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대문구 충청로에 일본인 도요타가 세운 유림아파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른바 대단위 단지로서의 아파트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1962년 한국 주택공사에 의해 서울 마포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그때부터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의 역사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지어진 아파트는 5층 건물에 연탄 보일러, 일일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탄을 날라야 하는 불편한 구조의 아파트였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는 과반수를 넘어 60%에 육박하고 있다. 10여년에서 길든 짧든 생애 전체를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유독 대한민국은 아파트에 중독 되어 있는 것일까? <다큐 프라임-아파트 중독>은 3부에 걸쳐서 아파트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을 해부한다. 

<1부-공간의 발견>아파트는 정말 당신을 만족시켜 주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란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제작진은 한 단지 안에 동일한 평수의 몇 집을 골라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사는 동일한 공간의 아파트, 하지만 남보매 그럴 듯한 외양과 달리, 규격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공간에 자신을 껴맞추며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 4인 가족 구성원을 염두에 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꾸며진 조선의 한옥을 모델로 삼아,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방들이 중심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아파트란 공간에서 사람들은 공간에 자신을 희생한다. 

이렇게 규격화된 공간에 자신을 꾸겨넣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문훈 건축가가 나서, 주어진 공간을 크게 변형하지 않은 선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른바 멋들어진 리모델링을 생각하던 사람들은 안그래도 좁은 아파트란 공간을 더 좁게 만들 수도 있는 각양각색의 짜맞춤 가구들에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오랜 토론을 거쳐, 기존의 공간을 세분화할 수 있는 짜맞춤 가구가 들어온 후, 가족들은 기존에 방치했던 아파트 공간을 새롭게 가족들의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인다. 
이를 통해 다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규격화된 공간에 억지로 꿰어맞추며 살아가는 아파트에서의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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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시간이 만든 집> 아파트의 타산지석-프랑스, 중국
아파트에 중독된 우리의 현재를 제대로 점검하기 위해 2부에서는 다른 나라의 주거 현실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은 프랑스, 프랑스 아파트 단지를 살펴보면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우리와 다른 그들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파트 단지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든 생활이 완결되는 삶의 완결체로서의 공간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 반대다. 프랑스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입고 먹고, 생활하는 것이 해결되는 공간을 계획적으로 만들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외면으로 결국 재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이, 외부로 열린 비록 개인적 공간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거스르지 않고, 사회적 교감을 할 수 있는 '흐름' 속에 놓인 공간을 선호한다. 이런 프랑스인의 공간에 걸맞에 프랑스의 아파트들은 대도시의 삶의 공간 속에 점점이 박혀 있다. 이런 프랑스의 개방적 공간으로서의 아파트들을 돌아보며, 대단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닫혀 있는 폐쇄적인 우리의 공간 아파트를 되짚어 보게 된다. 

다음은 정반대의 사례다. 우리의 뒤를 바짝 뒤쫒아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마구 지어대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본다. 
엄청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거대한 단지에, 엄청난 높이로 수도 없이 지어지고 있는 중국의 아파트, 심지어 지하의 공간조차 창문도 없이 나뉘어져 도시로,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비록 내부 인테리어도 없이 획일적으로 분양되는 아파트지만, 보다 편리한 공간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중국인들의 선택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부-우리는 왜 아파트에 사는가?>후회없는 선택? 하지만 행복한가요? 
실제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외국의 아파트들을 살펴본 다큐는 3부에 와서 비로소 본연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왜 아파트에 사는 것일까? 그리고 질문을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100명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게 한다. 

아이와 어른들이 그린 100장의 살고싶은 집의 그림. 백철수 서울 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그리고 장영철, 노은주 건축가 등은 그 그림 속에 담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본심을 헤아려 본다. 

놀랍게도 100장의 그림들을 그렸지만 아이들이 창의적 생각을 선보인 것과 달리, 어른들은 여전히 초등학교 수준의 그림 실력을 보임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간적 퇴행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0장의 그림들은 각자 서로 다른 생각들이 펼쳐져 있지만 묘하게도 공통의 생각들을 담고 있다. 하나같이 창문을 커다랗게 그린 사람들의 그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면을 향하는 전면창으로 뒤덮인 아파트 군에도 불구하고, 창문 너머로 앞집만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개방감의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어른이든 아이든 1/4이상이 빼놓지 않은 초록 공간, 그리고 애완 동물에서 아파트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한 동물이나 자연과의 정서적 교류의 간절함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아버지나 아이들이 한껏 상상력을 발산시킨 개인적 공간에서는 함께 하면서 보호받지 못한 개인들의 아쉬움 또한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그림들을 통해 자신들의 닫혀진 소망을 호소함에도 막상 언제까지 아파트에 살 꺼냐는 질문에, 쉽게 아파트 밖으로 나서질 못한다. 편리함때문에, 교육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그림 속 이상적 공간은 먼 미래의 것이 된다. 심지어, cctv를 그림 속에 그려넣은 아이들에게 아파트 밖 사회는 위험한 공간이요, 그래도 아파트는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대답만으로도 그의 삶의 상태를 단박에 읽어 낼 수 있는 우리 사회, 사람들은 서로의 삶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를 비교하며 보다 나아보이는 삶을 위해 전쟁을 치루듯 살아간다는 것이, 100장의 그림은 분석한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또한 전세계인들과 비교해 유난히 높은 한국인들의 속성, '고립불안'에서도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아파트라는 닫혀진 거대 집단이 주는 동질적 느낌, 안심이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 주거 형태 1위의 아파트, 그것은 대한민국의 모순과 갈망, 그리고 결핍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경일 교수는 후회를 덜하게 만들어 주는 공간 아파트, 하지만 후회와 만족은 별개의 것이라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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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그리고 전상인씨의 <아파트에 미치다-아파트의 주거 사회학] 등 최근 출간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책들은 아파트를 통해 한국인들의 욕망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 책들 속에 아파트는 계급과 계층 모순의 첨병처럼 우리 사회에 우뚝 서있다. 물질적 욕망의 결집체요, 사회적 모순의 극단적 집약체이다. 그에 비해, <다큐프라임- 아파트 중독>은 중독된 현실을 점검하되, 보다 상징적이다. 한국인의 욕망은 분석하되,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계급적 욕구는 희석되어 전달된다. 그 보다는 심리적 정체와 욕망의 퇴행에 집중한다. 아파트를 통해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계층 상승의 욕구는 막연한 중산층의 집단적 욕구로 무마된다. 그리고 이미 한국 주거 형태의 과반수를 넘어간 그 집단 전체의 닫혀진 공간으로의 퇴행적 욕구가 담은 상징에 치중한다. 하지만 뭉뚱그려 등장한 아파트 공화국 현실은, 그럼에도 그 퇴행과 욕구의 적체가 적나라하다. 
by meditator 2015. 3. 29.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