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하늘 빛이 서러워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라는 천상병 시인의 문둥이란 시로 시작되었다. 아니, 그 시의 한 구절, '애기 하나 먹고'처럼 드라마는 '아이'의 희생에 대한 사건을 '시'로 수식하여 시작되었다. 

 

 

죽음과 시, 그리고 아이
시작은 아이의 죽음이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이제 곧 세상으로 올 둘째 아이를 가진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아동 상담사 차우경, 그렇게 햇살같았던 그녀의 일상은 우연히 그녀 앞에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어둠이 깔린다. 그렇게 우경에게 벌어진 우발적 사고와 함께 시작된 강력반에 배당된 의문의 사고들, 아동학대 치사 공범이 차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고, 그 범인은 스스로 '자해'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고, 아내와 딸을 학대하던 남자는 차에서 역시 스스로 연탄불을 펴서 자살을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방기된 채 상담센터에서 아이를 기르던 젊은 엄마 역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에 무게'라는 붉은 페인트 낙서에 둘러싸여 미이라가 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한 계기로, 거기에 알고보니 강력반 형사 강지헌(이이경 분)의 전연인이 차우경 남편의 내연녀였던 인연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겹쳐진다. 그저 의아심만으로 사건에 접근해 들어가던 지헌에게 우경은 젊은 엄마 시체의 발견에서 부터, 개장수인 그 전 남편의 집 수색,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의 발견 등등 적극적인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개별적인 사건들 사이에 '아이', 그것도 친부모로부터 방기되고 학대당한 아이가 있음을 밝혀낸다. 

 

 

개장수로부터 학대당하던 떠돌이 소녀 출신의 엄마는 상담 센터에 숨어 아이를 키우지만 거의 방기하다시피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 앞에서 그 '누군가'에 의해 천식 호흡기를 빼앗긴 채 죽어 '죄의 무게'의 대가를 치룬다. 아내를 때려 탄 보험금으로 노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딸 아이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던 아빠에게는 아내가 사간 연탄불이 배달되었다. '자살'이나 '의문사'로 처리될 죽음의 속에 숨겨졌던 '붉은 울음'이 강지헌의 추궁으로 드러나며, '학대된 아이'가 매개된 사건에게 '배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식 기침에 숨이 넘어가던 엄마의 호흡기를 치운 사람도 붉은 울음일까? 과연 붉은 울음은 누구일까? 

미친 여자 차우경, 그녀는 누구일까? 
드라마의 시작은 '아이'에게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차우경이었다. 자신의 차로 뛰어든 소년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받던 그녀, 남편이 떠나갔을 때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아이를 죽인 죄의 대가라 감내하려 했던 우경,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으스스한 낡은 창고도, 위험해 보이던 개장수의 집도 마다하지 않던 우경, 그녀의 '정의'에 시청자는 함께 시선을 맞추어 <붉은 달 푸른 해>의 서사를 따라갔다. 

 

 

그런데, 동시에 그런 우경으로 인해 혼돈스럽다. 그녀의 차에 뛰어든 건 초록원피스를 입은 대여섯살 정도의 여자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훌쩍 더 큰 남자아이였던 그 순간부터, 시시때때로 그녀의 눈앞에 등장하는 그 '초록옷의 여자 아이'는 우경만큼 시청자들을 혼돈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우경은 그 '아이'가 이끄는 대로 사건의 현장에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했다. 미이라가 됐던 젊은 엄마의 딸과, 그녀의 차에 치어죽어간 소년의 동생, 모두 초록옷 소녀를 찾아 헤맸던 행로의 끝에서 만난 학대받고 방기된 아이들이다. 

과연 초록옷 소녀는 누구일까? 여전히 초록옷 소녀가 보이냐는 지헌의 질문에 우경은 이제 더 이상 그 아이로 인해 혼란스럽지 않다 한다.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을 구할 수 있던 우경, 하지만 그뿐일까? 남편의 외도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부엌에서 칼을 들고 뛰쳐갈뻔 했을 때도, 그리고 이제 자신이 치어 죽인 아이를 '돈'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채 외면하는 엄마를 차로 밀어버릴 뻔한 순간에서도 우경을 저지하고 위로한 이는 '초록옷 소녀'였다. 

그리고 12회 마지막 초록옷 소녀의 몽타주를 작성하던 우경에게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쓰러지던 그 '초록옷 소녀'. 그리고 그 순간 경찰서의 강지헌에게 떠오른 가장 유력한 사건의 배후, 붉은 울음, 그리고 차우경이다. 즉 1회에서 부터 12회까지 헌신적으로 사건을 이끌어 오던 우경은 동시에 늘 사건의 현장, 혹은 사건의 연결고리가 되어 등장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하기까지. 과연 우경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그건 마치 우경이 치어 죽였지만, 그 소년에 애닮아하며 그 동생을 구한 그 정황과도 유사하다. 그 사건은 우경에 대한 또 다른 상징일까?

 

 

거기에 더해진 의미심장한 관계, 바로 우경과 우경의 새엄마(나영희 분), 그리고 뜻모를 미소를 지은 듯한 여동생(오혜원 분)이다. 우경의 자매를 살갑게 보살펴 주는 듯하지만 한 순간 얼음장처럼 돌변하는 새엄마, 그 앞에서 죄지은 아이처럼 쩔쩔매는 우경, 과연 이 세 모녀의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있을까가 우경의 존재에 대한 키가 된다. 

그리고 그 키에 대한 힌트는 뜻밖에도 우경이 자신의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에서 등장한다. 다섯 살 딸에게 밤마다 읽어주는 동화, 첫 날 읽어주던 동화는 아기 돼지 삼형제, 다음 날 읽어주던 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의 '해와달'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경의 구연을 통해, 해석을 통해 풀이된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형제'와 '오누이'가 있고, 그들에게 '선한 부모'인 척 다가가는 '늑대'와 '호랑이'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경의 기억 속에 등장한 초록옷 소녀는 학대당한 우경인가, 아니면 우경이 알고보니 가해자인가. 아니면 그저 우경이 쫓고있는 아동 학대 사건들의 상징인가. 드라마는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뿌려대며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학대당한 아이의 사건들로 풀어가던 <붉은 달 푸른 해>는 이제 12화를 기점으로 초록옷 아이의 망상에 시달리던 주인공 우경에게로 다가선다. 그녀의 말처럼 '선의에 의한 악행'일까? 아니면 어릴 적 사고로 인한 이중 인격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저 어떤 사건으로 인한 피해 의식이 이제 그녀를 아동 학대의 지킴이로 만들었을 뿐일까? 아동 학대 사건의 씨실 사이로 구비구비 엮어진 차우경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사실 차우경만이 아니다. 그녀를 비롯한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의문스러운 <붉은 달 푸른 해>는 시청률은 꼴찌지만 보고 뜯고 추리하는 재미는 '대박'이다. 

by meditator 2018. 12. 7. 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