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인터넷 생방송으로 방영되던 그 시점부터 7월 18일 tv 방영이 되는 한 주 내내 인터넷은 '김영만 아저씨'로 인해 뜨거웠다. 개그맨 김영만과 동명이인인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씨, 하지만 이분은 '김영만씨'아 아니라, '김영만 아저씨'로 꼭 불리워져야 한다. 김영만이라는 이름 뒤에 붙여지는 그 '아저씨'라는 호칭에는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어린 시절을 공유했던 이제는 어른이 된 코딱지들의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된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코딱지'라는 호칭을 불러주는 아저씨와 함께 한 종이접기 시간은 그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퉁하기엔 소중한 '공감'의 데쟈뷰였다. 




김영만 아저씨가 전해준 '추억'의 감동
'김영만'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접속자로 인한 서버 다운까지,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 아저씨의 <마이 리틀 텔레비젼> 출연은 그 자체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김영만 아저씨가 누구인가, 이제는 어른이 된 그들이 어린 시절 누구나 다 한번쯤은 접해 보았을 그 '종이접기'를 가르시던 분이다. '종이접기'가 뭐라고,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코딱지'들은 어린 시절 이담에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두뇌를 단련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조기교육'의 당사자들이었던바, 그 '코딱지'만한 시절부터, 손재주가 있건 없건 누구나 한번쯤은 tv를 통해서, 혹은 유치원에서 색종이를 꾸적꾸적 접어야만 했고, 그 가르치던 분의 대표주자는 다름아닌 '김영만 아저씨'였다. 그러기에, 김영만 아저씨는 그저 종이접기를 잘 하던 분이 아니라, 어린 시절로의 회귀, 추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이 된다. 

그 아저씨가, 이제는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같은 김영만 아저씨가 tv에 다시 나와 어린 시절 가르쳐 주던 그 '색종이' 몇장으로 갖가지 신기한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중년 이후의 세대들이 <국제 시장>을 보며 느끼는 감회와도 같다. 고생스럽던 <국제 시장>의 시절을 보며 눈물짖던 어른들처럼, 다 큰 '코딱지'들은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다시 색종이를 접으며 그 시절을 회고한다. 

아저씨가 접는 목걸이, 모자 등은 다 큰 '코딱지'들이 예전처럼 자랑스레 목에 걸고,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마치 그 시절 '코딱지'들처럼 접속자들, 그리고 시청자들은 여전히 아저씨의 색종이 마술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를 보내며 반응한다. 그 시절 1cm를 인지하지 못해 '손톱만큼'이라는 아저씨의 기막힌 수사에 무릎을 새삼스레 탁 치며,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저씨의 접는 속도를 따라하지 못해 쩔쩔 매고, 핑킹 가위따위는 없어도 기가 막히게 모양을 만들어 내는 아저씨의 가위 실력에 어른이 된 지금도 나아지지 않은 손재주에 한탄을 하고 만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잠시 '코딱지' 시절로 돌아가 '색종이' 마법에 빠지던 이들은, 접속자 수가 많아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어려운 컴퓨터 용어를 전하며 좋아하시는 아저씨 모습에 함께 기뻐하다가, 백종원을 제외한 '인간계' 1위를 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저씨 모습에 결국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들을 여전히 '코딱지'시절처럼 대해주는 '아저씨로 인해 세파에 찌들었던 어른 '코딱지'들은 자신들이 한때 아저씨의 색종이 마법만으로도 행복했던 '코딱지'였음을, 그리고 그런 '코딱지'들의 환호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만큼 아저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에 뭉클한 '힐링'을 역설적으로 맛본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가능성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생뚱맞았다. 어린 시절 종이접기 선생님이라니! 하지만 그저 김영만 아저씨가 출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아저씨의 출연 방송분이 실시간으로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이 <마이 리틀 텔레비젼> '신의 한수'였음이 증명되었다. 

인터넷 방송의 연장, 혹은 확장으로서의 <마이 리틀 텔레비젼>, 그 파일럿 프로그램을 정규화시킨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셰프 대세 시대의 정점을 찍은 백종원이었다. 여러 요식업체를 이끄는 ceo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레시피로 친근하게 다가온 인간 백종원의 매력과, 그의 인간적 매력 못지 않은 '더 고급진' 야메 요리 들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켜 이 프로그램을 단번에 인기있는 토요 예능의 강자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백종원의 압도적 인기는 빛과 그늘이 있었다. 그를 '신계'로 끌어올린 반면에, 그에 적대하는 군소 '인간계"의 고군분투가 생각보다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의 전설이었던 김구라가 인터넷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각종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 신선한 모색을 하고, 여러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며 애를 쓰고, 홍석천, 이은결, 레이디 제인 등 연예계 재주꾼들이 자신의 장기를 선보였지만, 여전히 '인간계'의 영역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중에 '김영만 아저씨'의 출현은 백종원이라는 신계를 끌어내리지는 못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화제성으로 <마이 리틀 테레비젼>을 이끌었다. 또한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그저 화제성뿐만 아니라, '공감'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 '추억'을 <마이 리틀 텔레비젼> 방식으로 공유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종이를 접는 과정 하나하나, 시청자들이 따라 하기 쉽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풀어가며, 그리고 마치 눈 앞에 어린이들과 교감을 하듯 접어가는 '종이접기'라는 것이 절묘했다. '조기 교육'의 이름으로 배운 수많은 것들 중, 그 무엇보다 '종이접기'가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해보았고,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하며 고전했던 그 과정 상의 경험을 선택한 것이 제작진의 탁월한 선구안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공감'의 방식에서 예능의 확장을 보여준 것이고, 김영만 아저씨와 같은 무수한 '추억'들로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코딱지'들에게 종이접기를 하던 어린 시절만 있었겠는가, 구성애 아줌마의 '성교육'을 듣던 청소년 시절도 있었을테니, 이제 그 가능성의 여러 버전 중 또 하나를 열어 제치면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19.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