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보는 소녀> 2회 초림(신세경 분)과 무각(박유천 분)의 만담 개그씬, 

무각;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데, 아이스크림을 두 배나 담아줬어, 이거 그린라이트 맞지?
초림; 아니 그건 1+1 행사한 거야
무각; 그런 거야~?

이 웃기자고 등장한 1+1 그린라이트는 실제 <냄새 보는 소녀>에서 상징적 설정이다. 극 중 여주인공 오초림은 무각의 여동생 최은설과 동명이인으로, 연쇄 살인범은 해녀 부부를 살해하는 과정의 유일한 목격자 오초림을 살해한다는 것이 그만 무각의 여동생 또 한 명의 최은설을 살해하고 만다. 그 이유는 7회에서 밝혀졌듯이 연쇄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의 안면 인식 장애 때문이었다. 결국 한 명인 줄 알았던 최은설이 두 명이었던 것이다. 5회 무각은 동생을 떠오리며 산 말하는 인형을 하나 더 사 초림에게 건네 줌으로써, 1+1의 상징성을 더한다. 



조미료가 되어버린 무림 커플 '보통의 연애' 
하지만, 그렇게 동명이인 최은설을 둘러싼 미스터리만이 1+1이 아니다. 목격자 최은설의 교통사고로 부터 풀어지기 시작하여, 3년이 지나, 이제는 오초림과 최무각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연애 + 바코드 연쇄 미스터리 라는 로코+스릴러의 1+1의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천백경 원장(송종호 분)의 죽음과 함께 목격자 최은설이 생존해 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로코와 스릴러는 쉽게 '그린라이트'가 켜지지 않는다. 물론 미디어 콘텐츠 영향력 조사나, 다운로드 등의 수치 상에서는 동시간대 타 드라마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막상 보수적 시청자 층을 대상으로 한 시청률표에서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딜레마'의 반증의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로코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는 그간 여느 로코에서와는 다른 지점의 연애를 선보인다. 늘 '실장님'이거나 그 이상의 전문직이었던 주인공들은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갑남을녀'가 되어 등장한다. 경찰서의 말단 직급인 '순경'과 개그우먼도 아니고, 개그우먼 지망생인 오초림의 연애는, 그들의 미천한(?) 사회적 존재만큼이나 신선하다. 마치 <마녀 사냥>에 등장하는 사례 중 하나를 보는 것처럼, 속은 따스하지만 무뚝뚝한 눈치없는 남자 최무각과, 통통 튀는 캐릭터 만큼이나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사랑 초년생 오초림의 사랑 만들기가 신선하기 그지없다. 사건 수사를 하자며, 혹은 만담을 빙자하여 가랑비에 옷 적시듯하다, '키쓰'까지 진도를 빼고도 '사귀니 마느니하며 투닥거리는 '무림' 커플의 '보통' 연애가 마치 우리 주변 누군가의 연애를 관음하는 듯 느껴지는 묘한 감흥을 준다.

'이게 그린라이트야'라며 만담을 하듯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가 여느 드라마의 연애와 달리 현실감있게 시청자들에게 흡인되어 가는 한편, 마치 2인1조 탐정단처럼, 미용실 강도 사건에서 부터, 도박장이 된 닭죽집까지 종횡무진 활약을 하던 이 커플은 이제 중반을 들어서 그들의 연애가 본격적이 되면서, '바코드 살인 사건'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드라마에서 어쩐지 한 뼘쯤 밀린 느낌을 준다.



발군의 연쇄 살인마 권재희
이번 주 방영된 9.10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이코패스 권재희의 능력이다. 이미 7회에서 경찰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기막힌 알리바이를 시간 차로 짜맞추는 능력을 통해 경찰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능력을 선보인 바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목격자 최은설의 생존을 추적하는 권재희의 관심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경찰 들을 농락하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하게 'DNA' 조사에 참여한 권재희의 트릭에 경찰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농락당하고 만다. 이미 컨테이너 창고에서 피습된 최무각 형사를 볼모로 권재희를 잡고자 놓은 병원씬의 덫에서 한 차례 자유롭게 빠져 나간바 있던 권재희가 다시 한번 자유자재로 '바코드 사건 전담팀'을 농락하는 과정,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사과하러 온 최무각 형사의 핸드폰에 스파이 앱을 깔아, 경찰 측의 동정에 쉬이 접근하는 과정은 병원씬에서 그나마 1:1을 주장하던 경찰 팀에게 무기력한 패배를 연속적으로 선사하며 응원하는 시청자들 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부제를 '바코드 살인 사건'이라고 내세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인 연쇄 살인마 권재희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드라마의 관건이다. 더구나 드라마가 이제 중반에 이를 즈음에 결정적 패를 까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에 있어서 그 점은 더더욱 중요한 시청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제 아무리 매력적인 사이코패스라 해도, 결국은 '악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냄새를 보는 소녀>의 권재희같이 '살인을 즐기는 듯한 사이코패스'임에랴, 더더욱 '연민' 따위를 느낄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악행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9,10회는 시청자들에게는 마치 자신들이 권재희에게 심리적 폭행을 당하는 듯한 아픔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이희명 작가는, <옥탑방 왕세자> 방영 당시 '세나의 난'이라 칭해지는 악녀의 악행에 치중하여 애청자들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후속작 <야왕>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주다해의 악행으로 점철된 스토리로 '막장'의 오명조차 쓴 바 있다. 산뜻하게 출발한 <냄새를 보는 소녀>였는데, 중반에 들어서서 다시 권재희에 집중을 하게 되니, 이희명 작가의 전작을 본 시청자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악행으로 추동되는 안이한 전개방식
하지만 이희명 작가 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병폐 중 하나가, 드라마의 추진력을 역동성있는 악행의 반복에 의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만이 아니라, 외국 영화나 미니 시리즈에서도 매력적인 악인이 주인공을 압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최무각과 비교 기사까지 난 바 있는 <셜록> 시리즈의 경우 소시오패스 셜록에 대비되는 사이코패스 모리아티 교수가 악의 축으로 드라마를 이끈다. 하지만, 막상 <셜록> 시리즈를 보면, 구구절절 모리아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가장 간략하게 궁극적으로 모습으로 드러냄으로써 그 존재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다. 여느 범죄였던 사건이 수사를 진행함에 따라 가공할 만한 음모로 드러나고, 그 끝에 존재하는 모리아티라는 인물이, 사건의 극악함을 최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셜록>에서 종횡무진 치고 받는 것은 셜록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사력'을 풀어낼 능력이 부족한 스토리의 경우, 가장 안이하게 '악을 설명하는' 것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이제 중반에 들어선 <냄새를 보는 소녀> 역시 그 길을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경찰들은 안이하게 병실에서 총을 들고 설치다 지나가다 그걸 본 권재희에게 당한다. 그러는 동안 드라마는 공을 들여 권재희의 알리바이를 설명하고, 다시 목격자의 집을 찾다 경찰과 마주치고 'DNA'를 역이용하여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권재희를 그린다. 드라마에서 가장 안이하게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방식 중 하나인 남자 배우의 웃통 벗기기를 장시간 권재희에게 할애하듯, 역시나 안이하게 권재희란 인물의 악행을 공들여 그려낸다. 스릴러의 주된 부분이, 악인을 설명하는데 할애되는 것이다. 

그렇게 악인을 공들여 설명하다 보니, 실제 주인공 최무각은 몸을 던져 범인을 쫓다 칼을 맞고, 차에 치이며, 권재희란 인물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는데, 그 실감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미 1,2회부터 '무감각'한 캐릭터 설명에 무심했던 드라마는, 온전히 그 모든 것을 배우의 개인적 능력에 맡긴 채, 무감각하게 스쳐간다. 이전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로코와 스릴러의 행간을 메꾼느 것이 최무각이란 캐릭터인데, 제 아무리 박유천이란 배우가 자신의 연기력으로 커버한다 해도, 차에 치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쳐 버린 장면에서 역부족인 것이다. 앞부분 레스토랑 살인 사건이나 닭죽집 사건에서, '스릴러'의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그래도 '무림' 커플의 사건 해결의 통쾌함으로 '스릴러'의 난해함을 퉁친 면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7회 이후 염미(윤진서 분)가 제 아무리 1;1이라고 해도 맨날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드라마에 계속 시선을 고정시키기는 힘들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이어질 후반부에 최무각을 중심으로 한 역공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16부의 호흡에서 악인에 대한 기반을 마련해 두고자 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리모컨을 드는 시청자들에게 16의 호흡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더구나, 남자 배우 웃통 벗기기처럼, 악행을 설명하는 식으로 '스릴러'을 이끌어 가는 방식은, 이미 케이블 등의 스릴러 물이나, 미드 등을 통해 높아진 스릴러 팬들의 관심조차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기왕에 '로코'와 '스릴러'의 1+1의 난제에 도전한 <냄새를 보는 소녀>가 부디 그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5. 1.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