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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밤 11시 15분, 평소 같으면 <sbs스페셜>을 해야 할 시간, 대신 신선한 교양 프로그램이 찾아 들었다. <백투더 마이페이스> 말 그대로, 성형중독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복원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고 검버섯이 생기는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또래 여성들을 만나면, 그 중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나타나는 주름과 검버섯, 혹은 기미를 없애는 시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 그 이야기들은 자기 주변의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그걸 이용한다고 한다. 칠십 먹은 어르신까지도, 그걸 하고 한결 만족하셨다나 뭐라나. 심지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고 나서 보기 좋으면 됐지, 굳이 거기에 자연스러움 어쩌고 가타부타 토를 달 필요가 뭐 있겠냐는게 세상의 추세다. 나이든 사람들이 이럴진대 하물며 젊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는 증거를 없애고자 주민등록 사진을 찍기 전에 리뉴얼을 하는게 대세란다. 엄마와 딸이 손잡고 성형외과를 출입하는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태다. 성형 수술 세계 1위, 혹은 대한민국 젊은 여성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성형 경험이 있다는 수치를 들 것도 없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들어 준 그 상태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게 참 멈추기가 힘들다. 불완전함이 인간의 특성이듯,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외모는, 끊임없이 '수정'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니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해 질 거 같아서, 그런 욕구들은 결국, 강남 어딘가를 걷다 보면, 얼굴이 똑같은 사람들을 빈번하게 마주치게 되는, '강남녀' 혹은 '성형 괴물'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쌍꺼풀에서 시작된 질주는, 앞트임, 뒤트임, 가슴, 윤곽, 전신 성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진; osen)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시작되고, 까페에 앉아있는 열 댓명의 여자들의 사진을 들고, mc인 박명수, 호란, 그리고 일반인들이 그 사람을 찾으러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진 속의 그녀를 찾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은 까페의 그녀들에게 혼란만 느낄 뿐이다. 적게는 서너 번에서 많게는 스무 번이 넘는 성형 경험을 가진 그녀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얼굴은 슬쩍 지나간 화면에서도 너무나 비슷했다. 스스로 '성형 괴물'이라고 하며 자조적으로 웃는다. 절대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거듭되는 성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합숙을 거쳐 원하는 사람에게 원래의 얼굴을 되찾아 주는 시도를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하고자 한다. 그 시도 자체로서 신선하다. 모든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갈 때, 그걸 멈추고, 자신이 가진 본래의 것의 소중함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그 시도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합숙에 들어간 네명의 여성,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또 한 명의 남자에게, 제작진은 섣부르게 복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복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결론이 내려진 사람을 미리 발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계속된 성형에 이르게 된 과정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얼굴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자존감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맨 얼굴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여자, 거울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는 여자, 하루 종일 어디를 더 고치면 이뻐질 것인가를 연구하는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지우고 싶은 남자.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한번의 시술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밝혀간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상황극도,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설문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속 이야기도 해본다. 그 과정을 통해 다섯 명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또 한번의 성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이 결정한다. 과거 자신의 얼굴로 돌아갈 것을. 복원에 참여하지 않은 세 명도 더 이상 성형을 하지 않고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백투더 마이페이스>는 예능이 아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예능이면 어떻고, 교양이면 어떠랴. 성형 중독이란 단어가 일상화된 대한민국은, 결국 성장과 발전의 논리를 내재화한 사람들이, 그걸 외형적으로라도 따라가기 위한 안간힘의 결과물이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가제에 불과하고,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을 고쳐서라도 이 경쟁 사회의 속도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진짜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첫 회라서 만듬새는 거칠었지만, 진짜 필요한 것이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라는 방향 제시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들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가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었을 때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가 여부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자리잡아, 성형으로 찌든 세상에 정말 한 줄기 희망과 대안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복원된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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