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쳐가 마무리됐다.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과 다른 한상운 작가가 집필했지만, 검찰 내부 비리를 다뤘던 <비밀의 숲>에 이어 경찰 내부 비리를 다룬 <왓쳐>로 안길호 피디는 '권력형 비리' 2부작을 완성했다. 아니, 그냥 완성이 아니라, 2017년 최고의 드라마가 <비밀의 숲>이었듯, <왓쳐>는 아마도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될 듯하니 이 쯤이면 '명작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비밀의 숲>만한 드라마가 나올까싶었는데 <왓쳐>는 <비밀의 숲>만하게 시작해서 <비밀의 숲>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로 마무리되며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찾던 시청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퇴장을 했다. 무엇보다 2019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내며 당대성을 담보해냈다는 점에서 <왓쳐>는 장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2011년 우리나라는 '정의' 열풍에 휩싸였었다. 하버드 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과 함께 ebs에서 강의를 하며 그 어려운 철학 강의가 열렬한 국민적 이슈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대통령 시절 사람들은 경제적인 각종 악재,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정치적 절망을 겪으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포기할 수 없었던 '희망'의 끈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우리는 다시 <왓쳐>를 통해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16부로 마무리된 <왓쳐>에서 최종 빌런이었던 박진우(주진모 분) 세양지방 경찰청 차장이었다. 도치광의 감찰 비리반을 유일하게 비호해 주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는 동료 경찰들의 '비리'를 캐고 다니는 도치광에게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정의인데도 2011년의 정의와 2019년의 정의는 어쩐지 뉘앙스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뉘앙스, 2011년에 열광했던 정의가 퇴색한 모습이야 말로 <왓쳐>가 주목한 이 시대의,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다. 


시작은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살이었던 김영군(서강준 분),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세양지방 경찰청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아들인 영군의 증언이 유력하게 채택되며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 바로 후배였던 도치광(한석규 분)가 김재명이 살인범일 거라며 조작했던 피묻은 잠바가 그런 그의 범죄를 확증시켰다. 

15년 후,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그 사건에서 아버지가 범인이라 증언했던 영군은 교통계 순경이 되었다. '아무도 못믿으니까 경찰이 적성이죠'라는 영군은 15년 그 사건에서 정말 자신이 봤다고 했던 것이 진실인지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게 맞는지를 그 진실을 찾아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영군의 앞에 아버지의 후배이자 그를 감옥으로 보낸 도치광이 비리 감찰팀의 팀장으로 영군을 스카웃한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물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한 경찰 내 사조직 킬러를 잡기 위해 한때는 영군을 독려해 김재명을 살인죄로 기소한 검사였던 변호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합류한다. 영군도 그렇지만, 한태주도, 그리고 도치광도 15년 전 그 사건의 진범이 과연 김재명이었을까란 의심으로 부터 출발한다. 

교통계 순경 영군의 눈에 우연히 띈 유괴범 손병길로 부터 시작된 사건은 장기 매매 사건으로 이 사건은 다시 선일 암매장 사건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결국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그들의 앞잡이 거북이를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비리 감찰반 세 사람 도치광, 한태주, 김영군이 얽힌 15년전 영군 어머니를 아버지 김재명이 죽였다는 사건이 있다. 각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 사람, 그런 그들에게,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거북이를 밝히려 드는 감찰반장 도치광에게 묻는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박진우가 묻는 의미는 그렇다. 지금 네가 '정의'를 운운하며 경찰을 털려고 다니는데 결국 그 니가 말하는 정의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이고, 어쩌면 진짜 '정의'를 위해 했을 지도 모를 경찰들의 일을 방해하는 일 일 수도 있다고. 그런 박진우의 질문에 도치광은 이른바 '썩소'를 날린다. 그리고 반문한다. '정의? 그리고 난 정의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이예요'라고 답한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에 열광했던 그 '정의'는 분명 '옳바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9년에 오니, 그 '정의'와 '나쁜 경찰을 잡는 옳은 일'사이의 간극이 생겼다.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의 모임, 소년 장사를 의미하는 '장사회'였을 거라던 경찰내 사조직은 알고보니 안되면 '장사나 해야겠다'던 자조적 의미의 사조직이었다. 경찰대 출신은 맞다. 김영군의 아버지 김재명이 자신들이 애써 붙잡아 넣어도 각종 '선'을 타고 손쉽게 혹은 가볍게 감옥문을 빠져나오는 흉악범들을 '사적'으로 손봐주기 위해 혹은, 수사를 '편의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사조직이 바로 '장사회'였다. 

분명 시작은 명분 상으로는 법으로 해결될 수없는, 아니 '만족'할 수 없는 '정의'였다. 하지만 그 '편의적 정의'는 칼자루를 쥐며 날개를 달자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북이'라는 킬러까지 움직이며 검경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덩치를 불려간다. 단지 이권만이었을까, 경찰대 출신의 똘똘한 광수대 엘리트 형사가 거북이가 된 게. 장해룡이야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흉악범에 대한 사적 복수로 그렇게 됐다지만 그 뿐이었을까. 많은 경찰들이, 그리고 검찰들이 '정의'라는 편의적 명제 앞에 자신들을 합리화하며 야망과 이권을 누리기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의'는 그들이 쓰는 '조자룡의 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칼에 장사회를 만든 장본인 김재명은 아내를 잃고 결국 자기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지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감찰 비리반의 '수사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장사회의 보스입네 하게 된 박진우의 입에서 '정의'라 흘러나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정의'는 퇴락되어 간 것이다. 마치 2019년 우리 시대 부도덕한 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의'처럼.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한태주 변호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던 거북이가 던진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거북이를 찾는 유일한 단서로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며 살인을 즐기는 킬러의 정의, 그런 킬러를 운용하는, 그럼에도 '정의'를 운운하는 집단의 '인간다움'을 역설적으로 드라마는 집요하게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만든 당사자 박진우가 내린 답은 어이없다. '인간다움'이란 추상적 명제 앞에서 당황하는 피해자들, 결국 '대의명분' 앞에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그 인간적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박진우의 역설적 인간다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떠도는  '정의'라거나, '인간다움'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가지는 허상의 배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왓쳐> 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정의내릴 수 없는 인간다움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물론 궁극적을 지은이가 추구하는 '정의의 한 계파'에로의 결론을 유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정의론이 등장한다. 달려오는 열차, 철로 위에 사람, 과연 그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기차에 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무수한 딜레마의 서사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그렇듯 <왓쳐>의 묘미는 바로 그런 '딜레마'를 가진 인간다움이다. 

시작은 자기 딸의 손가락을 절단한 범인에 대한 사적 복수심이었으나 어느덧 괴물 거북이가 되어버린 장해룡, 사건 수사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사조직이었으나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 앞에 자신과 가족을 빼앗겨 버린 김재명, 순경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사조직 장사회를 통해 거침없는 야욕으로 돌변해 버린 박진우,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타협하곤 하는 도치광,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아니 자신의 인간다움을 짓밟아버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결정적 순간 자기 편을 배신할 수 있는 한태주까지 <왓쳐>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내밀지만 저마다 딜레마를 가진 인간들의 전시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대론이기도 하다. 시작은 '정의'로우려 했지만 어느덧 자신들의 편의적 '정의'와 야욕, 야망으로 인해 '수사' 대상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 바로 <왓쳐>는 젊은 영군 앞에 거침없이 까발려져 버린 어느 덧 아버지가 되어버린 세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영군이 젊은 거북이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도치광과 한태주가 그 손을 잡듯이 너는 그러지 말라고, 우리처럼 편의적 정의에 물들지 말라고 경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정의'를 실천했던 이창준(유재명 분)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지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스스로 단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한 세대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왓쳐>는 시즌2를 염두에 둔 탓일 수도 있지만, 젊은 거북이였던 형사의 병실을 찾는 거북이를 등장시키며 경찰 내 비리 조직의 여운을 남긴다. 아니 무엇보다, 나쁜 형사만을 잡는다던 도치광이 감찰 비리반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염동숙 청장의 박진우 차장 살해 교사와 협상했음을 밝히면서 아직 그 '부정의'의 정의를 부르짖는 세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쉽게 끝나지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촉구한다. 

마지막 자신의 협잡을 눈치챈 영군에게 도치광은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영군에게 너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영군은 그런 도치광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왓쳐'다. 퇴락해가지만 그러지 않으려 애쓰겠다는 정의의 세대, 그 세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영군의 세대, 그렇게 왓쳐는 2019 정의의 경계, 세대의 경계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한상훈 작가와 안길호 피디가 만든 이 세대론의 얼개 위에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단 건 다름 아닌 명불허전 한석규를 비롯하여, 김현주, 서강준 등의 배우들이었다. 드라마의 시대는 갔다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울리는 걸 드라마만큼 잘해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라는 걸 왓쳐는 스스로 증명해 냈다. 

by meditator 2019. 8. 26. 14:13

<60일, 지정생존자>가 종영했다. 1회 3.383%에서 시작하여 15회 5.434%, 동시간대 공중파, 케이블 시청률 1위를 수성하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한 셈이다. 특히 최근 부진했던 tvn 드라마의 주중 성적으로 치면 발군이다. 더구나 모아니면 도라 할 수 있는 외국 드라마의 번안 실정에서  <60일, 지정 생존자>는 성공적인 '각색'의 한 사례로 기억될만하다. 과연 <60일, 지정생존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 
무엇보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이야기의 변주를 들 수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지정 생존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를 수행하도록 한다. 또한 이를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유사 시에 대비하여 각료 중 한 사람을 '지정 생존자'가 될 수 있도록 안전 시설에서 대비하도록 한다. 바로 이런 미국 특유의 정치적 위기 관리 해법을 모티브로 하여 넷플릭스의 <지정생존자>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이 미드 <지정생존자>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와서, 대통령 유고시 승계자는 '권한 대행'이 되어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는 60일 이내까지 대통령 직을 수행하도록 하는 설정이 되어 <60일, 지정 생존자>가 탄생되었다.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이다. 

즉, 미드 <지정 생존자> 속 대통령이 된 톰 커크먼은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선출직 국가 원수로서의 '정치적 권위'를 어떻게 '달성'해가는가라는, 미국적 정치 제도 속 딜레마를 안게 된 최하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의 정치적 성장 서사이다.  반면,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은 환경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라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정치인' , 혹은 '각료'라기 보다는 '학자', 혹은 한주승 비서실장의 말처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기꺼이 자신의 학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관철되지 않자 정치를 '이반'했던 '자연인'이었던 '개인' 박무진이 본의 아니게 국회 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의 '유고'로 인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에 떠밀려 앉게 되면서 <60일, 지정생존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 속 자주 비춰지는 그의 신발처럼, 대통령에 의해 억지로 신겨졌던 구두를 자유롭게 벗어던졌던 그가 다시 그 맞지 않는 구두를 꾸역꾸역 신어야 하는 '거북함', 불편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하지만 어색함과 낯섬도 잠시 대통령이 '부재'한 분단 사회에 휘몰아치는 위기의 상황들에 권한 대행 박무진을 던져넣고 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고'된 양진만 대통령과 그의 정부이다. '민주'적 정부를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의 민주적인 원칙과 의지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점점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소신'은 커녕 위태로운 처지에 빠지게 된 양진만 정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는 안그래도 취약했던 정부, 정권 자체를 흔드는 야당, 군부 세력들의 '난립'으로 이어진다.  

서울 시장을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선거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기 위해 귀화한 북한 동포들을 이용하여 사회적 분열을 획책하고, 군은 '평화' 정책을 추진했던 양진만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국회 의사당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은 대중의 영웅이 되어 청와대를 향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은 사건에 따라 안그래도 취약한 권한 대행의 청와대를 흔들고, 테러와의 공모 여부로 박무진은 점점 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무진이 청와대 참모들을 믿을 수 없는 만큼, 청와대 참모들 역시 한낮 학자 나부랭이였던 박무진의 '권한 대행' 능력을 신뢰할 수 없어 한다. 

또 한 사람의 영웅 대통령? 
드라마는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정치를 지향했던 양진만 정부의 무기력함으로 시작하여, 테러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을 통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인 듯 드라마를 연다.  실패한 '영웅'의 세계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의 '영웅' 서사인가? 말이 삼권분립이지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메시아'와 같은 '희망'의 기대주였었다. 그리고 <60일, 지정생존자>도 다시 그 익숙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한 사람의 '좋은 메시아'의 도래를 선도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저 다른 정치적 조건, 제도에서 잉태된 한국적인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변주된 드라마를 넘어 원작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며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정치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2019년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정치'의 의미를 묻는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그가 '사표'를 던지게 된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미국과의 조약 과정에서 미국 측의 압박으로 인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박무진은 환경학자로서 데이터를 제시하며 미국측을 수세로 몰아넣으며 회담 자체를 유리하게 끌고간다. 바로 그런 그의 '학자적 접근'은 북한 잠수함의 출몰로 군부의 무력 시위를 앞세운 군사적 충돌 상황을 다시 한번 '데이터'를 통한 접근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즉, 청와대 비서진들조차 '우리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박무진에 대한 믿음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한 설득으로 도발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박무진은 양진만 정부의 일원이었지만, 기꺼이 그 정부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학자적 양심이 우선한 사람이었고,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를 내던질 위기에서 한주승 비서실장의 '시민'의 권리라는 설득으로 물러서게 되는 '개인'이었다. 그에게는 소속된 '진영'이 의미가 없었고, 그가 권한 대행의 자리에서 내리는 결정은 양심적인 민주 시민으로서의 고뇌에서 비롯된 결정인 것이다. 

고뇌하는 시민, 그가 잉태한 좋은 정치 
그래서 드라마 속 박무진은 늘 고뇌한다. 매회 그, 그가 대행하고 있는 60일 한정의 정부를 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최선을 길을 찾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그래서 차영진(손석구 분)의 말처럼 기존의 정치가 해왔던 이분법적인 결정이 아닌 뜻밖의 결정을 통해 '정치'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은 차별 금지법이라는 정치적 승부수조차 뒤로 미루며, 아니 이벤트가 아닌 진짜 차별 금지법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적 성장의 길로 나선다. 

그런 그의 결심은 마지막 회 가장 큰 위기를 겪는다. 바로 때로는 그를 멀리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의지했던 양진만 정부의 핵심이었던 한주승 비서실장이 테러의 배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60일, 지정생존자>의 대통령 권한 대행 박무진은 자신이 괴물이 될 테니 당신은 앞서 좋은 정치를 해달라는 한주승 비서실장의 협박인지 선언인지 모를 유혹을 딛고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정치를 완성한다. 

 

 

16부의 장정 속에서 박무진의 정치는 늘 그와 다른 길을 걷는 세력들에 의해 '시험'받는다. 한반도의 위기 속에 군사적 실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군부 등 군사적 세력에 의해, 도덕적인 해결보다는 정치적 수를 우선하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야당 , 언론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항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대중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던 오영석 등의 테러 집단에 의해,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양진만 정부의 실세였던 한주승 실장이 자신들의 정치가 외면받자 테러로 양진만 정부를 전복하고 테러 적극 가담자인 오영석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정치적 '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수단'을 불사하고 대중을 자의적으로 도모하고 이용하고자 했다는 것. 그런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정치적 방식에 대해 박무진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어느 편이 아닌 '민주' 사회의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의 새 길을 터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여전히 새롭지 않은 정치의 세상에서 매우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접하고 논하게 만든다. 그의 옮음은 이미 어느 편이라 완성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그래서 늘 그를 위태롭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흔들었지만, 그래서 그는 쉽게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원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편이 아니었기에 야당의 대표라도, 그가 사퇴시킨 전직 참모 총장이라도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유연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지율조차 야당 대표보다 10%가 넘게 이긴 상황, 이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만 하면 대통령 자리가 굴러들어올 수 있는 상황, 이제 다시 그가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한주승 실장의 설득 아닌 설득에, 박무진은 민주주의가 괴물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시스템임을 선언한다. 옳다고 믿는 자기 도취의 어떤 집단에 의한 전횡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도달해 나갈 실패와 실수의 과정이라는 '희망'을 열어준다. 

미 메릴랜드 대학교의 국제 개발과 분쟁관리 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88개국이다. 그리고 그 중에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국가는 불과 27개국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31번째  '흠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해방 후 불과 반세기,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과정 속의 민주주의 체제에 있는 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벌써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보다는 <60일, 지정생존자> 속 많은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려와 좌절에 익숙하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촛불까지 든 사람들의 마음을 얼룩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상황에서 박무진이라는 한 사람이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보낸 60일의 시련기, 그리고 그가 다시 꿈꾸는 정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희망을 가지게 한다. 막연한 또 한 사람의 영웅 탄생이 아니라, 드라마 마지막 그와 함께 활짝 웃었던 젊은 보좌관들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같이 함께 고민해 볼 '민주주의적 정치'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8. 21. 05:49

'한류'를 선도했다던 드라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청률이 7%대만 되도 '선방'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 즈음, 각 방송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보다 차라리 과거에 만들어 진 드라마를 방영하는게 시청률이 더 나올 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최근 방영하거나 방영했던 드라마들의 완성도가 이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비록 시청률에서 미흡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특정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장르물로 시청자들은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는 범인 찾기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이 범인?- <왓쳐>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영군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머니를 찌른 칼을 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니 영군은 그렇게 믿었다. 영군을 담당했던 의욕이 앞섰던 검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영군의 증언을 독려했고, 아버지의 후배 형사인 도치광(한석규 분)은 아버지에게 가장 불리했던 증거인 피묻은 잠바를 찾아냈다. 그리고 영군의 증언과 도치광이 찾아낸 증거로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감옥에서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15년 후,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 도치광과 이제 경찰이 된 영군(서강준 분)이 비리 수사팀으로 만났다. 시작은 경찰의 경찰, 경찰 내부 비리 수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15년전 영군 모의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실일까가 내내 미덥지 않았던 영군, 자신이 맡았던 그 사건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의혹으로 인해 손가락과 남편을 잃은 한태주, 그들은 각자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수사팀의 일원이 되거 과거를 헤집는다. 

그렇게 <왓쳐>는 수면 위로 올라온 과거 사건의 범인들을 하나씩 찾아나선다. '비리'와 가장 어울릴 듯한 장해룡(허성태 분)에 대한 의혹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뜻밖에도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의심'의 시선을 팀장 도치광에게로 향한다. 영군이 잊었던 그날 세탁기에 아버지의 잠바를 넣은 사람,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듯하지만, 비리의 핵심인 재벌 회장의 '개'라던 사람, 심지어 장해룡은 대놓고 말한다. 자신에게 향했던 그 의혹의 화살, 그 방향을 바꾸어 놓고 보면 도치광이 범인인게 자명하다고. 

경찰 내부의 비리를 밝히겠다는 수사가,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덮으려는 또 다른 범행일 수 있다는 의심은 <왓쳐>에서 매혹적으로 풀어내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하나 '단선적인 캐릭터'가 없다. 모두가 의뭉하게 보여지는 것과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다.

10회, 비로소 백송이 사망 위장 사건을 통해 도치광의 속내가 드러나고 혐의에서 한 발 바껴선다. 하지만 도치광이 비껴서자마다 나머지 인물들이 또 다른 의뭉스런 속내를 드러내며 용의자의 선상에 줄을 선다. 이젠 영군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 했던 한태주조차 믿을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왓쳐>, 결국 시청자들은 애달복달하며 다음 회를 기다린다. 


 

 

원작과 다르네? - <지정 생존자> 
이미 <넷플릭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 <지정생존자>가 리메이크된다 할 때 그 자체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유고 시의 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가 과연 다른 조건의 제도를 가진 한국적 상황에 어울릴 것인가에서 부터, 시즌 1 중반부에 이르러 이미 드라마적 동인이 한결 떨어졌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을 때 과연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임을 <지정 생존자>는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정치적 상황을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긴장감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치환시키고, 거기에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이야기를 우리 나라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재외 동포의 문제로 풀어내며 '한국적'인 상황에 걸맞는 서사로 안착시키고 있다. 

특히 키퍼 서덜랜드라는 배우에 의지했던 대통령 캐릭터는 지진희를 통해 때로는 답답한 듯하지만 북한 잠수함 위기에서 데이터를 차분하게 분석해 상황을 돌파하듯 학자 출신의 원칙적이면서도 강직한 모습을 부각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거기에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미드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얻었던 '범인'과 배후와 달리 한국판 <지정 생존자>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에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백령해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응분의 '존중'을 받지 못해 뒤틀려버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하여 개연성을 살림은 물론,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드와 달리, 그들 뒤에 합참의장의 권한 조차 좌지우지할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대통령의 최측근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드라마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위기의 순간, 박무진 대통령 권한 대행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탱해줬던 한주승(허준호 분)과 차영진(손석구 분), 과연 그들이 테러의 배후일까? 그 의혹을 풀어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지정생존자이다. 

 

 

누구도 범인일 수 있는? -미스터 기간제 
상위 1%만 가는 명문 사학 천명 고등학교, 그곳에서 여고생 정수아가 살해당하고 같은 반 남학생 김한수가 용의자로 몰렸다.  수임받은 사건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송하 로펌의 에이스 기무혁은 로펌 대표로 부터 적당히 형량을 조절하라는 청탁을 받고 사건에 임한다. 하지만 로펌 대표의 말과 달리 욕심이 앞섰던 기무혁은 법정에서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 이를 위해 정수아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스폰'을 접대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다 김한수의 반발, 이어진 자실 시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간제 교사 기강제로 천명 고등학교에 잠입한 기무혁, 명문 사학이라는 번드르르한 외양과 달리, 학교 안에서는 상위 1% 학생들의 커넥션과 갑질이 횡행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사회 배려자(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차별이 게임처럼 벌어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학교 옥상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사배자 안병호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폭력 게임을 시작으로 <미스터 기간제>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학폭을 둘러싼 학생들의 갑을 관계와 학교 교육은 서비스라는 마인드로 편법과 부당 학사 관리를 자행하며 돈있고 권력있는 학부모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재단의 비리가 쌍두마차처럼 벌어지는 '정글'같은 천명고를 기간제 교사로온 기강제를 통해 조명한다. 

그리고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그를 통해 상위 1%라는 학교 안 권위에 기대어 정수아를 괴롭혔던 학생들의 민낯을 한 명씩 파헤쳐가는 동시에, 천명고 행정실장 이태석(전석호 분)을 중심으로 정수아의 스폰, 그 실체에 다가간다. 실체에 다가갈 수록 모두가 '공범자'이자,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명문 사학, 그 전모가 드러나는 '파멸'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스카이 캐슬> 등을 통해 비리로 범벅된 명문 사학의 사례는 이제 '클리셰'와도 같지만, <미스터 기간제>는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가 풀어내는 사건의 시점과 거기에 더해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학생과 학교 측 관계자의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장르물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by meditator 2019. 8. 5. 16:35

새로운 수목 드라마들이 시작되었다.  일찌감치 9시에 포문을 연 건 로맨스 사극이다.  조선 시대 연애 소설가가 된 대군에 여자 사관이 된 당시의 세상 관심 많은 노처녀, 조선 시대에는 불가능할 것같은 이 캐릭터들을 내세워 <솔로몬의 위증>팀의 강일수, 한현희 피디와 김호수 작가가 다시 뭉쳤다.  티저만 보면 <성균관스캔들>이요, <해를 품은 달>같다. 앞서 <봄밤>이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종영한 상황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펼쳐보기도 전에 '사극'이라는 장르에 맞지 않는 주연 배우의 연기가 발목을 잡으며 방영 2회차 만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만다. 

kbs2는 손현주, 최진혁 두 배우을 앞세워 <추적 60분>을 10여년간 쓴 내공의 정찬미 작가가 <우리가 만난 기적>의 조웅 피디와 함께 장르물 <저스티스>로 돌아왔다. <추적자> 이후 믿고 보는 장르물의 배우가 된 손현주가 이번에는 '악마'같은 재벌이 되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악'과 손을 잡은 변호사로 최진혁이 나섰다. 배우들의 면면은 믿을만한데, 이젠 법정을 배경으로 재벌과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신선하지 않은게 문제다. 결국 그 '신선하지 않은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인데, 주연 배우의 연기가 아쉽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던 <단 하나의 사랑>을 선택했던 시청자들에게 <저스티스>의 요릿법은 진부했을까? 아니면 난해했을까? 안타깝게도 첫 방의 6%대 시청률은 2주차에 바로 4%대로 떨어지고 만다. (1회 6.1%, 4회 4.8%,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닥터 탐정, 산업 안전 의학 장르물의 선방 
뜻밖에도 방영 2주차만에 선두 자리를 탈환한 건 sbs의 <닥터 탐정>이다. <리턴>의 박진희, 봉태규라지만, 상대작들에 비해 캐스팅이 제일 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 심지어 전작 <절대 그이>는 2%로 소리소문없이 종영했다 할 만큼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기에 이른바 전작의 혜택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누가 나오느냐, 어떤 소재이냐를 떠나 잘 만들고 볼 일, 새로 시작한 수목 드라마 중 그나마 서사와 연기 등  완성도 면에서 나았다고 평가를 받는 <닥터 탐정>의 1위는 그래서 드라마의 존재론을 역설한다. 

<저스티스>가 <추적 60분>작가라면, <닥터 탐정>은 <그것이 알고싶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다큐 연출에 잔뼈가 굵은 박준우 피디의 첫 드라마 도전이다. 그리고  박피디와 함께 산업  의학 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사회 고발 메디컬 수사극>으로 첫 도전을 했다. 

그렇게 '다큐'의 경험이 풍부한 제작진답게 <닥터 탐정>의 장기는 바로 생생한 현실감이다. 굳이 4회 말미에 덧붙인 '에필로그'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알고싶다>등을 통해 쌓인 '현실'의 결과 산업 의학 전문의만이 그려낼 수 있는 UDC, 미확인 질환 센터의 '닥터 탐정'들의 미시적 세계가 '드라마'를 통해 풍성하게 그려진다.

덕분에 어쩌면 또 하나의 <검법 남녀>? 인가 혹은 또 한편의 재벌 비리 드라마인가 싶었던 드라마는 산업 현장이라는 현실감을 살려내며 새로운 장르물의 탄생을 예고했다. 특히 3,4회 방영된 지하철 하청업체 재해 사망 사고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구의역 사망 사고 사건을 복기하게 하는 한편, 거기에 그들을 산업 재해의 피해자로 되도록 만드는 각종 불법 유기 용제의 오남용을 강요하는 하청업체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해낸다. 

거기에 중간에 투입돼음에도 불구하고 퇴장한 배우가 떠올려지지 않을 만큼 열연으로 연기력을 증명했던 박진희가 한때 TL그룹 며느리였지만, 이제는 딸조차 빼앗긴 '닥터 탐정'으로 돌아왔다. 천재적인 능력에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직업 환경 전문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런 능력은 1회, 기업이 정부의 법망을 피해가는,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깊은 밤 모두가 퇴근한 현장에 도둑 고양이처럼 등장한 닥터 탐정 도중은은 셜록급으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산업 안전의 꼼수를 전파하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산업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던 도중은이 그녀를 따스하게 대해주었던 이웃 정하랑(곽동연 분)이 TL메트로 하청 업체 직원으로 과도한 업무와 산업 재해로 추정되는 병에 걸린 것을 목격하고 이기적인 태세를 전환한다. 결국 그 병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로 하랑이 숨을 거두고 그의 죽음을 놓고 TL이 갖은 꼼수를 부리며 사건을 은폐하려 하자 도중은은 떨쳐 일어선다. 자신의 딸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거절했던 UDC의 팀장 자리를 수락한다. 

다만 그 어떤 드라마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산업 현장과 다큐의 현실감이 <닥터 탐정>의 장점이라면, '다큐'에 '감정'만 불어넣는다고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닌 법, 현실보다도 더 현실같은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드라마가 불을 지핀 '신파'가 때로는 드라마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며 '입봉'의 과욕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잠시 출연했음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곽동연을 비롯하여 <리턴>에서도 그랬지만 캐릭터로 승부하는 봉태규와 함께 박지영, 류현경 등 '한 연기'하는 출연진들의 연기가 그런 아쉬움을 보완해 주지 않을까.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 
돈을 위해 산업 안전을 이용하던 닥터 탐정이 한 청년의 죽음을 기화로 정의의 산업 안전의 수호자로 변신했다면, 여기 승리를 위해서 '편법'쯤이야 껌처럼 여기던 대형 로펌의 간판 변호사 기무혁(윤균상 분)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기간제 교사로 변신한다. 

자신이 소속된 로펌 대표가 던져준 사건, 천명고의 한 여학생이 사고를 당하고 사고 현장에서 잡힌 남학생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는데, 로펌대표는 적당한 선에서 형량을 정하고 마무리하라고 했는데, 의욕이 앞선 기무혁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나 법정에서 그의 변론에 뜻밖에도 용의자였던 남학생이 부정을 하고 심지어 옥상에서 추락하며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무혁은 변호사로써 윤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처분가지 당하게 된다.  

보육원에서 자라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자신조차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기무혁이 갖은 고생으로 얻게 된 대형 로펌의 변호사, 그는 그렇게 얻은 것을 한 순간에 허망하게 허물어 뜨린 천명고 사건, 이제 여학생의 죽음으로 살인 사건이 된 사건에 의혹을 느끼는데, 그 의혹을 안고 찾아간 여학생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천명고 학생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그로 하여금 기간제 교사라는 모험의 계기가 된다. 변호사 출신의 명석한 기간제 교사와 위악적인 학교, 학생들간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장르물의 신선한 지평을 연다. 

알고 보니 로펌의 대표 아들이 다니는 사립고, 거기에 학교의 주인이 '재단'이라는 신참 기간제 교사 기무혁의 아부에 통쾌하게 호응하는 재단 이사장, 그리고 해도 되니 한다며 대놓고 가난한 아이를 폭력적인 싸움에까지 이용하며 '왕따'시키는 아이들, 거기에 어른 뺨치게 위선적인 학생들까지, <솔로몬의 위증>의 암울한 사립고와 <스카이 캐슬>의 위악적인 교육 현실이 다시 한번 소환되며 거뜬히 2회만에 두 배의 시청률로 뛰어올랐다. (1회 1.814%, 2회 2.413% 닐슨 코리아 전국 케이블 기준)


by meditator 2019. 7. 19. 15:59

<비밀의 숲>이 방영된지 햇수로 벌써 2년여, 하지만 아직도 최근에 가장 좋았던, 혹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꼽자들면 <비밀의 숲>을 내미는 시청자들이 많다. 바로 그 <비밀의 숲> 안길호 피디가 돌아왔다. 6월이지만 올해처럼 벌써 더웠던 2017년 그 열기를 서늘하게 식혀주며 우리의 심장을 울렸던 이야기, 그래서 <왓쳐>를 보며 설레발처럼 오프닝부터 어쩐지 <비밀의 숲> 냄새가 나는 거 같지 않나라고 설레이는 시청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밀의 숲>이 조승우와 배두나라는 절묘한 조합못지 않게 한석규에 김현주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기대'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왓쳐를 이끄는 
<비밀의 숲> 1회, 서부지검 형사부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은 동료 검사들의 스폰서였던 박무성이 검사들의 비리를 제보하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그는 죽어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검찰 비리의 숲, 그 숲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도록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황시목이라는데 <비밀의 숲>을 본 시청자라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왓쳐>에는 도치광(한석규 분)이 있다. 뇌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이유 감정계에 이상이 생겨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만, 원리원칙대로만 처리하여, 그 이유로 동료 검사들에게 왕따가 되었던 황시목과 그닥 다르지 않게, 동료 경찰들을 잡아먹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동료들에게 '경원'시 되는 도치광, 그 역시 '감찰반'이라는 직무의 특성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런 도치광의 눈에 들어온 김영군, 그는 15년전 도치광의 손으로 체포한 선배의 아들이다. 눈 앞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던 아이, 그는 커서 직업 군인이 되었고, 이제 그 잘 나가던 군인의 길을 마다하고 경찰이 되었다. 여전히 그를 보면 15년전 그 사건을, 아버지를 떠올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가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도치광은 어느새 그를 자신의 팀원으로 여긴다. 

<비밀의 숲>을 통해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전형으로 등장했던 배두나가 분했던 한여진, 마치 백지 위에 경찰과 정의라는 두 단어만 씌여있다는 듯이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뚜벅뚜벅 거침없이 나아갔던 한여진에 대한 기억은 접어두고, 이제 <왓쳐>는 도대체 무슨 색일까 알 수 없는 색채를 지닌 여성 캐릭터로 또 한 명의 한씨, 한태주(김현주 분) 변호사를 내세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이들 세 사람은 <비밀의 숲>처럼 '사건'을 통해 조우한다. 범인을 쏜 교통 경찰, 동료 경찰을 집요하게 쫓는 감찰반, 그리고 돈만 주면 어떤 사건이라도 맡는다는 변호사, 이들은 구속된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범인을 두고 엇갈리며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이들 세 사람의 공조아닌 공조 수사를 통해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사건이지만, 그 뒤에 비리 경찰과 그 경찰에 의해 역으로 쫓기는 범인이라는 겉과 속이 다른 사건이 있음이 드러난다. 

박무성이라는 검찰 스폰서의 죽음으로부터 뒤엉켜 버린 검찰 비리 숲의 실타래가 풀렸듯이 1,2회에 걸쳐 벌어진 손병길(정민성 분) 사건을 통해 경찰 비리라는 또 다른 거대한 경찰 비리 숲의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왓쳐>는 <비밀의 숲>과 다른 뉘앙스의 드라마이다. <비밀의 숲>이 개인적인 '원한'없이 직업적인 정의만으로 사건에 뛰어든 두 사람 황시목과 한여진을 통해 직업으로서의 정의,  그래서 정의 그  원칙에 대한 '인간 보편'의 자세에 대해 논했다. 물론 <왓쳐> 역시 감찰반, 그리고 이제 손병길 사건 수사 덕에 열게 된 '비리  수사팀'을 이끌어갈 헌신적인 팀원들, 하지만 그 팀원들의 면면이 간단치 않다. 

언뜻 서로 어울리지도, 서로 믿지도 않는 세사람, 하지만 이들은 과거 김영군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통해 풀어내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을 목격하게된 김영군, 사람들은 도치광은 아버지를 잡아넣은 놈이라 하지만 김영군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죽일 뻔한 살인마이다. 그래서 손병길을 고문하는 형사를 보고, 과거 자신의 경험에 휘말려 주저앉고 말듯 여전히 그는 그런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며 15년전 그날의 어린 소년으로 돌아간다. 손병길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딸에게 범죄자, 살인자로 남지 말라며 설득한다. 

그리고 15년전 김영군의 아버지를 잡은 도치광은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김영군의 아버지를 눈감아주면서 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날아가는 걸 목격했다. 오늘의 그가 동료들 눈총을 받으면서 집요하게 경찰 비리를 쫓는 건, 바로 그 '비리'가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다는 '정의감'에서이다. 

거기에 한태주가 개입한다. 아니, 감찰반과 불과했던 팀을 비리수사팀으로 확대 승격시켜준 장본인, 검사 시절 의욕적으로 개입했던 김영군 아버지의 사건 즈음에 납치당해 손가락을 잃을 뻔하며 고문을 당했던 '트라우마', 그 '트라우마'의 실마리를 손병길 살해 현장에서 찾은 그녀는 아직도 그녀를 혼돈에 빠뜨리는 그 '과거'를 찾아 비리검사팀의 외부 고문을 자처한다.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사건으로 만나게 된 '과거 악연'의 세 사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힌 과거로 부터 길어올려져 현재 경찰 내부의 비리라는 깊은 뿌리를 가진 '거악'에 도전한다. <비밀의 숲>에서도 그랬지만, 서둘러 시선을 끄는 패를 내보이기 보다는 포커 페이스처럼 가지고 있는 패를 하나씩 내보이며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는 듯 차근차근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왓쳐>, 이제 다시 이 영름 이 더위를 저 집요한 거악의 뿌리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의 서늘함으로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9. 7. 8. 15:33

<지정생존자>는 '세계적 플랫폼' 넷플릭스 추천작으로 유명한 미드이다. 여기서  Desinated surviver, 지정생존자란  미국 대통령, 부통령, 정부 각료들이 취임식 등의 국정 연설 동안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안전 시설 내에 대기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지정 순위 내 한 명을 뜻한다. 각종 자연 재해, 테러, 핵 공격 등으로 대통령 및 대통령 계승자가  사망하는 비상사태 시에도 대통령 직을 계승해 정부를 유지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이다. 미드 <지정생존자>에서는 좌천당해 지정생존자로 tv로 신년 국정 연설을 보게 된 대통령이 된 서열 계승순위 18위 중 13위의 주택도시 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 분), 의회 의사당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 관료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대통령이 되며 미드 <지정생존자>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온 우리의 <지정생존자>는 어떨까? 미드와 달리, 앞에 수식어 60일이 붙었다. 그건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 도시 개발부 장관은 우리나라로 오면 환경부 장관이 된다. 

 

 

이상주의자라 짤렸던 대통령 권한대행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출신의 박무진(지진희 분), 환경 과학회 미세먼지 분과에 소속된 만큼 학자 출신의 그는 환경부 장관으로서 대기 오염 문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입각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정치' 앞에서 무력했다. 미국과의 자동차 협상 상 과정에서 박무진은 드러난 수치와 달리 미국의 의견을 들어주면 그저 몇 백대가 아닌 몇 백만대를 허용하게 되는 결과가 되며, 그는 곧 우리 대기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이유로 협상을 반대하지만 못이기는 척 봐주라는 대통령의 입장 앞에 사직서를 내밀게 된다. 

임명식에서 대통령에게 받았던 불편했던 구두를 벗어놓은 채 홀가분하게 자신이 몸담았던 대학의 후드티에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아들과 딸을 데리러 갔던 그는 국회의사당의 폭발 사고를 목격하고 그곳에 견학을 간 딸의 생사를 확인하러 의사당으로 갔으나 자신을 데리러 온 의문의 사내들에게 끌려가다시피 다시 청와대로 가고 그곳에서 이제 자신이 60일 시한부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미드와 다르게 시한이 정해진 대통령 권한 대행, 하지만 다른 건 이것만이 아니다. 미드가 자국 내의 정치 세력 사이에 끼인 권한 없는 대통령이라는 설정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로 온 <60일, 지정생존자>는 강대국, 그 중에서도 특히 '우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분단된 남과 북이라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고민을 갈등의 주요한 내용으로 등장시킨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역학 관계에 의거한 갈등 구도 
앞서 국회의사당에서 사망한 양진만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목전에 둔 채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제 그 평화 협정을 추진했던 대통령이 사라진 상황,  비서실장 등 양진만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싶어하지만 설상가상 북한잠수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군부와 국정원 등의 실세들은 기존의 '북한 위협론'을 내세우며 선제 공격 등을 불사하며 위기를 증폭시키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프콘'을 강요하며 전시 작전권을 들고 나서는 '미국'의 존재는 강력하다. 

국가안전 보장 회의의 긴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채 화장실로 뛰쳐나와 구토를 하던 사람,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하겠다는 사람, 그런 그에게 양진만 비서실장은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의 붕괴를 막는 '시민'의 자격으로 권한 대행의 자리를 지키라고 한다. 모든 일은 자신을 비롯한 기존의 비서실팀이 할테니. 결국 그를 정치 경험 6개월짜리 뭣도 모르는 애송이로 취급하는 건 죽은 대통령의 수족이나, 군부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셈. 

하지만 '선무당'이 되어버린 박무진은 예의 미국과의 협상 자리에서 본의였는지 의도적인지 모호했던 미국 협상단에게 미세 먼지 패트병을 뒤집어 씌워 국민들의 속을 확 뚫어버렸던 그 '고지식한 방식'으로 북한 잠수함 해프닝을 해결한다. 

정치적 방식에 대해 사직서를 내밀만큼 원칙적이었던 환경학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으로 접근하는 북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예의 '데이터'에 의거한 추적으로 잠수함의 침몰을 예견하고 딸의 생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북한을 설득한다.

즉 <60일, 지정생존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격돌하는 청와대, 군부, 미국 등 난립하는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그가 환경부 장관일 때 해왔던 그 '학자적 양심'과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의 마음, 그리고 양진만이 부탁했던 '시민'의 입장이라는 '원칙'의 인물 박무진을 드러낸다. 고지식하지만 원칙적인 인물,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가진 캐릭터로서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 풀어가는 '원칙'의 정치.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 풀어가는 권력의 이야기, 가장 기본이면서도 막상 현실로 오면   배제되는 그 '원칙'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60일, 지정생존자>가 끌어들인다. ''
 

 


첫 회 3.383%(닐슨 코리아 케이블 전국 기준), 화제의 미드 리메이크 작으로는 박무진 권한대행만큼 갈 길이 멀다. 첫 방송 cg까지 활용하며 국회 의사당 폭발 사고로 시선몰이가 약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박무진이란 캐릭터에 대한 혹은 양진만이라는 대통령의 처지가 이젠 시청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미 선점한 <검법남녀> 등의 분전이 컸던 것일까?

하지만 예단은 이르다. 늘어졌던 박무진의 청와대 입성은 이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국가 안전보장회의에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북한 잠수함 사건을 해결하는 2회에 들어 한층 현실감있는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였다. 과연 애송이 권한대행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듯 ,<60일, 지정생존자>가 최근 지지부진한 tvn 드라의 구원투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7. 3. 04:34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16회 시청률 5.517%, 2018년의 화제작 <라이프 온 마스> 16회 시청률이 5.851%, <손 the guest>가 4,073%였으니 이만하면 올해 상반기 내내 저조했던 ocn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최근 수작이라 평가받는 <구해줘2>가 최종회 3.56%에, 동시간대 전작들 <트랩>, <프리스트>, <킬잇> 등이 고전한 것에 비하면 월등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런 '화제성'과 달리 <보이스3>를 충성스럽게 보아온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청률의 수치와 달랐다. 주인공 도강우(이진욱 분)가 죽는 절정의 씬이 담긴 영상에 달린 폭발적인 댓글은 '분노'로 일관한다. 도대체 어떤 결론이길래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도강우가 죽어서?
시청자들의 분노는 주인공 도강우가 죽어서 일까?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런데 그건 그저 주인공이 죽어서 오는 '새드 엔딩'에 대한 허무함이나 절망감과는 다르다.

도강우 형사는 강권주(이하나 분) 센터장과 함께 <보이스> 시즌2에 이어 시즌 3를 '공조 수사'로 이끌어온 주인공이다. 시즌 1에서 출동팀장을 맡았던 무진혁 팀장이 아들의 치료를 핑계로 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하차하고 새로이 등장한 도강우 형사. 시즌 1의 무진혁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아내가 죽임을 당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사건의 해결에 돌진했었다. 하지만 시즌2의 도강우 형사는 그와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손목이 잘려나간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배 형사, 그 형사의 죽음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한 것이다. 

경찰대 출신의 탁월한 수사력을 가졌지만 사회 생활은 제로에 가까운 일명 '또라이 알파고', 그런 그가 이제 파트너 나형준 형사의 살해범으로 의심받고, 특히 그의 형인 나형수 과장은 사사건건 도강우의 발목을 잡는다. 동료들의 의심을 넘어선 적대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저돌적으로 다가섰던 도강우, 하지만 싸이코 살인마 방제수를 자꾸만 도강우를 도발한다. 너의 '본성'을 숨기지 말라고, 그와 함께 도강우 뇌의 회로는 자꾸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도강우의 자기 한계에 대한 처절한 사투, 그건 시즌3로 오면서 더욱 극심해 진다. 통증을 넘어서 잠깐인지 며칠인지 기억을 잃는 '블랙 아웃'에 시달리며 도강우는 점점 잃었던 기억을 되살려 내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진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였다던 어린 소녀 미호의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즉 자기 자신이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다는 '확신'에 다가선다.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종종 거울 속 자신의 형체가 일그러져 나타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사건 현장에서 본능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강권주 센터장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던 도강우,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본능적 욕망에 줄기차게 거부하며 그를 상대하여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의 집에는 그가 '블랙 아웃'되는 동안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자해'도 불사했던 그, <보이스> 시즌2,3는 '닥터 파브르'라는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여 거래하는 엽기적인 혐오 범죄 단체와의 전쟁이지만, 또 한편에서 주인공 도강우가 자신의 '사이코패스'적 본능과의 처절한 싸움의 과정이었다. 

 

 

바로 그런 '싸움'의 과정을 지켜봤기에 <보이스> 시즌3의 엔딩에서 도강우 형사가 형 카네키의 목을 그의 살인 도구인 와이어로 죽이고 경찰 특공대의 총에 맞아서 죽게되는 시청자들은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시즌 4를 위해 예비한 쿠키 영상에 등장하여 저격 총을 챙겨든 방제수가 도강우를 저격했다는 의심까지 할까?

즉,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두 시즌을 내내 자신을 학대해왔던 주인공이 퇴장의 즈음에 스스로 그 '살인'을 기꺼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더구나 그 '살인'의 대상이 그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로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극대화된 그의 형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두 시즌 내내 자신의 성향에 저항했던 그 사투가 단 한번의 미소도 없이, 살인마와의 사투가 아니라, 동료들의 총격에 의한 '죽음'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를 응원하며 지켜보았던 시청자들에게는 허무를 넘어선 황망함과, 더불어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그 우물이 탁해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있다는 강우 아버지의 '우물론'으로 대변되는  <보이스>시즌2,3가 끌고왔던하나의 주제 의식의 붕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다수의 장르물이 사이코패스를 결정론적으로 다루었던 것과 달리 도강우 캐릭터는 자신의 그런 본성에 대한 절박한 싸움을 통해 다른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작가는 짧은 순간이나마 도강우의 유언을 통해 그 죽음의 개연성을 설득하고자 한다. 점점 심해지는 자신의 이상 증상, 그래서 강우는 '형같은 괴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만 인간이면, 되는 방식으로 '괴물로 죽고 사람들이 날 잊으면 된'다며 특공대의 총구에 자신을 내민다. 하지만 마지막 회 시간에 쫓기는 듯한 강우의 죽음은 작가가 원하는 개연성의 설득 대신, 단 한번도 행복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자신을 던진 주인공의 허무한 개죽음으로 다가온다는데서 제작진과 시청자의 동상이몽으로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어설픈 설정이 낳은 허무한 엔딩 
그리고 이건 시즌3 내내 되풀이 되었던 <보이스>의 어설픈 상황 설정으로 부터 기인한 바가 크다. 우스개 소리로 매회 한 번 이상씩 이해하고 봐주려고 해도 어거지로 만든 상황이 범죄적 상황을 도발해 왔던 것이 <보이스>의 관행 아닌 관행이었다. 

16회, 살인마 카네키와 강권주 센터장이 대치한다. 두 사람 다 총을 소지하고 있는 상황, 카네키는 자신의 발밑에 총을 맞고 신음하고 있는 박형사를 볼모로 강센터장이 총을 내려놓으라 협박한다. 그런 협박을 받기 전에 먼저 강센터장이 자신의 총으로 카네키를 쐈다면? 물론 드라마가 더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강센터장은 순순히 총을 내려놓으며 볼모가 된다. 

이런 식이다. 앞서 카네키가 죽인 부인에 대한 유력한 증거를 가지고 온 일본의 모델을 보호하고자 온 강센터와 도강우 팀장, 하지만 카네키에게 배달되어온 폭발물을 조사한답시고, 보호해야 할 증인인 일본인 모델을 홀로 옆방으로 보낸다. 왜냐하면 그녀 혼자 그 방에 들어가 살인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어거지 설정은 거의 매회다시피 <보이스>에서 등장했고, 마지막 도강우의 죽음 상황에서도 강권주를 구하기 위한 카네키와의 사투 과정에서 우발적인 죽음이 아니라, 뜻밖에도 경찰 특공대가 그의 머리를 정조준하여 쏘아 죽이는 말도 안되는 죽음의 상황을 맞이하도록 만든 것이다. 

<보이스>는 어떤 드라마? 
또한 결국 주인공을 죽이기 위한 어거지 설정으로 이어진 작위적 설정에 이어 <보이스> 애청자들이 시즌 내내 가장 안타까워했던 것은 바로 <보이스>라는 시리즈 본류의 정체성이다. 

도강우라는 사이코패스 적 성향을 지니면서 그와 싸우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되면서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서사적 고리였다. 그리고 그 고리는 그의 형이 시즌3 최종 빌런으로 등장하면서 당연히 그토록 외쳤던 '코우스케'의 악연의 고리를 풀어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시즌 3를 화려하게 열었던 일본 료칸 사건에서 보여진 남들과 다른 탁월한 듣는 능력을 가진 강권주 센터장을 비롯한 골든 타임팀과 동물적 수사력을 가진 도강우 형사의 '공조 수사'라는 <보이스> 본연의 설정이 취약해 졌다는 것이다. 시즌2의 마지막 회 사고로 인해서 얻은 청력의 상실 때문이라기엔 강권주 센터장의 존재감이 이전 시전에 비해 한결 위축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즌2에 이어, 시즌 3에서 활약한 나홍수 과장의 경우, 시즌2에서는 내내 강우를 미워만 하다, 시즌3에서는 내내 강우를 안타까워하다 희생되면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등 출연진들의 비중과 활약이라는 면에서도 아쉬운 점을 남긴다. 그만이 아니다.  의혹은 많지만 차마 해결할 시간이 없었는지 '의심'으로만 남긴 설정들은 다음 시즌을 위한 것일까? 

그럼에도 16회 엔딩, 의사는 강권주 센터장의 귀가 이전처럼 회복되어 가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소머즈' 저리 가라 할 만큼의 남들과 다른 청력을 가진 강권주 센터장과 골든 타임팀의 공조 수사는 시즌2, 3의 결말을 허무하게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심지어 쿠키 영상으로 시즌2의 빌런 방제수의 건재함을 보였으니 안타까운 와중에서도 시즌4에 대한 기대를 하게되니 이 정도면 마력의 <보이스>라 할까? 하지만 부디 다음 시즌으로 돌아온다면 제발 개연성있고 짜임새 있는 서사와 사건으로 돌아오시길. 

by meditator 2019. 7. 1. 15:04

마을도 수몰되고, 마을 사람들도 수몰되었다,  '사이비'에.  댐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반목하던 주민들, 그들을 '통일'시킨 건 뜻밖에도 종교였다. 마을 청년 병률의 집에 나타나 법에 무지한 마을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마을에 '신앙공동체'의 터를 일구었던 최장로, 최경석(천호진 분), 그가 내세운 성철우 목사(김영민 분)는 '안수 기도'로 기적을 행했고 그 기적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수몰 예정 지구로 지정되어 받은 보상금을. '천국'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를 일굴것이라던 그들의 기대는 최경석이 숨겨놓은 돈가방 속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기적이 한낱 사기꾼의 '협잡'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되고 폭주한 성목사는 최경석의 눈앞에서 그 '돈'을 태웠다. 교회와 함께, 그리고 자기 자신도. 뒤늦게 나타난 월추리 사람들 교회와 함께 불타오르는 자신의 전재산 앞에 발을 동동구르며 자신을 '사이비'로 부추긴 동네 주민들의 멱살을 잡고 난리를 치지만 이미 모든 것은 화염이 휩쓸어 가버린 뒤였다. 그렇게 '사이비'에 현혹된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사이비에 현혹되어 죽음 보다도 더한 대가를 치룬 사람들
  '사이비 종교 집단'을 전면에 내세운 <구해줘 1>과 달리 지난 5월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구해줘 2>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에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이비>는 이미 2014 한국 평론가 협회를 비롯하여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 및 2015 쟈그레브 국제 에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소름끼치는 명작으로 회자된 작품이었다.

16부작의 드라마로 돌아온 100여분 남짓의 에니메이션, 그 달라진 서사의 구비를 위해 서주연 작가와 <도어락>의 이권 연출은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 '월추리'를 배경으로 '사이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덕분에 드라마가 중반을 지나서는 13,4회차에 이르기까지 드라마는 순진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비'의 맹신도가 되어가는가를 설득하기 위해 이른바 성목사를 앞세운 최장로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과정을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내는 '고구마'의 전개로 시청자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16회, 초반 10분만에 '신앙 공동체'를 일구자며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운 교회도, 그 교회를 만드는데 앞장선 최장로도, 성목사도 죽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비규환에 빠진 마을 사람들, 드라마는 16부의 시간을 이끌어온 주인공들인 '사이비'에 현혹된 사람들이 받은 '현실의 벌'로 마무리된다. 

 

 

3년후 파출소장이 신고를 받고 찾아간 집에서 붕어(우현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을 계기로 파출소장이 찾아나선 월추리 사람들, 마을에서 그래도 대우받던 이장은 이제 그가 용돈을 주던 딸한테 용돈을 받아 술을 사마시는 처지가 되었다. 그 마저도 자신이 준 돈으로 술을 사마시면 이젠 용돈도 없다는 악다구니를 들으며. 그런 그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집을 나갔다.  양계장은 이제 닭을 키우는 대신 주인의 지청구를 들으며 빚을 갚기 위해 치킨 배달 오토바이를 몬다. 그 밝았던 대구댁은 얼굴에 갈짓자를 그린 채 이제 식당에서 일한다.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했지만 그들은 붕어의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가 없다. 보상금을 날려먹은 자신의 처지에 어디, 보상금은 물론 빚마저 진 처지에 어디 남의 장례식이나 다닐 깜냥이 아니라, 아니 어쩌면 살아있지만 '사이비'에 빠진 처절한 대가를 치루며 사는 자신들의 처지가 붕어와 다를 바 없다 여겨져서일 지도. 
그렇게 드라마는 '사이비', 그 결과물을 참혹하게 그려내며 시즌 2를 마무리한다. 

아니 어쩌면 <구해줘2>는 종교의 그릇에 담겨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의 '사이비'같은 신념에 호도되어 자신을 어떻게 망가뜨려가는지이 꼽 월추리 사람들만큼의 사연으로 그려내었다. 그래서, 종교였을 뿐이지, 그것이 '도'였든, 혹은 또 다른 신념이었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확증 편향'에 의거 저렇게 자신을 늪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만들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음을 울린다.

<구해줘2>를 빛낸 배우들 

목사; 뭐 찾으시냐고?
장로; 보면 몰라 김민철이 이 새끼가 이래놓고 갔잖아
목사; 상관없는데? 내일 신앙공동체하고 교회 자리 새로 알아볼껀데?
장로; 너냐? 너가 내 돈 갖고 갔냐? 내 보상금 니가 갖고 갔냐고?
목사; (웃음)
장로; 이 새끼 봐라? 얼굴은 순진하게하고서 이 새끼가 내 돈을 갖고 튀어? 이 새끼가 하자있는 새낀줄 알았는데 이 정도인 줄 몰랐네? 너 미쳤지?
목사; 미친 건 너지? 그러니까 지선이 애비로 나를 협박했겠지. 아니 내가 그런 걸로 겁먹을 줄 알았어?
장로; 그 새끼도? 니가 죽였어?
목사; 으으으으응
장로; 나 이새끼가 주 아버지 믿는 새끼가 살인을 하네? 와 이 새끼 완전 쓰레기네? 이거
목사; 쓰레기는 너지? 그 자식은 심판 받았거든

 

 

15회, 드디어 서로의 존재를 알고 교회에서 마주친 최장로와 성목사, 두 사람이 서로를 쓰레기라 비아냥거리고 이기죽거리는 이 장면이야말로, <구해줘2>에서 가장 빛나는 씬이다. 사이비의 산을 넘어 스스로를 늪에 빠뜨린 월추리 사람들의 서사가 씨실이었다면 그 씨실 위에 '사이비'의 그림을 그려내며 드라마의 가속을 붙여낸 건 바로 '사이비'의 주범 최장로와 종범 성목사였다. 

점잖은 법대 교수로 등장하여 대번에 협잡꾼으로 얼굴을 바꾸며 천연덕스럽게 월추리 주민들과 목사를 눙치고 등쳐먹는 사기꾼 최경석, 이미 2018년 <황금빛 내 인생>으로 kbs 연기 대상을 거머쥐며 '연기'에 있어서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배우 천호진임에도 새삼 그를 '갓호진'으로 연호하게 만들었던 사기꾼 최경석의 캐릭터는 16부작 <구해줘2>의 결정적인 동력이다. 

그런 천호진이 분한 최경석이 주동력으로 <구해줘 2>를 이끌어 가는 가운데, 원작에서 딸과 아내를 학대하는 나쁜 아버지의 캐릭터가 드라마로 오며 나쁜 오빠로 변화된 캐릭터를 맡은 김민철 역의 엄태구는 <구해줘2>의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이미 < 밀정>< 택시 운전사>를 통해 단 몇 씬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조연 연기자였던 엄태구는 이제 명실상부 주연 배우로서 드라마을 이끌어 내는데 손색이 없는 존재로 자신을 드러냈다. 동생마저 한번도 오빠라 부르지 않았던, 운이 나빴지만 그 나쁜 운을 자신의 악다구니로 더 나쁜 사람이 되어 버텼던 김민철에 대한 연민은 전적으로 엄태구 배우의 몫이다. 

하지만 정작 <구해줘2>를 통해 가장 돋보인 배우를 꼽으라면 성목사 역의 김영민 배우가 아닐까?  이미 연극계에서는 내노라하는 배우인 그가, <나의 아저씨>에서 남의 아내를 옅보는 찌질한 갑 도준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이제 스스로 자신의 기적에 함몰되어 파멸의 길을 걷는 확신범 성철우로 만개했다. 

물론 천호진, 엄태구, 김영민만이 아니다. 결국 안수 기도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죽어간 아내의 시신 곁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가 행복할 것이라며 기도를 올리는 칠성 아재의 소름 끼치는 기도 연기는 원작에서 김민철 대신 사이비의 동굴에 갇힌 인물로 엔딩을 장식한다. 그렇게 <구해줘2>는 주연 배우들과 함께 조연 배우들 전체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사이비의 역사를 열연해 내며, 작품도 좋고, 연기는 더 좋았던 2019년의 명작으로 <구해줘2>를 기억하도록 만든다.  

by meditator 2019. 6. 28. 16:26

보좌관? 보안관도 아니고, 익숙한 직명인데, 드라마의 제목이 되니 낯설다.  아마도 그건 그 직명이 늘  ㅇㅇㅇ 의원의 보좌관처럼 그 누군가의 종속 변수로 자리 매김되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부분으로, 혹은 누군가의 그림자로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보좌관'이 수식어를 떼고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6월 14일부터 방영한 jtbc의 <보좌관> 10부작이다. 

 

 

<라이프 온 마스> 이대길 작가의 진검승부 
tvn의 <싸우자 귀신아>에 이어 원작 영드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ocn의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와 <추노> 로 사극 액션 드라마의 한 획을 긋고, <동네의 영웅>, <미스 함부라비> 등을 통해 신선한 소재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가진 연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곽정환 피디의 만남,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보좌관>은 기대작이다. 거기에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온 이정재가 야심만만한 보좌관 장태준으로 중심을 잡고, 김갑수, 김홍파, 정진영, 정웅인  등 다양한 색채의 조연진들이 포진되었다. 이 정도면 '금상첨화'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과연 번안극이었던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가 새로운 장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중심으로 하여 풀어낸 '정치' 이야기를 제대로 써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우선됐다. 하지만 1회, 차기 총선 공천 유력주자로 물망에 오르는 유능한 보좌관 장태준을 통해 여당 대표 자리를 놓고 벌이는 두 의원 송희섭(김갑수 분)과 조갑영(김홍파 분)의 총성없는 전쟁을 엎치락 뒤치락 긴장감넘치게 풀어내며,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정의를 증명해 낸다. 

 

 

보좌관이 된 장태준 
정치 지망생이었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집안을 기울게 만들었을 뿐이다. 짐만 될 뿐인 가족,  그저 믿을 거라곤 자신의 머리, 그래서 들어간 경찰대,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권력'과 '불의'에 장태준은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렇게 시작된 초선 의원 이성민(정진영 분)의 보좌관 생활, 그러나 정의로우나 욕심이 없는 무소속 초선 의원의 보좌관 처지는 높은 야심을 가진 장태준이 뛰어놀기엔 너무 좁은 어항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다음 정착지는 대한당 4선 의원 송희섭, <보좌관> 1회는 그렇게 장태준이란 말을 타고 대표 자리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송-장 파트너쉽의 묘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말이 파트너지, 얼굴 마담은 송희섭이지만, 그 뒤의 모든 일은 장태준의 것이다. 야당 대표 자리를 장태준으로 인해 송희섭에게 넘긴 조갑영은 국정감사를 통해 다시 한번 '공격'을 준비한다. 준비가 무색하게 파행된 국감 현장,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는 장태준답게 기지로 송희섭을 파업 현장으로 밀어넣고, 그걸 빌리로 파행된 국감을 재개시킨다. 그렇게 다시 한번 유능한 보좌관 장태준의 면모를 증명하며 <보좌관>의 서막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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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로서의 <보좌관>
무엇보다 <보좌관>의 매력은 드라마에서 그동안 늘 '조역'의 자리에 머물렀던 보좌관이란 직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역 국회의원, 국감의 현장 그 뒤편에서 국회의원 300명 그 뒤에 포진한 2700명 보좌관들의 일하는 모습을 조망하며 누가 움직이나, 누가 일을 하는가라는 '전문직으로서의 보좌관'의 모습을 드라마는 박진감넘치면서도 실감나게 그려내며 새로운 전문 분야를 설득해 낸다. 

또한 이런 전면에 내세운 보좌관이란 신선한 주역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의 향연이 <보좌관>의 진짜 볼 거리이다. 몰락한 집안 자신의 머리 하나를 믿고 경찰대에 이어 보좌관이 된 장태준이란 입지전적 인물의 정의와 부도덕을 오가는 갈등은 그간 '선'이거나, '악'이거나 정형화된 캐릭터에 싫증난 드라마 팬들의 환호를 불러올 만 하다. 

어디 그뿐인가, 오래 활동했음에도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던 배우 신민아에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발탁한 조갑영에게 물 먹이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라는 대한당 비례 대표 초선 의원인 변호사 강선영는 아마도 두고두고 기억될 대표 캐릭터가 아닐까. 강선영만이 아니다. 전직 언론인 출신의 코피 쯤이야 다시 닦고 일하면 그뿐이라는 윤혜원(이엘리야 분)에서, 신참 인턴 강도경(김동준 분)에, 동료인지 적군인지, 아군인지 선을 오가는 오원식(정웅인 분), 고석만(임원희 분), 김형도 (이철민 분) 등의 보좌관 캐릭터에, 언제든 말을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는 송희섭과 조갑영 등 노회한 정치꾼들의 모습은 화룡점정이 되어 현실 정치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미드처럼 10부작으로 종결되는 <보좌관>은 시즌제를 예고하고 있다.  1회, 4.375, 2회, 4.545 시청률 상승세는 물론, 시청자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볼 때 시즌제를 선언한 드라마의 미래가 밝다. 현장의 정치를 현실에서 일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보좌관>, 이 새로운 시도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활력소가 되길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6. 16. 16:16

<아스달 연대기>가 시작되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 김영현 극본, <나의 아저씨>, <미생>의 김원석 연출, 그리고 장동건, 송중기, 김옥빈, 김지원, 김의성, 박해준 출연 등, 이미 제작진과 출연진의 면면 만으로도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 초기에서 부터 화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소문난 잔치'의 첫 삽은 어땠을까? 

 

 

스텝을 갈아만든 <왕좌의 게임>의 복사판? 
<아스달 연대기>가 방영되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칸에서의 황금종려상이라는 쾌거와 함께 제작 현장에서의 스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표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준수하여 촬영을 한 것으로 다시 한번 호평을 받은 <기생충>, 이 처럼 최근 들어 촬영 현장에서의 스텝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 즈음에, 안타깝게도 <아스달 연대기>는 지난 해 10월 부터 1일 25시간의 노동을 밀어 붙였고, 특히 브루나이 해외 촬영 기간에는 최장 7일간 131시간 30분 휴일도 없는 연속 근로를 강제한 것으로 방송 스태프 조합이 발표했다. 심지어 안전 상의 이유로 현지 코디네이터가 만류했음에도 야간에 강에서 카약을 타는 촬영을 강행하는 등 스텝들의 안전 조치도 미비한 상태였음이 밝혀져 '스텝들을 갈아서 만든 드라마'란 꼬리표가 방영도 하기 전에 따라붙었다. 

제작비 540억, 드라마 사상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로 제한한 기간 간에 제작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진 우리 드라마의 관행과도 같은 스텝 혹사,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에 대한 잡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티저가 나오자마자 <왕좌의 게임>을 보았던 애청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좌의 게임> 포스터에서 부터,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의상, 심지어 극중 '센터빌'이라는 지역적 배경마저도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허구의 국가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7개의 국가와 하위 몇 개의 국가들로 구성된 연맹 국가의 통치권을 둘러싼 예측 불허의 싸움을 시즌별로 그려내고 있는 <왕좌의 게임>은 2011년 방영 이래 2019년 시즌 8에 이르기 까지 '신드롬'이라 불릴 만큰 전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덕후' 들을 양산한 미드이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와 관련된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애청자들에게 티저에서 부터 보여진 <아스달 연대기> 출연진들의 면면이 너무도 <왕좌의 게임>과 흡사하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아스달 판타지의 낯선 세계관 
그렇다면 이런 잡음들과 우려들을 짊어진 <아스달 연대기>의 첫 회는 어땠을까? 시작은 '인간'과 '뇌안탈'의 협상으로 시작된다. <왕좌의 게임>에서 와일들링이 연상되는 '뇌안탈', 그들에게 인간족은 쑥과 마늘을 보여주며 함께 땅을 일구며 기름진 농경 사회를 만들어 가자 권유한다. 하지만, 쑥과 마늘을 먹지 않는다며 거부한 푸른 눈의 푸른 피를 가진 뇌안탈, 그들은 인간 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의 지략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달의 평원을 빼앗기게 되고 살아남은 자는 처절한 '사냥'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간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두 아이, 그들은 각자 인간족의 타곤(장동건 분)과 아사혼(추자현 분)에게 구출되어진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꿈' 속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이아르크로 도망치려했던 아사혼,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 은섬이 발견한 이아르크로 자신을 희생시키며 도착하지만 그런 '희생'의 과정이 결국 '아스의 신' 아라문이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남겨진 은섬(송중기 분)은 자라 인간족에게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난다. 

시작은 <왕좌의 게임>이 연상되건 어떻건 웅장했다. 540억이란 제작비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태고의 땅 '아스'와 각 인물들의 배경이 되는 cg는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규모와 cg로만 이루어 지지 않는 법, 피도 눈물도 없이 부하들을 베고 인간족과 뇌안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전리품으로 품에 안은 타곤의 젊은 날을 비롯하여 배우들 자신도 '상고 시대 아스' 속에 자신이 아직은 낯선지 어설퍼 보였고 , 뇌안탈과 이족들의 낯선 언어는 쉽사리 '태고의 전설'에 익숙해기 힘들게 했다. 

이아르크로 온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 은섬, 그리고 아들이지만 아버지에 의해 전장터로만 떠밀려난 타곤 등을 중심으로 '아스'의 전설이 써내려져 갈 것이다.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자는 아스 산웅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채 부족의 절멸을 맞이한 뇌안탈, 그들의 앞에서 산웅은 '국가'를 논한다. 함께 하지 못하면 결국은 짧은 전투와 길고 긴 학살의 사냥이 이어지는 대결의 세계, 일찌기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이래 시대의 담론과 '국가'와 통치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져왔던 박상연, 김영현 작가가 그들의 세계관을 '역사'라는 한정적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상고 시대'라는 공간 속에서 펼쳐내고자 하는 포부를 펼친다. 

하지만 그 '포부'의 세계관은 낯설다. <왕좌의 게임>은 물론, <어벤져스> 시리즈 중 <토르> 시리즈, 그에 앞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이 서양의 옛 신화와 전설에 기대어 자신들의 '판타지'를 펼쳐나갔던 바, 전설과 설화의 세계를 차용하는 건 이제 판타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서구인들의 정서적 기반에 바탕이 되는 전설과 설화를 차용한 것과 달리, <아스달 연대기>속 '판타지적 설정'은 이미 <태왕사신기> 등을 경험했지만 그보다도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갓을 쓰고 돈키호테의 갑옷을 입은 등장인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등장 인물의 한국어가 신선하게 다가올 정도니.

 

   

 

물론 우리는 쑥과 마늘의 곰 토템 신화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판타지'에서 문화적 국적을 논하는 거 자체가 난센스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아스달 연대기>의 관건은 이런 낯선 세계에 대해 제작진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설득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낯섬을 '신선한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는가, 여전히 <늑대 소년>처럼 고운 송중기와 30대라 해도 믿을만한 장동건의 근육질만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능성은 열려있다. 장황한 입문서와도 같았던 1회에서도 푸른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뇌안탈 라가즈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가 잘 안갔지만 자신이 이용당했다며 죽어가는 아사혼의 눈물어린 죽음이 슬펐다. 분절음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출생의 비밀은 궁금했고, 비극적 죽음은 마음을 울렸다. 과연 이런 아직은 '난해한 전설'을 넘어 <왕좌의 게임>만큼 치열한 국가론이 펼쳐지길. 540억이란 스텝들을 갈아넣은 드라마의 성취는 그저 한 드라마의 성패가 아니라 우리 드라마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성패로 이어질 테니 부디 새로운 장르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9. 6. 2.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