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여성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여성들 신체의 일부임에도, 가슴은 여성들의 것이라기 보다는 남성들 '음담패설'의 전용물인 양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에서 소외되어 왔었다. 미국의 유명 전도사가 설교를 들으러 온 여성들에게 다리를 꼬고 앉으라고 하고는 '이제 비로소 지옥의 문이 닫혔다'라고 운을 띄웠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몸은 여성들의 것임에도 '성 문화의 상징'으로 터부시되거나, 음란한 상징의 대상으로만 전용되어 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게 여성들 자신조차도 자기 신체의 일부임에도 가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노소를 불문하고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에, <sbs스페셜>은 과감하게 '가슴'에 대해 말문을 연다. 

과감하게 가슴에 대해 말문을 열다. 
< sbs스페셜>의 부제는 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이다. 나레이션을 맡은 장윤주는 그저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신의 가슴 이야기로 부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가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다큐을 풀어간다. 

장윤주가 머리를 하는 과정 주변 지인들과 자연스레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런데 마치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기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레 그 크기와 성적 기능으로 이야기가 풀어져 가듯이 장윤주 동년배들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가슴, 그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 들어간다. 

정신분석학자 수지 오바크의 증언대로 이 시대 우리의 몸은 이제 더 이상 타고난 본래의 몸이 별 의미기 지닐 수 없듯이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로서의 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맞추고자 고민한다. 그래서 어느 덧 가슴 확대 수술이 동년배의 대화에 생소하지 않은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브래지어' 착용법의 도움을 받아도 여전히 본연의 작은 사이즐로 인해 여성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적 고민을 거슬러 올라가 그렇다면 과연 가슴이란 무엇인가를 인문학적으로 들여다 본다.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가슴을 가지게 된 인간 여성, 과연 진화론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원숭이의 엉덩이에서 찾는다. 발정기가 되면 부풀어 오르는 엉덩이, 수컷은 그것을 보고 암컷을 찾아드는데, 직립 보행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옷까지 입으면서 엉덩이를 가리기 시작한 인간은 더 이상 '발정'의 증거를 널리 알릴 수 없게 되었고, 그 증거물을 대신하기 위해 여성의 가슴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진화학자들의 증언이다. 

성적인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 가슴
하지만 가슴의 진화론적인 결과가 어떻든, 동시대 여성들이 큰 가슴을 선호하든 어떻든, 가슴의 역할은 그저 성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창조주'의 심정을 경험하게 되는 '수유'의 행복이 가슴의 잊어서는 안되는 존재론임을 다큐는 짚는다. 하지만, 영국 호텔에서 가슴 노출이 심한 여성에게는 입장을 허용하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에게는 그 모습을 가리라고 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가슴을 대하는 인식은 여전히 차별적이라는 것을 가슴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 



또한 가장 숭고한 시간임에도 그러기에 가장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존재임을 다큐는 증명한다. 놀랍게도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 나라 엄마들 모유에서 검출되는 각종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물질들에서, 그저 사명을 넘어선 건강한 모유 수유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 

그러나 큰 가슴을 선호하는 사회 풍조든, 아이에게 젖을 주는 창조적 활동이든 그것도 가슴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차별적인 '암'의 공격은 가슴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른 암과 달리, 가슴을 도려 내어야 하는 유방암의 예후는, 그 암을 겪는 환자들에게 병으로 인한 고통 외에, 여성성의 상실과의 싸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준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짚는다. 크건 작건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가슴으로의 귀결이다. 



가슴을 통해 여성을 생각해 보다
여성주의에 대한 여러 접근 중에,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그려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질색을 한다. 어떻게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들여다 보느냐는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 되어 공연되는 여성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래서 그저 여성들의 성기 담론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직시하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 된다. <sbs 스페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가슴을 통해 여성 자신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다루려다 보니, 우리 사회 여성들의 가슴에 대한 인식에서 부터, 모우 수유, 그리고 유방암까지, 마치 가슴의 '생로병사'라도 다루려는 듯이 다소 번잡스러워 졌지만, 가슴학 개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고민이 잘 전달된 시간이었다. 이렇게 개괄적으로 다루었던 여성의 가슴이 다음에 좀 더 각론적으로 접근된 깊이있는 각론의 다큐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특히나,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에 노예가 된 이 시대의 가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내 것인데 내 것 같지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부인 가슴, 그 개론인 장윤주의 가슴이야기는 여성에 대해 말문을 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5. 4. 6. 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