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tvn에서 새로 시작한 <마녀의 연애>는 2009년 대만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물이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패견 여왕>에서 33세에, 자기 중심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하지만, 날카로운 콧매와, 가녀린 얼굴 선에서 풍기는 이지적인 선무쌍(양진화 분)이 떠오르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전 <관능의 법칙>에서 어린 남자를 만나 당당히 연애에 빠졌던 엄정화가 연기했던 신혜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싱글즈>의 동미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가 떠오른다. 

물론 엄정화가 연기한 캐릭터는 다양하다. <오로라 공주>의 딸을 잃은 엄마 정순정도 있었고,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따스한 선생님 김지수도, 가수를 꿈꾸던 열혈 아줌마 <댄싱 퀸>의 정화까지 손가락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어디 영화뿐인가, <12월의 열대야>에서 상처받은 주부 오영심에서, <아내>의 순둥이 윤현자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의 진폭 역시 새삼 살펴보면, 그 어떤 연기파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여전히 엄정화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관능의 법칙>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mr. 로빈 꼬시기>, 그리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 중 다수가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물론 이들이 모둔 같다고 하는 단언할 수는 없다. 각각의 캐릭터는, 각각의 작품 속에서, 그 작품에 맞는 빛깔로 변주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 작품에서 엄정화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가장 모던하게, 현대 사회에 적응한 캐릭터로써, 자신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일에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며, 그 못지않게 전문적이다.(연애 따로, 결혼 따로 충실한 삶을 사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연희 역시 그런 일련의 현대인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엄정화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몹시 섹시하다. 그녀가, 드라마 상에서, 혹은 영화 상에서 노처녀이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워커 홀릭이건, 그런 캐릭터 적 성격과 상관없이 매우 섹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관능의 법칙>에서 예능 피디인 신혜의 옷차림이나, 독거사를 고민하는 드라마<마녀의 연애>의 반지연이나, 그녀들은 쫙 달라붙은 치마에,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를 입고, 짙은 화장에, 붉은 입술을 하고서, 고민에 빠진다. 그간 사귀어 온 남자가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 혹은 사랑하던 남자가 떠난지 6년이 되었다고, 그리고 홀로 늙어죽을 거 같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녀만 보면 침이 흘러내릴 거 같은 모습을 하고. 

그간 엄정화가 가수 활동을 통해 쌓아온 섹시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뇌쇄적인 모습으로 드라마 속 주인공은 고뇌에 빠진다. 물론, 전혀 독거사 할 수 없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화면을 종횡무진하는 섹시한 그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드라마 속 그녀는 또한 엄정화만의 내공으로 다져진 연기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해 낸다. 
<마녀의 연애>의 시작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기 위해 학교로 잠입한 열혈 기자 반지연에, 자신이 찍은 기사를 올리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의 자전거를 타고 날르다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되는, 전형적인 로코의 뻔한 설정이지만, 엄정화 특유의 통통 튀는 분위기로 그걸 살려낸다. 마치 드라마는, 엄정화를 위한, 엄정화에 의한 드라마임을 공인하듯, 실연의 슬픔조차, 스피카의 노래를 따라하며 섹시 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마녀의 연애>는 예측 가능한 뻔한 로코의 정석을 엄정화라른 전설의 로코 퀸을 통해 변주해 나가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함께 하는 박서준은, 그의 매력이, <금 나와라 뚝딱>,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만, 과연, 로코의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끌어 갈 만한가 여부가 미지수인 상태에서, 이 드라마가 엄정화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결국 드라마는 엄정화, 혹은 엄정화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에 의해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33세의 여자가 8년 연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민하던 대만 드라마 <패견 여왕>은 바다를 거너 <마녀의 연애>가 되면서, 39세의 반지연이, 스물 다섯의 윤동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단다. 2009년에 서른 셋만 되도, 패견, 즉 패한 개, 시집 못간 노처녀라 대접받는 대만의 이야기는, 201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서른 아홉의 노처녀가 스물 다섯의 청년을 도발할 수 있는 러브스토리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관능의 법칙>에서 한참 어린 젊은 남자를 만나는 신혜에게 친구가 애랑 미쳤다고 하자, 신혜는 말한다. '그 애가 내 애는 아니'라고. 과연 내 애가 아닌 또 다른 남자 애와의 연애도 성공할 지, 대만판 <내 이름은 김삼순> 열풍을 일으켰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 <마녀의 연애>가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키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4. 4. 15. 02:34

드디어 김숙, 김신영, 김지민, 김영희 등 여성 멤버들이 <인간의 조건>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와 함께 새로운 게스트로 천이슬과 김민경이 합류했다. 

지난 해 연말 kbs 연예 대상 우수상에 빛나는 개그우먼 김민경은, 아마도 자신과 같이 덩치있는 사람을 합류시킨 걸 보고 개그맨 동료들이 다이어트와 관련된 미션이라고 했다는 말이 그리 틀지지 않듯이, 처음 고정 멤버가 된 <인간의 조건>의 첫 미션은, 밀가루와 고기 없이 살기였다. 

방송의 시작과 함께 아침 밥을 먹고 모이라는 전갈에 각 멤버들은 자기만의 아침 식사하는 보여준다. 빵 가게로 가서 갓 나온 따끈한 빵에 황홀해 하는 김숙, 그리고 엄마가 삼겹살까지 구워 갖가지 반찬까지 잔뜩 차린 밥상을 받은 김영희에, 간밤에 먹고 남은 치킨에, 즉석밥, 거기에 컵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 김민경까지 각양각색의 아침 먹는 모습이 등장했다. 

(사진; 뉴스엔)

아침을 먹고 새로운 아지트로 합류한 멤버들은 새로운 미션이 밀가루와 육식 없이 사는 일주일이라고 하자, 당연히 '멘붕'에 빠진다. 
천이슬이나 김지민처럼 날씬하건, 혹은 이미 각고의 노력을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을 한 김신영이건, 다이어트가 필요한 김민경이나 김숙이건, 모두 입을 모아 자신들에게 육식과 밀가루는 절대적이라고 탄원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가혹한 실행을 기다릴 뿐,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 것 같은 미션 과정을 위해, 제작진은 이번 미션을 3명씩 밀가루와 육식 차단의 팀으로 나눠 실천하는 아량을 베푼다. 그리고 출연진의 기대와 전혀 반대로, 밀가루를 원하던 팀에겐, 밀가루 없이, 육식을 원하던 팀에겐 육식이 없는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던 밀가루와, 흰쌀, 설탕의 이른바 3백(白) 식품없이, 그리고 소고기, 돼지 고기, 닭고기 등의 육식 없는 일주일을 선포당했을 때만 해도, 멤버들은 밀가루라면, 그저 좋아하던 과자나, 라면, 국수를 안먹으면 되는거려니 했다. 육식도 마찬가지다. 그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내어 자신들을 유혹하던 고기만 참으면 되는 거려니 했었다.

하지만, 막상 미션에 돌입하면서 멤버들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미션의 폭과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고기 만두는 안되니, 김치 만두라도 먹겠다던 김민경은 김치 만두 속에 들어있는 고기에 냄새만 맡고 만두를 후배에게 돌려준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은 김숙과 천이슬은 식당 간판에 있는 음식 사진을 보고 고르다, 결국은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은 과일 모둠 밖에 없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먹을 거리를 찾아 마트에 들어간 밀가루 없이 살아야 하는 일행은, 하다못해 된장, 고추장에도 들어있는 밀가루 성분에 좌절하고 만다. 하다못해 쥬스 한 잔, 두유 한 봉지에도 들어있는 설탕 성분은 경악을 불러온다. 
고기 없는 사는 일행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는 된다면 희희낙락하는 것도 잠시, 라면 소스 성분 표에 들어있는 사골 양념 분말, 조미 육수에 생각보다 자신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새로 시작된 <인간의 조건> 밀가루, 흰 쌀, 설탕의 3백(白)식품 없이 살기와, 고기 없이 살기 미션이 보여준 점은 충격적이다.
일단은 마르고 살찌고 사람들의 몸집에 상관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아무 생각없이 밀가루와, 육식의 삶에 길들여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나, 아침부터 어제 남은 치킨을 뜯는 김민경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게스트로 합류한 천이슬의 경우, 보기에도 상당히 마른 모습이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과자나, 밀가루에 거의 중독 수준이라는 건, 살찌고, 마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일반의 식습관,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식습관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나 천이슬과 젊은 여성들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폭식으로 마구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쏟아 붓고, 그리고 굶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또한 김숙처럼 자신이 고지혈증으로 치료 받아야 할 상황에 있으면서도 입에 당기는 빵식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먹거리의 중독 역시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단 한 회지만, 미션을 시작하면서 놀라움을 준 것은, 우리 먹거리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밀가루 등과 육식의 영향이다.
그저 국수나 흰 쌀 밥을 안 먹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인 된장, 고추장에서 부터 시작된 하얀 탄수화물의 공격은 생각보다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육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고기 반찬이 문제가 아니라, 라면에서 부터, 우리가 사서 먹는 모든 것들의 기본 육수를 장악하고 있는 육식의 존재감에 새삼 고개를 내두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고,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영역까지 점령하고 있는 3백(白) 식품과 육식의 존재에, 새삼 우리 먹거리 전반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진; 동아닷컴)

방송 초반만 해도, 그저 양상국의 애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천이슬의 등장은 생뚱맞았다. 하지만, 첫 방송이라는 설레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만으로 그녀의 선정에 대한 논란은 사그러들만 하다. 그저 지병이 있는 김숙이나, 보기에도 정말 다이어트가 필요해 보이는 김민경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아니라, 그리고 천이슬로 상징되는, 이른바 날씬함을 지향하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질 수 있어 캐스팅의 의문을 1회 만에 어느 정도 해소되게 되었다. 누구를 캐스팅하느갸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묘미로 인해, 캐스팅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던 제작진의 역량을 보여준 한 회였다. 


by meditator 2014. 4. 13. 12:51

4월 12일 <정도전>은 이성계(유동근 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최영(서인석 분)에 이은, 우왕(박진우 분) 축출까지 거침없이 달려오던 반군 세력이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차기 왕 옹립을 둘러싸고 입장을 달리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은, 이성계 일파가 밀었던 왕족이 아닌, 왕가의 사람들과 조민수 (김민수 분)장군 일파, 그리고 왕통을 중시한 이색(박지일 분) 등의 신진 사대부들이 민 우왕의 왕자 왕창, 창왕의 등극이다. 

드러나는 사건은 귀양을 가 있음에도 여전히 중앙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는 이인임과 손을 잡은 조민수 세력이 정통성을 중시하는 신진 사대부 유림 세력과 손을 잡아, 새롭게 대두된 실세 이성계를 정치적으로 패배시킨 사건이다. 하지만, 정치적 세력의 이합집산 외에,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보다 결정적이다.

극중 정도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고려를 부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이유를 꿈꾼 가장 본질적 이유는, 바로 지금의 고려가 어떻게 해도, 기존 권문 세족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12일 방영된 방송분 중, 정도전은 함께 할 인물로 염두에 둔 조준(전현 분)의 집은 찾는 장면이 방영된다.
조준 집 벽에는 고려의 지도가 걸려있고, 그 곳곳에 서로 다른 색으로 표기된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 지도의 표식에 대한 정도전의 집요한 추궁 끝에, 조준은 그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색이 바로 권문 세족의 땅이라는 것을 밝힌다. 경계를 세우는 것조차 무색하여, 산과 강으로 경계를 세우게 되었다는 고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버린 고려의 현실을 밝힌다. 
그런 조준에게 정도전은 자신의 꿈에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 적은 종이를 건넨다. 즉,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란 바로, 지주도 없고, 소작도 없고, 제 땅을 일구는 자작농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네 단어이다.

(사진; tv리포트)

즉, 정도전의 개혁이란, 단지 정치적 실권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지금의 권문세족들을 개혁하고, 그들이 점횡한 토지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려에서는 더 이상 그런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고 보았기에 고려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야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고자 한 이성계는 여전히 고려라는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이성계와 보조를 맞추고자 과도기적 과정으로 선택한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줄 수 있는 왕의 등극과 함께 권문 세족에대한 개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2일 방송에서도 보여졌듯이, 고려라는 틀을 어찌되었든 유지해 보고자 했던 이성계와 정도전의 마지막 시도는 결국 조민수라는 권문 세족과 유림 세력의 합종연횡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조민수와 이인임의 결탁 과정에서도 보여지듯이, 고려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권문 세족의 발호이다. 광대한 농장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그것이 몇몇 정치적 인물의 거세만으론 정도전과 이성계가 지향하는 개혁에 이르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정치적 혈통을 운운하며 기존 정치 세력과 합류하는 이색 등의 유림 세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진 사대부라고 불리워지는 유림 세력 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원칙적인 유교적 입장을 견지하는 듯 하면서도, 왕통이라는 명분에 매달리는 이색 등의 입장은, 결국, 고려라는 틀 속에서 자기 세력의 부흥을 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세력으로 신진 사대부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색 일파와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정도전, 그리고 거기에 합류한 윤소종, 조준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신진 사대부라며 고려 말에 대두되었던 유림 세력이, 고려말 조선 건국 과정에서 서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과정을 또한 12일의 방송분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일의 <정도전>은 위화되 회군 이후의 또 한 번의 분수령이 된다. 당장의 정치적 사건으로 이성계는 실패하지만, 결국 권문 세족과 신진 사대부 세력의 연합에 의한 이성계의 정치적 실각은, 결국 이성계로 하여금 역성 혁명을 앞당기게 만드는, 혹은 역성 혁명을 결심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도록 한 사건이다.

의식있는 드라마가 반영하는 현실은 극명하다.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정치적 이합집산의 그 배후에는 결국 당대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태도가 존재하며, 각각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결국 패가 갈리고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땅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2014년에조차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정도전에게 있어, 고려는 거둬 던져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허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려라는 나라를 통해 쬐금의 이해 관계라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에 집착하거나, 거기에 연연한다. 바로 그런 기본적 이해관계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정도전>은 보여주고 있다. 이성계의 앞에서 충성 충자를 쓴 정몽주의 한계가 또한 그것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정도전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지도자의 운명이 걸린 <쓰리데이즈>에서 이동휘 대통령과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재벌 김도진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울 한 복판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조차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조국이 없는 무한 이익주의의 경제적 동물과의 전쟁을 이동휘는 선포하였다. 
<골든 크로스>도 마찬가지다. 강주완이라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가정을 뒤흔든 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상위 1%의 집단의 경제적 이해 관계를 향항 무한 이기주의이다. 
몇 백년전의 과거가 되었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드라마건, 한 개별 가족의 복수극이건, 드라마들은 말한다. 본질은 내 삶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경제적 문제라고, 그리고 그 본질을 뒤덮고, 나와는 상관없는 저들간의 노름처럼 보이는 정치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경제 환원주의나 경제 결정론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리을 무관심으로 끌고가는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라는 걸, 그래서 저들의 리그려니 하지 말고, 정신 똑똑히 차려야 한다는 각성을 촉구하는 입장에 가깝다. 바로 이것이 최근 드라마들이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는 담론의 본질이다. 이성계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백성에게 땅을 골고루 나눠주려 했던, 정도전의 혁명이 실현되느냐가 본질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이 <정도전>이다. 


by meditator 2014. 4. 13. 11:34

4월 11일  tvn을 통해 또 한 편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갑동이>가 첫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제목 갑동이는, 영국의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처럼 드라마 속 가상의 도시 일탄에서 부녀자 연쇄 살인을 저지른 후 사라진 범인을 지칭하는 상징적 이름이다. 


제작발표회를 통해 조수원 감독은 <갑동이>가 영화<살인의 추억>과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드라마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흡사 <갑동이>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후일담과 같은 영화이다. 

<갑동이>에서 형사 과장으로 등장하는 성동일이 분한 양천곤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분했던 박두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헤드카피 '미치도록 잡고 싶다'처럼, 17년 전 그때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공소 시효가 지난 지금에 와서라도 다시 해결하겠다는 집념을 보이는 인물이다. 
영화 속 송강호의 박두만이 전형적인 소시민이자, 하지만 점점 연쇄 살인 사건에 빠져드는 형사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면, 성동일의 양철곤은 하무염의 아버지를 범인이라 단정짓고, 그와 그의 아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영화 속 박두만과, <갑동이>의 양철곤은 다른 듯하지만, 결국 80년대의 과학적 수사 방식 보다 주먹과 협박이 앞서는 주먹구구식 시대의 수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박두만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혹은 양철곤이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동네의 만만한 바보를 범인으로 몰아가버렸다는 점에서, 결국 다르지 않은 그 시대의 우매한 사고 방식을 내재화한 인물들이다. 영화 속 박두만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열패감에 사로잡혀 영화와 함께 사라졌지만, 마치 그가 17년이 지나 되살아 난 듯이, 양철곤이 되어 <갑동이>에서 과거의 범인을 다시 추적한다. 


<갑동이>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 하무염은, 영화<살인의 추억>에서 천진난만했던 동네 바보의 아들이다. 결국 경찰들의 겁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아버지를 그렇게 몰고 간 형사 양철곤에 대한 복수심으로, 스스로 형사가 되어 갑동이를 찾아나선 인물이다. 

드라마 <갑동이>는 이렇게 쉽게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 속 인물이 떠오르는 주인공들 외에, 과거 사건의 목격자이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는 오마리아(김민정 분), 우리가 흔히 미드나, 추리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연쇄 살인범을 흠모하며 범죄를 통해 그를 오마주하는 사이코패스 류태오(이준 분)도 등장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진 폭력성과 우매함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나가는 데 치중했다면, 공소 시효가 지난 17년 전의 연쇄 살인 사건의 관련자들이 등장하는 <갑동이>는 여전히 그 사건으로 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상흔에 주목한다. 

단 1회만으로,  형사로써 그 시절의 범인을 잡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그것이 아집이 되어 그를 똘똘 감아버린 듯한 양철곤이나, 범인의 아들로써의 낙인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어 발버둥치는 하무염, 그리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누군가의 접촉만으로도 소스라치는 오마리아의 상흔들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과, 이제 그 아들조차 의심스러운 또 한 사람의 가해자라는 극과 극의 존재들이, 새로이 발생하는 과거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을 통해, 조우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해원들을 풀어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미 다수의 장르 물을 선보였던, 그리고 공중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에 대해 자유로운 케이블이라는 이점을 안고 <갑동이>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또한 이미 공중파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수원 피디는 공중파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풀어내는 듯 보였다. 거기에, 이미 <로얄 패밀리>를 통해 필력을 인정받은 권음미 작가 역시 1회 만에 <갑동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드러내 보인다. 또한 늘 드라마를 통해서는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던 성동일이 분한 양철곤은 그가 우리가 알고있던 그 배우가 맞나 싶게, 집요하면서도 냉정한 인물로 다가온다. 성동일 만이 아니다. 다. 늘 가벼운 캐릭터로 일관했던 윤상현의 변신도, 김민정의 미묘함도, 이준의 섬뜩함도, <갑동이>를 즐길 또 하나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듯하다.


by meditator 2014. 4. 12. 01:01

4월 10일 두 편의 새로운 예능이 선보였다. kbs2의 <밥상의 신>과 mbc의 <컬투의 어처구니>가 그것이다. 


두 편 중 kbs2의 <밥상의 신>은 지난 설 명절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밥상의 신>이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이다. 파일럿으로 방영되었던 설 특집과 동일하게 mc인 신동엽이 입맛이 까다로운 왕의 컨셉으로 등장하고, 여러 게스트가 문제를 맞추어 음식을 먹는 방식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단지, 설 특집이 설 특집 답게 팔도 음식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4월 10일 방영된 첫 회는 봄을 맞이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나른해 지는 봄이라는 계절에 맞춘 '활력'을 주는 음식들이 첫 선을 보였다.

함께 하는 게스트들의 면면도 달라졌다. 설 특집에서 보조 mc였던 강민경 대신에, 장항선이 대령 숙수로서 왕인 신동엽의 옆에 자리잡고 예의 구성진 목소리로 음식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설 특집에서 함께 했던 김준현과 박신혜가 양 진영의 대표로 굳건하게 자리잡은 것과 달리, 설특집에서 함께 했던 김신영, 최양락, 홍진영, 김종민 등 대신에, 김준호, 신보라, 한상진, 보라가 양 진영에 합류함으로써 설특집의 산만함을 정돈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밥상의 신>은 이미 설 특집에서 동시간대 매번 명절마다 인기를 끌었던 mbc의 <아이돌 풋살 양궁 선수권 대회>와,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스타 vs. 국민 도전자 페이스 오프>를 누르고 동시간대 1위로 기선을 제압했었다. 그에 이어 목요일 저녁 8시 55분에 편성된 <밥상의 신>은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순항을 할 듯이 보인다. 

그에 반해 mbc의 <컬투의 어처구니>는 방송 마지막, 컬투와 mc 최희가 다시 만나고싶어요를 간절하게 소망하듯 mbc가 이 프로그램에 이어 3주동안 방영될 파일럿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운명이다. 다음 주에 방영될 강호동의 <별바라기>와 전현무의 <연애 고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컬투의 어처구니>는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프로그램의 제목인 어처구니에 대한 해석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너무나 예상 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히다는 어처구니란 단어의 뜻에 맞게 봉만대, 김동현, 박철 등의 여섯 어처구니 헌터들이 소개하는 세상의 이상하고 특이한 현상과 사람들에 대한 소개 프로그램이다. 

그 특징에 맞게 첫 파일럿 프로그램에 소개된 내용은 이미 sns를 통해 유명해진 포항의 폭탄주 제조 아줌마에서 부터, 세계 7대 인형녀 중 한 사람인 우크라이나의 인형녀 아나스타샤, 고려 시대 공부 비버에서 부터 오늘날의 공부 감옥, 그리고 세계 최대의 피자에, 7000 만원에 상당하는 운석 등까지 다양한 분야의 희한한 것들이 소개되었다. 

사실 <컬투의 어처구니>는 새로운 명칭을 달고 등장했지만 프로그램의 컨셉은 2월 28일 종영된 매주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8시 55분에 방영되었던 <컬투의 베란다 쇼>를 압축시켜놓은 듯했다. 내용으로 따지자면 고려 시대 이규보의 공부 비법이나, 운석 에피소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연상되었고, 우크라이나 인형녀는 역시나 종영된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등장했을 법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sns에서 화자되는 폭탄주 제조 아줌마의 등장은, 단 몇 회만에 종영한 tvn의 <공유 tv 좋아요>가 떠올려 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내용을 다루었던 <컬투 베란다 쇼>의 엑기스 버전이랄까. 하지만, 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화룡점정을 모아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컬투 어처구니>는 산만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닥터 후의 전화 박스 깜짝쇼가 무색하리만치. 

게다가 함께 한 어처구니 헌터들의 면면도 파일럿이라는 시험대에 어울렸는가 질문해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미 <라디오 스타>를 통해 그 예능감을 뽐냈던 봉만대 감독을 제외하고는, 박철, 김창렬 등은 재밌지만 신선하지 않았고, <마녀 사냥>에서 펄펄 날던 곽정은이나 ufc 선수 김동현은 안타깝게도 어처구니 헌터라기엔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사진; 뉴스엔 )

물론 익숙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은 <컬투의 어처구니>만은 아니다. <밥상의 신> 역시 설 특집 <밥상의 신>을 보지 않았더라도, 서로 편을 갈라 음식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고, 맞춘 편만 음식을 맛보는 먹방을 선보이는 방식이 새롭기 보다는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먹방과, 그것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고, 이긴 편만 먹으며 의기양양하는 그 방식의 친숙함이, 결국 돌고 돌아 뻔한 음식들임에도 <생생 정보통>의 먹방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처럼, 그 시간대의 <밥상의 신>에겐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내용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이미 호흡을 함께 했던 김준현, 김준호의 콤비는 신선하지 않았지만, <개그콘서트>에 이어 <인간의 조건>을 함께 했던 환상의 호흡은 <밥상의 신>의 예능적 재미를 한껏 부추겨 주었다. 상대편 박신혜, 한상진, 보라는 개그맨들 팀만큼 재미를 주지는 않았지만, 신선한 면모와 진지함으로 <밥상의 신>의 균형추를 맞춘다. 

단지 그 익숙한 것들이, 8시 50분이라는 시간에 안착함으로써 익숙하지만, 그 시간대에 큰 무리없이 어울릴만한 것들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컬투의 어처구니>는 과연 이 프로그램이 다음주 강호동, 그 다음 주 전현무를 상대로 승산이 있을 것인가에서 부터, 만약에 고정이 된다해도 유재석의 <해피 투게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데 의문 부호가 찍힌다. 차라리 그 전에 하던 대로, 8시 55분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잡다하지만 저런 신기한 내용들을 관심있어할 누군가를 호청자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깐 아쉬움이 들었다. 그저 살벌한 목요 예능의 서바이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내용에 걸맞는 제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컬투 어처구니>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11. 02:24

자, 문제 하나 풀어보시라.

얼마전 종영한 kbs2<태양은 가득히>, 현재 방영중인 sbs의 <쓰리데이즈>, 그리고 새로이 시작한 kbs2의 <골든 크로스> 의 공통점은?
바로 배우 이대연이다. 극 중 이대연은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 그리고 이제 <골든 크로스>에서 김강우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것도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의 인생의 궤도를 바꿔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진; 리뷰스타)

<태양은 가득히>에서 배우 이대연이 분한 정도준(이대연 분)은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사기꾼으로 그로 인해 자신은 목숨을 잃고 고시에 합격한 아들 정세로(윤계상)마저 살인 누명을 쓰고 복수에 칼을 가는 인물로 변모시켜 버린다. 
<쓰리데이즈>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이대연 분)은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거대한 트럭에 부딪혀 비명횡사한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관이었던 그의 아들 한태경은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가면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그리고 <골든 크로스>의 오프닝에서 강도윤(김강우 분)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 분)은 친딸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예비 검사인 아들의 삶을 180도 급전락시키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와 달리,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에서 이대연의 역할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쓰리데이즈>의 한기준 수석과, <골든 크로스>의 강주완은 이 두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 현실의 모순을 그 자신이 고스란히 품어 안은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시작된 <쓰리데이즈>는 이제 11회를 맞이하면서,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저 대통령의 암살범을 찾으면 되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과거 대통령이 개입된 양진리 주민 학살 사건이라는 과거사의 잔상이 드라마를 뒤덮고, 거기에 이어, 이제 다시 오늘에 다시 그 양진리 사건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제 2의 양진리 사건이 벌어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극중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은 과거 양진리 사건 당시 의도치 않게 자금 전달책을 맡았던 인물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16년 동안 줄기차게 매달린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가 대통령의 특검 발표를 앞에 두고, 그간 작성한 조작되지 않은 진짜, '기밀 서류 98'을 특검에 전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제 11회 드라마는 그저 남북의 협잡으로 인한 양진리 사건이, 사실은 김도진이라는 재벌과 그와 결탁한 팔콘 등이 무지막지한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획책한 사건이라는 것을 밝힌다. 드라마는 밝힌다.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던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상위 1%의 가진 자들에게 무한 배팅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드라마에서처럼 다시 언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폭발물을 터트리는 테러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밝힌다. 즉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의 국민이지만, 그 나라를 그저 이용가치만으로 판단하는 소수의 누군가에겐 그저 굴려먹을 판돈 정도로 취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쓰리데이즈>를 통해 단순명쾌하게 학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극중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재벌 개혁을 주창하던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기준이 당연히 과거의 양진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런 일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의 재연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 했을 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쓰리데이즈>가  IMF를 다루었다면, <골든 크로스>가 딛고 있는 현실은 그보다 조금 더 2014년에 가깝다. 
극 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은 과거 은행에 근무하다, 정부의 부실 은행 정리 과정에서 해고된 아버지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상고 출신임에도 회계 전문가로 대접받는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성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은 어머니의 가게를 위해 25억만 대출해 오라고 닥달하고, 은행에선 눈 한번 감아주면 50억짜리 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골든 크로스> 역시 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바로 드라마 속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국장 서동하(정보석 분) 등 상위 1%의 그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의 입맛에 따라멀쩡하던 은행도 하루 아침에 부실 은행이 되어 그 은행에 근무하던 직원들의 밥그릇이 날아가고, 또 다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서류를 조작하여 그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배경으로 삼는다. 
극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 캐릭터는 상징적이다. 허구헌 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가장 무능한 가장으로 대접받고, 심지어 아들에게 그깟 돈 하나 못구해 오냐며 대놓고 다그침을 당하는 처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구지책이 누군가에게 가장 만만한 미끼로 여겨질 뿐이다. 그는 자신이 무단횡단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 하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요, 기만이다. 

(사진; 뉴스엔)

현실의 우리들을 규정하는 건 바로 우리들의 밥그릇, 먹고사는 문제이다. 그러나,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는 말한다. 당신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저 위쪽의 누군가는 그런 당신들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며 당신들의 밥그릇을 가지고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의 암살 음모가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것이 제2의 양진리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되풀이 되는 제 2의 IMF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또한 <골든 크로스>의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서동하의 직책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이라는 것 역시 정경 유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우리가 골치 아파하는 정치가 귀결되는 곳은 나의 밥그릇이라고 드라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덕분에 <쓰리데이즈>는 딱딱한 정치적 설명과 그 배경이 되는 경제적 해석을 논하느라, 드라마가 건조하다. 상위 1%의 협잡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강주완 일가의 몰락을 그리는 <골든 크로스> 역시 어둡기 그지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재벌가 자녀들의 사랑 놀음과, 외계에서 온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배우에 눈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쓰리데이즈>나 <골든 크로스>는 역부족이다. 덕분에 시청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의미를 단지 시청률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시청률이 좋기로 치자면야, 막장 오브 막장의 진수를 보여준 <왕가네 식구들>만한 드라마가 어디 있겠는가. 해외의 인기? 지금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쓰리데이즈>에 대해 한국에서 막장이나 로코가 아닌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느냐 라는 반응이 등장하고 있다. 그간 한국 드라마가 잘 먹히는 몇몇 장르에 한정된 뻔한 상품이었다면, <쓰리데이즈>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새롭게 재평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이 보는, 잘 팔리는 것만 하다보면, 결국 매양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누구네집 쌈박질이요, 누구랑 누가 사귀는 이야기 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또 세상은 IMF를 반복할 수도, 은행 부실이 재연되어 이번엔 내 밥 그릇이 날아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재미없다 하지말고, 못알아 먹겠다 하지 말고, 성의있게 드라마가 우리 현실에 대해 말을 할 때 좀 귀 기울여 보자. 그깟 결국 떨어지고 말 벚꽃에 미혹되지 말고. 

중국 정법 대학 교수는 <쓰리데이즈>가 만들어 지는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그것이 곧 한국적 정치 상황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라는 웨이보 멘션을 날렸다.  낯 부끄러운 자긍심이라도, 시청률에 휘돌리지 않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좋은 드라마가 자꾸 만들어 지길 바란다. 막장도 자꾸 보면 중독되듯이, 딱딱한 드라마도 자꾸 보다보면 친근해 진다, 더불어 정신도 번쩍 든다. 금상첨화다. 


by meditator 2014. 4. 10. 15:54

4월 9일 방영된 11회 중반,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아직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있는 이차영 경호관을 그의 동료 한태경이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장면에 회상씬 하나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차영과 한태경이 함께 보냈던 지난 시간들, 혹시나 이 둘 사이에 동료 이상의 감정이 생겨났을 지도 모를 과거의 어떤 해프닝들이 한태경의 눈빛 저 너머로 흘러나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단호하게 그런 장면을 배제한다. 오히려 이차영이 총을 맞은 그 순간, 정신을 잃어가는 그녀를 한태경이 부등켜 안았을 때 등장한 회상씬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실수로 대통령에게 가야하는 소중한 서류를 놓쳐서 그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이중 스파이가 되어야 했던 이차영의 그 순간이 삽입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병실에서 정신이 돌아온 이차영은 말한다.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나의 일을 한 것이니,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그래서 더 애닮다. 한참 사랑도 하고, 젊음을 만끽해야 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이. 

'쓰리데이즈' 박유천이 손현주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 SBS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캡처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와 다르게 없는 것이 많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 10여 회가 지났는데, 주인공들은 밥 한끼 편하게 먹은 적이 없다. 한태경이 먹은 거라곤, 깡소주에, 겨우 달걀 하나? 그 흔하게 등장하는 멋진 남자 주인공들이 흔히 하는 샤워기 아래에서 고뇌하는 장면 따위도 없다. 며칠이 지났는데, 주인공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자는지 걱정이 될만큼. 심지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에서, 참모총장, 비서진까지 모두 싱글인 듯 싶다. 함봉수 경호실장은 경호관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일신의 안녕을 포기했고, 신규진 비서실장은 정권을 안녕하게 만들기 위해 워커홀릭이 되었다. 도무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요기꺼리나, 여담으로 덧붙일 재미라곤 없다. 

대신 <쓰리데이즈>에는 다른 드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신념!'
자기와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나, 입신양명에 대한 야망 대신, 그 이름도 이젠 생소한 '신념'이란 것이 묵직하게 자리잡는다. 

11회, 그토록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서, 대통령을 무너뜨리려고 애쓰던 신규진 비서실장이 죽었다. 
이 정권이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어렵게 이룬 정권이라며 배신에 치를 떨며, 스스로 참모총장을 죽이고, 김도진에게 비밀문서를 갖다 바치던 그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명예로인 죽음을 맞았다. 

처음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를 소개할 때, 출연진들이 말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이해가 갈리며 또 함께 하게 되는 드라마라고. 
그리고 그런 애초의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죽어간다. 그래서 묘하게도, 신념을 지키며 죽어간 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난다. 함봉수 실장이 그랬듯이, 신규진 비서실장도 그렇다. 

처음, 대통령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경호실장이던 함봉수가 대통령을 저격한 것도,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간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암살범이 되었었다. 
신규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신규진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허사가 아니듯, 그저 대통령이나 되고 싶었던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정말 좋은 정치를 하고 싶었던 신념에서 움직였던 인물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한다. 이동휘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눈 꾹 감고 대통령이 되어 속죄하려 했듯이, 신규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사했던 전국 각지에서 사라진 폭발물의 조사 자료가, 그의 죽음 이후,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움직일 힘이 된다. 그가 죽어가면 남긴, 자신과 대통령은 다르다는 그 말의 의미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게 명치를 울린다. 

쓰리데이즈
(사진; 텐아시아)

11회의 <쓰리데이즈>에 대해 드라마의 만듦새를 가지고 역시나 왈가왈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1회는, 그런 것들이 걸리적거리지 않을 만큼, 깊은 감동을 남긴다. 

특히나, 법과 수호를 지킨다던 대통령이, 이차영을 사지로 몰아넣는 무리수를 썼던 사실을 수긍하기 힘들었던 한태경이, 국무회의실에 홀로 앉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향해 이제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마도 오래오래 회자될, 명장면이 될 것이다. 

뻔히 이차영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무리수를 써가면서도, 다시 팔콘의 개가 되겠다는 속임수를 써가면서도 눈 앞에 닥친 위험을 피해보려 했던 대통령, 하지만, 결국은 홀로 국무회의실을 지켜야 하는, 그래서 그곳을 찾은 특검과 한태경에게 비로소 속내를 비추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는 단 두 사람 특검과 한태경.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깊은 곳의 그 어떤 것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저 드라마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먹고 사느라 잊었던,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신념'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드라마는 그 어떤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1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단어를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해 묵묵히 달려온 것이다. 덕분에, 11회를 통해 드러난 이 주제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고뇌에 어느덧 보는 시청자들조차  전염되었다. 잊고 살았던 그 단어가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4. 4. 10. 03:06

kbs가 준비한 또 다른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가 첫 선을 보였다. 2주에 걸쳐 선보였던 <미스터 피터팬>에 이어 또 하나의 남자 예능이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선포한 <나는 남자다>는 파일럿으로 방영된 첫 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남중, 남고, 공대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남자 250명을 스튜디오에 모아 놓았다. 거기에 mc도 유재석을 필두로 해서, 노홍철, 장동민, 임원희, 허경환 까지 다섯 명의 남자들만으로 이루어 졌다.

거기에 첫 번째 게스트 역시나 공대를 다니고 있는 임시완이, izi의 응급실을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공대를 다니면 미팅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다는 등 남자들의 심정을 담은 곡으로 부르며 나타나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다음 게스트 고유진은 250명 남자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 endless를 부르며 등장해 거의 교주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지가 등장하자, mc 유재석의 진정하라는 소리가 묻힐 만큼 포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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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뉴스)

쇼의 시작과 함께 장동민이 말했다. 마치 분위기가 306 보충대 같다고. 그보다 <나는 남자다>를 대변할 적절한 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처음 훈련소를 들어가는 그때처럼 서로가 낯설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자리는 더 낯설었던 250명의 남자들이,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훈련소 동기들처럼 친밀해져 간다. 그리고, 유재석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멘트를 하자, 처음에 남자들만 모여 있다고 징그러워 하던 그 남자들이 40여일 간의 지긋지긋한 훈련소를 마침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헤어진다는 그 사실하나 만으로도 부등켜 안고 서운해 하던 그 심정이 되어 아쉬움을 드러낸다. 

굳이 남자들만의 소셜 클럽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남중, 남고, 공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250명의 남자들과 보낸 한 시간 여의 <나는 남자다>를 지켜보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어떤 정서로,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첫 시도로써 남중, 남고, 공대라는 컨셉은 영리하다.

물론 파일럿으로 선보인 <나는 남자다>는 공중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특정한 타겟층을 대상으로 한 예능이지만, 프로그램 초반에 중복하여 언급하고 있듯이, <나는 남자다>는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오히려 여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각자의 닉네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부터 소소한 재미가 시작되더니, 실제 endless를 열창하는 모습이나, 수지를 보고 넋이 나갈 듯한 남자들의 모습은 생경해서, 혹은 익히 잘 알아서 재미가 있었다. '고래'를 잡거나, '첫사랑과의 스킨쉽' 이야기는 뻔한 듯 했지만,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재미가 생겨났다. 마지막에 사진으로만 뽑은 킹카는, 남자들의 쇼에서도 결국은 킹카 타령인가 했는데, 사진과 다른 출연자의 면면이 화룡점정이 되었다. 

또한 일부 평론가가 남자들의 예능이 결국 19금을 지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중간, '고래'나, '야동' 등 19금을 연상할 만한 내용이 나왔지만, 그 누구보다 그런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왔던 유재석은 결코 이야기를 찌질한 남자을의 뒷담화로 넘기지 않은 선의 재미로 요리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그저 그런 이야기나 할 것이라는 편견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파일럿 <나는 남자다>는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자다>의 매력은, 굳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지 않더라도, 동성의 남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면서, 무르익어가는 그 분위기라 할 것이다. 마치 남고의 오락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쭈볏쭈볏하던 방청객들이 나중에는 서로서로 손을 들며 프로그램과 어우러져 즐기는데서 오는 그 정서가 가장 강점이다. 연예인들이 모여 제 아무리 극한의 리얼리티를 해도 뽑아낼 수 없는, 월요일 밤의 강자<안녕하세요>를 이끄는 바로 그 정서 말이다. 

(사진; osen)

그런 <나는 남자다>의 정서를 이끌어 낸 1등 공신은 역시나 유재석이다. 
최근 신동엽이 각종 토크쇼를 통해 과거의 전성기 이상의 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되돌아 보건대, 유재석 역시 <놀러와> 등을 통해 다수의 일반인 게스트 들과 함께 발군의 능력을 뽐냈던 mc였다. 그런 유재석이기에, 모처럼 일반인 250명과의 소셜 클럽에서 역시나 그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그간 소모되지 않았던 유재석의 또 다른 장기를 맘껏 뽐내 보였다. 
노홍철은 너무 익숙하고, 장동민은 늘 자신이 하던 대로 하고, 허경환은 세련되었지만 남자들에겐 무엇을 해도 비호감이고, 임원희는 아직 굳어있지만, 그런 보조 mc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250명의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유재석 혼자로도 너끈했다. 또한 거기에 덧붙여, 마치 유재석과 연출진의 쌍두마차인 듯, 유재석이 던지고, 카메라가 캐취해 내는 식의 섬세한 연출 방식 역시 기대해 볼만한 요소다. 

이미 케이블 등에서 자동차나, 패션 등의 소재로 남자들의 예능이 순항 한 지 오래되었다. 19금의 이야기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덧붙여, 프로그램 초반 유재석이 실토하듯이, 공중파 라는 한계(?)를 지닌 남자들의 예능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 프로그램<나는 남자다>는 19금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모든 성에게 열려있지 않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이라도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아마도 순조롭게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지만, 첫 회에 이미 많은 남자들의 보편적 정서가 다 등장해 버리지 않았나 싶은게,  과연, 첫 회에서 등장했던 남자라서, 혹은 남자들만의 그 주제를 매회 신선하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유재석이라는 mc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의 고유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라는 점은 숙제로 남겨두고 싶다. 


by meditator 2014. 4. 10. 02:06

10회,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무진으로 떠난 김수현(이보영 분)과 기동찬(조승우 분)은 딸 샛별이 스네이크의 테오(노민우 분)의 집에서 찾은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해 추적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정을 죽인 범인이 기동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사진 속 누군가가 수정을 죽였으며, 그 사실을 덮기 위해 지금의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드디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가 싶었던 드라마는 10회 말 수현의 집에 뜬금없이 등장한 주민아(김진희 분)의 샛별이 가해 및 자해 소동으로 궤도를 이탈한다. 졸지에 주민아의 상해범으로 경찰에 잡힐 뻔한 수현은 딸 샛별을 데리고 친정 어머니가 있는 강릉까지 가게 된 것이다. 미리 친정 어머니를 매수(?)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수현은 정신병원 행이 되어버렸고, 갑자기 등장한 검은 무리 사내들을 피해 샛별과 외할머니는 하고많은 차 중에서 냉동 탑차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간 타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해 왔던 냉동탑차의 클리셰는 아니나 다를까 외할머니를 사경에 헤매게 만들었고, 어린 소녀 샛별이를 맥가이버로 탄생시켰다. 제 아무리 외할머니가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한들, 외할머니가 장시간 냉동탑차에 갇힌 덕분에 정신을 잃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어린 샛별이는 기력이 쇠진하기는 커녕 기동찬과 게임을 하며, 그의 지시에 따라 해물 중 문어를 골라, 가지고 있는 라이터를 이용해 냉동 탑차 문을 여는 신기를 선보인다. 물론, 탑차 구멍에 문어 먹물을 넣고, 그것이 어는 것을 이용해 탑차 문을 여는 방식은 신기했다. 하지만, 단 한 순간에 먹물이 얼어버릴 정도의 상황에 여전히 쌩쌩한 샛별이의 상황은 조소를 금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회에 범인들의 윤곽을 거의 잡아가는 듯한 드라마에서 뜬금없이 이런 장면을 넣은 이유을 알 수 없게 만든 회차였다.

그리고 12회, 마치 지난 회에 한 바퀴 에돌았던 이야기를 보상이라도 하는 듯 단 한 회만에 <신의 선물-14일>은 일사천리로 많은 사건들을 해결했다. 그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라는 시청자들의 추궁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샛별이가 납치 된 이후 엄마 수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동성있게, 그리고 기민하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대통령을 만나 사진을 쥐언 준것이 그저, 딸을 잃고 정신나간 엄마의 해프닝이 아니라, 설사 그 사건을 공표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에게 쥐어준 이상 사건을 조사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포석을 깔 정도의 '셜록 홈즈' 저리 가라는 수준의 두뇌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전 샛별이가 죽음에 이르른 과거와 달리, 수현과, 그녀의 조력자 기동찬은 샛별이가 생방송을 하던 그 시간에 납치가 된 것이 아니며, 우여곡절 끝에 집에 까지 갔다가 다시 집을 나섰다가 사라졌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게 되었다. 또한 샛별이가 발견한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미쳤으며, 사진 속 인물 외에, 반지를 낀 의문이 인물이 또 한 사람 존재한다는 것을 일사천리로 알아내게 되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라 라고 하는 듯 한 회만에 많은 실마리를 풀어내고, 또 그것에 걸맞는 반지남의 등장이라는 깜짝쇼까지, 장르 드라마로서 풍성한 한 회를 12회 동안 보여주었다. 덕분에, 그간 기동찬 네 집에 들락날락거리던 추병우(신구 분) 회장의 비밀도 드러났고, 대통령의 미묘한 포지션도 밝혀 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수현이라는 캐릭터의 맹목적인 성격처럼 드라마는 늘 한쪽 궤도로만 직진한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가장 묘한 것이, 수현과 그녀의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이 샛별을 잃어버리기 까지 가장 사이가 좋아보이는 부부였음에도 드라마 상에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수현이 자신이 과거로 부터 돌아왔다는 고백을 한지훈이 믿어주지 않아서, 그리고 이어서 밝혀진 한지훈의 불륜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드라마는 12회에 몰아치기 위해, 11회에 장구한 궤도를 돌아오듯, 마지막 깜짝 반전쇼를 준비하기 위해 히든 카드로 한지훈을 매번 아낀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샛별이가 사라진 순간에도, 자기 핸드폰에 숨겨진 번호와 통화를 시도하며, 모든 사건의 해결 현장에서 멀어진다. 정작 수현도 샛별이가 공개 수배 시간에 납치 되지 않은 걸 알아내고, 그 시간에 그런 녹음 방송을 내보낼 이유가 있었음에 의문을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사고를 진척시키지 않는다. 그녀와 기동찬은 가장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 분주하지만 언제나 그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곳은 가장 허수인 듯한 지점이다. 12회가 모처럼 재미있었던 것은 그렇게 허수를 제거하던 그 두 사람이 모처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의 선물-14일>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을, 가장 멀리, 에돌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치 가족 간의 단절과 불신이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도 되는 듯,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신호와 말에 무지하다. 대신 아내는 아내대로 사건의 흔적을 쫓아 뛰어다니느라 바쁘고, 남편은 남편 대로 자신이 가진 사건의 실마리에 매달린다. 그래서 수현이 뛰어다니며 모든 허수를 제거하고, 마침내 사건의 실체에 얽어매어진 남편을 발견할 때까지, 시청자들은 두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 마치 한 송이 국화 꽃을 만나기 위해 봄부터 우는 소쩍새의 소리를 듣듯, 다음 주, 그리고 또 다음 주, 수현의 발로 뛰어다니며 해결해 가는 사건의 실체를 기다리기 위해, 눈 꾹 감고 남편 한지훈을 꿀떡 넘겨야 하는 것이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역시나 긴 호흡을 가진 장르 드라마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체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매회 긴박감 넘치게 장르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가 여실히 보여진다. 장르물에서 매회 깜짝쇼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마도 11회의 '문어의 난'과 같은 무리수가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토당토 않은 11회를 인내하니, 또 속시원한 12회가 떠억하고 등장하니, 이런 것이 또한 한국형 장르물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명품이라기 보다는 실험작에 가까운 <신의 선물-14일>이지만 부디 마지막까지 좌초하지 않고 순항하여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9. 02:34

도대체 왜 애초에 이 드라마의 제목을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라고 지었을까? 마지막 회까지, 이런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정세로는 한영원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젊은 청년 톰 리플리의 야망과 좌절을 다룬 영화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청년 톰 리플리가 자기 또래의,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달리 부호의 아들로, 멋진 요트와 아름다운 애인을 가진 청년 필립을 만나, 결국 그에 대한 질시를 못이겨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태양이 작렬하는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리로 그 이후 요트에 달린 시체가 발견되기 까지 청년 톰 리플리의 동인은 오로지 그의 야망이었고, 태양을 닮은 야망의 좌절과 그로 인한 살인에,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치명적인 그의 젊음에 빠져들어 버렸다.

KBS 월화드라마 복수에서 시작되는 사랑 태양은가득히 KBS2TV 매주 월/화 밤 10시 방송

하지만 굳이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와 동명의 제목을 건 <태양은 가득히>라는 드라마의 시작은 태양과 전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눈 쌓인 벌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고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눈 정세로(윤계상 분)로 시작된다. 타인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을 가지고자 했던 톰 리플리와 달리, 정세로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막내리고자 한다. 

그렇게 전혀 태양을 닮지 않은 정세로의 인생을 <태양은 가득히>는 내내 그려낸다. 작렬하는 태양이 빛나는  남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것도 잠시, 그의 아버지는 차에 치어 사경을 헤매고, 정세로는 한영원(한지혜 분)의 약혼자의 살인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박강재(조진웅 분)의 말만 믿고 한영원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정세로의 '복수 혈전'은 시작부터 삐끗거린다. 첫눈에 반해버린 한영원때문에 16회 내내 정세로는 복수심과, 사랑의 애증으로 내내 헤매어 버린다. 

드라마는 야심차게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을 내걸고 한영원과 그의 아버지 한태오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영원의 '벨 라페어'로 잠입하지만, 그의 사랑은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오히려 아버지 한태오의 야심에 희생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발목이 잡힌 처지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사경에 헤매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게 자신을 얽어매어 버린 악연에의 분노로 시작된 정세로의 복수전은 야망이라기엔 너무 취약했으며, 결국 복수라 하기에도 사랑에 발목 잡힌 이도저도 아닌 처지의 이야기로 둔갑해 버렸다. 심지어, 15회에 이르러, 그가 복수하려 했던 대상 한태오와 자신의 아버지 정도준(이대연 분)이 그리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세로는 그간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동의 근거를 상실한 채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박강재의 말만 믿고 복수를 한다 하더니, 이제 복수의 대상인 여자를 사랑한다 하여 복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버지가 나쁜 놈이니, 내가 대신 죽겠다고?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주인공이라니!

오히려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정세로를 이용해 먹으려 했던 박강재(조진웅 분)가 가장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와 유사한 캐릭터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 조차도, 결국 정세로에 대한 정에 못이겨, 그리고 재인(김유리 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결국 야망이 아닌,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증으로 점철된 16회였다.

당분간은 '태양'으로 시작되는 제목의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공중파의 드라마로써, 종편의 <밀회>보다도 낮은(물론 종편의 시청률 집계가 애초에 공중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시청률로 16회에 이르기까지 굴욕을 맛보았다.

(사진; 뉴스엔)

윤계상, 한지혜라는 두 주연 배우의 선택에 있어서, 그간 자신들이 해오던 역할보다 보다 폭넓은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정세로, 한영원이라는 캐릭터가 두 배우로 인해 보다 빛났는가 라는 점에선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김영철, 조진웅, 전미선 등 빛나는 조연들의 호연은 빛났지만,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왔는가 하면 그 역시 어디선가 이 배우들이 했던 이 비슷한 역이 떠오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수극도 아닌 것이, 애정물도 아닌 것이, 심지어 기업물도 아닌, 그 어디선가에서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는 그래서 보다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고, 다음엔 어떻게 될 것이 뻔한 그래서 정세로가 감옥에 가도, 죽음의 위기가 와도, 심지어 두 주인공이 헤어져도 다음에 예측되는 뻔한 힘이 떨어지는 이야기에 기인한 바는 가장 크다 할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곁들여, 시청자들은 뻔히 아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모른채 고민하고 고뇌하는 방식의 진부한 전개, 복수를 한다 하면서도, 신파적 감상주의에 휘감싸여있는 두 주인공을 견디어 내기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트렌디해졌달까. 나와 내 가족을 망가뜨린 사람과 기업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도한다고 다 <비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랴, 그 하는 과정과 사람의 문제라는 걸, <태양은 가득히>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태양은 가득히>가 낮은 시청률로 종영하게 됨으로써 공중파 드라마의 고민은 깊어졌다. 시청률 집계 산정의 근거 자체가 신빙성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는 판국에, <태양은 가득히>의 시청률만은 문제 삼는 건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화제성에 있어서 조차, 아직도 그 드라마가 하고 있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라면 분명 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더구나, jtbc의 <밀회>처럼 명확한 주시청층을 타겟으로 한 드라마들이 만들어 지는 상황에서, 세 개의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 속에서 균분 분할이 아니라, 몰아가는 시청률의 분포에서 공중파의 선택은 더 신중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신중함의 근거는, 어디선가 본듯한 드라마의 재탕은 결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시청률이 1위를 하지 않더라도, 매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신의 선물>처럼, 신선한 시도와 기획만이, 치욕스런 종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by meditator 2014. 4. 9. 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