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희 내게 오나봐, 봄 향기가 보여'

<냄새를 보는 소녀> ost 중 '우연희 봄'이라는 노래이다. 그 노래의 봄향기처럼, 최무각(박유천 분)에게 '동생'이 왔다. 물론 지금은 '아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동생이다. 하지만, '아는 여자; 였던 그 관계는 이제 차츰, 스며드는 향기처럼 '동생'에 더 방점이 찍혀간다. 

최무각에게 '동생'이란 어떤 존재일까? 제주도에서 아직 동생이 죽기 전, 수족관을 찾아와, 상장을 자랑하던 동생에게 최무각은 '아유, 내 새끼'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가 오빠 자식이냐며, 그래서야 장가는 가겠냐며 퉁바리를 주는 동생에게, 최무각은 너를 시집보내놓고, 나는 장가를 가든가 말든가 하는 동생 바보다. 아니, 그에게 동생은 정말 자식같은 존재였다. 그런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작은 상처로 간 응급실에서 비명횡사를 하고 만다. 더 억울한 건 도대체 누가, 왜, 동생을 죽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동생을 잃은 상실감에 잠도 잘 수 없었던 최무각은 며칠인가 잠을 못이루며 괴로워하다 수족관에서 정신을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감각을 잃었다. 그리고 무능한 경찰이 원망스러운 최무각은 스스로 범인을 잡아죽이겠다며 경찰이 되었다. 



최무각의 변화
그리고 3년이 흘러, 그의 앞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동생을 잡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강력반에 들어가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그의 앞에, '수사를 도울테니, 만담을 해달라는' 이상한 여자가 말이다. '이 여자야, 지금이 그럴 때니!'라며 힐난하던 최무각은 그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범인을 잡는데 매우 탁월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냥개처럼 그녀를 데리고 범죄 현장으로 향한다. 대신 만담 파트너를 해주고. 

그렇게 호혜적 쌍방간의 이해 관계로 만났던 두 사람, 5회에 들어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사빠'처럼 첫 만남부터 자신을 질주하는 차로부터 구해주던 최무각에게 눈빛이 흔들리던, 그리고 자신의 본래 눈빛을 보고 자신 역시 괴물이며 외계인이라 말해주는 오초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밥을 먹어도 배부른 걸 느끼지 못한다는, 그리고 상대에게 진탕 얻어 맞아도 눈빛하나 흔들리지 않던 최무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무각과의 만담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오초림의 말에 최무각의 눈빛이 흔들린다. 약속을 어긴 최무각 때문에 개그 극단에서 쫓겨나고, 술에 취해 경찰서까지 데리고 온 오초림을 최무각은 한참이나 들여다 본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를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하더니, 이제 5회에서는 그 예전 동생에게 주었던 인형을, 동생을 생각하며 그녀의 납골당에 다시 갖다 놓았던 인형을 1*1이라는 핑계를 대며 오초림에게 준다. 무엇보다, 동생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최무각이 그의 최고의 수사 비법이던 오초림을 포기하겠단다. 그녀가 위험에 빠질까봐. 

뿐만 아니다. 이 사람이 무감각한 남자가 맞나 싶게, 최무각의 변화가 짚어진다. 드링크제를 사들고 경찰서로 찾아온 그녀가 신경쓰이고, 그녀가 다른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더 신경이 쓰인다. 어느새, 우리 오초림이란다. 그러곤 언제나 오초림이 앞에선 타박이다. 혼자서 사건을 쫓았다고 야단치고, 그래서 무릎에 난 상처를 보고 야단치고, 그래도 안쓰러워 약을 사다줘놓고서는 약을 발라주지는 않고 바쁘다며 휭 하니 가버린다. 딱, 무뚝뚝한 오빠 모습 그대로다. 물론, '오빠 구려'란 동생의 말에, '넌 예뻐'라고 응대하는 동생 바보 오빠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자꾸 '아는 동생' 오초림에게 최무각의 경계는 풀려가고, 걱정인지, 사랑인지, 그녀에게 신경을 쓴다. 술김에 머리에 국물이 튀었다며 머리를 쓰다듬기 까지 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 삶의 존재 이유로 삼았던 최무각, 그래서 삶의 이유를 잃고, '복수'만을 마음에 새겼던 최무각에게, '아는 동생' 오초림이 들어와, 마음마저 굳었던 그의 감각을 조금씩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무감각한 사람 맞아 싶게, 한결 부드러워진 최무각의 변화, 그의 치유의 시작이다. 



로코 8, 수사2의 딜레마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렇게 봄바람처럼 찾아온 최무각의 변화가, 5회를 맞이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충분히 만끽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최무각에겐 동생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충격적인 한 회이자, 동시에, 그 동생을 대신할 '아는 동생'이 한결 더 스며든 한 회였는데, 레스토랑 살인 사건 에피소드를 한 회만에 종결짓겠다는 욕심이, 마치 '빨리 감기'를 하듯 숨도 쉴 틈이 없이 그래서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한 회를 밀어부쳐 버렸다. 

미드 수사 드라마 들 중, <ncis>등과 같이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수사를 이끄는 드라마들의 경우 사건 수사 과정에 실소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극으로 보자면, <냄새를 보는 소녀>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제작 발표회에서 백수찬 pd의 언급대로 로코 8에 수사 2의 비중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고자 하니 자연스레 극 중 수사는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4회에 이어, 5회에 보여진 사건 수사 방식은, 차라리 '수사'가 없는 게 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냄새를 보는 소녀>의 수사가 기본적으로 어불성설인 것은 분명하다. 수사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결정적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선무당이 사람잡듯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충 넘어가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4회 가짜 바코드 사건에 이어, 5회 또 다시 최무각의 단정적인 언어로 모든 사건을 해결해 버리면, 제 아무리 '로코'에 집중한 시청자라도 실소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5회 초반 홀로 범인을 쫓던 오초림에게 슈퍼맨처럼 등장하는 최무각은 뻔히 그럴 줄은 알았지만, 너무 개연성 따윈 개나 줘버리듯 느닷없이 등장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재미가 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기존 시청층을 쥐고 있는 앞선 두 작품을 따라가야 하는 후발 주자로서, 스피드한 사건의 전개가 관건이라 여겼던 듯 싶다. 거기에 큰 수사의 줄기로 바코드 살인 사건을 두고, 매회 에피소드 식으로 바코드 사건에 힌트를 제공하는 작은 사건들을 배치하다보니, 한 회 안에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같은 것이 제작진에게 작용한 듯 싶다. 하지만, 5회를 보면, 주인공들의 감정선조차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우겨넣는 듯한 편집에, 감자탕 집에서 쓰러지듯 자던 무각이 다음 장면 대뜸 벚꽃 나무 아래서 자고 있으면 제 아무리 벚꽃이 아름답다 한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생방에 쫓기는 하는 촬영에, 허겁지겁 많은 내용을 보여주어 견물생심으로 시청자들을 낚으려는 얕은 수 보다는 기왕에 반응이 오고 있는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을 좀 더 차분하게 따라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신의 냄새 보는 능력을 믿고 범인을 쫓다 위험에 빠지는 여주인공 에피소드는 그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한 회 분량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거기에 레스토랑 사건 완결이라는 무리수를 쓰다보니 의욕 과다다. 냄새보는 능력으로 범인을 쫓는 에피소드는 원작에 기반을 두었다 치더라도, 형사와 동생의 옷에서 나는 아기 용품 냄새로 범인을 쫓고, 쑥과 비슷한 향기를 지닌 대마초를 추적하는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이해하기도 쉽고, 설득력있는 스토리였는데, 그것들을 너무 겉훑기식으로 다루다보니, 개연성이 떨어져 '추리'에 관심을 가졌던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거기에 뜬금없이 '코난'이 되어버린 최무각의 선견지명 역시 이질감이 돋는 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사건에 대한, 혹은 수사를 잘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은 별개의 부분인데, 그의 입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리면, 매력이 아니라, 실소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가진 두 주인공의 매력은 회를 거듭할 수록 배가되고 있다. 스피디한 전개 속 허겁지겁 연결된 씬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범한 오빠같은 '츤데레' 최무각과, 그녀의 오지랖과 헤픔마저 사랑스러운 오초림의 매력은 숨길 수 없다. 오히려 단점이라면 이 두 사람이 호흡와 연기가 좋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은 장면들이 눈에 띄게 심심해 진다는 점이다. 부디 이런 장점을 잘 살려, 시청률에만 급급하지 않고,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선을 제대로 살려 치유의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5. 4. 16.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