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혀들의 전쟁 하이퀄리티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썰전>이 1주년을 맞이했다. 그에 따라 <썰전>은 프로그램의 특색을 살려 1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다양한 특집을 마련했다. 


앙케이트 조사로 돌아본 <썰전>
1부 <썰전>과, 2부 <예능 심판자> 모두 프로그램과 관련된 앙케이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1부 <썰전>에서는 <썰전>과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기자 들의 평가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그간 1년 간의 활동을 통해 여, 야의 두 성향을 대표하는 이철희, 강용석 두 사람의 평가는 상반되었다. 개인적 구설수에 시달렸던 강용석의 경우, '이미지 세탁'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그간 그가 보여준 성실한 태도와 명확한 입장으로 인해 '또라이'는 아니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반면, 이철희 소장의 경우는 그 개인보다는, 그가 대변하는 입장을 통해, 그의 야성이 괴팍하거나 편협하지만은 않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그저 패널 두 사람에 대한 평가이지만, 보수적 세력에 대한 인간적이라는 평가나, 야권 성향의 인물에게 알고보니 '객관적'이라는 평가는 묘하게도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알고보니 '인간적'이라는 보수와, 알고보니 '객관적'이라는 진보는 얼마나 서로 상대 진영에 대해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증명하는 언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편견과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과연 '성공적인 이미지 세탁'이라는 효과를 얻은 인간적인 보수 강용석이지만, 그의 성실하고 순박한 인간성이 곧 그의 정치적 식견의 성실함(?) 혹은 정치적 야망으로의 성실함(?)으로 드러날 때의 위험성은 잔존한다. 그가 매회 준비한 엄청난 양의 자료에 의해 윤색되는 그의 논리는 또 다른 함정일 수 있다. 이철희 소장의 프로그램만 하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인 강용석의 발톱은 늘 실전을 위해 날세워져 있고 <썰전>은 그런 그를 위한 도구로 소용될 가능성 잔존한다. 
또한 '객관적'인 이철희 소장의 진보가 진보적 스펙트럼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도 불명확하다. 최근 안철수의 신당 움직임처럼, 이제 더 이상 아니 원래부터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진보 세력 내에서, '민주당'과 '안철수'에 대해 부정적인 이철희 소장이 포지션이 객관적인 것인지, 그저 이제는 현장에서 멀어진 노회한 평론가적인 것인지에 대한 검증 역시 애매모호하다. 

그러기에, 1년을 맞이한 <썰전>의 미묘한 무딤은, 점점 더 평론가적이 되어가는 이철희 소장과 현실에의 발톱을 숨기지 않지만 인간적인 강욕석의 조화에서 오는, 균형의 무너짐에 기인한다.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링 안에서의 실전을 준비하는 여와, 링 밖에서 훈수를 둔 야의 대전은 가끔은 날이 곤두서지만, 어쩐지 한 김 빠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jtbc뉴스9>이 가지는 현장성도, 이제는 그 래디컬함도 한 김 빠져버린 훈수두기에 
빠져가는 <썰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사진; osen)

패널을 평가하는 또 다른 패널
<예능 심판자>의 경우, 앙케이트 조사에 덧붙여, 동업자들인 비평지[ize]의 편집장 강용석, 전 [씨네21]기자 김도훈, 한겨레 tv의 이승한, 개그맨 조세호, 배우 여민정들을 패널들과 <예능 심판자>에 대한 평가를 덧붙였다.

예능이라는 특성을 잃지 않으려는 애교(?)로 보여지는 여민정과 조세호의 등장은 뜬금없었지만, 각계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온 <예능심판자>에 대한 평가는 이 프로그램이 처한 상황을 가감없이 드러내 주었다. 바쁜 스케줄에 밀려 더 이상 공부하지 않으면서 특색을 잃고 고루해지는 김구라와, 동료 연예인들의 뒷담화 외에는 아직 그 자리에 걸맞는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채 눈치보기에 급급한 김희철, 미디어 평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코미디를 하고 있는 이윤석 등에 대한 평가가 적나라하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예능 심판자>의 딜레마는 최고 시청률의 1분, 혹은 최저 시청률의 1분에서 보여진다. 배우들의 연예담과 부업 등에 쏠린 대중의 관심은,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아니라, 여전히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을 지니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져야 할 것이다. 즉,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각계 각층의 입담가들에 의한 미디어 평론을 지향한다 하지만, 보는 시청자들은 그저 또 하나의, 혹은 좀 색다른  연예 정보 프로그램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1부가 <썰전>이라는 색깔에 안착한 반면, 제목이 무색하게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예능 심판자>의 현실인 것이다. 더우기 패널들도 지적하듯, 김희철의 합류 이후, 눈에 띄게 방향을 잃고 정보에 대한 코멘트 정도에 그치거나, 노골적인 특정 소속사 사람들 띄우기나,  뒷담화에 귀기울이는 프로그램은 미디어 평론이란 미명이 무색해 질 정도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1분 혹은 최저의 1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앞으로의 <예능 심판자>는 더더욱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패널 중 한 사람이 옹호한다. <썰전>의 무뎌짐은 무뎌짐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익숙함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런 평가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함을 핑계 대거나 익숙함의 피로를 논하기에 앞서, 익숙함의 성질이 미더움인가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찾아보게 되는 것은, 그 익숙함의 밑바탕에 미더움이라는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이지만, 익숙함이 외면으로 바뀌어지고 있음은, 미더움을 쌓기도 전에, 나른해지고 있는 자신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돌잡이가 마이크를 굳이 잡지 않았더라도, 앙케이트 조사에서 시청자들이 <썰전>의 초심을 소원한 것처럼, 1주년에 초심을 기대하는 처지가 된 것에 <썰전>은 진지한 방점을 찍을 때라고 보여진다. 



by meditator 2014. 2. 21.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