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조회수 12만 뷰로 인기를 끌었던 황영찬 그림 김칸비 글의 네이버 웹툰 <스위트 홈>이 이응복 연출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돌아왔다.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연출이 호흡을 맞춘 <태양의 후예>, <도깨비>와 <미스터 선샤인>을 애청했던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 <더 킹; 영원한 군주>에 이응복 연출이 합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로맨틱한 김은숙 작가의 필력에 아우라넘치는 세계를 구축했던 이응복 감독의 연출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런 이응복 연출이 김은숙 작가와의 협업 대신 선택한 것이 웹툰 <스위트 홈>이었다. 그에 앞서 이응복 감독이 연출했던 장르가 <비밀>이나 <연애의 발견> 등이었기 때문에 장르물인 <스위트홈>의 선택이 더더구나 의아했다. tv를 통해 만나리라 기대되었던 <스위트 홈>은 회당 제작비 30억의 대작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되었다. 도깨비에서 보았던 그 스케일 큰 연출은 그린홈을 배경으로 한 괴물에 사로잡힌 세계를 풀어내는데 손색이 없다. 신선한 등장인물들의 연기와 호흡 역시 흡인력있게 극을 이끈다.
괴물이 나타났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래된 아파트로부터 시작된다. 고등학생 현수는 홀로 그린홈 아파트로 이사 들어온다. '히키코모리'였던 그는 그를 제외한 전가족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재산마저 빼앗긴 채 '죽음'을 위해 이 아파트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쉽지 않았다. 곧 죽을 거라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허기를 때우려 주문했던 '라면'박스가 송두리채 뜯겨나가버린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간 현수가 발견한 건 핏자국, 그리고 그 끝에 애지중지하던 옆집 고양이의 머리통이 나뒹군다. 그리고 그 머리통마저 끌어당기는 '괴물'의 손. 조금 후 현수의 집 앞에 찾아와 도와달라던 옆집 여자는 괴물로 변하여 그를 탐한다.
그렇게 그린홈에 사는 이들이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린홈만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쇠사슬로 잠겨진 그림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려던 거주민들 앞에 영화 <미스트>의 마지막 장면 속 괴물들처럼 긴 촉수를 가진 괴물이 그들을 향해 팔을, 촉수를 날름거린다. 그래도 믿을 건 '정부'밖에 없다며 tv 앞에 모여든 이들 앞에 '정부'를 믿으라던 대통령마저 코피를 줄줄 흘리더니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 끌려나간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누구라도 괴물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함께 살아가던 공동체의 일원들이 '변'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상황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부두교에서 유래했던 좀비가 서양 영화를 넘어 우리 영화와 드라마에서 넘쳐난다. <월드 워> 속 거침없이 떼로 뭉쳐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의 등장에 대해 눈밝은 비평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상징한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의 모습이라 진단했다.
흥행작이었던 <부산행>에서 떼를 이뤄 부산행 열차를 탈취하려 했던 좀비들, 대부분 그 근원을 '바이러스'에서 찾는다. 전세계를 휩슨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한 인간 탐욕의 역사가 동물을 숙주로 하던 바이러스의 변종을 결국 인간 사회를 파멸로 이끌어 낸다는 '묵시론적'인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바이러스' 유래설의 크리처 장르물( 은 '오염'이나 '전염'을 통해 퍼져나간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염되는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양면적 속성을 가진다. 그렇게 무작위적인 바이러스의 전염은 오늘날 대중사회가 가진 맹목적인 속성을 고스란히 내포한다.
욕망, 괴물을 낳다 그런데 스위트 홈 속 괴물들은 그간 좀비 콘텐츠가 가졌던 맹목성 탈목적성을 비껴선다. 드라마는 이미 초반 괴물을 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임을 '선포'한다.
현수의 옆 집에 살던 여성, 고양이에게 자신도 먹지 못하는 비싼 먹이를 준다며 챙기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던 그녀의 어긋난 욕망은 그녀가 에지중지하던 고양이마저 안중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괴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을 극대화시킨 모습으로 나타난다. 손이, 혀가, 덩치가 저마다의 욕망으로 팽창한다.
얼마전 상영된 <#살아있다>처럼 대부분 크리쳐 장르물 속 주인공들은 그렇게 괴물로 변하는 자신을 제외한 타자들을 상대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스위트홈>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자신의 집을 두드리던 옆집 여성 괴물을 상대하여, 그리고 복도를 활보하는 괴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리 위하여 피하던 주인공 현수였다. 그런데 그러던 현수가 코피를 쏟는다. 그리고 '혼절'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코피를 쏟고 쓰러지고, 그리고 눈동자 전체가 검은 색으로 변하며 현수 안의 욕망이 뛰쳐나오려 한다. 그렇게 <스위트 홈>은 주인공 자신을 '괴물'의 '골든 타임'에 던져 넣으며 '욕망'을 묻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의 시대이다. 그린홈을 피해 나가려던 사람들 눈에 거리의 모든 이들이 저마다 개성을 가진 괴물이 되어 활보하듯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을 살아가는 과정이라 여긴다. 그런데 바로 그 삶의 동인이라는 '욕망'이 '괴물'을 만든다니! <스위트 홈> 속 괴물은 결국 우리의 삶을 '투사'한다. 우리의 삶이 투사한 괴물, 기존의 탈목적적인 좀비가 반성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삶에 대해 한 발 더 들어가 묻는다.
현수는 삶을 포기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사회로 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었다. 그런데 그런 현수가 가족과 '불화'했다. 그런데 그 '죽어버려'라던 가족이 정말 죽어버렸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친지들은 현수가 병상에 누워있던 사이 그의 집 재산을 꿀꺽했다. 그는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가족을 잃은, 그리고 가족의 것을 잃은,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에 무방비했던 자신에 대한 깊은 분노가 '괴물이 된 그의 속에서 튀어 오른다.
그런데, 아직 현수는 괴물이 되지 않았다. 그가 구하려 했던 아래층 아이들을 향한 '선의'가 그의 괴물화를 막는다. 아기 엄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백질 덩어리 같은 덩치의 괴물이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었을 때 온몸으로 막아선 건 아기 엄마였다. 그리고 괴물에 의해 바닥에 패대기쳐졌던 그녀가 괴물이 되려 한다. 지난 봄 아기를 잃었다고 한다. 봄 볕이 좋아서 산책을 나갔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가파른 길을 달려내려간 유모차는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래서 빈 유모차를 아이처럼 끌고 다니던 그녀는 결국 그 상실의 욕망을 못이겨 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 눈 앞에서 다시 지켜야 할 아이들이 그녀에게 '괴물'이 되는 골든 타임을 유보한다.
드라마는 저마다의 짖눌려왔던 욕망이 괴물을 탄생시키지만 모두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욕망이 에스컬레이션하여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요'라며 아이들을 구하려는 '선의'에 자신을 맡긴 현수와 아이엄마의 괴물화는 유보된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건 괴물만이 아니다. 괴물이 아직 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괴물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 심지어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난 사람까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괴물과 괴물이 되지 않는 이들, 그들의 차이는 종이 한 장처럼 얇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 가장 짙은 어둠도 흐린 빛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라며 시작한다. 우애령 작가는 말한다. 제비 다리를 분지른 것도, 고쳐준 것도 인간이라고.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친 제비 다리를 보고 그저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그 '다른이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는 마음'의 측면에 드라마는 '흐린 빛'의 희망을 건다. 그 흐리지만 괴물이 되는 것조차 막아내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풀어내기 위해 드라마는 고심한다. 괴물과 인간 사이에서 시청자들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왜 이응복 연출이 인기 멜로물을 마다하고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매주 토일 방영되는 <경이로운 소문>은 ocn 장르물의 부진을 말끔히 씼어내며 7% 대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이 이 드라마를 늦은 시간 시청자들로 하여금 '닥본사'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이미 작품이 되기 전에 입소문이 자자했던 원작 웹툰 덕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소문이 조병규를 비롯하여 가모탁 유준상, 도하나 김세정, 추매옥 염혜란에서부터 심지어 악역 지청신 이홍내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찰떡같은 캐스팅에 원작을 잊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들이 인기의 견인차가 되었다.
'겨우 고삘이야?' 라는 가무탁의 탐탁치 않은 첫 마디와 함께 악귀를 잡는 카운터 신참으로 등장했던 소문이, 고등학생이었던 소문이의 '신참례'는 그가 다니던 학교의 왕따 사건으로 화끈하게 드라마의 초반을 이끌며 '카운터'들의 능력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소문이의 놀라운 능력으로 평정한 학교의 일진들, 그리고 그런 소문이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나타나 그의 재력으로 모두들 입다물게 만든 최장물(안석환 분)의 활약으로 학교에서의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카운터로서 활동을 이어가게 되며 그동안 베일에 가리워졌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과연 왜 이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카운터'가 되었을까? 그리고 왜 뇌사 상태도 아니었던 소문이는 '카운터'가 되었을까? '우연'이었던 네 카운터들의 관계는 회차를 거듭하며 '운명적 만남'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무탁과 소문, 그리고 도하나의 인연 우선 그 시작은 기억을 잃은 가모탁이다. 전직 형사였던 그는 기억을 잃었다. 온몸이 난자된 채 건물에서 떨어진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적'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그때 그의 앞에 소문이 나타났다. 처음 본 소문이가 어쩐지 낯이 익어 자신을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던 가무탁, 그런데 그가 뒤늦게 되찾은 핸드폰의 마지막 발신자가 바로 소문이의 아빠 소권이었다. 그리고 소문이의 아빠 역시 형사였다.
가무탁의 사라진 기억을 헤집어 가는 과정, 그리고 소문이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공통 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문은 자기 때문에 죽은 줄 알았던 부모님이 알고보니 '사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운해하는 것도 잠시 도하나의 도움으로 찾아든 기억에서 카운터들이 쫓는 3단계 악귀 지청신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사고 현장에서 죽은 소문이의 부모님은 악귀 지청신에게 '흡수'되었다. 악귀를 쫓는 카운터로서 사람 세상의 일을 간여해서는 안되는 '룰'로 고민한 것도 잠시 '지청신'의 등장은 카운터들로 하여금 보다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뿐만이 아니다. 가무탁과 소문이 부모님을 죽인 자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거악'의 사슬이 드러나며 거기서 도하나의 '해원'인 이른바 '삼촌'이 등장한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줄을 죈 다음 다시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하루라도 못갚으면 회사를 집어 삼키는 방식으로 도하나 아버지의 회사는 '삼촌'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삼촌'은 저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무탁과 소문, 그리고 도하나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중진시의 구조적인 '악'의 희생자들로 '카운터'가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죽어갔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그 중진시 '악'은 누구에게로 수렴될까? 시작은 가무탁과 소문이의 아버지 소권 형사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죽기 전까지 김영님이란 여성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예전의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김정영(최윤영 분)과 김영님의 집에 가서 다시 사건의 흔적을 찾던 가무탁은 그곳에서 김영님의 피와 ab형 남성의 혈흔을 발견한다.
그런데 김영님은 사라지기 전까지 중진시 시장이 된 신명휘(최광일 분)의 운동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김영님 사건을 수사하던 가무탁과 소문의 아버지 소권은 각각 신명휘의 심복인 태신 그룹의 노항규 동생인 노창규와 또 다른 심복이었던 배상필의 수하였던 지청신에 의해 '살해'되었다. 자신을,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뿌리를 캐낸 가무탁과 소문은 그 곳에서 중진시의 시장 신명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해꼬지하기 위해 찾아온 노창규를 통해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저수지'라는 것과, 그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있어 거침이 없는 것이 바로 그저 구청장이었던 신명휘가 승승장구 시장을 거쳐 '대권'까지 바라보는 '야망'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신명휘는 드라마 초반 소문과 소문의 친구들을 괴롭히던 신혁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융의 부름을 받아 '악귀'를 쫓는 카운터들의 '무용담'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이제 카운터들의 '사연'을 풀어내며 중진시라는 '구조적이고도 거침없는 욕망', 시장 신명휘와 그의 하수인들의 '복마전'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한 사람의 권력을 향한 욕망, 그리고 거리에 파리처럼 꾀어든 전직 조폭과 마약상, 그들은 그럴듯한 대중을 향한 사탕발림과 정책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그 뒤에서는 보다 높은 권력을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욕망을 향한 에스컬레이션에 소문의 아버지, 가무탁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권'마저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상황, 거기서 카운터로 돌아온 가무탁과 소문에 의해 그들이 꽁꽁 숨기려했던 '죄악'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거악' 신명휘와 그 하수인들, 그리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카운터'들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나이가 들어 제일 두려운 건 '치매'에 걸릴까 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노인들은 '자신'을 잃어가는 치매를 제일 걱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노인 한 사람의 치매로 온 가족이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이한 고통이기에 더욱 그에 대한 하중이 커진다. 바로 그 '치매'에 대한 화두를 12월 5일 방영한 드라마 스페셜 2020 <나들이>가 다루고 있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 소파에서 잠을 깬 영란 씨, 그녀의 눈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듯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집안의 모습과 벽에 걸린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영란 씨는 현실의 시간에 한 발 들어선다.
잘 손질된 화단에 장독대, 마당까지 너른 번듯한 이층집, 그 안을 채운 시간의 더깨가 앉은 가재도구들, 그곳에 영란 씨라는 이름를 가진 노인이 홀로 산다. 한때는 음식 장사로 성공을 거두어 입지전적 인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던 영란 씨지만 이제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조차 내려서는 것이 버거운 노년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 장독 두껑을 챙겨 덮으며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청천벽력같은 '치매'라는 판정이다. '내가 왜?'라며 벌컥 화를 내는 영란씨, 정신줄 놓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그녀에게 치매라는 판정은 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판정과 함께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없던 시절', 그녀의 어머니도 '치매'였다. 밥그릇을 빼앗는 그녀를 문밖까지 쫓아와 '왜 밥도 못먹게 하냐'며 빗자루로 모질게 패던 어머니, 내림이듯 그 어머니의 병이 이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벅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치매'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처럼 '치매'라는 판정에 영란 씨는 자신이 보았던 그 '못볼 꼴'을 이제 당신의 자식들에게 안겨야 한다는 게 서럽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된 '손숙' 배우가 자신을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뇌'하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제일 겁날까. 우선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병이 자기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안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앞설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게 되는 '인지상정', 드라마는 그 여전한 모성을 담는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중
영란 씨와 순천 씨의 나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영란 씨는 나들이를 떠난다. 그녀의 나들이를 동행한 건, 아니 그녀를 모시고 떠난 건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잘난 자식들이 아니다. 영란 씨에게 어수룩하게 포도 송이를 빼앗겼던 트럭 행상 방순철(정웅인 분)이다. 한때는 출판사도 했었다는 그는 과일전을 펴놓고도 아이들이 맛보기 과일을 퍼먹던 말던 그 옆에 앉아 시집을 펼쳐보는 장사에는 젬병인 장사꾼이다.
그런 그이기에 물건을 떼기 위해 가는 원주 행에 함께 하고 싶다는 영란 씨의 떼쓰는 듯한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함께 떠난 여행, 물건을 떼는 농원에서 장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란 씨 덕에 바가지는 쓰지 않았지만 거래처를 놓치게 된 순철 씨는 그저 씁쓸한 미소 한번으로 삼키고 영란 씨가 원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나들이는 원주로 고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순철 씨라고 사정이 없을까. 사람좋은 만큼 세상살이 자기 것을 야무지게 챙길 잇속이 없던 순철 씨는 가족마저 잃은 채 팔자에 없는 트럭 행상 중이다. 늦은 밤 과일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집 앞에 놔두고 떠나는 그에게 딸은 '돈'이 필요하다며 악다구니를 한다. 빚쟁이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기 위해 이혼 도장을 찍어주는 게 다였던 순철 씨에게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대학을 다니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아버지 노릇을 요구한다.
드라마는 나이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을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엮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은 여의치않다. 자식을 위해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손이 곱도록 장사를 했지만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영란 씨의 자식들은 '만족'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런 자식들에게 영란 씨는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순철 씨 역시 뭐든 다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자식들은 다르지 않다. 가진 걸 다 퍼준 영란 씨 자식들이나, 가진 게 없는 순철 씨 자식이나 여전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요구'할 뿐이다.
그 '요구'를 채워주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일까? 드라마는 가진 걸 다 퍼부어 줬는데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늙은 엄마 앞에서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영란 씨의 자식들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묻는다. '배금주의' 사회의 이치를 따라 살아온 영란 씨의 의지가지할 데 없는 처지를 통해 반문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쏟아부으려 한다. 그 마지막 선택이 영란 씨는 더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치매인 엄마를 '의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순철 씨는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영란 씨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두 사람의 선택은 원하던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대신 각자가 홀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 그간 두 사람의 나들이가 헛되지 않았던 탓이다. 치매에 걸린 노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 그게 답이 있을까. 그래도 드라마는 답을 구한다. 드라마의 엔딩, 여전히 두 사람은 다시 '나들이'를 떠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황지우의 시처럼, 그거면 되지 않을까. 너른 세상 잠시 잠깐이라도 서로가 '벗'이 되어 떠날 수 있는 시간, 그거라도 있다면 삶의 족쇄는 조금은 헐거워질 것이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옛 이야기 속 여우 누이는 '누이'로 둔갑한 여우가 가축들부터 시작하여, 부모님, 형제들까지 잡아먹어가며 한 집안을 '거덜'내어 버리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는 여름이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었지만 '서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는 사람의 간을 먹고 사람으로 되고자 한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된 여우를 의심한 남편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을 원망하며 사라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구미호 전설이 환타지 멜로 버전으로 오늘에 되살려졌다.
'전설' 속 이야기를 현대적 버전으로 되살리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드라큐라도, 늑대인간도 영화로 부터 시작하여 '미드' 속 주인공으로 맹활약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동훈 감독에 의해 일찌기 족자에 봉인되었던 전우치가 서울 시내를 활보한 적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영화<신과 함께>,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하여 다작 중이다. 그런 면에서 구미호의 현대적 버전 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2월 3일 종영한 <구미호뎐>은 구미호 전설과 함께 우리의 전설 속 다양한 콘텐츠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해석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전설 속 구미호들은 일관되게 '여자'였다. 여우라는 동물이 가지는 그간의 고정 관념에 힘입어 늘 이야기 속 여우들은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대변했다. 그런데 새롭게 찾아온 구미호는 그런 전설 속 고정 관념을 뒤집는다. 산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르시즘'에 빠질 만큼의 '미모'를 가진 남성이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여우는 서울 한 복판에 빨간 우산을 들고 활보하지만 한때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전설 속에서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빼내 온 것이 아니라 구미호를 중심으로 전설 속 세계관을 오늘에 되살려 냈다는 것이다.
오늘에 되살려 진 전설 속 세계관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 구미호가 주인공이지만, <구미호뎐>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삼도천이다. 즉 죽은 후 저승에 이르는 큰 강, 서양 신화의 아케론과 같은 영역에서 그곳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누이 탈의파가 이제는 '내세 출입국 관리소'가 되어 그곳을 관장하며 드라마 속 삶과 죽음의 운명을 총괄한다. 삶과 죽음의 운명을 가르는 현세와 내세관이 드라마의 세계관으로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준다.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지만 구미호 이연(이동욱 분)은 전설 속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채 '인간' 여성(조보아 분)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의 훼방꾼, 그리고 백두대간을 다스리는 산신의 자리를 욕심낸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여우는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 한다는 전설 속 '인연의 고리'가 아킬레스 건이 되어 사랑하는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과 여우 사이에 태어난 구미호의 의붓동생 이랑(김범 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무기의 측근과의 얽힌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은혜'라는 전통적 보은의 사고를 환타지 멜로 <구미호뎐>은 양날의 칼이 되는 극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구미호는 산신의 자리를 박차고 삼도천의 '무사'가 되어 600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사랑하는 이의 '환생'을 기다린다. 구미호가 '환생'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승을 향해 가던 여인에게 자신의 여우 구슬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우 구슬을 가진 이를 찾으며 이승을 어지르는 갖은 악귀를 '처단'하는 전사 구미호가 된 것이다.
전사가 된 구미호 곁에는 또한 전설 속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해 준 이연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우렁각시와 토종 여우, 그리고 애증의 이복동생 이랑과 그가 구해준 러시아 여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600년의 세월 동안 사랑으로 얽힌 환생한 인간 남지아와 그 맞은 편에 그만큼의 세월 동안 구미호의 자리를 넘본 이무기가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등장한다. 그외에 에피소드로 민속촌에서 사또 코스프레를 하는 또 다른 산신 반달곰, 여우고개의 지박령 외눈박이 장승에, 여우구슬을 탐내는 저승지왕까지 매회 신선한 전설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밀고 당긴다. 구미호를 중심으로 이 캐릭터들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미호뎐>은 흥미로웠다.
인연의 결자해지 건물주가 된 구미호 이연, 다큐 피디로 그의 앞에 나타난 환생한 연인 남지아, 방송사 사장으로 포진한 이무기의 측근, 그리고 인턴으로 등장한 이무기에 수의사 토종 여우 등등 각각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고 드라마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지만 결국 이들을 이끄는 것은 '인연'이자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사랑'이다.
매년 <전설의 고향>이 리바이벌 되고, 그 중에서도 구미호라는 캐릭터가 스터디 셀러가 되는 이유는 그 비극적 운명성에 있다. 인간의 간을 탐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고 싶은 아이러니한 운명은 고전 비극의 요소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구미호뎐> 역시 그러한 비극적 운명을 그대로 가져온다. 사랑하지만 600년 전 결국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인연을 저버리지 못한 채 구미호가 그녀의 환생을 기다린 이유는 바로 자신을 위해 죽어간 그녀에 대한 '보은'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전설이 가졌던 비극적 운명성은 살리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인연으로 얽힌다. 구미호와 600년의 연인 남지아가 그렇듯, 드라마 초반 '악역'으로 매번 구미호의 발목을 잡았던 이랑의 '원한'은 알고보니 600년 전 형에게 버림받았다는 '악연'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이다. 또 다른 악의 축 이무기의 사연도 알고보면 안타깝다. 흉측하게 태어난 몰골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틈에 버려진 아기가 이무기가 되어 용이 되어 승천하고 산신이 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원한'이 시공을 거슬러 오늘의 '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남지아에 이무기가 연연하는 건 그녀가 600년 전 그에게 제물로 받쳐진 여인이기 때문이다.
매번 우렁 각시의 식당에 와서 알짱거리던 탐사 보도 팀 팀장이 알고보니 이무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신랑이라던가, 공원에서 자꾸만 이랑의 뒤를 따라오던 아이가 알고보니 전생에 이랑이 아끼던 검둥개였다는 식으로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은 전생과 이생에 이어진 다하지 못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그 인연에 순응하는 대신 저마다 그 주어진 숙명을 뛰어넘고자 애쓴다. '환생'을 통해 다시 만났지만 사랑하는 이의 몸에 따라온 이무기로 인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는 '희생'은 숙명을 거스른 전설의 재해석이 된다. 600년 전과 달리 이연이 몸을 던져 남지아를 구하고 삼도천에 뛰어들었지만 그가 남긴 여우 구슬이 이연을 환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남의 목숨이었던 꽈리로 목숨을 연명하던 이랑이 형 이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함으로써 사랑받는 소년으로 '환생'한 것처럼 드라마는 인연의 재해석을 통해 '해피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설을 비껴간 듯한 재해석은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세계관에 따르기에 환타지 멜로는 '모던'했자만 전체적인 정서는 여전히 고전적 프레임을 유지한다.
앞서 <도깨비>에 이어 <구미호뎐>까지 고전적 인물의 현대적 버전으로 안성맞춤인 배우 이동욱의 적절한 캐스팅에, 중 2병같은 형님앓이를 하는 반항적인 이랑의 김범, 그리고 젊은이의 모습이지만 그 서늘함은 딱 600년을 거스른 이무기에 어울렸던 이태리에, 삼도천의 수장에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었던 김정난 등 적절한 캐릭터 캐스팅에 전설을 환타지적으로 잘 버무려 낸 극본, 그 극본을 공들여 환타지로 되살려 낸 강신효 연출까지 모처럼 깔끔한 환타지 멜로가 반가웠다.
재밌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웹툰 <경이로운 소문>이 <써치>에 이어 ocn 토일 드라마로 시작되었다. <뱀파이어 검사 시즌 2의> 유선동 피디와 <결혼못하는 남자>의 여지나 작가가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를 잡는 생활밀착형 '카운터'들의 영웅적 활약상을 다룬다.
인기있는 웹툰의 드라마나 영화화는 통과 의례처럼 되고 있는 시절, 웹툰을 즐겨봤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우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웹툰 속 캐릭터가 얼마나 드라마 속 인물로 잘 구현되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29일에 이어, 30일 1,2회를 선보인 <경이로운 소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제작 발표회에서 유선동 피디의 말처럼 원작의 캐릭터와 '찰떡'인 배우들의 면면이다.
국숫집 하는 악귀 사냥꾼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국숫집, 점심 시간 단 3시간 동안만 하는 국숫집에 점심 시간이면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그런 손님들 사정은 아랑곳없이 서빙을 하던 하나(김세정 분)이 눈짓을 하자 주방에서 일하던 추매옥(염혜란 분)과 가무탁(유준상 분)이 하던 일을 내려놓은 채 나선다.
우선 시선을 끄는 건 앞서 소문(조병규 분)이 아버지의 선배 형사였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던, 하지만 이젠 '건달' 포스 만빵으로 주방에서 튕기듯 칼날을 부러뜨리는 괴력의 소유자가 된 무탁 역의 유준상이다. 건들거리는 몸짓, 눈알을 부라리지만 결코 악랄해 보이지 않는 묘한 선한 분위기, 그리고 소문이의 강펀치에 뒤돌아 쩔쩔 매다가도 의연한 척 파이팅을 해보이는 코믹한 고지식함을 유준상만큼 제대로 표현해낼 배우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때는 형사였다 카운터가 된 무탁 역은 그저 유준상의 등장만으로도 예측 가능해진다.
악랄했던 <도깨비>의 이모였다가, 돈밖에 모른다고 자식에게도 욕을 먹지만 알고보면 이를 악물고 약쟁이 자식을 감옥에 보내야만 했던 표리부동(?)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엄마인가 하면, <라이프>에서 척하면 척하던 전문적인 비서 등등 그간 염혜란 배우가 해온 역할로 보면 '전천후'라는 말이 딱이다.
그런 염혜란 배우가 이번에는 '히어로'가 되었다. 평상시에는 넉넉한 국숫집 주방장이었다가 어디선가 악귀가 나타났다는 소식만 들리면 빨간 츄리닝 모자 뒤집어 쓰고 '열나게' 달려 악귀와 육박전을 마다않는 전천후 히어로다. 거기다 '치유'의 능력까지 지녀 7년 동안 걷지 못했던 소문이의 다리까지 고쳐주고, 카운터가 될까말까하는 소문이를 구슬르는 역할까지다. 넉넉함과 푸근함, 그리고 단호함과 카리스마까지 하지만 염혜란 배우의 내공 앞에 그런 강온을 오가는 추매옥은 그저 또 다른 맞춤 옷일 뿐이다.
그렇게 염혜란 배우와 유준상 배우가 저마다의 장기를 가지고 추매옥과 가무탁으로 연기의 중심을 잡아준 가운데, 이제 다시 한번 배우로 출사표를 낸 김세정이 그간 트레이트 마크였던 애교어린 웃음기를 쫙 빼고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가진 도하나로 등장한다. 많은 대사는 없지만 그저 임무라기엔 어딘가 비밀스런, 그리고 사이코매트리 능력 때무일까 극도로 자기 보호적인 도하나로 거듭난 배우 김세정이 이물감없이 드라마에 어우러진다.
그리고 <스카이 캐슬>의 차기준은 기억에 남겠지만, 그 차기준이 <란제리 소녀 시대>의 그 어리숙한 오빠였다고 하면 새삼 다시 보게 되는 배우, 25살에 보조 출연부터 시작하여 작품 수만 70여 편이 되는 조병규 배우가 <경이로운 소문>의 소문이로 돌아왔다.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절고, 부모님이 그때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치매 걸린 할머니와 사는 아이, 그런 소문이가 단 2회 만에 자신의 몸에 들이닥친 융인 위겐(문숙 분)으로 인해 카운터로 거듭나게 되는 상황을 조병규 배우가 설득해 낸다.
이제 2화까지 방영된 <경이로운 소문> 하늘과 땅이 연결된 세계 융이란 곳이 등장한다. 그리고 , 그곳의 지시를 받아 죽음의 기로에서 카운터가 된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이 악귀가 씌인 사람들을 파쿠르르(야마카시)처럼 뛰고 나르고 벽을 타오르며 추격전을 벌이고, '액션'을 탑재 퇴마사의 역할을 하는 설정은 기상천외하지만 그만큼 '설득력'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융의 등장을 알리는 오로라 색 빛은 유치해 보일 수 있고, 가끔씩 스턴트 맨인 지 분간되는 액션 씬은 어설플 수도 있다. 결국 웹툰에서는 흥미롭지만 드라마라는 콘텐츠가 설득해 내기 난감한 설정을 <경이로운 소문>은 주요 캐릭터의 탄탄한 캐스팅으로 배팅한다. 덕분에 비록 원작의 캐릭터와 얼굴은 다르지만 원작 속 캐릭터의 면면을 잘 살린 연기들이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조차 기상천외한 악귀 카운터들의 활약상에 이물감없이 빠져들고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된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추천사가 장류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더해졌다. 그리고 그런 추천사가 틀리지 않게 <일의 기쁨과 슬픔>은 출간과 동시에 동시대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미 앞서 2012년 알랭 드 보통는 동일한 제목의 <일의 기쁨과 슬픔>, 부제 우리는 무엇때문에 일을 하는가를 통해 '일' 그 자체의 현장을 글로 되살려내며,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엄숙한 '노동'을 통해 '먹고사니즘'으로 낮잡아 치부되던 '일' 그 자체의 존엄성을 살려낸 바 있다. 장류진 작가는 바로 그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추구했던 '노동의 현장'을 그녀가 소설을 쓰며 몸담았던 20세기 한국 사회로 옮겨온다. 책의 소개글에서 말하든 '눈물짓되 침참하지 않고, 힘에 부치지만 자기 나름의 지혜로 잘 버텨나가고자 하는' 이 시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시대인들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화제작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11월 21일 드라마 스페셜 4번째 작품으로 찾아왔다.
판교에서 밥벌이란? 우리 사회에서 '판교'란? 첨단 it기업과 스타트 업 기업들이 '군집'하는 판교는 마치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우리 사회 첨단의 기업과 기업 문화를 상징한다. 드라마는 바로 그 '판교'속 직장인의 모습을 그려내며 문을 연다.
경쾌하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으로 하루를 여는 안나(고원희 분)와 제니퍼(김보정 분), 이들은 '우동은 팔지 않습니다'란 문구를 붙인 문을 열고 자신들의 직장인 '우동 마켓'으로 들어선다. 그들을 맞이한 건 아침부터 탁구를 치던 우동마켓의 ceo 데비잇(오민석 분)이다. 탁구도 잠시 다함께 모여 실리콘 밸리의 합리적이며 효과적인 미팅 방식을 본딴 스크럼을 짜자고 하는 데이빗, 그런데 어쩐지 모여드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드라마는 주인공 안나의 독백을 통해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한 스타트업이어 보이지만 사실은 중고 직거래 사이트인 우동 마켓이라는 직장을 통해 수평적인 '첨단'의 직장 문화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 갑을 관계와 얼키고 설킨 인간 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판교'의 한 직장을 조명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수평적 스타트업이지만, 스사트업 전체 중 단 3%만이 생존하는 게 현실인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고급 외제차 카다로그를 손에 쥔 채 소수의 개발자와 기획자와 함께 유저 한 사람에 일희일비하는 우동마켓의 생생한 직장 내 생태가 드라마의 한 축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본명이 안나라 본의 아니게 안나가 되어버린 기획자 안나를 중심으로 갑이 아닌 척하지만 '갑'인 ceo 대식과 매번 기획자와 개발자의 업무적 성격으로 인해 충돌을 빚게 되는 사회성 부족한 외골수 개발자 케빈과의 갈등이 그 중심에 있다.
안나는 자신의 촌스러운 본명을 숨기고자 외국식 예명을 쓰고 실리콘 밸리 방식을 흉내내는 ceo 데이빗을 비웃지만, 실수로 올린 기획자 모집 공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케빈과의 직무적 갈등에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양가적 존재감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우동 마켓의 헤비 유저 '거북이 알'에 대해 알아보라는 ceo 대식의 '명령 아닌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커피 머쉰 구입을 핑계로 드라마의 또 한 축이 되는 거북이 알, 이지혜(강말금 분)를 만나 그녀가 중고 거래 사이트의 '헤비 유저'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전해 듣게 된다.
카드 회사 차장이 거북이 알이 된 사연은? 이지혜는 거대 기업인 유비 카드의 현직 15년차 차장, 그녀는 한때 공연 기획팀을 이끌던 책임자였다. 유비 카드의 회장이었던 조운범 회장이 직접 지시한 명망있는 아티스트의 기획을 실행하던 중, 회장의 '복심'을 무시한 채 절차에 따라 일을 처지하다 밉보여 카드 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제 월급조차 1년 동안 '포인트'로 받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 '포인트'를 현금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동 마켓의 헤비 유저가 된 사연을 이지혜는 안나에게 허심탄회하게 전한다.
'판교'라는 첨단 산업의 공간, 하지만 그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겪는 건 수평적인 기업 문화라는 그럴 듯한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여전히 '갑을' 관계가 현존하는 상황이다.
스크럼을 짜자고 해놓고서는 ceo의 일방적인 아침 조회라던가, 해비 유저의 득세를 알아보라는 지시에 기획자라는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까봐 거절하지 못하는 구차한 상황은 안나의 '자존감'을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런 안나는 해비 유저 거북이 알을 만나, 그녀가 단지 자신의 인별그램 홍보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하고 거기에 더해 '포인트'로 월급을 받게 되는 '보복'까지 당하게 되는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그럼에도 '거북이 알'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극복하려는 이지혜의 태도에 '동지'적 위로를 얻는다.
알랭 드 보통이 바다에서 사무실까지 섭렵하며 '일'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며 때로는 지루하기 이를데 없으며 단순 반복적이며 세상에 조명되지 않는 일들의 존재론적 의미를 복원해냈다면, 장류진 원작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론에 방점을 찍는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직장 내 서열과 '관계'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 그럼에도 '월급'이라는 문자 하나에 기분이 전환되는 아이러니한 '밥벌이'에 구속된 존재들이 그럼에도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구겨지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며 살아내개 위한 '노력'들을 드라마는 원작의 주제에 맞게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글이 드라마로 구현되는 과정은 또 다른 '창작'의 현장인지라, 2~30대 직장인들을 열광케 했던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달픔이 감각있게 표현되었는가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덤덤하지만 내공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강말금 배우의 이지혜 에피소드는 배우 류진의 또 다른 면을 발견케 해준 조윤범 회장과의 호흡을 통해 원작 속 의도가 실감나게 전달된다. 반면 안나의 우동마켓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배우들 연기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다보니 이야기의 경중에서 밀리고 만다. 덕분에 판교라는 공간이 가지는 사회 생태적 환경에 대한 이야기의 '페이소스'가 아쉽다. 아마도 원작을 읽으며 동시대적인 공감에 무릎을 쳤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드라마적 감동에 인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이모부의 엄격하고도 이상한 보호 아래 사육당하듯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와 그녀의 하인으로 들어오게 된 알고보면 사기꾼인 숙희의 미묘한 우정을 그렸다.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의 하수인으로 등장했던 숙희, 하지만 의지가지없는 히데코에 연민을 느낀 숙희와 그런 숙희에게 점점 더 마음을 연 아가씨는 우정 이상의 '연대'를 통해 자신들을 가둔 삶을 돌파해 나간다.
<kbs드라마 스페셜 2020> 첫 작품으로 선보인 <모단걸>은 공영방송으로 온 <아가씨>를 표방한다. 드라마는 이미 아가씨와 하인으로 살아가는 두 여성 구신득(진지희 분)와 영이(김시은 분)를 내세운다.
영화 속 아가씨가 배경이 일제시대인 듯하지만 정체성이 모호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드라마 <모단걸>은 일제 시대, 그 중에서도 일제가 조선을 '문화'적으로 보다 교묘하면서도 철저하게 통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919년 조선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진 '독립만세 운동'은 일제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이전처럼 '헌병 경찰'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일제는 '문화'적으로 조선에 자율성을 주는 듯하면서도 조선 사회 곳곳에 일본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이런 일본의 통치 방식의 변화는 성장하고 있는 조선 사회의 문화적 열망에 불을 지폈고 이른바 '모단걸'로 대표되는 사회적 변화 양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자작의 지위를 얻은 종석 집안의 며느리인 구신득, 가세가 기운 양반 가문의 고명딸로 자란 그녀를 남편은 멀리하고 '모단걸'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런 남편을 두고 볼 수 없어 남편이 만나는 '모단걸'을 만나 '담판'을 지어보려 했지만 외려 신득은 한 눈에 보기에도 멋진 모단걸에 기가 눌리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등장한 남편으로 인해 수모를 겪게된다.
이에 신득 자신도 '모단걸'이 되어 자신에게 등을 돌린 남편의 마음을 되찾아 오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모단걸'이 되기 위해 '학교'로 향한다. 몸종인 영이와 함께. 이렇게 드라마 <모단걸>은 바람난 남편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겠다는 '전통적 사고방식'과 그 수단이 되는 '학교'라는 근대적 문물의 충돌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학교로 간 아가씨와 몸종 학교로 간 구신득, 신학문을 배우지만 구신득은 여전히 자작 집안의 며느리이다. 인력거를 타고 쪽진 머리로 몸종 영이를 늘 대동하는 학교 생활, 배움을 통해 모단걸이 되겠다는 그녀의 포부와 달리 어쩐지 공부에는 재능이 없어보이는 신득의 눈을 띄운 건 남편이 바람난 그녀를 보자마자 기세가 눌렸던 그 '모단'한 유행과 뜻밖에도 손에 들어온 '자유 연애'를 다룬 소설이다. 거기에 더해 어쩐지 그녀를 남다르게 대하는 듯한 선생님 윤지온(남우진 분)까지.
그런데 학교로 간 건 신득만이 아니다. 신득의 몸종으로 신득을 돕기 위해 신득의 짝꿍이 된 영이, 시험을 못본 신득 대신 나머지 공부를 하고, 시 숙제를 못한 신득 대신 자신이 쓴 시를 내는 처지이지만 영이는 신학문을 배우는 게 마냥 즐겁다. 그런데 그런 학교 생활을 넘어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다가오는데 바로 신득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윤지온을 통해서이다. 신득이 남편의 모단걸을 만나 위축되었을 때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였던 영이는 신득의 신발을 찾아오던 전차에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대는 일본 학생들에게도 지지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그런 영이의 모습을 눈여겨 본 윤지온은 일제의 문화 정책에 저항하는 자신의 동인지의 조력자가 되달라 영이에게 부탁한다.
드라마는 학교로 간 아가씨와 몸종, 그리고 학교 선생님 윤지온을 사이에 두고 미묘한 감정적 대척점에 서게 된 신득과 영이의 갈등 아닌 갈등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신득의 구두를 들고가다 일본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그 구두를 윤지온 앞에 내던지고 온 영이, 윤지온은 그 구두가 영이의 것이라 여기며 신겨준다. 이에 감동을 받은 영이는 차마 그 구두를 신득에게 돌려주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신득은 영이의 이름으로 낸 '자유시'가 발탁되어 윤지온과 '커피'를 마시며 지온의 '독려'를 듣고, 거기에 더해 지온이 영이에게 보내는 남다른 시선을 오해하여 자신에게 지온이 남다른 감정을 품었다 생각하게 된다.
영화 <아가씨>에서처럼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미묘한 갈등 관계, 이 갈등은 윤지온이 준 잡지, <새벽>이 일본인 교장에게 들키며 더불어 드러난다. 학교 선생님 윤지온을 둘러싼 신득과 영이의 갈등, 신득은 영이가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하고, 거기에 더해 윤지온조차 자신을 좋아한다 오해하게 만들었다며 전형적인 '오해'로 인한 삼각 관계로 신득과 영이의 '주종 관계'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삼각 관계는 윤지온의 '새벽'이 불온한 서적으로 수사를 받게 되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이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되면서 관계의 정체성에 변화가 생긴다. 아가씨와 백작, 그 사이에서 조력자로 고군분투하다 그만 아가씨와 연대하게 된 숙희처럼, 드라마 <모단걸>은 영이의 구금을 통해 윤지온을 사이에 둔 연적인 줄 알았던 영이가 알고보니 신득의 유일한 가족이자 벗이었다는 '자각'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다.
신득, 모단걸이 되다 드라마 속 신득은 모단걸이 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자작의 며느리였던 그녀의 정체성에 맞춰 모단걸에 마음을 빼앗긴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였다. 말이 모단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지 모단걸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런 신득의 의지는 학교와 학교를 매개로 한 모단한 문물을 통해 변화하게 된다. 처음에는 문물이 그녀를 현혹했다. 뽀족한 구두, 모단걸스러운 모자와 의상,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자유 연애를 그린 소설 등. 그러나 그런 '모단'한 문물이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무엇보다 그토록 자신이 애를 써서 돌려놓고 싶은 남편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신득의 드라마틱한 모단걸 되기 해프닝을 통해 진정한 모단걸은 문물의 세례가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으로의 거듭남이라 '정의'내린다. 아니 어쩌면 남편의 마음을 되찾겠다고 당당하게 학교를 선택했던 신득 그 자체에 애초에 '모단'의 주체성은 내재되어 있었는 지도. 그래서 당당하게 학교를 선택했던 신득은 이제 당당하게 남편에게 '이혼장'을 내던지고 진짜 모단걸의 길을 걸어간다.
남자들 서넛만 모이면 '군대' 얘기로 날이 샌다면, 여자들 역시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풀어내기 시작하면 남자들 군대 얘기 못지않게 '우여곡절'의 롤러코스터가 끝없이 펼쳐진다. 세상에 '거저'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가 어디 있으랴, <산후조리원> 2회 마지막 사랑이 엄마 조은정(박하선 분)의 말처럼 엄마들은 매일 밤 저마다의 육아 애환으로 눈물흘린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그 우여곡절 많은 출산과 육아담이 tvn의 미니 시리즈로 왔다. 바로 <산후 조리원>이다.
드라마는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인 42세 오현진(엄지원 분)이 재난과 같은 출산과 조난과 같은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쳐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조난과도 같은 모유 수유 그리고 '조난'과 같은 산후조리원 적응기라는 취지에 걸맞게 2회 펼쳐진 오현진의 '수유' 에피소드는 눈물겹다. 42살의 나이임에도 비록 양수가 먼저 터졌지만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고 딱풀이 엄마가 된 오현진, 그런데 아이를 낳기만 하면 다된 줄 알았는데 '조난'급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모유 수유', 갖가지 '출산'과 관련된 줄임말들이 난무하는 수유실에서 여유롭게 수유를 기다리던 현진, 하지만 현진이 타고난 유방의 모양이 수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데다가 첫 수유로 +엄마 현진이 긴장한 탓에 수유가 여의치 않다. 엄마 젖을 물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수유실의 직원은 다음 기회에 라며 엄마 현진을 밀쳐낸다.
현진이 그리던 로망, 아이를 품에 안고 우아하게 젖을 물리는 한 폭의 그림같은 장면은 아이를 낳아 젖을 먹여 본 엄마들이라면 '환타지'라는 사실을 다 알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젖을 먹인다는 그 '만고불변'의 진리가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는 '허들' 경기와 같다는 것을. 현진처럼 유방의 모양이 수유에 적절한가 부터 젖이 차올라 젖몸살을 앓고, 부족해서 아이가 늘 허기져해서 애가 닳고, 처음 해본 수유에 젖이 너덜너덜해지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이 되기 십상이다.
드라마는 이런 '고난'의 여정을 42살의 노산을 겪은 직장맘 현진과 전업주부 사랑이 엄마 조은정을 둘러싼 산후 조리원의 미묘한 갈등으로 치환한다.
이미 쌍둥이 2명을 출산한 사랑이 엄마는 쌍둥이 2명을 21개월까지 모유 수유로 키운 육아계의 '천연기념물'같은 존재로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에게 칭송받는다. 엄마들은 모여 '태교'와 모유 수유의 장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더하는데, 그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장맘 현진은 바쁜 직장 생활에 태교랄 것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 영화를 보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양수가 터지도록 일을 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때까지도 최연소 임원이 된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현진, 그러나 그녀의 자부심은 자신의 젖을 거부하는 자신의 아이 딱풀이의 자지러지는 울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랑이 엄마에게 '아부'까지 마다하지 않는 산후조리원 동기들을 비웃으며 결국 '직장맘'과 '전업맘'을 둘러싼 감정 충돌로 사랑이 엄마와 갈등까지 빚게 되며 졸지에 산후조리원의 '왕따'가 되고 만다.
직장 맘 vs. 전업맘? 드라마는 지금까지 '직장맘'에 대해 그래왔듯이 역시나 최연소 임원까지 올랐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있어서는 '젬병'인 캐릭터로 오현진을 그려낸다. 자신의 유방 모양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그런 유방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난항을 겪었을 때도 그저 짜증을 내고 당황하기만 하는 '생초보' 엄마로 그려낸다.
그런 현진을 산후조리원 원장이 소환하여, 육아 9단 사랑이 엄마와의 화해를 '주문'한다. 마치 직장맘 엄마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같은 학교 또래 엄마들과 '교류'를 통한 정보를 얻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할 수 없다는 기존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산후조리원이라는 배경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있어서 직장맘은 무지하며, 전업 주부는 유능하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갈등'을 만들어 낸다. 물론 이 갈등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젖으로 '모유 수유'하고 싶다는 현진의 '절대 항복'을 통해 '쭈쭈젖꼭지'라는 정보의 공유라는 '눈물어린 미담'으로 해결된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눈물로 밤을 지샌다는 사랑이 엄마의 '교시'와 그녀가 '은혜'처럼 나누어 준 '쭈쭈 젖꼭지'로 마무리된 에피소드를 보고 난 후 과연 육아의 '갸륵함'으로 '공감'하며 '감동'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산후조리원은 군대와도 같다. 처음 엄마의 젖이 낯설어 우는 아이를 냉큼 데려가 버린다. 졸지에 엄마는 수유의 도구가 된 듯 처리된다. 기계적인 수유의 시스템에 초보 엄마 현진은 무기력하게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직장을 다녀야 하는 엄마는 심지어 육아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책임 엄마로 산후조리원 동기들은 묘사한다. 물론 이후에 이런 오해에 대해 풀어갈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2화에 있어서 현진은 '죄인' 취급을 당한다. 직장을 다니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 직장맘, 그런데 왜 직장 맘은 '검색'조차 하지 못하는 생초보로 그려낼까. 최연소 임원까지 오른 여성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유능하지만 '엄마'로서는 '무지'하다는 '전형'을 드라마는 다시 한번 재생한다.
결국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경험이 중요하고,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며 들어오는 메시지는 저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는 두려움이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건 집에서 조리하는 것보다 과학적이며 편리하다는 '이점'이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생초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다녀 상대적으로 정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한번 '조난'의 경지에 몰리게 된다면, 과연 그 '조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아이를 낳고 싶을까.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겨우 2주에 불과한 산후조리원의 과정임에도 직장 맘과 전업 주부라는 이분법적인 갈등을 통해 여성과 여성의 편가르기를 통해 출산의 어려움을 풀어내려 한다는 건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기로에 놓인 많은 출산을 앞둔 가임 여성들에게 '지옥도'를 엿보게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남편의 모습은 앱 개발 스타트업 ceo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무능력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드라마에서 수유의 문제는 온전히 현진만의 문제가 되고, 현진과 그 주변 엄마들이 해결할 '인간 관계'가 되며, 아빠인 도윤(윤박 분)은 산후의 달라진 상황에 짜증을 내는 아내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눈치없이 구는 걸림돌처럼 취급된다. 아빠가 바빠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고 자신의 일도 전폐하고 산후조리원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육아의 전적인 책임과 과업은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낳았지만, 그래서 편하게 조리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다시 한번 '조난'이 되고 마는 산후조리원의 에피소드, 그건 마치 산후조리원으로 온 <sky캐슬>처럼 엄마들 사이의 이분법적인 갈등을 통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를 그려낸다. '리얼'한 경험담을 배경으로 했다는 드라마,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를 보고나면 아이를 낳고 키우기보다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 드라마, 과연 이 '무자식 상팔자'의 소견을 '감동적인 육아담'으로 역전시킬 수 있을까?
sbs월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종영했다. 송아(박은빈 분)와 준영(김민재 분)는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로맨스 멜로 드라마의 정석에 따른 엔딩이라 할 수 있겠지만 16부를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반가운 엔딩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맞잡고 웃는 그들에게 상이라도 내리고 싶다. 왜냐하면 지난 16부동안 이 두 젊은이는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자신의 삶에 던져진 문제에 대해 답을 얻으려 애써왔으니까. 그저 사랑만이 아니다. 스물 아홉, 자신들에게 던져진 삶이 준 화두에 대해 진지하게 천착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사랑 이야기 이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암송되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두 갈래' 길에 대한 '화답'을 한다.
송아가 포기한 길 마지막 회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자신의 근황을 전한다. 송아는 대학원에 합격했노라고. 준영이 축하한다고 하자, 송아는 하지만 대학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답한다. 송아에게는 오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올린에 대한 '화두'가 던져졌다. 대학에 들어가 취미로 만난 바이올린이 너무나 좋아 4수를 하면서까지 선택했던 바이올린,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바이올린은 늘 송아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리고 이제 송아는 전문 연주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16부는 음악도로서 송아가 고민했던 시간이다. 좋아하지만 늘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해왔던 동기들에게 미치지 못한 자신의 실력에 고민해 왔던 송아, 여전히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해나가야 할 길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답답할 정도로 주저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이 송아에게는 계속 다른 기회가 왔다. 연주자의 처지를 헤아려 기꺼이 자신의 구두를 벗어주는 송아의 자세가 송아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제 송아는 송아에게 온 다른 기회를,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드라마의 16부 내내 이수경 교수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실무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고민해 왔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송아의 발걸음은 무겁지만 가볍다. 가보았기에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16를 통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포기'가 아니다. 때로는 가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준영이 포기한 길 그런가 하면 준영은 차이콥스키 콩쿨을 포기하겠다고 전한다. 준영의 삶은 늘 방점이 자신의 바깥에 찍혀 있었다. 친구인 정경(박지현 분)이 부러워하다 못해 시샘할 만큼의 쇼팽 콩쿨에서 2등을 할 만큼의 재능이 있었지만 그 재능은 사고치는 아버지의 뒤치닥거리로 허덕였다. 그리고 허덕거리는 자신을 도와주는 경후 재단에 대한 부채감에 시달렸다. 스스로 '달란트'가 아니라 '저주'라고도 생각할 만큼.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의 '주체'로서 살아오지 못했던 준영은 송아와 '사랑의 열병'을 앓고나서 '피아노'를 포기할 마음마저 가진다. 자신의 밖에 찍혔던 '삶의 방점'을 거두어 자신에게로 오는 '통과 의례'이다. 그렇게 피아노마저 포기하려 했던 준영이 송아의 졸업 연주회에 반주자로 자처한다. 송아와 눈을 맞추며 연주를 '완성'한 후 준영은 행복하라는 송아의 말에 '사랑해요'라고 고백한다. 늘 송아와의 관계에서도 '미안해요'라는 말만 되풀이 하던 준영이 행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말이다.
그리고 이제 차이콥스키 콩굴을 포기했다. 그에게 콩쿨은 위기에 선 연주자 박준영이 선택했던 배수진같은 것이었다. 다시 줄을 세운 그 자리에서 우뚝 서서 자신이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명망성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늘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콩쿨 심사위원을 위한 연주를 해야 하는 건 여태 그가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피아노를 쳐왔던 방식의 답습일 뿐이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송아에게 다시 사랑해요 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준영은, 그렇게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슈만을 치고, 브람스를 치고, 준영의 결을 살린 '피아노'를 완성해 간다. 자기 삶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다.
준영과 송아가 선택한 길 14회 준영을 찾아간 송아는 준영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더는 준영 씨를 사랑하는 게 행복하지 않다고.
'행복'이라는 이 피상적인 단어는 오늘날 현대인들을 가장 갈등에 빠뜨리는 단어이다. 실제 한 사람이 일생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아마 '데이터'로 따지면 '쥐꼬리'만큼도 안될 것이다. 그래서 삶에서 '행복'을 지우라고도 말한다. 행복을 향하는 것자체가 무의미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행복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일상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하더라도 그그 시간을 의미있도록 만드는 것이 '행복'을 향한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마치 꽃들이 해를 향해 방향을 트는 것처럼.
송아가 행복하지 않기에 준영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은 16부작 드라마 절정에 등장한 편의적인 갈등만이 아니다. 준영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음에 대해 송아는 돌아볼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런 송아에게 준영이 화답한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16부의 엔딩은 그래서 상처받고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도, 사랑으로 인해 받은 행복이 더 크기에 사랑한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드라마는 행복은 상처받지 않음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상처받음에도 기꺼이 그걸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 말한다. 사랑만이 아니다. 준영과 송아는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각자 포기하는 상처의 시간을 가졌다. 송아는 오랫동안 좋아했던 바이올린을 포기했고, 준영은 피아니스트로서 명예를 업그레이드시켜줄 콩쿨을 포기했다. 행복은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말하고 있다.
마치 그건 극중 등장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와도 같다. 브람스 소나타의 부제는 '자유롭고 고독하게'라고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송아는 나레이션으로 덧붙인다. 실은 브람스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연주하라고 표기했다고. 같은 곡인데, 고독하게와 행복하게의 간극, 그건 '선택'이다, 결국. 아니면 고독이라고 보여지지만 실은 행복일 수도 있는 삶의 양면성에 대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아 사랑을 포기할 수도, 명망을 위해 콩쿨을 고집할 수도, 좋아했던 것이니 계속 부등켜 안고 갈 수도. 그 모든 주어진 선택지에서 송아와 준영은 보다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길을 택했다. 그 길이 앞으로 상처를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처받아도 기꺼이 그 상처를 감수하는 것이 자신들이 행복할 거라 생각하며. 상처라 생각하면 상처지만 행복이라 명명하면 행복이 되는 것들이라 드라마는 상처에 주춤거리는 청춘들에게 전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는 잔잔하고 느리게 흘러갔지만 그 어떤 청춘 드라마보다 '청춘의 고민'에 진진하고 열정적으로 천착했다. 젊음의 시간, 아니 젊음의 시간 만이 아니라 살아가며 늘 다가오는 '행복'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의 행복을 추구하려 다가갈 때 다가오는 아픔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삶의 고민들에 대해 두 주인공, 아니 두 주인공만이 아니라 극중 모든 인물들은 최선을 다해 고뇌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길에 선다.
또 한 편의 시네마틱 드라마가 찾아왔다. 바로 10월 17일 첫 선을 보인 10부작 OCN드라마 <써치>이다.
<트랩>, <타인은 지옥이다>, <번외 수사>에 이은 영화와 드라마의 콜라보, 4번째 시네마틱 드라마답게 영화 <무수단>의 제작 극본을 맡은 구모 작가와 <스승의 은혜>, <시간 위의 집>의 임대웅 감독이 밀리터리 스릴러로 만났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나타난 괴생명체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구모 작가의 전작 무수단처럼 <써치> 역시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괴이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흘러들어간 공을 찾으러 들어갔다 실종된 오진택 상병과 동료 병사, 이들의 수색 작전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군견병으로 차출된 옹동진 병장(장동윤 분)과 화생방 방위 사령부 특임대 손예림 중위(정수정 분) 등이 수색작전에 투입된다. 사람의 짓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오진택 상병, 그 손에서는 '공수병'으로 의심되는 수포가 동시에 발견된다. 또한 수색 과정에서 들개떼의 습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옹동진 병장의 둘도 없는 전우인 군견병이 의문의 생명체로 인해 죽임을 당한다.
비무장 지대 사망 사건이 소환한 '23년전 총격' 드라마는 이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을 두 개의 가지로 뻗어나간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같은 장소에서 23년 전에 발생한 북한군 총격 사건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북한'이다. 강가에서 아이를 안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성 장교, 그녀를 향해 가는 듯한 차 한대, 그런데 차 안에 탄 북한군 장교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상'하다. 그의 얼굴은 수포 등으로 급격하게 병증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좀비'와 같이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차는 나무에 부딪치고, 괴력으로 차문을 부순 의문의 북한군 장교는 '핵물질'로 추정되는 박스를 든 채 사라진다. 그리고 수포에 뒤덮힌 채 사라진 북한군 장교가 바로 미스터리의 시작이다.
그로 부터 얼마 후 작전에 투입된 남한의 수색조는 강가에서 바로 그 아이를 안은 여성 장교를 발견한다. '귀순'을 하겠다는 여성 장교를 보호 하에 데리고 가려는 순간, 등장한 북한군들, 그들은 그녀에게 사라진 북한 장교의 행방을 묻고, 그녀 또한 데려가려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남과 북의 대치 상황, 한대식의 우발적인 발포로 결국 남한군과 북한군의 교전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발포를 했던 그 남한군 병사는 국군 사령관이 되어있다. 그런 그에게 보고된 당시 사건이 벌어진 21섹터에서 다시 한번 발생한 의문의 사건, 그는 다시 한번 당시의 사건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DMZ의 영웅이라 추앙받는 국회의원 이혁에게 보고를 한다.
무엇이 한대식 사령관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걸까? 왜 여유를 부리면서도 이혁은 직접 21섹터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 보고 현장에 등장한 것일까? 그건 아직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혁을 '영웅'으로 만든 23년전 북한국 총격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누군가가 범죄자에서 영웅이 되는 과정에 애꿏은 전우의 희생이 치뤄졌을 지도 모른다는 '비밀'이 이제 다시 한대식과 이혁으로 하여금 21섹터의 사건의 '1주일' 안에 조기 해결을 다그치도록 만든다.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북극성 특임대, 자신의 군견을 잃은 옹동진 병장과 함께, 그와 불미스럽게 조우했던 의문의 인물이었던 송민규 대위(윤박 분), 이준성 중위 등이 합류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21섹터에서 발생한 사건 조사와, 그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등장한 의문의 인물 수색이지만, 그 드러난 임무 뒤에 한대식 사령관이 송민규 대위에게 은밀하게 지시한 또 다른 '비밀' 임무가 있음이 암시된다.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 <써치>는 이렇게 사망 사건으로 부터 소환된 23년전 사건의 진실 규명이 특임대 구성까지 이어지며 밀리터리 스릴러의 갈래를 펼침과 동시에 저항 한번 하지 않은 채 사망한 오상병의 손에서 나타난 수포로 부터 의심된 '공수병'으로 추정되는 의심의 증상으로 좀비 미스터리물의 방향을 더한다.
앞서 오상병이 동료와 함께 공을 찾으러 들어간 DMZ 21 섹터 부근에서 '사람'의 형상을 하지만,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의문의 생명체의 움직임을 드러내 보인다. 또한 사망한 오상병의 혈액은 급격한 변이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이제 '사망자'로 처리되어 영안실에 안치된 오상병이 되살아난다. 영안실에서 이상한 움직임과 소리를 듣고 문을 연 손예림 중위를 공격한 '살아난 시체'가 된 오상병, 번뜩이는 두 눈과 괴수와 같은 행동으로 손중위를 공격하며 2회를 마무리한다.
2회까지의 <써치>는 이미 장르물에서 입지를 다진 임대웅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름에 방영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가을의 선선함이 오싹함으로 이어지는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한 괴생명체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물로써 한껏 기대를 모은다. 거기에 얽혀진 23년전 음모, 그리고 그 23년전에 '결자해지' 되지 못한 '진실'이 23년이 지난 오늘에서 다시 '해원'으로 나타난다는 설정은 장르물의 깊이를 더한다. 앞서 <트랩>, <타인은 지옥이다>를 통해 시네마틱 드라마의 묘미를 선사했던 바, 과연 그 명성을 <써치>가 다시 한번 이어갈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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