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네 번 째 시즌이 돌아왔다. 개봉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세계 박스 오피스 1위라는 왕년의 기록에는 못미치는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네버엔딩 스토리'를 기대하는 오랜 팬들에게는 시리즈의 종말이 아닌 '연속'을 기대해 볼 여운을 남기며 순항하고 있다. 무엇보다 분장을 통해 빛을 발하는 배우 조니 뎁, 예전만 못하다 해도 그의 잭 스패로우가 돌아와 반갑다. 




시즌 4, 시리즈의 연속성을 상기해 내는 방식
dead men tell no tales, 죽은 자는 말이 없다란 부재를 가지도 돌아온 시즌 4, 이 부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시즌1을 상기해야만 한다. 

2003년 개봉한 시리즈의 1편 <블랙 펄의 저주>에서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는 헥터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분)와 함께 '블랙 펄'을 타고 카리브 해에서 보물을 약탈한다. 하지만 바르보사는 잭을 배신 그를 외딴 섬에 가둔다. 그러나 바르보사는 밤이 되면 '해골'이 되는 저주에 갇힌다.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저주에 걸렸던 그, 물론 그의 '저주'는 1편 마지막 절묘한 승기의 트릭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4편의 부재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dead men tell no tales는 대사는 바로 이 시리즈의 주요 등장 인물이 되어버린 앵무새의 입을 통해 '발언'된다. 

이렇게 죽을 수 없는 자들의 저주로 시작되었던 1편, 오랜만에 어렵사리 돌아온 4편은 그 1편의 '죽은 자에게 내려진 저주'를 다시 불러온다. 잭 스패로우를 배신하고 저주에 걸린 보물을 약탈한 이유로 '죽을 수 없는 해골'이 되었던 바르보사 대신, 해적을 무자비하게 소탕하다 젊은 잭 스패로우의 덫에 걸려 마의 삼각지대에서 몰살한 캡틴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 분)가 '죽음'의 저주를 받은 자로 등장한다. 



서로가 적이 되어 싸우는 '해적'과 '해군', 그들의 승리는 언뜻 눈에 보이는 '보물'인 듯하지만 결국은 '죽지 않'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 하지만 '저주'는 바로 그런 그들을 영원히 '죽음'의 덫에 가두어 버린다. 영원한 안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연옥'의 덫에서 이를 갈며 '복수'를 꿈꾸는 캡틴 살라자르와 그의 부하들은 1편의 '저주'에 걸린 바르보사보다 '죽음'의 덫이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늘 시리즈가 그래왔듯이 '죽음'과 연관된 적의 캐릭터를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배우를 통해 버전 업하며 등장한 시리즈 4편은 그저 시리즈의 연속만이 아니라, 바르보사의 뜻밖의 운명을 통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란 부재를 새롭게 해석해 낸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언제나 그렇듯 <캐리비안의 해적>하면 떠오르는 건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의 활약이란 언제나 '삽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적의 캡틴 살라자르를 마의 삼각 지대에 가둔 젊은 잭의 기지처럼, 잭의 활약상이란건 '정공법'이라기 보단, 나비처럼 날다, 벌처럼 한 방 콕하고 쏘아서 적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식이니 언제나 그가 '나비'처럼 나는 동안 앞서 고군분투하는 고지식한 동료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리즈 4편 역시 마찬가지다. 마의 삼각지대에서 바르보사가 자기 앞을 거스르는 그 모든 것들을 '아귀'처럼 삼켜버리며 잭을 향해 돌진하는 동안, 잭의 꼬락서니라고는 온 도시를 휩쓸다시피한 금고 탈취 작전조차 땡전 한 푼만(?)  건지고, 그의 수호자인 나침반마저 술 한 병에 거간하다, 결국 처형장에 서는 처지가 되고 만다. 또 그래야 잭 스패로우답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 그를 닮아 그에 대한 배신을 밥먹듯하듯 하는 부하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하는 것이 역시나 또 잭 스패로우 다운 '시즌 4의 입장'이다. 






그렇게 잭 스패로우가 우여곡절 죽음의 사투를 벌일 때 '우연'처럼 그 행로에 동행한 두 젊은이가 있었으니, 뜻밖에도 우연 치고는 깊은 인연을 가진 카리나(카야 스코델라리오 분)와 헨리(브렌든 스웨이츠 분)다. 아버지를 찾아서, 혹은 아버지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모험'에 나선 두 젊은이들은 잭과 뜻을 같이 하여 항로에 존재하지 않는 섬을 향해 떠난다. 

그 예전 시리즈에서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의 캐릭터를 이어받은 키이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마녀'로 오해받은 하지만 실은 진보적인 여성 과학자로, 당연히 터너가 연상되는 헨리는 역시나 그처럼 재기넘치는 거기에 저주에 걸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신화'에 통달한 이야기꾼의 재능를 탑재해 과학과 신화의 '콜라보'로서 4편의 동력이 된다. 진취적인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와 뱃사람의 아들 터너와 비슷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학'과 '신화'를 통합해 새로운 시리즈의 구색을 맞추려 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여성의 캐릭터는 최근 '디즈니 영화'의 조류를 성실하게 이어받고 있다. 

이렇게 새로이 등장한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인지, 조력잔지, 아니면 따로국밥인지 결국 한 배를 타고만 잭 스패로우의 조합은 엘리자베스와 터너와의 그 파트너 쉽의 연장이자 다른 버전으로 시즌 4를 익숙하게, 그리고 신선하게 끌어간다. 




이런 조합이 끌고가는 시즌4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헐리웃의 아버지 서사'이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혹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 젊은이들, 그들은 마치 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버지였다는 <스타워즈> 식의 아버지 찾기를 극적으로 반복한다. 대신 그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노회한 해적과 과학으로 무장한 젊은 여성 과학자로 대신할 뿐이다. 부녀는 무시하고 적대하고 갈등하고 결국 서로를 알아보지만, 그건 결국 아버지의 희생을 통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란 '이별' 공식을 순탄하게 반복한다. 아버지는 불가능하다 했지만 자신만의 신념으로 결국 아버지를 구해낸 아들의 성공 역시 또 다른 아버지의 '극복'이다. 그런 부녀의 극적인 상봉기와 이별기의 사이에서 잭 스패로우는 마치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처럼 거들 뿐. 

그러기에 어쩌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1편에서 가장 비열하게 등장했던 바르보사라는 저무는 해적의 장렬한 연대기에 대한 '경의'라 해도 어폐가 없을 듯하다. 그토록 궁금케 했던 '블랙 펄'의 저주조차 그가 단번에 허무하게 풀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캡틴 살리자르가 부하들과 무시무시하게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가운데 '죽음'의 저주를 풀기위해 고심했으며 황금의 부귀까지 누리던 바르보사는 기꺼이 죽음을 통해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영예로운 유언을 남기고 퇴장한다. 죽어가는 자의 가장 명예로운 한 마디이다. 그 명예로운 해적의 연대기에 환타스틱한 캐리비안의 해적선 모험은 가장 멋드러진 토핑이다. 

 
by meditator 2017. 6.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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