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진도군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고, 아직도 실종자는 채 다 수습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세월호을 잊고 싶어 한다.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냐며,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심지어, 경제와 정치 불안을 들먹이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고자 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태도도 한 몫을 한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불과 얼마전 부산 대학생 캠프 참사, 그리고 그 이전 해병대 캠프 참사 등, 해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등지지만, 사회는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혼비백산하는 것과 달리, 조금의 시일만 지나면 마치 망각증세라도 있는 것처럼, 급격하게 잊어간다. 아니, 잊으려고 애쓴다. 왜? 그토록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조급증을 가지며, 외면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것일까? 

이런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 ,<ebs 다큐 프라임-데스3부작>이 이야기를 건넨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좋은죽음 나쁜죽음', '비탐 애테르남 Vitam aeternam / 영원한 삶 사후세계',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현재를 즐겨라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죽음' 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죽음에 대한 사고 방식과, 태도에 대해 논하고, 죽음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고, 죽음을 그저 개인적인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준비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왜 죽음이 개인의 일이 되어서는 안될까? 
그것은 죽음에 대한 사고 자체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만 해도, 죽음은 인류 공동의 운명이자, 우리의 죽음이었다. 인간에게 죽음은 낯선 것도 아니었고, 별개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중세 후기 개인주의가 등장하면서, 죽음음 개인의 죽음, 나의 죽음으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과학의 발달은 오히려 죽음을 인간이 두려워 하는 대상으로 더욱 변모시켰다. 과학의 힘이 내가 죽음을 멀리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면서, 죽음은 삶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삶에서 멀어진 죽음은 터부가 되었고, 금기가 되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소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이 문화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죽음은 더더구나 무시되고 외면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 즉,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죽음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 혹은 역사적으로 조장된 것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 이후, 우리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권태감, 혹은 불쾌감 역시, 이 사회가 우리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큐는 설명해 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명백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문명에서, 덮어버리고, 외면한 죽음에 대해, 인간이 직시하는 순간, 인간의 삶은, 달라지게 된다. 죽음을 말한다고 해서 세상이 더 어두어지거나, 나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만 한 죽음을 인간의 삶 속으로 불러 들어야 하는 이유다. 

(tv리포트)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함으로써 삶이 변화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팃포탯(tit for tat) 게임이 제시된다. 게임 이론에서 등장한 방식으로, 두 사람에게 일정량의 사탕을 주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긴 사람은, 사탕을 주거나 뺏거나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혹은 손등을 때리거나 악수를 하는 방식으로도 변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게임이 묘한 게, 먼저 이긴 사람이 사탕을 뺏으면, 다음에 이긴 사람도, 다시 사탕을 뺏고, 먼저 이긴 사람이 사탕을 주면, 다음에 이긴 사람도 사탕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즉, 먼저 한 사람의 선택에 따라, 이 게임은 '화합'의 게임이, '갈등'의 게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 과정에서, 한 그룹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가지게 한다면, 즉 유치원 아이들의 경우, 동화를 읽고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거나, 어른들의 경우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거나 하는 식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자,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팃포탯 게임에서 선택하는 결과가 달라졌다. 이 그룹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탕을 빼앗는 대신, 사탕을 주었고, 상대방을 때리는 대신, 악수를 하는 등, 이타적 행동의 비율이 늘어났다. 

즉, 그저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2부에서 사후 세계을 영적으로 경험했던 사람들 역시 그 이후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 한결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강의로 유명한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삶을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삶에 대한 자세가 변화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삶에 영향을 주는 죽음인 것이다. 

실제 14주간의 웰 다일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거친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한다. 우울증은 감소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자, 삶의 질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죽음'의 다큐에서 말하는 죽음에 대한 논의는 어떤 것일까? 죽음에 대해 '소프트'하게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누구나 다 죽는 것이므로, 죽는다는 사실에 화내지 말고, 이해를 할 것이며,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되돌아 보고,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자세를 수용하는 것이다. 

실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 나토니아 롤스에 따르면, 죽음 자체를 보여주는 그녀의 그림을 통해, 환자 자신은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져, 마지막 까지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그 그림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죽음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한 개인의 문제로써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어야 사회 전체의 삶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주장한다. 
죽음의 질 1위의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부족함을 깨닫고, 정부가 나서서 죽음의 금기를 깨뜨리고자 노력해왔다. 매년 5월 죽음 알림 주간을 가지고,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진다. 또,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죽음 까페'도 있다. 이 까페에서는 각자 마음 속에 담아두었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찾아 간다. 
죽음을 맞이하기 좋은 날이라는  행사를 교회에서 벌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등장하는 죽음은, 저승사자나, 상복으로 상징되는 죽음이 아니다. 삶과 분리되는 죽음이 아니라, 그저 삶의 한 과정으로 이야기되는 죽음이다. 우리 모두가 겪게 되는 매우 평범한 일이고, 흥겹게 노래 부르고, 아이들은 설탕으로 해골을 만들며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그런 죽음인 것이다. 겁을 먹고, 슬퍼하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연히 찾아노는 알찬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는 긍정적 죽음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세월호 사태처럼, 뜻밖의 사건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사고는 견디기 힘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해, 금기시 하지 않고, 좀 더 건강한 사고 방식을 가졌더라면, 지금처럼, 죽음을 애도하는 학부모들을, 외면하고, 폄하하고, 심지어 욕되게 하는 행위들이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죽음 3부작을 통해서라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고,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죽음은 진정한 행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다 -모짜르트


by meditator 2014. 11. 9. 16:58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비스킷 공장에서부터, 직업 알선 정보 업체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직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 통의 통조림이 완성되기 위해, 남태평양의 거친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는 어부에서 부터, 물류 회사, 수많은 기계 공정들이 완성하는 통조림 공장까지, 섬세한 과정이 낱낱이 밝혀진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가지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요소요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그들의 많은 일들이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가를 작가는 직접 발로 뛰며 그려낸다. 굳이 구구절절 감상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저 한 봉지의 과자, 한 캔의 통조림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는가를, 그 책을 읽다보면, 경건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미생>을 보고 있노라면, 알랭 드 보통이 정작, 가장 중요한 걸 설명하는 걸 놓친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세상을 완성하는 수 많은 일, 그 일이 완성되기 위해, 사람들이 흘리는 땀과 노력 뒤에, 복잡 미묘한 '인간 관계'라는 게 숨겨져 있다는 걸, 알랭 드 보통은 몰랐을까? 아니, 유독, '경쟁'이 체화된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질일까?

<미생>이란 드라마가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밥벌이'의 고단함이다. '청년 실업'이 화두인 시대, 청년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직장이란 곳, 하지만, 막상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무방비하게 '정글'에 던져진 사람과도 같은 처지다. 일과 일이 덩굴처럼 얽혀 그의 발을 거는 곳,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그의 생명을 노리는 독사는, 그의 일보다는, 그가 만난 사람이기가 십상이다. 실제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나오듯이, 직장인들의 퇴직 이유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건, 상사 혹은 동료와의 불화이다. 

(osen)

그리고, 7회 <미생>은 그렇게 직장인들의 숨통을 조이는, 동료, 상사와의 불화의 원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서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라고. 
회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위치에 있는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은 그의 부하 직원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의 분석에 따르면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모헙적인 일로 돌파하고자 한다. 그런 그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이란 원유 개발이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시도는 번번히 그를 가로막는다. 국제 정세에 따른 이란 원유 봉쇄 조치가 그것이요, 애초에 부장이 시도했던 중국건이 그것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오과장은, 이란의 봉쇄 조치는 터키라는 카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보지만, 부장의 중국건에는 그만 주저않고 만다. '중국으로 해'라는 부장의 퉁명스런 한 마디에, 그간 애써 노력했던 이란건 서류를 묻고, 다시 중국 수출을 위해 뛰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의 면박을 받으며, 한 잔의 술로 삼킨 이란건이 무색하게, 중국 수출건도 만만치 않다.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가 목을 조른다. 부장은 다그치고, 오과장은 자신들을 돌아봐주었던 '부장에 대한 보은'으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부장은 오과장의 제안이 시원치 않자, 영업2팀 고과장의 제안에 솔깃해 하고, 오과장은 북한의 희토류 수출이라는 카드를 통해 이 난관을 돌파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오과장의 아이템은 차장을 등에 업은 고과장의 배후 작업으로 한 수 뒤로 밀리고 만다. 설상가상, 지나가던 전무의, 희토류 같은 사업 아이템은 자원팀에게 넘기란 한 마디가, 그걸 추진했던 부장까지 물을 먹이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이리저리 이 사업 저 사업,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영업 3팀은, 결국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꾸역꾸역 음식과 술로, 일의 허기를 달랠 수 밖에 없다.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부장을 보고, 장그래(임시완 분)는 김대리에게 우문을 던진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김대리는 딱히 다른 게 없다면, 결국 돈과 승진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결국, 부장의 손바닥 뒤집듯한 말 바꾸기, 그리고 난감한 상황에서 자기 혼자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기의 궁극적 목표는 그의 승진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더 많은 월급이다. 지금까지 그런 방식을 통해 그가 이른 나이게 부장에 오른 것처럼, 그는 그렇게 다시 한 자리 더 '업그레이드'를 시키기 위해, 부하 직원들을 이리저리 휘돌린다. 드라마는 그런 그의 앞에 한 수 위인, 전무를 등장시킨다.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그 그림, 가장 작은 물고기를 그보다 큰 물고리기가 먹고, 그것을 조금 더 큰 물고기가 먹고, 하지만, 그 뒤엔 더 큰, 더더 큰, 더더더 큰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7회 <미생>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의 원인이 바로, 돈과 승진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데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영업 3팀도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회사에서의 위치를 돌파하고자 무리수인 아이템을 집어든 오과장이라고 돈과 승진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김대리는 말끝마다, 올해는 오과장님이 승진하셔야 할 텐데라고 한다. 하지만, 7회의 보여진 위기마다, 오과장의 결정을 번복케 하는 것은, 그저 돈이나 승진만이 아니다. 치받기를 좋아하는 오과장이 자신의 아이템을 누르며 중국건으로 어렵게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자신들을 배려해 주었던 부장에 대한 '보은'이요, 어려운 중국 환경을 돌파해보고 했던 것도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말끝마다 '오과장님이 승진하셔야 할텐데'라는 김대리의 돌림노래에는 그저 '돈'과 '승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끝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취해 낸, 그래서 오히려 같은 팀의 미움을 배가시킨 안영이(강소라 분)의 집념 역시 그저 '돈'과 '승진'이란 말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7회의 <미생>은 인간에 대한 배려, 혹은  다른 욕망, 혹은 성취 동기들이, 경쟁 사회 속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혹은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느냐고?
그저, 변기를 부여잡고 술을 토하는 오과장을 보고, 쯧쯧거리고 말았는가? 그의 잔혹사가 다친 나의 마음 같아, 새삼스레 가슴이 죄어왔는가? 혹은, 어느새, 그런 논리에 길들여져, 오과장처럼 살면 세상 살기 힘들다고 하진 않았는가? 회사 생활에는, 그저 열정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생존 논리가 있다고, 그새 노회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김훈의 책 중,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이 있다. 그저 그 제목만 보고 반가워 집어들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 냉소적인 작가,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정의내린다. '희망과 전망 없이도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고, '희망없이도 잘 사는 사람을 그려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 속에서,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삶 속에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눈물겹다'고 말한다. 저무는 논길,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되면 돌아갈 때를 알아, 남편이 운전을 하고, 그 뒤에 앉아 가는 노부부의 삶처럼,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 속에서도, 말없는 실천에 도달한 그들은 '성자' 같다고 말한다. 
제목이 '미생'이듯이, 드라마는, '성자'가 되지 못한,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 속에 혼란한, 그래서 희망을 찾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드라마를 보면, 희망과 전망없이 사는 게 삶이란 정의가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노부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깨지고 무너지고 그래서 아파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돈'과 '승진'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미진한 가슴 뜨거운 우리의 삶에 대한 복기이자 회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미생'의 끝에, 완생이 있을 날을 기다리며,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살아내는 실천을 통해 도달할 그 어떤 '성자'의 경지를 기원하며, 그들이 언젠가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꾸역꾸역 <미생>을 지켜본다. 


by meditator 2014. 11. 8. 11:46

<미생> 6회 영업을 하러 간 업체에서 발주 담당자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었던 오과장(이성민 분), 반가워 했던 것도 잠시, 학창 시절 오과장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던 친구는, 마치 그 시절을 보복이라도 하듯, 오과장에게 '갑질'을 한다. 고등학교 동창에게까지 '접대'를 하며 영업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사표를 꺼내들었지만, 유치원 재능 발표 시간에, 슈퍼맨조차 팔아제끼는 '상사맨'이라며 아버지를 자랑하는 아들의 모습에 그만 그는 사표를 다시 넣어둔다. 오과장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상사맨', 세계를 누비며, 그 무엇이라도 팔아제끼는 그들, 그들의 현실 버전을 보고 싶다면, <오늘부터 출근>을 보면 된다.

 

<미생>에는 '상사맨'이 있다면, <오늘부터 출근>에는 '영업맨'이 있다. 장그래의 리얼리티 버전, 봉그래(봉태규)가 출근하는 아이들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 * 실업에는, 봉그래의 선배 영업맨들이 있다.

연예인들의 직장 체험담을 리얼리티로 다룬 <오늘부터 출근>은 회를 거듭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연예인 신입 사원과 기존 직장인들이 어우러진 직장 생활을 그려낸다.

특히나, 출근 첫 날 부터, 천만원에 달하는 주문을 받고서 희희낙락한 것도 잠시 발주처를 미처 기록해 놓지 못해 진땀을 뻘뻘 흘리는 봉태규의 해프닝은, 그를 봉그래라고 부르기에 주저치 않도록 만든다. 또한 그의 멘토로 등장한 <개그콘서트> 유민상, 김준현을 저리 가라할 넉넉한 덩치의 선배 사원, 실수한 봉태규를 옥상으로 불러, 당신과 나 모두 팀장에게 죽을 거라는 계시를 날리는 그의 모습에서, 어쩐지 <미생>의 또 다른 회차를 보는 듯하다.

 

(OSEN)

 

11월 6일 방영된 8회의 <오늘부터 출근>은 왁자지껄한 영업 팀의 회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봉그래의 천만원 해프닝도 무사히 수습되고, 흥겹게 시작된 영업팀의 회식,1차, 2차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은지원의 잦은 지각이 오르내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을 둔, 팀장과 신입 사원들의 내기에 이르게 된다.

다음날 과음으로 인해 지각을 한 은지원과 달리, 은지원이 도착한 사무실에 어제은지원과 함께 한 선배 사원들은 멀쩡하게 출근해 있다. 결국 내기에 져 은지원이 돈을 내게 된 점심 시간, 봉태규가 호기롭게 육전까지 시킨 화려한 밥상에도 불구하고, '영업맨'인 선배 사원들은 각기 거래처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제대로 밥술을 뜨기가 힘들다.

 

물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늘부터 출근>에는 사표가 꺼냈다 들어갔다 하고, 목이 간당간당한 극적인 상황은 없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삶의 애환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제 아무리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다음날 업무를 위해서는 제 시간에 자리를 지켜야 하는 버거움부터 시작하여, 영업을 하는 상대방의 단호한 거절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재차 삼차 영업적 요구를 설득해야 하는 영업 사원의 숙명, 가는 곳마다 접대라며 대접하는 음료수를, 거절하지 않고 마셔야 하는 사소한 고달픔까지, 연예인 신입사원들의 에피소드를 넘어선 현실 직장인의 고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영업사원만이 아니다. 먹는 걸 좋아해서, 신제품 개발팀에 발령받은 것을 좋아한 것도 잠시, 늘어나는 몸무게는 약과요, 이젠 신제품을 개발할 때까지 먹고 또 먹다보니 '음식을 먹는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어디 가서 음식 하나를 사 먹어도, 자기 회사 제품과의 비교를 하느라, 제대로 맛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 된, 신제품 개발팀의 애환도, 신선한 고달픔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한 연예인 신입사원들은, 이제 지나쳐가는 직장인들은 예전처럼 예사로 보게 되지 않고, '떠나요~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더 이상 얽매이긴 싫어요, 월급 봉투에'하는  '제주도 푸른 밤'같은 노래를 들으며 비애까지 느끼는 처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지켜본 시청자들 역시, 그런 연예인들의 마음에 동조하게 되면서, <미생>을 보며 느꼈던 슬픈 공감의 또 다른 결로 현실의 '밥벌이의 고단함'에 공감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4. 11. 7. 12:35

<운명처럼 널 사랑해>, <내 생애 봄날>,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미스터 백>까지 주춤거리고 있던 mbc드라마가 다시 '드라마 강국'으로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시청률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거의 동시간대 1위를 수성하고 있으며, 화제성면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조기 종영된 <개과천선> 이후, 연이어 방영되고 있는 세 드라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묘하게 닮았다.

 

'공중파 드라마의 중요 요건'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다. 공중파 드라마를 하려면, 주인공이 재벌이어야 하고, 그 재벌이 사랑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화제리에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미생>은 왜 공중파에서 방영될 수 없었는가를 두고, 원작자의 인터뷰까지 떴었다. 물론, <미생>의 경우, 애초에 재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지만, 그놈의 '사랑'이 공중파 방영의 제약 요소로 작용한 것을 보면, 저 우스개 소리가 빈 말만은 아닐 듯 싶다. 그런데, 이 농담같은 진담을 충실히 수행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바로, <운명처럼 널 사랑해>로부터 시작된 mbc수목 드라마들이 그것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남자 주인공 이건(장혁 분) 여주인공인 김미영(장나라 분)의 모친이 살고 있는 섬의 생사여탈권을 흔들 만큼의 재력을 가진 사업체의 사장이다. 그가 <내 생애 봄 날>의 남자 주인공인 강동하(감우성 분) 역시 지나치게 소탈한 외모와 달리, 한국을 대표하는 축산업체, '하누리온'의 ceo이다.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미스터 백>의 주인공 최고봉(신하균 분) 역시 대한 리조트의 회장이다. 일찌기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고희에 이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안에 드는 부를 이뤘다.

 


                    럭셔리부터 코믹까지! 스케일도 남다른 <미스터백> 공식 포스터 공개!  이미지-1

 

하지만, 이들 재벌 남자 주인공들이 사실 무슨 일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회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에서 그들의 갖가지 사업은, 그저 그들이 재벌이라는 증명서에 불과할 뿐이요, 그들의 주요 업무는 여주인공과의 사랑이니까.

 

재벌인 그들이 여주인공과 만나기 위해서는,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각자의 아킬레스 건이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은 가문 대대로 30대를 넘지 못하고 요절하는 건강 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내 생애 봄 날>의 강동하는 일찌기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잃은 마흔 중반의 사춘기 딸을 가진 홀아비이다. <미스터 백>은 한 술 더뜬다. 이제 막 고희연을 치룬 70노인이니까. 이렇게 각자 재벌의 재력을 지녔음에도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이들이기에, 평범한 여주인공을 만나, 동등하게, 때로는 그녀들보다 비굴한 위치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 생애 봄날>의 여주인공 이봄이(수영 분)는 비록 아버지가 아버지가 병원장이고, 어머니가 이사장에, 본인은 영양사라는 전문직에, 상위 1%에 속하는 집안이지만, 대신, 심장 이식을 한 건강상 보통 사람들모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다. 장나라라는 동일한 배우가 열연하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과, <미스터 백>의 은하수는 공교로게도 두 사람 모두 정규직을 갈망하는 '인턴'사원이다. 이른바 대한민국의 88% 세대이다. <내 생애 봄날>이 결국, 있는 집안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예외로 치고, 나머지 두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전혀 만날 일이 없는 재벌과, 계약직 사원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재벌과 서민의 화해를 추구한다. 현실에서는 골목 상권까지 침 흘리는 재벌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지고지순한 멋진 남성일 뿐이다.

 

이들의 전작, <개과천선>이 대한민국의 로펌을 배경으로, 법정 앞에 선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해부했던 것과 달리, 그 이후 방영된 이들 드라마들은 201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재벌과 인턴 사원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지만, 사실, 이들 드라마 그 어디에도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은 없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2008년 대만에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배경은 2014년 대한민국이고, 극 중에서 섬의 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을 벌이고, 여주인공은 직업을 얻기 위해 고심하는 인턴사원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그것은 그리 큰 장애 요인이 아니다. 물론, 남주인공이 섬 개발을 둘러싸고 반대 투쟁을 벌이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섬으로 가지만, 그것은 그저 두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여주인공의 인턴직도 마찬가지다. 해프닝과 같은 하룻밤으로 임신을 하게된 여주인공은, 2014년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게 남자의 집안으로 들어가 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동윤 피디는, 전작 <여왕의 교실>을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자 한 바 있다. 살벌한 경쟁만이 득세하던 교실을 가감없이 그려내던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대만의 인기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다.

 

 


                    <운널사> 장혁-장나라, 감동의 종영소감…"행복한 순간들, 또 올 수 있을까 생각" 이미지-1

 

 

<내 생애 봄날>의 경우, 이미 2003년에 방영된 손예진 주연의 <여름향기>에서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가 방영된 바 있다.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심장이 떨리기 시작한 남자, 그리고 역시나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십 여년 전에 했던 이야기의 방식이다. 2012년 성폭행 사건을 다룬 사회적 멜로를 다루었던 이재동 감독은 그로 부터 2년이 흐른 2014년, 사회적 의식이 탈색된 순순한 사랑 이야기 <내 생애 봄날>을 가지고 돌아왔다.

 

<미스터 백>에서 나이든 주인공이 젊어지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된 서사의 방식 중 하나이다. 지난 해 영화 <수상한 그녀>가 할머니의 회춘을 다루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미스터 백>의 최고봉 할아버지는 운석 조각의 도움을 받아 젊음을 얻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그저, 드라마일 뿐인 이야기들에 대해, 굳이 왜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달간, 연달아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 드라마의 재벌들의 사랑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로코이든, 가슴을 저리게 하는 멜로이든, 코믹이든 장르적 장치와는 별개로, 한번쯤은, 왜 지금 여기서, 그런 이야기들이 되풀이 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굳이, <개과천선>과 같은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진 드라마를 종영시키고, 재벌과 서민들의 사랑, 혹은, 그들만의 리그같은 있는 집 사람들끼리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가?라는 질문말이다.

 

그저,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테니까? 시청률이 잘 나올 거 같아서?

이런 노림수가 들어 맞았는지, <운명처럼 널 사랑해>, <내 생애 봄날>, <미스터 백>은 시청률 면에서 동시간대 1위를 얻기도 했고, 주인공으로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화제성면에서 사람들의 대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돈많은 재벌들의 사랑 이야기,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아가씨가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하지만, 10년 전에 해도, 지금 해도 별 다르지 않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며 관심을 끌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을 보며 울고 웃다 슬그머니 허전해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이들 드라마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생> 등이 주는 찐한 현실에의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없어서는 아닐까?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하는 '공중파'라는 공중의 이기가, 가장 현실과 괴리된 '환타지'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이런 '환타지'성 사랑 이야기들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mbc 교양국의 해체의 또 다른 이면은 아닐까 라는 음모론은 그저 과대망상인 걸까?

 

by meditator 2014. 11. 7. 11:02

<정글의 법칙>에 밀려 금요일 밤 단골 2위의 자리를 설욕하기 위해 야심차게 수요일 밤 11시 10분으로 자리를 옮겼던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는 새로이 자리를 옮긴 <룸메이트>에게도 밀리며, 시청률의 품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10월 16일부터 야심차게 합류시킨, '가족포차'코너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이 프로그램의 품격은 어떻게 해야 유지될 수 있을까?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12인의 전문가가 제시하는 현명한 가족문제 해결법'이란 그럴싸한 캐치프레이드를 내걸고 시작했지만,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는 근원적으로는, mbc에서 매주 토요일 11시 10분에 방영중인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에 여러 게스트를 불러다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의 형식을 빚지고 있고, 가깝게는 종편에서 활발하게 방영되고 있는 <동치미> 등의 아류라는 오명을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토요 예능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던 <세바퀴>가 이제 거의 <인간의 조건>과 비슷한 시청률을 보이며 하락하고 있듯이, 같은 성격의 종편 프로그램의 범람과 함께, 이제 다수의 게스트를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 자체가, 피로도를 넘어, '지겨움'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어디선가 한 편은 방영되는,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와 같은 프로그램 전체를 질리게 만든 것이다.

 

더구나, 이와 비슷한 타 프로그램에서도  그렇지만, 말이 전문가가 제시하는 현명한 가족 문제 해결법이지, 이리 저리 자리만 바꿔앉은 듯한 이 방송 저 방송을 넘나드는 연예인 게스트들이 찜질방 아줌마 수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에, 다수의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식견이 높아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은, 가족 문제에 있어, '화목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고, 가족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쟁투'와 '이혼'까지도 불사하는 세상에,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가 시대 착오적(?)으로, 가족 내 화목을 위해, 어설픈 충고를 해대고 있는 것도, 이 프로그램이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는 <사랑과 전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위기'의 가족은 없다. 그저 '가족 사진' 속 환하게 웃는 코스프레한 가족이 있을 뿐이다. 막장이 인기를 끄는 세상에. 덕담만이 오가는,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가 싱거울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bnt뉴스)

 

그런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가 내건 해결책은 이른바 '가족 포차'이다. 말이 가족 포차지, 이경규를 위시하여, 이윤석, 조우종, 김지민을 직장 내 서열에 따라 배치하고, 맞은 편에 게스트들을 직장 내 서열에 따라 앉힌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마치, <해피투게더>가 목욕탕 내 토크 이후, 야간 매점을 하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해피 투게더>의 경우, 동일한 게스트가 두 포맷을 함께 참여하는 것과 달리,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는 마치 전혀 다른 두 프로그램을 붙여 놓은 것처럼, 전혀 다른 게스트들이 두 코너에 등장한다. 그렇다고, 예전 <무르팍 도사>와 <라디오 스타>가 함께 하던, 토크쇼의 일관성도 없다. 그저 말만 가족을 붙였을 뿐이다. 그 이전에 해오던 '감놔라 배놔라' 코너를 포기하자니,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운 코너, '가족 포차'에 대한 절대적 확신도 없는 것이, 어정쩡한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의 현재 상태라고나 할까?

 

되는 집안은 뭘 해도 되지만, 안되는 집안은 뭘 해도 안된다는 속담은 '가족 포차'를 두고 이르는 말같다.

<해피투게더>의 야간 매점이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당시 트렌드가 되고 있던 '야식'이었다. 게스트들이 들고 나온 신선한 메뉴의 야식 '먹방'이 야간 매점을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말이 포차지, 배경만 포차인 '가족 포차'엔 포차다운 먹방은 없다. 그저 흔한 오뎅 국물 하나 없이 이루어지는 맹송맹송한 토크는, 영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11월 5일 방영분에서 후배들이 이경규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그 질문에 이경규가 말하기를,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하지만, 결코 진짜 결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힐링 캠프> 등을 비롯한 이경규의 침체를 설명하는 명쾌한 정의가 될 수도 있는 말이다.

또한 이날의 후배들 질문에는, 어떻게 하면 이경규의 라인에 들 수 있는지 등과 같은 것이 있었다. 유재석, 강호동도 위기다, 이제 절정을 지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여전히 이윤석이 침을 튀기면서, '시키면 다한다'는 식의 이경규 라인에 서는 법을 강의하는 '가족 포차'라니, 현실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질문이 아닌가.

 

게다가 포차에 초대되는 게스트들의 면모도 그렇다. 직장내 분위기를 살기 위해, kbs 아나운서실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수의 개그맨들이 초대되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이미 <해피투게더>를 통하여 충분히 울궈낸 캐릭터에, 이야기들이다.

제 아무리 새로운 포맷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담긴 내용이 신선하지 않다면, 시청자들의 시선을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미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의 출연진 면면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떤가.

 

어쩌면 애초에, 10시대에서 8시대 가족적인 분위기로 자리를 옮겼어야 할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가 11시의 예능 정글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부터가 넌센스였을 지도 모르겠다. 과연 동시간대 2위나마 쟁취할 수 있을런지, '종영이야 폐지냐' 논란의 기로에 선, <매직 아이>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런지. 식상한 출연진에, 그보다 더 식상한 토크로 점철된,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의 품격은 유지가 가능할 지 여러모로 그 행보가 아쉽다.

by meditator 2014. 11. 6. 11:44

'하균신'이 돌아왔다.

11월 5일 부터 새로이 시작된 mbc수목 미니시리즈 <미스터 백>은 70대 노인이 젊음을 되찾는다는 내용보다도 일찌기 <브레인>이래, 하균신이라 불리워졌던 배우 신하균의 복귀로 더 관심을 끌었다. 또한, 불과 얼마 전<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과 함께 이른바, '남다른 캐미'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장나라의 이른 복귀로도 주목받기도 했다. 이렇게, 신하균, 장나라라는, 신선한, 하지만 시청자들이 기대하기에 충분한 두 스타의 조합으로 새로이 시작된, <미스터 백>, 70대 노인 최고봉(신하균 분)이 젊음을 얻고, 젊은 여자 은하수(장나라 분)와 엮이는 어찌보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내용의 이 드라마의 첫 출발은, 두 캐릭터에 대한 공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대 노인의 맘에 들어온 젊은 여자라는 눈쌀 찌푸리는 설정으로 아슬아슬한 출발을 보인다.

 

'내가 성공한 이유는 그 누구도 사람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희연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당당히 자신의 성공 이유를 이렇게 말하는 대한 리조트 회장, 최고봉, 그런 그의 신념의 댓가답게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아니 사람이 득시글거리긴 한다. 그의 돈을 바라보고 모여든 동생들, 그의 돈을 받고 일하는 비서 무리들, 그리고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 그 돈을 다 짊어지고 가실거냐'며 틈만 나면 사고를 치는 외아들까지. 하지만, 떠들썩한 생일상을 뒤로 하고, 훵한 거실에서 넓은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끄적거리는 최고봉의 모습에서, 이룬 것은 많지만, 얻은 것은 없는 외로운 노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외로운 노인의 정반대편에 은하수가 있다. 비록 아버지의 자리는 비었고, 그 아버지의 자리를 힘겹게 대신하는 어머니가 홀로 있지만, 취직의 소원이 '일일 일닭'인 소박한 은하수 주변엔, 남동생과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맘에 안드는 아들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자신을 부축하는 아가씨를 멀어제끼는 안하무인 최고봉과 달리, 몇 번이나 자신을 길바닥에 밀어제끼는 노인도 측은지심으로 거두는 마음 따뜻한 아가씨 은하수가 대비된다.

 

미스터백 장나라 신하균

(tv데일리)

 

이렇게 첫 회 <미스터 백>은 흡사 스쿠루지을 연상케 하는 고집불통 노인 최고봉와, 은하수를 캐릭터적 대비를 통해 소개한다. 그저 나이가 많고 적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인간적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은, 아들의 사고 기사를 막기 위한, 양로원 이벤트에 나선 최고봉과, 일일 자원 봉사로 그곳에 온 은하수의 뜻밖의 만남, 이어진 아들 최대한(이준 분)과의 호텔 객실 해프닝을 통해 인연을 구축한다.

 

이렇게 대비되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개과천선'이 필요한 최고봉이란 존재를 설명하고, 운석의 충돌이라는 자연의 미스터리를 통해, '회춘'에 대한 개연성을 획득해 간다.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신하균의 고집불통 최고봉 캐릭터에 대한 열연과, 황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하얀 양복을 입은 '사신(死神)'그룹의 빈번한 등장과 운석의 등장 등으로 환타지적으로 상쇄하고자 한다. 목까지 주름이 쭈글쭈글한 노인 분장은 실감이 났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 구부린 등으로 숨길 수 없는, 팽팽한 근육미의 육체와, 제 아무리 기력이 좋은 노인네라고 해도, 양 쪽 발에 모래 주머리를 잔뜩 채운 것으로 채감되는 노인의 육체적 실감과는 먼, 젊은 신하균의 동작들은 그저, 젊은 배우가 하는 노인 역의 애교로 넘어가 눈 한번 끔쩍하고 넘어갈 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허허거리며 웃어 넘길 수만 없는 설정도 존재한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무기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딸의 친구를 첫 눈에 반하고, 그에게 떨어지던 붉은 장미꽃을 오마주하며, <아메리칸 뷰티>의 캐빈 스페이시도 딸 친구에게 반하지 않았냐며, 70대 노인인 최고봉이 은하수가 마음에 들어온 것을 설명하려 해도, 양로원에 자원봉사 온 젊은 처자에게 마음을 뺏긴 할아버지라는 설정이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굳이 젊음 몸으로 돌아간 최고봉이 은하수를 만나도 되는데, 70대 노인의 '미혹'을 설정으로 넣었는지, 그 개연성과 타당성이 <미스터 백>의 짐으로 남는다.

 

또한 은하수와 최고봉의 아들,  최대한의 만남도 껄쩍지근하다.

객실을 청소하는 인턴 사원 은하수에게 다짜고짜 들이닥쳐, 웃통을 벗고 그녀와 함께 침대 위로 뒹군 최대한, 그것도 모자라, 성희롱이라며 분개하는 그녀에게 돈을 던지며, 비서에게 해결책을 부탁하는 설정은, 제 아무리 그들이 뒤덮인 시트 아래에서, 은하수에게 뺨을 맛다못해 침대 아래로 던져졌다손 치더라도, 시선을 끌기위한 무리수로만 보인다. 제 아무리 이들의 인연을 이후 아름답게 그려간다손 치더라도, 첫 회의 무리한 침대씬은 두고두고 부담으로 남을 터이다.

 

사실 그보다 더 우려가 되는 것은, 첫 회에, 최고봉과 은하수, 그리고 최대한과 은하수가 조우하게 되면서, 혹시나 앞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 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까 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천륜을 거스르는 설정을, 공중파의 미니시리즈에서 거부감없이 설득해 나갈 수 있을지. 하다못해, 20대, 아니 십대들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거슬러 다시 살아보고픈 것이 하나의 로망인 세상에서, 70대 노인의 회춘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소재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눈쌀을 찌푸리는 과욕만 아니라면, 그 공감과 과욕 사이에서, <미스터 백>이 어떻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성공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4. 11. 6. 09:07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라이어 게임>과 <지니어스 게임>은 모두 가이타니 시노부의 만화 원작으로 부터 비롯된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게임을 충실히 반영하며, 게임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지니어스 게임>이 리얼리티 게임으로, 게임 자체에 충실하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간의 심리적 이합집산에 치중하고 있다면, <라이어 게임>은 비록 배경은 LGT사무국에서 리얼리티 쇼로 바뀌었지만, 원작의 캐릭터들이 온전히 살아있고, 거기에, 게임의 호스트가 구체적 인물로 개입되면서, 드라마적 요소가 보다 강화되었다. 특히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순수한 여대생 캐릭터 칸자키 나오의 한국 버전인 남다정(김소은 분)의 존재로 인해, <라이어 게임>은 게임 그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 해볼 여지를 남기는 드라마가 되었다.

 

11월 3,4일에 방영된 <라이어 게임>에서 등장한 게임은 이른바 '정리해고' 게임이다. 이제 게임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남다정을 포함한 여덟 명의 사람들이, 몇 차례의 투표를 거쳐, 서로에게 표를 나누어 주고, 그 과정에서 가장 적은 표를 받은 최후의 한 사람이 게임에서 '정리해고'가 되는 방식이다.

 

그간 게임 과정을 통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순수한 캐릭터로 인해, 팬들까지 생긴 남다정은 당연히 생존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예상된다. 그에 반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게임 상대자를 속이며 살아남은 제이미(이엘 분)은 당연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제이미가, 남다정을 도와주는 조달구(조재윤 분)와 하우진(이상윤 분)의 존재, 거기에 함께 식사를 한 듯한 강도영(신성록 분)과의 사진까지 제시하자, 여론은 전반대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러니, 당연히 두 번의 투표 과정에서 남다정이 '정리해고' 대상자로 찍히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물론, 여주인공인 남다정은 '정리해고'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돌아온 하우진이 그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게임의 조건을 이용해, 그녀의 개를 자처하면서 게임의 방향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판을 흔들던 제이미 대신, 하우진의 도움을 받은 남다정이 게임의 중심에 서고,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정해지게 된 것이다.

 

뜻밖에도 그녀가 고른 '정리해고' 대상자는 실제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든 어머니의 병원비도 제대로 못내 고통을 받다 라이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정과장(박노식 분)이었다. 자신이 다시 한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 정과장은 분노를 뿜어낸다. 회사가 버린 자신을, 게임의 동료들이, 더구나, 그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게임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유일하게 위로를 건넸던 남다정이 자신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결정했음에 대해.

 

그런 정과장에 대해 남다정은 말한다. 당신의 정리 해고는, 그 예전 회사에서 짤린 정리해고와 다르다는 것을.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품으로, 병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은 당신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그러면서, 정과장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자신이 벌어들인 돈 중에서 나누어 준다.

또한 남다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표를 구걸하여 빚진 나머지 게임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먹고 먹히는 게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무엇을 해도 지탄받지 않는 곳에서, 남다정은, 역설적인 결정을 내린다.

 

물론, 거짓을 하지 못해 아버지의 빚을 대신 짊어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늘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남다정은 착하다 못해, 답답하고 바보같은 캐릭터이다. 게임 과정에서, 그녀의 '개'를 자처한 '하우진'이 없었다면 도저히 승리는 꿈도 꾸지 못할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내린 자신의 이익조차 포기하는 뜻밖의 결정은, <지니어스 게임>처럼 게임 자체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뜻밖의 교훈을 남긴다.

 

하우진은 말한다. 애초에 '정리해고' 게임이 제시됐을 때, 남다정이 제시한대로 모두가 우승 상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을 약속하고, 그 누구도 정리해고 대상자로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게임의 승리 방법이었다고. 이것은 단지, 게임의 승률을 떠나, 실제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정리해고'에 대한 상징적 금언이 된다. 누군가를 해고 하는 대신, 조금씩 나누어 일하고, 조금씩 나누어 받으면 되는 것, 역시 우리 사회 '정리 해고'의 가장 이상적인 해법이니까.

 

하지만 하우진이 비웃듯이, 사람들은, 그렇게 힘을 모아 모두가 살아남는 가장 안전한 방법 대신,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으로, 혹은 '내가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고 싶다는' 이기심으로, 모두가 상생하는 방법 대신, 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방법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제이미의 방식이 다시 한번 판을 치고, 결국 하우진의 도움을 받은 남다정의 트릭에 놀아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즉, 제 아무리 나만 아니면 돼 라고 하지만,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모두가, 탈락 대상자가 되듯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게임을 조율하는 누군가에 의해 '장기판의 '졸'과 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기세 등등하던 그들이 남다정 앞에 비굴하게 찾아와 표를 구걸하는 존재가 되듯이 말이다. 결국 나 하나의 약간의 이익을 챙기려던 것이, 나의 존재를 비굴하게 만들고, 정리 해고의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정리해고' 게임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과가 보여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회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던 정과장이 다시 한번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정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얽어매었던 '과장'이라는 직함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되찾고 웃으며 물고 물리는 게임판을 떠날 수 있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업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고용 유동성이다. 즉, 기업의 입맛에 따라, 혹은 경기에 따라 마음대로 직장 내 인원을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 이에 대해, 고용되는 입장에서 원하는 것은, 그 반대의 고용 안정성이다.

정과장의 게임 내 정리 해고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문제는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용하는 방식, 그것을 운용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보여준다.

실제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은 높은 고용 유동성을 가진 사회이다. 하지만, 이들 사회의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해고가 되어도, 그들의 삶을 사회가 보장한다. 다음 직장을 위해 사회가 그들을 재교육 시켜주고, 아이들의 교육과 가정 경제를 책임져주기에, 직장에서 밀려나도 사람들이 생존권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즉, 게임에서 정리해고가 되었지만, 남다정의 도움으로 경제적 위기를 모면한 정과장처럼, 정리해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리 해고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정리 해고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드라마 <라이어 게임>은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두려운 것, 역시 재취업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몰린, 보장되지 않은 삶때문 아닐까. 고용 안정성, 고용 유동성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회의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남다정의 선택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알고도 눈감았던 '정리 해고'에 대한 정리를 '정리해고' 게임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착한 남다정은 결국, 아버지의 빚을 갚는 대신, 다음 단계에 진출하는 것을 전제로, 자신이 번 돈을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를 도왔던 하우진과 조달구의 입장에서는, 아니, 속시원한 결과를 바랬던 시청자들 입장에서 조차,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질 결단이다. 결국 누군가 이기고 지는 게임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조력자들의 우문에, 남다정은, 답을 한다. 누군가에게 빚을 안기고, 자신이 승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그녀가, 우승 상금을 안고 게임에서 빠져나온 순간, 그녀가 승리를 통해 얻은 상금은,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곧 빚으로 남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전 단계의 그 누군가처럼, 은행에 자신을 저당잡히거나, 그도 아니면 야반도주를 할 신세가 되고 말 것이기에, 그런 처지를 겪은 남다정은 자신과 같은 처지를 물려주는 결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밟고 일어서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남다정이 보여준 결정은, 우리의 생존 논리를 다시 생각케 한다.

 

아주 원칙적이면서도, 순진무구한 남다정이 내린 결론, 거짓말 게임, 누군가를 속고 속이면서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되는 게임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도와, 힘을 합쳐 살아남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며, 경쟁이 아닌 '상생'이 살 길이라 말한다. 또한 그녀에게서,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반문하며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며, 그녀의 조력자를 자처하는 하우진처럼, 그리고 조달구처럼, 그녀의 순수함이, 진정한 조력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경쟁이 아닌, 상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4. 11. 5. 10:59

50회 대장정의 막을 내릴 마지막 행보를 걷고 있는 <유나의 거리>, 대장정의 마무리답게 그간 유나와 함께 살던 거리 속 사람들의 이별이 잦다. 엄마를 찾은 유나(김옥빈 분)가 다세대 주택을 떠날 예정이고, 도끼 형님, 장노인이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처지이다. 그 중 우리의 주인공, 김창만(이희준 분), 유나의 소개를 받아 다세대 주택으로 세들어 와 살며 한만복(이문식 분) 사장의 콜라텍 지배인으로 일하던 그 역시 이곳을 떠나게 생겼다. 그런데, 결국 유나를 소매치기 업계에서 손을 씻게 만들었던 '의지'의 김창만, 그는 이별하는 법도 남다르다.

 

말이 이별이지, 그 이별의 시초는 본의가 아니다.

창만의 사람됨을 마음에 들어 하던 한만복 사장과 그의 아내 홍여사(김희정 분) 두 사람은 창만을 짝사랑하는 큰 딸 다영(신소율 분)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마음에는 믿고 맏길 콜라텍의 후계자로서, 사위 김창만이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은 다영과 창만의관계를 도모하는 한편, 창만에게 원하면 공부를 더 시켜주겠다는 등 호의적 제안을 하며 '꼬신다'

하지만, 일찌기 유나에 대한 호의로 다세대 주택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위험을 무릎쓰며 유나의 소매치기를 막아낸 창만은 요지부동이다. 그는 늘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는데, 처음 그를 무시하던 한만복 사장 부부는, 이제 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창만과 다영의 관계를 추근거린다.

결국 눈물과 함께 다영이 백기를 들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딸의 눈에서 눈물을 쏟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만복 사장 부부는 창만을 원망하고, 심지어 콜라텍에서 나가달라 요구한다.

창만의 말대로, 처음 다영을 집적거린다고 한만복 사장에게 맞았던 창만은, 이제, 다영을 외면했다고 다시 한만복 사장에게 맞고 콜라텍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tv리포트)

 

웬만한 사람같으면,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이랬다 저랬다 자신을 흔들다 못해 하루 아침에 밥줄을 끊은 사장 부부를 원망도 하고 따지기도 하련만, 창만은 초연하다.  그저 이제 자신이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11월 3일 방영된 47회, 골목으로 데려가 창만을 두들겨 팼던 한만복 사장네 보일러가 말썽이다. 밤새 두 자녀의 방이 냉골이 되었다. 이럴 때 딱 필요한 사람은, 바로 창만인데, 바로 전날 골목으로 데려가 두들겨 패며 콜라텍에서 나가라고 했던 그를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만복 사장의 아내, 홍여사의 처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만복 사장 부부가 누군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한 잔머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부부 아닌가. 결국 창만의 방을 찾아 보일러를 고쳐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그 집에서 창만과 제일 어색하지 않은 꼬마, 동민(백창민 분)이다.

그런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동민의 부탁에, 창만은 고까움 하나 없이 그러마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안아프게 이빨을 뽑아 줄 사람이라며 자신의 이빨을 뽑아 달라고 부탁하는 동민의 이빨을 대번에 뽑아댄다.

그리고 벨도 없다는 유나의 지청구를 뒤로 하고, 부속품까지 직접 사서, 한만복 사장네 보일러를 고쳐 놓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콜라텍 보일러까지 손을 댄다. 그런 창만에게 민망해 하는 사장 부부에게 자기 대신 콜라텍 일을 볼 사람이 올 때까지 콜라텍 일을 봐줄테니 걱정말란다.

팰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아쉬우니 다시 그를 붇잡으려는 사장 부부의 손바닥 뒤집듯 하는 호의에는 단호하지만, 떠나는 자리는 단단히 마무리하고 떠나겠단다. 다세대 주택에서 떠나는 시기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르신'하고 따르던 도끼 노인이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까지 머무르겠단다. 그러면서, 밤이면 '치매'에 걸려 헤매이는 도끼 노인의 방에서 자고 나온다.

 

창만은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일찌기 조실부모하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지내다가, 작은 아버지에게 도둑 누명을 쓰고 가출을 했던 그, 보통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는 범죄형으로 그려내기가 쉬운데, <유나의 거리> 창만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출연하는 인물 중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가출하여, 홀로 밥벌이하며,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생들 저리 가라할 지식과 상식을 쌓았고, 검정고시를 넘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반듯하게 살아가는 창만의 존재는, 부모 없이 못배우고 가난하면, 죄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게 정석인 것처럼 그려내는, 우리 드라마, 우리 사회의 편견을 단번에 뒤집어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지난 40 여회 동안 그가 그래왔듯이, 억울하게 다세대 주택과 콜라텍을 떠나는 마당에도,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그들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다.

'이런 창민의 진솔한 자세는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유나에 대한 친엄마의 오해를 풀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유나로 인해 고통받던 엄마의 마을을 다독인다. 인터넷 상에서 오르내리는 루머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양심의 무게에 중심을 두라는 말로, 그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엄마와 의붓 아버지의 마음조차 돌려 세운다.

낮은 곳에 사는 없이 사는 사람들, 범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돈이 없어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음을 가장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존재가 바로 김창만이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통해 뚝심있게 그려낸 김운경 작가의 이른바 '페르소나'다.

 

항상 옳은 소리만 하고, 반듯한 행동만 하는 김창만은 어찌보면, 참 멋대가리 없는 캐릭터인데, 이희준이란 좋은 배우를 만나, 그 캐릭터가 진실함을 채워간다. <유나의 거리>가 방영되는 동안 개봉했던 영화<해무>에서, 발에 전자발찌를 차면 딱 어울릴 거 같은, 자나깨나, '가이내'를 찾아쌌는 창욱이란 캐릭터조차도, 이희준이 하고 보니, 종종 귀엽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 조차 순박함을 지우지 못하듯이, 이희준이란 배우가 가지는 개인의 아우라가, 창만이란 민숭민숭한 캐릭터와 결합되어, 진국의 향기를 뿜어낸다. 덕분에, 그저 교과성같은 인물 창만은, 인간적 매력이 충만한 오래도록 잊지못할 존재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4. 11. 4. 10:35


<형영당 일기>는 2006년 극본 공모전 단막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하지만 2006년에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이 무려 8년의 세월이 흐른 2014년 11월 MBC <드라마 페스티벌>을 통해 방영되기까지 우역곡절이 많았다. 

'형영당일기' 스틸


<형영당 일기>가 방영된다는 발표가 있자, 동성애문제 대책위원회는 지난 9월 30일 MBC 사옥 앞에서 시위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는 이 드라마가 '비정상적인 근친애와 동성애'를 조장하는 '막장' 드라마라며 비난을 퍼부은 후, MBC에 대해 '시청 거부 및 형사고발, 손해 배상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2006년 극본 공모전 대상을 받은 <형영당 일기>는 이듬해 옐로우 필름과 < 매거진 t >가 공동 주최하는 드라마 극본 공모전 숨은 드라마 찾기에서 대상을 받았다. <괜찮아 사랑이야> 노희경 작가와 <연애시대> 한지승 감독, <다모>의 이재규 감독 등이 심사를 맡은 이 과정에서 800여 편의 작품을 제치고, <형영당 일기>는 당당하게 단편부문 대상을 차지하였다. 

노희경 작가는 <형영당 일기>에 대해 '대사가 안정적이고, 구성, 신 전개가 좋다. 동성애라는 자칫 민감한 부분을 푸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 안에서 감정 절제를 잘 했다는 느낌이다. 멜로와 살인 사건을 둘러싼 전체적인 전개에서 밸런스가 잘 맞은 작품'이라 평가했다. 

또한 이재규 감독은 '사극이면서, 동성애, 멜로라는 점을 잘 결합시켰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며 '만약 당선작 중 한 작품을 연출을 하라면, <형영당 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지승 감독은 '전체적으로 극을 입체적으로 구성할 줄 아는 재주가 돋보이고, 작가로서의 역량에 기대가 간다'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이토록 장황하게 <형영당 일기>를 선정한 심사위원의 평가를 밝힌 이유는, 이들 심사위원의 말 그 어디에도 이 작품이 동성애문제 대책위원회가 주장하듯 동성애가 에이즈를 확산 시키며, 드라마 한 편이 성정체성을 바꿀 위험을 가지고 있다거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평은 없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반대를 물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2일 밤 12시 5분에 방영된 <형영당 일기>는 '사랑을 잃은 삶은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김상연(임주환 분)의 한 마디로 축약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의붓형제로 맺어진 김상연, 김홍연(이원근 분)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와 이 두 사람 사이에 얽힌 한 여인 민회정(손은서 분)의 엇갈린 사랑이 낳은 살인을 둘러싼 미스터리 추리극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조선시대 퀴어물이라는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드라마는 형제간의 사랑을 직접적이기보다는 그들이 맞잡은 손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그들이 사랑으로 도달하게 되는 사연에 집중했다. 또한 꽃까지 뿌려 만든 아름다운 화면으로 퀴어물에 대한 불쾌감을 상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단지 애초에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논란의 과정에서 비롯된 편집의 미학(?)인지, 범인을 쫓는 수사물에 집중해 상대적으로 두 주인공의 감정과 고뇌는 덜 충실하게 전달된 느낌이다. 극본 공모 대상작이라기엔 결과가 예측되는 플롯에, 아쉬운 감정선이 범작처럼 다가왔다. 애초에 이 작품이 그런 것인지, 논란을 의식해 위축된 결과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기점으로, <후회하지 않아> <소년, 소년을 만나다> 등 퀴어물이 낯설지 않은 문화적 장르로 자리 잡은 가운데, 최근 부쩍 빈번해진 동성애에 대한 반발은 문화적 창작 의식 자체에 대한 제약으로 다가온다. 

<형영당 일기>를 놓고 역사 왜곡을 운운하지만 이미 조선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동성애는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던 인간의 문화적 형태였다. 때문에 이런 논란 자체가, <형영당 일기>가 작품 자체로서 평가 받을 기회를 놓치고, 퀴어물을 방영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논의로 입지를 좁혀 제작진의 창작 의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아 버린 것이 아닌지 아쉽다. 

by meditator 2014. 11. 3. 14:37

10월 26일 첫 방송을 앞둔 <속사정 쌀롱>을 몹시도 기대했더랬다. 윤종신에, 진중권, 장동민, 거기에 신해철까지(티저가 방영될 때까지 강남의 합류가 밝혀지지 않았다)  윤종신을 제외하고, 신구 내로라 하는 입답꾼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 심리 토크쇼'라는 신선한 포맷을 차치하고도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토론이 아닌 예능에 첫 출격하는 진중권에, 그의 '입바른' 소리가 듣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화룡점정같은 신해철이라니! 만사를 제치고 <속사정 쌀롱>의 첫 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신해철이 아프단다. 그래서 미뤄진 첫 방송, 그때까지만 해도, 모처럼 활동을 앞두고, 긴장이 심했나 싶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간 신해철은 쉬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 다음 주, <속사정 쌀롱> 대신, <히든 싱어> 이승환 편이 재방영되었을 때, '어린 왕자'의 귀환 같았던 이승환도 이승환이었지만, 그를 통해 환영처럼 그와 동시대를 나누었던 신해철이. 그들이 활약했던 시대가, 그들로 인해 위로받으며 살아왔던 '팬'이라 이름붙여진 한 시대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더랬다. 그리고, 이제 어렵사리 방영된, 첫 회 <속사정 쌀롱>은, 온전히 신해철 추모 방송이 되었다. 방송 되는 한 시간 내내, 화면 틈 사이로, 비추어 진 잠시잠깐의 신해철이라도 놓치고 싶지 읺아 뚫어지게 화면을 지켜보았지만, 쏜살같이 시간은 흘러, 그의 음악과, 그를 기리는 글귀들로, 허무하게 <속사정 쌀롱> 첫 회는 마무리되었다. 비록, 감질나는 첫 회였지만, 그럼에도,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 신해철은 역시 신해철이었다. 마지막 화면을 채우던 글귀 중 하나처럼, 그의 팬이던, 팬이 아니었던, 우리는 그를 통해 대변되었던 한 시대를 그와 공유하며 살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 <속사정 쌀롱> 첫 회를 통해 잠깐이나마 다시 조우할 수 있었던 그를 잃은 것이 더 안타까웠다.

 

 

첫 회의 포문을 연 <속사정 쌀롱>은 길고 장황한 오프닝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윤종신이야 그렇다치고, 진중권, 장동민, 강남에 신해철까지, 그 누구하나 쉬이 넘어갈, mc가 없다. 윤동신이 신해철을 소개하며, '독설'을 언급하자, 신해철이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은 쉬이 흘러가지만, 독설은 뼈가 있어, 쉬이 넘겨지지 않는다고. 신해철의 그 말을 들으니, 문득, 그의 훌륭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노래 가사에서 부터 시작해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해주었던 진솔한 멘트들 대신, 언제나 우리는 그가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남긴 몇 마디의 날선 말로 그를 기억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울컥 밀려왔다.

 

더구나 윤종신이 기억하는 신해철에 이르면, 신해철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불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이십대 청춘의 시절, 그래도 몇 년 먼저 데뷔를 한 선배라고, 첫 무대에서 가사까지 잃어버리며 떨던 윤종신을 돌려 세우며, 전쟁에 나간 병사가 등을 보여선 안된다며 굳게 다독이던 이십대 신해철에 이르면 일찌기 당차고 알찬 청춘, 어쩌면 그래서 혼란한 시대 속에서 등을 보이지 않고 맞섰을 그의 삶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 분명한 청춘 신해철이 그대로 복기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독설을 한 마디로 정의내린 오프닝이 지나고 첫 회의 게스트 허지웅은 등장하자마자, <속사정 쌀롱>의 mc들이 망할 조합이라며 한 명, 한 명 이유를 드는데, 신해철을 칭해, 남북정상회담 때 유머를 아직도 쓴다고 조소한다. 즉, 한 물 갔다는 것인데, 그 말을 들은 신해철, 좋은 건지, 쑥쓰러운건지, 온 몸을 구기며 웃는다. 신해철이 간 뒤, 허지웅은 그의 sns를 통해, 친했던 형, 신해철을 <속사정 쌀롱>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하던 대로, 한껏 '까대기만' 했다며 통곡했는데, 그런 허지웅의 말처럼, 첫 회 <속사정 쌀롱>에서 게스트인 허지웅은, 안면이 있는 mc들 그 중에서도 친한 형, 신해철을 마음껏 면박을 주었고, 신해철을, 그런 허지웅의 면박을, 사람좋은 웃음으로 흔쾌히 받아넘겼다. 그 어디에도, 정색을 하며, 다그치는 독설가 신해철은 없었다.

 

물론, 신해철이 그저 허허거리며 넘어간 것만은 아니다.

'후광 효과'에 대해 논할 때, '후광 효과'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강남과 장동민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며, '후광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전직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 효과를 누리는 현직 대통령을 정확히 짚고 넘어간 것도 신해철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짚을 건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심리학 실험을 통한, 심리학 용어를 알아보는 시간을 지나, 마치 심리학 버전의 <마녀 사냥>처럼, 시청자의 사연을 통해 심리 상담을 하는 시간, 30대 백수를 둔 직장인 30대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엄마에게 40만원을 받아, 여자 친구에게 이른바 '반띵'까지 하는 백수 형에 대해, 백수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공감을 넘어, 그 누구도 쉬이, 백수 형에 대해 곱게 봐주는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 때, 신해철만이, 다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저 사변적인 이론이나 평가가 아니었다. 바로 그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자신이, 돈 한 푼 당장 벌지 못하면서, 작업실에 앉아 써지지 않는 곡을 쓰겠다고 앉았을 때, 작업실을 박차고 나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한 것은, 그저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밀리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꿈'을 꾸지 못할까봐 서였다고 말을 꺼낸다. 그리고, 청년 백수들에 대해, 그것을 청년 백수들의 정신력 문제로만 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을 잇는다. 그들 역시 주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땀'을 흘리기 위한 선택이, 다시 자신을 이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할꺼라는 두려움때문이라고. 즉,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상황과, 아무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땀을 흘리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표가 없는 노동은 답이 아니며, '꿈'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나태하다고 몰아세워서는 안된다고 결론을 맺는다.

 

(사진; 동아닷컴)

 

누구의 말이 맞을 필요는 없다. 청년 백수 문제에 대해, 그딴 형을 보고 사느니 집을 나가서 속 편하게 보지 말라는 단호한 말부터, 백수에 대해 복지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대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그 상황이 중요했다. 무작정이라도 땀을 흘려 일해보면 거기서 새로운 길이 모색된다는 대안론에서부터, 그럼에도 그들의 존재를 존중해주어 한다는 여러 의견이 개진되는 자체가, 중요했다. 항상 어느 한 편의 의견으로 몰아가야 속이 시원한 우리나라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다양한 각자의 의견을 풍부하게 들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속사정 쌀롱> 첫 회는 성공적이었다. 난상토론과도 같던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흔히, '백수'라 칭하는 청춘들의 존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입장을 획일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생각'이란 걸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화룡점정이 된 것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 돈을 버느냐 마느냐, 그것을 가족과 사회가 배려해주느냐 마느냐 라는 사지선다형같은 토론들 속에서, 여전히 '꿈'을 통해, 인간적 존재로서 그들을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 주는 신해철의 한 마디였다. '꿈'꾸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성찰은, 선방에서, 고승의 벼락같은 한 마디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저 사회적 존재로서, 혹은, 누군가의 아들, 형이라는 규정된 존재가 아니라, 그 온전한 한 사람의 존재로 들어가 바라본, 사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숱하게 던져진 말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얕은  1차원적인 생각들을 서글프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신해철은 뼈있는 독설이나 뿜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풍부하게 바라볼 줄 아는 속깊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난상토론에 불과할 뻔 했던, <속사정 쌀롱>을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마무리시키면서, 첫 회를 그와 함께 한 마지막 회로 만들면서, 신해철은 우리들의 곁에서 사라져갔다. 쉽게 잊기 힘들 기억 하나를 보태면서. <속사정 쌀롱> 첫 회, 아이러니하게도 또 한번 우리는 신해철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신해철은 마지막까지, 신해철다웠다.

 

 

by meditator 2014. 11. 3. 09:07