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7회, 심덕출(박인환 분) 씨가 '알츠하이머'였음이 드러났다. 
기승주가 데려간 발레단에서 잠시 공연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은 덕출 씨, 덕분에 아내와의 약속에 늦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덕출 씨가 흘리고 간 수첩, 앞에는 채록의 매니저로, 뒤에는 초보 발레리나로 덕출 씨는 모든 걸 기록하려 애썼다. '할아버지는~'하며 채록이 집어든 수첩, 제일 앞 장에는 심덕출 씨의 사진과 연락처, 그리고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74살, 친구의 죽음을 통해 더 나이들기 전에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보고 싶다'던 노옹의 소원은 7회를 통해 국면을 달리한다. 그저 더 나이들기 전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고,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나선 길이었던 것이다. 그간 왜 그렇게 덕출 씨가 조급해 했는지, 비지땀을 흘리며 홀로 연습을 했는지 보다 명확해 진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알츠하이머'라 시간이 없는 건 다른 것이니까. 

 

 

'엔드 게임' 
엔드게임,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의 저자 이현수 씨의 말처럼 어벤져스 시리즈의 부제가 아니다. '첫 늙음'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각자의 게임이다. 

'기억, 운동, 감각, 언어, 신체 등에서 예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오류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드 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 시간으로 재단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들어'선 이 게임의 시간에 그 누군들 억울하지 않으랴. 더구나 그 '엔드 게임'의 엔딩은 공평하지 않다.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가진 재산이 많다는 것도, 엔딩은 불공평해서 공평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공원 벤치에 앉은 덕출 씨 눈 앞에 주마등 처럼 살아온 시간이 스쳐지나간다. 그의 마음은 발돋움을 하여 처음 발레 공연을 보고 혼자 거리에서 다리를 쭉쭉 뻗던 그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74살 덕출 씨가 울먹인다. '아버지, 어머니, 나 어떻게 해요.'

엔드 게임의 노년기는 불가항력일까?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는 이에 대해 '태도'를 말한다. ''못먹어도 고'의 상황에 놓인 자신을 충분히 자각하고, 아쉬워하고 나면 오히려 용감해지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선택의 폭이 좋아지면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치열하게 밀도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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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 밀도있게 
야심차게 발레를 시작하는 노년의 심덕출 씨를 보며 막연하게 그 '꿈'의 앞길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말 그대로 '엔드 게임'의 여정에서 심덕출 씨의 꿈에 무슨 그리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거기다 조금씩 무언가를 잊는 모습을 보여주는 덕출 씨의 일상을 통해 <나빌레라>가 결국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7회 마지막 수첩에 적힌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를 통해 <나빌레라>는 지금까지 '치매'를 다뤄왔던 다른 드라마와 다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걸 알게 된 덕출 씨는 공원에 앉아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자신에게 들이닥친 병마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암보다도 더 무서운 진단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덕출 씨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발레를 시작한 것이다. 충분히 자신에게 닥친 병에 안타까워 하던 덕출 씨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남은 생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집중'의 결과물이 '발레'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밀도있는 삶을 향한 여정이다. 

동네 아줌마가 '춤바람'이라고 하는 발레를 74살의 노인이 선택하는게 어디 쉬웠을까. 당장 7회에서 '주책'이라는 말에 덕출 씨가 움츠러든다. 채록이는 연습만 해도 빛이 나는데, 덕출 씨는 연습복을 입은 모습부터가 스스로 '무안'하다. 나이듦은 '추레'하다.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그저 '존재'자체만으로 빛나는 젊음과 다르게 무엇하나 '뽀대'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차도 손녀에게 선사한 덕출 씨다. 그래도 식전 댓바람부터 연습실로 나선다. 선생님 채록이가 없어도 온종일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매일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운다. 그런데 일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뻣뻣하다. 연식이 유연성을 향한 훈련을 앞지른다. 한 달된 젊은 처자들이 쭉쭉 몸을 뻗는다.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로 끙끙거리는 처지다. 그런 처지여서 그런가, 다리 한번 들면서 부들거리시는 덕출 씨에 공감 만배이다. 다리 하나, 팔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제 아무리 해도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와, 천근만근인 다리, 하지만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꿈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다. 

이모부님이 덕출씨와 같은 병마에 시달리신다.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최고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뭐든 배우고자 하면 스스로 독학을 해서 뚝딱 해치우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속절없이 변해가신다. 제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한 일이 많아도 '나이듦'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그 속수무책의 시간, 덕출 씨는 그냥 앉아서 자신의 병에 당하는 대신, 평생의 '로망'에 자신을 던진다. 엔드 게임의 시간을 맞이하는 덕출 씨의 태도이다. 엔드 게임의 시간은 우리에게 공평하지만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 되는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고 드라마는 전한다. 

거기에 더해 나이듦의 미덕도 놓치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건 모든 게 다 나빠진다는 것이다. 신체적 기능도, 정신적 기능도 약화된다. 하지만 딱  하나 좋아지는게 있다고 한다. 바로 '지혜'이다. 다리를 다쳐 다가올 콩쿨에 나갈 수 없어 좌절하는 채록, 기승주도, 은교수도 달래보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채록의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다. 그때 덕출의 조언이 채록의 불안을 다독인다. 다음이 있다는 말, 그 평범한 말에 실린 덕출의 삶이 주는 '지혜'가 채록에게 한 발 물러설 용기를 준 것이다. 

<나빌레라>가 빛나는 건, 노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어서이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퇴적층'이 되어가는 노년층을 지나온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갈 '꿈'을 꾸는 사람들로 그린다. 알츠하이머라는 최종 진단 앞에서도 말이다. 

나이듦은 본의 아니게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심지어 그 갈아탄 열차의 종착지가 아주 다르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닌 노년의 열차, 하지만 그 여행길을 어떻게 가는가는 탄 사람에 달렸다고 <나빌레라>는 말한다.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과감하게 보낼 수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지난 1,2년 사이 열차를 갈아탄 듯하다. 그래서일까, 덕출 씨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무모하게 용감해졌다. 나에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였고, 그저 '하고 싶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래서일까, 발레를 향한 덕출 씨의 눈빛에 공감 백배이다. 그건 '사랑'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노년층, 사회적 시스템은 나이듦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저 시스템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이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여정의 삶에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빌레라>는 그저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듦의 시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by meditator 2021. 4. 13. 16:19

나에게 처음 '미드'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드라마는 sbs를 통해 방영된 <ER>이었다. 199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NBC를 통해 방영되었던 <ER(Emergency Room )>은 시카고 카운티 종합병원 응급실을 배경의 의학드라마이다.


'의사'라고 하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특별한 사람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ER>속 의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고달픈 직장인들이었고, 월급을 넘어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자신의 직업적 이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부'의 국가 미국에서 의료 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로 인해 의사들이 '도덕적'인 고뇌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전국민 의료 보험제도가 당연한 사회에 사는 사람에게 비춰진 '부'의 이율배반적인 민낯이었다. 

 

 

<ER>로부터 20년, 미국은 달라졌을까? 
내가 <ER>을 시청한 것이 2000년대 초반, 그로부터 어언 20여년 미국의 의료 현실은 달라졌을까?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뉴암스테르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뉴욕 한 복판에 있는 공립 병원 <뉴암스테르담>, 그런데 왜 뉴암스테르담일까? 영국의 점령 이후 새로운 요오크라는 명칭의 '뉴욕'이라고 불리기 전에 네덜란드가 점령하여 네덜란드의 수도 이름을 따서 새로운 암스테르담이라 불렸다던 뉴욕, 즉 오래된 뉴욕의 지명이 병원의 이름인 것처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병원인 벨에뷰 병원의 병원장이었던 에릭 만하이머(Eric Manheimer) 박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여 드라마는 만들어졌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ER>로 부터 20여년 미국 사회는 나아지지 않았다. 공공병원은 있지만 그곳에서 '공공 의료'는 쉽지 않다. 여전히 의료 보험은 가난한 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항생제만 있어도, 기본적인 인슐린만 있어도 해결될 '병고'가 다리를 절단하고 응급실에 실려오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학교의 기간제 교사가 가장 기본적인 당뇨병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쓰러지고, 의료 체계에서 방치된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서 보험 혜택을 받는 불법을 자행하기도 한다. 여전히 <뉴암스테르담>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의 제일 첫 마디가 '보험이 없는대요'이다. 20년 전에도 보험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환자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료의 치외법권 지대에 놓여있다. <뉴암스테르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미국의 현실이다. 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이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발생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의 시즌1,2를 채운다. 

그렇게 돈이 있어야 치료도 받고 목숨도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것도 미국의 심장이라는 뉴욕 한 복판에 오래된 공립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공립병원이지 이른바 '합리적인 경영'을 앞세운 뉴암스테르담은 '영리'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도 여전히 공립 병원으로서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새로운 의료 팀장으로 맥스 굿윈(라이언 이골드 분)이 부임한다. 

부임하자마자 새 의료팀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돈이 되는 수술에만 골몰하던 의료진들을 '해임'하는 것이었다. 대신 병원장과 이사장이 대놓고 '그건 사회주의야'라며 난색을 표명하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간다. 

 

 

공공의료의 본령, 뉴암스테르담
공공병원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의료'를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병원이다. 하지만 병원의 경영이라는 목적이 내세워지며 공공 의료는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사회주의라며 병원 운영진의 항의를 받은 맥스 굿윈의 시도는 사실 '심플'하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뉴암스테르담의 본령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거기를 지나던 맥스 굿윈의 눈에 상처를 치료받지 못해 곧 썩어들어 갈 것같은 다리로 인해 고통받는 노숙자 여인이 눈에 띈다. 맥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치료비가 없다는, 보험이 없다는 그녀에게 말한다. 뉴암스테르담은 공립병원이라고. 치료비를, 보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립병원이지만 사람들은 보험이 없이는 치료받을 수 없는 미국 의료 체계에 길이 들어 공립병원인 뉴암스테르담조차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맥스 굿윈은 뉴암스테르담 카드를 만들어 뉴욕 곳곳에 돌린다. 그러자 이사회장은 반대를 한다. 뉴욕 시민들이 뉴암스테르담이 공립 병원인 걸 알면 병원이 망한다며. 

맥스 굿윗이 극중 에피소드를 통해 벌이는 일들은 사실 공립 병원으로서 '상식' 차원의 일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는 그 '상식'이 그런데 이상주의가 되고, 사회주의가 되며, 병원을 망하게 할 지도 모를 일이 되는게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 되었다.

물론 맥스 굿윈의 '상식'이 도발적이긴 하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을 구할 수 없는 상황, 맥스는 그 원인을 인슐린을 비싸게 공급하는 거대 제약 회사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제약 회사와의 담판을 치루고자 하는 맥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자 맥스는 병원 내 실험실에서 인슐린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한다. 물론 반대에 봉착한다. 이번에는 인슐린을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 캐나다에서 인슐린을 공급받고자 한다. 그 시도도 인슐린 구입 트럭이 국경을 넘지 못해 실패한다. 그러자 방송을 통해 인슐린조차 구하지 못하는 환자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맥스의 시도는 성공했을까? 거대 제약 회사의 인슐린 가격을 내리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 실패일까? 인슐린을 공급받지 못해 쓰러졌던 기간제 교사에게는 무료로 평생 인슐린이 공급되었다. 겨우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맥스는 자신의 환자를 우선 살렸다. '인간의 얼굴을 한 맥스의 공공의료는 이런 식으로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간다. 

그의 무모하고 맹목적인 시도는 늘 병원을 파산으로 이끈다고 위협받는다. 비효율적이라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럴까? 병원의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앙케이트에 냉소적인 직원들의 상황을 살피던 그는 오랜 출퇴근 시간으로 피로에 쩔어사는 직원들을 위해 '통근 버스'를 마련한다. 통근 버스를 시행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오래된 관행적 업무로 인해 실제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는 비효율적인 직원들을 재배치한다. '휴머니즘'이 비효율적이거나 무능하지 않다는 반례를 만든 것이다. 

에릭 만하이머 박사의 원작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는 21세기의 미국에서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이상주의적'인 사례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몽상적'이라 할만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래서 <뉴암스테르담>은 신선하다. 여전히 21세기에도 '인간의 선의와 의지'가 보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서사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적'이다. 사이코패스와 좀비, 보다 강력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드라마적 요소가 되어가는 시대에 여전히 인간의 선한 얼굴에 대한 믿음과 그걸 통해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조차 상실되어가는 낯선 휴머니즘을 오랜만에 '재회'한 기쁨을 느끼도록 만든다. 






by meditator 2021. 3. 29. 16:56

처음이 아니다.

3월 22일 새로이 시작한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부딪쳤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생시'로 인해 왕자마저 위 협을 받는 상황, 태종 이방원(감우성 분)은 로마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한다. 로마 교황청의 특사 자격으로 조선을 방문하게 된 요한 신부 의주에서 그를 맞아 대접하는 장면에서 '월병' 등의 중국 음식이 상에 그득 쌓여 있었다. 왜 로마 교황청에서 온 신부를 대접하는데 '중국' 음식이어야 하는가?

하지만 <조선 구마사>의 본질적 문제는 그런 한 장면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조선 구마사>의 문제는 이미 박계옥 작가의 전작 <철인 황후>에서부터 제기되었던 바 있다. 하지만 단지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성황리에 드라마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시작된 <조선 구마사>, 드라마 속 장면이 보이는 국적 불명의 상황으로 인해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조선구마사> 공식 페이지에는 작가 박계옥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그러나 박계옥 작가가 <철인 황후>에 이어, <조선 구마사>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드라마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연상시키는 '좀비'들의 역습으로 시작된 드라마 <조선 구마사>, 하지만 <킹덤>과 <조선 구마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역사'이다. 조선인듯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가지만 <킹덤>은 '조선'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왜란 이후 조선 어느메쯤이라고 연상은 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환타지적' 공간이다.

<킹덤> 역시 왕실을 '능멸'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왕은 좀비가 되고 왕가의 혈통은 '아무개'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걸 보고 '역사 왜곡'이라고 하지 않는다. 조선인 듯하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진 가상의 봉권적 권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누군가가 되는 순간 서사의 뉘앙스는 달라진다. 

대놓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냉소하는 드라마 
<조선 구마사>는 대놓고 태종 이방원이 통치하던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다. 10년전 생시와의 싸움을 끝으로 평화를 되찾은 조선, 하지만 다시 '생시'가 등장한다. 그 생시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사절단으로 찾아온 요한 신부, 그에게 훗날 세종이 될 충녕(장동윤 분)은 생시 출몰의 원인을 묻는다. 그러자 뜻밖에도 태종과 태상왕 태조 이성계에게 그 이유를 물으라는 대답이 나온다. 

태종에게 밉보인 세자 양녕(박성훈 분) 역시 원명왕후(서영희 분)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원명왕후는 '네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알게 될 것'이라며 답을 피한다. 두 상황을 통해 눈밝은 시청자라면 10년 만에 다시 조선에 등장한 '생시'가 조선 건국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즉,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이성계와 이방원은 마치 영생을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 파우스트처럼 손을 빌어서는 안될 세력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생시'로 인한 작금의 사태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된다. 이러한 극의 톤은 극중 요한 신부를 대접하는 과정에서 선조 '목종'도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는 충녕을 통해 '용비어천가'의 정당성을 냉소한다.

 

 

조선 왕실에 대한 박계옥 작가의 비판적이다 못해 조소하는 듯한 시선은 이미 <철인 황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중국 드라마 리메이크 작이라는 태생적 한계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의 남자가 과거의 황후의 몸에 빙의되어 왕과 로멘스를 벌이는 기본적인 스토리가 가지는 불온함은 <철인 황후>에서도 역시 왕실을 희화화하는 여러 설정과 함께 시청자들의 역사적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재밌'으면 된다는 시청자들의 화답으로 <철인 황후>는 무사히 막을 내렸고, 결국 <조선구마사>의 사태를 불러왔다.

늘 아버지 태상왕에 대한 심적인 부담을 안고 있던 이방원은 10년 전 의주에서 그 '트라우마'로 인해 애꿏은 백성들을 '집단 살상'한다. 태종이 조선 건국 과정에서, 그리고 왕자의 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지만 그것과 첫 장면에서 보여진 백성들의 집단 살상 장면을 전혀 다른 차원의 '살상'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묘하게 역사적 사실이 가진 뉘앙스를 변조한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인한 정변과 무차별 학살은 엄밀하게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물론 21세기에 과거 봉건 시대의 왕조에 대해 '퓨전'의 관점에서 사실을 비트는 것이 큰 문제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다. 영국 국영방송인 bbc에서 방영하는 <닥터 후>를 보면 영국 왕실이 외계인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와 20여부작의 역사극과는 그 영향력이 다르다. 특히 동북 공정으로 중국이 자국의 역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왜곡'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틀기를 넘어선 '퓨전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 <조선구마사>는 고민을 남긴다. 

19금의 자극적 설정만으로는 어설픈 서사 
그런데 조선 건국 과정에서 '생시'를 불러올 만큼 불미스러운 정당성을 가진 태종조 조선에서 다시금 '생시'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의 양상이 어설프다. 19금이라는 자극적 설정 기준을 내세워 목을 자르고, 배를 가르는 등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자 한다. 

첫 회 8.9%에서 단 한 회만에 6.9%로 떨어진 시청률에 대해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논란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드라마가 자극적이기만 하고 어수선하다. 

 

 

'생시'에 대한 원죄를 가진 이방원과 그의 두 아들 양녕과 충녕 사이에 벌어진 왕위 승계의 갈등을 '구마'라는 특이한 설정을 통해 풀어보려고 하는데 1회에 이어 2회에 드라마가 벌여놓은 구도가 산만하다. 태종과 양녕, 그리고 충녕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유기적 연결 없이 나열된다. 요한 신부, 그를 대접한 중국 풍의 식탁, 그리고 어설픈 국무당의 굿판 등 국적 불명의 설정들이 사극으로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냉소적으로 조롱하면서도 정작 그를 '퓨전'으로 이끌어 가는 방식 또한 어설프다. '구마'라며 뜬금없이 십자가를 든 신부가 등장한다. '구마'라는 설정을 만들어 놓았지만 상상력이 빈곤하다 보니 결국 <손 the guest>신부님을 초빙한 것인가. 조선 왕조가 끌어들인 생시를 위한 구마 의식이 십자가요 성수라는 상황에 실소가 나온다. 하다못해 <손 the guest>의 전통 무속이라도 참조하기라도 했으면 나을 것을 궁궐 한 가운데서 벌어진 국무당 무화(정혜성 분)의 굿판 역시 정체불명이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엑소시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니 결국 시청자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방식이 '생시'들의 난립과 목을 자르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19금의 설정 밖에 없다.  ost는 웅장하지만 그 웅장함을 버텨나갈 서사가 빈약하다.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의 신경수 피디가 맞는가 싶다. 드라마는 한껏 봉건적 권위를 조롱하지만 정작 그 이후에 풀어가는 서사는 자극적 장면 외에 시청자들을 흡인하기에 부족하다. 




by meditator 2021. 3. 24. 16:37

'하루가 너무 길어'. 

<나빌레라>의 주인공 덕출(박인환 분)이 편의점 배달원으로 일하는 후배에게 툭 던진 말이다.  이 보다 노년을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심덕출 씨는 한국 전쟁 때 태어났다. 쌀가게 점원이었던 아버지는 덕출이 몸쓰는 일 대신신 펜쓰는 일을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덕출은  77년 집배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평생을 우편 배달원으로 살다 퇴직했다. 최해남(나문희 분)과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았다. 아이들도 다 크고 은퇴도 했다. 이제 일흔, 하루가 너무 길다. 

하루가 긴 덕출은 가끔 요양원을 찾았다. 친구 교석이 있기 때문이다. 처자식도 들여다 보지 않는 교석을 덕출은 찾아간다. 그런데 이제 그 마저도 갈 수 없게 되었다. 평생 배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배 전진호를 완성하지 못했다던 친구는 어느 날 밤 자신의 방 창문 앞에 펼쳐진 바다에 종이배 '전진호'와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늙으면 이별도 익숙해지니까' 친구를 보냈다. 하지만 마지막 만났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덕출의 가슴에 남는다. '덕출아, 너는 가슴에 품은 게 있냐? 지금이다. 아직 안늦었어. 다리에 힘있고 정신 말짱할 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저는요, 한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그를 끌어당긴 음악 소리, 그곳에서 다시 덕출의 가슴이 뛰었다. 발레를 하는 채록(송강 분)을 보며 자신도 다시 한번 훨훨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레를 하기로 했다. 나이 일흔, 너무 늦었을 지 몰라도,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 

일흔,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22일 첫 선을 보인 tvn의 월화 드라마 <나빌레라>는 이미 다음 웹툰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Hun 글, 지민 그림으로 2016년부터 연재된 웹툰 <나빌레라>는 '발레'라는 생소한 소재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하는 70대 노인과 방황하는 20대 청년을 조우케 한다. <나쁜 녀석들>, <청일전자 미쓰리> 의 한동화 피디와 <터널>의 이은미 작가가 의기투합했고 덕출 역으로 박인환 배우와 그의 아내 해남에 나문희 배우가 합류했다. 이미 두 분의 출연만으로도 <나빌레라>의 정서적 온도가 전달된다. 

드라마는 일흔의 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덕출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하루가 너무 길다.'는 덕출의 대사는 나이든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애써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나 역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도 하지 않은 오늘 하루가 무거운 경우가 많다. 힘들다 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던 시절에서 '방출'된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막막함이 아닐까 싶다. 

 

 

'저는요. 한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까지는 아니라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시간은 삶의 방점이 늘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나 이외의 누군가에게 찍혀져 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면 그 '가족'에 찍혀졌던 방점이 방황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직장'에 다니며 '가장'으로 살아왔던 아버지의 자리는 '정년'과 함께 삶의 또 다른 국면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 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던 그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여의치 않은 시절, 그게 바로 나이듦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물론 <나빌레라> 속 덕출의 아내 해남처럼 여전히 다 큰 자식들을 자신의 품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말 품 안의 자식이 아니라, 그저 품안의 자식이라 여기고 싶은 경우가 많다. 아직 풀어내지지 않았지만 덕출의 도전만큼 자식과 남편까지 끌어안고 사는 해남의 행보도 그래서 궁금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온전히 '나'로 서기를 갈망하지만 막상 온전히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다가오면 두렵다. 왜냐하면 '나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빌레라>의 덕출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나이 70에 후배가 하는 패스트푸드점 배달 일이라도 하고자 한다. 

그런 덕출에게 죽어가던 교석이 메시지를 던졌고, 발레를 하는 채록이 영감을 깨운다. 홀로 발레를 보러다니고 은퇴한 발레리노 승주의 팬이라 할만큼 발레를 좋아했던 덕출이 관객의 자리를 박차고 '무대'에 서고자 한다. 

왜 발레였을까? 70대의 발레는 덕출의 말대로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우리 사회는 늘 '승산있는 싸움', '성공', '쟁취'가 화두가 되는 사회다. 덕출이 하겠다고 나선 '발레'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런 사회의 '링'에서 내려온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덕출의 세대는 평생 자신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언감생심'이었던 세대일 것이다. 어디 덕출뿐이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려왔던 많은 사람들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한 켠으로 밀어두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데 자식을 다 키우고, 정년을 하고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으로 서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남은 노년의 시간, 심지어 의학의 발달로 살아온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몇 십년이나 남은 시간을, 오로지 '나'만이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고. 늙은 사람들이 보내는 나머지 시간이 아닌 주체적으로 늙음을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드라마는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나빌레라>는 길고 긴 시간을 '나'로써 살아가야 하는 노년에 대한 유의미한 숙제를 안긴다. 과연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발레를 보는 덕출처럼 당신의 가슴이 설레이고 뛰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희망적이지 않을까? 그 희망의 과정을 12부작 <나빌레라>가 함께 한다. 

by meditator 2021. 3. 23. 16:38

3월 21일 10회를 맞이한 tvn 금토 드라마 <빈센조>는 11.4%로 자체 최고 시청률를 갱신했다. 지난 몇주차 동안 대놓고 주인공들이 '고구마'를 먹으며 바벨 그룹과 법무법인 우상과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벌이던 드라마는 10회 드디어 '사이다'를 내세우며 '반격'을 개시했다.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세탁소 탁홍식(최덕문 분) 씨의 가위 액션씬에 이어,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총격씬을 등장시키며 속시원하고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위와 총', 이렇게 잔혹한 살상 무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게된 건 바로 선한 악이 작동할 수 있도록 본연의 악이 '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빈센조 상승세에 판을 깔아준 사이코패스 재벌 
판을 깔아준 '악', 거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바벨의 실질적 '오너'인 장준우(옥택연 분)이다. 어수룩한 바벨의 인턴 변호사로 홍차영을 졸졸 따라다니던 그가 알고보니 현 바벨 회장 장한서(곽동연 분)의 이복 형이다. 동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그는 스스로가 세상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그 '신'의 방식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촉하고, 허수아비 이복 동생이 맘에 안들면 하키 채로 가차없이 구타를 하던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이제 빈센조에 의해 그가 꿈꾸던 바벨의 사업들에 태클이 걸어지자 폭력적으로 발산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돈을 받아먹고도 거들먹거리던 남부지검의 검사들을 납치 동생을 패던  하키 채로 막무가내로 패서 죽여버린다. 또한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병원장의 말로도 다르지 않다. 결국 바벨 제약의 신약 개발이 수포로 돌아가자 희생자 유가족들을 몰살한다. 이제 그가 이탈리아로 보낸 심부름꾼이 빈센조가 여느 변호사가 아니라 마피아의 콘실리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웃으며 '그럼 죽여야지'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출신 빈센조가 그의 고객이 숨겨둔 금괴를 '인출'하고자 방문한 한국에서 '바벨 그룹'과 얽히며 본의 아니게 '정의의 사도'가 된다는 드라마는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며 마피아 출신 변호사의 '장기'를 살리기 위해 바벨 그룹 총수의 '사이코패스'적 장기를 한껏 발휘케 한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를 만날 수 있는 드라마가 <빈센조> 만이 아니다. 역시나 상승세를 타고 있는 tvn의 수목 드라마 역시 '사이코패스' 가 주인공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대를 이은 사이코패스를 등장시켜 과연 누가 사이코패스의 아들일까를 두고 진짜 사이코패스 찾기로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던 두 임산부, 그녀들이 낳은 두 아이가 성장한 현재, 과연 누가 사이코패스로 '살인'을 폭주하고 있는가가 <마우스>의 관전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전 포인트'답게 1회부터 아버지 사이코패스 한서준(안재욱 분)에 이어 이제 아들 사이코패스의 '살인'이 매회 잔혹하게 벌어진다. 

사이코패스 찾기 드라마는 jtbc에서도 계속된다.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고 있던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싼 형사와 범인들의 공방전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 <괴물> 역시 '사이코패스'가 빠질 수 없다. 드라마 속 어리숙한 슈퍼 아저씨로 등장했지만 사실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이규회의 연기가 화제가 될 만큼 드라마가 이 캐릭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어디 범죄드라마 뿐일까. 열화와 같은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시즌 2로 돌아온 명실상부 시청률 1위의 sbs 주말 드라마 <펜트 하우스2>를 보면 범죄 드라마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계단으로 밀치고, 날카로운 트로피로 찍는 등의 폭력적 장면이 여과없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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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가 그렇게 흔한 존재인가? 
시청자들은 결국 일주일 내내 드라마를 통해 '사이코패스'들을 만난다. 그렇게 사이코패스가 흔한 존재인가?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이다.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밖에 되지 않아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 부족해 폭력성을 조절하기 힘들다. 이런 사이코패스들이 인류의 2%에 해당한다.(괴물의 심연, 제임스 펠런, 더 퀘스트)

그런데 불과 2%에 해당하는 이들 사이코패스들이 요즘 대부분 드라마의 단골 악역이다. 드라마 속 악역들은 '사이코패스'답게 더 잔인하게 더 폭력적으로 악의 향연을 벌인다. 

물론, 타인과의 공감력이 떨어지는 반면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사회적 지도층이 되거나 특히 최고 경영자 중  그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빈센조>의 장준우처럼 그들의 무자비함이나 냉철함과 같은 면이 그들의 사회적 성공에 견인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케빈 더튼, 미래의 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인구의 1~2%에 불과한 사이코패스가 드라마 속 주된 악역 캐릭터로 남발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개연성 따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가 더 악한가의 향연과도 같은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잔인함'이 범죄의 대명사가 되다보니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범죄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 듯한 현상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특히 <빈센조>의 경우 시작은 바벨이라는 부도덕한 재벌과 거기에 기생하는 법무법인 우상, 그리고 그 뒷배를 봐주는 검찰의 커넥션이 드라마 속 주된 '거악'이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선 드라마는 구조적인 재벌 커넥션 대신, 재벌 회장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에 촛점을 맞춘다. 구조적인 '비리'가 개인적인 일탈로 치환되어 가는 것이다.

법무법인 우상 역시 마찬가지다. 우상으로 스카웃된 최명희 검사(김여진 분)은 장준우와 의기투합한다. 거기엔 앞서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 홍유찬 변호사를 거침없이 제거했던 최명희의 범죄적 선택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악이 그런 사이코패스적 행태때문일까. 외려 일상적이고 체계화된 '악'이 문제가 아닐까. 혹시나 그런 구조적인 악에 대해 밀도있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대적해낼 서사의 부족을 '사이코패스'로 퉁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by meditator 2021. 3. 22. 16:57

언제나 그랬듯이 문영남 작가 드라마는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다. 3월 14일 첫 선을 보인 <오케이 광자매> 역시 다르지 않다. 1회, 드라마는 부모님의 황혼 이혼으로 포문을 연다. 

이혼을 거부하는 아버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는 65세의 아버지 이철수 씨에게 이혼 서류를 보낸다. 어머니의 이혼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딸들에 따르면 더는 참고 살 수 없다며 아버지와 이혼하고자 한다. 그런데 '졸혼'마저 트렌드가 되는 시절에 아버지 이철수 씨는 '아닌 건 아닌거여'라며 완고하게 이혼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이혼 법정에 서는 그 날까지 이혼을 어떻게든지 피하려고 하는 아버지와,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서 얼르고 달래는 딸들의 해프닝을 1, 2회에 걸쳐 방영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 새롭지 않은 용어가 된 '황혼 이혼', 대부분 황혼 이혼의 사유가 그렇하듯 <오케이 광자매> 역시 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참고 살 수 없다며 어머니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문영남 작가는 이러한 최근 황혼 이혼의 조류를 비튼다. 딸들에 의해 드러난 이혼 사유는 분명 가부장적인 아버지이고, 언뜻 봐도 이철수 씨는 그런 요건에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 겨우 2회차에 불과한 드라마 진행 과정에서 '가부장적'이라는 이철수 씨네 가정사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소환될 수 밖에 없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처럼 이철수 씨네 가정사가 한 겹 한 겹 드러나면서 시청자의 관점 또한 혼돈을 겪게 된다.

극중 이철수 씨는 산업 근대화 시절을 살아낸 '가장'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나 대학을 다니며 결혼했던 철수 씨, 하지만 집안과의 '갈등'으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당장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뚫어'를 외치는 처지에 이르렀다. 마치 문영남 작가의 전작 <왜 그래 풍상씨>의 주인공이 나이가 든 것처럼, 노년의 풍상씨같은 철수 씨는 평생 '가족'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희생'해왔다. 

그런 그였기에 바람을 피고, 자신이 허리 수술을 받아도 병원에도 와보지 않는, 평생 싸우기만 했던 아내여도 자신이 '봉합'하려 애써왔던 가정을 '해체'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

상처 투성이 가족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버지, 하지만 딸들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버지에게 이혼을 종용하지만 들여다 보면 세 딸의 속내 역시 다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혼을 하라고 한다. 

무엇보다 딸들은 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왔던 고생담을 늘어놓으면 서로 눈빛으로 '왜 저래~'라며 비아냥거린다. 잠 한번 실컷자고 싶어서 과용한 수면제로 응급실에 실려와도 딸들은 '쇼'라며 자리를 뜬다.

 

 

딸들의 반응은 이른바 '개념'없어 보이지만 평생 자기 자신 고생한 것에만 빠져 살아가는 부모님을 지켜봐왔던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꽤나 공감할 지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지겨웠던 딸들, 하지만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아버지의 고생담 대신, 어머니와 '감정적'으로 교류했던 딸들에게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본 제 멋대로이고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내도 들여다 보면 각자 다르다. 종가집 젯상을 들어엎고 뛰쳐나왔지만 종손으로 '아들'로 대를 잇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첫 딸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다. 반면 둘째 딸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아 자신의 온갖 감정을 '배설'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은 성인이었고, '부부'로 살아왔지만, 전혀 어른답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세상사의 흐름에 따라 '부부'로 연을 맺었고 아이를 낳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살아왔지만 자신들의 삶을 60세가 넘도록 '소화'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들의 '소화'되지 않은 삶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얹혀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지만 그의 희생은 가족들에게 경제적 보상으로 충분치 않았다. 가장의 조건이 경제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부족한 경제적 보상을 무마할 만큼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딸들이라지만 광남이, 광식이, 광태에서 보여지듯이 부재한 아들의 그림자가 얹혀있다. 어머니의 바램이 고스란히 투영된 첫 째 광남이는 번듯한 변호사와 결혼해 사는 듯 보이지만 그 가정엔 온기가 없다. 둘째는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무리한 결혼을 서두른다. 셋째는 자유를 떠나 '방임'에 가깝다. 

이철수 씨네 가족은 우리 현대사 가족이 가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산업화 과정에서 '핵가족'으로 분리되어진 가족들은 '아들 선호 사상'처럼 한 편에서 여전히 대가족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핵가족이 가지는 관계의 편향과 감정적 해소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자 안고 살아간다. 부부는 물론 부모자식도 소통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딸들에게 넘겼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 매번 '막장'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시청률 면에서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오늘날 가족이 가지는 민감한 상처를 절묘하게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막장'은 말 그대로 '막장'인 사건들을 다루지만 그 '막장'이 바로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를 높인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불문율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신화의 이면은 '막장'인 것이다. 그리고 문영남 작가를 비롯한 일군의 '막장', 그리고 고공 시청률의 작가군들은 바로 그 우리가 쉽게 드러내보이지 못하는 가족의 그림자를 '한판 굿과도 같은 시끌벅적한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오케이 광자매>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가족'적 경험을 통해 등장인물 각자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21. 3. 15. 16:38

인플루언서 마크 맨스의 책 <신경끄기의 기술>에는 재밌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의 고민을 상당해주는 저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없이 살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세상에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 '사이코패스'나 가능한 것이라고. 왜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어하느냐고.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코패스는 드라마나 영화에 있어서 흥미로운 '소재'로 자리잡았다. 3월 3일 첫 선을 보인 <마우스> 역시 '사이코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드라마는 사이코패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프레데터'라는 존재를 드라마적 캐릭터로 삼는다. 사회가 진화하면서 발생한 사이코패스, 그 중 상위 1%의 존재들이다. 사자가 토끼를 사냥하듯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사이코패스 중의 사이코패스, 19금답게 드라마적 설정부터 세다. 

 

 

1995년의 살인마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가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정부와 경찰은 어떻게든지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만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영리한 범인의 수법에 속수무책이다. 

드라마는 눈이 마구 쏟아지는 추운 겨울 밤, 두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 한 가족으로 향한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라면 공히 예감할 터이지만, 이 가족은 이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로 인한 오랜 '악연'의 시작이 된다. 

행복했던 가족의 캠핑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된 '헤드 헌터' 한서준으로 인해 산산조각나 버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의 사냥에 타깃이 되고 형은 생사의 고비에 놓인다. 

한서준 역시 가족 사냥을 마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사냥한 엄마의 머리를 눈사람 속에 숨겼지만, 그의 얼굴을 본 가족의 둘째 고무치로 인해 경찰이 들이닥치고, 결국은 눈사람을 만들던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인해 '감옥'행이 되었다.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 
그렇게 1995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 하지만 '살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회, 가족의 둘째 고무치가 형사가 된 현재, 다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불에 태워죽이는 등 잔인한 수법, 거기에 십자가를 조롱하는 손가락 표식, 그리고 훈장처럼 가져간 살인의 전리품들, 고무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범행으로 추정한다. 

과연 새로이 시작된 이 연쇄 살인의 범인은 누구일까? 여기서 다시 1회로 넘어가 한 소년이 나온다. 한서준의 아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아이로 '낙인'찍힌다. 한서준의 절친이자, 그에게 동생을 잃은 영국의 박사 대니얼 리에 의해서이다. 

이미 유치원 시절 길에서 잡은 '쥐'를 견학간 동물원의 뱀에게 넣어주고 그걸 잡아먹는 과정을 보며 미소짓던 아이는 결국 자신을 학대하던 양부와 가족들을 죽였다.


'신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살인마가 되었다.'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마우스>는 과연 그 '아이'가 극중 누구일 것인가로 촛점이 모여진다. 현재에 다시 벌어진 연쇄 살인의 첫 번째 대상이 살해당한 누나가 사가지고 가던 글로브의 주인공 송수호이기 때문에 더욱 연관성이 짙어진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줄 알았던 한서준이 비밀리에 아들 찾기에 나서고 2회 마지막 창을 마주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사이코패스같아보이는 성요한(권화운 분)과 마주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로 시점이 옮겨진 2회를 보는 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바른생활 청년인 정바름 순경(이승기 분)이다. 고양이 시체만 봐도 토하는 약한 심성의 소유자, 새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의'의 아이콘, 그런데 어쩐지 그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발생한다. 

교도소에서 발생하는 정바름의 친구이자 신입 교도관은 바름이 나르던 마술 상자 속에서 손가락이 잘린 채 린치 당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마주한 바름과 성요한 두 사람의 눈빛이 심상찮다. 

시청자들이 이 심상찮은 '트릭'에 빠져드는 건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은 아이가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한서준의 아이가 사이코패스일까 검사를 받으러 간 연구소에서 또 한 명의 엄마가 같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드라마적 '트릭'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대니얼의 사이코패스 판정은 99%의 성공률을 보인다. 나머지 1%, 그 1%로 인해 그의 판정법은 '법'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바로 1%의 아이는 '천재'일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사이코패스로 판정을 받아도 사실은 '천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이코패스이지만 무조건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이 깨어나는 '계기'가 있다고 드라마는 '설정'한다. 

과연 성요한은 보이는 그대로 사이코패스일까? 혹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은 천재는 아닐까? 그렇다면 또 한 명의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그러기에 비슷한 연배의, 외려 정반대의 캐릭터로 등장한 이름부터 '바름'인 정바름 순경이 궁금하다. 과연 주인공인 이 청년은 보이는대로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고도의 '위장 전술'일까? 그도 아니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사이코패스일까? 

<신의 선물>을 쓴 최란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인 <마우스>는 1995년에 이어 현재에 이르는 대를 이은 사이코패스의 가계도 찾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더해 한서준을 찾아 공공연히 그를 죽이겠다고 공포하는 고무치 형사, 위기의 상황에서 한서준을 알아보고 공포에 떨지만 기꺼이 그의 의술을 활용하는 장애를 가진 고무치의 형 고무원(김영재 분)의 다른 선택이 극의 주된 갈등이 될 것이다. 또한 오랜 트라우마를 가진 오봉이(박주현 분)와 진실을 찾아가는 최홍주(경수진 분)의 역할이 사건 증폭의 '트리거'가 될 듯이 보여진다. 

몇 명이나 죽여야 진실에 도달할까? 
2회에 걸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포진시킨 사이코패스 부자와 그들의 원한 관계들는 흥미롭다. 그런데 19금 드라마답게 드라마의 시작부터줄곧 '희생'되는 사이코패스 제물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2회 자신이 운영하는 권투 도장에서 죽여달라 애원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송수호는 1회 초반 살해당한 송수정의 동생이다. 두 남매는 1,2회에 걸쳐 살인마의 제물로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잔인한 사이코패스가 극의 중심이 되는 수사물의 경우, 잔인한 살해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래도 대부분 한 회차에 한 번 정도의 살인을 다룬다. 하지만, <마우스>는 19금을 표방하고, 1회, 2회, 한서준과 그 아들의 사이코패스를 넘어선 '프레데터'로서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한 회차에 몇 명 씩을 죽여나간다. 그러다 보니 과연 몇 명이나 죽여야 범인이 밝혀질까?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분명 누가 사이코패스일까란 극이 전면에 내세운 '진범찾기'는 궁금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2회, 이미 보는 시청자들은 너무 많은 살인에 지쳐버린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극이 사이코패스에 집중할 수록 먹잇감이 된 사람들은 그 캐릭터의 향연을 위한 '젯밥'처럼 취급된다.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과연 이러한 사이코패스 찾기의 '함정'을 넘어서서 <마우스>가 선의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최란 작가의 전작 <신의 선물> 역시 아동 유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아슬아슬한 경계을 오갔던 바 있다. <마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슬아슬한 경계가 그저 '흥미'를 위한 도구가 아니길 바란다. 









by meditator 2021. 3. 5. 15:30

상대 마피아 두목의 포도밭을 라이터 불 한번으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를 겁박하는 아버지같은 마피아 두목의 아들에게는 다음 번에는 네가 탔을 때라며 자동차를 폭발시킨다. 자신의 방에 침입한 킬러들은 단 한 방의 자비도 없이 모두 몰살시킨다. 자신이 모시던 마피아 수장의 죽음 이후 자신을 견제하던 무리들을 제압한 이탈리아 마피아의 콘실리에리 빈센조는 유유히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자신의 '전략'에 따라 금가 프라자 지하에 숨겨둔 금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냉철한 전략가이자 킬러들을 단숨에 제압했던 콘실리에리 빈센조가 김포공항에서 탄 택시에서 모든 걸 털린다. 겨우 버스비만 가지고 도착한 금가 프라자, 냉혹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지만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상황에 빈센조의 '평정심'에 자꾸만 틈이 벌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금을 묻은 당사자가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따논 당상'과도 같은 금 15kg 굴착이 여의치 않다. 게다가 금가 프라자는 바벨 그룹에 의해 철거 위기에 놓인다. 


 

tvn의 주말 드라마 <빈센조>는 <김과장>, <열혈 사제>의 히트작을 낸 박재범 작가의 차기작이다.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 
지방 폭력배들의 회계 장부처리를 해주던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남궁 민분), 전직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의 <열혈사제>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 박재범 작가 전작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전작의 공통점이 <빈센조>의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는 그들은 저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바 윤리적 도덕적 잣대로 보았을 때 함량 미달의 인물들이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들의 회계 담당이었다가 대기업 TQ의 경리과장이 되었지만 한탕쳐서 한국을 떠날 꿈에 부푼 김성룡은 금가 프라자에 묻힌 금을 파내 몰타로 떠날 꿈을 꾸는 빈센조와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전직 국정원 출신이지만 작전 중에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해일 신부, 그러나 그의 행동은 '회개'라기보다는 분노조절 장애에 가깝다. <빈센조>의 빈센조 역시 마피아 변호사라지만 '킬러'와 다르지 않은 '과거'를 가진 인물로 그의 꿈은 늘 피범벅이다. 
 
그 윤리적 도덕적으로 함량 미달인 주인공들이 그들보다 더 부도덕한 상대를 마주치게 되며 '각성'에 이르게 된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 푼돈이나 주물럭거리던 김성룡은 들어간 TQ그룹, 그룹 입사 초반에 전 경리 과장 부인을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선의'의 인물로 조명받고 TQ그룹 내 '비리'를 접하면서 정의의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신부라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할 수 없었던 김해일 신부 역시 그의 은인과도 같은 가브리엘 신부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매도하며 성당을 집어삼키려는 지역 경찰과 구청장, 검사에 이르는 '카르텔'의 존재에 저항하며 '의인'으로 승화된다. 

빈센조 역시 애초 그의 목적은 금가 프라자에 숨겨진 금 15KG를 챙기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금가 프라자를 불법적으로 철거하려는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들과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지푸라기' 법률 사무소를 중심으로 철거 반대 위원회의 중심이 된 빈센조는 바벨 그룹에 대해 조사해 가며 '양아치'같은 재벌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김과장>, <열혈 사제>, 그리고 <빈센조>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은 '악'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들이 보다 구조적이고 부도덕한 악을 통해 각성하고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김과장>의 TQ그룹의 대를 이은 부도덕한 승계 과정과 분식 회계, 열혈 사제의 경찰, 검찰, 그리고 구청장으로 이어진 악의 카르텔, 그리고 이제 <빈센조>의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으로서 법무 법인 우상의 의약, 건축 산업을 둘러싼 비리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사회적 비리의 '요소'들이다. 동시에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구조적 '비리'들이지만 여전히 '해소'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사회정치 면을 장식하는 구조적인 모순들이다. 


 

그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악'이라 스스로 자처하던 주인공들을 '각성'시킨다. 이렇게 '악'이었던, 반영웅적인 인물의 각성은 '범인'으로서 시청자들이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들의 각성과 그에 따른 '실천'을 통해 시청자들은 보다 깊은 감정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김과장>과 <열혈 사제>가 그 해의 가장 통쾌한 드라마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범부', 혹은 그 이하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들의 '능력치'는 여전히 매우 '영웅적'이다. 티똘이, 티큐또라이라 칭해지던 <김과장>의 김성룡은 지방 소도시 조폭의 딱갈이였지만 거대 그룹 TQ의 분식 회계 를 주무를만큼 비상한 두뇌와 근성을 지닌 인물이다.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능력이야 동네 양아치들 따위가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금가프라자에 나타난 철거 하청업체 앤트컴퍼니 대표를 줄 하나로 대번에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버리고, 철거 위기의 금가 프라자에서 와인 파티를 여는 빈센조는 김성룡과 김해일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치트키'처럼 보여진다. 

물론 악인이지만 밉지 않은 주인공, 거기에 알고보면 능력자인 양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건 배우들이다. 자타공인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만든 <김과장>의 남궁민, 김남길 표 연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던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 모두 배우들이 가진 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드라마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2회를 마쳤지만 <빈센조>의 개연성은 '송중기'이다. 그의 외모의 장점을 클로즈업을 통해 한없이 발휘시키고, 거기에 더해 남궁민, 김남길과 또 다른 송중기만의 냉소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 빈센조를 설득시킨다. 


 

'갑남을녀', 모두가 주인공 
이렇게 알고 보면 능력자들이 그들이 가진 영웅적 면모를 뽐내며 드라마는 영웅물로서의 쾌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박재범 표 드라마의 매력은 그저 주인공의 양면적인 캐릭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사는 세상의 '갑남을녀'가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듯 <김과장>도, <열혈사제>도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완성시키는 방점은 그의 조력자인 '보통 사람들'이다 

<김과장>이라는 드라마는 극 초반 남궁민의 원맨쇼와 같은 연기를 넘어 중후반에 가며 매회 등장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가며 박영규, 정석용 등 중견 연기자는 물론 이준호, 정혜성, 임화영, 김선호, 동하 등의 배우들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열혈 사제>는 <김과장>과 또 다르게 과연 저 등장인물이 과연 알고 보면 어떤 능력자일까가 궁금해지며 소머즈같은 능력을 가진 편의점 알바에,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의 무술 능력자 중국집 배달원, 아역 배우 출신의 신부님, 타짜 출신의 수녀님 등 출연 배우들의 이중적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듯 <빈센조> 역시 등장 인물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딸과 인연을 끊겠다며 내용 증명을 보내는가 하면, 금가 프라자의 철거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홍유찬 변호사의 유재명 배우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열혈 사제>에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드러낸 박경선 검사가 연상되는 법무법인 우상의 변호사이자, 지푸라기 홍유찬 변호사의 딸인 홍차영 변호사 캐릭터는 그 또라이 같은 면면으로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겨우 2회만에 법무법인 우상의 책임 변호사 자리를 꿰어찬 최명희 역의 김여진 배우가 보여줄 '악역'의 변주도 기대된다. 거기게 마치 <열혈 사제>의 동네 사람들처럼 금가프라자 주민들의 면면 역시 퍼즐처럼 그 역할이 궁금해진다. 

by meditator 2021. 2. 23. 17:45

2003년 <옥탑방 고양이>, <클래식> 드라마와 영화, 매체는 다르지만 김래원과 조승우, 두 배우는 '청춘 스타'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옥탑방 고양이> 이래로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김래원은 드라마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눈사람>, 영화 <어린 신부>, <ing> 등을 통해 사랑의 '전령'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김래원은 '사랑의 메신저'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았다. 지금도 2000년대 젊은이들의 고전으로 통하는 <해바라기>를 통해 장르물에 첫 발을 내딛은 김래원은 이후 <강남 1970>, <프리즌>, <롱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을 통해 자신의 연기 폭을 넓혀갔다. 그런 가운데 김래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4년작 <펀치>일 것이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정의를 지키기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주인공을 통해 김래원은 '박정환'으로 거듭나며 청춘 스타를 넘어선 '연기파' 배우의 네이밍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조승우에게 '연기파'라는 네이밍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호칭'이었다. <춘향전>으로 시작된 그의 연기 인생은 <클래식>의 준하에 머무르지 않고  <말아톤>의 초원이, <타짜>의 고니, <내부자들>의 우장훈, <마의>의 백광현, <비밀의 숲>의 황시목까지 다작은 아니었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조승우라는 이름보다 캐릭터로 그를 기억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 속 그의 연기를 통해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시 시작은 '청춘'이었지만, 자폐 청년과 놀음에 홀릭된 청춘을 지나며 조승우가 길어낸 청춘의 갈짓자는 그가 지나온 시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가 선택한 몇 되지 않는 작품이 그대로 당대의 최고 수작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게 청춘으로 시작하여 장르물을 통해 연기파로 자리매김한 두 배우, 김래원과 조승우가 어느덧 40대의 고개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니지만 우리 시대 40대를 더는 '중년'이라는 고정 관념으로 보기 힘들어지게 되듯이 마흔 줄을 넘어선 두 배우의 행보 역시 '중후함'이 무색하게 신선하다. 한편에서 여전히 종횡무진하는 두 40대의 중견 배우들의 활약은 그들의 뒤를 잇는 남자 배우 세대의 부재를 말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루카; 더 비기닝>, <시지프스; the myth>를 통해 김래원, 조승우 두 사람은 그간 해보지 않았던 판타지 장르물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조승우 버전 토니 스타크?
<시지프스; the myth> 1회, 조승우가 분한 한태술이 탄 비행기가 괴물체와 충돌하며 추락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퀸텀앤타임의 창업자이자 대표로 외국 경영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한태술은 조종칸으로 가서 거의 '맥가이버' 급 기지를 발휘하여 단 몇 분 만에 비행기를 고쳐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상황을 돌파한 그의 '헌신'에 대해 그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그저 비행기를 고치고 싶었다는 공학도로서의 순수한 소망을 앞세운다. 

미래와 현재, 연결된 두 세계가 봉착한 '파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신화 속 숙명과도 같은 시지프스의 헌신을 내세운 판타지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조승우가 돌아왔다. 언뜻 보면 쓰레기장 같지만 그 무엇도 한태술의 의지가 아닌 것이 없는 토니 스타크의 저택이 부럽지 않은 요쇄와도 같은 저택에 사는 그러나 이사회에 얼굴 한번 비추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같은 제 멋대로인 괴짜 과학자이자 사업가가 이번에 그가 분한 주인공이다. 

한태술에게서 <비밀의 숲> 황시목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후드티나 남방을 입고 말끝마다 '뽕선아'를 외치며 너스레를 떠는  한태술은 수다쟁이 토니에 더 가깝다. 하지만, 10년 전 죽은 형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수시로 약병을 여는 그의 이상적 행동에서는 늘 '정상'이라는 바로 미터에서 조금은 비껴난 캐릭터의 연주에 능한 조승우의 장기가 발휘된다. 

2회가 끝나서야 기차역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 미래에서 온 인물들이 '밀입국자'로 취급되어 단속대상이 되고, 그와 접촉한 인물들이 '처리'되는 상황은 모호하다. <주군의 태양>, <푸른 바다의 전설>의 진혁 피디가 야심차게 시도한 디스토피아 판타지 장르물의 서장에서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가는 건 여전히 조승우라는 배우의 연기이다. 


 

슈퍼맨이 된 김래원?
<해바라기> 이래 김래원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처절하게 얻어맞는 '연민'의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 <펀치> 속 박정환 역시 개천에서 난 용, 검사가 되었지만 그의 야망은 하늘이 그에게 준 '생명'의 시간과 세상이 그에게 허락하지 않은 권력의 한계 속에서 역시나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로 인해 김래원은 빛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짓밟히지 않는다. 다종의 강력한 dna를 가진 생명체들의 집합체로서 '괴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dna를 백 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장렬히 '산화'할 운명을 가졌었다. 연구소에서 사라졌어야 할 그는 세상 밖으로 던져졌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억과 '전기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맞바꿨다. 

그를 다시 제물로 삼고자 하는 L.U.C.A프로젝트를 준비한 연구소와 그 배후의 세력, 그리고 그 세력에 의해 다시 연구소로 돌아간 김래원이 분한 지오는 그들의 '고문'과도 같은 실험을 통해 외려 진짜 강한 '슈퍼맨'으로 거듭난다. 

<손 THE GUEST> 김홍선 감독의 차기작으로 기대를 모은 <루카; 더 비기닝>은 윤리를 비껴간 과학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도달하려는 무리들에 의해 탄생한 이종의 괴력를 지닌 생명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 <낮과 밤>과 변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루카; 더 비기닝>의 중심에는 여전히 짓밟히고 당해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연민'의 아이콘 김래원이 버티고 있다. 아이를 가진 이혼남이었던 박정환이 세월을 거슬러  웨이브진 장발에 스니커즈를 신고 건물 사이를 뛰어오르는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럼에도여전히 낮고 따스한 목소리로, 하지만 강단있게 괴물이라는 구름이의 말에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오의 진심어린 눈빛과  대사는 드라마의 설득력이 된다. 




by meditator 2021. 2. 19. 21:28

2월 1일 밤 9시 tvn을 통해 <루카; 더 비기닝>(이하 루카)이 방영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 김래원을 비롯하여 <보이스 1>,<손, 더 guesst>를 통해 장르물의 장인이 된 김홍선 감독, <추노>의 작가 천성일, 그리고 <베를린>, <도둑들>의 최영환 촬영 감독의 조합만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제목의 루카는 L.U.C.A ,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약자이다.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거슬러 가장 원시적인 세포의 단계를 뜻하는 이 조어는 결정적인 순간 두 눈을 파랗게 빛내며 초월적인 에너지를 발생하는 주인공 지오(김래원 분)가 보이는 '괴력'의 기원이 된다.

 

 

2일 방영된 2회에서 이손(김성오 분)과의 격투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지오는 의식불명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의 혈액형 조차 판별할 수 없다. 국과수 오종환(이해영 분)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듯하다는 지오의 혈액형, 거기엔 과학적 금단의 선을 넘은 류중권 교수의 연구가 있다. 

루카 프로젝트의 성공작, 지오를 잡아라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학자 류중권(안내상 분)은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단의 지원을 받아 여러 생물체의 가장 발달한 유전인자를 추출하여 하나의 세포에 넣어 초월적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 과학적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언제나 분화 과정에서 실패했다. 유일하게 성공했던 사례가 z시리즈의 10번째 실험 대상자 지오(z-o), 하지만 그 성공은 류중권의 손을 떠났다. <루카>의 첫 장면 의문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무리에 쫓기던 한 여성은 지오로 추정되는 갓난 아기를 건물 난간에서 떨어뜨렸고, 그 아기는 2회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지오처럼 스스로 빛을 내며 폭탄처럼 주변을 파괴하며 자신을 지켜냈고 그를 실험대상으로 하는 무리들로부터 탈출했다, 

<루카>는 이렇게 실험 대상으로 인간을 넘어선 능력을 가지게 된 존재 루카, 그 이후 다시는 실험에 성공하지 못한 채 루카를 쫓는 국정원 김철수(박혁권 분)의 하수인들, 그리고 그 배후에 류중권과 김철수를 쥐락펴락하는 황정아(진경 분)가 이끄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두 축의 갈등으로 진행된다. 거기에 어린 시절 지오로 추정되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간 후 실종된 부모님을 쫓는 형사 하늘에 구름(이다희 분)가 끼어든다. 

강력한 세포 분화 과정에서 기억을 잃은 루카와 그를 쫓는 무리들의 대결은 이미 앞선 장르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 김홍선 감독의 장기인 액션씬을 위주로 진행된다. 특히 2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루카와 그를 잡으려는 이손, 유나, 그리고 하늘에 구름 사이에서 벌어진 액션 씬은 기존 장르물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차별화를 꾀한다. 좁은 장소라는 딜레마를 역으로 격투를 하는 자의 시선에서 장면을 재구성하며 긴박감을 증폭시킨다. 거기에 세포 분화를 통해 괴력을 발휘하는 전기인간 같은 루카의 특성은  <루카>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낸다. 

 

 


낮과 밤, 그리고 루카; 과학적 디스토피아 시리즈? 
그런데 더 비기닝이라며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루카>를 보고 있노라면 동시간대 전작 <낮과 밤>이 떠오른다. 지금은 밤일까, 낮일까 라는 모호한 화두로 16부의 시리즈를 이끌었던 <낮과 밤> 역시 자신의 아이들조차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하얀 밤 마을 프로젝트'가 극중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재력과 권력을 가졌지만, 거기에 더해 영생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과학적 욕망에 도덕적 윤리를 넘어버린 과학자 집단과 결탁하여 '하얀 밤' 마을을 배경으로 많은 아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재벌이나, 권력 혹은 조폭이라는 악의 무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 모두가 '과학'을 매개로 하나의 이권 세력으로 뭉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밤'이자, '낮'인 선과 악의 이중 인격을 가진 슈퍼맨들이 탄생한다.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도정우(남궁 민 분)은 일찌기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하얀 밤 마을을 몰살시켰고, 여전히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공교롭게도 <루카>와 <낮과 밤> '과학적 윤리의 선을 넘어선 '연구'로 부터 주인공들이 '잉태'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연구의 성공이자, 목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연구를 하는 단체로부터 '튕겨져 나와' 단체의 음모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수단'은 바로 그들이 '연구의 성과'로 얻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능력'이다. 

<낮과 밤>의 도정우는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영생의 공식을 만들어 내는 한편, 한 사람쯤은 저 멀리 던져버릴 정도의 괴력과 건물 전체의 전기를 껐다 켰다 하는 염력 등을 발휘한다. 그의 '아킬레스 건'이라면 늘 사탕으로 위장한 진통제를 입에 물고 다녀야 할 만큼 뇌동맥류의 위험과 지킬 앤 하이드처럼 '밤'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난 '그림자'와 같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측면이다. 

반면 지오의 경우, 아직 그의 능력 전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강력한 세포 분화를 거듭하며 신체적 능력이 증폭 되어가고 있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회복할 만한 능력을 가짐은 물론 1회에서 죽어가는 하늘에 구름을 살리는 전기 충격 정도에서부터 2회에서 보여지듯이 철로를 휘고, 열차를 멈출게 할 정도의 괴력을 가진다. 그의 아킬레스 건은 강력한 세포 분화 과정에서 뇌세포가 타버려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듯한 설정을 가진 <낮과 밤>, 그리고 <루카>, <낮과 밤>은 주인공과 같은 하얀밤 프로젝트의 희생물이자 성과물인 능력자에 의한 연쇄 살인 사건 수사를 통해 과학적 욕망의 실체에 접근해 들어간다. 반면, <루카>는 1주일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루카를 잡기 위한 총력전을 통해 쫓고 쫓기는 액션 장르로서의 특성을 드러낸다. 거기에 남궁님과 김래원, 믿고 보는 두 중견 배우의 걸출한 활약에 의지하는 바에 있어서도 두 작품은 공통점을 가진다. 

비록 시청률면에서는 흡족하지 않았지만 신선한 이야기였다는 <낮과 밤>, 5% 후반대의 안정적 시청률로 첫 발을 내딛은 <루카>는 작품성과 시청률 두마리의 토끼를 얻을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21. 2. 3.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