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힐링'이라는 트렌드에 맞추어 '스타'를 초대하여 '스타'도 힐링하고,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도 '힐링'을 시켜준다는 모토 하에 시작되었던 <힐링 캠프>가 햇수로는 4년, 회차로는 어언 190회를 넘어섰다. 여자 mc였던 한혜진이 결혼과 함께 물러나고 성유리가 그 뒤를 잇는 시간, 이경규는 <힐링 캠프>의 중심이 되었고, 김제동은 조용히 그 곁을 지켜왔다. 때로는 그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힐링'이란 단어 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설명되었던 시기가 지나고, '힐링'이란 단어만으론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힐링'을 받겠다고 <힐링 캠프>를 드나들던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이제 나올만한 사람은 웬만큼 다 나왔고, 때로는 몇 번씩이나 등장한 '스타'들도 있었다. 고갈된 '스타'풀에, 그리고 변화된 트렌드에 맞춰 때로는 집단 토크쇼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요리도 해보고, 시청자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힐링 캠프>의 진부한 분위기를 쇄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스타'들의 이야기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힐링 캠프>와 용호상박을 겨루는 <안녕하세요>처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자중지난'에 빠진 <힐링 캠프>는 일대 혁신을 시도하였다. 지난 4년간 실질적으로 <힐링 캠프>를 이끌어 온 이경규를 하차시킨 것이다. 반면에 그의 곁에서 조용히 지내오던 김제동을 단독 mc로 잔류시켰다. 김제동의 잔류? 하니 사람들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토크 콘서트의 방송 버전인 <톡투유>도 비교한다. 이에 <힐링 캠프> 제작진은 묘수를 짜낸다. 기존의 <힐링 캠프>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합체'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힐링 캠프> 더하기,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
새로운 <힐링 캠프>의 시작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처럼 시작되었다. 500명, 아니 499명의 방청객들, 그리고 그들을 단번에 들었다 놨다 하며 좌중을 집중시켜 버리는 김제동,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499명의 관객들은 개었다 흐렸다, 박장대소를 하다,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이래서야, jtbc <김제동의 톡투유>와 다르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제작진은 499명의 관객들을 mc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단 한 명의 게스트, 첫 번째 게스트 황정민을 무대로 올린다. 짧은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졸지에 mc가 되어버린 499명의 관객들이 우후죽순 황정민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은 마치 변칙 복서처럼 좌충우돌한다. 황정민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관객은 영화 속 그의 대사를 주문하고, 중학생 관객은 이도저도 아닌 자신의 현재를 투영하여 질문을 던지고, 황정민의 명쾌한 답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은 거 같다'는 당돌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갈길이 아득한 배우 지망생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운조차 찾아올 길이 없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가 더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황정민'이란 인물에 천착해 진행되던 프로그램은, 후반 게스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작성한 관객들의 질문에 따라, 애초에 의도하였듯이 특별한 사람과 함께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제 황정민은 게스트지만, 그의 뒤에 가득 메운 '포스트잇' 속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함께 하는 순간, 특별한 스타가 아니라, 그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또 한 사람으로, 관객들의 사연에 함께 한다. 그와 더불어,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가세한 관객들과 함께 풋풋한 젊은 남녀의 연애사에 개입하기도 하고, 암에 걸린 아내와 남편의 애틋한 사연에 함께 눈물짓기도 한다. 어느새 프로그램은 '황정민'으로 인한 '힐링' 대신, 499명이 함께 하는 '공감'의 온도를 높인다. 

이미 <안녕하세요>가 선점한 일반인 예능, 거기에 후발 주자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며 화제성을 얻어가는 <동상이몽> 그리고, 김제동이 토크 콘서트를 고스란히 옮겨온 jtbc의 <톡투유>까지 이미 일반인 예능의 구색이 맞춰져 가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보통 사람들의 예능으로 출사표를 던진 <힐링 캠프>의 선택은 기발했다. 기존 연예인 예능과 일반인 예능의 결합은 신선한 실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첫 술에 배부르랴'란 덕담을 던기지엔, 개편 첫 회< 힐링 캠프>가 남긴 숙제는 많아 보인다. 스타 토크쇼와 일반인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은 신선했지만, 동시에 어정쩡할 수 있다는 것을 첫 개편된 <힐링 캠프>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황정민이란 스타에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흠씬 접어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도 아닌 측면이 드러난 것이다. 

김제동의 지인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베테랑>의 개봉을 앞둔 배우 황정민이 과연 개편된 <힐링 캠프>에 나와서 어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꺄우뚱해진다. 분명 마지막 황정민은 매우 만족스러운듯한 의사를 보였지만, 영화를 홍보한 것도 아니고, 이전 <힐링 캠프>에 출연했을 때 풀어놓은 그의 '히스토리'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함께한 관객들과 나눈 이야기가 그닥 신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중학생조차 그의 답을 듣고 '운이 좋았던'거 같다고 정리하듯, 그의 충고나 자신의 지나온 시절에 대한 설명은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던져지는 일반인 mc들의 질문에 능란하게 대응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스타를 1인 게스트로 하고, 그에 맞선 김제동과 나머지 499명의 관객을 한데 묶어 500명의 mc로 포진시킨 구도는 언뜻 시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김제동이라는 '토크 콘서트'의 주재자가 개입하여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만들 여지가 적은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500명 정도의 관객,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조차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토크 콘서트'의 달인 김제동 정도도 될까말까한데, 제 아무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라도 황정민을 무대 중앙에 올려놓고 그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은 버거워보였다. 그나마 오랜 연극 무대 경험을 가진 황정민이 그 정도일진대, 그보다 무대 경험이나 내공이 적은 사람이라면 과연, 1인 게스트로서 <힐링 캠프>를 이끌어 갈 수 있을 런지. 물론 말로는 김제동을 포함한 500명의 mc라지만, 결국 무대 중앙에 집중할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게스트의 능력 여하에 따라 프로그램의 재미는 함께 널을 뛸 수 밖에 없단 것을 <힐링 캠프>는 보여주고 말았다. 

애초에 계획은 스타의 이야기도 듣고, 그 역시 보통 사람으로 관객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는 가상하지만, 스타도, 관객도 그저 맛보기가 되거나, 이도 저도 따로 놀거나, 관객들의 이야기나 듣다 가는 무게 중심의 어정쩡함이 숙제로 남게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28. 06:32

지난 주 yg 양현석 대표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던 충고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 이유를 알았다. 그 해답은 바로, 12월 8일 방영된 <힐링 캠프> 김봉진, 김영하 편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 작가 김영하는 대놓고 말한다.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꾸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만약 자신이 2%의 저성장을 기록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실직한 아버지와, 빛으로 남은 대학 등록금이 있었다면, 몇 년의 습작 기간을 거쳐 작가로 등단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작가로 먹고 살기가 버거운 시대, 그래서, 쉽게 누군가에게 작가의 길을 가라고 충고할 수 없다고.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쉬운 희망과 노력을 말하는 시대에, 12월 9일의 두 멘토들은 차가운 현실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제언한다. 그래도 현실감있는 힐링이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으면 뒤적뒤적 전단지를 찾기 시작해야 했던 삶의 관행을 통채로 뒤바꿔 놓은 이가 있다. 더구나 배우 류승룡의 개인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광고로 단박에 다른 배달앱을 제친 이 배달앱은 이제 배달앱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로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신종 사업, 배달앱의 ceo 김봉진씨가 <힐링 캠프>를 찾았다. 

힐링캠프 김봉진
(tv데일리)

자신을 경영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ceo 김봉진씨는 한때 디자이너였고, 오래도록 디자이너이고 싶은 소망으로 창업을 해 첫 사업을 망하고, 이제 다시 경영 디자이너로 배달앱을 성공시킨 입지전의 인물이다.
하지만, 성공의 아이콘이 된 그의 소회는 솔직하다. 중년을 넘어서도 디자이너로 생존할 수 없었기에 사업을 벌였다고 말하고, 사업 실패 후 내 자식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못한 기회를 얻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에겐, 그를 밀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가 시간을 준 덕분에 그는 대학원에 갔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업 실패 후 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신선한 영감의 원천을 '책'이라고 말한 그 답게, 매번 토크의 고비마다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고 싶은 자신의 목표는 80이 넘어서도 내일 더 스시를 잘 빚고 싶은 일본 스시 장인의 이야기를 빌어오고, 사업가로서 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유치한 비결을 위해서는 책을 통해 얻은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은 책략이 아니라, 진심이라며, 인간대 인간적 관계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그의 성공 전략은 때론 소박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헤매며 전단지를 줏어 모았고, 학력에 대한 질문에는,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자신만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며, 자신이 고등학교 때 담배피고 놀 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하루 두 세시간 자며 공부했다며, 그 노력의 시간들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맞먹을 노력이 필요하다고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아직은 충분히 자리잡지 않은 배달앱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토로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솔직히, 3년 후, 10년 후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현실적인 사업가 김봉진의 뒤를 이어, 책꽂이 뒤에서 툭 튀어나온 이는, 소설가 김영하이다.  
단 한번 간 군부대 강연에서 장병 모두에게 달콤한 잠을 선물했다던 김영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번쩍 드는 멘토링을 선사한다. 
향후의 삶에 대해 질문한 군인에게, 아마도 쉽게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장병들의 달콤한 잠을 달아나게 한 경험 그대로, <힐링 캠프>에서도 소설가답지 않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꿈을 꾸기 어려운 이 시대를 설명나간다. 
자신이 살던 80년대, 그 시대는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상회해, 무엇을 해도 먹고는 살겠지라는 낙관이 충만했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2%의 저성장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대는 그렇게 삶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자신의 내면조차 기꺼이 돈을 벌기 위해 바쳐야 하는 그런 시대라고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자신조차 희생해야 겨우 돈을 벌까 말까한 이 시대에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소설가'답게 김영하는 '감성 근육'에서 찾는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아니, 남들의 기준에 쉽게 흔들지지 않은 자신만의 감성을 가진다면, '자기'조차 헌신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위해 소설을 일고, 오감을 이용해 글을 써보면서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감수성을 키워나갈 것을 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로 성공한 ceo 연예 기획사 yg의 대표는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 그 보다 사회적으로 덜 성공해 보이는, 두 사람, 김봉진과 김영하는,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현실을 말한다. 사업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나락에 빠질 수 있는 현실, 꿈은 커녕, 현실에 맞춰가는 것도 버거운 세상, 최고의 ceo가 말했던 가슴뛰는 일은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 것이란 걸 이들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곰곰히 들여다 보면 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들이 모두, 개인적이며, 어떻게 보면 고립적이다. 
사업에 실패한 김봉진이 선택한 길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개인적 충전의 시간이었다. 김영하가 제시한 감성 근육도, 이런 김봉진의 해법과 통한다. 철벽과 같은 세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들은 각자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세상과 홀로 싸우라고 말한다. 
대신, 그들은, '성공'의 담론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성공'보다는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하라고 한다. '성공'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우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자족적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성공'이 화법을 전복시키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김영하는 말한다. 어차피 '성공'하기 힘들다고, 거기에 매달리지 말고, 당신들만의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그렇게 다른 삶의 의미는,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도시의 바닥을 휩쓸고 다니며 전단지를 주운 성과가, 기념일의 마음대로 퇴근이요, 무한정 제공되는 책값의 복지로 보상된다. 그것도 괜찮지 하다가, 그것 밖에 없을까 란 질문이 슬며시 든다. 

(스포츠 동아)

2주에 걸쳐, '물음 특집'을 선보인 <힐링 캠프>는 모색의 시간이다. 이제는 고갈된 게스트군들에 대항해, 이미 출연했던 여러 게스트들을 모아놓고 집단 토크를 하거나, '물음 특집'처럼 젊은이들의 멘토가 될만한 게스트들을 불러다, '멘토링성' 강연과 질의 응답을 시켜 보는 중이다. 때론 면죄부가 되었지만, 이제는 토크 소재의 한계와 출연자 고갈에 시달리는 <힐링 캠프>로서는 지금까지보다는 나쁘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수의 젊은이들을 동원한 질의 응답 시간은, 종종 정곡을 찌르는 솔직한 질문들이 등장하며,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mc진의 진부함을 보완해 준다. 다만 아쉽다면 아쉬운 것이고, 혹은 그래서 그것이 어쩌면 현실의 솔직한 징후일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젊은이들이 제시한 질문들이, 스펙과 학력 혹은 창업이라는 현실적 경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뜬금없어 보일 만큼, 젊은이들에게 드리워진 현실은 짙고, 희망은 멀어보인다. 

모색에 들어간 <힐링 캠프>에 필요한 것은 솔직한 질문이겠다. 2%의 저성장 시대,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되는,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세상에서, 사람들을 진정 '힐링'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이제,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현실 진단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해법은, 각자 알아서 잘 살자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해법을 넘어설 진정한 '힐링'은 없을까? '성공' 대신 '성장'으로 얼버무리는 어쩐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듯한 썩 개운치 않은 대안 말고는, 사람들을 구원할 길은 없을까? 아마도 이에 대한 고민이, <힐링 캠프>가 생존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9. 10:44

10월 6일 <힐링 캠프>는 김준호 편을 방영했다. 여기저기 출연을 통해 김준호라는 인물에 대해 더 이상 사람들이 알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나 싶었는데,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코미디를 향한 그의 열정과, 그 열정 속에 숨겨진 그의 속내를 다시 한번 진솔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패러디로 명량의 이순신처럼 등장한 김준호,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호칭은, 명량이 아니라, 천하에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mc들은 한량 김준호를 증명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증거를 들이댔고, 8개의 명함을 위시하여, 그 모든 것이, '한량' 김준호를 설명해 내는데 이의를 달 길이 없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량' 김준호를 증명하는 과정은, 역으로, 코미디언 김준호의 열정을 설명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출연하는 내내 김준호는 어설픈 영어를 남발했다. 한때 첫 버라이어티 신고식을 치루었던 <남자의 자격>에서 발길질을 당하며 함께 했던 선배 이경규와는, 마치 그의 발길질이 호된 학습이라되 된 듯이, <힐링 캠프>에 나온 김준호는 이제, 자신이 <인간의 자격>에서 오로지 밀 수 있었던 콩트 대신에,  그 어떤 영어보다도 한국인이 알아듣기 쉬운 난이도의 어설픈 영어로 죽을 맞춰가며, 재밌는 예능의 호흡을 맞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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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머니투데이 뉴스)

 

그러나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면, 김준호의 어설픈 영어가 그저 웃기기 위한 소도구가 아니었음을 시청자들은 알게 된다. 올해 들어 이제 2회 째를 맞이한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을 이끄는 집행위원장인 그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사비를 털어 넣으면서도, 부산을 국제 코미디 교류의 '무역 센터'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의 수단임을 느낄 수 있다. 부산 국제 영화제처럼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또 하나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 그의 어설픈 영어는 웃음의 소도구 이상, 그의 열정의 도구로 씌여질 듯하니까. 그리고 이런 김준호의 열정은 처음엔 '한량'처럼 그럴 듯한 직함을 가졌다는 우스개에서 시작된 mc들의 소개를 넘어, 선배 이경규조차 후배 김준호의 코미디 사랑에 고개를 숙이고, 내년에 부산 거리에서 함께 공연을 할 것을 약속하게 만든다.

 

그의 열정은 그저 페스티벌 등 행사를 벌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 폐지 이후 일자리를 잃은 타 방송사 후배들에게 주머니의 돈을 다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개그맨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코코 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의 사장이 되었다. 처음 김준호가 코미디 기획사를 만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김준호가?' 했던 것들이, 이제는 김준현, 이국주, 조윤호 등, 트렌디한 개그맨들이 모여있는 코미디계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우스개로 휴머니즘으로 시작하여, 자본주의로 마무리되는 그의 기획사는 그만의 기획사가 아니라, 그와 후배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견인차가 된 듯 보인다.

 

부산 코미디 페스티벌 집행 위원장, 코코 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세간의 인식으로 보면, 한 '권위' 할 것 같은 그의 직함들을 소개 받으며 여전히 김준호가, 권위있는 실세가 아니라, 그의 어설픈 영어 표현대로,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라는 그의 표현이 고스란히 그의 진심으로 느껴지듯, 코미디를 향한 그의 열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놓고 기획사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차별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페스티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수리가 땅에 닿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그의 '세속적' 표현들조차 그의 열정을 설명해 주는 다른 표현에 불과한 듯이

by meditator 2014. 10. 7. 09:57

2011년 7월 18일 시작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3주년을 맞이하였다. 

'힐링'이란 말 그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위안이 될 것 같은 시기에 태어나, 이제 '힐링'이란 말 자체에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는, '힐링'마저 둔감해져 버린, 아니, '힐링' 만으로는 그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는 고단한 시대까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시대적 감수성과 그 치료 방법의 '난치'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누가 나오는가에 따라 화제가 되었던 <힐링 캠프>도 이젠 그 누가 나와도 어쩐지 뻔한 그저 그런 토크쇼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3주년 초대 손님은 신애라였다. 왜지? 왜 신애라가 3주년 특집의 초대 손님일까?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mc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 차인표 덕분에 신애라는 그녀 남편의 언급처럼 월드컵 경기라도 되는 듯 4년에 한번 텔레비젼에 출연할까 말까 하는데도, 어쩐지 익숙한 인물이다. 
더욱이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전국민적 드라마의 남여 주인공으로 만나 화제를 몰며 결혼까지 한 그들 부부의 삶은 그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전국민적 관심의 영역 바깥에 놓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굳이 궁금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부부의 아내, 신애라가 3주년 특집이라니!

하지만, 이제는 신애라 그 자신보다도, 차인표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텔레비젼에 등장하게 된 그녀는, 그 예전 '피비 케이츠'에 비유될만한 상큼한 외모가 세월에 그리 빗겨가지 않은 듯이 여전한 모습으로, 아니 그 외모보다도, 더 유쾌상쾌 발랄한 성격을 지닌 아내이자, 엄마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를 빛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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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나라 연예인들 중 몇 손가락안에 드는 '잉꼬 부부'로 자타가 공인하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이지만, 되돌아 보면, 언제나 그 시점은 차인표라는 남편의 관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의 주된 촛점이 등장인물 차인표에게 맞춰지다 보니, 그가 여전히 사랑하는, 심지어 다시 태어나도 다시 결혼하고픈 완벽한 아내 신애라라는 보여지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3주년은, 늘 그렇게 차인표의 시점으로 보여진 완벽한 아내 신애라를, 신애라의 입장에서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내의 입장에서 신애라는 차인표를 통해 그려지던, 그 완벽한 아내의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아니, 완벽하다고 칭해지던 그 칭송의 이면을, 신애라 자신이 낱낱이 까발려 낸 것이다. 

즉,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아내라고 보여지던 인물이, 사실은, 어쩌면, 남편 입장에서는 '외롭기까지 할 정도로, 자기 주도형의 인물이라는 신애라의 분석이다. 즉 이사를 해도 남편에게 의논한 적이 없고, 남편이 바깥 일을 보는 동안 이사를 해치우고, 집안 일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는 남편을 큰아들이려니 하는 그런 '독재자' 아내의 모습으로. 

그러면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신애라를 3주년 특집에 초대한 첫 번째 이유를 신애라를 통해 설명해 내고 있는 듯하다. 힐링 이란 이름의 위로, 즉, 그 누군가로부터의 막연한 위로보다, 이제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신애라처럼 자기 자신을 직시해 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라고.
그렇듯, 신애라는 세간의 평처럼 행복한 가정, 그리고 남편의 절대적인 신뢰의 이면에, 자기가 아니고서는 견뎌내지 못하는, 자기 중심적인, 자기 주도적인 그 자신의 편향된 성격이 있음을 털털하게 정의내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가정의 행복이란 것이, 그런 자신의 성격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주는 남편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음을 자인한다. 심지어, 다시 태어나도 신애라와 결혼하겠다는 남편 차인표와 달리, 다시 태어난다면, 당연히 결혼이란 것을 해야했던 자신의 세대의 삶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보겠다고 말한다. 자신과 차인표의 만남이, 그리고 세간에 회자되는 두 사람의 행복이 드라마처럼 절대적인 운명, 그 무엇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온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을 덤덤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어쩌면 이제는 뻔한 유명인 부부의 그럴 듯한 삶은, 강한 자아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를 존중해주는 남편의, 현명한 부부의 삶으로 재조명된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 특별해지는 과정으로서의 부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시간의 토크쇼에서 부터 시작하여, 충만하다 못해 넘쳐나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식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신애라의 자기 평가는 냉엄하고 통쾌했지만, 그 또한 넘치고도 넘치는 연예인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 자락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가 3주년의 주인이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이 핵심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 외에, 쉰 명이 넘는 아이를 전세계에 가지고 있고, 그중 두 명을 한 집에서 키우고 있다는 기적같은 사실말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호혜의 결과에 대해 신애라는 찬사를 거부한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자기 좋자고 한 일이라고. 

처음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게 되었던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린 나이에 코끼리처럼 두터운 발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운동화를 신은 자신의 발에 박힌 가시를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운동화라도 신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전 세계 자녀들의 입양, 하지만 그들이 오십 명이 되면서, 이제는 그 편지조차도 제대로 읽게 되지 않는 무성의(?)한 과정에 이르기까지를 신애라는 오로지,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정의내린다. 
심지어 한 집에서 키우고 있는 자녀에 대해, 자신은 배 하나 안아프고, 자신의 배아파 낳은 아들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두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찬사에 찬사를 거듭한다. 

격의없는 그녀의 태도는 자신이 입양한 아이들에게도 견지된다. 굳이 '입양'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가슴으로 낳은 그 과정을 담백하게 공유하는 엄마 신애라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들이 입양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그러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는 엄마로서의 모습은, '늘 내 자식만은' 하면서, 내 자식을 위해서라며 세상의 온갖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부모의 편협한 사랑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게 이방의 아이들에게 그저 조금의 여윳돈을 나눔으로써,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대신해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을 통해, 그녀 자신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신애라의 자신만만한 정의는, 3주년 특집의 '힐링'의 정의가, 바로 나눔이고 베품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힐링'은 상처받은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자신이 상처받았으니, 그것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는 수동적 자아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좋은 말, 좋은 음악, 갖가지 좋은 치유가 필요하다는 식이, 그간 우리 사회 '힐링'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힐링'조차도 시들해지는 시점에, 3주년을 맞이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신애라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래서 더 반전인 한 사람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힐링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즉,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며, 그래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베품으로써 행복을 얻어가는 적극적 행복찾기의 자세가, 바로 진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이다. 힐링의 새로운 해석이요, 3주년을 맞이하여, 여전히 유효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4. 7. 22. 10:02

개인적으로 <힐링 캠프>가 볼만하다 느껴질 때는, 그 어떤 명사가 나와 멋진 말을 들려줄 때보다, 오히려  오랜 무명, 혹은 오랜 고생 끝에 뒤늦게 빛을 본 사람들이 나올 때이다. 그건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을 하건, '자뻑'을 하건, 그것들이, 우리들이 이미 그의 시간 속에 목격한 바 허투루 얻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5월 12일의 <힐링 캠프>도 그랬다. 21년만에 떴다는 장현성의 출연, 그가 한껏 들떠서 자신이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는 자체가 뜬 게 아니냐는 반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보기 좋았다. 


mc 이경규는 장현성을 두고 번번히 21년 만에 떴다고 말한다. <쓰리데이즈>에서 반전의 존재감을 보인 함봉수 비서실장 역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고, 또 그런 연기만큼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준우, 준서 아빠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 자신에 대해 장현성 자신도 가득찬 쥬스 병을 들고, 차곡차곡 쌓여 아슬아슬하게 떴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그런 표현은 옳지 않다. 장현성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 말한다. 
'드라마, 영화, 연극 등 장르도 중요하지 않고 주연과 조연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맡은 역할과 연기에 대한 만족감으로 산다. 더 빛나는 역할, 더 많은 부에 대한 욕심보다 현재 위치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나보다 훨씬 더 잘 생기고 더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더 못 한 환경에서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야지 개런티가 얼마인지, 주연인지 조연인지 그런 건 쓸 데 없는 생각이다. 그런 욕심을 부리느라 내가 할 장면을 제대로 못 해 내는 게 가장 어리석다'고.
그런 그의 정의가 빈말이 아니듯, 그는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드라마에서, 빛나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꼭 필요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내의 자격>에서 아내의 외도를 필연적으로 만든 파렴치한 남편이었으며, <하얀 거탑>에서 주연과 힘겨루기를 하는 변호사였고, 영화 <화이>에서 괴물이 된 아빠들 중 하나였으며,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을 저격한 경호실장이었다. 종횡무진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묵묵의 그의 존재감을 쌓아왔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그의 신념과, 그런 신념을 뒷받침한 그의 성실한 연기는, 오히려 그래서, <힐링 캠프>에서 떴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그를 역설적으로 빛나게 한다. 지나온 시간 동안 쌓인그의 연기와, 앞으로 해나갈 그의 연기가, 지금의 떳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존재 덕분에. 

(사진; tv리포트)

21년의 연기 내공 덕분에, 그가 자신의 친구들을 대놓고, '그 정도 뜰 수준은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이 그의 오만이 아니라, 장현성만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장현성만 하니까 그런 친구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그런 표현조차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예능과 최근 화제작이었던 드라마 덕분에, <힐링 캠프>를 통해 멋진 배우, 좋은 사람, 훌륭한 가장인 장현성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그 자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무조건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배우 장현성 이면의 예술가 장현성을 엿볼 기회를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시나리오를 썼던 내공으로, 이경규가 제시한 봄이란 주제를 가지고, 찬란한 계절과, 그 계절에 맞는 꿈과,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mc들의 면면까지 담아내는 내공의 시작을 선보인 장현성은 우리가 예능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장현성의 또 다른 '멋짐'이다. 

뿐만 아니라, 21년을 올곧게 배우의 길을 살아내기 위해 겪은 가난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겪은 고생조차도, 흥겹게 풀어내는 그의 내공이 오히려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시간에 대한 유쾌한 정의 후에 아버지에 대한 회고에서 내보인 그의 눈물이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죽어서도 꿈을 향해 하늘로 날아가는 노고지리와, 남겨진 아들들에게 멋진 아빠, 멋진 남자로 남고 싶은 그의 소박한 소망이,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고, 이미 그가 충분히 멋진 아빠, 훌륭한 배우,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에 보는 사람의 얼굴에 공감의 미소가 지어진다.. 21년을 한 길로 달려와, 그 성과로 <힐링 캠프>를 출연하게 된 걸 천진난만하게 기뻐하고, 자신의 지난 날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장현성에게서 소박함 속에 옹이진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by meditator 2014. 5. 13. 06:05

세월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중지되었던 예능과 함께 휴방했던 <힐링 캠프>가 돌아왔다.

돌아온 <힐링 캠프>의 주인공은 90년대 틴틴 파이브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젠 시각 장애인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이동우이다. 

결혼 한지 불과 100일 만에 망막색소 변성증이란 진단을 받고 급격하게 시력을 잃은 이동우가 그가 지나왔던 과정을 때로는 차오르는 눈물에 말문이 막히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전한다. 

언제나 누구나 뜻하지 않은 고통을 맞닦뜨린 사람이라면 그렇듯이, 이동우도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겪으며 행복한 것도 잠시,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난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다. 그 병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병은 급격하게 진행되었으며, 거기데 업친데 덥친 격으로 임신을 한 아내는 뇌종양의 판정까지 받아 신혼 부부의 행복은 불행의 나날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이 너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했던 이동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의 소식을 기사로 전해들은 것처럼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병을 거부하고, 혼돈스러워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넘기고, 이제는 철인 삼각 경기에 출전하고, 재즈 가수로 이름을 날리며, 연극까지 출연하는 등 장애 이전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힐링 캠프>를 통해 전해들은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밝은 그가 되기까지, 그도 고통을 받아든 그 누구나처럼 힘든 시간을 겪어 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더구나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져 이혼이란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여겨졌던, 그리고 그 고비를 넘기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의 아빠로서 무능력했던 자신을 자책하던 시간들 밝은 목소리 중간중간 말문을 잇지 못하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알수 있게 된다. 

간사하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전해들으면 같은 사람이기에, 그의 고통이 마음 깊이 전해져서 함께 아프면서도, 동시에 안도하게 된다. 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하는, 미안하게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얍삽한 안도만이 아니다. 그런 동병상련을 넘어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은, <힐링 캠프>의 이동우처럼, 그 고통을 겪는 누군가가, 그것을 의연하게 넘기며 오히려 그 전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 나에게 다가온 이 고통도 언젠간 저렇게 넘어가게 되는거구나 라는 진짜 안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고통을 넘어 그 전보다 나은 깨달음과 나은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에게 온 이 고통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걸게 된다. 

바로 그런 고통의 카타르시스를 <힐링 캠프>의 이동우는 잘 전달해 준다. 
눈이 멀기 전까지는 오로지 연예인 이동우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 속에서만 살던 젊은이가, 결혼을 하고 뜻하지 않는 실명을 하고, 그러면서 아빠가 되고, 다시 생활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그것이상, 그런 고통을 보다 나은 삶으로 승화키며 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린 딸에게 눈먼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시도했던 트라이애슬론 최종 도착 지점에서, 오히려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올 수 있었던 동인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곁을 지켜준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인간 승리의 장애인을 넘어선 삶의 승화를 얻어낸 모습이기에 더 감동적인 것이다. 고통이 그저 고통이 아니라, 때론 삶의 더 큰 가치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당당함도 위로가 된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다니기 위해 하얀 지팡이에 벨을 달게 되었다는, 자칭 에디슨이라는 그의 평가는, 그 이면에, 세상 사람들의 편협한 불편함때문에 점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장애인들의 현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장애가 죄냐 라는 그의 항변은, 우리가 무심결에 젖어든 우리의 편견을 일깨워준다. 
그건 시각 장애인만이 아니다. 오히려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이 사회 속에서 늘 부족하다 하여 웅크리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이 먼 이동우가 세상 밖으로 나오라 독려해 주는 듯했다.

이동우가 포크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 정말 힘든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유한 것임에도,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임에도, 그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의 딸을 5분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잃지 않는 이동우지만, 자신이 가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더 나은 삶을 성취하는 것으로 그를 보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한다. 오랜만에 돌아 온 <힐링 캠프>는 모처럼 프로그램 본연의 '힐링'에 충실했다. 


by meditator 2014. 5. 6. 03:19

언제나 그렇듯 국가적 행사인 올림픽을 향해 각 방송사들이 전력질주한다. 심지어 이제는 중계조차 각 방송사 별 특색을 갖춰, 중계 방송 간의 경쟁 조차도 나날이 치열해 진다. mbc가 스타mc 김성주의 화려한 입담에 의존한다면, sbs는 신예 배성재 아나운서의 차분한 진행과, 거기에 덧붙인 전문가의 노련한 해석의 조화로 mbc의 중계와 쌍벽을 이루어 나가는 가운데, kbs는 강호동이라는 또 다른 스타의 해설 합류로 화제성을 이끌어오고자 했다. 이렇게 각 방송사 별로 중계를 둘러싼 경쟁이 예년과 다르게 좀 더 치열해 지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자신의 전통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경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돌아오면 떠오르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이경규가 간다>이다. 2002년 올림픽을 필두로 언제나 우리 나라의 국가적 운동 경기에는 그가 있었다. 이경규가 mbc에서 <일요일일요일 밤에>를 하건, kbs에서 <남자의 자격>을 하건, 심지어 sbs로 옮겨와 <힐링 캠프>를 해도, 언제나 <이경규가 간다>는 그 제목의 고유성을 살려내며 이경규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이제, 2014년의 소치 올림픽, <이경규가 간다>를 찾아볼 수는 없다. 대신, 올림픽 기간 동안 17일, 19일 양일 간에 걸쳐 <힐링 캠프> 소치 특집 편이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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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다르게 <이경규가 간다> 대신에 <힐링 캠프> 소치 특집이 방영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지난 번 <힐링 캠프> 런던 올림픽 특집이었던 '런던 캠프' 특집에 대한 반성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맞아 <이경규가 간다>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경규는 <힐링 캠프>라는 특성을 배제하고 런던 올림픽 특집 런던 캠프라는 특집의 미명 하에, 런던 판 <이경규가 간다>를 강행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경규, 한혜진, 김제동 세 사람의 응원 방식에 호불호가 갈렸으며, <힐링 캠프>란 프로그램의 성격 특성상, <이경규가 간다>라는 방식의 부조화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처음 <이경규가 간다>를 했을 때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이 국가적 체육 행사에 앞장서 응원을 한다는 방식이 신선한 포맷이었지만, 이제는 너도 나도 서로 못가서 난리인 상황에서 <이경규가 간다>라는 포맷이 전통성은 있을지언정, 차별성을 누리기 힘든 처지가 되었다는 점이 가장 딜레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힐링 캠프> 런던 캠프는 결국 <이경규가 간다>의 한계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과만을 낳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을 맞이해, 이경규와 <힐링 캠프>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방식을 포기하고 대신 <힐링 캠프>의 특성을 보다 고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소치 올림픽 판 <힐링 캠프>가 그 결과다.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현지 응원 방식 대신에 발빠르게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와,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지만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운 이규혁 선수를 섭외한 <힐링 캠프> 소치 특집은 <힐링 캠프>다운, 그러면서도, 여전히 국가적 행사의 현장을 지키는 <이경규가 간다>의 전통을 지킨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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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발빠르게 섭외한 이상화 선수와 이규혁 선수와의 시간이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는가는 평가의 여지를 남긴다. 늘 그래왔듯 게스트의 역량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이 리듬을 타는 <힐링 캠프>답게, 특히나 스포츠 스타들을 데리고는 상투성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전례처럼, 이상화 선수나, 이규혁 선수의 특집이 특별히 별다르지는 않았다. 그들의 고된 시간을 진솔하게 드러낸 시간은 좋았지만, 뻔해도 너무 뻔한 성유리를 제물로 삼은 러브 라인에 치중한 토크, 거기에 본인이 말해놓고도 무안할 지경의 이경규의 상투적 마무리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그저 보도와 응원에 그쳤던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차분하게 올림픽의 상반된 캐릭터의 영웅을 발빠르게 이야기의 장으로 끌어온 것만으로도 <힐링 캠프> 소치 특집은 의미가 있다. 금메달리스트의 영광만큼, 6회를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메달인 이규혁 선수의 출연과 그의 소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 캠프>다운 특성을 십분 살려낸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경규의 소치 버전 <이경규가 간다>는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의 전통을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난 해 sbs연예 대상에서 후배 들과 겨루어 상을 받는 현역으로 여전한 이경규의 저력이 보여지는 지점이다. 또한 이경규의 이런 면은, 또 한 사람, 그의 후배로 여겨지면서, 소치에서 해설자로서 모습을 보였던 강호동과 대비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예체능>을 진행하는 강호동은 <우리 동네 예체능>의 프로그램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프로그램 해설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거둔 일련의 성과과 상관없이 과연 이번 올림픽에서 그의 선택이 어울렸는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가리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란 프로그램의 성격을 해설자 강호동이 제대로 살려냈는가에는 의문의 방점이 찍히는 상황이다. 자신이 이끄는 프로그램의 성격에도 맞지 않고, 그렇다고 이경규처럼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전통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해설자로서의 등장은 <달빛 프린스>의 강호동처럼,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다. 혹은 그저 올림픽이니 나도 한 자리 끼어보자 라는 강호동 자신의 욕심만이 앞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런던 올림픽의 단점을 극복한 이경규의 선택에 한 수 아래다. 50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후배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는 이경규와, 짧은 자중과 숙고 뒤에 오래도록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하는 강호동의 차별 지점이기도 하다. 소치 올림픽의 이경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현장을 지키던 자신의 전통을 지키면서,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의 전통도 살린 현명한 버전업의 사례다. 


by meditator 2014. 2. 20. 08:49

결혼 첫 날 밤, 당신은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이 나의 네 번 째 남자라는 걸 고백해야 할까?

21세기에 이 뜬금없는 결혼 첫 날밤의 고백이 화두가 된 것은 2월 3일 방영된 <힐링 캠프> 시청자 특집의 한 장면이다.
시청자 특집에서 강사로 초빙된 '다상담'의 철학자 강신주는 이제 남자 친구를 만난지 22일 된 새내기 연인에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면을 벗어 던지고 민낯의 자신을 보여주어야 외롭지 않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면을 벗어던진다는 미명 하에 던지는 진실이 진실일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진실이란 미명하에 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과연 내 맘 속에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나의 언어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 온전히 진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듣는 상대방의 생각과 관점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질될 파편들이 아닐까? 아니 무엇보다, 결혼 첫 날 밤이든, 이제 겨우 22일 만나는 사이이든지, 그 두 사람 관계 사이에 딱 이렇다 라고 정의내릴 진리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사진; 영남 일보 )

하지만 강신주는 단호했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면 뒤에 숨어서 외로울 것이라고, 둘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 당연히 외로움을 피한다. 
이런 식이다. 
병들어 퇴직한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에게, 본질은 나이들어 낯선 아버지가 귀찮아 하는 당신의 마음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그리고 그동안 돈 버느라 아버지의 자리에서 벗어나 '모르는 사람'이 된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김제동에게 사자 인형 따위나 사지 말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라고 충고한다. 

돌직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그의 직설은 결국 '사랑'으로 향한다. 
쿨하고 싶지만 결국 자신이 던진 말들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성유리에게도 자신이 속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듯이, 정의롭고 성숙한 사랑이야말로 사회적 모순조차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 초반 사연을 보낸 70여 명의 방청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입장한 강신주에게 mc 이경규는 다짜고짜 힐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힐링 캠프>에 출연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강신주는 그 말을 거부하지 않는다. 힐링은 결국 '위로'에 다름아닌데, 그렇게 달콤함 위로는 세상의 험한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정의내린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식의 김제동 어록은 조작일 뿐이라며, 자신은 도화지에 불과하며, 자신과의 상담을 통해 그 도화지에 그려지는 상담자의 맨 얼굴을 직시하는 것이 자신의 방식으로 힐링과 전혀 다른 효과를 준다고 단언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YES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있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강신주의 혹독한 상담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텔레비젼에서 봤던가, 영화에서 봤던가 어떤 무당집이 떠오른다. 앞의 상을 '땅'치며 '틀렸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인연이 아니야!'라고 말하던. 모욕인가? 아니 우리가 이젠 무당의 그 말이 낭설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지, 과학과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에, 신의 대리인으로서 전지전능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들이 바로 그들 샤먼들이었다. 우리가 즐겨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도 전쟁에 나가기 전에 신전에 찾아가 신의 말씀 신탁을 듣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지만 내 운명을 확고하게 인도할 것 같던 그 신의 존재는 산업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간다. 더불어 신의 말씀을 전하던 샤먼들은 음침한 골목에서 외로움 깃발 하나에 의지한 채 '영험'하다는 말로 포장한 채, 삿된 요술의 존재가 되어가고. 사람들은 개별자로서의 외로움에 떨고. 

(사진; 스포츠 동아)

그래서 대신 등장한 것이, 정신과 상담이요, 그것보다 유연한 것이 '힐링' 이요, 이제 '힐링'이 또 다르게 '업그레이드'된 것이 '다상담'과 같은 것들이다. 상당해 주는 사람들이 방책으로 삼는 처방들은 제 각각이지만, 결국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해주던 신탁과 본질적으로 효과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 신탁은 때로는 영웅들에게 전쟁에 나가 이기리라는 승전보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살아돌아오기 힘들다는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영웅들이 비보를 들었다고 그의 걸음을 물렸던가.

결국, <힐링 캠프>에 출연했던 많은 출연자들이 전해주었던 힐링의 달콤한 말이 옳냐, 강신주식의 직설이 옳냐가 문제가 아니다. '직설'이라면 지난 번 출연했던 법륜 스님의 즉문 직설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강신주든, 법륜 스님이든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치나 메치나'위로'이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어깨를 도닥여 주느냐, 선방의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치느냐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조금 더 행복하게 사랑하고 살라'는 소박한 주문이다. 단지 그것들이 텔레비젼이라는 공적인 매체를 통해, 조금 더 공신력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 있다. 그런 누군가의 방식이, 그 옛날 샤먼의 그것처럼 전지전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덧 이 시대의 텔레비젼이 바보 상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신전이 되어, 신탁인 양 그런 정언 들을 옮겨대는 것이다. 그 또한 그저 강신주의, 법륜의 생각이요, 주장에 불과한 것을, 우리는 마치 교실 속 착한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 첫 날밤 고백을 하던 그렇지 않던 그게 그 사람의 진실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을,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간사한 귀찮음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 마음 속에 누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끄집어 내는 충격 요법은 그저 여러 치료법 중 하나라는 것을 텔레비젼을 보는 우리가 매번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아무리 꿈을 꾸어도, 사랑을 해도,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게 된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4. 10:20

휘재야~!'

하는 이휘재씨 아버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이휘재의 눈물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이휘재처럼 시청자들도 뭉클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주에 이어, 1월 13일 이번 주까지 2주에 걸친 <힐링 캠프> 동안, 이미 이휘재란 사람에게 충분히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휘재 폭풍눈물이 화제인 가운데 이휘재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 SBS 방송화면
(사진; 스포츠 서울)

마지막 <힐링 캠프> 제작진이 준 운동화 세트를 받아든 이휘재가 장인, 장모님꺼가 빠졌다며 선물 중 일부를 그분들께 드리고 자기 부부꺼는 사면 된다는 말이 굳이 덧붙이지 않았어도 <힐링 캠프> 이휘재편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성유리의 '이가정'이란 말이 얼마나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 전의 지나온 시절이 '이바람'이란 단어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그 시절조차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푸근한 미소가 지어지듯 들어줄 수 있었고, 이제는 '놀만큼 놀았다'는 그의 평가에 함께 수긍할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고 싶다'는 앙탈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시간이 되었다. 

2주에 걸친 그의 시간을 되돌아 보건대, 대상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지난 23년을 한결같이 대중들 옆에 존재해왔던 시간이라는 것이다. 갓 스무살이 넘긴 나이부터 스타가 되어 당대 최고의 인기남으로서 홍보 한번 하지 않은 음반이 17만장이 나갈 만큼 인기를 누렸고, 한참 인기 가도를 누릴 때 군대를 다녀와, 인기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고, 다시 거기서 치고 올라와, 가장 연애하고 싶은 남자로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 23년의 연예계 생활을 회고하며, 스트레스와 가족력으로 인한 실명 위기를 고백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토로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 해 돌아가신 김열규 교수님이 마지막 까지 쓰신 글들이 모여있는 [아흔 즈음에]라는 책을 보면, 나이듦의 허무에 대한 글이 나온다.
'내가 무슨 빈 고무주머니인듯 느껴진다. 머리며 가슴만이 비는 게 아니다. 온몸이 허물 벗은 매미 껍질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존재 자체가 빈털터리가 된다. 내 속은 무슨 바람이 지나가도록 텅텅 비어 있다'.
독보적인 한국학자이자, 70여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긴 노학자도 늙음 앞에서는 무기력했던 순간이다. 

하물며 득도의 경지에 이르른 학자가 그럴 진대, 범부는 오죽하겠는가. 하물며, 대중들의 호불호에 따라, 하루 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는 연예인들의 처지는 오죽하겠는가.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은 나이듦에 대해 그 자신도 보기 싫은데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들보고 좋으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 자신도 버거운 나이듦에 대중들의 시선까지 얹고 가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이다. 그래서, 실명 위기와 정신과 상담을 토로하는 이휘재나, 그리고 그의 앞에서 공황장애와 사지 경련을 앓았다고 공감하는 이경규나 김제동의 처지는 더 안쓰럽다. 하지만 안쓰러워 하면서도 이제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어른이 된 아이처럼 대중들은 한편 냉정하기도 하다. 그런 냉정한 잣대로 재단되는 세계에서 23년을 버틴 이휘재가, 그럼에두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하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이휘재가 안쓰러운 이유는, 23년을 버텨오느라 그의 몸을 습격한 질병들 때문만이 아니다. 23년의 관록에도 불구하고 늘 대중의 호불호로 인해 뭇매를 경험하는 그의 애매한 위치때문이기도 하다. 마흔 세살의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인 이휘재는, 젊은 아내가 무색하리 만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여전히 리듬을 타는데 손색이 없고, '놀고싶다'는 그의 말이 무안하지 않은 젊음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런 느낌은 다른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철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철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복은 없어도 인복이 있다는 그의 평가처럼, 그는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스스럼없는 태도로 인해, 아는 사람과 덜 아는 사람들에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인하여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힐링 캠프>에서도 그렇다. 아내와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종종 그의 이야기는 수위를 찰랑 거렸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의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몸매 이야기까지 나갔을 때는 그의 토크의 잔은 순간 넘쳐 버렸다. <힐링 캠프> 만이 아니다. 지난 연말 sbs연기 대상에서도, 그의 진행은 다른 방송사 그 누구보다도 매끄러웠지만, 순간 순간 그가 좀 아는 연예인에게 다가가, 쓸데없다 싶은, 혹은 과하게 친한 척을 한다 싶은 이야기들로 인해, 다시 한번 이휘재라는 사람에게서 연상되는 편협함을 상기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늘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매끄럽지만, 찰랑거리다, 때로는 넘치는 것들이, 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부디 한 살 더 먹은 그의 철듬이, 그 순간순간 넘치는 경계를 잘 다루어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이가정'으로 회복한 좋은 이미지로, 오래도록 좋은 mc로 남아있도록 만들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14. 10:40

지인을 만났다. 

때가 입시철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는 대학 입시에 대한 걸로 흘렀다.
"괜히 연고대 높은 과 갈 필요가 없어. 차라리 그 성적이면 서울대 낮은 과 가는 게 나아. 요즘은 서울대 복수전공 제도가 있어서, 경영학과 복수 전공으로 하면, 들어갈 때는 별 볼일 없는 과라도, 나올 때는 서울대 경영학과야."
이 말에는 여러가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사회적 인식들이 들어있다. 속칭 sky라고 하는 곳 중에서도 서울대가 최고요, 서울대에서도 경영학과가 최고요, 소질과 소망이 아니라, 그저 서울대를 가기 위해 아무 과라도 좋으니, 서울대 문턱에 들어서서 경영대를 복수 전공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위너가 될 수 있다는 등등의 생각들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래도, 서울대가 뭐 그렇게 좋다고, 라며 회의적(혹은 철모르는(?)) 반문을 한다. 하지만, 그러던 아들도,<힐링 캠프>에 나온 한지혜 씨가, 남편감이 서울대 출신에 사시를 한번에 통과하고, 집이 있다는 소리에 단번에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를 하자, 대번에 그런다, '난 루저네'. 

물론 한지혜씨의 남편이 서울대를 나오고, 그것도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시를 한번에 통과하고, 현직 검사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다루는, 한지혜 씨의 태도, 그리고 그걸 유도하는 <힐링 킴프>의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힐링 캠프>는 말 그대로 힐링을 시켜주겠다는 예능이다. 그리고 그 힐링의 대상은 출연하는 게스트이기도 하지만, 그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청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 지점에 혼돈을 가져오곤 한다.
한지혜씨는 사실이니까, 남편의 스펙만 보고 만나보겠다고 한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톡 꼬집어 이야기의 주제로 부각시킨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 이미 한지혜 씨 이전에도, 종종 <힐링 캠프>에서 mc인 이경규 씨가 '서울대'를 참 좋아한다는 언급이 자주 드러났었다. 하지만 텔레비젼을 보는, <힐링 캠프>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다수의 사람들은 참 좋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라고 했지만, 김제동 조차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할 만큼, 남편의 스펙이 한지혜라는 연예인에게 결혼 결심의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과, 그 이전 회, 문소리의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결혼할 때까지, 심지어 결혼한 이후에도 비닐 옷장을 애지중지했다는 사실은 똑같은 사실임에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는 파장이 다르다. 
하지만, <힐링 캠프>의 반응은 전혀 힐링이 되지 않는다. 문소리 씨 남편의 비닐 옷장에 대해서는 뭐 그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 요즘도 그런 걸 써? 라는 식의 우스개로 치부해 버렸다면, 한지혜 씨 남편의 이야기는 갖은 호들갑을 다 떨면서, 그저 남편일 뿐인데, 마치 한지혜 씨가 사시 합격에 검사라도 된 것처럼 대우해 준다. 그리고 그 대우에 한지혜 씨의 얼굴을 더 밝아지고, 더 당당해 진 것 같다면, 그저 보는 사람의 착각이었을까.

좋은 걸 좋다고 말하니 솔직하다고?
이러니 엄마들이 목숨을 걸고 아들 자질과는 상관없이 서울대에 들이밀려고 하고, 아들이 대학간 걸 엄마가 대학이라도 간 것마냥 콧대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는 분 중에 서울대 떨어져서 연대에 갔다고 집안이 초상집 같았던 집이 있었다. 서울대를 못갔다고 루저를 만드는 건, 사회의 무섭고도 왜곡된 인식이다. 그리고 그걸 '솔직함' 혹은 '당당함'이란 이름으로 <힐링 캠프>는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원서를 쓰고, 이미 수시 1차 결과의 고배를 마시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 시절에 말이다. 

게다가 한지혜 씨의 경우, 비단 남편과 관련된 언급만이 아니라, 드라마의 캐릭터와 관련된 언급으로도 세간의 평가가 오락가락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미 일간지 등의 인터뷰를 통해 계속 화제가 되었던, '연기 대상을 노리고' 했다던 그 말을 어김없이 <힐링 캠프>에서도 또 했다.
막상 연말이 돼서 그녀가 연기 대상을 받고 안받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녀의 연기 대상을 노린 캐릭터 선정은, 앞서, 스펙만 보고 남편을 만나기로 했던, 그 사고와 연장 선상에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배우 일 개인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그건 배우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혹시나 그녀를 좋아하는 그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땐 경우가 다르다. 
세상이 사실은 그래도, 남편은 스펙을 보고 고르고, 극중 캐릭터는 상을 받을 목적으로 골라서는 안되야 하는 것이다. 굳이 그게 사실이라도, 혼자 생각하면 그뿐, 입 밖으로 '나 자랑이요' 하면서 떠들 꺼리는 아닌 것이다. 원컨 원치않건, 공인으로 대접받는 자의 도리다. 하지만 어느 덧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물로 살아가는 걸, 당연스레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장하기 까지 한다. 솔직함을 가장한 '속물편향주의'가 아쉽다. 



by meditator 2013. 10. 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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