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에 기만, 이런 성향을 높게 나타내는 사람을 반사회성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한다. <악의 꽃> 도현수의 어릴 적 친구라는 김무진 기자(서현우 분)는 도현수를  '사이코패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면 다 '살인범'이 되는 것일까? '사이코패스'면 무조건 다 나쁜 놈일까? <공항가는 길>, <마더> 등을 통해 관습적이고 통념적인 관계에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왔던 김철규 피디가 이번에도 그 단어만으로도 '범죄'가 연상되는 '사이코패스'라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을 묻는다. 


사이코패스의 과거 
자타공인 '사이코패스' 도현수(이준기 분),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행동 양상을 보였던 그는 이제 병원장인 백만우(손종학 분)와 약사인 공미자(남기애 분)의 아들 백희성으로, 그리고 차지원 형사(문채원 분)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금속 공예가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가던 백희성의 일상은 '도현수'를 알고 있던 김무진 기자의 등장 그리고 한때 도현수와 동거동락했다던 남순길의 죽음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도현수'가 소환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도현수, 그의 과거가 무엇이었길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살아왔던 것일까? 2002년 연주시에서 발생한 6명의 살해 및 암매장 사건의 범인 도민석, 그는 도현수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평소에도 이상한 태도를 보이던 도현수를 아버지가 벌인 살인 사건의 공범이라고 의심한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도현수가 사라지던 당시 벌어졌던 이장 살해 사건의 범인을 도현수라 추정한다. 그로부터 18년 , 도현수는 여전히 이장 살해범으로 용의자 신분인 상태다. 

김무진을 만나 본의 아니게 회고하게 된 '과거', 그곳에서 되새겨진 김무진과 도현수의 우정'은 우정이 아니라, 김무진에 의한 일방적인 '이지매' 현장이었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돌팔매를 맞아야 했던 도현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순길의 죽음에서 다짜고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 연주시 연쇄 살인, 그리고 다시 한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린 도현수가 김무진의 부추김에 의해 자신에게 씌워진 살인 용의를 스스로 벗겨내기 위해 어릴 적 살았던 가경리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기억에 떠올려진 것은 아비처럼 귀신 씌워진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 굿판에 던져져 '집단 린치'를 당했던 '트라우마'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데 서투르다, 혹은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진 '인간형'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그리고 아버지가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마을과 주변 사람들에게 '범죄자'로 낙인찍인 채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한 인물을 그려낸다. 거기서 그 인물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범죄적 행동은 드러나지 않은 채 '타자'의 시선, '타자'의 통념만으로 규정된 채 무리 밖으로 내쳐져버리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누가 더 사이코패스일까? 
도현수의 수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향에서 도망나와 일하게 된 중국집, 그곳에서 그는 남순길을 만난다. 3년 여를 같은 방을 쓰며 지내던 남순길, 하지만 그는 도현수가 모아놓은 천 만 원에 눈독을 들이고 그를 죽이려 한다. 오로지 자신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도현수를 죽이려는 남순길, 그의 공격을 피하려던 도현수는 그가 찌르던 칼로 남순길을 도리어 공격하려 하지만 결국 그 자신만이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도망치고 만다. 

그러나 도망치던 도현수는 그만 빗속에서 백만우의 차에 치고만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백만우의 아들 백희성이 되고만다. 아직도 자신의 집 은밀한 곳에서 진짜 아들 백희성을 간병하고 있는 백만우 부부, 그런데 진짜 아들을 대신하여 백희성 노릇을 하는 도현수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않다. 모처럼 며느리 차지원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백만우 부부의 태도는 사이코패스라는 도현수보다 더 사이코패스 스럽다. 남순길 사건이 벌어지고 찾아간 어머니의 약국에서 어머니는 다짜고짜 백희성이 된 도현수의 따귀부터 올려친다. 아무리 편의에 의해 길렀다지만 길러진 정의 흔적보다는 오로지 도현수로 인해 자신들의 안위에 어떤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불쾌해 하기부터 하는 백만우 부부이다. 

형사인 며느리로 인해 불편하다 못해 불안해 하는 어머니에게 도현수는 말한다. 차지원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남순길을 제압하고 칼을 들었을 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악령'과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 그 아버지의 손에는 굵직한 개 줄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현수가 쥔 그 칼로 어서 찌르라는 듯 그게 니 본성이라며 '종용'하는 듯한 미소를 띤다. 그렇게 늘 수시로 도현수의 눈 앞에서 도현수의 '본능'을 부추기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집요한 등장'을 차지원만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줄을 쥐고 악령같은 기억으로 등장하는 친아버지, 새로운 신분을 제공했다지만 얼음장처럼 차갑다 못해 사사건건 자신들이 쌓아올린 사회적 명망에 오점이 될까 다그치는 의붓 부모, 돈 천 만원에 칼을 들이대는 동료, 도현수가 살아온 시간 속에 만난 인물들은 본투비 도현수보다 더 사이코패스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서는 거침없이 도현수를 겁박하고 위협한다. 당연히 가장 의심스러운 도현수를 지켜보다 보니 도현수보다 더한 '위악적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는 <악의 꽃>이다. 

도현수가 선택한 삶, 그는 차지원을 선택하여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범죄 욕망을 잠재우려 했다지만, 그는 그저 평범한 삶을 누리고자 한다. 아내와 딸과 함께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영상을 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하고 그 누구보다 자상하고 헌신적인 일상을 꾸려가던 도현수, 하지만 그의 '소박한(?) 소망은 대번에 그가 도현수라는 걸 알아본 김무진의 등장으로 틈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벌어진 틈은 그가 애써 꾸려온 가정, 무엇보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믿던 아내 차지원 형사와의 사랑에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다. 

by meditator 2020. 8. 7.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