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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힐링 캠프>의 출연자는 뜻밖의 인연이다. 얼마전 종영한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양재화 비서로 출연했던 배우 길해연과 요즘 예능 대세로 떠오른 배우 황석정이 나란히 손을 마주 잡고 출연했다.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는 두 사람의 인연은 그들의 연기가 나고 자란 연극무대이다. 연극 무대 선후배로, 그리고 이제 인생의 선후배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이인 두 사람은 나란히 <힐링 캠프>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리고 이제는 안방 극장의 '씬스틸러'로 자리잡은 이 두 중견 여배우를 맞이한 <힐링 캠프>는 그녀들의 자유로운 끼와 사연의 발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이유도 분명치 않게 자리를 메인 mc 이경규가 자리를 비웠다. 방송 말미 그 어느때보다도 자유로웠다는 하지만 이경규를 몹시 종하한다는 길해연의 말에 김제동은 이경규가 있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며 답하는 것으로 이경규의 부재에 대한 해명을 대신했다. 그 전회 이덕화의 출연분이 이경규 단독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힐링 캠프>가 모색한 변화인 듯 하지만, 그 조차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이경규가 그 자리에 없어도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경규의 색깔에 맞춰, 혹은 김제동의 색깔에 맞춰 '따로 또 같이'라는 변화의 모색이라면 그 변화의 지점이 공감되어야 하는데 황석정-길해연 편은 그저 이경규나 있으나 없으나 한결같은 <힐링 캠프>였다. 김제동은 같은 김제동인데, <톡투유>에서 방청객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던 그 사려깊은 mc대신, 황석정과 '썸'에 말려 고군분투하는 철딱서니없는 노총각이 있을 뿐이다. mc건, 출연자건, 그 캐릭터를 '납작하게' 만들어 단순히 소모하고 마는 제작진의 탓일 것이다.
그녀들의 '자유'를 해석하는 <힐링 캠프>의 구태의연한 방식
황석정-길해연 편은 먼저 도착한 황석정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늘 누군가의 엄마로 익숙한 황석정은 여전히 싱글이다. 싱글의 그녀답게 <힐링 캠프>는 황석정과 만남의 매듭을 뜻밖에도 역시나 싱글인 김제동과의 '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노골적인 황석정의 '썸'타기로 시작한 이날의 '썸'은 게스트들을 위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까지 결부되어 장황하게 프로그램을 지배한다.
황석정은 술좌석에서 좌중의 모든 남자를 휘어잡는 '썸' 요령을 강의하고, 새로이 등장한 요리사에 대한 호감에 김제동이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황석정 표 작업의 정석은 물이 오른다. 또한 또 다른 여배우 길해연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푸는 그녀를 '애마부인'으로 풀어냈고, '팜므 파탈'로 이어갔다.
물론 의도치 않았다 하지만, 190회차 프로그램의 소제목인 '자유'는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남녀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성적인 자유'의 이미지로 이어가게 했다. 물론, 한 사람이 자유롭다 라고 했을 때, 거기에 '성적인 자유분방함'도 들어 있을 수 있다. 지긋한 나이에도 싱글인 여배우가 당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향해 관심을 표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과연, 황석정이나, 길해연 또래의 남자 중견 배우들을 초대해 놓고서도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썸타기'로 물타기할 것인지.
이는 얼핏 보면 이 두 배우를 '자유'라는 컨셉으로 표현하는 듯 하지만, 그 정도의 경륜을 가진남성 연기자라면 그들의 연기에 대한 조명과 예후를 우선할 것임에 비해, 중견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배우들을 '성적'으로 여성에 국한하여 소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저 그들이 연극 무대에서 갈고 닦은 세월을 '애마 부인'이나, '참을 수 없는 끼를 분출하는 자유 여인'으로 설명해 내기엔, 이들의 내공이 너무 길고 깊지 않을까.
결국 그러다 보니 장황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춤추고, 그러다 보니 이들 두 사람의 사연은 프로그램의 런닝 타임 한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에 풀어지고 만다. 해가 지도록 피리를 연습하여 서울대 국악과를 갔던 황석적의 음악적 역량은, 그녀가 입으로 풀어내는 피리 산조에 대한 웃음으로 풀어지고, 남편을 보내는 그 순간에도 무대에 섰던 길해연의 열정은 허겁지겁 생활고로 이어진다. 이해랑 연극상을 비롯한 연극계에서 숱한 상을 받았다던 길해연의 내공과 세월은 황석정을 중심으로 한 '썸타기'에 양념이 되고, 황석정 역시 예능 대세 황석정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마도 <힐링 캠프>는 고전하고 정체되어 있는 프로그램의 변화를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트렌드에 맞는 방향으로 가고자 생각한 듯 하다. 황석정-길해연 편에서 보여지듯이, 한 회차의 상당 부분을 '썸'을 빙자한 가벼운 농담으로 채우고, 요리사까지 불러다 놓고 먹고 즐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더 이도저도 아니다. 과연 사람들이 <힐링 캠프>에 황석정-길해연이란 신선한 인물이 출연한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볼까? 그런 본질적 질문에 <힐링 캠프>는 답해야 할 것이다. 그저 여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재탕하고, 트렌드에 맞게 요리나 해 먹고 만다면, 굳이 <힐링 캠프>을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 <나혼자 산다>에서의 황석정의 삶을 넘어서고, 양비서로 각인된 길해연에 대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진지하게 해소해 줄 수 있어야, 그래도 '힐링'의 면피는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홀로 살아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있어야,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힐링'의 '힐'자라도 꺼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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