조차 없는 권재희에 최무각은 주먹을 날리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런 미진함과 달리, 최무각의 무감각은 돌아오고, 오초림의 기억도 되살려진다. 그리고 이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애초에 설정했던 권재희의 악행으로 인해 두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풀려진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 속 최무각의 감각 복귀는 그저 밥을 먹다 배부름을 느끼는 것으로 어이없게 설명된다. 봉인되었던 오초림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자다가 부모님의 꿈을 꾸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무감각와 초감감에 흡인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극적인 감동을 주기엔 한참 미흡한 극적 정점이다. 아마도 여전히 권재희에 대한 미진함을 떨치지 못한 무각의 감정처럼, 그저 흘러가듯 두 주인공들은 감각을 찾고, 기억을 찾아버린다. 

오히려 15회에서 공을 들인 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간 장점으로 부각시켜 왔던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데이트씬. 기억을 찾는 오초림과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을 찾은 최무각은 준비한 반지를 전해주려는 고백을 여러 버전으로 상상하는가 하면, 막상 이벤트를 준비하다 실패해 모래 속에 숨은 반지를 찾으려 애쓰는 등 해프닝을 벌인다. 물론, 그 상상의 마지막은 이전의 진부한 자동차 트렁크 풍선이나, 분수대 고백 등의 평범한 이벤트가 아닌, 오로지 <냄새를 보는 소녀>만이 가능한 향수를 이용한 '결혼해줘' 보이는 냄새 고백이었다.

하지만 이 환상적인 고백은 그 이전에 무각과 초림의 트라우마에 대한 회복이 급조한 듯한 모양새로 후딱 넘어가면서, 시청자들이 충분히 이 두 사람의 행복에 대한 심정적 대비를 하기도 전에 찾아와 버렸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좀 더 두 주인공들의 아픔에 대한 회복에 마음이 가있는 상황에, 제작진은 지레 그간 이걸 좋아하셨죠 하면서 하면서 예의 유머를 잔뜩 친 고백씬들을 남발해 버린다. 



드라마가 어설플수록 빛나는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
어설픈 트라우마에서의 복귀와, 장황한 결혼 고백 이벤트라는 어쩐지 균형을 상실한 15회, 그리고 물 속에서 경찰 세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부활하여 결혼식장에서 오초림을 납치하는 전지전능함으로 마지막 회까지 존재감을 떨치는 사이코패스의 압도적인 하지만 지겨운 활약 속에서도 15회를 견디게 만드는 것은 두 주인공의 연기다. 

이미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친절하게 풀어내는 대신, 개그적 코드가 버무려진 데이트씬과, 사이코패스의 악행으로 점철된 양 극단을 불안하게 오고가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흔들리는 극의 흐름 속에서 불친절한 감정씬마저도 연기도 봉합해 오던 것 역시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였다. 작가인지, 감독인지, 편집인지, 흔들리는 원죄의 발흥처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단 한 장면 스쳐가듯 주어진 장면에서도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절절한 눈빛만으로 풀어내지 못한 두 주인공의 상처와 고통을 설명해 냈다. 작가는 자신이 풀어낼 설정을 잊은 채 연쇄 살인범의 악행에 몰입하고, 감독은 중심을 흔들리고, 편집은 들뛰는데도, 여전히 드라마는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이다. 

15회, 그 마저도 한 장면으로 퉁치고 넘어가 버린 이후의 상황에서, 어설퍼져 버린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박유천은 고백의 하지 말아야 할 예로서 작가가 설정해 넣은 한껏 오글거리는 고백씬들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메꾸고 설득한다.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으로 멋짐과 폼남을 접어둔 채, 어설픈 극적 설정들의 빈틈을, 간이 진해진듯한 개그스런 설정들마저 마다하지 않은 채 자신을 던져 가면서 연기로 메꾸어 내는 박유천의 연기는, 그저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와 감독과 배우라는 삼각 편대에서, 뒤처진 나머지 두 동반자를 이끌어 가며 드라마를 책임지는 주연의 자리를 실감케 한다. 마차가지로 몸을 던져 열연하는 박유천의 개그 코드 앞에서 감동스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 내는 신세경은 이 한 컷만으로도 이쁨을 넘어선 성실한 연기의 자세를 가진 여배우의 자리를 증명해 낸다.

물론, 이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전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 1회부터 <냄새를 보는 소녀>가 대중적으로 반응을 얻은 것이 바로 이런 '개그스럽게' 두 주인공이 맞부딪치는 장면들이었기에, 마지막까지, 반응을 얻었던 '촤~'를 남발하여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로서 극이 풀어가야 할 주인공의 감정적 부분조차 대충 넘어간 채 이런 부분에 치중하다보니, 두 주인공에 몰입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몰입을 깨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런 몰입을 깨는 요소를 더한 것은, 그간 복합 장르로서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했던 <냄새를 보는 소녀>가 풀어낸 어설픈 스릴러 코드들이 더한다. 초반 '추리'하는 재미를 더했던 모든 설정들마저, 시청자들은 기억하는데, 제작진은 '퉁'치고 넘어간다. 초반 두 주인공이 말로 사건을 해결하던 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은 사이코패스의 도돌이표 악행으로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자승자박하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웃프게 비밀의 방을 찾는 상황에서, 복수의 딜레마에서 갈등하는 장면들조차, <냄새를 보는 소녀>는 드라마로서 그걸 푸는 대신 온전히 그의 무감각에는 불친절했던 최무각에 의존하고, 박유천은, 단 한 컷으로 그걸 설득해 낸다. 눈물어린 자책의 신세경 역시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한없이 어설퍼진 15회의 스토리를 두 주인공들이 극적인 감정을 오가며, 한껏 무너지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연기로 짊어진다. 그래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허리 풀고 앉아서 허허롭게 웃으며 부담없이 즐기게 되는 드라마로 풀어낸다. 따지고 보면 따질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얼굴 근육을 한없이 일그러뜨리고, 목소리를 뒤집어 가며 자신을 던지며 웃기는 장면마저 열연하는 두 주인공으로 인해 팔짱낀 손이 풀어지는 것이다. 

초생방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환경 속에서 이른바 작가가 삽질을 하면, 연출도 같이 산을 타고, 편집은 칼 춤을 추고, 출연자의 연기 마저도 어색해져 버리는게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가 단순해져버린 갈등 구조, 친절하지 못한 감정선, 그리고 뜬금없는 개그 코드의 치중 속에서도 진지하게 중심을 잡고 시청자들에게 '볼 거리'를 선사해주는 박유천, 신세경 두 배우의 열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보는 소녀>를 막방까지 '닥본사' 해야 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배우가 스스로 개척한 신세계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5.21 11:20
#하나

서재에 들어간 오초림(신세경 분), 쉐프 권재희가 가져오라는 책을 꺼내려다 책장의 다른 책들을 쏟는다. 그 중 하나의 책 사이에서 떨어져 나온 편지, 초림은 그 편지를 꺼내 읽는다. '지금은 오초림이 된 최은설 양에게'로 시작되는 천원장이 남긴 편지, 자신이 최은설이라는 편지 내용에 놀라 눈물을 흘리는 초림, 그 뒤로 권재희(남궁 민분)가 등장하고.


#둘
집에 온다는 아버지에게서 메시지, 그 내용은 모처에 있으니 데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걱정된 초림은 무작정 메시지의 그곳으로 가고, 초림이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쉐프 권의 집, 열려진 문 사이로 권재희의 집으로 들어가 애타게 아버지를 찾는 초림, 그런 초림을 권재희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등장한다. 

#셋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핑계를 대고 권재희 서재에 숨겨놓은 비밀 카메라를 찾으러 들어간 초림, 하지만 그 시간 이미 권재희는 흥신소 직원의 귀뜸을 받고 서재로 돌아와 경찰이 숨겨놓은 비밀 카메라를 찾은 후.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가 있는 서재로 내려오는 초림, 서재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초림과 마주 선 권재희.



이 세 장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극중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권재희와, 권재희가 찾아 없애고자 하는 목격자 오초림이 마주서게 되는 장면이다. 첫 번째는 초림이 목격자라는 증거가 되는 편지를 사이에 두고, 두번 째는 최은설을 딸로 숨기고 있는 아버지를 볼모로, 그리고 마지막은 몰래 설치된 경찰 카메라를 들키고. 권재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음 장면 오초림이 그의 숨겨진 하얀방으로 직행하기에 충분할 조건을 가진 장면이다. 

그런데 이 세 장면의 공통점이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냄새를 보는 소녀>10,11,12회의 엔딩 장면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 흡사한 스릴러적 긴장감, 거기에 유사한 위기, 이게 세 번 연속 드라마의 엔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뻔하고 어설픈 스릴러 
우선은 '무섭다'이겠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며 '만담'까지 해가며 흥미롭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냄새를 보는 소녀>, 스릴러와 로코의 복합 장르를 추구했다지만, 이제 중후반에 들어 매회 이렇게 시청자의 가슴을 '스릴러'적으로 옭아매며 끝을 맺는 이런 엔딩은 최근 시청률 추세에서도 보여지듯이(10회 8.0, 11회 7.5. 12회 6.9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제작진의 기대와 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게다가, 첫 번째 장면에서 권재희 책에서 떨어진 편지를 무신경하게 꺼내 읽는 설정이라던가, 두번째 아버지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권재희의 집인줄 알면서도 역시나 무신경하게 아버지를 찾아헤맨다던가, 심지어 세번 째는 내둥 잘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을 권재희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굳이 레스토랑에 놓고, 경찰이 장착해준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은 채 용의자의 집에 들어가는 어설픈 설정에 이르면 무섭다기 보다는, 위기를 위한 위기의 웃픈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냄새를 보는 소녀>가 연 3회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드라마의 절대 악인 권재희와, 그의 타겟인 오초림을 마주선 장면으로 드라마의 엔딩을 조성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끌려고 하지만, 정작 달달한 로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무섭다'며 리모컨을 찾고, 어설픈 설정에 또 채널을 돌려버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일찌감치 정체가 드러난 악인, 그에 비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주인공을 비롯한 경찰 측, 그런 경찰 측을 희롱하며, 12회에 이르기까지 <냄새를 보는 소녀>는 극적 갈등을 전적으로 권재희의 악행에 의존해 간다. 마침 아침 드라마의 악녀들처럼, 권재희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주인공과 그 주변을 희롱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이래도 저래도 결국 당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점찍고' 돌아오는  클라이막스의 시점까지 말이다. 그리고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에서도 보여지듯이, 단일한 사건을 16부작으로 끌고 가야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를 가진 <냄새를 보는 소녀>의 '근원적' 한계일 것이다. 악의 축은 극명하고, 그 악을 극복하는 16부에 이르기까지, 악은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반대 측은 연신 당하다 마지막에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의 숙명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작 <냄새를 보는 소녀>가 권재희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끌려 엔딩을 장식하는 동안 정작 이 드라마가 애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힐링' 러브 스토리가 짖눌려 버리고 만다. 정작 하고자 하는 바는,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최무각과 오초림의 상처 치유지만, 드라마는 '연쇄 살인'을 설명하느라 골몰하다 보니 '치유'가 하위 범주로 밀려나는 듯 보인다.  


최무각과 오초림의 '어른다운 사랑'
하지만 권재희의 사이코적 악행에 짖눌리기에는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려내는 사랑은 그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려왔던 사랑과 질적으로 다른 성취를 보인다. 

우선 늘 재벌이거나, 준 재벌가쯤 되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고소득 직종이 판을 치는 사랑 이야기에서, '순경' 최무각과, '개그맨 지망생' 오초림의 존재는 평범해서 특별하다. 그들은 그래서 늘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거나 헤어진다. 특별하게 경찰 관용차를 타거나, 택시를 탄는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순경인 최무각(박유천 분)의 소원은 동생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요즘은 경찰들도 기피한다는 강력반에 들어가고자 하고, 개그맨 지망생인 오초림은 개그 무대에 서는 것이 희망이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반에 들어가기 위해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그리고 무대에 서기 위해 만담 파트너로서 최무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의 전개 역시 그간 다른 드라마와 다르다. 누군가 제 3자가 끼어 질투도 하고, 삼각 관계를 일으키며 사랑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여느 사랑 이야기와 달리, 이 두 사람은 수사를 하고, 만담을 하며, 그 사이에 짬짬이 함께 '먹방'을 흐드러지게 선보이며 '썸'을 탄다. 수사와 만담 연습을 빼면 평범한 여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느 연인들같던 이들의 '썸'은 그저 '썸'에 그치지 않는다. 최무각이 오초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자신으로 인해 무대에 설 수 없어 되어 슬퍼하는 동생 또래 여자에 대한 연민으로, 그리고 오초림은 '동생'을 잃은 오빠의 상실감에 대한 헤아림으로 '썸'이 사랑으로 깊어진다. 그래서 감각을 상실한 최무각의 진통제 비용을 아까워하던 가해자 오초림은, 동생을 잃고 마음을 아파하는 최무각을 생각하여 자신이 하고싶은 만담을 포기하고, 최무각은 '아는 동생' 오초림을 생각하여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닌'데도 만담도 하고, 수사도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는 이들의 '이타적인 사랑'의 위기는 오초림인줄 알았던 최은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표방한 '힐링 러브'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11,12회에 걸쳐, 두 사람은 상대방이 동생 대신 죽은 또 한 사람의 최은설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 대신 최무각의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당연히 자신 때문에 최무각의 동생이 죽었다며 죄책감에 빠진 오초림은 최무각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하지만, 최무각은 다르다. 자신의 동생과 이름이 같았던 또 한 사람 최은설에 대해, 그가 주저한 시간은 단 하루, 자신을 기다리는 오초림을 멀찍이 바라보고 자리를 떠난 후 동생과 함께 했던 아쿠아리움을 홀로 찾던 그는, 의연하게 슬픈 눈을 하면서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초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에게 하듯 '이쁘다'고 얼굴을 쓰다듬고, '자신에게 시집오려면'이라고 은근슬쩍 '청혼'의 운도 띄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듯, 자신의 원망을 '너때문에 내 동생이 죽었다'고 쏟아붓는 대신, '어른답게' 또 한 사람의 희생자인 최은설을 보다듬는다.

최무각의 동생이 자신때문에 죽었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오초림의 손을 잡고, 너 때문이 아니라고, 니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 남자' 최무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면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자고 말한다. 역시나 제주도가 고향인 최은설에게.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이런 최무각의 어른스런 사랑에 인색하다. 그의 동요는 짧고, 고민은 스쳐간다. 오초림의 고뇌도 마찬가지다. 최무각과, 오초림이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며 사랑을 키우고, 위기의 순간에조차 어른스럽게 처신하는 성숙한 사랑을 그려가지만, 언제나, 그 사랑의 빛깔은 연쇄살인마의 스릴러에 희석되어 버린다. 극은 결국은 허무한 해프닝으로 어설프게 당해버리는 연쇄살인마의 악행에 치중하는 동안, 두 사람의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몇몇 투닥거리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그렇게 성의없이 끼워넣듯 등장한 장면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배우들이다. 권재희 난을 되풀이하는, 그리고 어이없는 설정들이 난무하는 어설픈 스릴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인내하게 만드는 건, 재미처럼 끼워넣은 최무각, 오초림의 장면에서, 일렁이는 눈빛을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슬픈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이다. 방향을 종종 놓치거나, 뻔해 보이는 드라마 속에서, 섬세한 결로 '어른 남자' 최무각의 진심과 자신을 던져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돕고 싶어하는 순수한 여자 오초림을 배우들의 연기로 그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래도 <냄새를 보는 소녀>가 뻔하고 어설픈 스릴러를 넘어  아직은 포기될 수 없는 미덕이기도 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5.08 10:12

<냄새를 보는 소녀> 2회 초림(신세경 분)과 무각(박유천 분)의 만담 개그씬, 

무각;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데, 아이스크림을 두 배나 담아줬어, 이거 그린라이트 맞지?
초림; 아니 그건 1+1 행사한 거야
무각; 그런 거야~?

이 웃기자고 등장한 1+1 그린라이트는 실제 <냄새 보는 소녀>에서 상징적 설정이다. 극 중 여주인공 오초림은 무각의 여동생 최은설과 동명이인으로, 연쇄 살인범은 해녀 부부를 살해하는 과정의 유일한 목격자 오초림을 살해한다는 것이 그만 무각의 여동생 또 한 명의 최은설을 살해하고 만다. 그 이유는 7회에서 밝혀졌듯이 연쇄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의 안면 인식 장애 때문이었다. 결국 한 명인 줄 알았던 최은설이 두 명이었던 것이다. 5회 무각은 동생을 떠오리며 산 말하는 인형을 하나 더 사 초림에게 건네 줌으로써, 1+1의 상징성을 더한다. 



조미료가 되어버린 무림 커플 '보통의 연애' 
하지만, 그렇게 동명이인 최은설을 둘러싼 미스터리만이 1+1이 아니다. 목격자 최은설의 교통사고로 부터 풀어지기 시작하여, 3년이 지나, 이제는 오초림과 최무각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연애 + 바코드 연쇄 미스터리 라는 로코+스릴러의 1+1의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천백경 원장(송종호 분)의 죽음과 함께 목격자 최은설이 생존해 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로코와 스릴러는 쉽게 '그린라이트'가 켜지지 않는다. 물론 미디어 콘텐츠 영향력 조사나, 다운로드 등의 수치 상에서는 동시간대 타 드라마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막상 보수적 시청자 층을 대상으로 한 시청률표에서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딜레마'의 반증의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로코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는 그간 여느 로코에서와는 다른 지점의 연애를 선보인다. 늘 '실장님'이거나 그 이상의 전문직이었던 주인공들은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갑남을녀'가 되어 등장한다. 경찰서의 말단 직급인 '순경'과 개그우먼도 아니고, 개그우먼 지망생인 오초림의 연애는, 그들의 미천한(?) 사회적 존재만큼이나 신선하다. 마치 <마녀 사냥>에 등장하는 사례 중 하나를 보는 것처럼, 속은 따스하지만 무뚝뚝한 눈치없는 남자 최무각과, 통통 튀는 캐릭터 만큼이나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사랑 초년생 오초림의 사랑 만들기가 신선하기 그지없다. 사건 수사를 하자며, 혹은 만담을 빙자하여 가랑비에 옷 적시듯하다, '키쓰'까지 진도를 빼고도 '사귀니 마느니하며 투닥거리는 '무림' 커플의 '보통' 연애가 마치 우리 주변 누군가의 연애를 관음하는 듯 느껴지는 묘한 감흥을 준다.

'이게 그린라이트야'라며 만담을 하듯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가 여느 드라마의 연애와 달리 현실감있게 시청자들에게 흡인되어 가는 한편, 마치 2인1조 탐정단처럼, 미용실 강도 사건에서 부터, 도박장이 된 닭죽집까지 종횡무진 활약을 하던 이 커플은 이제 중반을 들어서 그들의 연애가 본격적이 되면서, '바코드 살인 사건'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드라마에서 어쩐지 한 뼘쯤 밀린 느낌을 준다.



발군의 연쇄 살인마 권재희
이번 주 방영된 9.10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이코패스 권재희의 능력이다. 이미 7회에서 경찰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기막힌 알리바이를 시간 차로 짜맞추는 능력을 통해 경찰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능력을 선보인 바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목격자 최은설의 생존을 추적하는 권재희의 관심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경찰 들을 농락하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하게 'DNA' 조사에 참여한 권재희의 트릭에 경찰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농락당하고 만다. 이미 컨테이너 창고에서 피습된 최무각 형사를 볼모로 권재희를 잡고자 놓은 병원씬의 덫에서 한 차례 자유롭게 빠져 나간바 있던 권재희가 다시 한번 자유자재로 '바코드 사건 전담팀'을 농락하는 과정,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사과하러 온 최무각 형사의 핸드폰에 스파이 앱을 깔아, 경찰 측의 동정에 쉬이 접근하는 과정은 병원씬에서 그나마 1:1을 주장하던 경찰 팀에게 무기력한 패배를 연속적으로 선사하며 응원하는 시청자들 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부제를 '바코드 살인 사건'이라고 내세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인 연쇄 살인마 권재희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드라마의 관건이다. 더구나 드라마가 이제 중반에 이를 즈음에 결정적 패를 까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에 있어서 그 점은 더더욱 중요한 시청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제 아무리 매력적인 사이코패스라 해도, 결국은 '악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냄새를 보는 소녀>의 권재희같이 '살인을 즐기는 듯한 사이코패스'임에랴, 더더욱 '연민' 따위를 느낄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악행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9,10회는 시청자들에게는 마치 자신들이 권재희에게 심리적 폭행을 당하는 듯한 아픔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이희명 작가는, <옥탑방 왕세자> 방영 당시 '세나의 난'이라 칭해지는 악녀의 악행에 치중하여 애청자들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후속작 <야왕>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주다해의 악행으로 점철된 스토리로 '막장'의 오명조차 쓴 바 있다. 산뜻하게 출발한 <냄새를 보는 소녀>였는데, 중반에 들어서서 다시 권재희에 집중을 하게 되니, 이희명 작가의 전작을 본 시청자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악행으로 추동되는 안이한 전개방식
하지만 이희명 작가 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병폐 중 하나가, 드라마의 추진력을 역동성있는 악행의 반복에 의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만이 아니라, 외국 영화나 미니 시리즈에서도 매력적인 악인이 주인공을 압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최무각과 비교 기사까지 난 바 있는 <셜록> 시리즈의 경우 소시오패스 셜록에 대비되는 사이코패스 모리아티 교수가 악의 축으로 드라마를 이끈다. 하지만, 막상 <셜록> 시리즈를 보면, 구구절절 모리아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가장 간략하게 궁극적으로 모습으로 드러냄으로써 그 존재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다. 여느 범죄였던 사건이 수사를 진행함에 따라 가공할 만한 음모로 드러나고, 그 끝에 존재하는 모리아티라는 인물이, 사건의 극악함을 최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셜록>에서 종횡무진 치고 받는 것은 셜록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사력'을 풀어낼 능력이 부족한 스토리의 경우, 가장 안이하게 '악을 설명하는' 것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이제 중반에 들어선 <냄새를 보는 소녀> 역시 그 길을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경찰들은 안이하게 병실에서 총을 들고 설치다 지나가다 그걸 본 권재희에게 당한다. 그러는 동안 드라마는 공을 들여 권재희의 알리바이를 설명하고, 다시 목격자의 집을 찾다 경찰과 마주치고 'DNA'를 역이용하여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권재희를 그린다. 드라마에서 가장 안이하게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방식 중 하나인 남자 배우의 웃통 벗기기를 장시간 권재희에게 할애하듯, 역시나 안이하게 권재희란 인물의 악행을 공들여 그려낸다. 스릴러의 주된 부분이, 악인을 설명하는데 할애되는 것이다. 

그렇게 악인을 공들여 설명하다 보니, 실제 주인공 최무각은 몸을 던져 범인을 쫓다 칼을 맞고, 차에 치이며, 권재희란 인물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는데, 그 실감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미 1,2회부터 '무감각'한 캐릭터 설명에 무심했던 드라마는, 온전히 그 모든 것을 배우의 개인적 능력에 맡긴 채, 무감각하게 스쳐간다. 이전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로코와 스릴러의 행간을 메꾼느 것이 최무각이란 캐릭터인데, 제 아무리 박유천이란 배우가 자신의 연기력으로 커버한다 해도, 차에 치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쳐 버린 장면에서 역부족인 것이다. 앞부분 레스토랑 살인 사건이나 닭죽집 사건에서, '스릴러'의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그래도 '무림' 커플의 사건 해결의 통쾌함으로 '스릴러'의 난해함을 퉁친 면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7회 이후 염미(윤진서 분)가 제 아무리 1;1이라고 해도 맨날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드라마에 계속 시선을 고정시키기는 힘들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이어질 후반부에 최무각을 중심으로 한 역공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16부의 호흡에서 악인에 대한 기반을 마련해 두고자 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리모컨을 드는 시청자들에게 16의 호흡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더구나, 남자 배우 웃통 벗기기처럼, 악행을 설명하는 식으로 '스릴러'을 이끌어 가는 방식은, 이미 케이블 등의 스릴러 물이나, 미드 등을 통해 높아진 스릴러 팬들의 관심조차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기왕에 '로코'와 '스릴러'의 1+1의 난제에 도전한 <냄새를 보는 소녀>가 부디 그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5.01 08:31

8회를 경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관전 포인트는 제주도 해녀 부부 살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그의 딸, 최은설이었던 오초림의 존재를 과연 최무각과 권재희 중 누가 먼저 알아낼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이다. 또한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스윗가이'이지만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번에 칼을 그어 죽여버리는 잔혹한 살인을 서슴치 않는 냉혈한 사이코패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모습으로, 따스한 마음으로 자신의 동생과 그리고 이제 상처많은 오초림과 사랑을 가꿔가는 '온기넘치는' 무감각한 최무각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있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신경전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최무각을 연기하는 박유천과, 권재희를 연기하는 남궁민 두 사람의 연기 자체이다. 



로코와 스릴러의 간극을 봉합하는 박유천의 '평범한' 최무각
8회에 이르러 이제 대놓고 '키스'까지 한 최무각을 두고 그가 '무감각한' 존재가 맞냐는 설왕설래가 있다. 이는 극 초반 얼굴에 피가 흐르고, 팔이 빠지면서도 범인을 향해 돌진하던 '무감각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탓에, 시청자들이 지레 그의 '무감각'을 '무감정'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회 오초림을 부르는 '최은설'이라는 한 마디에 대번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이 남자, 그의 무심한 표정은 동생을 잃고, 감각마저 잃고 삶의 의미를 잃었던 상실감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오초림을 만나 변화해가는 최무각이 설명해 낸다. 그래서, 강력계에 들어갈 욕심으로 '냄새를 보는' 오초림과 딜을 하기 위해 마지 못해 참여한 '만담' 과정에서 능청스레 변하던 그의 표정은, 오초림과 '썸'을 타며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런데 그게 안쓰럽다. '동생 바라기'였던 장난기많은 한 남자가 그 동생을 잃고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던 '무감각한' 시간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생 또래의 오초림을 만나, 그녀의 틈을 헤집고 그녀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깊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저 '남녀 사이'를 넘어, 최무각이란 인물이 얼마나 따스한 인물인가를 알수 있도록 박유천은 '온기있는' 남자 최무각을 구현해 낸다. 

'로코'와 '스릴러'라는 무모한 결합을 시도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두 극단의 장르의 이질성을 결합하는 건 실질적으로 온전히 박유천의 몫이다. 7,8회, 오초림을 만나 현실의 남자처럼 뒤끝 넘치게 '썸'을 타는가 싶더니, 동생을 죽였다고 믿었던 천백경의 죽음을 확인하고 지하주차장이 뒤흔들릴 정도의 '절규'를 한다. 막내로 들어간 수사반에서 그 누구보다 '촉'이 빠른 수사관이요, 처세에 능한 신참이다. 브리핑 현장에선 '쪽집게 강사'저리 가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사 상황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홀로 나간 컨테이너 수사 현장에서, 칼에 찔리고도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아차리고 땅에 고꾸라지는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극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췌~'를 연발하는 코믹한 캐릭터와, 눈물어린 절규,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피습씬까지, 도저히 화합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박유천이란 배우의 내공으로 온전히 풀어낸다. 그래서 때로는 무리수같은 개그씬도, 어설픈 수사 상황도, 장르적 분위기가 생소한 스릴러의 장면도 박유천이 풀어내는 연기의 스펙트럼 안에서 자연스럽게 봉합된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박유천의 연기가 보여주는 강점은 그가 이 작품을 하며 내보인 '평범한 연기'의 비범함에 있다.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가 되었던 연예계 11년차의 그는 가장 평범한 현실 남자의 그것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동생을 잃은 따스한 남자, 사랑하는 이를 잃어 감각을 잃은 상실감, 분노,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자연스레 빠져들어가는 젊은 남자의 그런 것들을 스물 아홉 최무각이란 우리 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로 구현해 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그것으로 설득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적 널뛰기를 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박유천이 해석한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아픔, 고뇌, 설레임, 분노를 통해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어간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가 구현내 내는 우리 곁에 살 것만 같은 최무각에게서  불과 몇 년전 같은 작가의 작품이었던 <옥탑방 왕세자>에서의 이각, 역시나 같은 형사였던 <보고싶다>의 한정우, 비슷한 직업군이었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심지어 바로 전에 했던 <해무>의 동식과의 유사점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욕심많은 배우의 한계가 어디인가 궁금해질 정도로. 



압도적 존재감의 사이코패스 권재희, 남궁민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천백경(송종호 분)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황금 물고기는 외로운 남자를 만나야 해'라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와, 그에 근거한 '황금 물고기', '외로운 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권세프에게 사로잡혀 있는 동안 천원장이 쓴 일기로 인해 권재희는 이제 8회까지 진행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용의자 오초림의 존재에 가장 많이 접근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한 발 한 발 사건에 접근해 가는 것만으로도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청자들은 가슴이 '쫄려온다' 그의 접근을 기대하고 잠복해 있던 병원의 최무각 팀들에게 보기좋게 '이벤트 남'을 통해 한 방을 먹이고 유유히 드뷔시의 '달빛'의 볼륨을 높일 때, 역대 그 어떤 사이코패스 보다 버전이 높은 권재희의 면모는 단숨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의 면모을 배가시키는 건 남궁민의 존재다. 

첫 회부터 주마리의 애인으로, 레스토랑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그리고 이제 죽은 천원장의 측근으로 그의 장례까지 치뤄주는 그가, 용의자 키 178~180 정도의 근육질 체격의 서울 말씨를 나긋나긋하게 쓰는 남자와 가장 유사한 외모를 가졌음에도 가장 유사한 존재임에도 쉽게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스윗함'이다. 매번 용의선상에 올라감에도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여유로움, 다짜고짜 팔을 꺽고,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불손함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처세술에, 끈 떨어진 오초림을 거둬주는 자애로움, 거기에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잘 나가는 쉐프라는 직업까지,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으로서 권재희를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여심을 울렸던 남궁민은 가장 자연스레 구현해 낸다. 

하지만, 그의 색다른 면모는, 6회, 그 부드러운 얼굴에서 눈빛 하나만 바뀐 순간, 시청자들이 소름끼치게 연쇄 살인범의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부터 빛을 발한다. '연쇄살인'이란 미니 시리즈로서는 부담감있는 설정을, 가장 '스윗한' 연기에 일가견있는 잘 생긴, 심지어 바로 얼마전에 '가상 결혼'을 통해 연예계 화제가 돠었던 잘 생긴 남궁민이 연기함으로써 '살인 사건'을 마주하는 찜찜함을 한결 완화시켜 주는 동시에, 그 캐릭터의 간극으로 인해 스릴러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의 연기적 변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일찌기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인성의 친구로 그를 배신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한 민호 역의 남궁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작인 <로맨스가 필요해2>나,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역시 신비로운 비밀을 지닌 음모적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서사의 시작과 상관없이 언제나 로맨틱 멜로물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이들 드라마는 남궁민이란 배우의 입지를 여주인공 바라기만으로 소모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연기적 스펙트럼은 장르물까지 펼쳐졌지만, 언제나 그의 연기는 '멜로'의 틀 안에서 숨죽여 왔었던 것이다. 그러던 남궁민이, 그가 가진 연기적 잠재력을, 지금까지 그 어떤 사이코패스보다도 극과 극을 오가는 권재희라는 인물을 통해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잔잔하게 미소를 띠며 '내가 죽였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남궁민보다도 전율을 일으키며 연기할 배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는 남궁민으로 인해 완성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24 10:22

2012년에 방영한 이희명 작가의 <옥탑방 왕세자>는 300년전 조선에서 현재로 온 왕세자의 세자빈 살인 사건과 진정한 사랑 찾기가 극의 주된 이야기였다. 300년이란 시공간을 둔 과거의 왕세자와 현재의 박하가 나누는 사랑은 시대를 건너뒨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기억'을 매개로 한 절절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으로 마무리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이런 기막힌 사랑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점철한 이른바 '세나의 난'이라고 애청자들이 질타했던 진짜 세자빈의 악행은 순순한 사랑 이야기에 옥의 티가 되어 <옥탑방 왕세자>의 완성도에 누를 끼쳤다. 

2013년에 방영된 <야왕>은 비록 최고 시청률 25%를 육박하며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인기의 원인은 '막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밑도 끝도 없는 주다해의 악행이었다. 박인권의 <대물;야왕전>을 모토로 시청자들은 그녀의 악행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어설픈 기업물에, 개연성이 희박한 악행과 복수의 연속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2015년 이희명 작가가 <냄새를 보는 소녀>라는 웹툰을 원작으로 로코와 스릴러를 융합한 복합 장르로 돌아온다고 하였을 때, 역시나 복합 장르였던 <옥탑방 왕세자>의 미완성도와, 또 역시나 만화를 원작으로 하였으나 '막장'으로 치달았던 <야왕>을 기억하던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무색하게, 이제 7회를 맞이한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코'와 '스릴러'라는 양 극단의 장르를 기가 막히게 융합해 내는데 성공한다. 초반, 로코와 스릴러의 장르 사이에서 갈짓자를 걷는가 싶더니, 7회에 이르러, '천의무봉'(하늘 나라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 즉 꾸민데 없이 자연스럽다)이란 사자성어처럼, 어디가 로코이고, 어디가 스릴러인지 구분이 안갈 만큼 시청자들이 한 시간 남짓의 방영 시간 동안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로코와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5회 초 레스토랑 쉐프 살인 사건 수사 과정에서 냄새를 쫓다 범인에게 쫓기는 오초림(신세경 분) 앞에 느닷없이 최무각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오초림의 힌트 하나로 대번에 대마초를 키우는 꽃집과 쉐프를 죽이는 범인을 찾아내는 사건 때만 해도, '입수사'가 아닌가 싶게 최무각에 의해 마무리되는 사건이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건의 흐름이 6회 백숙집 비밀의 방에서 되풀이 되면서, 이제 이것은 어설픔이 아니라, <냄새를 보는 소녀>만의 독특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치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일련의 사건의 정황이 펼쳐지고, 그 모든 것이 코난의 정리 한 방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처럼, 매회 해프닝처럼 제시되는 사건은 만화처럼 가볍게 최무각(박유천 분)의 정리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해 '만담'도 하고, '사건'도 해결하기로 약속한 최무각-오초림 커플의 활약이 '주'가 되는 것이다. 사실 엄밀히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에 기반한 사건 해결이기에 '과학 수사'로서 애초에 어패가 있는 설정을 가볍게 풀어가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두 연인의 '썸'인듯, '썸'이 아닌 '로코'적 관계에 방점을 찍는 것이 <냄새를 보는 소녀>만의 장치이다. 

사건 수사에 함께 한 오초림이 위험해 질 수 있음을 느끼자 그녀를 사건에세 배제시키려는 최무각의 무심한 듯한 한 마디는 그 어떤 연인의 보살핌보다 은근하고, 그런 최무각의 걱정에, 최순경님이 나를 지켜주면 되잖아요 라는 오초림의 대답은, 직설적인 사랑 고백보다도 짜릿하다. 이제 7회에 이르러, 최무각은 그렇게 지켜달라는 그녀에게, 내가 옆에서 위험하지 않게 해주겠다며 화답한다. '남자 친구'는 아니라고 뻔뻔하게 고개를 젖지만, 함께 밥을 먹고, 현장 검증한답시고 '뽀뽀'까지 해버리는 이 커플의 알콩달콩 '썸'은 '수사'를 타고 기가 막히게 진행된다,



1회적 사건을 넘어선 복선
하지만 이 무감각-초감각 커플의 사건 수사가 그저 연애의 진행을 위한 보조 수단만은 아니다. 6회 포상으로 간 닭죽집에서 '라면' 냄새를 매개로 밝혀낸 '비밀의 방' 사건은 이후, 세프 권재희의 비밀의 서재가 보여지면서, 그저 1회성 사건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7회, 초림의 친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되어 최무각-오초림 커플이 수사를 하게 된 '인천 차이나 타운 알리바이 사건'의 한 편에서 천백경을 죽인 권재희의 치밀한 알리바이 조작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뜬금없이 등장한 자잘한 사건들이 의미심장한 커다란 '바코드 연쇄 살인'의 복선으로 등장하며, 이후 그 사건들이 권재희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을 밝히는데 결정적 단서로 자리매김할 것을 드라마는 예고한다. 

사건만이 아니다. 극중 등장하는 각종 상황들조차 의미심장한 복선으로 자리매김한다. 동료 형사와 헬스장 트레이너가 공모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하여, 최무각이 거리에서 산 인형으로 이어진, 1+1의 설정, 그리고 자신에게 전해준 인형에서 최무각이 동생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듣고 되물리는 과정에서 등장한,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덤'이냐는 질문은, 결국 같은 최은설이지만, 두 사람이게 되는 오초림과 최무각의 동생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나인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둘인, 애초에 최무각에게는 자신의 동생만 진짜였고, 오초림은 덤처럼 등장하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본말이 전도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의 본질을, 드라마는 빈번하게 암시를 준다. 그 어떤 우스운 상황도 그저 지나칠 수 없는 묘미를 가진다. 



리메이크를 넘어선 창작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취 작가의 동명의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이 웹툰이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반기면서도 가장 많은 우려를 표명했던 것은 바로 웹툰의 애독자들이었다. 심지어, 이 웹툰이 '로코'화 된다고 했을 때, 반기를 들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웹툰<냄새를 보는 소녀>를 고스란히 느끼기는 힘들다. 웹툰이 로코화 된다고 했을 때 애독자들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이 원작이 가지는 음습한 분위기에 기인한다. 냄새를 보는 여주인공은 부모님이 죽은 기억은 물론, 그 과정에서 괴물처럼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중 '냄새를 보는 능력'만을 가지고, 부모님을 잃은 기억을 잃은 오초림으로 돌아온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한결 가벼워졌다. 원작은 원작만의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드라마로 하기엔 어두운 분위기를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일소해 버렸다. 

소녀만이 아니다. 지금 극의 중심을 이끌어 가고 있는 '바코드 살인 사건'의 범인 권재희는 웹툰의 '콜렉터'편과 유사하다. 만화 속 콜렉터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학대를 타인의 삶을 기록하고 그를 죽이는 범죄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다. 드라마 속 권재희는 그 기록을 '책'으로 대신한다. 만화 속 콜렉터는 어두운 지하도 구석에 아지트를 마련했지만 잘 나가는 쉐프 권재희는 그의 집에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만화 속 한량없이 어두었던 공간을 화려한 쉐프의 레스토랑과 집으로 드라마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웹툰에서 미처 그려지지 않은 듯했던 남자 주인공의 설정은, 거기에 동생을 역시나 바코드 연쇄살인으로 잃고 감각조차 잃은 사연을 통해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 진다. 어디 그뿐인가, 웹툰에서 양념처럼 등장한 잃어버린 강아지 찾기등의 사건이, 권재희 쉐프의 애완견 뭉치를 오초림이 찾아주는 스토리로 역시나 적절하게 씌인다. 분명 원작의 어느 곳에선가 만날 수 있는 설정들이, 마치 풀어헤친 퍼즐이 새로운 그림을 완성하듯,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로 재탄생된다. 

이렇게 이희명 작가는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이희명 표 로코와 스릴러의 완벽한 융합물 <냄새를 보는 소녀>로 재탄생시켰다. 함께 '만담'도 하고 '수사'도 하는 최무각-오초림 커플은 매회 사건에 뛰어들면서 야곰야곰 사랑도 키워가고, 거대한 바코드 연쇄 살인의 실체에 다가가는 중이다. 물론, 7회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연쇄 살인범 권재희의 악행이 이희명 작가의 전작처럼 완성도에 폐가 될까 우려는 되지만, 7회 정도의 절묘한 배합이라며, 이번에는 이희명 작가를 믿어보고 싶어진다. 부디 이렇게 마지막까지 정진하여, '로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어려운 시도를 성공하기를 바래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23 06:41

'우연희 내게 오나봐, 봄 향기가 보여'

<냄새를 보는 소녀> ost 중 '우연희 봄'이라는 노래이다. 그 노래의 봄향기처럼, 최무각(박유천 분)에게 '동생'이 왔다. 물론 지금은 '아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동생이다. 하지만, '아는 여자; 였던 그 관계는 이제 차츰, 스며드는 향기처럼 '동생'에 더 방점이 찍혀간다. 

최무각에게 '동생'이란 어떤 존재일까? 제주도에서 아직 동생이 죽기 전, 수족관을 찾아와, 상장을 자랑하던 동생에게 최무각은 '아유, 내 새끼'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가 오빠 자식이냐며, 그래서야 장가는 가겠냐며 퉁바리를 주는 동생에게, 최무각은 너를 시집보내놓고, 나는 장가를 가든가 말든가 하는 동생 바보다. 아니, 그에게 동생은 정말 자식같은 존재였다. 그런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작은 상처로 간 응급실에서 비명횡사를 하고 만다. 더 억울한 건 도대체 누가, 왜, 동생을 죽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동생을 잃은 상실감에 잠도 잘 수 없었던 최무각은 며칠인가 잠을 못이루며 괴로워하다 수족관에서 정신을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감각을 잃었다. 그리고 무능한 경찰이 원망스러운 최무각은 스스로 범인을 잡아죽이겠다며 경찰이 되었다. 



최무각의 변화
그리고 3년이 흘러, 그의 앞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동생을 잡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강력반에 들어가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그의 앞에, '수사를 도울테니, 만담을 해달라는' 이상한 여자가 말이다. '이 여자야, 지금이 그럴 때니!'라며 힐난하던 최무각은 그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범인을 잡는데 매우 탁월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냥개처럼 그녀를 데리고 범죄 현장으로 향한다. 대신 만담 파트너를 해주고. 

그렇게 호혜적 쌍방간의 이해 관계로 만났던 두 사람, 5회에 들어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사빠'처럼 첫 만남부터 자신을 질주하는 차로부터 구해주던 최무각에게 눈빛이 흔들리던, 그리고 자신의 본래 눈빛을 보고 자신 역시 괴물이며 외계인이라 말해주는 오초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밥을 먹어도 배부른 걸 느끼지 못한다는, 그리고 상대에게 진탕 얻어 맞아도 눈빛하나 흔들리지 않던 최무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무각과의 만담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오초림의 말에 최무각의 눈빛이 흔들린다. 약속을 어긴 최무각 때문에 개그 극단에서 쫓겨나고, 술에 취해 경찰서까지 데리고 온 오초림을 최무각은 한참이나 들여다 본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를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하더니, 이제 5회에서는 그 예전 동생에게 주었던 인형을, 동생을 생각하며 그녀의 납골당에 다시 갖다 놓았던 인형을 1*1이라는 핑계를 대며 오초림에게 준다. 무엇보다, 동생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최무각이 그의 최고의 수사 비법이던 오초림을 포기하겠단다. 그녀가 위험에 빠질까봐. 

뿐만 아니다. 이 사람이 무감각한 남자가 맞나 싶게, 최무각의 변화가 짚어진다. 드링크제를 사들고 경찰서로 찾아온 그녀가 신경쓰이고, 그녀가 다른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더 신경이 쓰인다. 어느새, 우리 오초림이란다. 그러곤 언제나 오초림이 앞에선 타박이다. 혼자서 사건을 쫓았다고 야단치고, 그래서 무릎에 난 상처를 보고 야단치고, 그래도 안쓰러워 약을 사다줘놓고서는 약을 발라주지는 않고 바쁘다며 휭 하니 가버린다. 딱, 무뚝뚝한 오빠 모습 그대로다. 물론, '오빠 구려'란 동생의 말에, '넌 예뻐'라고 응대하는 동생 바보 오빠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자꾸 '아는 동생' 오초림에게 최무각의 경계는 풀려가고, 걱정인지, 사랑인지, 그녀에게 신경을 쓴다. 술김에 머리에 국물이 튀었다며 머리를 쓰다듬기 까지 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 삶의 존재 이유로 삼았던 최무각, 그래서 삶의 이유를 잃고, '복수'만을 마음에 새겼던 최무각에게, '아는 동생' 오초림이 들어와, 마음마저 굳었던 그의 감각을 조금씩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무감각한 사람 맞아 싶게, 한결 부드러워진 최무각의 변화, 그의 치유의 시작이다. 



로코 8, 수사2의 딜레마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렇게 봄바람처럼 찾아온 최무각의 변화가, 5회를 맞이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충분히 만끽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최무각에겐 동생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충격적인 한 회이자, 동시에, 그 동생을 대신할 '아는 동생'이 한결 더 스며든 한 회였는데, 레스토랑 살인 사건 에피소드를 한 회만에 종결짓겠다는 욕심이, 마치 '빨리 감기'를 하듯 숨도 쉴 틈이 없이 그래서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한 회를 밀어부쳐 버렸다. 

미드 수사 드라마 들 중, <ncis>등과 같이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수사를 이끄는 드라마들의 경우 사건 수사 과정에 실소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극으로 보자면, <냄새를 보는 소녀>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제작 발표회에서 백수찬 pd의 언급대로 로코 8에 수사 2의 비중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고자 하니 자연스레 극 중 수사는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4회에 이어, 5회에 보여진 사건 수사 방식은, 차라리 '수사'가 없는 게 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수사가 기본적으로 어불성설인 것은 분명하다. 수사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결정적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선무당이 사람잡듯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충 넘어가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4회 가짜 바코드 사건에 이어, 5회 또 다시 최무각의 단정적인 언어로 모든 사건을 해결해 버리면, 제 아무리 '로코'에 집중한 시청자라도 실소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5회 초반 홀로 범인을 쫓던 오초림에게 슈퍼맨처럼 등장하는 최무각은 뻔히 그럴 줄은 알았지만, 너무 개연성 따윈 개나 줘버리듯 느닷없이 등장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재미가 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기존 시청층을 쥐고 있는 앞선 두 작품을 따라가야 하는 후발 주자로서, 스피드한 사건의 전개가 관건이라 여겼던 듯 싶다. 거기에 큰 수사의 줄기로 바코드 살인 사건을 두고, 매회 에피소드 식으로 바코드 사건에 힌트를 제공하는 작은 사건들을 배치하다보니, 한 회 안에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같은 것이 제작진에게 작용한 듯 싶다. 하지만, 5회를 보면, 주인공들의 감정선조차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우겨넣는 듯한 편집에, 감자탕 집에서 쓰러지듯 자던 무각이 다음 장면 대뜸 벚꽃 나무 아래서 자고 있으면 제 아무리 벚꽃이 아름답다 한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생방에 쫓기는 하는 촬영에, 허겁지겁 많은 내용을 보여주어 견물생심으로 시청자들을 낚으려는 얕은 수 보다는 기왕에 반응이 오고 있는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을 좀 더 차분하게 따라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신의 냄새 보는 능력을 믿고 범인을 쫓다 위험에 빠지는 여주인공 에피소드는 그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한 회 분량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거기에 레스토랑 사건 완결이라는 무리수를 쓰다보니 의욕 과다다. 냄새보는 능력으로 범인을 쫓는 에피소드는 원작에 기반을 두었다 치더라도, 형사와 동생의 옷에서 나는 아기 용품 냄새로 범인을 쫓고, 쑥과 비슷한 향기를 지닌 대마초를 추적하는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이해하기도 쉽고, 설득력있는 스토리였는데, 그것들을 너무 겉훑기식으로 다루다보니, 개연성이 떨어져 '추리'에 관심을 가졌던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거기에 뜬금없이 '코난'이 되어버린 최무각의 선견지명 역시 이질감이 돋는 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사건에 대한, 혹은 수사를 잘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은 별개의 부분인데, 그의 입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리면, 매력이 아니라, 실소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가진 두 주인공의 매력은 회를 거듭할 수록 배가되고 있다. 스피디한 전개 속 허겁지겁 연결된 씬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범한 오빠같은 '츤데레' 최무각과, 그녀의 오지랖과 헤픔마저 사랑스러운 오초림의 매력은 숨길 수 없다. 오히려 단점이라면 이 두 사람이 호흡와 연기가 좋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은 장면들이 눈에 띄게 심심해 진다는 점이다. 부디 이런 장점을 잘 살려, 시청률에만 급급하지 않고,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선을 제대로 살려 치유의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16 09:31

조선시대에서 세자빈을 잃은 왕자가 300년 후 옥탑방으로 떨어져 세자빈 살해 사건도 해결하고, 진정한 사랑도 얻는 이희명 작가의 2012년 작품 <옥탑방 왕세자>는 환타지 로코라는 독특한 복합 장르이다. 일찌기 <토마토>, <팝콘>, <명랑소녀 성공기> 등 90년대 최고의 로맨틱 멜로물을 써왔던 이희명 작가는 이후 오랜 칩거 기간을 겪은 후, 기존의 로코에 새로운 형식을 가미한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전성기를 되찾았다. 그런 <옥탑방 왕세자>의 성공 이후, <야왕>을 통해 잠시 외도를 했던 이희명 작가가, 이제 새로이 시작한 <냄새를 보는 소녀>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나, <옥탑방 왕세자>와 같은 복합 장르를 통해서이다. 이번엔 스릴러이다.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원작을 기반으로, 원작의 스릴러를 도입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맨틱 스릴러물이다. 아마도 90년대의 로맨틱 물의 전성기 이후, 2000년대 초반 과도기를 겪은 이희명 작가는, 21세기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로코'라는 단순 장르로만 승부해서는 무리란 판단을 내렸던 듯 하다. 




로코 +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원작의 어두운 기운을 덜어내고, 심지어 여주인공이 개그 우먼 지망생이자, 남자 주인공의 사건 수사를 돕는 대신 만담 파트너를 제안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코 중에서도 '개그'가 얹힌 아주 밝은 로코이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과거의 사건에 맞물려 '바코드 연쇄 살인'을 풀어가는 치명적인 스릴러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그것도 웃음을 한껏 버무린 봄에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와, 연쇄 살인범의 결합이라는 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양 극단의 두 장르가 맞물리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떠올려지는 미드가 한 편있다. 2009년 시즌 8로 종영한 <명탐정 몽크> 시리즈가 그것이다. 주인공 에드리안 몽크는 전직 경찰이었다. 하지만 3년전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그는 더 이상 경찰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휴유증에 빠진다. 그 결과 일상 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강박 관념이 심한데, 이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나이 몽크가 벌이는 해프닝에서 빚어진다. 그는 심각하고 진지한데 보는 사람들은 그가 난감해 하는 상황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는 정상적 상황에 비정상적인 사람이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강박관념을 가진 몽크는 그런 장애(?)를 가지고 온갖 곳을 누비며, 갖은 모험을 하게 되고, 심지어 각종 살해 사건 들을 해결한다. 스릴러와 웃음의 절묘한 조합, 그것이 바로 몽크 시리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리고 바로,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렇게 몽크 시리즈처럼 웃음과 살인 사건의 해결, 묵은 해원의 해결이라는 복합적 과제를 들고 나선다. 

그저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반 형사가 되고자 했던 최무각 순경, 하지만 파출소의 말단 순경인 그의 저돌적 의지는 번번히 가로막히고 만다. 하지만 냄새를 보는 오초림의 도움으로 주마리 실종 사건을 해결하고, 특별 수사반에 특채가 되면서, 주인공 남녀의 소개에 주력하던 1,2부를 지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 스릴러 부분에 들어선다. 2회까지만 해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초림을 지켜보던 천백경 원장(송종호 분)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등장했고, 또 한 사람, 주마리의 애인이지만 어쩐지 의심쩍은 권재희(남궁민 분)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미(윤진서 분)라는 프로파일러가 특별 수사반 반장으로 등장하면서 극에 개입하면서, 경찰 쪽 라인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덕분에 과거의 사연을 소개하고, 무감각한 최무각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오초림, 최무각 두 사람에 집중하던 극이 흐트러진다. 2회에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함에 홀려 3회에 시선을 둔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아웅다웅하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대신 최무각과, 권재희, 그리고 천백경이라는 이 드라마를 이끄는 문제적 남자들의 알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이번에 선택한 미션은 꽤나 고난도이다. 주인공들의 과거가 얽힌 연쇄 살인을 해결하는 스릴러에, 그 정극단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로맨틱 코미디에, 심지어 여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최무각을 자연스레 얽히도록 만들기 위해 여주인공은 개그 극단의 막내, 개그우먼 지망생이다. 그래서 서로를 돕기 위해 그들은 함께 수사를 하고, 만담 파트너도 한다. 진지하게 취조실에서 범인에 대해 고뇌하는가 싶은 최무각 형사가 뜬금없이 '촬~!' 하며 개그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도는 모험적이다. '로코'라는 장르가 최근 트렌드에 역부족일 수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스릴러와의 결합, 그것도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개그스런 로코에 연쇄 살인범의 사건 수사는 마치 '적과의 동침'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로코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스릴러의 장면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스릴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두 주인공이 개그에 얽히는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빈번히 등장하는 개그 극단은 과연 이것이 드라마에 필요한 설정인가를 두고 설왕설래의 대상이 될 수있는 것이다. 아마도 3회가 2회에 비해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지금까지 입가심처럼 등장했던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로코'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가 확연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제를 설득해 내는 건 이희명 작가와 박유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난제를 <냄새를 보는 소녀>는 3회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1회 초반 상세하게 설명된 오초림의 사연과 달리, 사건을 수사하다 잠이 들고, 대식가의 수준을 넘어선 먹방을 보이며, 탈골이 되고서도 멀쩡한 최무각이란 인물에 대한 설명을, 오초림의 냄새를 보게 된 이상한 눈에 대한 공감으로 이끌어 내고, 사건 수사에 집중하는 최무각 순경을 통해 자연스레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과 프로파일러 염미를 극중으로 흡인시킨다. 또한 그런 한편에서 개그 극단의 품평회를 둘러싼 두 사람의 해프닝을 통해 만담과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달달함과 '썸'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3회 <냄새를 보는 소녀>는 개그와 로코, 그리고 스릴러를 오간다. 자칫하면 이질적인 이 요소들이, 때로는 생경한 듯 하면서도, 제법 잘 어울려 버무려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런 장르적 이질감을 녹이는 결정적 수훈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기업물 <야왕>의 경험을 안고 돌아온 이희명 작가가 풀어가는 절묘한 이야기에 있다. 또한 그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이제는 콤비라 부를만한 박유천이 있어서 가능하다.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개그 감각에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던 박유천이기에, 마치 이희명 작가가 믿고 쓰는 듯 남자 주인공으로서는 버거운 각종 상황이 등장하지만 번번히 그 어려운 미션을 박유천은 설득해 내고 만다. 어색한 '그린 라이트'도, 대머리 가발을 둘러 쓰고 '촬~'을 연발하는 상황도 진지하게 하지만 보는 사람은 데굴데굴 굴러가게 만들어 버린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그리고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가는 그의 우직함이, 오초림이란 뜻밖의 인물을 만나 벌이는 해프닝에서도 전혀 이질감없이 버무려저 들어간다. 작가가 회마다 부여하는 기상천회의 미션을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박유천은 특유의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그 어떤 개그맨보다도 웃기게, 그리고 그 어떤 사연많은 주인공보다 진지하게 풀어가면서, 로코와 스릴러의 두 장르를 오고간다. 또한 이렇게 밝고 건강한 여배우였는가 라는 
깨달음을 주는 신세경이 풀어내는 오초림의 캐릭터는 무감각한 최무각과의 호흡에서 최고다. 거기에 믿고 보는 남궁민에, 단 한 장면으로도 충분했던 <응답하라 1997>의 '윤제형' 송종호라니!

사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보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백수찬 감독의 의지는 때로는 드라마를 조금은 헐겁게, 조금은 늘어지게도 만든다. 물론 덕분에 알기 쉽고 이해하기는 쉽지만, 쫀득한 긴장감을 원하는 드라마 애청자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소리도, 두 주인공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나왔던 입이 들어가 버릴 만큼, 이제 3회에 불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케미'는 설득적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09 09:46

"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그린라이트지?"

"뭔데, 뭔데?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대, 여직원이 두배다 많이 퍼주는 거야?"
"응, 그거 원 플러스 원 행사 하는거야?"
개구리 개그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 분) 앞에서 오초림과 최무각이 벌인 만담 개그의 한 토막이다. 진지한 두 사람과 달리, 극단 대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그런 식이라면 다가올 품평회에서 꼴찌를 하고 극단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 대표의 으름장에 하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오초림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개그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가 하면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로 본의아니게 무대에 오른 최무각은 1회에 이어, 2회에도 게걸스런 먹방을 선보인다. 무감각한 그가 커피 전문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는 정도는 약과다. 1회 편의점 강도를 만나기 위해 불침번을 서며 그가 먹은 것은 새우탕 사발면 서너 개에, 커피 두 잔, 그리고 핫바 등이다. 2회에 그의 먹방은 업그레이드 된다. 짜장면 서너 그릇에, 볶음밥, 이어 짬뽕 두 그릇에, 마지막 입가심으로 탕수육을 더한다. 



개그에 빠진 오초림
만담 파트너가 없어서 개그 극단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오초림은, 지난 번 범인을 쫓아 간 찜질방에서 여자인 자신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능청스런 전라도 사투리로 위기를 모면했던 최무각 순경을 떠올린다. 처음 그가 부순 차값 대신 만담 콤비를 제안하지만, 최무각은 요동도 않는다. 대신 역시나 강력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최무각의 아킬레스 건을 건들여, 어렵사리 파트너로서의 승락을 얻는다. 하지만 오로지 수사 생각만으로 가득찬 채 개그에 관심이라고는 1%도 없는 최무각에게 오초림은 다그치듯 말한다. '나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고.

1회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지듯이 최은설이었던 시절 오초림은 그녀의 눈 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른바 이 드라마의 중심 사건인 '바코드 살인 사건 해녀 부부 살해 사례'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하지만 범인으로 부터 도망을 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후 최은설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다.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요하게 개그를 추구한다. 

극단 대표는 오히려 최무각에게는 '바보같지만 연기의 재능이 있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였지만 정작 선배들의 심부름조차 마다않고 열심인 오초림에게는 별 코멘트가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애지중지하는 개그 아이디어 노트는 물론, 오초림의 개그조차 별 재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절박하게 말한다. 그것도, 2015년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장소팔, 고춘자'의 개그를. 혹시나, 그런 그녀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인 발랄함이 과거의 기억을 잃은 최은설의 트라우마의 변형이 아닐까? 그녀가 집착하는 그 지나간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은 혹시나 그녀가 잃어버린 해녀였던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은 아닐까? 원래의 성격도 밝았으며, 과거의 기억을 잃고 양아버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밝은 성격을 유지하는 오초림, 그렇게 봐도, 개그에 대한 오초림의 열망은 그저 예사로 보아 넘겨지지가 않는다. 

극 중 오초림의 개그는, 오초림과 최무각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등장한다. 파트너를 잃은 오초림이 자신의 만담 파트너를 얻기 위해 최무각의 수사 파트너를 자원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바코드 살인 사건' 수사에 첫 발을 들인다. 



전의를 불태우는 무감각남 최무각의 먹방
오초림의 개그가 그녀의 전사와 삐긋하게 맛물린다면, 그에 반해 최무각은 2회에 이른 지금, 수사를 한답시고 다섯 날 밤을 새다 정작 범인 앞에서 잠이 들어 버리고, 무식하게 많은 음식을 먹어대는 무감각한 설정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유일한 가족, 그래서 동생을 거침없이 '내 새끼'라 부르던 동생 바보, 그런 동생이 자기 눈 앞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모습을 보며 절규했던 그 장면만으로도 그의 무감각이 이해가 된다. 극한의 고통이, 그리고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내 손으로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의 저돌적 의지가 그로 하여금 '통각 상실증'에 이르게 했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전의가, 몇 그릇의 음식을 들이부어도 끄덕없는 무감각의 식욕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예측을 자연스레 하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아쿠아리움에서 일했던 동생과 단란하게 보냈던 시절을 해파리만이 떠도는 수족관의 기억으로 남긴 채 홀로 남겨진 그의 채울길 없는 외로움이, 자꾸만 그의 허기를 충동하는 듯이 보여지기도 한다. 상식적 수준을 넘은 채 먹어도 먹어도 채워질 수 없는 그의 무감각한 허기는 묘하게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으로 독해되어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그의 이런 외로움, 혹은 그의 다른 표현인 범인에 대한 전의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랑으로 풀어내어 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오초림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나, 최무각의 채울 수 없는 허기는, 현재 그들이 처한 '트라우마'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기억을 하건 못하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한 순간에 잃은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그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정반대의 정서에 빠져들거나, 아예 감각 자체를 망각해 버린다. 최무각의 무감각과, 오초림의 초감각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그들의 비정상적인 감각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육친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그들을 '초감각'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건 후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 시절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혹은 놓여난 듯 하지만, 결국은 거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선남 선녀의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 같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가족을 상실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놓여날 수 없는 두 남녀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상처의 흔적을 초감각과 무감각으로 드러낸 두 남녀의 기묘한 캐릭터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신세경, 박유천 두 배우의 진솔한 연기이다. 한 장면에서도 이쁜 척, 멋진 척 하지 않고, 가장 최무각스럽게, 오초림답게 무감각한 순경과 초감각한 개그 우먼 지망생의 연기를 선보인다. 덕분에, 오초림의 밝음이 조증을 넘어,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뻣뻣해 보이고 재미없을 무감각남이, 무감각해서 외려 더 재밌고, 보는 이의 짠한 감정조차 자아내는 풍성한 캐릭터로 재탄생된다. 심지어 2회 초반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30분에 걸쳐 두 남녀 주인공의 설왕설래로 드라마를 채워갔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온전히 두 배우의 합 만으로, 드라마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냄새를 보는 소녀>.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과거의 상처를 정반대의 양상으로 그려내는 박유천, 신세경이 그려내는 무감각남과 초감각녀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03 10:02

4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의 수목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만취 작가의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다. 

'냄새를 입자로 보는 소녀. 한 사건으로 만난 애송이 순경과 함께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서 부터 강력 사건까지 함께 추리해서 해결해 가는 추리+로맨스 물'
위의 설명은 올레 마켓 웹툰에 게재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초감각(超感覺) 여자와 무감각(無感覺) 남자가 벌이는 본격 냄새 추리극'을 내세운다. 
이 같은 듯 다른,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웹툰과 드라마의 설정, 두 둘의 간극은 첫 선을 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


웹툰의 윤새아와 드라마의 오초림, 그 차이점은?
<냄새를 보는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웹툰의 이야기는 '냄새를 볼 수 있게 된 소녀 윤새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화학자였던 부모님을 둔 윤새아, 하지만 사고로 홀홀단신 살아남은 그녀는 원근감을 잃은 대신, 냄새 입자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물론 웹툰의 첫 회, 극장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을 계기로 순경인 김평안과 윤새아는 만나게 되고,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웹툰의 주 내용은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진 윤새아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부모의 화재 사고 휴유증과도 같던 자신의 능력을 수용하고, 그것을 적극적인 능력으로 활용하는 '자기 성장' 드라마이자, 부모님을 죽게만든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 스릴러에 치중된다. 특히나, 첫 장면 극장에 가득 찬 냄새 입자에 '다 죽어버려!'라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듯, 코로 냄새를 맡지 못하고, 원근감을 상실한 대신, 냄새를 보게 된 소녀는 부모를 잃은 채 혼자 살아남은 상실감과 남들과 다르다는 소외감에 상당히 어둡고, 거기에 사춘기 소녀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충동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을 내세운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의 소녀는 웹툰의 소녀와 천양지차다. 똑같이 부모를 잃고, 한 쪽 눈 색깔이 바뀐 후 냄새를 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웹툰의 소녀가 부모의 죽음에 짖눌려진 대신, 드라마 속 소녀는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 덕분에 과거의 상처를 잃고 자신을 보호한 형사를 아버지로 알고, 개그우먼을 지망하는 밝고 쾌활한 소녀로 성장한다. 처음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를 공격하듯 몰아닦친 냄새 입자에 기겁을 하지만, 그런 장애조차도 의학적 도움으로 완화시킨 채, 남들과 다른 '초감각'의 능력을 탑재한 능력자로 거듭난다. 그렇게 최은설이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진 능력만 가진 소녀 오초림의 분위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발랄함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로코가 된 냄새를 보는 소녀
무엇보다 드라마가 웹툰과 달라진 점은 웹툰이 냄새를 보는 소녀 윤새아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이웃집 오빠 노원을 비롯하여 의문의 여러 남자들 중, 남자 주인공인 김평안 순경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에, 드라마로 온 <냄새를 보는 소녀>는 잠시 <감각남녀>라는 제목을 채택하려 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냄새를 보는 소녀 오초림과, 동생을 잃고 무감각해진 남자 최무각의 활약과 러브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조증'처럼 시종일관 새처럼 지저귀듯 높고 밝은 톤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오초림의 한 편에서, 범인이건 동료 경찰이건 그 누구에게 맞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뜨거운 커피도 단번에 마셔버리는 무감각한 최무각의 존재가 극의 중심을 잡는다. 또한 웹툰이 부모를 잃은 기억에 사로 잡혀 그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든다면, 드라마에서는 동생 최은설을 잃고 그 범인을 찾기 위해 강력계 형사가 되려는 최무각의 좌충우돌 모험이 사건의 현장에 두 사람을 불러 들인다. 

또한 웹툰에서 윤새아의 보호자로 등장하여 김평안 순경과 삼각 관계를 형성하던 노원은 이제 드라마에서는 늙수그레한 형사가 되어 오초림의 양아버지가 된다. 대신, 애인을 잃은 인기 쉐프로서 권재희(남궁민 분)가 등장하여 갈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거기에 다크 호스처럼 첫 회에 피묻은 손으로 등장한 의사 송종호의 존재 또한 드라마적 흥미의 한 요소이다. 
또한 웹툰에서 휠체어를 탄채, 얼굴의 반을 긴 머리로 가리며 등장한 걸진 전라도 사투리의 프로파일러 염미는, '로코'에 걸맞게 젊고 아름다운 윤진서가 대신하여, 애정 전선의 한 축을 이룬다. 



부모를 잃는 사건의 와중에서 얻은 장애라고만 여겨졌던 냄새를 보는 능력을 김평안 순경을 만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발견하고, 스스로 벽을 쳐버린 세상으로 그 능력을 이용하여 한 발, 한 발 나서는 윤새아의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엇물려 들어가면서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사건들, 그리고 내내 그림자를 드리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의 존재, 웹툰은 이렇게 세상과 벽을 쌓은 히키코모리 같은 여주인공이 세상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를 통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에 반해, 역시나 부모님을 사건으로 잃었지만 부모님이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꾀꼬리 같은 여주인공의 드라마는, 앞으로 그녀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증폭될 이야기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동생 바보로 살아가다, 감각조차 잃을 정도의 비극을겪은 그리고 그 비극의 실마리가 오초림에게 얽혀져 있는 최무각의 존재는 더더욱 드라마틱하다. 드라마는 웹툰의 '냄새를 보는 설정'과 친족을 잃은 사건을 도입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각도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작 발표회에서 로맨스 8에, 추리 2의 비중을 강조했던 백수찬 pd의 발언처럼, 첫 선을 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는 시작은 최은설 부모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곧 개그우면 지망생이 된 오초림의 이야기에 우연한 사건으로 함께 미용실 강도 사건을 해결해 가는 최무각와 오초림의 해프닝을 맛깔나게 풀어낸다. 원작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다크했던' 원작의 분위기를 찾을 길없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가 생소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봄 어쩐지 봄날에 어울리는 상큼한 드라마 한 편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남들과 다른 처지임에도 결코 주저앉지 않은 밝고 쾌활한 오초림에, 그가 들이키는 커피 한 잔마저 안쓰러운 무감각하기에 보호본능을 일게 만드는 최무각이 벌이는 로맨스 냄새 추리극이 더 끌릴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5.04.02 08:41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