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업>은 진한새 작가의 극본으로 김진민 피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든 10부작 드라마이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라지만 그 주인공이 성매매 중개업을 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에 10부작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회차 동안 '성'과 '폭력' 이라는 청소년 드라마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플롯과 파격적인 전개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품행이 단정하며 학업 성취의 동기가 남다른 계양 고등학교의 모범생 오지수(김동희 분), 하지만 보여지는 순하고 성실한 외양과 달리 그는 성매매 중개업자이다. 도박꾼 아버지, 그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어머니, 그를 돌보아주는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도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지수는 그저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그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 '포주'가 되었다. 

가진 돈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던 그를 구해준 인연으로 인해 이왕철(최민수 분)의 도움을 받아 '조건 만남'을 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잡음도 순조롭게 해결하며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던 사업은 그의 정체를 알게된 배규리(박주현 분)와 얽히며 1년 반 동안 모은 돈을 날리며 무위로 돌아간다.  거기에 뜻하지 않게 얽혀든 변태성욕자 무리, 조폭, 그리고 자기 애인인 서민희(정다빈 분)의 뒤를 봐주는 인물을 집요하게 캐내려 하는 일진 곽기태(남윤수 분)의 개입으로 접입가경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미성숙한 아이들의 인간 배우기 
그런데 이 자극적인 설정과 폭력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수업'이다. 드라마에는 오지수를 비롯한 3 명의 고등학생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른들 뺨치게 야무지다 못해 도발적인 청소년들이다. 두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최첨단 앱을 이용하여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해 신분을 숨기며 포주업을 하는 오지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저 '거간꾼' 정도라고 생각한다. 수요와 공급을 중간에서 맞추어 주는 일이라는 식으로 치부한다. 자신과 같은 학생인 서민희가 조건 만남에 나서지만 그런 일이 그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도덕'적 경계를 넘어선다. 

아니 극 후반에 들어서 종종 등장하는 지수의 무의식을 반영한 '꿈'씬에서 그의 모든 판단은 '1등급'이냐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돈을 다 잃고도 학교에 가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서도 학교 책상에 엎드리고야 마는 그에게 학교에서 살아남기가 그가 벌인 모든 일보다 우선 순위에 있다. 비도덕적이라기보다는 '탈도덕'적인 상태다. 

그런 지수보다 한 수 위의 존재가 나타난다. 공부는 잘하지만 도통 학교 사회에서 존재감이 없는 지수와 달리, 남학생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고, 각종 학교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규리가 그 주인공이다. 오지수와 배규리에 대해 '안으로만 삭히는 고구마 같은 녀석들'이라는 담임의 촌철살인처럼, 사업을 하느라 배규리를 돌봐주지는 않지만 자신들과 같은 레벨의 인간이 되도록 끊임없이 조율하고 강제하는 상류층 부모를 둔 배규리에게 사회는 규리의 부모들이 규리에게 하듯 조정하고 조련하여 요리해 가는 대상일 뿐이다. 

오지수를 알게 된 배규리는 그가 자신에게 보이는 호의에 응하는 듯하면서도 그를 포주라 욕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벌어들인 돈을 보고 그 돈이라면 자신을 그럴 듯한 가정의 부속품처럼 다루는 부모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그의 사업에 가담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배규리의 '욕망'이 적극적이면 적극적일 수록 오지수의 사업은 점점 꼬여만 간다. 아버지가 지수의 돈을 가지고 달아나고, 조폭이 얽히고, 그걸 해결다고 하자 납치와 협박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러 지수는 물론 배규리의 목숨조차 위태롭게 된다. 그럼에도 규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수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상황에서도 규리는 사업을 놓지 않으려 한다.

탈도덕적 의식을 점수로 매기면 지수보다 한 수 위이다. 지수가 살아남기 위해 생존템으로서 도덕적 일탈을 선택한다면, 어릴 적부터 부속품처럼 조련당하고 번듯한 아이가 되기 위해 부모의 욕구를 피가 나도록 참아내던 규리는 인간다움이란 정의 자체가 다르다. 도덕이란 경계 자체를 비웃는 규리의 탈도덕적 레벨은 어쩌면 지수보다 한 수 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규리 역시 정신적 학대와도 같은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지수와 같다. 

그리고 오지수의 '공급원'이 된 학우, 서민희가 있다. 부모가 없이 고모네 집에 얹혀서 살아가는 민희는 사랑하는 기태에게 좋은 선물을 사주기 위해 조건 만남에 나서는 아이다. 뻔히 기태가 자신을 돈때문에 옆에 두는 줄 알면서도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민희, 그런 민희가 조건 만남의 폭력적인 상황에 맞닦뜨리면서 공포가 폭발하고 만다. 

오지수, 배규리, 서민희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원인을 가지고 '탈도덕적 경계'에 선 위기의 존재들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유를 가졌지만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낸 문제의 희생양들이다. 방기된 가정, 혹은 과잉 기대로 조련되는 가정, 그게 아니면 상실된 가정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어떤 게 '인간'의 모습인지 배울 기회를 잃거나, 아니면 반발심을 가지며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그래서 신체는 어른처럼 성숙했고, 어떤 면에서 두뇌는 어른보다 더 빨리 움직이지만, 정작 그 '하드 웨어'가 되는 인간됨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동물들처럼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게 저마다의 방향으로 분출된 이들의 행동은 뜻하지 않게 사건 사고를 발생하며 그들과 그들 주변 사람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묘한 어른으로 인해 촉발된 '인간다움'
여기서 묘한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이왕철, 오지수와 함께 '실장님'으로 조건 만남의 '보디 가드' 역할을 하던 이 인물은 돈을 받고 움직이는 포주의 행동 대장이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서민희를 들여다 보고, 오지수가 빠진 위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들여다 봄으로 인해 서민희는 처음으로 그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왕철로 인해 서민희가 변해간다. 

그런 서민희의 변화는 실타래처럼 얽혀만 가던 오지수가 벌인 포주업이 달려가는 지옥의 레이스를 멈출 수 있는 치트키를 경찰 이해경(김여진 분)에게 쥐어준다. 하지만 치트키는 미약하고 때론 늦는다. 오지수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내민 손은 수업 시작 종에 묻힌다. 미성숙한 아이들이 벌인 '비인간적'인 사건은 '너무도 인간적인 참혹하게 인간적인 결과물'을 낳는다. 결국 사건은 최악으로 치달아 노래방을 '만인 대 만인'이 몸과 몸으로 부딪치고야 마는  전장으로 만들고 두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야 일단락된다. 

행동대장으로서의 책임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왕철의 '어른스러운 헌신'으로 마무리된 사건, 결국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벌인 일들이 그나마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야 말았다는 결과에 이르러서야 오지수는 깨닫는다. 자신이 벌인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맹목적인 욕망의 결과물인가를. 누군간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처절하게 배우게 되는 역설적 인간다움. 그것이 숨가쁘게 달려간 10부작 <인간 수업>이 도달한 결론이다. 

하지만 배움은 처절하지만 그 배움의 실천에 나설 용기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껍질 게처럼 자기 보호와 연민에 빠진 오지수는 서민희를 희생시키고 결국 자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수업'에 이르러서야 '수업 종료 종을 울릴 수 있었다. 아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같은 여지를 둔 결말은 이 수업의 종료를 다음 시즌에 대한 여지로 남긴다. 결국 자기 목숨마저 수업료로 저당잡혀야 하는 인간 수업, 그들은 채 자라지 않았지만 그들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숙제는 과중하다. 

by meditator 2020. 5. 15.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