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눈밭을 비칠비칠 걸어가던 배우 윤계상은 자신이 지나왔던 과거에 대한 후회의 변을 늘어놓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그리고 드라마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무고시 합격을 기다리던 정세로(윤계상 분)는 그가 면접 시험에서도 말했듯이 세계를 떠돌지만 떠돈 만큼 성과를 얻지는 못하는 아버지가 있는 방콕으로 그를 만나러 떠난다. 그리고 그말고 그곳을 향해 떠나는 또 한 쌍의 커플이 있다. 정세로가 우연히 꽃배달을 가서 그의 눈에 띄었던 여인, 재벌의 딸이자, 쥬얼리 업체 벨 라페어의 대표인 한영원(한지혜 분)과 그녀의 약혼자 공우진이다. 그들은 방콕에서 열리는 쥬얼리 페어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향하지만, 세로의 아버지 정도준(이대연)과 박강재(조진웅), 서재인(김유리)이 그들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공우진(송종호 분)이 눈치채는 바람에, 그리고 다시 세로의 아버지가 배신하는 바람에 사건은 복잡해 지고, 그 과정에서 공우진과 세로의 아버지가 죽게 된다.
억울하기로 따지자면 외무고시 합격을 한 마당에 손에 수갑을 차고 살인자의 누명을 쓴 채 아버지의 입원비조차 마련치 못해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정세로나, 그 하나만 믿고 의지했지만 하루 아침에 약혼자가 다이아몬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주근 한영원이나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는 '복수'를 위해 한영원의 복수는 약혼자를 잃은 상심으로 덮어 잠시 미뤄둔다. 반면에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태국 감옥에 갇혔던 정세로는 그를 면회 온 박강재의 말 한 마디만 믿고 '벨 라페어'를 아버지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 복수의 대상이라 여긴다.
언제나 우리나라 드라마의 복수극의 주인공들이 그래왔듯이, 복수에 눈이 먼 주인공은 맹목적으로 복수를 향한다. 5년이나 감옥에 있으면서, 한번도 냉정하게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지 못한 채, 언제나 가장 믿지 못할 조력자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운명을 넘기는 어수룩한 태도로 일관하고, <태양의 가득히>의 정세로 역시 그 전례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의 맹목성이 결국 첫 장면 정세로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후회하는 그 지점이 되어, 정세로와 한영원의 비극을 낳을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정세로의 오해가, 결국 한영원과의 악연을 풀 실마리가 될 것이다. 결국, 박강재의 근거도 없는 말 한 마디가 <태양은 가득히>의 전체 플롯의 견인차가 된다. 덕분에, 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비장하게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5년 전을 오가며, 복수의 실타래를 풀어내지만, 그 실타래가 어딘가 엉성하게 감긴 듯하다. 심지어 현실에서는 가장 엘리트적인 주인공들은 '복수'의 노예가 되어, 언제나 그래왔듯,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해코지 하고자 노력한다.
제목 역시 그러하지만, 1회부터 주구장창 되풀이 되는 ost에서도 깨닳을 수 밖에 없듯이, 알랭 들롱이 분한 톰 리플리의 야망을 향해 달렸던 영화는, 이제 복수를 위해 야망을 이용하는 청년 정세로의 입지전적 성공기로 돌변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만 믿고 맹목적으로 복수에 뛰어든 청년 정세로의 복수가 리플리의 야망만큼 공감을 얻을 지는 미지수다.
태국 경찰에서 그를, 그녀를 만나야 한다고 외쳤던 두 사람의 절규처럼, 결국은 하나의 사건에서 조력자여야 하는 두 사람이, 복수의 대상과, 복수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만나는 아이러니는 무척이나 극적이다. 복수극만큼이나, 진실을 안 이후의 두 사람의 행보가 <태양은 가득히>의 후반전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복수극이든, 그 이후의 또 힘을 합친 복수극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시작은 주춧돌이 되는 사건들의 개연성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주춧돌이 얼기설기 놓인 복수를 위한 복수극은 허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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