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무렵이던가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시절에, 이른바 '후일담 문학'이란 것이 유행이었다. 너도 나도 '내가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었는데~'로 시작했던 문학 서사들. 한참 꽃봉오리처럼 피어나야 할 스무 살 젊은 시절에 청년들은 그 젊음을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느라 저마다 '고행'의 시간을 겪었었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문학'이 되어 한 시대를 상징한다. 이제 어쩌면 훗날 2014년 이래 한국의 상당수 '콘텐츠'물들을 두고 '세월호 기억 콘텐츠'라 명명할 지도 모른다. '자각'이 있는 자라면 모두 그해 4월 벌어진 그 일을 그저 눈감고 지나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sf 로 시작되었던 <서클; 이어진 두 세계(이하 서클)>마저 '기억 조작'이란 미래 사회의 인간 통제 문제를 들고 돌아돌아 '기억'과 '인간'의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쁜 기억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망각이 나쁜 기억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질문에서 굳이 토를 달지 않아도 '잊지 않겠습니다'로 대변되었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시대적 상흔의 또 다른 기록이다. 





'나쁜 기억도 기억할 만한 기억인가?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된 서사도 서사지만, 도대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호했던 <서클> 4편에 들어서 비로소 이 드라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 졌다. 그리고 주제 의식이 명확해지니, 그동안 나열되었던 사건들조차 한 줄에 꿰어진다. 

사건1>
쌍둥이 형제 우진(여진구 분)과 범균(안우연 분), 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외계인 별이, 그녀와의 추억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아버지와 그녀는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남겨진 형제, 우진이 그 기억을 지우려 애쓴 채 고학생으로 그리고 한 집안의 가난한 가장으로 현실의 삶에 버둥거릴 때 형인 범균은 그 기억의 노예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고 외계인을 찾아 떠돌다 정신병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사건2>
형사 김준혁(김강우 분)을 불러들인 스마트 시티의 살인 사건, 딸이 아버지를 살해 시도한 존속 상해 사건은 아버지의 기억을 되찾으며 과거 유괴범이었던 아버지와 유괴당한 피해자였던 딸의 뜻밖의 고통스런 과거 기억으로 환치된다. 블루 버드에 의해 기억을 찾은 딸은 그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기고자 스스로 자해를 한다. 

사건3>
스마트 지구 시청 보안과 공무원이었던 이호수(이기광 분)는 김준혁을 케어하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임무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 가며 고통스러워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도망치고자 기억 통제를 요청하며 기꺼이 휴먼비의 스파이 노릇까지 자처했던 그는 이제 되살려진 기억을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이 입양된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받고, 그 트라우마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음을 깨닫고 '기억'의 존재를 절감한다. 

사건 4>
형을 찾아 20여년을 헤맸던 김준혁 형사, 알고보니 자신이 바로 그 형, 그리고 이제 그는 동생이 어쩌면 스마트 시티 기억 조작의 주체인 휴먼비의 회장일 수도 있다는 의혹에 맞부닥친다. 심지어 그 휴먼비의 기억 조작이 과거 아버지를 잃고 외계인을 찾아다녔던 자신의 고통 스러운 기억이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집념어린 추적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기억, 인간의 존재 이유
보여지듯이 지금까지 <써클>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맞물리면서 등장했던 4가지 사건들, 이들은 모두 '당사자에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주는 나쁜 기억'에 대한 사건들이다. 그리고 이제 진실을 찾아 헤매던 주인공 김준혁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동생이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나쁜 기억을 치유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망각'이라는 기억 조작의 주체가 돠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추격의 동인을 잃고 만다. 과연 나쁜 기억도 기억해야할 가치가 있는가? 과거의 자신도 그렇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잊고 있던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회의에 빠진 그에게 나타난 이호수,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휴먼비의 스파이로 자진납세했던 사람, 그런 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그를 찾아온다. 처음 얼핏 돌아온 기억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괴로워만 하던 그, 하지만 그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지만 정작 그 아버지는 이제 통제된 기억으로 과거의 그 사실을 잊은 채 지금의 딸과 희희낙락한 모습을 보고, 절규한다. 그리고 김준혁에게 기억은 취사 선택이나, 기호가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무이고, 도리'임을 선언한다. 역시나 어린 시절 유괴당했던 기억을 되찾아 자해를 한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이 없어 죄채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아버지 앞에, 자신을 버려 기억을 만들어 그의 악행을 단죄하고자 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인간의 존재'를 묻는다. 2030년 '행복추구권'만이 넘실되는'스마트'한 미래 도시, 그곳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 '원죄'를 묻은 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 드라마는 묻는다. 나쁜 기억을 가지고 고통스러워했던 사람들, 진실을 찾으려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 그들의 고통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리고 이제 드라마는 답한다. 기억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도 무의미한 것이라고. '기억'을 통해 인간은 기억되고, 인간의 존재는 의미가 있어 지는 것이라고. 나쁜 기억은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기억해주고, 해결해주어야 할 '과제'이자, '의무'라고. 형 찾기와 아버지 찾기를 통해 에돌아 왔던 <써클>은 이제 8회를 넘어서며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 '기억'의 문제를 떠올린다. 인간이 인간다움, 바로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의무'로 부터 시작된다고. 

by meditator 2017. 6. 13.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