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삶을 예능의 화두로 삼으며 화제를 몰고 시작했지만 결국 동시간대 <세바퀴>에 못미치는 시청률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시즌 1으로 마무리지어진 남자멤버들의 <인간의 조건>이 시즌 2로 돌아왔다. 


비록 높지않은 시청률이지만 <인간의 조건>을 아끼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시즌1의 멤버들에 대한 정이 들어, 과연 이들을 능가할 시즌2가 가능하겠는가 라는 회의적인 반론이 나왔던 상황을 참고하기라도 한 듯, 시즌1의 멤버 중 김준호, 김준현, 정태호가 살아남았다. 
정태호로 말하자면 <인간의 조건>의 엄마같은 존재로 <인간의 조건> 1기가 끝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아쉽다고 언급된 멤버로서 그의 생존은 어찌 보면 당여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 김준호와 김준현으로 가면, 아마도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김준현의 경우, <인간의 조건> 초창기에만 해도 주도적으로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가장 잘 살려낸 멤버였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미션에 따라 리액션을 넘어선 듯한 짜증을 보이거나, 여유를 지나 게을러보이기도 하는 모습으로 그 성실성에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보였던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준호로 말하자면, 이미 <1박2일>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이 그의 주력 무대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또 하나의 리얼리티 예능을 한다는 것이 과연 그자신에게나, 프로그램 자체에 도움이 될까 싶은 경우이다. 
하지만,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여 재개되는 시즌2에서, 낯선 인물들과의 시너지를 고려할 때, 기존의 박성호나, 허경환이 낯을 가리고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개인적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무람없이 프로그램의 질을 담보해낼 수 있는 김준호와 김준현의 선택은 불가피했으리라 보여진다. 또한 김준호는 늘 악역을 자처하며 프로그램의 궂은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김준현은 촌철살인으로 프로그램의 맥을 짚는데 탁월하니, 결국 선택의 자리를 놓고 본다면 불가피한 카드였으리라. 

하여튼 이리저리 따져본 끝에 선택되어진 듯한 김준호, 김준현, 정태호가 시즌2의 선배로서 멘토의 역할을 자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멘티로서 선택되어진 것은, kbs의 아나운서 조우종과 힙합 듀오 '다이나믹 듀오'였다. 
기존의 <인간의 조건>이 개그 콘서트를 기반으로 한 인간적 유대에 밑바탕을 두고, 그때그때 적절한 게스트를 섭외하는 것으로 갔었다면, 이제 <인간의 조건> 시즌2는, 그 유대의 폭을 기존 멘티로 국한시키고, 예능에 있어 신선한 인물을 수혈하여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데 주력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예능을 통해 한번도 선보인 적이 없던 '다이나믹 듀오'와, '조우종'이라는 카드는 '예능의 새로운 피를 공급했다는 점에서 주효했다. 더구나 이미 주부들 대상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중년층 이상에게 익숙한 조우종과, 젊은 층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다이나믹 듀오'의 선택은 전세대를 포섭하려는 제작진의 포석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나이든 세대에겐 '다이나믹 듀오'가 낯설고, 젊은 세대에겐 '조우종'이 '뭥미?'일수도 있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포함한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무엇보다 시즌2의 관건이 되는 것은 과연 이 새로운 세 사람의 멤버가 보여줄 예능적 가능성과 기존 멤버와의 시너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즌2의 첫 회는 아직 유보적이다. 

새롭게 참여한 멤버 중 조우종은 방송에서 보여진 친숙한 이미지를 넘어선 털털한 노총각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또한 미션에 임하면서 철저한 미션 수행을 위해 결국 포장지가 두려워 빵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한 채 '멘붕'에 빠지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와 개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1기 멤버들이 첫 날 생각지도 못한 포장지로 인해 미션 수행에 어려움을 겪은 것과 달리, 최자와 개코는 첫 날 부터 모범생처럼 미션에 철저하게 적응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어 첫날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미션의 수행 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멤버들은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과연 한시적 게스트가 아닌 2기의 고정 멤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심심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과연 이들을 데리고 2기라는 시간을 채워나갈 '예능적 건더기'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꾸려나가는 제작진의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같은 관찰 예능으로, <꽃보다>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인간의 조건>을 탄생시킨 나영석 제작진의 그것과 <인간의 조건>과의 차별성이 비교가 되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나영석 피디는 새롭게 예능에 첫 선을 보이는 이서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동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면면이 고스란히 들어났고, 시청자들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예능을 통해 익숙한 인물이었던 이승기를 <꽃보다 누나>에 짐꾼으로 도입하면서, 제작진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그의 이미지 외에, 스타가 되었지만, 해외 여행을 함에 있어서는 혼란스러운 스물 몇 살의 청년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즉, 예능에 새로운 인물을 초대할 때는 그 인물에 대해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조건>은 늘 투박하다. 아니 핸드폰 없이 살기나, 쓰레기 만들지 않기라는 미션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게스트나, 새로운 멤버에 대해 불친절하다. 이미 그들에 대해 알려진 이미지 외에, 더 나아가는데 있어 단편적이거나, 더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지레 멈춰버린다. 

5월 17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송 초반 개코의 집을 방문하여, 짐을 싸고 그와 함께 나온 제작진은 그저 신기한 듯 자신의 차를 자랑하는 개코를 비춰준다. 차량 마크가 흐리게 처리된 영상에서 시청자들은 그저 정말 개코가 자신의 차를 참 사랑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방송 말미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렇게 자부심이 넘쳤던 차가 알고보니 십 여년이 넘은 오래된 차였던 것이다. 그렇게 개코라는 힙합 가수를 넘어 그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를 제작진은 그저 스치듯 짚고 지나쳐 버린다. 방송 초반 자신의 차에 자부심이 넘치는 개코를 그저 '차를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치부해버리고 채널을 돌린 시청자라면 결코 개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다보고 나면, 저렇게 <인간의 조건>에 어울리는 내용을 저렇게 부실하게 다루나 싶을 정도다. 그 장면은, 개코가 <인간의 조건>에 참 어울리는 연예인이라는 걸 부각시켜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걸 그저 여느 아이템 중의 하나로 소비시켜 버린다. 차라리 방송 초반, 오래된 차를 애지중지하면서 아끼는 소박한 인물로서 개코를 좀 더 부각시켰다면, 방송 말미 와이퍼가 고장난 상황이 그저 웃기는 걸 넘어 애특해 졌을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가진 착한 예능으로서의 강점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시즌1을 넘어서, 이제 시즌2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그저 새로운 멤버들에게 다시 독한 미션을 던져주는 식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가 되도록, 그리고 그들이 멘티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인간적' 유대를 끌어나가도록 장을 풀어놓아야, 진짜 착한 예능으로서 <인간의 조건>의 맛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저 새로운 멤버가 새로운 혼돈에 빠지는 딜레마만이 아니라, 왜 이들이어야 하는 가를 설득하고자 좀 더 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낯선 인물들에 정을 붙이고 <인간의 조건>에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들의 새로운 웃긴 이야기라면 <세바퀴>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점을 잘 살려 2기 <인간의 조건>이 자리잡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5. 18. 12:04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막상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느끼는 가장 현실적인 느낌은 절망감이다. 물론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일부분의 학생들이 앞에서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만, 그 일부분의 학생을 제외한 상당수의 학생들은 수업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것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피치못해 소외된 것이든. 시험 시간에는 더 명확해 진다. 시험지를 나눠줌 과 동시에 시험을 포기한 학생들은 신속하게 답을 찍고, 시험지를 접어놓고 엎드린다. 단지 학교마다 그 수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학교 현장에서 그런 아이들을 만나는 게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그렇다고 수업을 잘 듣는 아이들은 다를까? 아이들에게 묻는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온종일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학생들에게 교실이란, 선생님이 '꿈', '함께 하는'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정의를 내린 반면, 상당수의 학생들에게 교실은, 총성없는 전쟁터이거나, 지옥같은 시간으로 정의내려진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생각의 격차를 가진 선생님과 아이들, 그렇게 넓은 강과도 같은 둘의 사이를 좁히고자 애쓰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스승의 날 특집으로  kbs1과  ebs는 다큐로 담았다. (ebs 스승의 날 특집 다큐<선생님의 아이들, 아이들의 선생님>(5월 15일 방송), kbs1 스승의 날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5월 15일, 16일 2부작))



<나는 선생님이다>의 1부 대전 탄방중학교의 김정석 국어 선생님은 학창 시절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학교 성적을 보고 아버지가 교사라는 직업을 권했고 선생님도 그런 부모님의 추천에 큰 거부감없이 사대에 진학했다. 사대에 진학했으니 당연히 임용 교시를 보았고, 그렇게 국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김정석 선생님이 택한 건 국어 교사라는 직업이었다. '담임, 지도, 상담' 등 교사가 해야 하는 또 다른 직무에 대해 선생님은 준비돼지 않았었다. 당연히 자신이 가르치면 아이들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맞닦뜨렸던 교육 현장, 자신의 의지와 달리 어긋나는 아이들을 보며,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심한 질책으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법적 처리까지 가게 된 학생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김정석 선생님은 좀 더 나은 선생님이 되고자 한 달에 두 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교사 공감 교실에 참여한다. 교과서 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교과서 밖 아이들을 만나면서, 과연 그들을 교과서로 끌고와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맞추어 주어야 하는가 라는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공감 교실에서 만난 박모정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교원 평가에 욕까지 써놓았던 학생들이 2년이 지나 자신의 생일에 케익을 주었을 때, 기쁘고도 불안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학생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그런 학생들이 또 언제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까 불안하다는 말에, 그만 김정석 선생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이런 두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그저 세간의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교실 붕괴의 시대 혼란과 고뇌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선생님이 오롯이 전달된다.

한 해 7만 여명의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전체 학생 수의 1%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교실에 담겨져 있는 학생들이 행복한 건 아니다. 전세계 학생들과의 비교에서 성적은 높지만, 행복 지수는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또래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 행복감을 쉬이 얻지 못하고 있다. 

앞의 김정석 선생님은 교사 공감 교실을 통해 배운 상담 기법을 학생들에게 활용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이 그저 친구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구같으니까 아이들이 그저 친구처럼 여길뿐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친숙함 이상의 신뢰, 우러나오는 권위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김정석 선생님은 고민중이다. 

학교는 무너지고, 교실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지만, 김정석 선생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얻어가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 선생님들이 처한 환경에서, 각각의 선생님들은 각개전투를 하듯이 아이들과 유대를 쌓아간다. 

중화고의 방승호 교장 선생님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삐에로 가면을 쓰고, 호랑이 탈을 쓰고 교문 앞에서 춤을 추며 학생들을 반기고, 언제든지 누구한테 얘기를 해도 받아들여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장실 문턱부터 낮춘 방승호 선생님 덕분에 학교 폭력과 핸드폰 분실은 부지기수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중화고는 이제 학교 폭력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고 자퇴아가 돌아오는 학교가 되었다.(<나는 선생님이다>) '교문 앞 스토커'라는 별명이 붙은 용인 흥덕고의 이범희 교장 선생님이 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매일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 주변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학생 주임 선생님 덕에 아이들은 달라졌다.

두 편의 다큐를 보면, 그토록 문제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실제 바라는 것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달라진다. 전남 순천의 효산고 안중철 영어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아이들은 'I love you'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묻는다. 'what's your dream?' 이 낯부끄러운 상황이 매일 이 학교 영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선생님은 생일이 되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생일시를 써준다. 그저 시가 아니다. 그동안 그 아이와 선생님이 나눴던 메시지를 기반으로 지은 시이다.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지른 학생에게 선생님이 10분의 시간을 주고, 10분 동안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학생이 조용히 수업에 임했던 그 기억을 선생님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시에 적는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그 무엇도 할 의지가 없이 무기력해서, 오히려 쉽게 어떤 일을 저질러 버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시를 짓기 시작했다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그저 빈말이 아니라,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학교 밖으로 떠난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세운다. 


아이들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도록 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반기며 힘껏 안아주고,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한다. 모두를 수업에 참여 시키기 위해 다양한 현장 활동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교사간 협력에 매진한다. (분당 보평중)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위해 수준에 따라 모둠을 나누고, 모둠 별 문제지와 교육을 실시한다.(구현고 오영일 수학 선생님)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 교사가 되어 수업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한다.(용인 소명중) 아예 학교의 방식을 달리하기도 한다.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에서 수업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 지지 않는다. 130여 명의 학생들이 목공을 배우고, 텃밭을 가꾸고, 공동체 회의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결정한다. 양업고의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뛰고, 학생들의 문제를 속속들이 함께 한다. 덕분에 제도권 학교를 포기한 학생들이 이 대안 교육 현장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꿈을 찾을 수 있다. 

태봉고의 공동체 회의 시간 학교 폭력 문제로 대립각을 내세운 학생들은 첫 날도, 둘째 날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웠다. 하지만, 서로의 속내를 모두 드러낸 아이들은, 셋째날 화해했다. 회의 자체가 수업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소명중 수업 영상에서 선생님은 찾아볼 수 없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질의 응답을 받는 것오 학생들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청운 중의 국어 수업 시간, 학생이 선생님을 대신에 칠판에 필서를 한다. 선생님은 자료를 보여줄 때마다 학생들에게 확인한다. 3년째 수업을 맡은 강신혜 선생님은 중증 1급 시각 장애인이다. 

아이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선생님들은 교실의 주인공은 학생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교실의, 수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여러 분의 선생님들은 늦은 밤까지 교무실의 불을 밝힌다. 그분들에게 스승의 날은 더 이상 부끄러운 날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17. 00:35

2013년 9월에 시작하여 2014년 5월에 이르기까지 장장 120부의 대장정을 마쳤다. 지구에 나타난 의문의 행성 감자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감자별 2013 QR3>는 감자별이 파괴됨으로써 함께 마무리 되었다. 


<감자별 2013QR3>에서 사라진 것은 감자별만이 아니다. 감자별처럼 불현듯 나타난 의문의 청년 홍혜성, 피치못할 사정으로 노준혁이 되어 살아가던 그도 감자별처럼 사라졌다. 그 누구보다 노수동 일가의 아들같았던 그였지만 자신이 노수동(노주현 분) 일가의 친자가 아니라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노준혁이 자신이 노수동 집안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사라지자 노씨 일가는 그를 찾아나서야 한다면서, 친자가 아니라는 노준혁의 고백에 대한 진의를 밝히고자 다시 한번 DNA 검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결과는 그의 고백이 진실이었음을 알려주고, 노씨 일가는 준혁을 그리워는 하면서도 더는 그를 찾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피 하나 안섞였어도 함께 한 정을 생각해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기적 따위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자별도 사라진다. 지구의 파멸 따위도 없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이, 다들 일상을 이어간다. 저마다의 기억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김병욱 월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번 시트콤에서는 또 누굴 죽일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감자별 2013QR3>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알았는지 다행히 급작스럽게 죽은 사람은 없었다. 

감자별 결말 종영
(사진; TV데일리)

하지만 죽지 않았을 뿐, 거침없이 시리즈의 강유미(박민영 분)나, 신세경(신세경 분)처럼, 노준혁으로 살아가던 홍혜성은 결국 일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불현듯 일상을 깨고 들어와 파열음을 일으키고, 그 파열음이 일상의 또 다른 의미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던 그들은, 결국 늘 시트콤의 결말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기적이 없는 우리들의 일상처럼. 외부인에 대해 결국은 배타적인 우리 사회처럼. 마지막회, 노준혁이 그들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가 그들의 삶에 그려놓은 궤적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를 포기하고 마는 노씨 일가처럼. 우리들은 여전히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 낼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김병욱 월드는 늘 냉정하게 결론짓곤 한다. 삶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병욱 월드의 공식은 지속된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삶의 부조리와 모순에 천착했던 그의 세계는 <감자별 2013QR3> 내내 일관되게 발휘되어 왔다. 노송(이순재 분)을 비롯하여 노수동, 왕유정(금보라 분), 김선자(오영실 분)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대 한국 사회 어른들의 모순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어른이지만 지극히 속물적이고, 부조리하며, 비논리적인 그래서 전혀 어른답지 않은, 하지만, 우리 곁에 살고 있는 그들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나이든 사람들의 그것을 김병욱 월드의 전작들의 그들처럼 답습하였다.

그렇다고 속물스런 어른들의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삶에 한 발을 들여놓으려 애쓰는 젊은이들도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이나, <짧은 다리의 역습>의 백진희처럼, <감자별 2013QR3>의 나진아는 자신들이 튕겨져 나왔던 그 사회 속으로 한 발 들여놓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형제 사이에 한 여자를 둔 미묘한 삼각 관계도 여전했다. 실제 친형제가 아니었기에, 그래서 노준혁으로 살아가야 했던 홍혜성의 존재에 무력감을 제공한 나진아(하연수 분)를 사이에 둔 형제간의 애정 갈등도 여전했다. 단지 그것이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였는지, 이제는 너무 익숙한 김병욱 표 애정구도여서 였는지, 거침없이 시리즈처럼 시청자들의 편을 가른 갈등전을 불러 일으킬만큼 열렬한 호응은 덜했다. 

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배우들과 다른 배경을 가지고 되풀이 하는데서 오는 지루함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어쩌면 이젠 그런 이야기조차 너무 뻔한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세상살이의 지루함 때문일까. 웃기고자 하는 시트콤임에도 늘 세상에 대한 날이 벼려져 있던 김병욱 월드는 <감자별 2013QR3>에서도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비평은 둔중하고 무뎌진 듯했다. 마치 첫 회 지구 종말을 예언하며 무시무시하게 등장했던 감자별이 허무하게 지구 방위대의 폭탄에 의해 파괴되어버리고 사라진 그 결말처럼 말이다. 이것이 김병욱 월드의 위기인지, 여전한 비판에도 무디어져 버린 우리 삶의 모순인지, 선뜻 그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by meditator 2014. 5. 16. 08:36

5월 14일에 방영된 <개과천선>, 경찰서에서 우연히 혜령(김윤서 분)과 마주친 김석주(김명민 분), 혜령은 김석주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침을 뱉는다. 모욕을 당했다 생각한 김석주는 항의하려 하고, 그런 김석주를 이지윤(박민영 분)은 말린다. 도대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까지 겪느냐는 김석주의 말에, 이지윤은 정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냐고 반문하면서, 차영우(김상중 분)가 내가 알고 있는 당신보다 실제 당신이 20배나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당신은 지금 어렴풋이 알게되는 당신보다, 20배, 아니 그 이상 더 나쁜 놈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이지윤의 말에 긴가민가 했지만, 시스타 호 서해 기름 유철 사건 와중에서 얼핏 떠오른 자신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린 김석주는 결국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만다. 결국 서해안 어민들의 생계를 빼앗은, 그리고 노인 한 분이 건물에서 떨어지도록 절망케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석주가 포기한 시스타 호 사건을 맡고 '로또'를 맞은 듯 기뻐하는 강팀장(이한위 분)처럼 그저 높은 수임료로만 측정되었던 사건의 이면에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이 숨겨져 있음을 병원에서 도운 환자의 보호자가 건네 준 음료수 한 병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김석주는 비로소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독특한 시도를 한다. 우리가 흔히 밥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참치 통조림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각종 물류 과정을 거쳐, 참치 통조림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을 샅샅이 훑어본다.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그런 알랭 드 보통의 시선을 따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난 고기들이 포장에 얌전히 쌓여, 그들이 도살되는 과정의 살육의 잔인함이 사라지듯, 많은 현대인들이, 원자화되어 책임지고 있는 일들 역시 그 일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책임과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밥벌이로만 전락해가고 있는 과정을. 숫자에 둘러싸인 회계 업무와, 기계 장치로 산적한 물류 과정에서 먹거리로서의 참치 통조림의 의미는 유실되고, 그저 숫자와 과학적 수치로만 계산될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부재는, '도대체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이다.


(사진; 스포츠 서울)


최유라 작가의 <개과천선> 역시 마찬가지다. 
개과천선이라는 선명한 결과를 제시하는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촘촘히 김석주라는 이 시대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자신을 잃고 되찾아 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간다. 

태진 전자 인수건을 둘러싼 과정에서, 변호사로서의 김석주가 가진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통해, 충분히 비도덕적일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더니, 이제 시스타 호 보상 사건을 통해, 그 비도덕적인 일의 범위가 그저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실제 삶을 빼앗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또'라는 표현처럼 높은 수임료, 그에 따른 명망이라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능력이라는 배후에, 5년 동안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어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석주는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5회의 김석주는 그런 면에서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과 통한다.
이동휘 역시 팔콘이라는 기업의 컨설턴트로서 기업 이익의 극대화라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양진리에 북한 잠수함 투입이라는 작전을 실행토록 한다. 또한, 이제 막 기업 회장이 되어 어떻게 하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있는 김도진에게, 남한 사회의 불안이 곧 기업에게는 노다지가 됨을 교육한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개입했던 양진리 사건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애초에 기획된 양민 학살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석주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다치면서, 비로소 돈과 승소라는 업무적 효율성의 근거로만 보았던 사건들의 실체에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휘가 그랬듯이, 김석주 역시 자신이 일이 가져온 무책임한 사회적 결과를 느끼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쓰리데이즈>의 김은희 작가와, <개과천선>의 최유라 작가가 공통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이 사회의 거대한 비리나, 부도덕의 폭로가 아니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닦뜨리고 있는 거대한 슬픔의 현장에서 우리가 낱낱이 목격하고 있는 무책임과 방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잊고 무디어져 가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두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라며, 우리 사회에서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일에서 사회적 채무를 다하고 있냐고 김석주와 이동휘를 통해 두 드라마들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일들이 고도로 체계화되면서, 개인들은 그 아래 원자화된 부속품으로 그저 각자의 일의 미시적인 분야에만 골똘하도록 편제되어 간다. 그러기에 더더욱, 각자가 자신의 일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길어내지 못한 채 그저 몇 푼의 돈이나, 직위로만 그 일의 의미를 치환하기 십상이기 쉽다. 그러기에 알랭 드 보통은 굳이 식탁 위의 참치 통조림을 거슬러 남태펴양의 참치 잡이 어선까지 갔을 것이다. <개과천선>의 김석주나, <쓰리데이즈>의 이동휘가 우리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참치 통조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잊었거나, 무시했던 삶의 수단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by meditator 2014. 5. 15. 16:43

5월 13일 방영된 <빅맨>에서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직장의 신>에서 마케팅분 만년 과장이던 고정도 과장으로 출연했던 김기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장의 신>에서는 만년 을의 신세였던 고정도 과장은,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내려가, 현성 유통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 역이었다. 현성 유통 건물 로비에서 그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영업 팀장 최유재(김지훈 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HACCP(한국 식품 안전 관리 인증)도 땄는데 왜 납품이 거절되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최유재는 단호하다. 그런 최유재를 지켜보던 강지혁(강지환 분)은 한 마디 한다. '먹었네, 뭘 먹었어' 

그리고 최유재를 사장실로 부른 강지환은 최유재의 뇌물 수수를 추궁한다. 그 옆에서 재무팀장 구덕규(권해효 분)는 결코 최유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극구 편을 들지만, 정작 최유재는 가슴에 손을 제대로 대지도 못한 채 버벅거리다 자기 측근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잠시후 부리나케 납품업체 사장을 찾아나온 그, 직원들의 월급을 주려고 제 2금융권이라도 알아보라며 전화를 하던 납품업체 사장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따라나온 강지혁도 함께.

<직장의 신>의 고정도 과장의 등장으로, 이 장면은 더더욱 을들의 각성을 일깨웠던 <직장의 신>이 오버랩된다. 그러고 보니, 현성 유통에 강지혁이 등장한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파업을 하던 노조원들과, 그들을 때려부수려고 나타난 구사대가 함께 죽은 비정규직 직원의 초상을 트럭에 그리고 반목하던 노조원들과 관리직들은 파업의 종료되었다는 소식에 손을 맞잡고 기뻐한다. 사장이던 강지혁이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가고, 제일 앞서 구사대와 싸운 결과이다. 분명 강지혁은 사장이지만, 시장판에서 뼈가 굵은 거리의 남자 강지혁이 현성 유통에 들어와 한 일은 <직장의 신> 미스 김이 일으킨 변화와 비슷한 궤적을 가진다. 



<빅맨>은 현성 그룹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의 심장에 무리가 생기면서, 그의 심장 역할을 하기 위해 급하게 구해진 강지혁이 현성의 아들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재벌가의 속사정을 까발리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빅맨>에서 재벌가의 비리와 부도덕이라는 이야기의 한 축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빅맨>에서 흘러가는 스토리의 관찰자 시점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소미라(이다희 분)이다. 강동석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강지혁의 호흡기를 스스로 떼려했었지만, 뜻하지 않게 강지혁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점점 변화되어 가는 사람이다. 현성 그룹의 FB팀장으로, 그룹의 수족이 되어 회장님의 갓김치까지 구해다 바치는 마름 역할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강동석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던 야심을 가졌던 그녀이지만, 강지혁의 옆에 있으면서 조금씩 '양심'이란 것이 일깨워진다. 회장님의 수발만 들면 그뿐이었던 그녀이지만, 사고치는 강지혁을 수습하면서 자꾸 양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뿐이라는, 도상호(한상진 분)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던 그녀였지만, 강지혁을 지켜보며 울리기 시작한 양심의 소리는 급기야는 강동석의 결혼 신청까지 미루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강동석과 강지혁, 소미라의 사랑이라는 삼각 관계도 개입되지만, 그것만이 아닌, 갑의 세계를 내재화했던 하지만 결국은 을이었던 소미라의 자기 자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소미라의 자각은, 최윤재의 자각과도 일맥상통한다. 납품업체 사장에게 고개를 수그리며 최윤재는 말한다. '그간 제가 갑질에 너무 익숙해 졌었나 봅니다'라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 갑을 관계, 즉 을이면서 동시에 갑이 되는 이중적 존재들의 탈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맨>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갑질을 하던 을들의 자각이다. 그런 을들의 자각에 매개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갑이 된 을' 하지만 갑임에도 불구하고 을의 정체성을 지닌 강지혁이다. 그런 강지혁의 등장으로, 결국은 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하던 을들이 점차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을의 자각은, 또 다른 을과 합류하며, 인간미 넘치는 상황을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례식이 그것이요, 시장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낸 자로끄 패션쇼가 그것이다. 을이 을로써 자각하여, 을과 함께 함으로써, 한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걸, <빅맨>은 4회에 이를 동안 꾸준히 주장한다. 그리고 아마도, 시장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던 강지혁이듯이, 앞으로의 강지혁의 행보에서, 이 변화된 을들의 존재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리고 아직은 가장 강력하게 강지혁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을, 하지만 현성 그룹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비리와 부도덕을 가장 직시하는 그의 변화도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5. 14. 06:33

또 하나의 새로운 예능이 등장했다. 안보였던 1mm의 재발견 팟 캐스트 <매직 아이>

<매직아이>는 팟 캐스트를 지향한다. 즉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부분과 방송에서 다 보여지지 않은 부분, 혹은 미처 다룰 수 없는 부분이, 팟캐스트 <매직 아이>를 통해 마저 전달된다. sns를 함께 공유하는 방송 형식은 있었지만, 공중파의 방송과, 인터넷 채널을 공유한 새로운 예능, 실효성 여부를 차치하고 형식만 놓고 본다면 <매직 아이>는 형식적인 면에서 신선한 시도라 할 만하다.

<매직 아이>는 두 개의 채널로 구성된다. 
그 첫 번째 채널은 '혼자 알면 안되는 뉴스', '언제나 주목 받는 건 헤드라인과 주인공 뿐, 하지만 우리가 놓친 뉴스 속에 진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요, 그런 놓친 뉴스, 그 뉴스를 혼자 알면 사라지지만, 그 뉴스를 함께 알면 힘을 얻는다'는 것이 이 첫번째 채널의 탄생 이유이다.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될 뉴스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네 명의 여자가 모였다. '좀 놀아 본'효리, '깊이 보는' 소리, '엣지 있는 진경, '뚫어보는'경선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첫 회 함께 이야기를 나눌 객원 mc로 이적과 김기방이 합류했다. 


첫 회, 19금이라 당당히 내건 <매직 아이>를 위해 선택된 소재는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다. 한 해 123명의 사람들이 데이트 과정에서 폭력을 당하고 ,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매직 아이>는 화두로 삼았다. 
심심치 않게 사회 면에 등장하는 데이트 폭력, 즉,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적 양상을 내건 것만으로도, 충분히 함께 나누어 힘이 되는 뉴스라는 첫 번째 채널의 의의는 일정 정도 담보되었다. 
하지만, 그 함께 나누어 힘이 될 주제를 과연 적절하게 나누었는가로 들어가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데이트라는 협소한 단어를 넘어 남녀 사이의 문제를 사적으로 치부하는 사회, 더 나아가 물론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에 들어 과보호된 성장 과정으로 인하여 감정 조절이 쉽지 않은 요즘 세대의 특징으로 인해, 더더욱 폭력적인 양상으로 분추되는, '애정 폭력'에 대한 정의는 적절했다. 
또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애정 폭력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하는 시도도 좋았다. 

하지만 애정 폭력의 양상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직 아이>는 점점, <마녀 사냥>의 연애 사례로 흘러든다. 애정 폭력이라는 정의처럼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운전 중 욕설이나, 머리를 잘라주는 개개인의 연애담의 사례로 희석되는 느낌이 완연했다. 그나마 이적의 지적으로, 모든 것을 맞추어 주는 연애 과정이 이별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역으로 폭력성을 띨 수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데이트 폭력에 걸맞는 인과 관계를 낳는 사례라 할 만했다. 

<매직 아이>의 의도는 훌륭하지만, 그런 공적인 주제를, 과연 네 명의 여자 mc들이 소화할 능력이 있을까에 대해 조금은 의문을 가지게 된 첫 회가 되었다. 즉, 보다 근본적으로 공적인 주제를 예능화하는 과정의 딜레마라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주제는 공적이며, 결론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이이어야하지만, 과정의 사유는 지극히 사적이다 보니, 어딘가 아귀가 안맞는 느낌이 들었다. mc들 자신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개념 파악이 되지 않은 듯, 예능과 시사 토론 사이를 오갔다. 주제만 그럴 듯하게 하고, 19금의 토크쇼를 하겠다는 것인지, 진짜 함께 나누어 힘이 될 만한 뉴스를 나누겠다는 것인지, 애매한 첫 회라 하겠다. 


그렇게 혼자 알면 안되는 뉴스가 얼기설기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화면이 전환된다. 선글라스를 쓴 김구라와, 배성재 아나운서가 거리에 나타나 인터뷰를 하겠단다. 또 하나의 매직 아이, 화제가 된 뉴스 속에 숨겨진 인물을 찾아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 두번 째 채널 '숨은 사람 찾기'의 목적이다. 

첫 번째 방송 두 사람이 찾아간 사람은 화제를 모았던 '별에서 온 그대'의 이길복 촬영 감독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작 방송을 통해 많은 비중으로 다루어 진 것은 이길복 촬영 감독을 기다리며 김구라가 은연 중에 배성재 아나운서를 통해 박지성 김민지 연인 들의 뒷 이야기이다. 어렵게 몇 시간을 기다려 만난 이길복 감독에게 정작 물어 본 것은 김수현과 전지현 중 누가 더 얼굴이 크냐 정도 였다. 
두번 째 채널 '숨은 사람'은 이른바 요즘 세간에 인기를 끌고 있는 '뒷다마'성 인터뷰이다. 그런 면에서 김구라만큼 적역이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첫 번째 채널이 데이트 폭력을 다루며 방송의 공공성 영역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 반면, 두번 째 채널로 넘어가면서 지극히 사적인, 누군가의 뒷다마를 하는 방식은, <매직 아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혼돈을 불러온다. 더구나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이 중요시 되는 세상에, 인터넷 게시판에서나 갑론을박할 박지성 김민지 연인의 속사정이나, 김수현 전지현의 얼굴 크기를 새 예능의 내용으로 삼기엔 시대착오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첫 번째 채널과 두 번째 채널의 병존은, 그 예전 <황금 어장> 시절, 강호동이 진행하는 1인 인터뷰와 그 후반에 얹혀지던 <라디오 스타>의 공존이 떠올려 진다. 그런데, <황금 어장>의 한 지붕 두 가족은, 이른바 보다 공식적인 1인 인터뷰와, B급의 정서를 표방한 다인 인터뷰라는 공통점과 그 공통점에 기반한 차별성을 가진 하나의 범주 안에 묶을 만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매직 아이>의 두 채널은, 숨겨진 1 mm라고 하는데 그 공통의 질이 선뜻 전달되지 않는다. 두 채널의 진행 방식 자체가 너무나 이질적이다 보니, 전혀 다른 프로그램 두 개를 그저 붙여놓은 느낌이다. 마치 둘 중 하나 걸려라 하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첫 번째 채널의 mc들을 활용하면서, <마녀 사냥>처럼 포맷을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갔으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 치더라도, 첫 회 방영된 첫번 째 채널 사적 관계조차 사회적 시야를 가지고 접근한 데이트 폭력과 두번 째 채널 연인의 뒷다마나 연예인의 신체 조건 뒤지기는 함께 하기엔 너무 먼 주제들이다. 어색한 한 지붕 두 가족,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14. 05:39

개인적으로 <힐링 캠프>가 볼만하다 느껴질 때는, 그 어떤 명사가 나와 멋진 말을 들려줄 때보다, 오히려  오랜 무명, 혹은 오랜 고생 끝에 뒤늦게 빛을 본 사람들이 나올 때이다. 그건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을 하건, '자뻑'을 하건, 그것들이, 우리들이 이미 그의 시간 속에 목격한 바 허투루 얻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5월 12일의 <힐링 캠프>도 그랬다. 21년만에 떴다는 장현성의 출연, 그가 한껏 들떠서 자신이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는 자체가 뜬 게 아니냐는 반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보기 좋았다. 


mc 이경규는 장현성을 두고 번번히 21년 만에 떴다고 말한다. <쓰리데이즈>에서 반전의 존재감을 보인 함봉수 비서실장 역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고, 또 그런 연기만큼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준우, 준서 아빠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 자신에 대해 장현성 자신도 가득찬 쥬스 병을 들고, 차곡차곡 쌓여 아슬아슬하게 떴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그런 표현은 옳지 않다. 장현성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 말한다. 
'드라마, 영화, 연극 등 장르도 중요하지 않고 주연과 조연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맡은 역할과 연기에 대한 만족감으로 산다. 더 빛나는 역할, 더 많은 부에 대한 욕심보다 현재 위치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나보다 훨씬 더 잘 생기고 더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더 못 한 환경에서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야지 개런티가 얼마인지, 주연인지 조연인지 그런 건 쓸 데 없는 생각이다. 그런 욕심을 부리느라 내가 할 장면을 제대로 못 해 내는 게 가장 어리석다'고.
그런 그의 정의가 빈말이 아니듯, 그는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드라마에서, 빛나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꼭 필요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내의 자격>에서 아내의 외도를 필연적으로 만든 파렴치한 남편이었으며, <하얀 거탑>에서 주연과 힘겨루기를 하는 변호사였고, 영화 <화이>에서 괴물이 된 아빠들 중 하나였으며,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을 저격한 경호실장이었다. 종횡무진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묵묵의 그의 존재감을 쌓아왔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그의 신념과, 그런 신념을 뒷받침한 그의 성실한 연기는, 오히려 그래서, <힐링 캠프>에서 떴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그를 역설적으로 빛나게 한다. 지나온 시간 동안 쌓인그의 연기와, 앞으로 해나갈 그의 연기가, 지금의 떳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존재 덕분에. 

(사진; tv리포트)

21년의 연기 내공 덕분에, 그가 자신의 친구들을 대놓고, '그 정도 뜰 수준은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이 그의 오만이 아니라, 장현성만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장현성만 하니까 그런 친구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그런 표현조차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예능과 최근 화제작이었던 드라마 덕분에, <힐링 캠프>를 통해 멋진 배우, 좋은 사람, 훌륭한 가장인 장현성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그 자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무조건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배우 장현성 이면의 예술가 장현성을 엿볼 기회를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시나리오를 썼던 내공으로, 이경규가 제시한 봄이란 주제를 가지고, 찬란한 계절과, 그 계절에 맞는 꿈과,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mc들의 면면까지 담아내는 내공의 시작을 선보인 장현성은 우리가 예능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장현성의 또 다른 '멋짐'이다. 

뿐만 아니라, 21년을 올곧게 배우의 길을 살아내기 위해 겪은 가난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겪은 고생조차도, 흥겹게 풀어내는 그의 내공이 오히려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시간에 대한 유쾌한 정의 후에 아버지에 대한 회고에서 내보인 그의 눈물이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죽어서도 꿈을 향해 하늘로 날아가는 노고지리와, 남겨진 아들들에게 멋진 아빠, 멋진 남자로 남고 싶은 그의 소박한 소망이,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고, 이미 그가 충분히 멋진 아빠, 훌륭한 배우,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에 보는 사람의 얼굴에 공감의 미소가 지어진다.. 21년을 한 길로 달려와, 그 성과로 <힐링 캠프>를 출연하게 된 걸 천진난만하게 기뻐하고, 자신의 지난 날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장현성에게서 소박함 속에 옹이진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by meditator 2014. 5. 13. 06:05

5월 11일 밤 11시 15분, 평소 같으면 <sbs스페셜>을 해야 할 시간, 대신 신선한 교양 프로그램이 찾아 들었다. <백투더 마이페이스> 말 그대로, 성형중독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복원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고 검버섯이 생기는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또래 여성들을 만나면, 그 중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나타나는 주름과 검버섯, 혹은 기미를 없애는 시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 그 이야기들은 자기 주변의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그걸 이용한다고 한다. 칠십 먹은 어르신까지도, 그걸 하고 한결 만족하셨다나 뭐라나. 심지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고 나서 보기 좋으면 됐지, 굳이 거기에 자연스러움 어쩌고 가타부타 토를 달 필요가 뭐 있겠냐는게 세상의 추세다. 나이든 사람들이 이럴진대 하물며 젊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는 증거를 없애고자 주민등록 사진을 찍기 전에 리뉴얼을 하는게 대세란다. 엄마와 딸이 손잡고 성형외과를 출입하는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태다. 성형 수술 세계 1위, 혹은 대한민국 젊은 여성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성형 경험이 있다는 수치를 들 것도 없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들어 준 그 상태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게 참 멈추기가 힘들다. 불완전함이 인간의 특성이듯,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외모는, 끊임없이 '수정'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니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해 질 거 같아서, 그런 욕구들은 결국, 강남 어딘가를 걷다 보면, 얼굴이 똑같은 사람들을 빈번하게 마주치게 되는, '강남녀' 혹은 '성형 괴물'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쌍꺼풀에서 시작된 질주는, 앞트임, 뒤트임, 가슴, 윤곽, 전신 성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진; osen)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시작되고, 까페에 앉아있는 열 댓명의 여자들의 사진을 들고, mc인 박명수, 호란, 그리고 일반인들이 그 사람을 찾으러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진 속의 그녀를 찾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은 까페의 그녀들에게 혼란만 느낄 뿐이다. 적게는 서너 번에서 많게는 스무 번이 넘는 성형 경험을 가진 그녀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얼굴은 슬쩍 지나간 화면에서도 너무나 비슷했다. 스스로 '성형 괴물'이라고 하며 자조적으로 웃는다. 절대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거듭되는 성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합숙을 거쳐 원하는 사람에게 원래의 얼굴을 되찾아 주는 시도를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하고자 한다. 그 시도 자체로서 신선하다. 모든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갈 때, 그걸 멈추고, 자신이 가진 본래의 것의 소중함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그 시도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합숙에 들어간 네명의 여성,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또 한 명의 남자에게, 제작진은 섣부르게 복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복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결론이 내려진 사람을 미리 발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계속된 성형에 이르게 된 과정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얼굴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자존감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맨 얼굴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여자, 거울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는 여자, 하루 종일 어디를 더 고치면 이뻐질 것인가를 연구하는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지우고 싶은 남자.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한번의 시술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밝혀간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상황극도,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설문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속 이야기도 해본다. 그 과정을 통해 다섯 명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또 한번의 성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이 결정한다. 과거 자신의 얼굴로 돌아갈 것을. 복원에 참여하지 않은 세 명도 더 이상 성형을 하지 않고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백투더 마이페이스>는 예능이 아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예능이면 어떻고, 교양이면 어떠랴. 성형 중독이란 단어가 일상화된 대한민국은, 결국 성장과 발전의 논리를 내재화한 사람들이, 그걸 외형적으로라도 따라가기 위한 안간힘의 결과물이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가제에 불과하고,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을 고쳐서라도 이 경쟁 사회의 속도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진짜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첫 회라서 만듬새는 거칠었지만, 진짜 필요한 것이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라는 방향 제시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들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가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었을 때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가 여부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자리잡아, 성형으로 찌든 세상에 정말 한 줄기 희망과 대안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복원된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나았다. 



by meditator 2014. 5. 12. 06:24

tvn의 드라마 <갑동이>는 일탄시 연쇄 살인을 다룬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 속 일탄은 <살인의 추억>처럼, 화성 연쇄 살인이 일어난 화성을 그 모티브로 삼고 있다. 현실에서 화성 연쇄 살인범은 결국 잡히지 못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진 수사 현실의 한계가 눈 앞에 범인을 두고도 결국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의 헤드 카피는 '미치도록 잡고 싶다'이다. 
그렇다면 2014년의 <갑동이>는 어떨까? 드라마 속 2014년의 일탄, 과거의 연쇄 살인을 모방한 범죄자가 그때와 똑같은 살인은 이제 5차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 속의 범인은 잡힐 깜냥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나, 이때나, '미치도록' 잡고 싶을 뿐이지, 잡을 능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살인의 추억>속 사건이 일어난 상황은, 80년대 가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빈번하게 바뀌는 책임자들, 그때마다 새로이 꾸려지는 수사반은 일관성있는 수사를 할 수 없고,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만만한 사람을 데려다가 강압적 수사를 하게 되는 상황, 과학적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든 관성에 쪄든 수사 현실 등이 당시를 추억하는 내용들이다. 

(사진; 리뷰스타)

그렇다면 2014년의 상황은 좀 달라졌을까?
양철곤(성동일 분)으로 하여금 하무염(윤상현 분)에게 집착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DNA, 하지만 하무염의 DNA를 손에 넣었지만, 양철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과학 수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그가 그토록 신봉했던, 범인의 DNA를 경찰이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갑동이>는 그런 상황을 통해, 몇 십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수사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그렇다면 수사를 하는 사람들은 좀 달라졌을까?
그것도 마찬가지다. <살인의 추억>의 헤드 카피 '미치도록 잡고 싶다'에서 2014년의 수사진 역시 여전히 그 중 '미치도록'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양철곤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가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인범에 집착하고, 하무염은 눈이 까뒤집혀 가며 미쳐 날뛰지만, 정작 그들이 8회에 이르도록 <갑동이>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한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는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 캣이 류태오가 주인공인 양, 그들의 합동 작전으로 벌어지는 일탄에서의 연쇄 살인의 재연이 고스란히 벌어진다. 

'미치도록'이란 말에 방점이 찍혀 있는 양철곤과 하무염은 그저 자신의 미망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느라 사건에 제대로 접근조차 못한다. 양철곤은 혹시나 하무염의 아버지가 범인이었듯이, 하무염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미혹됨에, 하무염은 그저 범인을 잡고 싶다는 열망뿐으로, 정작 십 여년 세월 동안 그들이 갑동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그저 '사로잡힘' 그 자체 뿐이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카피 팻이 나타나 판을 치는데, 십 여년 세월 동안 오로지 갑동이에 매진했던 그들은 매번 카피캣의 방식에 온전히 당한다. 하다못해 시험을 재수만 해도 쉬운 내용을 줄줄 외는 게 인지상정인데, 십수년을 거기에 매달렸다는 그들이 기억하는 건, 단순 수사 내용을 넘지 못한다. 결코 글짜로 된 그 정황을 넘어서지 못하는 단세포적 반응만을 보인다. 양철곤의 포스와, 하무염의 분노가 무색하게. 

그래서 이즈음엔 <갑동이>란 드라마가 의심스러워 지기 시작한다. 
과연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회적은 물론 각자 개인이 쌓아놓은 자신의 미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제 의식이었다면, <갑동이>는 성공적이다. 수사반장과 형사라는 직업적 능력이 무색하게 자신의 집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양철곤과 하무염이란 캐릭터를 아주 실감나게 그려내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 캣이라는 범죄 자체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 보이기 위해, 그가 5차에 이르는 범죄 과정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을 소모시킨 것이라면? 심지어, 혹시나 작가나, 제작진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갑동이의 카피 캣 캐릭터에 매료된 것이라면? 이러다, 어이없이 마지막에 가서, 한번에 전세 역전 해놓고 양철곤과 하무염이 이겼어요 할 거라면? 그런데 8회에 이르면서 슬슬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사진; 리뷰스타)

십 수년을 매달린 사람들치고, 양철곤과 하무염은 도무지 수사 과장이나, 형사라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뿐더러, 그에 비해 갑동이나, 갑동이 카피캣 캐릭터는 너무 도드라져 우월하다. 이러다 보니, 정작 이 드라마가 그려내 보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과정이라기엔, 양철곤, 하무염의 캐릭터들이, 분위기만 그럴 듯하고, 무능력하니까.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우격다짐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도 사건의 해결을 위해 서태윤(김상경 분)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양철곤과 하무염은 어떤가. 그들이 손을 잡았다지만, 여전히 자신의 편집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건에 대해서는 지극히 감상적으로 대처할 뿐이다. 그런 것을 그리고 싶다고 하더라도, 8회에 이르기 까지 너무 일관되게, 두 사람의 캐릭터가 성장이 없다. 줄곧 갑동이와 갑동이 카피캣에서 농락당하고, 드라마는 류태오의 사이코패스적 캐릭터와, 그의 범행을 그려내는데 진력한다. 

최근 우리마라 드라마에 이른바 '사이코패스'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드라마들은 그들이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해, 혹은 그들의 사이코패스스러움을 공들여 설명하고자 한다. 심지어 그들이 사랑까지 하려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도, 사연이 있어도 그들은 범죄자일 뿐이다. 달라지지 않는다. 극의 균형추가 그쪽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8회에 이른 <갑동이>, 사이코패스 류태오를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11. 12:34

<명탐정 코난>은 아오야마 고쇼의 만화 원작으로, 1996년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방영중인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셜록 홈즈를 능가하는 추리력으로 여러 사건에서 큰 활약을 보인 고교생 탐정 신이치(우리나라 방영 작품에서는 남도일)이다. 하지만 신이치는 그가 쫓던 검은 조직의 마수에 걸려 이상한 약을 먹은 후 어린 아이로 변해 버린다. 그후 자신의 예전 모습을 숨긴 채 아버지가 탐정사무소를 하는 여자 친구네 집에 얹혀 살면서 여전히 탐정으로 예전 활약을 이어간다.


이상한 약을 먹고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로 변해버렸지만, <꽃할배 수사대>는 그와 정반대의 설정이 벌어진다. 
연고가 없는 교포 출신 사업가들의 실종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각 개성이 뚜렷한 다섯 명의 형사를 모아 특별 수사반을 구성한다. 이들은 실종된 사람 중 한 사람이 노인의 모습을 한 채 시체로 발견되고, 네 명의 형사들은  이 사건의 실마리가 된 공장을 찾아간다. 거기서 겨우 스물 다섯 살이라지만 외모는 노인이 분명한 사람들이 물 속에 갇혀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든 네 명의 형사, 단 한 명만을 제외한 채 모두 물 속에 갇힌 사람들처럼 노인으로 변하고 만다. 

약품 냄새가 진동함에도 불구하고 그 물이 어떤 물인지 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물 속으로 뛰어든 네 명의 형사들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 설정은 <꽃할배 수사대>에서 애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관건은 <명탐정 코난>에서 얼토당토치 않게 고등학생이 어린 아이로 되어가는 만화적 상황처럼, 그런 만화적 개연성만을 적절하게 만들어 주면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꽃할배 수사대>의 젊은 형사들이 노인으로 변화되는 상황은, 만화적이지만 그럴 듯하다. 

애초에 <꽃할배 수사대>는 세대간 공감을 모토로 내건다.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를 혐오하고, 나이든 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요즘 세대를 전제로 내걸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1회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한번 본 것을 다 기억하는 아이큐 150 창창한 나이 스물 아홉 엘리트 형사 이준혁(최진혁 분)은 인질로 잡혀있는 노인을 두고 대놓고 잉여 세대니, 노인 한 사람이 없어지면 자신들의 복지 부담이 준다느니 라는 표현을 쏟아 붓는다. 물론 인질를 구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지만, 나이든 부모님들을 그저 '걸림돌'이라고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그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아주 없는 생각은 아닌 듯하다. 

(사진; 마이데일리)

이준혁만이 아니다. 그의 동료 형사들은 '젊음'이란 상징체처럼, 자신의 젊음과 능력만을 믿고 안하무인이거나, 그걸 외모로나, 체력적으로나 뽐내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발산하고 또 발산한다. 당연히 그렇게 자신들의 젊음 만을 믿는 그들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법을 알리 가 없다. 이준혁은 그의 라이벌 박정우(김희철 분)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다섯 명의 형사들은 그들 각자의 개성만큼 울뚝불뚝 서로 튕겨져 나가기에 바쁘다. 단지 그들이 함께 동의하는 것이 있다면, 특별수사팀의 팀장으로 부임한 '젊은 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꼴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나이만 많았지 능력은 없이 자신들의 성과를 빼돌릴 것같은 늙수그레한 김용철(김응수 분)를 배제시킬 때 뿐이다.  

그렇게 가장 멋지고, 활기찬 젊음만을 믿고 날뛰던 이십대 후반의 젊은 형사들이 하루 아침에 노인이 되었다. 훤칠하던 덩치는 쪼그라 들었고, 여심을 녹여버리던 외모는 쭈글쭈글해졌으며, 지칠줄 모르던 체력은 괄약근조차 통제가 안되는 노구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특별 수사반이라며 촉망받던 처지는 하루 아침에 실험 대상으로 조사나 받아야 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꽃할배 수사대>는 이렇게 팔팔하던 젊은이들을 대번에 노인으로 만들면서, 세대의 벽을 건너 뛰어 버린다.  젊은이지만 몸은 나이들어 버렸다는 설정은,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한 방식이지만, '코믹'이라는 장르로 인해 굳이 거기에 토를 달게 되지 않는다. 하물며 애초에 목적이 노소의 공감이라는데야, 더더욱.  젊은 최진혁, 박민우, 박두식이, 이순재, 변희봉, 장강이 되는 건 어처구니 없지만, 세월 앞에 장사업다는 그 속담에 어쩐지 걸맞은 조합이었다. 

'환타지 코믹수사물'이라는 묘한 조합에 걸맞게, 1회의 설정은 신선하고, 할배들의 등장은 자연스러웠으며, 그들의 현실은 공감이 되었다. 세대간 공감을 위한 전제로는 적절했다. 이로써, tvn이 개척하는 장르적 실험 영역은 또 한번 확장된다. 몇 십년을 두고 어린 아이의 상태로 남은 <명탐정 코난>정도는 아니지만, <꽃보다 할배> 시즌에 이어, 섣부르게 <꽃할배 수사대> 시즌제를 기대해 볼 만큼, 젊은 정체성을 가진 그들이 나이든 몸을 가지고 벌이는 해프닝은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4. 5. 10.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