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상반기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에서 배우 송중기는 극중 주인공인 이탈리아 마피아의 전담 변호사 콘실리에리로 분했다.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전력을 가진 빈센조, 하지만 그를 입양한 양부모는 강도의 손에 살해당하고 이탈리아 마피아 손에 길러지게 된다.
죽은 마피아의 돈을 찾기 위해 돌아온 고국, 하지만 그는 돈 대신, 자신을 품어 준 변호사 홍유찬의 죽음 앞에서 예의 마피아 콘실리에리의 능력을 발휘해 법의 비호를 받는 재벌가를 징벌한다. '악은 악으로 응징한다', 친모에게서, 그리고 고국에게서 버림받은, 마피아 출신 변호사라는 그의 배경이, '안티 히어로'로서의 빈센조라는 존재 이유가 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법과 상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정의에 대한 갈증을 마피아 식으로 풀어내는 콘실리에리 빈센조에게 열광했다.
윤현우의 이생망? 그로부터 1년 여, 배우 송중기는 또 다른 안티 히어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미 웹툰으로 화제가 되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마피아에게 잔혹하게 복수를 하고, 거대한 포도밭을 태우는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 끌었던 <빈센조>의 첫 회와는 정반대로, 대를 이은 재벌가 순양의 기획조정본부 산하 미래자산 관리팀장으로 등장한 현재 윤현우의 삶은 척박하다.
동료 직원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대상인 윤현우, 하지만 말이 관리 팀장이지 '재벌가의 미래'인 재벌가 식구들을 위해 그는 변기 뚜껑을 직접 갈고, 감정 조절못해 휘두른 골프채에 피를 보는 처지이다. 그래도 '거절도, 판단도, 질문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그에게 '동앗줄'이 내려온다. 처음으로 한 '판단'으로 새로 취임한 진성준 회장에게 보고한 페이퍼컴퍼니에 관련된 사안, 그 자리에서 진성준은 그를 재무팀장으로 발령하고 그 자산을 찾아오라는 명을 내린다. 홀홀단신 해외로 날아간 윤현우, 여유롭게 돈을 찾았지만 누구하나 도울 사람없는 그곳에서 벼랑 끝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가난한 집안의 사연있는 장남,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무능한 아버지와 고시생 동생을 부양해온 윤현우, 흙수저 출신으로 자신을 갈아 겨우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 어이없는 죽음이라니, 말 그대로 '이생망!'
1987년의 재벌가 자제로 인생 2회차 그런데 '이생망'이었던 윤현우의 의식이 깨어난다. 가난한 집안 흙수저였던 그가 깨어난 것은 사라진 순양가 3남, 진윤기의 둘째 아들로였다. 윤현우이던 시절, 쓰러진 진영기의 병실에 찾아와 자신의 사라진 둘째 아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면 지분을 주겠다던 진윤기의 처 이해인, 그런데 이제 윤현우가 그녀의 아들 1987년의 진도준이 되어있었다.
기존 드라마와는 다르게 금토일, 매주 3회 편성을 한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번 생에서 죽임을 당한 '이생망'의 주인공을 과거로 소환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온 주인공, 언제나 그렇듯 '과거의 역사'를 아는 주인공은 그곳에서 이미 강자이다. 그런데 하물며 비록 서자지만 순양가 3남의 자제라니. 비록 순양가에 발도 못붙이게 하지만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인생 2회차가 우선 <재벌집 막내아들>의 관전 포인트이다.
과거로 소환된 윤현우, 아니 이제 진도준은 그렇다면 무얼 하고 싶을까? 당연히 우선 그에게 최우선 목표가 된 건, 현재의 시절 윤현우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범인'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가 비밀 문서를 진성준에게 준 것을 안 비서실장 허정도의 배후가 누구일까?
그런데 배후를 알기 위한 진도준의 행보는 좀 다른 궤도를 그린다. 이미 현재에서 자격이 없음에도 순양가의 '미래'로 등극한 진성준, 그를 넘어 자기 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진양철 순양 그룹 회장의 눈에 들고자 한다. 바로 이미 살아본 자로써의 '어드밴티지'를 이용해.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이라는 불특정한 재벌가를 등장시켰지만, 역시나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머릿 속에 그 누가 떠오르는 현대사의 재벌가를 배경으로 '아는 자'가 되어 돌아온 현재의 흙수저 진도준의 복수를 넘어선 야망을 통해 ,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양 김 통합이라던가, 다음 대통령이라던가, 지나온 역사의 순간에 던져진 진도준이 그걸 '치트키'로 이용해 진양철의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이 아는 이야기임에도, 아니 아는 이야기라 더욱 흥미를 배가시킨다. 진도준과 함께 역사를 아는 시청자들이 그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래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과거의 재벌을 굽어보는 묘미를 드라마는 한껏 보여준다.
또한 그에 더해 칼기 피격사건에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저쪽 경기도 짜투리 '분당 땅'을 얻은 진도준이 시세차익으로 거대한 자금을 손에 넣고 그를 이용해 진양철- 진영기 - 진성준으로 이어지는 장자 상속의 룰을 헤집고자 하는 거대한 구상은 <빈센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복수물'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물론 드라마는 그저 진도준의 야심과 복수만으로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1987년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서태지의 은퇴를 둘러싼 현재의 적이었지만, 이제는 '연인'의 인연을 풀어가는 서민영과의 만남, 영화 수입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타이타닉>에 투자하고, <나홀로 집에>를 수입하라는 진도준의 조언은 마치 <응답하라 1987>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빈센조>가 송중기에 전적으로 의지한 드라마였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가 회장 진양철에 이성민에, 진영기에 윤제문 등 연기파 배우의 다수 포진으로마치 현대 재벌가판 <용의 눈물>을 보는 듯 쟁쟁한 연기 경합의 장을 펼친다. 식구들 모두 눈도 못마주치는 진양철 앞에 말간 눈으로 그를 휘두르는 진도준이라니, 이미 그의 복수는 '성공' 중이다.
물론 그런 보여진 진도준의 광폭 횡보 아래, 과연 윤현우는 왜 진도준으로 깨어났을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드라마는 제기한다. 사라졌다는 진도준, 그리고 친아들이 아닌듯했던 윤현우, 윤현우가 진도준이 된 건 필연이었을까 라는 물음표, 출생의 비밀이라는 우리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마저 <재벌집 막내 아들>을 내포하고 있다.
<빈센조>에 이어 또 새로운 장르물로 <재벌집 막내 아들>이 배우 송중기의 빛나는 필모그래피가 될까? 무엇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플롯과, 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입성이 기대되고 반갑다.
tvn 월화 드라마로 찾아온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랑스 원작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프랑스 시청률 1위 작품으로 시즌 4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작품은 매회 실제 유명 배우인 줄리엣 비노쉬, 모니카 벨루치 등이 극 중 배우로 등장하여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snl 코리아 시즌 4>와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백승룡 피디와 <회사 가기 싫어>의 박소영 작가 등이 함께 리메이크했다.
조여정, 이희준, 진선규가 '고객' 메쏘드 엔터를 이끌던 황태자의 발인 날, 그의 무덤 앞에서 그가 일찌기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 진선규가 추모사를 한다. 여전히 대표를 '형'이라 부르며 눈물짓는 진선규, 그런 그에게 맞은 편의 이희준이 '분위기 이렇게 만들고 어쩔 거야'라며 일갈한다. 그러자 진선규 배우는 고인이 즐겨부르던 노래로 추도사를 마무리하겠다며 노래를 시작한다.
마이크를 들고 눈물 머금은 목소리로 진심을 다하는 진선규의 열창, 그런데 진선규의 노래 한 소절이 끝나자 이희준이 나선다. 진선규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뺏으려 하고, 진선규는 뺏기지 않으려 하고,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마이크를 뺏고 뺏기며 노래를 이어가고, 결국 클라이막스에서 절묘한 이중창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부등켜 안는 두 사람, 배우로써 데뷔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을 몰아갔던 애증의 시간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진선규, 이희준, 두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연기가 보장되는 두 배우가,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이중창을 불러제끼는 이 장면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배우의 수상 소감에서도 등장했던 '코를 높였어야 했어'라는 진선규 배우의 이야기가 에드립인지, 대사인지 모르게 등장하는 이희준 배우와의 애증의 해프닝, 그리고 그 해프닝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오래전 대학로에서 했던 사자 분장으로 등장한 두 배우의 '살신성인'의 카메오를 넘어선 '열연'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 연기 잘하는 두 배우와 매니저로 등장한 서현우, 곽선영이 어우러진 한바탕 난장의 현장, 모처럼 배우들의 펄떡거리는 연기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엔터업계 1세대 매니저인 왕태자가 이끄는 메쏘드 엔터를 배경으로 이곳을 직장으로 삼은 연예인 매니저들과 그들의 '생업 전선'인 메쏘드 엔터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을 내용으로 한다. 프랑스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첫 화 우아한 한복 차림의 조여정이 그녀의 이름 그대로 김중돈 매니저(서현우 분)의 '고객'으로 등장한다.
이제는 20대가 아닌 여정, 그래서 그녀와 작품을 하기로 했던 '타란티노 감독'은 그녀와 하기로 했던 영화에서 20대 회상 씬을 그녀가 소화하기 힘들겠다는 이유로 진캐스팅을 취소하려 한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김중돈, 배우와의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만 차마 그녀에게 나이가 많아서 캐스팅에서 '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현실에서도 이제는 젊지 않은 조여정이란 배우가 그녀가 배우로서 가진 핸디캡을 그대로 극중 캐릭터로 이입한 1화, 저절로 보는 이들이 극중 매니저 김중돈의 마음이 되고 만다. 중돈이를 찾아다니는 여정, 그런 여정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중돈, 눈치없는 신참 소현주(주현영 분)으로 인해 사실을 알게 된 여정은 중돈을 찾아내 자신을 믿지 않는 중돈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수습에 나선 마태오(이서진 분)는 타란티노 감독의 서울 로케에서의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여정의 캐스팅을 살려낸다. 그리고 여정에게도 20대의 캐릭터를 위해 '시술'을 강권하는데, 캐릭터를 위해 시술을 하려는 여정과 그런 여정이 안쓰러운 중돈의 동행, 결국 드라마는 두 사람의 신뢰와 의리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결말을 맺는다.
여전히 스타인 조여정이 목제 말에 올라타서 말타기를 배운다는 웃픈 현장, 그리고 선그라스로 가린 채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 배우의 현실적 모습과 극중 캐릭터를 오가는 이 날 것과 가공의 경계선에서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의 묘미가 생겨난다.
이희준과 진선규 역시 마찬가지다. 연기파인 두 사람이 해묵은 애증으로 인해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황태자의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의 오랜 속내를 다 내뱉으며 육박전에 돌입하는 해프닝은 이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배우가 자신의 이름으로 실제와 가공의 캐릭터 사이를 오가며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극중 매니저로 등장하는 서현우, 곽선영, 이서진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진 매니저로 등장하여 이들의 연기를 유연하게 받쳐준다.
스타라는 존재,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매니저들, 그들의 직장 매쏘드 엔터, 이런 '밥벌이'의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욕망과 열정이 생생하게 맞부딪치며 그들이 불협화음이 한 편의 진솔한 화음으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프랑스에서 시청률 1위를 했던 원작답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스토리에 날개를 달아준 건 줄리엣 비노쉬, 모니카 벨루치가 부럽지 않을 까메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진솔한 연기를 보여준 조여정, 이희준, 진선규의 열연이다. 그리고 그 못지 않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이서진, 곽선영, 서형우의 발군의 연기가 정의와 불의가 아니면 드라마가 안되는 듯한 요즘 드라마계에서 모처럼 진솔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드라마볼 재미를 찾아준다. 그래서 궁금해 진다. 다음엔 또 누가 나올까? 또 어떤 배우의 진솔한 모습과 캐릭터의 이중주가 흥미롭게 펼쳐질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르겠지만, 기자 세대와 그 언저리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쥘 베른'의 작품을 한번쯤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꼭 원작은 아니다. 하다못해 고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로도, 소년소녀 명작 전집의 축약본으로, 그게 아니면 성룡 주연의 영화로,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비롯하여,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의 작품을 만났다.
그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 작품이라면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아닐까 싶다. 1873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영국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가 프랑스 하인 장 파스파루투를 데리고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영국 식민주의 시대, 그리고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증기기관차가 다니고, 기구가 막 세상에 등장하던 시절, 필리어스 포그는 이러한 '문명적 수단'을 활용하여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클럽 동료들과 내기를 건다.
클럽으로 가는 걸음 수를 정하고, 면도물 온도가 약간 맞지 않는다고 하인을 해고한 필리어스는 자신이 믿는 '과학적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리고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 이탈리아로 기차를 타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 이집트로, 인도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필리어스의 여정을 통해 작가 쥘 베른은 자신의 진보적인 세계관을 펼쳐낸다.
21세기 버전 80일간의 세계 일주 그간 고전을 21세기적 세계관에 맞춰 재해석해왔던 영국의 bbc가 <80일 간의 세계 일주>를 작품화했다. 우리에게는 가장 인기있었던 <닥터 후> 시리즈의 주인공이던 데이빗 테넌트가 전형적인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데이빗 테넌트 버전 <80일간의 세계일주>에는 어떤 현대적 해석이 들어가 있을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일행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점이다. 클럽에서 필리어스의 관심을 끌었던, 80만에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기사를 쓴 주인공, 애비게일이 합류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기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에비게일은 필리어스의 친구였던 아버지의 이름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딴 에비게일 픽스로 자신의 길을 떠난다.
또 한 사람 주목해야 할 사람은 흑인 배우 이브라힘 코마가 분한 하인 파스파르투이다. 흑인 루팡과 여성 홈즈가 새로이 해석되는 시대, <80일 간의 세계일주>는 프랑스 출신 하인 파르파르투를 흑인으로 설정한다. 당연히 유색인종 파르파르투는 그가 가는 곳곳마다 편견과 오해를 맞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런 인종적 갈등을 서사의 씨줄로 삼는다. 싸움을 피해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이 된 그는 사실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보고 도망치듯 떠난 전세계를 떠돌던 이, 원작에서도 온갖 아력을 자랑하던 캐릭터의 업그레이 버전으로 그는 다양한 외국어 구사에, 도둑질까지 해결사이자, 트러블 메이커가 된다.
2만 파운드를 내기를 걸고 떠난 필리어스, 하지만 그는 원작과 달리, 클럽만 오가는 '샌님'이었다. 심지어 오래 전 사랑하는 여인과 세계 일주를 떠나자 약속해놓고 그녀를 남겨둔 채 도망친 적이 있는 겁쟁이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받은 '시계탑 사진' 뒤의 'coward(겁쟁이)'라는 단어에 뒤늦은 출발을 한다.
이처럼 드라마는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원작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리버풀조차 가보지 않은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에비게일, 파르파르투 백인 남성, 여성, 그리고 흑인 남성 세 사람의 성장 서사가 된다. 그리고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보적 시각을 설파한다.
저마다의 과업이 된 세계일주 '우물 안 개구리'같았던 필리어스 포그, 그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방문 중, 인도인 여주인에게 당당하게(?) 영국이 철도도 놓아주고 인도를 발전시켰다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그가, 때로는 본의 아니게, 때로는 스스로의 의지로 가는 곳마다 여러 사건에 개입하며 그의 편협했던 의식을 변화시켜 나간다.
인도에서 마치 '세포이 반란'과도 같은 상황에서, 그는 처음에는 무사히 기한 내에 다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탈영한 용병을 위해 그의 입장에 서서 변호를 아끼지 않는다. 프랑스로 가는 배 위, 처음 타본 배멀리에 구토를 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던 그는 증기 기관차의 나무 벽을 떼서 태우며 무너져 가는 다리를 건너는 모험을 앞장서는 모험가로 거듭난다.
특히 미국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처럼 백인우월주의자를 호송하는 흑인 보안관과 동행한 상황에서, 그는 백인이자 영국인으로서 그간 그가 가져온 신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무인도에 떨어지고, 감옥에 갇히고, 목숨이 경각에 이르는 상황을 겪으며 백인 부르조아 필리어스의 세계는 깨져간다. '겁쟁이'였던 그는 이제 하인과 그저 여자 기자였던 파스파르투와 에비게일을 기꺼이 '친구'라 부르는 진정한 '신사'로 성장해나간다.
필리어스 포그가 백인 부르조아로서의 자기 세계에 갇혀 있었다면 에비게일이 넘어야 할 인생의 산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버지가 하던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약하던 그녀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딸이었다. 아버지의 성대신 어머니의 성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향했지만 늘 그녀는 기사를 써서, 그 기사를 아버지가 기사화했는가에 목말랐다.
하지만 영국 사교계에서 지탄받는 여성에게 사막에서 도움을 받고, 그녀를 통해 뛰어난 기자가 아닌 비겁한 협잡꾼인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되며 에비게일의 세상은 무너진다. 이제 진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에비게일이라는 존재로 세상에 다시 첫 발을 내딛은 그녀, 필리어스 포그를 따르는 기자가 아니라, 때론 그와 파스파르투의 목숨을 구할 정도로 거침없는 모험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혁명가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쳤던 파스파르투, 하지만 프랑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혁명가로 성장한 동생이었다. 그리고 다시 동생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파스파르투, 그는 늘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한 발 비껴선 채,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으로 여행의 일원이 된 파스파르투는 위기와 모험을 함께 하지만 하인이라는, 혹은 유색인종으로서의 규정된 존재론적 고민으로 때론 필리어스를 위기로 빠뜨리기도 하고, 여행 자체가 중단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루팡 급의 파르파르투의 능력치는 늘 위기의 세 사람을 구해내며 하인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만난 인종 갈등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며 늘 도망치기만 하던 그가 비로소 도망자 파스파르투의 딜레마를 극복해 낸다.
<텐트 밖은 유럽>이 9월 28일 9회차 8박 9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무리된 여정, <바퀴달린 집>의 강궁 피디가 요즘 인기를 끄는 캠핑의 장소를 '유럽'으로 바꿔놓았다.
말이 8박 9일이지, 시청자들이야 출연진의 여정에 따라 유유히 물 흐르듯 프로그램을 즐기면 그만이지만 출연자들은 인터라켄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린델발트, 푸르카패스, 가르다, 피렌체, 토스카나, 로마에 이르기까지 1,484km의 긴 여정동안 날마다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싸고를 반복했다.
일찌기 철학자 들뢰즈는 특정한 삶의 가치와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가며 사는 '노마드적 존재'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굳이 철학자의 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어서 대륙을 건넌 인류의 궤적은 그대로 '노마디즘' 그 자체이다. 머물 수 없음, 혹은 머물지 않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캠핑'이란 '놀이'에 천착하는 건 그런 인간의 류적 본성을 확인하는 행위일지도. 그러기에 매일 매일 짐을 싸고 풀며 유럽의 종주한 <텐트 밖은 유럽>의 고달픈 여정이야말로참으로 '인간적'이다.
토스카나를 걷다 피렌체에서 토스카나로 가는 여정, 일행은 차로 우선 캠핑장을 향했다. 하지만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서있는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다. 잠시 내려 광활한 언덕을 바라보며 걷던 일행, 결국 토스카나 캠핑장에서 다음 날 차 대신 걷기를 택하기로 결정한다.
마치 사막을 걷듯, 끝없이 펼쳐진 토스카나 평원 위를 걸어가기 시작한 다음 날, 무릎이 좋지 않은 윤균상이 무릎 보호대까지 차며 시작한 길이지만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스위스에 도착한 이래 계속 일행을 시달리게 했던 유럽이 한낮 더위, 마치 우리의 늦여름 날씨처럼 그늘만 들어서면 시원하다지만 그늘마저 만나기 쉽지 않은 여정을 온전히 두 발로 걸어내야 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차를 타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풍경, 하지만 막상 걷고 보니 타는 듯한 땡볕에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하지만 그걸 두 발로 걸어내야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그 또한 우리 삶의 모습과 참 닮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걸로는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그래서 그 과정의 고통과 아픔을 다 감내해야만 그 뒤에 얻게 되는 삶의 결과들처럼 말이다. 온 얼굴에 수건을 싸매고 걸어내야 하는 행군, 처음엔 활기차던 이들이 하루 온종일을 걷고 보니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그래도 하루를 마치며 진선규는 말한다. 아마도 유럽에 다시 온다 해도, 다시 이 길을 걷게 되기는 쉽지 않을 거라며, 그래서 다시는 올 수 없는 시간이라고.
여행도, 삶도 선택이다 마지막 캠프 로마를 향해 떠나는 날, 일행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사다리 타기로 도시락을 싸고 떠난 길, 차를 타고 가다, 보이는 언덕 위의 도시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이들이 유해진이 싼 김밥을 먹겠다고 들른 곳은 '오르비에토', 광장 중앙에 고풍스런 성당이 자리잡은 중세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유명한 도시이다.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에 자리잡은 소품 가게, 거리의 상점들, 그곳을 관광객들이 누빈다.
성벽을 돌고 돌아 올라가는 길, 벌써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르다. 하지만 일행은 아랑곳없이 도시락 먹을 곳을 찾느라 분주하다. 고원 위에 자리잡은 오르비에토에서 도시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뒤로하고, 도시락 먹기 좋은 장소를 찾은 일행은 맛있게, 그리고 아쉽게 유해진이 싼 김밥을 나눈다. 도시락을 먹고 나니 더운 유럽 날씨에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생각이 간절한, 하지만 유럽에는 '아아'가 없다. 김치에 물탄 거를 예를 들며 '에스프레소'의 원조로서 자부심을 애써 이해하려하며 일행은 커피집을 찾아 도시를 거닌다. 아기자기한 골목과 상점이 볼만하니 거기를 기웃대기도 하고, 그러다 광장에 자리잡은 거대한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오르비에토 성당은 13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건물 내부와 외부 곳곳에 중세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당을 일행은 커피집을 찾으로 이리저리 헤매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까지 가서 좋은 곳을 더 볼 생각을 안하고, 도시락 먹을 곳이나 찾으러 다니다니?
하지만 어디 오르비에토 뿐인가, 심지어 피렌체는 차장 밖으로 그 유명한 베키오 다리를 '주마간산' 식으로 보고 지나쳤다. 여정의 마지막 날 찾은 로마, 오르비에토에 들러 점심을 먹고 캠핑장에 도착해 밥도 해놓고 이러다 보니 로마를 구경할 여유가 많지 않다. 해지기 전에 캠핑장으로 돌아가려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아니 로마까지 가서 그러구 여행을 마무리짓나, 그렇다면 피렌체는? 아니 이들의 여정 곳곳에 알고보면 참 볼 것이 많았다. 스위스는 곳곳이 풍경이 예술이었고, 이탈리아는 발걸음 닿는 곳곳마다 유적지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보려 한다면 8박 9일 아니라 80박 90일이라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은 그 발걸음 닿는 곳곳이 다 유명 여행지인 곳들을 섭렵하지 않는다. 유명한 곳이지만 그 모든 걸 다 주워넣는 대신, 오르비에토처럼 우연히 만난 기쁨의 순간으로 남겨둔다.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가보는 대신 캠핑 본연의 취지에 집중한다. 물론 사이프로스 나무 사이를 기꺼이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스위스의 호수에 몸을 담그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유명한 곳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8박 9일의 여정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여행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라는 공간에 흠뻑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요즘 회자되는 유툽 동영상 중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 교수의 대학 졸업식 축사가 있다. 남다른 이력을 자랑하는 그답게 그의 축사도 독특하다. 80년의 인생을 날로 치면 3만 일, 그 중 얼마나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은퇴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 듯한 병원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 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그의 말 속 인생의 정해진 듯한 여정은 마치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남들이 다 보고 간 그곳을 다시 따라가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인생은 '변덕스러운 우연'이 모질게 구는 것이다. 답정너처럼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답정너에 매달려 삶을 소모하는 대신, 인생의 여정 끝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쉬움 없이 만나려면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건 <텐트 밖 유럽> 속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 네 사람이 여행하듯 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눈 앞의 봐야 할 것에 연연하는 대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러 가다 만나게 되는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처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온전한 경험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말이다.
<바퀴달린 집>도 특별하지 않았다. 캠핑카를 타고 머물고,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슴슴한 하루의 시간 속에 사람사는 지혜가 찾아졌었다. <텐트 밖은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몸담은 호수와 땀 흘리며 걸은 길과 골목 사이에서 만난 풍경들, 그리고 그곳을 온전히 느끼는 일행들의 시간 속에서 여행의 묘미와,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남궁민, 이세영, 서하준, 이규형, 정려원, 현재 작품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박은빈, 서현진, 소지섭, 이종석은 얼마전 종영을 한 작품의 배우들이다. 이름만으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 이들 배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그들이 작품 속 분한 캐릭터가 모두 '변호사'이다. 9월 23일부터 sbs를 통해 시작된 <천원짜리 변호사>는 2015년 sbs극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동네 변호사 조들호>와의 표절 문제로 몇 년간 발목이 묶였던 작품이다. 그간의 고전이 무색하게 <천원짜리 변호사>는 전작 <오늘의 웹툰>의 1%대의 시청률이 무색하게 대번에 8%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변호사들이 난무하는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이 '연기'와 '흥행'에 있어 입증된 배우인 남궁민인 점도 있지만, 1,2회에서 보여주듯이 단 돈 천원에 서민들의 아픔을 속시원하게 달래주는 서민형 변호사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변호사라면 <법대로 사랑하라>의 김유리 역의 이세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직 검사인 김정호의 건물의 세입자인 김유리는 '로카페'를 열어 동네 주민들의 법률 상담과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다.
<검사 내전>, <마녀의 법정> 등을 통해 법조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정려원은 디즈니 플러스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노착희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녀의 상대역 역시 꼿히면 돌진하는 변호사 좌시백(이규형 분)이다. 일일드라마도 빠지지 않는다. mbc의 일일드라마 <비밀의 집>에서 주인공 우지환(서하준 분)은 어머니의 실종을 밝히기 위해 '흙수저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분을 십분 이용한다.
이처럼 최근 변호사가 주인공인 작품들은 그들이 변호사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홍길동'처럼 세상의 불의와 맞선다. 그를 위해서 <빅마우스>의 이창호(이종석 분)는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정은 수술실같다'는 모토 아래, 의사 출신 변호사가 된 한이한(소지섭 분)은 마치 양 날의 칼처럼 의학과 법을 양 손에 쥐고 휘둘러 '의학 카르텔'의 민낯을 벗겨낸다.
심지어 <닥터 로이어>가 방영될 당시, 동시간대 sbs에서도 변호사가 주인공인 <왜 오수재인가>가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다. 로펌 최고 변호사였던 오수재는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맞서 그녀가 가진 '법'이라는 무기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뽐낸다. 동시간대 드라마 모두가 변호사가 주인공인 시절, 이 정도면 변호사 '만능시대'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변호사 드라마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따라올 드라마가 없을 듯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그녀가 가진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남다른 기억력을 살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을 했고, 한바다의 신참 변호사로 활약한다. 드라마는 변호사가 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허들을 낮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 뿐만 아니라, 동성애, 여성의 차별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사연을 그녀가 수임한 사건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그에 앞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라는 '특별한 캐릭터'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변호사 홍자영(전여빈 분)과 함께 법과 법의 경계를 넘어선 활약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역시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간다.
검사도 많다 그런데 홍길동 같은 존재는 변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돌아온 도경수가 택한 작품은 kbs2의 <진검승부>이다. 거기서 그는 '불량 검사'가 되어 부와 권력이 만든 성역, 그 안의 악의 무리들을 속시원하게 깨부순다고 한다. <진검 승부>가 방영되면 kbs2 드라마는 월화수목 모두 변호사이거나 검사이거나, '법'이라는 장르 드라마들로 채워진다.
검사는 또 있다. 2019년 <시크릿 부티크> 이후 역시나 오랜만에 복귀한 김선아는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에서 로펌 대표인 할아버지와 법과 대학 교수인 어머니의 계보를 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 검사가 되었다.
검사이거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들,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다 적어도 한 곳에서는 변호사나 검사를 만나게 된다. 우스개 소리로 현실에서 거의 만날 일이 없는 변호사와 검사들이 드라마에서는 '판을 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변호사나 검사들은 한결같이 '정의'롭다. 한때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노착희나, <빈센조>의 홍차영처럼 돈앞에 영혼을 팔던 변호사라 하더라도 운명적 사건을 겪으며 2014년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분)처럼 '개과천선'을 하여 정의의 사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언제나 법과 결탁한 부의 '카르텔'이 있다. 그리고 그 카르텔은 애꿏은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제국을 공고히 하려 한다. 이런 '제국', '카르텔'에 맞서 극중 주인공들은 홀홀단신, 혹은 그들 주변의 조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조자룡의 칼'처럼 '법'을 휘둘러 이 거대한 제국을, 카르텔을 붕괴시킨다.
정의에 대한 갈증인가 안이함인가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은 달라도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언제나 정의는 승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앞서 2014년의 <개과천선>이나, 2016년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때만 해도 가끔 화제를 끌던 '법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왜 이렇게 범람하게 되었을까? kbs2의 월화수목을 휩쓸고, mbc의 <닥터 로이어>를 <빅마우스>가 이어받듯이 시청자들은 매일 법조인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열혈 검사 이준기의 거침없는 활약을 다룬 sbs 금토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왜 오수재인가>의 변호사 오수재이다. 그런데 10%대의 높은 시청률로 박수를 받던 이들 드라마의 후속작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내보인 <오늘의 웹툰>은 안타깝게도 1%대의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변호사 남궁민이 이끈 <천원짜리 변호사>는 첫 방부터 8% 고지를 넘는다. 이처럼 여전히 시청자들이 시청률로 호응하는 바 법조인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 지게 된다.
또한 '정의'에 대한 여전한 사회적 갈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변호사이거나, 검사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 카르텔로 부터 튕겨져 나온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악의 속성을 잘 알면서 동시에 그들을 '정의롭게 무찌를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법정에 서서 그들을 통쾌하게 '단죄'하는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이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가 정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정의'를 구현해내는 '서사'에 있어 드라마 제작진들이 '안이'하다는 지점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호기롭게 상대 악을 응징하는 쾌감, 그건 현실에서 여전히 '환타지'의 영역이다. 즉 여전히 드라마가 말하고픈 '정의'는 담론을 넘어서는 구체성에 있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들은 서사를 통해 법적인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지만, 그런 법조인 드라마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려가 되고 있는 '법 전횡 시대'에 대한 본의 아닌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고단한 한 주, 혹은 하루를 보낸 시간, 저마다 자신만의 '힐링 스팟'을 찾게 될 것이다. 기자의 경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느긋한 드라마'를 찾게 된다. 편안한 관계, 나도 모르게 레시피를 찾아보게 된 맛있는 음식들, 야곰야곰 어느새 10부작을 완주하게 된 드라마 <녹풍당의 사계절>이다. .
일본의 명문 숙박업 가문이 있었다. 그 가문의 후계자인 쌍둥이 두 손주, 이란성 쌍둥이인 이들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여 불철주야 공부와 사업에 매진하려 했던 야코우(후지이 류세이 분)와 달리, 동생이던 스이는 어릴 적부터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직원으로 일하던 료칸에서는 예의 그 사람좋음으로 인해 직원 관리에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결국 어려운 사정만 봐주다 돈문제를 일으키게 된 스이에게 야코우는 대놓고 나가라고 면박을 주고 만다.
그저 사람좋기만 하던 스이, 야코우는 그런 식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사명 하나로 '열일'하던 야코우는 '료칸'을 잘 나가는 호텔 사업으로 이어갔다. 그렇다면 료칸에서조차 쫓겨난 스이는 어떻게 됐을까?
녹풍당의 네 남자 료칸 사업을 하던 할아버지는 은퇴 후 '차'에 빠지셨고 고풍스런 '녹풍당'이란 찻집을 운영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녹풍당, 야코우는 문을 닫는게 맞다고 했지만, 스이는 할아버지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곳을 그렇게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업하게 된 '녹풍당', '스이다운' 그곳에는 세상에 상처를 받고, 휴식을 취하고픈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녹풍당의 사계절>은 시미즈 유우의 원작 만화를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앞서 할아버지의 '다도'를 이어받은 스이, 바리스타 구레(사에키 다이치 분), 요리를 담당하는 토키타카(히야마 쇼노 분), 디저트 담당 츠바키(오오니시 류세이 분)까지 '먹거리'의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는 네 명의 남성들이 녹풍당을 이끈다.
드라마의 우선 볼거리는 차, 커피, 요리, 디저트에 이르는 '산해진미'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 속 오무라이스를 덮은 계란이 하도 '고와' 보여서, 드라마에서 하듯이 계란물을 후라이팬에 풀어 젓가락으로 살짝 주름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것처럼 우선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보는 이의 '시각적 만족'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먹거리를 매개로 한 '힐링'이 제공된다. 직장 일에 치인 한 여성이 녹풍당에 앉아 일을 하려고 하다, 녹풍당의 달달한 케잌과 음식을 먹다 그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에피소드처럼 드라마는 '먹거리'를 매개로한 '힐링'을 주요한 소재로 삼는다. <심야 식당>,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의 계보를 잇는 또 한편의 미식 힐링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힐링'이 가능한 전제가 되는 건 녹풍당을 이끌어 가는 네 명의 주인공들이다. 료칸에서 직원의 어려운 사정을 봐주다 쫓겨난 스이답게 할아버지의 찻집에 불과했던 녹풍당에 저마다 사연이 있는 또 다른 세 명을 불러들인다.
스이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토키타카는 어렸을 적에 '천재 도공'이란 화제의 인물이었지만, 어린 천재 도공을 '가십'을 삼은 언론으로 인해 유일한 보호자였던 작은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이제 '도자기를 빚은 일'대신 녹풍당의 요리 담당이 되었다. 아직 어린 츠바키 역시 혹독한 도제 수업에서 인정받지 못한 실력을 녹풍당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늘 활기찬 구레,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구레는 벤치에서 밤을 샌 듯한 소년에게 자신과 함께 '동호회'를 하자며 끌어들인다. 그런데 늘 웃통을 벗어제치며 근육 만들기에 열심인 구레의 동호회라는 게 소년의 또래인 듯한 무리들과 함께 '오리배'를 타는 것이다. 그는 그 소년들과 열심히 만든 근육으로 목이 터져라 오리배를 한바탕 탄다.
구레와 함께 오리배를 열심히 몰던 소년, 하지만 다음 날도 그 소년은 벤치 신세였다. 그런 소년을 구레를 녹풍당으로 데려와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준다. 그리고 그 에스프레소에 담긴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소년, 그런데 그 소년만큼, 아니 그 소년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가정사를 지녔던 일본과 이탈리아 인의 혼혈이었던 구레는 이탈리아 뒷골목을 전전했다고 한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쓰레기통 옆에 쓰러져 있던 구레를 데려온 나이든 바리스타는 구레에게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건넸고, 구레는 그 에스프레소 한 잔의 감동을 잊지 못해 바리스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처럼 동네에서 '전전'하는 소년들을 모아 오리배를 타는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다이내믹'한 우리의 드라마를 보다 제 아무리 인기 만화 원작이고, 일본 아이돌들이 주연을 등장한 드라마라 해도 <녹풍당의 사계절>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면 심심하다. 녹찻물에 밥 말아먹는 '오차츠케'처럼 말이다. '갈등'은 있지만, 마치 '기승전결'에서 '전'에 해당하는 '클라이막스'가 빠져있는 것처럼 이른바 '착한 '드라마이다. 그런데 가끔 혹독한 하루를 지내고 마음을 쉬고 플 때 그 '심심한 드라마'가 오차츠케처럼 위로가 된다. 산해진미의 뷔페를 먹다못해 시달리고 돌아와 출출함을 달래고자 찬 밥 한 덩이 물에 말아 김치 얹어 먹으며 한 숨을 푹 내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턱대고 사람을 믿고 봐주다 가문의 료칸에서도 쫓겨난 착한 청년이 어려운 사연이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아 4인 4색의 까페를 만들고 그곳에서 저마다의 장기를 발휘해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환타지적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착함이 여전히 삶의 기둥이 될 수 있는 서사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4명의 청년들, 거기서 쉬이 연상될 수 있는 '동성애적인 코드'를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다 큰 어른들이지만 '가족'이 필요한 이들이고, 녹풍당은 갈 곳없던 그들에게 가족이 되어준 곳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름과 성을 가졌지만, 어울려 '가족'처럼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공간, <녹풍당의 사계절>은 삶도, 사랑도 고달픈 이 시대 젊은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환타지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녹풍당에 찾아와 달콤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저마다의 시름을 잊어가는 것처럼, 그걸 보는 한 시간여의 시간 동안 세상의 고달픔을 잊게 된다.
11부 마지막 장면, 우영우의 친엄마 태수미(진경 분)가 있는 태산을 찾아간 권민우(주종혁 분)는 말한다. '착한 척 위선이나 떠는 한바다, 그 밑에서 나약해 지고 싶지 않다'고, 여기 권민우 변호사의 말에는 두 가지 논리가 들어있다.
착한 건 위선, 그리고 착하게 살면 나약해 지는 것, '권모술수'라는 별명에서도 보여지듯이 거대 로펌 한바다의 1년 계약직인 권민우는 우영우에 대한 편견이 가장 없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우스개가 있다. 왜냐하면 권민우는 우영우의 자폐조차 권민우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만드는 '아이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였기에, 이제 태산을 찾아와 말한다. 자신이 아는 진실이 힘이고, 무기가 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로만 권모술수가 아니라, '본격' 권모술수의 길에 나선 것이다.
그런 권민우에게 태수미는 우영우(박은빈 분)가 한바다를 떠나도록 하라는 '딜'을 한다. 당장 12회에 그 일을 실행에 옮긴 권민우, 시청자들은 그의 '권모술수'로 인해 고통받을, 그래서 한바다에서 쫓겨날 지도 모를 우영우가 걱정된다. 여느 드라마들이라면 '빌런', 권민우가 드라마적 갈등 요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런 갈등에 대해 조금 다른 접근을 한다 바로 '양쯔강 돌고래'에 대한 질문이다.
변호사는 어떤 사람일까? 12회차에서는 미르 생명의 여직원 정리 해고 사건을 다룬다. 우영우는 해고된 여직원들이 아니라, 미르 생명의 입장에서 변호를 맡게 된다. 극중 보여지듯이 한 직장을 함께 다니는 부부 직원들 중 아내에게 회사는 부당하게 '정리 해고'를 종용한다. 21세기에 '시어머니', '눈치'니 , 남편의 앞길이니 하면서 말이다. 결국 100명이 넘는 여사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고, 이 과정에 승복하지 않은 2명의 여직원이 재판에 나선다.
재판 과정에서 우영우는 혼란을 느낀다. 글로만 드러난 '사실'과는 다르게 , 재판의 과정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겉으로는 남자 직원을 역차별한 것같지만, 사실은 여직원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말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정명석(강기영 분) 변호사를 찾는다.
그런데 정명석 변호사가 언성을 높인다. 화를 내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우영우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물었다.
정명석은 옳고 그름은 '판사'가 판단할 몫이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강력하게 충고한다. 정명석의 말에 따르면 '변호사'라는 직업적 성격상 '가치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우영우는 변호사법 1조 1항을 말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희망 퇴직 권고는 난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우영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한바다' 변호사로써, 강제 퇴직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며 자신들에게 수임을 맡긴 미르 생명의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재판은 결국 원고의 손을 들어준다. 인사부장의 다이어리 속 메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문화된 법 조항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이긴 한바다 변호사들과 미르 생명의 인사부장의 표정이 씁쓸하다. 심지어 인사부장은 다음은 자리 차례라며 착잡해 한다. 반면, '졌잘싸'라며 패소한 여직원들과 '시끄러운 여자' 류재숙 변호사는 얼싸안고 서로를 독려한다.
정명석과 류재숙, 당신은 누구입니까? 미르 생명에 대한 한바다의 법률 자문 사실을 알게 된 우영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뿌르르 정명석 변호사 방으로 달려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는 '어미 고래'와 같다. 우영우 김밥을 하며 영우를 키운 아버지가 집에 있지만, 사회에 나온 영우를 음으로 양으로 보살피는 건 정명석 변호사의 몫이다. 처음 영우에 대한 편견을 가졌지만, 가장 먼저 영우에게 정중히 사과한 이래, 정명석 변호사는 언제나 영우에게 기회를 줬다. 심지어 권민우가 '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어미 고래'같은 정명석이기에 그의 말대로 우영우는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런데 정명석과 우영우, 그들이 속한 대형로펌 '한바다'의 의뢰인은 '미르 생명' 같은 곳들이 많다. 수임료가 비싼 한바다와 같은 곳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온다.
12회 내내 정명석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는 재벌 2세였다. 감옥행이어야 할 그를 '구해주다시피'한 정명석과 또 다른 변호사, 그들은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장재진을 '변호'했다.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의 감형을 했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형량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변호사를 찔러 상해를 입힌다. 당연히 정명석 변호사는 자신도 '린치'를 당할까 두려움에 떤다.
해프닝처럼 등장한 이 사건은 대형 로펌 변호사의 '숙명'을 그린다. 의뢰인이 어떤 사람이어도 그의 '편'에 서야 하는. 반면, 변호사의 '사'자가 검사, 판사의 '事' 와는 다른' 士' 라며 변호사법 1조 1항을 우선하는 류재숙 변호사는 다른 길을 걷는다.
어미 고래같던 정명석 변호사는 난임 치료 사실을 법정에서 쓰지 않으면 안되냐는 우영우의 청을 묵살한다. 반면, 류재숙 변호사는 권민우가 우영우의 이름으로 보낸 한바다의 법률자문 의뢰서를 재판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문에 졌을 수도 있지만, 류재숙은 '졌잘싸'를 밝은 얼굴로 외친다. '패소 전문 변호사'란 류재숙 변호사, 그런 그녀를 우영우는 '멸종 위기'의 양쯔강 돌고래라 한다.
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업무에 쫓기고, 의뢰인이라는 무뢰한에게 쫓기고, 이제 피까지 토하고 마는 정명석, 그런 그와 대비되어 '채소를 덜 잘 가꾼다'는 초라한 사무실, 하지만 넉넉한 인심의 류재숙이 대비된다. 드라마에서는 양 극단의 인물을 ㅖ로 들었지만, 결국 정명석과 류재숙의 삶은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까? 우영우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고래의 삶을 선택할까? 극중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을 읊는 류재숙, 자신을 태워 사랑을 이룬 삶은 아름답지만 쉽지 않다. 유인식 피디의 전작 <낭만 닥터>가 떠오른다. 류재숙을 유심히 보는 우영우, 어쩌면 그녀에게 닥친 위기를 영우는 뜻밖의 선택으로 돌파하지 않을까? 제주 바다에 풀어놓은 수족관 돌고래처럼.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 한 장, 안도연
왕은 '북벌'을 계획했다. 백성들이 당한 수모를 좌시할 수 없다는 그의 결심을 중신들, 그 중에서도 좌상 조태학(유성주 분)이 막아선다. 그들의 전횡을 알기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왕은 출병을 서두르지만, 출병령을 가지고 가던 군사는 비명횡사했다. 수상한 꽃가루를 넣은 음식을 먹은 왕은 하룻밤 사이에 종창이 부풀어 올랐다. 극중 주인공 유세엽(김민재 분)이 종창을 치료하려했으나 오히려 피가 멈추지 않아 죽게 된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첫 회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북벌'을 계획하다 서른 아홉의 나이로 극중 내용처럼 종기 치료를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한 '효종'사의 역사적 사실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 형 소현세자와 함께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대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이덕일이 지은 <조선왕 독살 사건>은 효종의 죽음을 '독살'로 의심했고 드라마는 그런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뒤숭숭한 '호란' 이후의 조선 사회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마음의 병까지도 고치는 '심의' (心醫) 유세풍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아직 유세풍이기 이전에 유세엽인 주인공은 왕을 치료한 자신의 '조선판 메스'가 변색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왕을 죽였다는 사실에 자지러진다. 일찌기 문과 급제를 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 유후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과에 나서 장원을 따냈으며 친구였던 세자의 급체를 해결하여 왕으로부터 '신침'이라 칭송을 받았었다. 하지만 어의와 결탁한 조태학의 세력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들을 구하 왕의 독살을 밝히려 동분서주하던 아버지 유후명조차 피습당하고 만다. 다행히 친구였던 새 왕은 유세엽의 목숨만은 구해주었다. 하지만 '한양'에서 잘 나가던 내의원 수재는 이제 성문 밖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때를 기다리라 동가숙서가숙하던 유세엽과 그의 집안 머습 만복을 계수의원 계지한이 '빛'을 핑계로 잡아앉힌다. 하지만 계수의원에 있으면 뭘하나, 침만 쥐면 그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은 벌벌 떨리는 것을. 그런 그에게 '돈만 밝히는 스승인지, 빚쟁인지 헷갈리는' 계지한은 말한다. '때를 기다리라고.'
일찌기 간질병 궁녀의 치맛자락을 잘라 목숨을 구할 정도로 '의원'으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했던 유세엽이었다. 하지만 가문은 무너지고, 신침이라던 그가 침도 놓지 못하게 되자 세상을 버리려 했다. 목숨을 구하고 계지한이 빚을 핑계로 그를 다시 '의원'노릇을 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의지 상실'이었다. 그런데 벼랑 위의 그를 구하며 살아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를 구하라 했던 그녀 서은우(김향기 분),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의 그녀가 그의 앞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존재'가 되어 나타났다. 자꾸 죽으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픈 그의 '열망'이 '침'이 아니도 환자를 고치는 '심의' 탄생의 서막이 된다.
드라마는 망한 가문의 전직 내의원, 굴러들어온 계수의원 반푼이 유세엽이 '심의' 유세풍으로 거듭나기 위해 두 여인의 삶을 계기로 삶는다.
그 첫 번째 여인은 바로 벼랑 끝의 유세엽을 삶으로 인도한 서은우, 하지만 그녀는 결혼 당일 신랑의 죽음으로 시어머니로 부터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청상과부이다. 또 한 사람은 계수의원의 매병(치매) 할망이다.
유세엽은 서은우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 시어머니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열녀문을 하사받기 위해 그녀가 죽기를 원한다. 친정은 '출가외인'이라는 법도를 들어 그녀를 품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녀의 삶을 바라지 않는 세상에 자꾸만 죽으려는 서은우에게 임금을 죽이고, 아버지도 죽인 거나 다름없는 이제는 능력을 상실한 의원 유세엽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또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문과 급제를 했던 그가 의원으로 마음을 돌렸듯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품어주듯이 매병 할망은 그를 '풍이'라 부르며 보다듬는다. 비록 그런 그녀의 맹목적인 모성이 '매병'으로 인한 착각이요, 정작 풍이는 따로 있지만, 매병 할망을 통해 비로소 유세엽은 계수의원을 자신의 '안식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제 유세엽 대신 할망이 잃어버린 아들 '풍이'가 되어 유세풍이 된다.
침 대신 마음을 돌보다 드라마에서 유세엽이 유세풍이 되도록 매개가 된 두 여인은 '죽어야 하는 여인, 잊혀져야 하는 여인, 버림받은 여인들'이었다. 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성리학을 사회적 윤리관으로 수용한 조선, 중기 이후 '남존여비'의 체계가 확고히 되고, 그런 가운데 남편이 죽은 양반가의 여성에게는 이른바 간접적 '명예 살인'으로 '자결'이 강요되곤 했다. 그 '대가'로 수여되는 '열녀문'은 가문의 영광이자,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남은 자손들에게 '입신양명'의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의와 명분을 위해 여성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삼는 조선이 청에 침략을 당했다. 청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때 소현 세자, 봉림대군과 같은 왕족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계수의원의 할망이 바로 그 포로로 잡혀간 여성이었다. 고향이, 자식이 그리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할망, 하지만 고향 집의 아들은 그런 그녀를 외면했다. '어머니는 이리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온 포로 여성들, '환향녀', 하지만 그들은 돌아온 고향에서 버림받고, 몰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매병'을 앓는 할망을 유세엽이 아들과의 '해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시도 풀어놓지 않던, 아들을 위해 그녀가 시시때때로 챙겼던 물건들의 보따리를 아들 앞에 풀어놓음으로써 할망은 묵은 짐을 내려놓는다.
서은우와 할망, 이 두 여인을 돌보면서 유세엽은 침이 아니라도 의원으로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유세엽은 할망이 자신을 부르던 '풍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택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뿐입니다.
가문이 존재를 대신하는 조선 시대에 그는 이제 자신의 가문 대신 서은우와 할망같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자기 선언을 한 것이다. 심의로서 '유세풍'은 '입신양명'했던 '신침' 내의원 유세엽이란 존재를 버리고, 사회가 외면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가 택한 길은 결국 궁극에 가서 그를 제물로 삼고, 그의 아비를 죽음으로 내몬 선대 왕 독살 사건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벌의 뜻을 꿈꾼 왕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권문 세가, 그들과의 '심의' 유세풍의 대결은 어떻게 풀어질까? 퓨전 사극이라지만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포부가 결코 가볍지 않다.
기차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인의 아들,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 가볼 정도라고 한다. 장래 희망은 기관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차라리 국토교통부에 들어가면 어떻겠니? 말인즉슨 '공무원'이 되라는 거다. 엄마는 사촌 형이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데 아직 자기 아들은 철이 없단다. 의대, 한의대를 목표인 세상, 초등학교 때부터 하다못해 공무원이라도 장래 희망을 삼아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지금 놀자'는 어린이 해방군이 '사상범'이 되는 시절이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이렇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날 선언'은 시작된다. '농사'가 사람들의 주된 '업'이던 시절, 몇을 낳고, 그 중 몇을 잃었고, 그래서 지금은 몇이 남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어른들은 이른바 아이들을 '케어'는 언감생심이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시절의 아이들은 한 반에 7,80 명 교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랐다. 하지만 이젠 지하철에 '임산부' 자리가 배려될 만큼 아이가 귀한 시절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도 낳을까 말까 한 아이가 귀한 시절에 자식은 그만큼 '투자 손실'을 피해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상정'하고 '조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맘'이 보편이 된 시대다.
서울대 나온 방구뽕은 왜 어린이 해방군이 되었나? 여기 잘 나가는 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한다. 그리고 학원에서 있는 동안에는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한다. 이 '강압적'인 학원이 엄마들한테는 인기가 좋다. 원장 선생님이 아들 셋을 다 서울대에 보냈기 때문이다. 극중 부풀려진 면은 있지만 서울대만 간다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만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는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서울대 간 막내 아들이 엄마의 학원 버스를 훔쳤다. 버스만이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을 '납치'했다. '방구뽕'이라고 이름조차 개명했다는 아들은 '어린이 해방군' 대장을 주장하며 재판에 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회의 사건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데는 자폐형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라는 인물을 박은빈 배우가 기가 막히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짓, 몸짓, 눈빛이 표현해 내는 우영우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은 스스륵 빠져든다. 그런 박은빈 배우의 캐릭터 우영우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9화에 등장했다. 방구 '뽕'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구교환 배우, 아마도 그가 아니었으면 '어린이 해방군'이라는 이 터무니없는 설정에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간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 그가 아이들과 한 일이라고는 술래잡기, 비석치기 등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에 나오는 그 별거 아닌 놀이들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 이 편의 제목 '피리부는 사나이'의 결말과 달리, 아이들의 가방을 혼자 짊어진 채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자신들을 찾으로 온 경찰들에게 제 발로 찾아내려온다.
하지만 이 잠시의 일탈에 부모들은 한결같이 들고 일어나 그를 법정에 세운다. 심지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며 탄원서에 사인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 잠깐의 일탈조차 세상의 속도에 뒤처질까 닥달하는 부모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아침에 눈뜨며 /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이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보물'이다. 놀기만 해도 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이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그 '보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아직도 그저 '방구'니 '똥'이니 그런 소리만 들어도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들, 그래서 방구뽕과 함께 '보물'같은 시간에 얻은 도토리 알을 소중한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방구뽕은 '보물'같은 '찰라'의 시간을 선사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그가 '납치범'이란다. 이 시대의 '만화경'이다.
어린이의 '인권'을 묻다 드라마는 학원 원장의 자부심인 서울대 나온 셋째 아들이 개명까지 하고 방구뽕이 되어 등장한 내막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로망인 '서울대'와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의 간극을 통해 그가 살아오며 무엇을 놓쳤는가그래서 뒤늦게라도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짚어보게 만든다.
어떻게든 감옥만은 안보내려는 어머니인 학원 원장과 한바다의 뜻과 달리,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은 구치소에서 '구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우영우 변호사는 방구뽕을 '사상범'으로 주장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은 최후 진술에서 말한다. '나중에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늦습니다.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니체는 말한다. 주사위 놀이, 그 단순한 놀이가 바로 '불투명한 미래 속에 던져진 불안한 삶'에 대한 '대비'라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놀이들이 '주사위 게임'과 같다. 그렇게 삶에 대한 'exercise'를 해보지 않은 채 부모가 마련해준 '학습'만을 하며 큰 아이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삶을 '재단'하려는 부모들, 그런 속에서 크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런 9화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10화의 지적 장애인의 서사와 연결된다. 지적 장애를 가져 1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신혜영(오혜수 분), 그녀와 사귀며 돈을 얻어 쓴 양정일(이원정 분)이 준강간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양정일은 신혜영의 말대로 '제비같은 새끼'이다. 하지만 그를 신혜영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같은' 신혜영의 보호자인 어머니는 그를 '준강간' 혐의로 법정에 세운다.
아이같은 수준의 지적 장애인, 과연 그녀는 '나쁜 사랑'도 할 수 없는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하겠다는 그녀의 엄마,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밤늦도록 학원에 보내는 이 시대 다른 부모들과 다른가? 드라마는 결론을 내렸지만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영우네 김밥 집에 나타난 엄마 태수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주었냐고. 1989년 채택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아동', 혹은 아동에 준하는 존재들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는가? 드라마는 묻는다.
거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앙'을 부르짖던 사람들, 그 추상의 대상이 '우영우'로 변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서울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그 어느 로펌에서도 오라하지 않았던 우영우 변호사, 그녀의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추앙'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7,8화 소덕동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소덕동을 왜 지켜야 하지? 소덕동은 작은 마을이다. 신도시를 위한 도로가 관통하게 될 처지에 놓인 노덕리, 이장을 중심으로 한 대책위원회는 '소덕동 도로구역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하기로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 사건은 이렇게 표현된다. 자로 잰듯 소덕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게다가 소덕동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아름드리 팽나무마저 뽑혀나가야 하는 '행정 편의적'인 결정이다. 심지어 그린벨트라 제대로 받기 힘들다던 보상금이 오를 지도 모른다는 태산의 '입김'에 소덕동 손흥민도, 소덕동 유진박도 등 소덕동 주민들을 콩가루처럼 뿔뿔이 흩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건이다.
그런데 돈 앞에 마을이 결딴나는 이 '도로'의 이름이 '행복로'인 건 아이러니하다. 신도시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소덕동 주민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팽나무는 '희생'되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상식'인 듯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인 결정'에 한바다의 호적수 '태산', 그리고 8회 말에 드러나듯 우여우의 엄마이자, 태산의 대표 변호사였던 태수미(진경 분)가 앞장선다.
물론 한바다도 이 소송을 수임하는 것조차 회의적이었다. 굳이 돈을 더 들여 행복로가 소덕동을 우회해야 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상황에, 소덕동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보여준다. 아직도 손흥민이니 장동건이니, 평범한 이들이 소덕동 안에서는 세상 의미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소덕동을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못됐지만 소덕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이다. 그런 소덕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이장님, 그런 소덕동에 한바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바위의 세상에서 계란의 선택? 소덕동을 관통하는 행복로 건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니 세상을 핑계댈 것 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묻는다.
소덕동 소송 사건이 펼쳐지는 가운데, 권민우는 우영우를 한바다 블라인드 게시판에 고발한다. 부정 취업이라는 것이다. 우영우의 아버지가 한바다 대표와 선후배 사이라는 걸 알게 된 권민우, 안그래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봐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매번 이의를 제기했던 그는 '낙하산'이라며 반발한다.
'부정취업'을 시인하는 우영우, 하지만 '봄날의 햇살'답게 최수연(하윤경 분) 블라인드 게시판을 보고 수근거리는 한바다 사람들 모두가 들리게 큰소리로 말한다. 그게 왜 부정취업이냐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나오고, 변호사 시험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낸 우영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이 애초에 '부정'한 거 아니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회는 이런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이란 화두로 대비시킨다.
'공정'이란 이름으로 한바다의 정당한 절차와, 그 허들을 아버지를 아는 대표의 도움으로 넘어온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그리고 소덕동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신도시 주민들의 편의와 경제적인 비용과 대비되는 소덕동이란 마을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와 정서, 그리고 오래된 팽나무 사이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말이다.
이런 건 어떨까? 7,8회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간 '짐작'했던 우영우의 친모가 드러난 것이다. 태산의 대표 태수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그녀는 정부 관계자와의 사전 검증에서 '혼외자식'이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넘긴다.
대학 시절 우영우 아버지 우광호와 사귀던 태수미는 막상 아이를 가지자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배경'이 된 태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그런 태수미에게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는 '아이'만이라도 낳아주고 가라고 눈물로 읍소한다.
아버지는 영우에게 '부정취업'의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며 자신이 보다 '정치적'으로 살아오지 못함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우영우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사법고시도 치르고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져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우영우에게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후회를 들으며 외려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한 한 청년 우광호 덕에 오늘의 우영우가 있음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며 태산의 대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을 뒤로 미룬 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를 키웠다. 자신의 어머니조차 돌봐주지 않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왕따 당하는 영우를 위해 동그라미네 동네까지 이사를 했다. 왕따의 경험으로 인해 영우가 유일하게 먹게 된 김밤을 말다 이젠 김밥집을 하고 있다.
모두가 조금 더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가 되려하는 세상에 영우의 아버지는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주는 부모가 없다면 세상에 그 기량을 펼칠 수 없다. 우리가 열광하는 우영우가 있기 위해서는 그 우영우를 깨질세라 보다듬은 아버지의 '계란'같은 선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 덕택에 우영우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승승장구'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선택은 돈 대신, 소덕동 사람들과 동산 위의 팽나무를 선택한 이장님을 비롯한 소덕동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돈, 편의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세상의 허들을 힘겹게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권민우처럼 나의 것을 '침범'하는 듯한 대상에 대해 예민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이 우영우를 '추앙'한다. 아버지의 후회처럼 좀 더 정치적으로 살고, 좀 더 편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계란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임'조차 마다하던 시니어 변호사가 소덕동 사람들을 보고, 소덕동 동산 위에 올라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사건을 기꺼이 맡은 것처럼,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영우를 길러낸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영우는 자신을 버린, 그리고 뒤늦게 자신을 스카웃하겠다는 엄마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한바다를 선택하겠다고. 한번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가장 통쾌한 계란의 복수'이다. 또한 소덕동 재판 역시 우영우 편 계란이 이겼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바위같은 세상을 살아내는 '계란'들의 이야기이다. 보다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며, 편의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는 곧이곧대로인 우영우의 신화같은 이야기에 감동한다.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계란'의 마음, 그 계란이 바위를 깨뜨리는 '순수의 신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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