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용산서 강력계 한여진 경위(배두나 분)는 검찰에게 뇌물을 주던 혐의로 수사받던 박무성의 집에서 조우하게 된 두 사람, 감정을 느끼지 못해 법전에 의거하여 일을 처리하는 검사가 천직이라 여겼지만 정작 검찰 내부에서 왕따가 되었던 황시목,  반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한여진 경위,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사건'을 대함에 있어 '원칙'을 중시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동질적이다.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그런 두 사람이 검찰 스폰서 살인 사건을 위한 특임 팀에서 만나 '공조' 수사의 팀웍을 자랑했다. 

검사 스폰서 사건에서 부터 시작하여 결국 거대한 검찰 내부 비리 사건이 된 사건, 그 끝에서 상사이자 그를 이끌어 주었던 이창준 검사장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사건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밝혔지만 그 대가로 황시목은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검찰 내부 봐주기 수사를 운운하는 기사에 오르내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 그가 대검찰청 형사법제단에 발탁되었다. 모양새는 검찰청 발탁이지만 내용상 경찰 측에서 그를 원했다는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만난 두 사람
대검찰청 형사법 제단 소속이 된 황시목은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에서 경찰청 구조혁신단 주임으로 일하고 있던 경감으로 승진한 한여진을 조우하게 된다. 검찰과 경찰, 서로 자신들의 보다 많은 권익을 얻어내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의 장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한때는 '공조 파트너'였지만 이젠 '견원지만'의 '말'노릇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법사위원장 아들과 관련된 사건, 이어 세곡 지구대 자살 사건을 통해 검경은 수사권 조정, 그 중에서도 특히 영장 청구권을 둘러싸고 '장군 멍군'의 파워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비밀의 숲> 시즌 1이 검찰 스폰서였던 박무성의 죽음이 검찰 내부 비리의 도화선이 되었듯이, <비밀의 숲> 시즌2는 통영 바닷가에서 젊은이들의 애꿏은 죽음으로 막을 열었다. 박무성의 죽음에서 황시목과 한여진이 현장에서 조우했듯이, 통영 사건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투철한 진실을 향한 사명감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저 우발적인 사고일 수 있었던 사건은 황시목과 한여진의 자발적 공조로 인해 그저 스쳐지나갈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장난과도 같은 고의가 발생시킨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통영 사건을 통해 드라마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밝힌다. 그리고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서로의 이권을 향해 장기판의 말이 될 듯했던 이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뜻밖의 '진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검찰'이라는 울타리 안에 황시목을 가두려는 검찰 측 우태하(최무성 분)와 김사현(김영재 분)의 '패거리 문화'에 엄격하게 선을 그은 황시목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법사위원장 아들 사건에 있어 우태하가 맡은 역할에 의심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상관인 최빛(전혜진 분) 구조혁신단장이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감으로 한여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곡 지구대와 관련하여 경찰 내부의 부정한 뒷거래에 한여진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 없다. 

 

 

다시 손잡은 황시목과 한여진
그렇게 서로 반대편에 섰지만 자신의 편에서 '몽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던 두 사람, 바로 그 때 서동재(이준혁 분) 검사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얄밉도록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만큼 시즌 1에 걸쳐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서동재의 실종에 두 사람은 통영 사건에 이어 다시 한번 현장에서 만난다. 

거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우태하에게 접근했던 서동재, 반면 그 서동재가 조사하려고 했던 의정부 세곡 지구대 사건과 관련된 최빛, 그런 연관성으로 인해 검찰도, 경찰도 이 사건에서 자신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기를 원치 않고 그런 '이해 관계'는 이제 황시목과 한여진의 공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윗선의 이해관계와 달리, 황시목과 한여진의 방향은 분명하다. 시즌 1에서 그렇듯이 '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황시목을 아끼고 안타까워하는 강원철 동부지검장은 황시목을 불러 나이도 들었는데 왜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고 핀잔섞인 훈수를 두었지만 황시목은 요동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수사를 맡긴 최빛에게 이제 더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에 진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두 사람의 공조가 결국 시즌 1에서 이창준의 죽음에 이르렀듯이 이제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명목을 두고 만난 경찰과 검찰, 우태하와 최빛, 그 누구에게도 황시목과 한여진의 공조가 '자비'를 베풀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시목과 한여진이 집단의 이해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실을 향해 거침없에 내지를  때 비로소 <비밀의 숲>은 그 본류의 재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더구나 서동재는 마치 부비트랩처럼 통영 사건 생존자에서부터, 세곡 지구대 관련자, 그리고 한조 그룹에 이르기까지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비밀의 숲> 시즌 2는 이제 서동재의 실종을 통해 본격적으로 '숲'을 향한 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은 듯하다. 시청자들을 숨도 못쉬게 집중시켰던 스릴러로서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황시목과 한여진이 드러낼 숲, 그 곳의 진실은 무엇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20. 9. 6. 17:06

지난 7월 mbc와 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림이 함께 한국판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SF8월 mbc와 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림이 함께 한국판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SF8을 웨이브를 통해 선공개했다.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 김의석 감독의 <인간 증명>, 노덕 감독의 <만신>, 안국진 감독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수 없다>, 오기환 감독의 <증강 콩깍지>, 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 장철수 감독의 <하얀 까마귀>, 한가람 감독의 <블링크> 등 8 작품은 이어서 8월 14일 부터 매주 금요일 MBC를 통해 방영 중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내세운 SF8은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 지능(AI), 증강 현실(AR), 로봇, 게임, 판타지, 호러, 초능력, 재난 등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누구를 돌볼 것인가? - 간병 로봇의 딜레마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이다. 김혜진 작가의 SF소설집 <깃털>에 수록된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배경은 2046년, 여전히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이다. 

'사람이 힘든 일에서 해방되고 그 일을 로봇이 대신한다면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김혜진 작가의 원작 속 TRS는 간호중이 되어 낙원 요양 병원에서 10년 째 뇌사 상태에 빠진 연정인의 어머니(문숙 분)를 돌보고 있다. 

극중 간호중은 환자의 딸인 연정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로봇이지만 환자를 돌보야 하는 가족의 얼굴을 한 이 간병 로봇은 그래서 환자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가족에게는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인쇄소를 운영하며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연정인은 간호중을 '호중'이라 부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처음 어머니가 병상에 누웠을 때만 해도 생일을 챙기며 살갑게 어머니를 대하던 연정인은 이제 10년이 되어가는 이즈음 피폐함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그런 정인을 돌봄 1호 정인의 어머니에 이어, 돌봄 2호라고 생각(?)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정인의 상태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 

간병 로봇이라고 다같은 간병 로봇이 아니다. 2046년이 되어도 여전히 가진 것에 의해 삶의 질이 나뉘는 세상, 정인의 옆방 치매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없는 돈에 보급형 간병 로봇을 들였지만 정작 남편은 차도가 없고, 간병 로봇마저 제 멋대로이자 보호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정인은 더더욱 좌절하고, 그 역시 극단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줄을 매달고 의자에 올라가 발버둥을 치다 떨어진 순간 울린 전화벨, 달려온 병원에서 영안실에 누운 어머니를 보고 정인은 간호중을 끌어안고 '덕분에 어머니가 편히 가셨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병원 관계자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 온 정인은 돌변, 자신의 얼굴을 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정인이 가하는 분노의 폭력 끝에 '간호중'은 파괴되고 만다. 

 

 

로봇이 던진 질문,  '인간다움'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46년, 기술은 간병 로봇을 등장시킬 정도로 발전했지만, 사람살이는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병도, 고통도 덜어지지는 않았다. 변화되지 않은 삶과 관계 속에 더해진 '로봇'은 과연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10년 째 어머니를 간병하며, 로봇 스스로 그 어머니의 딸조차 '돌보'고 있는 상황은 이미 '메뉴얼'된 기능 이상의 '진화'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봇은 돌봄의 질을 위해 스스로 '선택'의 질문을 던진다. 로봇을 찾아 '전도'를 했던 수녀님에게 전화를 건 로봇은 '한 사람이 죽어 다른 한 사람이 산다면?'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드린다. 생명은 주님의 뜻이니 로봇 주제에 함부로 간여하지 말라는 수녀님의 경고에, 외려 간호중은 되묻는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을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인가? 라고. 그 죽었어야 할 사람 때문에 생기롭게 살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면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냐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끝나지 않고 있는  존엄사에 대한 질문이 간호중을 통해 던져진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젊은 정인을 구하기 위해, 정인 어머니의 생명을 끊는 간호중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선택에 대해 질문이 던져진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정인을 찾은 수녀님,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냐며 간호중을 파괴해 버렸던 정인은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간호중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던가. 그리고 수녀님은 다시 간호중을 찾아나선다. 간병 로봇을 만들었던 본사까지 걸음한 수녀님은 그곳에서 메뉴얼된 그 이상의 '작동'을 스스로 결정한 간호중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만난 간호중, 아니, TRS- 70912 B는 자신에게 차오르는 무엇을 말하며 이게 고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 수녀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말한다. 상황이 역전되어 수녀님이 예전 간호중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예전에 간호중은 물었다.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으로 만들었다면 자신도 사랑으로 만들었냐고. 그때 수녀님은 '자네는 로봇이잖아!'라고 일갈했다. 그런 수녀님의 단호한 거절에 간호중은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일 수도 있다며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해 기꺼이 기도해 주겠다는 수녀님에게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목숨을 거두어 달라 호소한다. 살아서 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느니 죽음을 택하고 싶다는 간호중의 애절한 간청에 수녀님은 혼란스럽지만 규정을 넘어설 수 없다. 입장이 바뀌어 당시 간호중과 같은 입장에 처한 수녀님은 간호중이 '사랑'으로 선택한 그 결정과 달리 세상이 그어놓은 선 밖으로 선뜻 나설 수 없다. 그 때 간호중이 던진 한 마디는, '위선자',

같은 상황에 놓인 로봇과 인간의 다른 선택, 묘하게도 영화를 보고나면 어쩐지 로봇이 더 인간보다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선'적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수녀님'이야말로 결국 자신들이 만든 도덕과 규정과 규칙 속에 갇혀 '딜레마'에 빠진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했을까? 라는 원작자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인간적 고뇌의 상황에 던져진 로봇, 로봇일지라도 그 딜레마를 통해 성장하게 되었다는 건, 인간이 포기한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진화가 주는 묵시록적인 경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SF임에도 되돌아 오는 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그 아픔과 고뇌라는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by meditator 2020. 9. 6. 03:03

10회차에 이른 <악의 꽃> 이제 본격적으로 연쇄살인범이었던 도현수의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범의 목소리를 통해 도현수(이준기 분)이 헤집은 기억 속에서 현수와 같이 간 바에서 아버지는 공범이 줏어 준 아버지의 옷을 통해 '차 키'를 전달받은 거였다. 도현수, 아니 이제 백희성은 다시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바를 찾아든다. 

그런데 왜 도현수는 공범을 찾는데 그렇게 애를 쓰는 걸까? 온 세상이 자신이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이라고 해서? 물론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나 도해수의 뒤늦은 고백처럼 누나가 죽인 이장조차도 스스로 짊어진 도현수가 왜 이제 와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도현수는 자신의 결백이 아니라,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공범'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공범'이 바로 그의 아내 차지원(문채원 분)의 사랑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최선이 아내가 잡으려는 '범인'을 잡아주는 것이라니! 이런 '기괴한' 사랑은 그게 도현수이기 때문이다.  아니 도현수는 지금 자신이 하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지원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의 환영이 보이지 않으니 그래서 차지원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나의 물음에 당당하게 한번도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던져 사랑을 구하는 사이코패스 
도현수는 스스로가 태생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더 이상 도현수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연습해 왔다. 더욱이 차지원을 만나, 그녀가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더더욱 열심히 '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즉, 도현수에게 '사랑'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그저 '감정'일까? 도현수는 차지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남편이 된 이래, 남편의 역할에 그 누구보다 '충실'해왔다. 경찰이 되어 바쁜 아내 대신 가사를 맡은 도현수는 맛있는 음식은 물론, 그의 말에 따르면 딱 미니 차지원같은 딸 백은하를 키움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했다. 

시청자들 역시 드라마가 규정한 사이코패스 도현수에 시선이 가려져 그가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것에만 '천착'했지만, 이제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걸 안 아내 차지원이 도현수에게 싫증났다며 헤어지자 하자, 그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공범 잡기에 나선 도현수를 보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누가 도해수가 도현수를 보며 달라졌다고 하듯이, 도현수의 저런 모습이 '사랑'이 아닐까 라고. 

도현수와 도해수가 둘이서 만나는 걸 몰래 지켜보던 차지원은 안그래도 자신이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백희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인범으로 추적당하던 도현수라는 사실에 혼돈스러워 하는 한편, 자신이 믿고 의지해 왔던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워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누나에게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니 분노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연주시 살인 사건 수사에 매진하며 남편을 옥죄어 가는 한편, 대놓고 이제 오래 살아서 싫증이 났다며 헤어지자는 말을 한다. 

물론 자신이 도현수라는 걸 애초에 속인 것에서 부터 이 부부의 딜레마는 시작된 것이지만 백희성이 도현수라는게 '들통'난 마당에 봉착한 부부의 대응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구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관계'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도현수의 맞은 편에 돈이 된다면 사람도 얼마든지 '재료'로 팔고사는 범법자들과, 자신의 명망과 이익을 위해 병든 아들 대신 도현수를 백희성으로 만들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취하는데 거침이 없는 백만우와 같은 인물들을 대비시키며 우리의 섣부른 '규정'이 파놓은 함정을 드러낸다. 

 

 

사랑이 무얼까? 
사랑의 '감정'에 매달린 아내 차지원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에 '분노'하고 '이별'을 선언하는 것과 달리, 아내와의 '관계'에 충실하고자 하는 도현수는 아내의 맘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누가 사랑일까? 어쩌면 자신을 잡을 지도 모를 경찰이 되는 일을 가장 응원해 주었던 도현수, 그리고 바쁜 경찰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지원의 내조에 열과 성을 다했던 도현수,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사랑'의 감정마저 애써 노력했던 도현수, 그리고 이제 그런 아내를 위해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는 도현수, 그런 도현수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제일 힘든 게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교감'된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악의 꽃>은 그런 관계의 표피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실체는 그걸 채워가는 '성실함'이 아닐까 묻고 있는 듯하다. 

남편을 외면했던 차지원은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의욕이 앞섰던 함정 수사에서 위기를 겪으며 비로소 남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강력반이라는 험한 생업의 전선에서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이 알고보니 그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남편 도현수의 위로의 지지였음을. 설사 그것이 '연습'된 감정일지라도 그 '연습'의 뒤에 숨은 건 바로 자신을 향한 도현수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랑'이었음을. 차지원은 말한다. '나는 너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너도 나밖에 없었구나.'라고.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안 순간부터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을 '사이코패스'에 맞추어 오해했던 차지원은 비로소 남편의 진심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폭력적 성향으로 규정되었던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름 아닌 실종된 도현수 엄마의 목소리였다는 걸 알게 되고 상담사에게 오열한다. 왜 어린 소년 도현수조차 알지 못했던 애달픈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냐고. 

10회에 이른 <악의 꽃>은 사이코패스의 '사랑' 아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세 치 혀의 농간에 부화뇌동하는 감정이 아닌, 관계의 실체에 대해 고민해 보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수 밖에 없는 시절이다. 이 시절에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넘어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삶의 버팀목에 대해 드라마를 빌어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사이코패스라지만 그 누구보다 진솔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도현수를 통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20. 8. 28. 16:03

지난 2017년 6월 10일 tvn을 통해 첫 선을 보인 드라마 <비밀의 숲>은 방영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다.  6월이었지만 이미 한 여름과도 같았던 시절, 그런 더위를 잊게 해줄만큼 한 겨울을 배경으로, 그 배경만큼이나 서늘하게 막을 열었던 <비밀의 숲>은 검사 황시목이 방문한 집에서 목격한 살인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20년 8월 50여 일에 걸쳐 비가 내리는 이 시절에 통영 지청에서 원주 지청으로 발령을 받은 처지인 황시목 검사는 안개가 자욱한 통영 바닷가를 지나다 다시 한번 '두 청년'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 현장'을 통한 황시목과 한여진의 재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인간', 사람들은 황시목(조승우 분)을 시쳇말로 그렇게 표현했다. 어릴 적 받은 뇌수술로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황시목에게 '법'이라는 이성적 장치는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명문화된 법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되는 '서부지검' 내부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 동료들이 그와 밥을 먹는 것조차 불편해 했지만, 황시목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2017년 <비밀의 숲> 1회에서 사건을 목격한 검사 황시목은 현장에 있었던 그 자신이 한여진(배두나 분) 경위에게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것 따위 무색하게 그가 목격한 현장에서 발견한 '사실'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이제 2020년 원주 지청으로 발령받은 황시목은 통영지청장님이 직접 환송을 해주겠다는 '자리'를 '쌩까고' 이번에도 사건 현장인 통영 바닷가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생한 두 청년의 죽음에 '사고' 이상의 의문을 느끼던 순간, 자신의 집에서 핸드폰으로 '안스타' 순례를 하던 한여진 경감 역시 한 남자의 통영 사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보며 '의구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황시목과 한여진은 2017년 <비밀의 숲>에 이어 다시 돌아온 시즌2 <비밀의 숲>에서 한 사건을 통해 '재회'하게 된다. 

황시목이 발견했던 박무성의 죽음, 그 죽음은 그저 한 개인의 죽음, 혹은 검찰 스폰서의 죽음이 아니라, 결국  검찰 내부에 얽히고 얽힌 커넥션을 밝히기 위해 훗날 검사장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 될 이창준(유재명 분)이 기획하고 검찰 수사과 과장 윤세원(이규형 분)이 실행한 '설계된 죽음'이었으며, 검찰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비리의 음모를 벗겨줄 첫 번 째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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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사건의 의미는? 
그렇다면 이제 통영에서 벌어진 두 청년의 뜻하지 않은 죽음도 시즌 2를 관통할 사건의 시작일까? 

우선 통영 사건을 통해 시청자들은 다시 한번 황시목과 한여진이 누구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주인공인 '환송회' 자리 대신 두 청년의 죽은 현장으로 간 황시목, 그는 그저 술을 먹고 파도가 거센 바다에 뛰어들어 우발적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모두가 '퉁'쳐버리는 사건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안주하는 대신 그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사실'에 집중한 황시목에게 통영 바닷가의 사건은 그저 우발적인 사고라기엔 의문점이 남았기 때문이다.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분명 접근 금지 푯말이 있었어야 할 이곳에 제 아무리 술이 취했기로서니 청년들은 그리 무모하게 뛰어들었을까란 의문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같은 시간 이제는 경찰청 수사구조혁신단 주임 경감이 된 한여진 역시 의아함을 느낀다. 통영 바닷가에서 접근 금지 푯말을 배경으로 커플 사진을 찍어 올렸던 사람이 황급히 사진을 삭제한 상황에 한때 동료였던 장건(최재웅 분)에게 협조 요청을 하고 두 사람은 '안스타'의 사진을 토대로 '가해자'로 추정된 사람을 찾기에 이른다. 
그리고 황시목에게 전화를 걸어 2017년 <비밀의 숲> 1회에서 용의자와 형사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제 '과거'의 공조 팀 동료로 다시 한번 '통영' 사건의 '공조 수사'를 벌인다. 

황시목이 그렇듯이, 한여진 역시 시즌 1에 이어 다시 한번 '정의감'이 투철한 형사로 돌아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법적인 사실에만 충실한 황시목과, 반면에 너무도 '인간적인' 한여진은 극과 극의 인간형이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주변 상황과 관계를 제치고 '사건'의 본질, 그리고 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에만 충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역설적으로 '공통 분모'를 가진다. 통영 사건은 <비밀의 숲>을 지난 시간 그리워했던 애청자들에게 통영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절묘하게 두 사람의 캐릭터를 환기시키며  <비밀의 숲> 시즌 2 또한 이러한 두 사람의 전혀 다른, 하지만 공통의 '지향'이 시즌을 관통할 것임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두 사람은 앞으로 펼쳐질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중대 사안'을 통해 '적'으로 부딪치게 될 것이다.  검찰과 경찰, 서로가 자신들이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 가지고 싶은 '권한', '권력'을 향해 치열하게 수싸움과 기세 싸움을 벌일 판의 '말'로 던져질 예정인 것이다. 

하지만 경찰청 수사구조 혁신단 단장을 맡은 최빛이 시즌 1의 이창준의 죽음과 거기에 연루된 황시목을 검찰 관련 자기 식구 감싸기 사안으로 몰고가려 하지만 그 수하가 된 한여진이 자기 역시 '관계자'였음을 환기하며 그 사건은 그리 간단하게 검찰의 자기 편 감싸기와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고 제지하듯이, 한여진은 쉽사리 '말'로 '헌신'만 하지는 않을 조짐이 보인다.

박무성의 죽음을 시작으로 결국 자신을 발탁한 이창준에 이르렀던 '설계'를 한 눈 팔지 않고 끝내 밝혀냈던 황시목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종료된 통영 지청 업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두 청년의 죽음에 의아심을 가지게 된 황시목과, 수사구조 혁신단으로 옮겨 가서 굳이 나서도 되지 않지만 '불의'는 넘길 수 없어 직접 탐문 수사에 나선 한여진의 기세로 보건대, 이들이 검찰과 경찰의 치열한 권력 투쟁 사이에서도 '사고'가 될 뻔한 두 청년의 죽음을 '사건'으로 길어내듯, 적어도 이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과정에서 뜻밖의 '진실'을 향해 다시 한번 우직하게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비밀의 숲> 시즌2 1회는 보여주고 있다. 

by meditator 2020. 8. 16. 03:14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밥 한 공기가 만들어 진다는, 즉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속담이다. 그런데, mbc 수목 드라마의 제목 <십시일반>에서 그 뜻은 속담을 '역설적'으로 활용된다.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살리고 돕는게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만큼이나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된 <십시일반>, 8부작의 반전 넘치는 전개가 도달한 결론은 뜻밖의 '진실'이다. 

 

 

모두가 의심스럽다 
예고편에서 마치 삼복 더위를 날려줄 '납량 특집극'처럼 분위기를 잡는다. 아니나 다를까, 1회가 끝나기도 전에 등장인물 중 가장 돈이 많은, 유인호 화백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유인호 화백이 죽은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다.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 칭송받는 유인호(남문철 분) 화백, 그의 명성만큼이나 그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상태, 당연히 그의 재산은 수백 억이다. 그런 그의 생일날 사람들이 모여든다. 현재 그와  살고 있는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인이라는 연극 연출가 설영(김정영 분), 그러나 그녀는 법적으로는 그의 아내가 아니다. 한때 잘 나갔던 모델 김지혜(오나라 분)와 바람을 펴 아내와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인호는 다시 전처 설영을 찾았고 그녀는 그의 수족이 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인호를 돌보고 있다. 

그러나 유인호와 설영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자식은 김지혜와 사이에서 낳은 유빛나(김혜준 분)가 유일하다. 유인호는 김지혜를 버렸지만 지혜 모녀에게 양육비를 대주었고, 파산을 한 김지혜는 어떻게든 유인호에게 잘 보여 유산 상속을 받을까 해서 생일날 일찌감치 찾아들어 유인호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중이다. 김지혜 모녀만이 아니다. 사기 전과 4범인 유인호의 이부 동생 독고 철(한수연 분)과 그의 딸  독고 선(김시은 분) 역시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유인호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죽은 유인호의 동생 유해준(최규진 분) 역시 유인호가 거두어 주는 처지이니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한다. 거기에 유화백의 친구이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문정욱(이윤희 분)과 가사 도우미 박여사(남미정 분) 역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모두가 모인 자리 유인호 화백은 지난 1년간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며 비아냥거리며 내일 유언장을 공개할 것이라 선포한다. 자신의 것을 자기 맘대로 줄 것이니 '토' 달지 말라며. 하지만 그 유언장이 공개 되기 전에 유인호 화백의 죽음이 앞섰다. 그리고 수면제 알레르기가 있는 그가 수면제 과용으로 죽었음이 밝혀지며 뜻밖에도 그가 먹은 다섯 알의 수면제를 먹인 인물이 그의 유일한 딸을 낳은 김지혜와, 도우미 박여사, 친구 문정욱, 이부 동생 독고 철, 그리고 조카 유해준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화가를 죽인 다섯 알을 나누어 먹인 이들이 '범인'일까? 하지만 사건은 간단치 않다. 이들이 수면제를 탄 이유에는 그들로 하여금 유언장의 내용에 접근하도록 유인한 '익명'의 누군가가 발송한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익명'이 의도한 것은 화가의 죽음이었을까?

등장 인물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추궁하고 서로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으르렁 거리며 싸우게 되는 과정, 당연히 시청자들은 누가 죽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탐정' 게임에 골몰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런 '추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갑자기 등장 인물을 '인터뷰' 한다거나, 등장인물들이 'sns'의 '집단 지성'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리해 가는 신선한 기법을 활용하여 긴장감을 높여간다. 

 

 

하지만, 누가 범인일까?을 둘러싸고 진행되던 드라마는 중반주에 들어서면서 각도를 튼다. 등장인물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유산에 혈안이 된 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 유산의 주인공, 유인호의 실체가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빛나와 함께 유력한 유산 상속자로 부각되었던 유해준, 하지만 빛나보다도 더 큰 아버지의 자식같다며 빛나를 몰아세웠던 그의 '태도'가 수상하다. 그는 정말 순종적인 조카였을까? 그가 큰아버지가 먹는 초콜릿에 수면제를 타가면서까지 노렸던 것은 뜻밖에도 '진실'이었다.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큰아버지의 집을 방문해서 아들 해준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큰 아버지 집에 들어간 해준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의 '실종',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해준은 '복수'의 칼을 갈았고, 그 해준이 준비한 '복수'의 실체가 드러나며,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난다.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일까? 
15년 전 해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충직한 비서이자 친구인 줄만 알았던 문정욱이 '노예처럼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스스로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항변하는 15년의 시간 뒤에는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고 칭송받지만, 그 자신말고는 아내건, 친구건 가릴 것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비열하리만큼 냉혹했던, 심지어 자신의 죽은 뒤에 명성조차도 '디자인' 하기에 여념없었던 유인호라는 '거악'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평범한 탐욕이다. 유산을 둘러싼 한 푼이라도 더 자기 몫을 노리기 위해 달려든 '하이에나'와 같은 가족들의 이전투구, 그리고 그런 탐욕의 피해자인 듯한 유인호의 죽음, 하지만 그 드러난 탐욕의 커튼을 젖히고 보면, 거기에는 그들의 탐욕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오로지 자신의 명성과 부를 위해서 동생의 죽음을 감추고, 친구를 노예처럼 부렸으며, 사랑했던 이에 대해 파렴치했던 '이기주의자' 유인호의 '인과응보'인 죽음이 드러난다. 회를 거듭해가며 '탐욕'은 에스컬레이션되고 그 정점에 '유인호'가 있다. 

과연 누가 유인호를 죽였을까? 라는 의문 부호의 스릴러로 시작된 <십시일반>은 등장인물들이 '십시일반' 유인호 죽음의 주력, 혹은 조력자인가 싶더니, 마지막 회 '속담'의 본류로 돌아와 힘을 합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원했던 죽은 뒤에도 그 '명성'만으로 그림값이 치솟는 '명성'으로 남은 유인호의 '실체'를 맟천하에 드러내는 '십시일반' 어벤져스로 활약하며 유쾌한 한 판 블랙 코미디로 막을 내린다, 비록 8부작이지만, 아니 8부작이라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신선한 장르적 시도'는 비록 시청률로 보상받지 못했지만 지지부진한 공중파 드라마는 물론, 볼 거 없다며 하소연하는 시청자들의 기호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었다. 

by meditator 2020. 8. 14. 02:21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에 기만, 이런 성향을 높게 나타내는 사람을 반사회성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한다. <악의 꽃> 도현수의 어릴 적 친구라는 김무진 기자(서현우 분)는 도현수를  '사이코패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면 다 '살인범'이 되는 것일까? '사이코패스'면 무조건 다 나쁜 놈일까? <공항가는 길>, <마더> 등을 통해 관습적이고 통념적인 관계에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왔던 김철규 피디가 이번에도 그 단어만으로도 '범죄'가 연상되는 '사이코패스'라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을 묻는다. 


사이코패스의 과거 
자타공인 '사이코패스' 도현수(이준기 분),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행동 양상을 보였던 그는 이제 병원장인 백만우(손종학 분)와 약사인 공미자(남기애 분)의 아들 백희성으로, 그리고 차지원 형사(문채원 분)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금속 공예가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가던 백희성의 일상은 '도현수'를 알고 있던 김무진 기자의 등장 그리고 한때 도현수와 동거동락했다던 남순길의 죽음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도현수'가 소환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도현수, 그의 과거가 무엇이었길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살아왔던 것일까? 2002년 연주시에서 발생한 6명의 살해 및 암매장 사건의 범인 도민석, 그는 도현수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평소에도 이상한 태도를 보이던 도현수를 아버지가 벌인 살인 사건의 공범이라고 의심한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도현수가 사라지던 당시 벌어졌던 이장 살해 사건의 범인을 도현수라 추정한다. 그로부터 18년 , 도현수는 여전히 이장 살해범으로 용의자 신분인 상태다. 

김무진을 만나 본의 아니게 회고하게 된 '과거', 그곳에서 되새겨진 김무진과 도현수의 우정'은 우정이 아니라, 김무진에 의한 일방적인 '이지매' 현장이었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돌팔매를 맞아야 했던 도현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순길의 죽음에서 다짜고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 연주시 연쇄 살인, 그리고 다시 한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린 도현수가 김무진의 부추김에 의해 자신에게 씌워진 살인 용의를 스스로 벗겨내기 위해 어릴 적 살았던 가경리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기억에 떠올려진 것은 아비처럼 귀신 씌워진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 굿판에 던져져 '집단 린치'를 당했던 '트라우마'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데 서투르다, 혹은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진 '인간형'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그리고 아버지가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마을과 주변 사람들에게 '범죄자'로 낙인찍인 채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한 인물을 그려낸다. 거기서 그 인물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범죄적 행동은 드러나지 않은 채 '타자'의 시선, '타자'의 통념만으로 규정된 채 무리 밖으로 내쳐져버리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누가 더 사이코패스일까? 
도현수의 수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향에서 도망나와 일하게 된 중국집, 그곳에서 그는 남순길을 만난다. 3년 여를 같은 방을 쓰며 지내던 남순길, 하지만 그는 도현수가 모아놓은 천 만 원에 눈독을 들이고 그를 죽이려 한다. 오로지 자신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도현수를 죽이려는 남순길, 그의 공격을 피하려던 도현수는 그가 찌르던 칼로 남순길을 도리어 공격하려 하지만 결국 그 자신만이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도망치고 만다. 

그러나 도망치던 도현수는 그만 빗속에서 백만우의 차에 치고만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백만우의 아들 백희성이 되고만다. 아직도 자신의 집 은밀한 곳에서 진짜 아들 백희성을 간병하고 있는 백만우 부부, 그런데 진짜 아들을 대신하여 백희성 노릇을 하는 도현수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않다. 모처럼 며느리 차지원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백만우 부부의 태도는 사이코패스라는 도현수보다 더 사이코패스 스럽다. 남순길 사건이 벌어지고 찾아간 어머니의 약국에서 어머니는 다짜고짜 백희성이 된 도현수의 따귀부터 올려친다. 아무리 편의에 의해 길렀다지만 길러진 정의 흔적보다는 오로지 도현수로 인해 자신들의 안위에 어떤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불쾌해 하기부터 하는 백만우 부부이다. 

형사인 며느리로 인해 불편하다 못해 불안해 하는 어머니에게 도현수는 말한다. 차지원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남순길을 제압하고 칼을 들었을 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악령'과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 그 아버지의 손에는 굵직한 개 줄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현수가 쥔 그 칼로 어서 찌르라는 듯 그게 니 본성이라며 '종용'하는 듯한 미소를 띤다. 그렇게 늘 수시로 도현수의 눈 앞에서 도현수의 '본능'을 부추기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집요한 등장'을 차지원만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줄을 쥐고 악령같은 기억으로 등장하는 친아버지, 새로운 신분을 제공했다지만 얼음장처럼 차갑다 못해 사사건건 자신들이 쌓아올린 사회적 명망에 오점이 될까 다그치는 의붓 부모, 돈 천 만원에 칼을 들이대는 동료, 도현수가 살아온 시간 속에 만난 인물들은 본투비 도현수보다 더 사이코패스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서는 거침없이 도현수를 겁박하고 위협한다. 당연히 가장 의심스러운 도현수를 지켜보다 보니 도현수보다 더한 '위악적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는 <악의 꽃>이다. 

도현수가 선택한 삶, 그는 차지원을 선택하여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범죄 욕망을 잠재우려 했다지만, 그는 그저 평범한 삶을 누리고자 한다. 아내와 딸과 함께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영상을 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하고 그 누구보다 자상하고 헌신적인 일상을 꾸려가던 도현수, 하지만 그의 '소박한(?) 소망은 대번에 그가 도현수라는 걸 알아본 김무진의 등장으로 틈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벌어진 틈은 그가 애써 꾸려온 가정, 무엇보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믿던 아내 차지원 형사와의 사랑에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다. 

by meditator 2020. 8. 7. 14:45

지난 5월 17일 첫 방송을 연 <바람과 구름과 비>가 21부작으로 7월 26일 막을 내렸다. 평균 5%를 넘는 시청률로 수려한 연출, 그리고 모처럼 만나본 일관성있는 작품의 전개는 그동안 작품성있는 사극에 목마른 시청자들의 갈증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이병주 원작의 소설을 21부의 드라마로 각색한 <바람과 구름과 비>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왕좌의 꿈을 꾸었던 점바치 최천중의 야심으로 시작된 원작 소설을 강직한 강화군수인 아버지를 둔 양반가 자제였지만 권문 세가의 야욕에 희생되어 멸문지화의 위기에 몰린 최천중(박시후 분)이란 인물로 새로이 각색해내며 시작되었다.

과거에 급제했던 총명한 선비였으나 요절할 운명이라는 산수도인의 예언으로 인해 관직에 나가는 대신 강화 군수인 아버지를 돕는다. 그러나 장동 김문의 모략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 자신도 생명이 위태롭게 된 최천중은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 위해 '사주 명리학'을 무기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한양에 나타난 최천중은 그의 세 치 혀로 권문세가 김문은 물론, 대왕대비 조씨, 그리고 상갓집의 개처럼 지내던 야인 대원군(전광렬 분)을 사로잡는다. 

자신을 멸문지화로 삼은 장동 김문에 대해 복수를 하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권력을 세우겠다던 포부를 가지게 된 최천중은 진정 백성을 위하는 왕을 옹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눈에 띈 왕재는 바로 대원군, 그리고 그의 아들 고종이었다. 마치 '도원결의'를 하듯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대원군과 손을 맞잡은 최천중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 고종을 왕위에 등극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권문 세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런 그의 꿈은 그가 도운 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내세우며 결국 모든 권력을 장악해가며 갈등을 빚는다. 또한 왕권에, 아니 자신의 손아귀에 권력을 집중하고자 하는 대원군의 눈에 가난한 백성들을 도우려 동분서주하는 최천중은 동지처럼 여겨졌지만, 최천중이 만든  '삼전도장'에 갈곳없는 백성들이 모여들고 그들이 최천중을 '왕'처럼 의지하자 '권력'의 위험 요소로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대원군이 탄압하는 천주교인에 외국인까지 최천중의 그늘로 숨어들자 대원군의 의심은 극에 달한다. 최천중의 '애민심'이 대원군의 눈에는 또 다른 권력 의지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옹립한 대원군 암살에 나선 최천중 
결국 대원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최천중은 그를 피해 외유 생활 3년을 거친 후 돌아와 자신이 옹립한 권력 대원군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명성황후'가 되는 민자영을 돕는 한편, 중신들과 대비와 도모 대원군을 '제거'하고자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그가 최후에 선택한 방법은 비록 명리학에 밝은 그가 보기에 대원군의 세상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의 치하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더는 놔둘 수 없어 그 스스로  대원군을 제거하는 것이다. 

21회, 영길리에서 배운 기술을 통해 대원군의 잔칫상에 놓인 거문고에 화약을 숨기고, 거기에 술을 흘려 폭발을 시도한 최천중, 하지만 '대의'를 앞둔 그의 눈 앞에서 어린 소녀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다시 뛰어들어가 거문고를 멀리 던져 버린다. 화약은 폭발했지만 최천중이 던져버린 덕분에 대원군은 목숨을 구하게 되고 최천중은 팔과 다리가 잘린 채 효수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스스로 자신이 벌인 '암살 시도'를 스스로 무위로 돌려버린 최천중, 이 어이없는 상황은 주인공 캐릭터의 '자멸'이었을까? 아니 외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사실인 '역사' 속에서 가상의 영웅 최천중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앞서 20회, 궁정에서 대원군을 축출하려던 최천중은 그의 의도를 누설한 김병학으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그런 최천중에게 자신과 다시 한번 함께 할 것을 권유하는 대원군, 그런 대원군의 명에 따라 최천중은 병인양요가 일어난 강화로 향한다. 대원군의 청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전쟁터로 가겠다는 최천중은, 처형장에서 죽을 위기에 놓인 오랜 그의 연적 채인규(성혁 분)를 동행한다. 그리고 그의 도주를 눈감아 준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그 누구라도 더는 죽음을 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최천중의 생각은 오랫동안 그를 죽이려고 했던 옛 벗 채인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다. 최천중을 견제하기 위해 그의 오른팔과 다름없는 용팔용(조복래 분)을 잡아간 대원군의 앞에 최천중은 그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끓는다. 그런 최천중이었기에 대원군의 목숨이라는 대의 대신, 기꺼이 희생양이 될 뻔한 두 소녀의 목숨을 앞세운 것이다. 지금까지 '대의명분'을 앞세웠던 '역사적 인물', '영웅'이라고 한 사람들의 행보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대원군을 암살하러 갈 때에도 그 스스로 앞장섰던 최천중은 자신이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그와 함께 했던, 그를 따랐던 사람들을 도피시킬 장소를 마련해 놓는다. 그런 그들이 힘을 합쳐 최천중을 구했지만 그들을 마련한 연해주로 보내고 홀로 대원군을 찾아가 마지막 총구를 겨눈다. 

 

 

실패한 영웅, 최천중의 길 
그 마지막 대결에서 최천중은 한때는 뜻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길이 다른 이유를 말한다. 대원군이 '왕권' 중심의 '왕권 강화'를 일관되게 고집하고, 그를 위해 다시 한번 자신과 손을 맞잡을 수 없겠냐며 애증의 권유를 최천중에게 했지만, 최천중은 말한다. 이제야 자신은 진정한 '왕재'를 보았다고. 늘 최천중이 다른 권력에 대한 야욕이 있을까 두려워했던 대원군은 그 말에 눈이 번쩍하지만, 최천중이 말한 '왕재'는 다름 아닌, '민중', '백성'이었다. 

명리학을 통해 권문 세가를 징벌하고 백성들을 위한 왕으로 고종과 그의 아비 대원군을 도왔던 최천중, 강화의 백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애썼던 강직했던 아버지를 도왔던 이래, 최천중의 화두는 늘 '백성'이었고, 그 백성을 위한 정치를 위해 숱한 시행착오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더는 일개인의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왕'에 의해 다스림을 받지 않는 '백성'들이 주체가 되는 '나라'였다. 왕조국가의 '지양', '민주주의'에 대한 '자생적'인 깨달음이자 '지향'을 '선포'한 것이다. 

끊임없이 백성들을 위한 더 나은 정치를 위해 대원군도, 명성황후도 도왔지만, 그들이 결국 도달한 곳은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며 <바람과 구름과 비>는 최천중이라는 이상적인 개혁가를 통해 '민주주의의 탄생'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저 '예언'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살리려 하는 한 사람, 비록 그가 자신의 적이었던, 지나가다 본 가엾은 가족이었든, 혹은 적을 죽이러 들어간 암살의 현장에 등장한 소녀였든 그 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애에 대한 '실천'을 일관되게 실천하며, 민주주의 주체가 진짜 누구인가를 드러낸다. 

역사적 사실을 빗겨갈 수 없듯이 가상 인물인 최천중에 의한 대원군 암살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실패였을까?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거둔 최천중은 그가 일찌기 마련해 놓은 연길리의 조선인 마을로 돌아간다. 이미 그곳에는 그를  따르던 삼전도장 사람들이 '마을'을 일구고 그가 미리 써놓은 '지침'에 따라 이제 '학교'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 결국 '조선'이라는 난파선에서 최천중이라는 부표를 따라 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그들만이 아니다. 강화도에서 그가 살려준 소녀의 이름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여사였다. 그렇게 '최천중'은 이제 망해갈 조선을 구하기에 앞장 설 독립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이렇게 <바람과 구름과 비>는 그간 역사물이 말해왔던 '영웅'과는 다른 영웅담을 논한다.

최천중은 실패했다. 그는 백성을 위한 권력을 옹립하지도 못했다. 그가 도운 대원군도, 명성황후도 결국 자신들의 권력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야욕에 눈이 멀어갈 때도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천중은 최후의 수단으로 대원군을 '암살'하려 했지만 그 마저도 실패했다. 정말 그가 실패한 것일까? '거사'는 실패했지만, 최천중은 망해갈 조선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했다. 그런 최천중의 실패한 성공을 통해 <바람과 구름과 비>는 권력의 쟁취가 목적이 아닌 진짜  영웅에 대해 묻는다. 소의를 위해 대의를 희생하는 영웅, 대원군 시대라는 역사를 통해 길어낸 '우리 시대'의 영웅, <바람과 구름과 비>였다. 

by meditator 2020. 7. 27. 02:30

우리나라 가족 드라마에는 일종의 '전형'이 있다.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 경제적이거나,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거나 하는 '위기' 상황에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위기'를 기회로 다시 뭉친다. 얼굴 붉히며 싸웠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을 모아 가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그 함께 위기를 돌파하는 것으로 '가족'의 갈등은 어느 틈에 얼음이 녹듯 풀어지고 가족들은 함께 웃으며 그래도 '가족'이 최고여~ 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만으로 그간 가족 간에 내재되어 있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 역시 가족이 행복하게 함께 웃으며 16회의 막을 내렸다. 그런 면에서는 여느 가족 드라마의 엔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함께 웃음에 이르는 그 과정의 해법은 그간 우리나라 드라마가 추구했던 방식과 다르다. 모두 함께였던 그간 가족 드라마와 달리, <가족입니다>는 단호하게 말한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제대로 서야, 개개인이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먼저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에 방점이 찍힌다. 

엄마가 떠났다
15회 마지막 장면, 엄마 진숙씨(원미경 분)는 가족들을 불러모은다. 저녁 시간, 예전 같으면 '엄마표 음식'으로 그간 엄마의 음식에 적조했던 가족들을 불러모아 한 끼를 챙겨먹이느라 애썼을 엄마가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고 오라 말한다. 한 명씩 찾아오는 은주(추자현 분), 은희(한예리 분), 지우(신재하 분), 세 명의 자식들을 앉혀놓고 엄마는 그간의 쌓인 감정을 폭발한다. 

은희가 헤어진 애인때문에 언니를 찾아갔을 때 언니가 날린 '팩폭' 때문에 무려 5년 동안이나 언니와 '의절' 아닌 의절을 했을 때도, 은주가 이혼을 했을 때도, 그리고 이제 막내 지우가 일언반구 말도 없이 집을 나갔을 때도, 그곳에 엄마, 아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마다 엄마의 가슴은 미어졌지만,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자식들은 엄마에게, 아빠에게 의논 한 자락없이 늘 일방적으로 자신의 일을 결정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엄마는 '너희에게 가족은 뭐니?'라고.

엄마가 이렇게 그간의 설움을 폭발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막내는 대번에 무릎을 끓었다. 그런 막내에게 아버지는 당장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은주도, 은희도 자신들에게 서운함이 켜켜이 쌓인 엄마의 마음을 풀고자 애쓴다. 

이 '일반적인 가족들의 노력'이라는 해법으로 여느 가족 드라마가 가는 '해피엔딩'의 길을 걸어가는가 싶었는데, <가족입니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엄마가 떠난 것이다. '졸혼'에서 한 발 더 성큼, 엄마가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1년 여, 엄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버텨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시간을 스스로 치유한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정처없이 떠나고 싶던 그 마음을 실천한 것이다. 

모두가 집을 떠났었다. 결혼을 하고, 혹은 독립을 하거나, 이제 막내는 '가족'이라는 부담스러움을 피해, 그리고 아버지 상식 씨는 '졸혼'을 하겠다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해 집을 나섰었다. 모두가 떠났을 때도 엄마는 집을, '가족'을 지켰다. 그런 엄마가 이제 떠났다. 

은주를 가지고, 은주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상식 씨와의 결혼,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변해버린 상식 씨을 견디며 아이들을 품으며 가족을 버텨냈던 엄마, 그 시간은 결국 엄마에게 '졸혼'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결정하도록 했다. <가족입니다>는 '졸혼'에 이르기까지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엄마에게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준다. 가족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가족들로부터의 '위로' 대신 이제 엄마 스스로 한 사람으로 온전히 서는 것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가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웠던 엄마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엄마가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자신을 발길 닫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집'을 지킨다. 

엄마만이 아니다. 사라져 버리려던 막내는 그 이유를 큰 누나처럼, 혹은 작은 누나처럼, 누나들에 휩쓸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것같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가 스스로 물음을 던졌던 막내 지우는 비록 '사기'에 휘말렸지만 '가족'을 떠나 온전히 '자신'만으로 서보려고 했다. 
 

   

 

따로  또 같이 
지나왔던 시간 동안 '자신의 비겁했던 열등감으로 인해 가족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고 일관했던 아버지가 '회개'하며 찾아온 엄마와 아빠의 '해빙 모드',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섣부르게 '졸혼'을 뒤엎지 않는다. 서로가 '졸혼을 해도 아이들의 부모라는 점에서는 '세트'라는 사실에 공감했지만, 아버지가 다시 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따고, 엄마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서로가 당당한 사람으로 서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다. 우리는 남이다라는 원심력으로부터 가족이라는 구심력의 출발점이 마련된다. 

우리 사회는 늘 공동체라는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용해시키는 것을 우선하는 시절을 지내왔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 변화하는 세대에서 이제 더는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없는 시절이 되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시대, 이제 가족도 변해야 한다고 <가족입니다>는 말한다. 

아버지는 그간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었지만 '졸혼'을 선택한 엄마를 존중한다. 평생 부부로 살면서 하지 않았던 '존중', 그로 인해 나무 등걸처럼 딱딱해진 부부 관계의 굳은 살이 조금씩 풀어진다. 시작은 연민이었다. 어느 틈에 늙고 병들어 버린 배우자에 대한 연민, 하지만 여느 드라마들이 '연민'으로 퉁쳐버린 노년의 삶을 <가족입니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연민을 바탕으로 한 '존중'으로 끌어 올린다. 1년 여를 집을 떠나 떠도는 아내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아버지의 기다림에 엄마는 가족 여행을 가자는 아버지의 소원에 응답한다. 나이든 부부가 서로가 불쌍해서 함께 산다는 흔한 '화해'를 넘어 나이가 들어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결론을 내린다. 

 

 

서로 배다른 형제였다는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서먹해졌던 3남매의 관계는 끈끈한 핏줄 대신 의절을 할 만큼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연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은주와 은희 자매는 은주가 홀로 감당하기 힘든 '이혼'의 과정에서 은희의 한결같은 따스함으로 경계를 풀기 시작한다. 거기에  본인은 비난이 아니라 정당한 지적이라고 하지만 늘 동생들에게는 가차없이만 느껴졌던 은주의 '거리감'은 오랜 시간 홀로 감내했던 이질감의 벽을 허물자 그 속에 담긴 '진심'의 무게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 아무리 어려운 시간을 곁에 있어줄 수 있지만 각자 삶의 과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듯이 세 남매 각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가족입니다>는 양보하지 않는다. 은주의 이혼, 은희의 복잡했던 연애사와 일, 그리고 지우의 도발적인 가출, 모두에 세 남매는 때론 힘이 되어주고, 달려가 줄 수는 있지만 거기까지 일 뿐이다. 

그렇다면 각자도생해야 하는게 가족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각자도생'의 과제가 '가족'의 해체는 아니라고 드라마는 힘을 주어 말한다. 가슴 속에 앙금이 남은 채 '졸혼'을 한 어머니는 행복했을까? 남편 태형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리감으로 시달리던 은주가 외려 이혼을 한 후 전남편 태형과 편하게 대화를 하고 웃을 수 있듯이, 서로가 온전히 스스로 지켜낸 자존에서 부터 관계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어머니를 활짝 웃으며 반길 수 있는 각자의 건강함이 모여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by meditator 2020. 7. 22. 03:13

tv조선의 토,일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는 유일한 사극으로 5%대의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7월 19일 5.1% 닐슨 코리아 ) 이병주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0 권 분량의 방대한 내용을 21부작 드라마로 압축하여 전개, 매 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7월 18일 토요일 마지막 장면, 대원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고종이 최천중과 그의 아버지를 사면복권하며 최천중을 잡으려 군사를 풀었던 대원군의 허를 찌르는 '엔tv조선의 토,일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는 유일한 사극으로 5%대의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7월 19일 5.1% 닐슨 코리아 ) 이병주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0 권 분량의 방대한 내용을 21부작 드라마로 압축하여 전개, 매 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7월 18일 토요일 마지막 장면, 대원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고종이 최천중과 그의 아버지를 사면복권하며 최천중을 잡으려 군사를 풀었던 대원군의 허를 찌르는 반격을 개시했다. 3년 전 대원군에 의하여 쫓기다 결국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이역만리까지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 동안 사랑하는 여인 봉련은 대원군의 볼모가 되어 대원군이 원하는 미래를 점쳐주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돌아온 최천중은 자신의 적인 건 물론, 이제 경복궁 중건 등으로 백성들에게 장동 김문 못지 않게 원성을 사고 있는 대원군 이하응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우선 자신과 인연을 맺은 규수 민자영을 고종의 왕비로 간택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편, 고종을 사이에 두고 대원군과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있는 대왕대비 조씨에게 접근하여 대원군 이하응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한다. 섭정이란 미명아래 전권을 휘두르는 대원군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최천중의 복권은 그저 한 사람 최천중의 재등장 이상, 효(孝)를 내세워 허수아비 신세로 만들어 버린 고종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요, 정적인 대왕대비와의 힘겨루기에서 허를 찔린 형국이 되었다. 거기에 최천중의 후원을 받은 왕비는 호시탐탐 고종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최천중은 고종을 설득하고 대왕대비, 중신들과 모의하여 당상관 회의에서 대원군의 실각, 일종의 '명예 혁명'을 시도하는데, 7월19일 일요일 밤 방영된 19회에서는 야심차게 시도한 최천중에 의한 대원군의 퇴진은 바로 전날 발생한 경복궁에서의 화재 과정에서 당황한 고종에 의해 대원군이 먼저 선수를 치며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원군의 실각을 도모한 최천중 
똑같이 고종의 앞에서 마주한 최천중과 대원군 이하응, 하지만 바로 하루 차이에 방영분 속 상황은 하늘과 땅만큼 달라졌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고종, 그리고 그의 섭정자 대원군을, 이제 다시 자신의 손으로 물리고자 했던 최천중의 시도는 19회에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최천중은 일찌기 그의 오른팔과 같은 용팔용에서 '조선의 난파선론'을 피력한 바 있다. 난파선과 같은 조선,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망할 운명이니 일찌감치 스스로의 몸을 뺄 것인가, 아니면 난파선이라도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배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인가. 거기서 최천중은 후자의 운명을 선택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점바치가 된 신세에도 백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들을 돕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재산마저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최천중.

그런 그가 자신의 '점바치' 능력을 활용하여 조선을 쥐고 흔드는 부패한 권력을 갈아엎고자 하는 바는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그는 대원군과 손을 잡고 장동 김문을 축출하는데 앞장섰고 성공했다. 그 뒤를 이어 그가 일찌기 왕재라 예언했던 고종이철종의 뒤를 잇고, 그의 아비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어 '섭정', 하지만 말이 '섭정'이지 실질적인 '국정'의 주인이 되었다. 

 

 

허약해진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대원군 이하응과 백성들을 위한 권력을 세우겠다는 '개혁' 의지에서 의기가 투합했던 최천중,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후대의 왕이라 치켜세우는 최천중을 노여워하는 대원군은 이미 백성들을 위한 권력보다 자신의 권력이 우선이었다. 당연히 최천중과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최천중은 그 '순진무구'한 개혁에의 의지로 호랑이한테 나라를 맡긴 셈이 되었다. 그의 사주 명리학적 능력을 활용하여 부패한 장동 김문을 밀어냈지만, 결국 그가 손잡은 건 또 다른 '권력'일 뿐인 셈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내민 건 훗날 대원군의 가장 큰 정적이 되는 명성황후 민자영이었다. 그의 의도야 어떻든 결국 최천중은 19회까지만 보면 그의 알량한 개혁에의 열망으로 조선을 구렁텅이로 빠뜨려가는 '조력자'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주인공의 캐릭터 붕괴일까? 그것보다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난파선에 기꺼이 남고자 하는 '영웅적 캐릭터'가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부패한 권문 세가, 그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꺼이 기며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던 대원군 이하응이 보인 모습은, '왕조 시대'에 '개혁'을 꿈꾸던 최천중에게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왕권'은 권력의 맛을 본 순간, 이미 더 이상 '백성'이 없다. 어떻게해서든지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한 '욕망'의 정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대원군을 '결자해지'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유부단하기 그지 없는 고종, 그리고 거기에 조력자일 줄 알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될 명성황후의 야망은 '위로부터'의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꿈꾸던 저잣거리의 영웅 최천중에게 결국은 '명예롭지 않은' 선택의 길에 대한 고민을 안길 것이다. 

왕조 시대의 시대적 한계 안에서 백성들의 '안온한 삶'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대원군도, 민자영도 결국은 백성들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면, 그 어떤 왕도, 왕의 측근도 백성들의 평안을 도모해 줄 수 없다면, 결국 최천중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 <바람과 구름과 비>가 마지막에 보여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by meditator 2020. 7. 21. 01:36

단막극의 장벽은 높았다? 4부작 <미쓰 리는 알고 있다>가 첫 회 야심차게 4.2%로 출발했지만 2,3%대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2회 3.2%, 3회 2.4%) 하지만, 단막극의 장벽이라기엔 kbs2 <출사표>가 2.7%, jtbc의 <우리, 사랑했을까>가 2.084%(닐슨 코리아 7.15 기준)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볼 때 수목극 전체의 문제가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유투브나 넷플릭스 등 시청자 주도형의 콘텐츠가 융성하면서 불가피하게 받아들 수 밖에 없는 결과물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 리는 알고 있다>는 mbc 극본 공모 당선작답게 신선한 플롯의 전개를 3,4부에 걸쳐 선사했다. 지난 1,2회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양수진(박신아 분)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혐의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양수진,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의 사망 원인은 목이 졸려 죽은 질식사였다. 5년전 뺑소니 사고로 어머니가 전신마비가 된 후 필리핀으로 도망가 버린 아버지 대신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한편 피팅 모델까지 해가며 병수발을 들어온 양수진은 집요하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했었다.

그녀가 죽은 건 5년 전 뺑소니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면 피팅 모델로 일하며 살아왔던 그녀의 이력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누나라 부르며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을 정도로 추근댄 서태화(김도완 분)? 그가 죽이려고 덤벼드는 양수진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병운 건설의 사위 이명원(이기혁 분)일까? 

사건 전후로 cctv는 의도적으로 삭제되었고, 양수진이 사는 아파트는 오랫동안 재개발 문제로 시끄러운 상태였다. 재개발을 좌지우지하는 미쓰 리는 양수진네와는 언니 동생하며 친했지만 서태화를 자식처럼 보살피며 서태화의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보호자'이다. 양수진이 떨어져 죽은 동의 104호에 사는 재개발 조합장 부부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하고, 관리소장(우지원 분)은 총무(김예원 분)의 부탁으로 cctv를 지웠다. 이렇게 양수진의 이웃에 사는 모두가 범인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1,2회가 진행되었다. 

형과 동생, 엄마와 아들? 뜻밖의 관계들
하지만, 2회의 마지막 서태화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그 집을 수색하기 위해 아파트로 온 인호철 형사(조한선 분)는 양수진의 집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조용히 그 집으로 들어선다. 그 때 인호철의 눈에 띤 건 정신없이 양수진의 집을 뒤지고 있던 이명원, 그런데 이명원이 자신을 발견한 인호철에게 형이라 부른다! 

바로 이렇게 양수진의 주변 인물 모두에게 혐의를 두고 진행되면 사건은 2회 엔딩에서 이명원이 인호철에게 형이라 부르며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다. 양수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밝히려고 했던 어머니 뺑소니 범은 알고보니 이명원이었고, 이명원의 범죄 사실을 당시 사건 수사관이었던 인호철이 무마해 준 것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어린 동생이던 이명원, 그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희생했던 인호철은 검사로 임용되어 성공 가도를 달릴 동생의 앞길을 차마 막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생 이명원 대신 양수진을 친누나처럼 따르다 사랑해 버린 서태화를 범인으로 몰고가려한다. 하지만 서태화에게는 자신의 차로 인호철의 차를 밀어서라도 서태화를 보호하려 하는 미쓰 리, 이궁복(강성연 분)이 있었다. 대놓고 미쓰리하며 무시를 하는데도 보모라기에는 과할 정도로 서태화를 위해 애쓰는 미쓰 리, 인호철을 그런 미쓰리가 서태화를 낳은 미혼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과 동생, 엄마와 아들, 스릴러였던 드라마는 이제 숨겨진 가족 관계들이 드러나며 새로운 전개가 펼쳐진다. 뿐만 아니다. 의뭉스럽게 무언가를 숨기던 봉만래 조합장의 사연은 치매 걸린 아내가 양수진을 죽였다는 오해로 부터 시작되어, 사업을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아들에, 원치 않는 결혼으로 생활비를 대줘야 하는 딸까지 등장하며 비장한 노부부의 자살 시도로 이어진다. 

숨겨진 사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결국은 드러나고만 양수진의 사망 사건, 거기엔 복수를 다짐하며 접근했다 그만 그 사람을 사랑해버리고 말아버린 양수진의 비극적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자살에 가까운 도발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양수진을 이명원이 10층에서 추락시키게 만드는 '비극'의 도화선이 되고 만다. 

하지만, <미쓰 리는 알고 있다>가 '요건 몰랐지'하고 최종적으로 내민 카드는 인호철도, 이명원도, 그리고 양수진도 모두가 병운 건설이라는 '자본'이 벌인 장기판의 '말'이었다는 진짜 비극이었다. 

자신의 동생이 저지른 사건인 줄 알고 무마해 버린 그 5년 전 교통 사고의 실제 범인은 이명원이 아니라, 이명원과 결혼한 병운 건설의 딸 한유라(김규선 분)였던 것이다.  병운 건설은 현장의 증거를 말소하고, 술에 취한 채 기억을 못하는 이명원에게 사건의 기억을 뒤집어 씌우고 인호철마저 이용한 것이다. 

비록 '거악'은 모두를 '장기판의 말'처럼 가지고 논 '자본'이었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인호철이 벌인 한번의 눈감음이 결국 토네이도를 발생시킨 나비의 날개짓처럼 양수진을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간 군상들의 그림자'라는 지점에 방점을 찍으며 인호철과 그의 동생이 벌인 '탈도덕적 행위'를 자신의 이해 관계와 핏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궁복과 다르지 않게 군상들의 스케치처럼 그려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제법 괜찮은 형사가 그 직위를 해제당한 것만으로 충분히 '처벌'받았다는 것일까? 이명원 역시 마찬가지다. 양수진을 직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했지만 10층 추락사에 책임이 있는 그가 병운 건설의 비리를 고발하고 검사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어쩐지 '면죄부'를 받는 듯 보여지는 상황은 마찬가지로 씁쓸하다. 마치 병운 건설의 사위 자리를 잃은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단죄'를 받은 것처럼 보여진다. 

 

스릴러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3,4부에 이르러 드라마의 톤이 바뀌어 '휴먼 드라마'의 톤이 되며 '스릴러'가 가져야 할 '냉정한 시선'은 방향을 잃고 '사람 사는 이야기'의 '페이소스' 가 곁들여 지며 캐릭터들은 급 '휴머니스트'들이 되어간다. 인호철은 '회개'하며 사건을 잘 마무리하고 멋지게 퇴장한다.  재개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이궁복은 양수진의 죽음에 대해 급 반성하며 '재개발' 따위 그래봐야 돌과 콘크리트 덩어리라며 가진 재물 모두에서 손을 뗀다. 재개발의 부질없음을 논하고 싶었던 것일까. 부동산 신화의 물거품같음을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었던 것일까. 

 

한 여성의 죽음 이면에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들의 혈연과 이해 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던 의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들이 '스릴러'의 미덕이랄 수 있는 '인간미'의 경계에서 누그러뜨려지지 않는 제대로 된 해결을 기대하며 짧은 4부작이나마 정주행해온 스릴러의 시청자들에게는 양수진의 안타까운 죽음만큼이나 아쉽다. 

by meditator 2020. 7. 17.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