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면 오른쪽 눈의 경우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물체의 색이 바래서 보인다. 안보이는 것보다 세상의 빛깔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검사를 할 때마다 울적해 진다. 나이듦이란 세상에 태어나 누리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백내장 초기라지만 왼쪽 눈은 시력이 나와서 글을 쓰고 살만하니 다행이다 이러구 살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나이가 들고 병이 생겨 자신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을 더 이상 여의치 않아진다면 어떨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화가 앙리 마티스가 전해준다. 

 

 

지난 10월 31일부터 마이 아트 뮤지엄에서 앙리 마티스의 탄생 150주년 특별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앙리 마티스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도 학창 시절 미술 시험을 보기 위해 야수파 앙리 마티스 하고 외웠던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야수'라는 정의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붉고 초록의 커튼이 드리워진 방을 그린 교과서 속 그림이 떠올려 질 것이다. 그게 아니라 조금 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신의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는 <춤>이나, 가위로 잘라낸 자유 분방한 푸른 여성의 나신들의 콜라주 작업인 <블루 누드> 연작 시리즈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붓대신 가위를 든 화가 
본인 자신이 화가라 마티스의 블루 누드 연작에 대한 세간의 폄하에 대해 예술가로써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던 윤석화 도슨트의 열정적인 해설을 도움받아 접한 <앙리 마티스 150주년 특별 전시회>는 나이듦과 병이라는 걸림돌에 무너지지 않은 채 외려 그것들을 지렛대로 삼아 삶의 불꽃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가 앙리 마티스를 만날 수 있다. 

1869년에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앙리 마티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법률가가 되었다. 하지만 맹장염으로 인해 무려 2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던 그는 '법'과는 정반대인 미술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렇게 앙리 마티스의 일생에서 '육체적 고통'은 그에게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전시회는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야수파 앙리 마티스를 지나 노년기의 마티스로 부터 시작된다. 고흐 등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신인상주의적 그림에서 부터 선과 색이 강렬하게 그러난 야수파로서 '화가'로 인정받았던 시절을 지난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사해 나갈 수 있었던 장년, 노년의 마티스이다. 

여기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춤>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사물을 화가의 시선으로 '각색'한 그림들이 새로운 조류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구상'이 대세이던 시절, 마티스가 단순화된 형태와 명쾌한 색으로 구성된 작품 <춤>을 선보인다. 당연히 그의 첫 시도는 아직 평단과 화상,그리고 대중적 이해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화가로서 보다 안정적인 경지에 이르르며 그는 <춤>을 통해 표현해 내었던 작품 세계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전시회에서 가장 중심이 된 <블루 누드> 시리즈는 그러기에 그에게 찾아온 병마로 인해 병석에 누워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택한 불가피한 방식이라고만 보면 아쉽다. 도슨트의 강조처럼 누구라도 오려낼 수 있는 쉬운 작업이 아니라, 푸른 바탕의 종이를 대번에 잘라, 즉 이미 화가의 머릿 속에 작품이 구현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예술적 도전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랫동안 앙리 마티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피카소가 앙리 마티스가 병석에 누워서도 가위를 사용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해 시기를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말년에 '가위를 활용한 콜라쥬'를 통한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보다 자유로운 도전은 전시회의 제목 '재즈'와 통한다. 구상화된 소묘에서 오블리스크 연작 과정을 통해 보다 단순화되고 장식적인 화풍으로의 전환, 그리고 석판화집에서 보다 추상화되어 가는 대상들의 등장은 화집 표지 '이카루스'를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작품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가 그 어떤 구상화적 표현의 이카루스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모델들의 소묘로 시작된 전시회는 말년 'by 앙리 마티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로사리오 대성당으로 마무리된다. 이 전시회의 흐름은 우선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난 모델들의 데생이 로사리오 성당 벽면에 둥근 원으로 대체된 성모자상으로 이르게 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과정이다. 

 

 

중단없는 도전
개인적으로 전시를 보고 의문을 느껴 도슨트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던 이 과정은 모델들의 가장 적절한 포즈가 나올 때까지 모델들을 집요하게 관찰했던 앙리 마티스가 인간을 표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목구비를 '상실' 시키는 작업에 이르는 '추상'의 탄생이다. 구체적인 표현 대신 보다 단순화되고 선명해진 선을 통해 외려 앙리 마티스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화가의 눈에 비친, 화가의 눈으로 본 대상을 '상실' 시켜  그림을 보는 이들의 주체성을 부여하는 '자유로움'을 향한 여정은 바로 미술사에서 추상의 탄생 과정에 다름 아니다.  로사리오 성당 벽면의 텅빈 얼굴을 통해 신자들을 저마다의 성스러움에 다가가기를 앙리 마티스는 유도했다. 성모자상의 얼굴을 과감하게 생략한 앙리 마티스도 마티스이지만 그런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프랑스 천주교의 예술적 유연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러기에 흑백의 단순한 벽에 비친 푸른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한 햇빛의 경이로운 조화라는 천재적인 예술 작업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년의 앙리 마티스는 젊어 캔버스를 통해 표현했던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확장해 간다. 석판화집을 비롯하여 스트라빈스키의 무용 작품<나이팅게일의 노래> 의 무대 의상, 스스로 선정한 시인들의 작품집에 삽화, 그리고 로사리오 성당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방위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 간다. 2차원적 평면에 강렬한 색으로 표현되었던 마티스의 세계는 시의 해석을 통한 세계의 확장을 시도했으며, 무대 위, 그리고 건물의 벽면을 통해 3차원적 영역으로 한계를 뛰어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작업은 그가 두 차례의 암 수술을 하며 붓조차 쥐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전>은 그렇게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접했던 모더니즘의 발전, 그리고 추상의 등장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그런 미술적 이해를 넘어 평생을 병마와 우울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세상에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으려 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쁨과 환희를 주는 작품을 그려내고자 하는 인간 마티스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려서 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 마티스를 주저앉혔던 병마, 그리고 그가 살아온 시간 동안 겪었던 두 차례의 전쟁, 그리고 개인사까지, 마티스의 그림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종교와 믿음이라 여겼던 예술을 향한 성실한 구도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더 생존했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마티스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20. 12. 9. 13:00

삭막한 도시가 연상되는 회색빛 담벼락 앞에, 혹은 스산한 해변가에 한 소녀가 서있다. 온 세상을 담을 듯 커다란 눈망울, 그림을 보는 순간 배경도, 소녀의 옷도, 머리도 사라지고 그 눈망울에 담긴 애잔한 감성에 압도된다. 이 그림을 보고, 이 소녀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까? 

 

 

'저는 이 그림에 전쟁이 끝난 후  부모를 잃고 남겨진 전쟁 고아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공감하시는가? 이 그럴 듯한 한 마디에 2차 대전 후 미국 사람들은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지갑을 열었다. 1950~60년대 마크 로스코나 잭슨 플록과 같은 추상 미술이 주류였던 미 미술계에서 인형처럼 큰 눈을 그린 저 그림들을 전시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것이 술집 벽 한 켠, 하지만 우연히 신문에 실린 사진과 그 사진에 얹혀진 이 그림의 작가라는 월터 킨의 그럴 듯한 해석은 '키치'라는 평론가들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과 그 작가를 대중적 인기의 물결에 얹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2014년 팀 버튼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빅 아이즈>의 이야기처럼, 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들의 그림을 그린 진짜 주인공은 이 그림을 팔아 한 몫을 크게 챙긴 월터 킨이 아니라 그의 아내였던 마가렛 킨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평생을 정진해온 화가 마가렛 킨의 전시회가 지난 5월에서부터 9월까지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정우철 씨 등의 도슨트를 통하면 마가렛 킨의 생애에 대한 보다 친절한 설명에 다가설 수 있다. 

전쟁 고아의 슬픔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그림의 진짜 작가 마가렛 킨은 무엇을 그리고자 했을까? 바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작가의 슬픈 마음을 그대로 그림에 드러낸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그리는 눈은 나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 마가렛 킨 



 

 
이름을 찾기 위한 지난한 싸움 
첫 번째 결혼으로 딸을 얻었지만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도시로 나온 마가렛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처지였다. 1950년대 미국은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 함께 그림를 그리던 월터가 다가오자 마가렛은 홀로 딸을 키워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결혼은 그녀의 '무덤'이 되었다. 남편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여류 화가의 존재가 인정받기 힘들다는 핑계를 들어 그녀의 이름에 남편의 성인 '킨'을 서명하게 유도하였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고, 사업 수완이 좋은 월터가 이른바 '굿즈'와 같은 형태로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화하며 떼돈을 버는 동안, 그녀는 딸조차 모르는 숨겨진 방에서 강아지들을 벗삼아 하루 18시간씩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림이 많이 팔리면 팔릴 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고통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래서 그녀가 모색한 돌파구가 바로 그녀가 좋아했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이전에 그렸던 그림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이었다. 킨이라는 결혼 후 생긴 성 대신 전시는 마가렛의 전 생애 기간 동안 그림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전시해 놓았다. '킨'이라는 서명으로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혼란을 느꼈던 시절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적으로 그녀를 유명작가로 만들어 준 '빅 아이즈'를 시작으로, 월터 킨의 아내로 남편처럼 그림을 그리는, 그래서 부부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시기의 '모딜리아니 풍'의 그림이 잇달아 걸려있다. 

하지만, 변화시킨 화풍만으로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상쇄할 수 없었다. 더구나 딸을 위해 선택했던 결혼이었지만 딸 앞에서조차 빅 아이즈의 주인 행세를 하는 남편을 견딜 수 없었던 마가렛은 모든 재산을 놔둔 채 딸과 함께 월터를 떠난다. 그리고 미국 사회 내 성장하는 여성의 인권 운동에 발맞춰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돌입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었다. 무려 12년, 1986년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아내의 그림과 그 그림으로 만든 굿즈를 팔아 일군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여 변호사조차 내세울 수 없었던 월터를 상대로, 법정에서 53분 만에 스스로 자신이 마가렛임을 증명하는 그림, '증거 번호 227'을 그려서야 자기 그림들의 이름을 되찾았다. 더구나 늘 울타기 바깥에서, 혹은 갇혀서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가, 아직은 슬픈 눈빛이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온 '세심한' 포인트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12년 동안 거짓말을 했고, 이는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진실이 가지는 가치를 배웠고, 명성, 사랑, 돈,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만한 가치는 없다고  배웠다',  -마가렛 킨 


도슨트의 말처럼 때로는 일본 서스펜스 영화 속 아이 귀신과도 같은 커다란 눈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 키치 풍의 팝 아트가 익숙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마가렛 킨의 '빅 아이즈'는 친숙한 '화풍'이다. 그러나 그 친숙한 화풍에 담긴 한 여성 화가가 벌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지난한 싸움이야마로 전시회를 통해 얻은 진짜 수확이다. 그저 애잔했던 눈망울이 자신을 잃은 여성이 그림을 통해서 밖에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슬픔이라 여겨지니 그 눈망울들이 한결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슬픈 눈망울은 자신의 이름을 찾는 여정에 나선 이후 변화한다. 하와이에서의 자유로운 삶, 종교, 그리고 사랑은 눈망울을 한결 더 커졌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일관된 작품 세계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더구나 아직도 생존해 있는 작가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결과물을 전시회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최근 재개된 툴루스 로트렛 전의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4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00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려냈던 툴루스 로트렉이 보였던  삶에 대한 '성실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거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팀 버튼 감독의 그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캐릭터들이 다름 아닌 마가렛 킨의 영향력이었다는 사실은 '옵션'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다른 누구도 아닌 마가렛 킨의 생애를 스크린에 옮긴 이가 팀 버튼감독이 되는 것이다. 팀 버튼의 <빅 아이즈>는 바로 그런 두 사람의 '인연'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아마도 전시회를 보고 팀 버튼의 <빅 아이즈>를 본다면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by meditator 2020. 7. 7. 15:21

지난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는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를 전시하고 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이쾌대 우리 근대 미술계에서 잊혀진 혹은 방치된 예술가들을 복기하는 전시회를 꾸준히 이어왔던 국립 현대 미술관은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실시대>를 통해 일제 시대와 6.25라는 역사적 격동기에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예술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던 미술가들을 소환하여 미술로서의 근대사 읽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는 사회와예술, 나아가 존재와 예술이라는 거대 담론을 향해 한국 미술사가 해나가야 할 진중한 과제를 향한 성실한 답변의 일환이다. 

1층과 2층, 총 3부로 이루어진 전시회는 근대 화단의 신세대; 정찬영, 백윤문, 해방 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현대 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등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는 낯설은 이름,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그들의 그림들, 하지만 그 그림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 근대 미술의 지평이 그저 몇몇 명망가들로만 이루어진 그런 것이 아닌  다양한 시도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더구나 최근 미술사를 수놓았던 인물들이 '친일'이라는 오명을 달고 퇴진하게 되는 위기에서 더더욱 반가운 시도이다. 

 

 

근대 화단의 신세대 
3부의 전시회를 여는 건 여류 화가 정찬영이다. 1929년, 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당시 유행하던 채색화 기법의 <지반, 또는 수련>, <설중백로>로 연이어 입선하며 미술계에 등장, 이후 그런 채색화의 기법에 자신만의 세밀한 묘사를 더한 <모란>, <여광> 등으로 여성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의 특선 작가가 되었다. 특히 자신의 딸을 모델로 하여 나물 바구니를 옆에 두고 애처로이 앉아있는 <소녀>는 1935년 창덕궁상을 수상함은 물론 식민지하 조선의 심성을 대변한 작품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결혼의 조건이 그림을 계속할 수있었던 것일 만큼 예술에의 의지가 강했던 정찬영, 그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기 위해 공작을 그릴 때 창경원에 나가 직접 데생을 하거나 했지만 그 자체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가 될만큼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혼 두 둘째 아이를 잃게 되면서 그 아픔으로 붓을 놓게 된 정찬영, 이후 그녀의 그림은 식물학자인 남편 도봉섭의 식물서에 식물세밀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남편의 납북으로 더는 그녀의 그림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촉망받는 여류 예술가였지만 '가정'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붓을 접어야 했던 근대 여성의 자화상이다. 

 

 
정찬영과 함께 전시된 백윤문, 도화원 집안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순종의 어진을 그렸던 화가이다. 김은호에게 사사하였으며 정찬영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채색화 화풍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 정찬영이 여성적이며 섬세한 필치로 채색화를 접근했다면, 백윤문은 그와 반대로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당시 남자들의 생생한 생활의 모습을 담아내며 자신의 미술 세계를 이끌어 가다 1942년 건강상의 이유로 무려 35년 동안 붓을 접게 되었다. 이후 기적적으로 1977년 건강을 되찾아 78년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지만 불과 2년 후 유명을 달리했다. 

현대 미술의 개척자 
근대 미술의 신세대의 맞은 편 공간에 펼쳐진 건 지금의 우리에게도 신선한 현대 미술의 화풍을 개척한 이규상과 정규의 작품 세계이다. 김환기, 유영국, 그 이름만으로 걸출한 우리나라 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자들이다. 김환기의 그림이 십억을 넘는 낙찰가를 호가했다는 기사를 아직도 접하게 될 정도로 여전히 '핫'한 것과 달리,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미술, 나아가 추상 미술을 이끈 세 사람이라 당대 칭해졌던 이규상은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지 못한 시대를 만나 가난에 그림마저 절필하는 불우한 삶을 살게 되었다. 

1930년대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의 모더니즘의 화풍을 이어 받아 다양한 미술적 시도가 융성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에 미술로 유학했던 이규상이 그런 화풍을 이어받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규상은 그런 모더니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호안 미로의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여 그걸 자신의 작업 세계에 풀어놓는다. 기독교적 세계관, 이를 선과 원 등의 추상적 대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던 이규상, 하지만 그런 '난해한' 그의 작품은 전시회를 통해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으며 동시대인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고 하지만 추상적 주제를 향한 그의 예술적 열정은 더해만 가며 결국 그를 세상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반면 역시나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화로 작품 세계를 열었던 정규는 초창기에는 교회, 소년같은 구상적 이미지를 선으로 구획된 단순화시킨 추상적 이미지로 만드는 작품들에 집중했지만, 불모지와 같은 추상화단에 머무르지 않고 판화, 도예, 그리고 도예 작품을 활용한 벽화로 자신의 작품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며 우리 미술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해방 공간의 순례자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크다. 우리가 이름조차 몰랐던 근대 미술가들의 그림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전시회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는 해방공간과 분단의 시대를 살아갔던 '선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이기에 예술가로서의 생을 다하지 못했던 사람도, 너무 앞서가서 외면받아 좌절했던 선각자도, 하지만 이런 근대인들의 초상들 중에서도 어쩌면 정말 이 전시회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해방 공간의 순례자'라는 제목으로 찾아온 두 사람 정종여와 임군홍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들게 전시회를 보고나서면 들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2층의 양 홀을 가득 메운 그들의 작품이 그러하거니와, 작품들의 면면이 우리 미술사에 이런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걸출하고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도, 그들의 그림도 낯설기만 할 뿐이다. 

화가 임군홍,  하지만 그에게는 화가 말고도 다른 수식어의 직업이 많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정규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임군홍, 독학으로 공부하여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연속 입선에 미술학도들과의 동인전으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가장으로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그는 1939년 이래 중국으로 가 중국의 풍물을 인상주의, 야수주의 등의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자신의 그림에 담았다. 

 

 

도화서 가문 출신의 백윤문이 평소에는 수묵 담채의 기법을 좋아했지만 당시 미술의 트렌드를 따라 조선화단에 인정을 받기 위해 채색화 그림을 그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을 하였듯이 일본 유학파 등이 주축이 된 조선 화단은 특정 트렌드가 중심이 되었고, 그런 조선의 화단과 거리를 둔 임군홍은 중국인의 거리와 풍물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화풍을 진작하여 우리 미술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1936년 입성을 시작으로 1938년부터 44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선과 특선을 거듭했던 대표적인 작가 정종여, 전시회장 1층 전면을 가득 메운 괘불도, 25살에 그렸다는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화풍은 호방하며, 일본 화단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수리에서 보여지는 기상은 우리나라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상이다. 또한 중국의 고전을 답습하던 전통화에서도 금강산과 지리산, 가야산 등 우리 산하의 정경을 실사화로 그려내었던 화가, 그만큼 정종여가 해방 이전과 후 한국 화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그러나, 색달랐던 임군홍도, 호방했던 정종여도, 그 이름도, 그의 그림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자진 월북, 혹은 납북되었기 때문이다. 각각 1972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에서 '공훈 예술가'의 칭호를 받으며 활동했던 이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은 본의 아니게 남한 화단에서 '절필'의 작가가 되었다. 이제 북한 최고 인민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원봉의 월북 이전 독립 운동의 공으로 '서훈'조차 제기되고 있는 시점, 한국 화단의 블랙홀이 되었던 월북 화가들의 작품을 '절필 시대'를 통해 복기하는 건 그래서 반갑고도 소중하다.  본의 아니게 절필이 된 그들의 절필 이전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근대 화단의 본 모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by meditator 2019. 7. 11. 22:01

<나의 사랑, 그리스>의 제목 속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낚여서, 혹시나 풍광이 좋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한 옵니버스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위플래쉬>의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같던(?) j.k 시몬스의 '로맨틱한 사랑'이 기대되었다면 그 기대는 충족하고도 남을 듯하다. 로맨틱하지는 않은데 로맨틱하다? 바로 그런 영화가 <나의 사랑, 그리스>다. 


사랑 영화답게 <나의 사랑, 그리스>는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극중 은퇴한 독일 교수이자, 그리스가 좋아서 현재 그리스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세바스찬 역의 j.k 시몬스의 긴 서언으로 시작된다. 



에로스, 다 알다시피 사랑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때론 짖궃게 사랑의 화살로 서로 사랑해서는 안될 사이를 연결하여 운명에 휘말리도록 만드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연히 찔린 자신의 화살로 인해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에로스의 운명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사랑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짚는 것으로 '프롤로그'를 대신한다. 그렇게 인간사를 뜻하지 않는 '운명'에 빠뜨릴 에로스의 화살이 그리스의 한 가족에게 세 발이나 쏘아진다. 

평범한 그리스의 한 가족이 있다. 
이제는 말년의 평화로움을 즐겨야 할 나이의 가장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란 나라는 그에게서 그 '말년의 휴식'을 빼앗아 갔다. 그는 오늘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재산인 차를 팔러가는 길이다. 한때 가게를 세 개나 운영하던 잘 나가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한 대 남은 차마저 넘기러 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행상, 바다 건너 온 이방인이다. 불같이 화를 쏟아붓는 그, 불현듯 자신에게, 그리고 그리스의 모든 가장들에게 벌어진 불행이 바로 이들 '이방인' 때문이란 생각에 멈춘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우유부단한 국가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야곰야곰 좀 먹어 오는 저들 이방인을 '응징'하고자 나선다. 

에게해와 지중해, 이오니아 해,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 덕분에 일찌기 그 바다를 통해 고대 세계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였으며, 그 바다를 통해 유입된 동양의 문물을 통해 서양 고전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21세기의 그리스는 그 열려진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그 예전 '화려한 그리스 문명의 통로였던 곳에 기근과 전쟁을 피해 찾아든 '이방인'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21세기의 그리스는 유럽 연합의 도움없이는 스스로를 연명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라는 것. 그 국가적 채무의 부담은 고스란히 그리스 국민들에게 전과되어, 이미 그리스인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여러 다큐와 뉴스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그런데 쏟아져 들어오는 이방인이라니!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그리스의 아버지가 보인 결단은 그들을 향해 곤봉과 총을 드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문제, 자신의 세대가 실패한 삶, 그리고 자신의 세대가 일군 국가가 빚어낸 실패를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세우는 방식이 낯설지 않다. 촛불이 불타오르던 그 광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 '종교집단'처럼 자신들의 지나간 역사를 붙들고 강력하게 저항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의 모습과 공교롭게도 오버랩된다. 지난 4월 oecd가 발표한 소비자 심리 지수에서 나란히 꼴찌에서 둘째, 세째를 차지한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버지 세대가 결국 거리에서 그 '아들, 딸'의 세대와 맞부딪치듯, 그리스의 아버지 역시 딸과 맞닦뜨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세대 충돌 사이에 '경찰'이라는 방패가 있었던 것과 달리, 공권력이 무기력해지고, 그 공권력의 빈틈을 '파시스트'가 된 아버지가 판을 치고 다니는 사이, 아버지의 적을 사랑했던 딸 다프네는 아버지가 우려하듯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동지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시대의 또 한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죽음'을 먹고 마무리된다. 

이렇게 그리스 한 가정에 쏘아진 첫 번째 화살은 그 제목처럼 '부메랑'이 되어 아버지가 토해낸 적개심의 추진력으로 딸의 가슴을 향하고 만다. 그렇게 영화의 첫 번째는 아버지와 딸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그리스 인과 그리스가 배척하고 있는 시리아로 대표되는 이방인의 관계를 '비극적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스인과 이방인, 엇갈린 갑을의 사랑
이방인과의 금지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에서 '시리아'와 '그리스'의 관계에서 그리스가 갑이었다면, 이번엔 그 관계가 역전이 되어 그리스가 '을'인 처지의 사랑이다. 

우연히 바에서 만나 원나잇을 하게 된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와 그리스의 지오르고, 그리고 그리스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그리스 주부 마리아와 독일에서 온 은퇴한 학자 세바스찬. 엘리제와 지오르고의 접점이 된 건 지오르고의 우울증 약 로세프트 50mg이고, 마리아와 세바스찬의 교각이 된 건 토마토 한 팩이다. 한 알의 약과 한 팩의 토마토보다, 더 절묘하게 현재 그리스 중년과 노년들이 겪는 고통을 설명할 대상은 없다. 

감봉과 감원의 위협 속에 파산지경에 몰린 그리스 경제에서 빚에 허덕이며 가정 불화까지 겪는 지오르고가 버텨가는 방법은 우울증 약,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는 그런 지오르고를 '우유부단' 혹은 '자기 도피'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유럽의 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지오르고의 회사 상사로 등장하여 살인적인 감원을 실행해가야 하는 엘리제, 그런 엘리제와 동료,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부유하는 지오르고의 운명은, 결국 마지막 엘리제가 털어넣는 로세프트 한 말 말고는 달리 도망칠 곳이 없다. 



마리아는 어떤가? 허리가 안좋아서 도움을 청한 이방인에게 마리아는 마음껏 토마토 한 봉지조차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리스가 좋아 은퇴후 그리스를 찾은 세바스찬에게 그런 솔직한 마리아가 매력적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슈퍼마켓을 환타스틱한 공간으로 바꾸어가며 이어지는 그들의 두 번째 사랑. 그건 그저 늦바람이 아니라, 이제 가족을 위해 더는 할 일이 없어 좌절해 가는 주부 마리아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두 번째 인생의 기회는 뜻하지 않은 마리아네 가족의 비극사로 인해 물 건너 가고 만다. 

이방인이라는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면, 성폭행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성과의 플라토닉한 사랑, 원나잇이 무색하게 한없이 빠져든 40대의 늦지만 솔직한 사랑, 그리고 인생의 말미에 다시 한번 꿈꾸고 싶은 두 번 째 사랑. 하지만 그 사랑들이 그리스라는 사회 속에 깃들여지면, 그리고 그 대상들이 그리스의 이방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그 세 개의 파편적인 사랑이 '가족'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한 가족의 식탁에서 맞닦뜨려진다면. 정작 세 가지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을 모르지만, 관객들은 아는 그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렬하게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설명한다. 

가장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해낸 드라마, 에로스라는 신이 그의 화살을 통해 그리스 신화 속 수많은 분쟁과 비극의 도화선을 만들듯, 이 세 편의 사랑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가 그 지정학적 위치답게 바다를 통해, 그리고 육지와의 관계에서 처하고 있는 입지를 정확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아내 마리아는 저들에 대해 적개심을 쏟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고. 그렇다. 사랑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원제는 world apart, Enas Allos Kosmos.  Enas Allos Kosmos는 그리스어로 Ένας Άλλος Κόσμος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이다.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혀진 관계 그 이상의 그리스라는 국가가 담은 관계들.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도, 오히려 번역된 '나의 사랑, 그리스'가 더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영화다. 그리스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세대별 구성원들이 처한 오늘날의 이야기, 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대한 애증이 듬뿍 묻어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잃은 딸의 이름은 다프네, 다프네는 나무의 요정,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그녀는 월계수가 되었다. 나무의 요정이 사라진 숲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월계수는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나무, 그 월계수가 사라진 그리스는? 그렇게 영화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사랑이라는 가장  사적인 감정조차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보편적 정의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나의 사랑, 그리스>, 이 이방의 영화를 통해 역시나 oecd 꼴찌 국가인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는 건 어떨지. 
by meditator 2017. 4. 24. 16:42
  • 2017.04.25 12:19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meditator 2017.04.28 16:59 신고 EDIT/DEL

      어떤 영화였을까요 , 사랑 애기 한 편도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스 영화가 궁금해지네요 ^^

    • 2017.04.28 22:48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요즘 꽃중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배우 조성하씨는, ‘어렸을 때 내가 중년이 되면 그냥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꽃중년이라니, 뭔가 샤방한 느낌에, 참 멋있는 말인 거 같다’라며 꽃중년으로 불려지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의 타성에 젖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였던 ‘아저씨’가 어느 틈에 잘생긴 배우 ‘원빈’의 대명사가 되더니, 외모는 물론, 새로운 문화와 사고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멋진 중년 남성, 꽃중년이 이 봄의 대세다.

꽃중년의 속사정

예전과 달리 30~40대 여성들은 ‘애’를 낳아도, ‘애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때 이른 골다공증 예방에, 보톡스 등 시술을 넘어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단다. 남자라고 다르랴. 30~40대를 겨냥한 화장품 시장이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피부관리실 정도는 애교라는데....... 의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예전 보다 10년 정도 더 살게 되었지만, 노인만이 아니라, 노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이들까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해 역주행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역 전력질주, 그저 겉멋이라기엔 속사정이 만만치 않다.

의학의 발달(100세까지는 너끈하다는 과학적 주장이 있다)과 베이비 붐(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국 전쟁 이후 20여 년 간 출산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의 세대) 세대의 노화로 전 세계 연령층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경제 성장만큼 빠르게 고령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1960년 평균 수명 52.4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은 2006년 기준 77세로 불과 40여년 사이에 평균 25년 이상을 더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닦은 40대에서 은퇴를 하기까지의 어언 30여년 정도가(서드 에이지, Third Age) 하늘에서 뚝! 예전처럼 적당히 아저씨였다가 할아버지였다가 하며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교육이 완성되는 퍼스트 에이지First Age가 20대 중반까지, 사회생활 적응기 세컨드 세이지Second Age가 30대 중반, 70대 정도 진정한 은퇴 후 죽기까지 포스 에이지Forth Age가 10여 년간 이라면 서드 에이지 30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길다는 것, 즉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다.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60% 이상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다’라는 의욕적 응답을 내놓았다. 나이가 든다고 예전처럼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하다 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뒷방 늙은이라기엔 정정하게 보내는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년이 정년(停年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은 필수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현직에서 뛸 수 있는 ‘청춘’이라고 느끼며, ‘청춘’이어야 하며, 70세가 될 때까지 ‘청춘’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하물며 세 번째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그보다 젊은 4,50대들이야 어떻겠는가? 꽃중년이라는 말 그대로, 한참 만개한 꽃 그 자체다.

꽃중년의 도전

살아야 할 시간은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20세 전후로 노화가 시작되는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종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늙어가는 신체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 했던 근육 특집처럼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후드티나, 캔버스화 정도는 거리낌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센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모아 놓은 편집 매장이나 남성 잡지도 기웃거려 봐야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에스프레소 정도는 기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처럼 원산지 별 미각도 개발 중이다. 다행히도 꽃중년에게는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젊음은 없지만, 그 젊음을 커버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이 있다. 그 기반에 편승하여 불황도 불문, 자신에게 투자를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꽃중년이 되겠다고 뽀샤시한 외모와 탄탄한 허우대만 떠올려서는 속빈 강정이다. 진정한 꽃중년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의 주류의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할 수 있는 주체적 삶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눈을 부벼 가면서도 스마트 폰 활용에 골똘하고, 조작이 까다로운 최신 유행인 하이브리드 카메라를 사는데 주저치 않고 인문서 등의 책을 구입하는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돈을 쓰고 있는 게 요즘 4,50대다. 아저씨라기엔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지만, 오빠라기엔 연륜 있어 보이는 꽃중년들에게 기존의 ‘꼰대’는 저리가라, 전통적인 수직적 대인 관계에서 탈피 남녀노소 누구와도 ‘프렌드쉽’을 나눌 수 있는 있는 세련된 의식은 필수다.

하지만 이런 ‘깨인 마인드’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학창시절 이래로 줄곧 IQ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인생이 EQ(감성 지수) SQ(사회성 지수)를 갖춘 전천후 인간형으로 거듭나려면 다방면의 학습이나 문화 활동, 심지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늙을 틈이 없다. 게다가 그간 공부하랴, 한때는 민주화 운동하랴, 또 한 때는 돈 모으랴 억제했던 문화적 향수는 삶의 여유로움을 타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세시봉’이니, ‘7080콘서트’니, 심지어 ‘나가수’까지 꽃중년들이 즐기는 컨텐츠는 아이돌 음악조차 밀어낼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영화는 어떻고 ‘써니’에서 시작돼서 ‘댄싱퀸’까지 이들 세대의 공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다.

특히 386이니 486이라 통칭되는 우리나라의 꽃중년 세대들에게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이른바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그래서 여전히 이 시대의 정치나 여론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소명 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주인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저 의식의 짱짱함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문화적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샤방샤방한 꽃중년’으로 도전 중이다. 자고로 나뭇가지는 유연할수록 쉽게 꺾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시대 가장 낭창낭창한 젊음 꽃중년의 활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by meditator 2015. 8. 2. 16:45

일찍이 셰익스피어이래 새로운 서사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이 거실을 차지한 자그마한 네모난 화면이건, 암흑의 공간 아래 다중을 모아놓은 넓직한 화면이든,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의 맘을 재미난 이야기로 ‘좌지우지’해야 할 대중문화 사업에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면 비틀고 뒤집고, 하다못해 저 먼 우주에서부터 심해까지 뒤져가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절대 숙명이자 숙원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한 시대를 올곧이 다룬 시대극도, 정형화된 특정 분야를 다룬 장르물도 자신의 분야만을 고집하기는 더는 힘들어 진 형편이다. 그런 와중에, 2012년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계에서는 마치 서로 ‘통’하였다는 듯이 앞다퉈, ‘시대를 거슬러’ 사랑을 논하고, 역사를 논한 작품들이 우후죽순 등장하였다. sbs의 <옥탑방 왕세자>을 시작으로,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 mbc의 <닥터 진>, sbsㅇ의 <신의>까지 네 작품이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여 기존 드라마의 형식적 틀을 깨고, 신선한 시도로 시청자들을 찾아들었다.

1. ‘시간’이라는 딜레마, 혹은 아이템

원론적으로 시간의 변이에 대한 상상력의 출발은 언제나 ‘아인슈타인’을 걸고넘어질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통해, 빛 등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상대적이며, 가상의 조건에서 빛의 속도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이상적인 이론을 펼쳐졌고, 지금 여기에서, 그때 거기를 넘볼 수 있는, ‘노력’하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인간적 ‘로망’이 잉태되었고, ‘타임머신’, ‘평행우주론’ 등의 수많은 상상력의 산물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와 ‘그때 그곳’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에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흘러가는 그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간은 엄밀히 따지자면, 현대 물리학의 정의처럼, 시간과 공간의 조합, 즉, 시공간의 연합체로서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 즉, 지금 이 장소에서 우리가 존재하듯이, 그때 그 장소에서 존재하였다라는 ‘역사적’ 공간감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타임슬립, ‘시간을 건너뛴다’라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서, 그때 그곳까지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의사가 환자를 고치는 뻔한 서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곳과, 그때 그곳이 함께 배경으로 제공되어, 결국 공간의 확장을 통해 이야기가 풍부해 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역사극이나, 현대물이라는 제한된 장르를 뛰어넘어 이를 결합한 새로운 ‘퓨전’이라는 형식의 ‘싱싱함’을 전제로 하고 들어간다. 마치 게임의 ‘아이템’을 새로 하나 장착하듯이.

<옥탑방 왕세자>의 초반,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조선의 왕세자(박유천 분) 일행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져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 한글 등 이 시대의 문물을 제대로 모르고, 이젠 고궁이 되어버린 곳 앞에서 ‘문을 열라’고 외치며, 다짜고짜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내오너라’는 해프닝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새삼 ‘낯설게’ 함으로써 시간을 건너뛰었다는 설정 자체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닥터 진>과 <신의>에서는 반대로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자가 역사적 상황을 조우했을 때의 재미 역시 또 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자신(진혁; 송승헌 분)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알고 봤더니, 흥선 대원군(이하응 분)이었다던가,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 죽어간다고 안고 찾아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후에 고종 임금이 된다던가, 시청자들은 자신들 역시 상식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등장인물을 통해 조우함으로써 당혹감과 더불어, ‘패’을 하나 쥔 듯한 의기양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시간을 건너뛴다’는 것은 하나의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의 존재의 이동이 되는 것으로 이미 한 장소에서 형성된 기억(역사)향한 도전이 되는 것일 수도, 이미 완료된 존재의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일 수도 있다. 즉 이 경우, 시간은 시간을 건너 뛴 존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딜레마로 작용한다.

<닥터 진>과 <신의>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 간 주인공들은 모두 의사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자신이 이미 체득하고 있는 의학적 지식과 과거의 의학 사이에 ‘갭’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항생제’가 그것이다. <닥터 진>에서 진혁(송승헌 분)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 ‘항생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지만, 그가 살려놓은 사람이 결국은 다시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던가, 그의 의술에 따라 역사가 뒤바뀔 운명에 처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신의>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의 의술을 알고 역시 ‘항생제’를 만들어 내려했던 유은수(김희선 분)가 졸지에 ‘신의’가 되어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로 왔을 때는 이러한 딜레마는 등장인물의 인식의 딜레마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옥탑방 왕세자>에서 왕세자(박유천 분)는 자신이 현대로 날아 온 이유가 빈궁 살인 사건 때문이라 믿고, 현대에서 빈궁을 다시 만나 그녀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왕세자의 문제 해결 방식은, 그가 과거에서 겪은 문제가 왜곡되었던 것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인해, 오히려 현재의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여자 주인공(박하; 한지민 분)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했을 때, 가장 결정적인 딜레마는, ‘건너뛰기’는 했으되, 시간을 건너 뛴 공간에서 과거에 간 현대인이든, 현대로 넘어 온 과거인이든, 또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일행은 현대로 떨어진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박하(한지민 분)’네 옥탑방을 고수하지만, 정작 박하와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왕세자 일행도, 왕세자도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닥터 진>의 진혁 의원도 홍영래의 수술 과정에서 현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신의>의 유은수에게도 다시 돌아가야 할 날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 <인현왕후의 남자>처럼, 이 딜레마를 극복할 ‘부적’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거나, <신의>의 유은수처럼 중복 ‘타임슬립’을 행하기도 하지만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적 장애를 없앨 완벽한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이렇게 ‘타임슬립’이라는 드라마적 장치는 때로는 딜레마가 되어 주인공의 행로의 장애가 되고, 때로는 마치 게임에서 주어진 아이템처럼 주인공에게 유리한 무기가 되어, 구태의연한 서사를 확장하고 풍부하게 한다. 그렇다면 2012년의 네 드라마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타임슬립’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충분히 충족해 냈을까?

2. 시간을 달리는 사랑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 사이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보다 더 치명적인 사랑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두 남녀의 사랑이 아닐까? 그러기에, <옥탑방 왕세자>를 비롯해 <인현왕후의 남자>, <닥터 진>, <신의>까지 모두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을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닥터 진>의 경우, 일본 드라마 <jin-仁특>이 에도 막부 시대로 넘어간 의사의 인술을 그려내는데 치중한 반면, 한국의 <닥터 진>은 원작에 없는 여주인공의 약혼자 ‘김경탁’이란 인물을 만들어 결국 구한말 격동기에 휩쓸린 현대의 의사보다는 세 주인공의 삼각관계를 풀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신의>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던 모래시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달리,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킹메이커도, 진정한 개혁을 이룬 왕이란 담론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채 최영-유은수 커플의 사랑만이 남겨졌다.

by meditator 2015. 7. 22. 21:33

자우림 밴드의 EV1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기묘한 얘기 하나가 있었어. EV1이라 불리던 차의 얘기........아직은 달릴 수가 있었는데, 사막 한가운데로 버려진 빨간색 초록색 EV1’ 여기서 EV는 전기 자동차, Electric Vehicle의 약자다. 이 노래가 담긴 자우림의 음반 제목이 음로론인 것처럼, 2006년 만들어진 ‘전기 자동차를 누가 죽였나’라는 다큐는 톰 행크스, 멜 깁슨 등도 즐겨 탔고, 출퇴근용으로도 많이 이용되던 GM의 전기 자동차 EV1이 석유를 많이 팔고 싶은 석유 회사들의 음로에 의해 결국 사막에서 폐기되게 되었다는 음모설을 다루고 있다.

전기 자동차의 부활

언뜻 그럴 듯한 이 무시무시한(?) 음모론이 사실이었을까? 1873년 영국에서 최초 개발된 전기 자동차는 19세기말 충전 가능한 배터리가 개발되면서 1900년대 초만 해도 미국 및 유럽에서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로 팔렸었다. 하지만 언제나 음모론이라면 솔깃해지는 우리들 맘과 달리 가솔린 내연 기관이 발전하게 되면서 동일한 조건을 놓고 봤을 때 가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에너지 효율에 최대 속력은 50km에 불과, 설상가상으로 높은 유지비용과 긴 충전 시간을 가진 전기 자동차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가 오래오래 거침없이 달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그 주요 부분인 배터리가 가솔린 자동차의 내연 기관의 일부인 시동기로 흡수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고갈 위기에 있는 세계 석유의 1/3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그 연소 과정에서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그 양이 전 산업 분야 중 25%나 차지하는 등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전기 자동차가 나라 별 온실 가스 감축이 의무화 되는 이 시대의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2012년 현재 친환경 자동차 하면 누구나 다 전기 자동차를 연상할 정도가 되었고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자동차 회사들은 너도 나도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거나 생산 할 예정이다. 그래서 2020년 정도가 되면 전 세계적으로 300만대 정도가 되고, 이는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5.5%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조사)

우리나라 역시 수년 전에 현대의 ‘블루온’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기아의 ‘레이’가 2500 대 정도 관공서나 지자체에 납품되기 시작했으며 르노 삼성도 ‘SM3'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란다. 특히 경남 창원시, 울릉군, 경상북도, 제주도 등 지자체는 ‘탄소 없는 도시’의 상징으로 앞 다퉈 전기차를 구입하고 있다.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전기 자동차는 이제 최고 시속 130Km/h에 1회 충전에 135Km(기아 레이)에서 501km(테슬러)를 갈 수 있는 완전체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다. 주유량을 표시하던 계기판에는 전력 소비량과 배터리 잔여량이 표시되고 이산화탄소 줄임량과 다음 주유소 대신 다음 충전소 위치가 표시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정 생산에 관공서용에 불과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전기 자동차의 포르쉐를 꿈꾸는 테슬러 등은 대중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딜레마, 그리고 완충적 대안

환경이 최고의 화두가 되는 시대, 사람들은 100% 전기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를 꿈꾼다. 하지만 전기 자동차가 만들어진 이래 배터리의 성능과 충전 그리고 가격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전기 자동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추워도 온 나라가 전력 부족 비상이 걸리는 현재, 과연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먹여 살릴 전기는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에서 부터 또 그 값은 가정용 수준으로 할 건지, 산업용 수준으로 해야 할 지도 문제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또 어떻고. 게다가 진화된 핸드폰의 가장 큰 문제가 짧은 배터리인데 과연 전기 자동차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으며 그 충전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무엇보다 아직도 개발 ing인 전기자동차 그 자체가 정부의 도움 없이 개인이 사기엔 너무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래서 과도기적으로 등장한 자동차들이 있다. ‘기름 40L로 서울 부산 왕복, 요즘은 어쩌다 한번 넣는 느낌, 언젠가 모두 하이브리드를 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라며 이적, 원빈이 나와 ‘개념있게’ 타자라며 광고를 하는 ‘하이브리드(HEV, Hybrid Electric Vehicle)’ 자동차가 바로 그것이다.

하이브리드는 ‘두 개 이상의 요소가 융합되어 더 높은 성능을 가진’다는 의미로도 알 수 있듯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저속 구간에는 전기 배터리의 힘으로 움직이고 고속 구간에는 가솔린 엔지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이다. 당연히 전기와 석유를 동시에 쓰니까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정도만 되도 헐리우드 환경주의 스타들이 레드 카펫 앞에 상징적으로 하이브리드의 대표적 자동차인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친환경적’인 차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전기로 움직이는 구간을 늘이기 위해 고민한다. 그 결과,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쓰는 동안에는 전기로 움직이고, 전기가 떨어지면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차(PHEV, 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가 등장했다. 심지어 이 차의 배터리는 다시 충전이 가능하다. 당분간 세계의 자동차 시장은 마치 궁극적으로 100% 배터리에만 의지하는 전기자동차 BEV((Battery Electric Vehicle)를 지향하며 하이브리드 자동차 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PHEV와의 춘추 전국 시대를 과도기적으로 겪을 듯하다.

전기 자동차로 버전 업!

제레미 리프킨(저서 노동의 종말, 미 펜실베니아대 교수)교수는 ‘3차 산업 혁명’이란 책을 통해 에너지 소비 중심인 현 사회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절실하며 친환경적 기술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는 비싼 전기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내연 기관의 부피를 줄인 전기 자동차를 주차하기 쉬운 도시형 작은 모델로 개발, 심야 전기를 활용하거나 리스하는 방식의 배터리 보급에 가전 기기와 상호 교통할 수 있는 보다 IT, 통신, 전력 등의 핵심 기술이 응집된 보다 스마트한 영역까지 전기 자동차의 도입을 통해 변화된 세상 그것이 바로 새로운 환경 중심의 발전된 사회이다. 기름 탱크 대신 배터리를 단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고, 주유소 대신 스마트 폰과 나란히 자동차에 충전기를 꼽아 놓는 것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

by meditator 2015. 7. 22. 21:32

아저씨는 싫다! 꽃중년, 미중년이라 불러다오

요즘 꽃중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배우 조성하씨는, ‘어렸을 때 내가 중년이 되면 그냥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꽃중년이라니, 뭔가 샤방한 느낌에, 참 멋있는 말인 거 같다’라며 꽃중년으로 불려지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의 타성에 젖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였던 ‘아저씨’가 어느 틈에 잘생긴 배우 ‘원빈’의 대명사가 되더니, 외모는 물론, 새로운 문화와 사고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멋진 중년 남성, 꽃중년이 이 봄의 대세다.

꽃중년의 속사정

예전과 달리 30~40대 여성들은 ‘애’를 낳아도, ‘애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때 이른 골다공증 예방에, 보톡스 등 시술을 넘어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단다. 남자라고 다르랴. 30~40대를 겨냥한 화장품 시장이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피부관리실 정도는 애교라는데....... 의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예전 보다 10년 정도 더 살게 되었지만, 노인만이 아니라, 노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이들까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해 역주행을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역 전력질주, 그저 겉멋이라기엔 속사정이 만만치 않다.

의학의 발달(100세까지는 너끈하다는 과학적 주장이 있다)과 베이비 붐(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국 전쟁 이후 20여 년 간 출산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의 세대) 세대의 노화로 전 세계 연령층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경제 성장만큼 빠르게 고령화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1960년 평균 수명 52.4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은 2006년 기준 77세로 불과 40여년 사이에 평균 25년 이상을 더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닦은 40대에서 은퇴를 하기까지의 어언 30여년 정도가(서드 에이지, Third Age) 하늘에서 뚝! 예전처럼 적당히 아저씨였다가 할아버지였다가 하며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교육이 완성되는 퍼스트 에이지First Age가 20대 중반까지, 사회생활 적응기 세컨드 세이지Second Age가 30대 중반, 70대 정도 진정한 은퇴 후 죽기까지 포스 에이지Forth Age가 10여 년간 이라면 서드 에이지 30년은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길다는 것, 즉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다.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60% 이상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다’라는 의욕적 응답을 내놓았다. 나이가 든다고 예전처럼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하다 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뒷방 늙은이라기엔 정정하게 보내는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년이 정년(停年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은 필수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현직에서 뛸 수 있는 ‘청춘’이라고 느끼며, ‘청춘’이어야 하며, 70세가 될 때까지 ‘청춘’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하물며 세 번째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그보다 젊은 4,50대들이야 어떻겠는가? 꽃중년이라는 말 그대로, 한참 만개한 꽃 그 자체다.

꽃중년의 도전

살아야 할 시간은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20세 전후로 노화가 시작되는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종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늙어가는 신체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 했던 근육 특집처럼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후드티나, 캔버스화 정도는 거리낌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센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모아 놓은 편집 매장이나 남성 잡지도 기웃거려 봐야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에스프레소 정도는 기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처럼 원산지 별 미각도 개발 중이다. 다행히도 꽃중년에게는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젊음은 없지만, 그 젊음을 커버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이 있다. 그 기반에 편승하여 불황도 불문, 자신에게 투자를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꽃중년이 되겠다고 뽀샤시한 외모와 탄탄한 허우대만 떠올려서는 속빈 강정이다. 진정한 꽃중년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의 주류의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할 수 있는 주체적 삶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눈을 부벼 가면서도 스마트 폰 활용에 골똘하고, 조작이 까다로운 최신 유행인 하이브리드 카메라를 사는데 주저치 않고 인문서 등의 책을 구입하는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돈을 쓰고 있는 게 요즘 4,50대다. 아저씨라기엔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지만, 오빠라기엔 연륜 있어 보이는 꽃중년들에게 기존의 ‘꼰대’는 저리가라, 전통적인 수직적 대인 관계에서 탈피 남녀노소 누구와도 ‘프렌드쉽’을 나눌 수 있는 있는 세련된 의식은 필수다.

하지만 이런 ‘깨인 마인드’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학창시절 이래로 줄곧 IQ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인생이 EQ(감성 지수) SQ(사회성 지수)를 갖춘 전천후 인간형으로 거듭나려면 다방면의 학습이나 문화 활동, 심지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늙을 틈이 없다. 게다가 그간 공부하랴, 한때는 민주화 운동하랴, 또 한 때는 돈 모으랴 억제했던 문화적 향수는 삶의 여유로움을 타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세시봉’이니, ‘7080콘서트’니, 심지어 ‘나가수’까지 꽃중년들이 즐기는 컨텐츠는 아이돌 음악조차 밀어낼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영화는 어떻고 ‘써니’에서 시작돼서 ‘댄싱퀸’까지 이들 세대의 공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다.

특히 386이니 486이라 통칭되는 우리나라의 꽃중년 세대들에게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이른바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그래서 여전히 이 시대의 정치나 여론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소명 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주인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저 의식의 짱짱함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문화적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샤방샤방한 꽃중년’으로 도전 중이다. 자고로 나뭇가지는 유연할수록 쉽게 꺾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시대 가장 낭창낭창한 젊음 꽃중년의 활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by meditator 2015. 7. 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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