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회를 남긴 <빅맨>,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내세운 탄원서철 사이에 강동석이 한 이면 계약서를 끼워넣어 역전을 노렸지만 결국 검사는 현성 유통 직원들이 내세운 법정 관리인 김지혁(강지환 분)에게 사기 전과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강동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망하고 나선 김지혁과 구덕규(권해효 분)등에게 현성의 직원들이 다가온다. 김지혁은 자신이 모자라서 죄송하다고 말을 하고, 그런 김지혁에게 노조원들은 반문한다. 왜 사장님이 죄송하냐고, 함께 하자고 한 건 우리인데, 라며 김지혁을 독려한다. 그러자 김지혁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함께 좀 더 열심히 해보자고 하고, 직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부등켜 안는다. 멀리서 그런 김지혁과 현성 직원들을 지켜보던 법정 관리를 다룬 검사,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직원들이 이전에 내세운 탄원서를 읽어보고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부도가 나서 법정 관리가 이루어진 회사에 가장 필요한 건 직원들이 원하는 사장이라며 김지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빅맨>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12회에 이른 지금까지 한결같다. 노조원 중 한 사람의 배신이 알려진 후 과연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로 골머리를 썪힐 때, 김지혁은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그런 우리가 사람마저 잃으면 무엇을 가지고 저들을 상대하겠냐고. 이것이 바로 1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행되어 온 <빅맨>의 '휴머니즘'이다. 

시장 바닥의 양아치 김지혁이 우연히 강동석의 꼭두각시로 현성 유통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가 진짜 기적을 일구고, 이제 다시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돌아오기까지, 김지혁의 일관된 노선은 '사람'이다, 즉 그가 주장하듯, '사람만이 희망이다' 
현성 유통에 어렵게 공급된 우유를 사먹은 사람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그 사람의 안위였다. 그런 그의 방식이, 대기업들의 보이콧으로 비워진 현성 유통의 매대를 순진우유로 채울 수 있었다. 바로 현성 유통 직원의 떡고물로 인해 하청에서 떨어져 나갈 뻔하던 순진 우유를 살려준 것이 김지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장이 되었던 현성의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그가 가족처럼 여기던 시장 사람들이었고, 그의 진심이 그를 무시하던 직원 구덕규와, 최유재(김지훈 분)를 돌려세웠고, 그가 사장으로 보인 성의에 노조원들이 돌아섰다. 제 아무릭 급해도 '리베이트' 대신, 사장의 초심과 진심에 호소하는 김지혁의 방식이,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그를 만들었다. 

(사진; 메트로)

<빅맨>은 착한 드라마이다. 결국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믿어야 할 것은 너와 나의 진심이요, 우리가 힘을 합쳐야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순수하고 곧은 의지를 일관되게 내세운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빅맨>의 휴머니즘이 싱겁다. 분명이 옳은 말이고, 올바른 방향인데, 너무 세상이 세속적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런 빅맨의 순진 혹은 순수함은 어쩌면 바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일 수도 있겠다. 과연 정말 김지혁처럼 가진 것 하나 없이 순수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회사를 살리고 싶은 직원과 노조원들이, 또한 김지혁을 믿고 자신의 상권을 내준 시장 사람들이 온갖 권모 술수는 물론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이 사회의 '갑'들을 대항해 내세울 무기가 결국 누군가의 '감성'에 호소하는 휴머니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 사실 <빅맨> 속 주장들은 다양하다. 대기업 상권과 시장 상권과의 충돌 속에서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주목하고, 대기업 유통망에 짖눌린 중소 기업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하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들도 제대로 일한 댓가를 받고, 대접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포함된다. 하지만,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들면서도, 그 해법이 늘 김지혁의 인간적 설득과, 누군가의 감성적 결단이라는 식이 되어버리니, 이젠 어떤 이야기가 등장해도, 또 그렇게 해결하려니 한다. 

<빅맨> 속 등장인물들은 결국 '성선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지혁이 내건 사람 냄새에 홀려 사람다운 일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순간 김지혁이 설득하려고 나섰던 그들이 자신의 불리함을 넘어서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12회에 이를 동안 김지혁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빅맨>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가 가진 착한 인간에 대한 절대 신뢰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러기에 때로는 늘 한결같이 김지혁의 휴머니즘에 동참하는 그들이 어쩐지 '꿈'같기만 하다. 어디 사람이 모질고 싶어 모질어 지는 것인가, 세상이 사람이 모질게 만드는 것일진대, 드라마<빅맨> 속 길은 마치 모범생의 모범답안같이 예외가 없다. 그러기에 모범 답안을 벗어난 모범생이 무기력하듯, 인간에의 호소를 벗어난, 김지혁과 동료들의 행보는 그래서 때로는 허무해 보이며, <빅맨>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고민을 던진다. 

재벌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조화수(장항선 분)의 표현대로 '강아지 새끼'처럼 자신의 이익을 향해 모든 것을 수단화시키며 내달리듯, 애초에 시장판 양아치가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빅맨>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환타지'이다. 그리고 그 환타지는 가장 이상적인 휴머니즘에 입각해, 모두가 힘을 모아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잘 해보자 라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회의가, 착한 드라마<빅맨>을 보다보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복수' 드라마에 맛들인 시청자가 보기엔,<빅맨>은 순수 무공해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 건강한 음식과도 같지만, 어쩐지 그게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고, 맛도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드니, 세상의 떼가 묻은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을'들의 속시원한 해법이 '인간적 호소' 외에는 마땅치 않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빅맨>은 명쾌한데, 어렵다. 


by meditator 2014. 6. 4. 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