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차에 이른 <악의 꽃> 이제 본격적으로 연쇄살인범이었던 도현수의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범의 목소리를 통해 도현수(이준기 분)이 헤집은 기억 속에서 현수와 같이 간 바에서 아버지는 공범이 줏어 준 아버지의 옷을 통해 '차 키'를 전달받은 거였다. 도현수, 아니 이제 백희성은 다시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바를 찾아든다. 

그런데 왜 도현수는 공범을 찾는데 그렇게 애를 쓰는 걸까? 온 세상이 자신이 아버지 도민석의 공범이라고 해서? 물론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나 도해수의 뒤늦은 고백처럼 누나가 죽인 이장조차도 스스로 짊어진 도현수가 왜 이제 와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도현수는 자신의 결백이 아니라,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공범'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공범'이 바로 그의 아내 차지원(문채원 분)의 사랑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최선이 아내가 잡으려는 '범인'을 잡아주는 것이라니! 이런 '기괴한' 사랑은 그게 도현수이기 때문이다.  아니 도현수는 지금 자신이 하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지원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의 환영이 보이지 않으니 그래서 차지원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나의 물음에 당당하게 한번도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던져 사랑을 구하는 사이코패스 
도현수는 스스로가 태생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더 이상 도현수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연습해 왔다. 더욱이 차지원을 만나, 그녀가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더더욱 열심히 '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즉, 도현수에게 '사랑'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그저 '감정'일까? 도현수는 차지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남편이 된 이래, 남편의 역할에 그 누구보다 '충실'해왔다. 경찰이 되어 바쁜 아내 대신 가사를 맡은 도현수는 맛있는 음식은 물론, 그의 말에 따르면 딱 미니 차지원같은 딸 백은하를 키움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했다. 

시청자들 역시 드라마가 규정한 사이코패스 도현수에 시선이 가려져 그가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것에만 '천착'했지만, 이제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걸 안 아내 차지원이 도현수에게 싫증났다며 헤어지자 하자, 그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공범 잡기에 나선 도현수를 보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누가 도해수가 도현수를 보며 달라졌다고 하듯이, 도현수의 저런 모습이 '사랑'이 아닐까 라고. 

도현수와 도해수가 둘이서 만나는 걸 몰래 지켜보던 차지원은 안그래도 자신이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백희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인범으로 추적당하던 도현수라는 사실에 혼돈스러워 하는 한편, 자신이 믿고 의지해 왔던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워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누나에게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니 분노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연주시 살인 사건 수사에 매진하며 남편을 옥죄어 가는 한편, 대놓고 이제 오래 살아서 싫증이 났다며 헤어지자는 말을 한다. 

물론 자신이 도현수라는 걸 애초에 속인 것에서 부터 이 부부의 딜레마는 시작된 것이지만 백희성이 도현수라는게 '들통'난 마당에 봉착한 부부의 대응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구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관계'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도현수의 맞은 편에 돈이 된다면 사람도 얼마든지 '재료'로 팔고사는 범법자들과, 자신의 명망과 이익을 위해 병든 아들 대신 도현수를 백희성으로 만들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취하는데 거침이 없는 백만우와 같은 인물들을 대비시키며 우리의 섣부른 '규정'이 파놓은 함정을 드러낸다. 

 

 

사랑이 무얼까? 
사랑의 '감정'에 매달린 아내 차지원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에 '분노'하고 '이별'을 선언하는 것과 달리, 아내와의 '관계'에 충실하고자 하는 도현수는 아내의 맘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누가 사랑일까? 어쩌면 자신을 잡을 지도 모를 경찰이 되는 일을 가장 응원해 주었던 도현수, 그리고 바쁜 경찰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지원의 내조에 열과 성을 다했던 도현수,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사랑'의 감정마저 애써 노력했던 도현수, 그리고 이제 그런 아내를 위해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는 도현수, 그런 도현수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제일 힘든 게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교감'된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악의 꽃>은 그런 관계의 표피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실체는 그걸 채워가는 '성실함'이 아닐까 묻고 있는 듯하다. 

남편을 외면했던 차지원은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의욕이 앞섰던 함정 수사에서 위기를 겪으며 비로소 남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강력반이라는 험한 생업의 전선에서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이 알고보니 그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남편 도현수의 위로의 지지였음을. 설사 그것이 '연습'된 감정일지라도 그 '연습'의 뒤에 숨은 건 바로 자신을 향한 도현수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랑'이었음을. 차지원은 말한다. '나는 너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너도 나밖에 없었구나.'라고. 

자신의 남편이 도현수라는 안 순간부터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을 '사이코패스'에 맞추어 오해했던 차지원은 비로소 남편의 진심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폭력적 성향으로 규정되었던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름 아닌 실종된 도현수 엄마의 목소리였다는 걸 알게 되고 상담사에게 오열한다. 왜 어린 소년 도현수조차 알지 못했던 애달픈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냐고. 

10회에 이른 <악의 꽃>은 사이코패스의 '사랑' 아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세 치 혀의 농간에 부화뇌동하는 감정이 아닌, 관계의 실체에 대해 고민해 보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수 밖에 없는 시절이다. 이 시절에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넘어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삶의 버팀목에 대해 드라마를 빌어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사이코패스라지만 그 누구보다 진솔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도현수를 통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20. 8. 28.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