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었던 <킹덤>이 3월 13일 시즌2로 돌아왔다. 유려하고 우아한  도포와 갓의 조선을 배경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환생이라도 되듯 좀비떼처럼 들이닥친 '역병' 환자들의 역습이라는 신선한 발상은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그만큼 시즌 2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었다.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이 참여한 1회에 이어 <특별 시민> 박연제 감독이 바톤을 이어받은 시즌 2는  시즌1이 펼쳐놓았던 서사의 대장정을 이어받아 일단락짓는다. 그런데 시즌2를 보다보면 공교롭게도 자꾸 이즈음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한 혼란상이 자꾸 떠오른다. 

 

 

역병, 그 정체가 밝혀지다
드디어 밝혀졌다.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버리는 '역병'의 정체가. 매일 밤 한 사람씩 제물이 바쳐지는 어전, 그곳에서 좀비처럼 목숨을 잃고도 '왕'의 허명을 유지해가는 왕, 그렇게 시작되었던 시즌 1, 그 왕을 치료하던 어의의 제자가 희생되고, 그 제자와 함께 어의는 동래 지율헌으로 돌아왔다. 말이 백성들을 치료하는 곳이지 당장 끼니조차 없어 굶어죽게 생긴 백성들. 전쟁과 집권층의 가혹한 수탈 등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인육탕'을 먹어서라도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좀비의 탄생, 그 배경이 된다. 

호위호식하는 양반들, 굶주림에 시달려 '시체'라도 먹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대조적으로 그려내며,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지배의 결과물인양 좀비가 되어버리는 역병은 동래를 시작으로 경상도 땅을 집어 삼켜버리고 만다. 

역모의 혐의를 받고 쫓기던 세자  이창(주지훈 분)은 역병의 현실을 목격하고 위험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 자신의 옛 스승이자 전란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안현 대감(허준호 분)을 찾아나선다. 그런데 안현 대감은 마치 역병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역병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이 원산지인 생사초, 그 생사초로 죽은 사람을 살려낸 '기적'이자 '저주'의 시작은 알고보니 전란의 와중에 아군의 생사가 절멸에 다다르던 3년 전 안현 대감과 조학주(류성룡 분)가 함께 했던 전쟁터였다.

여기서 밀리면 곧 아군의 절멸, 그리고 나아가 조선의 패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벼랑 끝의 상황에서 조학주는 기꺼이 생사초를 이용하려 했고, 반대를 하던 안현 대감도 결국 끝내 막아서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전란은 평정되었고 조학주도, 안현 대감도 전쟁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 것이다. 

 

 

결국은 인재, 권력욕에서 비롯된 오만
하지만 전쟁으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을 생사초는 이제 다시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가문이 조선을 다스려야 한다는 조학주의 권력욕으로 인해 다시 세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왕 한 사람으로 끝날 줄 알았던 피를 부르는 영생은 결국 경상도 땅을 시작으로 조선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즉 우리 사회를 덮친 코로나 19가 그 시작은 중국이었으되, 결국은 우리 사회의 '인재'가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을 만들어 냈듯이, 코로나 19에 대한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킹덤>은 중국으로 부터 유래한 생사초가 조선 땅에 들어와 인간들의 '욕망'의 도구로 씌여지며 좀비 역병을 불러오게 되었다는 점은 놀랍게도 시사적이다. 

이렇게 시즌2는 시즌1에서 시작된 역병의 역습에 대한 그 시작과 창궐의 이유를 집권층의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부터 길어올린다. 영혼을 팔아 생명을 구해 그로 인한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서양 고전의 클리셰적 서사는 조학주라는 외척의 권력욕으로 부터 조선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정치 권력의 서사로 확장된다. 

하지만 파멸은 예정되어 있었다. 세자 이창을 역모의 혐의로 몰아내고 죽은 임금을 살려내어 중전의 출산까지만 버티려했던 조학주의 권력욕은 애초에 중전의 가짜 회임으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왕 한 사람만 역병에 걸리게 하려던 그의 야무진(?) 시도는 '이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듯' 결국 조선 전체를 좀비의 세상을 만들어 버릴지도 모를 역병의 창궐을 결과하게 한 것이다. 

결국 두 번의 전란에서 조선이 살아남은 것이 무능한 집권층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어난 백성과 의식있는 양반층 사이에서 일어난 의병이었던 것처럼, 조선을 휩쓸어버릴 듯 불처럼 일어나는 역병에 전란에 나섰던 영신(김성규 분), 안현대감과 그 휘하들, 그리고 역신이 되어버린 세자 이창 등이 힘을 합한다. 이 또한 정부가 마스크 정책 마저도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격리와 마스크 쓰기 운동, 희생정신으로 현장으로 투신한 의료진의 헌신으로 조금씩 진정 국면에 다다른 우리 사회 코로나 19의 현황이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덮친 바이러스의 역습에 쩔쩔매고 있는 우리가 날이 풀리면 좀 나아질까 하며 학수고대 하듯, 처음엔 밤이 되면 역병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기온 차의 문제라 날이 풀려 더더욱 기승을 부리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역병 환자들의 모습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적 팬더믹 상황으로 이어져 쉽게 상황을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현재 코로나 19의 실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회차가 30분 여라 어느 틈에 시즌 전체를 다 보게 만들고야 마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 그 전개의 속도는 시즌 1과 시즌2의 공통된 장점이다. 하지만 시즌 1이 조선이라는 그간 좀비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과 거기에 물량 공세로 쏟아내는 역병 좀비의 역습은 신선하되, 6회차에 이르러서도 '역병 좀비'의 역습 그 이상의 내용성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시즌2는 철저히 시즌 1이 풀어낸 역병의 서사를 완성하는데 치중한다. 역병의 유래, 그리고 왜 3년 만에 이 역병이 다시 창궐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긋난 권력은 어떻게 스스로 멸망의 길에 이르고야 마는가, 하지만 그 왜곡된 권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애꿏은 목숨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정치적 서사'를 완성시키는데 진력한다.

덕분에 시즌1의 좀비로 압도하는 속도감과 스케일에 매혹되었던 시청자들이라면 시즌2의 보여준 서사가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영화 <창궐>을 연상케하는 5,6회의 궁궐에서 절체절명의 대치씬들은 충분히 스케일의 아쉬움을 보상할 만하다.  

특히, 2회에서 3회에 이어진 여전히 생사초로 인한 역병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세력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권력욕에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조학주의 면전에서 다시 살아돌아와 조학주를 향해 돌진하는 '안현 대감'이 증명해낸 역병의 실체는 아마도 시즌2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요, 시즌1, 2를 통틀어  서사의 포인트가 될 듯하다. 

가상의 임금과 세자를 상정했지만, 결국 조선 시대를 연상케하는 우리의 역사적 상황을 빗댄 시대적 배경에, 서양의 대표적 장르물의 대표작이 된 좀비물을 결합시킨 킹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이미 시즌 1에서 조선이라는 역사적 배경이어서 더욱 매력적인 좀비물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제 시즌 2는 그 매력의 개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중국에서 온 약초에 얹힌 기생출의 알이, 누군가의 욕망으로 인해 왕, 그리고 조선의 한 지역, 그리고 수도 한양의 궁궐까지 집어삼켜버리는 서사는 충분히 오늘날 우리가 무방비하게 당하고 만 21세기의 바이러스 좀비의 역습을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by meditator 2020. 3. 16. 13:42

시즌 2까지 이어진 <낭만 닥터>가 27%가 넘는 성과를 거두고 종영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직 '의학 드라마'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황, 여기 아직 시작하기도 전에 야심차게 시즌 2를 장담하며 서막을 열어젖힌 또 한 편의 의학 드라마가 있다. 지난 2017년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인 신원호 사단이 출사표를 던진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다. 

 

 

의학 드라마의 클리셰를 보기좋게 비껴가며 
시작은 매우 '의학 드라마'답게 시작한다.  양석형(김재명 분)의 집을 찾은 채송화(전미도 분), 그런데 낡은 석형의 집에 전기가 나가고 이를 고치러 온 전기 수리 기사는 부주의하게 맨손으로 전기를 다루다 그만 감전을 당하고 만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채송화는 환자를 돌보고, 양석형은 동료 침착하게 119에 신고를 한다. 이어진 병원, 서로 친구인 듯한 신경외과 채송화와,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의 '의사 생활'이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어진다. 당연히 보는 시청자는 이 드라마가 '신원호'사단의 드라마인 것을 잠시 잊은 채 우리가 보아왔던 여느 의학 드라마와 비교하며 그 만듬새를 품평하게 된다. 

그러던 중 등장한 이 병원 재단 이사장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소식, 아니 그간 의학 드라마에서 그 '익숙하던' 재단을 둘러싼 클리셰가 여기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가 싶다. 이사장의 아내로서 등장한 김해숙 씨의 분위기와, 어쩐지 그와 엇물리는 모기업 전무로 나타난 김갑수 배우의 포스는 전형적인 재단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냄새를 한껏 뿜어낸다. 

하지만 그렇게 전형적인 병원과 그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는 재단의 권력 비리를 다룰 것같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여전히 신원호 표 드라마임을 밝히는 건 김해숙 씨의 자녀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네 아들과 딸들, 그렇다면 그간 신원호 사단의 드라마답게 이제 율제 재단을 이어받을 막내 아들 찾기가 이어질라나 싶은데, 바로 소아외과 의사인 안정원이었음을 밝히며 싱겁게 아들 찾기는 막을 내린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그간 의학 드라마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뒤엎으며 막내 아들인 안드레아가 제 발로 재단을 '악의 축'같은 전운(김갑수 분) 전무에게 넘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어머니(김해숙 분)의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것. 시청자들을 의심하도록 만든,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는 대사는 아픈 아내가 있어 상가에 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어길 정도로 착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간 어머니의 눈에 띈 그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간 의학 드라마들이 보여준 클리셰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 것이다. 마치 이 드라마는 그간 여러분들이 보던 그런 '의학 드라마'가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결국은 선함이 슬기로운 것이다? 
무시무시한 재단 이상장의 아내일 것같은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를 상대로 재단을 넘볼 것 같던 모 기업의 전무도 알고보니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눈 어릴 적 친구였던 것처럼, 그렇게 신원호 사단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이어 다시 한번 무지막지하게 '선한 사람들의 월드'를 불러온다. 아마도 신원호 사단에게 이 세상을 사는 '슬기로운 방식'은 '성선설', '착하게 살자'인 듯 싶다. 감빵이라는 가장 열악한 인간의 현실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길어내더니, 첫 회를 선보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 

친구들에게 재벌가 막내 아들임을 숨겼다고 다그침을 당하던 안정원에게 중요한 건 '키다리 아저씨'로 하여금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게 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건 그가 형과 누나들에 이어 종교의 부름을 받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가 굳이 재단 이사장을 마다하면서도 vip 병실의 이권을 놓지 않은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그의 '선한 의도'와 같지 않다. 어린 환자는 그가 출퇴근을 마다하고 병상을 지켰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끝까지 어린 딸의 손을 쉽게 놓지 못한다. 환자의 곁을 지키던 간호사와 의사들, 그들 모두의 책임을 안정원은 스스로 짊어지고자 한다. 하지만 그토록 의료진을 다그치던 어린 딸의 엄마는 이제 고개를 조아린다. 감사하다고. 고마웠다고. 이런 식의 '인간적인 반전'이 바로 신원호 사단이 말하는 바 '사람 사는 모습'이요, 슬기로운 삶인 듯 싶다.

이익준이 수술을 들어간 동안 당연한 듯 그의 아이를 채송화가 돌보고, 채송화가 일어서자 맞은 편에 앉았던 두 친구 준환과 석형이 자신의 웃도리를 벗는다. 그 양복 웃도리를 구겨지는 거 상관없이 둘둘 말아 채송화의 다리가 비껴선 아이의 머리에 베어주고 다른 한 명의 옷으로 덮어주는 장면, 이들의 사소하면서도 익숙한 우정의 장면은 20년지기 이들의 사람 냄새 나는 우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아들은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처지의 엄마는 세상에 나보다 더 재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 절규한다. 하지만, 채송화의 기지로 응급으로 이루어진 이익준(조정석 분)의 수술과 기대 이상으로 좋은 어머니의 결과는 단박에 한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마치 상황이 때론 '인간을 시험에 들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의 '슬기로움'은 그 상황을 이겨내고 본래의 '선함'으로 귀결될 것이다'라고 드라마는 첫 회부터 선언한다. 

그리고 그걸 설득해 내기 위해 응답하라 99년의 그로부터 20년 후를 설정한다. 이제는 마흔 줄이 된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저마다 싱글인 그들은 예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다시 남편 찾기를 할 지도 모른다. 심지어 저마다 내로라하는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라고. 얽히고 설킬 다섯 의사들의 인연 그 서사를 넘어 '병원'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이 사는', 사람 냄새 풀풀나는 이야기라고. 2020년 유난히도 각박한 이 봄에 과연 이번에도 신원호 사단은 그들의 '슬기롭게' 라고 쓰고 '착하게'라고 읽혀지는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지 그 '성선설'의 마법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20. 3. 13. 02:28

<스카이 캐슬>의 '쓰앵'님이 돌아왔다. 서릿발처럼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표정, 그 표정을 감싸며 들리는 낮고 저력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회복될 수 없을 것같은 깊은 상흔을 감춘 듯이 드리운 그림자, '쓰앵님'이었던 김서형이 <아무도 모른다>의 차영진으로 돌아왔다. 

 

 

김서형이 분한 차영진은 현직 형사로 강력 1팀장을 이끈다. 관내 여성들의 '로망'이자,  '우상', 하지만 그런 후배 형사들의 바램에는 아랑곳없이 불철주야 일만 파는 '워커 홀릭' 이다. 표창장을 받은 날, 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받은 처지가 무색하게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주는 사람 한 명 없다. 그녀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베란다에는 화초가 무성하지만 집에 사람의 온기가 없다. 텅빈 방 중 하나를 가득 채운 사건의 기록들, 식물을 돌보고 싶던 18살 시절의 그녀를 오늘날 형사로 만든 친구 수정의 사건을 비롯한 '성흔 연쇄 살인' 사건의 기록들이다. 18살 여름, 귀찮아서 받지 않은 수정으로부터 온 세 통의 전화가 차영진을 그 사건으로 부터 놓아주지 않고 있다. 

18살 차영진을 형사로 만든 사건 

<아무도 모른다>는 태완이 법을 계기로 지난 2015년 폐지된 살인죄에 대한 '공소 시효'가 폐지되고 그로 인해 '아직 기회가 남은 연쇄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로 부터 시작된다. 친구가 사건의 피해자가 된 여고생, 그런데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아 그 '죄책감'에서 부터 비롯된 원죄는 여주인공을 형사가 되어 사건을 추적하도록 만든다. 

<살인의 추억>에서 처럼 당시로서는 아직 과학적 수사 방법이 발달하지 않아 불가능했던 수사가, 이제 당시의 여고생이 형사가 된 현재, 그 사건의 피해자 여동생이 가진 피해자의 유품에 남겨진 DNA를 통해 사건을 추적을 가능하는 조건을 만든다. 

그렇게 집요한 우정으로 시작된 <아무도 모른다>는 이제는 더 이상 '성흔' 사건은 없을 것이라는 범인의 장담과 달리, 과거 사건의 흔적을 찾아 간 교회에서 다시 한번 '성흔'을 남긴 채 살인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거 성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서상원(강신일 분)을 통해 차영진의 '집착'을 넘어 현재형의 사건으로 부활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도 없이 지난 십여년을 친구 수정의 사건에만 매달려 온 차영진에게 유일한 '인간적 온기'를 나눠 준 아랫층 소년 고은호(안지호 분)를 통해 사건은 또 다른 각도에서 펼쳐진다. 우선은 고은호가 다니던 중학교가 과거 서상원이 헌신했던 신생명 교회 재단의 신성중학교 인데다, 은호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목숨을 잃을 뻔하던 신생명 교회 권재천 목사의 비서였던 장기호가 전해준 비밀스런 책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정적으로도 방기되고, 학교 내 폭력의 희생자였던 은호, 거기에 신발 상자 안에 숨긴 의문의 돈다발에, 이제 종교 단체와도 연루되어버린 은호는 정체모를 위협에 시달리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차영진이 놓지 않았던 과거의 연쇄 살인에서 시작된 사건은 그 범인으로 추정된 서상원의 자살,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와 연루된 은호의 자살, 혹은 살해 시도로 인해 '현재형'이 된다. 

이렇게 현재형이 된 사건은 복합적이다. 우선은 범인이 여러 명의 피해자를 연달아 살해한 연쇄 살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 연쇄 살인 사건은 피해자의 손 등에 과거 그리스도가 십자가 형을 당할 때 생긴 상처와 같은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드라마들이 다룬 '장기 미제 연쇄 살인 사건'과는 달리 '종교적 색채'를 더하며 차별성을 갖는다.

그런데 사건 피해자의 유품에서 도출된 DNA의 당사자인 서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칫 연새 살인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 될 위기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 위기의 돌파구는 뜻밖에도 차영진이 수정이 이후로 처음 마음을 연 은호로 찾게 된다. 그런데 은호의 사건은 얽힌 실타래와도 같다. 학교 폭력? 범죄 관련? 그리고 종교 단체와의 연관? 그렇게 드라마는 은호의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거기에 은호가 소속된 학교, 그 학교가 소속된 신생명 교회가 보이는 의문스러운 태도들, 그리고 다짜고짜 학교에 나타난 의문의, 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펼쳐보인 자칭 성공한 남자 한생명 재단의 백상호(박훈 분)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원심력으로 펼쳐나갈 복합 장르물
이렇게 드라마는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이비 종교로 인한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거기에 현재 거대 교단과 관련된 모종의 부도덕한 사건의 여운을 더한다. 앞서 <조작>을 통해 언론과 검찰, 그리고 정권으로 이어진 거대한 음모의 큰 그림을 폭로했던 이정흠 피디는 이제 과거의 사건을 길어 현재의 사이비와 거대 종교 재단까지 더한 원대한 밑그림을 펼쳐보이며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거대한 '음모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아무도 모른다>는 아직은 그 밑그림의 설계도를 펼쳐나가는 과정이지만, 그 윤곽과 진실이 드러내 보이면 또 한편의 거대한 스케일의 장르물로 진면목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구도는 동시에 <아무도 모른다>의 발목을 잡는다. 1회 9%에서 1회 8.8%의 하락세는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그 거대한 밑그림에 진득하게 기다릴 수 없는 시청자들의 이탈을 반영한다. 차영진은 내내 진지하고 심각하며, 드라마 속 사건들은 온통 의문 투성이이지만, 그것들이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풀어내는 호흡마저 느리니 '떡밥'은 많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은 벌써 지친다. 

과연 과거로 부터 현재로 펼쳐진 거대한 '종교'의 부도덕을 폭로할 복합 장르물의 성공이냐, 그게 아니면 '도대체 아무 것도 몰라서 답답한 안개속 같은' 장르물의 '좌초'가 될 지, 그건 3,4회의 전개가 가름할 것이다. 부디 성공적인 전개로 뻔한 연쇄 살인물의 변화를 지향한 시도의 안착과 함께 여성 원탑 드라마로 돌아온 김서형의 변신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20. 3. 4. 17:44

시작은 매우 로맨틱했다. 법무법인 송&김의 반골 기질 가득한 파트너 변호사 윤희재(주지훈 분)는 늦은 밤 들르던 빨래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원서로 읽고 있는 미모의 한 여인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매일 밤 자신이 가는 그 시간이면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자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더 중 그녀가 자신과 같은 동창 선배 김희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희재는 동창회에 나타난 그녀에게 다짜고짜 함께 나갈 것을 청하고, 그의 무례한 청에 기꺼이 동행한 이후부터 그녀와 그의 '로맨틱'한 시간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건 김희선이라던, 사실은 정금자(김혜수 분)의 '작전'의 일부였다. 이슘 홀딩스 대표  하찬호의 이혼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그의 변호사인 윤희재를 통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정금자가 대표 변호사인 법률 사무소 충은 치밀하게 윤희재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적중했다. 덕분에 윤희재의 집에서 이슘 홀딩스 하찬호의 정신과 진료 기록을 빼낸 정금자 변호사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이혼 소송을 '승기'로 이끌었다. 

 

 

정금자, 그녀는 누구인가? 
바로 그렇게 <하이에나>는 재판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의 캐릭터를 그렇게 소개한다. 아프리카 야생의 들판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과 공격력에도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다른 동물이 먹고 남은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방식을 택한 동물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녀, 로망은 으리뻔쩍한 건물이지만 현실은 허름한 사무실 한 칸인 정금자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윤희재를 속인다. 자신 때문에 재판에 져서 이를 가는 하찬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불러만 주신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 드리겠다며 '여러분'을 불러제치는 배포를 가진. 

하지만 그건 '아수라 백작'같은 정금자의 한 면일 뿐이다. 자신의 변호로 인해 감옥에서 나왔지만 외려 정금자를 협박하던 의뢰인에게 외려 당장 해외로 떠나지 않으면 다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반격을 가한다. 그러나 그는 귀가 길의 정금자에게 '칼'을 들이밀고야 만다. 그러나 정금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 한번에 성공해야 해'라며 침착하게 대꾸한다. 그러면서, '아니면 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네 모든 살점들이 처참하게 물어뜯길 테니까' 덧붙인 말, 그 말처럼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거칠게 주먹을 날린 그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으며 반격을 가하고 그가 피를 철철 흘리며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빨래방에서 책을 읽던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인, 연인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드는 섹시한 여인, 그런가 하면 빨간 츄리닝을 입고 좌중을 휘어잡고 '여러분'을 불러젖히다 자신을 적으로 여겨 으르렁거리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읍소도 마다하지 않는,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장량같은 배포의 직업인,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현장에서 한 치의 흔들림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예리하고 발빠른 대처의 변호사까지 일찌기 2013년 <직장의 신>에서 빨간 내복도 마다하지 않으며 만능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던 김혜수가 김혜수여야 가능한,  '걸크러쉬'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다시 한번 예의 '만능 치트키'같은 캐릭터 정금자로 돌아왔다. <하이에나> 1, 2회는 바로 그런 김혜수에 의한 정금자의 원맨쇼 한 판이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김혜수만이 가능한 '장르'를 온몸을 불사르며 설득해 낸다. 

 

 

법정 판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오랜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장태유 피디가 선택한 작품 <하이에나>는 <직장의 신>에서 처럼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을 다시 한번 선보이는 김혜수를 앞세워, '승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대대로 판사 집안, 서울대 수석 입학에 재학 중 사시 합격에 연수원 수석 졸업의 그래서 자신의 직장 송&김에서조차 그 누구에게조차 굽신거리지 않는 콧대 높은 윤희재는 그렇게 김희선, 아니 정금자에게 보기좋게 사랑에 속고, 재판에 지는 도발을 당하면서 한껏 '전투 의지'를 불타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때는 연인인 줄 알았다가 이제 '적'이 된 두 사람은 이슘홀딩스 이혼 재판에서 정금자가 1승을 거두고, 이제 다시 그의 숨겨진 내연녀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이 <하이에나>의 주된 볼거리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화제가 되었던 전작의 시청률을 10.3%로 무난하게 이어받았던 <하이에나>는 2회에 들어서 9%로 하향 곡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혜수, 주지훈, 거기에 장태유라는 믿고 보는 보증 수표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조합들의 어울림에 종종 의문 부호가 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 회 윤희재를 속여 넘기는 정금자 변호사의 계략, 그의 눈 앞에서 그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의 집에서 그의 서류를 빼돌려 재판에서 승소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금자가 '여성'이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만약 반대로 그걸 윤희재가 했었다면? 

그와 함께 이제는 클리셰라기에도 뻔한 '약물', '이혼' 등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가 두 사람의 주된 '전투'의 소재가 된 것도 <하이에나>라는 드라마가 법정을 소재로 한 남녀 변호사의 '쟁투'를 다룬 새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새롭지 않도록 느끼게 만드는 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윤희재 정도의 변호사가 매일 밤 빨래방을 드나들다 그곳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에게 대번에 '폴인 러브'했다는 전제 조건이 부실하다. 이들의 '사랑'이 부실하게 시작되다 보니 2회까지 전개 내내에서 윤희재 정도의 인물이 그토록 정금자에게 집착하는 상황이 어설퍼 보인다. 집착남과 능력녀의 설정을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아닐까. 

드라마는 '가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공'의 이야기임에도 보는 시청자들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공'의 공정이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하이에나>는 이미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만능 캐릭터 정금자가 이끄는 드라마이다. 그럴 수록 정금자가 이끌고 가는 사건은 보다 '현실적'이어야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천착할 수 있다. <직장의 신>이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같은 미스 김의 이야기가 성공했던 요인이다. <하이에나>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by meditator 2020. 2. 23. 18:14

'어른'이란 뭘까. 아직 어른이 되지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자란 사람'이 아닐지 학교도 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해야할 그 무언가가 없는 어른들이 참 속편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의 이런 생각에 당연히 어른들은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해 논박할 것이다. 하지만 '호구지책'만 있을까. 어른도 '숙제'를 받아든다. 그런데 그 숙제를 내주는 것이 '인생'이라 이게 고달프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달려가 검사를 받고 정, 오답의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어른들이 받아든 숙제의 답은 그리 녹록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제 14회를 마친 <낭만 닥터 김사부2>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었다. 과연 그들이 이 받아든 숙제를 어떻게 해나갈 지 그에 따라 그들 인생은 다시 한번 또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로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우진과 임현준의 숙제 
이제는 스카우터가 되어 돌담 병원의 의료진을 넘보던 선배 임현준과 빛쟁이들이 김사부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자 서우진(안효섭 분)은 김사부를 보호하기 위해 돌담 병원을 포기하겠다고 결정을 내린다. 그런 결정에 돌담의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김사부는 우진에게 '숙제'를 남긴다. 자신을 치료하며 당당하게 '주치의'라 했던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 책임은 가깝게는 주치의답게 수술 상처를 돌보라는 것이요, 좀 더 크게는 이제는 온몸 안 아픈데 보다는 아픈데가 더 많은 김사부의 병명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다행히 배문정 선생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빛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서우진은 김사부에게 달려가 그 '숙제'를 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러자 그런 서우진에게 김사부가 '힌트', 혹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의 답으로 내준 건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엄청난 양의 파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서우진은 다행일 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한 양일지도 모르지만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참고서'가 있으니.

그렇게 서우진이 김사부의 숙제를 용감하게 받아들 수 있게 된 데에는 오래도록 묵혔던 숙제 하나를 겨우 제대로 끝낸 임현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우진과 함께 병원을 개업했던 임현준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리 수술을 감행하다 의사 면허가 정지되고 만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스타우터'가 된 임현준은 더 많은 돈을 미끼로 의사 등을 자신처럼 '뒤가 구린' 병원에 소개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서우진이 돌담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내려와 그를 괴롭힌다.

결국 서우진이 돌담을 포기하게까지 만든 서우진, 그런 그를 돌담 복도에서 맞닥뜨린 김사부는 임현준에게 일갈한다. 서우진만큼이나 살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사느라고 애썼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던 임현준에게 날린 김사부의 '회초리'는 '양심'이다. 

'아무리 돈이 없고 화가 나고 무시당하고 자존심상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바로 양심이라는 거야. 넌 그 양심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해봤어? 어디까지 버텨봤는데? 넌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잖아. 네 욕심대로. 돈만 된다면 그러면 양심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다 팔아먹으면서' 


나도 억울하다 항변을 하는 임현준에게  맨날 지만 억울하다지 라며 '불쌍한 새끼'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떠난 김사부, 그렇게 그를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흔들린 현준에게 차은재가 쐐기를 박는다. 자기만 억울하다며 그 탓을 서우진에게 돌린 현준에게 서우진은 단 한번도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 비난의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비로소 '나만 억울해'의 마법에서 깨어난 임현준, 그때서야 서우진에게 다가가 왜 그가 자신과 함께 했는지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가 팔아먹어 버린 양심,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쪼그라든 채 웅크리고 있었던 양심 한 조각을 꺼내 서우진을 이제야 놓아주는 것으로 그의 뒤늦은 숙제를 마무리한다. 

 

 

'두 환자의 심폐소생' - 무거운 숙제를 받아든 김사부와 박민국 
하지만 김사부답게 임현준에게 '양심'을 호통쳤지만,  이제 김사부도 그 '양심'의 숙제, 그 늪에 빠지고 만다. 14회 2부, 드라마는 숨가쁘게 목숨이 경각에 놓인 두 환자의 상황을 오고간다. 

그 중 하나는 응급실로 실려온 여운영 전 원장(김홍파 분)이다. 폐암 말기로 정신을 잃고 실려온 여원장, 김사부를 비롯한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위급한 상황에 빠진 그를 살려보려 애쓴다. 그런 와중에 심실세동, 당연히 심폐 소생을 하려하는데 김사부가 고개를 꺽는다. DNR(심폐소생거부)이었던 것. 

여기서 DNR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여원장을 보내야 하는 순간, 그만 김사부는 컴프레션을 외친다. 그리고 나서서 심폐 소생을 시도한다. 겨우 고비를 넘겨 자가 호흡을 하게 된 여원장, 하지만 병실로 옮겨진 여원장 곁에서 김사부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오명심 수간호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내내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는 김사부, 여원장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를 보내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그 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그만 의사로서의 원칙을 어기고 만 것. 그간 <낭만 닥터> 속 김사부는 부용주란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가 된 것처럼,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김사부의 이야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14회, 그런 김사부도 '인간적인 정' 앞에서는 자신의 의료적 원칙마저 흔들리는 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의료적 원칙을 흔들린 김사부는 더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게 된 김사부와 달리, 또 다른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한 숙제를 짊어지게 된 한 사람, 박민국 교수가 있다. 버스 사건으로 김사부가 '이제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라고 충고를 했건만 여전히 박민국 교수는 김사부에 대한 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김사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WPW 증후군(조기 흥분 증후군)인 환자의 수술을 마취과 심혜진(박효주 분)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행한다. 3년전 비슷한 경험을 한 심혜진 선생이 애를 써보지만 결과는 테이블 데쓰.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의 양심에 앞선 '이기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먼 박민국 교수의 무모한 수술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두 명의 환자에게 가해진 심폐 소생, 김사부는 환자를 살려서, 그리고 박민국 교수는 죽여서 버거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두 사례가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정'과 '욕심'이라는 '과제', 과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낭만 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해프닝처럼 시작되어 결국은 인간사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결국 우리에게 '진지한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by meditator 2020. 2. 19. 15:54

2월 10일 첫 선을 보인 tvn의 드라마 <방법>, 그 제목부터 생소한 악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인 오컬트 스릴러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저주'는 인류의 그늘에서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소개하는 드라마는 '저주'의 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증오를 길어올려, 그 마음을 무기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공포스런 주술을 소재로 한다. 

 

 

방법하다. 
여기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그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무안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화 마지막, 중진일보 사회부 기자 임진희(엄지원 분)는 자신이 취재하던 포레스트 내부 고발자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씌운 기사를 씌워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같은 신문사 김주환 부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하지만 임기자의 항의는 외려 강압적이고도 폭력적인 김부장의 겁박으로 인해 좌절되고, 억울하고 분한 임기자는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했던 백소진(정지소 분)를 찾아간다. 

앞서 백소진은 임기자를 찾아와 '스스로 방법사라 소개하며 그녀가 취재하던 포레스트 기업 진종현 회장에 대해 악귀가 씌었으니 '방법'만이 그를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당연히 임기자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철없는 고등학생의 헛소리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제 김주환 부장과 그가 결탁한 포레스트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맞부닥친, 특히 자신을 폭력적으로 다룬 김주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임기자는 백소진을 시험해 볼 겸, 김주환에 대한 '방법'을 허락한다. 그의 한자 이름과, 그의 물건만으로 '방법'을 한다는, 했다는 백소진의 말에 임기자는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 김주환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원인 불명의 이유로 스스로 손이 돌아가고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른, 그리고 다리와 허리가 꺾여 피를 흘리며 죽은 모습은 도저히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방법>은 '저주'의 마음을 지펴서 이뤄내는 주술 '방법'을 소재로 한다. 방법사인 여주인공이 첫 회에 누군가를 사지가 꺽이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으로 서막을 연 드라마, 흔히 오컬트 장르에서 우리가 보아왔듯 악귀가 들린 누군가와 싸우는 방식으로는 매우 극단적이다. 

 

 


방법할 수 밖에 없는 사회악
드라마는 그 '극단'의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다. 우선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한 백소진은 어린 시절 그녀의 눈 앞에서 지금은 포레스트의 회장이 된 진종현(성동일 분)이 사람들을 끌고 와 외딴 산속에서 신당을 꾸리고 살던 백소진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집을 불태운다. 겨우 홀로 도망친 소진은 당연히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진종현 회장에 대해 복수를 노린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백소진의 개인적 복수에 머물지 않는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IT 기업으로 성장한 포레스트, 하지만 최첨단의 기술적 발전을 이룬 기업이 사실은 무속에 의존하여 회사 일을 처리하고 그에 의문을 품은 직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포레스트에 대해 '정의감'이 넘치는 기자 임진희는 기자다운 방식으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애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시도는 내부 고발자의 죽음에, 이제 그녀 자신이 겁박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에 빠져든다.

그때 등장한 백소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임진희에게 진종현은 그런 정상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고 그때부터 승승장구하게 된 진종현 회장에게는 악귀가 씌였다는 것. 결국 인간의 몸으로 악귀를 받아들인 진종현 회장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바로 '방법'밖에 없다며 '주술'의 불가피함을 설득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이 언론 등을 마음껏 좌지우지하는 전횡, 거기에 내부 고발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불법적인 도발 등의 부도덕한 자본과 그 자본의 모태가 되는 개인적 원한을 엮으며 '극단적 주술'의 방식인 '방법'의 개연성을 설득하고자 한다.  기자는 진실을 알리고자 하지만 기업의 커넥션으로 막히고,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려 하지만 역시나 그 길은 봉쇄되고 만다. 심지어 그들이 마주선 '부도덕한 자본'은 부도덕을 넘어선 악귀라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상황,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원보원(以怨報怨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의 방식으로 '방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방법>은 <부산행>, <사이비>, <염력> 등으로 오컬트적인 장르에서 독보적인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나선 작품이다. 기업의 회장이 알고보니 악귀에 씌였고, 그 초자연적인 악에 맞서는 주술 '방법'이란 이야기는 이미 그 소재만으로도 신선한 시도이다. <손 THE GUEST>처럼 OCN으로 가야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은 작품을 편성한 TVN의 장르적 도전 역시 실험적이다. 

 

 

그럼에도 남는 방법의 딜레마 
물론 그럼에도 딜레마는 남는다. 12부작으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가겠다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1부에서 펼쳐진 장황한 전사에 이은 늘어진 사건 전개는 과연 오컬트적인 장르에 걸맞는 전개 방식인가에 의문 부호를 붙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2부에서 김주환 부장 죽음에 이은 본격적인 사건 전개로 기대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제 아무리 '악한 존재'에 대항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걸어 싸우는 방식에 대해 쉽게 고개라 끄덕여 지지 않는다. 김주환 부장이 제 아무리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태도를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가 '온 몸이 오그라들고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야 할'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에게 겁박을 당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방법'을 부탁한 임기자가 과연 미필적 고의의 살인 교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미성년이라 하더라도 온몸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죽이는 주술을 거는 주인공에 대해 과연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방법론', 아니 그 이전의 도덕적 딜레마를 과연 이 드라마가 결국 설득해 낼 수 있을까가 2회에 이른 드라마의 무거운 숙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20. 2. 12. 04:58

버스 사고 현장 그 자신이 버스와 함께 굴렀으면서도 정신이 들자마자 환자들을 살피는데 헌신하는 김사부(한석규 분), 그의 앞에 만삭인 임산부가 아이를 살려달란 말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는다. 임산부를, 그리고 그녀가 부탁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심장 박동을 놓쳐서는 안될 일, 심폐 소생을 하려는데 팔이 말을 안듣는다. 쉴 틈없이 외상 환자가 쏟아지는 돌담 병원, 그리고 오래 전 오늘과 같은 버스 사고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다 다친 어깨, 그 휴유증과 오늘의 사고 때문이다. 하지만 임산부를 살려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김사부는 자신의 통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능하다면 팔을 부숴서라도 고정이라도 시킬 듯이 자신을 다그쳐 심폐소생을 한다. 그리고 그런 김사부에, 아니 김사부가 그 버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민국 교수는 다시 한번 열패감에 빠진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 ⓒ sbs

 

열패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때도 그랬다. 10년 전 버스 사고 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차창을 빠져나가려는 박민국 그와 달리, 김사부는 환자에 매달려 있었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사고 버스와 함께 경각에 달려있는데도 그는 '의사'의 본분을 다했던 것이다. 최고의 외과의, 의사로서의 자신감이 철철 넘치던 그는 바로 그날 그 버스에서 그걸 잃었다. 아니 김사부에게 빼았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뺏어간 그걸 되찾기 위해 그는 더 연구하고 노력했다. 김사부보다 더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거대 병원의 전 스텝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시연된 수술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그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게 된 게 '김사부가 보내준 쪽지'였다는 것을 알게된 박민국 교수는 다시 한번 좌절한다. 그리고 그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돌담 병원 원장 직을 수락한다. 김사부가 아니라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돌담 병원은 박민국이 보기에는 모순덩어리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상 환자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김사부는 원칙도 없고, 시스템 따위는 엿바꿔먹은 채 오직 김사부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듯 보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라고 박민국은 생각했다. 거대 병원 최고의 외과의답게, 거대 병원의 시스템을 돌담 병원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직원들의 월급을 대폭 인상하며 환심을 사고 병원장으로서의 권리와 권위를 한껏 이용하여 돌담 병원을 장악해 가면서 김사부를 기꺼이 짖밟아주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버스 사고 현장이다. 그날의 '트라우마'를 떠올린 박민국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발을 돌렸다. 하지만 서우진과 마주쳤다. 차은재도 잇달아 허겁지겁 현장을 뛰어든다. 병원장인 그가 여기서 돌아설 수는 없다. 

결국 버스 안으로 들어간 박민국, 가슴에 우산이 꼿힌 환자와 버스에 다리를 짖눌린 환자를 두고 다시 한번 김사부와 의견이 갈린다. 이른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합리적'인 관점에서 박민국은 더 살릴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10년전 그날처럼 김사부는 두 사람을 다 살리겠단다. 결국 박민국은 손을 놓고, 김사부가 매달려 두 사람을 다 살려내고야 만다. 그러곤 다시 한번 '버스의 늪'에 빠져버린 박민국에게 여유롭게  '웁스(oops)'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김사부. 

기다렸다. 김사부가 살려낸 두 사람의 수술이 끝나기를. 자신도 모르게 혹시라도 두 사람을 다 살려내겠다는 김사부의 결정이 어긋나기를. 하지만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김사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무시해왔던 10년 전 그 버스 현장에서 부터의 모든 일들을 낱낱이 그에게 따졌다. 왜 나를 무시하냐고. 왜 나한테 그러냐고.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 ⓒ sbs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
거대 병원 최고의 외과의 박민국, 그가 사사건건 김사부에 대해 예민하다 못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건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하루 아침에 전원장 여운영을 몰아내고 돌담 병원을 장악하겠다고 들이닥친 인물이 말이다. 그런데 돌담 병원 원장으로 내려온 박민국이 움직이는 동인은 오로지 김사부이다. 그것도 김사부를 이기기 위해서, 김사부보다 나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지만 10회 그가 김사부를 찾아간 장면에서 보여지듯이 김사부는 10년 전 그날 그 사고 버스 현장에 박민국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가장 어이없는 순간이다. 그토록 집요하게 김사부에게 매달려왔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을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니. 그리고 사사건건 박민국이 자신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김사부의 행동들은 그저 환자를 살리기 위한 김사부의 시급한 판단이었을 뿐이다. 결국 김사부 앞에서 박민국 교수는 참아왔던 분통을 터트리고야 만다. 그런 박민국에게 김사부는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한 마디 말을 건넨다.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

김사부의 말처럼 10년 전 그 버스 사고 현장에서 박민국이 차창 밖으로 나간 것을 두고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버스에 남아있던 김사부가 결국 사고를 당한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야 할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박민국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지난 시간 김사부보다 더 나은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 어쩌면 그건 그날 그 버스에서 헌신했던 김사부처럼 살아오지 못했던 자신을 스스로 자책했던 시간이 아닐까. 그가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 '의사'라는 본분과 다른 궤도를 살아왔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열폭'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비롯한 가상과 현실의 공간에서 '열폭'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열폭'에는 언제나 '열폭'하게 만드는 대상이 있다. 하지만,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2>는 바로 우리 사회 고질병처럼 된 '열폭'의 근원을 명쾌하게 짚는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마음 속에 그어놓은 어떤 선, 혹은 어떤 진실에 스스로 다가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냐고.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문제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니겠냐고. 

최고의 스타 외과의조차 그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내모는 감정,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 '탓'을 하고픈 감정, 하지만 그 감정의 근원을 드라마는 차분히 짚어왔다. 도대체 의사가 왜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건지, 의사가 본질이 다른 의사보다 더 나은 의사인 것이냐고. 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늘 행보 한 걸음마다 누군가를 의식하며 누군가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메뉴얼'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김사부와 박민국의 이야기를 통해 묻는다. 의사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하지만 이건 그저 '의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삶의 질문이다. 당신 삶의 본질이 그 누군가을 이겨서 얻어내는 그것이어야 하겠냐고. 

by meditator 2020. 2. 5. 16:37

2월 1일부터 방영된 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에는 장혁이 나온다. 그런데, 그 장혁이 '액션'을 하지 않는다. 일찌기 <추노>이래 그 스스로 절제된 생활을 절권도를 오래도록 연마해왔음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듯 몸을 써서 하는 연기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배우 장혁이다.  당연히 <본대로 말하라>에 장혁이 나온다면, 그가 출연했던 이제는 <본대로 말하라>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김홍선 피디와 함께 한 전작 <보이스1>에서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내세워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웬걸 1회 본방이 시작되고 한참 후에 등장한 장혁은 휠체어에 검은 안경을 쓰고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이란 휠체어를 움직이고 하얀 실리콘 장갑을 낀 손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하는 정도, 이전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역동적인 장혁은 언감생심이다. 과연, 움직이지 않는 장혁이 재밌을까? 드라마는 바로 이 '반전'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움직일 수 없는 장혁 
<본대로 말하라>의 장혁이 분한 오현재는 사고 이전에 천재적 능력으로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했던 프로파일러였다. 그런 그가 '그놈'이라 칭해지던 연쇄살인범에게 승부를 걸고자 했던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시도는 5년전 사고와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찰청의 공식적 발표로 오현재가 쫓던  '그놈'은 폭발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오현재는 애인을 잃고, 그 자신 역시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2017년 방영되었던 <보이스1>에서 형사 무진혁으로 등장했던 장혁은 과거로 사고로 절대 청감 능력을 지닌 강권주의 수족이 되어 사건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본대로 말하라>에서는 그 반대의 처지가 되었다.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여 경찰청 연락망을 들으며 '그놈'에 대한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오현재에게는 <보이스1>의 그 자신처럼 수족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처지가 된 것이다. 

 

 

오현재 대신,  아니 그 이상인 두 여자 차수영, 
그리고 바로 그런 오현재 앞에 <보이스1>의 절대 청감을 지닌 강권주처럼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한번 본 것은 사진처럼 기억해 내는 '픽처링  능력'을 지닌 차수영(최수영 분)이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비오는 날 자신을 마중나온 농아 엄마가 싫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그 외면은 엄마와의 영영 이별이 되었다. 차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수영에게 우산을 전해줘야겠다는 맘으로 도로를 건너던 엄마는 뺑소니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수영은 그때 그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했다. 차량 번호도, 차에 탄 사람도,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우산을 쓰라던 엄마의 손짓도. 

그러나 안일한 경찰은 수영의 기억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겼다. 결국 기억하고 있는 수영이 직접 나서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의욕만 앞서는 시골 순경이다. 어떻게든 광역 수사대에 가야 하는데..... 시말서 감인줄 알았던 토막 시신 사건은 그 사건을 본대로 기억해 내는 수영의 능력으로 인해 기회가 되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오현재, 그의 손발이 되어줄 차수영, 낯익은 구도다. 1997년 제프리 디바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던젤 워싱턴,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본 콜렉터>가 떠올려진다. 전신마비의 천재적 범죄학자 링컨과 의욕적인 형사 아멜리아 콤비가 손 하나만 남겨진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움직이는 못하는 '두뇌'와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의욕적인 '여형사'의 클라셰를 <본대로 말하라>는 오현재와 차수영의 캐릭터로 돌파하고자 한다. 사고로 인해서인지 원래도 인지 괴팍해진 프로파일러라는 점에선 오현재와 영화 속 링컨은 유사하지만 거기에 드라마는 간발의 차로 애인을 잃은 오현재만이 가지는 통한의 복수심을 얹는다. 그리고 그런 오현재처럼 역시나 오래전이지만 오늘처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차수영의 해원을 결합한다. 

그 결합은 처음엔 삐걱거린다. 오현재는 차수영의 기억이 본질을 놓친 주변부만 기억하는 쓸데없는 것이라 하며 내쳤고, 감정적이라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런 오현재가 막상 공장 안 그 누구도 모르는 장소에 갇혔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에게 자신의 두뇌를 빌어 사건 현장으로 인도하고, 처음 시체들을 보고 경악하는 그녀로 하여금 현장에서 예의 픽처링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파트너 쉽은 오현재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차수영의 '감정적 헌신'으로 인해 오현재의 마음을 울린다. '딱해서, 나도 딱하고 너도 딱해서'라며, 딱한 파트너쉽의 연대 기조가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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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쉽을 완성시킨 황하영
그런데 <본대로 말하라>에서 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쉽만을 말하면 아쉽다. 파트너쉽이라기 보다는 '어벤져스'라 하는 것이 정확할 황하영의 존재감이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눈밝게 수영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 그런 그녀를 오현재에게 인도한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한 오현재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 조직을 앞세운 상부의 지시 앞에서도, 어쩌면 물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그래서 궁시렁거리다가도 그녀의 지시 한 마디면 기꺼이 팀원들이 그녀를 따르게 만드는 팀장 황하영, 어쩌면 <본대로 말하라>의 모든 것은 갚을 것이 있다는 그녀로 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드라마는 기존의 드라마에서 '소모'된 장혁이란 배우의 캐릭터를 역으로 활용한다. 움직이지 않는 장혁, 두뇌만 쓰는 캐릭터, 그런 반전적 재미를 완성하는 건, 이른바 '걸크러쉬'한 두 여성 황하영과 차수영이다. 걸크러쉬라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은 정반대다. 황하영이 그녀를 세상 앞에 알린 <독전>의 그 독한 캐릭터못지 않게 육두문자를 마다하지 않고 범인에 대척하며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운 상사 앞에 끔쩍도 하지 않는 걸크러쉬한 캐릭터라면, 차수영은 오현재의 분석처럼 아직은 자신감조차 없어 말끝조차 흐리는 풋내기이지만 엄마의 사건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강단 만큼은 그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장형 캐릭터이다.

위험한 공장에서 그 누군가 그곳을 들어가야 할 때 그걸 들어가겠다고 나선 수영에게 말없이 기회를 주는 황하영,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그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이 두 여성 캐릭터, 그리고 그녀들의 뒤에서 '두뇌'를 빌어주는 오현재의 '딱한 어벤져스', 신선한 조합의 활약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20. 2. 3. 16:29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성장'의 화두에 자신을 던진다. 어제보다 더 낫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어제보다 조금은 '발전'된 삶, 하지만 그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서로가 입장이 다르다. 조금 더 높은 지위, 조금 더 많은 돈, 혹은 더 조금 더 멋지거나 이쁜 모습 등등, 의사라면 어떨까? 조금 더 나은 의사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여기 그 딜레마에 빠진 두 명의 젊은 의사가 있다. 바로 <낭만 닥터 김사부2>의 서우진(안효섭 분)과 차은재(이성경 분)이다. 

 

 

서우진 - 진짜 의사?
일찌기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가 남긴 빚에 자신의 학자금 빚으로 인해 추심업체 조폭들에게 시달림을 받다 돌담 병원까지 밀려 들어온 서우진, 그는 자퇴서를 품에 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손기술을 가진 발군의 외과의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 고생 덕분에 내 실속만 챙기면 된다는 그의 왜곡된 신념으로 택한 선배의 병원행이 뜻밖에도 그를 '내부 고발자'로 만들어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그의 손기술은 겨우 '페이 닥터' 언저리를 맴돌다 그마저도 내쫓김을 당하게 되어 버렸다. 

당장 빚쟁이들을 달래기 위해 단 돈 천 만원이면 기꺼이 자신을 팔겠다고 나섰지만 그런 그의 '호구지책'에 김사부는 냉랭하고, 겨우 말미로 얻어낸 1주일 동안 그가 잊고 살았던 '진짜' 사람, '진짜' 의사의 향기를 돌담 병원에서, 김사부에게서 느끼며 점차 돌담의 일원이 되어가는데, 뜻밖에도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그에게 들이닥친 '위기'는 바로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였다. 

어린 자신과 함께 음독을 했던 부모님처럼 아이와 함께 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온 아버지, 그 아버지 환자를 서우진은 거부한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자기 아이마저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그 아버지를,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같아서 용서할 수 없다. 겨우 목숨을 건진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에게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한 고모의 기억을 잊지 못한, 아니 그 고모의 한탄이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닌 듯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이후 정말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게 아닌가 싶도록 힘들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더더욱 자기 자식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 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의사'였다.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온 순간, 수술실에 환자가 누운 순간, 그가 누구인가를 선택할 수 없는, 그저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이 의사의 '사명'이고 '숙명'인 그러나 서우진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의사'임을 순간 벗어나고 만다. 그의 거부에 박은탁 선생(김민재 분)은 그 '원칙'을 환기시킨다. 당신은 '나쁜 의사'냐며. 그리고 김사부는 그를 당연한 책무인 양 그 아버지 환자의 수술실에 부른다. 

주저하고 고뇌한 끝에 수술실에 들어선 서우진, '나쁜 의사'가 되지 않기 위해, 덤덤하게 김사부 옆에서 수술을 돕고 마무리하는 그 과정은 그가 지난 시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민했던 '진짜'를 향한 첫 걸음이요, '왜 나에게'?라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가족사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용기'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마주하는 용기'만으로도 그 부모님 옆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였던 서우진은 훌쩍 자라 외과의 서우진으로 선다.

각자도생 이기적인 길 중 가장 유용한 길이라 생각해 선택한 '의사'라는 직업에서 그는 김사부를 보며 '진짜'가 아닐까 했다. 나만 잘 산면 돼 하던 그는 왜 '내부 고발자'가 되었을까. 그에게 다가온 물음표, '진짜', 어쩌면 홀로 살아남은 그가 가장 원했던 건, '더부살이'처럼 사는 인생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 '진짜'의 답을 서우진은 찾아가는 중이다. 

 

 

차은재 - 의사의 재능? 
차은재에게는 가난은 없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의사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따라서 의사인 언니의 집안에서 은재 역시 '선택'의 여지없이 의사가 되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르치던 선생님이 재능이 없으니 취미로 하라는 말에 그만 두었다. 가업을 따라 의사가 되었지만, 첫 해부학 실습에서 그만 토하며 쓰러졌다. 역시 이번에도 재능은 없는 건가?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아니 내내 의심해 왔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고민을 떠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를 데리고 온 부모, 하지만 어린 환자의 아빠는 아이 걱정에 애닮은 엄마를 다그치다 못해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 참다못한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커터칼을 들이밀었고, 그걸 차은재는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그런데 그런 차은재의 '선의'는 병원장 측에 의해 왜곡되고, 외려 '가해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차은재의 억울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의 엄마는 커터칼을 마저 휘둘렀고 그 아버지이자 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나 하나 참으면 돼 하는 '타협', 혹은 김사부의 말대로 '편한 선택'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한 가정의 파멸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차은재는 자신의 재능을 떠올렸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쓰러지고, 흉부외과의임에도 제 아무리 청심환을 쏘아부어넣어도 수술실에서 견디지 못해도 악바리처럼 응급실에서라도 자신의 몫을 다하려하며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던 차은재였는데, 비로소 그날 해부학 실습실에서 쓰러졌던 자신을 복기한다. 바이올린처럼 이번에도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일까 라고. 

그러나 그런 그녀의 절망에 돌담 병원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시 불려온 응급실, 이번에는 무기수 청년이다. 오랜 투석으로 인해 혈관이 다 망가지고 거기에 설상가상 본인이 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환자, 그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쓰고 나서 허탈함에 나선 복도에서 서우진을 만난다. 

'살려고도 하지 않는 무기수'에게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차은재에게 그녀가 자조적으로 쏟아부었던 '재능론'을 들었던 서우진은 그게 바로 '의사의 재능'이라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 말에 은재의 얼굴에 반짝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김사부의 '니 탓이 아니라'는 덤덤한 위로가, 그리고 수쌤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라는 충고가 자신의 재능을 탓하던 은재에게 비로소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인생은 묘하다. 자신에게 다가왔던 '트라우마'든 '과제'든 그걸 피해 제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다시 그 문제에 마주서게 한다. 그래서 일찌기 헤르만 헤세는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서우진과 차은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과거'의 알, 과거의 세계에서 한 걸음 나섰다. 

물론 나섰다고 끝이 아니다. 서우진과 차은재는 뇌사자와 그 뇌사자의 장기 이식을 두고 예우와 기증의 적시를 두고 날카롭게 맞선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또 다른 '의사'의 길에 대한 질문과 과제를 떠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두 사람은 이제 그들을 오래도록 붙잡았던 과거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는 '데미안' 속 그 문장처럼 또 다른 나를 향한, 의사 서우진과, 의사 차은재의 길이다. 

by meditator 2020. 1. 29. 15:45

2016년 초겨울 지방의 초라한 돌담병원에서 의술과 인술의 기적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불러왔던 <낭만 닥터 김사부>, 그로부터 3년이 지나 2020년 시즌2로 돌아왔다. 예의 오래된 팝송이 담긴 카세트 테이트를 트는 '낭만'이 가득한 김사부의 방도, 그 방을 지키는 김사부도 여전하지만 그의 아이들이 달라졌다. 사고뭉치 아이들로 시작하여 어엿한 의사로 성장했던 서정쌤(서현진 분)과 동주쌤(유연석 분)이 각자의 일신사로 돌담 병원을 비우게 되고, 외과의가 필요했던 김사부가 본원 거대병원에서 '줏어온' 아이들 서우진(안효섭 분)과 차은재(이성경 분)이 새롭게 등장했다.

 

 

돌담 병원의 딜레마 
아이들만 달라진 게 아니다. 시즌1 내내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미션 임파서블'한 작전을 해내던 돌담병원, 하지만 돌담 병원의 발목을 잡는 건 그저 낡은 의료 기기와 적은 의료 인력이라는 객관적 조건만이 아니었다. 본원 거대 병원의 분원 돌담병원이라는 '구조적' 위치가, 거기에 자격지심으로 부터 비롯된 어긋난 묵은 해원으로 사사건건 김사부에게 태클을 거는 도윤환 원장과 그의 하수인들이 시즌 1 내내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었다. 그리고 시즌1의 마지막은 그가 그토록 진짜 실력이라 믿었던 권모술수로 인해 스스로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부터 도윤환 원장이 원장 직을 내려놓는 '승리'의 팡파레를 울리며 화끈하게 마무리되었다. 

3년만에 돌아온 돌담 병원, 낡은 의료 장비는 업그레이드 되었고, 최신 의료 기기가 구비된 수술실도 마련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돌담병원의 막강한 후원자였던 신회장(주현 분)이 더 이상 그곳에 없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바로 그 시즌1 내내 악의 치트키였던 도윤환이 거대재단 이사장이 되어 그 자신의 'I'll be back'을 실현해내고야 말았다. 

돌아온 그가 제일 먼저 벌인 일은 바로 김사부의 환자 나꿔채기이다. 지방 행사에 가던 중 교통 사고를 당한 국방부 장관, 응급 환자로 들이닥쳐 엄청난 피를 흘리며 심지어 아스피린을 복용하여 지혈도 제대로 되지 않은 환자를 김사부가 늑간 내 출혈까지 잡아내며 겨우 회생시켜 놓았더니, 거대 병원 간판 외과 의사 박민국 교수(김주헌 분)팀을 내려보내 가로챘다. 수간호사 오명심(진경 분) 선생의 말대로 김사부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고 생색은 거대 병원 측이 내려는 것. 

 

 

이렇게 이제 거대 재단 이상장이 된 도윤환은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김사부를 향해 그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도윤환 원장이 먼저 던진 이 승부수에 대해 느긋하게, 하지만 그가 모르는 패를 쥔듯 '암중모색'하며 반격을 준비하는 김사부의 대결은 시즌2를 이끄는 가장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이다. 

여전히 세상은 돈과 명예와 권력, 그리고 그것을 향한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의 것이라 자신하는 도윤환과, 그런 도윤환을 숨기지 않고 한껏 비웃어 주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응급 사고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던 '인간미' 넘치는 김사부의, '인간'이라는 화두를 둘러싼 대립은 대결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시즌 1의 윤서정과 강동주도 그랬다. 전문의의 자격증을 지녔지만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에 걸려 엎어진 채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바라는 아이와 같았다. 그런데 이제 시즌 2에 다시 돌담의 아이들로 등장한 서우진과 차은재 역시 시즌1의 그들과 비슷하다. 

흙수저임에도 실력하나로 거대 병원의 에이스로 거듭났던 강동주, 그러나 그는 금수저들의 카르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다. 그렇게 찾아온 돌담 병원, 그리고 이제 3년 후 또 다른 상처만 가득한 흙수저 의사가 돌담에 등장한다. 어찌 보면 강동주보다도 더하다. 부모님이 음독을 한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 그 아이는 따라가기도 힘든 의대 과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퇴서를 품고 견뎌냈다. 돈을 따라간 선배 병원, 하지만 의료법 위반에 걸려 폐업한 이유가 서우진이라는 소문은 그에게 이제 페이닥으로 일하는 거대 병원에서마저 그를 밀어낸다. 아버지의 빚에, 학자금 대출까지 그의 신장을 노리며 그를 린치하는 조폭들을 피해 그가 찾은 곳은 그에게 명함을 안겨 준 김사부가 있는 돌담 병원이다. 

차은재라고 다를까. 서우진이 차은재를 남다르게 생각했던 그 지점, 누구보다 열심히고 누구한테라도 지지 않은 악바리인 아이가 사실은 '엄마가 슬퍼해서' 의대를 버티고 있었다는 그 딜레마는 흉부외과 전문의 차은재를 수술실에서 버텨내지 못하게 한다. 안정제를 복용해도, 청심환을 사탕처럼 씹어먹어도 넘을 수 없는 벽, 본원에서 수술실에서 잠든 차은재에게 선택지라고 던진 카드, 알고보니 김사부가 던진 구원의 카드였다. 

 

 

서우진의 오래된 기사까지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고, 본원의 후배가 만류하는데도 기꺼이 차은재를 품은 김사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마냥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아량은 커녕, 피투성이가 되어 찾아온 서우진이 돈에 자신을 팔려하자 너같은 놈은 필요없다며 당장 내친다. 수술실에서 뛰쳐나온 차은재에게는 내 수술실에서 도망가는 너같은 의사는 필요없다며 다그친다.

요즘 아이들한테 그러면 '꼰대'라고 오영심 선생이 달래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시즌 1에서도 그랬다. 육체적 심리적 트라우마때문에 손을 쓰는게 여의치 않았던 윤서정에게 김사부는 얼마나 혹독했던가. 사사건건 중뿔나던 강동주와는 또 얼마나 싸웠던가. 

마치 한껏 달궈진 쇠를 단단한 망치로 두드려 벼려 날선 칼을 만들어 내듯 김사부는 늘 자신의 상처에 갇힌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은 차은재에게 수술실에 얼씬도 하지 말라하고, 자신을 팔겠다는 서우진에게 그런 의사는 필요없다며 1주일의 딜을 하게 만들며,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속에 믿음이 있다. 차은재든, 서우진이든 지금 이 자리까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온 이 '아이들'이 김사부가 달구어 두들겨 대는 그 망치질에서 그럼에도 지나온 순간의 그들처럼 다시 최선을 다해 가장 '정답'의 길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없고서야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리고 바램이 있다. 뜨거운 그 불길과 같은 김사부의 가르침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딛고 진짜 의사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과의, 수술실에도 갈 수 없는 흉부외과의, 그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려면 저 정도의 '제련'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과정인 듯싶다. 

그 불가능한 미션이, 상처받은 아이들이 김사부의 단련 과정에서 몸부림치며 성장하는 과정이 시즌 1에서도 그랬듯 <낭만 닥터 김사부>의 진짜 이야기다. 



by meditator 2020. 1. 14.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