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까지 합류한 여섯 남녀들의 뉴욕 생활이 4회차에 접어들었다. 주변 탐색을 끝낸 이들 뉴욕팸은 이제 생활을 위해 뉴욕커들의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은 김성수는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퀵서비스를 하고, 비련의 여주인공 백진희는 눈치를 보며 컬러스프레이를 뿌린다. 지각을 한 이천희는 그 감당을 하느라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정경호는 미드를 제작하는 공간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해 한다. 


4회에 들어선 <도시의 법칙>,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 허름한 건물에 떨궈진 채  지갑마저 빼앗긴 출연자들은 혼란스러워했던 것도 잠시 진짜 뉴요커로 거듭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해 간다. 덕분에 먼지가 풀풀 날리던 건물은 조금씩 사람사는 냄새가 나고,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던 언어는 '호구지책'이 '궁여지책'이 된 듯 능력을 발휘한다. 

난생 처음은 아니더라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여행이 아닌 잠시나마 뉴요커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연예인들은 최선을 다해 도전한다. 일뿐만 아니다. 즉석에서 탄생한 에일리의 <도시의 법칙>로고송처럼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충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4회 마지막을 장식한 마라톤 대회처럼 10초 이상 뛰어본 적이 없는 에일리마저 함께 그 시간을 충실히 완수해 냈다. 


<도시의 법칙>을 보고 있노라면, 뉴욕에 떨어진 연예인들이, 연예인이었던 특별한 위치에서 벗어져 나와, 이른바 '뉴욕팸'의 일원으로 충실히 미션들을 수행해 나간다는데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뿐이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즐겁게 생활하는데, 거기서 그친다. 그들의 일, 그들의 놀이 속에서 시청자들까지 이어지는 공감은, 4회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글쎄다. 아마도 나날이 떨어져 가는 <도시의 법칙> 시청률은 바로 그들의 뉴욕 체험기가 시청자들의 공감까지 이르지 못하는 '불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선 <도시의 법칙>이 보여주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떨까? 첫 회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내린 뉴욕은 우리가 몇 개의 다리로 연결된 지역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뉴요커'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그 화려한 도시 이상의 여러 지역을 포함한다, 그 중 출연자들이 머무르게 된 맨하튼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는 뉴욕이지만 뉴욕이 아니다. 하지만 그뿐이다. <도시의 법칙>은 출연자들이 머무르는 그곳에 대해, 그렇게 뉴욕이다, 아니다, 뉴욕이 그것만은 아니다. 이런데도 있다 라는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맨하튼이 아니다. 뉴요커의 그곳이 아니다. 그 이상의 정취를,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런데서 한번 지내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이 들 정도의 정취를 자아내지 못한다. 뉴욕이든, 맨하튼이든, 미국의 그 어떤 다른 도시이든, 크게 차별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4회에 이르렀는데도, 그저 여전히 영어를 쓰는 이방의 도시 그 이상의 낯섬을 넘어서지 못한다. 

도시가 여전히 생경하듯,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호구지책'을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하는데, 미션이상, 뉴욕의 도시에서, 그들이 그런 일을 하는데, 한국의 연예인이 이런 일을! 하는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이제 좀 알아준다는 이천희가 이국 목수 공방의 커다란 문짝을 사포질을 해도, 한국에서 좀 알아준다는 정경호가 '미드'가 만들어지는 스튜디오에서 고생하는 한국의 스탭들을 떠올리며 이국의 스탭들의 수발을 들어줘도, 김성수와 백진희가 허드렛일을 해도 그뿐, 그들이 왜 굳이 뉴욕까지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는' 공감이 딱히 전해져 오지 않는다, 그들은 힘들고, 즐겁고 한데, 그뿐이다. 

엄밀하게 공감의 근거는 없다. 그저 <도시의 법칙>이란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그 첫 여행지로 뉴욕이 정해지고 거기에 김성수를 비롯한 다섯 명의 연예인들이 던져졌을 뿐, 하지만, 그것이 기왕에, 프로그램으로 주중 11시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 다섯 명의 이유없는 뉴욕 정착기가 이유있는 듯이, 무작정 뉴욕 거주기가 필연적인 운명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 무엇을 부여해 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도시의 법칙>에서는 그게 딱히 잡혀지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살기 위해 뉴욕의 생활을 이것저것 부닥쳐 보는데, 그들의 고생을 지켜보는 관음의 즐거움도, 고생 끝에 얻은 '낙'에 대한 공감도 아직 <도시의 법칙>에서는 미지수다. 출연자들만 부산스레 돈을 버느라 고생하고, 번잡스러운 상황처럼만 보인다. 

출연자들에 대한 감정 이입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의 법칙>은 섣부르게 뉴욕 생활에 천착하겠다며 어설픈 외국 이름을 들먹인다. 그렇다면 혹시나 <도시의 법칙>이 계속 생존하여 일본이라도 가게 된다면, 거기선 미찌코며, 히로부미며 하는 이름들을 지을 것인가? 영어 유치원도 아니고 이방의 이름짓기가 <도시의 법칙>의 무리수인지, 개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르기 편하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낯선 이방의 잭이며 스캇이, 이 프로그램의 정을 들이는데 방해가 되는건 사실이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시의 법칙>은 요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다 그렇듯 분주하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잡기에 앞서 나간다. 마흔줄의 김성수는, 어느 틈에 어르신이 되었고, 백진희는 무한 긍정 막내이며, 정경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능 기대주다. 그런데, 이 발상 자체가 이젠 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또 다른 예능에서 한번쯤은 써먹었던 뻔한 캐릭터라는 거라는데 함정이 있다. 왜 나이가 좀 있으면 고리타분한 어르신이 되며, 막내는 언제나 무한 긍정이고, 신참은 신선한 캐릭터인지? 이렇게 앞서 나가며 지레 이름표 붙이듯이 지명한 캐릭터들이, 오히려, 김성수, 백진희, 이천희, 정경호 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앞서나가는 캐릭터 만들기에 한 술 더 떠서 <도시의 법칙>은 관계 만들기에도 앞장 선다. 2회에선 백진희의 이천희 앓이를 만들기에 골몰하더니, 4회에선 백진희와 문의 핑크빛 모드에 열중한다. 물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새로운 인간 관계가 빚어내는 분위기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백미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시청자보다 앞서 나간다는데 있다. 시청자가 보기에, 이천희가 허당 천희인 줄 알았는데, 뚝딱뚝딱 못하는게 없고 멋진 남잔데? 라고 느끼기도 전에, 프로그램이 먼저 설레발을 친다. 이 남자 멋지다고, 정경호도 마찬가지다. 잘생긴 배우로만 알았는데 대뜸 수염부터 기르고 나와서, 이 사람 뭐지? 하는데, 자막이 먼저 예능 기대주라며 호들갑을 떤다. 유일한 여성 멤버 백진희는 제일 바쁘다. 이천희를 멋있다고 하다가, 어르신과 함께 낯선 뉴욕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다, 이젠 문과 러브라인도 만들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둘이 좀 붙어있네 싶은데, 프로그램은 혼자 하트 뿅뿅이다. 이렇게 앞서 나가 관계를 설정해 버리니, 정작 할 말이 없다. 결론이 이미 났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뭔 소용이란 말인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은 어쩌면 콜롬부스의 신대륙 못지 않은 발견의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콜롬부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죽은 순간까지 자신이 갔던 곳이 인도인 줄만 알았다고 한다. <도시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책상 위의 기획안에서 생각했던 메뉴얼을 넘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뻔한 정석을 넘어, 진짜 그들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빚어냈던 진짜 이야기에 천착해야, 시청자들도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시의 법칙 in 뉴욕>의  in 뒤에 붙여질 지명들의 수가 점점 더 줄어들을 가능성이 높다. 


by meditator 2014. 7. 3. 11:31

장혁과 장나라는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까칠한 재벌남 한기태와 제목처럼 내세울 것없지만 언제나 밝고 씩씩한 19 소녀 차양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르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재벌남과 소텨처럼 밝은(?) 여자가 되어 로맨틱 코미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조우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12년 전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는 이유만으로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첫 회를 연 드라마에서 그 예전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스했던 한기태와, 놀이공원에서 동물 탈을 뒤집어 쓰는 일을 해도 씩씩했던 차양순 대신,<주군의 태양> 주중원과 태공실이 다시 돌아온 듯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샴푸 모델의 촬영 현장에 난입한 장인 화학의 회장 이건(장혁 분)은 트집을 잡는 모델대신 스스로 긴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물에 적셔 웃통을 제낀 채 가슴을 열어제낀채 호탕한 웃음을 웃어제끼며 자신과 자신의 기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샴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장혁이 재벌남이며, 그가 보인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안하무인의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장나라, 첫방부터 ’12년 묵은 케미’ 폭발
(사진; 뉴스24)

다음 장면, 양 손 가들히 커피와 도넛을 들고 뛰는 김미영, 그녀는 스스로 '포스트 잇'같이 존재감없다고 평가하는 로펌의 계약직 사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존재감은 사무실 곳곳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위해 불려지는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절을 할 줄 모르는 그녀의 성격 덕분에 그녀는 첫 장면 커피 심부름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후 장혁과 만나게 되는 그 장면의 계기가 되는 상사 딸의 사탕 심부름까지 차고도 넘친다. 

괴팍한 재벌남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자라, 이 두 사람을 통해 시청자들은 12년전 <명랑 소녀 성공기>보다는 2013년 인기를 끌었던 홍자매의 <주군의 태양>이 자연스레 떠올려 진다. 가진 것은 많지만, 심리적 하자가 있었던 주중원처럼, 이건은 능력있는 재벌이지만, 허황한 웃음에서도 당장 느껴지듯이 결핍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요, 김미영은 그 예전에 당차고 씩씩했던 소녀 대신, 귀신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부탁에 휘말려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가진 것 없는 하지만 마음만은 착한 여자이다. 

귀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와 태공실과 달리,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치 못하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포스트 잇같다고 폄하하는 김미영은 직장 생활을 하는 그 누군가라면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공감가는 캐릭터이다. 동시에, 어떤 드라마에선가 보았던 거 같은 익숙한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직도 소녀같은 눈망울을 지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 캐릭터는, 언제나 장나라가 해왔던 연기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이기에 공감을 일으키는 묘한 연민의 대상이 되어 나타난다. 진부함과 공감의 경계, 거기에 첫 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라는 캐릭터가 서있다. 

그에 반해, <주군의 태양> 첫 회, 늘 진지한 역할만 했던 소지섭의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재벌남의 연기로, 연기력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듯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은 그 예전 까칠하고 무심한 재벌남 대신, 굳이 <추노>의 ost를 끌어오지 않아도, 당장이라도 '언년아~'라고 외칠 것만 같은 진지한(?) 발성과, 과장된 연기로 <주군의 태양> 첫 회 오그라드는 손발을 견뎌내며 소지섭의 연기를 참아내야 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건 역의 장혁 연기가 오버 페이스인지, 아니면 이건으로서의 독특한 설정인지 판가름내기 위한 좀 더 장혁의 연기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여진다. 
 
아니 참고 견뎌내야 할 것은 장혁의 연기만이 아니다. 젊은이들 결혼률이 나날이 감소해 가는 세상에, 전주 이씨 22대 종손에 서른 전에 요절해버린 선조들을 가진 대을 이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이건의 결혼 해프닝에, 마카오 여행권을 노려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 뻔해 보이는 변호사의 접근에도 무방비한 김미영의 '착함'에, 이 둘의 첫 만남을 위한 박진감넘치는(?) 장면을 위해 온갖 개들의 찬조출연조차 마다하지 않는 뻔한 설정과,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물에 떠내려 가는 물병을 다짜고짜 잡아 들이키는 마지막 장면의 어이없는 해프닝까지 로맨틱 코미디니까 봐줘야 하는 것들로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첫 회는 가득차 있다. 

<주군의 태양>은 어색했던 소지섭의 연기와, 귀신을 본다는 황당한 설정의 태공실이라는 캐릭터를,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수 있는 귀신들의 사연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적 공감을 길어올렸다면,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남과 가진 것 없는 여자라는 로맨틱 익숙한 정석 외에, 어느 지점에서 시청자들의 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2008년 대만 tv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39부작의 드라마이다. 제 아무리 대만에서 히트를 쳤다지만, 2008년의 대만과, 2014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시간적 격차를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극복해 냈는지, 혹은 낼 수 있는지가 아마도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듯싶다. 다짜고짜 원나이트를 위해, 느닷없이 등장한 재벌남 이건을 노린 음모에서부터, 우연이라기에도 과한 김미영의 물병 '원샷'에 다음 회에 이어질 하룻밤까지 시청자들의 인내심 이상의 그 무엇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불러 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12년 만에 다시 재벌남과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도 못한 소녀로 만난 장혁과 장나라의 처지는 같은 듯 다르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가진 것 많아서 여자를 '케어' 해줄 수 있는 남자와 가진 것 없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여자로 만났지만, 12년이 지난 재벌남은, 그때 그 시절의 부만으론 부족한 듯 한껏 과장된 제스쳐로 결핍을 뚝뚝 흘린다. 씩씩했던 그 시절의 소녀는, 여전히 씩씩하지만 세파에 시달린 듯, 자존감은 결핍되어 있다. 2002년 살기 힘들어도 자부심이 넘쳤던 젊은이들은, 12년이 흐른 후 2014년의 젊은이들처럼, 번듯한 듯 하지만, 결핍이 가득한 세대로 돌아왔다. 과연 이들의 사랑도 동시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by meditator 2014. 7. 3. 09:39

1990년에 시작한 <PD수첩>이 1000회를 맞이했다. <PD수첩>은 1000회를 맞이하여,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화두인 '돈'을 취재,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3부작을 준비했다. 그중 1부, 대한민국 중산층, 52세 그 후 를 7월 1일 방영했다. 


왜 하필 52세일까? 1990년, <PD수첩>이 시작된 바로 그 해,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청년들의 현재 나이가 바로 52세이다. <PD수첩>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회의 특집을 내보낼 수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는 동안,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그 청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PD수첩>이 찾아본 52세의 현실은 암울하다. 올 4월 국내 최대 통신 사업자  KT는 명예 퇴직 신청을 받아 8304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감축했다. 그들의 평균 나이는 바로 평균 51세, <PD수첩>과 함께 첫 사회 생활의 발을 딛었던 그 청년들이다. <PD수첩>이 1000 회를 맞이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돌아갈 직장이 없다. KT가 인원을 감축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5505명, 2009년 5992명의 인원을 감축한 바 있다. <PD수첩>은 그중 2009년에 명퇴한 퇴직자들의 삶을 찾아본다. 

몇 천만원의 명예 퇴직금을 받고 거리로 내몰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09년 명예 퇴직한 이기환씨, 준비없이 내몰린 명예 퇴직 후 야심차게 고물상을 시작해 보았으나 경험 부족으로 날려버리고, 지금은 친구의 상가 한 켠에서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떡을 빚느라 고생중이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그가 고물상을 날려버리는 동안 가장의 노릇을 하느라 분식집을 차려 고군분투 중이다. 아내는 말한다. 정말 열심히 살지만,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 삶의 질은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이기환씨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곱게 직장을 다니던 많은 퇴직자들의 이후의 삶은 이기환씨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용직 택배 회사에 다니는 이도, 짜장면집을 운영하는 이도,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퇴직자 중 정규직에 종사하는 이는 12%, 33%가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40%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퇴직금은 50% 미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60% 이상이고, 80%는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진: 일요신문)

그들이 말하는 중산층이 대단한 게 아니다. 이기환씨 아들의 소망처럼, 6개월에 한번쯤은 여행도 다니고, 한 달에 한번쯤은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을 수 있는 삶, 이제 더는 그런 삶을 그들을 누릴 수 없다. 

그래도 자영업이나마 자기 사업이라도 하면 낫지 않느냐고?
요즘 제일 잘 되는 사업이 망한 식당 정리해주는 철거업체 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회자되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은 창업중이다. 그 말의 이면은, KT처럼 명예 퇴직을 통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그나마 퇴직금이라도 유지하겠다고 사업을 벌이고, 그 벌인 이상의 사람들이 망해 나가떨어진다. 한 해 폐업 인구 90만명, 하루에 문 닫는 곳 2500여 곳, 창업시 1년 이내 폐업률 18.5%, 3년 이내 폐업률 46.9%가 우리의 현실이다. KT를 나와 그래도 잘 된다 하여 짜장면집을 연 김철호씨는 1년에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하지만 그 나마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종 업종으로 이익을 내기도 힘든 현실에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명예 퇴직은 KT만의 현실이 아니다. 기업들은 불황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자신의 리스트를 명예 퇴직 등을 통해 털어버리고,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다. 그래서 공장들이 많은 창원의 최고 번화가 상남 지구 같은 곳은, 이제 그렇게 명예 퇴직자들의 창업으로 인해 포화 상태를 넘어, '개미 지옥' '동반 자살'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넘쳐나는 퇴직자들이 창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 효과 증진'을 내세운 대형 유통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그나마 자영업에 내몰린 중산층들의 뿌리를 뒤흔든다. 파주 등에 세워진 대형 아울렛 매장은 파주의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편법으로 파고드는 대형 마트의 체인식 소규모 마트는 그나마 남은 밥줄마저 간당간당하게 위협한다. 자신들의 리스크를 덜기 위해 사람들을 내몬 것도 부족해서, 대기업들이 그들의 밥그릇마저 넘보는 것이,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위협에서 가장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는 대표적 세대가 바로, <PD수첩>과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야심찼던 그 청년들, 이제는 오십대 초반이 된 그들이다. 

개인에 대한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는 사회, 그 속에 던져진 조직 속에서 솎아내진 이들, 그래서 기왕의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하고 있는 이들, 비정규직으로는 앞날이 보장되지않아 불안하고, 자영업을 하자니 경험이 없어 망하기 다반사, 그나마 벌여 놓아도 너도나도 해보자고 덤비는 통에 이익은 저만치 뒷전인 우리 사회의 고통을 온 몸으로 감수하고 있는 세대, 그것이 바로 <PD 수첩>이 1000회가 되는 동안 사회에 헌신했던 이들의 현주소다. 


by meditator 2014. 7. 2. 05:53

6월 30일 mbc스페셜은 번아웃(Burn Out) 증후군에 대해 다룬다. 

번아웃 증후군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스트레스 질환으로, 2013년 현재 하루 평균 근무 시간 10시간 30분의 대한민국 사회가 낳고 있는 후유증이다. 
영어 사전에서 burn out을 찾아보면, 말 그대로 불태우다, 소진하다 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의미 그대로, burn out은 직업적으로 자신의 열정을 다 소진시켜 버려, 더 이상 어떤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 그로 인해 일이 오로지 스트레스로만 개인에게 부여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볍게는 건망증에서부터 시작된 이 질환은 우울증, 인지 능력 저하, 불면증까지 개인의 생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개인을 고사시켜 가며, 그 파급력은 가족, 직장 나아가 사회에까지 미치고 있다. 


다큐는 번아웃 증후군을 설명하기 위해 몇 명의 사례자를 추적한다.
쇼핑 호스트 권미란 씨, 직업의 성격 상 분초를 다투며 실적을 올려야 하는 권미란씨의 업무 시간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정해진 방송 시간에따라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늘 권미란씨는 생방송 시간을 앞두고, 늘 혹시나 실수를 할까봐, 생각만큼 실적이 오르지 않을까 초조해 하며 아이와 노는 중간에도,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방송 준비에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방송을 마치고 나오면 파김치 돼서 탈진하다시피 잠을 청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일곱살박이 딸은 늘 엄마의 존재에 갈증을 느끼고, 그런 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친 권미란씨의 일상은 여유가 없다.

이렇게 번아웃 증후군은 그 특성상, 직업적으로 업무의 성격 상 시간을 다투는 일의 경우 그 사례가 높다.  70% 정도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다는 간호사 고성준씨도 예외는 아니다. 3교대의 중환자실 근무를 5년째 하고 있는 고성준씨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환자와의 대화도 허술히 할 수 없는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강도높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 니, 열정은 커녕 무기력해지면서 시간만 나면 잠을 청하지만, 불면증은 그런 그에게 달콤한 잠조차 허락치 않는다.

그런 고성준씨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목이 잔뜩 부은 상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이다. 이렇게 번아웃 증후군 환자들은 자신에게 가중된 스트레스를 벗어나고자 카페인이나, 알코올에 대해 의존하는 빈도수가 높다. 납입 기일을 맞춰야 하는 주방 기구 업체 제조업 반장 정성철씨도 예외가 아니다. 서른 네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책임자의 위치에 오른 정성철씨는 회사 내 온갖 허드렛일까지 신경써야 하는 처지로, 퇴근 무렵이 되면 지칠 대로 지쳐 버린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낙이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반주 한 잔이다. 한 잔에서 시작된 반주는 부인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한 병에 이르렀다. 

하지만 촉각을 다투는 업무의 특성만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남아공을 여행하다 낭만적인 사랑을 하며 결혼에 골인했던 유임주씨는 아직 자리잡지 않은 유치원을 이끌어 가야 하는 강박 관념이 그녀를 번아웃 증후군에 빠뜨렸다. 물이 흐른 바닥을 닦는 아이들 뒤치닥거리에서, 학부모 상담, 학원 홍보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그녀는 결혼 초보다 무려 20kg이나 살이 쪘음에도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달래는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녀는 아직 채 자리잡지 않은 학원때문에, 언제 이 사회에서 밀려날 지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mbc다큐는 이런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병리학적 증상이 그저 심리적 병증이 아니라, 경쟁을 내재화한, 그 어느 나라보다 혹독한 노동 시간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사회가 가져온 휴유증이라고 진단한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다수의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 지친다를 달고 사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번아웃 증후군은, 피로 사회의 현실을 증명한다. 현 독일 카를스루 조형 예술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한병철 교수는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을 피로 사회로 설명해 낸다. 전쟁 등의 외적 영향은 줄어들었지만, 성공을 내재화한, 그것을 개인의 짐으로 온전히 안긴 현대 사회는 인간은 그 개인이 성과 주체가 되어 사회적 하중을 견뎌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과잉 활동, 과잉 자극에 시달리고, 그 부작용으로 '피로'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바로 그 피로 사회의 전형을 mbc다큐 스페셜은 현재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는 번아웃 증후군을 통해 설명해 낸다. 번아웃 증후군에 이르기까지의 사례를 들은 설명은 적나라하다. 하지만, 그런 증후군을 설명해낸 다큐의 해결책은 정신과 의사의 입을 빌어, 머리로 가는 자극을 잠시 차단키 위해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보며 여유를 가지고 산책이라도 즐길 것을 권한다. 물론, 진통제를 처방하듯, 이런 대증적 요법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평균 10시간 30분의 업무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사회, 개인의 낙오에 그 어떤 사회적 방탄막이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직장을 다디는 엄아, 아빠에게 아이를 키울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올려다보며 내쉬는 한숨의 여유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절박한 현실 인식과 고발, 그리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오늘을 사람들에게 어쩐지 아쉬운 처방의 시간,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아웃>이었다. 


by meditator 2014. 7. 1. 10:51

6월 29일 <정도전>이 50부작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혁명가 정도전은 사라졌고, 이씨 왕조로서 조선은 정립되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에 줄 좀 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는, 정도전의 피를 자기 칼에 묻힌 이방원을 조선의 기틀을 닦은 왕이라 정의내린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만든 조선을, 본격적으로 국가로서 기틀을 세운 사람이 바로 이방원,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이방원이 세운 조선의 기틀의 대부분을 정도전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혁명의 설계자들의 죽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로베스 피에르와 당통은 결국 그들이 반혁명 분자를 처단하기 위해 만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에서 비유되었던 한나라의 실질적 설계자 한신 역시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원칙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일구었던 이들처럼, 정도전도, 그가 꿈꾸던 '민본'의 세상을 앞두고, 왕조의 부흥을 꿈꾸는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 로베스 피에르와 당통의 죽음으로 훼손되지 않듯이, 한신이 사라져도 한나라의 정치 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듯이, 고종 시대에 가서야 복권이 된 정도전이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 정도전의 나라였다. 그가 만든 법률, 그가 만든 정치제도, 그가 방향을 잡아놓은 숭유억불의 사상, 그가 꿈꾸었던 정전제의 이상을 지향했던 토지 제도까지, 하다못해 궁궐에서 울려퍼지던 음악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가장 순수한 혁명을 꿈꾸던 순수한 이상들이, 현실의 정치 과정에서 가장 과격한 길을 걸어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듯, 자신의 당대에 '민본'을 완수하겠다는 욕심에 조바심을 내던 정도전은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불사하며, 비타협적인 길을 걷다 스스로 고사되어 버리고 마는 모습으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사진; tv리포트)

이렇게 드라마 <정도전>은 역사 속에 숨겨졌던 이름 정도전을 현재로 끌어낸다. 그리고 그와 함께, 50부작의 드라마 내내 그가 줄기차게 부르짖던 '민본'도 함께 길어 올린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와도 다르지 않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도전의 행로에서, 때로는 그와 전우가 되고, 때로는 그와 척을 지며, 이합집산하는 많은 인물들도 함께 우리 사는 세상의 그 누군가처럼 등장시킨다. 
그래서 그저 외척의 권세를 등에 업은 간신배였던 역사 속 이인임은, 현실 정치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노회한 정치가로, 그런 이인임에 맞서 고려의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했던 최영은, 자신의 이상에 비타협적이었던 고지식한 무장으로 되살아 났다. 
조선의 첫 임금이 된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의 신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이상 사이게서 고뇌하는 권력자로, 선죽교의 피로만 기억되던 정몽주는, 망해가는 나라와, 새로운 국가 사이에서,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던 고지식한 선비의 현현이 되었다. 이렇게 대표적인 인물들 외에, 하륜, 조준, 윤소종 등, 역사 책의 행간에서 스쳐지나갔던 역사적 인물들이, 생생한 캐릭터로, 우리 곁에 찾아들었다. 

그래서, 백성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도전의 이상과, 그 이상이 조선이라는 국가로 실현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갈등은 곧,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서 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난 난망인, 우리 현실 정치의 고뇌로 이어진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비타협적이어서 결국 스스로 절멸의 길을 걷고 마는 정도전도, 가장 유연한 정치가인 듯 하지만 결국 그가 추구한 것은, 자기 권세에 불과한 이인임도, 가장 포용력 있는 듯하지만, 시류에 눈이 어두운 정도전의 선택도, 고스란히 민주주의의 혼돈 속에 놓인 우리의 고민으로 치환된다. 그래서, 더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의 '민본'이 소중하고, 그것을 목전에 두고, 융통성없는 아집, 혹은 독선으로 권력을 왕권으로 넘긴 정도전이 아쉽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조선'에서 보여지듯이, 원칙은 그리 쉽게 훼손되는 것이 아니란 교훈도 남긴다. 조선 왕조 500년의 끈질긴 왕권과 신권의 갈등이,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500년씩이나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의 단초는, 결국 정도전과, 그를 벤 이방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 <정도전>은 위인전 속에서 교훈을 남기고, 속담이나 사자성어의 주인공으로 고사되어가던 인물들을 현실로 끌어 올리고, 그들의 행보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되어, 그저 옳다 그르다 그 어떤 잣대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인간'다운 모습이 되어, 현실의 반면교사가 된다. 

모처럼 돌아온 kbs1의 대하사극은 왕조를 넘어선, 인물 정도전을 집중 조명하고, 그 인물을 통해, 여말 선초의 격동기의 역사를 생동감있게 전달하여, kbs1 사극을 복원하였다. 부디 이 되살려진 흐름을 잘 이어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30. 05:57

6월 28일 방송으로 여성편 <인간의 조건>' 아르바이트로만 살기'가 3부로 완료되었다. 마지막 그간 모았던 공과금으로 액자를 만들어 멤버들에게 건네자, 그걸 받은 여섯 명의 여성 멤버들은 울컥한다. 심지어, 결국 김숙과 최희는 눈물을 숨기지 못한다.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겨 돈 오만원이 없을 때, 과연 이렇게 받은 액자 속의 오만원을 헐어서 쓸 것인가 라는 우문에, 여섯 명의 멤버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허무하게 써서 없애버릴 돈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남겨두고, 아르바이트로 살기로만 보냈던 시간을 기억할 거라 다짐한다. 멤버 중 김지민은 말한다. 그간 몇 번의 <인간의 조건> 미션을 경험했지만, 이번에 미션이 가장 좋았다고, 김지민 만이 아니다. 각자 자신들이 처음 시작했던 그곳을 돌이켜 보게 만들었던 멤버들의 아르바이트로만 살기, 그들의 감동만큼 시청자들도 감동을 받는다. 


미션이 다 끝나고 돌려 받은 지갑에서, 바로 전날 먹은 커피 영수증을 보고 김지민은 경악한다. 무려 커피 값으로 17000원이나 썼다고, 자신이 미쳤었나 보라고, 미션을 시작하기 전 김지민은 그저 어렵게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방을 사서 보상을 받던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의 미션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그녀, 아니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시 모인 여섯 명의 여성 멤버들, 제작진은 그들에게 이전에 남성멤버들이 했던 아르바이트로만 살기 미션을 다시 부여한다. 개그맨이 되기 전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며 그게 싫어서 개그맨이 되었는데,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김영희의 경악도 잠깐, 여섯 명의 멤버들은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구하기에 나선다. 

(사진; osen)

하지만 상황 때문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여섯 명의 멤버들, 생각보다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단지를 찾아 전화를 걸어보고, 직접 찾아나서지만, 하루의 일거리를 구하기는 만만치 않다. 자꾸 거절을 당하면서 위축감도 느끼고, 자신감도 잃었지만, 당장 오늘 벌어, 오늘을 살고, 공과금 만원까지 내야하는 처지의 여섯 멤버들에게 주저앉을 시간은 없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니고, 거절을 당하고, 그리고 다시 구하러 다니고, 일을 얻어 오랜만에, 혹은 생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보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돈을 번다'는 그 처음의 마음을 되새기게 된다. 이제는 <인간의 조건>의 정규 멤버, 혹은 게스트가 될 만큼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은 멤버들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듯, 절박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단 하루씩의 아르바이트지만, 그 시간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끼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오랫동안 잊었던 아르바이트의 고됨이다. 미용실에서 한 나절을 일하고 파스를 도배를 하고 누워 버려야 할 정도의, 꿀알바로 알고 갔는데, 하루 종일 거지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다 보니, 결국은 목이 부어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의, 한때 꿈꾸었던 제빵사였지만 정작 몇 시간을 무게를 재고, 반죽을 빚기만 하는 단순 노동에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일이 주는 노동의 무게에 여섯 멤버들은 새삼 세상의 현실을 절감한다. 그리고 힘들다 불평했던 지금 자신의 일이 주는 소중함을 되새긴다. 

하지만 팍팍한 노동의 하중만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섯 멤버들로 하여금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 보게 만든 건, 아르바이트 과정에서 만난 젊은이들이었다. 쇼핑몰에서 똑같은 자세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마임을 선보이는 아르바이트 생들은,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하는 게 좋다며, 공연이라 생각하며 그 시간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쉽게 흘러간다며, 힘들다는 김영희를 무색하게 만든다. 꿀알바라는 해석에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을 경마장 땡볕에서의 단순 노동과, 거대한 말의 뒷감당을 해야 하는 시간을, 미래의 꿈을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 보내는 젊은이들이, 몇 탕의 아르바이트를 뛰면서도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젊음이 이제는 조금은 지치고, 조금은 닳아버린 여섯 명의 중견 연예인들에게 자신의 초심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르바이트로만 살기'는 이미 남자편에서 했던 미션이다. 그런데, 똑같은 미션임에도, 여성편의 아르바이트로만 살기는 마치 남자편의 첫 미션, 핸드펀,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를 통해 조우했던 아날로그적 삶의 반추 편처럼, 각별한 감성을 가지고 다가온다. 똑같은 미션인데, 무슨 차이일까? 여성이 보다 감성적이기에? 아니 그런 성별의 차이라기 보다는, 미션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오는 차이가 더 클 것이다. 같은 미션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멤버들은 매일 매일 다른 미션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음식적 서빙이나, 매장 직원은물론, 짜장면집 배달에서부터, 말 오줌 받기, 상추 모종 심기, 웨딩드레스 바느질, 동대문 시장 장봐주기, 아기에 강아지 봐주기, 하다못해 비닐 접기 부업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첫날  최희가 스케줄로 인해 공과금을 넣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로 누구 하나 그럴 일이 없을 정도로, 아니 공과금을 내고도 때로는 만찬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누구 하나 뺀질거리지 않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여섯 멤버들이 일주일 간, 스스로 발로 뛰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과, 만난 사람들이, 오랜 연예계 생활에 스스로 조금은 굳어진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인간의 조건>의 성패는, 어떤 미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미션을 대하고, 수행하는 멤버들의 자세와 성실함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여성편 아르바이트로 살기 미션이 확인시켜 준다.


by meditator 2014. 6. 29. 02:18

<유희열의 스케치북> 호청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불만은 바로 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간이다. 불금 아니 불금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간, 12시 하고도 2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시작된다. 아니 그것도 운이 좋으면이다. 요즘처럼 월드컵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함흥차사이다. 6월 27일 혹은 2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5주년 방송이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5주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브라질 월드컵이 16강전에 앞서 하루를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호청자들의 불만, 방영 시간의 불리함을, 정작 mc인 유희열은, 그것이 바로 '가늘고 길게' 5주년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 중 하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희열의 말을 듣고 보니, 밤 11시 대에 공중파, 케이블을 막론하고, 야심차게 편성되었던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정말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그 애매한 시간대는, 제약이 아니라, 정말 생존의 조건일 수도 있겠단 '웃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어쩌면 방치된 듯한 시간대에 놓여, 한 1년이나 할랑가 하는 시간을 무려 5년이나 지속해 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5주년은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야무지게도, 내친 김에, 유희열이 송해 할아버지 나이가 될 때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해보겠단 포부를 펼친다.
그리고 그 포부의 '현현'으로, 5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것이, 바로 장수 프로그램 특집이다. 덕분에, kbs의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들이, 5주년 특집 기념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방문한다. 송해 할아버지의 <전국 노래자랑>, <뮤직 뱅크>, 그리고 <열린 음악회>이다.

<전국 노래 자랑>의 시그널이 울리고, 송해 할아버지의 우렁찬 '전국 노래 자랑~' 이라는 멘트가 울려 퍼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전국 노래 자랑>의 단골 초청 가수 박구윤의 트로트 '뿐이고'가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 오래도록 <열린 음악회>를 지켜왔던 황수경 아나운서가 나와, 그 내공의 한 자락을 펼치고, <열린 음악회> 하면  떠오르는 가수 인순이가, 그 무대에서 즐겨 불렀던 <거위의 꿈>을 수화와 함께 열창한다. 


5주년 특집으로, <전국 노래 자랑>과 <열린 음악회>의 무대를 고스란히 퍼 나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자부심과 정의를 확인하게 된다. 굳이 후반부에 '아이유', '십센치' 등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매의 눈'으로 발견해낸 가수들이 아니라도, 5주년 특집 그 자체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설명된다. 
일찌기, 이전 특집들에서도 그랬듯이,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써, 음악이 자리한 그곳의 모든 것을 눈여겨 보고, 그것의 가치와 존재를 제대로 확인시켜 주는, 우리 시대의 어쩌면 유일한 방송, 바로 그것으로써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론을, 5주년 특집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 증명해 낸다.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가수들의 절창은 물론, 가수들의 절창을 가능케 해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음악인으로서의 연주자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제 5주년을 맞이하여, 그 가수와, 음악인들에게 오래도록 무대를 제공해 왔던 '장수 무대'들의 존재를 새삼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은 쉬이 흐르고, 우리는 그 세월 속에 쉽사리 묻혀져 흘러 가지만, 이렇게 <유희열이 스케치북>과 더불어 가끔, 우리가 흘러온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우리가, 혹은 우리 가족들이, 함께 했던 음악 프로그램의 역사를 반추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어려서 <뮤직 뱅크>를 즐기다, 철들어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맛들이고, 나이가 지긋해져 가면서 <열린 음악회>가 편해지고, <전국 노래자랑>이 흥겨워지는, <시네마 천국>처럼, kbs의 음악 프로그램만으로, 마치 누군가의 일생을 조망하게 되는 듯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가능한 특집만이 아니다. 아이유라는 가수를 일찌기 발견해 주고, 십센치의 붐을 선도했으며, 일찌기 '장미여관'을 발굴했던, 음악 프로그램 본연의 몫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5주년에 즈음하여, 스스로에게 개근상을 수여하듯, 되돌아 본다. 또 하나의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다. 되돌아 보건대, 결국은 '인기 가수'가 되었던 많은 가수들이, 일찌기 유희열의 극찬을 받으며 떨리는 모습으로 이 무대에 섰던 가수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가기 전에, 일찌기 그들과 조우했던 '선견지명'의 맛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호청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몫이었다. 

그렇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할 수 있는 각종 특집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매의 눈으로, 오늘의 5주년을 만들었다. 늦은 밤의 기다림도, 변심한 애인처럼 가물에 콩나듯 하는 만남도 마다치 않을 터이니, 부디 오래오래 해먹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8. 12:20

6월 26일 <개과천선>이 종영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상반기 드라마 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장르물'의 약진도 함께 마무리 된 듯하다. sbs는 5월 1일 <쓰리데이즈> 종영 이후 형사물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방영중이지만, 형사물의 외피를 쓴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경우는 장르물이기 보다는, 신참 형사들의 성장기와, 늘 그렇듯이 경찰서에서 연애하기에 촛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kbs2의 월화 드라마<빅맨>의 후속극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트로트의 연인>이고, 수목 드라마<빅맨>의 후속 <조선 총잡이>는 개화기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기반해 있긴 하지만, <공주의 남자>와 비슷한 무협복수극에 가깝다. mbc <개과천선>의 후속은 <운명처럼 널 사랑해>, tvn<갑동이>의 후속은 <연애말고 결혼>처럼 로맨스물로, 마치 그간 장르물로 찌푸려진 미간을 달달한 사랑이야기로 달래주겠다는 듯이 약속이나 한 듯 익숙한 사랑 이야기들이 포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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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성취
되돌아 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 경쟁까지 벌이며 장르물이 시청률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고, 반면, 겹치는 장르의 드라마가 동시에 반영되는 바람에, 갈리게 된 시청층은, 안그래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던 장르물의 시청률을 깍아먹어, 장르물 자체의 대중성을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절도 불사하고, 개연성 따위는 제껴둔 채,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한류붐에 편승하여, 막장의 전개조차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2014년 상반기의 궤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공공 자산으로서의 방송의 책임을 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장르물의 첫 포문은 3월 5일 <쓰리데이즈>가 열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신경수 피디, <추적자>의 손현주, 그리고 20대의 대표적 배우인 박유천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이끌었던 <쓰리데이즈>는 걸고 넘어진 것은 도발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재벌 기업의 컨설턴트라는 과거를 가진 대통령(손현주 분)은, 과거 자신이 공모자가 되었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인한 양진리 양민 학살의 진실을 한태경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나선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당장의 먹고 사는 나라 경제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대통령은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나라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써의 진실된 본문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을 둘러싼 집단과, 직책에 따른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장임에도, 양진리 학살 현장에서 동료들을 잃었던 함봉수(장현성 분)는 대통령의 저격에 나섰고,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최측근이던 신규진(윤제문 분) 그의 국가관에 따라 대통령에 맞서 김도진의(최원영 분) 편에 서지만, 결국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이제는 그 단어 조차도 생경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정의가 피상적인 글 속의 문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 일의 문제라는 것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통해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한태경)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넘치는 헌신이다. 

공교롭게도, <쓰리데이즈>가 드라마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에 대해 논하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 제기가 되었고, 드라마 이상의 공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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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이 바라본 2014년의 대한민국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 전, 혹은 바로 지금 맞부닦치는 현실의 사건들을 길어올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되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빅맨>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애꿏은 젊은이의 생명을 엿보는 재벌가의 실상은, 그들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골든 크로스>의 상위 1% 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 그리고 <개과천선>을 통해 그려진 부실 환율 상품 사태, 재벌 그룹 경영권 싸움,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은 우리가 이미 사회면을 통해 익숙해진 사건들의 복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장르물이나 사회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 사회, 국가 체제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2014년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이다. 
즉 8,9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부추키는 억압적 체제의 국가, 즉, 국가 자본주의 형태였다면, 이제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 문제 의식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절대 악은 자본(쓰리데이즈의 김도진, 빅맨의 강동석)이거나,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의 화이트 칼라군(개과천선 차영우, 골든 크로스 서동하)이다. 

이들 장르물과는 약간의 궤를 달리하며 <갑동이>는 십여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의 사이코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를 내뱉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니가 감히 나를'를 되풀이 하는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차영우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서동하의 성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기에 배태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사회적 의식은 바로 이들 장르물의 악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들은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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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나, <개과천선>의 김석주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했던 과오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빅맨>의 김지혁,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 <갑동이>의 하무염처럼,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의 복수로 부터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게 자기 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이들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사회적 각성과 자각을 거치며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즉 진정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 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 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그 검사보가 변신한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같던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한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으며, 감옥을 나온, <골든 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하지만,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순수한 정의의 인물들을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불굴의 진리로 귀결한다. 

때로는 키쓰신이 있기도 하고, 안타까운 밀땅도 있었지만, 대부분, 2014년의 핍박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이들 장르물은, 인기를 추구한 드라마들이 노린 웃음기와, 개인기와 사랑 놀음조차 마다한 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의 공감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설명할 길이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조차, 새삼스레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쓰리데이즈>처럼,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하반기, 그리고 2015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이나, 환타지'가 아닌 진실로 위로하는 장르물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7. 18:34

애초에 기획되었던 18회를 미처 채우지 못한 채 16회로 <개과천선>이 마무리되었다. 16회, 조기 종영을 대놓고 드러내기라도 하듯, 드라마는, 허겁지겁 백두 그룹 사건을 마무리한 채, 어정쩡하게 끝난다. 마치, 시즌제를 거듭하는 미드가 다음 회를 기대할 떡밥을 던져놓고 한 시즌을 마무리하듯, 16회로 종영한 <개과천선>은 굳이 종영이라면 종영이다 싶지만, 다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따지고 보면 아쉬운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골든 타임> 때도 호청자들로 하여금 시즌2를 부르짖게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최희라 작가는, 애청자들의 입에서 저절로 시즌2가 아니고서야 하는 아쉬움의 단어를 내뱉게 만든다. 하지만, <골든 타임>때도 번번히 문제가 되었던 늦은 쪽대본의 문제가, 이번 <개과천선>에서도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조기 종영이라는 사태의 한 원인이 되고 보면, <개과천선>의 시즌2를 바라는 것은 이번에도 호청자들의 욕심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개과천선>이라는 제목답게 극중 주인공 김석주(김명민 분)은 완전히 개과천선을 하고 끝냈다. 16회 후반부, 차영우 로펌과 투기 자본 골드 리치 사이의 커넥션에 관련된 녹음 파일을 전달 받은 차영우(김상중 분)는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대신, 자신을 협박한 김석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오랜 갈등을 불러 일으켰던 어린 시절 김석주를 돌변하게 만든 인간에 대한 불신, 바로 그것을 건드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백두 그룹의 회장을 매수한다. 하지만, 김석주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 오리발을 내미는 회장에게 김석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자금 문서를 들이민다. '개과천선'을 한 김석주는 더 이상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배신하고 어머니를 다치게 했던 노동자에게 상처를 받던 어린 소년이 아니다. 많이 단단해 졌다는 친구 박상태(오정세 분)의 칭찬에, 김석주는 사람이 다 저마다 다른 것이라고 덤덤하게 대꾸한다. 

<개과천선> 김명민, 아버지와 관계 완전 회복하며 해피엔딩 이미지-1


15회 차영우 로펌의 대표 차영우는 거대 로펌의 변호사가 하는 역할을 '법률적 변호'를 넘어선 '로비스트'라 정의한다. 돈이 흐르는 곳을 앞서 가서, 그 돈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주도적 역할의 직업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앞장서, 대기업의 세금 포탈을 비롯하여, 사생활 문제, 그리고 불법 투기 자본과의 커넥션까지 마다하지 않고 '설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김석주가, 자신을 공격했던 괴한들에 머리를 다치고, 사람이 달라졌다.
사실, 드라마적 개연성으로 따지자면, 사고로 인해 단기 기억 상실에 빠지고, 그로 인해, 과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개과천선'한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허술하다. 왜 하필, 그렇게 파렴치할 정도의 인간이었던 대한민국 상위 1%의 !% 변호사 김석주가, 단지 머리를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양심적으로 변해야 한단 말인가.

<개과천선>은 그렇게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을,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길어올림으로써,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달리 보이게 만든다. 
오히려 황당무게한 듯한 김석주의 기억 상실을 통한 자기 반성이란 설정이, 사실 현실의 김석주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해프닝과 같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렇게, 김석주가 자기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개과천선>은 현재 거대 로펌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그저 가진 자들의 법률적 이해 관계에 복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가진 법률적 지식과, 그들이 끌어모은 인적 자원, 자금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 부의 재창출에 간여하고 있는 모습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런 부의 재창출 과정이, 처음 현성 그룹 사건에서 부터 시작하여, 중소기업을 상대로한 불법적 환율 상품 매각, 그리고 투기 자본에 의한 백두 그룹 경영권 침탈까지, 불법적이며, 부도덕한 과정으로 일관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재 '돈이 되는 곳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 아니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들의 것을'불법'과 편법을 마다하지 않고  '강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부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바로 그들이 '키코 사태', '동양 증권 사태' 등 신문 지상에서 마주쳤던 사건의 실상을 드라마를 통해 '복습'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드라마에서 고발하고 있는 우리 사회 실상을 다시 부도덕한 고위직 인사들을 통해 확인하면서, <개과천선>의 진가를 확인하고 감동한다. 차영우가 16회 실토하듯이, 돈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목적,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전관 예우'라는 명목으로 상식 이상의 돈을 벌었던 사람이 번연히 총리 후보직에 나서는 세상에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지향하는 ''고발'의 힘은 드라마적 감동이 된다. 

강직했던 아버지가 고난을 겪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다치자,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거두었던 김석주는 머리를 다치면서, 오랫동안 닫아왔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가 잊었던 '인간에의 연민'을 회복한다. 그저 돈을 좀 더 많이 벌거나, 재판에 이기는 승패의 세계에 있던 그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전 생애가 걸린, 혹은 목숨이 달린 절체 절명의 일일수도 있음을 깨닫고 회한에 젖는다. 

오늘 종영! <개과천선> '정의' 김명민 VS '힘' 김상중, 마지막 대결은? 이미지-1

하지만, 그건  '천재일우의 기회로 '개과천선'한 김석주의 경우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노회한 눈빛을 늦추지 않은 차영우도, 승부사의 욕망으로 기꺼이 또 하나의 김석주가 되어가는 전지원(진이한 분)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오늘날 거대 로펌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과천선>의 16회는 종전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싸움의 서막과도 같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소, 한국 사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차영우 로펌과, 김석주로 대변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의 연민을 잃지 않는 한 줌의 양심적 변호사 그룹의 싸움이 시작될 거 같은 16회의 엔딩이다. 아직 채 시작되지도 않은 우리 사회의 '법률적' 전쟁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14. 6. 27. 08:10

사실 따지고 보면 축구만큼 이상한 운동도 없다. 굳이 잘 쓸 수 있는 손을 놔두고, 오로지 발과 머리로만 공을 움직이는 이 운동이, 오랫동안 전세계인의 마음을 빼앗아 왔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대한민국에서도 매일밤, 만리타국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축구 시합을 보기 위해, 아침이 밝아오도록 사람들은 불을 밝힌다. 


도대체 축구란 무얼까?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가장 불리한 조건의 신체적 상황을 활용한 스포츠가 발달하게 되었는가? 바로 그 비밀을 <2014 브라질 월드컵 기념 특집 다큐- 축구의 기원>을 통해 알아본다. 월드컵 개최지 브라질 탐방도 좋고, 세계 각국 축구 선수와 우리 선수단에 대한 응원도 좋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이 오리무중 스포츠의 기원에 대한 공부야 말로, 어쩌면 가장 월드컵 특집에 어울리는 인문학적 접근이 아닐까, 바로 그런 접근을 <축구의 기원>이 시도한다. 

우선 축구의 기원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동굴 벽화'에 대해 논해보자, 
왜 인간의 조상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동굴의 벽에 심혈을 기울여 벽화를 남겼을까? 
여기에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자신이 잡고 싶은 동물을 신에게 기대어 비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당시에 사진이나 글이 없었기에, 교육적 목적으로 사냥하는 장면을 상세하게 그려놓았을 것이다. 아니다. 유희적 동물인 인간이기에,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욕구를 벽화로 승화시켰을 것이다. 물론 이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신에게 비는 마음도, 유희적 욕망도, 교육적 목적도 그 어느 것도 다 타당한 근거를 지닌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축구 역시 다양한 기원을 가진다.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태양신에 대한 숭배이다. 만물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 주는 태양을 숭배하던 기원전 무렵의 부족들은 태양을 닮은 원형 주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주물을 가지고 하던 숭배 의식은 태양이 땅과 만나는 상징으로, 그 주물을 땅에 튕긴다. 오늘날의 다수의 민속적 경기들이 애초에 그 시작이 제례였던 것처럼. 축구 역시 그 시작은 태양신과의 조우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원시적 제례 의식의 시작을 기원전 브리타니아와 멕시코의 원시 부족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태양신에 대한 숭상에서 부터 시작된 제례 의식은 그것이 본격적으로, 군사적 교육을 목적으로 한 훈련과 결합하면서 보다 '경쟁적' 경기의 형태로 완성되어 간다. 브리타니아를 점령했던 로마군 치하에서, 그리고 기원전 2000년 경 한나라 무제 당시에서, 정해진 영역 안에서 공을 놓고, 겨루는 본격적인 경기가 발전한다. 로마군 점령 당시 브리타니아에서 축구 경기는 골을 상대방 진영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격투기를 불사한 경기가 벌어졌으며, 한 나라에서도, 양 팀의 네 개의 골문을 만들고 거기에 공을 차 닿게 하는 방식으로, 군인들의 하체 훈련과 집단성을 키웠다. 이런 방식은 프랑스로 오면, 마을과 마을 사이의 축제 기간에 벌어진 '땅따먹기' 방식의 전마을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전방위적 경기로 발전되기도 한다. 오늘날 축구 경기를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으로 정의내리는 입장이, 이렇게 축구의 시원을 살펴보면,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축구의 기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의 혹은 중세의 경기까지만 해도, 오로지 발만을 사용하는 특수한 조건의 스포츠로서 축구가 정립되지 않았다. 발로 경기를 하다, 손을 사용해 튕겨나온 공을 잡거나, 마지막에 공을 안고 달려 정해 놓은 지점에 터치하는 경우처럼, 당시의 경기들은축구와 럭비 등이 혼용된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영국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경기로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로지 발만 쓰는 형태와, 손도 사용하는, 럭비의 형태를 띤 경기 방식이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국 캠브리지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발'만 사용하는 형태의 경기 규칙을 정립하게 되고, 바로 이 과정이 오늘날 현대 축구의 시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대립되는 경기 형태 중 보다 원시 축구의 형태를 온존한, 그리고 보다 손발을 다 사용함으로써 접근이 쉬운 럭비보다 더 신체적 제한을 둔 축구가 전세계인의 보편적인 스포츠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한 결과이다. 

이렇게 <축구의 시원>은 그저 전세계인의 흥밋거리인 축구가,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양신 숭배에서 부터, 전쟁 대비 훈련, 그리고 마을 대항 축제까지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는 인문학적 정보를 재연 상황을 통해 충실히 알려준다. 원제 'The origins of football'은 스페인 완다필름에서 2013년 제작된 다큐이다. 


by meditator 2014. 6. 26.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