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라디오 스타> '늙지 않는 언니들' 특집에서 규현은 출현한 김성령에게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에 대해 물어보며, 노골적으로 권상우의 흉내를 냈다. 물론 언제나 <라디오 스타>가 그랬듯이 좋은 흉내가 아니었다. 권상우하면 세간에 회자되는, 그 예의 입짧은 소리를 규현은, 백지영에게 '욕먹겠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실실 웃으면서 되풀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백지영의 걱정스런 반응에, <라디오 스타> 4MC들의 반응은, '억울하면 나오든가'였다. 하지만, '억울하면 나오든가'란 <라디오 스타>식 출연 요청과 상관없이 최근들어 그 무례함이나 무신경함이 빈번히 비난의 대상이 되는 규현 등 MC들의 태도는 역시나그날도  구설수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6월 19일 <라디오 스타>는 '자다가 날벼락 특집'으로 그간 <라디오 스타>를 통해 11일 권상우처럼, 본의 아니게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실명이 오르내린 스타들을 게스트로 초청했다.


<자다가 날벼락 특집>이 시작되자 마자, 윤종신은 이 특집의 발원지가 바로 김구라임을 밝힌다. 그런 윤종신의 지적에 김구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경규가 처음으로 예능 프로에서 돈을 운운한 개그의 시초를 열었다면, 자신은 실명을 언급하는 개그의 새 장을 열었다고, 자랑스레 자신의 개그 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개그에, 혹은 그가 판을 깔아 주어 게스트가 언급하여 졸지에 화제가 되었던 그래서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심현섭, 이정, 김지훈, 박현빈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즉, <라디오 스타>는 자신들이 프로그램에서 본의 아니게 언급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초빙함으로써, 그간 계속 다짐했던, '억울하면 나오라'는 방침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나와서 해명하는 것만이, 실명 토크로 인한 희생의 이른바 '회생 절차'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결국 그 말은, 프로그램의 서두에 김구라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실명 토크를 언급하듯이, <라디오 스타>식의 뒷담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하는 것이요, 이는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인한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피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항변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라디오 스타>의 당당함은, 시청률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예능 프로그램이 가지는 '권력'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우리가 언급이라도 해줬으니 '화제'라도 되지 않았어? 라는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스타의 생리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자신의 권위에 마음껏 이른바 '부심'을 부리는 자세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시청률이 소폭 하락했다. ⓒ MBC 방송화면
(사진; 엑스포츠 뉴스)

그리고 자다가 날벼락' 특집 답게, <라디오 스타>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언급되었던 그 내용을 중심으로 게스트를 물고 늘어진다. 심현섭에게는 개그 강박 관념을, 김지훈에게는 연예인 여자 친구를, 이정에게는 제주도의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다는 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결과적으로, 한 시간 여의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도대체 요즘 <라디오 스타>는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정말 술자리 뒷담화용으로도 별 재미가 없는 토크들을 듣고 있노라니 드는 반문이다. 

이제는 품평자의 위치가 너무나 당연한 4명의 MC들은 개그 강박 관념을 가졌다는 심현섭을 비롯하여 네 명의 출연자들에게 대놓고, 웃겨 보라고 요구를 하고, 그 웃김의 정도에 대해 표정에서 부터 대놓고 평가를 들어간다. 
자신들이 특집으로 내걸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 언급되었던 내용과 관련해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되, 절대 그 이상의 깊이있는 토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정의 정치와 관련된 질문이나, 돈에 대한 생각도, 이정이, 4 MC들의 우문에, 진지한 현답을 했기에 그나마 그 정도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지, 그저 4MC들은, 이정과 심현섭의 정치적 견해 차이를 놓고 어떻게든 재미로 쌈이라도 붙여보려고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그가 정치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는 자세의 건강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정의 돈벌이나, 박현빈의 통장 등 지극히 속물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이상에 대해서는 무료하게 대할 뿐이다. 정작 고품격 음악 방송이라면서, 게스트의 노래에 대해서는 '잘 부르네', '가수잖아' 이상의 품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지금의 <라디오 스타>는 그저 김구라의 실명 토크 수준을 넘어서지도 않고, 넘어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김구라와 동갑인 심현섭이 오랫만에 TV에 얼굴을 비추었지만, 정작 진짜 그의 근황은 알 길이 없이, 흘러간 혹은 지금 그가 다니는 행사용 개그만 소비했을 뿐이다. 제주도에 사는 이정의 집 소유주가 누군가는 알게 되었지만, 정작 이정이 제주도에서 살게 되었던 결심의 속내용은 알 길이 없다. 김지훈의 연애관은 알게 되었지만, 삼십대 중반의 배우 김지훈은 도통 알 수 없다. 박현빈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김구라도 아는 박현빈의 술친구 조세호와 있었던 술자리 해프닝만 고백하고 간 셈이 되었을 뿐, 행사로 인해 술로 세월을 보내던 시간의 속내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스레를 떨며 결코 속사정은 털어놓지 않고 농담 따먹기나 하다, 반가웠어 하고 악수를 하고 헤어지지만 , 하지만 결코 다음에 만나길 기약하지 않는 그런 만남과도 같다. 게스트가 나와서, 웃고 떠들었지만, 그런 와중에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밝힐 수 있어서 좋았다던 <라디오 스타>는 이제 옛 추억의 그림자일 뿐이다. 
김구라는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자신의 실명 토크를 자랑스레 내세우고, 규현은 거기에 편승하여 대부분 선배들인 출연자들이나, 언급된 스타들을 비아냥거리기에 재미를 붙일 뿐이다. 김구라를 제재해야 할 윤종신이나, 김국진도 어느 틈에 거기에 편승하여 웃기는 데만 재미를 붙인다. 웃고 떠들긴 하는데, 그러고 있노라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 그게 지금의 <라디오 스타>다. 


by meditator 2014. 6. 19. 08:53

15일 브라질 헤시피에 위치한 아레나 페르남부쿠에서 열린 2014브라질 월드컵 c조 조별 예선 1차전에서 코트디브아르가 일본에 2;1로 역전승을 했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mbc는 경기가 끝난 후, 축구는 [        ]이다 라며 관행적으로 내보내던 자막의 [  ]안에 '그분의  뜻'이라는 단어를 넣고, 코트디브아르의 선수 드록바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이 경기가  '드록신'이라 불리우는 선수, 드록바의 공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오글거리는 자막이 무리도 아닌게, 분명 일방적으로 일본에 선취점을 내주고 끌려가던 코트디브아르 선수들은, 드록바가 들어오자, 귀신이라도 씌인 듯, 대번에 골을 넣었다. 드록바가 넣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그 골은 그라운드의 감독이라 칭해지는 드록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선수 드록바를 드록신이라 높여 부르는데는, 비단 그의 경기 능력만이 이유가 아니다. 아프리카 서부 내륙의 가난한 나라 코트디브아르의 축구 영웅 드록바가 가지는 위대함이, 그가 신이라 불리우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드록바가 귀국을 하는 날이면, 코트디브아르 국민들은 마치 아이돌을 기다리는 소녀들처럼 공항으로 몰려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구단에서 받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자기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드록바는 3천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55억을 들여 수도 아비잔에 짓고 있는 중이며, 매달 15만 유로를 자국 어린이들의 예방 접종을 위해 쓰고 있다. 우리가 광고를 통해 월드컵 기간 동안 내전을 멈추게 해달라고 하자, 정부군과 반군이 진짜 내전을 멈추었다는 그 기적을 만든 선수가 바로 드록바인 것이다. 우리 역시 드록바가 아니라면, 코트디브아르 라는 나라를 알지 못할 것이다. 

(사진; 코리아 데일리)

이렇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축구 선수가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러시아의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도 마찬가지다. <다큐 공감>은 월드컵 특집으로, 고려인의 축구 영웅 미하일 이바노비치 안을 조명했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진출, 혹은 월드컵 스타에 집중하는 그 어떤 월드컵 특집보다, 가장 세계인들의 화합의 축제, 월드컵의 본연의 정신을 살린 기획이다.

우리는 그 이름도 생소한 미하일 이바노비치 안은, 1979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떠나 벨라루스로 향하던 중 다른 비행기와 충돌해 승객 178명이 죽은 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35년이 지났지만, 그의 전기가 씌여지고, 그의 인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는가 하면, 그의 이름을 딴 '미하일 안' 거리가 만들어 지는 등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축구 영웅으로 기억해 내고 있다. 

미하일 안은 고려인 3세이다. 러시아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의 긴 여정을 견뎌내고, 척박한 우즈베키스탄에 자리잡은 고려인의 후손이다. 1952년에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1968년 축구 유망주들이 가는 디토프 스포츠 전문학교에 들어갔고, 17세에 소련 청소년 대표팀 선수로 뽑혔다. 재일 교포 3세 정대세 선수가  재일 교포임에도 북한 국적을 갇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사회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그것도 소수 민족 고려인 출신의 어린 소년이 국가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다. 심지어 76년에는 U-23 소련 청소년 대표팀의 주장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미하일 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후 미하일 안은 소련의 명문 팀 우즈벡 FC 파흐타코르에 입단했고, 1974년과, 78년에 소련 연방 축구 영웅 33인에 선정되었다. 

키가 작고 왜소해 축구 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체력적으로 뒤처지던 소년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발군의 선수가 되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주인은 그가 좋아하던 나무를 베지 않고 놔두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에서, 그를 즐겨 추억할 만큼, 그가 죽은 지 35년이 지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고려인의 축구 영웅 미하일 안을 잊지 않으며, 그를 기억에서 불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 구 소련), 그리고 이제는 우즈베키스탄 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든 소수 민족 고려인의 삶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계속 그가 살아있었다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드록바가 되었을 지도 모를, 축구 영웅 미하일 안, 우르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불운의 축구 영웅을 추억하며, 고려인으로써의 자존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by meditator 2014. 6. 18. 10:09

6월 17일 16부작으로 kbs2 tv의 월화 드라마 <빅맨>이 마무리지어졌다.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현성 에너지의 회장이 되어, 1년이 지난 후 김지혁은 기념으로 연설을 한다. 처음 자신이 회장이 되었을 때, 자신이 대단한 걸 이룬 것 같아 대견했었다고,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른 후 깨닫게 되었다고 김지혁은 말한다. 그저 자신이 한 일이란, 자기 주변을 조금 바꾼 것 밖에는 없었다고, 그렇게 자신이 조금 바꾼 주변이,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고. 김지혁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지기 쉽다고. 이기기 힘들다고. 김지혁은 힘주어 말한다.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을 위해, 우리 끝까지 힘을 모아 싸워 나가자고. 지지 말자고.  그렇게 김지혁이 말을 하는 동안, 단상의 자리는 비워져 있다. 마치, 세상의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싸워 줄 진짜 김지혁을 기다리는 듯이. 


드라마 자체로만 따지고 보자면, <빅맨>에 내려질 평가는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시장 바닥 양아치 김지혁이 그들의 심장을 원하는 현성 가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 초반의 반전은 그럴 듯했다. 허수아비 사장이었던 김지혁이 강지혁이 되어, 현성 유통의 사장이 되어 불어 일으키는 바람은,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로서의 호평은 거기까지다. 그 이후 드라마 <빅맨>은 마치 어린이 잡지의 만화를 보는 듯 순진하고 단순했다. 재벌 기업의 회장 아들 강동석은 매번, 감히 니들이 나를! 이라는 대사만 반복하며, 자신보다 나은, 시장 바닫 양아치 출신 김지혁에 대한 열등감으로 집착하며, 그런 강동석에게 당하는 김지혁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마지막 연설에서 그가 말한 바, 그의 주변 사람들의 선의이자, 정의이다. 강동석이 온갖 협잡을 하며, 김지혁을 굴러 떨어뜨리면, 그 주변에서, 그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결국 김지혁의 인간에 대한 믿음에 감동하여 결국 김지혁의 편에 서서 강동석을 무찌른다. 김지혁이 내건 사훈, '우리는 가족입니다'와, 늘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믿을 건 인간 밖에 없다'는 그 지론이 일관되게 드라마를 끌고 간다. 심지어, 강동석 주변에서 일관되게 그에게 충성을 하던 도실장마저도, 끝내는 현성의 개가 되고 싶지 않다며 제 발로 경찰서로 향하는 시점에 이르면, 실소를 지나, 수긍하게 된다. 그렇지, <빅맨>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이 정도가 되면, 만화도, 초등 고학년이 아니라, 저학년들이 즐겨 볼 수준의 스토리텔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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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뉴스)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마지막 회를 다가가면서, 묘하게, 김지혁의 인간론, 그리고 그 인간론에서 비롯되는 개혁들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 말도 안돼? 어떻게 다 저렇게 돌아설 수 있어? 우리 사원 지주제? 말이 좋지, 그게 가당키나 해? 사람들을 믿는다고?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정말 결국 조금씩 바뀌면 되는 건데, 우리나라 재벌들, 말이 좋아, 회사 주인이지, 반은 커녕, 1/3도 안되는 주식으로 서로 돌려막기 하면서,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는 건데,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잖아? 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 마지막 회, 김지혁이  연설에서, 자신이 한 것은, 그저 주변을 조금 바꾼 것이라고 했을 때, '작은 불씨 하나가~'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6월 16일 한겨레 신문에 도쿄 경제대 서경석 교수는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는 칼럼을 기재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책을 근거로 한다. 즉,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글을 통해 오늘날 지식인 본연의 자세를 위협하는 것은 아카데미도, 저널리즘도, 상업주의도 아닌, 전문주의(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단언하며, 오늘날 교육 수준이 높아질 수록, 사람들은 좁은 지(知)의 영역에 갇혀 순종적이며, 자발적인 상실의 존재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이익이나, 이해, 편협한 전문적 관점에 속박되지 않는 아마추어리즘, 즉, 사회 속에서 사고하고 걱정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가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정의내린다.

그리고, 바로 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그리고 그의 의견을 빌은 서경석 교수의 아마추어리즘을 빌어, 종영을 맞은, <빅맨>을 옹호하고자 한다. 
분명, <빅맨>은 어설프다. 스토리 라인은 단순했고, 그것을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단선적이었다. 하지만, 대신, <빅맨>은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에 충실했다. 머리를 굴려야 이해할 수 있는 현학적 대사들 대신에, 단순하게 인간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인간의 변화를 추구했다. 너무 순진해서 '풋'하고 실소가 나오는, 그것이, 김지혁을 거대 기업 현성의 회장이 되게 한 힘이었다. 그리고 김지혁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은 그걸 환타지라 치부해 버리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빅맨>을 구성했던 이야기의 골조들은 사실이다. 회사의 주인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사장도 그들의 손에 의해 뽑히는 게 맞고, 그것을 함께 의논해 나가야 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1/3도 안되는 지분으로, 거대 그룹의 주인입네 하는 재벌들의 현실은 틀린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원칙들을, 세상 살이에 물든 우리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 주인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런 우리의 알면서도,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진실을, <빅맨>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서경석 교수가 말한 바, 그 어떤 이익이나 이해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원칙으로 단순하게 담백하게 말한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던 세속에 찌든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어린 아이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이듯, 16회로 종영한, <빅맨>의 순진무구한 주제 의식이, 이기는 법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6. 18. 00:41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tvn의 작품들은 드라마 제목도 제목이지만, 제목을 설명하는 부제에서 벌써 호기심을 자극하고 들어간다. 예를 들면 <꽃할배 수사대>는 판타지 코믹 수사물에, 회춘 느와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판타지 코믹에 회춘 느와르라는 단어 뜻은 차치하고, 일단은 그게 무얼까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6월 16일 첫 선을 보인 <고교 처세왕>도 마찬가지다. 가장 순수할, 혹은 순수할 수 밖에 없는 미성년의 나이 고등학생과, 가장 사회의 때묻음을 상징하는 단어인 '처세'를 '콜라보레이션'한 제목에서 부터, 코믹 오피스 활극이란 부제는 더더욱 이 드라마의 정체가 무얼까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제목에서부터도  우리가 웹툰 등을 통해 들었던 '`왕'이란 제목도 그렇고, 이제는 쓰지 않는 '활극'이란 단어를 장르적 설정으로 가져다 쓴 것에서 부터, <고교 처세왕>이 빚지고 들어가는 건, '만화적 상상력'이다. 


(사진; 뉴스엔)


<고교 처세왕>의 설정도 그렇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이른바 '간지'나게 서인국이 등장한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그가 싱가폴에서 어려운 거래를 성사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면이 바뀌고, 엘리베이터에 탄 서인국, 급하게 와이셔츠 단추를 끄르고, 그 옆에서 비서로 보이는 이하나가 오늘 시험 시간표를 허겁지겁 일러준다. 다음 장면,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서인국이 학교를 향해 뛰고, 이하나는 그런 서인국의 서류 가방을 품에 안은 채, 필통이 빠져 있다고 소리친다. 
이미 이 씬 하나로, <고교 처세왕>의 모든 설정은 정리된다. 1회의 나머지 시간들은, 첫 씬의 그 설정에 대한 부가 설명들일 뿐이다. 

고등학생인 이민석이 대기업의 간부가 된다는 설정에서부터 '만화적 상상력'을 요구한 드라마는 1회 내내 모든 드라마적 설정들에서, 그 상상력을 연장시킬 것을 요구한다. 무려 8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민석의 형이 쌍둥이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보고 착각할 만큼, 이민석과 흡사하다는 것에서부터, 그렇게 9년이나 차이가 나는 형제가 하루 아침에 부모님을 잃고, 그런 형제를 최창호(오광록 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식처럼 키우고, 그런 상황에서 형은 하나뿐인 동생을 두고, 8년이나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한다. 그런데 대기업에 스카우트 돼서 돌아온다던 형이 사라지고, 사라진 형은, 동생에게 은밀하게 전화해, 자기 대신, 회사원이 되어 출근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갈등을 하던 동생, 경기를 나가는 대신, 회사를 향해 뛰어간다. 

1회의 내용 중 따지고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다. 제 아무리 하키부라지만, 하루 종일, 심지어 때로는 야간 자율 학습까지 학교에 잡혀 있어야 하는 고등학생이 이중 생활을 한다는 것도, 제 아무리 시늉이라지만, 고등학생이 회사원이 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9년이나 차이나는 형제가 남들이 못알아 볼 만큼 똑같다는 것에서 부터가 문제다. 하지만, <고교 처세왕>은 우리가 만화책의 첫 장을 여는 순간, 만화가 풀어내는 황당무개한 상상력에 동조할 선서를 한 듯 여기는 것처럼, <고교처세왕>도 마찬가지로, 애초에 고등학생이 처세를 잘 한다는 드라마를 보겠다고 마음 먹은 한에서, 세부적인 황당함 정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그렇게, 기본적인 줄거리의 만화적 상상력에, 더더욱 만화적 환타지를 불어넣는 것은, 여주인공인 이하나이다. 

남자 주인공, 즉 9살 많은 형의 역할을 하는 이민석 역의 서인국은, 우리가 이미 <응답하라 1997>을 통해 익숙한, 시크한 듯 멋진 고등학생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멋진 고등학생 옆에는 응당 있어야 할 것같은, 자칭 그의 마눌이라는, 스토커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여학생 정유아(이열음 분)가 있다. 물론 이런 이민석의 설정 자체가 환타지이고, 그런 그를 따라붙는 여학생이 그런 환타지를 배가시키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고등학생이 나온 드라마와 만화를 통해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던, 우리에게 신선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하나가, 정수영으로 등장한 순간, <고교 처세왕>은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드라마에서,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드라마로 재탄생된다. 무려 5년만에 텔레비젼을 통해 시청자와 만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이하나는 고지식하고 어리버리한 계약직 2년차의 정수영을 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로 탄생시킨다. 

커다란 안경, 유행을 무시하거나, 아니 애초에 유행이란 단어랑 인연이 없는 듯한 스타일의 옷차림, '페로몬'을 운운하며 자기 만의 세계에 빠져 대뜸 본부장에게 고백을 해버리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실연의 상처에 술에 취해 노숙을 하는 정수영은  만화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리 낯선 캐릭터가 아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눈쌀이 찌푸려지는 진상인 캐릭터를 이하나는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로 캐릭터의 공허함을 메꿔나간다. 이미 우리가, <연애시대>와 <메리대구 공방전> 등을 통해 환호했던 황당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진실한 호소력이 있는 매력을 아낌없이 첫 회에 발휘한다. 덕분에, 흔들리는 화면에, 정체를 알길 없는, 아니 정체가 뻔해보이던 드라마는, 이하나가 등장하면서, 독특한 분위기의 코믹 활극으로의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사진; 뉴스엔)

그리고 이렇게 첫 회에 드라마의 주인공의 '원맨쇼'를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어느새 tvn월화 드라마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고교 처세왕>의 전작, <마녀의 연애> 첫 회를 채운 것은, 무려 고등학생 교복까지 입고 기자로 고군분투하다, 집에 들어와서는 숏팬츠를 입고 화려한 율동까지 선보이며 반지연이란 인물을 설득해 냈던 엄정화의 활약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에 앞선, <로맨스가 필요해 3>에서는 찐한 연애에서 실연까지 적나라한 연애사를 열연한 김소연의 연기가 있었다. 즉, 이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차치하고,  tvn의 월화 드라마가 젊은 여성들의 로망을 반영하는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의 장르로 이어지고, 그 장르의 목적은, 그녀들의 로망의 완성이되, 그 성공은, 그 드라마를 책임지는 여성 캐릭터의 설득력있는 안착이라는데 있다. 이렇게, tvn월화 드라마의 전통에 따라, <고교 처세왕>의 정수영 역할의 이하나는, 찌질하지만, 그래도 정감가는 2년차 계약직의 캐릭터를 살려내고, 그것은 곧, ,황당무개하면서도, 어찌보면 뻔한 <고교 처세왕>의 다음 회를 기약하도록 만든다. 


by meditator 2014. 6. 17. 10:08

개그 콘서트는 일요일 밤 시청률의 강자다. 예능 1위의 확고한 지위를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수치로만 보만(평균 14.7%), 20%를 넘나들던 예전만은 못하다. 심지어 같은 방송국 작품인 <정도전>(평균 시청률 18.9%)에게 동시간대 1위까지 내주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개그 콘서트>는 지금 변화 중이다. <끝사랑>이나, <후궁뎐>, <놈놈놈>, <깐죽거리 잔혹사>, <시청률의 제왕>과 같은 인기 코너는 유지하면서, 매주 새로운 코너들이 선을 보이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최근 <개그 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주된 동인은 확고하게 자리잡은 인기 개그맨들이다. 최근 코너에서 김준호 등이 빠졌지만, 여전히 김준현, 정태호, 박지선, 오나미, 박성광, 김지민 등 확고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개그맨들에, 새롭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허안나, 김혜선, 김대성, 조윤호 등이 가세해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개그콘서트' 우리동네 청문회가 풍자개그를 선보였다. ⓒ KBS 방송화면
(사진; 엑스포츠 뉴스)

특히, 그 중 김대성의 경우, <쉰밀회>, <우리 동네 청문회>, <취해서 온 그대> 등에서 발군의 개그를 선보이는 중으로,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관객들은 환호를 하며 그를 반긴다. 조윤호도 마찬가지다. <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스를 따라다니던 한 졸개에 불과하던 그가, 이젠 거창한 음악이 깔린 상황에서 멋들어지게 등장하여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개그를 선보이며 조윤호의 <깐죽거리 잔혹사>로 코너를 변신시켜 버렸다. 보이스 피싱을 하던 아줌마였던, 이수지는 180도 변신하여, 이제 '선배 선배' 코너에서 개대 1학년  여신으로 등장하여, 한 코너를 이끌어 가기에 너끈한 능력을 보여준다. '대학로 로맨스'의 허안나는 몸을 사리지 않는 분장과 연기로, 뻔한 사랑 이야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선배들의 탄탄한 실력도 만만치 않다. 정태호와 김명희의 환상의 호흡은 두 말할 나위 없으며, 오랜만에 등장한 '쉰밀회'의 김대희는, 한 20년은 빠른 94년생 유아인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존경합니다'라는 코너의 8할은 김준현의 연기력이며, 이쁜 김지민의 반전은 회를 거듭할 수록 발군이다. 하지만, 인기 개그맨들의 활약은 양날의 검이다. 그들이 등장하기만 해도 관객석이나 시청자나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점점 그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코너들은 때론 회차가 지날 수록 속빈 강정같아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개그맨들의 개그력, 혹은 연기력과 과연 개그 코너 자체의 질이 정비례 하는가라는 지점에 있어서는, 코너별 편차가 심하다. 
언제나 개그 콘서트에서 제 몫을 해주는, 송필근, 이동윤, 노우진, 박은영의 뮤지컬 개그는, 개그콘서트만이 가지는 전통의 개그 코너이다. 특히 이번 '렛잇비'는 회사원 컨셉으로, 각 직급별 애환을 놀랍도록 현실감있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웃음을 지우지 않는, 그래서 보다보면 때로는 뭉클해지기 까지 하는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선배선배'의 경우도, 비록 살찐 여성에 대한 비하의 시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자뻑'인 캐릭터를 내세워서, 현실과 개그의 균형감각을 채워간다. 이렇게 상투적인 듯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 보는 듯한, 개그의 흐름에, '끝사랑', '쉰밀회' 등이 있고, 가장 속물적인 인간사를 까발리는 그 지점이 바로 개그콘서트의 장기 중 하나로, 개그콘서트의 인기를 담보해 내는 코너들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오랫동안 휴지기를 가졌던 개그콘서트가 새롭게 시작하는 코너들에는, '존경합니다'와 '우리동네 청문회'같은 풍자 개그들이 눈에 띈다. 

'존경합니다'의 경우, 국회의원이자, 대선 후보인 김준현을 중심으로, 그가 돈을 보고 결혼한 박지선과 무능력한 보좌관 송병철과 서태훈을 포진한다. 돈을 보고 결혼하고, 그래서 매번 장인이 돈을 대주어야 한다고 하는 국회의원 김준현에, 그를 등쳐먹거나,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보좌관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이미 풍자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존경합니다'는 거기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매번 송경철은 김준현을 어떻게 해서든 이용하고, 박지선은 자기만의 세상에 있다. 물론 그런 상황 자체가 이미 이른바 '웃프'지만, 실제 우리가 사회면에서 만나는, 정치인의 현실을 이 코너에서 '소름끼치게' 조우하는 경우는 없다. 틀은 풍자적이지만, 이미 코너 자체가 개그 그 자체의 흐름으로만 명맥을 이어가며, 풍자의 칼날이 무디어졌다. 

새로 선보인 '우리동네 청문회'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고깃집을 하는 이승윤을 놓고, 박지선, 김대성, 박영진이 청문위원으로 등장한다. 박지선은, 뻔한 사실을 외면하고 엉뚱한 것들 들추며 이승윤이 거짓말을 한다고 추궁하고, 김대성은 반찬으로 나오는 부추를 '피파' 잔디에 적당치 않다며 어거지를 쓰며, 박영진은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며 '포지티브'를 강조한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이미 실제 정치 상황에서 보았던 것들이기에,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핵심을 비껴가거나, 외면하는 청문회 의원들이 아니라, 청문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동네 청문회'는 분명 풍자이긴 한데, 거기에 등장한 개그맨들처럼 살짝 핵심을 비껴간 풍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즘처럼 실제 상황이 개그보다 더 '웃긴' 시절에, 그저 풍자의 틀만을 가지고, 풍자 개그라고 자부하기엔 어쩐지 좀 싱겁달까. 조금 더 우리가 최근 울고 웃는 상황을 반영하는 풍자 개그라면 조금 더 속이 시원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이어가는 '시청률의 제왕'이 비교가 된다. 뻔한 내용임에도 방송가의 가장 핫한 이슈들을 계속 코너의 내용으로 발빠르게 수용함으로써, 여전히 '시금석'으로서의 개그를 생산해 낸다. 물론, 정치 풍자와 그 보다 만만찬 방송 풍자의 어렵고 쉬움은 있겠지만, 기왕에 풍자 개그로서 시작했다면, 조금 더 현실의 공감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 

(사진; tv리포트)

그래도 그나마, '우리 동네 청문회'나, '존경합니다'는 그 코너의 의도가 가상히 읽혀지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연애 능력 평가'는 어쩐지 새 코너라기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미 개그콘서트를 통해 숱하게 울궈먹은, 연애에 있어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을 대상으로 한 것에,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박성호나, 정범균이 이전 코너에서 했던 스타일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코너가 새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너 자체가, 박성호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해 가는 형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호의 개인기는 탁월하지만, 그 개인기의 탁월함으로 이끌어 가기엔 코너의 힘이 어쩐지 딸려 보인다. '남성 인권 위원회'나, '남자 뉴스'등 그간 박성호가 했던 코너들이 지금 '연애 능력 평가'의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19금의 연애 상담 프로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연애 능력 평가'의 내용들은 어쩐지 답답해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마치 종합 선물셋트처럼, <개그콘서트>는 가장 생활에서 밀착된 이야기에서, 방송, 정치 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자 시도한다. 거기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은, 안정적인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이다. 언제나 <개그콘서트>는 집밥처럼 편안하다. 하지만, 그 평안함이, 권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날카로움을 탑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kbs 9시 뉴스도 달라지는 상황에서, 개그콘서트도 조금 더 힘을 내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16. 06:58

2014년에 들어서면서 <쓰리데이즈>, <신의 선물>을 시작으로, <골든 크로스>, <개과천선>, <빅맨> 그리고 케이블의 <갑동이>, <신의 퀴즈 4>까지 다양한 장르물의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장르물이라는 특성상 시청률면에는 대중성을 타 장르 드라마만큼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사회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젊은 층에게는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화제성을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위의 드라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장르물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남자들이다. 그것도, <빅맨>의 김지혁을 예외로 하고, 대부분, 청와대 경호관, 전직 형사나 형사 혹은 검시관, 검사시보, 변호사 등의 전문직 남성들이다. 이들은 자기 가족, 혹은 자신이 하고 일의 과정에서 조우한 사회의 부도덕한 면에 맞서 진실을 수호하는 의지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 드라마에는 모두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경찰관으로 쫓기는 경호관을 돕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엄마가 되어 직접 유괴범을 쫓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여성 캐릭터들이, 올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장르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라고 하면, 드라마마다 형편의 차이가 느껴진다. 때로는 신선한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가하는가 하면, 여전히 수동적이며 보조적이며, 때로는 민폐에 가까운 '여성'으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진; osen)

6월 13일 방영된 <갑동이> 17회는,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그 어떤 회차보다도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오마리아(김민정 분)와,마지울(김지원 분)이 그들 앞의 사이코패스로 인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갑동이가 바로 수사반장 차도혁(정인기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마리아, 하지만 공소 시효 만료로 인해 더 이상 그를 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의붓 아버지 한상훈(강남길 분)이 희생을 하여 가까스로 갑동이 사건을 검찰 수사선상에 올려놓게 되는 과정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더구나 48시간을 구금하고 심문을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갑동이라는 알게 된 상황에서도 너무나 태연자약한 차도혁에게 좌절감까지 절망감까지 느끼던 오마리아는 그런 자기 자신의 무기력감의 돌파구를 차도혁의 다중인격에서 찾으려 한다. 즉, 다중인격이라 갑동이가 아닌 차도혁은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정신적 분석으로, 그가 자신에게 여전히 뻔뻔하게 대하는 그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자인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울은 한 술 더 뜬다. 무려 여덟 명의 여성을 즐기듯 죽인 사이코패스 류태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명목하에, 류태오를 찾아든 마지울은 그가 가진 분노를 일깨우며, 그 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피해자로써 자신의 사건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싶어하는 오마리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와 벌]의 쏘냐처럼, 범죄자의 구제에 연연해 하는 마지울이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게, 그가 아니라, 그녀여야 하는가?

마지울은 그저 우연히 들른 커피숍에서 눈에 띤 류태오를 자신의 만화 속 범인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고, 그로 인해 그와 면식을 튼 사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17회를 오는 동안, 과연 마지울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며, 류태오와 빈번하게 접촉하는 상황에 개연성이 충분한가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류태오가 마지울을 자신을 구원해줄 여인으로 삼고 싶었다는 말 한 마디에 낚여, 죄책감을 느끼고, 이제 그의 인간성 회복에 앞장서는 마지울은 단면적이다. 그녀는 여전히 하무염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연쇄 살인범 류태오를 따라 나서던 자기 중심적인 맹랑한 여고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류태오가 살해했던 여덟 명의 여자들은 마지울의 염두에 없다. 오로지, 자신을 바라보는 류태오와, 그에게 대단한 존재인 것 같은 자신만이 있다. 거기에, 모성성의 발로라 여겨지는 무한한 측은지심이라니!

오마리아는 한 술 더 뜬다. 갑동이를 잡기 위해 치료 감호소의 정신감정의가 되고, 류태오를 갑동이를 잡기 위한 제물로 쓰기 조차 마다치 않던 그녀가, 정작 갑동이 앞에서, 정신과 의사인 그녀의 직분을 망각한 채 흔들린다. 아니,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의 지식이, 그녀의 감정에 노예가 되어, 그녀의 눈을 막게 된다. 

17회에 이른 <갑동이>의 여성 캐릭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성', 냉정한 판단, 보다는 충동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르물에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캐릭터의 몫은 대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개과천선>에서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이지윤(박민영 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의협심이 강한 법학 전문 대학원 출신의 로펌 인턴 사원이 된 이지윤은 늘 그녀의 정의감이 그녀를 앞선다. 대형 로펌의 인턴 사원이지만, 사사건건 대응은 감정적이기 일쑤고, 늘 사건을 앞에두고 그녀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건, 그녀의 감성이다. 결국, 청소년 범죄자를 두고 연민에 사로잡힌 그녀는 사건의 진실에  눈 감은 채, 그를 변호하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 자책한다. 물론 이런 사건은 변호사로서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르 드라마에서 유독 여성 캐릭터에게는 이렇게 감정으로 인해 사건을 망가뜨리는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화제를 안고 시작했던 <신의 선물>에서 납치된 딸 샛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 김수현(이보영 분)은 번번히 민폐적 상황을 만든다. 딸을 찾기 위한 맹목적인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앞뒤 안 가리고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고, 정작 그 상황을 해결해 주는 건, 남자 주인공이나, 주변 남자들의 몫이라, 욕을 먹게 되었다.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납치범을 찾겠다고, 정작 딸을 방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골든 크로스>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서이레(이시영 분)와 아버지 기업을 망가뜨린 골든 크로스 멤버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골든 크로스 대표가 된 홍사라(한은정 분)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랑에 눈물 흘리고, 가슴아파하는 역할이다. 그녀들이 하는 일은 복수이거나, 정의 실현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사랑'이다. 

즉, 2014년의 장르물은, 시스템을 갖춰 진 미드를 뺨칠 정도는 아니지만, 2014년의 한국 사회를 냉정하게 재단하는 사회 비평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그 드라마 속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전근대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꼭 여성을 섹스어필한 존재로만 쓰는 것이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오로지 감성이나, 모성, 혹은 연민이라는 특정한 감정적 기제로서만 여성을 소비하는 것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방식에 다름아니다. 

(사진; 뉴스엔)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웃음기 하나 없니, 사랑 타령도 없이, 건조하게 묵묵히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론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여성 캐릭터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었다. <쓰리데이즈> 속 여성들은 감정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사랑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경찰이면, 경찰, 청와대 경호관이면 경호관으로서의 사회적 삶에 충실하다.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위기에 빠져도 거의 누가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온다. 온 몸이 묶인 채 갇힌 이차영(소이현 분)은 스스로 악을 쓰며 묶인 것을 풀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중회전을 하며 차에 치일 뻔하고서도, 동료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에게 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뿐이며, 내가 나의 일을 하듯,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 윤보원 순경(박하선 분)은 한 술 더 뜬다. emp 탄을 맞고,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끄덕없고, 남자 세 명 정도는 거뜬히 쓰러뜨린다.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조력자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쓰리데이즈>의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얼마든지, 작가의 의지만 있다면 여성 캐릭터들도, 보다 진일보한 이성적인 인물로써 드라마 내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2014년의 대부분의 장르물은, 여성을 '여성'으로 소비하고, 소모하는데 진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늘 여성들은 문제를 만들고, 헤매고, 흔들리며, 그녀를 그렇게 만든 남성들의 잿밥이 되거나, 그녀들을 잡아주고, 이끌어 주는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봉사한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회적 시선의 성취만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취가 아쉽다. 여성을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존재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조명해 주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4. 6. 14. 18:29

ebs에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자본주의> 5부작, 이 다큐는 자본주의는 빚이라고 정의 내린다. 즉 실물과 실물의 교환에서 시작된 거래는, 그것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물물교환대신 그 상징물인 '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제는 실물이 아닌, 허상의 세계의 '운명적인 장난'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장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은행, 그 은행이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형태인 금융자본주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의 구분이란 의미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 마라찌는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통해 이제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에 기생하거나, 비생산적인 위치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그 순간부터, 금융은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거대 산업까지 신용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융 시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움직인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그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시스템의 희생자는 언제나 약자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것이다. ebs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의자 놀이에 빗댄다. 노래하고 춤추며 의자를 빙빙 도는 동안, 함께 즐기는 듯 하지만, 노래가 멈춘 순간,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며, 그 탈락자는 대부분, 가진 것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진; OSEN)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 매몰된 우리들이 자본주의라거나,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자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개과천선>에서 보여지듯이 은행에서 적금보다 이윤이 높다하여 CP를 샀는데, 그게 종이쪼가리보다 못하게 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희생자가 되어야,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985년부터 거의 2년 주기로 금융 위기를 되풀이하며, 그 위기를 발판삼아 자신을 키워 온 금융 자본주의는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우리 경제를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거나, 무지했던 금융 위기의 민낯을 이제 드라마가 친절하게 '학습'시켜 주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 2회만을 남김 <골든 크로스>, 강도윤(김강우 분)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는 동안, 대한민국 상위 1%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던 골든크로스 멤버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이익으로 인해 자가분열 중이다. 한민 은행 재매각과 관련된 펀드 조성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 서동하(정보석 분) 경제부총리 내정자, 마이클 장(엄기준 분)은 각자 자신이 새롭게 조성될 펀드의 주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말로는 금융 허브를 지향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자신이 불법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그것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도덕한 사건으로 사표를 냈던 서동하가 경제 부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있어 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 그 펀드의 주최자가 될 것이라는 야심이다. 

그에 앞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강도윤의 아버지같은 직원들을 무작정 해고해 가면서, 충분히 회생 가능성 있었던 한민 은행을 수치를 조작하면서 부실로 만들어 외국계 사모 펀드인 마이클 장의 손에 안겨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동하와, 김재갑 등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이렇게, 정,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은행 하나쯤은 거뜬히 들었다 놨다하면서, 거기에 속한 애먼 직원과 고객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골든 크로스>는 강도윤 가족의 비극사와 복수를 통해 착실히 설명한다. 

<개과천선>은 좀 더 전문적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법인 모처를 연상케 하는 ,차영우(김상중 분) 펌의 김석주(김명민 분) 변호사의 기억 상실과 그로 인한 개과 천선의 과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은 김석주가 얽혀진 사건을 풀어나가며, 현재 대한민국을 난맥상으로 만든 금융 자본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김석주의 약혼자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 당한다. 그리고 김석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까지 당하는 과정에, 과거의 김석주가 설계자로서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유정선을 돕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설계에 따라 유림이 발행한 불법적인 CP를 사들이는 바람에 애꿏은 피해자가 된 수많은 시민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바로 얼마전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모 그룹의 사태다. CP를 샀던 애먼 시민들이 떼로 몰려들어 통곡을 하고, 그것을 정확히 모른 채 팔았던 담당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경제 사회면 기사를 통해 얻어 들었던 모 그룹의 사태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복습된다. 즉, 드라마 속 유림 기업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기 기업의 부실을 막기 위해, 불법적으로 대량으로 CP를 팔았고, 그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망해버린 줄 알고 있는 이 기업이, 사실은 외국계 은행이라는 자금 도피처를 통해, 그리고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에 대한 순진한 사람들의 탄원서 등으로 인한 구제로 인해, 결국은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한 채, 모든 피해를 아무 것도 모른채, CP를 샀던 사람들에게 돌린 채, 자신들의 기업은 온전히 지켜내는 과정을, 김석주의 약혼자가 구속되는 유림 사건을 통해 알게 해준다. 즉, 신문이 보도해 준 기사 이면의 진실을 김석주가 과거의 김석주와 대면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개과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들었다 놨다 했던, 파생 금융 상품 사건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김석주 아버지에게 찾아온 중소기업 대표들의 억울한 사정을 끌고 들어온다. 즉, 중소기업들의 환투기 사건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사실은 은행 측에서, 순진한 중소 기업을 상대로 한 환율 변동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설명하는 중이다. 즉, 환율의 등락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은행의 말만 믿고, 결국은 자신들에게 절대 불린한 금융 파생 상품을,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던 환율이 낮은 시기에 샀다가, 결국은 환율이 오르면서, 중소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덕분에, <골든 크로스>이든, <개과천선>이든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현학적으로 등장하는 경제 관련 용어들과, 전문적 대사들에 다보고 난 후에도,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그간 신문 지상에서 조차, 다 알 수 없었던 경제 관련 사건들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라도 이해 할 수 있게 해준다. <개과천선>의 김석주 말대로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순진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드라마로 공부하는 경제라, 뭐 그렇게 드라마에서 조차 골치 아프게 경제 어쩌고 해야 하게냐고 하지만, 드라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멀쩡한 은행이 수치 조작 몇 개로 넘어가고 애먼 직원들과 돈을 맡긴 사람들만 희생이 되는 세상, 은행 말만 믿고 샀던 증권이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세상,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하려다가, 오히려 덤태기를 쓰는 세상에서, 오죽 갑갑했으면, 드라마까지 나서서 진실은 이렇다고 설명해 내고 있겠는가 말이다. 드라마라도 나서서 진실을 '학습'시켜줘야 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개과천선한 김석주처럼, 진실을 알리고자 애쓰는 드라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학습(물론 시청률의 장벽은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무료 동영상 강의가 어디 있겠는가. 


by meditator 2014. 6. 13. 10:22

6월 11일 sbs의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이 첫 선을 보였다. 정글의 법칙 도시판으로, 땡전 한 푼 없는 뉴욕 생존기를 다룬다. 물론 단순 여행은 아니지만, 뉴욕이라는 이국의 도시로 떠나간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긴' 여행기에 가깝다. 그에 앞서, 6월 9일과 10일 양 일간에 걸쳐 <SNS  원정대 일단 띄워>가 방영되었다. 명목상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오로지 SNS에 의지하여 브라질을 문물과 먹거리를 체험하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SBS만이 아니다. MBC는 지난 5월 30일부터 <7인의 식객>이라 하여, 이른바 스토리가 가미된 음식 기행 프로그램을 방영 중이다. 봄 개편을 맞이한 공중파 예능들은, 현재까지 KBS를 제외하고, MBC와 SBS가 각가 한 두개씩의 여행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왜 하필 지금 여행 예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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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런 여행 관련 예능의 시도에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영석 피디가 만든 '꽃보다' 시리즈일 것이다.  과연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트렌드 상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러 개의 여행 예능이 거의 동시에 출격할 수 있었을까. 그저 여행을 하는 형식만이 아니다. <도시의 법칙>이나, <SNS원정대 일단 띄워>나, <7인의 식객>까지 내용면에서도 <꽃보다> 시리즈에 빛을 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적 전제 조건은 두 말하면 잔소리겠다. 그런데, 누가 여행을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영서 피디의 <꽃보다> 시리즈는 기존 예능의 틀을 한 단계 뛰어 넘었다. 이른바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등 인기 MC는 물론, 그들을 대체할 만한 내로라하는 MC진들의 주도 없이,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 등, 예능은 물론, 연예계 자체에서도 뒷방 신세이던 할배들을 프로그램 전면에 끌어들였으며, 그들의 조력자로, 기껏해야 <1박2일> 게스트 경험만 있었던 이서진을 '짐꾼'이라는 희한한 캐릭터로 등장시킴으로써, 신선한 예능의 틀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성공은, 그에 이은, 하지만 사실 할배 시리즈에 비해서는 맛깔난 재미는 덜했지만, 할배 시리즈가 안정정 성공을 거두었기에 접고 보아줄 수 있는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가능했다. 

이렇게 그간 예능이라면 늘 있어야 할 것만 같았던 존재인 MC, 그것도 개그맨 출신의 MC없이, 예능에서 낯선 연기자 출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프로그램을 만듬으로써 나영석 피디는 예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도시의 법칙>, <SNS 원정대 일단 띄워>, <7인의 식객> 들의 출연자들의 면면도 김성수, 정경호, 백진희, 오만석, 서현진, 김민준, 이영아 등 신선한 연기자 출신들이 대다수다. 

(사진; 7인의 식객 중, OSEN)

<꽃보다 누나> 시리즈에서 후배 이미연은 늘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과연 자신들이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선배 윤여정에게 털어놓는다. 그런 후배의 고민에, 윤여정은, 자신들이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이 온전히 날 것만은 아닌, 연기와 리얼의 경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 즉, 연기자 출신 리얼리티 출연자들은, 각각 배우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실제와 연기의 경계 선상에서, 보다 풍부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풀어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서 짐꾼 이서진, 직진 순재 등의 캐릭터의 성공이 바로  그런 연기자이기에 가능한 지점이었다. 시청자들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 보여진 이서진의 면면이 100% 그의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 상황을 수용해낸 연기자 이서진의 진솔한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진짜인듯, 진짜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간 연기 외에는 방송을 통해 노출이 되지 않은 배우들이기에 가능한 매력들이다. 

후발 주자로 출발한 <도시의 법칙>, <일단 띄워 SNS 원정대>, <7인의 식객>은 선배인 <꽃보다> 시리즈의 이 성공 사례를 충실히 답습한다. 상황을 벌여놓고, 그 상황 속에 던져진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배우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매력과 재미를 끌어내고, 그것을 프로그램의 주된 흥미 요소로 끌어 가고자 한다. 그래서 <도시의 법칙>은 예능 블루칩으로 가장 예능에서 낯설은 정경호를 밀고,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소탈한 오만석과, 자유인 김민준, 야무진 서현진의 매력을 발굴하는데 공을 들인다. 묘하게도 세 프로그램 모두에서 여성 캐릭터인 이영아, 서현진, 백진희는, 남성 못지 않은 털털함과 당당함으로 자리매김하며, 여행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간다. 

또한 <꽃보다> 시리즈의 주된 흥밋거리는, 흥청망청 여행이 아닌, 이른바 '배낭여행'으로서의 조건적 제한이다. 노년의 할배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배낭 여행'이라는 컨셉에 따라, 적은 돈을 가지고, 스스로 여행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벌이는 '고생'이 이심전심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 하는 인기인이지만, 그 사람들이 낯선 이국땅에서는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그 고생담의 공감이, 거기서 빚어지는 진솔한 인간적 매력들이 시청자들을 흡인시키는 매력이 된다. 

그리고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후발 주자들은 빠짐없이 이런 요소들을 포함시킨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생존기라며, 가지고 있는 돈과 핸드폰부터 빼앗아 버리는 <도시 법칙>이나, 여행의 극과 극을 보여주겠다며, 배낭 여행팀을 정하고, 적은 돈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마쳐야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그 어드벤티지 조차도 과연 정말 어드밴티지조차 의심이 되는) 극한의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도움없이 SNS에만 의존해 여행을 가야 하는 <SNS 원정대 일단 띄워>의 모습은, 핸드폰에 의존해서 갈 길을 찾던 <꽃보다> 시리즈의 짐꾼이 연상된다. 
(사진; SNS원정대 일단 띄워 중, 오마이스타)


이렇게 <꽃보다> 시리즈로 부터 시작된 여행 예능은, 이제 <도시의 법칙>, <SNS원정대 일단 띄워>, <7인의 식객>을 통해 만개하고 있다. 케이블의 아이디어를 공중파가 답습하거나, 확산시키는 컨텐츠의 역전이다. 
물론 <꽃보다> 시리즈 이전에도 무수한 여행 예능이 있었다. 하지만, <꽃보다> 시리즈의 성공은 단지 여행을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연예인의 날것의 모습을 통해, 나이가 들거나, 젊거나, 혹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상관없이 인간 본연의 매력을 깊이있게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라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에 새삼스레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열정적인, 하지만 지는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듯한 안타까움에의 공감때문이 아니었을까? 후발 주자들이 성공을 거두가 위해서는, 그저 여행을 떠나거나, <꽃보다> 시리즈가 가진 재미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선배를 뛰어넘을 여행 속에서 발견한 인간미에 대한 천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꽃보다> 시리즈건, 혹은 <도시의 법칙> 등 여러 후발 주자건, 자기 충전과 삶의 돌파구로서의 대안으로서 여행이 보편화된 세상을 반영한 모습이다. 일찌기, 들뢰즈는 노마디즘을 설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는 유목주의야 말로, 몇 천년의 정주 문화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에, 여행이 삶의 주된 반전이 되며, 그것이 예능 컨텐츠로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삶과 생활 방식에 대한 권태와 회의, 새로운 삶의 대안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갈구의, 감각적인 반응일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4. 6. 12. 17:29

6월 11일 밤 11시 15분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이 첫 방송을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의 피디 이지원은 이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 뉴질랜드, 캐리비안 편의 피디이다. 이지원 피디는 <정글의 법칙>을 연출했던 경험을 도시에 접목시킨다. 아예 제목부터, <정글의 법칙>이 오버랩되는 <도시의 법칙>은, 정글 대신 도시를 택한, 아니 '콘크리트 정글'에 던져진 연예인들의 생존기이다. 

성시경의 예능 첫 나레이션 도전기이기도 한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은 나긋한 성시경의 목소리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하지만 달콤한 나레이션의 목소리와 달리, 전 세계 패션, 금융, 문화의 중심지 도시에 떨궈진 김성수, 이천희, 정경호, 문(로열 파이럿츠) 그리고 백진희의 뉴욕 도전기는 낯선 정글에 떨어진 병만족의 삶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도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철학적 화두를 내걸고 프롤로그를 시작했지만, 그 도시인을 설명하는 돈과 직업과, 안락한 삶의 조건이 박탈된 이방의 도시인들에게 이방의 도시란 낯선 정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처음 뉴욕을 방문하거나(문의 경우 오랫동안 미국에서 이민을 했던 미국시민권자이지만, 정작 뉴욕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머물기는 처음인 다섯 사람의 시작은 그들이 영화 등을 통해 접한 이른바 '뉴요커'의 멋들어진 삶을 연상하는 꿈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꿈이 깨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뉴욕을 상징하는 맨하탄의 문물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건너가면서, 마천루의 숲 뉴욕은 멀어져만 간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브루클린의 공장 지대와 같은 허름한 거리에 서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문틈이 뒤틀려 있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가구 하나없는 광활한 공간이 바로 그들의 뉴욕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정글 생존기 답게, 제작진은 출연진들의 지갑과 핸드폰 등을 탈탈 털어가 버리고, 이제부터 당신들의 뉴욕 모험기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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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뉴스)

낯선 도시, 그리고 예상을 벗어난 지역에서 시작된 뉴욕 도전기에 다섯 명의 도전자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지는 것도 잠시, 발빠르게 도시 생존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청소를 시작으로. 

뉴욕에 도착한 후, 출연진 중 연장자인 김성수가 강호동이나 유재석은 안오냐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듯이, <도시의 법칙> 출연진은 예능에서는 익숙한 듯 낯선 면면들이다. 
케이블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등을 봐서, 예능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김성수는 출연자 중 가장 연장자로 익히 아는 후배들을 긴장시키지만, 비상 식량으로 '가래떡'을 준비하는 반전의 용의주도함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뉴욕에서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그의 실상은, 가장 연장자인 포지션에 반전의 묘미를 가져올 요소가 다분하다. 
이천희는 이미 <패밀리가 떳다> 시즌1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허당'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사람이다. 여전히 종종 몸개그를 보이지만, 이젠 아내와 딸을 가진 가장이 되어 돌아온 그는, 예전의 허당 천희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특히나, 목공예가로도 자타가 공인한 그의 숨겨진 면모는, 허름한 빈 건물만 덩그러니 던져진 뉴욕이라는 정글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케이블 캠핑 프로그램에서 이미 보여진 그의 여행 경력 역시, 백진희를 위해 텐트를 준비하는 것에서 부터, 예전의 '허당'과는 다른 '능력자'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제작진이 프롤로그에서 부터 '예능 블루칩'이라고 강조한 정경호는, 배우로서는 중견의 위치이지만, 예능에서는 신선한 캐릭터이다. 꽃미남 배우임에도 첫 방송부터 깎지 않은 수염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정색을 하며 제작진과 딜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멋진 배우 정경호를 넘어선 숨겨진 예능 블루칩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세 자매 중 맏딸이라는 백진희 역시 이쁜 여배우라는 수식어를 지워 버린 채, 네 명의 남자와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전혀 꺼리낌이 없다. 허름한 건물도, 지갑을 비워버리는 상황에서도, 언제 우리가 이런 걸 경험해 보냐며, 네 남자보다 호탕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남자들과 함께 하는 생존기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예능 여성 캐릭터로서의 바람직한 출발을 보여준다. 
애초에 프롤로그에서부터 '넌 누구니?'라고 시작한 문은, 이제 데뷔한 지 2개월이라는 일천한 연예계 경험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자라온 그의 경험이, 다른 네 사람과 동등한 , 아니 오히려 우월한 입지를 제공한다. 오래지 않은 연예계 경험이, 그리고 오랜 미국 생활이, 자유로운 당당한 캐릭터로 문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들의 조력자로서 등장할 미국이민자 출신인 이미 예능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했던 존박과 언제나 솔직하고 발랄한 에일리의 합류 역시 다섯 사람과의 또 다른 시너지로 기대된다. 제작진이 가장 경제적인 출연진이라는 평가 답게, 익숙한 듯 낯선 다섯 사람의 조합이 적어도 첫 방송에서 거슬리거나, 되바라지지 않은 채, 기대감을 부여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출발인 셈이다.

아예 대놓고, <정글의 법칙>의 도시 버전이라며 시작한 <도시의 법칙 IN NEW YORK>는 이방인 뉴욕이라는 도시에선, 정글에 던져진 병만 족과 다르지 않은 신세인 다섯 사람의 도전기로써 첫 방 후 , 적어도 다음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순탄한 출발이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시작된 '여행'을 화두로 내건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낯선 이방의 문물을 주마간산격으로 스치듯 여행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현지에 머무르며, 생존기를 써내려가는 <도시의 법칙>은 적어도 첫 방만으로는 차별성을 충분히 갖춘 듯이 보인다. 더구나, '도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철학적 화두에 걸맞게,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다섯 사람의 생존기를 통해, 제작진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요리해 가는가에 따라, 도시에서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첫 시즌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이라는 곳에서의 삶의 필요충분 조건을 반추해 볼 여지도 담긴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부디 프롤로그에서 야심차게 내보인 목적을 잘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12. 05:58

6월 10일 밤 10시 50분에 방영된 다큐 공감은,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여성의 현주소를 다룬다.


왁자지껄한 화장품 시연장, 그곳에 모여든 중국 등 외국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의 화장 비법에 관심을 쏟고, 그 비결이 되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연다. 최근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그 주인공들의 패션, 화장 등 스타일 비법 등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파리지엔느'나 '뉴요커'처럼 '서울여성'도 이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상품이 되어 세계 시장에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에서 문화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한 이른바 '서울 여성'상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큐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상으로 자리매김한 몇몇 유명 인사들을 찾아나선다. 

우선 오랫동안 슈트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최근 국립 발레단 단장에 취임한 강수진, 그녀는 말한다. 어제의 내가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의 경쟁 상대라고. 발표회 날 단 하루를 위해, 345일 연습을 한다는 그녀는, 바로 그 '자기 계발'이라는 말로 대신할 345일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여성이다. 

또 다른 여성상으로 등장한 이는,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회 주최자가 된 손미나이다. 그녀는 앞날이 보장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내던진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이 늘 장밋빛 일 수 없으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런다는 자신의 긍정 마인드가 자기 삶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외국 유학 경험이 없이도 영어 동아리 경험 만으로 CNN기자가 되고,  아이랑 TV 사장까지 역임한 손지애에게 일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 셋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라는 위치를 놓지 않은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세 아이들의 모유 수유를 성공했던 것처럼, 늘 자기 삶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성공한 엄마를 놓지 않았다.

디자이너 최지형 역시 미혼의 그녀도 멋진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한 이후의 자신은 일과 삶의 균형을 완성한 느낌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거침없는 자유로움의 뉴요커나, 쿨한 멋스러움을 내세운 파리지엔느와 달리,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이 내세운 서울 여성상은 진취적이며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현명한 여성상을 의미한다. 
진취적이면서 열정적인 여성상은 이른바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그려내는 슈퍼 우먼으로 연상되는 바로 그 모습이다. 그 어떤 장애물도 꺼리낄 것없이,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향해 도전하는 여성,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서울 여성'은 거기에 또 하나의 요소를 더한다. 역사적 인물로서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에 까지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며, 전통적 여성들이 가진 현명한 미덕을 서울 여성의 장점으로 덧붙인다. 즉, 손지애처럼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여전히 엄마로서의 역할을 놓지 않는 모습이라던가, 최지형처럼 결혼을 인생의 완성이라 여기는 가치관을, 한국 여성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조화을 추구하는 '서울 여성'의 스타일은 그들이 추구하는 외향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가장 세련된 화장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화장을 한 듯 보이기보다, 자연스러운 본연의 매력처럼 드러나기를 원하는 '서울 여성' 스타일이, 바로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면서도, 현명한 서울 여성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다큐는 정리한다.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을 통해 본 '서울 여성'은 한류 붐을 타고 인기를 끄는 드라마 등을 통해 인식의 저변을 넓히고, 거기에 활발하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인사들의 성취를 더해, 하나의 문화적 캐리터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의 이면은 존재한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면은, 자본주의 사회 속 경쟁에서 유리 천장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한 슈퍼 우먼의 생존 본능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 또한 '서울 여성'의 또 다른 매력적 요소로 등장한 '현명한 지혜'란 여전히 전근대적인 가족 제도의 틀이 압박하고 있는 슈퍼 우먼의 또 다른 그늘로써 풀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을 통해 문화적 상징성을 띤 '서울 여성'은 충분히 그러할 만 하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에 있어서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음을 다큐도 숨기지는 못한다. 

대기업의 입사 시헙에 면접관으로 자주 참여했다는 이상봉 디자이너는, 입사 지원자들의 얼굴이 서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해져가는 상황을 애석해 하면서, 성형이 일반화되는 우리의 실정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발빠르지만, '획일화'의 함정이 있음을 짚고 넘어간다.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은 자랑스레 서울 여성이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상품으로서 서울 여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다큐의 도입부, 서울 거리에서 만난 우리의 젊은 여성들에게서, 그렇게 세계가 인정한 서울 여성에 대한 자부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 여성하면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을 때, 화면에 비춰진 대부분의 여성들은, 된장녀, 성형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그런 단어에 부합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문화적 상품이 되고, 세계적 트렌드가 되어간다는 '서울 여성',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형 중독에, 된장녀라는 부끄러운 소비 사회의 풍조가 숨겨져 있다. '소퍼 홀릭'이라는 이면을 가진 '뉴요커'처럼 말이다. 남들에게는 자랑스레 팔 수 있는 상품 가치를 지닌 여성사이라도,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진 여성상이 될 수 없다면 생각해 볼 여지을 남긴다. 문화적 상품으로서의 '서울 여성'과, 현실의 '서울 여성' 사이의 괴리는 우리 시대의 남겨진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4. 6. 11.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