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계시는 아는 분네 집안이 졸혼을 했다. 집이 팔렸고 아버지와 엄마가 각각 자신의 집을 얻었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어머니가 오래 힘들었고, 갱년기가 찾아온 엄마는 지나온 시절의 힘듬을 토해내셨을 때 이번에는 아버지가 맞춰주시는가 싶었는데, 결국 부부는 각자의 각 길을 떠났단다. 

저 얘기를 듣고 우선 들었던 생각이 그러면 아이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어디로 가지? 였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은 그게 뭔 문제냐는 반응이지만 그래도 거기에 생각이 먼저 멈춘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에서 김상식 씨(정재영 분)와 이진숙 씨(원미경 분)도 그랬다. 

 

 

말썽꾸러기가 되고싶지 않은 부부
진숙 씨와 함께 음악회를 보러가기로 한 날, 상식 씨는 꽃을 좋아하는 진숙 씨를 위해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길을 건너다 그만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곳은 병원, 그곳에 누워, 그리고 그런 상식 씨 옆에서  두 사람은 저 앞에서 부모 걱정하는 다른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오고, 그런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하는 어머니에 대해 다 큰 자녀들은 늙은 부모들을 '말썽꾸러기'가 되었다며 짜증스럽게 말을 나눈다. 

말썽꾸러기였던 자식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주고 잔소리도 해가며 키웠던 '기둥'같았던 부모들, 하지만 어느 틈에 그 말썽꾸러기였던 자식들은 버젓한 성인이 되고, 이제 아이들을 키우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말썽꾸러기'가 되어간다. 몸이 늙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몸뿐인가 마음들도 제 멋대로다. 어느 틈에 자식들은 부모들을 골칫덩어리 자식마냥 취급한다. 

졸혼을 선언한 진숙 씨, 반응은 제 각각이었어도  자식들 마음 속에 '우리 엄마 왜 그런대?'라는 맘이 왜 없었겠는가. 어느덧 각자 삶의 문제도 버거워질 나이의 자식들은 이제 와 '부모가 말썽을 부리는 게' 번거롭고 때로는 신경을 끄고 싶기도 한다. 이제 다시 아버지와 엄마가 만나 데이트를 하신다는 막내의 톡에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은주(추자현 분), 은희(한예리 분)의 심정이 그것이리라.

부모는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뉘어 키우려 했지만 다 자란 자식에게 부모는 어느 새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부모와 자식의 자리가 그래서 다른 것이다. 제 아무리 내 속을 알아주는 자식이라 터놓는다 해도, 자신의 삶이 있는 자식에게 부모의 속 마음은 짐스러운 시절이 되었다.  

그래서 '말썽꾸러기'라는 말을 들은 상식 씨와 진숙 씨의 마음이 철렁했다. 상식 씨는 자신이 아픈 걸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했다. 아이들이 자랄 때 바깥으로만 돌고, 집에 오면 화만 내던 아버지였는데 이제 와서 아프다는게 면목이 없다. 상식 씨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싶다며 수술을 뒤로 미루고 싶어했지만,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 빨리 수술받는게 낫다며 진숙 씨가 상식 씨를 잡는다. 

 

 

수술을 받게 된 상식 씨의 곁을 지키는 진숙  씨, 몇 번의 데이트, 그 때마다 전해준 꽃이 진숙 씨의 마음을 다 풀어내서일까. 진숙 씨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세트' 메뉴라고. 졸혼을 선언하고 그런 진숙 씨의 졸혼 선언에 응답하여 상식 씨가 집을 나갔어도, 자식들에게 부모는 함께 살던, 따로 살던 부모라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들이 사랑했건, 미워했건, 때로는 증오했건 그들이 함께 해왔던 시절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진숙 씨는 기꺼이 아이들에게 말썽꾸러기가 되고 싶지 않은 상식 씨의 마음에 동조한다. 그런 진숙 씨의 마음은 이혼을 알린 은주에게 네 이혼에 엄마의 졸혼이 영향을 끼쳤으면 어쩌나 하며 미안해 하는 마음과 같은 갈래이기도 하다. 

아는 건 없어도 가족이다. 
결국 부부는 상식 씨의 수술을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는 공모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는 것 없는'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이 가족은 가족이 아니어야 할까. 아니 되려, 상식 씨와 진숙 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부같고, 그런 엄마 아버지의 공모를 알고 뒤늦게 달려온 은주와 은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같다. 흔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해결책'이 되곤 하는 '병'이라는 설정 때문이었을까. 결국은 '아프다'는 것만큼 '만병통치약'이 없기 때문인 것인가. 

그런 면이 없지도 않다. 졸혼으로 갈라선 부부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접착제에 '병'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은주와 태형(김태훈 분)은 결국 이혼을 합의한다. 거기에는 결정적으로 부부됨의 기본 요건이어야 할 태형의 정체성이 놓여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이제 두 사람의 공동체를 묶어줄 그 최소한의 '연민'조차도 놓여나게 만든다. 심하게 말하면 '사기'라고 할 수 있는 태형의 거짓말, 그리고 은주가 원했던 가정에 대해 오해했던 태형의 독선, 이런 서로가 몰랐던 서로의 '진심'들, 그 진심들을 품어줄 '여지없음'이  더는 두 사람을 '연민'으로 묶어낼 힘조차 잃은 것이다. 

 

 

반면, 상식과 진숙 씨는 이제 오랫동안 서로에 대해 팔짱을 끼고 외면했던 서로에 대한 '연민'을 풀어낸다. 그 시작은 상식 씨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결국 가장 미웠던 사람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였던 상식 씨. 결국 상식 씨가 싸웠던 것은 자신에게 과분한 상대라 생각한 진숙 씨에 대해 한없이 옹졸하기만 했던 상식 씨 자신이다.

그 옹졸함을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표출했던 상식 씨가 22살로 돌아갔던 뇌의 이상 증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그리고 그 반성을 진숙 씨에게 드러내고, 진숙 씨 역시 닫았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한평생 가장이었으면서도 홀로 외로웠을 사람, 그 사람을 바라봐주는 마음, 그건 '감정'과 별개로 함께 삶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공동체'의 주체로서 서로에 대해 가지는 연민이다.  진숙 씨는 말한다. 상식 씨가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왔던 것, 그거 하나만 잘했다고. 자신에게 모질었던 상식 씨 대신 아버지로 늙어버린 상식 씨를 진숙 씨가 품는다. 찬혁의 가정사를 알게 된 은희가 찬혁을 안아주며 마음을 더 깊숙이 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상식 씨와 진숙 씨는 말썽꾸러기가 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대했든 두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함께 하든 따로이든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그런 아이들이 덜 커도, 다 커도 마찬가지인 부모의 자리이다. 아이들에게 상식 씨의 수술을 숨기는 마음은 여전히 아버지이고, 어머니인 진숙 씨의 사랑의 방식이다.  그래서 '아는 건 없어도', 부모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두 사람의 진심 때문에 여전히 이 가족은 '가족'이다. 

by meditator 2020. 7. 15. 17:06

수목 드라마들이 고전 중이다. 제목이 무색하게 kbs2의 <출사표>는 3.3%, jtbc의 <우리, 사랑했을까>는 2.02%의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공중파와 종편이라는 집계 방식의 차이를 든다 하더라도 도토리 키재기인 처지이다. (닐슨 코리아 기준) 그런 가운데 mbc의 <미쓰 리는 알고있다> 역시 3.2%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드라마와 달리 4부작이라는 점에서, <미쓰 리는 알고있다>는 선방이라고 볼 수 있다. 

 

 

<미쓰 리는 알고있다>는 mbc 드라마 극본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서영희 씨의 작품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드라마는 '달의 이면'을 말하고자 한다. 달의 공전과 지구의 자전 주기가 같아 40억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달의 뒷면이 인간 문명의 결과물인 아폴로의 달 탐사로 드러났다. 그렇듯 강남 노른자 재건축 아파트에서 발생한 양수진의 죽음은 거기에 얽힌 사람들의 숨겨온 욕망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궁 아파트, 하지만 말이 강남이지 노후될대로 된 이 아파트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정전에, 바퀴들을 득시글거리고, 엘리베이터는 빈번하게 멈춘다. 재개발이 시급한 상황, 하지만 어쩐지 재개발 승인이 쉬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아파트 주민들은 재개발과 관련된 사안에 촉각이 곤두서있고, 그 중심에 궁아파트 9동 1004호 살면서 부동산 중개인을 하는 이궁복(강성연 분)이 있다. 아파트 값의 오르락 내리락 조차 쥐락펴락 하는 능력자, 아파트에 온 택배까지 맡아주며 온 동네 궂은 일은 도맡아 하는 해결사,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아파트 조합장이며, 부녀회장도 들썩인다. 

그렇게 모든 주민이 재개발과 관련하여 예민해 있던 즈음 아파트 주민이던 양수진(박신아 분)이 아파트 화단에 몸을 던졌다. 기간제 교사였지만, 몇 년전 사고로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피팅 모델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살던 수진이었기에 처지를 비관한 자살로 여겨졌다. 

모두가 수상하다 
하지만 수진 어머니의 뺑소니범 사건과 관련하여 수진을 알게 된 인호철(조한선 분)이 자살로 종결되는 것을 석연치 않게 여긴다. 그로써는 자신이 해결해 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건으로 인해 삶을 망가뜨린 것같은 수진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수진이 자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호철의 무모한 검시 시도, 뜻밖에도 수진은 목이 졸린 채 죽임을 당한 후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임신을 한 상황에서. 

살해 사건이 된 수진의 죽음으로 호철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아파트 재개발에 혈안이 되어있는 주민들, 특히 부동산 중개인 이궁복과 갈등을 빚는다. 

이궁복과 인호철의 접점은 비단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아파트 재개발을 수호하고자 하는 부동산 중개인의 갈등만이 아니다. 궁부동산의 실질적 주인인 사장의 아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궁복이 사장의 후처라 그러고 그래서 사장이 중국에 가있는 동안 그 아들을 15년 동안 거뒀다는 서태화가 사건의 중심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양수진과 서태화,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이웃 사촌이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가 형님, 동생 하는 처지였고, 양수진과 서태화 역시 누나, 동생하며 자라왔다. 그러던 중 서태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양수진의 어머니와 양수진이 서태화를 가족처럼 대해줬고, 이제 양수진의 어머니가 다치신 후, 양수진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서태화는 양수진에게 동네 누나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보호자를 자처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며 질풍노도의 시기인 서태화의 일방적인 감정은 그에게 '접근 금지 명령'의 결과를 낳았고, 사건 당일에도 양수진을 폭력적으로 겁박했으며 양수진에서 나가는 증거 영상으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당연히 인호철은 서태화를 잡으려고 하고, 이궁복은 자동차 사고를 내는 무리수를 감행하면서까지 서태화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대뜸 조합장 직함을 내려놓겠다는 104호의 봉만래(문창길 분) 노인, 그와 그의 아내 남기순(박혜진 분)의 태도가 심상치않다. 봉만래 노인에게 '알고있다'고 언질을 주는 그의 아내, 그와 그의 아내가 들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런가 하면, 조합장이 물러나자 가장 분주해진 부녀회장(전수경 분)과 그의 남편 관리소장(우지원 분), 그리고 총무(김예원 분)의 관계도 수상쩍다. 양수진이 죽던 날 아파트 cctv를 조사하려 하니 그 누군가가 삭제한 상황, 알고보니 삭제를 한 건 관리소장이었고, 삭제를 사주한 건 총무였다. 제 3자인 이들이 양수진 사건에 엮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

하지만 드러난 서태화를 제외하고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양수진의 집 바로 윗층, 704호 입주민이자, 궁 아파트 재개발을 노리는 병운 건설 사위인 이명원(이기혁 분)이다. 주변 탐문 조사를 하러 찾아간 날 명원은 얼굴에 멍이 든채, 손에는 반창고를 붙인 채 당황한 모습으로 호철을 맞이했다. 호철이 부탁한 수진의 손톱 밑에서 발견된 상피 세포는 명원의 상처와 일치할까?

회사에서 기세등등한 모습과 달리, 수진과 관련된 일련의 상황에서 늘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명원, 수진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안 태화는 명원을 향해 폭주하고, 두 사람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만다. 그런데 늘 서태화에게 필요 이상으로 강압적인 호철이 늘 명원에게는 한 수를 접는 모양새다. 4회 마지막 늦은 밤 수진 집에서 발견한 인기척에 들어간 호철에게 발견된 명원, 호철은 명원에게 '니가 왜 여깄어'라고 하고, 그런 호철에게 명원은 '형'이라 부르며 당황한다. 

한 여성의 죽음, 그 죽음에는 억울하게 뺑소니 사건을 당한 어머니를 봉양하려다 피폐해진 한 여성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여성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얽힌 두 남자가 등장하며 사건은 애증으로 인한 치사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두 남자와 얽힌 이궁복과 인호철, 그리고 명원의 아내까지 등장하면 사건의 각도는 또 달라진다. 어디 그뿐인가, 조합장 부부는 무엇을 숨기고, 관리소장과 총무는 왜 cctv를 삭제했을까?  무엇보다 지금은 궁 아파트를 들썩이는 실세가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지난 15년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오른 이궁복이 안수진의 어머니에게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그 속사정은 또 무엇일지.

<미쓰 리는 알고있다>는 4부작이지만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장르의 묘미를 회차마다 한껏 살려내고 있는 중이다. 한 불쌍한 여성의 살인 사건은 매회 사건의 각을 펼쳐가며 이제 수사를 하는 형사 인호철과 이명원의 숨겨진 관계까지 암시하며 사건의 판도에 또 다른 변주를 가하며 재미를 더하고 있다. 등장 인물 모두가 수상해진 사황, 4부작이기에 한껏 장르물로서의 박진감을 한껏 살려내는 중이다. 

by meditator 2020. 7. 10. 17:14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알처럼 스르르르 빠져나갔다. 언제 우리가 가족이었나 싶게 모두가 흩어져갔다. '가족'이었지만 서로가 이제 더는 '가족'이기를 주저하자 원심력은 빠르게 가족을 흔들어 놓았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의 처지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고 뿔뿔이 돌아서려는 순간 무언가가 서로를 끌어 당긴다. 서로가 확인한 민낯이, 서로가 던졌던 속에 담아두었던 한 마디가, 상처였다고, 고통이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제 다른 의미로 서로를 붙잡는다. 

 

 
 
일방적이었던 가부장적 사랑, 그 족쇄를 풀다 
김상식(정진영 분) 씨와 이진숙(원미경 분) 씨의 결혼은 한평생 기울어진 시소와 같았다. 그런데 그 기울어짐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김상식 씨는 가진 거라고는 방 한 칸인 배운 것 없는 자신을 선택해 준 대학생이었던, 더구나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진숙 씨에 대한 열등감에 평생 시달렸다. 자기보다 많이 배운, 그리고 비록 자신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은주의 아빠를 잊지 못했을 지도 모를 아내에 대한 김상식 씨의 마음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 

결혼식장에 온 은주 아버지 또래의 남자를 은주 아버지라 오해하고, 아내가 줄쳐놓은 소설 책 속 한 문장이 아내의 잊지못하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난폭해 졌다. 그는 아내에게 묻지 않은 채 스스로 쳐놓은 오해의 덫에 갇혀 아내를 밀어냈다. 22살도 잠시 돌아간 청년 김상식 씨가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은 냉정한 은주의 지적처럼  어설픈 '책임감' 뿐이었다.

아내를 부양했지만, 자신에게 버거운 그녀를 늘 오해하고 의심하며 한 평생을 보냈다. 상처입은 새와 같던 그녀를 품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품기에 그가 가진 마음의 그릇은 그의 생각만큼 넓지 않았다. 

아내가 낳은,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 아닌 은주를 사랑하는 방식도 결국 마찬가지다. 그는 은주를 식구들이 편애라고 할 만큼 예뻐했지만, 결국 은주에게 내민 통장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하며 내민 통장에 은주는 은희라도 그랬겠냐며 울음을 터트린다. 그가 은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돈을 모으는 대신, 그 돈을 당시 아내에게 주었다면 아내는, 그리고 가족들은 조금 더 편안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김상식 씨는 가족을 소외시키는 대신 자신의 책임만에 집착한 것이다. 

그의 그런 일방적인 방식은 스스로가 저지른 교통 사고 처리 방법에서도 드러났다. 자신이 저지른 당시만 해도 그 보상금과 법적 처벌을 감수를 피하고 싶었던 김상식 씨는 식구들 몰래 피해자 소년의 가족을 책임졌다. 그리고 그 책임의 시간 동안 가족들을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부재를 감당해야 했다. 그는 가부장으로서 홀로  '책임'졌다고 하지만, 그 책임의 그림자는 온전히 가족이 감당했다. 

그런데 이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잠시 22살로 돌아간 김상식 씨로 인해 김상식 씨를 눌러왔던 과거의 족쇄가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은주 출생의 비밀이 온 가족에게 알려지고, 아내의 졸혼 선언으로 과거를 돌아온 김상식 씨가 자신이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내고, 아내와의 오래도록 쌓인 오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결자해지, 의도야 어떻든 가족 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가장 김상식 씨는 이제 자신을 똘똘 감쌌던 성벽과도 같은 것들을 하나 둘 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드라마라서 16작에 완결되야 하는 서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굳이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김상식 씨 또래 많은 가장들이 김상식 씨와 같은 사연은 아닐지라도 가장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홀로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외롭게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오해로, 때로는 어쩌지 못하는 책임감으로 , 혹은 때로는 치기어리기조차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드라마는 말한다. 그 알고보면 어처구니없기까지 한 그 홀로 짊어진 마음을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고 당부한다. 졸혼까지 선언했음에도 김상식 씨가 하나 둘씩 자신을 둘러싼 갑옷과도 같은 오해와 고집을 털어내자 아내 진숙 씨가 그런 상식 씨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가 건네는 한 송이 꽃에, 한 잔의 커피에 진숙 씨의 미소가 돌아온다. 사랑이 별 건가, 가족이 별 건가, 그 사소한 마음들이 모여, 사랑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다. 대학 교정에서 울던 진숙 씨를 차에 태웠던 상식 씨의 그 배려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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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이 되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었다 
자신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아버지는 은주에게 따숩게 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가격의 집에 살지만 은주네 부부에게 온기는 없었다. 이제 은주를 다시 만난 막내 지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은주네 부부가 편안해 보인다고 한다. 

서로 떨어진 방, 그 방의 거리 만큼이나 멀고 서먹서먹하던 두 사람이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남편 태형(김태훈 분)의 커밍 아웃으로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결국 이혼을 하자고 하는 은주, 그런데 그렇게 이혼으로 가려는 와중에 은주 출생에 대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났다. 휘청거리는 은주, 늘 거리감을 가지고 대했던 남편 태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은주를 걱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몇 십년 동안 친아버지와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는데, 이제 와 생물학적 아버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되려 위로를 한다. 

그런가 하면, 태형이 사랑했던 함께 떠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다른 사랑하는 이가 그가 있는 뉴질랜드로 가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한 건 바로 아내 은주였다. 아내 은주가 있는 곁에서 태형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술이 취했다. 그렇게 돌아온 날 여전히 아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는 태형의 방 앞에서 닥달을 하고, 그런 시어머니에게 은주는 차분하게 말한다. 나도 그 사람이 받아들여지니 이해가 되는데 어머니는 왜 그게 안되냐고. 

공식적인 '부부'의 정의에 따르자면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지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방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태형, 그 방문 앞을 지켜주는 은주,  그 어느 때보다도 두 사람은 '한가족'같다.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해 괴로워하는 서영은 그런 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하는, 파렴치한 애인의 어머니를 달래는 듯한 자신의 어머니가 더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서영에게 찬혁(김지석 분)은 때론 가족이 '비겁한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가족이니까, 들쑤셔 더 아플까봐 그러는 거라고.

사실 정답은 없다. 가족이 가족됨에, 저 마다 사람이 다르듯이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건, 마음이 아닐까. 마음만 있다면, 서로가 가족이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다면, 비겁하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상식 씨의 더 늦지 않은 고백이. 태형과 은주의 민낯이 서로를 그래서 아직은 가족이란 구심력으로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0. 7. 8. 15:22

가족 해체의 시대이다. 월간 8천에서 1만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연간으로 보면 11만 쌍의 부부가 헤어진다. 꼭 이혼만이 아니다. '조혼'처럼 법적 장치를 거치지 않고 부부가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관행'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보다 더 '해체'의 조짐으로 드러나는 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젊은이들이 '결혼'을 더 이상 인생에 꼭 필요한 통과 의례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자 하는 등 '가족'의 형태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렇게 '가족'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어가고 있는 즈음,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이제 절반을 넘어서 '절정'에 이른 드라마는 가족 저마다에게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며 '가족'의 한계, '가족의 끝을 묻는다. 

 

 

비밀은 없다
머리를 다쳐 22살로 돌아간 아버지 김상식(정진영 분)씨가 어머니 이진숙(원미경 분)씨에게 제일 먼저 확인한 건 바로 그리도 애지중지 키웠던 큰 딸 은주((추자현 분)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조차 모르는 22살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확인차 물어봤던 이 질문, 그 질문을 그만 막내 지우(신재하 분)가 듣고 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자신이 들었던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막내는 그 사실을 가족같은 형 찬혁(김지석 분)에게 털어놓는다. 그 때만 해도 그저 막내만의 가슴터질 것같은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 비밀은 22살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추억 순례 여행에 동참한 둘째 은희(한예리 분)에게 강한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거실에 자리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의 그날, 어머니 손을 처음 잡아봤다던 아버지, 그런데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는 이미 큰 딸 은주가 있었던 것이다. 

은희의 기습적 질문에 수습은 커녕 망연자실하고마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진실에 한 발 다가서게 된 은희는 당사자인 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을 종용하고, 어머니는  결국 은주에게 고백하고 만다. 아이를 가진 21살의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길을. 

은주가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가족의 판도를 바꾼다. 지금까지 자기중심적이며 어머니에게 횡포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아버지로 인해 늘 어머니의 편이었던 은희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반면, 자신을 편애하다시피 아꼈던 아버지의 자부심넘치는 큰 딸이었던 은주는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보인 아버지의 태도가 자신을 볼모로 삼은 정신적 폭력이라 느끼며 아버지에 대해 분노한다.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며 형제라 하지만 어머니와 은주에게 어쩐지 거리감을 느끼는 은희와 지우, 그런 은희에게 은주는 이제 더는 자신이 이 집의 가족일 수 없음을 선언하는 은주. 어머니의 졸혼 선언에 이어 가족은 다시 한번 '가족의 경계선'으로 밀려난다. 

 

 

가족의 한계는 어디일까?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족들을 불러모은 아버지는 오래전 자신이 저질렀던 교통 사고를 고백한다. 당시 보험을 들지 않아 엄청난 보상금은 물론, 구속이 될뻔한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교통사고로 다쳤던 아이를 이제 커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도 '자식'처럼 돌보아 왔던 무거운 짐을 토로한다. 

하지만 홀가분하게 집을 나서겠다는 아버지의 의도는 식구들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자식'처럼 돌보아왔던 그 '피해자'가 아버지를 애틋하게 여기는 것과 달리, 하지만 정작 아들인 지우는 바깥으로 도는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조차 못한 채 자랐던 설움이 폭발한다. 

어머니는 더하다. 그토록 자신과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해 주던 남편이 어느 날인가 부터 서릿발처럼 차가워졌던 그 시절 이래, 어머니 진숙 씨는 남편을 견디며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어머니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 밖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들어 놓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제 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과일 가게 사장님의 부인을 간병한 걸 그 남편과 바람이 난 거라고 아버지가 오해한 것처럼.  그러나 어머니는 용납할 수 없다. 당시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단 한번도 상의하지 않은 채 홀로 그 일을 짊어져왔다는 사실이. 

은주는 왜 함부로 사람을 책임지려 했냐고 냉정하게 반문한다. 그 질문에는 아버지가 홀로 짊어지며 가족을 소외해 왔던 시간이, 그리고 그 교통사고만이 아니라, 자신을 가진 어머니를 책임지려 하며 아버지가 느꼈던 '소외의 시간'에 대한 힐난이 담겨져 있다. 

은주는 결국 '커밍아웃'을 한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말한다. 인기를 끌었던 <부부의 세계>처럼 지금까지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들은 불륜이나 외도 등을 가족 해체의 주요인이라 말해왔다. 그런데 <가족입니다>는 그런 '사건'을 넘어 가족의 본질을 묻는다.

가족이라는 삶의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저마다 홀로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를 드러내며  과연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교통사고를 오랜 시간 책임져왔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를 아내와 가족에게 쏟아부었다. 성정체성이 다른 남편은 아내에게 오랜 시간 위선의 부부 행세를 했다. 거기에 더해 피를 온전히 나누지 않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그에 반해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가족처럼 지내온 사이, 그리고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친구 등을 통해 그렇다면 가족은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과연 그럼에도 가족은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도달한다. 그래도 아는 건 없어도 가족일까? 

by meditator 2020. 7. 1. 02:01

티비 조선의 사극 <바람과 구름과 비>가 6월 27일 12회 방영분이 6.32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12회, 이야기의 진행 과정으로 봤을 때 제작진이 희망했던 10%의 고지도 예상해 볼만한 기세다. 

<바람과 구름과 비>가 토, 일 밤 11시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드라마도 4%만 넘어도 중박이라고 하는 열악한 시청 환경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간 제작비 등으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통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해소됐기 때문일까? 매회 그리고 한 씬, 한 씬 허투루 넘어가는 장면이 없는 제작진의 정성, 거기에 더한 배우들의 열연은 그간 '사극'에 목말랐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흡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역사가 '스포'가 돼듯 세도 정치와 무능한 권력으로 인해 사그라들어가는 조선 말의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소재이다. 그런 익숙한 소재를 '점바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주 명리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통해 재해석하고 있는 <바람과 구름과 비>는 정통 사극의 새로운 변주로 역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며 호평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변주'의 성격에 있어서 드라마는 '옛 것을 통해 오늘을 살펴보고자 하는' '온고지신'의 배움이 가득하다. 특히 12회에 등장한 조선을 뒤덮은 역병은 아직까지 '코로나 팬데믹'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거울이다. 

 

 

왕재를 둘러싼 파워게임 
후사가 없던 철종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던 이하전(이루 분)은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했다는 이유로 장동 김문의 김병운(김승수 분)을 공격했지만 외려 그의 농간에 결국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고 만다. 

그를 앞세워 자신은 물론, 자기 가문의 앞날을 보전하려 했던 신정왕후 조씨(김보연 분)은 그만 자리를 보전하고 눕고 마는데, 그런 대비 앞에 송전이라는 점바치가 철종 이복 형님 아들이라는 영운군을 데리고 등장한다. 자신이 애정했던 이하전과 똑같은 사주에다, 그와 비슷한 흉터까지 영운군, 그에게 마음을 빼아겨 버린 대비는 철종에게 어서 빨리 후사를 정하라 재촉한다.

거기에는 앞서 최천중(박시후 분)이 왕재라 천명한 이재황(박상훈 분)의 아버지 이하응에 대한 견제 심리와, 보다 만만한 영운군을 앞세워 대비의 가문인 조씨 가문의 득세를 기도하고자 하는 '권력욕'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영운군 뒤에는 정작 실세 장동 김문이 있었으니, 후사를 둘러싼 파워 게임의 향배는 점입가경이다. 

이에 철종은 이재황을 왕재라 천명한 바 있던 최천중을 부른다.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를 둘러싼 두 점바치 최천중과 송전의 갑론을박, 이에 두 사람이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예언을 놓고 그들이 선택한 왕재의 진실성을 결정하기로 한다. 

송전이 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라의 앞날이 태평성대가 될 것이며 세손까지 올해 안에 볼 것이라 장담을 한 반면, 최천중은 최근 한 달간 천기를 살펴본 결과 나라에 역병이 돌 것이라 예언한다. 발칵 뒤집힌 조정, 이미 철종 3년에 역병으로 한바탕 나라의 위기를 겪은 조정은 최천중의 예언을 놓고 그의 목숨을 겁박한다. 

 

 

최천중은 왜 불길한 예언을 했을까? 
그런데 왜 최천중은 철종의 앞에서 가장 불길한 운세를 예언했을까? 거기에는 이미 빈촌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역병이 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토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 하지만 이를 담당해야 할 혜민서와 한성부의 관리들은 팔짱을 낀 채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 철종이지만 실세인 장동 김문의 방해로 '보고'의 계통조차 막혀 있는 상황, 이에 천중은 차기 왕재를 가리는 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왕에게 역병에 대한 대비를 '충언'한 것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또한 역병을 둘러싼 권력의 민낯을 까발린다. 역병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고 이 치료에 필요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 긴급성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동 김문은 빈촌은 습해서 역병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며 콧방귀를 끼며 일축한다. 한 술 더 떠 나랏돈을 쓸데없이 백성들에게 쓰지 말란다. 그들에게 나랏돈은 자신들의 뒷배이지 백성들에게 쓸 돈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의 실세와 그 밑의 관리들이 빈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역병에 대해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상황은 김씨 세도의 조선이 왜 '침몰하는 배'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 

그렇게 '권력'의 중심이 백성의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역병의 중심지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명성황후의 캐릭터로 보자면 고개를 꺄우뚱하게 되지만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온 민자영이, 그리고 그의 청을 받아 봉련이 빈촌으로 달려간다. 

봉련이 던진 왜 너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민자영은 장동 김문에 의해 부숴지는 유접소를 구하기 위해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던 천중의 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민자영을 감화했듯이 천중은 그 자신의 돈으로 전국 방방 곡곡에서 구한 역병 치료약을 구해 등장한다. 

앞서 강가에서 천문을 보고 역병을 예감한 천중은 자신의 오른팔인 용팔용에게 미래를 묻는다. 침몰하는 배, 그곳에서 탈출할 것인가, 그 침몰하는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려 애쓸 것인가. 멸문지화를 입고 홀로 살아남아 사주 명리학을 익히며 이미 조선의 운명을 예감한 천중, 그가 말하는 침몰하는 배는 바로 권문세족의 횡포로 침몰하는 조선이었다. 

침몰하는 조선에서 탈출하는 대신, 그곳의 사람들을 구하기로 결심한 천중은 그의 혜안으로 역병 치료약을 구하는 등 역병에 대비한다. 하지만 그런 천중의 '선한 의도'에 대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장동 김문 등의 조정은 외려 천중이 역병을 퍼뜨렸다는 '마타도어'로 대응한다. 역병 치료에 앞장섰지만 외려 잡혀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가 왕재인가? 
12회, 과연 누가 왕재인가로 시작된 <바람과 구름과 비>, 역병이 돌자 이하응은 지금 왕재를 논할 때가 아니라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역병의 역습은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기생의 치맛자락 밑을 기며 온갖 수모를 참아내며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왔던 이하응, 예산 편성을 해주지 않는 김문에게 분노하고,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에게 빈촌의 진흙 세례을 퍼붓는 이하응이라면 충분히 여러 패착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다시 재건하고자 했던 대원군의 기세를 읽을만 하다.

그에 반해 그저 철종 이복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등장하여 대비를 등에 업은 영운군이야 말로 또 한 사람의 철종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는 그렇게 조정의 왕재 싸움 중에서도 역병에 대비하기 위해 왕에게 간언을 서슴치 않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 역병 치료약을 사들인 천중의 행보를 대비시킨다.

봉련의 어머니는 천중에게 슬피우는 용이라 했다. 용이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닐까. 혈통으로 '인증'받는 왕재의 나라에서, 그의 언행에 탄복하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침몰하는 배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애쓰는 천중이야말로 그 시대에 진정 필요한 '왕재', 즉 리더가 아닐까. 알량한 혈통에 연연하며 왕재에 매달리는 조정은 침몰하는 배의 또 다른 반증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권력의 민낯은 그저 왕조 시대의 잔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씁슬함을 남긴다. 그 반면 침몰하는 조선을 예감했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천중의 모습, 중반을 넘어선 <바람과 구름과 비>는 왕재를 둘러싼 파워  게임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조건을 묻는다. 

by meditator 2020. 6. 28. 20:09

'지 밖에 몰라', 아마도 이 말에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많은 아내들이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까. 그건 살면서 몇 번은 속으로, 혹은 혼잣말로 되뇌였던 '남편'을 향한 '대사'였으니.  분명 남편과 아내가 하나의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것임에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저런 감정이 느껴지게 된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든 잘 꾸려나가기 위해 아내가 자신의 시간, 노력 등등 자신의 어느 부분을 던져가는 반면, 어느 지점에서 그 '가장'의 위세로 자신을 고집하는 지점에 맞닦뜨릴 때 그 막막한 벽 앞에서 느껴지는 좌절감의 표현일 것이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 세대에서 이런 일이란 '일상'의 풍경이었다. 이제와 '졸혼'이 등장했지만, 그 '졸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지 밖에 모르는 남편을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라 '자조적'으로 퉁치며 견뎌왔다. 젊은 세대에 와서 많이 달라져 육아의 부담을 나누고, 공동체적 합의에 충실하려 하지만 그 비율이 만족스러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일 것이다.  세대를 달리하지만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남성,  이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아버지 김상식 씨와 사위 윤태형을 통해 세대 별 남성상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뒤늦은 오열
6회, 돌아온 남편 김상식(정진영 분) 씨는 이제 기억이 돌아왔다며 아내 이진숙(원미경 분) 씨에게 '졸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아내 이진숙 씨는 그런 남편 김상식 씨가 수상하다. 아니 수상할 뿐만 아니라 이제서야 홀가분하게 자신이 짊어져왔던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나 싶은데 22살이 되었던 김상식씨로 인해 자꾸만 옛 생각이 떠오르며 싱숭생숭해진다. 

하지만 사실 김상식 씨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아내에게 졸혼을 하자고 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그를 스쳐가는 자신의 지나온 나날들, 그는 첫 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하던 날 먼저 상에 앉아 음식에 손을 대는 그를 말리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나서던 지 멋대로인 남편이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아내에게 동료 말에 따르면 그 돈으로 어떻게 형수님이 아이들을 키웠는지 놀랍다고 할 만큼의 생활비를 주던 인색한 남편이었다. 그렇게 생활비에 쪼달리는 아내가 사들고 온 과일에 분노하며 유리창을 깨버리는 안하무인의 남편이었다.

남의 아이를 가진 진숙 씨에게 무릎 끓고 청혼을 했던 상식 씨가 변해 버린 그 어느 날 부터 상식 씨는 가정의 폭군이 되어 살아왔다.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만으로 군림했다. 아내보다 못배우고, 점점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족한 듯한 자신의 모습을 이른바 '열폭'으로 표출했다. 말은 칼보다 날이 섰으며, 눈길만으로도 아내를 자지러지게 했고, 분노한 그의 손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 

이제 다시 22살이 되어버린 상식 씨는 그렇게 지 멋대로, 안하무인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진숙 씨를 괴롭히며 살아온 자신의 지난 날을 견딜 수가 없다. 오열했다.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진숙씨를 그렇게 괴롭힐 수가 있나 하며.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진숙 씨가 원하는 대로 '졸혼'을 하기로. 

 

 

잘못꿰어진 결혼, 뒤늦은 결심 
여기 또 한 사람 '졸혼'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상식 씨의 첫 째 사위 윤태형(김태훈 분)이다. 뉴질랜드로 세미나를 가겠다던 그는 아내 은주(추자현 분)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노트북을 놔두었다. 그 노트북에는 아내에게 '커밍 아웃'을 하는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갔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도망치곤 하던 소록도로 갔다. 

왜 아내 은주와 결혼을 했느냐는 처제의 질문에 아내 은주도, 자신도 집으로 부터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었던 태형은 남들이 보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다. 한번도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것같은. 그래서 자신을 얽어매는 집으로 부터 도망치듯 아내를 방패삼아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아내를 아이를 가지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한편, 자신의 정체성을 '가정'으로 회피하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는 분노한다.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았음을, 그리고 그 비겁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채팅창으로 알렸음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을 방조했던 그 치사함을. 늘 도망치고 회피하고 살아왔던 삶에 대해 질타하는 아내에게 분노했지만 떠난 아내의 뒷모습에 처참하다. 편의적으로 회피하여 온 삶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내, 잘못꿰어진 결혼이 남긴 상흔이 깊다. 

김상식 씨도, 경우는 다르지만 사위 태형도 결혼이라는 함께 꾸려가야 할 삶을 자신의 멋대로 재단해버린 결과에 봉착했다. 22살의 여린 청년이 되어버린 김상식씨에게는 괴물처럼 느껴지는 자신이 살아왔던 날들, 뒤늦게라도 되돌리려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아내, 과연 그들이 이 '자기 멋대로' 살아온 삶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0. 6. 17. 15:12

tv조선에서 토, 일 밤 10시 50분에 방영 중인 <바람과 구름과 비>는 1977년 2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10권 분량의 대하 장편 소설이다. 5백년을 이어왔지만 김씨 세도가에 휘둘리는 무능한 임금 철종, 훗날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 될 이하응은 자신의 야심을 숨기고 투전판의 개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세상, 그렇게 중병을 앓고 있는 조선의 끝자락에서 소설가 이병주는 회한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펼쳐보이고자 하였다.

그런 이병주 원작의 소설이 <야경꾼 일지(2014)>의 방지영 작가의 손을 빌어 20부작의 드라마로 새롭게 태어났다. 자신의 아들을 왕재로 삼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야심가 최천중은 장동 김문의 모략으로 강직한 관리였던 아버지를 잃은 청년 최천중으로 거듭났다. 

최천중의 아버지 최경은 강화현감이었지만 백성들이 그의 행차에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게 할 만큼 '백성의 삶'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당연히 권문세가이던 장동 김문에게는 거추장스러웠던 인물, 나라에 바칠 세금을 빼돌리려던 김문은 그것을 실은 조운선을 불태우고, 그 죄를 최경에게 묻는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들을 역적의 아들로 만들고 싶지 않아 거부한 최경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겨우 살아난 최천중은 '요절'할 운명인 그를 예언한 '산수도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끊어진 길을 다시 잇고자 '사주 명리학'의 통달한다. 

 

 

그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줄 뿐이다. 
거처로 정한 배오개의 주막에서 공부했던 '사주 명리학'으로 '도사'로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역적의 아들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결국 장동 김문에 잡혀 이하응과 이하전의 역모를 내통한 '죄인'의 처지가 된 최천중(박시후 분)은 그를 사랑하는 옹주 봉련(고성희 분)의 도움으로 피신하지만 조선 팔도 장동 김문의 세도 세상에서 더 이상 살기 힘든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최천중은 도망자가 되는 대신, 장동 김문의 잔치에 '점바치 최천중'이 되어 등장한다. 무능했던, 거기에 이제 병까지 얻은 철종의 후사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점, 앞날을 살펴볼 줄 아는 사주 명리학을 무기로 그는 모두가 예상치 못한 이하응의 아들 이재황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왕재임을 '선언'한다. 죽을 자리에서 삶을 구걸하는 대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들의 덜미를 잡는 방식으로, 그 스스로 선언한 삶의 길을 만든 것이다. 

그의 이런 '선언'은 동상이몽으로 서로 다른 왕재를 밀고 꿈꾸던 이들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최천중의 존재감을 드러내 스스로 목숨을 구명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무능한 철종에게 불려가 왕의 권위는 후세를 원하는 사람으로 잘 이어가는 것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며 평생 김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왔던 철종을 솔깃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장동 김문의 손아귀에서 왕실의 권위를 복권시키고 싶은 신정왕후에게 후사의 힌트를 쥐어준 것처럼, 다시 한번 자신들의 손으로 꼭두각시 왕을 만들고자 했던 장동 김문 역시 최천중의 '예지력'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 것이다. 즉,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그 누군가를 왕재로 삼고 싶지만, 자신들의 내세울 카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최천중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읽어줄 수 있다는 '능력'을 내보이며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넘어, 그 '세력의 중심'에서 '키'을 쥔 인물로 스스로를 부상시켜  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존재의 부상 능력에 대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려줄 뿐이라고 정의내리는 최천중, 그의 예지력은 그가 공부한 '사주 명리학'을 넘어 권력의 판세와 그들의 욕망을 읽어낸 '혜안'의 산물이다. 

물론 그런 그의 '도발적 점괴'가 그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차기 왕좌의 자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던 이하전에게 '단명'할 것이라 예언하는 바람에 목숨이 위태로와지기도 하지만, 외려 그런 이하전에게 훗날 고종이 되는 이재황을 방패막이로 삼으라 하며 회유하며 그가 자신을 책사로 여기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보이며 선언한 '왕재' 이재황의 아버지 이하응은 그런 최천중을 개처럼 바닥을 기며 보존해온 자신의 가문을 위협하는 인물로 여겨 총을 겨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하응의 위협 역시 왕의 앞에서 그에 대한 오해를 풀어 그가 자신을 적으로 삼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최천중, 화려한 언사로 권문세족의 홀려 재산을 털어내고 천하를 도모하고자 했던 원작의 야심가는 멸문지화의 운명에서 겨우 살아나  '명리학'을 무기로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의 그 '욕망'을 읽어내 한낫 점바치라는 비천한 존재에서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선 신선한 캐릭터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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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길을 만드는 영웅 
하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최천중이란 인물이 매력적인 건 그저 그저 '권력'을 자신의 세 치 혀로 좌지우지하는 그 '매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강직한 강화 군수였던 아버지 아래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 위해 애를 썼던 청년은 그 스스로는 세상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이하응의 말처런 그의 운명은 그를 세상의 뒷전에 놔두지 않는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 다시 맞아 죽을 뻔하던 적도사을 거침없는 일갈로 구해내던 천중의 기개는 갈곳없는 아이들을 보살펴주던 유접소가 장동 김문의 온실로 인해 내쫓기는 처지에 이르자 홀로 나서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칼을 맞기까지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몇 수 십장의 탄원서를 마다하지 않겠다던 그의 정성이 이하응을 움직이고 다시 이하전을 움직여 유접소를 구해내지만 장동 김문의 권세를 그것을 무기력하게 한다. 결국 그 스스로 아이들을 그가 머무는 주막에 거두는 최천중, 그런 그의 명성은 저잣거리에 머물고, 전주에서 관리의 횡포에 억울한 백성들은 관이 아닌 그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리고 그는 거침없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이하전을 찾는다. 


이하전이 그렇게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온 백성들을 장동 김문을 위한 공격의 빌미로 삼고자 할 때, 그렇게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지 않는 왕재가 장동 김문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분노를 폭발하는 최천중, 거기에 <바람과 구름과 비>가 그려내고자 하는 영웅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작에서 천하를 도모하고자 삼전도장을 만드는 최천중, 드라마는 그 천하에 대한 야심을 청년 최천중의 강직함과 올곧음으로 인한 '영웅 서사'로 변화시킨다. 곪을대로 곪은 나라, 그 속에서 자기 가문과, 자기 자신의 끊어진 길을 '명리학'이라는 역설적 무기로 만들어가는 최천중은 그 스스로 권력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권력에 욕망을 애초에 지니지 않음으로 인해, 그리고 '백성의 삶'에 중심을 놓치지 않음으로 인해 조금씩 저잣거리의 영웅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의적이었던 홍길동이 율도국을 만들 듯, 한때 양반이었으나 비천한 점바치가 권력을 주무르는  최천중이 품을 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드라마는 10권의 소설을 21부작이라는 짧은 서사 속에 풀어내기 위해 매회 군더거기 없는 박진감넘치는 전개로 관심을 끌고 있다. tv조선이라는 방송국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아쉬운 지점이다. 

by meditator 2020. 6. 16. 17:16

올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이 <괴물>에 이어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이 바로 2013년작 <설국열차>이다. 기상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 그로부터 17년 동안 지구 궤도를 순환하던 설국열차.  하지만 17년이란 시간 동안 빙하기 속에서 생존이 무색하게 열차 속 인간 세상의 계급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노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 '설국 열차'가 드라마로 돌아왔다. 

영화 <설국열차> 이후 7년, 미국 <TNT> 10부작 드라마로써 <설국 열차>를 발표했다. 총괄 프로듀서로서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이 시리즈는 영화 <큐브(1997)>를 쓰고 SF시리즈 <오펀 블랙>의 프로듀서인 그램 맨슨이 총괄 책임을 맡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시리즈의  첫 회 미국 내에서는 33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이며 넷플릭스 인기작으로 순항 중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소 설국열차 
포스크 아포칼립소(인류 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세계) 드라마를 표방한 <설국열차>는 빙하기를 맞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윌포드가 부자들의 돈을 모아 '설국 열차'를 만드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열차가 떠나는 순간, 하지만 예정과 다르게 빙하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차에 '무임승차'한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력으로 그들을 '제거'하려 하지만 '생존'에의 갈망은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열차에 오르도록 만들고, 열차의 꼬리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로 부터 7년, 열차는 여전히 지구 궤도를 순항 중이다. 하지만 꼬리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열차 꼬리칸에 올라 탔지만 아내가 살기 위해 그를 놔둔 채 앞 칸으로 가버린 레이턴(다비드 디그스 분)는 꼬리칸의 동지들과 '혁명'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의 말대로 전 열차의 승객 3000 명중 70%를 차지하는 삼등칸과 꼬리칸 사람들, 하지만 대부분의 특혜는 열차를 만드는데 돈을 댄 1등칸 승객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부조리'한 상황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드라마로 온 <설국열차>는 영화 <설국 열차>의 주제가 된 꼬리칸의 '혁명'을 그대로 모티브로 삼는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그랬듯이, 그리고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던 3년 전 혁명처럼 막상 '봉기'를 일으킨 꼬리칸 사람들은 단 한 칸을 나아가지 조차 못한 채 무참히 진압 될 상황이다. 

그때 그 상황을 무마하고자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꼬리칸 혁명 동지였지만 앞서 제동수(드라마 속 일종의 경찰 역할)들에 의해 '차출'되었던 레이턴이다. 열차에 오르기 전 강력반 형사였던 레이턴, 그를 차출한 이유는 바로 열차 내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3000 명의 열차 탑승 인원 중 유일하게 '형사'인 그였기에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호출'된다. 

드라마로 온 <설국 열차>는 꼬리칸의 '혁명'이라는 기본적 주제를 '살인 사건'이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변주'하며 묵시론적 주제에 '수사물'의 장르적 재미를 더한다. 

성기와 신체 일부를 절단 당한 채 삼등칸 아래 쪽에 숨겨져 있던 남성 시체, 하지만 그저 '살인 사건'처럼 보였던 사건은 알고보니 그 남자가 레이턴을 버리고 간 아내와 함께 아이를 만들려던 사람이었던 걸로 밝혀지며 떠나간 아내와 레이컨을 엮이게 만드는가 하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삼등칸에 있던 스파이였음이 드러나며 일반적인 살인 사건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만든다. 

또한 이와 같이 신체 일부를 훼손했던 사건이 3년 전에 있었고 그 사건의 진범으로 추정되었던 여자가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며 3년 전 사건의 처리 문제도 따르게 된다. 거기에 사건을 조사하며 드러나는 1등칸에서부터 꼬리칸에 이르기까지 커넥션으로 이어진 '마약 사건'은 열차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멜라니(제니퍼 코넬리 분)의 통제에 이상 신호를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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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인가 계급의 요새인가 
살인 사건으로 만나게 된 설국 열차의 총 매니저 멜라니와 꼬리칸의 레이턴, 멜라니는 호의적 조건으로 레이턴을 회유하려 하지만 꼬리칸의 '혁명적 사명'에 투철한 레이턴은 사건의 실마리를 빌미로 '혁명'의 기회로 삼고자 하며 부딪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설국열차' 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데서 비롯된다. 열차에 위기가 생길 때마다 꼬리칸에 정전이 오고, 배식을 줄어드는 등 핍박에 시달려오던 레이턴에게 열차는 계급 체계의 견고한 요새와도 같다. 그래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열차의 다수를 점하는 꼬리칸이 엔진을 장악하고 열차를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극 초반 그 정체가 밝혀지듯이 열차를 책임지는 멜라니에게 열차는 3000 명의 생명을 담보하는 빙하기의 방주이다. 그녀는 때론 모순되고 부조리하더라도 돈을 낸 1등칸의 이해와 안녕을 충실히 보장해 주고, 나머지 칸의 생존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 여겨진다. 

드라마는 이런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이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가운데, 살인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는 마약 거래처럼 열차의 또 다른 '그림자'가 곁들여지며 2시간 짜리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복잡다단한 사회적 체계를 가진 세상으로서의 설국 열차를 보여준다. 슬럼가와 같은 3등칸, 환락의 중심 나이트 칸, 그리고 거기에서 실세가 된 '청소부' 그룹 등 통제될 수 없는 열차 속 세상이 열린다. 

거기에 정상 궤도를 달리고자 하지만 달리기 시작한 지 7년이 된 기차는 매번 동력에 위기를 겪게 되고, 열차에 들이닥친 눈사태로 주된 단백질원이었던 소가 '몰살'당하며 소고기 없는, 그리고 소의 메탄 가스가 없는 농작물의 생장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당장의 위기는 나이트 칸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격투기 쇼 눈요기로 시선을 돌렸지만 떨어진 동력은 꼬리칸의 존재 자체 위기로 이어질 상황, 안팍의 위기 속에서 혁명과 생존, 그리고 순조로운 열차 운행이라는 저 마다의 미션이 매주 한 회차씩 공개될 <설국 열차>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20. 6. 5. 01:12

처음 '여보'라는 말을 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다. 저기요, 있잖아요. 결혼을 하고도 한참을 그렇게 불렀었다. 그러던 것이 '여보, 당신'이 오래된 냉장고처럼 익숙하다 못해 권태로운 일상이 된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졸혼'이라는 단어가 주변에서 들린다. 아이들도 있고 그러니, 그리고 이제 와 '이혼'이라 하기도 그러니, 결혼을 졸업하겠다는 것이다. 그 졸혼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의 어머니 진숙(원미경 분)이 말을 꺼내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살면서 이혼은 커녕, 졸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도 진숙이 목이 메어 졸혼을 하자는데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무게가 온전히 다가왔다. 

 

 

진숙 씨하고 부르던 남편 상식(정진영 분)이 어느덧 어이, 저기하다, 은주야, 은희야, 지우야 하며 아이들 이름으로 아내를 부른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을 보고 말하는 게 싫어 아이들 방을 열고 아빠 식사하시라고 시킨다. 아내를 보며 설레던 남편이었는데, 이제는 아내가 말만 시키면 '가자미 눈'을 뜨고 바라본다.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을 내팽개치기 십상이다. 시간의 힘이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아온 시절이 무릎을 끓고 반지를 전해주던 그 설레이던 커플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내 진숙은 '졸혼'을 요구했다. 

졸혼을 선언한 아내 
아내의 졸혼 요구에 남편을 뜨던 부황을 집어 던졌다. 집을 팔아 나누자는 말에 화를 버럭 낸다. 그리곤 맘대로 하라더니 늘 가던 산으로 휭하니 떠나버렸다. 아이들은 제 각각이다. 똑 부러지는 맏딸은 평생 집안 살림만 하는 엄마가 어떻게 혼자 살려고 하냐며 현실적인 질문으로 진숙의 의지를 꺽으려 한다. 뭐든 엄마 맘대로 하라는 작은 딸이지만 그 말이 진숙의 복잡한 속내를 덜어주지는 않는다.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한 막내 아들은 자신을 독립할 수 없다며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진숙은 '독립'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산행을 갔던 남편이 행방불명되더니, 머리를 다친 채 돌아왔다. 지나온 세월을 다 잊은 채 22살 그녀만 보면 설레던 젊은 상식이 되어. 

그렇게 <가족입니다>의 1,2회는 기억 상실이 된 아버지에게 발목이 잡혀버린 엄마의 졸혼 전선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범한 가족', 이 말이 맞을 것이다. 22살의 숙이씨만 불러도 설레이던 그 젊은 상식은 온데간데 없고 가부장적인 고집불통이 되어버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랴, 아이들을 키우랴, 자신을 내세워 본 적도 없이 늙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형제라지만 늘 만나면 아웅다웅 제 각각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 때문에 엇나기기가 십상인, 그래서 가족이라지만, 말이 가족이지 서로의 속사정은 뒤춤에 찔러둔 채 살아가는, 그래서 때로는 남들보다도 서로를 더 이해하기가 힘든, 아니 이해하기가 싫은 관계들 말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22살이 된 아버지 
<접속>을 비롯하여 <텔미 썸씽>, <후아유>,<황진이> 등의 각본을 써왔던 김은정 작가가 <우리집에 사는 남자(2016)> 이후 오랜만에 돌아왔다. 전작과는 다르게 우리네 사람 사는 모습을 물씬 느끼는 '가족' 이야기로 돌아온 김은정 작가는 졸혼의 위기를 맞이한 이제 막 노년 초입의 부부에 촛점을 맞춘다. 거기에 자존심이 세지만 오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채 각방을 쓰며 살아가는 첫 딸 부부와, 오래 사귀던 연인의 바람으로 지난 5년간 연애 한번 하지 않고 지내왔던 둘째 딸의 이제 새롭게 시작된 사랑 이야기가 엇물리며 엮인다. 자신들의 삶도 충만할 정도로 버거운데 거기에 빨간 불을 키며 가족의 이름으로 소환되는 일들에 아들과 딸들은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달려간다. 

정진영, 원미경, 추자현, 한애리 등 그 누구 하나 빠지는 이 없이 어루러지는 호연과 함께 모처럼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는 가족 드라마의 등장이다. 막장이 아니면 '가족' 이야기가 성립이 안될 거 같은 시절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가족 이야기들을 통해 모처럼 가족에 대한 진솔한 질문을 던져 보게 만든다.

젊은 상식이 아내에게 숙이씨 할 때마다 흠칫하는 늙은 숙이 씨의 표정은  그 나이쯤 되는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무색하게 말끝마다 그 시절의 상식이가 된 남편 덕분에 그 젊은 상식처럼 설레이며 가정을 잘 꾸려가려 애쓰던 시절을 복기하게 된다. 참 오래된 시간이다. 과연 그 오래된 시간의 결이, 그 역사의 무게가  아내 숙이씨의 졸혼 선언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그저 졸혼의 무력화가 아니라 이 모래알 같은 가족을 다시 '재건'시킬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0. 6. 3. 01:04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1이 마무리되었다. 쌀쌀하던 봄, 날씨보다도 더 스산하게 우리를 찾아왔던 코로나 19로 한껏 위축되던 시절 우리를 찾아와 장미가 만개하는 5월 말에 이르기까지 오랜 벗처럼 시청자와 함께 동고동락했다. 

 

 

산부인과 의사 석형(김대명 분), 밴드를 하자며 오랜 친구들을 불러 모으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사고로 죽고, 아버지의 외도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어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가정사의 와중에 아내가 떠났다. 그래서 석형은 아픈 어머니와 함께 오롯이 '혼자'의 삶을 감수하고자 한다. 

1999년 함께 의대에 입학했던 친구들은 어느덧 마흔 줄이 되어 율제 병원을 이끄는 중요 교수진이 되어 있었다.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 그 친구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를 하기 위해 이용했다는 석형의 자조적인 고백에 친구들은 어림없는 소리말라며 콧방귀를 끼고 먹던 자장면에 집중한다. 이렇게 '츤데레'스럽게 다정한 '벗'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1년이 12부작이라는 짧고도 긴 서사 속에 담아졌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12회, 도대체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하는 시청자들의 조바심이 무색하게 율제 병원은 바삐 돌아간다. 자신이 하던 '키다리 아저씨'의 자선 사업을 친구 송화에게 넘긴 채 신부가 되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려 했던 안정원 교수는 씽씽카를 타다 다쳐 간을 절제할 지경에 이른 어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며칠째 병원을 떠나지 못한 채 노심초사한다. 친구들이 소아 중환자실이 정원이의 방이라고 농담삼아 하듯 자신의 어린 환자가 생과 사의 기로에서 오갈 때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정원, 그런 정원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시킨지 오래된 리조또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건 그 환자의 예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수술로도 지혈을 할 수 없었던 환자의 부모님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해드릴 것이 없다는 고백을 준완은 할 수 밖에 없다. 대기가 길어 환자들의 짜증이 폭발할 지경에 들어온 만삭의 산모에게 석형은 안타까운 결과를 알려야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채송화 선생은 환자의 코마를 선언한다. 

그렇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지난 12부 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이 '현장'이 바로 삶과 죽음이 오가는 병원이었음을 다시 한번 환기 시킨다. 뱃속에 아이를 잃은 산모의 통곡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치 판도라의 상자 구석에 숨겨져 있던 희망이 뒤늦게 나타나듯, 12부 내내 석형을 안타깝게 했던 조산의 위험이 있던 산모에게 그 위험의 고비가 넘겨졌음이 알려지는 '희망을 남기며 삶과 죽음을 오가던 병원 이야기는 한 시즌을 마무리한다. 남편에게 간 이식을 해주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도 자신은 이식을 할 수 없다며 울면서 말하던 아내의 인간적인 고뇌가 풀리며 이곳이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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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영역에 헌신하는 이들
그리고 그곳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12부 내내 신부가 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던 정원, 소아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던 병원장의 부탁도, 단 하나 남은 막내 아들만은 엄마를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던 엄마의 간절함도 정원의 결심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만 보면 저절로 얼굴에 함박 웃음이 지어지고 죽음의 길에 나설지도 모를 아이를 놓칠 수 없어 며칠 밤을 세워 조바심을 내던 그 시간이 저절로 정원의 마음을 돌려세운다.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정원은 그렇게 송화의 '찬성'을 얻으며 다시 병원에 남는다. 

석형은 어떨까? 그토록 석형과 어머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가 떠나면서 뜻밖에도 사업을 남겼다. 유언으로 석형에게 아버지 대신 회사를 이끌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뜻밖의 '횡재'와도 같은 유언에 '시간이 아깝다'고 딱 잘라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시간, 그 중심에 환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도 자상하게 산모들을 보살펴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한 아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혹은 아이를 잃은 산모의 마음을 자상하게 헤아리는 산부인과 의사 석형이 있다. 

준완이라고 다를까.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나던 익순이 유학가던 날, 준완은 포기할 뻔했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긴 수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와 익준이와 컵라면 한 그릇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그제야 자신이 익순의 출발조차 챙기지 못했음을 깨닫고야 만다. 

기꺼이 신의 소명을 거둘 수 있는 곳,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조차 잠시 접어둘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슬기로운 의사'들이 살아왔던 지난 1년의 율제 병원이다. 

물론 막상 병원에 가면 환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5분은 커녕 6달을 기다려 1분만에 진료를 마치는 현실에서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의 사람 냄새는 어쩌면 '환타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코로나 사태에 있어 세계 그 어느나라 보다 발빠르게 대처하여 안정적 시국을 맞이한 데는 '헌신적이고 책임감있는 의료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듯이, <슬기로운 의사 생활> 속 때론 어른이 같지만,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책임감있는 어른'이었던 주인공과 그 주변 의료진들의 모습이야말로 코로나에 지친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세상엔 믿을만한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우정어린 힐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보고 나면 어쩐지 나도 좋은 어른으로 살고 싶어지게 하는, 그래서 더욱 그 좋은 친구들과의 잠시 이별이 아쉽다. 

by meditator 2020. 5. 29.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