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노골적인 제목으로 찾아온 <불타는 청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진짜 청춘이 아니라, 젊음의 고개를 넘은 지 한참 되어보이는 쉰 안짝의 중년들이다. 그런데 웬걸, 막상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청춘'이 뭐 별건가 싶다. 마흔 줄에서 오십 줄의 남녀들이 그 어떤 청춘들보다도 풋풋하게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불타는 청춘>이라는 불량스러운 제목으로 부터 잡음으로 인해 폐지된 <짝>의 중년 버전인가 싶었다. 멤버의 구성원도 벌써 mc 김국진을 중심으로 남성 멤버 김동규, 이근희, 조정현, 김도균에, 여성 멤버 홍진희, 김혜선, 양금석, 강수지까지, 4:4 딱 짝짓기 프로그램의 구색을 맞췄다. 거기에 1박2일 합숙이라니, 딱 <짝>이지 않은가? 게다가 중년의 싱글, 언젠가 <짝>에서 선보인 돌싱 연예인 특집 버전인가 싶다. 비록 첫 선을 보인 <불타는 청춘>은 비록 첫 방송 4.4%(코리아 닐슨)로 동시간대 꼴찌를 면치 못했지만, 그간 여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이지 못한 신선한 '썸'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각자 여행 가방을 끌고 섬진강 가 외딴 집을 찾아드는 것은 예의 <짝>과 비슷했다. 이미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던 프로그램에서 함께 했던 멤버들은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지 못한 새로운 멤버들에게는 통성명과 함께 서열을 정하느라 실랑이를 벌이며 중년의 첫 인사는 마무리되었다. 이후의 여정은 길을 떠나 함께 하루를 보내는 모든 여행 예능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함께 밥을 해먹고, 장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함께 놀이를 즐기고. 이제는 레파토리처럼 된 여행 예능의 정석들을 <불타는 청춘> 역시 무난하게 따른다. 



<불타는 청춘>의 차별성은 개성강한 출연자들로 부터
그 무난한 여정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그리고 <불타는 청춘>이 여느 여행 프로그램이나, 중년 예능들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결국 등장인물들이다. 
한때 날리던 발라더로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준 조정현은 그 얌전하던 첫 인상은 아랑곳없이, 네일 케어를 받고, 주름 관리를 위해 보톡스를 마다하지 않는 솔직함으로 좌중을 놀래키는가 싶더니, 여전히 '발라더'의 면모를 잃지 않은 친절한 매너로 그의 이미지를 이어간다. 
비록 네일 케어도 주름 관리도 하지 않지만 조정현보다 더 여성적인 면모를 보인 멤버는 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다. 가죽 바지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륵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썸'을 타기 시작한 양금석바라기로 심지어 분홍 땡땡이 옷까지 감수하는 순수한 설레임을 보인다. 
그렇게 섬세한 감수성의 면모를 보인 남성 멤버의 반대편에 '남성성'을 강조하면 어필하는 다른 멤버들이 있다. 끝내 자신의 나이를 서른 여덟이라 우기던 김동규는 김국진과 장작 패기를 겨루며 그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김동규와 장작 패기에서 부터, 마른 장작같다는 제작진의 자막과 달리 전투의지를 불사르며 말타기에서 펄펄 나는 김국진의 면모는 새롭다.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이근희는 침을 튀겨 방향을 결정하려하며 여성 멤버들의 저격을 받지만, 그 소탈함에 따를 자는 없다. 
이런 각자 개성을 뚜렷하게 내보이며 자신을 어필해가는 남성 멤버들의 맞은 편에 아직은 수줍은 여성 멤버들이 있다. 하지만 수동적인 면모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은 분명하다. 
'청담동의 마나님'으로 드라마에서는 기세가 등등하지만, <불타는 청춘>에서는 영락없는 부엌데기 콩쥐인 김혜선에, 벚꽃나무 아래서 봄기운의 취기를 한껏 돋우는 '매화가'를 불러제끼는 호탕한 양금석, 거기에 여전히 소녀같아 보이지만, 자동차 기름값을 뺄 정도로 쑥을 캐러 다닌다는 주부 강수지, 식사때마다 팩소주를 빼놓지 않은 반전 매력의 홍진희까지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다. 

물론 <불타는 청춘>이라는 과격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남녀들이 '썸'을 목적으로 만남을 갖는 프로그램은 이미 jtbc <님과 함께>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바 있다. 심지어 <님과 함께>에서는 가상 결혼 생활을 통해 '썸'의 경지를 넘어선 대리 만족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런 면에서 후발주자 <불타는 청춘>의 입지는 협소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불타는 청춘>은 전혀 다른 지점의 중년 청춘의 가능성을 선보이며 그 협소한 입지를 넓혀간다. 

통성명을 하고 함께 밥을 해먹을 때까지만 해도 여타의 변별력이 없던 프로그램은 뜻밖에도 새로울 것도 없는 말타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전통 놀이를 통해 만개한다. 그 예전 함께 mt를 가서 어울리다 보면 풋풋한 로맨스가 피어나듯이, 함께 어울려 옛날에 해보던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마치 그들이 20대의 청춘들인 것처럼 미묘한 화학 작용이 피어오른다. 첫 번째 주자로 자신 앞에 탄 양금석이 상대편이든 상관없이 한껏 입이 찢어지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덥석 한번 안지도 못하는 김도균에, 자신도 모르게 편을 가르며 김국진을 '오빠'를 연발하며 응원하는 강수지는 <짝>과 <님과 함께>의 노골적 짝짓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청춘의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이미 20대 시절 당대의 '청춘'스타였던 조정현을 보고 새삼 설레이며 함께 셀카를 찍고, 자전거를 타고 '하드'를 사러가는 김혜선은 영락없는 20대의 설레이는 청춘이다. 자신보다 몸무게가 더 나아갈 것 같은 김혜선을 태우고 벚꽃길을 질주하는 조정현에게서는 주름의 흔적대신 그저 풋풋한 청년이 느껴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모르는 김도균을 변호하고, 그의 변신에 흐뭇해 하는 양금석에게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변호해 주는 선배 누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라디오 스타>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김국진은 그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활력을 선사하며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멋진 오빠'로 새롭게 변신한다. 



여전히 수줍게 '썸' 을 타는 중년의 청춘
<불타는 청춘>이 보인 청춘의 지점은 뜻밖에도 노골적으로 '썸'을 타기 위해 불타오르지 않는 중년의 '썸'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은근하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서며 함께 하는 지점들이, 흡사 그들이 20대이던 그 시절의 젊음을 연상케 한다. 이제는 인생의 반을 돌아온 사람들이, 인생의 반을 살아낸 노회함이나 익숙함이 아니라, 여전히 또 다른 이성 앞에서, 한없이 자신의 젊었던 그때처럼 설레이고, 감정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그 지점들이, 묘하게도, 그들이 중후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느 지점에서는  '청춘'임을 공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이 40세이던 인간이 이제 평균 수명 80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이는 먹어도 나이가 들어서는 안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젊음'이 화두가 되어 가는 시대, '청춘'은 단순히 젊음이 아니라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다. <불타는 청춘>의 가능성은 그저 중년의 싱글들을 모아 놓고 여느 프로그램에서 했던 짝짓기를 하고자 한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들의 찬란했던 청춘 시절 못지 않은 풋풋한 청춘의 감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그래서 여전히 사랑하기에 충분한 나이임을 자연스레 증명한데 있다. 




by meditator 2015. 3. 28.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