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와 정재영이란 두 배우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새로이 개편을 하며 자리를 옮긴 tvn의 주말 드라마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다. 화제성을 업고 시작하였으나 초라한 성과를 내고만 <시카고 타자기>의 부진을 애매한 시간대 때문이라고 판단했을까? tvn은 금토 8시 30분(때로는 종종 20분부터 시작하기도 했던) 주말 드라마를 토,일 9시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런 자리 배치에 대해 대다수 호청자들은 아쉬움을 전했다. 무엇보다 토,일 9시대는 이미 확고한 절대 강자 kbs의 주말극이 '아성'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으며, 9시 대의 mbc, sbs 드라마 역시 만만찮은 고정층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그간 빈틈을 공략해 오던 tvn의 정면 도전이라는 점에서 였다. 물론 tvn측은 tvn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공중파 주말 드라마의 시청층과 겹치지 않는다거나, 혹은 이제는 tvn에 채널을 고정하는 시청층이 생겼다 자부하며 '진검 승부'를 펼칠 시점이라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jtbc의 <아는 형님>이라는 떠오르는 트렌디한 예능까지 겹친 주말 9시대로 시간을 옮긴 것은 '사생결단'이었다는 점에선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점이 크다.



tvn주말 9시 드라마의 사생결단
그렇게 자리를 옮긴 tvn의 첫 작품은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조승우, 배두나 주연의 <비밀의 숲>이었다. 그런데 <비밀의 숲>이 끝나갈 무렵, 방송 아래 자막에는 ocn의 <듀얼>이 10시 20분부터 이어진다는 소개가 나온다. 동일한 cj 계열, tvn의 <비밀의 숲>을 보고, 이어서 ocn의 <듀얼>을 봐달라는 낯간지러운 안내 방송이야 그렇다 치지만, 막상 그 소개대로 심지어 의도한 듯 <비밀의 숲>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20분에 시작한 <듀얼>, 두 작품을 이어서 보고 있자니, 앞서 말한 야무지게 두 작품을 이어 보라고 시간대까지 옮긴 듯한 편성이, 오히려 득이 아니라, 실이 된 듯한 느낌이 더 짙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대를 옮긴 첫 작품 <비밀의 숲>이 온 신경과 이성을 집중시키는 법정을 배경으로 사법 비리 장르물인데, 그 다음에 이어진 <듀얼> 역시 복제 인간을 다룬다지만, 그 보다는 장기 밀매와 유괴가 등장하는 '범죄 장르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물을 불편해 하는 이유를 들 때, 보기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쉬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tv를 시청하고 싶은데 사람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잔인한' 장면이 나와서 부담스럽다는  거에, '머리를 써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이 더해진다. 그런 '부담스런 장르물'을 연달아 두 편을 이어 보라는 것이 야심차게 주말 9시대로 자리를 옮긴 cj미디어의 전략이라면 그건 어쩐지 '자충수'같아 보인다. 이건 공중파 주말극과 다른 시청의 피로감을 주는 전략이다. 

어쨋든 그렇게 9시, 10시 연달아 두 편의 장르물에서 우리나라에서 연기 좀 한다하는 조승우와 정재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분 모두, 연기에 있어서는 '한 가닥' 하는 분들인데 어째 그 반응이 다르다. <비밀의 숲>을 앞서가며 검색어를 오르내리는 조승우와 달리, 역시나 <어셈브리(2015)>이후 모처럼 tv로 돌아온 정재영은 첫 회 2% 이래 급격하지는 않지만 시청률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정재영 연기의 피로감에 대한 반응이다. 



조승우와 정재영, 그 다른 쓰임새 
조승우는 이미 연극, 영화, tv라는 장르를 오가며 그의 '미친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이다. 일찌기 <말아톤(2005)>에서 부터, 연극은 곧 그 자신이 '메이커'가 될 만큼, '연기의 신'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터이다. 그런 그가 최근 출연한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는 연줄없고 빽없이 어떻게든 금의환양을 해보겠다고 악에 받힌 열혈 검사 역을 맡아 영화를 흥행 가도에 올렸다. 그런 조승우가 <비밀의 숲>에서 다시 '검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맡은 검사는 사고로 인해 '감정'을 잃어버린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성문법이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캐릭터로 돌아왔다. 첫 회 그는 자식을 잃고 울며 자지지러지는 어머니를 문 밖에 세워 놓고 초연히 범죄 현장으로 들어간다. 역시나 다시 만나 그 어머니는 주저앉는데 그의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법을 마음을 잃은 그의 무기로 삼아 '강직'해진 검사, 하지만 그래서 태연하게 후배 검사에게 '너를 믿지 못해'라고 말할 수 있는 '싸가지'는 지금껏 조승우를 통해 본 캐릭터 중 본 바 없는 새로운 모습이다. 조승우의 연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연기에 그래서 보는 이들은 더욱 열광한다. 

반면, 비록 자주 출연하지 않았지만, 정재영의 연기는 그의 연기를 봐왔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듀얼> 속 그는 불치병에 걸려 이제 줄기 세포 치료만 받으면 살아날 수 있는 딸을 병원 호송 중에 납치 당하고 만다. 당연히 아비이자, 형사인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정재영의 혼을 쏟아부은 열연, 침을 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대사, 그리고 자신을 던진 고군분투는 <어셈블리>에서도 그가 열연했던 진상필의 또 다른 버전같다. 아니 <방황하는 칼날(2014)>의 이상현같기도 하다. 분명 <듀얼>을 보면 정재영이 연기를 참 잘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쩐지 익숙하다. 심지어 그가 쏟아내는 감정과 연기에 '피로감'조차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단지, 앞에서 <비밀의 숲>을 보아서, 혹은 <터널>에 이은 장르물이라서 오는 피로감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보다는 제작진이 너무 안이하게 기존의 정재영이란 '메이커'에 의존하는 데서 안이함이다. 





장르물의 고민
<비밀의 숲>과 <듀얼>의 차이점은 그 만이 아니다. <비밀의 숲>도, <듀얼>도 모두 암울한 '범죄'의 세상을 다룬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이미 숱하게 되풀이 되는 검사가 주인공인 사법 버리 물임에도 어쩐지 신선하다.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마음을 잃은 검사가 주인공이라서일까, 드라마의 장면, 장면은 배경이 된 겨울처럼, 가라앉아 마음을 흔든다. 무엇을 보여주고 움직이는 대신, 마지막 장면 검은 법원 건물과 그 건물을 걸어나오는 조승우처럼, 그 분위기로 드라마를 설명해 간다. 늘 역동적인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을 여사로 하는 tv에서 <비밀의 숲>이 보인 분위기들은 그래서 독특하게 다가온다. 장르물답게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모호하고 속을 모르겠지만, 그들이 가진 패가 답답하기 보다는 그로 인해 앞으로가 궁금해 진다. 

그에 반해, <듀얼>은 복제 인간이란 신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끌어가는 방식은 그간 ocn이 해오던 장르물의 방식을 답습한다. ocn 장르물을 시청해왔던 이들이라면 장기 밀매와 납치가 연관된 이 소재 자체가 그리 신선하지 않을 것이며 거기에 동원된 노숙자들 역시 낯설지 않다. 분명 자식을 잃은 오빠이자 형사인 주인공, 그 오빠의 동생이지만 오빠가 자신으로 인해 아내를 잃을 정도로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을 알수 없는 여동생의 대립 구도는 신선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듀얼>은 극 초반 이 구도를 정재영의 뻔한, 반면에 너무도 생소해진 김정은의 연기로 이런 극적 구도를 살려내지 못했다. 물론 아직 희망을 접기엔 이르다. 오히려 <듀얼>을 기대하게 만드는 건 아직은 그 정체가 모호한 양세종이 분한 '선과 악'으로 구분된 두 사람의 서사이다. 자신이 죽이고, 또 다른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이 존재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가 벌이는 범죄이자 처단의 속내가 드러내 보여진 4회 말미, 가장 <듀얼>은 신선했다. 

비록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그리고 빈번하게 장르물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가고 있는 상황, 어쩌면 뻔하지 않은 장르물이라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만큼 어려운 숙제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과 이성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려운' 난제를 해결해야만 그 입지를 그나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숙명'이자, '고행'이다. 부디, 피로감을 이겨내고, 장르물만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비밀의 숲>과 <듀얼>의 건투를 다시 한번 빌어본다. 

by meditator 2017. 6. 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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