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밤 11시 15분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이 첫 방송을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의 피디 이지원은 이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 뉴질랜드, 캐리비안 편의 피디이다. 이지원 피디는 <정글의 법칙>을 연출했던 경험을 도시에 접목시킨다. 아예 제목부터, <정글의 법칙>이 오버랩되는 <도시의 법칙>은, 정글 대신 도시를 택한, 아니 '콘크리트 정글'에 던져진 연예인들의 생존기이다. 

성시경의 예능 첫 나레이션 도전기이기도 한 <도시의 법칙  in NEW YORK>은 나긋한 성시경의 목소리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하지만 달콤한 나레이션의 목소리와 달리, 전 세계 패션, 금융, 문화의 중심지 도시에 떨궈진 김성수, 이천희, 정경호, 문(로열 파이럿츠) 그리고 백진희의 뉴욕 도전기는 낯선 정글에 떨어진 병만족의 삶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도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철학적 화두를 내걸고 프롤로그를 시작했지만, 그 도시인을 설명하는 돈과 직업과, 안락한 삶의 조건이 박탈된 이방의 도시인들에게 이방의 도시란 낯선 정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처음 뉴욕을 방문하거나(문의 경우 오랫동안 미국에서 이민을 했던 미국시민권자이지만, 정작 뉴욕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머물기는 처음인 다섯 사람의 시작은 그들이 영화 등을 통해 접한 이른바 '뉴요커'의 멋들어진 삶을 연상하는 꿈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꿈이 깨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뉴욕을 상징하는 맨하탄의 문물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건너가면서, 마천루의 숲 뉴욕은 멀어져만 간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브루클린의 공장 지대와 같은 허름한 거리에 서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문틈이 뒤틀려 있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가구 하나없는 광활한 공간이 바로 그들의 뉴욕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정글 생존기 답게, 제작진은 출연진들의 지갑과 핸드폰 등을 탈탈 털어가 버리고, 이제부터 당신들의 뉴욕 모험기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한다. 

image
(사진; 스타 뉴스)

낯선 도시, 그리고 예상을 벗어난 지역에서 시작된 뉴욕 도전기에 다섯 명의 도전자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지는 것도 잠시, 발빠르게 도시 생존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청소를 시작으로. 

뉴욕에 도착한 후, 출연진 중 연장자인 김성수가 강호동이나 유재석은 안오냐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듯이, <도시의 법칙> 출연진은 예능에서는 익숙한 듯 낯선 면면들이다. 
케이블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등을 봐서, 예능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김성수는 출연자 중 가장 연장자로 익히 아는 후배들을 긴장시키지만, 비상 식량으로 '가래떡'을 준비하는 반전의 용의주도함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뉴욕에서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그의 실상은, 가장 연장자인 포지션에 반전의 묘미를 가져올 요소가 다분하다. 
이천희는 이미 <패밀리가 떳다> 시즌1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허당'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사람이다. 여전히 종종 몸개그를 보이지만, 이젠 아내와 딸을 가진 가장이 되어 돌아온 그는, 예전의 허당 천희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특히나, 목공예가로도 자타가 공인한 그의 숨겨진 면모는, 허름한 빈 건물만 덩그러니 던져진 뉴욕이라는 정글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케이블 캠핑 프로그램에서 이미 보여진 그의 여행 경력 역시, 백진희를 위해 텐트를 준비하는 것에서 부터, 예전의 '허당'과는 다른 '능력자'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제작진이 프롤로그에서 부터 '예능 블루칩'이라고 강조한 정경호는, 배우로서는 중견의 위치이지만, 예능에서는 신선한 캐릭터이다. 꽃미남 배우임에도 첫 방송부터 깎지 않은 수염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정색을 하며 제작진과 딜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멋진 배우 정경호를 넘어선 숨겨진 예능 블루칩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세 자매 중 맏딸이라는 백진희 역시 이쁜 여배우라는 수식어를 지워 버린 채, 네 명의 남자와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전혀 꺼리낌이 없다. 허름한 건물도, 지갑을 비워버리는 상황에서도, 언제 우리가 이런 걸 경험해 보냐며, 네 남자보다 호탕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남자들과 함께 하는 생존기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예능 여성 캐릭터로서의 바람직한 출발을 보여준다. 
애초에 프롤로그에서부터 '넌 누구니?'라고 시작한 문은, 이제 데뷔한 지 2개월이라는 일천한 연예계 경험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자라온 그의 경험이, 다른 네 사람과 동등한 , 아니 오히려 우월한 입지를 제공한다. 오래지 않은 연예계 경험이, 그리고 오랜 미국 생활이, 자유로운 당당한 캐릭터로 문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들의 조력자로서 등장할 미국이민자 출신인 이미 예능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했던 존박과 언제나 솔직하고 발랄한 에일리의 합류 역시 다섯 사람과의 또 다른 시너지로 기대된다. 제작진이 가장 경제적인 출연진이라는 평가 답게, 익숙한 듯 낯선 다섯 사람의 조합이 적어도 첫 방송에서 거슬리거나, 되바라지지 않은 채, 기대감을 부여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출발인 셈이다.

아예 대놓고, <정글의 법칙>의 도시 버전이라며 시작한 <도시의 법칙 IN NEW YORK>는 이방인 뉴욕이라는 도시에선, 정글에 던져진 병만 족과 다르지 않은 신세인 다섯 사람의 도전기로써 첫 방 후 , 적어도 다음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순탄한 출발이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시작된 '여행'을 화두로 내건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낯선 이방의 문물을 주마간산격으로 스치듯 여행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현지에 머무르며, 생존기를 써내려가는 <도시의 법칙>은 적어도 첫 방만으로는 차별성을 충분히 갖춘 듯이 보인다. 더구나, '도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철학적 화두에 걸맞게,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다섯 사람의 생존기를 통해, 제작진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요리해 가는가에 따라, 도시에서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첫 시즌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이라는 곳에서의 삶의 필요충분 조건을 반추해 볼 여지도 담긴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부디 프롤로그에서 야심차게 내보인 목적을 잘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12. 05:58

6월 10일 밤 10시 50분에 방영된 다큐 공감은,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여성의 현주소를 다룬다.


왁자지껄한 화장품 시연장, 그곳에 모여든 중국 등 외국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의 화장 비법에 관심을 쏟고, 그 비결이 되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연다. 최근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그 주인공들의 패션, 화장 등 스타일 비법 등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파리지엔느'나 '뉴요커'처럼 '서울여성'도 이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상품이 되어 세계 시장에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에서 문화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한 이른바 '서울 여성'상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큐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상으로 자리매김한 몇몇 유명 인사들을 찾아나선다. 

우선 오랫동안 슈트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최근 국립 발레단 단장에 취임한 강수진, 그녀는 말한다. 어제의 내가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의 경쟁 상대라고. 발표회 날 단 하루를 위해, 345일 연습을 한다는 그녀는, 바로 그 '자기 계발'이라는 말로 대신할 345일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여성이다. 

또 다른 여성상으로 등장한 이는,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회 주최자가 된 손미나이다. 그녀는 앞날이 보장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내던진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이 늘 장밋빛 일 수 없으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런다는 자신의 긍정 마인드가 자기 삶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외국 유학 경험이 없이도 영어 동아리 경험 만으로 CNN기자가 되고,  아이랑 TV 사장까지 역임한 손지애에게 일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 셋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라는 위치를 놓지 않은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세 아이들의 모유 수유를 성공했던 것처럼, 늘 자기 삶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성공한 엄마를 놓지 않았다.

디자이너 최지형 역시 미혼의 그녀도 멋진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한 이후의 자신은 일과 삶의 균형을 완성한 느낌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거침없는 자유로움의 뉴요커나, 쿨한 멋스러움을 내세운 파리지엔느와 달리,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이 내세운 서울 여성상은 진취적이며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현명한 여성상을 의미한다. 
진취적이면서 열정적인 여성상은 이른바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그려내는 슈퍼 우먼으로 연상되는 바로 그 모습이다. 그 어떤 장애물도 꺼리낄 것없이,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향해 도전하는 여성,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서울 여성'은 거기에 또 하나의 요소를 더한다. 역사적 인물로서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에 까지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며, 전통적 여성들이 가진 현명한 미덕을 서울 여성의 장점으로 덧붙인다. 즉, 손지애처럼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여전히 엄마로서의 역할을 놓지 않는 모습이라던가, 최지형처럼 결혼을 인생의 완성이라 여기는 가치관을, 한국 여성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조화을 추구하는 '서울 여성'의 스타일은 그들이 추구하는 외향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가장 세련된 화장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화장을 한 듯 보이기보다, 자연스러운 본연의 매력처럼 드러나기를 원하는 '서울 여성' 스타일이, 바로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면서도, 현명한 서울 여성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다큐는 정리한다.

<글로벌 리포트-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을 통해 본 '서울 여성'은 한류 붐을 타고 인기를 끄는 드라마 등을 통해 인식의 저변을 넓히고, 거기에 활발하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인사들의 성취를 더해, 하나의 문화적 캐리터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의 이면은 존재한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면은, 자본주의 사회 속 경쟁에서 유리 천장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한 슈퍼 우먼의 생존 본능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 또한 '서울 여성'의 또 다른 매력적 요소로 등장한 '현명한 지혜'란 여전히 전근대적인 가족 제도의 틀이 압박하고 있는 슈퍼 우먼의 또 다른 그늘로써 풀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을 통해 문화적 상징성을 띤 '서울 여성'은 충분히 그러할 만 하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에 있어서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음을 다큐도 숨기지는 못한다. 

대기업의 입사 시헙에 면접관으로 자주 참여했다는 이상봉 디자이너는, 입사 지원자들의 얼굴이 서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해져가는 상황을 애석해 하면서, 성형이 일반화되는 우리의 실정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발빠르지만, '획일화'의 함정이 있음을 짚고 넘어간다. 

<글로벌 리포트- 파리, 뉴욕, 그리고 서울>은 자랑스레 서울 여성이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상품으로서 서울 여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다큐의 도입부, 서울 거리에서 만난 우리의 젊은 여성들에게서, 그렇게 세계가 인정한 서울 여성에 대한 자부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 여성하면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을 때, 화면에 비춰진 대부분의 여성들은, 된장녀, 성형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그런 단어에 부합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문화적 상품이 되고, 세계적 트렌드가 되어간다는 '서울 여성',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형 중독에, 된장녀라는 부끄러운 소비 사회의 풍조가 숨겨져 있다. '소퍼 홀릭'이라는 이면을 가진 '뉴요커'처럼 말이다. 남들에게는 자랑스레 팔 수 있는 상품 가치를 지닌 여성사이라도,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진 여성상이 될 수 없다면 생각해 볼 여지을 남긴다. 문화적 상품으로서의 '서울 여성'과, 현실의 '서울 여성' 사이의 괴리는 우리 시대의 남겨진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4. 6. 11. 17:30

<유나의 거리> 5회 거리를 걷던 창만(이희준 분)은 유나(김옥빈 분)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그도 잠깐 그는 유나가 소매치기 하는 걸 목격하고 만다. 허겁지겁 유나를 쫓아간 창만, 겨우 유나를 따라 잡아 지갑을 돌려주라고 닥달하지만 그런 창만에게 유나는 냉담하고, 뒤쫓아 온 유나의 패거리들 덕분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장면, <유나의 거리> 두 번 째 ost, 윈터 플레이의 <함정>이 흘러 나온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함정

네가 나를 케어한다는 말은 함정

 누가 누굴 욕해 나를 찾자 가만보면 똑같은게 그냥 전부 웃기는게 함정

 (중략)

그냥 그렇게 가자

제발 날 좀 버려둬

세상 가는 길이 다 내가 가는 길이야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다 함정

 

네 생각이 맞을거라 믿는건 함정

참는 자는 복이온다 생각하면 함정

그런 착해빠진 생각들로 살다보면 당하고 또 당하는게 세상이다 함정




그리고 <유나의 거리>5,6회를 설명하는데 이  윈터 플라이의 <함정>만큼 적절한 노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기 시작하는 <유나의 거리>,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인생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유나는 아버지(임현식 분)가 죽어가면서도 손가락을 자르며 소매치기의 대를 끊어보려 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원이 무색하게 이젠 아예 작정하고 남수(강신효 분) 패거리와 함께 소매치기 사무실을 열고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며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그런 유나의 행동이 어떤 야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유나는 늘 혼자 일하는 게 편했지만, 우연히 얽혀들게 된 남수 패거리의 딱한 사정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거리의 하이에나라도 조금 덜 외로운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하지한 이렇게 삶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유나만이 아니다. 
유나와 함께 사는 미선은 이미 간통죄로 감옥을 한번 들어간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유부남의 등을 쳐먹으며 사는 생활을 자신의 주업으로 한다. 돈이라면 사랑 없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선은 헤어지는 조건에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는 카페 사장 부인의 호소에,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 아파트 한 채는 챙겨야 겠다고 속내를 밝힌다. 하지만 사랑없이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미선은 정작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사랑없이 웃음을 파는 남자들을 만나러 간다.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도, 미선도 드라마 속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삶 중 하나의 유형을 사는 사람일 뿐이다. 소매치기를 해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가르친 남수처럼, 비록 불법이지만 소매치기도 밑바닥 사람들이 사는 인생살이의 한 방법이다. <유나의 거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유나가 이제는 손을 턴 선배 소매치기 언니를 양순(오나라 분)을 만나, 진지하게 자신이 더 나쁜가, 미선이 더 나쁜가를 물어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유나는 자신은 그저 남의 돈을 잠깐 터는 것에 불과하지만, 미선은 남의 마음을 터는 것이기에 더 나쁘다면서은연중에 소매치기를 하는 자신의 세계관을 토로한다. 물론 미선이 바라보는 유나는 정반대겠다. 

할아버지 조폭 도끼(정종준 분)가 후배 조폭 똘마니들을 앞에 놓고 장황하게 자신이 몸담아 왔던 주먹의 역사를 설명하고, 한만복(이문식 분)이 말끝마다 주먹으로서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유나의 거리> 속 인물들은 꼴에 그것이 불법이든 어떻든 자신의 세계에 대한 자부심, 아니 자존심을 가지고 산다. 
바로 그것을, 윈터 플라이의 입을 빌어, 말한다. 삶의 함정이라고.

왜 그들은 그런 삶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걸까?
유나가 좋아진 창만은 같은 처지인 양숙과 결혼한 봉달호(안내상 분)를 찾아간다. 소매치기를 하던 여자의 손을 씻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 창만에게 봉반장은 회의적인 답을 전한다. 유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뛰어나고, 본인이 그걸 잘 알기에 아마도 손을 씻기 어려울 거라며.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게 소매치기 밖에 없는 이십대 후반의 유나가, 감방을 나온지 얼마 안된 유나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기 것이라며 내세울 것이 어쩌면 소매치기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손을 씻은 양순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경찰을 그만두고 노래방을 차린 남편을 위해 틈만 나면 노래방 전단지를 돌리고, 겨우 온 손님을 위해 도우미를 자청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녀가, 도우미로 들어가 부르는 '에레나의 노래'에서는 묘하게 양순의 처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유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유나가 소개한 유나의 이웃에 싼 값으로 방을 얻어 들어오게 된 창만, 싼게 비지떡이라도 방을 헐값에 주었다는 핑계로, 창민은 만복의 요구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망치를 손봐주러 가는 도끼의 똘마니 역에, 결국 만복이 하는 콜라텍의 기도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몇번 이리저리 만복의 요구에 따라 끌려다니던 창만은 단호하게 그 세계에서 발을 뺀다. 그 집에서 쫓겨날 수도, 그래서 더 이상 유나 가까이에 지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도, 창만은 그것을 거부한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다는, 하지만 대학생인 주인집 딸보다도 아는게 더 많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몇 달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폐업한 식당을 지키던, 하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다 생각하니 단칼에 주먹 세계와 발을 끊는 청년 창만은, 근자에 보기 드문 드라마 남자 주인공 캐릭터이다. 허긴, 소매치기 여주 주인공 역시 드물긴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창만의 선택이 <유나의 거리>에서 환영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어떤 이해 관계에 얽힌 적이 없는 창만임에도, 그가 자신이 하는 콜라텍을 그만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복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몇 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때 창만과 함께 '노가다'를 뛰던, 그래서 창만이 만복의 수하로 들어가자 그건 너의 길이 아니라고 충고를 하던 칠복(김영웅 분)은 막상 자신이 일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꼬박꼬박 나오는 콜라텍을 그만 둔 창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왜곡된 삶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창만을 기다리는 건, 정작 사랑의 함정이다. 새로 돈을 들여 방을 재계약하고, 봉반방과 특별 수사반을 꾸려 유나의 소매치기를 감시하겠다 결정한 창만의 선택은, 삶의 함정은 피했으되, 사랑의 함정으로 한발 더 깊숙이 빠진 셈이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일감을 얻지 못한 칠복은 그만 그럴 땐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어쩌지 못해, 살던 가락이 그거라서, 혹은 죽고싶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자신의 삶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것, 그것이 <유나의 거리> 에서 사는 밑바닥 사람들의 모습이다. 


by meditator 2014. 6. 11. 11:11

6월 13일 오전5시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0일간의 월드컵 대장정이 시작된다. 그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16강전을 앞두고, 18일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첫 본선 경기를 치룰 예정이다. 


그렇게 전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월드컵을 앞두고 각 방송사는 월드컵 체제를 갖추고, 아침부터 뉴스시간마다 브라질 월드컵 특집이라며 월드컵 소식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뉴스 뿐이 아니다. 각 방송사 별로, mbc는 2002년 월드컵 영웅 송종국, 안정환과 인기 mc 김성주를, kbs는 인기 아나운서 조우종과 역시나 2002년의 영웅 이영표, 그리고 sbs는 지금까지 sbs 해설을 이끌었던 차범근과 그의 아들 차두리에, 전국민적 축구 영웅 박지성을 영입하고,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배성재 아나운서와 조화를 맞춰 막강 해설 라인을 꾸려낸다. 라인만이 아니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짬짬이 자사의 해설 라인을 홍보하느라 바쁘다. 

(사진; 폴리 뉴스)

비단 뉴스나 중계만이 아니다. kbs1는 월드컵 참여 국가들과 함께 만든 <컬러스 오브 풋볼>이라는 다큐를 각 나라별로 매일 매일 본방, 혹은 재방으로 방영한다.  수요일 밤에서는 kbs2를 통해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를 방영할 예정이다. sbs는 해설을 맡은 전설의 축구 영웅 차범근의 역사와 오늘을 되짚어 보는 다큐 <두리 아빠 축구 바보, 그리고 전설>을 8일 밤 방영하였다. mbc도 밀리지 않는다. 9일 밤 <23인의 전사, 하나의 꿈>을 통해 이번 월드컵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고, 12일에는 월드컵 스페셜 <Again 2002>를 방영할 예정이다. 

예능도 발빠르게 움직인다.   sbs 힐링 캠프는 <힐링 캠프 in 브라질> 특집을 마련하여 안재욱, 김민종, 김보성과 함께, 2002년 월드컵 송을 불렀던 조수미를 초빙하여, 함께 응원을 하기로 한다. 월, 화 요일 연이어 방영되는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월드컵 특집으로 첫 여행지를 브라질로 잡아 브라질의 명소와 풍물을 즐기고자 한다. kbs도 뒤지지 않는다. 국가적 체육 행사에서는 언제나 앞서 나가던 <우리 동네 예체능>이 이번에도 브라질 특집으로 현지로 달린다. 

이렇게 뉴스, 다큐, 예능 할 것도 없이 공중파에서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각종 특집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기에 바쁘다.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전세계적인 축제이니 그럴 만도 하고, 또 언제나 축제라면 그 누구에게 뒤질세랴 제일 앞장서 나가는 방송사들이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쩐지 올해의 월드컵 특집 분위기는, 태풍이 몰려와 사람들이 철수한 해수욕장에 남아 호객 행위를 하는 장사꾼을 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지방 선거 기간에도 선거 운동을 자중하자 할 만큼, 세월호의 여파가 아직 우리 사회를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다. 실종자 수색은 하루 걸러 중단되어, 남아있는 가족들을 애태우고 있으며, 다른 가족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에 나선 상황이고, 이제 막 선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사건의 궁극적 책임자 유병언은 여전히 안잡히는 것인지, 잡지 않는 것인지 숨바꼭질 중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과연 월드컵 하면 이젠 우리나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거리 응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조차 사회적으로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다. 

그런 분위기에 일조라도 하듯, 출전 선수 명단이 확정될 때 부터 불안감을 심어주던 월드컵 대표팀은 5월 28일 튀니지 평가전 0-1 패배에 이어,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무려 0-4로 패배을 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었다. 애초에 월드컵이라는 축제 분위기의 핵심이, 우리 선수단의 선전이건대, 이번 월드컵은 애초에 그런 기대의 싹을 초장부터 잘라버리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 선수단의 선전과 상관없이 전세계적 축제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은 무람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치 이제 막 49제를 마쳤을까, 마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다급하게, 특집을 마련하며 축제를 강요하는 듯한 방송사의 편성 방식은 어딘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서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라는 듯이 등떠미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 반대 시위(EPA=연합뉴스DB)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태도도 그렇다. 마치 88년 올림픽 당시,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의 상인들을 싹 밀어버리던 그 습관처럼,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sns원정대 일단 띄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질 현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최근 빈민 단체가 월드컵 기간 동안 시위를 중단하게다는 발표를 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의 이익과 상관없이 기업과 국제 축구 연맹만의 행사가 되고 있는 월드컵 반대 시위가 연일 브라질을 달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방송사들은 그런 브라질의 현황을 보도한 적은 없다. 거리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유족들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것처럼. 

잊지 않겠다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하던 사람들이, 방송사의 사장을 자르고 이제 부터 시작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예전에 하던 식으로 부나방처럼 축제 분위기를 향해 달려든다. 잊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지는 세상에, 앞장서 얼른 잊으라 독촉하는 식이다. 그러곤 또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절실하게 반성하는 척만 하려는가. 여전히 jtbc뉴스의 오프닝 멘트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몇일 째입니다' 로 시작되고 있다. 아직 우리는 팡파레를 신나게 울릴 때가 아니다. 


by meditator 2014. 6. 10. 17:57

쌍방향 다채널의 sns 시대에 일방 통행 고정된 채널을 가진 방송에게 언제나 sns의 바다는 자신이 넘어가야 할 파고 처럼 보이나보다. 잊을만하면, sns를 기반으로 한 예능이 출사표를 던진다. 6월 9일 8시 50분 sbs를 통해 방영된 <SNS 원정대 일단 띄워>가 바로 또 하나의 sns 예능이다. 


야심차게 시도된 sns와 결합된 예능이 몇몇 있었다. <화성이 바이러스>를 함께 했던 이경규와 김구라, 그리고 김성주가 올 2월 역시나 같은 방송사 tvn을 통해 선보인 <공유 tv 좋아요>가 그 선두 주자다. 제목에서부터도 sns의 '좋아요' 컨셉을 따온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각 패널들이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말이 sns지, 마치 <화성인 바이러스>의 속편같았던 프로그램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소화하는데, 20세기 사람들이 21세기의 문물을 바라보는 듯했으며, 정작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는 내용을 적절하게 시의적으로 tv 속으로 끌어들여 공감을 얻고,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얼마전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가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매직 아이>의 경우도, sns는 아니더라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를 활용한 경우다. 정규 방송에서 다 보여지지 않은 토크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들이 만든 팟캐스트를 통해 방영하고, 실시간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물론 이 두 프로그램이 아예 작정하고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체 틀을 sns나 인터넷의 기반을 활용하고자 한 것이고, 굳이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내건 두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요즘 방송에서, 자신들이 한 방송 내용을 sns에 올려 그 반응을 실시간으로 검증받고자 하는 경우는 이제 더 이상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공유 tv 좋아요>나, <매직 아이>에서도 보여지듯이, 요즘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도는 있지만, 정작 그것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지점에서 지금까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왔다. 즉, 활용은 해야겠으되, 쌍 방향과 일방 통행이라는 매체의 성격이 다른 sns 등과 tv라는 매체가 어떻게 만나져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피상적이거나, 형식적인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일단띄워
(기사; tv데일리)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겠지만, <SNS 원정대 일단 띄워>는 그 형식적 적용의 틀에서 진일보한 성과를 보인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일단 띄워'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여행을 하는 이 프로그램이 가이드는 다름 아닌 sns이다. 출연자들이 각자 자신의 sns에 여행에 필요한 숙소, 가볼만한 여행지, 먹거리에 대한 질문을 띄우고, 거기에서 나온 팔로어들의 답을 따라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브라질을 여행하기 위해 모인 오만석, 김민준, 정진운, 서현진, 오상진, 박규리는, 브라질에 떠나기에 앞서 그곳에서 자신들이 머무를 숙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며 그것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sns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통보를 듣는다. 허겁지겁 각자의 sns를 통해 숙소를 수소문하던 출연진, 뜻밖에도 선뜻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제공하겠다는 브라질 사람을 조우(?)한다. 
하지만 현재 브라질 상황이 함부로 나돌아 다니는게 위험할 만큼의 상황인데다가, 출연진들이 가는 그곳이 바로 위험 지역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출연진들은 공항을 나서서 아파트를 제공한 현지인을 만나기까지는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정작 만난 당사자 기레미씨가 한국에 다섯 번이나 머물렀던 '친한파' 브라질인으로 한국어에 유창하며, 그가 내어준 아파트가 생각 외로 넓고 편안하자, 출연진들은 미리 제작진이 준비한 것이 아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파트만이 아니다. 난생처음 가본 브라질에서 출연진들을 인도한 것은 정말 sns였다. 브라질의 전통 시장이며, 그곳에서 맛볼 과일이며 음식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준 것도, 통역과 가이드를 해줄 사람을 구해준 것도 바로 sns였다. 또한 출연진 중 k팝스타인 정진운과 박규리는 가는 곳마다, 그들이 이곳에 와있다는 소식을 들은 현지 팬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 무모해 보였던 sns를 기반으로 한 여행은, sns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유영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출연진들은 난생 처음 가본 나라에서, 단지 sns를 통해 만난 사람의 아파트에 머물고, 그곳을 통해 소개받은 통역과 가이드의 도움을 받고, sns를 통해 알게 된 곳을 방문하고, 먹거리를 찾아 먹는다. 무모한 시도가, 그 어떤 현지 가이드나, 소개서보다도 알찬 여행의 가이드로 변모한 것이다.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제작진과 미지의 나라에 긴장하던 출연진들은 현지에서 그들을 반겨주는 팬들을 비롯하여, 마치 요술 방망이처럼 원하는 것을 다 알려주는 sns에 점차 감동하며 여행의 묘미를 즐기기 시작한다. 

<sns원정대 일단 띄워>는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여행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인터넷 상의 내용을 소개한다던가, 자신의 영역을 인터넷과 나눈다는 형식적 연장이 아닌, 프로그램을 sns의 바다에 띄우고, 적어도 첫 회로 보자면, sns는 <sns원정대 일단 띄워>를 구명하는데 성공적인 듯 보인다. 가이드나, 소개서의 도움을 최소화한 채 sns의 지침만으로 가능한 여행, 21세기에만 가능한 신기한 여행이다. 


by meditator 2014. 6. 10. 10:22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다큐3일>이 벌써 300회 하고도 50회를 넘겼다. 

우리 이웃의 삶에 온전히 3일, 72시간을 투여해, 그 삶의 속속들이 알곡을 전하고자 했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꼭 <다큐 3일>에게 개근상의 기쁨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생로병사'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듯이, 처음 이웃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었던 3일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뻔하거나, 늘 그런 이야기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역시나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 방영된 경기도 광명 시장을 다룬 <다큐 3일>은 그렇게 권태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신선한 모색이라 보여진다. 
그간 <다큐 3일>은 무수한 시장을 찾아다녔다. 서울의 재래 시장은 물론, 지방의 이름난 5일장,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까지, 전국의 모든 시장을 다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300여회가 넘은 동안 <다큐 3일>의 카메라가 담은 주제중 시장이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의 광명 시장은 그렇게 그저 그런 시장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또 하나의 시장일 수도 있는 광명 시장을 <다큐 3일>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들어간다. 이름하여, 천원의 행복!

카메라가 훑고 들어가는 광명 시장의 주변, 시장 옆에 커다란 백화점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광명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재래 시장의 상권을 파고든 거대한 자본의 마트와 백화점아닌가, 지형적으로 본 광명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 건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광명 시장은 활기가 넘쳐 흐른다. 대략 하루에 3만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 3일>의 카메라는 그 비법을 '천원의 행복'이라 이름 붙인다. 즉, 광명 시장의 모든 것들은 싸도 너무 쌌다. 

하나에 오백원, 두 개에 천 원하는 떡에, 세 개 골라 오천원인 반찬, 세 마리에 오천원인 생선, 거기에 거의 천원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비닐에 그득 담긴 채소며 과일들. 
시장에 온 사람들은 말한다. 광명 시장을 떠나 거리에 나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먹을 수 없는 천원으로 광명 시장에서는 배를 불릴 수 있다고. 

물론 '천원의 행복'이 넉넉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몇 년 째 값을 올리지 않은 오뎅 장수 아저씨는 자꾸 재료비가 올라 고민이시란다. 하지만, 요즘처럼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사람대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대로, 저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찾아들 수 있는 이곳에서마저 값을 올릴 수가 없다고 없다고 말씀하신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봐준다고, 그저 조금 남기고 많이 팔려고 노력하신다는 오뎅 장수 아저씨의 말씀이, 곧 광명 시장 상인들의 '기업가 정신'이다. 


그렇다고 싼게 비지떡은 절대 아니다. 
싸게 판다고 해서, 나쁜 재료를 쓰는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말씀하시는 오뎅 장수 아주머니는, 바로 옆의 백화점보다 이곳의 오뎅이 더 맛있다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부심을 밝힌다. 
한 개 천원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사기 위해 차로 두 시간을 달려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러 찾아와 한번에 들기 힘들 정도로 몇 만원어치를 사가는 맛이 보증된 가게가 그곳에 있다. 
광명 시장이 생긴지 25년, 그곳 보다 더 오래 33년의 역사를 지닌 녹두전 집은, 한때 떡복이도 없는 시절에 이 집의 빈대떡을 먹기 위해 길거리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던 역사를 자랑한다. 
달랑 냉장고 하나, 3인분의 즉석 부대찌게를 단 돈 9000원에 파는 아저씨는, 이 장사로 IMF 때 진 빛을 다 갚았다로 자랑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물론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여전히 여느 시장을 다루었던 것처럼,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장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담아낸다. 광명 시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새벽 4시에 아직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시장 한 켠에서 떡집의 김이 솔솔 오르고, 그 다른 한 편에선, 하루 장사를 대비한 오뎅 반죽 기계가 돌아간다. 권투 도장을 하기 위해 짜장면 장사를 하는 아저씨는 권투로 다진 내공으로 쫄깃한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오체투지하듯 반죽을 하고 계신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시장에서 자라난 딸은 이제 다시 남편과 함께 야채 가게를 하고, 젊은 청년들은 이른 퇴근을 위해 내기를 하며 생선 머리를 잘라낸다.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잠시 잠깐 앉을 틈도 없이, 그런데도 붙어있는 살이 독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세 자매의 삶은 부모님께 마음껏 해드리고 싶은 것을 해드릴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제일 행복하다. 세상 그 어느 곳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필부의 삶이 여전히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늘 어딘가의 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같은 풍경들이지만, 그것들이 '천원의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나면서, 광명 시장은, 그저 여느 시장이 아니라, 바로 옆에 백화점이 있어도, 자신만의 생존력을 가진,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없는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부각된다. 굳이 백화점 등 거대 상권에 대비해 우리는 이렇게 경쟁력을 갖추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광명 시장은, 광명 시장으로 그 가치를 <다큐 3일>을 통해 증명한다. 돈 만원 한 장만 가지고도, 배터지게 먹고, 팔이 끊어지게 장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by meditator 2014. 6. 9. 05:59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자,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도전이 명나라에 다녀오는 사이 왕이된 이성계는 도읍을 옮기고자 했고, 대소 신료들은 그런 이성계에게 반발한다. 그런 신료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을 한 이성계, 그런 이성계 앞에 정도전이 돌아와 달랜다. 도읍을 옮기는 문제는 명나라에 맞서 나라힘을 키운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정도전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 이성계, 정도전에게 묻는다. 과연 조선의 왕은 무엇이냐고. 정도전은 답한다. 왕은 이해하고, 품고, 안는 것이라고. 그런 정도전의 답에 이성계는 씁쓸해 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왕이랑 다르다고. 자신이 왕이 되면, 신하들과 함께 많은 것을 이룰 줄 알았는데, 막상 왕이 되니 할 일이 없다고. 동상이몽이다. 

여진족과 힘을 합쳐 명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건의에 이성계는 군권을 정도전에게 쥐어준다. 마음껏 해보라고. 하지만 그렇게 군권마저 쥔 정도전에게,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이자, 차기 왕위에 마음을 둔 이방원은 탐탁지 않다. 그에게 정도전의 모습은 '전횡'으로 비취질뿐이다. 

43회를 마친 <정도전>이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의 갈등은, 조선 왕조 500년을 두고 내내 조선이란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왕권과 신권 헤게모니 싸움의 시작을 알린다. 

이미 <정도전>을 통해서 보여지듯이 조선이란 나라는 정도전의 나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나라는 정도전이란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다. '민본'을 내세웠던, 정도전과, 정도전과 뜻을 함께 했던 개혁적 신진 사대부들의 뜻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43회, 자신을 찾아온 아들에게 정도전은 '조선 경국대전'을 만들 뜻을 비춘다. 누구 한 사람 실권자의 의지가 아니라,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비되고, 돌아가는 나라로서의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정도전에게, 왕은, 그저 신하들의 의해 움직이는 나라 위에 존재하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이른바, '짐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근대적 의회 민주주의의 조선판이다. 정몽주의 좋은 군주를 만나 뜻을 펴면 된다던 의지을 꺽으며,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했던 이유이다. 군주가 누구이던 상관없이, '유학'이라는 사상적 토대에 근거한 '시스템'과 제도로 움직이는 나라, 현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버금가는 선구적 시각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그의 의지는, 함께 나라를 세운 동반자이자, 새로운 군주, 이성계에게 조차 올곧이 이해받지 못한다. 여전히 이성계도, 그리고 야심을 가진 그의 아들 이방원에게도, 조선은, 이씨, 자신들의 나라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자신들 마음대로 다스리고 싶은 욕망을 그들 이씨들은 감추지 못한다. 당연히 그런 그들에게, 정도전이 만든,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얼토당토치 않다. 나라를 만들어 놓고, 뒷짐지고 구경을 하라니!

물론, 정도전의 민본이라는 것이, 이미 고려 말, 그들의 개혁적인 토지 제도 정전법이, 신료들의 거센 저항에 밀려,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처럼, 시대적, 신분적  한계를 지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 임금의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사상적 자각을 한 신하들의 집단 지도 체제라는 틀은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의 시각에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진보적 선구안이었다. 

그러난 그런 정도전과 그를 따르던 조선을 만든 중심 세력의 입장은,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자 마자, 바로 갈등의 씨앗이 된다. 자신의 나라라 생각한 왕과 그런 왕을 중심으로 왕권 중심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세력과, 그에 반하는 세력간의 500년간의 피튀기는 혈투의 시작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정도전의 선구적 시도는 이방원이 도모한 왕자의 난으로 실패로 마무리지어진다. 하지만, 정도전이 만든 조선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삼정승 제도의 합의에 기초한 의정부 제도와, 상소 등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간원 등이 500년 동안 끊임없이 왕권 중심으로 가려는 조선을 흔든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을 비롯하여, 조선의 역사 속 걸출하게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왕들은 신하들과의 정쟁에서의 승리를 전리품으로 챙긴 경우가 많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당쟁과 사화는 그런 전쟁의 또 다른 표식일 뿐이다. 끊임없이 조선의 신하들은, 사실은 자신들의 나라인 조선을 자신들의 수중으로 되찾기 위해, 왕권을 향해 도전하고, 의정부 중심제의 국가, 사간원 등을 통해 왕을 교육하고, 통제하고, 조련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애써간다. 

<정도전>에서 이미 보여지듯이, 왕자의 스승이 된 정도전은 어린 왕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다. 정도전이 능력있는 이방원이 아니라, 어린 왕자를 차기 대권 주자로 선택한 이유이다. 정도전의 세력에게 왕은 능력있는 지도자일 필요가 없다. 그저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왕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새로운 나라만 세우면, '모든 것을 다 맡기겠다'던 이성계부터,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왕이라는 틀에 회의를 느낀다. 그의 아들 이방원은, 분노를 넘어 적대감을 표명한다. 만들어지자 마자, 조선은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그 위기는 단지 헤게모니의 싸움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정통성의 위기이다. 조선이 조선다울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  싸움은 500년을 가고, 왕의 성격에 따라, 신하들의 성격과 포진에 따라, 조선의 정통성은 파고를 넘나든다. 


by meditator 2014. 6. 8. 13:57

16회에 이른 <갑동이>,이젠 누구도 갑동이(차도혁; 정인기 분)가 누구인지 다 안다. 하지만, 갑동이를 잡을 수 없다. 이전에는 갑동이가 누군인지 몰라서 잡을 수 없었다면, 이젠 갑동이가 누구인지 알아도 잡을 수 없다. '미치도록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 48시간을 구금해도, 그를 놓아줄 수 밖에 없다. 미제 사건들에 그의 DNA을 가지고 검사를 해봐도, 전산화되지 않은 출입국 관리국 창고를 먼지를 마시며 뒤져 보아도, 48시간 안에 그를 잡아들일 묘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와 대질 심문을 하던 오마리아, 아니 유일한 생존자 김재희(김민정 분)는 결국 눈물 범벅으로 오열하다 못해 그의 목을 조르고, 그런 그녀를 데리고 나온 하무염(윤상현 분)에게 절규한다. 왜 편법이라도  쓰지 않았냐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프로파일러 한상훈(강남길 분)은 결국 자신이 4차 사건의 진범이라며 자신을 내던진다. 이런 범인을 잡고도 범인을 잡을 수 없는 아비규환, 이게 다 터무니없는 공소시효 때문이다. 


연쇄 살인범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갑동이>는, 카피캣을 통해 연쇄살인을 복기하며 <갑동이>를 복기하며, 하나의 범죄가 가진 사회구조적 얼개를 논하더니, 이제 16회에 이르러, 대한민국 법 질서의 부조리함을 끄집어 낸다. 

결국 갑동이 사건 때문에 아버지와 딸을 잃었던 하무염과 양철곤(성동일 분)의 미망은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카피캣이 되어 갑동이 사건을 환기시킨 류태오, 그리고 그녀를 조여오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약통을 찾아들어야 하는 오마리아, 아니 김재희까지, 여전히 갑동이의 범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작 갑동이는 수사반장까지 되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분통터지는 것은, 이제라도, 갑동이가 누구인지를 알았는데, 정작 편의적으로 적용된 15년의 공소시효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맞부닦친다. 물론 16회 말미, 한상훈의 희생으로, 그가 4차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하고, 그로인해 범인이 잡히면 그 사건의 공범까지 자동적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법령을 이용하여 겨우 갑동이의 공소시효 효력을 정지시키는 '신의 한수' 아니, '희생의 한 수'를 통해 비로소 갑동이 사건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을 가능성을 살려내었다. 


하지만 그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를 차치하고, 갑동이가 누구인지 드러난 이후 <갑동이>는 이미 충분히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인 부조리한 법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갑동이> 드라마의 시작은 일탄서로 다시 돌아온 양철곤 과장과, 여전히 갑동이 사건에 매어있는 하무염, 그리고 그들이 착잡하게 맞이하는 공소시효 완료일로 시작되었었다. 그때만해도,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눈 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것도 아니고, 15년이나 지난 사건이 이제와서, 라는 거리감을 시청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아니 갑동이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처럼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제 정신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은 쉽게 잊어야 하는 것을 하나의 비상요법인 양 장착한 채 살아왔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미해져가는 세월호처럼. 

하지만, 그저 두 사람의 집착으로만 여겨졌던 과거의 연쇄 살인을 과거로 부터 길어올린다. 갑동이를 존경하는 카피캣 류태오가 등장했고, 그를 치료하는 의사로, 과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희생자인 오마리아가 나타나고, 과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현재에 살아가는 또 다른 사건들이, 류태오의 사건을 통해 갑동이 사건에 얽혀들며, 드라마는 정죄되지 않은 과거는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16회 드라마 속 검사는 말한다. 법은 그 나라의 인격이라고. 
그렇게 인격이라 정의된 갑동이 속 우리나라의 법은 편의를 앞세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범인을 눈 앞에서 놓아줄 수 밖에 없는 비윤리적인 법이다. 2007년부터 25년으로 그 적용 기간이 늘어났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드라마 속 갑동이와 같은 사건은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흉악한 사회적 범죄의 경우 이미 공소 시효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여 폐지하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더구나 DNA로만 범인을 알수 있는 사건의 경우엔 공소시효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법원의 편의적 방식에 따라, 갑동이와 같은 사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성범죄 연쇄 살인범의 예를 들었지만,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인격으로서의 '법'에 귀결된 <갑동이>의 성취는 놀랍다.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법은 그저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번거로운 신호등과도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갑동이>를 통해, 그 번거롭다 느껴졌던 신호등이 제대로 신호를 보내지 않을 때, 혹은 신호를 보내기를 멈추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되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수의 사건들이, 때로는 법의 비호아래, 혹은 법의 방기 아래, 혹은 부조리한 전근대적인, 심지어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의 판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파업에서 파업 당사자들이 가장 고통받게 되는 사례 역시 이 아이러니한 법의 판결이다. 자신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파업이 겨우 마무미된 후 뒷덜미를 사로잡히는 건, 때아닌 '돈'의 폭탄이다. 파업으로 인해 원할한 생산 과정이 진행되지 못했다 하여, 혹은 파업 과정에서 많은 생산 시설이 파괴되었다 하여, 법원은 회사측의 손을 들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상상조차도 못할 엄청난 피해 보상금을 물게 한다. 얼마전 엔터테이너 이효리가 참여해 사회적 관심을 부각시킨 노란 봉투 프로젝트가 바로, 쌍용차와 철도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였었다. 15년 전의 해결되지 않은 사건 만이 아니라, 법이라는 편의적 도구를 이용해, 사회의 '을'들을 억압하는 우리 나라 인격의 또 다른 민낯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 자신이 보수적이 되었다며,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이른바 386 세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헌법에 위배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폐지를 위해 벌어지던 그 수많은 시위와, 시위로 인해 잡혀가던 학생들의 역사가 바로 인격이라는 법의 얼굴에 패인 주름의 흔적이다.

그렇게, 우리가 자신이 맞닦뜨려서야 아!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하지만, 한 사회의 인격이 되어야 할 '법'의 부조리하고 편의적인 모습을 드라마 <갑동이>는 그 말미에 이르러 주제로 내세운다. 제 아무리 누군가 그로 인해 여전히 고통을 받는다 해도, 명문화되어버린 법은 그 고통을 알아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까발린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그런 법의 부조리함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범죄의 공소 시효를 없애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부조리함을 방기하는 대신, 눈밝게 끄집어 내어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 나라의 인격이 왜곡된다면, 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드라마는 진득하게 설명해 낸다. 


by meditator 2014. 6. 8. 12:22

매주 목요일 밤 11시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있는 MBC가 이번 주 내민 카드는 시사교양 <어느 날 갑자기>이다.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재난재해에 무방비하게 맞닦뜨리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생존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리얼리티 드라마로 재연해낸다. 

첫 회,<어느 날 갑자기>에서 다룬 것은 세 개의 이야기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화재 현장에 있었던 김호근 씨 등 세 사람의 생존기, 갑자기 병원에 들이닥친 멧돼지와 싸운 최동선 씨 이야기, 그리고 사이판 여행 중 총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된 박재형씨 이야기가 다루어 졌다.

첫 번 째 사건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이다. 그 사건 당시 불이 난 열차에 타고 있던 김호근씨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당시 유독가스가 가득찬 지하철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그를 붙잡고 살려달라던 중년의 여인을 허리띠를 풀러 뿌리친 기억이 있는 그는 그 기억에서 놓여나질 못한다. 어두운 곳이나, 방처럼 닫혀진 공간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홀로 거실에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며, 밤마다 찾아오는 그녀에게 10년이 넘도록 시달리고 있다. 불이 난 열차 뒤에 들어와 불이 붙어버린 열차에 타고 있던 김영환씨는 역시 구해 달라던 여자 두 명과 겨우겨우 한 층을 기어올라 생존을 했지만, 더 이상 요리사로서의 그의 삶을 지속시킬 수는 없었다. 참사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불 앞에 설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기를 마신 폐는 강도높은 사회 생활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명 그 열차를 탔던 여성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둠이 휩싸인 중앙로 역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하다 구출되기도 했다. 
당시 자료와 인터뷰, 재연을 통해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부상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과정, 그리고 그 참사 속에서 살아남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첫 번째 이야기는 진행된다.

 image
(사진; 스타뉴스)

다음 사건은 강릉 의료원에 출현한 멧돼지 이야기이다. 강릉 시내로 뛰어들어 차에 치인 멧돼지는 강릉 의료원까지 난입하기에 이르른다. 멧돼지에 놀라 망연자실해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멧돼지와 싸운 장례지도사 최동선씨, 사무실에 들어가 다짜고짜 집어든 망치 하나면 멧돼지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단 그의 생각과 달리, 망치는 단번에 부러져 버리고 그는 두 시간 여의 수술을 거쳐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두번 째 이야기는 세 이야기 중 물론 대수술을 해야 할만큼 당시 상처는 심했지만 여파가 적은 만큼, 상대적으로 최동선씨의 오지랖넓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진행된다. 

마지막 사건은 40세 되던 해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한 사이판 여행에서 임금 체불에 불만을 가진 리조트 직원의 총기 난사로 사경을 헤매다 하체불구가 된 박재형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유를 모른 채, 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무차별 총기 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하반신을 잃은 박재형씨의 이야기는, 그가 사고를 겪는 과정과, 한때 삶을 놓으려고까지 했던 재형씨가, 이제 당시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들과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꿋꿋한 삶을 이어가는 재기 과정을 다룬다.

세월호 사건의 실종자 수가 쉬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이즈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어느날 갑자기>는 현실감있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파고들만한 프로그램이다. 더구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그 계기와 과정에 있어 더더욱 세월호를 연상케 하고, 여전히 그 사건의 기억화 휴유증에서 고생하고 있는 당시 피해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더욱 <어느날 갑자기>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제성 면에서는 시의적절하지만, 또 그런 시의적절한 편성이, 보다 가치를 가지려면 프로그램으로서의 지향과 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듯하다. 그런 면에서 첫 회 <어느 날 갑자기>는 딱히 하나의 지향을 가진다기 보다는 이런 저런 구성을 포괄하고 가는 듯했다.

지하철 참사 사건의 경우, 워낙 사건의 희생자가 많고, 여파가 크다 보니, 그 사건의 실제 재연에 치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남았다지만, 여전히 죽은 사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호근씨나, 생업을 잃게된 김영환씨의 삶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가 된 여성의 경우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앞서 두 사람과 달리,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원해 포함시켰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종교색이 워낙 강해 이해는 가지만,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지난 주 <SBS스페셜>의 내용과 비교된다. 대형 참사 사고의 트라우마를 다루었던 ,<트라우마 삼대를 가다>는 대형 참사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에 집중한다. 같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이지만, 그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드리우고 있는 무거운 정신적 질병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는 '리얼리티'라는 지점에 방점이 찍힌다. 과거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현재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서술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현재 사는 모습에 따라, 사이판 사고 박재형씨는 그의 재활 과정에 집중이 되는 것이고, 강릉 의료원 멧돼지 출현 사건은 최동선씨의 인물됨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도, 사례별 촛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느날 갑자>라는 프로그램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형 참사 사고의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면에서는 강점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재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이거나, 평면적 사건 나열에 그친 그저 그전 사건 보고서의 재연 드라마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최근처럼 대형 재난 사고가 사회적 관심이 되고 시점에서, <어느날 갑자기>의 편성은 시의적절했지만, 조금 더 사회적 재난 사고라는 특성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SBS스페셜>처럼 사고 당사자의 트라우마에 좀 더 집중을 하거나, 아니면, 단지 이런 삶을 사는 사고 당사자가 있다가 아니라, 좀 더 치유적 관점에서 그들의 사고에 다가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더한다든지 해서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 사고의 성격을 강화시킨 프로그램의 성격을 부각시켜 나가길 바란다. 특히나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사회적 성격이 강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여파를 개인적 사례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런 사건들을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해 가고 있는가를 좀 더 조명해 준다면, 지금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건은 사회적인데, 풀이는 개인적이 되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 병폐를 제고해 내는 것, 버겁지만, <어느날 갑자기>가 품은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1:45

함께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둘러싼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했던 임경재(박원상 분)의원이 의문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음을 당한 후, 강도윤(김강우 분)은 홀홀단신 나서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여의치 않다. 그의 입은 막아지고, 그는 그의 동생이 맞았던 서동하(정보석 분)의 골프채 앞에 던져지게 될 뿐이다. 결국 마이클 장 대신 쏜 알렉스(김재헌 분)의 총을 맞고 쓰러진 강도윤은 생매장이다시피 흙구덩이에 던져지고, 그의 몸 위에 솔선수범하여 흙을 덮은 후, 서동하는 빛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3년 후 경제 부총리 내정자가 된, 이제는 경제계의 거물로 장인인 김재갑(이호재 분)마저 어쩌지 못할 사람이 된 서동하는 야심차게 토종 펀드를 조성하려 하고, 그런 그의 앞에 세계 투자은행들의 VVIP들만 상대하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 테리영이 나타난다. 강도윤과 똑같이 생긴.

검사보로서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던 강도윤은 결국 골든 크로스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실패했다. 그리고 그가 맨 몸으로 부딪친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와 힘을 합친 사람들은 하나씩 무너져갔다. <빅맨>에서 김지혁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지만, 강도윤에게 희망이 되주던 양심적인 국회의원도, 의협심이 가득했던 기자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간다. 그리고 강도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장의 변호사가 되어 나름 가면을 뒤짚어 쓰는 듯했지만, 여전히 강도윤은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이였다.

골든 크로스 16회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제 3년이 흐른 후 나타난 테리영은 얼굴만 강도윤일뿐, 그 어느 곳에서도 검사보 강도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술이 거나해진 서동하와 박희서(김규철 분)가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의 동생을 죽였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테리영이 된 강도윤은 유쾌하게 웃어제낄 뿐이다. 애증의 서이레(이시영 분)가 찾아와 읍소를 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다. 그 무엇을 해도 '을'이었던 그가 이제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목줄을 틀어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인 '갑'이 되어 그들을 좌지우지 하고자 한다. 그런 그의 변신에, 서동하는 말한다. 그가 강도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치 않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펀드의 매니저라는 사실뿐이라는 사실이라고. 

서동하와 박희서가 테리 영 앞에서 굽신거리고, 마이클 장이 그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 이제 그들의 목줄을 죈  또 다른 '갑'이 되어, 그들을 휘몰아쳐 몰락시킬 일만 남은 존재가 되어 나타난 강도윤으로 인해, 그토록 몰리기만 했던 복수는 이제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만이 남았다. 
그런데 어쩐지 허전하다. 결국 16회까지 이른 드라마는 평범한 서민의 아들 강도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듯해서 말이다. 
사실 점만 찍지 않았을 뿐, 결국 돌고 돌아, <골든 크로스>가 도달한 '복수'는 여느 복수 드라마의 클리셰와 다르지 않다. 약자였던 주인공은 그를 핍박하던 상대에게 한없이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고, 그러다 사라져버리고, 한참 후에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즉 신분 세탁을 거친 존재로, 이전에는 그들에게 당하는 위치였다면, 이젠 그들의 목을 죌 위치가 되어 나타나 지금까지 당한 것들을 하나하나 복수해 나간다. 결국 <골든 크로스>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 분)을 비롯하여, <상어>의 한이수(김남길 분)가, <적도의 남자>의 김선우(엄태웅 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간 <골든 크로스>가 우리 사회 상위 1%의 전횡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실감나게 그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강도윤으로서의 복수의 실패는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티없이 맑았던 배우 지망생이었던 강도윤의 동생,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그 두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검사보였던 강도윤이 나섰을 때, 함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서동하의 딸 서이레, 국회의원 임경재, 기자 갈상준의 패배나 몰락은, 이제 의문의 펀드 매니저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의 복수에서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씌여졌다.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싸움은 철저히 패배가 되어 강도윤과 함께 흙에 묻혀 버리고, 이제 복수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로서, 오로지 환타지로서 드라마는 '복수'를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성공이, 현실의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점을 찍고 누군가 실력자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위에 설 수 있는 갑이 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상위 1%를 대항한 싸움은 불가항력이라고 드라마는 말하는 것같아 아쉽다.

16회 땅에 묻히기 까지 강도윤은,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싶은 평생을 남의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의 평범한 아들이었지만, 이제 테리영은 클럽 골든 크로스의 대표 홍사라가 뒷배를 봐주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 또 다른 힘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싸움은 무기력한 패배라는 걸 16회에 이른 <골든 크로스>가 스스로 확인한 셈이 되었다. 제 아무리 이제 부터 벌어지는 강도윤, 아니 테리영의 복수가 칼바람이 분다 한들, 어딘가 씁쓰레해지는 지점이다. 여전히 '복수'에 방점이 찍힌 드라마들은, 복수를 당할 자들의 전횡에 골몰하다, 전세를 역전시켜 그들에게 당한 만큼 몰아부치는 '복수'의 '양'에 몰두한다. 하지만, 점을 찍고 나타나, 또 다른 갑이 되어 댓가를 치뤄주는 복수는 환타지일뿐, 진정 우리 사회의 '을'들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누군가의 아들 강도윤의 실종과, 테리영의 대두가 결국 '을'들의 무기력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환타지'로서의 복수는 그저 '환타지'일뿐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