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밖은 유럽>이 9월 28일 9회차 8박 9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무리된 여정, <바퀴달린 집>의 강궁 피디가 요즘 인기를 끄는 캠핑의 장소를 '유럽'으로 바꿔놓았다.

 

 

말이 8박 9일이지, 시청자들이야 출연진의 여정에 따라 유유히 물 흐르듯 프로그램을 즐기면 그만이지만 출연자들은 인터라켄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린델발트,  푸르카패스, 가르다, 피렌체, 토스카나, 로마에 이르기까지  1,484km의 긴 여정동안 날마다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싸고를 반복했다.

일찌기 철학자 들뢰즈는 특정한 삶의 가치와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가며 사는 '노마드적 존재'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굳이 철학자의 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어서 대륙을 건넌 인류의 궤적은 그대로 '노마디즘' 그 자체이다. 머물 수 없음, 혹은 머물지 않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캠핑'이란 '놀이'에 천착하는 건 그런 인간의 류적 본성을 확인하는 행위일지도. 그러기에 매일 매일 짐을 싸고 풀며 유럽의 종주한 <텐트 밖은 유럽>의 고달픈 여정이야말로참으로 '인간적'이다. 

 

 

토스카나를 걷다
피렌체에서 토스카나로 가는 여정, 일행은 차로 우선 캠핑장을 향했다. 하지만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서있는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다. 잠시 내려 광활한 언덕을 바라보며 걷던 일행, 결국 토스카나 캠핑장에서 다음 날 차 대신 걷기를 택하기로 결정한다. 

마치 사막을 걷듯, 끝없이 펼쳐진 토스카나 평원 위를 걸어가기 시작한 다음 날, 무릎이 좋지 않은 윤균상이 무릎 보호대까지 차며 시작한 길이지만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스위스에 도착한 이래 계속 일행을 시달리게 했던 유럽이 한낮 더위, 마치 우리의 늦여름 날씨처럼 그늘만 들어서면 시원하다지만 그늘마저 만나기 쉽지 않은 여정을 온전히 두 발로 걸어내야 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차를 타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풍경, 하지만 막상 걷고 보니 타는 듯한 땡볕에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하지만 그걸 두 발로 걸어내야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그 또한 우리 삶의 모습과 참 닮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걸로는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그래서 그 과정의 고통과 아픔을 다 감내해야만 그 뒤에 얻게 되는 삶의 결과들처럼 말이다. 온 얼굴에 수건을 싸매고 걸어내야 하는 행군, 처음엔 활기차던 이들이 하루 온종일을 걷고 보니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그래도 하루를 마치며 진선규는 말한다. 아마도 유럽에 다시 온다 해도, 다시 이 길을 걷게 되기는 쉽지 않을 거라며, 그래서 다시는 올 수 없는 시간이라고. 

 

 

여행도, 삶도 선택이다 
마지막 캠프 로마를 향해 떠나는 날, 일행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사다리 타기로 도시락을 싸고 떠난 길, 차를 타고 가다, 보이는 언덕 위의 도시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이들이 유해진이 싼 김밥을 먹겠다고 들른 곳은 '오르비에토', 광장 중앙에 고풍스런 성당이 자리잡은 중세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유명한 도시이다.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에 자리잡은 소품 가게, 거리의 상점들, 그곳을 관광객들이 누빈다. 

성벽을 돌고 돌아 올라가는 길, 벌써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르다. 하지만 일행은 아랑곳없이 도시락 먹을 곳을 찾느라 분주하다. 고원 위에 자리잡은 오르비에토에서 도시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뒤로하고, 도시락 먹기 좋은 장소를 찾은 일행은 맛있게, 그리고 아쉽게 유해진이 싼 김밥을 나눈다. 도시락을 먹고 나니 더운 유럽 날씨에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생각이 간절한, 하지만 유럽에는 '아아'가 없다. 김치에 물탄 거를 예를 들며 '에스프레소'의 원조로서 자부심을 애써 이해하려하며 일행은 커피집을 찾아 도시를 거닌다. 아기자기한 골목과 상점이 볼만하니 거기를 기웃대기도 하고, 그러다 광장에 자리잡은 거대한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오르비에토 성당은 13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건물 내부와 외부 곳곳에 중세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당을 일행은 커피집을 찾으로 이리저리 헤매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까지 가서 좋은 곳을 더 볼 생각을 안하고, 도시락 먹을 곳이나 찾으러 다니다니?

하지만 어디 오르비에토 뿐인가, 심지어 피렌체는 차장 밖으로 그 유명한 베키오 다리를 '주마간산' 식으로 보고 지나쳤다. 여정의 마지막 날 찾은 로마, 오르비에토에 들러 점심을 먹고 캠핑장에 도착해 밥도 해놓고 이러다 보니 로마를 구경할 여유가 많지 않다. 해지기 전에 캠핑장으로 돌아가려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아니 로마까지 가서 그러구 여행을 마무리짓나, 그렇다면 피렌체는? 아니 이들의 여정 곳곳에 알고보면 참 볼 것이 많았다. 스위스는 곳곳이 풍경이 예술이었고, 이탈리아는 발걸음 닿는 곳곳마다 유적지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보려 한다면 8박 9일 아니라 80박 90일이라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은 그 발걸음 닿는 곳곳이 다 유명 여행지인 곳들을 섭렵하지 않는다. 유명한 곳이지만 그 모든 걸 다 주워넣는 대신, 오르비에토처럼 우연히 만난 기쁨의 순간으로 남겨둔다.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가보는 대신 캠핑 본연의 취지에 집중한다. 물론 사이프로스 나무 사이를 기꺼이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스위스의 호수에 몸을 담그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유명한 곳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8박 9일의 여정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여행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라는 공간에 흠뻑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요즘 회자되는 유툽 동영상 중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 교수의 대학 졸업식 축사가 있다. 남다른 이력을 자랑하는 그답게 그의 축사도 독특하다. 80년의 인생을 날로 치면 3만 일, 그 중 얼마나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은퇴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 듯한 병원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 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그의 말 속 인생의 정해진 듯한 여정은 마치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남들이 다 보고 간 그곳을 다시 따라가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인생은 '변덕스러운 우연'이 모질게 구는 것이다.  답정너처럼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답정너에 매달려 삶을 소모하는 대신, 인생의 여정 끝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쉬움 없이 만나려면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건 <텐트 밖 유럽> 속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 네 사람이 여행하듯 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눈 앞의 봐야 할 것에 연연하는 대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러 가다 만나게 되는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처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온전한 경험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말이다. 

<바퀴달린 집>도 특별하지 않았다. 캠핑카를 타고 머물고,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슴슴한 하루의 시간 속에 사람사는 지혜가 찾아졌었다. <텐트 밖은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몸담은 호수와 땀 흘리며 걸은 길과 골목 사이에서 만난 풍경들, 그리고 그곳을 온전히 느끼는 일행들의 시간 속에서 여행의 묘미와,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by meditator 2022. 10. 1.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