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지나면 드라마 시청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는 긴장감이 돈다. 마치 황야의 결투를 벌인 두 총잡이의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된 후 누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관람객들처럼, sbs <황후의 품격>과 tvn의 <남자 친구> 중 이번 주 시청률의 승자에 주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캐스팅에서 부터 송혜교에 박보검라는 두 쟁쟁한 스타의 만남으로 화제성에서 당연 압도적이었던 <남자 친구>에 이른바 '막장' 장르의 대가 김순옥 작가와 <리턴> 주동민 피디의 만남으로 대항마를 내세운 sbs의 <황후의 품격>, 과연 '스타캐스팅'과 '스타 작가'의 승부의 귀추가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불문율에서 이번 수목 대전의 승부도 벗어나지 않았다. 
11월 28일 30분 빠른 방송 시간, 거기에 송혜교, 박보검이라는 두 스타, 그리고 쿠바의 풍광까지 얹으며 첫 회 <남자 친구>는 케이블과 공중파라는 플랫폼의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황후의 품격>을 8.863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남자 친구>의 승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1월 29일 10.32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던 <남자 친구>는 그 이후 시청률이 주춤하거나 조금씩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김순옥 작가도 미니 시리즈는 힘든가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황후의 품격>은 12월 12일 단 두 주만에 8.513%의 <남자 친구>를 9.8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수목 대전의 강자로 등극했고, 그리고 12월 20일 13%로 <남자 친구(9.166%)>와 4% 정도의 격차를 벌이며 수목 대전의 넘볼 수 없는 승자가 되었다. 

1위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황후의 품격>의 승리는 주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황후의 품격>이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서 그렇지, 그간 tvn 드라마들의 기준에서 %꾸준히 8~9%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남자 친구>의 성과를 지레 무시해서는 안된다. 거기에 '시청률 지상주의'의 색안경을 빼고 보면 수목 드라마 중 작품성으로 보자면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를 따라올 드라마가 있을까? 오피스물의 애청자들을 위한 kbs2의 <죽어도 좋아>는 어떻고. 누가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요일과 목요일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12월 수목 드라마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있다. 물론 그 선택의 기준은 각각 다르다. 

막장의 품격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그 분들에게 삶의 낙이 된다면 제겐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왜 막장을 쓰는가에 대한 김순옥 작가의 답이다. 

 

  

그리고 이 김순옥 작가의 말이야 말로 <황후의 품격>을 정확하게 정의내린 글이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 글에 대한 호응처럼, <황후의 품격> 기사 댓글에는 담주가 궁금해서 어떻게 1주일을 보내냐, 심지어 김순옥 작가 당신이 성공했소,  다음 주가 보고 싶어 이번 주를 버틸 것 같소. 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즐비하다.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은 남편과 시댁에게 버림받고 점찍고 복수하던 <아내의 유혹>의 서사적 전통을 잇는다. 거기에 현존하는 황실이라는 배경이 막장 드라마 속 막가파 시댁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장나라, 신은경, 신성록, 심지어 아역인 오아린까지 출연진의 호연과 성형 수술로 업그레이드 된 나왕식(최진혁 분)이 오써니(장나라 분)를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처럼 보호해 주나 싶었는데, 다음 회에 외려 오써니를 함정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듯 내일을 알 수 없는 전개로 시청자를 붙잡아 놓는다. 기존 로코의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예상할 수 있는 기대치를 산산히 무너뜨리는데서 오는 쾌감, 그럼에도 일관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무엇보다 김순옥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기이다. 

이런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을 사람들은 '막장'이라 칭한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드라마.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다(다음 사전)'는 막장은 우리나라 주말, 아침 드라마의 주된 소재였다. 그리고 주중 미니 시리즈의 부진으로 고심하던 sbs가 김순옥 작가를 초빙하고, 그에 뒤질세라 kbs2 역시 수목극이 주인공으로 또 다른 막장의 대가 문영남 작가를 초빙한다.

'막장'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는 질이 낮은 드라마라는 평판을 얻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위기의 주부들> 역시 크게 막장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화이트 캐슬> 속 가족 관계 역시 '막장'의 장르적 속성을 품고 있다. <남자 친구> 속 차수현(송혜교 분) 주변 관계라고 다를까. 막장의 정의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게 인기를 끄는 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제도가 가진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청자들은 가장 '현실적'이라 열광하고 있는 지도. 그러기에 이 '모순'이 노정되는 한 '막장'은 존재할 것이며, 미니 시리즈의 구원 투수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잠자던 연애 세포 자극제 
가끔 배우가 개연성인 드라마가 있다. 주말을 책임지는 현빈과 박신혜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러하고,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일찌감치 앞서갔던 송혜교, 박보검의 <남자 친구>가 그러하다. 

내용이 무슨 문제인가, 그저 아름다운 송혜교가 이쁜 옷을 입고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서 설레이면, 당장 나도 가서 저렇게 단발이라도 잘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그런데 그 송혜교가 보면서 설레이는 대상이, 아줌마같은 단발 머리를 해도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박보검이라니, 가기도 힘든 쿠바의 풍광 아래서  구 시댁과 친정, 전남편,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에 치여 자신을 돌아보기도 힘들던 차수현을 '전도사'님처럼 김진혁(박보검 분)이 위로해 주더니, 이젠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 '라면'먹고 싶단 한 마디에 대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득달같이 라면을 끓여 대령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시간은 3회까지 였을까. 여전히 두 배우를 통한 시선 호강은 여전하지만 <버디 버디>, <예쁜 남자>, <딴따라>까지 일관되게 '개연성'이 부족했던 그래서 몰입하기엔 여백이 많은 유영아의 극본과 쿠바를 떠나오며 풍광과 함께 감정의 해석조차도 두고 와버린 듯한 박신우의 어쩐지 감정 이입이 아쉬운 연출은 자꾸 시청자들에게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쩐지 아쉬운 드라마로 <남자 친구>를 만들어 버린다. 

 

  

한 편의 문학 작품 
그것도 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천착하는 심리서같은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문학 작품처럼 서정주의 '문둥이', '입맞춤'은 천상병의 '무명전사', '내가 구원하지 못할 너'의 시구로 이어지며 드라마 속 아동 학대로 인한 죽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 문구로 상징되는 죽음, 그 실마리를 쫓아서 뛰어든 주인공 차우경(김선아 분), 강지헌(이이경 분) 등, 하지만 드라마는 과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 차우경의 눈 앞에 자꾸 나타나서 사건을 인도하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발 빠르게 추적하는 대신, 사건 속에 주인공들이 함몰되며, 그 사건 속에서 헤매이는 주인공들을 통해, 과연 우리 사회 벌어지는 많은 아동 학대 사건에서 당신들은, 즉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느 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 폐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소외된 사람들, 그 소외를 방조하는 사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드라마, 당연히 요즘처럼 'LTE'급 속도가 아니면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붉은 달 푸른 해>의 호흡을 따라가기에 애청자조차 버겁다. 

하지만 그러기에 <붉은 달 푸른 해>는 그저 '스릴러'의 경지를 넘어선다. 일찌기 <늪(2006)> <케세라 세라(2007)>,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2015)> 등 가물에 콩 나듯 시청자를 찾아오는 도현정 작가이며, 늘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는, 아니 마치 작가 스스로 시청률을 저만치 밀어내는 듯한 작품으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 단편 <늪>이래 늘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면에서는 끝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테지만 지금의 수목 드라마 중 좋은 드라마로 가장 오래 기억될 작품은 <붉은 달 푸른 해>일 것이다. 

 

  

오피스물이 스테디셀러? 
kbs2의 <죽어도 좋아>는 kbs2의 장기 장르인 <김과장(2017)>, <저글러스(2017) 등 오피스 물들의 연장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물론 내용과 설정은 다르다. 매번 죽음의 기로에 놓인 백진상의 '환타지'적인 설정은 기존 오피스물과 다른 차별성으로 이 드라마를 알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오 갑의 mk치킨의 우스꽝스런 중역진이라던가, 갑질로 비호감의 캐릭터로 시작하는 남자 주인공은 색채만 다를 뿐 <저글러스>와 <김과장>의 여러 요소를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어제 본듯 익숙한 강지환은 무엇을 해도 차태현인 차태현의 연기를 보는 듯하다. <저글러스>에 이어 또 다시 상사 갱생의 주역이 되어 돌아온 백진희는 안그래도 익숙한 오피스물 <죽어도 좋아>를 더욱 진부하게 만든다. 분명 드라마가 보면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재방송을 보는 듯한 <죽어도 좋아>를 찾아볼 시청자들은 많지 않다. 

by meditator 2018. 12. 26.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