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과 2일 그리고 7일 종합으로 방영된 <다큐 프라임>에는 두 가지의 죽음이 등장한다. 7부 마지막 식사와 8부 청춘, 고독사를 말하다가 그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승과 이별하는 죽음,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은 그가 살아온 삶에 따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가족에 따라 참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7부 '마지막 식사'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앞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환자도, 그리고 환자의 가족에게도, 그 순간은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가족간의 마지막 교감을 위해 마지막 식사가 준비된다. 


이혼 후 아들과 서로 의지해서 살아오다 암에 걸린 엄마,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놔두고 갈 엄마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은, 호스피스 요리사가 준비한 식사를 매개로 마지막 교감을 나눈다. 찾아온 다 큰 아들에게 베게춤에 두었던 오만원을 전해주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안쓰러워 했던 엄마도, 그런 엄마를 보낼 수 없었던 아들도 한 시름을 덜고, 이별을 준비할 마음의 자세가 생긴다. 
엄마와, 세 자녀를 두고 갈 40대의 가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고통보다도, 아버지로서 다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하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어렵게 결정한 제주도행, 그리고 엄마가 없을 때 아버지랑 함께 해먹던 비빔밥을 다시 해 먹으며 나눈 마지막 식사, 그리고 아이들의 스케치북 사랑 고백까지, 가족이 함께 나눈 시간이, 무거운 가장의 마지막 발걸음을 조금은 홀가분하게 해준다. 
고된 요리사의 길을 반대했던 부모님, 그런 부모님의 뜻을 꺽고 된 요리사의 길, 하지만, 텔레비젼 출연까지 하는 전성기는 찰라의 시간이 되고, 마흔 살의 그녀는 70대 부모 앞에서 죽음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다. 한 집에 살면서도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그렇게, 죽음 앞에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서운함이, 모처럼 다시 요리사가 되어 준비한 그녀의 만찬 앞에서 풀어지고, 아버지는 이제 딸을 보낼 수 있다. 

더 이상 이 세상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죽음'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을 함께 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가족에게 소중하다.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남겨진 사람들의 무게는 한결 덜어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시간, 그것이 '마지막 식사'의 미덕이다. 

그렇게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지만, 그 이별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식사'와 달리,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청춘, 고독사를 말하다'를 통해 전해진다. 국정 감사 기간, 2014 보건 복지부 국가 정책 자료집의 형태로 전달된 내용이, '청춘 고독사'를 통해 풀어진다. 

23개 대학 67명의 학생들이 206명의 무연고 죽음, 고독사를 추적한다. 주변 사람들조차 다시 끄집어내기 싫어하는 홀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저, 동료 학생들보다 더 많은 사연을 알아내어, 좋은 성과를 내야지 하며 시작했던, '청춘'들은, 취재를 하면 할 수록, 무연고 죽음을 통한 질문이 자신들에게로 향해져 고민스러워 한다. 

이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해 홀로 세상을 등진,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그 누구도 그의 시신조차 인수해 가지 않아, '사체 포기 각서'의 주인공이 되거나, 10년간 찾는 이 없어, 10년이 지나서야 땅에 묻힐 수 있는 고독사의 주인공들,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대학생 취재진들이 찾아나선 그들의 과거 행적, 하지만, 종종 취재 과정에 밝혀진 그들의 과거는 놀라움을 안긴다. 
노숙자로 부산 용두산 공원을 배회하다 죽어간 60대의 노숙자, 알고보니 그는 한때 멋쟁이 초등학교 교사였었다. 정년 퇴임후, 아내가 암 투병을 하다 죽고, 퇴직자금마저 날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숙의 생활이었다. 50대의 최운규씨는 한때 춘천에서 손꼽히는 기술자였다. imf가 그에게서 생활을 빼앗아 갔다.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머니 같은 외모의 오명희씨에겐 앨범 속에 생기발랄했던 20대가 있다. 
살기 바쁜 세상에서 한번 튕겨져 나온 그들은 쉽게 세상의 수레 바퀴에 엇물려 들어가지 못한 채 때론 술에 짙이겨진 채, 때론 병에 시달리다 홀로 세상을 등졌다. 


백골 상태로, 냄새를 통해 그의 죽음이 알려진 55세의 김영철씨에는 30년째 연락이 두절된 동생이 있긴 하다. 역시나 폐암에 허리 골절로 투병하다 부패 상태로 발견된 마흔 살의 중년 여성에게도 일찌기 소식이 끊긴 오빠가 있다. 서른 한 살에 집 앞에 쓰러져 이송 중 사망한 젊은이게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하지만 이제 돌아가버리신 어머님 한 분이 계셨다. 죽은 지 일주일 후 발견된 오십대의 중년에게는 역시나 돌아가신 아버님이 계셨다. 
그들에게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던 가족은 관계가 끊어지거나, 먼저 세상과 등졌다. 그렇게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잃어버린 그들은 쉽게 세상 속에 편입되지 못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죽음을 갈무리해줄 지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봐야, 뒤늦게 2013년 40번째 무연고 사망자라는 의미의, 12/40의 묘비가 있는 가묘를 찾아가 꽃 한 송이를 남겨줄 뿐.
미연고 사망자의 40%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노인보다, 50대의 중년이 많았고, 남자가 78% 이상인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의 내막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마다 이들 무연고 사망자가 증가 추세에 있으며, 그 연령대도 50대에서 40대, 30대로 점점 낮추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일한 가족의 끈이 끊어진 사람들은, 그 중에서 남자들은 쉽게 다른 관계를 다시 맺지 못한 채 세상에서 멀어져 간다. '눈을 감으면 내일을 걱정하는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오명희씨의 가계부에 씌여진 글씨들은, 그저 그들이 나태하거나 게을러서 세상에서 벗어난 것만이 아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취재하던 청춘들은, 막연하게 보았던 고독사에서, 외동이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신의 처지와, 아버지 한 사람에게 짐지워진 가족의 그림자를 느끼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 본다. 혼자일 수 있는 건, 내 주변의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라며, 가족의 존재를 다시금 되짚어 보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취재는 마무리된다.

죽음은 어찌되었든 슬프다. 하지만, 그 죽음의 주변이 어떤가에 따라, 가족의 존재와 상태에 따라, 아픈 죽음이 무게가 때론 조금 덜어질 수도, 혹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큐 프라임> 7,8부가 보여진다. 
가족의 해체를 논해지는 사회,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우리 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을 구제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가족'이란 걸, 죽음을 통해 설명해 내고 있다. 
그래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가족은, 유의미하다 못해, '험한 세상의 유일한 다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11월 17일부터, 12월 3일까지 총 9부의 '가족 쇼크'가 방영되었다. 
황망하게 아이들을 잃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우리 속의 이방인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상처받은 이 시대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족 쇼크'는 말문을 연다. 
그리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의 대안으로, '식구'로서의 대안적 가족을 모색해 보고,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며, 이 시대 부모 자식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마무리는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니어지는 죽음으로 맺는다. 호스피스 병동의 마지막 식사, 고독사의 사연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전히 우리에겐 가족이 절대적인 존재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여전히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9부, '엄마의 땅, 키리위나'는 파푸아뉴기니의 공동체에서 오늘의 가족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한다. 
대족장의 집 앞 창고에 수확한 얌의 1/3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대비해 놓는 키리위나 부족, 이들에게 가족은, 핵가족이 아니라, 부족 전체의 공동체를 뜻한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홀로 남겨진 노인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것이 키리위나가 말하는 대안적 가족의 형태다. 
문명이 세워진 이래, 남성 중심의 사회를 꾸려왔던 인간 사회가, 이제 가족의 위기와 붕괴 시기를 거치면서, 모계 중심의 원시 공동체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남성 중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계냐, 모계냐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2세대로 이루어진 허약한 핵가족이 아니라, 확대된 가족, 확산된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이 시대 가족 위기의 해법이라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면서도, 1인 가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 시점에 환타지 같은 해법같기도 하다. 하지만, 성산 공동체 등,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 모색되고 있는 공동체적 가족을 보면, 그리 불가능한 일만 같아보지만은 않는다. 한 사회에 살아가는 그 모두가, 가족의 품 안에서 보호받으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 '큰' 가족이, ebs 다큐 프라임의 결론이다. 



by meditator 2014. 12. 7. 19:16

2014년 12월 4일 국내 유일의 지역 평론가 그룹인 부산 영화 평론협회가 수여하는 '부산영평상' 시상식이 있었다. 지난 일년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총 13개 부문에서 수여하는 부산 영평상에서 장률 감독의 <경주>가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 평론가 협회가 수여하는 34회 영평상에서, 올해의 10대 영화와, 장률 감독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에 이은 성취이다. 
하지만, 영화 <경주>는 박해일과 신민아가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 이후, 6월 12일 조용히 개봉하고, 조용히 사라졌던 작품이다. 영화 평론가들이 인정한, <경주>를 그래서 아쉬워하며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자 한다. 

영화 <경주>는 어찌보면 제목이 다한 영화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되면, 제목 경주는 내내 영화를 지배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젖혀두게 된다. 왜? 그놈의 '춘화' 때문이다. 
영화 <경주>는 친한 형의 장례식 참석 차 한국을 찾은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 분)이 7년전 그와 보았던 춘화를 찾아 충동적으로 경주를 다시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죽음의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래서, 그의 아내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소문이 흥건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영화는, 홍상수와 같은 '화법'의 영화인가(?) 라는 의심을 들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상수 영화의 지식인적, 하지만 도무지 속내를 알 길 없는 북경대 교수 최현이 다짜고짜 '춘화'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화를 찾아서 간 미모의 여주인 공윤희(신민아 분)가 있는 찻집 아리솔에서 보이는 박해일의 행동도, 예의 홍상수 영화에서 이쁜 여주인을 넘보는 놈팽이 지식인의 그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하루 종일 찻집에서 몇 잔의 차를 마시며 무위도식하던 최현이 결국 공윤희의 술자리까지 쫓아가고, 마침내 그녀의 집까지 도착하는 여정에 이르면 더더욱, 의심은 깊어진다. 

STILLCUT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현이 지나치는, 그리고 최현과 공윤희가 밤마실을 간 경주의 풍경이다. 
2014년의 현재라기엔 현실감이 없는, 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그리고, 윤희의 말처럼, 창문을 열면 언제가 거기에 '능'이 존재하는, 삶은 정체되어 있고, 거기에 죽음이 함께 늘 공존하는 경주가, 내내 자신의 존재를 나지막히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자전거를 탄 최현을 통해, '아, 나도 저렇게 고즈넉한 경주를 자전거로 여행해 보고 싶다' 정도의 감상을 가지게 만들던 조용한 도시 경주는, 최현이 윤희의 집을 찾아들며, 전혀 다른 공기의 도시로 바뀐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예의 홍상수 식 긴듯 아닌듯하며 '남녀 상열지사'를 향해 가는가 싶었던 방향을 정반대로 튼다. 
찻집 여주인이라기엔 너무나 해맑아보였던, 그래서 최현이 '춘화'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걸로 그를 변태로 규정해도 이견이 없어 보였던 윤희에게는 홀로 지내는 집에 숨겨진 아픈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사연은 최현이 여행지 경주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와 딸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춘화'를 찾아헤맨 최현과 선배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창문을 열면 죽음을 담은 공간 능이 항상 거기에 보이듯, 영화는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장례식장, 고분의 도시 경주, 그리고 남편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여자 공윤희, 여행지에서 만난 모녀의 죽음, 그리고 선배와 함께 농했던 '춘화'를 찾아헤맨 최현의 속내까지, '해명'되어지지 않은,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경주>는 건넨다. 
그래서 가장 무료하게 시작된 경주의 여행은, 영화 말미에 가면 가장 둔중한, 죽음을 함유한 삶에 대한 고찰과 천착으로 귀결된다. 

2014년  12월2일자 한겨레의 이명수의 사람 그물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심리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이의 생일상차리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아이의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세상의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를 '무'로 돌리기에 급급하지만, 아직 아이와의 정신적 탯줄을 끊어내지 못한 엄마는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도 아이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위로를 받는다. 이명수는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잃고 '왜 살아야 하나'란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아이가 돌아올 시간 현관문을 열지 않고 버티는 시간, 이별과 슬픔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 치유라고. 

다시 영화<경주>로 돌아와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영화는 내내 죽음의 존재를 배경으로 깔면서도 능청스럽게 삶의 일상을 밀고 간다. 하지만, 밤이 드리워지고, 홀로 남은 윤희가 괴로워하듯, 죽음을 배제시킨 온전히 삶으로만 충만된 삶은,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더 고통이다. 더구나 영화 속 죽음들은 '병명'은 있되,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장률 감독은 말한다. 죽음은 결국 그렇다고. 
영화<경주>는 도시를 품은 드리워진 고분들을 통해 말한다. 죽음을 배제하지 말라고, 우리 곁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그리고 그건, 장례식장 조문이 아닌, 선배의 진심이 흘러든 '춘화'를 찾아들은 최현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잠시 만난 전 애인의 남편의 추적을 피해 허겁지겁 경주를 떠나는 최현의 행보로 마무리된다. 뭔가 사연을 이룰 것같았던 최현과 윤희의 사연도 최현 아내의 전화로 중지된 채그뿐이다. 삶은 여전히 그렇게, 속물적인 듯 지속된다. 하지만, 즉물적 삶의 창문을 열면, 거기 미처 해명되지 못한 채 숨쉬는 죽음이 있다. 현재 우리의 삶은 그렇다. 


by meditator 2014. 12. 5. 18:07

'학력이 뭐 대단한 건가, 진실하게 살면되지

 인생,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구나!'

이 시는 불과 2년 전 처음 한글을 배운 오승주(68세)가 할머니가 쓴 시이다. 오승주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마음의 그림자를 옮겨 적어, 고단한 인생, 원망스러웠던 과거와 비로소 이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인생에 자신감이 생겼고, 그 어느 때보다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에게조차 한글을 모르는 걸 숨겼던 오승주 할머니를 변화시켰을까? 
바로 '인문학'이다. 라틴어로 휴마니타스(humanitas),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kbs1에서는 12월 2,3,4일, 밤 11시 40분, <세상을 바꾸는 생각 후마니타스>를 3회에 걸쳐 방영, 이 시대 인문학의 존재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세상을 바꾸는 생각 후마니타스>의 1부는 '우리 동네 소크라테스'이다. 경북 칠곡군의 작은 마을 학상리와 어로 1리의 인문학적 변화를 다큐에 담는다. 
2004년 평생 학습 도시로 지정된 칠곡군의 정책에 따라, 칠곡군의 마을들은, 각 마을 별 특색을 살려, '인문학적' 학습들을 지속해 왔고, 그 결과 '기적'이라 할만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흔히 마을 회관, 노인정이라고 하면, 노인분들이 모여, 낮이면 심심풀이 화투나 치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학상리의 마을 회관은 '카페'가 되었다. 어로1리는 '학당'이다. 
이곳에서 벼농사를 짓던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글을 배우고, 시를 짓고, 연극을 한다. 이를 통해, 고달팠던 인생을 진솔하게 되돌아 보고,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8살에 식모살이를 시작했던 72세의 박정숙 할머니는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 없는' 인문학을 배우면서, 그녀 자신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마을 해설사'란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여전히 '도서관'을 드나들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명랑 소녀 성공기'란 시집에 담긴 그녀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아니라, 자부심의 결정체다. '인문학'이 없었다면 도달 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2부에서는 '인문학으로 상상하다'를 통해 우리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의 '인문학'을 다룬다.
샤워기 제조업체 류인식 대표는 시간이 나면 경기도 도자 박물관을 찾아, 이제는 너무 봐서 낡은 해설서를 보며, 전시물을 감상한다. 매주 월요일 서른 명 남짓의 직원을 모아놓고 시을 읽고 인문 공부를 한다. 그런가 하면 매주 수요일 ceo를 위한 인문학 교실도 거르지 않는다. 사무실 한 켠에 빼곡이 꼿혀있는 낡은 시집이 보여주듯, 인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사업에 대한 그와 그의 직원들의 생각을 전향적으로 변화시켰다. 덕분에, 샤워기라는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독특한 디자인과 다양한 성능을 구비한 샤워기로, 1억불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컬럼비아 대학 영문학과 수석 졸업의 영광을 누린 박정현의 인문학 사랑도 여전하다. 일찌기 '빨강 머리 앤'으로 부터 시작된 그녀의 영문학에 대한 사랑은, 손때가 묻은 톨킨의 저서로 이어지고, 교포 친구들과 하는 독서모임으로 이어진다. 이런 가수의 인문학 사랑은, 팬클럽의 '박정현이 읽으면 우리도 읽는다'라는 취지의 '박정현 북클럽' 탄생을 낳는다. 그녀에게 '문학에 대한 사랑'은 거창한 영감이라기 보다는, 익숙한 삶의 일부분이자, 늘 내면 세계를 자극하는 상상력이다. 
실크로드를 떠돌며 변경의 삶을 다룬 사진 작가 이상엽은 말한다. 사진은 찍는 사진기와 기술에 따라 더 잘 찍을 수는 있찌만, 무엇을 찍었는가 그 핵심은, 대상을 잘 알고 모르는가에 따라 차이를 이룬다고. 그래서 이상엽은 자신이 찍는 피사체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등 인문학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스포츠 월드

마지막 3부는, '인문학의 놀이터'를 통해 인문학을 잉태해내는 여러 도서관과 인문학 모임을 살핀다. 
우리 나라의 도서관 이용율을 oecd 여타 회원국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사느라 바쁘고, 이용 필요성을 구태여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택한 이유도 대부분 공부를 위해서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입시 준비나 취직 준비를 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 삶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주는 곳,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의 특색있는 도서관을 찾아본다. 핀란드의 도서관은 어릴 때부터 예술 교육을 담당하고, '시생성기'등, it 블루오션과 결합된, 재미있는 신세계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실업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된 영국의 도서관에서는 실업자들에게 필요한 지식은 물론, 그들을 위한 각종 취업 정보도 전해준다. 그런가 하면 이제 막 걸음마을 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매개로 한 각종 노래와 게임을 통해, 책에 친숙해 지도록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쇄락해 가는 도시 스코틀랜드의 부흥을 이룬 근거지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도서관이다. 경북 영주의 공공 도서관은 '길 위의 인문학'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고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 그 어느 곳이던 마다치 않는다. 
알랭 드 보통 등이 만든 '인생 학교'에서는, 상대방에게 거절하는 법 등 삶에는 구체적으로 필요한 인문학 강좌를 연다. 길담서원에서는 클래식강좌에서 부터,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는 그 무엇이든 '배움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시골 구석의 할머니에서 부터, 명사들, 그리고 해외 여러 곳을 누비며 찾아다닌 '인문학'의 흔적을 통해 다큐가 모색하고자 하는 것은, 왜 인문학일까? 하는 것이다. 식당을 하는 주부는 바쁜 틈틈이 소설 책을 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픈 남편과 생활고를 시달린 그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바로 그 '인문학'이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접한 할머니는 말한다. 먹고 사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인문학으로 인해 '삶의 내면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고,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을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행복하다고도. '쓸데없다'는 인문학이 삶의 의미를 재부여하고, 삶의 활기를 되찾아 준다. 사진작가 이상엽은, 그래서 인문학을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한 욕망과 갈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문학'을 통해,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찾고, 그 사람들이 모여, 쇄락해 가던 도시와 마을이 새로운 이름을 찾아간다. 

다큐를 통해 본 '인문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시를 짓고, 연극을 한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모티부로 한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왕이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인문학'이 가미된 사업은, 헌 옷을 새롭게 업사이클하여 패션을 만들고, 거리로 나선 학자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린다. 공익을 위한 건축물에 광고를 곁들여 사업이 되기도 한다. '사람사는 재미'가 바로 인문학이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극찬만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일찌기 '인문학 열풍'이전부터, 자신의 건축에 인문학적 사고를 결합해 온 건축가 승효상은, '열풍'과, '트렌드'가 된 인문학을 경고한다. 상업화된 인문학, 속물화된 인문학을 경계한다.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해줄 '인문학'은 필요하지만, '유행'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건, '유행'이 된, 트렌드가 된 인문학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 읽을 시간도 없는, 책 살 시간도 없는, 제 값 받고 책을 팔기 힘든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인문학 열풍'이라며, 그것을 다룬 다큐를, 드라마 끝나고, 예능이 끝나갈 밤 11시 40분이나 되어야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래서야, 인문학의 '人'자나 제대로 향유해 보겠는가. 


by meditator 2014. 12. 5. 11:30

'외딴 곳에 모인 다섯 쌍의 커플, 그들에겐 이상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건 바로, 본인의 연애 상대가 누군인지 숨기는 것!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던 그 혹은 그녀와의 낯선 3일이 시작된다'

스릴러 소설, 혹은, 라이어 게임의 한 단계와도 같은 이 문구는 새로 시작한 jtbc의 예능<비밀 연애>의 기획의도이다. 프로그램의 부제도 '사라진 연인들'이라니, 무시무시하다. 

외딴 곳의 아름다운 팬션, 그 거실에 모인 다섯 명의 여자들, 딩동 벨이 울리고, 한 남자가  그녀들 앞에 나타난다. 그는 바로 사진을 통해 그녀들이 뽑은 호감 1순위, 1위를 한 그는 당당하게 소파에 앉은 다섯 여자 중 한 명을 선택해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가 선택한 그녀, 그녀가 그의 연인일까?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차례차례로 등장한 남자들이 한 명씩 여자를 선택하고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맞춰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그저, 사진을 보고, 그녀들이 떠올려 낸, 고지용, 강백호, 이적, 김지훈, 온유 등이 그들의 닉네임이 된다. 여자들도 다를 바 없다. 커플이 정해지고, 그녀 앞에 놓여진 이름표를 뒤집으니, 거기엔, 정니콜, 구하라, 박규리, 강지영, 한승연 등 다섯 카라 멤버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선남선녀들이 짝을 이뤘으니, <짝>이라도 찍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그들 중 누가 진짜 연인인지를 밝혀내라는게 미션이다.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 주고, 사연을 읽어가면서, 은연 중에 드러난 커플의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들 중 한 커플을 하루에 한 팀을 탈락시키는 것이 그날의 미션이다. 만약 커플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그들 중 한 사람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 떠나기 아쉬운 이유는? 상금, 바로 최후의 생존 커플 남겨진 천 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때문이다. 물론 커플에게만이다. 둘 중 한 사람만이 생존하면, 상금은 훨씬 줄어든다. 

tv리포트

덕분에, 선남선녀들이 새롭게 만나 한 커플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짝은 물론, 상대방 짝의 동정까지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고지용'을 안다는 이유를 들어, 예리하게 나이를 추적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떠보는 말도 불사하고, 어림짐작으로 눙쳐보는 건 예사다. 실제 하루를 보내고 나서 한 팀의 커플을 탈락시키는 시간이 되어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증거는 사소한 말 실수,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숨길 수 없었던 사소한 반응들이었다.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웠던 열 명의 남녀들을 기가 막히게, 자신이 아닌 실제 커플의 징후들을 예리하게 읽어냈다. 

첫 선을 보인, <비밀 연애>는 <짝>인가 싶었는데, 일반인들이 참가한 <지니어스 게임>에 가까웠다. 단지, 누가 커플인가를 밝혀내는가가 미션으로, 실제 연인들인 그들의 사랑이 게임의 화두가 되었을 뿐, 서로를 탐색하고, 속고 속이기 위해 진력하는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최종 우승 상금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연애를 하소연하는 사연에 대해 연애 상담을 하는가 싶으면서도, 서로 누가 진짜 연인인지 짝대기를 긋느라 여념이 없다. 용의자가 된 출연자가 가장 그럴듯하게 자신의 결백을 둘러대던 <크라임씬>과 계보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다. 드라마 <라이어 게임>, 그리고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져 시즌을 계속하고 있는 <지니어스 게임>의 일반인 버전, 연애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첫 회, <비밀 연애>를 보면서 든 첫 번 째 생각은, 천 만원의 상금은 어마어마하지만, 그걸 위해, 진짜 커플들이 자신들의 연애를 속이면서 이 게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어쩐지 씁쓸하다. 이미 첫 회에서 등장했지만, 카톡을 너무 자주 해 피곤하다든가, 모임이 너무 많아 만나니가 힘들다던가, 심지어 엄지 손가락으로 코를 쑤신다던가 하는 식의 연애 사연이 커플 자신들의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그리고 진짜 연애 상대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눈빛을 교환하는 그 이상의 미션이 주어질 수도 있는 그 상황을 선택한, '요즘'의 연애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녀 사냥>의 위조된 목소리로 연인의 사연을 들려주는 건 양반인가 싶다. 
연인이기에, 첫 번째 탈락한 커플에서도 보여지듯이, 떨어진 사람들이 오히려 홀가분해 하고, 자신들의 사랑은 속일 수 없었음을 자부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탈락해야, 더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이 묘한 게임의 우승 상금이 어느 커플에게 주어진다 해도, 자신들의 연애를 깜쪽같이 속인 그들이 정말 부러운 연인이 될까? 연인 같지 않아 주어진 천 만원의 상금, 이들의 연애를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가상의 스토리가 아닌, 진짜 자신들의 연애사를 속이면서까지 우승 상금을 거머쥐기 위해 달려가는 커플들의 해프닝은 리얼리티 쇼의 또 한번의 진화다. 하지만 어쩐지 웃픈 진화다. 드라마 <라이어 게임>의 매 단계 승자였고, 최종 우승자가 된 것은, 거짓말을 못하는, 그리고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남다정이었고, 그런 남다정을 둘러싼, 하우진과 강도영의 진실 게임은 바로 '진실'을 향해 가는 <라이어 게임>의 묘미였다. 속고 속이는 <지니어스 게임>이나, <크라임 씬>도 서로가 치열하게 속고 속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 가상의 게임이라는 것이 바람막이가 된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비밀 연애>는 그, 그녀들의 진짜 연애를 담보로 삼는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가 되고, 재미가 되지만, 그래서, 위험하고, 아쉽다. 그렇게 이젠 누군가의 연애사까지 담보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 만들어 져야 하나 하고. 재미로 하는 건데, 라지만, 재미로 그런거 까지 해? 라는 반문이 떠오르게 된다. 

<라이어 게임>, <지니어스 게임> 그리고 <크라임 씬>에, 이제 <비밀 연애>까지 '추리'와 '유추'라 프로그램의 관건이자, 재미라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 매개가 되는 건, 서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고 속여야'하는 그것이, tv  프로그램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세상의 가장 적나라한 속살을 드러내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묘미를 가지지만, 낱낱이 드러내는 속살들이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다. '속고 속이는' 인간의 한 속성이,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더욱 부각되고, 강조되는 것 같아 아쉬운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4. 11:11

12월 2일 8시 50분 kbs2tv를 통해 또 하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예능이 아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예능 못지 않게, 아니 종종 예능이 아냐? 할 정도로 재미지다. 바로 <발칙한 사물 이야기, 다빈치 노트>이다.

 

<발칙한 사물이야기, 다빈치 노트>는 인문학 토크쇼이다.

그런데 kbs의 인문학 토크쇼는 <발칙한 사물이야기, 다빈치 노트(이하 다빈치 노트)>가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방영되었던 <명작 스캔들>은 당시 인기있었던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와 조영남이라는 두 문화계 거두를 필두로 하여, 미술의 명작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를 풀어냈었다.

또한 , 김정운 교수는 같은 해 소설가 이외수씨와 함께, <두 남자의 수상한 쇼, 야동>이라는 야릇한 제목으로, 우리 시대의 다양한 화두를 '삐딱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내고자 한 바 있다.

이렇게 '인문학적 토크쇼'에 나름 전통을 가진 kbs가 이번엔 '사물'을 토크쇼의 주제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사물'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들로, 역시나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인문학계의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그 첫 번 째 인물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등을 통해, 광고에 인문학적 사고를 부여한 것으로 화제가 되고, 그의 책을 통해 젊은이들의 당대 멘토로 등장한 광고기획자 박웅현씨다.

그에 이어, 두번 째 인물은,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진화론'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과학 철학 교수 장대익씨다. 10 여년에 걸쳐 침팬지 언어를 터득한 그는, 다짜고짜 mc인 김민정 아나운서에게 침팬지의 언어로 인사하며 딱딱할 것이라는 학자의 선입관을 넘어선다.

다음의 인물은 그의 독특한 이름보다, 그의 일러스트가 더 우리에게 익숙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이다.

마지막 인물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의 성적 취향을 넘어서, 종횡무진 <마녀 사냥>을 비롯한 각종 토크쇼의 양념으로 그 입지를 톡톡히 다지고 있는 홍석천이다.

이렇게 광고, 학계, 미술, 그리고 연예계 까지 다양한 분야의 '핫'한 인물들을 모아, 하나의 사물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가고자 한다.

 

그런데 어쩐다. 네 명의 패널이 다 아저씨들인데, 파일럿으로 방영된 방송의 첫 번째 주제가 립스틱이다.

레드와 핑크 말고는 립스틱 색깔도 구분할 줄 모르는 네 명의 '아저씨'들이 '멘붕' 에 빠졌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그래서 <다빈치 노트>가 준비한 것은, 이렇게 인문학적 식견은 가졌지만, '남성'적 한계에 갇힌 패널들을 보충하기 위해, 모델 송해나, 방송인 김정민, 메이크업 아티스트 한우리, 뷰티 에디터 피현정이 등장했다.

이들은 때로는 '아저씨'들의 편협한 식견을 위협하고, 때로는 '인문학적'교감을 나누며, <다빈치 노트>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평균 길이 7cm, 필요에 따라 길어지며'라고 선정적인 소개로 시작한 립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애첩 퐁피두르 부인에서 부터, 세계 제 2차 대전까지 종횡무진 역사를 다루는가 하면, 카이스트 학생들을 상대로 립스틱을 바르기 전, 후의 여자에 대한 심리 실험을 진행하고, 남미의 연지 벌레 등 성분 분석까지, 립스틱을 매개로 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개발된 립스틱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대중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전쟁 통의 립스틱은, 남성들에게는 사기 진작의 효과로,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을 대신한 노동 인력으로서의 고됨을 달래주는 진정제라는 양면의 효과를 가졌었으며,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자부심과, 위로의 효과를 주는 제일의 화장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립스틱이라는 사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사회를 짚어보게 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주제가 립스틱이었던 관계로, 때로는 방송인 김정민이 진행했던 '겟잇뷰티'같기도 했고, 홍석천의 진한 농담이 흥건해지면, 졸지에 '마녀사냥'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웅현씨의 해박한 지식이 등장하면 'sbs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 人'이었다가, 장대익 교수의 진화론적 해석이 등장하면 흥미진진한 강의실이 되기도 하였다.

딱히 어느 한 성격을 고집한다기 보다는, '립스틱'이라는 주제로, 때로는 질펀한 농담이 오고가다, 진지하게 학문적인 분석을 해보고, 그런가 하면, 제시된 다큐 속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한다. 퐁피두르 부인의 립스틱을 가져다 달라는 유언을 단지 '미'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자기 존재 확인이라는 면을 짚어 보듯이, 재미와, 그 재미를 넘어선 촌철살인의 묘미를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어설픈 그 어떤 예능보다도 <다빈치 노트>는 재밌었고, 재미를 넘어선 지식을 선사한다. 그 지식이 물론, '수능'시험에 필요한 그 어떤 것은 아니지만, 웃고 떠들고 그만인 것을 넘어, 우리 주변의 사물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혜안을 선사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른바 '에듀테인먼트'의 전형적인 사례이자, 최근 다시 각광받고 있는 '스튜디오 토크쇼'와 '인문학'의 바람직한 결합이라 보여진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kbs2의 인문학적 토크쇼의 전통을 잘 이어가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2. 3. 10:01

12월 1일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 캠프)>에는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출연했다. 그의 말대로, '공황장애' 등 병적 장애와 사람들을 만나기 힘든 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힐링 캠프> 여타 출연자 중 가장 빠르게 두번 째 출연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 그의 빠른 출연에 대해 그는,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는 y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서 기업, 학교 등 각종 강연 청탁의 요구를 대신하는 자리로 <힐링 캠프>를 선택했다고 출연의 변을 대신하고 있다.

 

각종 강연의 초청 요구가 빗발쳤다는 양현석 대표의 말에 어울리게, 12월1일 <힐링 캠프>는 그 이전 강신주 편처럼, 다수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질의 응답을 받는 강연의 형식으로 이루어 졌다. 그 자신의 말대로, 일찌기 중학교 이래 춤에 빠져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책은 거의 '난독증' 수준인 하지만 당대 둘째 가라면 서운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대표와, 한 눈에 보기에도 대학 강의실을 고대로 옮겨 놓은 듯, 모범생의 분위기가 줄줄 흐르는 학생들의 '언밸런스'한 조합이라니!

 

거기에 경영학과 강의에서 나올 법한 질문이, 아니 언제나 그래서 이젠 제법 진부한, 성공 키워드 식는 무엇인가 라는 식의 질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양현석 대표는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가슴을 여전히 뛰게 만드는 설렘을 든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이력에 어울리게 '스펙'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도대체 왜 애초에 양현석 대표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스펙을 고민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린다. 심지어, 학점을 고민하는 디자인과 학생에게 이렇게 강의실에서 강의나 듣고 대기업에 취직을 고민하니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디자인 그룹이 없다는 말로 도발한다. 쭈뼛쭈볏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던 그의 말과 달리, 학생들의 어느 멘토링 강의에서나 나올 법한 뻔한 질문에, 돌직구를 날린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주식 1위, sm, jyp와 함께 어깨를 겨루다, 따지고 보면 올 한 해 가장 실속있는 성과를 올린 연예기획사의 대표 답게.

 


	'힐링캠프' 양현석, 사진=SBS '힐링캠프' 방송 캡처

(조선닷컴)

 

하지만 그의 그런 돌직구가 그저 편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yg 엔터테인먼트가 올 한 해 가장 풍성한 수확을 올린 것과 달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가장 많은 사건 사고의 당사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각종 사건 사고는, 그 사고를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일으켰다면 전혀 다른 형행 절차가 진행되었을 법한, 특별한 혜택을 입은 듯 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었던 것들이었다. 그런 연예인들의 소속사 대표로서, 그의 말대로 '사과' 한번 제대로 한적이 없는 그가, 당당하게 나와, 이 시대의 대표적 멘토로서 젊은이들 앞에서 성공을 논하고 있다니 충분히 껄끄러울만 하다.

 

그런 의혹의 시선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힐링 캠프>는, 아닌 양현석 대표는 기존의 <힐링 캠프> mc군단을 대신해, 그와 함께 <k팝스타>를 이끄는 유희열을 '일일 보조'로 등장시켜, 세간의 껄끄러운 질문을 대신하게 한다. 일일 보조 답게 학생들이 앉은 관객 석으로 자리를 옮긴 유희열은 대번에 손을 번쩍 들며, 사람들이 사실 궁금해 하는 그 질문을 던진다. 올 한 해 yg 엔터테인먼트의 잦은 사건 사고들, 그리고, 그 사건, 사고의 해결 과정에서 보여진 석연치 않은 의문들을, 날카롭게 한 치도 피해가지 않고 묻는다.

그리고 그런 유희열의 질문에, 양현석 대표는, 그간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사과의 자리 한번 마련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사과하고,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이들의 자질 부족을 시인하면서도,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마무리한다. 또 거기에 곁들인 집안 관련 특혜 논란은,  그 자신에게 부과된 경찰서 출두 명령서를 예를 들어 전혀 그런 '특혜'와 무관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제는 그 설득력에서 약빨이 다한 <힐링 캠프>의 mc 군단을 대신하여, 대중적으로 공신력을 얻고 있는 유희열이란 카드를 내밀며, 그의 입을 통해 가장 궁금해 하던 질문을 서슴없이 하게 만드는, '연출' 만으로도,  양현석, 아니 yg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마치 공신력 있는 해명 과정을 거친 듯 보이게 만들었다. 그저 인터넷이나,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이, 믿음직한 유희열이란 사람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만으로도, 마치 의혹은 의혹이 아닌게 되어 버리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사실, 유희열의 질문에, 양현석 대표의 사과는 여전히 요식 행위와 같았고, 한번 실수를 운운한 부분은 어쩐지 낯부끄러웠으며, 경찰서의 출두 명령서로 대신한 해명은 교묘한 형식 논리같았다.

 

<유나의 거리>에 출연했던 김옥빈은, 10년 전 한 토크쇼에 출연하여 신용 카드와 관련한 물색없는 대답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벽안시되었던 자신의 처지를, <유나의 거리> 속 전과자들의 처지를 대신하여 대답한다. 그로 부터 10년 동안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그와 관련된 발언을 하지 않은 그가, 여전히 경원시의 대상이 된 전과자들의 처지와 같았음을 하지만, 그들에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듯이, 자신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10년이 지난 이즈음에야 에둘러 말하고 있다.

아마도, 양현석 대표의, 한번 실수 병가지상사 라는 식의 '두둔'은 김옥빈과 같은 처지에나 어울릴 법한 상황이 아닐까. 여전히 당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들로 당당히 존재하는 그들에게, 젊은, 아직 서툰 그들의 한번 실수란 말로는 어쩐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형행 절차에 있어 한껏 특혜를 받은 듯한 그 과정에 이르면.

 

무엇보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 기획사의 대표가, 과연 이 시점에, 당대 청년들의 멘토로서, 굳이 두번 째 출연 기회를 <힐링 캠프>를 통해 얻은 것은, 그의 말대로 귀찮을 정도로 잦은 강연 청탁 기회로만 보이기보다는, 이른바, 논란을 공식화 함으로써 가져지는 유연 효과와, 립서비스 같은 '물타기' 효과를 노린 것은 아닌지 여전히 의혹의 눈길를 접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씁쓸한 것은, 이후 질문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현석 대표의 부동산 투자 비법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이외의 문어발 식 확장에 대한 관심에서 보여지듯이, 그 어떤 도덕적 물의에도 상관없는, 혹은, 설레임이란 말로 시작된 그의 사업적 화법과 논리적으로 전혀 궤를 같이 하지 않는, 사업적 영역에 대해서도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필기까지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쟁취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인 우리 사회 성공 신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물론 당대 최고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서 그가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혜안을 가진 것에 대한 배움은 중요하지만, 부동산 투자와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합리화라니, 이것이 한국적 '부'의 현주소인가 싶은 것이다.

 

양현석 대표의 여러 발언은 진솔해 보였다. 에둘러 말하지 못한다는 그의 성격처럼,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곧 객관적인 것은 분명 아니다.

강준만의 [감정 독재]를 보면, 그가 소개한 다수의 심리학적 이론의 기저에 깔린 것은, 인간은 자신이 겪은 상황은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 행동을 중심으로 냉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양현석 대표의 경우가 딱 그것이 아니었을까? 철물점을 하시던 아버지의 성실함을 배운, 그리고 타고난 감으로 승부수를 던져 오늘의 자리에 오른, 이제는 당대 최고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의 이야기들은, 어쩐지 수능 1위를 한 학생의, 그저 교과서를 보고 열심히 했어요 같은 발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미 당대 '권력'과 '권위'가 된 그의 조촐한, 그리고 도식적인, 때로는 아이러니한 성공기는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돌아서면 '진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꿈을 쫓다가는 굶어죽기 십상,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봐도 취직 조차 하기 힘든 불황과 청년 실업이 한껏 짖누르고 있는 청춘들에게, 입지전적인 그의 성공기와 도발적인 그의 선택들이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런지. 그리고 정말 그의 말대로 그런 담백한 성공 스토리만이 해법이었는지, 진짜 꿀딴지는 다른 곳에 숨겨 놓은 것은 아닌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했던 양현석 대표의 두번 째 <힐링 캠프>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쉬운 것은, 최근 <힐링 캠프>의 행보이다. <무르팍 도사>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각종 물의를 빚은 사람들의 '면죄부'를 주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사람들은 무르팍 도사의 청천벽력같은 질문을 그 언제부터인가, 면죄부를 향한 요식 행위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부터 <무르팍 도사>의 신기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힐링 캠프>도 마찬가지다. 이경규의 돌직구로 부족해서, 이제 유희열이란 대중의 신망을 얻은 이미지까지 동원한 돌직구들이, 진솔한 해명이 아닌, 누군가의 면죄부를 위한 요식 행위가 된다면, 그리고 그런 일들이 지난 번, 손연재의 출연처럼, 거짓 요식 행위로 판명된다면, <힐링 캠프> 스스로 어쩌면 이미 다한 생명력을 더욱 고사시키는 길을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by meditator 2014. 12. 2. 10:48

다이어트와 성형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잘 나가는 사업이 되었다. 이미 충분히 말라보이는 여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성형은 이제 젊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년의 여성도, 남성도, 젊은 남성도, 이제 '시술' 정도는 성형이 아니라 입을 모아 말한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아름다움'이 이 시대 '적자 생존'에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sbs스페셜은 창사 특집으로, 우리 시대가 골몰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첫번 째 서두를 땐 것은, '권력이 된 아름다움'이다. 11월 16일 11시 15분에 방영된 1부, 美, 권력을 탐하다는 소비 문화의 확산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확산 일로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탐미적 집착의 현재와 과거를 짚어본다. 


아름다움의 정점은 정점은 미인대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인대회 수상자를 많이 내기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은,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입신양명을 위해 입시 학원을 찾듯, 미인 양성 학원을 찾는다. 미인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바로 돈과 권력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부촌에 이십대의 켄이 살 수 있는 건, 바로 그가 성형을 통해 획득한 바비 인형 남친을 닮은 외모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돈과 권력을 낳는 것일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용했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발과 코르셋은 당장 귀족들 사이에 유행이 되곤 했다. 일본 귀족들 사이에 유행한 검은 먹물로 칠한 이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이 오히려 개연성없는 아름다움을 부추키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부와 권력은 서로 밀고 당기며, 인간의 역사를 꾸려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물결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겨 왔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 유래를 11월 23일 방영된 2부 생존의 비밀이 밝힌다. 
아름다움과 생존의 관계에 대한 서론은 코소보의 신부 화장으로 시작된다. 결혼식날 화려한 베일이 벗겨지고 나타난 신분의 얼굴, 잔뜩 회칠을 한 듯한 허연 얼굴에, 점점이 얼굴을 가득 채운채 분포되어 있는 빨갛고 파란 점들, 그리고 양쪽 볼 중앙을 채운 문양, 아름답다기 보다는 이방인의 눈에는 기괴하다고 느껴지는 이 화장에 신부의 친구들과 신랑, 친척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거기엔 평범한 아름다움의 시각으론 설명할 길이 없는, 코소보 문화의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에 자리 잡은 코소보에서도 소수 민족에 속하는 신랑과 신부, 이 소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것을 위해, 그들이 신성한 결혼을 통해 비는 것은, 다산과 생명이다. 그리고 기괴하게 보이는 신부의 화장은, 바로 그런 그들의 소망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문화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면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생존'이라고 다큐는 말한다.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보디족의 남성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배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타지마할의 완벽한 대칭도, 그리고 인도 락슈미 축제의 갖가지 문양도, 모두 인간의 안전한 생존과 유지를 지향한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육중한 몸, 균형잡힌 신체가 지니는 건강성, 그리고 오랜 삶을 누리는 갖가지 것들의 모사는, 딱히 다른 동물군에 비해 특출난 신체적 특징이 없는 인간이 험난한 역사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지혜의 원천 중 하나이다. 신석기 시대를 살던 인간의 유전자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비만'을 지향하듯, 선사 시대 이래 생존에 성공한 인간의 문화는 저마다, 생존의 지혜를 문화의 흔적으로 남긴다. 



생존의 흔적이요, 그래서 부와 권력의 증표가 된 아름다움,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인간의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질곡이 되어 나타난다. 어린 시절부터 미인대회에 몰려드는 아이들처럼, 아름다움에 탐닉한 인간들은 그 아름다움에 짖눌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안은 없는가. 그것을 3부, '美는 자유다'가 말하고자 한다.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이 된 아이 쿠마리, 여신으로 칭송받기 위해 겨우 다섯 살 남짓한 아이를 자유를 포기한다.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사원에 갇혀 여신처럼 화장을 한 채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성장은, 곧 여신의 지위 박탈이다. 자유는 주어지지만, 여신으로 길들여진 아이에게, 적응해야 할 사회는 버겁다. 
이렇게 여신과 그녀에게서 빼아겨진 자유를 통해, 美와 자유를 대비시키며 다큐는 시작된다. 그리고, 아름다움 대신, 자유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55세의 도날루와 친구들은 나이든 자신들이 육체를 한껏 내보인 뮤직 비디오를 선보여 유투브에서 화제에 올랐다. 평생 날씬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느라 섭식 장애를 겪은 도널루는 세상이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졌고,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세상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 
美에 대한 자유는 기준의 자유를 의미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전시하는 트리팔가 광장에, 밀로의 비너스와 실제로 닮은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의 임신한 나신상이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반대를 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몸을 인정하고 각자가 가진 편협한 美에 대한 기준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양 팔이 없이, 거기에 짧은 다리를 가진 앨리슨 래퍼의 당당한 삶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유로운 美의 기준을 제시한다. 
8월의 네바다 사막 40도가 넘는 기온을 넘나드는 이곳에서 일주일 간 갖가지 전시물을 선보이는 사람들, 마지막 날 자신들의 작품을 불태우며 '자유'의 궁극을 누린다. 이들이 추구하는 자유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나누었던 행복한 교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3부작 '아름다울 美'3부작은 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미의 유래로 부터 시작하여, 미의 의미, 그리고 그 미래적 담론까지, 전세계를 누비벼 거시적, 혹은 미시적으로 훑어 내린다. 특히 다양한 지향, 혹은 통념을 거스른  미적 가치에 대한 재고, 그리고, 미적 성취물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자유'가 된 美는 생각해 볼 여지를 많이 남기는 철학적 화두로 남는다. 단지 아쉽다면, 그런 거시적 담론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어떤 의미로 공유되고 있는가를 함께 짚어 주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美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전세계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울 美의 한국편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2. 1. 11:58

국어 사전에서 '식구(食口)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1인가구 비율이 25.3%인 네 집 중 한 집이 홀로 사는 가구가 차지하는 이 사회에서, 식구는 더 이상, 그 예전에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가 힘들다. 
가족과 사별해서, 혹은 이혼을 해서, 그게 아니라도, 직장과 학교 등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직 홀로 사는 1인 가구들이 늘어나는 세상, 그래서, 이제, 나의 생애에서 언젠가는 홀로 사는 삶이 더 이상 이상할 것이 없어지는 세상에서, 식구, 그리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ebs 다큐 프라임은 '식구의 탄생'이란 프로그램을 위해 1인 가구의 식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식사 프로젝트를 알리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 결과, 8명의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의 식사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모집되었다. 
일흔이 넘은 1년전 할아버지를 사별한 할머니, 마흔 중후반의 기러기 아빠, 그리고 이혼한 가정의 싱글남, 삼십대의 공무원, 프리렌서, 그리고 외국인 강사, 이십대의 회사원과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덞 명의 참가자들의 생활 면면과 건강 상태를 우선 점검했다. 아예 밥을 하는 밥통 자체가 없는 집에서 부터, 7첩 반상을 정갈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는 집까지,다양한 삶의 양상이 보여졌다. 하지만, 오랜 1인 가구 생활로 홀로 밥을 하고 반찬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저, '한 끼를 때운다'는 식으로 식사 시간을 보내거나, 외식을 하는 게 식습관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건강에 문제가 많았다.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외로움을 폭식으로 달래던 기러기 아빠는 가족과 이별하기 전보다 무려 5kg이 넘게 살이 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비해 반찬 가지수가 반 이상 줄은 할머니는 빈혈에 시달렸다. 텅빈 냉장고 대신 강냉이 자루로 허기를 때우는 독거남의 건강 역시 좋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반찬을 잘 차려 먹든, 한 끼를 그냥 때우던 홀로 사는 그들의 식사 시간 동반자는 예외 없이, 핸드폰, 텔레비젼같은 전자 기기들이었다. 이들은, 그들을 쳐다보며, 홀로 식사하는 외로움을 달랬다. 

하지만 홀로 식사 하기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라도 막상 생면부지의 여덟 명과 식사를 하는 건 어색했다. 첫 만남, 할머니와 손자 같은 두 사람을 당번으로 첫 식사가 마련되고, 그래도 밥상 앞에서 조금씩 서로의 말문이 트여갔지만,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화는 풀려갔을 뿐, 그 사이에서 할머니나, 중년 세대는 눈치만 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밥을 준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옥상에 마련된 텃밭을 가꾸거나, 담소를 나누며 밥을 기다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루어진 식사 프로젝트가 몇 회에 걸쳐 진행되어가면서, 서먹하던 서로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 간다.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 강사와, 캐나다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낸 아빠는, 함께 요리를 하며 친구가 되어갔고, 요리 생초보 젊은이들은 이제 서로의 집을 방문할 정도가 되었다. 혼자서도 진수성찬을 차려 밥을 먹으며 홀로 사는 삶에 만족스러움을 보였던 이혼 싱글남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독 오래도록 프로젝트에 어울리지 못했지만, 결국 그도 그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이혼했음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며 자신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8주에 걸친, 그것도 겨우 일주일에 한번 만나 밥을 해먹는 식사 프로젝트, 외연상으로 보면, 요즘 빈번하게 시도되는, 1인 가구의 '셰어 리빙'의 절충적 형태 같았다. 
하지만, 식사 프로젝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저 함께 나누는 즐거움,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기간 동안 그들의 변화에 대해 주목한다. 

8주의 기간 동안, 그거 일주일에 한번 밥을 먹었을 뿐인데, 8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져 갔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홀로 사시던 할머니도, 서울에 홀로 '유학'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학생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고, 또 그래서 누군가 나의 삶에 간여하는 것도 싫었던 이십대의 독거남도,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을 해주는 '가족'처럼 되어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나오지 않는 멤버를 걱정하고, 또 나오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다른 멤버들의 지청구에 거리감을 느꼈던 멤버는 오히려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홀로 사는 자신을 따스하게 맞이한 젊은 사람들이 고마워 가락시장에서 파를 다듬어 번 돈으로 양말 한 켤레씩을 돌리던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그런 할머니가 젊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맙고, 걱정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일주일에 밥을 한끼씩 먹는 동안 여덟명에게서 나타난 놀라운 변화이다. 
그들이 함께 살지도 않았는데도, '유사 가족'이 생겨나고, 함께 가끔이라도 밥을 먹게 되면서, 여덟 명 각자의 생활 자체가 변화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할머니는 한결 밝아져, 또래 할머니들과도 만나는 등 삶의 재미를 느끼시게 되었다. 한 동네 살면서 같은 마트를 이용하던 서른의 누나와 이십대의 동생은, 이제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며, 함께 장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밥통하나 없던 싱글남의 집에는 밥통이 생기고, 잡곡밥과 반찬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시작 전에 건강 검진 결과 나타났던 콜레스테롤 과다, 우울증 등의 건강 이상 상태가 많이 호조되었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함께 모여 밥을 먹었을 뿐인데.

그래서, 이 식사 프로젝트는 1인 가구의 존재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의 존재와 의미를 묻는다.
식사 프로젝트를 통해 한 집에 모여 살지 않더라도, 그리고 매 끼니를 나누지 않더라도 가끔이라도 끼니를 나누는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유의미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더 이상 1인 가구가 낯설지 않는 세상, 당신의 평생에 한번쯤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가족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별한 그 누군가여야 하는지, 이제는 남남이 되어 한 달에 한번 겨우 만나는 누군가여야 하는지, 혹은 지방에 살아 한 계절에 한번 보기 힘든 누군가여야 하는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과연 1인 가구가 25%를 넘는 이 사회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고 에둘러 말한다. 
차라리 그게 아니라면, '식사 프로젝트'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따스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정을 키워가는 누군가가 더 '가족'으로 적합한 것은 아닌지, 나의 행복을 위한 그런 가족을 만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다큐 프라임, 가족 쇼크 4부, 식구의 탄생은 반문한다. 


by meditator 2014. 12. 1. 09:42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 덕담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 사회 청춘에겐, '꿈이 사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절이 돌아왔다. '꿈이 '사치'가 되는 시절, 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꾸는 청춘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 가혹한 세상의 이야기를  tv는 전한다. 요즘 가장 인기있다는 두 개의 드라마, <미생>과 <나쁜 녀석들>이 그것이다. 아마도 젊은이들이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현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토로하기 때문일게다.

 

9회에 돌입한 <나쁜 녀석들>, 드디어, 나쁜 녀석들을 모아놓고, 박웅철(마동석 분)과 정태수(조동혁 분)로 하여금 이정문(박해진 분)을 죽이도록 사주한 오구탁(김상중 분)반장의 사연이 하나씩 풀어진다. 그리고 화연동 연쇄 살인 마지막 희생자였던 오구탁 반장 딸의 사연도 함께.

처음 딸의 유학을 앞두고 설레이며, 이별을 아쉬워 하며 함께 상을 마주했던 두 모녀, 하지만, 오구탁 반장 딸의 유학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범인을 '공명정대'하게 쫓느라, 전셋집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 오구탁 반장의 딸은 레슨 선생이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피아노 치는 실력이 월등하다. '유학'을 권하는 레슨 선생, 하지만, 자신을 회유하는 범인에게, 법의 심판을 들이대는 오구탁 반장에게는 딸을 유학 보낼 돈 5000만원이 없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빌려봐도, 다 오구탁 반장 같은 그들이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아버지를 아는 듯 괜찮다는 딸, 하지만, 사실 딸은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소식을 듣고 달려 간 병원, 그곳에서 오구탁 반장은 고수익 알바 보장이라는 문구에 속아 노래방 도우미를 자청했다 폭력을 당한 딸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으로 인해 좌절하며 절망하는 어린 딸을 목격한다.

 

결국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망하는 '꿈'을 가진 것 없는 아버지로 인해 꿀 수 없게 되어 절망하는 딸 때문에, 청렴함을 자랑처럼 내세웠던 오구탁 반장은, 처음으로 검은 세력을 눈감아 준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탁이 무색하게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어 기뻐했던 딸은 유학을 가기 전 날,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오구탁 반장은, 자신의 신념조차 헌신짝처럼 버리며 지켜주려 했던 짓밟힌 딸의 '꿈' 앞에, 가장 잔인한 복수를 계획하고, 그것이 바로, '나쁜 녀석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또 한 명의 짓밟힌 꿈이 있다. 바로 <미생>의 비정규직 장그래(임시완 분)이다.

박과장의 횡령 등으로 엎고 가야 했던 요르단 수출 건을 영업 3팀의 프로젝트로 대담하게 내세워 원인터내셔널 전 직원의 주목을 받은 것도 잠시, 장그래에게는 비정규직의 현실이 다가온다. 마치 하늘을 난 것도 잠시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려 바다로 추락하고 만 이카루스처럼, 전직원의 주목을 받고, 각종 회의에 참가하며, 신입 동기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던터라, 연봉 협상은 커녕 하다못해 새해 선물에서조차 차별이 노골적인 비정규직이란 존재의 자각은 장그래에게 더 뼈아프다.

 

오구탁 반장이 평생을 지켜왔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면서 까지 딸의 '꿈'을 지켜주려 했던 것과 달리, 장그래의 멘토 격인 오과장(이성민 분)은, 장그래에게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아마도 너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학을 나오고, 어학 연수를 다녀온, 정규직들의 내공을 넌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게 속편하다고.

 

하지만 그런 오과장의 냉혹한 현실 정리에는 역시나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그에게는 장그래 이전에 또 한 사람의 비정규직 부하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그래처럼 오과장을 따르며 오과장을 배우며 '꿈'을 키웠던 비정규직 직원, 그녀에게, 오과장은,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희망'의 언어들을 들려주었다. '꿈'을 키우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덕담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오과장과, 최전무(이경영 분) 등, 정규직의 자기 보신과 안위를 위한 제단에, 그녀의 비정규직은, 제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고, 오과장에게는 내내 그녀의 이름이 잔인한 꾜리표가 되어 따라 다닌다. 그래서, '꿈'을 쫓다 추락하는 또 한 명의 비정규직을 만들고 싶지 않아, 오과장은 냉정하게 장그래에게 현실을 인정하라고 직언하는 것이다.

 

(tv리포트)

 

그런 오과장에게 장그래는 반문한다. '꿈'을 꾸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그저 자신이 바라는 건, 계속 함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그건 장그래 개인의 속내가 아니라, 오늘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질문이요, 외침일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오구탁 반장의 딸처럼, 스스로 자신의 꿈을, 그리고 자신을 포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돈이 없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혹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대해, '꿈'을 꾸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그리고 그 어른들로 대표되는 사회가 하는 일이란, 오구탁처럼 '비리'를 눈감으며 '검은 돈'으로 입신양명을 돕거나, 오과장처럼 책임감없는 맆서비스마저 할 수 없어 절망하거나, 최전무처럼 외면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리고, 이 사회가, 젊은이들의 '꿈'을 위해 '제도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없다.

by meditator 2014. 11. 30. 09:58

snl 극한 직업 유병재 코너가 화제다.

snl 작가였더 유병재는 까메오로 snl에 출연하기 시작하다, 아예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제는, tvn에서, 극한 직업 유병재라며, 유병재가 출연했던 코너만 따로 떼어내어 재방송을 할 정도로 인기 코너가 되었다. snl의 극한 직업 코너는 유병재가 그 회차의 출연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되어 각종 수모를 겪는 고난기가 웃음의 포인트이다. 갖은 잔꾀를 써보아도 결국은 '을'인 매니저 유병재와, 각종 진상을 피는 '갑'인 연예인의 해프닝이 인터넷에 회자되며 작가 유병재를 snl의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무엇을 해도 억울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가, 또 다른 '을'이 되어, <오늘부터 출근>의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똑같이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미생>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과 달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늘부터 출근>이 1%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극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11월 27일부터 시작된 3기 신입사원들은 유병재를 비롯하여, 유병재만큼이나 억울한 '을'에 어울려 잔존하게 된 봉태규, 사유리, 차학연이란 본명으로 등장한 빅스 엔, 그리고 역시나 무념무상 캐릭터로 두각을 나타낸 김도균과, 그와 똑같은 장발에 음악인지만, 김도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미노가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거기에, 사무실에 여성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속옷 회사와, 가발로 만들어질 인무가 박스채 배달되는 가발 회사는, 제작진이 선택한 또 하나의 강수다.

2기까지 무사 입성하던 경우와 달리, 출연진은 쟁쟁한 시험관들이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가 갖은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거쳐 신입 사원이 된다. 결국은 채용이 되는 요식 행위이지만, 다짜고짜 자리배정부터 받고 시작하던 이전 기수에 비해, 진땀을 흘리는 신입 사원 면접은, 나름, '미생'의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한 제작진의 배려다.

 

(tv리포트)

 

덕분에, 출연진들은 첫 출근부터 땀이 흠씬 나도록 선배 직장인들의 갖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디자인실과 영업부라는 두 가지 부서의 선택을 두고, 이전 직장에서 영업부의 고뇌를 잘 아는 봉태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디자인실 선택 몰빵이었던 속옷 회사 신입 사원 지망생들은, 왜 자신이 디자인실에 근무해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전략이 주효하지는 않는 법, 자신의 특기가 자신의 실수를 쉽게 인정하는 거라, 써낸 유병재는, 그의 캐릭터답게 어눌한 답변 끝에, 자신이 디자인실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만다.

가발 회사로 간 김도균과 미노도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다. 간밤에 아내의 도움을 얻어, 몇 마디 영어 소개를 외웠지만, 면접관들 앞에서, 그 문장들은 뒤죽박죽이 되고 만채,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하얀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뻔한 결과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신입사원이 된 3기 출연진들의 첫 날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속옷 회사 답게, 유병재등은 선배 여사원이 강의하는 여성 속옷, 그 중에서도 브래지어에 대한 장황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직접 유병재들이 사원들 앞에서 브래지어를 입어보이는 실험까지 해보이는 상황을 연출하며, <오늘부터 출근>은 미묘한 선정성과, 속옷 회사 남자 사원의 난처함의 경계를 오간다. 가발 회사의 첫 날을 맞이한 김도균과 미노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쩐지 섬뜩했던 누군가의 머리채는, 그것이 몇 박스 채가 되는 순간, 그저 산더미같은 일에 불과해진 것처럼, 역시나 호러와 직장물을 오가는 상황을 선보인다.

 

유병재가 여성 속옷을 입고, 예의 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선배 여사원 앞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동료 사원들의 웃음 속에 서있는 그 장면은, snl 극한 직업 유병재를 고스란히 연상케 한다. 속옷이라는 극단적 설정과, 거기에 가장 엇물리는 속옷에 대한 별 지식도 없는 남자 사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미생'의 극한 직업 버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snl이 19금의 야한 농담과, 그 상황에서 빚어지는 페이소스에서 재미를 승부하듯, 유병재를 출연시킨 <오늘부터 출근>의 3기 승부처는, 리얼리티로 온 snl과도 같다. 그래서, 여성 신체 부위를 거침없이 설명하고, 짚어가는 어쩐지 낯부끄러운 상황의 당연함에서 오는 미묘한 껄끄러움이 새로운 재미의 포인트가 되고, 그래서 또 그것이, '선정성'이라는 아쉬움을 낳는다.

 

결국, snl 극한 직업이라는 타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빌려와 인공 호흡을 시도하고 있는 <오늘 부터 출근>,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이 다음에 선택할 카드는? 이란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오늘부터 출근>은 꼭 '화이트 칼라'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익히 알려지다시피, 애초에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는, 말 그대로 ebs의 <극한 직업>을 차용한 코너이다. 그리고, ebs의 <극한 직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그간 미처 몰랐던, 정말 '극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각종 직업들을 소개해 왔다. 빌딩에 매달리고, 산속을 헤매고, 바닷길을 헤치는 극한의 직업들 말이다. 세상에 출근해야 할 곳은, <오늘부터 출근>에서 보여지는 칸막이로 나뉘어진 덩그런 사무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건, 가발이 박스채로 배달달되건, 거기는 결국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 가는 화이트 칼라의 세상이다. 그 화이트 칼라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오늘부터 출근>은 '미생'의 아류작이며, '미생'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다.

 

오늘도 아침 잠을 쫓으며 출근해야 하는 직업에는, '카트'를 밀고 다니며 하루 종일 물건을 날라야 하는 마트의 임시직도 있고, 화장실 구석 공간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청소원에, 전봇대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는 기술직도 있다. <오늘부터 출근>이 '미생'의 아류를 벗어나, 결국은 거짓말인 '리얼리티'의 한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정적인 속옷 회사에,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 유병재가 아니라, 어쩌면, 화이트 칼라라는 벽을 넘어선, 오늘도 출근하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군이 아닐까? 기왕에 직업인들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창조 경제'의 눈치를 보지 말고 , 좀 더 실감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1. 28. 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