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돌리다 어라? 했다, <도깨비>를 재방송해주나?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꽤 돼지 않을까? <진심이 닿다>말이다. <도깨비>에서 불멸의 비극적 사랑으로 인기를 끌었던 저승사자의 이동욱과 써니의 유인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들 것이다. 아니, 애초에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의 애절했던 사랑에 마음이 빼았겼던 사람들이 그 저승이와 써니가 출연한다 해서 <진심이 닿다>에 우선 채널을 고정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굳이 그런 관심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진심이 닿다> 속 이동욱이 분한 권정록은 변호사지만, 색깔만 달라졌을 뿐 <도깨비> 속 예의 롱코트를 '착장'한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했던 저승이의 표정도 그대로다. 유인나라고 다를까? 한때는 정치적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은 황후였지만, 현세의 써니가 자신의 무기로 삼았던 그 '철없음'은 이제 <진심이 닿다> 속 한류 스타인 오윤서에겐 성격으로 드러난다. 굳이 다르기 보다는 같아서 보게 만들고 싶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진심이 닿다> , 그래서 더 이 드라마의 진심이 의심스럽다. 

<진심이 닿다> 그리고 <도깨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랑하는 여인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던 비극적 사랑,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해피엔딩을 빌었다. 드라마의 마지막 여배우와 강력계 형사로 환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한번 같이 호흡을 맞춘 두 남녀 배우가 다시 만나기 힘든 드라마계에서 이동욱과 유인나의 만남은 그러려니할 수 있었다.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환생이라도 한 듯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오마주'한 듯 해도 거기까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니 <도깨비>말고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2018년 중반기 tvn의 화제작이었던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다. 물론 두 작품의 배경은 다르다. 부회장과 비서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변호사와 비서의 <진심이 닿다>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특별한 서사보다는 두 남녀 배우의 이른바 '케미'에 전적으로 의존한 작품이라는 것과, 츤데레 남자 주인공에, 발랄하고 자기 주도적인 원맨쇼에 가까운 캐릭터의 여주인공의 조화라는 점, 거기에 두 주인공과 호흡할 다채로운 캐릭터의 주변 조연 캐릭터가 포진하여 이들과의 시트콤에 가까운 설정 등으로 극을 채워간다는 점에서 <진심이 닿다>는 어쩔 수 없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을 떠올리게 한다.

<김비서>가 서사적 전개를 차치하고 두 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의 놀라운 캐미로 8%를 넘어선 시청률로 tvn의 효자로 등극했듯이, <진심이 닿다>는 이미 <도깨비>를 통해 화제성이 된 두 주인공 이동욱과 유인나의 캐스팅을 통해 그런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연하고자 한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진심이 닿다>로 온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는 아직까지는 전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외려, 전작에서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두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도깨비> 속 써니가 '철없음'을 혈혈단신 천애고아로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로 장착했다면, <진심이 닿다> 속 오윤서는 본의 아닌 사건에 연루되어 숙고의 기간을 가진 한류 스타임에도 그냥 철이 없다.  나름 드라마는 '장기'라 생각하며 한류 스타 오윤서를 설명하는 씬으로 각종 씨에프의 오윤서 버전을 빈번하게 삽입하는데, 그 자체가 보는 시청자들을 인내심에 빠뜨리게 한다. 아니 그것조차도 오윤서의 애교라 친다쳐도, 드라마는 2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오윤서의 원맨쇼와 그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벌여놓으며 조급한 시청자들의 손을 자꾸 리모컨으로 향하게 한다. 

 

 

상투적인, 너무도 상투적인 
츤데레 남주와 철없는 여주의 만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트콤과 같은 배경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2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해프닝' 이상 두 주인공의 '진심'을 제대로 드러내 주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철없음을 넘어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오글거리는 설정들을 참고 참아 2회 중반 쯤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철없음이 써니의 철없음처럼 거친 연예계 생활을 버텨낸 나름의 무기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짜고짜 냉랭함을 넘어 싸가지 없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갑자기 호의적 버전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이 닿다>를 보며 시청자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건 이미 전작에서 익숙한 두 남녀 주인공을 차치하고서라도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상투성' 때문이다.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 철없는 거 같지만 알고 보면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에, 남자의 첫사랑은 똑똑하고 당찬 걸크러쉬 여자 검사이다. 여검사 유여름을 설명하는 첫 씬, 검사들 회의 장면 당연히 남자 검사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 여성에게 성 편견에 사로잡힌 예단을 하고, 정의로운 여검사는 그런 남자 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은 이제 여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되는가 싶다. 

그렇게 주요 캐릭터의 설정과 함께 오윤서의 소속사 대표는 입으로는 오윤서에 대한 정을 읊어대지만 정작 손해는 절대 감수하지 않는 이해타산적인 인물이요, 그런 소속사 대표의 부탁으로 오윤서를 위장 취업시켜준 로펌 대표는 알고보니 오윤서의 열렬한 팬으로 불철주야 오윤서를 향한 '덕심'에 불타오른다. 여자만 보면 매력을 흘리지만 알고보면 마마보인 이혼 전문 변호사에, 극소심한 듯하지만 속내를 숨길 수 없는 변호사에, 능력자 터줏대감 비서와 그를 흠모하는 깡패같은 사무장이라니. 이준혁, 오정세, 심형탁, 장소연, 박경혜, 박지환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로 커버되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이젠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보니, 이들과 오윤서가 벌이는 해프닝들이 극의 활기가 되기 보다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보았던 시트콤의 재방송을 보는 듯하다. 

 

 

결국 2018년의 인기작이었던 웹툰 원작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2019년 <도깨비>의 두 주인공을 소환하여 다양한 조연진들의 포진시켜 다시 한번 비서 로코의 그 영광을 재연하려 했지만, 2회에 이미 상승세가 꺽여버린 <진심이 닿다>가 보여줄 진심의 길은 험란하기만 하다. (1회 4.736% -> 2회 4.583%)

무엇보다 이미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배우들의 호흡에 힘입어 인기가 있었지만 웹툰 원작 서사의 부실함을 지적받았던 바, 그러한 비판에 대한 개선없이  인기있는 컨셉의 무분별한 자기 복제가 <진심이 닿다>의 부진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로 호평을 받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로 인기를 얻은 박준화 연출의 차기작이기에 더욱 아쉽다. 

특히 케이블, 종편의 가세로 드라마 제작 편수의 폭발적 증가와 그를 감당할 질좋은 작품들이 양산이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2014년 <미생> 이래 웹툰은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콘텐츠 제공처가 되어왔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로코' 버전의 웹툰의 반복적 드라마화는 결국 <계룡선녀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등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진심이 닿다> 역시 그런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진심이 닿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드라마와 그를 따르지 못하는 제작 퀄리티 혹은 관습적인 제작 방식 등의 문제로 드라마계 전체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by meditator 2019. 2. 8. 14:54

다시 설이다. 며칠을 쉬고, 어디를 가고 다들 마음이 먼저 분주해지는 시간, 하지만 ,ㅅ자만 들어도 골이 지끈지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설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름 냄새가 나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전을 부쳐야 하는, 여전히 어느 집안의 며느리라는 위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며느리'들이다. 역귀성에, 명절 대신 여행이라며 트렌드가 바뀌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의 행사치레로서 명절의 전통은 강고하게 한 편에서 지탱되고 있다. '며느리 잔혹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1996년의 명절 특집급 <곰탕>을 다시 보며 며느리로서의 삶에 대해 짚어보자. 

 

 

1996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다. 설 등의 특집 드라마가 융성하던 시절, sbs는 <울밑에 선 봉선화>, <노란 손수건>, <어여뿐 당신> 등 전통과 여성의 갈등을 작품으로 풀어온 박정란 작가와 <천국의 계단>,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장수 피디가 의기투합하여 2부작의 <곰탕>을 설 특집극으로 만들었다. 김혜수를 타이틀 롤으로 하여, 김용림, 류현경, 류시원, 한재석, 정우성 등 당시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출연했던 이 드라마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뉴욕 페스티벌 tv 부문 특별상, 휴스톤 국제 영화제 tv 부문 금상을 받으며 '한국적 여인상'을 대내외에 알렸다. 

열 세 살의 민며느리 
시작은 1919년 고종이 돌아가시고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불붙던 시절 서울, 양반이라지만 식구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살림살이, 이제 열 세살이 된 딸인 순녀는 충청도 부잣집이라는 정씨 댁에 쌀 삼백 섬에 '민며느리(빈곤한 가정의 딸로서 대체로 10∼12세 때 데리고 와서 양육하여 혼기가 되면 며느리로 삼는 제도)'로 들어가게 된다. 

 

 

가마를 타고 며칠을 걸려 도착한 시댁, 목욕 재계하고 어른들께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민며느리'인 순녀가 한 일은 이 집에서 남자들을 먹이기 위해 끊이지 않고 만든다는 곰탕 재료를 손질하는 일, 한 겨울 뒷마당에서 찬물에 손을 담가 소뼈며 부속물을 다듬는 것이었다. 

겨우 곰탕꺼리를 마련해 가마솥에 끓이며 행랑댁과 함께 어두운 부엌 마루에서 바가지에 담긴 밥을 먹던 며느리 순녀, 들이닥친 시어머니는 그녀의 옷을 벗겨 몸을 검사한다. 손이 귀한 집에 겨우 아들 하나를 생산하여 내내 집안 어른들께 혈연에 대한 부담을 짊어졌던 시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쌓인 한을 고스란히 이제 겨우 초경을 마친 순녀의 몸에 토해낸다. 아들을 많이 낳아야 한다며. 

 

 

남편이 없어도 며느리 
그렇게 3년을 지냈다. 드디어 혼례식을 치뤘다. 하지만 첫 날 밤을 치루자마다 정씨 집안 외동 아들인 남편 인성은 서울로 유학을 떠난다. 고향이 서울인 순녀를 놔두고. 

순녀는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점차 부풀어 오르는 배를 부여안고 여전히 곰탕을 끓이랴 시부모를 봉양하랴 손이 마를 날없이 며느리의 역할을 다하며 세월을 보낸다. 드디어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온 남편은 만삭의 아내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도 않은 채 무거운 가방을 들리고, 보다 못한 남편의 친구가 만삭의 몸으로 낑낑대던 그녀의 가방을 받는다.  그래도 순녀는 남편이 돌아와 설레고 반가웠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남편만이 아니다. 악극단의 가수 출신인 채봉이라는 여자도 남편을 찾아오고 심지어 그녀가 남편과 한 방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결국 그런 시련 등으로 인해 그토록 기다리며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아이를 떠나보내고, 다시 남편도 서울로 떠나버린다. 

사업을 한다며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 심지어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렸고, 거기서 아이까지 낳았다. 고향길로 가며 이 동네 땅이 다 자기네 꺼라며 자랑하던 그 정씨 일가의 땅은 그 '사업'의 핑계로, 해방과 전쟁, 격동의 시대 속에 사라져 버린다.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그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순녀, 남편도, 자식도 없이 빈 손으로 그곳을 떠난다. 

 

 

조강지처라는 굴레 혹은 숙명
호구지책을 하자니, 시집살이 내내 끊임없이 끓여대던 곰탕 밖에 없었다. 곰탕 집 열 돈이라도 보태달라 만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자식 과외 시킬 돈도 없다며 순녀의 입을 막는다. 어렵사리 겨우 천막을 쳐서 차린 곰탕 집,  그녀가 견뎌온 시련의 세월을 배신한 남편과 달리, 그 시간의 맛에 세상 사람들이 화답한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의 곁에 남은 건 남편을 찾아 고향집에 온 풍각쟁이 채봉뿐. 그래도 여전히 인성의 아내라는 호적에 새겨진 글씨는 그녀에게 조강지처라는 자부심인지 굴레인지를 남기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곰탕을 끓이며 살아온 세월 어느덧 곰탕집이 40주년이 되고, 늙고 병든 남편이 돌아온다. '며느리'로 살아온 인생이 거둔 뒤늦은 결실인지 또 다른 짐인지.  

 

 
민며느리로 들어와 남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서의 삶을 견디고 버텨낸 순녀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끓여야 제대로 된 맛이 나는 음식인 <곰탕>에 빗대어 그려낸  이 드라마는 류현경, 김혜수, 김용림 연배가 다른 세 배우를 통해  '전통적 여성상'을 그 시대의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설명한다. 

질곡의 가부장제, 그 희생자이자 헌신적 실천자들 
쌀 삼백 섬에 팔린 '매혼'의 대상, 한 집안의 며느리라지만 일하는 식솔이나, 대를 잇는 수단, 심지어 개명의 물이 든 남편마저 외면한 여자 아닌 여자, 하지만 순녀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바람이 나다 못해 살림을 차리고 그 살림 차린 여자에게서 아들을 얻은 남편임에도 오래도록  '조강지처'라는 허울, 아니 그녀를 유일하게 증명할 그 '허명'에 매달린다.  심지어 평생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 그녀는, 시어머니가 겨우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포한이 되듯이, 외려 아들을 낳아 대를 잇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다 늙고 병들어 돌아와 그제서야 너무 미안하다는 남편에게 그녀는 뜻밖에도 미안하단다. 평생 미워해서, 때로는 남편보다 남편의 친구를 더 그리워해서. 

드라마는 일제, 해방, 전쟁 등 격변기에 전통적 가족 제도의 굴레 속에서도 곰탕처럼 뭉근하게 삶의 정취를 피어낸 순녀의 삶을 통해 전통 여성상의 수난과 인간 승리를 그려내려 했겠지만, 2019년에 다시 본 순녀의 인생은 척박하기가 그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2019년에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다하지만 불과 한 세대 전의 삶이다. 남자들로 대를 이어온 가부장제의 가족 제도가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사회에서 나고 자라고 그 가족 제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에 그리 무슨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자신을 놓치지 않고 곰탕처럼 견디고 뭉그러져 그 끝에서 도달한 경지는 그 누구도 쉽게 예단 할 수 없는 한 시대의 표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공감할 수 없다지만, 과연 순녀의 삶에서 2019년은 멀리 떨어져 나왔을까? 호칭도 다 뜯어 고친다 하지만 주인공이 시댁의 전통에 따라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태로 보면 외양을 달라졌을 지언정 여전히 가부장제적 가족 제도의 뿌리는 곰탕보다 더 뭉근하게 우리 삶의 근저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번 설에 여전히 전부칠 걱정을 하는 수많은 며느리들의 사례에서 처럼. 

아이러니한 건, 드라마 <곰탕>에서 처럼, 시집살이를 하던 순녀가 나이가 들어 조강지처의 자리를 고집하고, 아들을 하나 밖에 못낳은 시어머니가 정작 순녀의 몸을 훑으며 아들낳기를 종요하는 것처럼, 정작 가부장제의 실천자들이 뜻밖에도 그 희생 당사자인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편을 거두자 비로소 자신의 임무를 다한 듯 보이는 순녀의 일생,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어느덧 그 체제의 희생자에서 체제의 가장 강력한 추종자가 되어 그 체제의 재생산에 헌신적이 되어가는 여성들, 그것이 바로 드라마 속에서도 보여지는 질곡의 고부 관계, 혹은 가족 관계의 딜레마다. 즉, 가부장제는 '남자'의 것이 아니라, 결국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짓는 사회적 체제였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다. 

하지만 그 질곡조차도 사실은 '역사적'이다.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던 가부장제가 사실은 신사임당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 모계적 전통이 강했던 조선에서 유교주의를 통치 이념이 체체내화 되기 시작한 중기 이후에야 어렵사리 정착되었듯이, 헤어날 길 없는 명절의 악순환은 어쩌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족 관계의 굴레보다는  차라리 비혼을 택하겠다는 당찬 선언으로 조만간 자체 해산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래된 전설같은 곰탕을 끓이는 순녀의 이야기는 절정이라 쓰고, 결말의 첫 장을 쓸 지도 모를 2019년 설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by meditator 2019. 2. 2. 00:23

<시그널>이 방영되었던 게 벌써 2016년이다. 시즌 2에 대한 열화와 같은 기대가 이어졌을 만큼, <시그널>은 2016년을, 아니 '범죄 수사물'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젖힌 작품이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이미 <살인의 추억>을 통해 범죄 수사물의 클리셰가 되었다 했는데, 그 '클리셰'에 '과거'와 '현재'라는 공간적 지평을 넓히며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듯', '과거'를 통해 '현재'의 부조리를 '비판'해내며 김은희 작가는 이미 자신이 일궈놓은 장르물의 일가를 갱신했다.

그런 김은희 작가의 다음 선택은 애청자들의 기대였던 <시그널2>가 아니라 뜻밖에도 '좀비물'이었다. 그리고 공중파도, 종편도, 케이블도 아닌, 새로운 '플랫폼'인 '넷플릭스', 19금 인증을 하고 입장해야 하는 김은희 작가의 신작을 연출한 건, 또 다른 반가운 이,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었다. 김은희와 김성훈 감독의 콜라보, 거기에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주지훈에 돌아온 류성룡, 믿고 보는 배두나가 만났다. 이들의 이름값 만으로도 이미 <킹덤>은 화제가 되었다. 화제작 <킹덤> 과연 그 이름값을 해냈을까?

 

 

트렌드가 된 좀비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부두교'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중국 강시가 유행하니 우리 영화에도 '강시'와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듯이, 최근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좀비 역시 해외 이주 캐릭터이니까. 

로마 카톨릭의 제의적 형식에 아프리카의 주술적 신앙이 결합하여 아이티 등 서아프리카 지역의 민간 신앙인 '부두교', 이 종교에서 등장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바로 좀비이다. 하지만 이 부두교의 좀비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와 달리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던 좀비가 '영화'와 만나며 달라졌다. 좀비 영화의 조상이라 할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움직이고 산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의 원형이 등장한다. 그러던 것이 2003년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 2004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 후 '속도감'이 붙었다. 떼로 질주하며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 이런 박진감 넘치는 좀비들의 공격은  이제 시즌9를 맞은 <워킹 데드> 등 미드와 <레지던트 이블>, <월드워 z>등을 통해 장르물의 대표적 콘텐츠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외에서 절찬리에 활약하던 '좀비'가 스물스물 우리의 장르물에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으로 '좀비'라는 생소한 장르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했으며, 이어 부진했지만 <창궐>에 이어 <기묘한 가족> 등이 대기중이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도 뒤지지 않는다. ocn 인기작이었던 <손 the guest>를 비롯하여, <프리스트>에 이어 <빙의> 등 역시 '좀비물'의 영향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렇게 우리 장르물에 있어서 대세가 되어가는 '좀비물', 그 대세의 김은희 작가가 <킹덤>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안타깝게도, <킹덤>의 구성은 2018년 개봉한 <창궐>과 다르지 않다. 에니메이션 원작이 있는 <킹덤>이라지만, 거의 동일한 구성을 가진 영화와 드라마라니, 이러한 비슷한 서사와 구성의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는 '우라까이(베끼기)'의 관행은 분명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익숙함이 만나니 새로운 
이러한 논란을 차치하고, <킹덤> 역시, 조선의 선조 때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창궐'하는 좀비와 그 '원인'이 되는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앞서 말했듯이 해외 이주 캐릭터인 '좀비', 그 외인적 캐릭터를 어떻게 우리 정서에 맞게 설득하는가가 우선 작품 성공의 관건이 된다. 종교적 주술에서 출발한 좀비를 최근 영화들이 <부산행>에서 보여지듯 방사능이나 모종의 화학 바이러스 감염 등의 환경적 사회적 요인을 통해 설득해 내며 현대로 온 좀비를 설득해내는 가운데, 과거로 간 <킹덤>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약초에서 그 답을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그 '의도'의 불온함, 권력의 불의함으로 부터 바로 <킹덤>은 시작된다. 말이 왕조 국가이지,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 조학주의 조씨 일가가 실질적인 지배자인 국가, 하지만 그럼에도 혈통으로 이어지는 왕조 국가에서 조학주(류성룡 분)는 자신의 딸인 중전(김혜준 분)의 출산 때까지 왕의 죽음을 미루기 위해 '생사초'를 이용한다. 

하지만 살아돌아온 왕은 궁궐의 연못을 '시체'로 메워갈 만큼 매일 밤  사람의 목숨을 탐하는 '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왕에 의해 희생된 부산 동래에서 온 의원의 수하로 인해 동래에 좀비가 창궐하게 된다. <킹덤>은 이를 역사 속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역병'으로 상쇄한다.  역병에 걸린 임금, 역병이 범람하는 고을. 여기에 알현조차 불허되는 아버지 왕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온 세자 이창(주지훈 분)와 그의 수하 무영(김상호 분), 그들이 좀비가 된 백성들과 대치하고 있는 의녀 서비(배두나 분)와 의문의 인물 영신(김성규 분)과 만나 범람하는 역병이라 부르고 좀비로 그려지는 백성들과 대치하는 한편, 그리고 이에 무지한 채 권력에 연연하는 지방 토호과 지방 관속들과도 갈등을 일으키는 이중고를 절박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그러기에 <킹덤>은 불의한 권력 조학주에 의해 '농단'되는 왕, 그리고 국정과 그런 조학주에 본의 아니게 저항하게 된 세자의 '조학주와는 다른 백성을 외면하지 않고자 하는 왕도'의 길, 그리고 거기에 또 의지처처럼 등장했지만 아직은 그 존재의 정체가 모호한 안현 대감이라는 정치적 드라마를 한 축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런 정치 드라마 갈등에 '역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붙듯 창궐하게 된 백성들의 역습이라는 '좀비' 장르물을 더하며, '넷플릭스'속 세계 드라마에서는 신선한 장르로 등장한다. 물론, 2018년작 <창궐>을 차치하면 우리의 장르물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다.

무기력하지만 권력에 탐하는, 그래서 권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선조와 그런 아비와 달리 진취적이며 개혁적인 세자 광해의 대립 구도는 이제 우리의 역사물에서 그리 새롭지 않은 서사이다. 그런데 이 새롭지 않은 갈등 구도를 조선 후기를 장악했던 권문 세가를 등장시켜, 이들에 의해 좀비가 되는 왕의 설정으로 가면서 드라마는 장르물의 신선한 흐름으로 변주된다. 

거기에 좀비인 왕에 의해 희생된 젊은 의생의 인육을 본의 아니게 먹게 된 백성들의 급격한 '좀비화', 심지어 밤만 되면 죽은 듯 활동을 멈추던 이들이 6화의 엔딩 즈음에 가서는 또 변수 '온도'를 통해 밤이 되어서도 활약을 하게 되는 설정은 역사물 그 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엇갈린 평가, 그리고 과제 
하지만 이 '흥미'는 <킹덤>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1,2화에서 드라마는 장황하게 좀비의 역습을 그려낸다. 즉, 권문 세가의 손아귀에 좀비가 될 정도로 무기력한 왕과, 그런 왕의 칭병, 그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래까지 '잠행'을 감행한 왕세자, 그런 왕세자를 '역모'로 모는 조학주의 음모, 그 진행은 익숙하거나, 느리거나, 헐겁다. 즉, '좀비'를 통해 드라마의 내용을 채워간 6부작 <킹덤>은, 좀비의 '창궐'에 흥미를 느낀 시청자라면 흥미롭게 6부를 완주해낼 수 있는 반면, 이전 작품에서 김은희 작가의 치밀한 스토리에 기대를 한 애청자였다면 6부를 완주하는데 끈기가 필요할 일이다. 심지어, 이제 왕세자 일행과 서비, 영신 등이 한 팀이 되어가고, 동래를 떠난 이들이 상주에서 이미 '좀비'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는 안현 대감과 만나 이제 무언가 좀 하려는가 싶더니 시즌 1이 끝나버리는 지점에서는 허탈감마저 느껴진다. 시즌제는 좋지만, 과연 시즌 1에 걸맞는 충실한 내용이었는가에 대해 평가가 갈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시즌제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지점에서는 대부분의 시즌제 드라마가 첫 시즌에 등장 인물에 대한 캐릭터 구축으로 시즌 1을 설득해 내는 것과 달리, 안타깝게도 서비나, 중전에 대한 연기력 논란처럼 캐릭터 구축에 설득력이 떨어지며 완성도가 떨어져 보인다는데 <킹덤>의 짐이 무거워진다. 또한 조학주나, 왕세자 이창 역시 역사물 속 권문 세족이나, 개혁적 젊은 세자와 비슷하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것 역시 과제다. 그러니 그런 익숙하거나 어설픈 캐릭터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안현 대감이나 영신의 존재가 주목받는 것이다. 

 

 

또한 좀비가 백성에 대한 해석도 과제가 된다. 이미 <워킹 데드>, <월드 워 z>을 통해 이미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피폐된 기층 민중들을 좀비로 상징화시켰다는 평가도 있었듯, <킹덤> 역시 전란 후 끼니조차 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중앙은 물론 지방 권력으로 부터 수탈받는 백성의 '역습', 그 상징으로 좀비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이 역습은 그러나, 동시에 불의한 권력를 둘러싼 정치적 드라마를 그려내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즉 고통받고 수탈받던 백성은 좀비가 되어, '주체성' 대신 공포적 도구화한다는 점이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 시즌2의 어깨가 무겁다. 

by meditator 2019. 1. 31. 16:18

본격 '미스터리 격정 멜로드라마'를 표방한 tvchosun의 새 드라마 <바벨>의 출발은 3.5%(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순조롭다. <바벨> 제작진은 복수를 위해 인생은 내던진 검사(박시후)와 결혼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여배우의 사랑, 그리고 살인과 암투 속에 드러나는 재벌가의 탐욕스런 민낯과 몰락을 그려내겠다고 밝혔다. 미스터리 격정 멜로드라마답게 4부까지는 '19금' 드라마로 방송된다.




<각시탈> <최고다 이순신> <화랑> 등을 연출했던 윤성식 감독은 지난 24일 제작발표회에서  "그간 연출을 해오며 절절한 멜로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라며 "완성도 높은 대본에 배우들의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호흡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끝까지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기 않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박시후, 김해숙 등 캐스팅에 대해서 "대본을 본 뒤엔 그림을 그려보게 되는데... (촬영을 진행해 보니)이들 배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이 완결성 있는 연기로 탄탄한 대본을 잘 살려냈다"라고 출연진에 대한 믿음을 피력했다.

그는 미스터리한 장르적 요소가 많지만 무엇보다 차우혁(박시후)과 한정원(장희진)의 이루기 힘들 것 같은 사랑, 하지만 그것을 향해 투쟁하는 두 사람의 예측불가하고 변화무쌍한 운명을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또한  "흔한 재벌가의 권력 암투가 아니라, 색다르고 파격적인 신현숙, 태민호, 태수호의 캐릭터 변주에 주목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바벨> 관전 포인트는? 

전작인 <러블리 호러블리>가 미처 끝나기 전에 몰입감 있는 대본과 감독-배우들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박시후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전작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냉철한 카리스마를 표현하기 위해 차갑고 묵직한 남자다운 매력을 선보이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멜로의 장인이라고 불리지만, '격정 멜로'는 처음이라 걱정이 된다"라면서도 "첫 촬영부터 키스신을 찍었다. 하지만 덕분에 상대 배역인 장희진과 친숙해져 작품에 매진할 수 있었다"라며 웃었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였지만 신문기자 차우혁의 기사로 인해 결국 태민호와 결혼, 거산 그룹의 며느리가 된 한정원 역할을 맡은 배우 장희진은 "기존에 내가 했던 역할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보다 감정 표현이 다양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캐릭터의 차별성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바벨>은 출연 배우들이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의 연기 변신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연과 비밀이 많은 거산가의 안주인 신현숙 역할을 맡은 김해숙은 "배우라면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변신에 설렌다"며 "아들에 대한 그릇된 모정으로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주목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수석 졸업이지만 태 회장의 외도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 때문에 30여 년 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온 태민호 역할을 맡은 김지훈은 "악역은 거의 처음이다시피 한데, 기존의 악역과는 다른 역대급 악역인 자신의 캐릭터를 주목해 달라"라고 말했다.


태민호 캐릭터와 상반된, 소심하고 유약한 마마보이 태수호 역을 맡은 송재희는 "대본을 읽고 '이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by meditator 2019. 1. 31. 13:31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아이를 학대하다 죽인 엄마의 주검 앞에 남겨진 시fh 시작되었던 드라마, 그 문학적 상징성의 함의가 모처럼 좋은 드라마를 만났다며 드라마 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 설레임을 배반치 않고, 1월 16일 종영을 맞이한 <붉은 달 푸른 해>는 한 편의 명작처럼 묵직한 물음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드리운다. 전작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뛰어넘은 도현정 작가의 치밀하고 밀도깊은 극본, 그 극본을 문학적으로 구현해낸 최정규 연출과 제작진, 이 드라마에게 시청률이 몇 프로인지는 의미가 없다. 마치 대학생 권장 도서를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듯이, 하지만 그 권장 도서 목록 속의 명작들처럼 아마도 지금 시청률이 좋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오래오래 좋은 드라마로 사람들이 찾게 될 드라마가 될 터이니. 

 

 
차우경이라는 씨실로 풀어간 시가 있는 죽음들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번듯한 남편과 이쁜 딸과, 그리고 조만간 태어날 아이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나마 걱정이라면 교통사고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동생 정도. 하지만 그 행복의 시간은 그녀 앞으로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어쩌면 그 소년은 매개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녀의 행복했던 삶 자체가 신기루같은 것이었을지도. 

그렇게 <붉은 달 푸른 해>는 차우경(김선아 분)의 궤멸되어져 가는 행복한 삶을 씨실로 엮으며 시작된다. 사고, 유산, 드러나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그녀 앞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 그녀를 뒤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우경은 그 무엇보다 초록색 원피스의 환영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환영을 따라가는 곳에서 그녀는 이 드라마의 날실인 살인 사건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작은 감옥에서 죄를 다 치루고 나왔다는 한 여성이다. 아이를 죽인 남편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여성은 몇 년의 형을 치루고 감옥 앞에서 달걀 세례를 받으며 그래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뒤 그녀는 불탄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 사건은 강지헌 경위(이이경 분)를 사로잡는다. 

이어서 발생한 또 다른 불에 탄 시체, 사건에 등장한 상징성 가득한 한 편의 시구들을 통해 이 사건이 '아이'를 매개로 한, 학대받은 아이로 인한 연쇄 살인 사건임이 드러난다. 시를 품은 사건의 뒤를 집요하게 쫒은 지헌과 특별 수사팀, 사건 속에서 '밤새 울었다던' 붉은 울음을 건져낸다. 첨단의 사이트를 활용하여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접근하여 그 가해자들을 '단죄'해주는 이, 혹은 이들의 꼬리를 쉽게 밟히지 않는다. 스스로 드러내기 전 까지는. 

차우경이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발견되 시와 엄마의 죽음, 그리고 방치된 채 자란 아이, 그 모든 비극의 원흉으로  '처단'되는 개장수 아빠, 그리고 그 잔혹한 사적 복수의 끝에서 등장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은호,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고 나아가 은호의 세계를 온전히 지배했던 상담센터 전 원장를 죽이며 스스로 붉은 울음이라 밝혔던 은호의 타살이지만 자살과도 같은 죽음은 시청자들을 한껏 연민 속으로 밀어넣으며 '아동 학대'의 뿌리깊은 연원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 스스로 밝혔던 은호의 죽음은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고, 결국 은호의 공범이자, 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인 진짜 붉은 울음의 정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토록 우경을 괴롭혔던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비극적 사연이 비로소 베일을 벗는 시간도 다가오며 16부의 큰 그림이 완성된다.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 아동 학대의 갖가지 모습들
차우경의 환영과 붉은 울음의 거대한 음모와 그 실행이 주도면밀하게 직조되어 도달한 곳에는 우리 사회의 그늘로 짙게 드리운 '아동 학대'가 있다. 처음 여자 친구의 임신을 외면했던 지헌이 지나가듯 말했듯이 중학교 때까지 맞았다던 그 경험이 여전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는 새삼스러운 경험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지헌의 경험은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는 것으로 되었지만, 아이를 학대하고 때리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항변했던 민아정, 그리고 16회에서 우경의 새엄마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때릴 수도 있다'는 뻔뻔한 자기 고백의 살인이 되기도 한다. 

그저 아이를 키우다 보니 때리는 것만이 아니다. 대놓고 가정 폭력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내는 물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권위'를 '폭력적'으로 행사한다. 그가 번드르르한 사채업자건, 개장수건. 일용직 노동자건. 그 수직 피라미드 가정 폭력의 가장 하부에 놓인 아이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그것을 감내하거나 죽어갈 수 밖에 없다. 

가부장적 구조는 가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입양간 형과 떨어져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은호는 원장의 방에 불려가 시를 읽으며 또 다른 폭력의 학대를 당한다. 그 어린 시절의 학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원장과 그 아들의 세계 속에 볼모로 잡아 그의 세계를 조종하기까지 한다. 개장수가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라나, 시완이 아빠가 엄마도 죽어라며 협박한 거나, 우경의 왜곡된 기억까지 미성숙한 아이의 세계는 무방비하게 어른의 '포로'가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아이의 학대가 전근대적인 가치관이나 가부장적인 패러다임의 문제만은 아니라며 덧붙인다. 우경이 본의 아니게 죽음에 이르게 한 일곱 살 소년, 그 소년의 정체를 찾아 헤맨 우경이 만난 부모는 이 시대의 젊고 무책임한 부모들이었다. 두 아이를 놔두고 피씨방에 사는 아빠, 그런 가정을 버리고 나온 엄마, 그들에게는 자신의 즐거움과 현생이 두 아이에 대한 보육보다 우선인 이 시대의 또 부모의 또 다른 표상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붉은 울음'의 단죄를 통해 우리 사회 갖가지 아동 학대의 양상들을 폭로한다. 

차우경과 붉은 울음의 서로 다른 선택 
과연 이 학대받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붉은 달 푸른 해>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찾아온 은호의 치료 과정에서 은호의 학대를 알게 되고 분노한 정신과 의사 윤태주, 붉은 울음은 은호와 함께 '학대의 처단자'가 된다. 사이트를 통해 동조자를 규합하고 블랙 챗을 통해 피해자를 유도하여 사건을 기획하고 실천한다. 윤태주는 설계하고 은호가 실행에 옮겼던 아이를 죽였던 엄마를 죽이고 서정주의 문둥이를 남겼던 사건부터 시작하여, 소라 아빠 살해, 민아정 자살 유도, 하나 엄마, 개장수 살해 등을 통해 학대받던 아이를 구하고, 가해자를 '단죄'한다. 그리고 그 '단죄'의 정점은 자신을 학대했던 원장의 입에 그가 읽도록 했던 시집을 물려 죽였던 은호의 복수를 건너, 시완의 아빠 살해와 우경의 엄마 살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붉은 울음이 의도했던 설계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종용한 선택을 포기한 차우경으로 인해 어긋나 버린다. 붉은 울음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종용했던 그 '복수'를 우경은 포기한다. 덕분에 가열하게 폭주했던 '단죄'의 기관차는 마치 엔진이 식은 듯 멈춰선다. 여전히 '아픈 사람들'은 많은데. 

우경의 선택은 곧 <붉은 달 푸른 해>가 남긴 질문이다. 자신의 동생을 죽여서 거실에 묻은 엄마, 그리고 그걸 방조하고 묵인한 아빠. 그런 엄마에 분노하며 쇠망치를 들었던 우경을 환영 속의 동생 초록색 원피스의 소녀가 막는다. 그런 그녀를 다시 붉은 울음이 사주했지만 끝내 우경은 엄마를 '단죄'하지 않는다. 이건 딜레마다. 우경은 자신의 딸 은서가 할머니를 너무 좋아한다 했지만 그 말은 새엄마가 당당하게 말했듯 그녀를 키워준 30년의 세월 그 무게이기도 하다. 이미 은서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새엄마, 자신이 친동생인 줄 알았던 가짜 세경의 엄마, 그녀는 붉은 울음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여전히 아프고 괴롭다. 그리고 그 '여전히 아프고 괴로운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던  그 짐은 고스란히 남는다. 드라마는 '카타르시스' 대신, 여전히 드리워진 우리 사회 '학대'의 그늘에 대한 딜레마를 숙제로 떠맡긴다. 붉은 울음은 '환타지'였지만, 우경의 고민은 우리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9. 1. 17. 06:15

kbs2의 드라마가 제일 바닥을 튼튼하게 깔아주며 한가롭던 월화 드라마가 kbs2가 <동네 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이하 조들호2)>로 승부수를 던지며 격전장으로 변했다. 당연히 첫 방송이 끝나고 승자의 미소를 띤 건 박신양, 고현정의 <조들호 2>이다. 하지만 그 승리의 미소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화요일 밤이 지나고 뜻밖의 복병 tvn의  <왕이 된 남자>의 상승세나 반응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왕이 된 남자>가 사극이기 때문일까? 그러기엔 <조들호2>란 드라마가 그 자체로서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박신양에 의한 시즌 2 
시즌 1에서 '동네 변호사'로 그 이름을 떨친 조들호(박신양 분), 그 다혈질의 성격답게 tv 방송에 나가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던 강직한 이 캐릭터, 하지만 그런 그가 뜻밖의 '온정'으로 맡은 사건으로 인해 시즌1에서처럼 다시 한번 추락하고 만다. 잘 나가던 검사에서 하루 아침에 아내조차 잃은 거지꼴 변호사로 추락했던 조들호는, 시즌2의 시작을 감지 않아 떡진 머리에 언제 갈아입었는지도 모를 츄리닝에 껴입은 파카, 쓰레빠(슬리퍼가 표준 말이지만 박신양이 신은 건 어쩐지 쓰레빠가 어울린다) 신세의 거지꼴로 돌아왔다. 마치 그런 모습이 시즌의 통과 의례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만사 다 포기하고 사는 듯한 그의 앞에 그의 아버지같은 검찰 수사관 윤종건(주진모 분)의 실종 사건이 던져진다. 쓰레빠를 신고 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조들호,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자살'이라는 윤종건 수사관의 시신, 그리고 자폐증의 딸 뿐이다. 

그렇게 추락과 추락의 나락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을 계기로 조들호의 포문을 연다. 동네 변호사답게 그를 추락시킨 것도 예의 조들호의 인정, 그리고 이제 다시 조들호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그의 '인지상정'이다. 그를 아들처럼 여겨주었던 검찰 수사관의 실종,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의 무죄를 입증하려다 온 몸을 두드려 맞은 어머니, 그렇게 드라마는 조들호의 '휴머니즘'을 부각시키며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소환한다. 

 

 

고현정이라는 화룡점정 
그리고 그런 그의 맞은 편에 '휴머니즘'의 반대편인 피도 눈물도 없이 자신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니 외려 그 사람의 죽음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한 이자경(고현정 분)이 있다. 시즌 1이 법무법인 금산과 그와 얽힌 검찰의 권력이라는 조직적인 거악을 상대해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의 변호사 동네 변호사 조들호라는 전선으로 드라마가 구성되었다면 시즌 2는 첫 회에서부터 휴머니티한 조들호와 그와 정반대의 사이코패스라 하는 게 딱 어울릴 극한의 악인 이자경을 포진시켜 선과 악의 대결로 전선을 변주한다. 

이러한 전선의 변화를 위해 등장시킨 첫 사건이 바로 조들호를 나락으로 빠뜨린 부패한 정치인 백도현의 아들 백승훈의 성폭행 사건, 정치인 따위의 사건, 심지어 스쿨 미투에 대해 방송에 나가 고성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던 그이기에 더욱이 맡고 싶지 않았던 사건을 백승훈의 자해라는 사건을 계기로 조들호의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법조문의 헛점을 찌른 그의 판결은 피해자의 자살로 이어지면 그를 파멸로 이끄는데, 문제는 최근 법조 드라마에서 이런 성폭행 피해의 진실이 뒤바뀌는 사건이 너무도 빈번해, 이제는 '클리셰'로 마저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연 박신양과 고현정만으로? 
거기에 초반 가장 추레한 차림으로 동분서주하는 조들호는 2016년으로 부터 무려 햇수로 3년만에 돌아오건만 2회가 되기도 전에 예의 박신양 표 연기가 너무 익숙해 진다는 점 또한 아쉽다. 물론 <조들호 2>라는 시즌 자체가 이 익숙한 박신양 표 연기의 친숙함에 기대어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질구레한 그와 강만수(최승경 분), 윤소미(이민지 분)의 씬들이 어제 본듯하다는 건 분명 16부작의 정주행에 장점만은 아닐 터이다. 

뿐만 아니라,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캐릭터의 함정인 것인지 조들호 캐릭터의 불균등성이 처음 부터 눈에 띈다. 윤정건이 납치되었을 장소를 눈으로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거기에 떨어진 이자경의 사탕 껍질 하나 만으로도 사건의 윤곽을 잡아내는 이성적인 능력자가, 정작 백도현의 아들 사건에 있어서는 그 혜안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작위적이거나 불균등한 서사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극 초반부터 소리지르고 물불 가리지 않고 사건으로 뛰어드는 조들호의 캐릭터를 보여주며 질주한다. 문제는 그렇게 포르티시모(매우 강하게)의 캐릭터인 조들호를 드라마의 전열 제일 앞에 내세우고서는, 그와 함께 등장한 인물 들 역시 '포르테'의 연기를 보인다는 것이 시즌 2의 뜻밖의 복병이 된다. 조들호와 한 몸인 듯 움직이는 강만수도, 이자경의 배후인 시즌 2의 거악인 국일그룹의 국현일(변희봉 분) 회장도, 조들호의 사무실에 들이닥친 빚쟁이 부부 안동출(조달환 분)과 오정자(이미도 분)도 마치 무슨 성질내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마냥 드라마는 극 초반부터 서로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러기에 이런 고음의 향연에서 낮은 목소리로 깔리는 이자경의 포스는 더욱 빛난다. 아마도 조들호의 캐릭터와 대조를 이루기 위해 더욱이 그렇게 설정했을 터이다. 그런 이자경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깔깔거리고 웃거나, 짜증스럽게 마약에 취한 국일 그룹 아들을 샤워기로 마구 때릴 때 드라마의 집중도는 높아진다. 하지만 그런 이자경의 캐릭터는 이미 <리턴>, 아니 그 이전 <선덕여왕>, <여광의 교실>이래로 고현정에게 익숙한 것이니 고현정의 연기를 지켜보아 왔던 팬들에게는 새롭다기 보다는 또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새롭기 보다는, 마치 고현정이 가장 잘하는 걸 더욱 극단적으로 강조한 느낌이 강한 악역 캐릭터는 맛을 내기 위해 설탕을 몇 스푼 더 넣은 듯하다. 

결국 4회에 이른 <조들호2>는 포르테시모의 박신양과 목소리는 피아니시모인 하지만 그 악행에서는 포르테시모인 고현정의 '포스' 대결, 그리고 그 행간을 메우는 익숙한 클리셰의 사건들로 귀결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건 과연 <조들호 1>이 어떠했는가 라는 것이다. 과연 <조들호 1>이라는 드라마가 박신양 표 연기를 차치하고 리바이벌 할 만한 내용이었는가 라는 의문을 뒤늦게 해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시즌 1 역시 박신양의 연기를 제외하고, 그 연기에 힘입은 시청률을 빼놓고는  드라마 적 내용에 있어 이렇다 하게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을까란 반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돌아온 시즌2 역시 성긴, 혹은 어느 법률 드라마, 혹은 장르 드라마에서 본듯한 익숙한 서사는 차치하고,  박신양, 고현정이라는 두 배우의 연기와 분위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듯 보여진다. 무엇보다 시즌 1의 미덕이었던 동네 변호사라는 그 특성은 4회까지에서 쉽게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그럼에도 두 배우가 등장하면 드라마적 흡인력은 높아진다. 그저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서 박신양이 나즈막히 몇 마디 했을 뿐인데도 설득이 되고, 쓰레빠로 경호원 두 명을 무찔러도 통쾌하다. 심지어 다음 회차에서 그 냄새날 것같은 옷을 벗어던진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고현정도 마찬가지다. 어눌하고 나즈막한 목소리의 그녀가 진짜인 듯 신경질을 내며 샤워기로 사람을 패는데 그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마지막 장면 차 드실래요 하는 고현정의 목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그런 그녀 앞에 자신이 발견한 사탕 껍질을 내놓는 박신양을 보며 다음 회를 기약하게 된다. 과연 <조들호 1>처럼 아니 거기에 고현정이라는 화룡점정을 얹은 <조들호 2>는 이번에도 배우의 힘만으로 시즌을 성공시켜낼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1. 9. 17:06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지나면 드라마 시청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는 긴장감이 돈다. 마치 황야의 결투를 벌인 두 총잡이의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된 후 누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관람객들처럼, sbs <황후의 품격>과 tvn의 <남자 친구> 중 이번 주 시청률의 승자에 주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캐스팅에서 부터 송혜교에 박보검라는 두 쟁쟁한 스타의 만남으로 화제성에서 당연 압도적이었던 <남자 친구>에 이른바 '막장' 장르의 대가 김순옥 작가와 <리턴> 주동민 피디의 만남으로 대항마를 내세운 sbs의 <황후의 품격>, 과연 '스타캐스팅'과 '스타 작가'의 승부의 귀추가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불문율에서 이번 수목 대전의 승부도 벗어나지 않았다. 
11월 28일 30분 빠른 방송 시간, 거기에 송혜교, 박보검이라는 두 스타, 그리고 쿠바의 풍광까지 얹으며 첫 회 <남자 친구>는 케이블과 공중파라는 플랫폼의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황후의 품격>을 8.863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남자 친구>의 승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1월 29일 10.32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던 <남자 친구>는 그 이후 시청률이 주춤하거나 조금씩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김순옥 작가도 미니 시리즈는 힘든가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황후의 품격>은 12월 12일 단 두 주만에 8.513%의 <남자 친구>를 9.8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수목 대전의 강자로 등극했고, 그리고 12월 20일 13%로 <남자 친구(9.166%)>와 4% 정도의 격차를 벌이며 수목 대전의 넘볼 수 없는 승자가 되었다. 

1위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황후의 품격>의 승리는 주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황후의 품격>이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서 그렇지, 그간 tvn 드라마들의 기준에서 %꾸준히 8~9%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남자 친구>의 성과를 지레 무시해서는 안된다. 거기에 '시청률 지상주의'의 색안경을 빼고 보면 수목 드라마 중 작품성으로 보자면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를 따라올 드라마가 있을까? 오피스물의 애청자들을 위한 kbs2의 <죽어도 좋아>는 어떻고. 누가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요일과 목요일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12월 수목 드라마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있다. 물론 그 선택의 기준은 각각 다르다. 

막장의 품격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그 분들에게 삶의 낙이 된다면 제겐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왜 막장을 쓰는가에 대한 김순옥 작가의 답이다. 

 

  

그리고 이 김순옥 작가의 말이야 말로 <황후의 품격>을 정확하게 정의내린 글이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 글에 대한 호응처럼, <황후의 품격> 기사 댓글에는 담주가 궁금해서 어떻게 1주일을 보내냐, 심지어 김순옥 작가 당신이 성공했소,  다음 주가 보고 싶어 이번 주를 버틸 것 같소. 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즐비하다.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은 남편과 시댁에게 버림받고 점찍고 복수하던 <아내의 유혹>의 서사적 전통을 잇는다. 거기에 현존하는 황실이라는 배경이 막장 드라마 속 막가파 시댁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장나라, 신은경, 신성록, 심지어 아역인 오아린까지 출연진의 호연과 성형 수술로 업그레이드 된 나왕식(최진혁 분)이 오써니(장나라 분)를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처럼 보호해 주나 싶었는데, 다음 회에 외려 오써니를 함정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듯 내일을 알 수 없는 전개로 시청자를 붙잡아 놓는다. 기존 로코의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예상할 수 있는 기대치를 산산히 무너뜨리는데서 오는 쾌감, 그럼에도 일관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무엇보다 김순옥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기이다. 

이런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을 사람들은 '막장'이라 칭한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드라마.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다(다음 사전)'는 막장은 우리나라 주말, 아침 드라마의 주된 소재였다. 그리고 주중 미니 시리즈의 부진으로 고심하던 sbs가 김순옥 작가를 초빙하고, 그에 뒤질세라 kbs2 역시 수목극이 주인공으로 또 다른 막장의 대가 문영남 작가를 초빙한다.

'막장'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는 질이 낮은 드라마라는 평판을 얻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위기의 주부들> 역시 크게 막장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화이트 캐슬> 속 가족 관계 역시 '막장'의 장르적 속성을 품고 있다. <남자 친구> 속 차수현(송혜교 분) 주변 관계라고 다를까. 막장의 정의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게 인기를 끄는 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제도가 가진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청자들은 가장 '현실적'이라 열광하고 있는 지도. 그러기에 이 '모순'이 노정되는 한 '막장'은 존재할 것이며, 미니 시리즈의 구원 투수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잠자던 연애 세포 자극제 
가끔 배우가 개연성인 드라마가 있다. 주말을 책임지는 현빈과 박신혜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러하고,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일찌감치 앞서갔던 송혜교, 박보검의 <남자 친구>가 그러하다. 

내용이 무슨 문제인가, 그저 아름다운 송혜교가 이쁜 옷을 입고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서 설레이면, 당장 나도 가서 저렇게 단발이라도 잘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그런데 그 송혜교가 보면서 설레이는 대상이, 아줌마같은 단발 머리를 해도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박보검이라니, 가기도 힘든 쿠바의 풍광 아래서  구 시댁과 친정, 전남편,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에 치여 자신을 돌아보기도 힘들던 차수현을 '전도사'님처럼 김진혁(박보검 분)이 위로해 주더니, 이젠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 '라면'먹고 싶단 한 마디에 대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득달같이 라면을 끓여 대령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시간은 3회까지 였을까. 여전히 두 배우를 통한 시선 호강은 여전하지만 <버디 버디>, <예쁜 남자>, <딴따라>까지 일관되게 '개연성'이 부족했던 그래서 몰입하기엔 여백이 많은 유영아의 극본과 쿠바를 떠나오며 풍광과 함께 감정의 해석조차도 두고 와버린 듯한 박신우의 어쩐지 감정 이입이 아쉬운 연출은 자꾸 시청자들에게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쩐지 아쉬운 드라마로 <남자 친구>를 만들어 버린다. 

 

  

한 편의 문학 작품 
그것도 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천착하는 심리서같은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문학 작품처럼 서정주의 '문둥이', '입맞춤'은 천상병의 '무명전사', '내가 구원하지 못할 너'의 시구로 이어지며 드라마 속 아동 학대로 인한 죽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 문구로 상징되는 죽음, 그 실마리를 쫓아서 뛰어든 주인공 차우경(김선아 분), 강지헌(이이경 분) 등, 하지만 드라마는 과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 차우경의 눈 앞에 자꾸 나타나서 사건을 인도하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발 빠르게 추적하는 대신, 사건 속에 주인공들이 함몰되며, 그 사건 속에서 헤매이는 주인공들을 통해, 과연 우리 사회 벌어지는 많은 아동 학대 사건에서 당신들은, 즉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느 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 폐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소외된 사람들, 그 소외를 방조하는 사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드라마, 당연히 요즘처럼 'LTE'급 속도가 아니면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붉은 달 푸른 해>의 호흡을 따라가기에 애청자조차 버겁다. 

하지만 그러기에 <붉은 달 푸른 해>는 그저 '스릴러'의 경지를 넘어선다. 일찌기 <늪(2006)> <케세라 세라(2007)>,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2015)> 등 가물에 콩 나듯 시청자를 찾아오는 도현정 작가이며, 늘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는, 아니 마치 작가 스스로 시청률을 저만치 밀어내는 듯한 작품으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 단편 <늪>이래 늘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면에서는 끝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테지만 지금의 수목 드라마 중 좋은 드라마로 가장 오래 기억될 작품은 <붉은 달 푸른 해>일 것이다. 

 

  

오피스물이 스테디셀러? 
kbs2의 <죽어도 좋아>는 kbs2의 장기 장르인 <김과장(2017)>, <저글러스(2017) 등 오피스 물들의 연장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물론 내용과 설정은 다르다. 매번 죽음의 기로에 놓인 백진상의 '환타지'적인 설정은 기존 오피스물과 다른 차별성으로 이 드라마를 알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오 갑의 mk치킨의 우스꽝스런 중역진이라던가, 갑질로 비호감의 캐릭터로 시작하는 남자 주인공은 색채만 다를 뿐 <저글러스>와 <김과장>의 여러 요소를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어제 본듯 익숙한 강지환은 무엇을 해도 차태현인 차태현의 연기를 보는 듯하다. <저글러스>에 이어 또 다시 상사 갱생의 주역이 되어 돌아온 백진희는 안그래도 익숙한 오피스물 <죽어도 좋아>를 더욱 진부하게 만든다. 분명 드라마가 보면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재방송을 보는 듯한 <죽어도 좋아>를 찾아볼 시청자들은 많지 않다. 

by meditator 2018. 12. 26. 19:41

조선업이 휘청거리던 시절, 조선업의 메카 거제시에 취재하러 내려갔던 이승문 피디, 우연히 지도를 보고 거제 여상을 찾았고, 그곳에서 '땐뽀걸즈'라는 동아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아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빠져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한 지 어언 1년, 그렇게 다큐 <땐뽀걸즈>가 탄생되었다. 

 

 

'완뚜쓰리뽀, 완뚜쓰리뽀', 자이브와 차차차를 추는 열 여덟 소녀들의 기록은 <KBS스페셜>을 통해 방영되었고, 이후 영화 버전으로 개봉하여 2017 박찬욱 감독이 뽑은 올해의 독립 영화, 2017 푸른 미디어 청소년 부문 상, 그리고 2018년 54회 백상 예술 대상 TV교양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작품이 8부작 드라마로 각색되어 12월 3일부터 방영되었다. 

만년 9등급, 시험 시간엔 올5로 찍고 풀잠, 학교에서 요구하는 공부가, 아니 학교 생활이라는게 자신의 의미와 목적이 아닌 지 한참인 학생들, 심지어 이미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가버려 알바하다 잠을 자는 곳이 되어버린 아이, 부모라고 이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런 아이들 앞에 춤을 들고 이규호 선생님이 나타났다. 밥을 먹여주고, 심지어 숙취 음료까지 챙겨주며 살뜰히 아이들을 챙겨주며 '춤바람'을 독려하는 선생님, 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조선소가 있는 거제로 다시 돌아간 드라마
이승문 피디가 그리고 싶었던 조선소의 현실은 드라마 속 주인공 시은(박세완 분)이를 통해 그려진다. 시은이에겐 중학교 친구가 없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끝내 아버지가 과로로 실족사 하셨다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자살'이라며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판을 하며 엄마 자신도 해고해 버린 회사의 하청 물량 팀으로 버티는 엄마, 자신의 방에 온통 영화 포스터로 도배한 꿈많은 소녀 시은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형편에 여상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 취업하라는 엄마와 갈등 중이다. 

어떻게든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에 동아리 수상 경력이 대학 지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친한, 아니 여상에 편하게 다니기 위해 친한 척하는 친구들을 꼬드겨 댄스 스포츠 대회를 앞둔 땐뽀걸즈 동아리에 가입한다. 시은이의 친구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꼬시는 시은이에게 넘어간 척 했지만, 한때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 후 '루저'가 되어버린 이예지(신도현 분)도, 자칭 여신이라지만 성형 수술을 고민하며 학교 인기 동아리인 힙합반을 기웃대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양나영(주해영 분)도 땐뽀가 좋아서 동아리에 든 건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학교에서 방출될 위기에 놓인 시은이 옆자리지만 말 한번 섞기 무서운 쎈캐 박혜진(이주영 분)이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합류했고, 이 동아리를 견제하기 위해 보내진 일진 꼬붕 김도연(이유미 분)과 심영지(김수현 분)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땐뽀반에 인원을 채우기 위해 합류됐다. 

 

 

하필이면 왜 땐뽀걸즈?
최근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가 <화이트 캐슬>이듯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다루는 주된 이야기는 '입시'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학교에서 상당수의 학생들이 실업계로 진학하는 게 현실인 세상, 실업계가 아니더라도 일반고를 가더라도 이미 1학년 때부터 시험 시간을 찍고 잠을 자는 시간이 되어버린 학생들이 꽤 되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어쩌면 소수의 선택받은 대학 진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에만 골몰해 있다. 그런 현실에서 <땐뽀걸즈>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빛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모처럼 '공영 방송'의 수신료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얘들이 공부를 안해서 못하는 거지,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자는 건 관심이 없어서 자는 거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탈렌트가 오면 자겠습니까. 저는 춤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춤을 매개로 아이들이랑 친해졌어요. 댄스를 가르쳐서 선수 만들고 대학 보내는 거 전혀 생각 안해요.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즐겁게 다니기를 원합니다. -이규호 선생님 


위의 이규호 선생님의 생각은 드라마 속 이규호 선생님의 행동으로 그래도 옮겨진다. 가정이 방치한, 학교도 더불어 방치한 부서져 버린 울타리를 넘나들던 아이들은 '땐뽀걸즈'를 통해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씨름하겨 각자의 성장통을 이겨나간다. 

친구들까지 '포섭'하여 동아리에 들어왔지만 그 친구들을 한번도 진짜 친구라 생각한 적이 없는 시은이. 자신이 가고 싶었던 인문계, 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으로만 도는 자기 중심적 세계에 빠져있던 시은이는 땐뽀 반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가정사에 얽힌 사건에 끼어들며 혹독한 통과 의례를 겪는다. 

 

 

드라마는 다큐와 다르게 남자 아이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시은이와 함깨 자랐던 아이, 하지만 이제는 훌쩍 자라 시은이를 '연모'하게 된 권승찬(장동윤 분), 하지만 승찬은 그저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아니다. 시은이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한때는 시은이 아버지를 형이라 불렀던 조선소 인사담당 사무직, 권동석이 바로 승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소 노조 쟁의와 관련하여 생긴 비극적 사건에 결부된 두 집안의 승찬과 시은, 이 두 사람은 정리 해고가 난무하는 위기의 조선업이 낳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드라마는 그렇게 풋사랑조차 현실 속에 그려넣고 그걸 각자 성장통의 매개로 삼는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한때는 잘 나가는 유망주였지만 사고를 핑계로 꿈에서 도망쳤던 예지의 속깊이 숨겨놓은 슬픔도, 일찌기 울타리가 없었던 가정에서 자라, 학교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혜진의 의지가지 없는 고독도, 술만 마시는 아버지의, 어린 동생들과 힘겹게 안되는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그늘 속에서 버티는 도연이와 영지의 무게도 땐뽀걸즈의 울타리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꿈이 이미 정해진 여상이라는 공간, 저마다 버거운 가정 환경, 거제라는 꿈이 없어져 버린 듯한 외딴 도시, 그럼에도 그곳에서도 여전히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 꿈은 누군가에겐 영화이고, 무용이고, 그리고 대학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포기하지 않는 일상이며 생활이기도, 혹은 막다른 골목에서 애써 한 발자국 물러섬이라도. 그들의 선택이 누군가는 대학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취업이라도, 혹은 누군가에겐 그저 나쁜 길로 가지 않는 것이라도,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들 각자는 저마다의 성장통을 견녀내고 그 자리에 섰다고 드라마는 당당하게 '땐뽀걸즈'들을 정의내린다. 빛나지 않아도 빛났던 청춘의 기록이다. 

 

 

'입시'나 '학교 비리', 혹은 '로맨스'가 아니고서는 말한 적이 없는 어쩌면 진짜 이 시대 아이들의 이야기와 각자가 짊어진 성장의 무게에 대해, 그리고 무겁지만 기꺼이 짊어지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땐뽀걸즈'와 이규호 선생님의 자리에 대해 결코 길지 않은 8부의 시간을 통해 다큐와는 또 다른 대학 영화과 입시 면접에서 시은이의 말처럼 가짜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8부의 시간만큼은 진짜배기였던 감동을 전한다.

물론 시청률은 2%를 오르내리며 고전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거침없이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로 이 드라마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듯싶다. 그리고 시청률이 비록 낮더라도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해내기 위해 2019년에도 KBS가 가야 할 방향이야말로 바로 <땐뽀걸즈>의 길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8. 12. 26. 05:25

kbs2의 단막극의 시리즈는 유구하다. 1984년 <드라마 게임(~1997)>을 시작으로 <테마 드라마(1997)>, <tv문학관(198~2011)>, <금요극장(1987)>, 일요베스트(199~2000)>, <드라마 시티(2000~ 2008)을 경과하여 2010년 <드라마 스페셜>로 정착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말이 정착이지 '시청률 지상주의'의 tv 시장에서 일부 단막극 애청자들만의 선택을 받는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은 애처로웠다.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을 전전했으며, '연작'의 모색을 거쳐, 2014년, 2015년에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뉘어  27편, 15편이 방영되었고, 2016년부터 올 해 까지 해마다 10편의 작품들이 <드라마 스페셜>의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그러나 '애처로운 운명'에 저항하는 드라마 스페셜의 방식은 '도전'이었다. 2010년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위대한 계춘빈>, 2011년 <영덕 우먼스 씨름단>, <터미널>, 2012년 <환향-쥐불놀이>, <칼잡이 이발사>, 2013년 <마귀>, <엄마의 섬>, 2014년 <들었다 놨다>, <간서치 열전>, 2015년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붉은 달>, 2016년 <빨간 선생님>, <전설의 셔틀>, 2017년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강덕순 애정변천사> 등 낮은 시청률이 무색하게 장편 혹은 미니 시리즈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드라마의 주제와 형식, 서사 등을 다루면서 kbs2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드라마는 평가를 받으며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명작들을 남겼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 <드라마 스페셜>은 아쉽다. 

 

   

  

드라마 스페셜의 경쟁작은 '웹드'?
올 한 해 잔잔하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웹드'가 인기를 끌었다. tv가 중장년층이 주고객이 된 올드 미디어가 되어가는 반면 바쁜 일상의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젊은 층들이 향유하는 주력 매체가 되어가면서 '드라마'의 유통 방식에 변화를 모색한 것이 웹드라마이다. 기존 드라마와 달리 15분에서 3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의 이들 웹드라마들은 네이버 등의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발히 소비되어가며 <퐁당퐁당 love>처럼 공중파 tv로 역진출하는 성공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젊은 층이 주향유층인 만큼 이들 드라마는 대부분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연애와 사회 생활 속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하여,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담아내며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이미 <간서치 열전>을 웹드라마의 형식으로 방영한 바 있는 <드라마스페셜>은 2018년 시리즈에서는 젊은 층을 주 타깃층으로 설정했는지 첫 작품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에서 부터 <닿을 듯 말듯>까지 총 10편의 이야기 모두 젊은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심지어 <엄마의 세 번 째 결혼>처럼 모녀간의 갈등조차도 그 촛점을 딸과 딸이 도발한 연애 사건을 극의 중심으로 끌어오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당연히 2018년 시리즈에서는 사도 세자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붉은 달>이나 파발꾼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귀>같은 '새로운 시각의 사극'의 형식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스릴러의 형식으로 해체된 가족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섬>이나 노인 느와르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지역 정치 장기판의 졸이 되어버린 소시민의 해프닝을 다룬<서경시 체육회 구조조정 스토리>  같은 신선한 소재와 형식의 이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kbs2 드라마 부진, 그 원인은?
올 한 해 kbs2의 드라마들은 부진했다. 하지만 그 '부진'의 이유를 그저 시청률의 면에서만 질타하는 건 결과론적이다. 시청률은 부진했지만 호러와 로코의 조합을 시도했던 <러블리 호러블리>나, 귀신이 된 탐정의 수사극 <오늘의 탐정>, 하우스 헬퍼를 매개로 한 인생 정리인 <당신의 하우스 헬퍼>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시도조차 묻혀서는 안될 일이다. 시청률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평가한다면 최근 미니 시리즈로 귀환하고 있는 김순옥, 문영남 등 이른바 '막장' 장르 등이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출격했음에도 우리의 토속 신앙과 엑소시즘의 콜라보인 ocn의 장르물 <손 the guest>가 올해의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것과 달리, <러블리 호러블리>나 <오늘의 탐정> 등이 심지어 출연진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시도했던 '장르'적 특성이나 주제 의식을 스스로 휘발한 채 쓸쓸히 퇴장할 수 밖에 없었던 어설프고 안이한  완성도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어설픈 완성도는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에서도 이어지며 2018 kbs2 드라마 부진의 특성이 되고만다. 

 

   

  
2017년 30회 tv 드라마 단막극 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가 열어제친 서막은 산뜻했다. 
수능 출제 의원으로 연수원에 입소한 '도도혜(전소민 분)'가 '감금'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첫사랑과 전남편과 엮이며 다시 한번 '흑역사'를 재연하는 기발한 설정의 '로코'를 선보였다. 올 한 해 드라마 스페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 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황승기 연출, 배수영 극본)>, 하지만 대중적인 만큼 솔직하고 발랄하다 못해 때론 지나친 도도혜의 캐릭터나 전남편, 첫사랑의 캐릭터는  수능 출제 연수원이라는 배경의 신선함과 달리 전형성을 벗어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갸웃해지는 지점을 남긴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나, 전개, 연기 모든 면에서 무람없는 작품이었지만 과연 공모전 최우수라는 기준에서 보면 평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단점이 두드러지지않는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와 달리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방관'하는 현대인들의 딜레마를 다룬  <잊혀진 계절(김민태 연출, 김성준 극본)>이나, 자살 문제를 다룬 <도피자들(유영은 연출, 백소연 극본)>의 경우는 작품이 다루는 주제 의식에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주제는 무겁지만 과연 이 주제를 한 시간 여의 단막극을 통해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했는가, 외려 그 '주제' 의식이 역설적으로 범죄나,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방조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건 아닌가 아쉬움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드 정도는 낯설지 않은 풍토에서 어디선가 본듯한 구성이라는 후일담을 피해갈 수 없다. 

 

   

  

또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시대적 공감을 얻으려 했던 <너무 한 낮의 연애(유영은 연출, 김금희 극본)>는 이미 김금희 작가의 소설로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에, 최강희의 출연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남녀간의 이별이라기엔 무지하고 비겁해서 아팠던 1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그리고 여전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한 시간여의 영상미로 설득해 내었는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유려한 영상미, 그러나 
<참치와 돌고래(송민엽 연출, 이정연 극본)>나, <닿을 듯 말듯(황승기 연출, 배수연 극본)>은 수영과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남녀 주인공을 엮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지만, 과연 각 종목을 '소재' 이상으로 극에 어울려 냈는가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특히 <닿을 듯 말듯>은 여주인공의 청력 이상을 과거 아버지에 대한 강제 진압에 역시나 차출된 처지인 전경 출신의 선배에게 돌리는 방식이나 그 책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화해는  과거사라는 묵직한 해원에 대한 해법으로 설득력을 가졌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남녀 사이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토록 오랜 이별(송민엽 극본, 김주희 연출>은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돌림 노래를 보듯 느슨했고 <너와 나의 유효기간(김민태 연출, 정미희 김민태 연출)>은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90년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또한 모녀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세 번 째 결혼(김영진 연출, 정미희 극본)>은 김영진 연출의 은퇴작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이었지만 시한부의 환자로 결혼을 통해 한 몫 챙겨 딸에게 주겠다는 엄마의 이기적인 사랑과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결혼할 아저씨의 아들에 대한 딸의 무책임한 도발을 그저 모녀 간의 해프닝과 화해로 퉁쳐 버리기엔 사안이 녹록치 않다. 

kbs2 드라마의 장기 중 하나인 오피스물인 <미스 김의 미스터리>는 산업 스파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다루고자 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김과장>, <저글러스>에서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방식의 답습이 아닌가라는 의문만을 남겼다. 이런 상투적 접근은 결국 최근 역시나 신선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죽어도 좋아>까지 이어지며 장기가 함정이 되어버리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럼에도 2018 드라마 스페셜 10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영상미이다. 하지만 거듭된 영상의 미학이 주제의 천착과 구성의 아쉬움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영상'만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안이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또한 필요 이상의 필터링된 뿌연 화면에 대한 피로감까지 등장하며 최근 <땐뽀걸즈>에서 제기되고 있듯 과연 필요한 영상적 구현인가라는 의문까지 등장하게 된다. 

물론 살펴본 2018 드라마 스페셜은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냈지만 다양한 주제와 구성 방식을 배치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담하다. 그리고 이 냉담함은 올 한 해 kbs2 미니 시리즈에 대한 시청자의 냉담함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주제에의 접근, 아름다운 영상미,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의도와 기술도, 그것이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시청자를 설득해 낼 수 있는 기승전결의 개연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 내기엔 미흡하다. 과연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2019년의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이 걱정되는 2018년이다. 

by meditator 2018. 12. 25. 12:30

하나의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 주목받는 건 주로 주연배우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잘 될 수록 이른바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라는 후일담이 전해지듯, 몇 달의 짧은 시간 동안 잠을 줄여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해 가는 '특공작전'처럼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협업'의 시스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꺼이 주연배우들의 꽃받침이 되어 그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에 매진하는 조연배우들이야말로 어쩌면 드라마의 진짜 실력자일 수도. 2018년 수많은 드라마들이 명멸하고, 그 속에서 스타들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스타들만큼 올 한 해 우리가 드라마를 만끽하도록 해준 이들이 있으니 바로 누군가의 엄마, 아내, 유모로 등장했던 '그녀들'이다. 

 

 

선과 악, 그 경계가 자유로운  - 김혜은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서 주인공의 엄마 차매화로 출연중인 김혜은, 커다란 덩치의 아들을 둔 엄마답지 않게(?) '모델'같은 외모와 몸매의 '신세대 엄마'이다. 여주인공의 '이쁘다'는 말 한 마디에 냉랭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이 차매화 엄마는 자신이 어쩌지못하는 아들 앞에서 '너같은 애를 누가 좋아하겠냐'며 이율배반적인 모성을 토해 놓는다. '허당'과 아들에게 다하지 못한 모정의 안타까움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성, 다시 한번 김혜은이 빛난다. 

올 한 해 김혜은은 분주했다. <라디오 로맨스>로 부터 시작하여, <너도 인간이니?>, <미스터 선샤인>, <손 the guest>,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남자 친구>까지 '열일'중이다. 

그런 가운데 김혜은의 존재를 부각시킨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미스터 선샤인>과 <손 the guest>이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어린 유진의 부모님을 죽인 양반집 며느리였던 그녀는 이후 조선 최대 갑부의 안주인이자 김희성의 모친 강호선으로 등장한다. 유진의 엄마가 죽어가며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들이댔던 비녀의 흉터를 영원히 목에 간직한 호선은 그 흉터만큼 묵은 마음의 부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부채만큼 깊은 것이 아들 희성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 이 '부채감'과 '모성'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던 호선, 화려하게 차려입은 외양과 달리, 아들 앞에서는 혼비백산하는 마음 약한, 그리고 유진 앞에서 한없는 죄책감을 숨길 수 없는 이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화려한 외모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거 같은 큰 눈의 김혜은이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와 <미스터 선샤인>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모성의 딜레마를 설득해 내던 김혜은이 <손 the guest>로 오면 돌변한다. 등장부터 당연히 박일도의 제물이려니 했던 국회의원 박홍주, 이미 젊은 시절 가족 집안 재단 학교의 선생으로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력'이 의심되는 그녀는 지역구 시민들 앞에서 한껏 자애로운 미소를 띤 것과 달리,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닥치는 터져나오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시청자들은 또 다른 '박일도'를 떠올리게 된다.

연민에 못이겨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던 엄마에서 핏발이 서린 눈빛으로 악에 치받혀 자신을 거스른 사람을 때려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마의 핏줄까지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김혜은이란 배우는 각인되었다.  

 

 
모성의 여러 얼굴- 김선영
우리에게 김선영이란 배우가 '엄마'로 처음 등장한 건 아무래도 <응답하라 1988>의 선우 엄마일 터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 뽀글머리 파마에 동네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천상 아줌마이지만, 아빠없이 두 아이 선우와 진주를 키우는 가정사에, 택이 아버지와의 순애보까지 파노라마와도 같은 인생사의 그곳에 김선영 배우가 있었다. 

하지만 김선영 배우를 그저 '엄마' 역으로만 한정하는 건 아쉽다. 2016년작 <원티드>에서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프로파일러로 등장하는가 하면, 같은 해 <쇼핑왕 루이>에서는 부산 쌍도끼 출신의 집사로 냉철과 허당의 썸녀가 되기도 하였고, 2017년 <파수꾼>에서는 엄마 형사로서의 모성과 경찰로서의 사명감 앞에서 갈등하면서도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인 포지션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선영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역시 '엄마'일 때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가 아니다.  2017년작 <란제리 소녀 시대>에서는 <응답하라 1988>과 같은 80년대의 엄마였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바람과 차별받는 아들과 딸, 그리고 메리야스 공장 식솔까지 품어내는 여장부이면서도 여자로서의 아픔을 삼켜내는 또 다른 80년대의 어머니 상을 재연해 냈다. 또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나, <은주의 방>에서는 언뜻 보기엔 억척스런 엄마이지만  88만원 세대로서 꿈을 찾아 고민하는 딸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분한다.

그리고 이제 <땐뽀걸즈>에서는 투박한 작업복의 엄마로 돌아왔다.  조선소 용접공이었지만 정리 해고 당하고 남편 없이 두 딸을 키우는 가장으로 '하청 물량팀'으로 자신을 자른 회사에 가서 수모를 감수하며 일하는 엄마, 바람같은 딸을 지키는 그녀의 방식은 작업복처럼 투박하지만, 어떻게든 학교의, 가정의 품에서 지켜내려는 그녀의 시선은 딸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자신때문에 다시 한번 해고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위해서는 무릎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의리'의 엄마, 이 거칠고 정깊은 엄마 김선영이 청춘 드라마의 중심을 잡으며 시청자의 마음에 연민어린 감동을 전한다. 

 

 

듬직한 어른- 이정은
연극과 영화에서 이미 중견이었던 이정은 배우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첫 작품은 아마도 <오 나의 귀신님>일 것이다. '서빙고 보살'로 등장한 이정은은 생활형 점쟁이로 고객과의 만남이었던 선우의 엄마(신은경 분)와 코믹스런 캐미로 극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예의 신기로 나봉선과 신순애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그 이후 2015년  <송곳>에서 푸르미 마트 야채 청과 직원으로 주인공의 든든한 노조 동지 김정미였다가, <리멤버>에서 역시 주인공들이 만든 변두리 로펌의 듬직한 사무장이었으며,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남편을 잃고도 여전히 112종합 상황실을 지키는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월계수 양복점>의 공방을 지키던 금촌댁이라고 달랐을까. <도둑놈 도둑님>의 쿵푸 달인이던 권정희도, <쌈, 마이웨이>의 설희 엄마 금복도, 모두 믿음직스런 이정은의 변신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든든했던 이정은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엄마가 아닌, <미스터 선샤인>의 유모 함안댁을 통해서이다. 핏덩이로 '배달'된 애기씨, 그 애기씨 고애신을 품어 키운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유모 함안댁, 하지만 함안댁은 그저 유모가 아니었다. 의병을 하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의 뒤를 따라 기꺼이 의병 활동에 헌신한 애기씨의 숨은 동지였고, 보호자였으며, 끝내 그녀를 지킨 '은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손 한번 못잡은 행랑아범과의 로맨스는 웃다가 설레이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 모든 '씬'이 설득되었던 건 이정은이라는 배우의 내공이었다. 그녀의 눈빛 하나로 송곳의 노조도, 의병의 신념도 설명시켜내고, 그녀의 어수룩한 표정 하나로 시청자를 해제시켰으며, 넉넉한 품새로 품어주는가 하면,  그녀가 입맛다셨던 짜장면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둔갑시켜버린 그 순간순간에 이정은이 있었다. 

 

 

미워도 밉지 않은 - 염혜란
미웠다. <도깨비>의 어떤 악역보다도 미움을 받았다. 동생이 남긴 유일한 딸, 하지만 이모인 지연숙에게는 그 조카가 그저 보험금으로 보인다. 남편보다도, 딸보다도 돈이 좋은 여자, 그래서 처절하게 몰락해가는 그 '이모'만큼 실감나게 우리 시대의 속물의 끝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미움의 원횽은 끝내 이승에서 그 '벌'을 톡톡히 받으며 카타르시스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렇게 지연숙을 실감나게 밉게 그려내며 염혜란은 시청자 곁으로 훌쩍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란 이름보다 먼저, 작품 속의 캐릭터로 우리는 그녀를 이미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결혼 생활 내내 골병이 들도록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정아 이모네 애증의 큰 딸로 마음을 후비며 등장했었다. <7일의 왕비>에서는 맛갈스런 사투리와 그 보다 더 맛갈스런 연기의 유모로 '신스틸러'임을 증명해 내고, <라이브>에서는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아들 바보' 엄마로 분한다. 그리고 한양이 만큼 잊을 수 없었던, 돈버느라 아들을 놓친 하지만 그래서 엄마 손으로 아들을 잡아 넣을 수 밖에 없어 가슴에 대못이 박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한양이 엄마로 우리는 다시 염혜란을 기억하게 된다. 

염혜란이 늘 '우리 이웃'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다. <무법 변호사>에서는 온갖 귀금속을 주렁주렁 매달고 기성 시의 보이지 않는 손 차문숙의 오른 팔로 고군분투했고, <라이프>에서는 조승우가 분한 상국대학 병원 총괄 사장의 오랜 측근으로 '전문직' 혹은 '고위직'의 옷을 갈아 입으며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 우리네 이웃의 그 누군가가 되어도 저 높은 지위의 그 누가 되어도 변함이 없는 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너무도 실감나는 그녀의 연기다. 
 

by meditator 2018. 12. 14. 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