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vs. 권모술수?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와 권민우(주종혁 분)가 서로를 헐뜯으며 지칭한 말일까?
우영우는 최수연(하윤경 분)을 통해 전해들은 권민우의 별명 '권모술수'를 입에 올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ATM 기를 둘러싼 법정 싸움을 함께 맡게 된 권민우와 우영우, 그런데 1년짜리 계약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더 나은 실적을 쌓고 싶은 권민우는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우영우에게 전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긴 이화 ATM의 대표를 만나기 겨우 5분 전에야 자료를 전해주는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그의 연수원 시절 별명을 내뱉는다.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거뜬히 동료를 속이려는 권민우, '권모술수'라는 말이 딱이다.
권모술수 우영우? 하지만 5회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당탕탕 VS. 권모술수는 우영우와 권민우의 대립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우영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도 우영우는 아버지의 김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들어오며 다짜고짜 김밥이 비싸다고 난리다. 그러자 우영우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저런 손님을 두고 '진상'이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손님은 지금 나보고 그러는 거냐고 화를 벌컥내며 영우가 이 집 딸이냐고 묻는다. '손님, 다 드셨으면 그만 가세요,'라고 말하며 눈을 끔쩍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 한참을 눈을 껌뻑이던 영우는 나직하게 말한다. '네, 아저씨,'라고.
그런데, 이런 융통성이 다른 방향으로 발휘된다면? 안그래도 우영우의 '무단 결근'이 유야무야 넘아가는 상황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권민우였다. 더구나 1년짜리 계약직으로 무한 경쟁 궤도에 자신과 우영우가 놓여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영우를 배제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권민우의 방식에게 우영우가 경고하자, 권민우는 뭐하나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없다며 '우당탕탕'이라 맞불을 놓는다. 그 '우당탕탕'이 우영우의 '승부욕'을 불지폈다.
우영우가 맡은 사건은 ATM 기의 신기술을 둘러싼 업계 1,2위의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 사건이다. ATM 기의 직원 횡령을 막기 위한 카세트 인식 신기술, 과연 그것이 이화 ATM 기의 독자적인 개발인가를 둘러싼 공방이다. 이화 쪽은 자신들의 기술팀이 몇 년에 걸쳐 애를 써 만든 제품이라 하고, 그런 이화의 주장에 금강은 이미 미국에서 개발된 오픈소스의 기술이라 맞대응한다.
드라마는 두 업체 간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과정에 놓인 '변호사' 우영우의 진실 찾기로 이어진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는 우영우, 늘 '팩트'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극우뇌형 인간' 우영우 입장에서는 '거짓'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권모술수'가 난공불락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늘 우당탕탕 거리며 '진실'을 향해 '직진'하던 우영우가, 권민우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 '진실' 앞에서 '네, 아저씨'같은 모습을 보인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드러내는 '바디 랭귀지'를 고스란히 보이는 이화ATM 개발진의 모습을 본 우영우는, 그에게 '진실'을 다그치는 대신, 진실을 피해가는 '팁'을 전수해준다. 덕분에 '연극 배우'처럼 변신한 개발팀을 증언대에 세운 우영우는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룬다.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도산' 위기까지 처한 상대 기업 대표가 우영우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는 그녀가 두 눈 질끈 감은 현실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다. 연극배우처럼 천연덕스럽게 거짓 증언을 한 이화의 개발팀, 결국 우영우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뻔히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리고 편지를 본 권민우는 묻는다. 정말 몰랐냐고. 외려 니가 '권모술수'인 건 아니냐고. 아버지의 김밥집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했던 '예, 아저씨'처럼, 재판만을 이기기 위해 우영우가 눈감은 '진실'이 한 사업체의 '목숨값'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우영우의 고개가 떨구어진다.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 우당탕탕 우영우,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자신도 별명을 가지고 싶다던 최수연, 늘 성공과 배려 사이에서 늘 머뭇거리는 수연에게 우영우는 '봄날의 햇살'이라고 말한다. 손에 힘이 부족해서 병을 따지 못하는 영우 대신 병을 따주고, 학교 다닐 때부터 동료들이 영우를 따돌리지 못하게 애쓰고, 영우가 미처 못챙긴 정보들을 알려주었던 수연, 하지만 그래서 늘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밀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수연에게 영우는 말한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고 따듯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상대방의 눈빛을 보지 못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다던 우영우, 하지만 우영우는 '팩트'를 근거로 하여 그 누구보다 인간이 가진 진정성의 빛깔을 잘 파악한다. 그런데 그런 우영우조차도 '현실의 허들' 앞에서 '권모술수' 우영우가 되고 만다.
앞서 1회에서부터 4회에 이르기까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완수해내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녀의 별명, '우당탕탕' 우영우처럼 그 과정은 시끌벅적했고, 때로는 사표를 내던질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지난한 도정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우영우는 이제 또 다른 '미션'을 받는다. 그건, 그녀의 방에 이화의 대표가 걸어준 해바라기 그림처럼 세상의 햇살을 얻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기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또 다른 '허들'이다. 그 직업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영우가 겪고 있는 성장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만이 아니라, 우영우나, 권민우, 그리고 최수연 모두, 즉 이제 막 '세상'이라는 관문에 첫 발을 내딛은 청년들에게 던져진 공통 과제이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함께 수임한 동료에게 필요한 정보조차 나누어 주지 않거나 왜곡하며 '승부'를 거머쥐려는 권민우, 자신의 선함과 경쟁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최수연, 그리고 고지식한 우당탕탕 우영우조차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그런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미션은 생존과 경쟁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요즘 젊은이들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존재 대신 자신의 장애를 먼저 인지하는 세상 앞에 우영우는 사표를 던진 바 있다. 이제 스스로 '권모술수'가 되었던 우영우는 다시 도망치는 대신, 해바라기 그림을 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편지'를 그 자리에 건다. 과연 우영우의 다짐처럼 그녀는 세상을 따스하게 밝히는 봄날의 햇살같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또 다른 '우당탕탕'를 기대해 본다.
여전히 환타지 드라마 장르에서 홍미란, 홍정은 작가의 영역은 발군이다. 앞서 '호텔 델루나'라는 '연옥'과 같은 공간을 매개로 생과 사를 오가는 '인연'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홍작가들은 이번에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일찌기 <쾌걸 춘향> 이래로, <쾌도 홍길동>,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화유기> 등 잘 알려진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켜왔던 두 작가들은 이제 스스로 '고전'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른 듯하다. 작가들이 만들어 낸 '대호국'은 그래서 그 무엇이라도 가능한 공간이다. 이 곳에 왕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와 별개로 '송림'이라는 무협 집단을 설정하고 무공을 넘어선 환타지적 능력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서사를 진행시킨다. 여기에 '몸과 혼을 바꿀 수 있다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환술'을 통해 드라마적 갈등 요소를 극대화한다.
두 명의 홍작가들이 걸출한 건 매번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만들어 내는 데만 있지 않다. 그들은 2004년부터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시간동안 여전히 '청춘'의 서사를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다. 배우의 이름보다 '나상실'이라는 캐릭터 명으로 더 친숙해진 한예슬, 드라마의 제목이 곧 주인공 이름이었던 '미남이'의 박신혜, 1300살도 넘은 장만월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아이유 등, 당대 청춘 스타들은 모두 '통과 의례'처럼 홍작가들의 드라마를 거쳤다.
이번에도 아이돌 출신의 황민현과 아린의 출연이 화제가 된 드라마, 제작 초반 주연 배우 캐스팅의 잡음을 불식하고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건 안정적 연기력이 뒷받침된 이재욱과 정소민이다.
이재욱이 분한 장욱과 정소민이 분한 무덕이, 두 주인공은 대호국 명문가 장씨 집안의 아들과 그의 시종이라는 신분 상의 차이를 지녔지만, 그런 드러난 '상태'와 달리, 두 사람 모두 '갇힌 자'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갇힌 청춘 장욱과 무덕이 청춘(靑春), 푸를 청에 봄 춘, 이 한자음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춘'은 봄날의 푸른 싹처럼 거침없이 분출되는 젊음의 기운이다. 그런데 그 '분출'되어야 하는 기세가 갇혀있다면? 역사 이래 수많은 청춘들의 '불행'은 자신들의 뜻대로 그 청춘의 기세를 발산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처지에서 어찌해볼 수 없어 고통받는 청춘의 서사, 이보다 더 청춘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까?
<환혼>의 장욱과 무덕이 역시 그들이 가진 청춘의 기세를 제 맘대로 펼쳐낼 수 없는 처지라는 지점에서 '연'이 닿는다. 장씨 집안의 아들, 하지만 정작 집을 떠난 장욱의 아버지 장강은 장욱이 가진 '기문'을 막아버렸다. 당대 최고의 고수 장강이 막은 아들의 기문, 당연히 그 누구도 감히 장욱이 술법을 익힐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도울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어느날 저질 체력의 하인으로 장강 앞에 나타난 무덕이는 이 드라마의 주된 갈등 요소인 '환혼인'이다. 이름마저 '낙수', 그녀가 지난 자리에 사람들의 목이 떨어진다는 무림의 고수 낙수는 하지만 송림에 쫓겨 죽을 위기에서 눈먼 소녀 무덕이의 몸을 빈다.
무덕이의 육체에 갇힌 낙수, 아버지가 막아 놓은 기문으로 자신의 육체에 갇힌 장욱, 두 사람은 도련님과 시종으로 만났지만 14번의 파문을 거듭하며 무림의 세계를 익힌 장욱은 무덕이 안의 낙수를 알아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를 거두지 않은 송림의 사람들 대신 '낙수', 아니 낙수의 환혼인 무덕이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다.
남장 여자, 귀신을 무서워하는 호텔 지배인, 기억을 잃은 재벌 등 늘 '아이러니한 처지'의 주인공을 캐릭터화 시키는데 능숙한 두 홍 작가들은 이번에도 육체 안에 갇혀진 두 남녀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특히 여주인공의 색다른 캐릭터에 독보적인 작가들 답게, 시종이자, 스승인 무덕이라는 신선한 여성 캐릭터를 풀어나간다.
장씨 집안의 아들이라 송림의 내노라하는 스승들을 다 '섭렵'했지만 그들 모두 정작 장욱의 '기문'을 열어주려 엄두도 내지 않는 상황, 하지만 무덕이는 달랐다. 물론 무덕이의 다름은 그저 도련님 장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고수의 경지에 이르면 그의 '기력'으로 저질 체력의 육체 속에 갇힌 낙수 자신이 가진 본래의 '무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욱의 스승이 된 무덕이는 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허세'라며 주저앉히는 다른 송림의 스승들과 달리, 그의 '기세'를 인정하고 복돋아 준다. 심지어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아이만 카우는 '스파르타식'으로 독약을 먹여 송림에서 기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장욱을 사지로 몰아넣어 외려 그걸 통해 장욱의 '살길'을 도모하는 '극한의 교육'을 행한다. 그건 늘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왔던 '낙수'이기에 가능한 교육이다.
죽음의 위기를 통해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기문을 열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무덕이 안의 낙수, 그렇게 남들은 '허세'라던 자신의 열망을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장욱은 '무덕이'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나간다. 그저 장씨 집안의 아들로 허세나 부리며 살아가라는 장욱을 무술에 대한 열망을 지닌 한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해준 사람이 무덕이가 처음인 것이다.
또한 무덕이 역시 오랜 시간 홀로 수련해 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만을 상대하던 고독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왔는데, 위기의 상황에서 기꺼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장욱에게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일찌기 가족들을 잃고 복수를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그녀를 '보호'해주려고 한 사람은 장욱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정하고 허용하지 않는 세상 속에 서로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신뢰', 그리고 차츰, 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애정'의 걸음을 옮긴다.
물론 드라마는 장욱과 그의 스승을 자처한 무덕이, 그 안의 낙수라는 두 주인공의 인연을 중심으로 풀어가지만, 거기에 서로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낙수와 서율(황민현 분), 무덕이를 '똥무더기'라 부르지만 어느덧 그녀를 신경쓰고 있는 세자 등, 무더기를 중심으로 한 남성 캐릭터들이 포진한 '역할렘물'의 요소도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이다.
물론 거창한 무림의 세계, 그리고 환술이라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표방했지만 정작 드라마는 중국 무협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낯이 익다. 또한 환술 역시 새로운데 어딘가 본 듯한 술법이다. 또한 송림을 배경으로 한 무술의 쟁투를 그리지만 스토리의 진행은 홍 작가들 특유의 치기어린 대사 들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이제 기문이 뚫려 매회 무공이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장욱과 그런 장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승 무덕이의 환타스틱한 러브 스토리는 본격적인 괘도에 들어선다.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는 감정을 잃은 검사, 그렇다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이다. 뇌수술로 인해 감정에 취약해진 그는, 외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삶의 무기로 삼았다. '감정에 구애없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그의 '수사' 덕분에 '숲'과 같았던 거대한 비리의 장막이 걷혀졌다. <비밀의 숲> 시즌 내내 시청자들은 로봇같던 황시목에 열광했다.
그러다면 이런 인물은 어떨까? 아버지가 첫 출근 날 입으라고 옷을 마련해 주었다. 그 옷을 사준 아버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 '기쁨'에 해당하는 표정을 찾는다. 6월 29일 넷플릭스와 ENA를 통해 공개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이다.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
첫 변론, 자기 이름이 호명되는데도 대답을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하던 우영우가 변론에 앞서 자기 소개처럼 한 말이다. 드라마는 우영우의 나레이션으로 아버지의 잊을 수 없는 어느 날로 시작한다.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이 늦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아버지는 '자폐'일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 한없이 시름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 그런데 주인집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다. '의처증'이 심한 할아버지의 오해였다.
자폐스펙트럼의 천재 변호사 그런데 두 사람이 큰 소리를 치며 멱살잡이를 하는 걸 충격을 받은 영우의 입에서 '상해죄는' 하며 형법 조항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오해를 사 억울해하던 것 따위, 아버지는 말문이 터진 딸이 기쁘기만 하다. 게다가 알고보니 딸은 법대를 다녔던 아버지가 쌓아둔 법전을 다 외웠다. 이렇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주인공 우영우를 소개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 답게 그녀는 로스쿨 내내 1등,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하지만 법전의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이랑, 드라마 속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의 말처럼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변론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또 다른 영역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러나 천재적 능력을 지닌 우영우라는 인물이 과연 그런 '변호사'라는 '대인적 커리어'를 해낼 수 있을까? 이건 어찌보면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성문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황시목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미션'이기도 하다.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과 영화<증인>의 문지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제작진의 말처럼 '박은빈'이 아니고서는 우영우가 불가능했다는 말처럼 배우의 몰입된 캐릭터화를 통해 우영우라는 인물을 설득한다.
'자폐'라는 '장애'라는 한계라기 보다는, 우영우와 늘 함께 유영하는 듯한 '고래'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인식과 세계를 가진 인물로 그려낸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그녀지만 '현실'의 세계에 어우러지기 위해 그녀는 주변인들의 '팁'에 의거하여 나름의 현실 적응 '루틴을 만들어 간다. 그녀가 앞뒤가 똑같은 자기 이름처럼 늘 외우듯한 '별똥별', '인도인' 금지 조항이라던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하는 '반향어' 금지, 그리고 '고래' 이야기 금지 처럼 말이다. 이런 우영우의 모습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서 외려 유품정리사로서의 직업을 성실하게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었던 주인공 한그루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준비된 루틴은 '회전문'처럼 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전문보다 우영우에게 더 '난관'은 제 아무리 로스쿨 일등이래도 '자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는 '감정'이 없어서, 외려 이것저것 눈치보거나 따지지 않고 비리에 '돌진'할 수 있었던 황시목처럼, '사건' 그 자체의 '진실'에 다가가는 우영우만의 '탁월함'을 내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영우가 자폐이면서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던 할아버지는 결국 참지 못한 할머니의 다리미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할머니는 '살인죄'로 기소된다. 법원은 할머니의 처지를 살펴 불구속 기소했고, 우영우 소속 법무법인 한바다는 공익재판으로 '집행유예'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영우를 시험해 보는 차원에서 맡긴다.
하지만 우영우는 사람들이 쉽게 보고 넘겼던 사건에서 다른 걸 찾아낸다. '형법'이 아니라, '민법' 사건이라고 우영우는 주장한다. 그저 '집행유예'면 된다는 법인의 판단이, 평생 주부로만 살아오던 할머니의 경제력을 상실케 할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살해 혐의는 있지만 정상참작을 한 집행유예가 아니라, 애초에 죄가 없다는 '무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이런 우영우의 '혜안'에 비로소 '편견'을 가지고 우영우를 바라봤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이 사과한다. 물론 그 순간, 우영우는 '속마음 얘기하기 금지'을 잠시 잊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라며 응수한다.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실례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사과를 했음에도 시니어 변호사는 바로 병원으로 피해자를 보러 가야 하는 우영우에게 '편견'의 발언을 하고 만다. 다시 사과하고 마는데, 그런 그에게 우영우는 말한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서 보통이 아닌, 그래서 늘 '편견'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하지만 또 한 편에서 어릴 적부터 본 책을 모두 기억한다는 천재적인 특별함, 이 상반된 '보통이 아닌' 우영우를 드라마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법정에 선 우영우를 본 아버지의 눈빛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 아버지처럼 우영우가 하나씩 그녀의 미션을 수행하는 지점에서 보는 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집행유예'라는 결과가 아니라 홀로 사실 할머니의 처지가 먼저 보이고, '너죽고 나죽자'는 할머니의 말보다 할아버지에게 볕이 들까 배려하고 잠이 깰까 조심하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 눈밝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때'가 묻지 않은 우영우의 편견없는 직시와 판단이 도달하게 되는 '휴머니즘'이 주는 감동이다.
공교롭게도 mbc와 sbs에서 새로 시작하는 금토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이 '동일'하다. '변호사'다. mbc의 <닥터 로이어>에서는 모처럼 돌아온 소지섭이 변호사 한이한이 되어 등장한다. 반면, sbs의 <왜 오수재인가>에서는 서현진이 제목의 그 '오수재 변호사'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변호사'인데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난감하다. 의사였으나 변호사가 된 한이한, 변호사였으나 이제 서중대 로스쿨 리갈 클리닉 장을 자임하고 나선 오수재, 그들은 저마다 신변상의 불이익을 겪으며 자신이 하던 '일터'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난 처지가 되었다.
법정은 수술실과도 같다. 소지섭이 분한 한이한은 그 하나도 어렵다는 일반 외과와 흉부외과 두 개의 전문의 자격증을 지닌 더블 보드(doubLe-board )였다. '괴물 칼잡이'라는 별명답게 반석 병원의 수술실에서 날렸다. 강행군의 수술 일정에서도 끄덕없이,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도 결단력있는 시술로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고스트 닥터'이기도 했다. 반석 병원 원장 대신, 그리고 그의 아들이 저질러놓은 상황을 수습하는 그림자였다. 빚을 갚겠다던 원장, 원장 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이한에게 흉부외과 과장 자리가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연인 금석영(임수향 분) 동생의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한밤중에 불려가 했던 의문의 수술 후 한이한은 모든 걸 잃었다. 그에게 '최고'라고 칭송하던 이들이 법정에서 무리한 수술을 한 협잡꾼으로 한이한을 몰았다.
의사직을 잃고 그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한이한이 드라마의 첫 회, 변호사가 되어 등장한다. 더구나, 수술실에서 그의 퍼스트이자, 둘도 없는 친구라 여겼던 박기태의 법정에 나타난다. 선고를 받던 박기태가 쓰러지자 느닷없이 등장한 한이한이 가방을 열고 메스를 꺼내 응급집도를 하는가 싶더니,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의 변호사란다. 자신을 '배신'한 이를 변호하는 전직 의사, <닥터 로이어>는 자신이 한 수술이 올가미가 되어 모든 것을 잃은 전직 의사였던 변호사를 내세워 의료 사고 속 진실을 캐내고자 한다.
제가 알아서 돌아갈게요 반면 오수재는 이미 TK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스타변호사이다. 말이 최태국(허준호 분)이 대표이지, TK로펌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오수재의 손을 통해 승소한다. 하지만 그녀가 고졸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 그런 가운데 그녀가 몰아부쳤던 피의자가 자살을 하고, 그걸 방조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오수재는 스스로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자원한다. '읍참마속',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통해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재고하고 TK로펌에 돌아가 그녀가 원하던 대표 자리와 700억이 걸린 한수 바이오 매각 총괄을 완수하겠노라고 장담한다.
'독한 년, 재수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끄덕없는 오수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의 가장과도 같은 존재다.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입지전적인 인물로 능력있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닥터 로이어>의 한이한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 사고로 인해 가족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시신을 한이한이 거두었다. 그리고 '고스트 닥터'를 자임하며 그 자신의 능력으로 '흉부외과 과장'의 고지를 거머쥐려 했다.
또 이경영? 한이한과 오수재, 두 사람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한 계단씩 올라와 정상의 자리에 서려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술실의 괴물같은 한이한의 실력도, TK로펌의 대표 변호사 자리를 넘보는 오수재의 능력도 그들을 '수단'으로만 쓰려는 법, 의학계 카르텔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악의 축 조태섭이던 이경영은 드라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속작 <왜 오수재인가>에 한수 그룹 회장으로 등장한다. 그와 TK로펌의 최태국, 대선후보 이인수는 고향 선후배 사이로 만난 정,재계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경영의 '열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시간대 방영하는 <닥터 로이어>에서는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은 과거 반석재단의 병원장이자, 현재 복지부 장관 내정자이다.
흔히 회자되는 말로, '또경영'이라는 말처럼 전작, 동시간대 방영작에서 이경영은 활보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경영'이 익히 분해오던 그 캐릭터로 '악'의 세력이 다 설명된다. 반석 재단 이사장의 딸과 결혼 후 흉부외과 과장 자리를 거쳐 오늘의 반석 재단을 만든 사람, 하지만 위기의 재단 상황에서 의문의 인물에게 이미 한이한이 수술했던 금이영 동생의 심장을 불법적으로 제공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왕국 반석재단을 지킨다. 또한 그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수술에 참여했던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왜 오수재인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경영이 분한 한수그룹의 한수 바이오를 매각하여 정치자금으로 쓸 거라는 '비밀'은 오수재에게 '뇌관'으로 작용한다. 그녀가 거머쥔 한수그룹의 비자금 문서가, 곧 더는 그녀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레드 카드'가 된 것이다.
입지전적인 인물, 한이한과 오수재, 그들은 스스로 능력자이지만, 그들이 잡은 줄은 썩은 줄이다. 그 줄을 잡고 오르려다 나뒹군 두 사람, 그래서 한이한은 변호사가 되었고, 오수재는 로스쿨 리갈클리닉 장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먼치킨' 캐릭터이지만, 오수재 말대로 그들은 '바닥'에서부터 다시 자신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올라가야 할 곳이 어딜까? 한이한은 왜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변호'하려는 것일까? 오수재의 뜻대로 다시 TK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되는 것일까?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가 간 수술, 그 수술은 이미 이식된 심장을 꺼내 다른 이에게 이식하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한이한은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이제 그는 '메스' 대신 법정에 서서, 자신이 다하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 그런 그의 맞은 편에는 동생을 잃고 의료 사고를 일으키고도 말 한 마디로 빠져나가는 이들을 '징죄'하려는 검사 금옥영이 있다. 마치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난 '원수'가 된 두 사람, 이들 두 사람이 서로 맞은 편에 서서 도달하는 '법정의 진실'은 고스트 닥터로 살아온 한이한의 '참회'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수재의 '참회'는 사랑으로? 국선 변호인 시절 오수재가 믿어주었던 소년은 자라 이제 로스쿨 학생이 되었고, 능력있지만 '심장'을 잃은 오수재에게 자꾸 당신을 믿는다며 그녀의 '양심'을 찌른다. 성범죄의 피의자에게 '자신을 변호사로 쓰지 않았'기에 이길 수 없다고 냉소하던 그녀는 이제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 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편에 선다. 자신의 능력만을 믿던 그녀에게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나만 잘 나가'하던 이들, '나만 잘 되면 돼'하던 이들의 '능력자 버전 개과천선'을 다룰 드라마, 경쟁작을 넘어 두 드라마의 귀추가 주목된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묻어두었던 삶의 질문들이 툭툭 던져진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나와 얽힌 인연들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인가 보다.
이정은과 엄정화가 친구라니, 극중 정은희와 고미란 말이다. 그런데 극중 인물에 집중하기 전에,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대표적 엔터테이너로 당대를 풍미했던 엄정화란 존재와, 우리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까지 대학로 연출에서 부터 마트 직원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생 역정을 겪으며 뒤늦게 그 이름을 알린 이정은이란 배우가 '친구'로 등장하는 '조합'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정은 배우가 메인 주연을 하는 드라마에 엄정화란 배우가 친구로 잠시 들렀다 가는 시절이 오는 날도 있구나.
얽힌 인연, 우정 실존의 배우가 주는 감상과 함께, 극중 고미란과 정은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절, 정은희는 도시락도 못싸오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은희를 미란이는 자기 집 승용차를 타고 지나며 구출해 줬다. 게다가 매일 은희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 씩이나 싸왔다. 둘도 없는 친구라며 '의리'를 외치는 은희와 미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제주를 찾는 미란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미란과 은희를 '공주님'과 '무수리'라 농을 건넨다.
보는 이들만이 아니다. 인연의 속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제주에 도착한 미란은 생업에 분주한 은희에게 '그깟 생선'이라며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음을 야속타한다. 그런데 그 말이 은희의 마음을 후벼판다. 아니, 그저 지금 미란이 던진 말 때문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켜켜히 쌓아왔던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들이 자꾸 은희의 마음 위로 솟구쳐오르기 때문이다.
'친구'란 우리가 살면서 맺는 대표적인 '인연'의 형태이다. 가족이 가족이라서 들여다 보면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기가 십상이듯이, 친구 역시 친구이기에 서로에게 불평등한 관계의 상흔을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저마다 우정의 이름으로 관계맺은 존재들을 되돌이켜 보면 그 시간만큼 그 안에 부유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질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늘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쉬웠던 은희에게 미란 역시 그런 존재였다. 미란은 은희의 어려운 처지를 배려했지만 그 상처받기 쉬운 마음까지 배려해주진 못했다. 엔터테이너 엄정화처럼 어릴 적부터 이쁘고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던 미란은 도시락을 두 개 싸오듯 착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사를 걱정해 달려온 미란의 마음을 사람들과 내기 꺼리로 삼을 만큼 자기 중심적이기도 했다. 은희는 그런 미란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그런 미란이기에 늘 상처받았다. 내 맘같지 않은 '친구', 그 친구의 '다름'이 나에게 '내상'을 입힌다.
거기에 우정의 길을 엇갈리게 하는 건 무엇보다 '존재의 양식'이 아닐까. 은희가 폐경에 이르도록 가족들 뒤치닥거리하느라 여전히 '미혼'인 것과 달리, 미란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 미란이 딸과의 졸업 여행을 뒷전으로 하고 제주에 왔다고 하자, 미란은 '자기 밖에 모르는 년'이라며 자기에게 했듯이 그렇게 딸에게도 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은희가 전하지 못한 맘을 대신한 일기장으로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만 두 사람, 미란이 떠나고 옥동이 말한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한 그 의지가지 없는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고. '세 번이나'인 처지의 속내를 은희 역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깟 생선'이라는 말도, 은희를 무시한 게 아니라 너무 일만하는 은희가 안타까워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은희가 먹던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던진 미란의 속내도 들어보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처'받기 바빴던 은희는 그런 사정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저 한 시절 함께 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불교의 업과 인과응보에 기인하여 시기가 되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인연'의 때가 있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미란과 은희의 '시절인연'은 그렇다면 언제일까?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친구란 이름이었지만 그 속내는 빚갚음이라 여겨졌던 관계는 '우정'일까?
친구들이 '무수리'라 할 때마다 '내 무슨 무수리냐'는 그런데 은희 자신이 미란과의 관계를 그렇게 '규정'하며 지내왔던 건 아닐까. 어린 시절 가난한 자신을 보아준 그 '고마움'에 미란을 친구란 이름의 빚쟁이로 여기며 지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달음에 달려간 은희를 '만만한 친구'라 할 때 그런 미란에게 따지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고 돌아선 은희의 마음이 정작 '친구'가 아니라, 채무자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역시 '우정'을 빌어 '채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미란과 은희의 이야기는 은희의 묵은 상처를 깨닫게 되는 미란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미란의 이야기를 통해 정작 작가가 하고자 하는 건 상처로 겹겹이자신을 감싼 은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이만큼이 되어도 여전히 은희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아리다. 극중 종종 은희는 미란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아이로 등장한다. 단지 '추억'일 뿐일까. 아니 어쩌면 '은희'도 그렇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상처받기쉬운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첫사랑 앞에서도 거침없던, 제주도 수산 시장을 휘젓던 은희가 정작 미란 앞에서는 자꾸 위축된다. 관계를 왜곡하는 건 '그 시절에 멈춘 나'다.
일기장 사건으로 인해 미란과 은희는 비로소 가난한 어린 시절의 채무 관계를 청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채무' 관계 속에는 이제는 '별로가 된' 미란에 대한 은희의 감정적 우월함도 숨겨져 있다. 변변찮고 자기 중심적이라며 낮잡아 보던 미란의 진심을 서늘하게 깨닫게 된 은희, 늘 한 수 접어주던 은희가 입술을 꾹 다물고 뒷걸음치는 대신 따지러 간다. 비로손 은희는 '무수리'의 마음에서 한 발 나와 미란의 친구가 된다. 무덤으로 들어갈 뻔한 인연을 '재생'시킨 것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더니.....' 선배는 답답한 듯이 말했다. 마치 메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춰 정해진 표현을 하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막막해하셨다. 소향기 팀장을 보니 그 선배가 떠올랐다.
jtbc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 염미정의 해방클럽에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그간 염미정을 비롯하여 박상민 부장, 조태훈 과장 등 회사 내 조직에 적응을 못하는 것같은 이들 세 사람에게 꾸준히 회사 내 동아리 활동 참여를 독려하던 행복지원센터 소향기 팀장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이들 세 사람을 독려하던 그녀, 그랬던 그녀가 세 사람이 만든 '해방 클럽'을 한번 참관한 후 스스로 '해방 클럽'의 신입회원 신청을 하였다.
드라마가 시작한 이래 행복지원센터 팀장으로 익숙한 소향기 씨의 표정, 그런데 그녀가 말한다. 이제 다른 표정을 지으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고. 행복지원 센터 팀장에 걸맞는 표정을 지어오던 그 표정이 이제는 상갓집에 가서 그녀를 곤란하게 할 만큼 '혼연일체'가 되었다.
해방은 어떻게 오는가 이제는 <나의 해방일지>가 아니라, <나의 추앙일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등장 인물들의 '연애사'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극 초반 우중충하게 출퇴근만 한다며 돌려섰던 시청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스쳐지나가듯 등장한 소향기 팀장의 장면은 왜 이 드라마가 여전히 '추앙일지'를 넘어 '해방일지'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그리스 연극 속 '가면'을 뜻하는 이 말을 칼, 융은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며 거기에 걸맞는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으로 정의한다. 단적으로 '~답게'이다. 학생은 학생답게,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문제는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사회적으로 주어진 이 '역할'에 맞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괴리'를 느끼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건 '내 자신(self)'과 '페르소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말이다.
조직 부적응자로 행복 지원센터를 들락날락했던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세 사람으로 말하자면 직장이 요구하는 '페르소나'에 떨그덕거리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남들 다하는 회사 내 동아리에 드는 것도 마다하고, 사람들이랑 편하게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던 세 사람, 떠나는 구씨가 염미정에게 이젠 '추앙', '해방', 이런 거 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미정은 그런 구씨를 붙잡는 대신, 서운하다는 말로 두 사람의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자신을 '평범'하다 하지만 '유모차를 끄는' 대신 아이를 업어 키우겠다는 미정,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구씨를 한 살 배기 아이처럼 업어주고 싶다는 미정은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와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
어쩌면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이들 세 사람의 '해방 클럽'은 일찌기 세상이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기 버거웠던 세 사람의 '해방 선언'이었는지도. 그런데 그런 세 사람 앞에 '신인 회원'으로 등장한 소향기 씨는 그런 세 사람과 전혀 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사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에 너무 충실히 살다보니 그 페르소나가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 그래서 이제 그 '가면'을 벗으려 해도 벗겨지지 않는다는 사람, 남들의 '행복'을 열심히 지원하다보니, 정작 자신은 '미소 가면'이 달라붙어 버린 사람, 그 사람에게 '해방'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얼굴 근육을 가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박상민, 조태훈, 염미정, 그리고 소향기라는 양 극점의 그 어느 지점에서 서성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어설픈 페르소나를 원망하고, 또 때로는 어느덧 자신이 되어버린 '페르소나'로 인해 갑갑함을 느끼며 말이다. 드라마의 시작부터 주구장창 출연진들의 출퇴근 길 모습을 비추던 드라마, 그 '출퇴근'에 공들인 시간은 바로 이 드라마가 길바닥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최선을 다해 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몇 시간씩 출퇴근을 하며 주인공 염미정, 염기청, 염창희를 비롯하여, 그들의 아버지 염제호, 어머니 곽혜숙,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들 모두 참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젯상 앞에서 고된 노동으로 무너진 관절로 절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디 일만 하나, 역할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해방'은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다. 이미 당신들은 충분히 애쓰고 살아가고 있으니, 더는 자신을 다그치지 말라고. 위로하지도, 그렇다고 조언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주겠다는 '해방 클럽'의 강령은 바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의 '긍정'을 뜻하는 게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저 가끔 만나 식사가 한 끼 나누던 선배가 '존경'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던 건, 선배가 직장 생활로 인한 '페르소나'가 어느덧 자신이 되어버린 모습을 고민하던 그 즈음이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이라는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말이다.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의 시간이 그 선배를 연륜이 넘치는 인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저어'하던 소극적인 염미정은 구씨를 '추앙'하고, '추앙'당하며, 그리고 '해방 클럽'을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미정의 해방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그냥 그대로, 생긴대로 미정이 답게 사는 것을 당당하게 가슴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연 소향기 팀장의 '해방'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침 방송의 김창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나가듯 말한다. '가면' 몇 개 안쓰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생은 고해(苦海)다. 일찌기 붓다의 설법이다. 이제 9회차를 경과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네 인생사 고해의 바다에 밀려오는 제 각각의 파고를 경험하게 된다. 9회 차에 들어 전면에 등장한 동석(이병헌 분)과 선아(신민아 분)를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인생의 파도는 무엇일까?
십대 청소년 시절 서울에서 전학온 선아와 만난 이래, 이제 마흔 줄이 될 때까지 동석은 선아와 만날 때마다 인생이 꼬였다. 그렇게 얼핏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이야기같았다. 트럭 하나를 몰고 제주 인근 섬을 돌며 장사를 하는 동석, 그런 동석이 사는 제주에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 선아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보란듯이 그를 농락한 채(?) 떠나고, 다시 그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잘 살 것 같던 선아가 피죽 한 그릇도 못얻어먹은 얼굴로 돌아왔다. 본인 말로는 발을 헛디뎌서라는데 해녀들이 구하지 않았으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다. 그런 선아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동석의 신경을 거스른다. 죽지 않았으면 됐다고 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선아를 찾아 온제주를 헤맨다.
동석과 선아의 상흔 해묵은 연인처럼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 선아에게 따지듯 그때 왜 자신을 버렸냐던 동석, 그로부터 그저 오랜 연인만이 아닌 의지가지없던 두 '어른 아이'의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아버지가 죽고, 물질을 하던 누나가 죽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말이 두번 째 부인이지, 병석에 누운 본처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었고, 두 의붓 아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용납할 수 없었던 동석은 매일매일 두 의붓아들에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보란듯이 그 상처를 들춘다.
그렇게 얼굴이고, 몸이고 시퍼렇게, 검붉게 멀쩡한 곳이 없는 시절을 살아가던 동석에게 기대어 온 아이가 선아였다. 서울에게 전학왔다는 중학생 아이가 집에는 안가고 매일 동석이 가는 피씨방에서 게임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을 하다 망한 선아의 아버지가 의탁한 큰아버지네, 하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주먹다짐을 하며 싸웠다. 그렇게 돌아갈 곳이 없는 선아를 동석은 품어줬다.
하지만 첫사랑이자, 첫정이던 선아는 동석의 친구에게 몸을 허락했고, 그걸 안 동석이 폭주하자 동석이 보는 앞에서 깡패라며 신고를 했다. 그리고 떠나버렸다. 제주 돌담 사이 삐져나온 잡초같은 동석이 유일하게 마음을 줬는데, 그런 동석을 선아가 짓밟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신을 버렸냐는 동석의 질문에 선아는 동문서답처럼 말한다. 사랑하는 오빠에게 자신을 망가뜨려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자신이 맞은 상처를 보여줘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려던 것처럼, 선아도 그런 식으로 아빠의 관심을 끌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아의 시도는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을 놔둔 채 바다로 차를 몰아버린 아빠의 이른 죽음으로 무산된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서 바다로 빠져들어가는 아버지를 목격한 선아는 오랜 지병, 우울증을 얻는다.
선아의 우울증은 동석의 맞은 상처와도 같다. 의붓아들에게 매일매일 맞고, 그걸 엉마에게 보여주듯이, 하지만 그런 마음의 아픔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선아는 자신의 안에 그 상흔을 차곡차곡 쌓아 자신을 갉아먹어간다. 그리고 그 상흔이 이제 선아의 가정을 무너뜨렸고, 아이마저 잃을 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동석이라고 다를까, 선아가 그렇게 떠나고 의붓아버지네 집을 털어 다시는 제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떠난 동석, 하지만 뭍에서도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제주로 돌아온 동석, 하지만 여전히 그는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도 않고 트럭 하나를 몰며 제주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김훈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고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종교적 교리에 의하면 인간사 희노애락의 욕망에서 '해탈'하면 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그런 '고해'의 삶, 그런데 김훈 작가는 그저 인생이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인간의 삶은 다 저마다의 욕망과 욕구를 가지고 맞물린다. 내 맘이 네 맘같지 않은 그런 모든 일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고해'의 풀을 만든다. 그저 인간사가 다 저마다의 이해 관계에 얽혀 이루어지는 것임을 '수용'한다면 될 일이라고 김훈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이 저마다 이루어져 가는 것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동석과 선아는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상흔'에 사로잡혀 있다. 에이 설마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느냐는 선아의 농반 질문에 동석은 말끝을 얼버무린다. 동석은 늘 자신의 인생이 선아 때문에 꼬였다고 말한다. 마흔 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동석의 인생은 선아 때문에, 엄마 때문에 라는 그 '트라우마'로 부터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동석의 떠돌이 삶이 드러내는 외상, 그리고 선아의 의지가지 없는 우울증의 내상은 모두 여전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른 아이'의 그 시절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들이 겪은 '상실의 시간'은 과거가 되었고,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석도 선아도 그 상실을 겪은 그 시절에 멈춰있다.
그런 '어른 아이'인 상태인데도 선아는 자신이 '엄마'로서의 주장을 펼친다. '아이만 있다면, 자기 삶에 유일한 의미인 아이만 있다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며 예전 아빠와 함께 살던 곳을 꾸미고 있다.
그런 선아에게 동석은 말을 건넨다. 재판에서 져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없게 되더라도 너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어쩌면 동석은 인정하고 싶지만 그의 내면은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던 어머니의 삶을. 그래서 동석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동석에게 선아의 등장은 해묵은 인연의 결자해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석이 오랫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면의 아이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않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로에 대한 '감정'을 놓지 않은 두 사람, 그 '온기'는 아직도 두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고해'의 파고를 넘어서는 힘이 되지 않을까. 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헤집고 보면 다들 내 안에 '아이'를 놓지 못하고 있다. 노희경 작가는 동석과 선아를 빌어 말하고 있다. 그제 그만 그 아이를 놓아주라고.그 시절의 엄마도, 아빠도 그저 각자 자신의 삶을 버겁게 짊어지고 살아갔던 한 사람들일 뿐이었다고. 타인들의 삶으로 인한 고해의 바다에서 그만 허우적거리고 넘어서라고. 진정한 어른됨의 삶을 살아가라고.
36살, 안대성(이광수 분)은 이번에도 또 떨어졌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5급 정도는 했다. 하지만 연이은 낙방에 눈을 낮췄다. 9급 정도야, 그러다 보니 어느새 36살이 됐다. 오랜 연인 도아희(설현 분)가 그를 데리고 집에 간 날, 그녀의 아버지는 그의 자기 소개를 듣고 글러브를 꼈다. 다시 그를 만나면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했다.
고시원 벽에 그가 붙인 시험 공지 게시물이 뜯어도 뜯어도 끝이 없다. 이제 또 시험을 볼 의지도, 여력도 없다. 짐을 싸서 터줏대감같은 고시원을 떠난 대성이 돌아간 곳은 대성마트이다. 그런데 '대성마트'의 '대성'이 길거리에 나뒹군다. 대성상회 시절부터 지금의 대성마트까지 그곳을 이끌던 대성의 어머니, 한명숙 여사가 비로소 마트 경영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마트 이름을 아들 이름 대성에서 자신의 이름 '명숙'의 이니셜 'ms'로 바꾼 한명숙 여사, 끝없는 공시 터널에서 빠져나온 아들에게 '독립'을 요구한다.
▲살인자의 쇼핑목록ⓒ TVN
만년공시생 마트 캐셔가 되다 고시원에서 공시 준비를 해도 늘 돌아갈 집이 있었던 대성은 졸지에 마트 건물 옥상에 창고로 쓰던 옥탑방으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늘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마트의 캐셔 자리 수습이 됐다. 그런데 마트가 자기를 대접안해준다고 마트가 떠나가라 유세를 떠는 부녀회장에게 그녀가 지난 시간동안 사간 스타킹 갯수와 금액까지 안내하며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공시생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달란트'는 '마트'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tvn 수목 드라마는 이렇게 만년 공시생 안대성과 그의 집이자 일터가 된 'MS마트'를 이렇게 소개한다. 알고보니 어머니가 '대성상회'를 하던 시절부터 카운터를 지키던 '캐셔 경력 30년, 우리 엄마 슈퍼는 내가 지킨다'던 청년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만년 공시생이 되고말았다. 자칭 타칭 '비공식 슈퍼두뇌'이지만 그 슈퍼 두뇌가 자신의 능력을 살피지 못해 방황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슈퍼집 아들'이란 이유로 그를 좋아했던 연인이 소개팅 자리에 나갈 처지가 되었다.
사실 능력은 있지만 현실은 '루저'인 주인공, 낯설지 않다. 현실에서는 파리날리는 만화방 주인이지만 사건에 있어서는 '천재적 능력'을 가진 <탐정; 리턴즈>의 강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을 각색하고 감독한 이언희 감독이 <살인자의 쇼핑목록>의 연출을 맡았다. 거기에 장르물 매니아들을 열광케 했던 독특한 구성의 스릴러 <원티드>, <오늘의 탐정>를 쓴 한지완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이언희 감독, 한지완 작가가 선택한 공간은 '슈퍼'이다. '상회'이던 시절부터, 재개발을 앞둔 현재까지 동네의 중심, 하지만 어느덧 '쓱싹배송, 새벽배송' 등에 밀려 그 자신이 '재개발'되게 생긴 오랜 동네의 터줏대감, 그만큼 그곳에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동네의 모든 것들이 오가는 곳, 한때는 대성상회였던 지금의 MS마트가 '현장'이다.
▲살인자의 쇼핑목록ⓒ tvn
마트 캐셔의 숨겨진 능력 당연히 스릴러 장르이니만큼 '사건'이 등장한다. 다른 친구들이 다 학원을 갈 때 홀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마트 단골손님 아홉살 세빈이가 가져온 주인을 잃은 슬리퍼 한 짝, 그 주인이던 여성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그 여성의 사체를 발견한 사람이 다름아닌 안대성이다. 현장에 온 경찰에게 직업과 우울증 병력에 이르는 그녀의 사소한 프로필까지 줄줄이 꿰는 안대성, 연인이자 경찰인 도아희가 없었다면 딱 용의자이다.
일찌기 대성상회이던 시절, 5만원 권을 가지고 초코파이 한 개를 사러 온 위폐범을 그가 가지고 온 위폐 번호로 들통나게 만든 어린 시절의 안대성, 통통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여전히 그의 '슈퍼 두뇌급' 능력이 마트를 찾은 모든 이들을 슈퍼컴퓨터처럼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대성의 능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찌기 중학교 시절 선생님조차 혀를 내두르던 '오지랖'이라던 그 관찰력과 추리력이 발동한다. 시신의 목에 조른 흔적, 그리고 세빈이가 슬리퍼 한 짝을 찾은 성당 구석에 감겨진 스타킹, 그리고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에 출몰했던 배달 봉투 안의 스타킹 등을 조합하여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직접 마트에서 파는 모든 스타킹을 가져다가 목을 조를만한 '탄성'의 능력치조차 직접 실험하면서.
하지만 능력자는 대성만이 아니다. 일찌기 대성상회 시절 셔터문을 내린 상황에서 자신의 목을 조르던 위폐범을 쌀봉지로 가격해 제압한 왕년의 배구 선수 한명숙 여사에, 동네 소식은 모르는 것이 없는 마트 알바에 화장품 외판원 투잡을 뛰는 마트의 '공산' 코너 담당 아줌마, 대성은 들지도 못하는 물건을 거뜬히 들어내는 마트 '알바' 등등 소소한 일상의 한 축을 구성하는 인물들이 스릴러 장르의 주요 인물로 저마다 한 몫을 한다.
'범인은 마트에 있다', 대성상회 시절 위폐범이 이제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대성의 주위를 맴돌고, 홀로 살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성에 이어,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한다며 마트에 와서 울며 호소를 하던 여성이 그녀의 집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들, 혹은 가해자들의 흔적이 마트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우리가 '버려주세요'라는 말로 남기고 온 영수증 안에 마트를 다녀온 모든 이들의 신상명세가 드러나 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소비한 모든 품목이 그들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기발한 '현대 사회'의 '인증서' 마트를 중심으로 <살인자의 쇼핑 목록>은 시작된다.
신선한 구성, 그리고 그 신선한 플롯 속에 움직이는 생동감넘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이웃들의 스릴러, 이 흥미진진한 <살인자의 쇼핑목록>이 선전하기를 바란다.
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에 이어 최근 <방법 재차의>, 그리고 드라마 <방법>, <지옥>, <돼지의 왕>에 이르기까지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집필하거나, 연출한 작품들이다. 이젠 '연상호월드', 혹은 '연니버스'라는 고유명사가 등장할 정도로 초월적 세계관과 그로 인해 혼돈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하나의 고유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4월 29일 티빙을 통해 공개된 <괴이>는 그러한 연상호 감독 고유의 세계관에 기반한 또 하나의 시리즈이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괴이>는 이른바 '연니버스'의 전형성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연상호월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귀불, 봉인이 풀리다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괴이>의 포스터는 말한다. 천보산의 절터에 오래전 묻힌 불상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거기에 '관광 산업'이라는 세속의 욕망이 곁들여 진다. 진양 군수 권종수(박호산 분)는 이를 파내서 사람들이 이 불상을 보러 진양군에 올 '관광산업'의 꺼리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스님들은 이에 반대한다. '귀불', 말이 불상이지 오래전 악귀가 들린 이 불상은 티벳어로 씌여진 가리개로 '봉인'이 되어 묻힌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 '봉인'이 풀리는 순간 세상에 재앙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런 스님들의 반대가 '관광 산업'의 열망을 가라앉힐 수 없다.
예정대로 진행된 출토작업, 귀불의 눈을 가렸던 가리개를 치우자 그 눈을 마주친 인부로 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오래전 자신과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자신을 구타한다고 생각한 순박한 청년이었던 인부는 결국 아버지로 오인하여 술집 주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어깨뼈가 튕겨져 나올 정도로 용을 쓰며 폭주한다.
게다가 귀불이 출토되자 진양군에는 검은비가 내리고 그 비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군청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귀불, 사람들은 저마다의 지옥 속으로 빠져들어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처절한 폭력의 레이스를 벌인다.
그것이 좀비였든, 혹은 지옥의 사자였든, 그리고 귀불이었든 연상호 월드에서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지옥과 같은 상황'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 자신이 '지옥'의 불쏘시개가 된다. 가장 평범한 갑남을녀가 귀불의 젯밥이 되어 서로를 해친다.
차별성인가 한계인가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 혹은 초현실적인 '현실의 지옥도'를 '배양'하는 건 부조리한 인간의 권력이거나, 그 권력에 편승한 인간들이다. 부산행에서 김의성이 분한 '용식'은 귀불을 파내 관광 산업의 재미를 보려는 박호산이 분한 권종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 욕망을 공적인 권위에 의존하여 풀어내고 그로 인해 '초현실적인 파멸'의 방아쇠를 당긴다. 군수라는 자릿값으로 큰소리를 펑펑치다가, 자신의 수하조차 필요에 의해서 기꺼이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비겁한 상사,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한참 어린 청년 앞에서 기꺼이 비굴함을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그래서 비열한 모습이 '권력'이나 '권위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몬다.
<괴이>에서 이전 연상호 월드의 작품들과 차별성을 들자면 보다 강력해진 폭력성이다. 주인공보다 더 도드라진 캐릭터 곽용주(곽동연 분)에 의해 대표되는 무자비한 폭력이다. 이제 막 출소한 용주, 하지만 외려 그의 폭력성은 더욱 증폭되었을 뿐이다. 자신과 갈등을 일으켰던 한도경(남다름 분)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 그의 폭력성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도' 안에서 외려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검은비를 맞은 사람들, 혹은 귀불의 눈을 본 사람들을 앞장서 죽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지지부진했던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한 즐거움인양, 결국 그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음에 이를때까지 폭력의 질주는 그치지 않는다.
곽용주로 대표되는 가학적 폭력에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린다. 그리고 어느새 만인대 만인의 투쟁 상황에서 우월한 수컷인 양 구는 곽용주가 내세운 힘의 논리 앞에 따라간다. 피가 튀기도록 때리고, 찌르고..... 무작정 나타나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지옥> 속 죽음의 사자들처럼,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진양군에 지옥을 선사한 귀불의 등장이 주는 공포를 설득할 것은 보다 잔인한 설정 밖에 없다는 듯이 귀불의 등장 이후, 특히 진양 군청에 모인 사람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는 누가 더 잔인하게 '피의 카니발'을 벌이는가하는 '질주'이다.
가족만이 구원이다? 그렇게 개연성과 상관없는 초현실적인 공포, 그리고 거기에 제물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폭력과 피의 향연, 그런 가운데 역시나 <부산행> 이래로 드라마의 중심은 '가족애'이다. <월간 괴담>의 정기훈(구교환 분)과 이수진(신현빈 분)은 티벳어를 능수능란하게 해석해 낼 수 있는 고고학과 문양 해석의 전문가들이다. 또한 이들 부부는 얼마전 잃은 어린 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짙은 감정적 앙금이 남아있다. <괴이>는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인한 사람들이 벌이는 피의 카니발이라는 한 축에 곁들여, 정기훈 이수진 부부의 트라우마를 귀불에 대한 제압 과정을 통해 해소해 나간다. 거기에 또 한 축은 파출소 소장이자 한도경의 엄마인 한석희(김지영 분)의 모성애이다.
정기훈과 한석희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진양군청을 향한다. 부산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신파'였듯이, 결국은 <지옥>의 감동을 끌어낸 것이 박정민 원진아 부부의 자식을 향한 살신성인이었듯이, <괴이> 역시 정기훈과 한석희 등의 '가족애'를 통해 드라마를 끌어간다.
부부였든 아는 사람이었든 부하 직원이었든 상관없이 귀불로 인해 정신줄을 놓고 칼부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위험에 내맡기는 상황에서 정기훈과 한석희의 몸을 던진 가족애는 당연히 흑과 백처럼 대비를 만들어 낸다. 고고학자거나, 파출소장이라는 그들의 '직분'은 '가족애' 앞에서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넘치는 사람들의 폭력적 신들림이 밑도 끝도 없는 과한 폭력성으로 인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듯 정기훈과 한석희의 가족애는 상투적이다. 또한 곽용주와 한도경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미묘한 감정선은 뜬금없다. <괴이>는 연니버스 체인점의 메뉴얼을 다 갖추었지만 어쩐지 소스는 과하고, 재료는 설익은 듯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더욱 아쉬운 것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김주령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욱 소모적인 캐릭터로 사라진다. 신현빈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은 이수진은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내내 전전긍긍한다. 문양 해석학자로서의 역할은 '장식적'이다. 파출소장 한석희는 제 아무리 파출소장이라 하더라도 부하 경찰에게 '야야' 거리는 호칭이나 '반말'로 일관하는 태도는 한석희라는 캐릭터의 미덕을 상실케 한다.
5월이다. 부모님도 계시고, 자식들도 있는 연배의 사람들이 5월에는 외식은 꿈도 못꾸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들을 한단다. 어버이날도 있고, 어린이 날도 있는 5월, 그래서일까? <우리들의 블루스> 호식과 인권의 이야기가 쓰리게 다가온다.
호식(최영준 분)과 인권(박지환 분)의 딸 영주(노윤서 분)와 아들 현(배현성 분)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지역 균형 선발로 서울대 의대 갈 날만 바라고 공부에 매진해 왔던 영주는 임신임을 알고나서 자신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이유로 아이를 지우려 했다. 하지만 임신 주수가 이미 6개월을 넘어 중절조차 쉽지 않은 상태,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결국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당하게 아이를 가지고서도 학교를 다니게 해달라고, 지역균형 선발로 대학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던 영주,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서라도 아이 아빠 노릇을 하겠다던 현도 막상 아버지들 앞에서는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들인가.
아버지로 살다; 인권과 호식 한때는 주먹으로 날리던 현의 아버지 인권은 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만다. 말끝마다 아직은 이새끼 저새끼 하지만, 아직은 '내 꺼'라며 현을 애지중지한다. 그의 불만이라면 그저 현이 호식의 딸내미 영주에게 늘 전교 1등을 내주고, 전교부회장인 거다. 그래도 자기보다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내미가 그의 '자랑'이다.
호식이라고 다를까, 은희가 가난해서 버렸다던 호식이, 그런 호식이가 시장에서 얼음을 나른다. 그런 와중에서 생선까지 굽고, 제철 과일까지 챙겨 딸내미 영주의 아침상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구멍난 양말에 늘어진 티쪼가리다. 둘 다 아내가 떠나고, 그저 아들내미, 딸내미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 말끝마다 호식이는 영주가 대학만 가면 저 바다에 배 띄워 낚시나 하며 살겠단다.
그렇게 아이들 대학보낼 날만 바라며 정신없이 달려온 두 사람 앞에, 아이들이 사랑한다며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 심지어 현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고 둘이 살 집만 마련해 달란다. 청천벽력이다. 두 아버지는 자신들답게 반응한다. 인권은 차마 현을 때리지 못하고 집안을 다 때려부순다. 호식은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하염없이 운다.
처음 현이 영주의 이야기를 했을 때 인권은 늘 자기 아들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하던 영주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걸 안심했다. 호식은 영주의 이야기를 듣자 믿을 수 없다며 함께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 했고, 그 다음엔 아이를 지우자고 한다.
영주와 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의 다음날, 일을 하는 인권과 호식, 두 사람에게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동네에서 피붙이처럼 친했던 두 사람, 그래서 호식을 겁박하면 인권이 무릎을 끓던 시절, 이 담에 아이들이 크면 사돈을 맺자며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가 떠나고 밥통에 밥알도 말라버린 채 영주가 배가 고프다고 한 날, 호식은 그래서 가장 친한 인권을 찾아 돈을 구했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호식은 인권으로부터 돈을 가져갔고, 그 돈은 도박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인권의 태도가 달랐다. 인권은 영주에게 다가가 '돈주세요'하라고 하고, 그런 영주에게 돈을 주었다. 그리고 호식에게 말했다. 딸 앵벌이 시켜 돈얻으니 좋냐고. 그 말 한 마디가 호식을 변하게 했다. 아내가 떠나도 끊지 못하던 도박을 인권의 그 한 마디가, 딸의 손에 얹힌 돈다발이 호식을 변하게 했다. 대신 인권과 호식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부모라는 자리 피붙이같던 인연을 끊고 자식키우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두 사람이다. 이제 아이들이 번듯한 대학만 가면, 고지가 저긴데, 그 고지 앞에서 두 아이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
첫 회부터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던 인권과 호식, 두 아버지들의 둘도 없는 자식 현과 영주의 러브스토리, 그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역설적으로 '부모'를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장 헌신적인 아버지들을 통해 '이타적'이기만 할 것같은 '부모' 자리의 '이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이란 없이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달려온 듯한 인권과 호식, 심지어 두 사람은 아버지이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들에게 두 사람은 완전체로서의 부모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가속을 붙여 달려온 자기 희생적인 삶, 그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이 원했던 부모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니면 당신의 아이가 이룬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내도 못끊게 했던 도박을 끊게 만들고, 잘 나가던 주먹질을 접게 만들었던 맹목적인 부모의 자리, 하지만 그 '맹목성'은 동시에 잘 나가는 자식이라는 '보상'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라고 드라마는 묻는다. 그래서 영주의 임신 소식에 인권은 자기 아들이 1등을 하게 됐다며 좋아했고, 호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딸의 앞길을 막는 아이를 지우자고 단호하게 결정한다. 물론 거기에는 아내가 떠나버린 상실감과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감내했던 시간이 준 트라우마가 있다.
어느 부모가 전교 1, 2등을 다투던 내 아이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이를 낳고,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 노릇을 하겠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물론,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인권과 호식이기에 결국은 현과 영주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부모 노릇을 통해 작가는 묻는다. '내 새끼'만을 향했던 그 마음의 향배를.
또한 그 '맹목성'이 놓치고 있던 내 삶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묻는다. 가끔 인권의 순대국밤 노점에는 한때 그와 함께 '주먹' 좀 쓰던 친구들이 온다. 그리고 인권을 신기해하는지, 비웃는지 묘한 뉘앙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인권도 현에게 늘 말한다. '돼지 냄새' 맡아가며 너를 키운다고. 늘 어디 동호회 무료 티셔츠 나부랭이나 입으며 얼음을 나르는 호식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 안에는 어쩌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한 자기 삶에 대한 서러움이 묻혀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새끼 좋은 대학 갈 날만을 향해 달려왔던 삶, 과연 그건 내 새끼의 좋은 대학 입학만으로 '보상'받아야 할 삶일까? 주먹질을 하던 인권이, 도박판을 전전하던 호식이 아이들로 인해 '보상'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꽃길 대신 현재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아이를 선택한 현과 영주의 행복말이다. 우리는 늘 먼 훗날의 여유와, 행복을 그리지만, 사실 어쩌면 고단한 지금 여기의 삶이 현생을 사는 나의 '황금기'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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