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같은 방송국의 작품으로 20대의 젊은 남주와, 그와 호흡을 맞추는 중년 연기자의 조화로, <쓰리데이즈>의 후속작으로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견주어 논하고는 하지만, 오히려 작품 주제면에서 보자면, 직업적 사명감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점에서 진정한 <쓰리데이즈>의 후계자는 <개과천선>이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쓰리데이즈>가 대통령에서 부터, 일개 경호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위직에서, 그 고위직을 지키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까지의 직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개과천선>은 우리 사회의 지배 계층을 이루고 있는 화이트 칼라의 직업적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가져온 원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엄청난 월급을 챙기면서, 부실한 금융 자신에 투자를 유도하고, 그 이익만을 챙겨 먹은 금융 기관 등의 상위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을 빼놓을 없다. 이를 놓고, [문명의 대가]에서 제프리 삭스는 '미국의 경제 위기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한다'며, '정치와 경제 엘리트 층에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함으로써, 힘있는 자와 부자들이 사회 전체와 세계에 대해 정직하고 사려 깊고 동정적인 태도를 갖지 못한 채 사회가 시장, 법류, 선거만으로 이루어 진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멀리 미국을 예로 들 것도 없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임원과 직원 사이의 보수의 격차가 직원 월급이 160% 오르는 동안, 임원 월급은 240% 오르는 등,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사외 이사 등을 포한한 케이스고,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 임원의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상장 10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봉은 11억6천4백13만원 으로, 이들 연봉은 같은 회사 직원의 평균 임금(6729만원)의 17배, 전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는 32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임원들이 연봉만큼의 일을 해치울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의 성격들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일 것이다. 미국 금융 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금융 사태의 배경에 이들 상위 엘리트들의 비도덕과 비윤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우리나라 상위 엘리트의 도덕성의 부재를 <개과천선>은 기억력이 상실된 변호사를 통해 꼬집는다. 

<개과천선>만이 아니다. <골든 크로스>에서 절대악으로 포스를 내뿜는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  서동하(정보석 분)나, 그의 장인 법률 사무소 ''신명'의 고문 김재갑(이호재 분), 조력자 변호사 박희서(김규철 분)가 또 다른 김석주이다. 
(사진; 뉴스엔)

대기업 왕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할 정도로 유능한 변호사였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사고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변호사로서의 능력은 여전하지만, 김석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되찾은 그에게 닥친 것은 그가 벌려놓았던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건이었다. 그의 말만 믿고 입찰 가격을 적어넣었던 태진 전자는 예상치 못한 탈락으로 그 책임을 김석주에게 떠넘기고 추궁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을 잃기전 자신이 과연 어떤 의도에서 이 일을 처리해 갔는지 알 수 없다. 그의 과거와, 자료들을 훑어 보면서, 김석주는, 바로 자기 자신 김석주가 어떤 의문이었는지 의문을 가진다. 또한, 그가 몸담고 있는 로펌과, 그 로펌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에 대해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환자들의 부당한 의료 사건을 솔선수범 해결할 정도로 도덕성을 회복한 김석주는, 파렴치한 변호사로서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그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하던 일은 마무리 짓지만, 그 댓가로 화려한 아파트와 멋진 외제차를 모는 삶에 대해 낯설어 한다. 그런 김석주라는 사람의 기억력 상실을 매개로, <개과천선>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가진 도덕적 위치에 대해, 그리고 그를 통해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성을 꼬집는다. 

이미 <골든 타임>을 통해 의사의 직업적 윤리와 사명감에 대해 고찰했던 최유라 작가는 그런 내공을 바탕으로 거기에 착실한 조사를 덧대어  이번에는 변호사라는 또 다른 직업의 세계에 도전한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현대 가의 쟁탈전을 연상케 하는 극중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 사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황한 법적 용어와 경제적 논리가 등장함으로써 이미 의학적 용어를 정확히 몰라도 익숙한 의학 드라마의 상황으로 넘겨짚을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대강의 흐름은 알아도 낯선 용어와 사례들이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몰입을 용이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빠뜨릴 만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배 엘리트 층의 직업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의의는 이미 충분하다. 부디 이 드라마도 <쓰리데이즈>만큼 처음의 그 의도대로, 자신의 주제 의식을 잘 밀고 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파헤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로 남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5. 9. 08:07

4월 10일 컬투의 <어처구니>, 5월 1일 강호동의 <별바라기>, 그리고 5월 8일 <연애 고시>를 마지막으로,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목요일 밤의 파일럿 예능 삼부작이 막을 내렸다. 과연 이 중에 정규 편성되어, KBS2의 <해피 투게더>와 SBS의 <자기야>를 상대할 만한 예능이 있을까? 그 결정은 두고 볼 일이지만, 시청률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심지어 재미로 봤을 때도, 이 들 중 정규 편성될 예능을 고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5월 8일 파일럿 예능의 마지막 작품인 <연애 고시>가 방영되었다. 
연애 고시의 취지는 그렇다. '비주얼과 스펙을 모두 갖추었지만, 반쪽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솔로로 지내고 있는 남자 연예인들이 연애 고시를 지원해 연예 능력을 평가 받고 , 솔로 탈출 가능성을 체크해 보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란다. 

첫 회이자, 마지막 회가 될 5월 8일의 방영분에서, 40대의 한정수를 비롯하여, 30대의 이지훈, 정기고, 손호준, 장동민 등 다섯 명의 남자 연예인으로 초대 받아, 세 명의 MC 노홍철, 전현무, 백지영의 주선 아래, 다섯 명의 여자들 앞에서 연애 고시를 보았다.
연애 고시답게, 프로그램 첫 머리부터, 각 출연자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의 질문이 맘에 들면 여성 출연자가 꽃을 들고 나와 그에게 건네는 식으로 간택(?)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남자들의 언어와 다른 여성들의 언어와 그 속에 숨겨진 생각을 알아 맞추는 게임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남자들의 생각이 여성들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 만큼의 공이 쌓여, 연애 고시 탈락자가 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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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다섯 명의 남자가 나와, 여성의 취향에 맞춰 선택을 받는 방식은 이미 <짝>을 통해 익숙해진 방식이다. 1차전을 통해, 한 명의 탈락자를 거르는 방식 역시 낯설지 않다. 단지, 그것을 <짝>이 했던 일반인에서 연예인으로 달리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방식이, <짝>이 가졌던 그나마의 신선함조차 갉아먹는다. 한정수, 이지훈, 정기고, 손호준 등은 분명 이런 프로그램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반응과, 그들의 멘트들은,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것들의 연속이었다. 

게임에서는 한 술 더 뜬다. 기껏 여심을 확인해 보겠다는 질문이, '오빠는 내가 좋아? 일이 좋아?'식이다. <마녀 사냥> 등을 통해 섬세하고 현실감있는 연애 코치가 난무하는 세상에, 이젠 고전이 되어버린 그런 식의 질문을 연애 고시라고 내건다. 

무엇보다, <연애 고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다수의 연애 프로그램들이 그러하듯,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을 자상하고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그 규정된 캐릭터에 맞춰, 거기에 맞는 남성만이 좋은 연애 상대인양 몰아가는 편협한 남성관에 있다.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연애관은 이미 <연애 고시> 프로그램 내에서 궤멸되기 시작한다.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남자여야 연애를 잘 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출연한 여자들은 거친 남성상을 보이는 장동민에게 생각 외로 많이 끌려 했으며, 남자에 대한 생각에서 출연한 다섯 명의 여자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데서 부터, 애초에 연애라는 사안을 두고,  답이 정해진'고시'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였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기껏 여자 맘에 들만한 남자를 골라놓더니, 1등한 남자에게 주어진 혜택이란게, 다섯 명의 여자 중 마음에 드는 여자랑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권리란다. 선택을 받은 여성에게는 그 흔한 거부권조차 없다. 내둥 여성 편향적 사고 방식을 강요하더니, 그 중 낫다싶은 남자에게는 여성의 선택권을 주는 남성 중심적 결론이라니! 제작진의 사고 방식 자체가 의심되는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이야기를 모아 놓겠다는 컬투의 <어처구니>로 부터, 텔레비젼을 통해 팬미팅을 하겠다는 강호동의 <별바라기>를 거쳐, 이제 <연애 고시>까지, 세 편의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재미도, 감동도, 의미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과연 예능이란게, 무엇이어야 하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예능이라면, 스타들을 모아놓거나, 남녀간의 연애 놀음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농담 따먹기식의 이야기들로 채워나가야 하는 건지, 타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을 이겨야 한다는 얕은 수에서 시작한 발상의 결과물은 아닌지, 정말, 이 시대, 요즘과 같은 시기에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의 역할이 무엇인지 한번쯤 진지한 고민은 있었던 것인지, 안타깝다. 이렇게 뻔한 웃음과 발상의 예능이라면, 그 마저도 어차피 상대 방송국을 이길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을 진지한 토론이나, 양질의 다큐를 위해 할애하는 건 어떨지?


by meditator 2014. 5. 9. 06:47

매주 수요일 밤 10시, 공중파 삼사 드라마의 시청률 경쟁을 꾸준히 위협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건 바로 드디어 500회를 맞이항 <생로병사의 비밀>이다. 꾸준히 8~9%의 시청률을 오르내리며 때로는 그 보다 못한 시청률을 낸 공중파 삼사 드라마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생로병사의 비밀>은 중년 이상의 세대에겐 수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로병사의 비밀>은 말 그대로 우리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룬다. 최첨단의 의학에서 부터, 대안 의학, 건강식, 생활 습관까지 그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2002년 10월 29일 이래 2014년 500회에 이르기 까지 꾸준히 달려왔다. 더구나, 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인구 중 중노년층의 절대적 비중 증가와 함께, <생로병사의 비밀>은 그 가치를 더해왔다. 종편을 비롯한 각종 건강 상식 프로그램들처럼, 건강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하는 연령과 세대들에게, <생로병사의 비밀>은 건강에 대한 지킴이로써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500회를 맞이한 <생로병사의 비밀>은 그에 걸맞게 3부작의 특집을 마련한다. <코리안 닥터스, 생존의 한계에 도전한다>가 그것이다. 
그중 1,2부는 배우 송일국의 나레이션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다>와 <메디컬 로드를 열다>이다, 여기서는 서양 의학이 도입될 당시만 해도 의료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이지만, 이제는 세계 의학계에 어깨를 겨루다 못해 의학 한류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의학계의 성과를 다룬다. 


1955년 당시 그 자신이 심낭염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것을 수술할 길이 없어 바다 건너 일본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했던 소년이 이제 세계 최초 4000회의 간이식 수술의 기록을 세운 의사 이승규가 된 사연에서 부터, 베이브 루스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를 고쳤을 후두암의 권위자 홍완기, 가슴을 절제하지 않고도 유방암 수술을 하는 방법을 개발해 낸 노동영까지,  '코리아 닥터스 자문위원회'에서 선발된 세계 의학 지도를 바꾼 3인의 의사가 1부에서 소개된다. 

단지 3인의 의사만이 아니다. 2부에서는 '한류 메디컬 로드'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중동 등 외국의 의사들이 한국의 선진적 의료 기술을 배우로 우리나라를 찾게 되고, 미국 의학계의 가이드 라인이 될 정도의 의료적 성과를 이루어 내며, 에티오피아 등 직접 해외로 나가 의료 기술을 전달하는 의학 한류의 현실태를 조명해 낸다. 
 
이어서 3부는 신애라의 나레이션으로, 초극소 미숙아, 위암, 만성 골수성 백혈병 등 각 분야에서 한계에 도전하는 의사들을 소개한다. 

즉, 의학 후진국이던 우리나라가, 불과 몇 십년의 기간 동안,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의학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성취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믿고 병원을 찾아 자기 병을 의논할 수 있다는 안전판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그 누구라도 이제는 방법이 없어 병을 고칠 수 없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3부작은 강조한다. 

이렇게 3부작으로 된 500회 특집은 <생로병사의 비밀>에 어울리는, 그 비밀을 풀 열쇠를 찾기에 노력하는, 그리고 그 성과를 이루어 내는 우리 의학계의 성취를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 어떤 화려한 잔치보다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가장 걸맞는 특집으로, 스테디 셀러로서의 <생로병사의 비밀>의 내공을 보여준 시간이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4. 5. 8. 06:59

5월 7일 <라디오 스타>에는 송승헌이 모처럼 예능 나들이를 했다. 제목도 거기에 어울리게 송승헌과 줄줄이 사탕, 영화 <인간 중독>에 출연한 배우 송승헌은 그간 부진했던 영화 흥행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함께 영화를 한 감독, 배우들과 함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후 처음으로 예능 출연을 감행했다.


송승헌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기도 전에 수많은 기사가 그의 <라디오 스타> 출연을 기사화했든 그의 예능 출연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방송 말미, 송승헌의 출연을 계기로 권상우 등 많은 스타들이 출연의 물꼬가 터질 것이라는 mc의 언급에, 송승헌은 씁쓸하게 오히려 반대일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한다. 

모처럼의 예능 출연에 대해 작정하기라도 한듯 송승헌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 그간 베일 속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과 속내를 전하는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욱'한다는 조여정의 평가에 거부치 않고 자신이 욱하는 경우를 세세하게 설명했으며, 데뷔의 계기에서 부터, 첫 작품에서의 발연기, 연기 대상 논란에 대해 속시원히 털어 놓았다. 그리고 짖궃은 mc들의 요구에, 당시 시트콤에서 했던 '배트맨' 개그도 마다치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의 등장에서, mc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더 그의 '잘생김' 이상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라디오 스타>를 본 누군가가, 송승헌이 이렇게 잘 생긴 배우였던가 라며 감탄하고, 그의 영화<인간 중독>를 보러 간다면, 그의 <라디오 스타> 출연은 성공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신비주의를 내걸었던 배우 송승헌의 모처럼의 예능 출연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어쩐지 5월 7일의 <라디오 스타>는 그닥 흡족하지 않아 보인다. 마치 송승헌이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의 비밀을, 예의를 갖춰 '아, 이런 비밀이 있었어요' 하는 느낌?, 그러기에, 그의 잘생김을 뛰어넘은 토크의 묘미는 어쩐지 형식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 대한 질문들은 다양했지만, 그 질문들이 꿰어져 인간 송승헌에 대한 이해나, 색다른 매력을 찾아내기에 <라디오 스타>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은, 조여정이 송승헌 대 온주완을 놓고, 온주완을 선택했듯이, 온주완의 편이 더 강했다. 영호남을 평정했다는 그의 여심 섭력 필살기와, 그의 가족 이야기는, 온주완이라는 인물에 입체성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등장과 더불어, 언제까지나 기대주라던 온주완에 대한 평가는, 단지 그가 배우가 되지 않았으면 제비가 됐을 정도로 여자를 잘 안다는 것 이상, 배우 온주완에 대한 깊이를 더해주지는 않았다. 

(사진; 뉴스엔)

또 다른 출연자 감독 김대우와, 배우 조여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게스트의 문제라기보다는, 언제부터인가 정체되어 있는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의 문제로 부터 기인하는 듯하다. 

초창기 <라디오 스타>는 정말 정신없었다. 도대체 대본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질문은 중구난방이었으며, 그 질문의 내용도 꼿히는 대로, 그저 한 방향으로 흐르다, 시간이 되면 끝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정신산란한 <라디오 스타>에는 어쩐지 인간 냄새가 났다.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미숙하면 미숙한대로, 무장해제당한 채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스타들의 훈훈함이 드러났었다. 

하지만 이제 수요일 밤의 예능 강자가 된 <라디오 스타>에는 그 예전의 <라디오 스타>가 가졌던 인간미가 덜해졌다. 쟁쟁한 작가진들에 의해, 출연자들이 혀를 내두르는, 예를 들어, 송승헌과 권상우가 클럽에서 누가 더 잘 생겼냐 물어봤다는 식의 고급 정보들이 출연자들의 무장해제를 돕긴 하지만, 그뿐 그 이상의 출연자에 천착하여 그의 매력을 들여다 보는 여유를 잊었다. 
질문은 날카롭게 던져지지만, 그 질문들을 하는 mc들의 자세는 어쩐지 고답적이고, 형식적이다. 이승환 편과 송승헌 편에서 그 분위기가 차이가 나듯, 특히나, mc 중 누군가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런 증세는 심해져, 애써 출연자에 천착하기 보다. 그저 묻고 답하는 식의 문답쇼 형식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그저 웃기는 꺼리, 화제가 될 만한 꺼리 하나 잡고 늘어지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얻어 걸린 것이 송승헌 편에서는 송승헌의 잘생김이요, 온주완의 여자 꼬시는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저 그뿐, 그 이상 출연자에 대해 mc들이 예전 처럼 진지하게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겉훑기 식의 토크쇼가 되어 가는 것이다. 덕분에, 송승헌은 모처럼 각오을 다지고 예능 출연을 했지만, <라디오 스타>를 통해 그가 보여준 것은, 그저 잘생긴 송승헌일 뿐이다. 

굳이 <라디오 스타>에게까지 지금과 같은 시기에 걸맞은 자세와 힐링 같은 걸 요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라디오스타>에서만 느끼던 인간 냄새마저도 점점 옅어지는 건, 어쩐지 안타까운 일이다. 


by meditator 2014. 5. 8. 05:59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여러가지 특집이 마련되곤 한다. 올해는 부처님이 오셔도 구제하기 힘든 재난과, 연휴의 끝자락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인지 다른 해보다 조용히 부처님이 다녀가신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다큐 공감>은 부처님 오신 날 특집에 맞춰, 각국의 불교 문화 발전에 따라 달라진 수행 음식에 대한 다큐를 마련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이 모인 벌판에서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리를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기적이,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함께 나눈 포도주가 기독교의 상징 음식이 되듯, 불교 역시 불교를 만든 석가모니가 먹었던 음식에서부터 불교의 음식이 시작된다. 이런 불교라는 종교 아래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다큐 공감>은 1부, 탁발, 2부, 발우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 본다. 


2005년전 인도 보드가야에서 6년간의 고행 후 보리수 아래 몸을 누인 석가모니에게 수자타가 공양한 유미죽이 바로 그 불교 수행 음식의 시작이다. 
하지만 불교의 음식들은 불교가 전파되는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변화된다. 
인도에서 남쪽 방향으로 전래된 불교는 남방 불교가 되어 '수행'에 중점을 둔 불교로 발전한다. '수행'이 중요한 남방 불교에서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는 '탁발'의 과정이 수행의 한 과정으로 중시된다. 
물론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다. 스리랑카에서는 특별한 날 신자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절로 향하는 식의 탁발을 한다면, 스리랑카나,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신자의 집을 찾는다. 
이렇게 신자들이 주는 음식을 수행의 과정으로 먹는 것이기에 스님들은 신자들이 주는 그 어떤 음식도 거부치 않는다. 당연히 그 음식에는 고기도, 마늘도 들어가 있다. 남방 불교에서 음식은 육신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 수양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 신도들이 주는 음식 중 고기를 먹는 건 살생으로 치지 않는다. 아니, 고기든, 채소이든 그 어떤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단 생각이랄까. 

이렇게 신도들의 음식을 직접 얻어 먹어야 하는 '탁발'의 과정이 수행의 중심이 된 남방 불교와 달리, 중국 쪽으로 전파된 대승 불교는 '계율'을 중시하면서, 공양 과정의 형식에도 중요성을 부여한다. 
또한 중국 역사에서 등장한 '폐불 운동' 등으로 인해 탁발이 여의치 않았던 중국의 상황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한 '선농일치'방식을 통해, 절내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발우의 형식을 띠어간다. 또한 달마 대사 이후 참선 수행에 집중한 선불교는 스스로의 믿음을 통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공양 과정도 그 일환으로 중요시 여겨지게 되었다. 
탁발이 돌아다니며 신자들이 주는 음식을 무엇이든 먹는 과정 자체에 방점이 찍혔기에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중국 불교의 발우는 음식을 통해 불교 정신을 살리고자 육식과 오신채(부추, 대파, 마늘, 양파 등 향이 강한 양념)를 금하는 형식을 중요시 한다. 또한 자연 속에 한 몸이 된다는 취지 하에, 최소한의 양념으로 재료 그대로 조리하는 방식으로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사찰 음식의 전통을 만들어 나간다. 

중국의 불교가 이후 맥이 끊긴 것과 달리, 8세기 유학승 법랑을 통해 한반도로 도입된 선불교는, 선종의 정신전 본령으로 그 전통의 중심에 서있다.
또한 그에 걸맞게 선불교에서 이어져온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고 채식을 하는 사찰 음식의 전통 역시 보다 가다듬어 발전시켰다. 그에 따라 발우는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똑같이 나누는 평등 정신의 실현이자, 절제와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 되어, 자신의 삶 속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양을 스스로 취하고, 먹는 과정에서도 음식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빚을 남기지 않고 남은 공덕을 돌린다는 취지의 불교 정신에 맞는 형식적 틀을 갖추기에 이른다. 
또한 스님들의 기혈을 보하는 쌀가루, 겨울에 난 제철 동백, 그 동백의 찬기를 보하는 들깨 등으로 만든 음식처럼, 적절한 계절 음식은 물론, 음식이 곧 약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때고, 식재료를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는 그 과정 자체가 곧 수행의 과정으로, 나를 내려놓고, 오히려 그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살찌우는 수행의 일환으로 승화된다. 

이렇게 <다큐 공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아왔던 불교 음식의 전통 조차도, 불교가 국가별, 지역별로 전파되어 가며 발전되고, 변화되어진 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살생을 금한다는 육식 금지의 정신 자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차원으로 넓혀지면, 채소 역시 생명의 상징이 되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남방 불교의 탁발 수행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열어준다. 그저 형식적인 부처님 오신 날의 특집이 아니라, 이제 우리 사회의, 혹은 또 다른 나라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불교를 문화적, 그 중에서도 먹거리를 통해 들여다 본 문화의 다양성을 살펴본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다. 


by meditator 2014. 5. 7. 00:29

세월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중지되었던 예능과 함께 휴방했던 <힐링 캠프>가 돌아왔다.

돌아온 <힐링 캠프>의 주인공은 90년대 틴틴 파이브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젠 시각 장애인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이동우이다. 

결혼 한지 불과 100일 만에 망막색소 변성증이란 진단을 받고 급격하게 시력을 잃은 이동우가 그가 지나왔던 과정을 때로는 차오르는 눈물에 말문이 막히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전한다. 

언제나 누구나 뜻하지 않은 고통을 맞닦뜨린 사람이라면 그렇듯이, 이동우도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겪으며 행복한 것도 잠시,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난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다. 그 병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병은 급격하게 진행되었으며, 거기데 업친데 덥친 격으로 임신을 한 아내는 뇌종양의 판정까지 받아 신혼 부부의 행복은 불행의 나날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이 너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했던 이동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의 소식을 기사로 전해들은 것처럼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병을 거부하고, 혼돈스러워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넘기고, 이제는 철인 삼각 경기에 출전하고, 재즈 가수로 이름을 날리며, 연극까지 출연하는 등 장애 이전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힐링 캠프>를 통해 전해들은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밝은 그가 되기까지, 그도 고통을 받아든 그 누구나처럼 힘든 시간을 겪어 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더구나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져 이혼이란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여겨졌던, 그리고 그 고비를 넘기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의 아빠로서 무능력했던 자신을 자책하던 시간들 밝은 목소리 중간중간 말문을 잇지 못하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알수 있게 된다. 

간사하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전해들으면 같은 사람이기에, 그의 고통이 마음 깊이 전해져서 함께 아프면서도, 동시에 안도하게 된다. 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하는, 미안하게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얍삽한 안도만이 아니다. 그런 동병상련을 넘어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은, <힐링 캠프>의 이동우처럼, 그 고통을 겪는 누군가가, 그것을 의연하게 넘기며 오히려 그 전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 나에게 다가온 이 고통도 언젠간 저렇게 넘어가게 되는거구나 라는 진짜 안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고통을 넘어 그 전보다 나은 깨달음과 나은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에게 온 이 고통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걸게 된다. 

바로 그런 고통의 카타르시스를 <힐링 캠프>의 이동우는 잘 전달해 준다. 
눈이 멀기 전까지는 오로지 연예인 이동우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 속에서만 살던 젊은이가, 결혼을 하고 뜻하지 않는 실명을 하고, 그러면서 아빠가 되고, 다시 생활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그것이상, 그런 고통을 보다 나은 삶으로 승화키며 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린 딸에게 눈먼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시도했던 트라이애슬론 최종 도착 지점에서, 오히려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올 수 있었던 동인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곁을 지켜준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인간 승리의 장애인을 넘어선 삶의 승화를 얻어낸 모습이기에 더 감동적인 것이다. 고통이 그저 고통이 아니라, 때론 삶의 더 큰 가치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당당함도 위로가 된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다니기 위해 하얀 지팡이에 벨을 달게 되었다는, 자칭 에디슨이라는 그의 평가는, 그 이면에, 세상 사람들의 편협한 불편함때문에 점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장애인들의 현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장애가 죄냐 라는 그의 항변은, 우리가 무심결에 젖어든 우리의 편견을 일깨워준다. 
그건 시각 장애인만이 아니다. 오히려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이 사회 속에서 늘 부족하다 하여 웅크리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이 먼 이동우가 세상 밖으로 나오라 독려해 주는 듯했다.

이동우가 포크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 정말 힘든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유한 것임에도,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임에도, 그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의 딸을 5분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잃지 않는 이동우지만, 자신이 가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더 나은 삶을 성취하는 것으로 그를 보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한다. 오랜만에 돌아 온 <힐링 캠프>는 모처럼 프로그램 본연의 '힐링'에 충실했다. 


by meditator 2014. 5. 6. 03:19

<기황후>의 뒤를 잇는 <트라이앵글>의 서막이 열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라이앵글>은 형제이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장동수(이범수 분), 장동철(김재중 분), 장동우(임시완 분) 형제의 비극을 다룬다. 그들은 한 부모님 아래서 태어난 형제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한 채, 형만 장동수란 이름을 유지할 뿐, 두 동생은, 허영달과 윤양하 란 이름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단지 형사인 형이, 2전 2패의 실패를 거듭하고도 건설 재벌 고복태를 잡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걸로 봐서, 이 형제의 비극사에 그가 개입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어린 시절 헤어진 형제의 비극을 다룬 드라마는 우리 드라마에서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전작 <기황후>의 장영철 작가의 히트작이, 바로 <트라이앵글>의 형 이범수가 출연한 <자이언트>(2010년)였으며, 최완규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가 그 유명한 <야망의 전설>(1998년)에서부터, 2008년 <에덴의 동쪽>까지 우리 드라마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서로 운명을 달리한 형제들의 이야기였다. 아니 형제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빛과 그림자>(2011년), <태양을 삼켜라>(2009년) 등 남자들의 뒤바뀐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 최완규의 전매 특허와도 같은 이야기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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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 드라마 속에서 그렇게 운명의 장난으로 서로의 인생 행보가 달라진 형제들은 누구는 재벌로, 누군가는 그 정반대의 조폭으로 살아가는 처지가 되어 나타난다. <트라이앵글>도 역시 다르지 않다. 장씨 가문의 세 형제 중 막내인 장동우는 재벌집 아드님이 되었다. 그에 반해 둘째인 허영달로 살아가는 장동철은 도박의 도시 사북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양아치 중의 상양아치로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라마들이 운명의 비극에 몸을 맡긴 슬픈 운명을 한껏 극단적 삶의 행태로 비교하는 것과 달리, <트라이앵글> 첫 회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그들을 덮친 비극에 희생물이 된 세 형제의 모습을 병렬시킴으로써, 그들이 형제라는 걸, 그리고 그들이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걸 설명한다. 

맏형 장동수는 광역수사대의 형제 반장이지만, 검찰반의 조사 대상이 될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수사 도중 피의자를 마구 패는 건 다반사, 출동 현장에서 폭력을 과도하게 행사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등 그의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충동 조절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된다. 
그에 반해 둘째 허영달이 되어 살아가는 장동철은 양아치 그 자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옷을 벗고, 깽판을 치는 건 예사, 겨우 그렇게 해서 돈이 생긴다 치면, 그 돈을 들고 당장 카지노로, 그게 안되면 불법 도박장이라도 가야 직성이 풀리는 막장 인생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목적이 이루어 지면 그것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듯한 그의 아슬아슬한 행보는 그의 형의 충동조절 장애와 묘하게 닮았다. 
막내라고 상황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경치가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다. 양도 먹지 않으려면 정신과 의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힐문이나 당하는 처지이다. 

개발과 발전과 경쟁의 논리를 내재화 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정신병리학적 각종 장애와, 정신적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발빠르게 포착하고, <트라이앵글>은 비극적 운명에 쌓인 형제의 모습을 정신병리학적 장애를 가진 인물로 설명해 낸다. 신선한 접근 방식이자, 비극의 현대적 설명 방식이다. 누가 더 부를 많이 가지고, 가지지 못한 가 이상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로, 형제의 불행을 단적으로 그려낸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비극적 운명을 겪는 개인의 운명에 촛점을 맞추는, 그리고 그 비극적 정서를 낭만주의적으로 극대화 하고, 거기서 빚어지는 인간 관계의 파열음으로 드라마를 추동시키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적인 스토리, 가족사의 슬픈 운명에 기대어 가고 있는 방식이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시대에 맞게 달리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첫 회, 양아치의 극단적 캐릭터를 보여준 허영달의 모습은, 곧 그가 세 형제 중 가장 낮은 사회적 위치를 점한 만큼, 세 형제 중 가장 비극적 운명을 담당할 것이라는 복선처럼 보인다. 더구나 예고편을 보니, 양아치 형과 재벌 동생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얽힐 운명인 듯하니, 이 정도면 벌써 형제애와 사랑의 복잡한 그림이 그려진다. 
첫 회 시작부터 장동수의 충동 조절 장애를 빌미로 화끈하게 벌어진 클럽에서의 격투씬, 허영달의 도박장씬은, 신선한 캐릭터로 승부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트라이앵글>의 정체성을 보여준 방식이다. 여전히 그런 도박과 폭력과, 가족애라는 구태의연한 정서가, 우리나라 드라마계에서 시청률 보증 수표라 믿는 최완규, 유철용 콤비의 도박 한 판이 벌어졌다. 그 도박에 뒷돈을 대줄 것인가는 이 시대 시청자들의 몫이다. 


by meditator 2014. 5. 6. 02:20

sbs스페셜은 4월 27일과 5월 4일 2회에 걸쳐 2부작 <하얀 블랙홀>을 방영했다. 

<하얀 블랙홀>은 그간 sbs스페셜이 방영했던 다큐와 달리,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의 대원의 히말라야의 촐라체 등정을 재연 드라마의 형식을 빌어 소개했다. 

박정헌, 최강식 대원은 2004년 12월 4일 당시 서른 다섯과 스물 다섯의 나이로, 수직 빙벽으로 악명이 자자한 히말라야의 촐라체의 등정 길에 오른다. 
두 사람의 도전은 그 자체로도 남달랐다. 그간 대부분 우리나라의 산악 원정대가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라는 목표를 두고, 다수의 인원과, 안내원, 그리고 산소통 등의 장비를 갖춘 등반대라는 방식을 구가했다면,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은 온전히 '인간의 힘'으로만 촐라체를 정복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베이스 캠프를 지켜주는 단 한 사람의 지킴이만을 놔둔 채, 산소통도 없이, 최소한의 장비를 가지고, 최단 기일 1박2일을 목표로 하는 '알파인 등정'방식으로 촐라체 빙벽을 도전한다. 


이런 두 사람의 도전에 대해 그것을 한편의 소설 [촐라체]를 통해 복원하였던 박범신은 말한다.
 '촐라체 빙벽은 불과 6440m에 불과하다. 이런 도전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성에 반기를 시도로서 의미가 깊다. 개발 독재 이래로, 우리 사회가 젖어든 성과 중심 주의를 벗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 성취를 통해 성취의 기쁨을 이루고자 했던 두 사람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던 촐라체의 등정은 두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고 만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겨울의 촐라체는 하루종일 햇빛이 들지 않은 차갑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추위를 느끼게 했고, 덕분에 1박2일이라는 야무진 목표를 가지고, 단촐한 짐을 가지고 빙벽을 올랐던 두 사람은, 추위와 배고픔, 탈진과 싸우는 상황에 맞닦뜨리고 만다. 겨우 겨우 며칠 만에 정상오른 기쁨도 잠시, 하산을 하던 중 나이 어린 최강식 대원은 끝을 알 수 없는 크레바스에 추락하고 만다. 다행히 두 사람을 이어준 밧줄 덕분에 최강식은 크레바스 골짜기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박정헌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최강식은 양쪽 다리가 탈골되고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만다. 최강식을 끌어올릴 수 업는 박정헌, 스스로 올라올 수 없는 최강식, 그런 상태에서 최강식은 자신과 연결된 줄을 끊으라고 절규하지만, 정신이 가물거리는 상태에서 몇 번이고 줄을 끊는 환상에 시달리던 박정헌은 결국 줄을 끊지 못한다. 다행히, 등반길에 필요없다 생각한 장비의 도움으로 최강식이 크레바스를 탈출하고, 두 사람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촐라체를 탈출한다. 
같이 죽고자 했던 박정헌, 자신을 버리고 살아가라던 최강식의 희생 정신이 결국 두 사람을 모두 죽음의 히말라야에서 살아오게 만든 힘이 되었다. 

하지만, <하얀 블랙홀>은 거기서 종료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 인생의 블랙홀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최단 시간 등반을 목표로 했던 두 사람의 등정 방식으로 인해, 그리고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몸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던 생환의 과정에서 버려야 했던 짐들 덕분에, 두 사람은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동상으로, 두 손의 손가락과 발가락들을 잘라버려야 했다. 촐라체의 등정은 짧았지만, 그 등정의 흔적은 영원토록 두 사람의 몸에 낙인처럼 남고 말았다.

<하얀 블랙홀> 2부는 크레바스에서 살아 내려오기 까지, 그리고 겨우 목숨을 건지고 10 여년이 지나 다시 촐라체를 만나러 가기 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줄을 끊고 싶었지만 끊을 수 없었던, 그래서 그 줄에 의지해 함께 살아왔지만, 박정헌이 '원죄'라고 말했던 그 산을 데리고 간, 그리고 크레바스에 빠졌던 그 기억들이 같은 고통을 나눈 두 사람을 멀게 만든 그 상처의 시간들을 들여다 본다. 자신이 함께 가자고 했기에, 그리고 자신이 크레바스에 빠졌기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자책감, 하지만, 그런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기엔,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과도 '같은 등반가의 손가락을 잃은 두 사람은 산에서의 고통만큼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끝나지 않는 절망의 시간을 건넌다. 하지만, 결국 촐라체에서 후배의 목숨줄을 끊어버리지 못한 선배처럼, 그리고 그 선배를 찾아 온몸으로 구르며 산을 내려온 후배처럼, 그리고 오두막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고, 그 상대방의 체온 덕분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 시간의 경험이 두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박정헌은 비록 다시 등반을 할 수는 없었지만, 패러 글라이딩 등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탐험의 길을 멈추지 않았고, 최강식은 선배가 살려준 목숨을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다짐으로 학교 체육 선생님이 되었다. 결국 촐라체에서 서로를 살렸던 끈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된 그들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박범신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까지 형상화시킨 이유를 '우리가 잃어버린 유대'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 자체가 히말라야 8000 m 14좌 등반의 경쟁처럼 그렇게 살아간다고, 그래서 두 사람의 촐라체 등반처럼, 자신이 맞는 목표를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놓지 않았던 믿음과 희망의 끈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래도 두 사람은 비록 두 손의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을 잃었지만 살아돌아왔다. 하지만, 정작 지금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회복될 수 없는 고통에 빠져있다. 그런 때, <하얀 블랙홀>의 두 사람의 결코 놓지 않았던 끈의 메시지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어른들의 행태로 인해 좌절한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점검해야 할 삶의 원칙과 목적들을 <하얀 블랙홀>은 나즉히 일깨워준다.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의 촐라체는 그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등반의 상처들이다. 그렇듯,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촐라체를 얻었다. 그들은 그럼에도 두 사람의 놓지 않은 끈으로 희망을 길러 올렸지만,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의 촐라체는 무엇으로 회복해 가야 할까. <하얀 블랙홀>이 그 방향을 밝혀준다. 살아남은 자의 과제이다. 


by meditator 2014. 5. 5. 02:15

5월 3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여성 멤버들은 팀별로 나뉘어 밀가루, 설탕, 흰쌀, 그리고 고기를 끊는 미션을 수행하였다. 그 중에서 게스트로 참여한 김민경은 멤버들의 권유에, 자신이 참여했던 고기 외에 다른 것들도 끊어 보기로 하였다. 먹을 것이 거의 없게 된 김민경을 위해 멤버들은 지난 회 현미밥 도시락을 정성들여 싸주었고, 그래도 걱정이 된 김숙은, 쌈밥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김민경을 위해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장을 찾아나선다.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는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 고추장에, 쌈장으로 적합한 콩알이 살아있는 된장에, 먹고싶다던 미역국을 끓이는데 꼭 필요한 조선 간장까지 구해 아지트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먹고 싶다던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준비해온 김숙의 정성에 급기야 김민경은 눈물을 보이고 만다. 


김민경의 눈물에 정작 당황한 것은 김숙이었다. '네가 한 말을 기억해서 미안해'라고 농담처럼 덧붙일 만큼. 나중에 돌아온 멤버들은 혹시나 미션이 너무 힘들어 김민경이 운 것일까봐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정작 김민경의 운 이유를 듣고, 멤버들은 그것이 비단 김숙의 정성때문만이 아니라, 그간 젖어 살아온 먹거리들을 끊은 데서 나타난 우울증 증상의 하나라는 결론을 내린다. 즉 밀가루와, 설탕, 흰쌀이 주는 달콤한 충족감, 그리고 고기를 먹고 힘을 내던 그 에너지가 상실된 시간들이, 멤버들을 그저 헛헛하게 만드는 걸 넘어, 욕구불만의 우울증 증상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단지, 먹고픈 걸 하루 이틀 먹지 못했다는 이유 만으로, 무작정 짜증이 나고, 기운이 떨어지고, 심지어 말하기 조차 싫어지는 금단 증상은, 마치 니코틴이나, 알콜의 금단 증상 못지 않게, 멤버들의 활기를 떨어뜨린다.  그간 이들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밀가루, 설탕, 흰쌀의 성분에서 비롯된 당과, 고기에서 얻어지는 육식에의 침범당하며 살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tv리포트)

가장 미련스러운 질문이지만,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먹거리의 공해가 심해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는 거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

그저 며칠 단 것을 먹지 않았다고 우울해지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기운이 떨어지는 <인간의 조건> 여성 멤버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몸은 신석기 시대의 유전적 형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 인간은 사냥에 아직 동물을 가축화하지 못했거나, 가축화 했어도 육식을 즐길 수준은 아니었다.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고기는 맛도 못볼 시대의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었다고 하지만, 실제 신석기 시대 생산량은 오히려 구석기 시대 채집 상태보다도 인간의 영양 상태를 뒤로 가게 할 정도로 넉넉치 않았다고 하니, 그 당시 인간의 몸에 들어오는 당으로 전환 가능한 탄수화물이 얼마나 미미한 양이었는지는 새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유전 형질을 가진 몸으로, 인간은 이제 넘쳐나는 당분과, 육식에 치여, 중독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인간의 조건>은 증명한다. 

또한 그 반대의 증명도 한다. 그런 고통스러운 금단의 시간을 넘어, 멤버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마음껏 먹는데도 배가 들어가고, 몸이 편안해 지기 시작했으며, 여태 맛보지 못한 쾌변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서 중독의 증거와 정반대이다. 그간 우리가 오로지 '맛'을 즐기기 위해, 혹은 시간에 쫓고 때우던 음식들이, 얼마나 우리 몸에 반하는 것들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과자와 빵을 통해 얻던 당분들을, 현미밥이나, 올리고당을 통해서도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지혜도 얻었다. 아니 싱싱한 딸기 한 알이 주는 달콤함 만으로도 갈등은 해소되었다. 고기가 아니면 만족스럽지 않던 식단은, 콩고기를 발견하고, 생선과 버섯류를 통해서도 상쇄할 수 있음을 알아낸다.

그리고 처음엔 난감해 하던 멤버들은 조금씩 이 미션이 정말 자신들, 그리고 늘 군것질 거리를 달고 살거나, 극단적 다이어트를 통해서만이 살을 깍아내야만 했던 여자들에게 필요한 미션이었음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으로 변해간다. 단지 <인간의 조건> 멤버들만이 아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우리 식생활의 오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고기가 아니라도, 흰쌀이나, 밀가루, 설탕이 아니라도,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며 살아갈 수 있는 먹거리의 방향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좋은 점은, 각각의 미션을 통해, 고통의 시간도, 그리고 새로운 대안의 시간도 그 과정을 통해 대리 체험하며, 스스로의 삶에 가능성을 열어가게 한다는 점에 있다. 


by meditator 2014. 5. 4. 02:31

꽃할배 스페인 편이 마무리되었다. 

처음 프랑스 여행에서 그랬듯이, 장도를 떠난 할배들은 여전한 현역에의 일정 때문에, 처음엔 박근형 할배가, 그리고 다음엔 이순재, 백일섭 할배가 먼저 떠나고, 마지막으로 신구 할배가 남아 홀로 포루투갈 일정을 보내는 것으로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스페인의 풍광은 아름다웠고, 그곳의 유적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기차를 11시간씩 타고, 짐꾼 서진이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할배들 스스로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등의 여정에, 생각 외로 추웠던 스페인의 날씨는 할배들의 여행을 고단하게만 만들었다.
마지막 날,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고 호텔로 돌아온 할배들은, 여행지의 마지막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소회를 나눈다. 협찬을 받았던 옷 속에 함께 집어넣어 보냈던 지갑으로 시작된 상념은 쉬이 사그라 들지 않았다. 그 정도의 건망증이야, 젊은 사람들에게도 비일비재한 일이건만, 유독 여행지의 마지막 날의 감회 때문인지, 할배들은 정신줄이 오락가락한다며 자신들을 책망한다. 그런 자책의 감정은, 너무 늦은 여행으로 이어진다. 그저 여행은 젊을 때 가야하는 거라고 이순재 할배가 말문을 트자, 신구 할배도 그래야 한다며, 젊어야 설레임도 있고, 그것이 열정으로 이어지는 거라며 맞장구친다. 

네 할배들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지점들, 자신들은 젊어서 결코 이렇게 여행다닐 여유가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는 그 시절들이, 이제 뒤늦게 온 여행에서 할배들의 또 다른 회한으로 이어진다. 너무 늦게 온 여행, 어쩌면 이제 다시는 올 수 없을 지도 모를 마지막 여행, 늘 할배들의 여행의 소감은 좋았지만, 젊어서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라는 회한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는 그런 할배들의 회한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여전히 어느 젊은 사람 못지 않게 현역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할배들은, 나이가 무색하게, 젊은 사람들의 열정이 무색하게 여행지에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일관했음을 보여준다. 
밤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찬 날씨에 감기에 걸려 안색이 창백해 졌으면서도 할배들은 여행의 일정을 늦추지 않았다. 행여 자신들의 몸 상태로 인해 여정에 차질이 생길까, 늘 괜찮다는 말로 자신의 컨디션을 방어한다. 그런 할배들의 모습은, 그들이 왜 여전히 현역인지를 보여주는 프로의 그것이며, 또한 저물어 가는 자신의 생을 반짝하게 빛내는 <꽃보다 할배>라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현이었다. 이순재 할배는 말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 있냐고, 그리고 그 말 그대로, 할배들은 직진하고,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광을, 고고한 역사의 현장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꽃보다 할배 이순재 신구
(사진; tv데일리)

애초에 그 누구보다도 리스본 행을 원했지만, 다른 할배들의 일정으로 인해 취소할 수 밖에 없던 일정이, 단독의 여행으로 되살려지자 당장 오케이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던 신구 할배의 모습에서, 마지막 날 이순재 할배와 나누던 회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리스본의 거리를 마다않고 거닐던, 그리고 포르투칼의 서쪽 땅끝 바다를 보며 유럽 대륙을 모조리 휩쓸며 내려온 듯한 감회를 밝히던 그 모습에서, 열정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할배들의 첫 여행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슈가 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세 번째 여행이 막을 내렸다. 국가적 슬픔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던 시즌 3는 이렇게 여전한 할배들의 열정과, 그리고 그 속에 숨길 수 없는 나이듦의 서글픔을 담고 조용히 막을 내린다. 

최근 노년의 삶에 대한 연극을 하고 있는 이순재 할배는 연극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홀로 된 늙으막의 노인들을 사회가 나서서 짝이라도 지어줘야 한다며, 노년의 외로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할배들 앞에 꽃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그들을 아름답게 미화시키지만, 마지막 인터뷰에서 박근형 할배는 말한다. 이런 여행이 자신들에게 남긴 것은, 세상이 자신들을 밀쳐버리지 않은 것 같아, 쓸모없는 사람이라 치부하지 않은 것이라며 감사하단 말을 덧붙인다. 우리가 소비하는 노년과, 그들 자신이 느끼는 노년의 간극이 선명하다. 

꽃할배의 여행이 여느 사람들의 여행기와 다른 것은, 해가 지기 전 가장 화사한 저녁 놀의 아름다움처럼, 그분들의 열정이 아름답지만, 그것이 유한할 것이라는 그 한시적 경계의 분명함에서 느껴지는 어떤 안타까움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저 여행지의 풍광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광조차도 인간의 유한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그래서 그 속에 담긴 인간사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깊게 되돌아 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꽃보다 할배>는 그저 한갓 예능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3.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