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드라마의 액션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싸움박질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 주인공을 둘러싸고, 주인공을 상대할 적, 혹은 적들이 주인공과 대치하고, 싸움이 시작되면, 카메라는 주인공의 거친 몸짓을 가장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뽑아내기 위하여, 때론 스피디하게, 혹은 때론 느리게 호흡을 조절해가며, 주인공과 상대방의 싸움을 멋있게 그려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종영한 <쓰리데이즈>는, 이런 전형적인 액션씬을 뛰어넘은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액션씬하면 암만해도 기억에 떠오르는 건 드라마보다는 영화다. 많고 많은 빼어난 액션씬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의 액션씬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화 <도둑들>에서, 김윤석이, 부산의 허름한 아파트 벽을 타잔처럼 타고 다니며 벌였던 총격씬이 떠오른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아파트라는 현실적 공간을 가장 절묘하게 활용했던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액션씬이라면 흔히 떠오르는 부둣가, 낡은 공장터 그런 전형적인 장소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공간이 아파트와, 그 아파트에 붙어있는 에어컨 박스들, 그리고 낡은 아파트에 늘어져 있는 전선줄들이 액션의 도구로서 제 몫을 해내고, 그것을 지형지물로, 때로는 수단으로 이용하여 이리저리 아파트 벽을 옮겨다니며 총격을 벌이는 액션 장면에서, 한국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가능한 현실적 액션을 보여주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화 <도둑들>의 액션씬처럼, <쓰리데이즈>의 액션씬 역시 영화 못지 않게 공간의 활용에서 진일보한 성취를 보인다. 
4회 대통령 암살범으로 오해를 받고 쫓기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찾아 탄 기차에서 역시나 대통령을 찾아 기차에 탄 동료 경호관들과 마주치게 된다. 동료들을 노려보는 것도 잠시,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긴 것과 동시에, 한태경은 기차 통로라는 협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양쪽에서 자신을 옭죄어 오는 동료 경호관들과 대결을 벌인다. 이 장면의 묘미는, 분명 여러 명의 경호관들이 한태경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음에도, 기차 객실 통로라는 공간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에, 마치 줄을 서서 차례로 기다리는 듯이 한태경과 양쪽에서 차례로 대결을 벌이는 묘미에 있다. 게임처럼,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른 쪽의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쓰러지면, 양쪽에서 함께, 그리고 한태경은 그런 유리한, 하지만, 협소한 공간이라는 기차 통로를 양쪽의 좌석까지 이용하며 다수의 경호관과 액션의 합을 보인다. 이 장면의 묘미는, 같은 경호관 신분으로, 상위 1%의 경호관 한태경이지만, 결국은 떼로 몰려드는 경호관 동료들에게 제압당하는 현실성에 있다. 주인공이기에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경호관과 경호관들의 싸움에서 결국은 지고마는, 주인공의 현실적 모습이 이 장면의 액션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사진; 한국일보)

<쓰리데이즈>는 요즘 드라마로는 비교적 짧은 16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씬으로는 드라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차량을 활용하여 조그만 승용차가 자신보다 배나 더 큰 트럭을 단번에 전복시키는 2억이 들었다는 카 체이싱은 <쓰리데이즈>가 자신만만하게 내보인 볼거리였다. 진짜 대통령 암살범 함봉수와 한태경의 최후의 몸의 담판이 벌어진 장소는 뜻밖에도 함봉수의 총격을 받고 앰블런스가 쑤셔박힌 책방이었다. 거기서 함봉수와 한태경은 책이 꼽혀진 책장을 사이에 두고, 총과 몸을 이용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어디 그뿐인가, 박보원을 향해 총구를 겨눈 킬러를 향해 몸을 던진 한태경은 킬러와 함께 2층 높이의 유리창을 부수면서 아래로 나동그라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을 사이에 둔 혈투를 벌인다. 액션의 장소도 다양하다.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협소한 공간, 병원 복도, 폭발한 자동차 앞, 자동차 안, 모텔 복도, 모니터실 그리고 16부 갤러리까지 다양한 공간이 액션의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다양한 공간이 활용되는 만큼, 그 공간을 살린 지형지물들이 액션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 역시 <쓰리데이즈>의 묘미였다. 때로는 부서진 자동차 유리가, 복도의 문이, 그리고 손에 유일하게 남겨진 핸드폰이, 벽에 걸린 액자가 한태경의 무기가 되었고, <쓰리데이즈> 액션의 진가를 살려냈다. 

<쓰리데이즈> 액션씬의 특징은 그저 다양한 장소, 다양한 소도구의 활용에만 있지 않다. 결코 단 한번도 전형적인 액션씬의 클리셰인 슬로우 모션없이 자칫 눈 한번이라도 깜짝 해버리면 지나칠 정도의 빠른 호흡으로, 액션씬의 강도를 전달한 것 또한 <쓰리데이즈> 액션의 묘미이다. 
또한 그런 급박한 호흡 속에, 싸움을 벌이는 한태경의 감정 또한 고스란히 전달시켜주는 특징을 가진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이 보인 액션적 성취라고 하면, 짜인 합으로서의 액션이 아니라, 싸움박질의 날 것 그대로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독한 스파이라는 면에서 <본 시리즈>에 비교되었지만, 그것과 다른 차별성을 <본시리즈>가 가진 고도의 짜여진 액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그 파열음에 집중한데서 <베를린>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쓰리데이즈>의 액션씬은 바로 <베를린>의 그것에 필적할 만하다 하겠다. 

자신이 처한 절박한 위치와 분노를 고스란히 그의 액션에서 표출한 하정우처럼, 한태경의 액션에선 그의 감정이 느껴진다. 자신이 존경했던 함봉수와의 대결에서, 서로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었기에, 단 한 방의 가격으로 상대방을 절멸시킬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급소를 피하면서, 상대방을 이 싸움에서 밀어내고 싶어하는 안타까움이 그들의 액션의 합에 담겨있다. 그렇게 경호실장과의 싸움에서 머뭇거리던 한태경이 상대가 킬러가 되면 달라진다. 봐주지 않는다. 막상막하였던 경호실장과 달리, 킬러는 한태경의 발차기, 혹은 단호한 가격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 액션에 분노가 실린다. 그래도 경호관이기에 적들을 제압하거나, 기절한다는 목적 하에 언제나 절제하던 한태경이지만, 윤보원을 차량 폭파로 죽이려고 했던 킬러를 향한 그의 주먹엔 절제란 없다. 그저 선배였던 황윤재가 자신과 한태경을 빼돌린 윤보원의 경찰차 안에서 한태경에서 총까지 들이대며 분노했던 모습은, 이후 그가 함봉수의 조력자라는 것이 밝혀지며 그의 절박함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16회 갤러리에서 두 명의 킬러들에게 밀리던 한태경은 문 뒤에 누워있는 동료 경호관들을 발견하고, 마치 게임에서 파워업을 하듯, 분노의 액션을 보인다. 배우 박유천의 거친 호흡, 단말마적인 비명, 그리고 단호한 얼굴 표정에서 느껴지는 정서들은 고스란히 액션의 감정이 되어 전달된다. 

<쓰리데이즈>의 액션은 이야기와 이야기 중간에 끼어든 장르물의 묘미, 혹은 장식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런 형식적 틀을 넘어, 액션을 통해 감정을 분출하고, 호소하는 묘한 효과를 낳는다. 드라마의 액션씬이라면 언제나 그러려니 하고 봤던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집중하며 액션의 호흡과, 거기에 담긴 분노에 빠져들게 만든다. 드라마의 종속적 요소로서의 액션이 대등하게, 드라마의 흐름에 간여하며 제 몫을 다함으로써, <쓰리데이즈>의 긴박한 호흡에 추진력이 되었다. 


by meditator 2014. 5. 2. 17:15

목요일 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두번 째 파일럿 프로그램 <별바라기>가 방영되었다. 

스타와 팬의 단체 팬미팅이란 컨셉을 내세운 별바라기는 그에 걸맞게 세대별 스타들과 그들의 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장 감동적인 스타 바라기를 한 팬에게 주는 해외 여행권을 놓고, 각 스타의 팬들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었다. 

각 세대별, 혹은 장르별 구색을 맞추기 위해 90년대 개그맨으로서는 드물게 팬클럽을 가졌던 이휘재를 비롯하여, 전설의 아이돌 은지원과 현역 아이돌 인피니트, 배우 유인영, 가수이자 탈렌트인 손진영등이 스타로 출연했고, 그들의 사연많은 팬들이 등장해,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이휘재의 소중한 기록들을 소개하고, 산후 우울증의 위기를 넘기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생기를 되찾게 해준 아이돌 인피니트에 감사를 전했으며, 돌싱이 된 은지원을 꼬집을 만큼 세월을 함께 한 과거 젝스키스의 아이돌이 그 시절 팬문화를 회고하였다. 또한 자신의 작업에 영감을 준 뮤즈가 되준 유인영에게 세상에 한 벌 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 준 디자이너와, 함께 집을 짓고 살자며 땅까지 주려고 한 아낌없는 부모님같은 손진영 팬의 사연도 등장했다. 

해외 여행권은 자살 위기까지 맞았던 하지만 텔레비젼에 나온 활기찬 아이돌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은 주부에게 돌아갔지만, 이제는 쌍둥이 아빠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지만, 꽃미남이라는 호칭이 무색치 않게 전성기를 누렸던 이휘재의 역사도, 응답하라 1994만큼 흥미진진하던 전설의 HOT와 젝스키스의 팬대결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아직은 연예인이 서툰 손진영에게 향수까지 챙겨주는 따스한 팬 이야기는 훈훈함 그 자체였다. 

(사진; 스포츠 서울)

하지만, 무엇이 어떻든 별바라기라는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합동 팬미팅이라는 프로그램의 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별바라기>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구조는 한결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저 서로 다른 이야기일 뿐이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같지만, 벌써 첫 회에, 몇 순배를 돌자, 동어반복 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제 아무리 대중문화의 팬클럽 문화가 트렌드가 되었다 한들, 매주 목요일마다 찾아가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하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안녕하세요> 한 회 특집 정도면 적당할 내용을 가지고 굳이 이 시기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까지 해야 할 타당성을 찾기 힘들달까?

무엇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강호동이란 MC가 의기양양하게 들고나올 만한 컨셉의 프로그램인가도 의심스럽다. 1회의 진행으로만 보면, 오히려 솔직히 강호동보다, 게스트로 나온 이휘재가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있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첫 방인데도 불구하고, 패널로 등장했던 김영철, 권오중, 소유 등의 존재감은 몇 마디 멘트에 그쳤다. 의욕적으로 들고나온 토크쇼이지만, 컨셉의 한계도 분명했고, 함께 하는 패널들의 활용도도 의문스러웠으며, 굳이 이 프로그램이 강호동이어야 하는 이유 조차도 분명하게 하지 못한 이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과연 목요일 밤의 아성을 지키고 있는 <해피 투게더>를 이겨낼 수 있을까 싶다. 

<별바라기>가 성공치 못한다면, 강호동의 위기설은 쉽게 진화되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오히려 <별바라기> 1회를 놓고 본다면, 강호동은 스스로 자신의 위기를 부추키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파일럿 프로그램임에도 유재석의 <나는 남자다>는 진짜 트렌드가 되고 있는 남자들의 속사정을 들춰보는 이야기를 컨셉으로 잡았었다. 실제 프로그램의 내용은 평이한 편이었지만 그것을 맛깔나게 살려냄으로써 역시 유재석이다 라는 평가을 재삼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별바라기>는 지금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강호동이어서, 혹은 강호동이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시켜 주지 못했다. 여전히 강호동은 당대 최고의 MC로서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내고 있지 못하는게 아닌가라는 의심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또한 아쉬운 것은, 같은 Smc&C에 소속되어 있지만, 신동엽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같은 소속사의 인맥을 드러내놓고 활용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춘 패널들과 함께 하는데 반해, 번번히 강호동의 프로그램에는 자신의 소속사의 잔상이 크게 드리워진다. <별바라기>에도 함께 하는 신동과, 첫 번째 게스트로 등장한 인피니트가 그들이다. 물론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는 걸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과연 강호동의 행보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강호동 자신이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 <달빛 프린스>에서 초창기 함께 했던 같은 소속사의 최강 창민이나 민호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사라지고, 오히려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다양한 게스트의 활용과 함께 강호동이 살아났던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패널들과 강호동의 진행 방식이 과연 <별바라기>라는 신선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적합한가, 그저 <스타킹>의 다른 버전같은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스타를 사랑하는 별바라기 1기 모집에 들어감으로써 스타에 관심이 많은 다수의 아이돌 팬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아이돌들이 주로 출연하는 음악 쇼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만을 봐도, 이제 이들만으로 대중문화의 트렌드가 되겠다는 시도는 그다지 시의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두 번에 걸친 목요일 밤의 파일럿,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새롭게 등장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 프로그램을 이끄는 mc 누군가의 책임도 책임이지만, 그것을 기획하는 mbc예능국의 안목부터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목요일 밤, 세상 어디선가의 희한한 이야기,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할 이야기가 없을까? 


by meditator 2014. 5. 2. 03:04

16부작의 <쓰리데이즈>가 마무리되었다.

김도진을 향해 폭탄이 실린 차를 몰고 갔던 이동휘 대통령, 하지만 차에 실린 폭탄은 김도진만을 산화시킨 채 이동휘 대통령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를 구하려 총을 맞은 채 달려간 한태경도 간발의 차이로 함께 살아남았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에서처럼, 이동휘 대통령이 김도진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면, 혹은 이동휘 대통령을 구하고 대신 한태경이 죽었다면, <쓰리데이즈>는 진실을 향한 묵직한 메시지만 남긴 드라마로 끝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둔중한 운명론 대신에, 희망을 택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동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말한다.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겠다고. 그의 이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양진리가 위기에 빠지고 홀로 돌아온 대통령에게 한태경은 말한다. 청와대로 가시라고, 하지만 이동휘는 거절한다. 김도진이 대통령의 목숨을 놓고 딜을 할 때, 다시 한태경은 대통령을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동휘는 말한다. 사람 목숨은 다 똑같다고. 대통령의 목숨과 국민의 목숨이 다르지 않다고. 대통령은 국민이 있어야 존재하는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은 홀로 폭탄이 실린 차를 몰고 김도진에게 간다. 한태경도 마찬가지다. 사라진 대통령을 찾기 위해 차를 몰고 질주하다, 폭탄이 실린 듯한 주민들이 탄 트럭을 몰고, 대통령의 뜻을 기억하며 차를 돌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관이지만, 대통령의 목숨만큼, 그의 뜻이, 그리고 국민이 있어야 대통령도 존재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기억하며 양진리 주민들의 목숨을 구한다. 

(사진; osen)


역사는 늘 승자의 이야기를 하고, 그 승리를 거머쥔 영웅의 이야기에 골몰한다. 하지만, 정작 역사의 현장을 가득 채운 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그려낸, 그 강고한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기어올라가고, 또 기어올라가고, 또 기어올라가던 그 사람들처럼. 실제 역사를 이룬 것은, 그 작전을 지시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진짜 이 사회의, 이 권력의 주인이 누군인가를 밝힌다. 

그리고, 세상에 지친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쓰리데이즈>는 첫 회부터, 16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출연자들이 나온다. 그런데, 다른 드라마에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많은 단역, 조역들이 그저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간과되어 지는 반면에,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애초에 제작진이 그럴 의도인 양,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등장했던 그 어느 인물 하나, 하나의 연기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15회 김도진의 수하들의 총격에 스러져가는 경호관들이 안타까웠던 것은, 그 시간까지 진행되어 온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어느새 또 한 사람의 주인공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치 애초에,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 대통령이 말한, 국민, 그들인 것처럼. 그래서 비로소, 16부에 이르러, 왜 이 드라마가 대통령을 지키는 음지의 직업인 경호관을 주인공으로 했는지 이해가 된다. 바로,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을 위해 충실히 살아가는 그 사람 각각이,그들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16부 마지막 취조실 씬에서 감동이 더해진다. 김도진의 수하들은 저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 돈을 위해서, 혹은 애국을 한다는 아이러니한 신념을, 혹은 그래봐야, 언제나 세상은 힘있는 자본이 지배한다는 논리를. 그건 그들이 새삼 부언하지 않아도,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맞닦뜨린 세상의 지배 논리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쓰리데이즈>는 그들을 취조하는 검찰관의 입을 빌어 말한다. 설사 세상이 그렇다 해도,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다하지 못하면 그 누군가가, 그것을 대항해 싸워가겠다고. 그리고, 이동휘가 살아있어서, 한태경이 살아있어서 고마운 마음과 함께, 어디선가 세상의 불의를 향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1%의 그들이 있음에 내가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비록 1%라도 세상을 위해 싸워보겠다는 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이 든든해 진다.

<쓰리데이즈>는 전무후무한 드라마였다. 한 눈 팔지 않고, 소신있게 포기하지 않는 1%가 세상을 바꿔나가겠다는 주제를 한 치의 흔들림없이 전하고자 노력했고, 거기에 도달했다. 드라마의 경직된 공기를 바꾸고자 쓰이는 그 흔한 말랑말랑한 대사, 웃기는 말 한 마디없이, 1회 대통령의 암살 시도에서 부터, 서로 다른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전달했다.  거친 액션씬조차,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뇌와 분노의 장치로 승화될 수 있다는 걸 <쓰리데이즈>는 보여준다. 이동휘란 대통령을, 그의 지지율 10%로 설명할 수 없듯이, 그저 몇 %의 시청률로 이 드라마를 평가하기에 <쓰리데이즈>가 전해준 메시지는 2014년의 우리 삶의 시금석이자, 위로이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함께 해준 배우들이 대단하고 고맙다. 단 한 장면, 한 마디의 대사만으로도 이동휘라는 고립무원의 대통령의 진심을 전해준 손현주씨는 물론, 이십대의 젊은 배우임에도 흔한 러브씬하나 없이 묵직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드라마를 선택하여, 한태경이라는 캐릭터에 생기와 열정을 살려내 준 박유천이란 배우가 고맙다.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분장을 포기한 채, 남자 주인공보다도 적은 의상으로, 고군분투하여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주체적 여성 캐릭터를 실현해준 소이현, 박하선 배우도 감사한다. 

<쓰리데이즈>란 드라마의 16부작을 이동휘, 한태경이라는 양대 산맥의 줄기가 버티어 갔다면, 그 산맥의 거목이 된 것은, 장현성이 분한 함봉수 실장, 윤제문의 비서실장, 그리고 안길강의 김상희 비서실장의 신념이었다. 그들이 자기 자리에서 겪는 혼돈과 고뇌와 결심들이, 우리 삶의 구체적 문제로 다가오며 <쓰리데이즈>의 신념을 생생히 우리들에게 제기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서슴지않고 자신의 목숨을 던졌던 경호관들처럼 16부를 채워갔던 수많은 조연, 단역들의 흐트러지지 않는 진심들이, <쓰리데이즈>라는 숲을 채워갔다. 물론, 거기에는, 그런 그들의 진심을 돋보이게 해준 최원영을 비롯한 악역들의 호연도 빠질 수 없다. 

그저 실종된 대통령을 찾아가는 흔한 장르물인가 싶었는데, 우리 시대의 정의를 향한 신념에 대한 담론이 된 <쓰리데이즈>의 여정은 달달한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익숙치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고된 여정의 끝에 이 드라마는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실한 위로를 전한다. 고맙다. 


by meditator 2014. 5. 2. 01:45

kbs2 의 또 하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두근두근 로맨스 30일>

일반인 남녀들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30일 동안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5가지의 규약에 의거한 데이트를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삼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이휘재, 이정민 아나운서를 메인 mc로 김지민, 정일훈 , 이명길 등이 패널로 출연하며, 세 쌍의 연애 커플이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방식은 연예인 커플의 가상 결혼을 다루는 <우리 결혼 했어요>와 비슷하다.  세 쌍의 커플의 연애 과정이 리얼리티로 보여지고, 스튜디오의 mc와 패널들이 그들이 벌이는 각각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반응과, 평가를 내린다. 특히 연애 전문가라는 이명길이 함께 해, 전문가의 입장에서 등장한 연인들의 상황을 정리한다. 

처음 이상형을 만나고 싶다고 등장한 세 명의 주인공은, 배우 지망생 박종찬, 아나운서 정다은, 플로리스트 최민지였다. 
제작진은 이들이 원하는 이상형을 조사한 뒤 300 명의 지원자 중 연애 전문가와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뽑은 적임자를 파트너로 선정한다. 그에 따라, 정다은 아나운서에겐 축구코치 김주경이, 플로리스트 최민지에겐 한의사 송영섭이, 23살의 박종찬에겐 동갑인 대학생 김지안이 파트너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30일 동안 '매일 만나기',' sns를 통해 공유하기', 1박2일 여행하기 '등 다섯 가지의 등으로, 제작진은 이상형을 통해 만나게 된 커플인 만큼 진짜 커플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했으며, 이들의 만남을 통해 실제 2,30대의 연인들이 조언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포부를 보인다. 

(사진; 리뷰스타)

각자 원하는 이상형에 부합된 사람들이라지만  세 명의 출연자의 첫 반응은 갈렸다. 언뜻 보기에도 코 밑 수염을 길러 험상궃어 보이는 외모의 김주경을 보고 당황한 정다은 아나운서는 자신이 제작진에게 이상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걸 그랬다고 실망을 돌려 표현한다. 반면, 훤칠한 외모의 송영섭을 본 최민지는 그에게서 후광이 비췄다며 반색을 한다. 또래라는 이유로 쉽게 말을 놓은 박종찬과 김지안은 첫 만남임에도 마치 1년을 만난 연인처럼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첫 인상이 다가 아니었다. 부담스러웠던 첫 인상과 달리, 김주경은 정다은을 배려하는 이벤트로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정다은을 즐겁게 해주며 반전을 보였다. 그에 반해, 훈남 한의사인 줄 알았던 송영섭은, 당황해서인지, 원래 성격인지, 도무지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반응을 가감없이 드러내 갈등을 조장했다. 첫인상의 반응과 달리, 정다은 커플은 나날이 순조로워지는 반면, 최민지 -송영섭 커플은 매일 만나야 된다는 규약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위기를 맞게 된다. 

제작진은 가장 어울리는 이상형을 고심해서 선택했다고 했지만, 막상 첫인상에서 어긋났던 김주경이나, 첫인상은 좋았지만 만나보니 어긋났던 송영섭의 케이스를 보면, 출연자를 배려했다기 보다는, 매칭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에 좀 더 충실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물론 배우 지망생도 포함되었지만, 아직 연예인이 되지 않은 그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리얼리티로 연애를 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보자면, <두근두근 로맨스 30일>은 얼마전 출연자의 불의의 사고로 말미암아 폐지된 <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그러기에, <짝>에 출연했던 일반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었던 면모로 인해 화제가 되고, 혹은 그로인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처럼 <두근두근 로맨스 30일>역시 언제라도 그와 비슷한 물의를 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이다. 즉,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서 방송 중에 보였던 일반인의 반응이, 프로그램화되면서 공인의 그것인양 도마 위에 올라 대중들의 난도질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 말이다. 이미 첫 회에서 김주경이 첫인상과 달리 호의적으로 보인 것에 반해, 송여섭은 환자를 대하는 직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하무인이라는 느낌을 방송은 여과없이 내보낸다.

또 하나, 최근 <마녀 사냥>의 융성과 더불어, 범람하기 시작한 각종 연애 정보성 프로그램들의 방식을 또한 <두근두근 로맨스 30일> 역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녀 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이유, 답은 '이현령, 비현령'이다. 마치 프로그램을 보면, 연애에 정답이 있는 것같지만, 매주 등장하는 연애 사례만큼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를 비롯하여, <마녀 사냥>, 혹은 그 아류의 연애 정보 프로그램들은 마치 남녀 사이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기존 우리 사회가 가진 '남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여자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선입견에 의거해, 그리고 그것을 이제는 연애 전문가라는 특정인의 입을 빌어 확정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마치 그런 개별적인 의견을 교과서처럼 여과없이 수용하여, 자신의 연애, 혹은, 자신의 남녀관에 도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남의 연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만큼 재미진 것은 없는 것처럼 <두근두근 로맨스30일>은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키고 <짝>이 사라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일반인 매칭 프로그램을 그것도 ,kbs2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굳이 저런 짝짓기 파일럿을 시작해야 했는지는 더더욱 아쉽다. 


by meditator 2014. 5. 1. 03:32

<쓰리데이즈> 팬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태쓰노트'라는 말이 있다. 

영화 <데쓰노트>를 빗댄 말로, <쓰리데이즈>의 주인공 한태경과 엮인 사람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 속 상황을 빗댄 말이다.
그런 '태쓰노트'가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14회 태경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대통령은 걱정말라며 자기가 지키겠다던 그 말이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호실장 김상희(안길강 분)는 마지막 한 사람의 경호원이 되어 대통령을 도망가게 하고 총을 맞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태쓰노트'가 아니다. '동쓰노트'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14회 이동휘의 회상씬에서 처럼,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혹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 갔다.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김도진은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동휘 대통령에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김도진은, 악착같이 자신의 그 말을 실천한다. 
그렇다면 그간 <쓰리데이즈>를 통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동휘 때문일까? 15회, 그의 마지막 위령탑 추모 길에 동행하느라 숨져간 경호관들을 보면, 그냥 가만히 청와대에 있다가 사임할 것이지, 왜 거기는 가가지고 라는 생각이 들만큼, 경호관들의 죽음이 안타깝다. 
마지막에 홀로 적들을 맞써 싸우다, 함께 가자는 이동휘 대통령에게 어서 도망가서 당신이 할 일을 하라는 김상희 경호실장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제 이동휘는, 또 다시 자신 때문에 죽어간 저들 경호관때문이라도 죽을 수 없다.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다 이룰 때까지. 

김도진의 수하들에게 쫓기어 홀로 찻길로 뛰어든 이동휘를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진리 사건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였다. 혹시나 그 아내가 10년 전 일로 인한 억하 심정에 이동휘를 다시 저들에게 넘겨줄까 싶었는데, 아내는 말한다. 고맙다고. 
그저 택시 운전기사였던 남편이 친구들과 술 한 잔 먹겠다고 갔다가 개죽음을 당한지 10년, 딸에게 조차 아비가 왜 죽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어미는 이동휘 대통령이 밝혀준 진실에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김도진에게는 그저 돌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양진리 추모탑에 새겨진 가족의 해원이 이동휘의 속죄로 그제야 풀렸던 것이다. 

이동휘는 드라마 내내 무기력한 대통령이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집권 초기 높았던 지지율은 그의 정책의 실패로 말미암아 곤두박질쳤고, 이제 김도진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그나마 그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의 기반들이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그의 뜻에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이동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경제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신의 지난 과오를 밝히기 위한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15회에서 보여지듯이 이동휘가 밝히려고 했던 과오가 과거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그저 드러나는 것은 김도진이라는 미치광이의 이동휘에 대한 한풀이이지만, 취조실의 문신만의 토로처럼, 그 뒤에는, 김도진이라는 미친 놈이 휘저어 주면 줄수록 혼란에 빠지는 대한민국에서 이해를 얻는 그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저 사는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하며 덮었던 과거사들이 우리의 오늘을 규정하고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쓰리데이즈>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동휘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다. 

또한 결전의 날이 지나고, 심판의 날이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드라마의 여명은 밝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이동휘를 지키던 경호관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속 시원한 한 판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적들의 기관총에 무기력하게 대통령을 지키다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경호관들 뿐이었다. 
<쓰리데이즈>는 말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환타지는 그리 쉽게 오는게 아니라고, 심판은 더더욱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라고. 어쩌면 당신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세상의 고됨을 잊고자 틀어놓은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반대되는 위로를 얻기를 원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재벌을 서민과 사랑을 나누고, 가진 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기어코 그들의 코가 납작하게 복수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하다 한다. 

(사진; osen)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지독하다.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사람들, 진실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김도진의 예언처럼 모두 죽거나 다친다. 이제 남은 한태경과 이동휘, 다음 회 그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쓰리데이즈>는 마지막까지 말한다. 종교적 용어로 흔히 쓰이는 '심판'을 굳이 <쓰리데이즈>의 세번 째 3일에 가져다 쓴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끝에서야 어렵게 얻어지는 그 무엇을 상징하게 위해서 였던 듯하다. 종교에서도 심판은 한 개인으로는 죽음 후에, 혹은 한 세상의 종말이 온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듯이, 새로운 세상은 피를 먹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10년의 한이 풀렸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동휘 한 사람의 결심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이제 마지막으로 이동휘 곁에 남은 경호관 한태경이, 즉 단 1%의 진심만이라도 움직여 진다면, 어쩌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16회, 기대해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4. 5. 1. 02:00

<밀회>12회, 함께 여행을 떠난 혜원(김희애 분)과 선재(유아인 분), 선재는 혜원을 위해 음악 어플을 다운받아주고, 친절하게 혜원이 좋아할 만한 90년대 음악까지 다운받아준다. 그런 선재에게 혜원은 말한다. 자신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고. 대신 혜원이 선재에게 들려달라고 했던 음악은 혜원도, 선재도 태어나기 전의 음악이라는 1973년에 발표한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다. 피아노를 통해 교감을 이루고, 그 교감을 바탕으로 사랑으로 맺어진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맨]만큼 적절한 음악은 없을 것이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으며 선재는 그 노래에 심취하고, 혜원은 조용히 오열한다. 

하루 전날 방영된 <마녀의 연애>3회에서 반지연(엄정화 분)과 윤동하(박서준 분) 역시 음악을 논한다. 반지연이 자신이 좋아하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불러주지만 윤동하는 그 노래를 모른다. 이어서 반지연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부르자, 윤동하는 그건 '동방신기'의 노래라고 답한다. 겨우 서로 아는 노랜가 싶어 함께 부르기 시작한 '붉은 노을'을 반지연은 '이문세'의 버전으로, 윤동하는 '빅뱅'의 버전으로 엇갈려 부른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노래는 불협화음 속의 화음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다음 날 윤동하는 함께 와인을 마시는 순간 좋은 노래라며 반지연이 좋아했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들려준다. 

(사진; osen)

그저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통해 제법 나이 먹은 여자들의 연애를 다룬 두 드라마 <밀회>와 <마녀의 연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밀회> 역시 <마녀의 연애>와 다르지 않게 선재는 혜원을 배려하여 그녀의 시대의 음악을 골라준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 시대는 없다. 그것은 마치 그녀에겐 삶이 없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대신 그녀에겐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친구이자 오너였던 서영우(김혜은 분)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노래가 혜원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 맨'을 통해 혜원과 선재는 다시 한번 공감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은 둘 사이의 나이차이란 무의미하다. 마치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빌리 조엘의 음악처럼. 

반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마녀의 연애>에서 기준은 윤동하가 얼마나 반지연을 이해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자기 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무려 14살이나) 서른 아홉살의 반지연을 스물 다섯의 윤동하가 이해할수만 있다면 이 연애는 오케이다. 그래서, 기센 팀장님이던 반지연은 번번히 윤동하 앞에서 여성으로서의 갸날픔을 들키고, 그래서 윤동하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거기에, 직업 여성으로서의 멋짐은 옵션이다. 반지연을 이해하고, 어느 틈에 그녀를 사랑스러워 하기 시작한 윤동하의 무장 해제는 그가 선택한 음악 '희망 사항'으로 대변된다. 

먹을 만큼 먹은 그녀들의 연애라지만, <마녀의 연애>에서 반지연의 나이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한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실감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반지연이 서른 아홉이건, 서른이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서른 아홉이라며 스스로 질색하지만, <마녀의 연애> 속 그녀에게서 나이로 인한 연륜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지연으로 분한 엄정화가 서른 즈음에 하던 로맨틱 코미디와, 그녀가 서른 아홉의 반지연이 되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별 차별성이 없다. 그저 세상에 많고 많은 연상연하의 사랑 중 하나일 뿐.

하지만, <밀회>라는 드라마를 가득 채우는 것은 선재와 혜원의 사랑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재를 사랑하고 되돌아 보니, 미국 조그만 카페에서의 시간만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혜원의 삶이다. 열 네살이나 차이가 난다면서도 덥석 엄마 앞에서 사귀는 남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혜원에게는 없다. 비단 유부녀라서가 아니다. 선재와의 일탈이 혜원의 삶 전체를 벼랑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그녀도 몰랐던 그녀 자신의 위태로운 도박으로 드라마는 충만해진다. 가질 만큼 가지고, 조금 더 하면 더 큰 욕망을 채울 것같았던 중년의 삶이, 사랑으로 인해 괴멸되는 그 중년의 허무함이 <밀회>의 공기다. 

'마녀의 연애' 엄정화의 맞선에 박서준이 불안함을 드러냈다. ⓒ tvN 방송화면
(사진; 엑스포츠 뉴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이건, 치명적인 멜로이건, 두 드라마 모두, 드라마의 관점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때론 심하게 상투적이거나, 평면적이다 싶을 만큼 여주인공의 편에서 전개된다. 그들 삶의 결정권은 여주인공에게 달려있다. 남자 주인공들을 등장할 때마다, 자기 자신보다는 여주인공들을 걱정하고, 어쩌면 그렇게 여주인공들이 원하는 것만 해준다. 마치 텔레비젼의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년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결의라도 다진 양. 그게 아니라도, 너도 나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에게, 걱정마라,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진 연하남을 만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은, 처음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하던 반응이 무색하게,  '스물 다섯이라니, 땀 냄새도 향기롭겠다던' 반지연의 친구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서른 아홉 노처녀에게 다가온 친절하디 친절한 훤칠한 청년이건, 마흔이 넘은 중년의 위기로 다가온 천재 피아니스트이건, 마치 자신이 회춘이 되는 듯, 그저 감사할 따름일지도.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감사함에 옵션이 따른다는 것이다. <밀회>나, <마녀의 연애>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갑'이다. 잡지사 팀장이거나, 문화 재단 부대표 정도는 되어야, 그래서 특종을 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이거나, 천재를 한 눈에 알아봐줄 정도의 식견을 있어야, 저렇게 설레이는 훈남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언제적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하는 것이 팀장님이거나, 재벌남이었듯이 말이다. 아, 거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서른 아홉이건, 마흔이건 절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와 몸매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한참 젊은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정말 현실의 남자들이 조선시대 꼬마 신랑처럼 자기 보다 열살 이상 많은 여자들을 여자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by meditator 2014. 4. 30. 02:12

또 한 편의 재벌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재벌의 부도덕한 비리를 다룬, 그래서 그 비리로 인해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이 침해받고 훼손당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kbs 2tv에서 새로 시작된 <빅맨>이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굴지의 기업 현성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고 과정에서 손상을 입은 강동석의 심장은 이미 한번의 심장 이식 수술을 했던 상태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강동석의 엄마이자, 현성 그룹의 안주인 최윤정(차화연 분)은 흉부외과 과장을 다그친다. 당장 자기 아들의 새로운 심장을 찾아내라고. 아직 대기자가 많다는 의사의 말에 그딴 것들이 다 무슨 말이냐고 다그친다. 강동석의 아버지 강성욱(엄효섭 분)도 다르지 않다. 비서실장을 통해 아들의 심장을 대체할 만한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사진; 와우 경제)

<빅맨>속 재벌이 새삼 경악스러운 것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 밖의 모든 다른 사람들의 목숨 따위는 당연히 제껴져야 하는 것이거나, 수단으로 사용될 대상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들의 목숨을 대체하기에 적당한 김지혁(강지환 분)을 찾아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뇌사 상태에 빠뜨리거나, 막상 그가 뇌사에서 깨어날 지경이 되자,'폐기'하라고 지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타인의 생명을 경원시하다 못해 도구화하는 재벌의 등장은 이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새삼스럽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 <빅맨>은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타인의 심장을 탐하는 또 하나의 신선한 재벌의 부도덕한 아이템을 더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재벌이 공영 방송의 10시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 따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 나라의 재벌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빅맨>의 출발점이자,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 이미 <빅맨>의 전작, <태양은 가득히>의 재벌 한태오(김영철 분) 역시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정세로(윤계상 분)의 삶을 앗아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본의 아니게 자신의 심장을 빼앗길 뻔한 김지혁(강지환 분)의 복수를 다룰 것 같은 <빅맨>이 정세로의 복수극이었던 <태양은 가득히>와 그리 차별성이 없어보기기도 한다. 

물론 단선적으로만 비교할 일은 아니다. 복수를 하기도 전에 복수의 상대방의 딸과 사랑에 빠져 복수하는 시간보다, 사랑의 늪에 허우적거리던 시간이 더 많았던 순정파 정세로와 달리, 스스로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모토가 분명해 보이는, 살인 미수의 범죄를 벗아나기 위해 스스로 범인을 찾아 경찰 앞에 들이대는 김지혁이라는 캐릭터는 첫 회부터 꽤나 역동적이다. 즉, <빅맨>의 성공 여부는, 바로 뇌사 상태에서 살아나 졸지에 재벌 회장 아들이 되어버릴 것 같은, 김지혁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신선하며, 개연성있는 복수극을 전개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 강지환의 연기에 의존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주인공 역할의 강지환은 고무적이다. 이미 그의 전작, sbs의 <돈의 화신>을 통해 검사에서 부터 정신병원 환자까지 종횡무진 다양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설득해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의 진폭이 컸던 전작은 또한 <빅맨>의 그의 연기에서 전작의 그늘을 찾아내게 할 수도 있을 만큼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1회만으로도, 뒷골목 양아치에서 하루 아침에 재벌 회장 아들로 금의환양하는, 하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할 그 캐릭터에는 강지환만큼 적역이 없어 보인다. 



또한 강지환 외에, 이미 1회에서 아들의 일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속엣말을 참지 못하는 재벌 회장 부인 역의 차화연이나, 이미 <비밀>을 통해 서늘한 욕망의 매력을 선보인 이다희의 연기 역시 기대해 볼만 하다. 아직 병상에 누워 있지만, 최다니엘 버전의 재벌 회장 아들도 기대가 된다. 이 신선한 조합의 연기자들의 조화 속에 <빅맨>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오늘자 신문에도 등장하듯이, 재벌의 불황은 국가의 곳간을 열어 해결해 주려 애쓰면서도, 정작 재벌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여는덴 인색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해마다 경기 지표는 나아진다는데, 서민들의 장바구니 삶은 고단하고 갈수록 피폐해 진다. 그럴 때 유일한 오락이라면 그래도 이런 재벌을 상대로한 통쾌한 복수극이라도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해보자, 뭐 이런 것이, 공영방송 kbs2의 뜻깊은 처사가 아닐까, 그게 <빅맨>의 출사표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by meditator 2014. 4. 29. 01:59

낚시밥으로 사용하는 지렁이를 한 움큼 움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며 생명을 구걸하던 이인임이 4월 28일 31회 드디어 유배에 처하던 도중 생을 마감한다. 다음 회, 이성계와 길고 지리한 싸움 끝에 땅끝으로 유배를 당했던 최영도 명나라 사신의 안전을 위해 처형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일전일주제로 이성계파의 혁명적 전제 개혁을 무마시킨 이색의 저항은 다음 회 그의 수족에 대한 제거 작업을 시작으로 조만간 끝을 맺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인임, 최영, 이색의 몰락과 함께 고려도 무너져 갈 것이다.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개국 과정을 다룬 <정도전>은 그간 사극에서 간신 혹은 역적 이인임, 명장 최영, 고고한 학자로만 그려졌던 이색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 캐릭터로 재조명해냄으로써 사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정도전 이인임 박영규
(사진; tv데일리)

그 중 이인임은 역사 속에서 왕의 장인으로서 혹은 역적의 주모자로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던 인물이다.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역사속에서 만났던 간신이었던 이인임을 박영규라는 배우의 열연을 통해, 고려 말 권문 세족의 대표자로 새롭게 제시한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비를 제거하고, 그 아들의 양아버지가 되는,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노회한 정치가로써의 이인임은 아마도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고려 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던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권력의 경구들은, 때론 보는 시청자들조차 매료시킬만큼 정치판의 본질을 관통한다. 그의 활약 덕분에, 드라마 <정도전>은, 그리고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논리의 혁명을 넘어, 보다 복잡한 정치적 세계의 혼돈으로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인임의 예언처럼, 고려를 지탱해 왔던 이인임을 필두로 한 권문 세족의 몰락은, 무장 최영의 기대와 달리, 고려의 종말을 앞당긴다. 
이인임을 제거하고 야심차게 고려의 실권자로 등극했지만, 정치적 안목도, 변혁에의 청사진도 없었던 그저 결국 소박한 무장에 불과했던 최영의 치세는, 또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함께 단명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최영의 몰락은 일찌기 무신 정권 이후 후기 고려를 지탱했던 무신 세력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역적 이인임을 노회한 정치가로 그려내듯이, 역사 속 의인이었던 최영 또한 순수한 애국심은 있었으되, 그 애국심의 한계가 고려 왕조의 틀 속에 갇힌 협소한 시야의 인물로 그려내는데 고심한다. 한 인물의 열정과 노력이, 그 시야가 한정적일 때 가져오는 역사적 불행을 최영이라는 무장을 통해 철저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요, 제 아무리 한 개인적으로는 양심적 인물이라도, 백성의 삶을 걱정하지만, 정치적 야심에 있어서는 현실을 보살필 수 없었던 고려의 무장이라는 현실적 존재를 뛰어넘지 못한 역사적 존재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인다.

부패한 권문 세족을 제거했지만, 그보다 앞선 많은 무신 정권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왕이라는 언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순수한 하지만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열정은 자신은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거라는 형장의 애처로운 외침으로 끝을 맺고 만다. 

정도전
(사진; 텐아시아)

그렇게, 고려를 지탱해 왔던 권문 세족과 무신 세력이 축출되었지만 여전히 고려를 지탱하던 마지막 희미한  등불이 남아있었다. 바로 이색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대부 세력,.
고려 말에 과거 제도를 통해 정치 내에 개혁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들은, 어느 새 그 자신들이 권문 세족과 같은 대농장의 주인은 아니지만, 지주로 안정된 자리를 잡으면서, 정도전 등이 제시한 사전 혁파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신진 사대부 세력 내의 정치적 대립은, 결국 그 근간에서는 잃을 것이 많은 땅을 가진 지주와, 그렇지 않은 혹은 그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혁명적 세력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학자로 이름을 떨친, 조선 건국 이후 새로운 나라에 봉사하지 않았던 고려의 충신으로 칭송받았던 이른바 이색학파 등 재야 학자들의 본질을 드라마<정도전>은 낱낱이 폭로한다. 또한 어느새 중앙 정치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개혁의 반대 입장에 서게 된 신진 사대부들의 행태는, 또한 조선 건국 이후 조선의 한계를 규정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정도전> 속 정치는 경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땅의 경계가 하도 넓어 산과 강을 경계로 땅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세력이 정치의 실권자가 되어 고려를 농단했고, 그런 현실을 거들떠 보지 않은 정치적 열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저 조금이라도 좀 더 가진 자가 된 사람들 앞에 학문적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폭로한다. 이인임, 최영, 그리고 이제 이색이 축출로 이어지는 조선 건국의 과정은, 고려라는 나라의 정치 경제적 모순의 해결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정치적 쿠데타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을 지양하고, 나라의 근간을 뒤짚어 엎는 혁명으로서의 조선을 그려내는 고심의 과정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4. 28. 09:06
세월호, 그 일이 있고나서 텔레비젼 속 시간은 멈췄다. 모든 드라마와 예능들은 정지했고, 대부분의 시간들은 현지의 상황 보도와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가를 분석하는데 할애되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고 조심스레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주말이 되어가며 일부 방송에서는 예능 프로그램도 다시 선보이기 시작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모든 방송이 다시 예전처럼 재개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를 보아도, 다시 시작한 예능을 보아도 예전의 그 드라마와 예능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섣부르게 시작된 예능에 대한 비판의 소리마저도 나온다. 과연 이런 시기에 방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한 주가 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은 그저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그 사건이 실시간 시시각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민이, 그것이 자기의 일인양 몸서리쳤고, 그 후속의 이어지는 부실한 사태 해결 과정에서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전처럼 흘러가려 한다. 

물론 의연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씩씩하게 웃으며 지내려 하는 것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 방송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 4월 26일자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서처럼, 9,11사태 뒤 '뉴욕이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방관들과 시장이 오프닝을 맡아 재개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각 sns에서 나부끼는 노란 리본처럼, 실종자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직 사람들은 그 기억 속에 놓여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상처는 진행중이다.

오히려 이런 때 한번쯤은 그간 우리의 방송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뻥뻥 비워져 나간 예능으로 가득찼던 방송 시간표 속에서, 시청률에 연연하는 사이에, 어쩌면 조금 더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미뤄지고, 그 사이를 그저 흥청망청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들이 채워진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전직 한겨레 기자의 김규원의 책 [마인드 더 갭]을 보면, 그가 영국을 가서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와 방송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즉 영국은 우리나라만큼 예능이나 드라마가 많지 않다는 것이 그 하나요, 국회의원들의 국정 활동이 고스란히 텔레비젼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현실적 방송 환경이 그를 놀래킨 두번째 였다. 막상 따분할 것 같은 그 국회 중계를 보며, 그는 영국 사회가 가진 민주적 전통의 근간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했다고 자신의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의 책 제목 '마인드 더 갭'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듯이, 그간 우리 방송은, 어쩌면 정작 들여다 보고 살펴보아야 할 많은 것들은 제외한 채 '엔터테인먼트'만이 방송의 주목적인 채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시점에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전국민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입힌 이 상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심리학자 정혜신씨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아픈 것은 아프다 할 수 있는 과정이 치유의 가장 빠른 회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희망 버스'의 일원이 되어 쌍용차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 곡곡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희망 버스'가 방송계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4월 26일 새로 시작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그런 치유의 미덕을 보인 적절한 방송으로 보여진다. 일찌기 설 특집으로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당시에도 차마 아버지의 부재를 어린 딸에게 알리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어 가고 있는 엄마와 두 자녀의 가정을 찾아가 치유의 만찬을 제공한다. 그저 밥 한끼였지만, 방랑식객 임지호 씨의 삶의 철학이 담긴 밥상을 받은 엄마는 아빠가 없는 빈 자리를 버겁게 메고 버티어 오던 삶에 위로를 얻었고, 어린 딸에게 힘겹게 아빠의 부재를 전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특집 방송에서부터 시작된 치유의 만찬은 26일 시작된 첫 방송에서도 이어진다. 이날 밥 한  끼를 청한 사람은 23살의 대학생 김재민, 재민군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밥상을 차려드렸으면 하는 소망을 밝힌다. 하지만 정작 재민군의 인도 아래 찾아간 곳에는 그의 친부모님이 아니라, 2010년 연평 해전에서 전사한 고 문광옥 씨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김재민군은 문광옥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 23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방랑 식객 임지호씨는 아들이 죽은 뒤 술로 세월을 보내다 위가 수축되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던 돼지고기는 먹을 수도 없었던 부모님들을 위해서 치유의 만찬을 마련한다. 꿈과 미래의 메시지가 담긴 벚꽃으로 치장을 한 돼지고기 음식을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듯이 보였다. 

밥상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야심찬 시도를 한 프로그램답게, 특집에 이어, 첫 방송에서, 부재한 가족의 빈 자리에 힘겨워하는 나머지 가족들을 위한 치유의 밥상이 마련되었고, 공교롭게도, 그 밥상은, 지금의 시기에 그걸 보는 우리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바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모두가 보기 힘든 토요일 아침 8시 40분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으면 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가는, 그래서 어느 틈에 드라마를 보다가, 예능을 보다가 선뜻 자기 마음의 그림자에 섬뜩해지는 시간을 치유해 주는 적극적 시도들말이다. 
by meditator 2014. 4. 26. 20:52

설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가 정규 편성되어 토요일 아침 8시 40분에 첫 방영되었다.


포맷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설 특집 방송 때처럼 방랑 식객 임지호씨와 mc가 함께 '밥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취지 하에 전국 방방 곡곡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치료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설 특집 방송에서 mc의 자리에 있던 김혜수가 이젠 게스트의 자리로 옮겨 앉아 첫 회를 빛내주었다는 것이다. 대신 mc의 자리는 이영자가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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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고수부지에서 첫 만남을 가진 방랑식객 임지호씨와, 이영자, 김혜수는 방랑 식객 임지호씨의 특성에 맞춰 그곳에서 나고 자란 풀들을 이용하여 첫 만찬을 즐긴다. 
여의도 고수부지에 즐비하게 자란 조팝나무와 소루쟁이, 결코 임지호씨가 아니라면, 그것들이 감히 음식이 될 거라 상상할 수 없는 고수부지의 지천인 식물들이, 방랑 식객의 손을 거쳐 땅의 미역이라 이름 붙여진 소루쟁이 된장국과, 참기름내가 진동하는 조팝나무순 주먹밥으로 재탄생된다. 

먹방 도중, 이영자는 묻는다. 여의도라면 차도 많이 다니고, 먼지도 많은데 이런 걸 먹어도 되냐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지호씨는 현답을 내린다. 이미 그 오염된 환경에서 뿌리내린 식물은 이미 그 오염된 환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라고, 그러니, 사람들이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식물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설 특집 방송을 통해, 자동차가 너무 많이 다니는 곳은 피해야 한다는 말도 하셨다. 1회 방송된 여의도는 보리를 키우는 등 식물들이 충분히 자랄 만한 여건이었다) 늘 사람이 사는 주변 환경의 식물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라는 그의 생각처럼, 한강 고수부지의 그 식물들은, 서울 하늘 을 함께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필요한 식물이라는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첫 만찬을 통해 다시 한번 방랑식객 임지호 씨의 생각과, 그의 그런 취지에 발맞춘 프로그램의 성격을 드러내 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차를 달려 첫 번 째 의뢰인을 찾아나선다. 

가는 길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들을 방아간에 모셔다 드리며 그 짧은 시간의 이별이 서운해 눈물을 비출 만큼, 아주머니들의 사연과 자식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까지 알뜰하게 담아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드디어 의뢰인이 있는 군산에 도착한다. 의뢰인은 김재민, 23살의 대학생, 청년은 자신의 부모님들께 밥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이 인도하는데로 찾아간 곳에서 정작 마주친 것은, 그의 친 부모님이 아니었다. 그가 가슴으로 맞아들이 부모님. 청년의 선배였던,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이었다.

고 문광옥씨는 해병대에 입대한 후 2010년 11월 11일 연평도에 배치를 받았다가, 11월 23일 연평해전 교전 중에 전사한 해병대원이다. 그리고 김재민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문광옥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 후배 23명 중 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은 대신 23명의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문광옥 씨의 아버지지만, 아들이 죽은 후 5개월 동안 밥을 먹지 않은 채 술로 세월을 보내는 바람에 위가 수축되어 지금도 밥을 잘 못먹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꿈에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첫 휴가때 사가지고 온 쌀을 아직도 뜯지도 못한 채 보관한다.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던 돼지 고기를 좋아했던 아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죽은 후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에게 임지호씨는 말한다. 
아들이 사가지고 온 쌀을 놔두지 말고, 그의 기일에 밥을 해서 함께 먹으면서 풀어내라고,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좋아했던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찬을 차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봄의 생기를 머금은 과일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군산의 벚꽃 봉오리가 요리의 하일라이트다. 
굳이 벚꽃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임지호씨는 열매라는 건 꿈, 그래서 열매를 이용한 요리는 미래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덧붙이며. 

아들이 생각나 차마 먹지 못하던 돼지고기였지만,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방랑 식객의 정성스런 손맛으로 변주된 돼지고기를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들은 조심스레 맛을 본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설 특집 <잘 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서도 방랑 식객 임지호씨가 차린 상은,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하지만, 차마 아버지가 죽었다고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한 엄마와 두 남매에게 위로의 밥상이 되었다. 그저 밥 한끼가 아니라, 힘들게 버텨 온 일상 속의 선물과 같은 밥상은, 자녀들과 제대로 살아보려 버티느라 힘들었던 엄마에겐 치유를, 그런 엄마의 기대를 부응하고자 버거웠던 아들에겐 여유를 주었다. 그 밥상을 함께 하고 엄마는 힘들게 용기를 내어 아직 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딸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이제 첫 방송을 시작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그 흐름을 이어받아, 가족의 부재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고 문광옥 씨 가족에게 따스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이영자가 넌즈시 그래도 아드님이 자랑스럽지요 라는 상투적인 질문에 아버지는 자랑스럽다고 말을 못하겠어요 라며 말끝을 흐린다.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은 자식을 어떻게 자랑하겠느냐고. 하지만, 마음으로 얻은 또 다른 아들들과, 방랑 식객이 차린, 익숙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어쩌면 먹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었던 돼지고기 요리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시름을 잊고 수저를 든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를 보고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지금 팽목항에 자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부모님들, 그분들도 언젠가 잠시 고 문광옥 씨 부모님처럼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음식을 드실 그 날이 올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에 귀결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그분들도, 저런 시간이 오길 바래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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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음식을 통한 치유, 나아가 음식을 통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야무진 시도를 내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하지만 그 시도가 안타깝게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시간은 모두가 모처럼 늦잠을 자거나, 혹은 좋은 볕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기 좋은 토요일 아침 8시 40분에 방영된다. 세월호와 함께 정지해버린 텔레비젼 예능 프로그램 들 속에서 조심스레 첫 발을 내보인 이 프로그램의 흔적은 그래서 희미하다. 

예능이 정지된 시간, 그저 언제 다시 시작해 볼까 눈치만 볼게 아니라, 사실 이 시간에 필요한 것은, 그간, 이 정지된 시간들을 채웠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그간 너무 흥청망청 웃고 떠들지만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저 시간이 지나 조금 무뎌졌다고 다시 예전 처럼 그럴 것이 아니라, 세월호의 부모님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마음의 상처 하나씩을 얻은 이 시간을 치유하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이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밀쳐지게 된,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의 존재가 아쉽다. 


by meditator 2014. 4. 26.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