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5회 거리를 걷던 창만(이희준 분)은 유나(김옥빈 분)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그도 잠깐 그는 유나가 소매치기 하는 걸 목격하고 만다. 허겁지겁 유나를 쫓아간 창만, 겨우 유나를 따라 잡아 지갑을 돌려주라고 닥달하지만 그런 창만에게 유나는 냉담하고, 뒤쫓아 온 유나의 패거리들 덕분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장면, <유나의 거리> 두 번 째 ost, 윈터 플레이의 <함정>이 흘러 나온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함정

네가 나를 케어한다는 말은 함정

 누가 누굴 욕해 나를 찾자 가만보면 똑같은게 그냥 전부 웃기는게 함정

 (중략)

그냥 그렇게 가자

제발 날 좀 버려둬

세상 가는 길이 다 내가 가는 길이야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다 함정

 

네 생각이 맞을거라 믿는건 함정

참는 자는 복이온다 생각하면 함정

그런 착해빠진 생각들로 살다보면 당하고 또 당하는게 세상이다 함정




그리고 <유나의 거리>5,6회를 설명하는데 이  윈터 플라이의 <함정>만큼 적절한 노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기 시작하는 <유나의 거리>,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인생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유나는 아버지(임현식 분)가 죽어가면서도 손가락을 자르며 소매치기의 대를 끊어보려 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원이 무색하게 이젠 아예 작정하고 남수(강신효 분) 패거리와 함께 소매치기 사무실을 열고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며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그런 유나의 행동이 어떤 야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유나는 늘 혼자 일하는 게 편했지만, 우연히 얽혀들게 된 남수 패거리의 딱한 사정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거리의 하이에나라도 조금 덜 외로운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하지한 이렇게 삶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유나만이 아니다. 
유나와 함께 사는 미선은 이미 간통죄로 감옥을 한번 들어간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유부남의 등을 쳐먹으며 사는 생활을 자신의 주업으로 한다. 돈이라면 사랑 없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선은 헤어지는 조건에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는 카페 사장 부인의 호소에,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 아파트 한 채는 챙겨야 겠다고 속내를 밝힌다. 하지만 사랑없이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미선은 정작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사랑없이 웃음을 파는 남자들을 만나러 간다.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도, 미선도 드라마 속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삶 중 하나의 유형을 사는 사람일 뿐이다. 소매치기를 해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가르친 남수처럼, 비록 불법이지만 소매치기도 밑바닥 사람들이 사는 인생살이의 한 방법이다. <유나의 거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유나가 이제는 손을 턴 선배 소매치기 언니를 양순(오나라 분)을 만나, 진지하게 자신이 더 나쁜가, 미선이 더 나쁜가를 물어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유나는 자신은 그저 남의 돈을 잠깐 터는 것에 불과하지만, 미선은 남의 마음을 터는 것이기에 더 나쁘다면서은연중에 소매치기를 하는 자신의 세계관을 토로한다. 물론 미선이 바라보는 유나는 정반대겠다. 

할아버지 조폭 도끼(정종준 분)가 후배 조폭 똘마니들을 앞에 놓고 장황하게 자신이 몸담아 왔던 주먹의 역사를 설명하고, 한만복(이문식 분)이 말끝마다 주먹으로서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유나의 거리> 속 인물들은 꼴에 그것이 불법이든 어떻든 자신의 세계에 대한 자부심, 아니 자존심을 가지고 산다. 
바로 그것을, 윈터 플라이의 입을 빌어, 말한다. 삶의 함정이라고.

왜 그들은 그런 삶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걸까?
유나가 좋아진 창만은 같은 처지인 양숙과 결혼한 봉달호(안내상 분)를 찾아간다. 소매치기를 하던 여자의 손을 씻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창만에게 봉반장은 회의적인 답을 전한다. 유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뛰어나고, 본인이 그걸 잘 알기에 아마도 손을 씻기 어려울 거라며.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게 소매치기 밖에 없는 이십대 후반의 유나가, 감방을 나온지 얼마 안된 유나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기 것이라며 내세울 것이 어쩌면 소매치기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손을 씻은 양순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을 그만두고 노래방을 차린 남편을 위해 틈만 나면 노래방 전단지를 돌리고, 겨우 온 손님을 위해 도우미를 자청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녀가, 도우미로 들어가 부르는 '에레나의 노래'에서는 묘하게 양순의 처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유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유나가 소개한 유나의 이웃에 싼 값으로 방을 얻어 들어오게 된 창만, 싼게 비지떡이라도 방을 헐값에 주었다는 핑계로, 창민은 만복의 요구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망치를 손봐주러 가는 도끼의 똘마니 역에, 결국 만복이 하는 콜라텍의 기도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몇번 이리저리 만복의 요구에 따라 끌려다니던 창만은 단호하게 그 세계에서 발을 뺀다. 그 집에서 쫓겨날 수도, 그래서 더 이상 유나 가까이에 지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도, 창만은 그것을 거부한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다는, 하지만 대학생인 주인집 딸보다도 아는게 더 많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몇 달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폐업한 식당을 지키던, 하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다 생각하니 단칼에 주먹 세계와 발을 끊는 청년 창만은, 근자에 보기 드문 드라마 남자 주인공 캐릭터이다. 허긴, 소매치기 여주 주인공 역시 드물긴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창만의 선택이 <유나의 거리>에서 환영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어떤 이해 관계에 얽힌 적이 없는 창만임에도, 그가 자신이 하는 콜라텍을 그만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복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몇 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때 창만과 함께 '노가다'를 뛰던, 그래서 창만이 만복의 수하로 들어가자 그건 너의 길이 아니라고 충고를 하던 칠복(김영웅 분)은 막상 자신이 일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꼬박꼬박 나오는 콜라텍을 그만 둔 창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왜곡된 삶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창만을 기다리는 건, 정작 사랑의 함정이다. 새로 돈을 들여 방을 재계약하고, 봉반방과 특별 수사반을 꾸려 유나의 소매치기를 감시하겠다 결정한 창만의 선택은, 삶의 함정은 피했으되, 사랑의 함정으로 한발 더 깊숙이 빠진 셈이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일감을 얻지 못한 칠복은 그만 그럴 땐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어쩌지 못해, 살던 가락이 그거라서, 혹은 죽고싶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자신의 삶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것, 그것이 <유나의 거리> 에서 사는 밑바닥 사람들의 모습이다. 


by meditator 2014. 6. 11. 11:11

6월 13일 오전5시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0일간의 월드컵 대장정이 시작된다. 그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16강전을 앞두고, 18일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첫 본선 경기를 치룰 예정이다. 


그렇게 전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월드컵을 앞두고 각 방송사는 월드컵 체제를 갖추고, 아침부터 뉴스시간마다 브라질 월드컵 특집이라며 월드컵 소식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뉴스 뿐이 아니다. 각 방송사 별로, mbc는 2002년 월드컵 영웅 송종국, 안정환과 인기 mc 김성주를, kbs는 인기 아나운서 조우종과 역시나 2002년의 영웅 이영표, 그리고 sbs는 지금까지 sbs 해설을 이끌었던 차범근과 그의 아들 차두리에, 전국민적 축구 영웅 박지성을 영입하고,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배성재 아나운서와 조화를 맞춰 막강 해설 라인을 꾸려낸다. 라인만이 아니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짬짬이 자사의 해설 라인을 홍보하느라 바쁘다. 

(사진; 폴리 뉴스)

비단 뉴스나 중계만이 아니다. kbs1는 월드컵 참여 국가들과 함께 만든 <컬러스 오브 풋볼>이라는 다큐를 각 나라별로 매일 매일 본방, 혹은 재방으로 방영한다.  수요일 밤에서는 kbs2를 통해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를 방영할 예정이다. sbs는 해설을 맡은 전설의 축구 영웅 차범근의 역사와 오늘을 되짚어 보는 다큐 <두리 아빠 축구 바보, 그리고 전설>을 8일 밤 방영하였다. mbc도 밀리지 않는다. 9일 밤 <23인의 전사, 하나의 꿈>을 통해 이번 월드컵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고, 12일에는 월드컵 스페셜 <Again 2002>를 방영할 예정이다. 

예능도 발빠르게 움직인다.   sbs 힐링 캠프는 <힐링 캠프 in 브라질> 특집을 마련하여 안재욱, 김민종, 김보성과 함께, 2002년 월드컵 송을 불렀던 조수미를 초빙하여, 함께 응원을 하기로 한다. 월, 화 요일 연이어 방영되는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월드컵 특집으로 첫 여행지를 브라질로 잡아 브라질의 명소와 풍물을 즐기고자 한다. kbs도 뒤지지 않는다. 국가적 체육 행사에서는 언제나 앞서 나가던 <우리 동네 예체능>이 이번에도 브라질 특집으로 현지로 달린다. 

이렇게 뉴스, 다큐, 예능 할 것도 없이 공중파에서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각종 특집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기에 바쁘다.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전세계적인 축제이니 그럴 만도 하고, 또 언제나 축제라면 그 누구에게 뒤질세랴 제일 앞장서 나가는 방송사들이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쩐지 올해의 월드컵 특집 분위기는, 태풍이 몰려와 사람들이 철수한 해수욕장에 남아 호객 행위를 하는 장사꾼을 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지방 선거 기간에도 선거 운동을 자중하자 할 만큼, 세월호의 여파가 아직 우리 사회를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다. 실종자 수색은 하루 걸러 중단되어, 남아있는 가족들을 애태우고 있으며, 다른 가족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에 나선 상황이고, 이제 막 선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사건의 궁극적 책임자 유병언은 여전히 안잡히는 것인지, 잡지 않는 것인지 숨바꼭질 중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과연 월드컵 하면 이젠 우리나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거리 응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조차 사회적으로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다. 

그런 분위기에 일조라도 하듯, 출전 선수 명단이 확정될 때 부터 불안감을 심어주던 월드컵 대표팀은 5월 28일 튀니지 평가전 0-1 패배에 이어,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무려 0-4로 패배을 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었다. 애초에 월드컵이라는 축제 분위기의 핵심이, 우리 선수단의 선전이건대, 이번 월드컵은 애초에 그런 기대의 싹을 초장부터 잘라버리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 선수단의 선전과 상관없이 전세계적 축제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은 무람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치 이제 막 49제를 마쳤을까, 마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다급하게, 특집을 마련하며 축제를 강요하는 듯한 방송사의 편성 방식은 어딘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서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라는 듯이 등떠미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 반대 시위(EPA=연합뉴스DB)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태도도 그렇다. 마치 88년 올림픽 당시,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의 상인들을 싹 밀어버리던 그 습관처럼,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sns원정대 일단 띄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질 현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최근 빈민 단체가 월드컵 기간 동안 시위를 중단하게다는 발표를 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의 이익과 상관없이 기업과 국제 축구 연맹만의 행사가 되고 있는 월드컵 반대 시위가 연일 브라질을 달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방송사들은 그런 브라질의 현황을 보도한 적은 없다. 거리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유족들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것처럼. 

잊지 않겠다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하던 사람들이, 방송사의 사장을 자르고 이제 부터 시작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예전에 하던 식으로 부나방처럼 축제 분위기를 향해 달려든다. 잊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지는 세상에, 앞장서 얼른 잊으라 독촉하는 식이다. 그러곤 또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절실하게 반성하는 척만 하려는가. 여전히 jtbc뉴스의 오프닝 멘트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몇일 째입니다' 로 시작되고 있다. 아직 우리는 팡파레를 신나게 울릴 때가 아니다. 


by meditator 2014. 6. 10. 17:57

쌍방향 다채널의 sns 시대에 일방 통행 고정된 채널을 가진 방송에게 언제나 sns의 바다는 자신이 넘어가야 할 파고 처럼 보이나보다. 잊을만하면, sns를 기반으로 한 예능이 출사표를 던진다. 6월 9일 8시 50분 sbs를 통해 방영된 <SNS 원정대 일단 띄워>가 바로 또 하나의 sns 예능이다. 


야심차게 시도된 sns와 결합된 예능이 몇몇 있었다. <화성이 바이러스>를 함께 했던 이경규와 김구라, 그리고 김성주가 올 2월 역시나 같은 방송사 tvn을 통해 선보인 <공유 tv 좋아요>가 그 선두 주자다. 제목에서부터도 sns의 '좋아요' 컨셉을 따온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각 패널들이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말이 sns지, 마치 <화성인 바이러스>의 속편같았던 프로그램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소화하는데, 20세기 사람들이 21세기의 문물을 바라보는 듯했으며, 정작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는 내용을 적절하게 시의적으로 tv 속으로 끌어들여 공감을 얻고,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얼마전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가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매직 아이>의 경우도, sns는 아니더라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를 활용한 경우다. 정규 방송에서 다 보여지지 않은 토크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들이 만든 팟캐스트를 통해 방영하고, 실시간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물론 이 두 프로그램이 아예 작정하고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체 틀을 sns나 인터넷의 기반을 활용하고자 한 것이고, 굳이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내건 두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요즘 방송에서, 자신들이 한 방송 내용을 sns에 올려 그 반응을 실시간으로 검증받고자 하는 경우는 이제 더 이상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공유 tv 좋아요>나, <매직 아이>에서도 보여지듯이, 요즘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도는 있지만, 정작 그것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지점에서 지금까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왔다. 즉, 활용은 해야겠으되, 쌍 방향과 일방 통행이라는 매체의 성격이 다른 sns 등과 tv라는 매체가 어떻게 만나져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피상적이거나, 형식적인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일단띄워
(기사; tv데일리)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겠지만, <SNS 원정대 일단 띄워>는 그 형식적 적용의 틀에서 진일보한 성과를 보인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일단 띄워'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여행을 하는 이 프로그램이 가이드는 다름 아닌 sns이다. 출연자들이 각자 자신의 sns에 여행에 필요한 숙소, 가볼만한 여행지, 먹거리에 대한 질문을 띄우고, 거기에서 나온 팔로어들의 답을 따라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브라질을 여행하기 위해 모인 오만석, 김민준, 정진운, 서현진, 오상진, 박규리는, 브라질에 떠나기에 앞서 그곳에서 자신들이 머무를 숙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며 그것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sns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통보를 듣는다. 허겁지겁 각자의 sns를 통해 숙소를 수소문하던 출연진, 뜻밖에도 선뜻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제공하겠다는 브라질 사람을 조우(?)한다. 
하지만 현재 브라질 상황이 함부로 나돌아 다니는게 위험할 만큼의 상황인데다가, 출연진들이 가는 그곳이 바로 위험 지역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출연진들은 공항을 나서서 아파트를 제공한 현지인을 만나기까지는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정작 만난 당사자 기레미씨가 한국에 다섯 번이나 머물렀던 '친한파' 브라질인으로 한국어에 유창하며, 그가 내어준 아파트가 생각 외로 넓고 편안하자, 출연진들은 미리 제작진이 준비한 것이 아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파트만이 아니다. 난생처음 가본 브라질에서 출연진들을 인도한 것은 정말 sns였다. 브라질의 전통 시장이며, 그곳에서 맛볼 과일이며 음식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준 것도, 통역과 가이드를 해줄 사람을 구해준 것도 바로 sns였다. 또한 출연진 중 k팝스타인 정진운과 박규리는 가는 곳마다, 그들이 이곳에 와있다는 소식을 들은 현지 팬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 무모해 보였던 sns를 기반으로 한 여행은, sns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유영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출연진들은 난생 처음 가본 나라에서, 단지 sns를 통해 만난 사람의 아파트에 머물고, 그곳을 통해 소개받은 통역과 가이드의 도움을 받고, sns를 통해 알게 된 곳을 방문하고, 먹거리를 찾아 먹는다. 무모한 시도가, 그 어떤 현지 가이드나, 소개서보다도 알찬 여행의 가이드로 변모한 것이다.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제작진과 미지의 나라에 긴장하던 출연진들은 현지에서 그들을 반겨주는 팬들을 비롯하여, 마치 요술 방망이처럼 원하는 것을 다 알려주는 sns에 점차 감동하며 여행의 묘미를 즐기기 시작한다.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여행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인터넷 상의 내용을 소개한다던가, 자신의 영역을 인터넷과 나눈다는 형식적 연장이 아닌, 프로그램을 sns의 바다에 띄우고, 적어도 첫 회로 보자면, sns는 <sns원정대 일단 띄워>를 구명하는데 성공적인 듯 보인다. 가이드나, 소개서의 도움을 최소화한 채 sns의 지침만으로 가능한 여행, 21세기에만 가능한 신기한 여행이다. 


by meditator 2014. 6. 10. 10:22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다큐3일>이 벌써 300회 하고도 50회를 넘겼다. 

우리 이웃의 삶에 온전히 3일, 72시간을 투여해, 그 삶의 속속들이 알곡을 전하고자 했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꼭 <다큐 3일>에게 개근상의 기쁨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생로병사'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듯이, 처음 이웃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었던 3일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뻔하거나, 늘 그런 이야기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역시나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 방영된 경기도 광명 시장을 다룬 <다큐 3일>은 그렇게 권태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신선한 모색이라 보여진다. 
그간 <다큐 3일>은 무수한 시장을 찾아다녔다. 서울의 재래 시장은 물론, 지방의 이름난 5일장,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까지, 전국의 모든 시장을 다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300여회가 넘은 동안 <다큐 3일>의 카메라가 담은 주제중 시장이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의 광명 시장은 그렇게 그저 그런 시장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또 하나의 시장일 수도 있는 광명 시장을 <다큐 3일>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들어간다. 이름하여, 천원의 행복!

카메라가 훑고 들어가는 광명 시장의 주변, 시장 옆에 커다란 백화점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광명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재래 시장의 상권을 파고든 거대한 자본의 마트와 백화점아닌가, 지형적으로 본 광명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 건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광명 시장은 활기가 넘쳐 흐른다. 대략 하루에 3만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 3일>의 카메라는 그 비법을 '천원의 행복'이라 이름 붙인다. 즉, 광명 시장의 모든 것들은 싸도 너무 쌌다. 

하나에 오백원, 두 개에 천 원하는 떡에, 세 개 골라 오천원인 반찬, 세 마리에 오천원인 생선, 거기에 거의 천원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비닐에 그득 담긴 채소며 과일들. 
시장에 온 사람들은 말한다. 광명 시장을 떠나 거리에 나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먹을 수 없는 천원으로 광명 시장에서는 배를 불릴 수 있다고. 

물론 '천원의 행복'이 넉넉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몇 년 째 값을 올리지 않은 오뎅 장수 아저씨는 자꾸 재료비가 올라 고민이시란다. 하지만, 요즘처럼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사람대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대로, 저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찾아들 수 있는 이곳에서마저 값을 올릴 수가 없다고 없다고 말씀하신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봐준다고, 그저 조금 남기고 많이 팔려고 노력하신다는 오뎅 장수 아저씨의 말씀이, 곧 광명 시장 상인들의 '기업가 정신'이다. 


그렇다고 싼게 비지떡은 절대 아니다. 
싸게 판다고 해서, 나쁜 재료를 쓰는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말씀하시는 오뎅 장수 아주머니는, 바로 옆의 백화점보다 이곳의 오뎅이 더 맛있다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부심을 밝힌다. 
한 개 천원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사기 위해 차로 두 시간을 달려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러 찾아와 한번에 들기 힘들 정도로 몇 만원어치를 사가는 맛이 보증된 가게가 그곳에 있다. 
광명 시장이 생긴지 25년, 그곳 보다 더 오래 33년의 역사를 지닌 녹두전 집은, 한때 떡복이도 없는 시절에 이 집의 빈대떡을 먹기 위해 길거리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던 역사를 자랑한다. 
달랑 냉장고 하나, 3인분의 즉석 부대찌게를 단 돈 9000원에 파는 아저씨는, 이 장사로 IMF 때 진 빛을 다 갚았다로 자랑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물론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여전히 여느 시장을 다루었던 것처럼,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장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담아낸다. 광명 시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새벽 4시에 아직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시장 한 켠에서 떡집의 김이 솔솔 오르고, 그 다른 한 편에선, 하루 장사를 대비한 오뎅 반죽 기계가 돌아간다. 권투 도장을 하기 위해 짜장면 장사를 하는 아저씨는 권투로 다진 내공으로 쫄깃한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오체투지하듯 반죽을 하고 계신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시장에서 자라난 딸은 이제 다시 남편과 함께 야채 가게를 하고, 젊은 청년들은 이른 퇴근을 위해 내기를 하며 생선 머리를 잘라낸다.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잠시 잠깐 앉을 틈도 없이, 그런데도 붙어있는 살이 독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세 자매의 삶은 부모님께 마음껏 해드리고 싶은 것을 해드릴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제일 행복하다. 세상 그 어느 곳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필부의 삶이 여전히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늘 어딘가의 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같은 풍경들이지만, 그것들이 '천원의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나면서, 광명 시장은, 그저 여느 시장이 아니라, 바로 옆에 백화점이 있어도, 자신만의 생존력을 가진,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없는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부각된다. 굳이 백화점 등 거대 상권에 대비해 우리는 이렇게 경쟁력을 갖추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광명 시장은, 광명 시장으로 그 가치를 <다큐 3일>을 통해 증명한다. 돈 만원 한 장만 가지고도, 배터지게 먹고, 팔이 끊어지게 장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by meditator 2014. 6. 9. 05:59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자,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도전이 명나라에 다녀오는 사이 왕이된 이성계는 도읍을 옮기고자 했고, 대소 신료들은 그런 이성계에게 반발한다. 그런 신료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을 한 이성계, 그런 이성계 앞에 정도전이 돌아와 달랜다. 도읍을 옮기는 문제는 명나라에 맞서 나라힘을 키운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정도전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 이성계, 정도전에게 묻는다. 과연 조선의 왕은 무엇이냐고. 정도전은 답한다. 왕은 이해하고, 품고, 안는 것이라고. 그런 정도전의 답에 이성계는 씁쓸해 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왕이랑 다르다고. 자신이 왕이 되면, 신하들과 함께 많은 것을 이룰 줄 알았는데, 막상 왕이 되니 할 일이 없다고. 동상이몽이다. 

여진족과 힘을 합쳐 명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건의에 이성계는 군권을 정도전에게 쥐어준다. 마음껏 해보라고. 하지만 그렇게 군권마저 쥔 정도전에게,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이자, 차기 왕위에 마음을 둔 이방원은 탐탁지 않다. 그에게 정도전의 모습은 '전횡'으로 비취질뿐이다. 

43회를 마친 <정도전>이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의 갈등은, 조선 왕조 500년을 두고 내내 조선이란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왕권과 신권 헤게모니 싸움의 시작을 알린다. 

이미 <정도전>을 통해서 보여지듯이 조선이란 나라는 정도전의 나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나라는 정도전이란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다. '민본'을 내세웠던, 정도전과, 정도전과 뜻을 함께 했던 개혁적 신진 사대부들의 뜻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43회, 자신을 찾아온 아들에게 정도전은 '조선 경국대전'을 만들 뜻을 비춘다. 누구 한 사람 실권자의 의지가 아니라,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비되고, 돌아가는 나라로서의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정도전에게, 왕은, 그저 신하들의 의해 움직이는 나라 위에 존재하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이른바, '짐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근대적 의회 민주주의의 조선판이다. 정몽주의 좋은 군주를 만나 뜻을 펴면 된다던 의지을 꺽으며,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했던 이유이다. 군주가 누구이던 상관없이, '유학'이라는 사상적 토대에 근거한 '시스템'과 제도로 움직이는 나라, 현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버금가는 선구적 시각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그의 의지는, 함께 나라를 세운 동반자이자, 새로운 군주, 이성계에게 조차 올곧이 이해받지 못한다. 여전히 이성계도, 그리고 야심을 가진 그의 아들 이방원에게도, 조선은, 이씨, 자신들의 나라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자신들 마음대로 다스리고 싶은 욕망을 그들 이씨들은 감추지 못한다. 당연히 그런 그들에게, 정도전이 만든,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얼토당토치 않다. 나라를 만들어 놓고, 뒷짐지고 구경을 하라니!

물론, 정도전의 민본이라는 것이, 이미 고려 말, 그들의 개혁적인 토지 제도 정전법이, 신료들의 거센 저항에 밀려,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처럼, 시대적, 신분적  한계를 지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 임금의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사상적 자각을 한 신하들의 집단 지도 체제라는 틀은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의 시각에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진보적 선구안이었다. 

그러난 그런 정도전과 그를 따르던 조선을 만든 중심 세력의 입장은,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자 마자, 바로 갈등의 씨앗이 된다. 자신의 나라라 생각한 왕과 그런 왕을 중심으로 왕권 중심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세력과, 그에 반하는 세력간의 500년간의 피튀기는 혈투의 시작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정도전의 선구적 시도는 이방원이 도모한 왕자의 난으로 실패로 마무리지어진다. 하지만, 정도전이 만든 조선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삼정승 제도의 합의에 기초한 의정부 제도와, 상소 등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간원 등이 500년 동안 끊임없이 왕권 중심으로 가려는 조선을 흔든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을 비롯하여, 조선의 역사 속 걸출하게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왕들은 신하들과의 정쟁에서의 승리를 전리품으로 챙긴 경우가 많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당쟁과 사화는 그런 전쟁의 또 다른 표식일 뿐이다. 끊임없이 조선의 신하들은, 사실은 자신들의 나라인 조선을 자신들의 수중으로 되찾기 위해, 왕권을 향해 도전하고, 의정부 중심제의 국가, 사간원 등을 통해 왕을 교육하고, 통제하고, 조련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애써간다. 

<정도전>에서 이미 보여지듯이, 왕자의 스승이 된 정도전은 어린 왕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다. 정도전이 능력있는 이방원이 아니라, 어린 왕자를 차기 대권 주자로 선택한 이유이다. 정도전의 세력에게 왕은 능력있는 지도자일 필요가 없다. 그저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왕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새로운 나라만 세우면, '모든 것을 다 맡기겠다'던 이성계부터,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왕이라는 틀에 회의를 느낀다. 그의 아들 이방원은, 분노를 넘어 적대감을 표명한다. 만들어지자 마자, 조선은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그 위기는 단지 헤게모니의 싸움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정통성의 위기이다. 조선이 조선다울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  싸움은 500년을 가고, 왕의 성격에 따라, 신하들의 성격과 포진에 따라, 조선의 정통성은 파고를 넘나든다. 


by meditator 2014. 6. 8. 13:57

16회에 이른 <갑동이>,이젠 누구도 갑동이(차도혁; 정인기 분)가 누구인지 다 안다. 하지만, 갑동이를 잡을 수 없다. 이전에는 갑동이가 누군인지 몰라서 잡을 수 없었다면, 이젠 갑동이가 누구인지 알아도 잡을 수 없다. '미치도록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 48시간을 구금해도, 그를 놓아줄 수 밖에 없다. 미제 사건들에 그의 DNA을 가지고 검사를 해봐도, 전산화되지 않은 출입국 관리국 창고를 먼지를 마시며 뒤져 보아도, 48시간 안에 그를 잡아들일 묘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와 대질 심문을 하던 오마리아, 아니 유일한 생존자 김재희(김민정 분)는 결국 눈물 범벅으로 오열하다 못해 그의 목을 조르고, 그런 그녀를 데리고 나온 하무염(윤상현 분)에게 절규한다. 왜 편법이라도  쓰지 않았냐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프로파일러 한상훈(강남길 분)은 결국 자신이 4차 사건의 진범이라며 자신을 내던진다. 이런 범인을 잡고도 범인을 잡을 수 없는 아비규환, 이게 다 터무니없는 공소시효 때문이다. 


연쇄 살인범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갑동이>는, 카피캣을 통해 연쇄살인을 복기하며 <갑동이>를 복기하며, 하나의 범죄가 가진 사회구조적 얼개를 논하더니, 이제 16회에 이르러, 대한민국 법 질서의 부조리함을 끄집어 낸다. 

결국 갑동이 사건 때문에 아버지와 딸을 잃었던 하무염과 양철곤(성동일 분)의 미망은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카피캣이 되어 갑동이 사건을 환기시킨 류태오, 그리고 그녀를 조여오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약통을 찾아들어야 하는 오마리아, 아니 김재희까지, 여전히 갑동이의 범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작 갑동이는 수사반장까지 되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분통터지는 것은, 이제라도, 갑동이가 누구인지를 알았는데, 정작 편의적으로 적용된 15년의 공소시효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맞부닦친다. 물론 16회 말미, 한상훈의 희생으로, 그가 4차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하고, 그로인해 범인이 잡히면 그 사건의 공범까지 자동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법령을 이용하여 겨우 갑동이의 공소시효 효력을 정지시키는 '신의 한수' 아니, '희생의 한 수'를 통해 비로소 갑동이 사건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을 가능성을 살려내었다. 


하지만 그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를 차치하고, 갑동이가 누구인지 드러난 이후 <갑동이>는 이미 충분히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인 부조리한 법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갑동이> 드라마의 시작은 일탄서로 다시 돌아온 양철곤 과장과, 여전히 갑동이 사건에 매어있는 하무염, 그리고 그들이 착잡하게 맞이하는 공소시효 완료일로 시작되었었다. 그때만해도,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눈 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것도 아니고, 15년이나 지난 사건이 이제와서, 라는 거리감을 시청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아니 갑동이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처럼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제 정신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은 쉽게 잊어야 하는 것을 하나의 비상요법인 양 장착한 채 살아왔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미해져가는 세월호처럼. 

하지만, 그저 두 사람의 집착으로만 여겨졌던 과거의 연쇄 살인을 과거로 부터 길어올린다. 갑동이를 존경하는 카피캣 류태오가 등장했고, 그를 치료하는 의사로, 과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희생자인 오마리아가 나타나고, 과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현재에 살아가는 또 다른 사건들이, 류태오의 사건을 통해 갑동이 사건에 얽혀들며, 드라마는 정죄되지 않은 과거는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16회 드라마 속 검사는 말한다. 법은 그 나라의 인격이라고. 
그렇게 인격이라 정의된 갑동이 속 우리나라의 법은 편의를 앞세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범인을 눈 앞에서 놓아줄 수 밖에 없는 비윤리적인 법이다. 2007년부터 25년으로 그 적용 기간이 늘어났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드라마 속 갑동이와 같은 사건은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흉악한 사회적 범죄의 경우 이미 공소 시효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여 폐지하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더구나 DNA로만 범인을 알수 있는 사건의 경우엔 공소시효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법원의 편의적 방식에 따라, 갑동이와 같은 사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성범죄 연쇄 살인범의 예를 들었지만,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인격으로서의 '법'에 귀결된 <갑동이>의 성취는 놀랍다.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법은 그저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번거로운 신호등과도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갑동이>를 통해, 그 번거롭다 느껴졌던 신호등이 제대로 신호를 보내지 않을 때, 혹은 신호를 보내기를 멈추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되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수의 사건들이, 때로는 법의 비호아래, 혹은 법의 방기 아래, 혹은 부조리한 전근대적인, 심지어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의 판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파업에서 파업 당사자들이 가장 고통받게 되는 사례 역시 이 아이러니한 법의 판결이다. 자신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파업이 겨우 마무미된 후 뒷덜미를 사로잡히는 건, 때아닌 '돈'의 폭탄이다. 파업으로 인해 원할한 생산 과정이 진행되지 못했다 하여, 혹은 파업 과정에서 많은 생산 시설이 파괴되었다 하여, 법원은 회사측의 손을 들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상상조차도 못할 엄청난 피해 보상금을 물게 한다. 얼마전 엔터테이너 이효리가 참여해 사회적 관심을 부각시킨 노란 봉투 프로젝트가 바로, 쌍용차와 철도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였었다. 15년 전의 해결되지 않은 사건 만이 아니라, 법이라는 편의적 도구를 이용해, 사회의 '을'들을 억압하는 우리 나라 인격의 또 다른 민낯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 자신이 보수적이 되었다며,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이른바 386 세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헌법에 위배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폐지를 위해 벌어지던 그 수많은 시위와, 시위로 인해 잡혀가던 학생들의 역사가 바로 인격이라는 법의 얼굴에 패인 주름의 흔적이다.

그렇게, 우리가 자신이 맞닦뜨려서야 아!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하지만, 한 사회의 인격이 되어야 할 '법'의 부조리하고 편의적인 모습을 드라마 <갑동이>는 그 말미에 이르러 주제로 내세운다. 제 아무리 누군가 그로 인해 여전히 고통을 받는다 해도, 명문화되어버린 법은 그 고통을 알아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까발린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그런 법의 부조리함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범죄의 공소 시효를 없애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부조리함을 방기하는 대신, 눈밝게 끄집어 내어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 나라의 인격이 왜곡된다면, 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드라마는 진득하게 설명해 낸다. 


by meditator 2014. 6. 8. 12:22

매주 목요일 밤 11시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있는 MBC가 이번 주 내민 카드는 시사교양 <어느 날 갑자기>이다.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재난재해에 무방비하게 맞닦뜨리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생존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리얼리티 드라마로 재연해낸다. 

첫 회,<어느 날 갑자기>에서 다룬 것은 세 개의 이야기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화재 현장에 있었던 김호근 씨 등 세 사람의 생존기, 갑자기 병원에 들이닥친 멧돼지와 싸운 최동선 씨 이야기, 그리고 사이판 여행 중 총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된 박재형씨 이야기가 다루어 졌다.

첫 번 째 사건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이다. 그 사건 당시 불이 난 열차에 타고 있던 김호근씨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당시 유독가스가 가득찬 지하철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그를 붙잡고 살려달라던 중년의 여인을 허리띠를 풀러 뿌리친 기억이 있는 그는 그 기억에서 놓여나질 못한다. 어두운 곳이나, 방처럼 닫혀진 공간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홀로 거실에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며, 밤마다 찾아오는 그녀에게 10년이 넘도록 시달리고 있다. 불이 난 열차 뒤에 들어와 불이 붙어버린 열차에 타고 있던 김영환씨는 역시 구해 달라던 여자 두 명과 겨우겨우 한 층을 기어올라 생존을 했지만, 더 이상 요리사로서의 그의 삶을 지속시킬 수는 없었다. 참사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불 앞에 설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기를 마신 폐는 강도높은 사회 생활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명 그 열차를 탔던 여성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둠이 휩싸인 중앙로 역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하다 구출되기도 했다. 
당시 자료와 인터뷰, 재연을 통해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부상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과정, 그리고 그 참사 속에서 살아남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첫 번째 이야기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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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다음 사건은 강릉 의료원에 출현한 멧돼지 이야기이다. 강릉 시내로 뛰어들어 차에 치인 멧돼지는 강릉 의료원까지 난입하기에 이르른다. 멧돼지에 놀라 망연자실해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멧돼지와 싸운 장례지도사 최동선씨, 사무실에 들어가 다짜고짜 집어든 망치 하나면 멧돼지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단 그의 생각과 달리, 망치는 단번에 부러져 버리고 그는 두 시간 여의 수술을 거쳐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두번 째 이야기는 세 이야기 중 물론 대수술을 해야 할만큼 당시 상처는 심했지만 여파가 적은 만큼, 상대적으로 최동선씨의 오지랖넓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진행된다. 

마지막 사건은 40세 되던 해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한 사이판 여행에서 임금 체불에 불만을 가진 리조트 직원의 총기 난사로 사경을 헤매다 하체불구가 된 박재형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유를 모른 채, 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무차별 총기 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하반신을 잃은 박재형씨의 이야기는, 그가 사고를 겪는 과정과, 한때 삶을 놓으려고까지 했던 재형씨가, 이제 당시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들과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꿋꿋한 삶을 이어가는 재기 과정을 다룬다.

세월호 사건의 실종자 수가 쉬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이즈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어느날 갑자기>는 현실감있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파고들만한 프로그램이다. 더구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그 계기와 과정에 있어 더더욱 세월호를 연상케 하고, 여전히 그 사건의 기억화 휴유증에서 고생하고 있는 당시 피해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더욱 <어느날 갑자기>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제성 면에서는 시의적절하지만, 또 그런 시의적절한 편성이, 보다 가치를 가지려면 프로그램으로서의 지향과 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듯하다. 그런 면에서 첫 회 <어느 날 갑자기>는 딱히 하나의 지향을 가진다기 보다는 이런 저런 구성을 포괄하고 가는 듯했다.

지하철 참사 사건의 경우, 워낙 사건의 희생자가 많고, 여파가 크다 보니, 그 사건의 실제 재연에 치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남았다지만, 여전히 죽은 사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호근씨나, 생업을 잃게된 김영환씨의 삶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가 된 여성의 경우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앞서 두 사람과 달리,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원해 포함시켰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종교색이 워낙 강해 이해는 가지만,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지난 주 <SBS스페셜>의 내용과 비교된다. 대형 참사 사고의 트라우마를 다루었던 ,<트라우마 삼대를 가다>는 대형 참사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에 집중한다. 같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이지만, 그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드리우고 있는 무거운 정신적 질병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는 '리얼리티'라는 지점에 방점이 찍힌다. 과거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현재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서술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현재 사는 모습에 따라, 사이판 사고 박재형씨는 그의 재활 과정에 집중이 되는 것이고, 강릉 의료원 멧돼지 출현 사건은 최동선씨의 인물됨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도, 사례별 촛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느날 갑자>라는 프로그램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형 참사 사고의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면에서는 강점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재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이거나, 평면적 사건 나열에 그친 그저 그전 사건 보고서의 재연 드라마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최근처럼 대형 재난 사고가 사회적 관심이 되고 시점에서, <어느날 갑자기>의 편성은 시의적절했지만, 조금 더 사회적 재난 사고라는 특성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SBS스페셜>처럼 사고 당사자의 트라우마에 좀 더 집중을 하거나, 아니면, 단지 이런 삶을 사는 사고 당사자가 있다가 아니라, 좀 더 치유적 관점에서 그들의 사고에 다가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더한다든지 해서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 사고의 성격을 강화시킨 프로그램의 성격을 부각시켜 나가길 바란다. 특히나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사회적 성격이 강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여파를 개인적 사례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런 사건들을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해 가고 있는가를 좀 더 조명해 준다면, 지금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건은 사회적인데, 풀이는 개인적이 되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 병폐를 제고해 내는 것, 버겁지만, <어느날 갑자기>가 품은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1:45

함께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둘러싼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했던 임경재(박원상 분)의원이 의문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음을 당한 후, 강도윤(김강우 분)은 홀홀단신 나서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여의치 않다. 그의 입은 막아지고, 그는 그의 동생이 맞았던 서동하(정보석 분)의 골프채 앞에 던져지게 될 뿐이다. 결국 마이클 장 대신 쏜 알렉스(김재헌 분)의 총을 맞고 쓰러진 강도윤은 생매장이다시피 흙구덩이에 던져지고, 그의 몸 위에 솔선수범하여 흙을 덮은 후, 서동하는 빛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3년 후 경제 부총리 내정자가 된, 이제는 경제계의 거물로 장인인 김재갑(이호재 분)마저 어쩌지 못할 사람이 된 서동하는 야심차게 토종 펀드를 조성하려 하고, 그런 그의 앞에 세계 투자은행들의 VVIP들만 상대하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 테리영이 나타난다. 강도윤과 똑같이 생긴.

검사보로서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던 강도윤은 결국 골든 크로스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실패했다. 그리고 그가 맨 몸으로 부딪친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와 힘을 합친 사람들은 하나씩 무너져갔다. <빅맨>에서 김지혁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지만, 강도윤에게 희망이 되주던 양심적인 국회의원도, 의협심이 가득했던 기자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간다. 그리고 강도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장의 변호사가 되어 나름 가면을 뒤짚어 쓰는 듯했지만, 여전히 강도윤은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이였다.

골든 크로스 16회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제 3년이 흐른 후 나타난 테리영은 얼굴만 강도윤일뿐, 그 어느 곳에서도 검사보 강도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술이 거나해진 서동하와 박희서(김규철 분)가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의 동생을 죽였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테리영이 된 강도윤은 유쾌하게 웃어제낄 뿐이다. 애증의 서이레(이시영 분)가 찾아와 읍소를 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다. 그 무엇을 해도 '을'이었던 그가 이제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목줄을 틀어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인 '갑'이 되어 그들을 좌지우지 하고자 한다. 그런 그의 변신에, 서동하는 말한다. 그가 강도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치 않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펀드의 매니저라는 사실뿐이라는 사실이라고. 

서동하와 박희서가 테리 영 앞에서 굽신거리고, 마이클 장이 그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 이제 그들의 목줄을 죈  또 다른 '갑'이 되어, 그들을 휘몰아쳐 몰락시킬 일만 남은 존재가 되어 나타난 강도윤으로 인해, 그토록 몰리기만 했던 복수는 이제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만이 남았다. 
그런데 어쩐지 허전하다. 결국 16회까지 이른 드라마는 평범한 서민의 아들 강도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듯해서 말이다. 
사실 점만 찍지 않았을 뿐, 결국 돌고 돌아, <골든 크로스>가 도달한 '복수'는 여느 복수 드라마의 클리셰와 다르지 않다. 약자였던 주인공은 그를 핍박하던 상대에게 한없이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고, 그러다 사라져버리고, 한참 후에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즉 신분 세탁을 거친 존재로, 이전에는 그들에게 당하는 위치였다면, 이젠 그들의 목을 죌 위치가 되어 나타나 지금까지 당한 것들을 하나하나 복수해 나간다. 결국 <골든 크로스>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 분)을 비롯하여, <상어>의 한이수(김남길 분)가, <적도의 남자>의 김선우(엄태웅 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간 <골든 크로스>가 우리 사회 상위 1%의 전횡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실감나게 그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강도윤으로서의 복수의 실패는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티없이 맑았던 배우 지망생이었던 강도윤의 동생,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그 두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검사보였던 강도윤이 나섰을 때, 함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서동하의 딸 서이레, 국회의원 임경재, 기자 갈상준의 패배나 몰락은, 이제 의문의 펀드 매니저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의 복수에서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씌여졌다.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싸움은 철저히 패배가 되어 강도윤과 함께 흙에 묻혀 버리고, 이제 복수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로서, 오로지 환타지로서 드라마는 '복수'를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성공이, 현실의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점을 찍고 누군가 실력자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위에 설 수 있는 갑이 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상위 1%를 대항한 싸움은 불가항력이라고 드라마는 말하는 것같아 아쉽다.

16회 땅에 묻히기 까지 강도윤은,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싶은 평생을 남의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의 평범한 아들이었지만, 이제 테리영은 클럽 골든 크로스의 대표 홍사라가 뒷배를 봐주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 또 다른 힘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싸움은 무기력한 패배라는 걸 16회에 이른 <골든 크로스>가 스스로 확인한 셈이 되었다. 제 아무리 이제 부터 벌어지는 강도윤, 아니 테리영의 복수가 칼바람이 분다 한들, 어딘가 씁쓰레해지는 지점이다. 여전히 '복수'에 방점이 찍힌 드라마들은, 복수를 당할 자들의 전횡에 골몰하다, 전세를 역전시켜 그들에게 당한 만큼 몰아부치는 '복수'의 '양'에 몰두한다. 하지만, 점을 찍고 나타나, 또 다른 갑이 되어 댓가를 치뤄주는 복수는 환타지일뿐, 진정 우리 사회의 '을'들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누군가의 아들 강도윤의 실종과, 테리영의 대두가 결국 '을'들의 무기력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환타지'로서의 복수는 그저 '환타지'일뿐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0:17

이제 4회를 남긴 <빅맨>,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내세운 탄원서철 사이에 강동석이 한 이면 계약서를 끼워넣어 역전을 노렸지만 결국 검사는 현성 유통 직원들이 내세운 법정 관리인 김지혁(강지환 분)에게 사기 전과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강동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망하고 나선 김지혁과 구덕규(권해효 분)등에게 현성의 직원들이 다가온다. 김지혁은 자신이 모자라서 죄송하다고 말을 하고, 그런 김지혁에게 노조원들은 반문한다. 왜 사장님이 죄송하냐고, 함께 하자고 한 건 우리인데, 라며 김지혁을 독려한다. 그러자 김지혁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함께 좀 더 열심히 해보자고 하고, 직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부등켜 안는다. 멀리서 그런 김지혁과 현성 직원들을 지켜보던 법정 관리를 다룬 검사,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직원들이 이전에 내세운 탄원서를 읽어보고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부도가 나서 법정 관리가 이루어진 회사에 가장 필요한 건 직원들이 원하는 사장이라며 김지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빅맨>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12회에 이른 지금까지 한결같다. 노조원 중 한 사람의 배신이 알려진 후 과연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로 골머리를 썪힐 때, 김지혁은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그런 우리가 사람마저 잃으면 무엇을 가지고 저들을 상대하겠냐고. 이것이 바로 1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행되어 온 <빅맨>의 '휴머니즘'이다. 

시장 바닥의 양아치 김지혁이 우연히 강동석의 꼭두각시로 현성 유통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가 진짜 기적을 일구고, 이제 다시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돌아오기까지, 김지혁의 일관된 노선은 '사람'이다, 즉 그가 주장하듯, '사람만이 희망이다' 
현성 유통에 어렵게 공급된 우유를 사먹은 사람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그 사람의 안위였다. 그런 그의 방식이, 대기업들의 보이콧으로 비워진 현성 유통의 매대를 순진우유로 채울 수 있었다. 바로 현성 유통 직원의 떡고물로 인해 하청에서 떨어져 나갈 뻔하던 순진 우유를 살려준 것이 김지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장이 되었던 현성의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그가 가족처럼 여기던 시장 사람들이었고, 그의 진심이 그를 무시하던 직원 구덕규와, 최유재(김지훈 분)를 돌려세웠고, 그가 사장으로 보인 성의에 노조원들이 돌아섰다. 제 아무릭 급해도 '리베이트' 대신, 사장의 초심과 진심에 호소하는 김지혁의 방식이,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그를 만들었다. 

(사진; 메트로)

<빅맨>은 착한 드라마이다. 결국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믿어야 할 것은 너와 나의 진심이요, 우리가 힘을 합쳐야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순수하고 곧은 의지를 일관되게 내세운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빅맨>의 휴머니즘이 싱겁다. 분명이 옳은 말이고, 올바른 방향인데, 너무 세상이 세속적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런 빅맨의 순진 혹은 순수함은 어쩌면 바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일 수도 있겠다. 과연 정말 김지혁처럼 가진 것 하나 없이 순수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회사를 살리고 싶은 직원과 노조원들이, 또한 김지혁을 믿고 자신의 상권을 내준 시장 사람들이 온갖 권모 술수는 물론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이 사회의 '갑'들을 대항해 내세울 무기가 결국 누군가의 '감성'에 호소하는 휴머니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 사실 <빅맨> 속 주장들은 다양하다. 대기업 상권과 시장 상권과의 충돌 속에서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주목하고, 대기업 유통망에 짖눌린 중소 기업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하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들도 제대로 일한 댓가를 받고, 대접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포함된다. 하지만,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들면서도, 그 해법이 늘 김지혁의 인간적 설득과, 누군가의 감성적 결단이라는 식이 되어버리니, 이젠 어떤 이야기가 등장해도, 또 그렇게 해결하려니 한다. 

<빅맨> 속 등장인물들은 결국 '성선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지혁이 내건 사람 냄새에 홀려 사람다운 일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순간 김지혁이 설득하려고 나섰던 그들이 자신의 불리함을 넘어서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12회에 이를 동안 김지혁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빅맨>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가 가진 착한 인간에 대한 절대 신뢰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러기에 때로는 늘 한결같이 김지혁의 휴머니즘에 동참하는 그들이 어쩐지 '꿈'같기만 하다. 어디 사람이 모질고 싶어 모질어 지는 것인가, 세상이 사람이 모질게 만드는 것일진대, 드라마<빅맨> 속 길은 마치 모범생의 모범답안같이 예외가 없다. 그러기에 모범 답안을 벗어난 모범생이 무기력하듯, 인간에의 호소를 벗어난, 김지혁과 동료들의 행보는 그래서 때로는 허무해 보이며, <빅맨>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고민을 던진다. 

재벌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조화수(장항선 분)의 표현대로 '강아지 새끼'처럼 자신의 이익을 향해 모든 것을 수단화시키며 내달리듯, 애초에 시장판 양아치가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빅맨>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환타지'이다. 그리고 그 환타지는 가장 이상적인 휴머니즘에 입각해, 모두가 힘을 모아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잘 해보자 라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회의가, 착한 드라마<빅맨>을 보다보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복수' 드라마에 맛들인 시청자가 보기엔,<빅맨>은 순수 무공해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 건강한 음식과도 같지만, 어쩐지 그게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고, 맛도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드니, 세상의 떼가 묻은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을'들의 속시원한 해법이 '인간적 호소' 외에는 마땅치 않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빅맨>은 명쾌한데, 어렵다. 


by meditator 2014. 6. 4. 05:15

가정의 달 특집 <휴먼 다큐 사랑>4부작 시리즈가 마지막회 <말괄량이 샴 쌍둥이>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이 따뜻한 다큐를 보기 위해서는 내년 가정의 달까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만약에 내년에도 한다면) '휴먼'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제목에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언제나 그래왔듯 4부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휴먼 다큐 사랑> 마지막 회<말괄량이 샴쌍둥이>는 캐나다 브리티시 버논에 거주하는 머리가 붙어 태어난 샴 쌍둥이 크리스타, 타티아나 호건 자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오늘이 있게 만든 특별한 엄마와 엄마같은 할머니 '나나맘'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샴쌍둥이 크리스타와 타티아나의 출발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뱃속에 있는 쌍둥이가 머리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엄마 펠리시아 호건에게 낙태를 권유했다. 하지만,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인,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는 그런 의사의 권유를 거절했다. 그리고 벤쿠버에서 다른 샴쌍둥이가 태어나 잘 자라고 있다는 건 알게 된 아빠는 아이의 순조로운 출산을 위해 엄마와 함께 벤쿠버로 향한다.

2006년 10월 벤쿠버의 한 주립 병원에서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른 사태에 대비해 17명의 의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가운데 쌍둥이 크리스타와 타티아나는 무사히 세상으로 나왔다. 생존율 20%의 장벽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고 이들의 성장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많은 의사들이 샴쌍둥이의 성장을 비관적으로 보고 이 아이들이 걷지도 기지도 못할 거라고 했지만, 현재 이들은 웃으며 뛰어다니고, 벽도 타고, 함께 목마도 타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물론 하나의 뇌를 공유한 타티아나와 크리스타의 삶이 다른 아이들과 같지는 않다. 함께 맛을 느끼고, 함께 시각을 공유하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보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마술같은 신체적 특징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즐겁게 뛰어노는 이들 말괄량이가 평생 변기에 앞으로 앉을 수 없듯이, 편중된 뇌때문에 보다 빨리 뛰는 심장을 조절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밀과 보리 알레르기나, 소아 당뇨처럼 지병을 평생 가져가야 하고, 함께 걸어야 하는 신체적 특징때문에 발 중 어느 한쪽은 깨금발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휴먼 다큐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신체적 장애가 어쩌면 살아가는데 그다지 큰 장애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엄마와 할머니의 신뢰에 찬 사랑, 그리고 그런 엄마를 지지하는 할아버지를 신념이 보는 시청자들의 눈을 새롭게 뜨도록 만든다.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끊임없이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엄마 크리스티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출생에 세상은 회의적이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반대로 말한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 가족들은 각자의 삶만이 있었지만, 이제 샴 쌍둥이 덕분에 좀 더 가까워지고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좀 더 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샴쌍둥이 덕에 짊어지고, 나누어야 하는 시간을, 엄마는 가까워짐과, 역할을 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쌍둥이의 늦은 성장에 대해서도 엄마의 생각은 다르다. 동생이 태어나도록 걷지도 기지도 못했지만, 쌍둥이는 동생이 태어나고 기고 성장하는 것을 보고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지만 조금씩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 뉴스엔)

시리즈가 언제나 그래왔듯 <휴먼 다큐 사랑>의 부분부분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시울은 적셔져 가는 미묘한 감동을 주었지만, 가장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 뜨끔하면서도 감동적인 부분은 엄마 크리스티나의 한 마디이다. 낮은 생존율처럼, 성장의 후일을 명확하게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말한다. 타티아나, 크리스타 두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함께 하는 그 순간순간 함께 행복하면 그뿐이라고. 초등학교 2학년인 이제야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연결할 수 있는 쌍둥이 자매를 보며 할머니는 그들이 많이 배울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한다. 여전히 어른들은 그 아이들은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말은 우리를 망치처럼 내려친다.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는 아이,순조롭게 잘 성장해 주는 아이,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란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에. 그저 지금 우리와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휴먼 다큐 사랑; 말괄량이 샴 쌍둥이>가 그려내고 있지 않지만, 샴 쌍둥이 자매 크리스타와 타티아나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배경에는 캐나다라는 나라가 있다. 나라에서 지어주는 임대 주택에서 생활하는 외가와 부모님들을 가진 샴 쌍둥이, 과연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태어날 때부터 온갖 의료적 도움이 필요하고, 이만큼 성장할 때까지 의학적 보조가 늘 함께 해야 하는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저렇게 성장할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의료적 비용을 사회가 부담해 주는 캐나다 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큐에서 나오는 출산 과정의 비용, 그리고 자라면서 했던 수술과,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먹어야 하는 약과 주사의 비용은 모두 공짜다. 다 나라가 부담하는 것이다. 

다큐를 보는 내내 의아했다. 공공 임대 주택에 사는 엄마와 할머니는 온전히 육아에만 매진하고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가였다면 어땠을까. 다섯 아이들의 밥값을 벌기 위해 아빠는 물론 엄마까지 나가서 벌어야 할 상황이다. 느긋하게 아이들을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빨래를 돌리는 상황을 공공 임대 주택에 사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 펠리시아는 그게 가능하다. 

2011년 4월 8일 <오마이 뉴스> 해외 복지 리포트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의 의료 비용이 나라 부담이다.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한 아이당 보조 양육 수당을 459달러 씩을 받는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18세가 될 때까지 캐나다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가 경제적 수준에 따라 아동 복지 수당을 제공한다. 
엄마 크리스티나가 나가서 당장 아이들 밥값과 병원비를 벌 필요 없이, 당당하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온전히 다섯 아이들의 육아에 집중하며 그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배경에는 아이를 무상으로 키울 수 있는 캐나다의 의료 복지 제도가 있다. 어쩌면 샴 쌍둥이를 가져도, 그들을 낳고 키울 수 있는 용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캐나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는 그저 감동만이 아니라 힘이 있다. 사랑의 힘이다. 
크리스타와 타티아나는 비록 사지는 멀쩡하다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함께 걷기도 버거워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네 번씩 주사를 맞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저 보통 아이들처럼 때론 장난도 치고, 형제들과 웃고 울고 밝게 생활하는 이 자매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한 삶에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 명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 또 다른 하나는 휴지를 자르며 기다려 주고, 자연스레 옷을 추켜주고, 따스하게 손을 맞잡아 주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정과 같은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럽단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크게 바라는 것 없이, 그들과 함께 지금 함께 행복한 것만으로도 삶의 목적을 이룬 듯한 엄마와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가 살면서 잊어서는 안될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따뜻하면서도 밝게 나레이션을 해낸 박유천의 마지막 한 마디, '이백 오십만 분의 일 확률로 태어난 희귀한 샴 쌍둥이 타티아나와 크리스타, 세상 그 누구보다 힘든 조건 속에서도 이 아이들은 서로에 기대어,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론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 이 미소를 떠올려 보세요. 언제나 우리의 마지막 해답은 사랑입니다'처럼.


by meditator 2014. 6. 3. 0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